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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장면으로 재구성한 조경사] 윌리엄 켄트와 스토우 정원
#36
후원자 – 샤프츠베리 백작
때 1712년 11월
장소 나폴리에 있는 샤프츠베리 백작의 저택
등장인물 샤프츠베리 백작, 비서, 윌리엄 켄트
영국의 정치가이자 저술가, 초기 계몽철학자, 박애주의자였던 샤프츠베리 백작Shaftesbury, 3rd Earl of(본명은 Anthony Ashley Cooper, 1671~1713)은 그의 독특한 윤리적·자연주의적 종교관으로 후세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특히 알렉산더 포프가 그를 흠모했다. 1712년, 백작은 지병인 천식을 치유하기 위해 1년 가까이 나폴리에서 거주하고 있었다. 이 무렵 영국은 헨리 8세 이후 근 200년 가까이 지속되었던 구교와 신교 사이의 분쟁을 뒤로 하고 앤 여왕의 통치하에 어느 정도 안정된 삶을 누리고 있었다. 겉으로는 평화가 왔으며 구교도와 신교도도 큰 갈등 없이 화합하며 지내는 듯했다. 문제는 앤 여왕이 후사가 없다는 점이었다. 만약에 앤 여왕이 갑자기 승하하는 경우, 후사 문제로 다시 분쟁이 발생할 여지가 있었다. 비록 1701년에 다시는 가톨릭 왕이 영국의 왕좌를 차지할 수 없다는 법이 제정되었지만1 당시 프랑스에 망명하고 있던 가톨릭 왕 제임스 3세2는 자신의 왕위 계승권을 포기하지 않으려 했고 소위 자코바이트Jacobites라 불리는 그의 추종자들 역시호시탐탐 반정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샤프츠베리 아, 드디어 왔구나. 이번엔 로랭이군. 님프와 파우누스와 사티루스가 있는 풍경이라… 아주 좋군. 이번에도 윌리엄 켄트William Kent 군이 심부름을 했다지? 켄트 군은 아직 있나?
비서 예, 마이 로드. 제가 식사나 하고 가라고 해서 지금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샤프츠베리 켄트 군은 로마에서 그림 공부를 하고 있다고 했지? 미술품 구매를 중재하는 건 체류비를 벌기위해서라고 했고. 그 친구 스승이 누구인가?
비서 주세페 키아리Giuseppe Bartolomeo Chiari(1654~1727)라는 마스터 밑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3년 전에 런던에서 존 탈만John Talmann(1677~1726)과 같이 왔답니다. 존탈만이 젊은 화가 지망생을 몇몇 모아 팀을 짜서 왔다고 합니다. 모두 키아리 밑에서 공부하고 있고요.
샤프츠베리 존 탈만? 윌리엄 탈만William Talmann(1650~1719)의 자제? 수집가 윌리엄 탈만의 자제란 말이지. 흐음. 골수 가톨릭 가문이 아닌가. 그림을 수집하러 유럽에 다닌다는 핑계를 대고 사실은 제임스 3세를 옹립하기 위한 거사를 준비하고 있다는 말이 있어. 로마에 아마 연락책이 있는 모양이야.
비서 (사색이 되어) 마이 로드! 샤프츠베리 걱정 말게. 늘 그래왔지 않나. 이번에 거사를 한다 해도 실패할 걸세. 영국에서 가톨릭은 이제 더 이상 세력을 구축할 수 없어. 그나저나 켄트 군도 가톨릭인가? 그 친구 어딘가 호감이 가던데. 비서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무 것도 모른 채 그냥따라 왔을 겁니다. 그 친구 좀 백치 같은 데가 있어서 정치 쪽으로는 통 무관심한 것 같습니다.
샤프츠베리 그렇다면 다행이네. 이번에도 수고비 넉넉히 챙겨주게. 참, 자네도 잘 알다시피 우리 영국이 지난 몇십 년 동안 스페인,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연거푸 승리하면서 지금 유럽의 강국으로 부상하고 있지 않은 가. 다만 문화적으로는 크게 내세울 게 없네. 미술이나 건축은 이탈리아, 프랑스에 비해 백 년 이상이 뒤져 있어. 음악은 독일이 앞서가고 있고. 그러니 우리 귀족들이 능력 있는 젊은이들, 특히 서민 출신의 젊은 인재들을 적극 후원해야 한다네. 그게 우리의 의무야. 앞으로도 켄트 군에게 계속 주문을 넣게.
비서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아 참. 음악 말씀을 하시니 생각나는데 미스터 헨델이 런던으로 아주 이주했다는 데요. 하노버 왕실에서 많이 노하지 않을까요?
샤프츠베리 그거 일이 재미있게 되었군. 하노버 왕실에서 미스터 헨델을 곧 따라올 걸세. 하하하.
비서 네?
샤프츠베리 이 친구 이렇게 말귀를 못 알아들어서야. 생각해보게. 여왕 폐하께서 옥체가 미령하시니 조만간 후사 없이 승하하실 가능성이 크지. 그렇다면 다음 왕좌에는 누가 앉겠나. 계약대로라면 하노버 왕실에서 영국 왕위를 계승하게 되어 있지 않은가. 두고 보게 독일인이 영국 왕좌에 올라앉을 날이 머지않았네. 어허, 그렇게 이상한 표정 지을 것 없네. 유럽 왕족들이 따지고 보면 모두 친인척 관계 아닌가. 조지 왕은 재목이 썩 시원치 않다지만 그 아들과 며느리는 똘똘해. 특히 왕자비 캐롤라인이 대단히 명민하고 씩씩해요. 라이프 니츠가 애지중지하며 기른 제자라네. 그런 여인이 나중에 왕비가 된다면 영국에 해 될 일 없을 걸세. 그건 그렇고 저 그림이 볼수록 마음에 드는군.
비서 저, 마이 로드. 오늘 크라플리 경Sir John Cropley(1633~1713)에게 편지 쓰신다고 하셨는데 그건 어떻게 할까요?
샤프츠베리 참, 그랬지. 잊을 뻔했네. 구술할 테니 받아적게나. 인사말은 늘 하던 대로 하고. (잠시 생각에 잠긴다)이렇게 쓰게.
“경께서 지난 번 편지에서 말씀하시길 새로 지은 저택에 어울리는 정원을 만들고 싶다고 하셨지요. 지상 낙원을 만들어 여생을 쾌락하게 지내고 싶다는 데에 저도 깊이 공감하고 있습니다. 송구하나 저는 신께서 부르실 날이 머지않은 듯합니다. 먼저 가서, 신의 정원에서 경과 함께 거닐 날을 고대하며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신의 정원은 어떤 곳일까요? 곧 그곳에 갈 생각을 하니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오늘 새로 그림 한 점을 주문해서 받았습니다. 그걸 보고 있노라니 바로 저런 곳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강이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곳의 풍경을 그린 것 같습니다. 저 멀리 푸른 산이 아득히 보이는 것을 보니 아마도 만灣인가 봅니다. 강은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평화롭게 흐르고 있습니다. 주변의 능선에는 아름다운 빌라나 성이 서 있는데 암울한 고딕 양식도 아니고 폐허도 아닙니다. (가만, 그런데 저 원형 신전은 폐허가 아닌가. 쯧쯧, 옥의 티로구먼) 그래요. 모든 사물이 미소를 짓고 있는 듯합니다. 물은 잔잔하고 훈풍이 수면을 가볍게 스치고 지나갑니다. 장면 앞에는 큰 나무가 서서 그늘을 드리워줍니다. 해가 이미 반쯤 넘어가 노을이 물들기 시작하고 님프들이 동굴을 떠나춤을 추러 나타났습니다. 파우누스와 사티로스도 이에 합류했고요. 파우누스는 플루트를 연주하고 사티루스는 젊은 님프에게 춤을 청합니다. 이 어찌 즐거운 낙원의 정경이 아니겠습니까.
