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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포스트모던 경관론과 내외이원론
    포스트모던 경관론 프랑스가 경관론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사실 중세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학문적으로 조경에 접근하며 개념을 정리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에 들어와서다. 물론 조경에 대한 학문적 접근의 토대는 그 이전에 마련되어 있었던 상태였다. 17세기의 조경가 브와소(Jacqures Boyceau)의 『정원기법서(Traite de jardinage)』에서 알 수 있듯이, 전문적인 조경 서적이 출간되고 조경 작업의 텍스트로 활용되는 전통은 이미 수세기에 걸쳐 프랑스 조경계에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여러 세기 동안 항상 기본적인 텍스트가 존재했고 조경에 대해 체계적이고 미학적으로 접근하려는 태도가 은연중에 정원사나 조경가 사이에서 당연시되고 있었다. 조경은 원예와 달리 녹색 공간에 시스템을 구축하고 광범위하게 적용하는 작업이었다. 바로크 시대의 조경 이론서는 이에 대한 구체적인 예를 잘 보여주며, 무엇보다도 르네상스 양식이 프랑스에 전파되며 프랑스 고전주의 양식으로 변화되는 과정은 이 시대의 조경이 단순한 원예 작업이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역사적인 기록들에 비추어보더라도 정원이란 용어에 항상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며 조경 작업을 새로운 차원으로 발전시키고자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과정이 장기간 축적되며 정원의 협소한 의미는 희박해지고 좀 더 광범위한 경관의 개념으로 자연스럽게 전이되었던 것이고, 마침내 20세기에 들어 정원을 생각할 때 경관에서부터 생각하는 폭넓은 사고가 가능해졌던 것이다. 구체적으로 20세기에 일어난 ‘정원에서 경관으로의’ 개념 전이를 보면 모더니즘에서 포스터모더니즘으로 진행한 시류를 읽을 수 있다. 정원에서 경관으로, 모더니즘에서 포스트모더니즘으로 포레스티에(J. C. N. Forestier)는 1908년 『대도시와 공원의 시스템』이란 책을 발표했고, 몇 년 후인 1913년 앙드레아 베라(André Vera)는 『새로운 정원』을 출간했다. 여기서 말하는 도시의 개념은 프랑스 대혁명 이후 개혁 정부가 들어선 후 그리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와 같은 이상적 도시에 영감을 받은 것이었고 공원의 개념에도 아테네 학당과 같은 철학자들의 사유 공간 또는 학문과 문화의 전당으로서의 개념이 포함되어 있었다. 여기에 18세기 말부터 도입되기 시작한 영국 풍경화식 정원양식에 따라 고전주의 조경을 벗어나 자연으로 돌아가는 낭만주의 조경이 파리를 중심으로 유행하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공원은 19세기에 일반화된 문화 현상이자 20세기를 시작하는 시점에서는 대중문화의 장으로서 중요한 사회 변화의 한 획이되었다. 이 시기의 공원 문화는 고대 그리스의 아크로폴리스를 모델로 신전이나 폐허, 그리스 신화등을 소재로 가져왔고 그런 점에서 유럽의 고대문명에서 문화적 아이덴티티를 추구하는 19세기 모더니즘과 맥락을 같이 하는 발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영국 풍경화식 정원과 19세기 프랑스공원의 큰 차이점은 포레스티에의 책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공원을 시스템으로 파악하는 과학적 태도, 즉 고대 정원과 고전에 바탕을 둔 모더니즘과는 조금 다른 태도였다. 이런 신학문적 태도는 20세기 이후 포스트모던 경관론을 전개하게 되는 프랑스 조경의 특징이 되기도 하는데, 동시에 또한 19세기의 전체적인 유럽 사회 분위기에 기인하기도 하는 것이다. 19세기는 무엇보다도 과학이 예술을 앞서나가며 예술을 선도하기 시작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19세기 예술의 신경향들, 즉 사실주의, 자연주의, 인상주의, 오르피즘, 표현주의, 기하하적 추상주의 등의 전개가 과학에 의해 새롭게 눈을 뜬 예술의 경향들이다. 