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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꿈꾼 도시, 우리가 사는 도시] 과거의 도시, 미래의 도시
이 장소의 시간은 언제입니까?
“이 장소의 시간은 언제입니까What Time is This Place?” 이는 규범적 도시론의 대부 케빈 린치Kevin Lynch가 1972년에 쓴 책의 제목이다.1 장소의 시간에 대해 묻다니, 곱씹을수록 재미있다. 하나의 장소, 하나의 공간은 특정 시간에 구현된 물리적 환경일 텐데, 그 안에서 또 다른 시간의 특질을 어찌 찾는다는 것일까? 만약 찾을 수 있다면 이러한 시간은 철저히 계획된 시간일까, 아니면 사회적 환경의 특성이나 인간 활동의 빈도로 결정된 시간일까(그림1)? 나아가 공간의 시간성이 아니라 시간의 공간성을 묻거나, 도시 환경 속에서 빅뱅 이론—시간에 따라 우주가 팽창하고 있으며 거꾸로 시간을 과거로 되돌렸을 때 우주라는 거대한 공간은 한 점으로 수축한다는 이론—처럼 시간에 따른 공간의 변화에서 특정한 패턴을 찾을 수 있을까?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이러한 의문이 단지 스쳐가는 호기심이라면 그리 심각해질 필요는 없다. 하지만 많은 설계가, 특히 조경·도시설계가에게 공간에 담긴 시간성은 단순한 호기심 이상의 문제다.
린치의 생각을 조금만 더 따라가 보자. 린치는 시간의 감각이 도시에 새겨지는 과정에서 시간이 의도적으로 선택·편집, 심지어는 왜곡될 수 있음을 다양한 예를 들어 설명했다. 이를테면 한 시점에 만들어진 공간이 서로 다른 시간성을 표현할 수 있으며, 이는 공간을 체험하는 사람에게 특정한 심리적 효과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도시 내 장소는 ‘기억의 저장소’”라는 말이 떠오른다(그림2).2 물론 이는 몇몇 이론가들만의 생각은 아니었다. 1970~1980년대 이후 시간의 흐름에 대한 지각이 —물리적 공백 속이 아닌—도시 환경의 변화나 연속된 이벤트를 어떻게 경험하는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남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가 다수 등장했다(그림3).3 나아가 좀 더 규범적인 관점도 있다. 오래된 도시 안에는 기나긴 시간의 시험을 거쳐 살아남게 된 좋은 도시의 DNA가 농축되어 있다. 따라서 유전자 게놈Genom 지도를 그리듯이 전통적인 공간의 특질을 재발견하여 현대 도시에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말 그럴까? 때로는 너무 빨리 변하는 도시 환경에 지친 —그러나 곧 그러한 새로운 환경에 익숙해져야 했던—현대인들이 좀처럼 변하지 않는 과거의 도시에서 큰 위안과 편안함을 느끼기도 한다.4
이렇게 시간이 공간에 기록되고 지각될 수 있는 대상이라고 했을 때 한 가지 의문이 든다. 과연 설계를 통해 도시에서 어떤 시간성을 드러내야 할까? 쉽게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특히 오늘날처럼 집단적 기억에 대한 공유가 퇴색하는 시점에서 불특정 다수의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바람직한 시간성을 찾으려는 것이 무의미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린치는 이에 대해 명쾌한 입장을 보여준다. 그에 따르면 좋은 도시란 현재의 요구에 충실하면서 —즉 ‘현재성’을 강조하면서—과거 혹은 미래와 적절히 연계되어야 한다. 그가 현재성에 방점을 찍는 이유는 과거에 갇혀 있거나 혹은 반대로 예측하기 어려운 미래를 연상하게끔 하는 공간을 경계하기 때문이다. “(왜) 우리의 도시는 내가 아끼는 사람과 함께 있는 지금 이 순간에는 침묵하면서, 기억에서 희미해진 참전 영웅이나 정치인의 조각상에 집착하는가.”5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대목이다(그림4).
과거를 재현하기
린치가 도시설계 이론가로서 규범적 시간성을 탐구했다면, 일부 사회과학자들은 공간에 재현된 시간성에 담긴 의도를 파헤치고자 했다. 이들은 ‘어떤 시간을 표현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냐’는 질문보다 ‘특정 시간성이 왜 선택되고 표현되는가’에 더 큰 관심을 둔다. 한 예가 미국 MIT의 로렌스 베일Lawrence J. Vale 교수다. 그는 1999년 논문에서 건축과 도시설계를 통해 한 집단이 국가적 정체성을 형성하고 표현하는 것을 ‘매개된 기념비mediated monuments’라 일컬었다. 특히 시대 및 문맥과 무관한 상징보다는 특정 시간이나 주체와 연관된 상징에 주목했다. 이러한 예로 1980년대에 이라크 독재자 사담 후세인이 바그다드 남쪽 고대 바빌론 왕국의 궁궐터에 천문학적 비용을 들여 건설한 새로운 왕궁을 제시한다(그림5). 이는 단지 크고 화려한 장소를 통해 권력을 뽐내려는 것이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과거‘바빌론’ 왕궁의 재현이라는 점이다. 기억을 한번 더듬어 보자. 고대 바빌론은 인류 문명의 발원지 중 하나인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가장 크고 융성한 도시였다. 베일 교수는 후세인이 이렇게 특정 시대와 연관된 도시를 현대적으로 재현함으로써 독재자의 절대적 지위—과거 이집트, 시리아, 팔레스타인, 예루살렘을 정복한 고대 제국의 왕과 동일시되는—를 선언했을 뿐만 아니라, 당시 진행 중이던 이란·이라크 전쟁(1980~1988)을 마치 메소포타미아와 페르시아라는 고대 문명국들 간의 충돌로 과장하려 했다고 설명한다.6
김세훈은 1978년생으로 서울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한 후 하버드GSD에서 도시계획학 석사와 박사 학위(DDes)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도시설계 이론과 스튜디오 수업을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 『신흥도시 개발 모델』, 『도시형태변화분석방법론노트』, 『도시와 물길(A City and Its Stream)』 등이 있으며, 한국, 중국, 동남아시아의 도시 연구와 설계를 함께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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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설계하는 법] 오늘도 그린다, 지겹거나 즐겁거나
0 언제인지 가물가물한 기억이 있다
그림(작업, 디자인, 플랜) 그리면서 “난 왜 이렇게 매일매일 그림만 그려야 하고, 지겹게계속 수정과 보완에 이런 소모적인 삶을 살아야 하나”라는 불평을 넋두리처럼 늘어놓으면서, 그러니까 무지 지겨워하면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지나가던 ‘어린이(대리 미만의 직원부터 학부생을 이르는 매우 주관적인 용어)’가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게 직업이니까요.”
아… 맞다. 이게 직업이니까 내가 이러고 있구나. 직업이라는 것. 설계라는 것. 어떤 생각과 마음가짐으로 임하고 있었는지 부끄럽기도 했다.그 직업을 어떻게 생각하고 일에 임하는지 조금 정리할 수 있는 기회라 여기면서 거칠게 드러내 보고자 한다. 독자 여러분의 관용이 필요한 순간이다.
1 나는 어디에 서 있는가
앞으로 서술할 무척이나 주관적인 내용의 이해를 돕고자 나의 배경을 소개한다.
– 직원들과 함께 먹고 살 것을 걱정하는 조경설계사무소의 생계형 디자이너이자 소장이다:돈이 필요함.
– 주된 클라이언트는 대형 건축설계사무소들, 회장님들, 친구들밖에 없다: 클라이언트 폭이 참 좁음.
