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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경의 경계를 넘어, 조경 속으로] 데이비드 브룩스 예술가
    2012년, 타임스퀘어 인근 뮤지컬 극장가에 대형 설치미술이 모습을 나타났다. 고층 건물 사이에 설치된 작품은 마치 땅에 묻힌 단층집처럼 보인다. 미국의 도시 외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단조로운 단독 주택의 모습이지만, 땅에 묻혀 있어서 보이는 건 지붕뿐이다. 아스팔트 싱글asphalt shingle이라는 저렴하고 평범한 재료로 만든 지붕은 미국 교외 지역을 대표하는 경관을 이룬다. 그런데 맨해튼 한가운데 출현한 이 지붕은 너무나 이질적이고 독특하다. 게다가 작고 아담한 지붕도 아니고 무척이나 덩치 큰 주택, 소위 말하는 맥맨션McMansion 지붕이다. 맥맨션이란 넓은 대지에 자리한 최상위층의 저택과는 달리, 중산층을 겨냥해 일반적인 넓이의 택지에 면적을 낭비하는 과도한 크기와 천편일률적인 모양으로 찍어낸 듯한 주택을 말한다. 맥도날드처럼 저렴하고, 지나치게 크며, 사회적인 문제가 된 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맥맨션은 주택 시장의 비정상적인 과열을 부추기고 겉모습을 중시하는 얄팍한소비주의를 대표한다. 부동산 시장이 붕괴되면서 가장 먼저 골칫덩이로 대두된 것이 맥맨션이다. 데이비드 브룩스는 미국의 자연 경관을 무서운 속도로 좀먹어가는 맥맨션과 스프롤sprawl 현상을 뉴욕 한가운데로 가져왔다. 그는 어린 시절 거의 매년 플로리다남부로 가족 여행을 다녔는데 해마다 습지가 메워져 주택가가 되고 쇼핑몰이 들어서는 모습에 경악했다고 한다. ‘사막 지붕Desert Rooftops(2011~2012)’은 이러한 무분별한 개발의 확산을 예술가의 눈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그는 ‘스프롤’이라는 미국 사회의 복잡다단한 현상을 아스팔트 싱글 지붕으로 압축시켜 표현했다. 우리가 평소에 느끼지 못하던 스프롤의 단면이 지붕이라는 장치를 통해 드러나는 것이다. 최근작인 ‘갭 이콜로지Gap Ecology’, 일명 ‘리프트와 종려나무의 정물화Still Life with Cherry Picker and Palms(2009~2013)’는 대개 건물의 유리창 청소나 보수작업에 이용되는 이동식 리프트 위에 종려나무 화분을 올려놓은 단순하면서도 명쾌한 발상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마치 최근에 유행하는 옥상 정원과 그린 빌딩에 대한 냉소적인 일격 같다. ‘보존된 숲Preserved Forest(2010~2011)’은 열대 지방의 무성한 숲 일부를 갤러리로 옮겨와 스프레이 콘크리트로 수목의 잎과 줄기를 모두 덮어버린 작품이다. 아마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개발 지역 도로변 숲이 시멘트 먼지를 뒤집어 써 회색빛으로 박제가 된 모습을 은유한 것 같다. 혹은 수박겉핥기식으로 전개되는 환경 보존 운동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외침으로 들리기도 한다. ‘대이동과 구아노의 정물화Still Life with Stampede and Guano(2011)’는 인상적인 과정 중심의 작품이다. 시멘트로 만든 동물상을 플로리다 군도 야생조류센터Florida Keys Wild Bird Center에 넣어두어 갈매기와 펠리컨 등의 갖가지 새똥, 즉 구아노guano가 자연스럽게 표면을 덮어 만드는 패턴을 보여준다. ‘새똥’이라는 핵심적인 자연의 순환 고리를 여과 없이 바라볼 수 있도록 한 이 작품은 강렬한 시각적 효과뿐만 아니라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새똥을 맞은 시멘트 동물처럼 우리는 항상 새똥을 맞고 산다. 그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생태계가 정상적으로 돌아가기 위해 필수적인 과정이다. 한 해에도 여러 가지 전혀 다른 콘셉트의 작품들을 선보이며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데이비드 브룩스는 오랜 기간 보전생태학 활동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하며 독특한 시각의 토대를 형성했다. 환경의 시대, 우리의 식상한 자연관에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 데이비드 브룩스의 작업은 조경가로서 눈여겨 볼만하다. Q. 플로리다 남부와 남아메리카를 정기적으로 여행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한 현지 조사는 예술적 작업을 위한 기초 연구인가? 보전생태학 활동에 참여하게 된 배경과 그에 대한 당신의 관점은 무엇인가? A. 지난 15년간 많은 시간을 어류학자와 조류학자, 보전생물학자들이 이끄는 현지 조사에 자원봉사자로서 참여해 왔다. 플로리다 남부의 플로리다 군도Florida Keys와 에버글레이드Everglades, 그리고 남아메리카의 아마존 강 유역Amazon Basin, 가이아나 쉴드Guyana Shield, 안데스 산맥 유역Andean river drainages 등을 탐험했다. 학제간 협력에 기반을 둔 보전생물학처럼 나의 작업은 문화적 문제와 자연환경을 연결한 결과물이다. 자연은 언제나 문화라는 틀을 통해 인식되고 이용된다. 보전생물학이란 생물종다양성을 유지하는데 사명을 둔 다학제적 과학이다. 보전생물학자들은 역사와 기반 시설, 미학, 사회적 책임 등을 시대 경관이 공유하는 토대로 보기 때문에 그런 주제들을 혼합한 분석 방법을 종종 사용한다. 나의 작업 또한 보전생태학 처럼 수많은 주제 사이를 오가며 형태적인 도구와 소재의 전통, 대상지의 제약된 환경 등을 얼기설기 엮어나가는 방식을 취한다. 나는 현대의 세계화된 자본주의가 토해낸 심각하고 다급한 상황을 중심 주제로 다룬다. 그런 측면에서 지금 활동하는 보전생물학자들이 현 시대의 가장 전위적 사상가들avant-garde thinkers이며 예술적 담론을 위한 산파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2005, 2007, 2010, 그리고 2012년에 나는 베네수엘라의 브라조 카시퀴아레Brazo Casiquiare, 브라질의 아크리Acre, 에콰도르의 코르디예라 델 콘도Cordillera del Condor, 페루의 마드레 드 디오스Madre de Dios 등지에서 생물학적 조사 작업을 진행하는 과학자들을 도왔다. 그 네 차례의 원정을 통해 새로운 종을 발견하는 큰 결실을 맺었고 우리는 약 40여 종의 보고되지 않은 어류를 수집했다. 그러나 이 무척이나 궁벽한 아마존의 오지에서조차 인간이 미친 영향은 충분히 충격적이 었고 경악스러웠다. 오늘날의 세계화된 경제와 문화적 욕구, 사회적 병리현상, 말세적인 규모의 생태적 재앙은 마치 하나의 복잡한 정신병처럼 서로 연관되어 있음을 느꼈다. 이들은 서로에 대한 적대감과 대결을 부추기면서 엔트로피의 급격한 증가를 가속화한다. 나는 문화를 생산하는 사람으로서 이러한 엔트로피를 기록·해석하고 그에 대한 해결방안을 나의 분야인 문화적 영역으로 옮기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결국 모든 문제의 원인은 어떤 관념적ideological인 것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이 꼭지를 연재하고 있는 인터뷰어 최이규는 1976년 부산 생으로, 그룹한 어소시에이트 뉴욕 오피스를 이끌며 10여 차례의해외 공모전에서 우승했고, 주요 작업을 뉴욕시립미술관 및 소호, 센트럴파크, 두바이, 올랜도, 런던, 위니펙 등지의 갤러리에전시해 왔다.