고정희는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나 어머니가 손수 가꾼 아름다운 정원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어느 순간 그 정원은 사라지고 말았지만, 유년의경험이 인연이 되었는지 조경을 평생의 업으로 알고 살아가고 있다. 『식물, 세상의 은밀한 지배자』를 비롯 총 네 권의 정원·식물 책을 펴냈고,칼 푀르스터와 그의 외동딸 마리안네가 쓴 책을 동시에 번역 출간하기도 했다. 베를린 공과대학교 조경학과에서 ‘20세기 유럽 조경사’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베를린에 거주하며 ‘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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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꿈꾼 도시, 우리가 사는 도시] 큰 도시, 작은 도시
뉴욕은 지나치게 크다
“전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상위 도시들은 시간에 따라 크게 바뀌지 않았다. … 이들은 대체로 부유한 나라에 있는 중간 크기의 도시다.”1 이러한 영국 『이코노미스트』 기사에 따르면 ‘도시 규모’와 ‘살기 좋은 환경’ 사이에는 꽤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정말일까?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중간 크기의 부유한 도시들—이를테면 멜버른, 비엔나,밴쿠버, 헬싱키 등—에서 공통적으로 살기 좋은 환경이라는 특질을 발견할 수 있을까? 반대로 일정 규모를 초과하는 대도시는 그 거대함으로 말미암아 불가피한 도시 문제로 신음해야 할 운명일까(그림1) 흥미롭게도 이미 1990년대 말 미국 시카고의 리처드 데일리 전 시장도 비슷한 생각을 한 것처럼 보인다. “뉴욕은 지나치게 크다.” 데일리 시장은 … 두 팔을 양 옆으로 쭉 펴며 덧붙였다. “마찬가지로 로스앤젤레스도 너무 크다. 그 외의 다른 도시들은 너무 작다. (우리) 시카고가 딱 적절한 크기다.”2
이러한 “딱 적절한 크기”의 도시에 대한 추구는 일부 지역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신규 도시 개발에 대한 수요가 큰 시기에 전 세계 여러 나라에서 보편적으로 이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이를테면 중국에서는 개혁 개방을 전후로 1970~80년대에 적정 규모의 도시에 대한 논의가 정점에 다다른다. 미국 밀워키 대학교 데이비드 벅 교수나 하와이 대학교 궉인왕 교수에 따르면 특히 작은 도시(小城镇 xiǎo chéngzhèn)에 대한 정책적 추구가 이 시기에 두드러졌으며, 이는 중국에서 큰 도시의 수에 비해 작은 도시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나는 이유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3 작은 도시에 대한 정책적 선호는 1980년 개최된 국가도시계획 콘퍼런스에서 잘 드러났다. “큰 도시의 성장을 억제하고, 중간 도시의 확장을 적절히 추구하며, 작은 도시의 개발을 적극적으로 권장하라”는 원칙이 여기서 선언되었고,4 같은 해 12월 중국 도시 개발에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국무원에서 이를 승인하게 된다.이렇게 한 지역이나 국가에서 몇몇 도시가 과도하게 성장하는 것을 규제하자는 주장을 반-수위도시론anti-primate city 혹은 반-대도시론anti-metropolitanization이라 부를 수 있다. ‘수위 도시’란 한 국가나 지역에서 인구, 경제, 일자리, 서비스 등의 측면에서 그 비중이 지배적인 도시를 말한다. 이를테면 한국에서는 서울(혹은 수도권)이, 중국 양쯔 강 델타 지역에서는 상하이가 수위 도시에 해당한다(그림2). 국내에서도 수도권 과밀 해소나 지역 균형 발전과 같은 일종의 반-수위도시론이 서울의 행정 기능 분산이나 지방 거점 도시 육성을 통해 구체화된 바 있다. 좀 더 지역적으로는 서울주변에 분당(계획 인구 39만 명)이나 일산(27만 명)과 같이 비교적 큰 규모의 신도시 개발이 가져올 폐해에 대한 우려가 팽배한 적이 있다. 이에 따라 수도권 신도시 정책을 인구 10만 이하의 미니 신도시 건설로 선회하자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안건혁 교수는 “자족적 신도시의 적정 인구 규모”에 대해 20~30만 명을 그 기준으로 삼아도 별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그리고 인구 집중은 해당 지역이 여러 가지 도시적 매력이 있음을 방증하기 때문에 인구를 강제로 분산시키기보다는, 제한된 수의 신도시를 만들고 인구 집중에 따른 여러 문제를 계획적으로 잘 해결하면된다고 주장했다.5 안 교수의 주장이 옳다. 다수의 미니 신도시를 건설하여 인구 집중의 폐해를 해소하자는 주장은 억지스러워 보인다. 더욱이 현재 분당이나 일산의 규모가 너무 커서 통제 불가능할 정도의 문제가 일어난다고 보기도 어렵다.
적정 규모 이론
주변 사람들에게 한 번 질문해 보자. 당신이 살고 있는 도시는 큰 도시입니까?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잠시 기억을 더듬은 후 이에 답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은 어떠한가. 지금의 도시 규모가 적절합니까? 혹은 인구 천 만의 도시와 백 만의 도시 중 삶의 다양성, 주거 만족도, 출퇴근의 편리성을 모두 고려하면 어느 쪽이 더 좋습니까? 이쯤 되면 난처하다. 적정성 자체와 여기에 영향을 주는 여러 요소에 대한 가치 판단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에서 도시의 적정 규모에 대한 고민은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저서 『정치학』에서 도시 규모는 일정한 하한선과 상한선 사이에서 결정된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도심지 면적의 하한선, 즉 최소 규모는 도시민들이 요구하는 음식이나 땔감을 자급자족할 수 있는 최소 영토로 결정되며, 상한선은 적의 침입으로부터 도시를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있는 최대 면적이라고 보았다.6 꽤 그럴듯한 논리임에도 여기에는 큰 약점이 있다. 물론 도시가 최초로 형성될 시점에 규모의 상·하한선이 존재한다는 설명은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상·하한선이라는 기준 자체가 시대와 관습의 산물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를테면 땔감을 구하는 방법이나 효과적인 방어를 위한 영토라는 기준은 시대에 따라 크게 다르다. 정확한 기록이 없는 상태에서 과거로 돌아가 하나의 규모에 대한 기준이 가장 효과적이었는지를 파악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한 시대의 상·하한선은 다른 시대에 큰의미가 없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조선 초 한성부의 방어를 위한 적정 성곽 규모가 조선 중기 임진왜란 시기에 방어를 위한 최적의 성곽 규모와 얼마나 다를지 떠올려 보자. 적정 규모에 대한 논의는 이와 같은 시·공간적 맥락성과 함께 도시 규모를 결정하는 데 영향을 주는 여러 가지 잠재적 요소—이를테면 도시의 지형적 특성, 주요 이동 수단의 기술적 수준, 또는 한 사회가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도심지 크기나 과거 도시 개발의 관습—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
김세훈은 1978년생으로 서울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한 후 하버드GSD에서 도시계획학 석사와 박사 학위(DDes)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도시설계 이론과 스튜디오 수업을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 『신흥도시 개발 모델』, 『도시형태변화분석방법론노트』, 『도시와 물길(A City and Its Stream)』 등이 있으며, 한국, 중국, 동남아시아의 도시 연구와 설계를 함께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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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설계하는 법] 자진감리自進監理
양화한강공원에 관한 몇 가지 소고
산수전략
김정윤(이하 김): 우리가 2006년 로테르담에서 서울로 오피스를 이전한 후, ‘서울은 이래야 한다’라는 명제thesis를 만들어 놓고 일을 시작했던 것은 아닙니다만, 3년 정도 일을 하다 보니 그 시점까지 우리가 수행했던 공공 공간 설계를 관통하는 하나의 ‘자세’를 발견할수 있었는데, 저는 그것이 ‘산수전략山水戰略’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즉, 산과 물을 다루는 전략을 우리 스스로 발견했던 것이죠. 아마 이걸 깨닫게 된 계기는 2007년 청라신도시 호수공원 설계공모 때 출품작 제목을 ‘산수전략’이라고 쓰기 시작했던 데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의 산수전략은 무엇입니까?