포레스티에는 그 동안 발전되어 온 공원과 도시를 시스템으로 정의하고 시스템의 체계를 정리하며 조경학의 방향을 제시했던 것이다. 조경학은 따라서 정원을 기반으로 하는 모더니즘에서 시스템과 경관을 기반으로 하는 포스터모더니즘으로 전이되는 과정에서 출발한 것이다. 여기서 경관은 새로 등장하는 공원문화를 과학적으로 정의하면서 발전한 추상적 관념이었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공원과는 다른 것이었다. 대안적 경관론: 포스트모던 경관과 한국식 내외이원론內外二元論 이처럼 새롭게 조명되기 시작한 조경학은 그 동안 전혀 경험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조경에 대한 욕구로 발전될 수밖에 없었고, 앙드레아 베라의 ‘새로운 정원’을 비롯해 1925년 가브리엘 게브레키앙(Gabriel Guevrekian)의 유명한 ‘물과 빛의 정원’과 ‘빌라 노아이유 정원’ 등이 결과적으로 빛을 보게 되는 것은 자연스런 문화적 맥락이었다. 새로운 시도는 계속 나타났다. 포레스티에는 설계 노트를 책으로 묶어 내며 새로운 정원에 대한 구상을 발표했고, 아쉴 뒤센느(Achille Duchêne)는 『미래의 정원』을 출간하였다. 도시화와 함께 찾아온 사회 변화는 이 시대에 이미 환경에 대한 인식을 불러일으켰다. 1930년 통과된 경관 지구 보존법이 그 예이다.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옛 유산이 훼손되고 특히 과거로부터 보존되어 오던 경관이 파괴되는 것을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고 판단했던 근저에는 당시 풍경화가들의 역할이 컸고 또한 문화가 사회 전반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로 등장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경관을 인식하기 시작했고 경관에 대해 토론하고 경관을 사랑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개발을 저지하고 경관을 보존한다는 사고는 경관에 대한 이런 인문학적 의식 없이는 불가능하다. 포스트모던 경관론이란 이러한 모든 새로운 인식의 체계를 포함한다. 정원은 모던의 갑갑한, 어쩌면 구시대의 먼지가 가득한 개념이지만, 경관은 포스트모던의 시원하게 열린 개념이다. 이런 점에서 닫힌 공간에 기반을 둔 중국의 원림이나 일본의 정원보다는 외원과 내원의 소통을 통해 계속 변화해가는 경관 개념, 즉 내외이원론內外二元論으로 접근했던 한국 정원이 훨씬 더 유럽의 포스트모던적 경관 인식 체계와 가깝다. 한국정원은 21세기 이후 등장하는 경관의 신개념들을 이미 포함했던 매우 추상적인 정원이다. 전통적인 시경이나 관축론에서부터 포스트모던 경관론의 추상성을 충분히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대안적 경관이 될 수 있다. 박정욱은 파리 소르본느 4대학에서 고고미술사로 박사 학위를 받고 미술평론으로 고암논문대상을 받은 후 이응노 미술관 소장으로 일하며 ‘세브르도자기’전, ‘이응노 롤랑 바르트’전 등을 기획했다. 프랑스 국립사회고등과학원(EHESS, Paris)의 자크 레나르 교수, 장 폴 아고스티, 지아니 부라토니, 장 샤를 피조 등과 함께 Ars & Locus 연구원을 창설하여 연구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아세트 출판그룹, 쿠베르탱 재단, 파리한국문화원, 뉴욕 모마미술관, 필라델피아 미술관, 파리 루브르 미술관, 파리 시 시테 데 쟈르 등과 함께 전시 기획과 도시설계, 아트 프로젝트 등을 유럽 및 미국, 한국 등지에서 수행해 왔다.
  • [에디토리얼] 아름다운 잡지