    • 최이규 / 그룹한 어소시에이트 뉴욕지소장
  • [공간 공감] 지앤아트스페이스
    2008년에 개관한 지앤아트스페이스Zien Art Space는 도자 예술을 기반으로 한 복합 문화 시설이다. 대개 복합 문화 시설이라는 용어는 랜드마크적 건축물과 다소요란한 사이트 플랜, 대형 환경 조형물, 그리고 수많은 인파 등을 연상시키기 마련이다. 문화와 소비의 결합을 축제적 분위기로 승화시키는 복합 문화 시설은 일상에서 접할 수 없는 판타지를 제공해주어야 하는 곳일 것이다. 그런데 이곳 지앤아트스페이스에서는 조금 다른 분위기가 감지된다. 일단 크게 튀지 않는다. 자연녹지 지역의 건폐율 제한 때문에도 그러했겠지만, 슬쩍 둘러보았을 때 강하게 감지되는 형태적 잔상이 크지 않다. 오히려 주변에서 바라보는 시선은 길 건너편의 백남준아트센터로 몰리기 십상이다. 심지어는 가로와 접하는 면에 자작나무 숲을 조성하여 대상지를 조금 더 가리고자 하는 시도도 엿볼 수 있다. 실제로는 꽤 큰 규모의 시설을 갖고 있지만 대부분을 지하에 배치하고 지상에서는 분절된 몇 동의 건축물을 보여주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선큰 방식의 구성을 통해서 얻는 또 하나의 이익은 바깥으로 보이는 산만한 경관을 레벨 차이를 통해 차단함으로써 대상지 내의 깔끔한 분위기를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는 점이다. 정욱주는 이 연재를 위해 작은 모임을 구성했다. 글쓴이 외에 factory L의 이홍선 소장, KnL 환경디자인 스튜디오의 김용택 소장, 디자인 스튜디오 loci의 박승진 소장, 그리고 서울시립대학교의 김아연 교수 등 다섯 명의 조경가가 의기투합하였고, 새로운 대상지 선정을 위해 무심코지나치던 작은 공간들을 세밀한 렌즈로 다시 들여다보고 있는 중이다.
  • 자연과 ‘닮은’ 모습을 만드는 일
    지금도 분명히 기억이 난다. 불과 몇 달 전, 나는 『환경과조경』 면접을 앞두고 친구에게 모의 면접을 부탁했다. 친구는 그럭저럭 무난한 질문을 던졌고 나는 시험공부 하듯 외워둔 ‘모범 답안’으로 어색하게 대답했다. 그런데 마지막 질문, “그렇다면 ‘환경’과 ‘조경’은 어떤 관계에 있나요”에서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서둘러 백과사전을 뒤졌다. “‘환경’은 인간에게 선험적으로 주어진 생존조건의 총화이며, 인간은 유사 이래로 ‘환경’과의 상호관계를 지속해왔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 인간은 ‘환경’을 의도적으로 변화시켜 왔는데, 이러한 변화의 결과물 혹은 그러한 변화를 일으키는 인간 행위를 광의의 ‘조경’이라고 볼 수 있다. ‘조경’은 아름답고 유용하고 건강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인문적·과학적 지식을 응용하여 토지를 계획·설계·시공·관리하는 예술이다.”1 알 듯 모를 듯 어려운 이 문장을 곱씹으며 면접에서 절대 이 질문이 나오지 않기를 바랐다. 결국 면접장에서는 이 질문이 나오지 않았지만 어찌나 열심히 외웠던지 지금까지도 그 답안을 기억하고 있다. 뜬금없이 나의 면접 이야기를 꺼낸 것은 대관령 하늘목장에서 당시 어렵게 느껴졌던 그 질문을 다시 받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드넓은 초지, 푸르른 하늘, 아스라이 물결치는 능선이 있는 풍경. 총면적 1,100만m2에 이르는 장대한 자연 경관은 그 자체만으로도 사람을 압도한다. ‘선험적으로 주어진’ 자연 환경이 너무 거대하고 강렬해서 이곳에 무엇을 더하거나 뺀다는 것은 자연에 대한 ‘신성모독’이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이곳에 조경이 비집고 들어갈 영역이 있을까’ 몇 달 전 대답하지 못했던 질문을 다시 떠올렸다. 투박함, 꾸밈없이 아름다운 “처음에는 목장의 능선을 따라 세워진 풍력발전기가 시선을 사로잡는데 오랫동안 목장의 풍경을 바라보다 보면 풍력발전기가 오히려 시선에 방해돼요.” 취재를 가는 차 안에서 이수학 소장의 이야기를 들으며 설레는 마음이 커져갔다. 실제로 현장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거대한 풍력발전기였다. 하늘목장은 1단지와 2단지가 양 갈래로 뻗어 나가 ‘V’자 형태를 이룬다. 이 능선 둘레를 따라 100m 높이의 거대한 풍력발전기가 띄엄띄엄 놓여있다. 대관령 일대에만 풍력발전기가 49대 있는데 이 중 29대가 하늘목장에 있다고 한다.2 마치 거대한 설치 미술처럼 연이어 늘어선 풍력발전기에 시선을 빼앗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이수학 소장의 말처럼 시간이 흐르면서 이 풍경에 익숙해지고 좀 더 구석구석 바라보게 되면서 이 거대한 오브제는 쓸데없는 수식처럼 느껴졌다. 운무가 순식간에 파도처럼 밀려오고 시시각각 색이 변하는 하늘이 목장을 감싸는 이곳에서는 거칠고 투박한 자연만이주인공이었다. 최근 농장 체험, 목장 체험 등 체험 프로그램이 가족 단위 관광객들에게 인기를 끌면서 동화같이 인위적인 모습으로 꾸민 농장과 목장이 늘고 있는데 반해 하늘목장은 지난 40년 동안 가꾸어 온 목장 그대로의 모습이다. 이에 대해 하늘목장의 백승두 사장은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외부 사람은 이해가 안 될 겁니다. 하지만 한일시멘트 사람이면 알 수 있습니다. 우리 회사에서 이 목장은 성지와 같은 곳입니다. 선대 회장의 남다른 애정을 알고 있기 때문에 섣불리 개방할 생각을 못했던 것이지요.”3 이수학 소장은 방대한 부지에 비해 부족한 예산과 목장에 대한 이곳 사람들의 남다른 애착 때문에 설계에 고민이 많았다고 했다.