박윤진(이하 박): 일단, 산수전략의 첫 번째 의미는 산과 물을 다루는 기술입니다. 두 번째는 급속한 근대화 과정에서 잃어버린 우리나라의 지형적 혹은 경관적 문맥을 되살려야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방식에 있어서는 그대로의 복원이 아니라 동시대의 라이프 스타일을 함의하는 동시대적인 복원, 즉 ‘시학적 복원’을 하자는 설계 전략입니다. 세 번째는 산수 문화의 일상적인 가치를 인정하되, 산수라는 지리적 한계를 넘어서는, 혹은 대체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우리가 수행한 ‘강남 대체 자연Gangnam Alternative Nature’ 리서치가 이에 해당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것 외에도 산수전략에 대한 크고 작은 아이디어들이 있는 것을 보면, 아마 계속 진행 중인 어젠다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김: 그간 우리는 많은 대형 오픈스페이스 설계공모에 참여했지만, 그중 실시설계까지, 그야말로 끝까지 기회가 주어진 경우는 양화한강공원이 처음이었죠. 우리가 양화에서 가졌던 산수전략은 무엇이었나요?
박: 우선,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의 다른 프로젝트와 비교해본다면 양화한강공원은 가장 가벼운(?) 경쟁을 통해 당선된 경우라 말할 수 있습니다(하하).아무튼, 양화한강공원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한강의 수문학적 특수성을 면밀히 이해하는 것이었습니다. 한강에 엔지니어링적으로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방재기능의 허용 범위는 어디까지인지, 이를 바탕으로 우리가 취해야 하는 포지션은 무엇인가를 고민했습니다.
즉, 엔지니어링과 무관하게, 그 표피를 ‘장식하는 디자인으로 마감하는 것’이 아니라, ‘양화한강공원에 어떤 수문학적인 기능을 부여할 수 있을까’라는 보다 근본적인 질문으로 시작했습니다. 김 대표의 질문에 답을 하자면, 양화 프로젝트는 산수전략의 첫 번째 항목인‘기술’ 혹은 ‘엔지니어링’에서 출발했습니다.
좀 더 부연하자면, 과거 한강은 수운이 발달한 바다와 같은 큰 강이었고, 그 주변으로 여러 가지 여가 문화가 꽃을 피웠죠. 수많은 정자가 있었고요. 마치 조선의 센트럴 파크와 같은 역할을 해왔다고 할까요. 그러나 지금은 서울이 대도시가 되면서 고수부지의 아래 위에방재 시설로서 보가 설치된 것이 가장 큰 변화죠. 양끝에 보가 생기다보니 접시 물처럼 찰랑거리는 고인 물과 다름없었던 거죠.
그래서 지금은 모래 이동이 중지되었고, 하류에서 올라오는 뻘과 지천에서 나오는 모래뻘이 한강 호안을 변화시키고 있죠. 이렇게 접시 물 같음에도 불구하고, 하루에도 1m씩 수위가 변하기도 하죠. 따라서 우리가 한강에서 가장 주목했던 것은 뻘이었어요. 여름에 범람할때마다 엄청난 양의 뻘이 한강 변에 쌓이게 되었죠. 이는 유지 관리의 문제를 항상 불러왔고, 그래서 ‘어떻게 하면 뻘을 더 원활하게 유통시킬 수 있는 공원으로 만들 수 있을까’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습니다.
김: 결국 우리는 한강을 낭만적인 물길로만 보기에 앞서 도시의 인프라스트럭처로 본 거죠.
박: 그렇죠. 뻘에 의해 효용가치가 좌우되는 호안이라고 봤고, 그렇기 때문에 이를 잘 다루는 것이 공원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봤어요.
김: 그리고 거기에 지형과 동선이 잘 부합하게 설계함으로써 공원으로서의 공간 경험을 만들어 내려고 했었죠. 인프라스트럭처이면서 경험을 만들어 내는 공원, 즉 인프라스트럭처 시스템과 지형과 동선이라는 각각의 시스템이 관계하면서 만들어내는 ‘다양한 경험의 매트릭스’를 의도했습니다.
박: 사실은 많은 정책 입안자들이 ‘한강을 과거로 복원시키자’, ‘모래밭이 있는 강으로 돌아가자’라는 말은 쉽게 했었지만, 댐이나 보와 같은 인프라스트럭처의 기본적 변화 없이는 낭만적 그림에 불과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현실적인 뻘에서 출발했던 거죠.
박윤진은 하버드 대학교 GSD를 졸업하고 Sasaki Associates, West 8 등에서 실무를 쌓고 치치 지진 메모리얼 국제설계공모 당선을 계기로 김정윤과함께 오피스박김을 설립하였다(2004). 미국 보스턴 건축대학교 등에 출강하였고, 타이완 쉬이첸 대학교(2007), 미국 하버드 대학교(2008, 2010), 오하이오 주립대학교(2011), 호주 멜버른 대학교(2012) 등에서 교육, 전시, 강연을 위해 초청되었다. 김정윤은 서울대학교와 하버드 대학교 GSD 졸업 후 네덜란드 West 8 등에서 실무를 쌓았다. 네덜란드 조경건축사이며 바허닝엔 대학교에 출강하였다. 차세대디자인리더(산업자원부 2007), 광교공원 디자인커미셔너(2008), 서울형공공건축가(2011)로 선정되었고,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교 놀튼 건축대학원이 선도적 조경가에게 수여해온 글림처특훈교수(2011)로 임명되어 강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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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의 경계를 넘어, 조경 속으로] 제니퍼 키스맷
토론토 도시계획국장
도시계획 시정의 까다로운 전문가 회의를 지역 방송에 공개하고 실시간으로 트위터를 통해 시민들과 의견을 주고받으며 대중과 토론으로 소통하는 도시계획가, ‘캐나다의 미래를 이끌어 갈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명, 걷는 도시의 전도사, 휴먼 스케일의 도시를 실현하는 전위대로서 전 세계 어바니스트의 주목을 한 몸에 받고 있는 토론토의 도시계획국장, 제니퍼 키스맷이다.
2012년 공직에 임명되기 전에는 캐나다 굴지의 도시컨설팅 기업인 ‘DIALOG’의 공동 창업자이자 탁월한 도시설계 컨설턴트로 업계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 복잡하고 따분한 남성적 문화가 주도적인 도시 분야에서 그녀는 이미 스타였다.
그러나 그녀를 진정 유명하게 만든 것은 그녀의 아이디어다. 명쾌하고 또렷한 논리와 진정성 있는 소신을 통해 수많은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켰고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해 왔던 것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짐으로써 새로운 희망을 일구어냈다. 그녀는 누구나 생활에서 직접적으로 느끼는 경험과 얼핏 사소해 보이는 관찰에서 부터 시작했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함께 했던 등하굣길의 모험이 어째서 한 세대가 지난 지금에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사라졌는지 스스로 원인을 찾아보고 느낀 것을 나누었는데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비단 학생의 건강과 환경에 미치는 영향뿐 아니라 지역 사회의 경제를 살리는 일에도 걷는 사람들, 특히 걷는 학생들의 역할이 막대하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설득력을 더했다. 걷는 사람들은 운전자에 비해 지출이 20% 가량 많다고 한다. 걸으면서 많은 자극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자전거 이용자의 경우도 비슷하다.