    2015년 편집 계획서의 표지에 ‘아름다운 잡지’라는 여섯 글자를 크게 써놓았다. ‘아름다운 잡지’는 『환경과조경』의 비전인 ‘조경 문화의 발전소’를 시각적으로 구체화할 지향점이다. 내용과 형식이 적절하게 호응하는, 텍스트의 메시지와 이미지의 효과가 하나로 움직이는, 디자인이 콘텐츠를 지배하지 않고 콘텐츠의 본질을 드러내는 ‘아름다운 잡지’에 한걸음씩 다가서기 위해 늘 연구하고 실험할 것임을 약속드린다. 아울러 올해에는 조경 담론과 사회적이슈의 생생한 교점을 찾고, 도시설계의 이론적·실천적 쟁점을 포괄하며, 신진 조경가와 필자를 발굴하는 일에 지면을 아끼지 않을 계획임을 알려드린다. 엄동설한은 게으른 발걸음을 모처럼 도서관으로 향하게 한다. 잡지 편집에 참여한 이후로는 도서관에 가면 무조건 한 잡지의 십 년 치 과월호를 훑어보는 습관이 생겼다. 근사하게 말하자면 사례 연구다. 디자인, 라이프스타일, 패션, 여행, 시사, 교양에 이르기까지 한 시절을 풍미했던 전문지와 대중지의 옛 지면을 다시 읽는 일이 생각보다 재미있다. 이번 겨울에는 어린 시절 아버지 책장에서 구경했던 기억이 어렴풋한 『뿌리깊은나무』를 다시 만났다. 1976년 3월 고 한창기 선생이 창간했고 1980년 8월호를 마지막으로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강제 폐간된 『뿌리깊은나무』는 한글 전용주의와 가로쓰기 편집의 시초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토박이 문화’를 발굴하고 ‘민중’을 동시대 문화의 전면에 올려놓음으로써 한국(인)의 정체성에 질문을 제기한 잡지라는 점에서 더 큰 의미를 지닌다. 이 잡지가 4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감동을 주는 것은 지향하는 바를 계몽이나 설교의 방식으로 강요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뿌리깊은나무』는 도덕적 우월감을 앞세우는 대신 세련된 포장으로 지향하는 알맹이의 값어치를 높이는 방식을 택했다. ‘편집’과 ‘디자인’이 지니는 힘을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보여준, 아름다운 잡지의 한 모델이라 할 만한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강준만은 “한국 잡지사는 뿌리깊은나무 이전과 이후로 구분된다”고 평가하기까지 한다. “편집은 … 원고를 분석하고 비판하는 눈으로 미리 읽어 저자나 필자나 역자의 눈에는 너무 가까이 있어서 안 보였던 원고의 흠을 그들과 의논하여 가려내서, 독자가 참된 뜻에서 ‘편집된’ 책을 읽도록 거드는 일이어야 합니다”(창간 1주년 발행인의 글)라는 구절에서 여실히 나타나듯, 『뿌리깊은나무』는 편집의 기능과 편집자의 역할에 대한 신념을 지닌 잡지였다. 당대의 석학이나 문인의 글이더라도 철저하게 손질했다고 한다. 말처럼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뿌리깊은나무』는 또한 그래픽 디자인의 역사에서도 전설로 남아 있다. 감각적인 스타일만을 추구하는 잡지에 익숙한 요즘 세대가 보면 이 잡지가 아무것도 디자인하지 않은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너무나 단순하고 정연하여 건조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뿌리깊은나무』는 논리적인 시각적 원칙으로 책 전체의 체계를 세운, 즉 아트 디렉션을 처음 시도한 ‘아름다운 잡지’다. 수작업의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활판과 사진 식자의 허술한 자간을 해결하기 위해 인화지 위의 글자를 칼로 한자씩 도려내고 조정해서 다시 붙이는 방법으로 가독성을 높인 것이다. 컴퓨터 모니터와 마우스만으로 모든 디자인 작업이 쉽게 조정되는 오늘날에도 『뿌리깊은나무』처럼 유려한 시각적 질서를 갖춘 잡지를 찾기 쉽지 않다. ‘아름다운 잡지’라는 『환경과조경』의 화두는 보기예쁘거나 화려한 스타일에 대한 갈망이 아니다. 콘텐츠를 적절한 틀에 담아낼 수 있을 때 그 콘텐츠의 가치가 올라갈 수 있으며 그러할 때 이 작은 잡지가 조경의 문화적 성장에 기여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다. 이제는 도서관에 파묻힌 오래된 미래 『뿌리깊은나무』의 창간사 끝 부분을 옮겨 적는다. “잡지의 구실은 작으나마 창조이겠습니다. 창조는 역사의 물줄기에 휘말려들지 않고 도랑을 파기도하고 보를 막기도 해서 그 흐름에 조금이라도 새로움을 주는 일이겠습니다. … 새로움의 가지를 뻗는 잡지가 되고자 합니다.” 새해부터는 에디토리얼을 한 달씩 번갈아가며 쓰자고 남기준 편집장과 두 달째 실랑이를 벌였지만 결국 지고 말았다. 민망하게도, 또 과분하게도, 1년은 더 잡지 첫 쪽에서 독자 여러분을 만나야 할 운명이다. 이 신년호가 과연 아름다운지, 마지막까지 망설여진다.