– 대형 공원 프로젝트 경험이 거의 없다: 조경계의 아웃사이더임.
– 공원보다 공동 주택과 인테리어 경험이 훨씬 많다: 건축하는 친구들 덕분임.
– 조경 설계를 위한 답사나 책보단 각종 취미 생활과 역사에 관심이 많다: 작은 바람이 있다면 취미와 일이 접목되면 좋겠음.
2 일은 벨소리와 함께 온다
휴대전화 벨소리와 함께 일이 시작된다.
일의 개요, 기간, 설계 비용 등이 결정되고 드디어 출발선에 선다. 이번 프로젝트는 “기념적인”, “최근 가장 이슈가 되는”, “조경이 할 일이 아주 많은”, “소장님이 꼭 하셔야 하는” 등의 이런 저런 얘기가 잡다하게 언급된다. 다 좋은데, 생계형 디자이너인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래서 얼마짜리 프로젝트인가’이다. 웃으며 욕할지 모르겠지만 디자인에 대한 ‘욕정’은 입금과 함께 피어난다(6월호에 보완하여 설명하겠다).
3 컨셉은 이름표 같은 것이다
컨셉(concept, 개념, 제목, 설득할 어휘), 소위 의미없는 말장난 같다고 비판받고 있는 이것에 나는 집중한다. 아주 많이.다른 의견을 가진 이들은 이렇게도 얘기한다. 국적 불명의 언어, 빛 좋은 개살구,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디자이너만의 혼란스러운 텍스트, 너무 어려운 어휘가 아닌가, 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컨셉에 집중한다. 한때는 설계공모나 턴키 프로젝트에서 컨셉을 (엄밀히 말하면 발주처에서 심사위원이나 조합원을 쉽게 설득할 수 있도록 만든 쉽고 간편한 제목을) 요구해서 많이 만들어 본 경험이 있다. 플랜이나 디자인보다 이 컨셉을 만들어내는 데 50% 이상의 에너지를 쏟은 적도 있다. 분양 카탈로그에서 시집까지, 영어에서 라틴어어원까지, 소스가 될 만한 건 모두 살펴 본 적도 있다. 그 당시에는 너무 힘들고 짜증나서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기도 하고, 적성에도 맞지 않는 작가인가 싶기도 했다.
설계가는 그림으로 얘기하고 디테일에서 승부를 걸어야지 이게 도대체가 뭔가 싶기도 했다.그런데 세월이 지나 지금 생각해 보면, 놀랍게도 컨셉에 집중했던 그런 시간이 지금의 설계 작업에서 흔들리지 않는 기둥 같은 힘을 주고 있다고 확신한다.
아직 디자이너의 머릿속에서 맴도는 얼토당토않은 순간의 아이디어들은 컨셉이라는 그릇 안에 조심스럽게 담겨진다. 그릇이라는 틀 안에서 아이디어가 제자리를 찾게 된다. 셰프들이 얘기하는 요리의 플레이팅이 이런 게 아닌가 싶다. 컨셉이 명확하다면 앞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해 나가면서 힘 있는 하나의 원칙으로,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 틀로 작동하리라.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수많은 의견, 클라이언트의 요구 사항, 관공서 인허가 문제, 심의위원 의견, 예산 문제, 주변 민원 문제, 현장 문제 등을 헤쳐나가야 할 때마다 말장난에 의미 없다고 했던 컨셉은 나에게 많은 가이드를 제공한다. 그러한 가이드를 제공했던 컨셉은 구체화, 상세화, 실현을 통해 클라이언트에게 그리고 나와 클라이언트가 함께 상상해서 만들었던 장소에 하나의 이름표로 되살아난다.
내가 클라이언트에게 알기 쉽게 설명하고 이미지를 상상할 수 있도록 이름표를 붙였고 그 이름이 실현된 결과물과 일체감을 갖는다면, 그래서 클라이언트와 내가 같은 것을 상상하고 같은 것을 실현해 냈다면, “이것은 하나의 완성품이다”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4 이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컨셉이 3분의 2정도 익었다 싶을 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초기 평면 위주로 시작을 하게 되는데, 다음 네 가지 고려 사항을 뒤죽박죽 섞어 그리기 시작한다.
– 컨셉의 반영(이름표를 붙일 만한가)
– 클라이언트와의 교감(클라이언트의 요구 사항을 제대로 소화했는가)
– 오버 디자인의 지양(예산 범위 내에 들어오는가)
– 드로잉을 통한 기능과 평면 비례의 추구(평면이 비전문가가 보기에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렇게 몇 가지 기준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평면은 다른 여러 기능과 역할보다 일단 미적으로 아름답게 완결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클라이언트뿐 아니라 디자이너가 보기에도 어느 정도마음에 들어야 (앞으로 계속 봐야하는 평면도를) 상세화하며 쉽게 발전시킬 수 있다. 평면에서 오차가 적어야 한다. 그래야 상세화 과정에서 구조물과 시설물의 위치 조정으로 인해 평면이 변경되는 횟수를 줄일 수 있다.
나는 ‘색연필-빨간 사인펜-검은 플러스펜-색연필’을 순서대로 사용하며 그림을 그려 나간다. 색연필은 점점 진한 색으로 변화되면서 아이디어에 대한 확신을 갖게 한다. 빨간 사인펜은 아이디어가 기능과 접목되는지 검토하는 레이어로 기능한다. 모든 것이 결정될 때 비로소 검은색을 사용하게 되고, 이때 컨셉과 일치하는가를 검증하는 레이어로 마감한다. 검은색 평면에 색연필로 색을 입히면서 녹지와 공간을 (다음 작업을 감안하여) 마무리하는 첫 단추를 꿰게 된다.
우리의 작업은 고맙게도 주로 오래된 대형 건축 회사나 친구인 클라이언트와 함께 진행되어 본의 아니게 건축에 제안도 많이 하고 건축도 우리의 의견을 많이 수용하는 편이다. 건축법 이외의 건축 디자인과 관련해서도, 이를테면 건축 매스, 입면, 파사드, 컬러에 대한 의견을 공유하며 진행한다. 따라서 오래 같이 작업한 클라이언트들은 우리가 건축물을 포함한 일체형 디자인을 제안해 주길 바라며, 우리는 때에 따라 건축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기도 한다.
5 클라이언트로 변신할 순간이다
이름표가 달린 아름다운 평면(컨셉을 담은 공간 구성 1차 안)이 어느 정도 구성되면 클라이언트와 약속을 잡게 된다. 효율적인 시간 배분과 성격 급한 클라이언트의 압박을 피하기 위해 평면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더라도 가능한 빠른 시간에 미팅 날짜를 잡는다.
이제부터 클라이언트와 지난한 설득과 협의와 후속 작업(도면, 보고서, 보고, 예산서, 감리 계획)이 시작된다. 앞선 프로세스가 ‘생계형 디자이너 모드’였다면, 이제는 ‘클라이언트 모드’로의 전환을 모색해야 할 단계다.
나는 이 프로세스에 진입하면 클라이언트와 수많은 화제(정치, 경제, 사회, 문화, 신변잡기 등)에 대해 얘기하고 서로를 많이 알고자 한다. 가능한 기호(선택의 기준, 좋고 싫음, 디자인풍)에 대한 얘기도 많이 나눈다. 그래서 ‘클라이언트와 하나의 뇌와 눈을 갖고자’ 애쓴다. 클라이언트의 눈으로 대상을 다시 보고 검증 하고자 한다.