다양한 도시 환경에서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쌓은 경험도 값지다. 잘 사는 도시, 살기 좋은 도시로 유명한 밴쿠버에서 실시된 한 조사에 의하면, 사람들이 느끼는 가장 큰 도시 문제는 가난도 범죄도 공해도 아닌 ‘외로움’이었다고 한다. 사람 간의 연결과 연대 또한 걷는 환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이 키스맷의 관찰이다. 고밀도 주거 단지에 걷는 환경이 조성되지 못할 경우, 주차장, 엘리베이터, 유닛으로 연결되는 단순한 동선 구조가 즉흥적인 만남의 기회를 앗아가고 일종의 수직적 교외 지역vertical suburb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키스맷은 인간이 걷도록 설계된 존재라는 것을 믿으며 도시 또한 그러한 자연적 서식처의 특성에 맞게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걷는 사람의 규모에 맞게 계획된 도시, 그러한 도시가 성장을 추동하는 도시다. 그녀는 하워드Ebenezer Howard의 ‘전원 도시’ 이론을 통렬히 비판하며 그러한 단순 도식화와 거리에 대한 무지, 위계를 상실한 공간 개념이 완결적인 마을 형성을 저해하고 넓은 면적에 밀도를 흩뿌림으로써 사람과 건물과의 관계 설정을 무력화했다고 설명한다. 차를 타고 다닐 경우, 건물과 거리 사이의 상호 작용이 사라지고 도시적 맥락의 중요성은 현격히 줄어든다. 공원에 고층 건물이 들어서고, 도시 공해가 증가하며, 대중교통은 낮은 밀도로 인해 실용성이 급격히 줄어든다. 키스맷은 기존의 현대 도시계획이 각각의 토지 이용을 구분하는 것도 문제지만, 실질적으로 건물과 거리 사이가 벌어지고 그 사이의 대화가 단절되는 결과가 더 심각하다고 말한다. 제인 제이콥스Jane Jacobs가 지적한 ‘거리의 눈eyes on the street’, 혹은 ‘공원의 눈eyes on the park’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녀의 도시 철학인 ‘모두를 위한 도시’라는 명제는 ‘보행자 생태계’, ‘보행자 일조권’이라는 흥미로운 개념을 던져준다. 토론토를 예로 들면, 최근에 이루어진 성장 중 약 40%가 걷기 편한 작은 면적의 도시 지역에 집중되었다. 사람들의 활동이 있어야 걸을 맛이 나는, 걷기 좋은 도시가 되는데, 사실 명품 건축보다는 서민들의 어설픈 건축 스타일이 늘어선 곳이야말로 가장번성하는 거리였다는 관찰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공적 영역을 무시하는 거만한 건물은 결과적으로 시민의 건강을 해치는 반면, 주인공이 아니라 배경으로서위치하는 건물은 공적 공간을 보호하고 보행자의 위상을 드높이기 때문이다. 건물은 거리와 대화해야 하며 보행자는 건물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정보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 거대하고 디테일이 없는 빈 벽으로 형성되는 대형 마트나 호텔 건물이 도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이유다. 한편, 건축 스타일은 환경 윤리적 측면과도 연결되는데, 지속성, 복원가능성, 시간에 따른 가변성이 높은 재료와 공법으로 지어진 건물이 장기적으로 도시 폐기물을 줄이고 에너지를 절감하며 좋은 도시를 만든다는 주장 또한 되새겨 볼 만하다.
제니퍼 키스맷은 창조적인 도시계획을 강조한다. 특히 도시계획가는 복잡하고 어려운 도시 문제를 시민에게 차근차근 쉽게 설명해 줄 의무가 있음을 역설한다. 본 인터뷰에서는 그녀의 대표적인 소통의 철학이 담긴 혁신 사례들을 간략히 다루어 본다.
이 꼭지를 연재하고 있는 인터뷰어 최이규는 1976년 부산 생으로, 그룹한 어소시에이트 뉴욕 오피스를 이끌며 10여 차례의해외 공모전에서 우승했고, 주요 작업을 뉴욕시립미술관 및 소호, 센트럴파크, 두바이, 올랜도, 런던, 위니펙 등지의 갤러리에전시해 왔다. 저서로 『시티 오브 뉴욕』(공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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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공감] 삼성출판사 공개공지
서초동에 위치한 삼성출판사 사옥에는 정원이 딸려 있다. 이 정원은 사유지이지만, 동네 주민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개방된 공개공지다. 좁은 골목과 건물만 빼곡할 것 같은 장소에서 만난 뜻밖의 열린 정원은, 공간의 질에 대한 논의와 별개로 사유 공간의 공공적 활용에 대한 이야기 소재가 되기에 충분하다.
겨울에 방문한 정원이라 을씨년스럽고 황량하기까지 하다. 겨울의 흔적을 통해서 푸르렀을 때의 상황을 짐작하기란 쉽지 않지만, 다행히 지난 여름에 이곳을 찾았을 때 찍어 둔 사진이 있어서 참고할 수 있었다. 전체적인 공간 구성을 살펴보면, 삼성출판사 건물이 안쪽 벽을 맡고 그 좌우는 높은 코르텐 스틸 벽면과 자작나무에 의해 위요되어 있다. 특히 코르텐 스틸의 단순명료한 질감과 과감한 스케일이 눈에 띈다. 이미 만들어진 공간에 대해 호불호를 말하기는 쉽지만, 설계 단계에서 재료와 스케일에 대한 확신을 갖는 데는 오랜경험이 요구된다. 입구 주변은 단차를 극복하기 위해 설치된 계단이 둘러싸인 느낌을 주고 있어, 공간 전반에 걸쳐 정원다움의 기본 속성 중 하나인 위요감은 꽤효과적으로 설정된 것으로 판단된다. 이곳에 서 있으면 주변 요인들의 방해를 받지 않고 온전하게 ‘내부에 들어와 있음’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 보면, 이곳이 과연 공개공지로서 적합한 구성을 취하고 있는가를 따져볼 수 있다. 공개공지는 건축주가 일정 인센티브를 받고 공공에게 제공하는 공간이다. 따라서 개방성과 접근성이 매우 중요하며, 다른 사례를 떠올려 보아도 스퀘어나포켓 파크의 형태로 조성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욱주는 이 연재를 위해 작은 모임을 구성했다. 글쓴이 외에 factory L의 이홍선 소장, KnL 환경디자인 스튜디오의 김용택 소장, 디자인 스튜디오 loci의 박승진 소장 그리고 서울시립대학교의 김아연 교수 등 다섯 명의 조경가가 의기투합했고, 새로운 대상지 선정을 위해 무심코 지나치던 작은 공간들을 세밀한 렌즈로 다시 들여다보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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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적인, 너무나 도발적인
마르틴 라인-카노와의 대화
토포텍 1Topotek 1의 베를린 오피스에서 마르틴 라인-카노Martin Rein-Cano를 만났다. 그는 그의 작품만큼이나 도발적이고 강렬했고, 그의 오피스는 그의 작품 이상으로 절제된 표면이었다. 즐거움과 에너지로 가득했던 그와의 대화를 옮긴다.
고정희(이하 G): 지난 주말에 한국에 다녀왔다고 들었다. 아직 여독도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인터뷰에 응해주어 감사하다. 한국에 대한 인상은 어땠는가?
마르틴 라인-카노(이하 R): 열흘 동안 인도를 경유하여 아시아 여러 나라를 다니고 마지막에 한국에 머물렀다. 젊은이들의 팝 문화의 수준이 대단히 높다고 느꼈다. 그러나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음식이다. 몹시 독특하고 강렬하더라. 각종 김치 종류, 불고기에 미끄러운 홍합 미역국까지 모두 먹어보았다(웃음). 너무 강렬하고 독특해서 좋다 싫다 말하기 어렵다. ‘나중에 집에 가면 익숙한 음식을 먹을 수 있을 테니까’라는 마음으로 일단 모두 시도해 보았다.