    • 배정한[email protected] / 편집주간, 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
  • [CODA] 특별한 편집, 특집
    이 글을 쓰는 시점은 드디어 마감 날이다. 그러나 이미 두 시간 전에 자정이 지났건만 마지막 원고가 도착하지 않았다. 예상 못했던 바는 아니다. 마지막 원고는 바로 이번 호에서 특집으로 다루는 토포텍 1의 수장인 마르틴 라인-카노와의 인터뷰 원고다. 해외 출장이 잦은 라인-카노와 인터뷰 일정을 조율하기 쉽지 않았지만, 생생한 지면을 위해 인터뷰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평소에 비해 상당히 늦은 시점에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아마 지금쯤 멀리 베를린에서 인터뷰어인 고정희 대표가 원고의 마지막 손질을 하고 있을 것이다. 늘 새로운 주제와 형식을 고민해야 하는 ‘특집’에 대한 부담은 만만치 않다. 독자들이 원하는 주제와 우리가 독자들에게 환기하고 싶은 내용 사이에서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도 고민스러운 일이다(대다수의 독자들은 과묵(!)하기 때문에 그 숨겨진 요구를 파악하는 것은 늘 어렵다). 또한 시의성 있는 주제를 선정하는 것도 소홀히 할 수 없다. 이러한 줄다리기 속에서 매달 특집이 탄생한다. 예를 들어, 지난해 11월호에 실린 ‘하이라인의 교훈’은 예정에 없었던 특집이다. 편집부는 하이라인 3구역의 공식 오픈 일정을 주시하며 기사화 시점을 가늠하고 있었지만, 처음부터 특집을 염두에 두지는 않았다. 그러다 서울역 고가 공원화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여 작품소개에서 특집으로 급선회했다. 다행히 하이라인의 설계에 참여했던 윤희연 교수와 프롬나드 플랑테를 읽어준 황주영 박사가 촉박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원고 청탁에 응해주어 깊이 있는 들여다보기가 가능했다. 특히 두 명의 핵심 인사인 제임스 코너와 조슈아 데이비드의 인터뷰는 최이규 뉴욕지사장의 발 빠른 섭외로 가능했던 지면이다. 물론 그 사이에서 수많은 일정을 조율한 JCFO의 조경가 안동혁 씨의 노고는, 전 세계에 동일한 보도자료가 배포되는 상황에서 『환경과조경』만의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반면 이번 토포텍 1 특집의 경우는 그 준비 기간이 꽤 긴 편에 속한다. 지난 10월호 work & criticism에 ‘포티피케이션 에렌브라이트슈타인’을 소개한 뒤, 토포텍1은 우리에게 작품집 출간을 제의해왔다. 편집부는 『환경과조경』 해외판 론칭을 계획 중이었기 때문에 콘텐츠의 중복이 우려되기도 했고, 국내 조경가들에게 토포텍 작업의 규모와 성격이 단행본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질 만큼 흥미로운지 확신하기 어렵기도 했다. 그러나 2012년 베니스 건축비엔날레 덴마크 파빌리온에서 수퍼킬렌이 소개된 뒤, 국내에서도 수퍼킬렌과 토포텍 1에 대한 관심이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던 차였다. 이런저런 논의 끝에 편집부는 토포텍 1에게 작품집 대신 특집을 제안했다. 2015년을 준비하며 편집부는 한 조경가의 작품 세계를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특집을 연간 계획 속에 넣어 두었다. 가급적 새롭게 부상하는 오피스를 발굴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 국내외 조경가를 두루 조명할 요량이었다. 마침 그 대상자와 게재 시점을 고민하던 중이었으므로, 반쯤은 필연적으로 또 반쯤은 우연히 조경가 특집의 첫 번째 작가로 토포텍 1의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토포텍 1과의 만남은 2013년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함부르크 국제정원박람회장에서 아쿠아 사커를, 코펜하겐에서 수퍼킬렌을 답사했다. 고백하건데 아쿠아 사커는 박람회장에서 일별하는 수준이었다. 넓은 박람회장을 빠르게 둘러보아야 했던 촉박한 일정 탓도 있었지만 수많은 정원들 사이에서 아이들을 위한 놀이 정원 정도로 보고 지나쳤던 것 같다. 수퍼킬렌의 첫인상은, 여러가지 이질적인 오브제들이 흩어져 있는 강렬하지만 바랜 듯한 붉은색 공원(아마도 처음 도착한 곳이 레드 스퀘어였기 때문일 것이다)이었다. 그 전에 둘러보았던 그림같이 아름답게 가꿔놓은 유럽의 여러 공원과 달리 수목이 별로 보이지 않는, 어딘지 모르게 나른하고 묘하게 이국적인 분위기 때문에 그런 인상이 남았을 것이다. 당시에는 수퍼킬렌의 다문화적인 맥락에 대해 피상적으로만 이해했을 뿐이다. 