  • 대지의 ‘사건’을 ‘기념’하는 우리의 자세
    기념記念의 사전적 정의는 ‘어떤 뜻 깊은 일이나 훌륭한 인물 등을 오래도록 잊지아니하고 마음에 간직하는 것’으로, 의식에서 도로 생각해내는 기억記憶과는 의미가 다르다. 기념과 기억은 이야기narrative의 차이로도 구별할 수 있다. 보다 고전적인 입장에서, 기억은 주체에 의해 환기되는 사유화 된 이야기지만 기념은 일어난 사실에 대한 일종의 집합적 기억으로 어느 정도의 객관성과 보편성을 가진다. 기억에는 시간의 간극이 발생하면 할수록 많은 인식의 차이와 내용이 존재할 수 있지만 기념에는 사회적 합의에 의한 공공의 메시지가 들어있다. 지난 10월 초에 당선작을 발표한 동학농민혁명 기념공원 설계공모는 동학농민혁명의 위상을 기념성으로 제고한다는 분명한 방향을 가진 공원 공모전이었다. 설계 지침서에는 동학농민혁명을 “봉건제도를 개혁하고 일제의 침략으로부터 국권을 수호하기 위한 운동”이자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민중의 자각에 의한 전국적 농민 항쟁”으로 정의한다. “한국 민족민주운동의 시발점”이라고 평가하면서 동학농민혁명의 발발 배경과 참여자, 그리고 그 영향의 의의가 언급된다. 소설가 황석영은 동학농민혁명을 배경으로 쓴 소설 『여울물 소리』에서 여주인공여옥을 통해, 세상을 바꾸고자 했던 여러 이야기꾼의 삶을 보여주는 것으로 혁명에 가담한 민초들의 희망과 좌절을 전달했다. 그는 책의 말미에 이 혁명을 두고 “엄격한 신분제도로 유지되는 유교적 세상에서 ‘사람이 하늘이다’라는 놀랄 만한 선언을 한 동학의 출현은 그야말로 하늘이 놀라고 땅이 뒤집히는 사건”이라고 설명한다. 새로 조성될 동학농민혁명 기념공원은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을 기념할 수 있어야함은 물론, 훼손된 지형과 진부하다고 생각하는 기존의 시설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했다. 또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을 구현하고 전파할 수 있는 거점이 되기 위해 공원에는 기념 공간과 교육 시설, 연구 시설이 필요했고, 그밖에 각 시설을 고려한 동선 정리, 도로 계획, 배수에 대한 대책, 이용자 수용에 대한 대비 프로그램 계획 등이 요구되었다. 동학농민혁명과 황토현黃土峴 설계 대상지는 약 10만 평 규모로, 동학농민혁명 당시 농민군이 관군과 대항해 첫 승리를 거둔 황토현 전적지가 포함되어 있다. 기념 공간에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이 일어난 장소가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대지에 새겨진 기록만으로도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황토현 전적지는 논밭으로 개간되면서 많은 교란과 변형이 일어났다. 이 장소의 기념비적 가치를 어떻게 회복시켜야 할지, 중요한 과제가 제시되었다. 황토현의 역사적 가치에 주목하면서 공모전에서 수상한 네 작품이 어떻게 동학농민혁명의 기념성을 풀어내었는지 들여다보면, 기념 공간을 대하는 그들의 상이한접근 방법을 잘 이해할 수 있다. 박희성은 서울대학교에서 ‘당·송대 산수원림’에 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원림, 경계 없는 자연』이 있으며 전근대 동아시아 도성과 원림, 근대기 동아시아 각국 조경의 영향 관계를 관심 있게 살피고 있다. 현재는 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하면서 동아시아 수도(capital)를 연구하고 있다. 서울 한양도성(Seoul City Wall) 세계유산 등재 신청서 작업에도 참여 중이다.
  • [칼럼] 서울역 고가 공원, 그 새로운 가능성에 주목하며
    바쁜 일상에 쫓기며 살다보면 놓치고 지나가는 풍경이 너무 많다. 늘 자동차로 지나던 거리를 산책할 때 마주하게 되는 새로운 풍경, 회색빛 건물 사이로 드러나는 푸른 산자락과 하늘, 그리고 옥상에서 바라본 도시의 색다른 얼굴. 늘 다니던 길과 반복되는 시선을 조금만 벗어나도 우리는 그간 전혀 보지 못했던 도시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하게 되지만, 슬프게도 우리가 만든 획일화된 도시의 구조는 도시가 보여줄 수 있는 다양한 표정과 상상력을 심각하게 차단하고 있다. 우리는 분명 과거와는 다른 삶을 살고 있지만, 이는 우리가 만든 도시 공간의 물리적 구조에 상당 부분 기인하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산업혁명을 기점으로 인간은 경제적으로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알게 되었고, 이는 토지와 자연, 그리고 공동체적 생활 방식에 크게 의존해오던 인간의 삶이 도시라는 새로운 틀을 통해 새롭게 변하는 계기가 되었다. 황토색 땅, 그리고 산과 하늘을 바라보던 우리의 삶은 자동차와 도로, 간판, 좁고 번잡한 보행로에 익숙해졌으며, 휴가철이라도 되면 도시는 ‘떠나야 할’ 숨막히는 치열한 삶의 전쟁터로 여겨지곤 한다. 이러한 도시에 대한 비판과 반성은 많은 도시계획가와 조경가의 오랜 화두였다. 도시를 종횡으로가르는 비인간적 스케일의 빌딩과 도로 등 르 코르뷔지에식 도시 건설에 반기를 들며 도시를 인간이 중심이 되는 ‘무대’로 만들자는 미국의 도시사상가 제인 제이콥스Jane Jacobs, 자동차 중심의 무차별적 도시 확산에 반대하며 고밀도 복합개발과 보행로 활성화 등을 주장하며 도시 공간의 새로운 재편을 주도하는 뉴어바니즘New Urbanism, 산업사회의 한계를 아우르는 그린 인프라스트럭처의 구축과 공원 디자인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Landscape Urbanism 등은 경제성과 효율성에 매몰되어가는 우리 삶의 터전에대한 진지한 반성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다양한 도시에 대한 비판과 대안은 미국 등 도시 문제에 높은 관심을 가진 선진국을 중심으로 여전히 실험 중에 있다. 지금도 많은 도시계획가나 건축가, 조경가가 일그러진 도시의 문제를 해결하고 미래 사회를 담을 수 있는 건강한 도시 공간의 재편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최근 서울에 미국의 하이라인High Line을 벤치마킹한 서울역 고가 공원을 만들겠다는 서울시의 야심찬 발표에 학계는 물론 업계와 대중매체가 연일술렁이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 9월 뉴욕의 하이라인을 시찰한 뒤, 길이 938m의 서울역고가를 녹지 공원으로 재생시키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이를 위해 관련 전문가와 일반 시민의 참여를 적극 독려하고 나섰다. 뉴욕의 하이라인은 지난 2006년부터 높이 9m, 길이 2.5km의 고가 폐선 철로 위에 조성된 선형 공원으로 해마다 5백만 명의 관광객이 몰리는 세계적 명소로 잘 알려져 있다. 지난 1993년 고가 폐선 철로를 공중 정원으로 조성한 파리의 프롬나드 플랑테Promenade Plantée를 모티브로 한 하이라인은 버려진 도시의 인프라스트럭처가 새롭게 활용될 수 있는 디자인의 가능성을 열어 주었다. 서울시는 고가가 서울역과 연접해 있으며 4층 높이에서 한 눈에 서울도심을 조망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경관을 제공하는 관광 명소로 거듭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는 건설 산업의 침체로 고전하고 있는 관련분야가 도시재생의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매우 고무적이다. 물론 서울역 고가 공원에 대한 비판도 없지는 않다. 교통 문제와 상권 붕괴를 우려하는 주변 상인들의 반대 의견도 적극 제기되고 있다. 공사 기간만 8년이 넘게 걸린 하이라인과 달리 2년 여만에 국제 설계공모부터 준공까지 모두 마무리하겠다는 서울시의 무리한 일정도 결국 시장의 임기 내치적 쌓기가 아니냐는 비판도 들려온다. 무엇보다 흉물로 남은 산업사회의 부산물을 새로운 용도로 재활용하는 것, 혹은 철거를 통해 도시 공간의 새로운 구조 개혁을 주도하는 것이 서울 도시의 미래 비전과 어떻게 부합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부족한 것이 아쉽다. 프롬나드 플랑테와 하이라인이 반드시 서울역 고가의 운명이어야 할 이유는 없지만, 과거 자동차와 함께 도시를 점령했던 높고 육중한 구조물이 시민에게 새로운 형태의 발길과 눈길을 열어준다는 것은 도시에 새로운 경험과 상상을 부여하는 의미 있는 시도로 보인다. 먼 옛날 그 땅에 발을 딛고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자연과의 융화속에서 저마다의 형태를 갖고, 또 그 형태는 지금 그리고 앞으로 그곳에서 살아갈 사람들의 발걸음과 일상의 경험들을 좌우한다. 서울역 고가 공원의 의미는 수백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하이라인의 겉모습이 아니라, 고가를 철거하지 않았을 때보다더욱 ‘가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을 때, 그 진가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 ‘가치’는 지도자나 전문가의 철학이 아니라 도시 서울이 가진역사와 문화, 그리고 미래 비전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사회적 합의를 통해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의 이번 계획은 성급한 모방이나 몇몇 전문가에 대한 의존에서 끝날 것이 아니라 과거 역사와의 소통을 통해 지금의 장소와 모습이 가질 수 있는 다양한 역할과 의미를 이해하고,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게 될 지역 주민과 상인들과의 적극적 소통을 통해 그들의 삶과 이야기를 담아야할 것이다. 언젠가 서울역 앞 하이라인을 걸으며 그동안 잊고 살았던 서울의 얼굴과 그곳에 담긴 이야기와 흔적, 그리고 역동적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더욱 생생하게 느낄 수 있기를 기대한다. 김진오는 1995년부터 2000년까지 월간 『환경과조경』에서 기자로 활동했으며 편집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이후 미국 애리조나 주립대학교(Arizona State University)에서 환경계획학 석사 학위를, 텍사스 대학교(University of Texas at Austin)에서 도시계획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미네소타 대학교(University ofMinnesota) 환경계획연구소 연구원과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부연구위원을 지냈으며, 현재는 경희대학교 환경조경디자인학과교수로 재직 중이다.