G. “집에 가면”이라고 했는데 어디를 말하는가? 베를린? 아르헨티나? 스페인?
R. 일단은 베를린을 집으로 생각하고 있다. 아버지는 유대인이고 어머니는 스페인계 가톨릭인데, 열세살 때 독일로 이주했다. 그래서 독일 개신교에 대해서도 깊은 유대감을 가지고 있다. 종교적, 문화적으로 좀 복잡하게 섞였다.
G. 더 이상 복잡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래서인지 토포텍 1의 작품을 보면 다원적인 점이 눈에 띈다. 토포텍 1이란 이름을 제공한 토포텍처와 도시 광장이 다르고 공원이 또 다르다. 최근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수퍼킬렌Superkilen의 도시 구역은 대단히 강렬하다. 사회 문제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R. 그렇다. 내 개인적인 출신과 성장 배경으로 인해 다원적이지 않을 수가 없다. 지금은 무신론자이지만 가톨릭의 영향도 많이 받았다. 특히 외할머니는 아주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다. 가톨릭은 신비주의적이고 영적인 종교다. 그 반면에 아버지의 유대교나 독일의 개신교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면을 가지고 있다. 궁극적으로 내가 어떤 종교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는지나 자신도 잘 모른다. 이렇게 복잡한 종교적·문화적 배경과 이주자라는 사실이 내 사고에 큰 영향을 미쳤다. 많은 것을 동시에 보고 이해하는 다원적 능력이 키워진 것 같다. 내게는 ‘낯선 것stranger’과 ‘이주migration’가 중요한 테마다.
G. ‘낯선 것’이라는 테마는 도처에 나타난다. 특히 정원 자체를 낯선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는데, 매우 독특한 견해인 것 같다. ‘이주자들’이라는 테마의 경우, 특히 덴마크 코펜하겐의 수퍼킬렌 프로젝트에서 극명하게 드러나는데 이 점은 뒤에 다시 이야기하기로 하고, 우선 토포텍 1의 트레이드마크처럼 인정되고 있는 ‘표면 전략surface strategy’에 대해 듣고 싶다.
R. 표면 전략은 우리 디자인의 가장 핵심이다. 나는 대학에서 처음에 미술사를 공부했었다. 미술사 중에서도 정원의 역사에 관심이 컸고 나중에 정원 문화재 관리사가 되고 싶었다.1 그때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정원으로 답사를 갔던 것이 계기가 된 것 같다. 그 다음 프랑스 정원과 영국 정원을 둘러보았다. 정원의 역사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흥미진진함을 알게 되었고, 현대 조경에서 역사적 맥락이 사라져간다는 것을 느꼈다. 학문도 좋지만 직접 작업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조경학과로 옮겼다. 처음부터 정원의 회화적인 면에 매료되었다. 그래픽적인 것이라고 해도 좋겠다. 예를 들어 바로크 정원의 파르테르, 소위 자수화단이라는 것을 보면 결국 표면에 수를 놓은 것인데, 나는 이를 평면 그래픽으로 이해했다. 영국 정원은 풍경화를 모델로 삼았으며, 현대에 와서는 로베르토 부를레 막스Roberto Burle Marx, 마사 슈왈츠Martha Schwartz 등이 그래픽적으로 작업했다. 거기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대학 때 피터 워커Peter Walker와 마사 슈왈츠의 설계실에서 6개월간 실습한 적이 있다. 그때 두 사람이 실험하던 랜드 아트 혹은 대지 예술을 보고 이야말로 예술적인 것과 조경적인 것을 연결하는 교량임을 깨달았다.
G. 그렇지만 마사 슈왈츠의 작품을 보면 조경을 공간적인 것으로 다루는 면이 강하다. 그 밖의 모든 사람들도 조경을 3차원의 예술로 파악하고 있다. 당신만은 유독 정원과 경관의 2차원성을 주장한다. 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R. 3차원은 건축의 영역이다. 벽을 세우고 지붕을 덮으면 그 내부에 3차원의 공간이 형성된다. 그 반면에 우리가 하는 작업은 외부의 표면, 즉 2차원에서만 이루어진다. 산, 언덕, 호수, 모두 표면의 일부다. 3차원이 아니다. 지표면은 하늘과 직접 맞닿아 있다. 농담반 진담 반으로 신은 최초의 조경가라고 말한 적이 있다. 지구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지구 전체의 표면과 지형을 다루는 것이 바로 내가 생각하는 조경이다. 어떻게 보면 과대망상증에 가깝다(웃음). 지구 전체를 놓고 본다면 우리 인간은 표면에 붙어서 살며 표면을 통해 우주와 소통한다.
G. 그렇다면 표면에 그리는 그래픽은 하늘과 소통하기 위한 기호인 셈인가.
R. 바로 그렇다. 예를 들어 페루 나스카Nazca의 지상그림geoglyph을 보면 우리 인간은 선사시대부터 지표면에 부호를 그려 하늘과 소통했다. 나는 바로크 정원 역시 같은 맥락이라고 본다. 바로크 정원은 거대하게 비어 있다. 채운 공간에서는 사람들이 채워진 것들에 집중하지만, 빈 외부 공간에 들어서면 위를 바라본다. 이것이 바로 지붕 덮인 건축의 폐쇄적 속성과 외부공간이 다른 점이며 외부 공간의 매력이자 강점이다. 하늘은 매우 흥미로운 요소다. 볼 것도 많고 역동적으로 변화한다. 이를 체험할 수 있게 하려면 공간을 비워야 한다. 대개는 빈 공간을 보면 채우고 싶어 한다. 빈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지 모르겠다. 바로크 정원의 평면 기하학과 더불어 대형 연못은 하늘을 인지하게 하는 요소들이다. 하늘과 지표면이 닿아 있다는 것을 이처럼 분명하게 증명하는 것도 없다.
평면과 하늘로 압축한 것이다. 20세기의 바우하우스디자인도 마찬가지다. 철저하게 환원reduction하고 절제한다는 점이 그렇다. 단지 비율만으로 승부한다. 사실상 바우하우스 디자인이나 바로크 정원 모두 ‘비움’이 특징이다. 나는 빈 것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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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한국 조경과 리얼리티의 회복
“레알이야” 리얼이 리얼로 보이지 않는 세태에 대해 청춘들은 ‘리얼’ 대신 ‘레알’로 말한다.“레알리!” 나도 믿기 어려운 꿈과 같은 현실이다.
조경 40년의 숙원이던 ‘조경진흥법’을 우리는 작년 말에 제정해냈다. 조경 공동체는 재작년 말에 조경 가문의 가훈이라 할 ‘한국조경헌장’을 제정한데 이어 드디어 법이라는 제도적 집을 갖게 되었고, 대한민국에서 조경은 더 이상 임의적 분야가 아닌 정규적 분야로서의 지위를 공인받았다. 이제 조경은 조경진흥법 이전과 구분되는 진흥법 이후의 역사를 새로 쓰게 되었다. 이제 이 ‘집’의 구성원인 조경 가족과 함께 리얼한 실천을 통해 가정을 이루고 주변 세상의 행복에 기여해야 할 차례다.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서 한국조경의 대내외적 현실을 새로운 각도에서 반성하고 전망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대외적으로 보자. 조경의 인접 분야들은 21세기의 전환기에 시대 정신을 꿰뚫는 담론과 개념들을 창출하여 해당 분야의 사회적 위상을 제고하고 이들 담론을 국가적 어젠다로 추동하여 중장기적인 공공 수요를 창출한 선례들을 내보였다. 도시 쪽은 일찍이 1990년대 후반에 ‘걷고 싶은 도시’나 ‘살고 싶은 도시’ 담론을 시민 운동으로 추진하여 근 10년 이상 국가적, 지역적인 연구와 사업 수요를 창출해 왔다. 이에 따라 도시 곳곳에 보행 전용 가로와 공원, 광장 등 보행 공간들이 증설되었으며, 조경 분야 또한 이의 시행 단계에서 수혜를입었다. 산업디자인 분야도 2000년대에 들어 ‘공공디자인’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창안해 도시 환경의 새로운 분야로서 입지를 확보한 바 있었고, 건축 분야는 더욱 저돌적으로 ‘건축기본법’ 속에 ‘공간 환경’이라는 전대미문의 개념을 만들어 도시와 조경까지 건축의 영역에 포섭하려는 전략을 제도화하고 있다. 이들과 함께 그동안 지속적인 애증관계를 가져왔던 산림 분야에 이르기까지 최근의 업역 경쟁은 가히 담론 전쟁과 개념 전쟁의 형태로까지 가열되고 있다.