그런데 이번에 토포텍 1의 작품이 정원의 전통과 다원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을 이해하게 되면서 그들의 작품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한 조경가 집단이 보여주는 작업의 진화와 그 다양한 스펙트럼을 살펴보고, 또 그 개념에 몰입하는 과정을 거치다보니, 바로 이 지점에 종이 매체의 역할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공고해졌다. 인터넷으로 수많은 정보를 거의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는 정보의 홍수 시대에, 종이 매체는 그 존재의 이유를 고민하게 된다. 결국 어떤 정보를 선택하고, 어떻게 가공(편집)하는가에 따라 잡지의 역할이 달라질 것이다. 이번 특집이, 그간 지면의 한계 때문에 부족함을 느꼈을 독자들에게 갈증을 해소해줄 수 있는 특별한 편집으로 다가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물론 토포텍 1이 도발적인 작업을 하면서도 그 모티브를 설득력 있게, 혹은 논쟁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드문 오피스 중 하나이기 때문에 거는 기대이기도 하다. 이번 특집은 양다빈 기자가 토포텍 1과의 연락을 담당했다. 토포텍 1의 출판 담당자인 이폴리타는 마감이 끝나갈 무렵, 이번 호가 출간되고 나면 다니엘(양다빈 기자의 영어 이름)이 그리울 것 같다는 메시지를 보냈다고 한다. 두 사람이 주고받은 메일만 100통이 넘는다고 하는데, 이폴리타의 그 메일의 의미가 양 기자의 집요한 확인과 질문, 끈질긴 추가 요청에 대한 귀여운 항의인지, 아니면 그간 진짜 정이 들어버린 것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 [편집자의 서재] 가무사리 숲의 느긋한 나날
    유키는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취업을 하게 된다. 불황기에 호박이 넝쿨째 들어온 격이다. 그런데 아뿔싸! 임업이란다. 가무사리,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산골짜기로 가게 되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정부에서 지원하는 녹색 고용 제도에 가입되어 임업 연수생 신분이 된 탓이다. 이는 모두 선생님과 부모님의 합작품이다. 유키는 그 길로 쫓겨나듯 짐을 챙겨 기차에 올랐고, 도시 청년의 산골 적응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가무사리 숲의 느긋한 나날』은 최근 개봉한 영화 ‘우드잡’(2015)의 원작 소설이다. 영화에서는 전단지 모델로 나온 여자(나오키)에게 반해 임업 연수생에 자원하는 것으로 나오지만, 원작에서는 어떠한 동기도 없이 강제로 떠밀려 시골로 가게 된다. 유키는 끊임없이 탈출을 시도하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문명화 된 첨단의 도시에서 자란 청년에게 휴대전화도 제대로 터지지 않는 시골의 숲은 감옥과 다름없다. 지루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숲은 온갖 위험 요소로 가득 차있다. 봄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꽃가루 바람과 싸워야 하고, 눈에 보일 정도로 커다란 이吸蝨目와 거머리까지 그를 괴롭히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억지로 끌려온 마당에 아무런 이유 없이 붙들려 있을 필요가 없다. 영화에서는 탈출 와중에 나오키를 만나면서 가무사리에 남을 결정적 동기가 생기지만, 원작에서는 숲 그리고 자연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면서 스스로 가무사리의 매력에 빠져들게 된다. 유키가 자연과 소통하는 과정을 이야기의 중심으로 다루는 점은 동일하지만, 영화는 몇몇 장면을 통해 이를 단편적으로 나열된 컷으로 표현하는 데 그친다. 반면 원작에서는 계절의 변화에 따라 점층적으로 변화하는 유키의 감정을 세밀하게 담아낸다. 물론 영화는 소리와 시각이 중첩된 공감각적 효과로 관객에게 가무사리 숲을 더 잘 느낄 수 있도록 해주지만, 유키가 자연과 교감하는 지점에 대한 설득력은 부족한 감이 있다. “눈에 부러지는 나무도 살아 있는 존재고, 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열심히, 정확히, 신속하게 눈 털기를 하는 사람도 살아 있는 존재다. 나무는 소리를 지르지도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게 살아서 움직인다. 