  • [에디토리얼] 서울판 하이라인, 서두르지 말자
    10월호 마감이 한창이던 9월 중순, 미안하게도 편집부 식구들을 나 몰라라 한 채 포르투갈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포르투Porto라는 역사 도시에서 열린 유럽조경학교협의회ECLAS 콘퍼런스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이곳에서 육지가 끝나고, 이곳에서 바다가 시작된다”는 말로 유명한 이 항구 도시는 15, 16세기 대항해시대의 화려한 전진 기지였다. 대항해시대가 저물고 유럽의 경제 중심지가 이동하며 포르투의 발전은 정체되기 시작했고, 근대기에는 개발의 손길이 거의 미치지 못하면서 도시의 구조와 형태가 고스란히 남아 후대에 전해지게 되었다. 도시의 역사 지구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고, 최근에는 옛 모습을 간직한 관광지로 각광받으며 찾는 사람이 늘고 있다. 세월의 먼지가 켜켜이 쌓인 이 오래된 도시에서 일주일 가까이 머물며 ‘유산’이라는 것의 현재적 가치에 대해 다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관광객의 셀카봉 배경으로 전락한 문화 유산과 그곳 시민의 곤궁한 삶이 지금까지도 오버랩된다. 포르투의 콘퍼런스 일정 중, 한 시대를 풍미했던 조경 이론가 마크 트라이브Marc Treib와 긴 대화를 나누는 즐거움을 누렸다. 마침 9월 21일에 뉴욕 하이라인의 3구역이 공식 개장한 터라 산업 유산으로서 하이라인의 공공적 가치에 대해 의견을 주고 받았다. 그는 하이라인의 대중적 성공은 도시적 콘텍스트와 역사적 스토리에 힘입은 바 크지만 하이라인의 “귀여운” 변신으로 인한 주변 부동산 가치의 상승이 하이라인의 미래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아직은 판단할 수 없다며 유보적 태도를 보였다. 또한 『론리 플래닛』 같은 관광 책자를 장식하는 관광지가 된 하이라인의 명소적 가치가 “머니 스펀지”라고 비판받는 고비용의 문제를 상쇄할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진단했다. 몸은 대서양의 일몰 앞에 있지만 마음은 파주 편집실에 있는 법. 그런 내용을 담아 『환경과조경』 11월호의 하이라인 특집원고 중 한 편을 써달라고 몇 차례 졸랐다. 그는 하이라인 만드는 데 10년이 걸렸듯 그것에 대한 평가에도 적어도 10년은 필요하다며 애타는 이 에디터의 청을 피해갔다. 비슷한 시간, 박원순 서울시장은 뉴욕의 하이라인을 시찰하며 기자들을 모아놓고 서울역 고가를 서울판 하이라인으로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공식화했다. 박 시장은 “서울역 고가는 도시 인프라이상의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갖는 산업화 시대의 유산”이므로 “원형을 보전하면서 … 하이라인 파크를 뛰어넘는 녹색 공간으로 재생시켜 시민에게 돌려드리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뿐만 아니라 “서울역 고가가 관광 명소가 되면 침체에 빠진 남대문시장을 비롯해 지역 경제도 활성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동시에 나온 서울시의 보도 자료는 서울역 고가는 “4층 높이에서 한 눈에 서울 도심이 조망 가능한 장소이자 KTX를 통해 전국에서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이므로 “도심 속 쉼터이자 대표적 관광 명소로 발전시키는 것이 목표”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러한 서울시의 구상은 도시 공간에 대한 뉴스로는 유례없이 다양한 쟁점을 생산하며 대중 매체를 달구고 있다. 더 늦기 전에 “서울역 고가는 산업 유산이므로 원형을 보전하고 하이라인을 모델로 한 녹색 공간으로 재생시켜 관광 명소가 되게 하여 지역 경제를 활성화시키겠다”는 박원순 시장의 단순 논리를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서울역 고가가 과연 원형을 그대로 보전해야 하는 산업 유산인가. 교통 수요에 대한 임기응변식 대처의 산물인 이 고가도로를 유산으로 평가할 수 있을지에 대한 토론이 있어야 한다. 무엇을 재생하는 것인가. 도시의 재생은 쇠퇴를 전제로 한다. 수명을 다하고 황폐화된 하이라인으로 인해 그 주변은 오랫동안 쇠퇴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었다. 서울역 고가는 무엇을 어떻게 쇠퇴시켰는지 냉철한 점검이 있어야 재생의 향방이 잡힐 것이다. 의도적인 계획만으로는 관광 명소가 쉽게 만들어지지 않고 주변 상권이 활성화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많은 선례를 통해 경험해 왔다. 물론 현재의 구상이 신의 한 수가 될 수도 있다. 중국 관광객이 1km에 달하는 고가에 가득 찰 것이다. 청계천처럼 한번은 가봐야 할 촌로들의 방문지가 될 것이다. 한번쯤은 유모차를 끌고 걸어야 할 것 같은 부모로서의 의무감도 불러일으킬 것이다. 모처럼 도심을 어슬렁거리며 서울의 낯선 경관을 즐길 수 있는 데이트 코스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많은 전문가가 우려하는 교통 문제도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지역 경제를 고사시킬 것이라는 남대문 상인들의 반대도 무마될 것이다. 노숙자 대책, 추락 사고나 투신 자살 문제, 여름의 혹서나 겨울의 혹한 같은 어려움도 기술적으로 극복할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왜 지금, 이렇게 서둘러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어렵다. 10월 중에 국제설계공모를 시작하고 연말까지 당선작을 선정하며 내년 8월까지 설계를 완성하여 2016년 내에 완공하겠다는 계획은 누가 보더라도 속전속결식의 전형적인 시장표 전시 사업이다. 빛의 속도로 완성될 서울판 하이라인의 수혜자는 과연 누구일까. 우리는 ‘도시 정치’의 과정과 결과를 수차례 경험해왔다. 이번 일도 예정된 일정대로 직진할 가능성이 크다. 현재 진행 중인 아이디어 공모나 지난 10월 12일의 시민 개방 행사 ‘서울역 고가 첫 만남: 꽃길, 거닐다’처럼 시민을 앞세운 형식치레가 몇 번 더 추가되겠지만, 큰 틀에서는 그대로 강행할 것 같다. 하기로 했으니까. 『환경과조경』은 적어도 국제설계공모만은 따질 것 따져가며 천천히, 제대로 하자고 제안한다. 지명 공모가 아니라 공개 공모로 하자고 제안한다. 고가 구조를 그대로 보전하는 것 만을 설계 원칙으로 못 박지 말자고 제안한다. 그 자리의 지면에 선을 그어 기억할 수도 있고, 구조와 재료의 일부를 살려 전망대로 쓸 수도 있고, 완전히 철거하여 서울의 하늘을 다시 온전히 만나게 할 수도 있다. 다양한 해법에 문을 열어놓자. 서울도 이제 벤치마킹의 짝퉁 도시를 벗어날 때가 되었다. 여러 전문가들이 이야기하듯, 지금, 여기,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을 만드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만드는가”다. 이번 호는 특집뿐만 아니라 여러 지면이 하이라인 일색이다. 쉽게 짐작하시겠지만, 하이라인을 촘촘히 살펴서 서울역 고가 프로젝트의 가쁜 숨을 가다듬어 보자는 의도다. 독자 여러분뿐만 아니라 박원순 시장과 서울시의 담당 공무원들이 제임스 코너James Corner와 조슈아 데이비드Joshua David의 인터뷰를, 윤희연 교수와 황주영 박사의 원고를 정독해주시길 기대한다.