클라이언트는 지금 상황에서, 내가 돈을 쓴 이 공간이 돈 값을 할 것인가? 내가 선택한 이 디자이너가 사기꾼 아닌가? 내가 지인들에게 자랑스러워 할 정원과 공간을 만들 수 있을 것인가? 내가 마구 얘기한 것들이 전문가가 보기에 쓰레기 같은 의견인가? 내가 상상했던 것이 나올 것인가?
내가 한 상상이 맞기는 한 걸까? 라는 생각을 하며 혼란스러운 상태가 된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클라이언트로 변신하려는 시도를 통해 위의 걱정들을 해결해 나가고자 한다.
데니스 레스던(Denys Lasdun)이라는 디자이너의 말로 이 단락을 마무리한다. “우리의 직업은 클라이언트에게 그가 원하는 것을 주는 것이라기보다, 그가 원한다고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주는 것이다.”
6 산이 없는 12월이었다
그런 설계 방법을 구체화시킬 수 있는 조직이 필요했다. 전 직장에서 퇴사하고 하늘과 땅이 붙어있는 이국의 어느 곳에서 사무실 개소를 고민했다. 지평선만 보이는, 즉 ‘산이 없는 곳’에서 생각을 정리하고 사무실 개소에 대한 플랜을 구체화하기로 결정했다.
우선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국제 설계공모에 참가해보기로 했다. 거칠게 손발을 맞춰보면서, ‘사무실을 열어도 뭐 죽진 않겠지’라는 생각으로 쉽게 쉽게 했다. 설계공모 팀 등록을 해야 할 때가 왔다. 이제 팀명을 정해야 한다. 깔끔하게 팀원들 성의 이니셜을 조합하자는 얘기가 나왔다.
L: 故이광빈
L: 이강훈
O: 오형석
S: 손방
Y: 유선근
K: 김아연
이렇게 ‘L2OSYK’가 설계공모 등록 아이디가 됐고, 손발은 잘 맞췄고, 당선은 안됐고, 로직은 탄생했다. 이렇게 디자인로직(LOSYK)이 2005년 5월에 시작됐다. 이강훈은 현재 인테리어를 하고 있다고 들었다. 다음 호에는 프로젝트 별로 발생된 비하인드 스토리를 다룬다
오형석은 새로운 조경 문화를 고민하던 젊은 조경가 7인과 의기투합하여 만든 프로젝트 그룹을 기반으로, 2005년도에 디자인로직을 설립하였다. 만 10년 동안 디자인로직을 이끌며 새로운 외부 환경에 대한 실험을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으며, 또 다른 디자이너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디자인을 갈구하고 있다. 경원대학교(현 가천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후 한양대학교 공학대학원 환경조경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고, 서인조경과 가원조경기술사사무소에서 실무를 익혔다. LH 조경 부문 자문위원, 인천시 도시디자인 자문위원, 코레일 조경 심의위원을 역임하였고,한국도로공사 사옥, 한남더힐 설계공모전에서 당선되었으며, 세종문화회관 예술 정원, 호텔 롯데 제주, 용현 SK VIEW 등을 설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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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의 경계를 넘어, 조경 속으로] 권병현
미래숲 대표, 전 주중 대사
지금 중국은 의심할 바 없는 ‘세계의 공장’이다. 세계최대 교역국인 중국은 2010년 이후에는 최대 생산국 자리를 차지했다. 경제 규모의 격차 또한 다른 나라들과 해가 다르게 벌어지고 있다. 바야흐로 세계는 중국의 저렴한 노동력과 값싼 토지, 느슨한 환경 규제에 의존해 풍요를 누리고 있는 형국이다. 따라서 중국의 환경 문제는 단순히 자국 내 문제로 치부될 수 없는 성격을 띤다. 지금 중국의 경관을 결정짓는 것은 세계 시장의 변화, 곧 인류의 가파른 소비 성향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널리 알려진 캐시미어의 비극이다. 캐시미어는 일반적인 양털과 달리 캐시미어 염소의 목덜미 부근에서만 자라는 짧은 털duvet로서, 급격한 온도차로부터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바깥쪽의 거친 털 사이에서 촘촘히 자라는 미세한 섬유다. 털을 깎아 만드는 울과 달리, 캐시미어는 양치기들이 조심스럽게 빗질해 수확한다. 중국 내몽고內蒙古 지역은 예로부터 캐시미어 중에서도 최상품을 생산하기에 최적의 기후를 가진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캐시미어를 활용한 사치품 수요의 급증은 이 지역의 삶의 방식과 경제에 급격한 변동을 가져왔다. 가격의 급등과 외부로부터 유입된 투자 자본은 전통적인 형태의 이동식 방목이 유지해 오던 염소의 적정 비율과 수의 균형을 깨고 초원을 황폐화시켰다. 드넓은 초지는 사막으로 바뀌고 터전을 잃은 주민들은 마을을 버리고 떠나갔다. 사막화로 인해 소실된 마을이 약 2만5,000개로 추산된다.
한편 중국의 서부는 일찍이 각종 중공업 기지를 건설하는 데 따른 에너지원을 충당하기 위해 광대한 면적의 숲을 벌채해 왔다. 사막화방지협약에 제출된 2006년도 보고서에 의하면, 중국의 사막 면적은 정확한 통계를 얻기 힘들지만 전체 국토의 약 27%로 늘어났다고 한다. 반면 초지의 경우 1980년대 이후 해마다 크게 줄어든 것으로 추산된다. 2000년까지는 매년 서울의 네 배 크기로 사막이 확대되고 있었으며, 그 중에서도 쿠부치库布其 사막은 베이징 서쪽 400km 지점까지 전진해 왔다. 한국으로 날아오는 황사의 약 40% 가량을 발생시키는 것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베이징을 비롯한 중국의 주요 도시들은 황사에 의해 시민들의 건강과 도시 기능에 막대한 피해를 입고 있으며, 급기야는 베이징 천도에 대한 논의까지 이르게 되었다.
권병현 미래숲 대표는 주중 대사로 재임하던 1990년대 후반부터 사막에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그리고 쿠부치에 폭 800m, 길이 15km의 녹색 띠, 즉 녹색장성Great Green Wall을 만들어 사막의 진출을 막는 것이 가능함을 중국과 전 세계에 보여주었다. 학자들은 이동식 사막이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재앙이고 무모한 일이라며 말렸지만, 희수의 나이에도 식을 줄 모르는 권병현 대표의 신념과 열정은 불가능에서 희망의 씨앗을 틔웠다. 유엔사막화방지협약United Nations Convention to Combat Desertification(UNCCD)은 그간 미래숲의 활동을 높이 평가하여 10억 그루 나무 심기Billion Trees in Desert 운동을 함께 시작했고, 처음에는 미온적인 자세를 보이던 중국 정부도 이제는 오히려 더욱 열성적으로 동참하고 있다. 공청단을 주축으로 중국은 2050년까지 4억 헥타르에 달하는 숲을 조성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발표했다. 한편, 유엔은 권병현 대표를 ‘지속가능한 토지 관리 챔피언Sustainable Land Management Champion’ 및 ‘건조지 대사Drylands Ambassador’로 임명해, 미래숲의 녹색장성을 통한 그의 값진 경험을 사하라 남부 사헬 등 전 세계적으로 사막화가 심각한 곳을 복구하는 데 사용하고 있다.