그런 나무들과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이 바로 이 일이다. 나는 가무사리에 온 지 1년이 지나서야 겨우 그 사실을 깨달았다.” 유키가 자연과 사람 간의 관계에 있어 중도中道를 깨닫는 대목이다. 나무와 가까이 하며 ‘친자연적’임을 표방하는 임업이 사실 가장 직접적으로 나무를 해한다. 나무를 베고 가지를 치고 땅에서 뽑아낸다. 모순이 느껴졌다. 이에 대한 해답은 책을 읽어 나가며 가무사리 사람들의 태도와 생활 방식을 조금씩 이해하면서 얻을 수 있었다. 아직 가무사리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유키는 요키(가무사리 마을의 토박이로 유키의 숲 생활을 돕고 산 일을 가르친다)가 넓은 잎딱총나무의 밑동을 도끼로 잘라내자 “불쌍하다”고 말했다. “불쌍하다고? 이 경사면에서 자라는 잡목을 전부 베어내지 않으면 땅 고르기를 못해. 땅 고르기를 못하면 묘목도 심을 수 없고. 그러면 우리는 일거리가 없어서 굶겠지.” 이어 사장과 또 다른 팀원인 이와오 아저씨가 차례로 답한다. “모두베기를 끝낸 곳에 잡목이 무성해지면 나무도 자라지 않아. 오히려 꾸준한 식목 작업이 산의 환경을 유지시켜주지.” “일본의 삼림도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은 드물어. 나무를 베고, 나무를 사용하고, 나무를 심어서 산을 유지하는 거야. 중요한 일이지. 그게 바로 우리가 하는 일이기도 하고.” 가무사리의 사람들은 필요한 만큼만 나무를 벌채하고 그 자리에는 같은 종의 묘목을 심는다. 그리고 산을 세심하게 관리하며 경건함을 유지한다. 이들이 직접적으로 나무에게 가하는 1차적 행위보다 그 정도와 마음가짐, 숲을 지속가능하게 하는 느긋한 자세에서 자연과 관계 맺는 사람의 위치가 어디쯤이어야 할지 가늠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사람 묘사에 능숙한 작가는 이번에 그 재능을 풍경 묘사에 쏟았다. 가무사리의 풍경과 자연의 현상을 생생하게 느끼게 해준다. 묘사된 장면을 통해 독자는 유키가 자연과 교감하는 과정과 자연의 매력을 느끼는 지점을 공유하고 장소에 대한 애착이 생겨나는 걸 공감하게 된다. 교감의 과정에서 유키는 숲의 초자연적 존재 들과의 영적 교류를 경험한다. 가무사리 사람들은 산을 신성하게 여기는데, 산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산신에게 기대고 노하지 않게 정중하게 대하는 것이다. 가무사리 사람들의 조언을 그저 시골 사람들의 실없는 소리로 여기던 유키는 여러 번 산의 영靈들과 조우한다. 이때 작가는 일상에서 착각으로 여기는 것들을 영적 존재로 상정하지만 이를 판타지적으로 그리지 않는다. 시각적으로 복잡하지 않은 자연 속에서 더욱 분명하게 인지되는 현상으로 그려 가무사리의 모습을 감각적으로 살려내는 데 십분 활용한다. 도망칠 궁리만 하던 유키가 자연의 황홀경에 빠져 “아, 죽을 때까지 여기에 있고 싶다”는 마음을 먹는다. 이 마음은 단계적으로 “갈수록 마음을 사로잡는다”, “가슴이 벅찼다”, “자부심이 충만했다”로 진화해 결국 가무사리 마을의 주민으로 남게 된다. 나는 뉴에이지를 즐겨 듣는다. 대부분 자연을 주제로 하고 때로는 음악에 자연의 소리를 그대로 담기도 한다. 이 책을 읽는 동안 귀가 심심하면 곁들여서 들을만하다. 가무사리의 사람들은 입버릇처럼 ‘나아나아’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천천히 하자’, ‘마음을 가라앉혀’ 정도의 뉘앙스를 가진다. 자연의 소리와 함께 이 책을 펼치면 절로 “나아나아”를 읊조리게 된다.
  • [시네마 스케이프] 업 집은 그냥 집일 뿐이야
    어릴 적 꿈을 그대로 실현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꿈이 이루어지면 과연 행복할까? 대부분의 사람은 학창 시절에 본인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지 못한다. 어른이 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혹시 알게 되더라도 ‘나’의 행복은 이미 사회나 가족의 구조 속에 너무촘촘히 구속되어 있기 마련이다. ‘나’보다는 그 관계 속에서 찾아야 할 때가 많다. 언젠가부터 내 욕망으로 산다기보다는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면서 살아가는 건 아닌지 가끔 불안해진다. ‘업Up(2009)’은 평생 동안 꿈꾸던 신비의 폭포를 찾기위해 수많은 풍선을 매단 집을 타고 떠난 칼 할아버지와 꼬마 러셀의 모험담이다. 어린 시절, 칼은 말이 없고 소심한 아이였다. 우연히 말괄량이 소녀 엘리를 만나기 전까지는 본인의 욕망을 드러내지 못하는 아이였을 것이다. 적어도 그녀가 포도 소다 병뚜껑을 칼의 가슴에 달아주기 전까진 그랬다. 엘리가 어느 날 밤 창문을 넘어들어와 자기의 꿈은 남아메리카의 파라다이스 폭포로 탐험을 가는 것이고 폭포 옆에 집을 짓고 살고 싶다고 속사포 같이 쏟아내기 전까진 확실히 그랬다. 