이에 비해 조경 쪽에서는 그간 이들에 필적할 만한 정책적 담론 제시가 미약했다. 뼈아픈 고백이지만 조경의 기원에서 최근의 급성장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외부의 정치·경제적 계기와 여건에 편승하여 발전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우리 스스로 창출한 가치와 담론, 그에 의한 사회적 수요의 견인은 상대적으로 희박했던 것이다. 그 이면에는 조경 지성의 현실 인식의 부재, 이론 연구의 부재가 있었다. 이것이 과거 한국 조경의 대외 정책의 리얼리티였다.
다음으로 대내적 현실을 보자. 교육·연구 분야와 계획·설계 분야의 현실에 대한 많은 지적이 있어왔으나, 주요 쟁점들에 대해서는 충분한 논쟁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문제가 계속 잠복되어 온 상태다. 특히 현재 50여 개 대학에서 행해지는 교육·연구의 틀은 조경 40년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고식적·획일적이며 실무와 연동되지 못하여 개혁과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 대표적인 지적이었다. 계획·설계에 있어서는 생태적 접근이든 예술적 접근이든 아직도 ‘그림 같은’ 녹색 낭만주의에 머물러 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반복되어 왔다. 내가 보기에 조경 교육과 연구의 기본적인 한계는 조경의 본질적 가치인 지역성과 현장성을 등한시한 데 있었다. 특히 이론 연구에 있어서는 1980년대 이래 미국발 실증주의의 프레임에 의한 추상적논리가 아직도 연구 방법을 지배하고 있다는 점또한 지적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연구 방법은 생생한 현장의 구체성을 수리적 예측 모형으로 추상화시키는 반면 조경의 전통적인 인문적·예술적·미학적 가치를 위축시킴으로써 조경 교육과 연구의 불균형을 초래하고 이론 연구와 계획 설계의 연동성을 약화시켜 왔다.
계획·설계의 경우, 새로운 프로세스와 표현 방법에도 불구하고 많은 결과물이 반복해서 낭만적 자연주의에 그치고 있다. 이는 수요층의 완고한 보수적 관점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겠으나, 결국 냉정하게 말하자면 조경가들의 시대 정신의 인식 부족과 실험 정신의 부족 때문이라고 기록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은 조경 문화의 정체성 결핍을 타개할 수 있는 한 방안으로 새삼스럽게 사실주의의 회복, 리얼리티의 복권을 거론하고 싶다. 사실주의란 문예사에 있어서 낭만주의와 근대주의 사이에 위치하여 후자를 태동시킨 계기적 사조로서 근대 이전의 이상주의를 타개하고 동시대의 사회문화적 현실 그 자체에서 미적 가치를 발견하고 표현하려 한 태도를 말한다. 미술의 여러 인접 장르 중에서 유독 조경 디자인은 사실주의를 건너뛰었다. 조경사조에서는 이 부분이 공백이었는데, 최근에 이르러 설치 미술이나 팝아트 등을 적용한 조경의 등장과 함께 일상의 세속 환경을 모티브로 채택하는 작품들이 눈에 띄게 늘어나면서 신사실주의적 조경이 대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독일의 피터 라츠가 설계한 철강 공장 공원의 장중한 회고적 리얼리즘을 지나서, 최근 세상을 크게 한방 때린 아르헨티나 출신 마르틴 라인-카노Martin Rein-Cano의 수퍼킬렌Superkilen 공원이 대표적인 예다.
바닥에 그린 전위적 페인팅, 다문화적 낙서 그림과 같은 이 공원은 마치 미국 지하철의 낙서 화가 바스키야를 연상케 하는 독특한 실험적 경관을 통해서 주변 문화 집단의 다양한 노스탤지어를 느끼게 한다.
나는 다른 글에서 한국 최초의 사실주의적 공원으로 쌈지공원을 든 바 있는데, 최근의 도시재생 운동과 함께 도시 가로와 골목길의 생활 환경을 주민과 함께 재탄생시키는 현장 지향적 리얼리즘이 점차 힘을 얻어가고 있다. 이는 시대 정신의 반영으로 보인다. 조경 운동도, 교육과 연구도, 설계도 이러한 최근의 리얼리스틱한 흐름을 주의 깊게 보고 현장 연구를 통해 조경 독자적인 창의적 방법론을 세울 필요가 있다. 당장 큰 사업성을 기대하기는 어려우나 이 속에서 그동안의 조경의 거품과 리얼리티의 빈곤을 반성하고 보다 윤리적인, 그래서 조경인과 시민이 함께 행복한 차세대 조경의 싹을 키울 수 있다고 본다. 또한, 이를 도시 전역으로 확장시키면서 새로운 도시의 경관 양식의 창조를 조경이 주도할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이 글이 아직 레알에 이르지 못한 가설이라 하더라도.
김한배는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교수로 한국조경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우리 도시의 얼굴 찾기』 외 다수의 저서를 집필하였고, ‘도시 환경 설계의 합리주의와 경험주의 사조에 관한 고찰’,‘혼성적 환경 설계의 기원과 전개’, ‘동양 그림의 경관관이 작정원리에 미친 영향’ 외 많은 논문을 발표했다. 미술과 조경, 도시경관 양식의 상호 관계에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연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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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편집된 공간
방배동에 짐을 푼 지 한 달 반이다. 『환경과조경』 식구들의 행동 반경이 슬슬 넓어지기 시작했다. 마감에 쫓기더라도 매끼를 배달 음식으로 해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일주일 전에는 요즘 뜨고 있다는 ‘사이길’로 진출하기에 이르렀다. 간식이라고는 맥주밖에 모르는 남기준 편집장도 이곳에서는 수제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었다. 방배동 사이길은 함지박사거리 근처에서 서래초등학교까지 이어지는 작은 골목길이다. 입에 쉽게 붙는 길 이름은 도로명 주소 ‘42길’을 그대로 사용한 것인데, 20세기 초의 옛 지도에서도 이 길의 형태를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강남에서는 보기 드물게 시간의 흔적이 쌓인 장소다. 300미터 남짓한 거리지만 느긋하게 산책하며 커피 한 잔 하거나 아이 쇼핑을 즐길 수 있는 골목이다. 당근 케이크로 유명한 동네 빵집, 개성 강한 가죽 수제품 가게, 발길을 유혹하는 아트갤러리, 제작과 판매를 같이 하는 향수 공방, 빈티지 소품 가게와 디자인 편집 숍이 적당한 여유와 밀도 속에 늘어서 있다. 건축가나 조경가가 폼 잡고 설계한 공간이 아니다. 과하지 않게 디자인된 잡지처럼 자연스럽게 잘 “편집된 공간”이다.
허나, 아쉽지만, 뻔하다. 매체를 조금 더 타고 셀카족 언니들이 더 많이 몰려들기 시작하면 이 사이길도 예의 ‘길 시리즈’처럼 대기업 프랜차이즈 숍에 점령당할 것이다. 가로수길처럼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더 세련되고 쾌적하게 개선하자는 심산으로 조경가를 불러 가게 앞에 녹지를 끼워 넣으면, 건축가가 폼잡고 손을 대면, ‘걷고 싶은 길’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보차를 분리하거나 없던 인도를 억지로 만들면,이런 길이 오히려 망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전문가의 디자인이 자연발생적인 공간 편집을 망쳐놓은 사례를 무수히 목격해 왔다.