    • 배정한[email protected] / 편집주간, 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
  • [CODA] 텍스트와 이미지 사이
    “간결하면서도 화려하고 모던하면서도 클래식하고 강하면서도 부드럽고 단순하지만 있어 보이는 그런 느낌으로 가주세요.” 흔히 명확한 가이드라인 없이 막연하고, 그러다 보면 모순되는 소위 갑의 요구를 희화화한 우스갯소리다. 매달 새로운 콘텐츠를 편집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이런 주문을 디자이너에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된다. 혹은 매달 반복되는 꼭지의 틀 안에 안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경계하게도 된다. 잡지의 지면은 크게 텍스트와 이미지로 구성된다. 혹은 콘텐츠와 이를 지면화하는 편집 디자인으로 구성된다. 내용(텍스트)도 중요하지만 독자의 눈을 먼저 사로잡는 디자인은 잡지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강력한 도구다. 지난해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갈 무렵에는 『환경과조경』 리뉴얼 준비가 한창이었다. 리뉴얼을 위한 T/F팀이 꾸려지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수많은 회의가 이어졌다. ‘새로운 시작’을 천명한 만큼 콘텐츠뿐만 아니라 디자인에서도 혁신적인 변화가 필요했다. 당시 편집 디자인 리뉴얼을 위해 영입했던 아트디렉터 노희영 실장(반하나 프로젝트)은 새로운 잡지에서 “중성적이고 묵직한 느낌으로 전문지라는 점을 부각”시키겠다는 뜻을 밝혔다. 정말 매력적이지만 한편으로는 막연한 이 목표를 퍼즐을 맞추듯이 만들어가며 1월호를 기다리는 설렘도 커져갔다. 좀 더 손쉽게 들고 다닐 수 있도록 판형이 작아졌고, 지질은 가볍고 광택이 나지 않는 종류가 선택되었다. 판형, 지질, 표지 콘셉트, 제호 디자인 등 모든 요소를 결정하는 데 많은 시안이 필요했고(때로는 지나치게 많은 시안이 결정을 어렵게도 했고), 결정을 위한 난상토론이 이어졌지만, 지질을 바꾸는 데는 좀더 복잡한 고려와 결단이 필요했다. 종이는 크게 매끈하고 반짝이는 종류와 종이 본연의 느낌이 살아있는 질감을 가진 계열이 있다. 아트디렉터는 후자를 택했고, 그 자연스러움을 극대화하기 위해 표지에 코팅을 하지 않을 것을 제안했다. 반면 마케팅 부서에서는 코팅을 하지 않을 경우 책이 쉽게 훼손되고, 뒤표지 광고의 색감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조심스러운 우려를 보였다. 편집부 내부에서도 의견이 나누어졌다. 잡지란 본래 손때가 묻고 닳아가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지질의 은은함이 조경 잡지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견해도 있었다. 여전히 지질에 관해서는 독자들의 선호가 다르겠지만, 무사히 12번째 책을 만들고 있는 지금, 특히 책의 개성을 수용해준 광고주의 아량에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매달 반복되는 필수 과정은 바로 표지 디자인을 결정하는 일이다. 마감 기간에 출근하면 회의 테이블 위에 새로운 표지 시안들이 놓여있는 경우가 많다. 밤을 하얗게 지새우고 해장국을 먹으러 간 디자이너의 작품이다. 표지를 정할 때면 편집실 한가운데 있는 회의 테이블에 시안을 늘어놓고, 편집주간부터 막내 기자까지 모두들 수평적으로() 의견을 제시하며, 주장과 회유와 설득의 장이 펼쳐진다. 특히 1월호 표지는 『환경과조경』의 변화를 가장 먼저 드러낼 상징성이 컸기 때문에 어느 때보다 많은 고민과 토론이 이어졌다. 당시 여러 이미지를 활용한 수많은 안이 제시되었고, 여러 차례의 투표와 공방이 오고갔지만 쉽게 결론이 나지 않았다. 그때 극적으로 ‘백지로 가자!’는 의견이 나왔고, 결국 사진 없이 단색면에 제호와 로고만 들어가는 디자인이 채택되었다. 2월호에 실린 공간지 심영규 기자의 리뷰처럼 “가장 큰 변화는 표지다. 단색과 변경된 영문 제호만으로도 강한 인상을 줬다.” 가끔 고개를 들어보면, 여전히 편집실 게시판 한 가득 붙어있는 1월호의 시안들이 보인다. 그 가운데 어떤 것도 선택되지 않았지만, 당시 나왔던 많은 아이디어들은 그 뒤로 이어진 호에서 다양하게 변형되어 실현되었다. 그밖에도 표지를 확정하는 과정은 매달 에피소드를 남겼다. 2월호에서는 파크 킬레스베르크 ‘잔디 쿠션’ 사이에 앉아있는 여성의 아름다운 목선이 드러나는 사진을 쓸 것인가, 아니면 아이가 걷고 있는 사진을 쓸 것인가를 두고 남녀가 나뉘어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매달 표지색을 고르고 책이 나온 후 독자들의 반응을 확인하는 일도 흥미로웠다. 핫핑크를 염두에 두고 만든 7월호는 고무장갑 핑크라는 품평을 듣기도 했다(개인적으로는 고무장갑의 핑크색을 재발견하는 계기가 되었다!). 조그마한 팬톤 컬러칩을 늘어 놓고 로고에 올라갈 박을 고르며 인쇄를 마친 결과물을 상상하는 일은 기대와 걱정 모두를 불러일으킨다. 리뉴얼 이후 내지에서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편집 레이아웃도 바뀌었지만, 유청오 사진작가의 영입은 좀더 자신감 있는 편집을 가능하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편집의 순간에는 수많은 고민과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사진 한 컷을 배열하더라도 정보가 많이 담긴 사진을 고를 것인지, 아니면 보기에 좋은 사진을 전진 배치할 것인지, 혹은 어떤 사진이 메인을 차지할 만큼 대상을 잘 표현하는지 그 선택을 두고 디자이너와 함께 고민을 거듭한다. 예를 들어 ‘ 름모루’(5월호)처럼 선형의 시퀀스를 이루는 공원의 경우, 한정된 지면 안에서 대부분의 영역을 보여주며 정보를 전달하는 데 충실할 것인지, 인상적인 부분을 집중적으로 강조할 것인지를 두고 고심했다. 돌아보면 너무 많은 정보를 담으려다 가독성이 부족해진 것은 아닌지, 소화불량에 걸린 독자가 많지는 않았을지 염려도 된다. ‘부산시민공원’(6월호)의 경우는 인물이 공간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간 사진이 실려 만족스럽기도 했지만, 시설물이나 각 공간을 정확하게 파악하기에는 정보가 부족할 수도 있다는 편집부 자체 리뷰 결과도 있었다. 결국 에디터와 디자이너 사이의 수많은 대화를 통해 적정선을 찾아내는 것이 좋은 결과물을 만드는 데 중요한 과정이라는 사실을 재확인하게 된다(각종 기호·구호 식품을 나누며 동지애를 다지는 것 또한 좋은 지면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 12월호 마감을 앞둔 지금도 어느 기자는 자신의 인터뷰이를 좀 더 돋보이게 할 방도를 찾느라 디자이너의 모니터 앞을 서성이고 있다. 책장에 가지런히 꽂힌 『환경과조경』을 보면 순식간에 1년이 흘렀음을 느낀다. 책등으로 보이는 다양한 색깔만큼이나 매호 느꼈던 기대감과 아쉬움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리고 올 한해 겪었던 시행착오만큼 성장했기를 바라며 2015년을 기다린다. 남들보다 한 달 먼저!