권병현 대표를 매개로 한 한중 협력 사업은 지금까지 약 2천8백만 그루의 나무를 식재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극단적인 환경인만큼 나무의 생존 여건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열악하다. 지금까지 다양한 수종에 대한 실험을 통해 백양나무와 사류沙柳나무를 주로 식재하고 있다. 잎이 없는 막대기 형태의 가지에 수분 억제제를 도포하고 1m 이상 깊이에 식재한다. 또한 바닥에는 나뭇가지 단을 격자형으로 깔아 바람에 저항할 수 있게 함으로써 사구의 이동을 최대한 저지시키는 방법을 이용한다. 쿠부치는 인근 황하 지류의 영향으로 상대적으로 지하 수고가 높아, 그나마 유리한 환경이다. 끝없이 펼쳐진 모래언덕은 그 어떠한 생명체도 허락하지 않을 것처럼 황량해 보이지만, 미래숲의 녹색장성 사업은 면밀한 관찰과 끈질긴 실험, 철저한 사후 관리를 통해 60~70%에 가까울 정도로 경이로운 활착율을 달성해 왔다.
이 꼭지를 연재하고 있는 인터뷰어 최이규는 1976년 부산 생으로, 그룹한 어소시에이트 뉴욕 오피스를 이끌며 10여 차례의해외 공모전에서 우승했고, 주요 작업을 뉴욕시립미술관 및 소호, 센트럴파크, 두바이, 올랜도, 런던, 위니펙 등지의 갤러리에전시해 왔다. 저서로 『시티 오브 뉴욕』(공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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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와 디테일] 철이 그리는 수묵화
철1은 1,535˚C 이상에서 녹습니다. 불순물의 함유량에 따라 다르지만요. 인류가 불을 다루게 되면서 철기 문화가 시작되었고 두 석기 시대와 청동기 시대를 뛰어넘는 혁명이 되었죠. 온도 조절 기술은 철의 제조와 가공 기술을 발전시켰고 사회의 발전 또한 가속화했죠. 철의 대량 생산과 함께 시작된 산업 혁명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 삶의 질은 철과 함께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렸습니다. 그 쓰임이 우리 생활과 밀접해서 지금도 우리는 철기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듯합니다. 높은 강도를 요구하는 시설이나 강한 힘으로 버텨야 하는 부품에 쓰이고 그것을 연결하는 작은 부속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활용되죠. 대개 설계 도면을 작성할 때는 공장에서 생산되는 기성품을 반영하고, 이를 시공에 옮길 때는 공사 현장으로 전달된 부품을 단순 가공·조립하는 과정이 반복되죠. 재료의 성질 자체보다는 목적에 맞는 제품의 완성과 기능에만 초점을 맞추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철(재료)을 기능이 아닌 재료의 시간적 속성, 물성 따위의 감성적인 시각으로 바라본다면, 철과 철을 담고 있는 공간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고 작업에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철은 광석에서 유용 광물useful mineral을 분리해 내는 선광mineral dressing과 제련 공정을 통해 태어나는데, 제련된 금속이 필요한 모양을 갖추기 위해서는 가공공정이 필요합니다. 주조casting는 만들고자 하는 모양의 공간을 갖는 틀(주형)에 금속을 부어 넣고 굳히는 작업이고 소성은 금속에 열과 힘을 가해 변형하고 모양을 만드는 것이죠. 그 외에는 단조forging, 압연rolling, 인발drawing 등이 있습니다.하지만 순수한 철은 강도가 약해 구조용 재료로 사용하기 어렵다는 약점이 있습니다. 강도를 높이기 위해 탄소를 더해 합금으로 만든 것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철이죠. 탄소의 함유량에 따라서 철을 강鋼, 순철純鐵, 주철鑄鐵로 나눌 수 있는데, 조경 소재를 만들 때는 대개 강도가 높고 가공하기 좋은 ‘강’을 활용한 판재나 선재를 사용합니다. 그런데 피할 수 없는 단점이 하나있어요. 바로 녹rust입니다.
녹스는 건 철이 공기 중 산소와 결합해 산화되는 걸 의미하는데 그 과정에서 철의 색이 바뀌게 되죠. 결국 녹슬지 않게 하려면 철이 공기 중의 기체와 반응하지 못하도록 도료(방청 혹은 마감용)를 사용해 막을 쳐야 합니다. 내구성을 위해 재료의 성질을 가리게 되고 그 과정에서 철의 순수하고(?) 숭고한 맛은 사라질 수 있죠. 물론 일부러 겉을 치장해서 다른 효과를 얻기도 하지만 말입니다.
스테인리스 스틸은 철에 크롬과 니켈 등 부식에 강한원소를 첨가한 합금입니다. 이름 그대로 녹슬지 않는 철을 뜻하지만 사실 녹이 잘 슬지 않는다는 것뿐이지 실제로는 녹이 슬기도 해요.
이대영은 여기저기 살피고 유심히 바라보기 좋아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려 노력하고 있다. 만드는 것에 관심이 많으며, 작고 검소하며 평범한 조경설계를 추구하고 있다. 영남대학교에서 공부했고 우대기술단과 씨토포스(CTOPOS)에서 조경의 기초를 배웠다. 조경설계사무소 스튜디오엘(STUDIO L)을 시작하고 작은 작업들을 하고 있다. www.studio89.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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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공감] 서울대학교 미술관
지금은 자주 봐서 익숙해졌지만 이 심상치 않게 생긴 건물이 교문 옆에 처음 세워졌을 때 사람들의 의견이 분분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괴상하게 생긴 건물이 학교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들도 있었고, 꼭 하나 장만하고 싶었던 거장의 작품을 ‘득템’했다며 기분 내는 사람도 있었다. 2005년도에 완공된 서울대학교 미술관 이야기다. 밑면이 사선으로 잘린 직육면체를 코어 구조가 받치고 있는 이 미술관은 유글라스U-glass 마감 덕에 가볍게 떠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건축물과 주변 지형과의 관계에서 발생한 외부 공간은 매우 흥미로운 공간감을 품고 있다. 건축의 네 면을 따라 각각 독특한 공간 유형이 발생했는데, 아쉬운 점은 이를 신경 써서 정교하게 드러내지 않고 거칠고 투박한 상태로 두고 있다는 점이다. 건물을 돌면서 차례대로 풀어보도록 하자.
미술관의 입구 광장은 거대한 처마 공간이다. 이 처마의 길이는 20m이고, 높이는 4m에서 9m까지 달한다. 건물 파사드의 끝부분을 뒤틀어 살짝 들리도록 처리해 관악산을 더욱 시원하게 품는 시야를 제공한다.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을 제공하는 곳이며, 비가 오는 풍경을 즐기기에도 적당한 장소다. 사용된 재료에도 군더더기가 별로 없다. 비상설로 유명한 조각 작품이 배치되기도 해 미술관의 진입 광장으로는 손색이 없다. 다만 답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잔디 포장을 대체한 판석 포장이 기존 미술관 재료와 어색하게 동거하고 있는 점은 옥에 티라 할 수 있다. 미술관의 동쪽 면은 지형과의 관계를 고려해 좁은 통로로 계획되었다. 서쪽 면의 통로는 외부와의 연결이 원활해 유동 인구가 많지만, 동쪽 면의 통로는 다소 후미진 곳이라는 인식을 준다. 공공 공간으로 기능하기에 확실히 불리한 상황이지만 잘만 다듬으면 독특한 장소로 거듭날 기회가 엿보이기도 한다. 폭 2.2m, 높이 2.8m, 길이 20m의 좁은 보행 터널은 빛과 관련된 흥미로운 건축적 체험을 제공한다. 어쩌면 계단을 통해 하강한 후 터널을 지나 숨겨진 비밀의 정원을 찾아가는 느낌으로 연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관건은 그 비밀의 정원이 더욱 매력적인 서프라이즈가 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정욱주는 이 연재를 위해 작은 모임을 구성했다. 글쓴이 외에 factory L의 이홍선 소장, KnL 환경디자인 스튜디오의 김용택 소장, 디자인 스튜디오 loci의 박승진 소장 그리고 서울시립대학교의 김아연 교수 등 다섯 명의 조경가가 의기투합했고, 새로운 대상지 선정을 위해 무심코 지나치던 작은 공간들을 세밀한 렌즈로 다시 들여다보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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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자전거의 조용한 혁명
21세기 들어 자전거는 전 세계에서 유례없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 오늘날의 자전거 붐은 1890년대‘자전거 대유행기’에 버금가는 것이다. ‘자전거 대유행기’는 1890년 중반의 세계적인 자전거 열풍을 말하는 것인데 이 시기를 거치면서 자전거는 세계로 널리 확산됐고 가장 대중적인 교통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21세기의 자전거 붐은 ‘자전거 르네상스’라고 할 만하다.