진한 농도의 수제 밀크 아이스크림콘이 녹아내릴 때쯤, 토포텍 1Topotek 1의 마르틴 라인-카노Martin Rein-Cano에게 사이길을 설계 사이트로 맡기면 어떤 기막힌 아이디어를 내놓을지 궁금해졌다. 이번 호 특집을 위해 몇 달째 토포텍 1을 붙잡고 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이례적으로 100쪽의 지면을 할애한 토포텍 1의 작품들에 독자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실지 기다려진다. 토포텍 1처럼 평가가 엇갈리는 동시대의 조경가를 찾기란 쉽지 않다. 생태, 과정, 작동 등과 같은 최근의 설계 이슈가 이제 지겨우시다면, 라인-카노라는 쟁점적 인물과 그의 문제작들을 놓고 모처럼 신선한 토론을 즐겨보시길 권한다.
강렬한 패턴과 고채도의 색과 굵은 선으로 가득한 토포텍 1의 작품은 과격하고 도발적이다. 꼭 포르노그래피를 보는 느낌이다. 재작년 여름에 만났던 코펜하겐의 수퍼킬렌Superkilen은 숨이 막힐 정도로 자극적이었다. 데뷔작인 스카이 가든Sky Garden부터 최근작에 이르기까지 라인-카노의 많은 작품들은 ‘시각적’ 어필만을 위해 원색과 강한 선으로 ‘바닥’에 마음껏 그림을 그렸군, 하는 첫인상을 준다. 그러나 그렇게 한방에 단언해 버리며 책장을 덮을 일은 아니다.
토포텍 1의 작업을 가로지르는 핵심은 ‘표면 전략surface strategy’이다. 3차원의 공간에 대한 관심보다는 지구의 표면, 즉 바닥에 주목한다. 설계의 대상이 정원이건 공원이건 광장이건 넓은 대지이건 간에, 라인-카노는 그것을 무언가를 채워야 하는 공간이 아니라 하늘과 만나는 이차원의 표면, 즉 바닥으로 환원한다. 표면으로 환원된 공간을 그는 시각적으로 ‘편집’한다. 질서를 부여하기 위해, 때로는 통제된 규칙을 허물고 자유를 얻기 위해. 이러한 편집의 매개체가 되는 것이 그의 일관된 ‘그래픽 비전graphic vision’이다. 토포텍 1의 작품들은 물리적 스케일이나 표면 질료의 성격과 상관없이 늘 그래픽적이다.
의도적인 선형 패턴의 그래픽을 통해 시각적 편집을 넘어서는 역사적·문화적 편집을 시도하기도 한다. 그리스의 신전, 모로코의 분수, 팔레스타인의 토양, 프랑스 정원의 자수화단, 영국 풍경화식 정원의 낭만, 일본 정원의 사색, 중국 정원의 정자 등 이질적 역사와 문화의 성분이 편집된다. 라인-카노의 작업은 표면이라는 같은 텍스트에 그래픽이라는 같은 매개체를 투입하여 이종의 가치와 복수의 문화가 교배된 새로운 콘텍스트를 편집해낸다. 그의 디자인에 단 하나의 개념을 달 수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편집’일 것이다. 편집 앞에 조금 거창한 수식어를 붙이자면 ‘미학적’보다는 ‘사회학적’이 오히려 나을 것 같다.
잘 편집된 공간 사이길에 토포텍 1의 편집된 공간들을 엎고 섞다 보니, 불현듯 “세상의 모든 창조는 이미 존재하는 것들의 편집”이라는 김정운의 구라가 그럴듯하게 와 닿는다. 이번 마감이 끝나면 요즘 잘 팔린다는 그의 신간 『에디톨로지』를 날라리 책이라는 편견을 버리고 한번 찬찬히 읽어봐야겠다. 그나저나 이번 호가 잘 편집된 잡지일지, 근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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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A] 오답
“『환경과조경』이 토포텍 1TOPOTEK 1(이하 토포텍)을 밀어주는 이유가 뭐죠”
토포텍 특집이 장장 100여 쪽에 걸쳐 수록되었기 때문에 나온 물음은 아니다. 2월호 잡지가 막 서점에 깔리기 시작한 1월 29일 열린 ‘서울역 7017 프로젝트’ 기자회견장에서 공식 발표된 ‘서울역 고가 기본계획 국제지명 현상설계’ 탓이다. 지명 초청된 일곱 명의 작가 중 토포텍의 수장 마르틴 라인-카노Martin Rein-Cano가 포함되었는데, 누가 봐도 시기가 참 공교로웠다.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갈렸다.첫 번째, ‘저의가 뭐냐’는 의심의 눈초리파. 잡지 리뉴얼 이후는 물론이고 그 전에도 이 정도 분량으로 특정 오피스를 다룬 적이 없는데,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서울역 고가의 초청 작가가 발표된 시기에 맞춰서 이렇게 상세하게 토포텍을 다룬 의도가 도대체 무엇이냐는 것이다. 두 번째, ‘안 그래도 궁금했다’는 호기심 해소파. 국내 작가 3인(조민석, 조성룡, 진양교)과 MVRDV의 비니 마스Winy Maas는 알겠는데, 장영호Chang Yung Ho(Atelier FCJZ)나 후안 헤레로스Juan Herreros(estudio Herreros), 마르틴 라인-카노의 작품은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아서 어떤 성향의 작가인지 궁금했는데, 그중 한 명이 특집으로 다루어져서 궁금증이 일부 풀렸다고 했다. 이외에 ‘서울역 고가와 토포텍이 무슨 관계가 있죠’라고 되묻는 이들도 적지않았다. 2월호의 코다CODA 지면을 통해 김정은 팀장이 밝혀놓았듯, 토포텍 특집은 다섯 달 전부터 이른바 겨울 춘궁기용으로 저장해 놓은 아이템일 뿐이다.
“사진은 가을 풍경인데,
왜 대담에서는 겨울철에 방문했다는 대목이 나오는 거죠”
디자인 엘의 작품과 박준서·오형석 소장의 대담이 편집된 교정지를 본 어떤 이가 물었다. 조경 잡지는 12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가 국내 작품 춘궁기에 해당한다. 한겨울 풍경을 선호하는 이들도 일부 있겠지만, 아무래도 겨울철 외부 공간 촬영은 여러 이유로 꺼려진다. 국내 작품 촬영은 이 시기에는 올스톱된다고 봐야 한다. 그래서 9월부터 보릿고개를 넘기기 위한 궁리와 섭외가 시작된다. 토포텍 특집은 단행본 출간 제의가 특집으로 자연스럽게 전환되는 과정에서 우리가 겨울로 미뤄둔 경우이고, 이번호에 실린 디자인 엘의 한국동서발전 신사옥과 엔씨소프트R&D 센터는 미리 섭외와 촬영을 해놓은 케이스다. 판교에 있는 엔씨소프트는 작년 10월 15일에, 울산에 위치한 한국동서발전은 10월 28일에 촬영해 놓았다가 이제야 소개한다. 하지만 대담은 본격적으로 3월호 작업에 돌입하기 시작한 1월 30일에 이루어졌기에, 가을 사진임에도 겨울 이야기가 등장했다.