  • [시네마 스케이프] 인터스텔라 이상한 나라의 체험
    스포일러가 지뢰밭이다. 글을 쓰는 현재 시점은 영화가 개봉한 지 이틀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잡지가 출간될 때쯤에는 아마도 관심 있는 이들의 상당수가 영화를 봤을 것이다. 그럼에도 미처 보지 못한 독자는 꼭 영화를 본 후에 읽기를 권한다. PC나 스마트폰으로 보려면 차라리 이 글을 읽고 상상으로만 그치는 편이 낫다. 반드시 극장에서 감상해야 하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인터스텔라Interstellar’는 위기에 빠진 지구를 대체할 행성을 찾기 위해 웜홀worm hole을 통해 시공간을 여행하는 탐험담이다. ‘웜홀’, 낯선 용어지만 어디선가 본듯하다. ‘이상한 나라의 폴’의 주인공 폴이 딱부리, 삐삐, 찌찌와 함께 힘을 모아 대마왕으로부터 니나를 구하기 위해 통과했던 시간의 문이 웜홀 아니었을까? 찌찌가 요상한 봉을 휘두르면 현실의 시간이 정지되고 시간의 문을 통해서 어른들은 모르는 4차원의 세계로 간다. 제한된 시간 동안 모험을 펼치다가 다시 현실 세계로 돌아오곤 하던 ‘이상한 나라의 폴’은 오래전에 좋아했던 애니메이션이다. 폴 일행은 4차원 마법 세계에서 한참을 헤매다 돌아오지만 현실의 시간은 그대로 멈추어 있다. 알지 못하는 사이 이미 상대성 이론을 예습했다니 놀랍다. SF영화에서 위기에 빠진 지구를 ‘구하는’ 경우는 흔히 보았기에 ‘버리는’ 구상이 일단 신선하다. 과학의 발달과 지구 환경의 변화로 볼 때 미래의 시간대로 보이지만, 주인공 가족이 사는 집, 시내, 야구장의 풍경은 니나를 구하러 다니던 폴이 활약했던 20세기 중후반의 풍경과 다르지 않다. 웜홀을 통과해 새로운 땅을 찾으러 다닐 정도로 기술이 발달한 시대에 바람이 좀 많이 불고 산소가 부족하다고 지구를 버릴 구상을 하다니, 대마왕의 손아귀에서 니나를 구하는 일보다 더 무모한 일이 아닐까 싶다. 행성 집단 이주 계획이라는 어마무시한 계획을 세우면서 변변한 엔지니어 한 명 찾지 않고 남자 주인공이 제 발로 찾아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니, 차라리 찌찌의 요술봉을 찾으러 다니는 편이 빠르지 않았을까. 납득하기 힘든 부분이 있지만 인터스텔라는 상상의 한계를 뛰어넘는 경이의 세계를 체험하게 해주는 볼만한 영화다. 크리스토퍼 놀란Christopher Nolan 감독은 ‘메멘토Memento’에서는 기억을, ‘인셉션Inception’에서는 무의식과 꿈의 세계를 다루었다. 특히 인셉션에서는 무의식의 세계를시각적인 상상력으로 빚어내 일찍이 이전에 볼 수 없었던 것을 보여준 바 있다. 인셉션의 복잡한 이야기 전개는 잊어버릴 수 있어도 도시의 풍경이 그대로 접혀 하늘로 이어지던 그 아찔한 장면은 절대 잊을 수 없다. 인터스텔라는 상상력에 과학을 접목해 감독의 전작을 뛰어넘는 그 이상을 표현하고 있다. 먼지로 뒤덮인 지구, 입체적인 웜홀, 파도가 산처럼 보이는 물로 뒤덮인 행성, 구름까지 꽁꽁 얼어붙어 하늘과 땅이 이어진 것 같은 얼음 행성, 그리고 그 문제적 장면인 블랙홀까지. 지구의 환경오염 때문에 다른 행성을 찾아다니지만, 그들에게 닥치는 시련이란 외계인과의 조우도 대마왕의 공격도 아닌 또 다른 이름의 환경 재앙이다. 서영애는 ‘영화 속 경관’을 주제로 석사 논문을 썼고, 한겨레 영화평론전문 과정을 수료했다. 조경을 전공으로 삼아 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지만, 극장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 영화는 경관과 사람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관계 맺는지 보여주며 그것이 주는 감동과 함께 인문학적 상상력을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중요한 텍스트라 믿고 있다.