이처럼 자전거가 인기를 끄는 것은 세계 각국이 도시의 교통 문제와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으로 자전거에 눈을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또 자전거의 소박한 매력에 이끌려 다시 페달을 밟기 시작한 사람이 늘고 있는 것도 자전거 붐이 확산되는 데 한몫을 하고 있다. 도시 생활에 지친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대자연으로 향하고 있다. 사이클링 스포츠의 열기도 본고장인 유럽 대륙을 넘어 다른 대륙으로 확산되고 있다.
지난 한 세기 동안 도시의 거리를 지배한 것은 자동차였다. 그러나 자전거가 다시 도시의 거리에 돌아오면서 도시의 풍경이 바뀌고 있다. 변화를 이끈 것은 바로 파리와 뉴욕 같은 대도시들이다. 세계 주요 도시들이 자전거를 미래의 교통수단으로 꼽으며 도시 어디서나 자전거를 빌려서 탈 수 있는 공공 자전거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2007년 파리는 공공 자전거의 대명사가 된 ‘벨리브velib’를 도입해 성공을 거뒀다. ‘자전거와 자유’라는 뜻을 담고 있는 벨리브는 이제 파리 거리의 아름다운 풍경이 됐다. 2013년에는 뉴욕 시가 오랜 준비 끝에 야심차게 미국 내 최대 자전거 공유 시스템인 ‘시티 바이크City Bike’를 시작했다. 이 두 도시는 공공 자전거를 더 확대할 예정이다. 안 이달고Anne Hidalgo 파리시장은 올해 초 자전거 전용 도로를 확장해 파리를 자전거 친화적인 도시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우리나라도 서울, 대전, 창원, 고양, 순천 같은 여러 도시에서 공공 자전거가 도시를 누비고 있다. 서울시는 2020년까지 공공 자전거를 2만 대로 늘린다는 계획을 지난해 말에 발표했다.
2014년 6월까지 세계 712개 도시가 공공 자전거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이 공공 자전거는 도시의 교통 혼잡과 소음, 환경 오염을 줄이기 위해 도시에서 짧은 거리는 자동차 대신 자전거를 이용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공공 자전거의 도입으로 도시에서 자전거 이용이 늘고 자전거에 대한 인식이 좋아진 것이 큰 성과다.대중이 다시 자전거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후반이다. 특히 1970년대 들어 사람들은 자전거를 다시 발견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자동차 문화에 염증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어갔다. 자동차는 편리하지만 수많은 인명 피해를 가져오고 교통 체증, 환경 오염의 주범이 됐다. 대도시에서 자동차는 점차 악몽이 되어 가고 있다. 자전거 저술가인 리처드 발렌타인Richard Balentine은 자동차 문화의 비효율성을 이렇게 비판한다.
“자전거를 탄 사람이 움직이는 데는 1마일에 35칼로리를 소모하고 자동차와 한 사람이 움직이는 데는 1,860칼로리를 소모한다. 150마력의 2,200kg에 달하는 차를 68kg의 사람을 움직이는 데 사용하는 것은 카나리아를 죽이기 위해 원자 폭탄을 사용하는 것과 같다.”
선진국은 자동차 문화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자전거 이용을 장려했다. 자전거 운동가들이 통근과 오락을 위한 자전거 도로 건설에 앞장섰다. 선진국은 도시에 자전거 도로를 건설했다. 유럽에서는 강과 운하를 따라 길게 자전거 도로가 놓였다. 또 버려진 철도는 훌륭한 자전거 전용 도로로 거듭났다. 선진국이 자전거 이용을 장려한 반면 이 시기에 개발도상국은 역설적으로 경제 발전을 위해 자동차 이용을 장려했다. 개발도상국에서 자전거는 가난한시대의 상징이었다. 중국의 베이징은 자전거 물결이 아름다운 도시였으나 경제 발전 과정에서 자전거는 거리에서 밀려났다. 오늘날 베이징의 하늘은 스모그가 뒤덮고 있다. 끔찍한 재앙이다.
오늘날 자전거는 단순히 기계가 아니라 삶의 한 방식이 되고 있다. 그것은 단순하면서도 아무에게도 해를 주지 않는 삶이다. 자전거는 사람의 두 다리로 움직이는 기계로 자급자족이 가능하다. 자전거를 타다 죽거나 크게 다치는 경우도 자동차를 타는 것보다는 훨씬 적다. 어릴 적부터 자전거는 사람들의 좋은 친구가 되고 오랫동안 마음속에 남아있는 가장 선한 기계라고 할 수 있다. 자전거는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소박하고 단순한 삶의 방식을 상징한다. 자전거를 시대에 뒤떨어진 기계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오히려 자전거는 가장 문명화된 기계다.도시에 다시 자전거가 돌아오면서 자전거의 혁명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결코 요란하지 않다. 그것은 조용한 혁명이다. 자전거는 도시의 환경을 살리고 좀 더 인간다운 삶을 살도록 해준다. 자전거는 삭막한 도시에 인간의 따스한 숨결을 불어넣고 있다.
장종수는 중학교 때부터 취미로 자전거를 타기 시작해 지금까지사이클과 산악자전거를 타고 있다. CBS의 사회부와 경제부에서기자로 일했으며, 대한사이클연맹 MTB 위원회 홍보위원, 한국산악자전거협회 이사 등으로 활동했다. 지금은 인터넷 자전거 매거진 ‘바이시클 뉴스’ 대표를 맡고 있다. 저서로는 『재미있는 자전거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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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자전거 탄 풍경
다시 봄입니다. 봄의 절정인 4월 특집으로 자전거를 올린 건 온화한 기운을 열망하는 마음과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도시·환경 전문지의 편집을 맡고 있으니 자전거 하면 녹색 도시, 지속가능한 환경과 에너지, 대안적 교통 같은 묵직한 주제를 이야기해야 마땅하겠지만, 왜 그런지 사랑, 추억, 동경 같은 낭만적인 낱말이 먼저 연상됩니다. 자전거는 이미 19세기에 발명되었지만 속도와 효율을 먹고 사는 우리 도시의 현실에서는 아직, 아니 여전히, 일상적이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자전거가 등장하는 영화 속 장면들이 머리를 스쳐갑니다. 어릴 적 KBS ‘주말의 명화’에서 봤던 ‘내일을 향해 쏴라’의 자전거 신이 제일 먼저 떠오릅니다. 혹시 기억나시나요? 폴 뉴먼이 로버트 레드포드의 연인 캐서린 로스를 몰래 자전거 핸들 위에 태우고 아침의 목장을 가로지르는 풍경 말입니다. 자전거 위에서 사과를 따 함께 먹는 이 장면엔 지금 들어도 경쾌한 팝송 ‘Raindrops keep falling on my head’가 흐릅니다. 피비린내 나는 서부 활극을 낭만으로 전환시킨 이 명장면은 여러 광고에서 패러디되기도 했습니다.