“뭐, 재미있겠네요. 그런데 이런 형식이 전에도 있었나요”
대담자로 모신 오형석 소장(디자인로직)이 섭외에 응하며 던진 질문이다. 최소한 내 기억으로는 처음이라고 답했다. 작품을 소개하며, 그 작품을 주제로 설계자와 또 다른 조경가가 일대일로 이야기를 나눈 경우는…. 가장 비슷했던 경우는, 작년 2월에 실린 김이식 소장(이화원)의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힐 가든’과 그에 대한 허대영 소장(스튜디오 테라)의 비평인 ‘가장 보통의 미술관’ 정도를 꼽을 수 있다. 당시 우리는 허소장을 섭외하며, 이른바 ‘동료 비평’ 콘셉트라고 소개했다. 같이 설계를 하는 입장에서만 할 수 있는 코멘트가 분명히 있지 않겠느냐고 꼬드기면서…. 박준서·오형석 소장의 대담과 마찬가지로 김이식·허대영 소장도 한 테이블에 앉아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눴다. 다만 허소장이 이야기를 듣고 별도로 에세이를 써 내려간 것과 달리, 이번 대담은 그 자체가 고스란히 지면에 옮겨졌다.
“이번호는 왜 유난히 마감 일정이 빠른 건가요”
어느 필자의 하소연이다. 하소연은 정말이지 우리가 하고 싶다. 하필, 설 명절이 마감이 절정으로 치닫는 2월 중순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어서다. 빼도 박도 못할 일정이다. 더구나 5일 연휴다. 엎친 데 덮친 까닭은 2월 달이 28일까지밖에 없다는 슬픈 사실이다. 게다가 올해는 28일이 토요일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27일에는 잡지가 나와야 한다는 의미다. 지난달보다 5일 빨리 마감을 시작했지만, 일정을 맞추기가 녹록치 않다. 결국 편집주간부터 막내인 양다빈 기자까지 모두가 연휴 마지막 날인 일요일 출근부에 도장을 찍었다. 10년 넘게 잡지를 만드는 동안 2월이 되면 늘 누구에게랄 것 없이 하소연을 쏟아냈다. “도대체 누가 2월 달은 28일로 달력을 만든 거야”
“편집주간이 일요일에도 나오세요”
지면에 담기에 적절한 소재는 아니지만, 은근히 많은 이들이 궁금해 한다. 작년 1월호부터 에디토리얼을 쓰며 등장한 ‘편집주간’이란 직함을 갖고 있는 이가, 과연 얼마나 잡지 제작에 실제 참여하고 있는지를…. 구구절절 써놓으면 교정 단계에서 이 대목이 통째로 날아갈 수 있으니, 특집 기획, 필자 섭외, (간헐적으로) 국내 작품취재, 수록되는 모든 원고의 교정 정도를 하고 계시다고, 짧게 답해 둔다. 제목인 ‘오답’은 5문 5답에서 ‘5문’을 생략한 의미이기도 하지만 오답誤答, 즉 잘 못된 대답이란 뜻도 있다. 독자들이 정작 궁금해 하는 것은 이런 시시콜콜하고 시답잖은 뒷이야기가 분명 아닐 터이니 말이다. 언젠가 정색하고, 한 번 답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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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의 서재] 세상 어디에도 없는 도시의 사람들
텍스트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처럼 자신하지만, 사실이 세상엔 언어가 표현할 수 없는 이야기가 너무나도 많다. 때로는 텍스트가 가장 적절한 매개medium가 아니기도 하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도시의 사람들Citizens of No Place』은 그러한 “감수성 강한 생각들”을 만화라는 매력적인 방법을 통해 표현한다. 그렇다. 이 책은 ‘만화책’이다. 그러나 결코 쉽지 않다. 이야기는 다음과 같은 도발적인 대사로 시작된다. “잠깐, 자네말은 잔디가 나쁘다는 건가” 당신이 들고 있는 ‘이 잡지’에 가장 많이 나오는, 그래서 이젠 텍스트에 언급조차 되지 않는 그 잔디를 ‘까면서’ 시작한다. 그리고 갑자기 지구가 멸망한다(물론 잔디 탓은 아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1만 광년 떨어진 곳에 있는 지구와 비슷한 행성을 찾아 떠난다. 시나리오만 보면 영화 ‘인터스텔라Interstellar’가 떠오르기도 하지만, 또 다른 지구를 찾는 일에는 신경 쓸 필요 없다. 중력이 없다는 것, 그런 조건에 맞는 새로운 주거 형태가 필요하다는 것과 같은 플롯plot의 기본 바탕이 되는 설정일 뿐이다.
제2의 둥근 땅을 향하고 있는 ‘노아의 방주 우주선’에서 어린 건축가는 그의 인스트럭터instructor에게 자신이 포인트 클라우드point cloud1 기법을 통해 만들어낸 새로운 주거 형태를 제시한다. 그는 34컷에 걸쳐 복잡한 수식과 ‘있어 보이는’ 다이어그램을 설명하지만, 인스트럭터는 단 두 개의 문장을 덧붙일 뿐이다. “직관적인 것에 대해 그렇게 객관적이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네. 그냥 마음 편하게 그렇게 하고 싶어서 했다고 인정하면 어떨까” 젊은 건축가의 동공이 확대되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여기서 만화라는 매개의 장점을 찾아낼 수 있다. 히메네즈 라이Jimenez Lai는 만화의 형식을 통해 독자들과 소통하려 한다. 텍스트가 아닌 ‘그림과 대사’를 통해 서술과 묘사, 그리고 비판의 경계를 넘나들며 독자가 “책을 읽으면서 등장인물들이 어떤 관계이고 무엇에 관심이 있으며 어떤 생각을 하는지” 다양한 질문을 하도록 유도한다. 많은 설계가가 단편적인 조사 결과를 일반화하고 모듈module화시켜 적용하려는 성급한 태도를 지적하려는 것일까? 아니면 설계를 하는데 있어, 논리가 직관적인 결과물의 ‘설명을 위한 설명’으로 ‘생산(혹은 편집)’되는 현실을 비꼬고 있는 것일까(젊은 건축가는 직관적 결과물을 소개하기 위해 ‘논리’를 끼워 맞췄을 수도 있다)1,187일 하고도 17시간이 지난 어느 날. 이 젊은 건축가는 다시 한 번 인스트럭터를 마주하게 된다. 인스트럭터는 젊은 건축가가 들고 온 ‘단면 위주의 계획’을 비판하며, “(평면은) 전일주의Holism적으로 생각하고, 미래를 계획하고, 현명하게 콘텍스트를 판단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젊은 건축가의 답변이 이어진다. “하지만 평면은 인간은 절대 경험할 수 없는 신의 시각으로 보게 되잖아요.” 옳고 그름을 떠나 나는 이 순간 ‘통쾌함’을 느꼈다. 물론 평면은 객관적인 평가를 하는 데 있어보다 편리하고, 조건 별로 구분하여 공간을 더욱 잘 알 수 있게 하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그가 말한 객관성이 진정으로 객관적인가? 평가를 위한 매개가 경험의 질을 보장해 주지 않는 다면 그 매개는 얼마만큼의 가치가 있는 것일까? 분명 흥미로운 평면은 정리된 모습이고, 많은 정보를 담고 있지만 (1인칭 관점에선) 재미없는 모습이 되기 쉬운 것은 아닐까? 그에 반해 흥미로운 단면은 정보가 부족할 수는 있지만, ‘공간에서의 경험’으로서는 보다 많은 가능성을 가진 것이 아닐까?
‘내 이야기’로 돌아오면, 설계를 공부하면서 많은 의구심과 마주하게 된다. 그러나 (단언컨대) 그런 의구심에 대해 적절한 답변을 받아본 적이 없다. 35세의 젊은 건축가 라이도 비슷한 경험을 한 것일까? 그는 그의 의구심을 서로 다른 (그러나 교묘하게 연결되어 있는) 10개의 이야기를 통해 시공간을 초월하며 말 그대로 ‘별 말 없이’ 풀어놓는다. 이 ‘만화책’은 건축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공간을 다루거나 디자인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으며 당신이 들어왔던 것들이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심어주기에 충분할 것이다. 물론 혹자는 이 글을 읽고 페이퍼 프로젝트paper project만을 진행해 온 나에게 이런 말을 건네려 할 수도 있겠지만. “이봐. 그건 네[니] 생각일 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