  • [100 장면으로 재구성한 조경사] 사라와지 찾기
    #30 사라와지를 찾아야 하는 이유 영국에서 풍경화식 정원이 태동하던 시절에 떠올랐던 개념이 하나 있었다. ‘사라와지sharawadgi’라는 단어인데 대략 ‘무질서한 아름다움’ 정도로 해석될 수 있겠다. 이 개념을 1685년에 처음으로 제시한 인물은 윌리엄 템플 경Sir William Temple(1628-1699)이었다. 영국의 정치가이자 에세이스트였던 템플 경은 아일랜드 의원의 자격으로 유럽 대륙에서 외교관으로 활동하며 많은 정치적 업적을 남겼다. 그러다 명예혁명 후 은퇴하여 서리 지방 모어파크에서 여생을 보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의 영향을 받아 전원에서 은둔 생활을 만끽하며 많은 에세이를 썼다. 1685년, ‘에피쿠로스의 정원’이라는 에세이에서 그는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필치로 동시대의 정원들을 묘사했다. 그중 언뜻 중국의 진기한 정원을 언급하기도 했는데, 그것이 그의 사후에 어떤 파문을 일으켰는지 알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그가 말하기를 “지금까지 내가 묘사한 정원들은 모두 규칙적이고 질서정연한 것들이다. 그러나 질서가 없는 정원이 오히려 더 아름다울 수도 있다. 중국에서 살다가 온 사람들에게 들은 바로는 중국인은 지리적으로만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사고 체계 역시 우리와는 사뭇 다른 것 같다. 우리의 경우 비율이나 좌우대칭, 통일성 등에 큰 비중을 두고 산책로를 만들 때나 나무를 심을 때 일정한 원칙을 따른다. 중국 사람들은 이런 우리를 비웃는다고 한다. 몇 걸음 간격으로 나무를 심었는지 아이들이라도 금방 알아챌 만한 뻔한 방식을 쓰다니. 그들의 목표는 아무 규칙이 없어 보이면서도 시선을 사로잡는 아름다운 장면을 연출하는 것이다. 이 때 그들은 ‘사라와지가 좋다’라는 감탄사를 연발한다고 한다. 중국에서 온 비단 옷이나 병풍, 도자기에 그려져 있는 그림들을 보아도 마찬가지다. 규칙이 없음에도 아름답다.”1 템플 경은 중국에 가본 적이 없고 중국 정원을 본 적도 없었다. 중국 정원을 표현한 그림도 아직 없던 시절이라 전해 들은 이야기를 이해하려고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오죽했으면 병풍 그림을 관찰하며 중국의 미학이 어떤 것인지를 해독하려 했을까. 템플 경은 사라와지, 즉 무질서 속의 아름다움을 동경했지만 동료들에게 경고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공연히 그대로 흉내내려고 하다가는 큰 실수를 할 확률이 높다며 늘 하던 대로 정형적 양식의 범위 내에 머물면 크게 실수할 일이 없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 이야기는 여러 측면에서 흥미롭다. 우선 당시 유럽의 정원은 ‘정형식’이라는 하나의 원칙밖에 몰랐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사실 고대 이래로 정원은 정형적이라는 것이 불변의 원칙이었다. 그렇다고 템플 경이 거기서 벗어나자고 주장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조심스럽게 ‘세상에는 다른 것도 있다’고 말했을 뿐이었다. 그러므로 템플 경은 풍경화식 정원의 창시자 반열에 끼지 못한다. 다만 그가 던진 한 마디, ‘사라와지’가 저 혼자 날개를 달고 멀리 날아갔을 뿐이다. 사라와지가 중국어라고는 하는데 한자로 어떻게 쓰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 같다. 2008년도에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대학에서 사라와지에 대한 책을 출간한 유 리우Yu Liu도 사라와지는 아무 뜻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페르시아 어원이라는 주장도 있으며 일본어가 아닐까 짐작하는 사람도 있다.2 아마도 발음이 와전되어 이제는 원어를 찾기 힘든 듯하다. 사라와지는 결국 영국 사람들이 창조한 중국 단어인 셈이다. 그 후 사라와지는 샤프츠베리 백작Earl of Shaftesbury(1671~1713)에게, 그에게서 다시 조지프 애디슨Joseph Addison (1672~1719)과 알렉산더 포프Alexander Pope(1688~1744)에게 전해졌다. 이 세 사람은 저술가, 철학자, 시인이었으며 정형식 정원을 혐오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또한 영국의 풍경화식 정원이 형성되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점도 같다. 풍경화식 정원의 긴 역사를 놓고 볼 때 1700년대 초반, 풍경화식 정원의 태동을 책임진 초기의 영웅들인 셈이다. 당시 영국의 지식인들은 마치 정형식 정원을 빈정거리기 위해 살았던 것처럼 보인다. 특이한 것은 그들이 정형식 정원을 비판하고 ‘새로운 것’에 대해 고민을 할 무렵 프랑스에서는 베르사유 정원이 완성되면서 오히려 정형식 정원이 절정에 달했다는 사실이다. 그 후로도 반세기가 넘도록 프랑스, 네덜란드, 독일 등 대륙 쪽에서는 바로크 정원 만들기에 여념이 없었다. 말하자면 정형식 정원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영국에서는 이미 새로운 것을 찾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 이유를 조지프 애디슨이 설명해 준다. “우리 영국의 ‘바로크’ 정원들은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정원만큼 재미가 없다. 그들의 바로크 정원은 정형적인 양식의 정원과 이어지는 넓은 숲이 펼쳐지므로 변화가 많고 예술과 자연이 공존한다. 그에 반해 우리 영국 것은 우아하긴 하지만 아담한 것이 특징이다. 사실 농경지나 목초지로 쓸 수 있는 면적에 숲을 만들자면 그만큼 소득이 줄어드니 난감한 것은 사실이다.”3 이는 프랑스와 영국의 사회정치적 차이에 기인했다. 프랑스 귀족들은 루이 14세의 강력한 중앙집권체제에 굴복하여 모두 왕실에서 살았다. 볼모로 잡혀있었던 것이다.4 당시 베르사유는 곧 국가였다. 그 반면 명예혁명에 성공해 왕권에 족쇄를 채울 수 있었던 영국 귀족들은 시골에 넓은 영토를 소유하고 그곳에서 살면서 자신들의 영토와 소득을 직접 관리했다는 차이가 있다. “군주가 기분 내키는 대로 만든 바로크 정원을 왕실의 노예들(귀족들)이 죽자고 지키고 있다”5 라는 샤프츠베리의 발언이 아마도 가장 비중 있고 ‘지속가능한’ 비판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비아냥거리는 것만으로는 새것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지독한 인위성에 대해 ‘자연스러움’으로, 억압에 대해 ‘자유’로 대응해야 한다는 점에는 누구도 이견이 없었다. 다만 그 자유를 어떻게 삼차원의 공간으로 표현하는가는 또 다른 문제였다. 자유가 어떻게 생겼을까. 이에 힌트를 준것이 템플 경의 사라와지였다. 사라와지를 찾아야 새로운 것이 나올 수 있을 터였다.
  • [스튜디오 201, 설계를 다시 생각하다] 남에게 미루기