너무 옛날 영화인가요? 그럼 3040세대의 추억 ‘ET’는 어떤가요. ET 최고의 명장면을 하나만 꼽는다면 영화 후반부의 ‘공중 부양’ 신일 겁니다. 자동차를 타고 쫓아오는 어른들에게 잡힐 듯한 찰나, ET의 초능력으로 아이들의 자전거가 훌쩍 날아오릅니다. 이 장면에 전 세계의 수많은 아이들이 발 구르고 손뼉 치며 환호했습니다. 주인공이 자전거에 ET를 태운 채 달을 배경으로 날아가는 이 컷은 다양한 장난감과 퍼즐로도 만들어졌습니다. 자전거가 아니라 자동차였다면 그만큼 매력을 주지 못했을 겁니다.
15초, 30초짜리 광고에서도 자전거는 꿈과 사랑의 메신저로 등장하는 단골손님입니다. “그녀의 자전거가 내 가슴 속으로 들어왔다.” 1990년대 초를 강타했던 빈폴의 광고 카피, 아마 많은 분들의 기억 속에 아직도 생생할 겁니다. 이 땅의 뭇 남성들을 설레게 했던 포카리스웨트 광고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내일을 향해 쏴라’의 캐서린 로스보다 훨씬 예쁜 손예진이 디테일 없는 순백의 원피스를 입고 자전거를 타며 지중해 산토리니의 새파란 하늘과 바다를 배경으로 도시를 달립니다. 자전거가 음악과 모델과 배경을 하나로 엮는 고리 역할을 합니다. 당대의 역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렇게 자전거는 여유와 낭만을 아름답게 매개하지만, 현실의 도시인들에게는 일상이 아닌 환상입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자전거에 대한 로망은 있지만 막상 실제로 타는 건 엄두도 내지 못합니다. 서울 같은 자본주의 도시에서 속도를 포기한다는 건 아주 두려운 일입니다. 속도보다 더 큰 이유는 무섭기 때문입니다. 초등학교 시절 자전거로 동네 여행을 하다 움푹 파인 노면에 자전거가 뒤집혔고 브레이크 핸들이 목에 꽂혔습니다. 다행히 동맥을 피해갔지만 아직도 목에는 커다란 흉터가 남아있습니다. 대학교 때는 다섯 시간짜리 지루한 드로잉 시간을 견디다 못해 자전거에 몸을 실었다가 오픈 트렌치에 자전거와 함께 빠졌습니다. 얼굴 전체가 피범벅이 되어 교실로 귀환한 저를 교수님은 바로 응급실로 보내셨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캠퍼스 전체의 트렌치에 철제 덮개가 설치됐습니다.이런 트라우마 때문인지 저에게 자전거는 로망과판타지일 뿐, 현실의 세계에선 불안과 위험의 상징입니다. 딸아이가 하도 졸라대기에 어린이날 선물로 자전거를 사준 날, 제발 그 자전거가 베란다에서 먼지 쌓인 고물로 변해가길 기도했을 정도니까요.
이번 호 지면을 넘기다 보면 김정은 팀장의 원고에서 『사이클 시크Cycle Chic』라는 근사한 책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덴마크의 영화감독이자 사진작가인 미카엘 콜빌레-안데르센Mikael Colville-Andersen의 역작입니다. 그가 말하는 ‘사이클 시크’는 자전거 타기와 도시적 스타일링을 함께 담은, “자전거와 함께하는 ‘패셔너블한’ 일상 그 자체”를 가리킵니다. 얼핏 보면 스트리트 패션 화보집 같지만 찬찬히 다시 보면 자전거 타기가 환상이 아니라 일상인도시 코펜하겐의 힘이 읽힙니다. 그의 말처럼 “치마를 입고 힐을 신고 자전거로 도심을 유유히 누비는 여자, 더블 재킷에 로퍼를 신고 자전거로 출근하는 남자”가 도시의 평범한 풍경이 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다면, 저에게도 자전거가 낭만이나 두려움이 아니라 현실의 일상으로 다가오겠지요.
사실 이번 특집은 몇 달 전 조한결 기자가 낸 기획서에서 시작됐습니다. 감사하게도 우리나라의 내로라하는 자전거 전문가와 연구자들이 필자로 동참해주셨지만, 가장 눈여겨봐주셨으면 하는 꼭지는 조 기자의 ‘서울 자전거 출근기’입니다. 기획을 한 원죄로 조 기자는 홍대 근처의 집에서부터 방배동 사무실까지 자전거 타기를 감행하며 환상과 일상의 경계에 도전해 보았습니다. 두 차례의 예행 연습과 실전에서 페달을 밟은 그녀에게, 또 자전거로 동행하며 사진 취재를 맡은 이형주 기자에게 위험이 닥치지 않기를 기도했습니다. 그 심정은 제 아이가 자전거로 아파트 단지를 처음 돌던 날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속도의 도시 서울에서 자전거 출퇴근이 일회성 탐험이 아닌 시크한 일상이 되게 하려면 무엇이 필요하고 우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책과 설계의 과제를 챙겨보아야 할 때입니다. 오늘로 꼭 3주째인 환절기 독감을 떨치고 내일은 자전거 두 바퀴로 서울의 봄을 ‘시크’하게 가로지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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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A] 서론만 있는 글쓰기
글이 써지지 않을 때면, 럼블피쉬의 ‘비와 당신’을 무한 반복해 듣는다. 꽤 오래된 습관이다. 다른 곡을 섞어 들을 때도 있지만 그건 상태가 좋을 때의 이야기다. 한곡만 반복해서 듣는 기능이 있는 줄 몰랐을 때는 ‘비와 당신1’, ‘비와 당신2’, ‘비와 당신3’의 방식으로 파일명을 다르게 만들어 놓고 연이어 재생했다. 왜 ‘비와 당신’이냐고 묻는다면, 답변은 몹시 궁색하다. ‘확실히 멜로디가 키보드 두드리기에 최적화되어 있어’라고 황당한 답을 스스로에게 한 적도 있고, ‘다음 문장을 떠오르게 하는 아련한 목소리야’라며 감탄한 적도 부지기수다. 멋쩍게…. 특히나 ‘빛바랜, 사무친, 이젠 괜찮은데, 바보 같은 난, 눈물이 날까’와 같은 노랫말이 흘러나올 때면, 꾸역꾸역 한 문장 한 문장을 메꿔 나가고 있는 나 자신에게 별 이유 없이 관대해진다.
그런데 이번 달에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들국화 노래를 이 곡 저 곡 찾아 듣다가1집에 실려 있는 ‘오후만 있던 일요일’이란 제목에 꽂혔다(노래가 아니라). ‘서론만 있는 글쓰기’란 작위적인 제목은 그 후유증이다. 미리 자비를 구한다.