바로 다음은 어른이 된 칼과 엘리가 결혼식을 올리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약 4분간 대사 한마디 없이 칼과 엘리가 함께 살 집을 수리해서 꾸미는 장면으로 시작해 그들의 일상, 그들이 함께 꾸는 꿈과 좌절, 할머니가 된 엘리가 먼저 세상을 뜨는 장면으로 끝난다. 이시퀀스는 잔잔한 음악과 함께 한 편의 시같이 그려진다. 최근 개봉해서 감동을 준 독립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를 4분으로 축약한 듯하다. 몇 번을 다시 봐도 아프게 아름답다. 영화는 엘리가 세상을 떠나고 칼이 홀로 남겨지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엘리의 부재가 그녀의 빈 의자와 항상 둘이 같이 앉았던 빈 식탁으로 표현되어 칼의 상실감이 전달된다. 칼과 엘리의 아름다운 목조 주택은 개발 사업으로 들어선 고층 빌딩에 둘러싸여 있다. 칼은 집값을 두 배로 쳐 준다는 제안도 거절하고 수없이 많은 자물쇠를 걸어 잠근 채 공사로 인한 소음과 먼지 속에서 살아간다. 그에게 집은 단순한 집이 아니라 엘리의 등의자, 엘리의 사진, 엘리와 같이 동전을 모은 저금통, 엘리와 함께 꾼 꿈이 담긴 ‘엘리’ 그 자체다. 결국 집을 비워주고 요양원으로 떠나는 날, 칼은 거대한 풍선 다발을 이용해 집을 하늘로 띄워서 탈출에 성공한다. 오래전부터 엘리와 함께 가고 싶었던 파라다이스 폭포로 향한다. 형형색색 아름다운 풍선이 하늘로 튀어 오르고 집을 대지에 고정했던 장치들이 떨어져 나가면서 오래된 목조 주택이 하늘로 솟아오르는 장면은 가히 압도적이다. 주변 고층 빌딩 사이에 고립된 섬 같았던 칼의 집은 풍선으로 띄워져 보란 듯이 자유롭게 날아간다. 형형색색의 원색 풍선 그림자가 회색 빌딩의 유리창을 화려하게 물들인다. 서영애는 ‘영화 속 경관’을 주제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한겨레 영화 평론 전문 과정을 수료했다. 조경을 제목으로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으며 영화를 삶의 또 다른 챕터로 여긴다. 영화는 경관과 사람이 구체적으로 어떻게관계 맺는지 보여주며 인문학적 상상력을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텍스트라 믿고 있다.
  • [100 장면으로 재구성한 조경사] 윌리엄 켄트와 스토우 정원
    #36 후원자 – 샤프츠베리 백작 때 1712년 11월 장소 나폴리에 있는 샤프츠베리 백작의 저택 등장인물 샤프츠베리 백작, 비서, 윌리엄 켄트 영국의 정치가이자 저술가, 초기 계몽철학자, 박애주의자였던 샤프츠베리 백작Shaftesbury, 3rd Earl of(본명은 Anthony Ashley Cooper, 1671~1713)은 그의 독특한 윤리적·자연주의적 종교관으로 후세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특히 알렉산더 포프가 그를 흠모했다. 1712년, 백작은 지병인 천식을 치유하기 위해 1년 가까이 나폴리에서 거주하고 있었다. 이 무렵 영국은 헨리 8세 이후 근 200년 가까이 지속되었던 구교와 신교 사이의 분쟁을 뒤로 하고 앤 여왕의 통치하에 어느 정도 안정된 삶을 누리고 있었다. 겉으로는 평화가 왔으며 구교도와 신교도도 큰 갈등 없이 화합하며 지내는 듯했다. 문제는 앤 여왕이 후사가 없다는 점이었다. 만약에 앤 여왕이 갑자기 승하하는 경우, 후사 문제로 다시 분쟁이 발생할 여지가 있었다. 비록 1701년에 다시는 가톨릭 왕이 영국의 왕좌를 차지할 수 없다는 법이 제정되었지만1 당시 프랑스에 망명하고 있던 가톨릭 왕 제임스 3세2는 자신의 왕위 계승권을 포기하지 않으려 했고 소위 자코바이트Jacobites라 불리는 그의 추종자들 역시호시탐탐 반정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샤프츠베리 아, 드디어 왔구나. 이번엔 로랭이군. 님프와 파우누스와 사티루스가 있는 풍경이라… 아주 좋군. 이번에도 윌리엄 켄트William Kent 군이 심부름을 했다지? 켄트 군은 아직 있나? 비서 예, 마이 로드. 제가 식사나 하고 가라고 해서 지금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샤프츠베리 켄트 군은 로마에서 그림 공부를 하고 있다고 했지? 미술품 구매를 중재하는 건 체류비를 벌기위해서라고 했고. 그 친구 스승이 누구인가? 비서 주세페 키아리Giuseppe Bartolomeo Chiari(1654~1727)라는 마스터 밑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3년 전에 런던에서 존 탈만John Talmann(1677~1726)과 같이 왔답니다. 존탈만이 젊은 화가 지망생을 몇몇 모아 팀을 짜서 왔다고 합니다. 