    도대체 누가 한 거야? 영민이네 작품 봤어? 정말 모델은 전문 회사에서 만들었다고 해도 믿길 정도로 훌륭하더라. 그런데 그 모델, 전부 후배들이 만들었대. 방학 때부터 애들 매일 밥 사주고 술 사줘서 돈으로 도우미 섭외한 거나 마찬가지지. 정작 자기는 모델에 손 하나도 대지 않고 지시만 내렸다고 하더라고. 그래픽도 완전 멋있지. 그런데 그 팀 애들 중에 복수 전공하는 미대생 있잖아. 걔가 아는 대학원생 오빠들이 다 해준 거래. 3D 프로그램으로 동영상 만드는 사람들이 해주는 그래픽을 어떻게 당해내겠냐? 솔직히 나는 그 작품이 걔네 것이라고 할 수 없다고 봐. 모델도 그렇고, 그래픽도 그렇고, 직접 한 게 거의 없잖아. 솔직히 그 디자인도 본인의 아이디어인지 의심스러워. 비슷한 디자인을 무슨 공모전에서 본 것 같기도 하거든. 아니면 말고. 작가의 죽음 68혁명이 일어나기 한 해 전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는 ‘작가의 죽음The Death of the Author’을 선언한다.1 바르트는 작가란 근대에 들어와서야 나타난 개념이라고 말한다. 중세가 끝날 무렵, 근대 철학과 종교 혁명을 통해 ‘개인’이라는 관념이 탄생한다. 여기에 자본주의 이데올로기까지 더해지면서 개인적 주체인 작가는 모든 텍스트의 주인이 된다. 문자의 제국에 군림하는 작가는 작품에 대해 아버지의 권위를 넘어 종교적인 신성마저 갖는다. 하지만 실상 그어떠한 작품도 작가가 만들어낸 새로운 창조물이 될 수 없다. 알고 보면 모든 텍스트는 이전에 존재했던 수많은 원문의 인용의 재인용이며 무한한 모방일 뿐이다. 작가가 부여한 작품의 원본성은 실제로는 완벽한 허상이다. 오늘날 작가의 자리는 서술자scriptor가 물려받는다. 서술자는 거대한 텍스트의 사전에서 단어들을 끌어내 다른 누군가의 언어로 부연하는 자다. 작품에 선행하는 작가와 달리 서술자는 텍스트와 동시에 태어난다. 글쓰기는 더 이상 특정한 기록, 표현, 묘사가 아니다. 이제 언어 그 자체 이외에 텍스트는 그 어떠한 기원도 갖지 않는다. 텍스트에는 작가의 인생도, 열정도, 고뇌도 없다. 작가의 죽음과 함께 텍스트에 내포된 신화도, 작가의 존재에 기대어오던 문학의 비평도 전복된다. 작가의 죽음은 비단 문학에서만 나타난 사건이 아니었다. 20세기 들어서 예술의 전 분야에서 작가라는 개념은 무의미해진다. 1940년대 중반, 셰페르Pierre Schaeffer는 연주자를 위한 음악이 아닌 소리 그 자체를 위한 음악을 시도한다. 그는 이미 연주된 악기나 음악, 심지어는 사람들의 대화나 자연의 소음에서 음악을 만들어낸다. 이집트에서 할림엘-답Halim El-Dabh은 고대 종교 의식을 테이프에 녹음하고 그 소리를 조작하여 만든 음악을 선보인다. 이들이 개발한 샘플링sampling이라는 기법은 작곡가의 악보나 음악가의 연주를 요구하지 않는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음’에서 음악이 만들어진다. 그들에게 음악은 창작이 아니라 발견과 조합이었다. 작가의 죽음이 없었다면 이들의 실험에 영향을 받은 오늘날의 일렉트로닉이나 힙합과 같은 대중음악은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미술계에서 작가의 죽음은 이미 20세기 초에 예견되었다. 1917년 뒤샹Marcel Duchamp은 상점에서 사온 변기를 전시회에 출품하면서 화장실 용품 제조업자의 이름 ‘R. Mutt’를 새겼다. ‘샘Fountain’이라는 제목의 변기는 20세기 미술사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작품이 된다. 1919년 뒤샹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걸작 모나리자의 복제품을 사와 콧수염을 그리고 ‘L.H.O.O.Q’라는 제목을 붙인다(그림1, 2).2 뒤샹 이후로 미술계에서 작가는 무가치한 존재로 전락한다. 뒤샹의 개념을 이어받아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의 전성기를 연 앤디 워홀Andy Warhol의 작업 이후 작가의 권위에 기대는 ‘숭고sublime 미학’의 시대는 종말을 고하고, 대신 허상과 복제가 지배하는 ‘시뮬라크르simulacre 미학’의 시대가 도래한다. 더 이상 예술을 만드는 주체는 없다. 오늘날의 예술가들은 끊임없이 창작의 역할을 타자에게 전가할 것을 강요받는다. 이제 바르트가 선언한 작가의 죽음은 충격적인 도발이 아니라 진부한 현실이 되어버렸다. 작가 없는 정원 졸업 후 일을 시작한 지 2년 정도 된 마사 슈왈츠Martha Schwartz는 1979년 어느 날 남편이 출장을 간 사이 깜짝 파티를 해주기 위해 자신이 살던 아파트 앞마당에 작은 정원을 만든다.3 정작 조경가였던 남편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 이 정원은 엄청난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젊은 슈왈츠는 조경계의 화려한 주목을 받게 된다. 몇 평 되지도 않는 정원이 그토록 화제가 되었던 이유는 슈왈츠가 선택한 ‘재료’에서 찾을 수 있다. ‘베이글 가든’이라는 이름처럼 정원 가장자리의 보라색 자갈 위에 80여 개의 베이글이 깔려있다. 이 베이글들은 작가가 방수처리를 했다는 것을 제외하면 가게에서 파는 베이글 그대로다. 슈왈츠는 60년 전 뒤샹이 그랬던 것처럼 대량 생산되어 판매되는 베이글로 정원을 만듦으로써 설계가의 권위를 파괴한다(그림3). 1988년, 슈왈츠는 ‘베이글 가든’에서 선보인 팝아트적인 시도를 확장한다. 슈왈츠는 한 쇼핑센터의 조경 설계를 맡게 된다. 그런데 정작 그녀가 제안한 설계의 초점은 공간적 구성이나 이용보다도 350마리의 황금 개구리에 맞추어져 있다.4 모든 맥락을 무시하고 그리드 형태로 균일하게 배치되어 공간을 지배하는 개구리들은 슈왈츠가 직접 만들지도 형태를 고안하지도 않았다. 공장에서 생산되어 쇼핑센터로 운반된 뒤 배치되었을 뿐이다. 10년 전의 작은 정원의 베이글의 역할을 쇼핑몰의 개구리가 수행한다(그림4).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뒤 슈왈츠는 베이글 가든과 리오 쇼핑센터에서 보여주었던 레디메이드의 전략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다. 그녀는 개념 미술conceptual art의 아이디어를 빌어 그때까지 설계가가 맡아오던 역할에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뒤샹이 예술의 고전적인 가치를 파괴한 이후로 예술은 스스로에 대한 정의를 다시 내려야만 했다. 그 고민 끝에 제시된 한 가지 해답이 개념 미술이다. 1960년대에 등장한 미니멀리스트들은 레디메이드의 개념을 극단적으로 추구하여 실제 사물과 거의 구별되지 않는 작품을 선보인다. 미니멀리스트였던 버긴Victor Burgin은 작품이 다른 요소들과 다를 바가 없다면 왜 굳이 작품을 쓰는지 반문한다.5 예술의 본질은 작가가 만들어낸 작품이 아니라 오히려 작품에 대한 생각이 아닐까? 1963년 키엔홀츠Edward Kienholz는 ‘개념 타블로Concept Tableaux’ 라는 작품을 통해 예술이 개념 상태로도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자 한다. 1966년 보크너Mel Bochner는 작품이 아니라 여러 작가들의 드로잉과 구상을 복사한 노트를 전시했다. 전시된 대상은 완성된 예술이 아니라 예술의 개념들이었다. 1968년 솔 르윗Sol LeWitt은 월 드로잉Wall Drawing 연작을 구상한다. 솔 르윗은 월 드로잉을 그리기 위한 개념적 가이드라인과 다이어그램을 제시하였을 뿐 작품을 직접 그리지 않았다. 작품은 인부들이 완성한다. 월 드로잉에서 작가는 더 이상 작품의 유일한 창작자가 아니다. 작품에 대한 개념과 구상의 주인일 뿐이다(그림5, 6). 슈왈츠는 2009년 벨기에에서 열린 정원 축제에서 ‘가든 게임Garden Game’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6 그녀는 정원을 구상하면서 그 어떤 도면도, 스케치도 그리지 않았다. 단지 정원을 만드는 규칙을 이메일에 써서 벨기에로 보냈을 뿐이다. 슈왈츠가 보내준 규칙대로 주사위를 던져 만든 생울타리 미로가 완성된다. 그리고 무용수들이 주사위, 돌림판, 끈, 말뚝으로 또 다른 게임을 진행하며 35개의 화단의 위치를 결정한다. 그 후에 시공 인부들이 다시 주사위와돌림판을 사용하여 무용수들이 정한 위치에 놓인 화단을 채워나간다. 슈왈츠는 개념 예술가들이 사용했던 방식을 통해 정원을 완성한다. 이 때 슈왈츠는 고전적 의미의 설계를 하지 않았다. 규칙을 만들어냈을 뿐이다. 작품의 주체는 끊임없이 미끄러진다. 규칙을 제시한 슈왈츠에서, 화단의 위치를 정한 무용수로, 그리고 정원을 마무리한 인부들로(그림7). 김영민은 1978년생으로, 서울대학교에서 조경과 건축을 함께 공부하였고 이후 하버드 GSD에서 조경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의 SWAGroup에서 6년간 다양한 조경 설계와 계획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USC 건축대학원의 교수진으로 강의를 하였다. 동시대 조경과 인접 분야의 흐름을 인문학적인 시각으로 읽어내는 데 관심이 있으며, 설계와이론을 넘나드는 다양한 활동을 펴나가고 있다. 역서로 『랜드스케이프어바니즘』이 있으며, 『용산공원』 외에 다수의 공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