서론 하나, 종이 잡지
몇 해 전, 오스트레일리아의 미래학자 로스 도슨은 국가별 종이 신문의 사망 연도를 발표했다. 한두 나라만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친절하게도() 전 세계 52개국의 종이 신문이 몇 년도에 사라지게 될지를 구체적으로 예측했다. 그는 현재의 디지털 저널리즘의 확산 속도를 볼 때, 2017년 미국에서 가장 먼저 종이 신문이 파산을 선고하고, 2040년이 되면 전 세계의 모든 종이 신문이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부에서 보조금을 투입하고 있는 프랑스와 독일은 각각 2029년과 2030년, 일본과 중국은 2031년으로 예측했다. 한국은 이보다 빠른 2026년에 이름이 올라 있다. 언론계의 대체적인 반응은 정확한 연도에는 오차가클 수 있지만, 각 언론사의 기조가 ‘페이퍼 퍼스트paper first’에서 ‘디지털 퍼스트digital first’로 전환되고 있는 만큼 그의 예측이 부도수표가 되지 않을 공산이 크다는 입장이다. 종이 신문의 내일과 종이 잡지의 미래를 전망하는 기사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누군가는 한때 우후죽순 늘어났던 지하철 무가지가 이제 1종 정도만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점을 예로 들며 종이 매체가 실제로 하루아침에 사라질 수 있음을 경고한다.1 공짜로 손에 쥐어주어도 사람들이 더 이상 종이를 펼쳐들지 않을 만큼 종이 매체가 사람들에게 외면 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에 반해,한 해가 다르게 기능과 디자인, 휴대성을 강화해서 쏟아져 나오는 모바일 기기의 성장 속도는 무서울 정도다. 물론 종이 신문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이들도 여전히 존재한다. 그들은 기업 광고가 아닌 ‘독자’를 기반으로 존립하고 있는 독일 신문처럼 종이 신문이 독자와의 소통을 전향적으로 늘려야2 생명 연장이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새로운 생존 전략에 포커스를 맞추기도 하고, 모바일 기기가 대체할 수 없는 종이만의 매력을 어필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 역시 디지털 매체가 대세로 자리 잡고 있음은 부인하지 못한다. 안타깝지만!
서론 둘, 조경 매체
조경 분야의 매체 환경은 이전과 크게 달라졌다. ‘환경과조경’사에서 발행하는 월간 『환경과조경』과 월간 『에코스케이프』 이외에, 『조경세계』라는 제호를 단 잡지도 있고, 일간으로 뉴스를 전달하는 온라인 매체 ‘라펜트’와 주간으로 발행되는 『한국조경신문』도 있다. 『환경과조경』만 존재하던 시기(1982년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에는 인사 동정이나 행사 소식과 같은 뉴스부터 새로 완공된 작품, 설계공모 수상작, 비평, 에세이, 답사기, 신제품 소개에 이르기까지 백화점식 콘텐츠 구성이 불가피했다. 당시에는 적지 않은 독자들이 인사 동정이 실려 있는 뉴스 지면부터 펼쳐보았다. 그만큼 정보 창구로서의 역할이 요구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그때와 다르다. 이는 꼭 관련 매체가 늘어났기 때문만은 아니다. 1980~90년대와 2000년대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인터넷의 발달에 기인한다. 어느 순간부터 정보가 폭발적으로 넘쳐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면 달라진 환경 속에서 『환경과조경』은 어떤 콘텐츠에 집중해야 할까?
서론 셋, 저널과 매거진
‘잡지’는 일정한 제호를 가지고 정기적으로 발간되는 출판물을 일컫는다. 동일한 제호와 정기적인 발간이 핵심이다. ‘저널’은 프랑스어인 ‘주르날journal’에서 비롯된 것으로, 1665년 프랑스에서 발간된 『주르날 데 사방Journal des savants』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최초의 정기간행물로 인정 받고 있는 이 잡지는 주간으로 발행된 과학 저널이었다. ‘매거진’은 원래 군대의 무기고 또는 총의 탄창을 가리키는 말이 었으나, 1731년 런던에서 발행된 『더 젠틀맨스 매거진The Gentleman’ Magazine』의 제호에서 유래하여 현재는 잡지라는 뜻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한 권의 책에 다양한 주제의 내용이 담겨 있다는 점을 비유적으로 일컫기 위해 ‘무기고’라는 단어가 쓰였다.3 어쩌면 지식의 탄창, 정보의 무기고 같은 의미였을 수도 있다. 잡지는 신문과 다르게 조금 더 제한적인 독자층을 타깃으로 설정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즉 보다 세분화된 분야나 주제 혹은 취향과 관련된 ‘깊이’ 있는 지식과 정보를 (신문보다 상대적으로 많은 지면을 활용하여) 독자들의 무기고에 차곡차곡 쌓아줌으로써 설 자리를 넓혀 나간 것이다. 신문과 잡지는 같은 제호를 사용하여 정기적으로 발간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바로 이런 지점에서 그 성격이 나뉜다.
『환경과조경』이 독자들의 무기고에 무엇을 채워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본론은 시작도 못하고 서론만 세 가지 버전으로 써버리고 말았다. 정보의 홍수 시대에 더욱 그 빛을 발하는 ‘정제된 정보’를, 오직 여기에서만 볼 수 있는 ‘독자적인 콘텐츠’를, (신문과 달리) 충분히 시간을 투자해도 아깝지 않은 ‘깊이 있는 읽을거리’를, (온라인 매체와 달리) 손으로 펼쳐 볼 수 있는 ‘편집된 지면’에, 시선과 마음을 빼앗을 수 있는 ‘감각적인 디자인’으로 담아내면 될 일이건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잡지는 무엇이고, ‘누가’ ‘왜’ 종이 잡지를 읽을까를 다시 고민하게 된다. 이 대목을 쓰고 나니, 타이밍도 기가 막히게 “바보 같은 난, 눈물이 날까”란 럼블피쉬 최진이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이러니, ‘비와 당신’을 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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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의 서재] 언어의 정원
비가 오는 날은 아무래도 좀 별로다. 출근길에 귀찮게 우산도 챙겨야 하고 땅은 질퍽질퍽, 하늘은 또 왜 이렇게 우중충한지, 몸은 비를 피해 건물에서 건물로 빠르게 옮겨 다니는 신세다. 평상시에도 회색탑에 갇혀 사는 건 똑같지만 공간의 선택권을 빼앗긴 기분이랄까.
그래도 가끔은 비를 즐긴다. 정확히 말하면 프레임 속에 채워진 비오는 풍경이 좋다. 대부분은 비를 피해 건물 속에 웅크리고 바깥은 쳐다보지도 않지만, 어떤 장소냐에 따라 그 풍경은 사뭇 다르게 보인다. 막걸리집에서 파전에 동동주 시켜놓고 잠깐씩 창밖을 응시하면,처마를 타고 현악기의 줄처럼 길게 늘어지는 빗줄기가 시야를 적신다. 마음이 착 가라앉는 기분이 든다. 커피향 은은한 카페에서 내다보는 풍경도 좋다. 특히 처마가 없는 유리창이라면 빗줄기가 씻기듯 흐르는 선은 가히 예술적인 모습이다. 비 내리는 공원은… 글쎄, 좀 애매하다. 비 오는 날 공원을 찾는 이가 있을까? 『언어의 정원』에는 그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비 오는 날 공원에 가본 적은 없지만, 이 작품을 보면 왠지 낭만적이어서 ‘가볼 걸’ 하는 후회가 든다. 어쩌면 내 인연이 더 빨리 시작되지 않았을까 하는 헛된 생각이 들 정도다.
『언어의 정원』은 2013년에 개봉한 동명의 애니메이션을 감독이 직접 재구성한 소설이다. 남녀가 공원에서 우연히 만나 서로 알게 되고 소통하면서 겪는 내면의 치유와 성장을 다룬 일종의 감성 멜로다. 애니메이션에서는 공원을 중심으로 비 내리는 풍경을 묘사하고, 두 남녀 주인공과 공원, 비의 표현에 초점이 맞춰졌으나, 소설에서는 비의 영역을 확대하고 등장인물을 모두 입체적으로 표현했다. 영상에서 담지 못했던 내용을 해석하듯 각 인물의 이야기와 내면을 자세하게 다룬다. 『언어의 정원』의 원제는 ‘고토노하노니와言の葉の庭’다. 고토하言葉는 말이나 언어를 뜻하는데 한자를 직역하면 ‘말을 적은 잎’이다. 종이가 없던 시절에 파피루스나 나뭇잎에 글을 적었던 데서 유래한 말이다. 이 말을 보다 시적으로 표현한 말이 고토노하言の葉인데,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시가집인 『만요슈』를 인용한 의미가 제목에담긴 것으로 보인다. 고전 소설은 시를 읊어 인물의 마음을 묘사하는 기법을 쓰는 특징이 있다. 『언어의 정원』은 이러한 기법을 활용해 인물의 내면을 표현함으로써 서정적 분위기를 북돋운다. 그 언어를 구사하고 관계가 시작되는 장소로 공원이 등장한다. 제목은 정원이라는 용어를 채택하고 있지만, 이는 공원과 정원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거나 보다 부드러운 표현으로 정원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우렛소리 희미하고 구름이 끼고 비라도 내리면 그대 붙잡으련만”(『만요슈』, 11권 2513번). 떠날 것 같은 남자를 붙잡는 여자의 노래다. 비가 내려 남자가 떠나지 못하길 바라는 내용이다. 『언어의 정원』에서 비는 중요한 소재로 다루어진다. 감독은 이작품의 진짜 주인공은 ‘비’라고 할 정도로 영상 표현에 신경을 기울이고 소설 속에서도 다양한 모습으로 묘사한다. 비가 내리면 세상은 이어진다. 서로 떨어져 있는 하늘과 대지가 비를 통해 만나고 새로운 생명을 잉태한다. 하이데거는 비가 내리는 모습을 “하늘과 대지의 결혼식”이라고 표현했다. 하늘의 태양과 대지의 자양분이 내밀한 관계를 맺어 포도나무가 열매 맺는 모습을 ‘결혼식’이라고 표현함으로써 그 가치를 높였다. 여기서는 비가 만남을 주선하는 중매인으로서 역할을 한다. 등장인물들은 저마다 상처를 가지고 있다. 소설 속에서 다루기엔 소소해 보일 정도지만, 우리 일상에 대입해 봤을 때 누구나 하나씩 가진 상처 혹은 사연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감정이 이입된다. 현대인은 치열한 경쟁 체제 속에 피로한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이로 인해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현대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청자가 바로 ‘비’로 은유된다. 서로의 영역에서 혼자가 되고 상처 입은 두 사람은 피난처로 공원을 찾았다. 상처는 혼자보다 같이 이겨내는 게 더 쉬운 법이다. 그런데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건 쉽지 않다. 어른이 되어 학교나 직장이 아닌 곳에서는 더욱이 그렇다. 두 사람은 공원이라는 공공 공간에서 처음 만나고 서로를 통해 치유의 과정에 도달한다. 공원은 개인의 영역이 아니다. 누구의 영역도 될 수 있다. 이에 서로 모르던 두 사람이 대화의 기회를 갖게 되고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공원이 소통의 매개체가 된 셈이다.
“소년의 손이 살그머니 엄지발가락 끝에 닿았다. 뜨거운 숨결이 닿는 감촉에 차디찬 발끝이 흠칫했다. 심장이 콩닥콩닥 뜀박질을 했다. 혹여 소년이 들으면 어쩌나 겁이 날 만큼 고동소리와 숨소리는 격렬했다.” 구두 디자이너를 꿈꾸는 타카오는 마음이 가는 이성 유키노에게 구두를 만들어주고자 공원에서 그녀의 발을 이리저리 만지며 치수를 잰다. 영화평론가 이동진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는 사실상 베드신이다. 영화 ‘일대종사’(2013)를 보면 양조위와 장쯔이가 겨루는 장면이 있다. 겨루는 과정에 서로의 신체와 호흡이 맞닿고 눈빛이 마주치는 모습이 세밀하게 묘사된다. 이 장면을 슬로우 모션으로 처리하고 교감의 지점을 클로즈업해 관객에게 보여준다. 베드신은 관객에게 등장인물의 심리적 교감을 전달하는 극적 장치다.
『언어의 정원』에서는 이를 구두 치수를 재는 장면으로 대체했다. 감독은 “사랑, 그 이전의 사랑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한다. 단순히 『만요슈』의 시구만 인용하지 않고 1,300년 전에 쓰인 옛날 가요의 ‘사랑’이란 단어가 담은 정서를 모티브로 이야기를 풀어냈다. 지금의 ‘사랑’이란 단어의 정서와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사랑’의 영원성을 강조하려 한 것인지, 아니면 ‘사랑’이란 단어를 통해 언령言靈을 확인하려 한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그 전략이 가슴을 두드렸다. “우렛소리 희미하고 비가 오지 않아도 나는 여기 머무르오 그대 가지마라 하시면”(『만요슈』, 11권 2514번). 사랑의 언어가 비와 함께 파문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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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스케이프] 위플래쉬
선택과 집중, 그 아찔한 전략
위플래쉬Whiplash(2015년 국내 개봉)는 입소문을 타고 절찬 상영 중인 음악 영화다. ‘재즈 연주자를 위한 공포 영화’, ‘음악 영화 탈을 쓴 무협 영화’라고 알려졌지만 ‘그래봤자 장르가 음악인데 과장이 좀 심한 것 아냐’라고 생각하며 영화를 보러 갔다. 나는 놀이동산의 롤러코스터도 무섭고 멀미가 나서 못 타고, 피가 낭자하는 칼부림 영화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심약한 심장의 소유자다. 원빈의 셀프 삭발 장면이 영화 ‘아저씨’에서 마지막으로 본 장면이다. 그가 제대로 싸우기 시작할 때쯤엔 극장 문을 나와 안전한(?) 장소에서 동행을 기다렸다. ‘채찍질’이라는 의미 그대로 ‘위플래쉬’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마지막 시퀀스가 끝나고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쯤에야 정신이 차려질 만큼 영화 내내 긴박감이 넘친다. 보는 동안 심장 박동수가 평소보다 몇 배는 빨리 뛰었다. 어지간한 자동차 추격신보다 스릴감이 넘쳤고, 칼 한 자루 등장하지 않지만 칼부림 영화보다 더 잔인하게 느껴졌다. ‘아저씨’를 두 번이나 본 강심장인 지인도 비슷하게 느꼈다고 한다.
밴드 지휘자와 드럼 연주자, 이 두 주인공이 영화의 처음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팽팽한 긴장감을 이어간다. 스승과의 교감을 통해 음악을 매개로 성장하는 스토리는 사실 진부한 소재다. ‘위플래시’의 특별한 전략은 이 흔한 소재를 완전히 새로운 음악 영화로 바꾸어 놓았다. 스승의 인격과 방식이 올바른지, 과연 제자가 성장한 건지는 별개문제로 두기로 하고, 다음에서는 영화의 성취에 대해 집중해 보기로 한다. 영화는 한 괴물과 점점 괴물이 되어 가는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나고 어떻게 부딪혀서 결국 어떤 불꽃이 튀는지 그 발화 과정을 드럼이라는 악기의 연주를 통해 전개하고 있다.
서영애는 ‘영화 속 경관’을 주제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한겨레 영화 평론 전문 과정을 수료했다. 조경을 제목으로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으며 영화를 삶의 또 다른 챕터로 여긴다. 영화는 경관과 사람이 구체적으로 어떻게관계 맺는지 보여주며 인문학적 상상력을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텍스트라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