모두 키아리 밑에서 공부하고 있고요. 샤프츠베리 존 탈만? 윌리엄 탈만William Talmann(1650~1719)의 자제? 수집가 윌리엄 탈만의 자제란 말이지. 흐음. 골수 가톨릭 가문이 아닌가. 그림을 수집하러 유럽에 다닌다는 핑계를 대고 사실은 제임스 3세를 옹립하기 위한 거사를 준비하고 있다는 말이 있어. 로마에 아마 연락책이 있는 모양이야. 비서 (사색이 되어) 마이 로드! 샤프츠베리 걱정 말게. 늘 그래왔지 않나. 이번에 거사를 한다 해도 실패할 걸세. 영국에서 가톨릭은 이제 더 이상 세력을 구축할 수 없어. 그나저나 켄트 군도 가톨릭인가? 그 친구 어딘가 호감이 가던데. 비서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무 것도 모른 채 그냥따라 왔을 겁니다. 그 친구 좀 백치 같은 데가 있어서 정치 쪽으로는 통 무관심한 것 같습니다. 샤프츠베리 그렇다면 다행이네. 이번에도 수고비 넉넉히 챙겨주게. 참, 자네도 잘 알다시피 우리 영국이 지난 몇십 년 동안 스페인,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연거푸 승리하면서 지금 유럽의 강국으로 부상하고 있지 않은 가. 다만 문화적으로는 크게 내세울 게 없네. 미술이나 건축은 이탈리아, 프랑스에 비해 백 년 이상이 뒤져 있어. 음악은 독일이 앞서가고 있고. 그러니 우리 귀족들이 능력 있는 젊은이들, 특히 서민 출신의 젊은 인재들을 적극 후원해야 한다네. 그게 우리의 의무야. 앞으로도 켄트 군에게 계속 주문을 넣게. 비서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아 참. 음악 말씀을 하시니 생각나는데 미스터 헨델이 런던으로 아주 이주했다는 데요. 하노버 왕실에서 많이 노하지 않을까요? 샤프츠베리 그거 일이 재미있게 되었군. 하노버 왕실에서 미스터 헨델을 곧 따라올 걸세. 하하하. 비서 네? 샤프츠베리 이 친구 이렇게 말귀를 못 알아들어서야. 생각해보게. 여왕 폐하께서 옥체가 미령하시니 조만간 후사 없이 승하하실 가능성이 크지. 그렇다면 다음 왕좌에는 누가 앉겠나. 계약대로라면 하노버 왕실에서 영국 왕위를 계승하게 되어 있지 않은가. 두고 보게 독일인이 영국 왕좌에 올라앉을 날이 머지않았네. 어허, 그렇게 이상한 표정 지을 것 없네. 유럽 왕족들이 따지고 보면 모두 친인척 관계 아닌가. 조지 왕은 재목이 썩 시원치 않다지만 그 아들과 며느리는 똘똘해. 특히 왕자비 캐롤라인이 대단히 명민하고 씩씩해요. 라이프 니츠가 애지중지하며 기른 제자라네. 그런 여인이 나중에 왕비가 된다면 영국에 해 될 일 없을 걸세. 그건 그렇고 저 그림이 볼수록 마음에 드는군. 비서 저, 마이 로드. 오늘 크라플리 경Sir John Cropley(1633~1713)에게 편지 쓰신다고 하셨는데 그건 어떻게 할까요? 샤프츠베리 참, 그랬지. 잊을 뻔했네. 구술할 테니 받아적게나. 인사말은 늘 하던 대로 하고. (잠시 생각에 잠긴다)이렇게 쓰게. “경께서 지난 번 편지에서 말씀하시길 새로 지은 저택에 어울리는 정원을 만들고 싶다고 하셨지요. 지상 낙원을 만들어 여생을 쾌락하게 지내고 싶다는 데에 저도 깊이 공감하고 있습니다. 송구하나 저는 신께서 부르실 날이 머지않은 듯합니다. 먼저 가서, 신의 정원에서 경과 함께 거닐 날을 고대하며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신의 정원은 어떤 곳일까요? 곧 그곳에 갈 생각을 하니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오늘 새로 그림 한 점을 주문해서 받았습니다. 그걸 보고 있노라니 바로 저런 곳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강이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곳의 풍경을 그린 것 같습니다. 저 멀리 푸른 산이 아득히 보이는 것을 보니 아마도 만灣인가 봅니다. 강은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평화롭게 흐르고 있습니다. 주변의 능선에는 아름다운 빌라나 성이 서 있는데 암울한 고딕 양식도 아니고 폐허도 아닙니다. (가만, 그런데 저 원형 신전은 폐허가 아닌가. 쯧쯧, 옥의 티로구먼) 그래요. 모든 사물이 미소를 짓고 있는 듯합니다. 물은 잔잔하고 훈풍이 수면을 가볍게 스치고 지나갑니다. 장면 앞에는 큰 나무가 서서 그늘을 드리워줍니다. 해가 이미 반쯤 넘어가 노을이 물들기 시작하고 님프들이 동굴을 떠나춤을 추러 나타났습니다. 파우누스와 사티로스도 이에 합류했고요. 파우누스는 플루트를 연주하고 사티루스는 젊은 님프에게 춤을 청합니다. 이 어찌 즐거운 낙원의 정경이 아니겠습니까. 고정희는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나 어머니가 손수 가꾼 아름다운 정원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어느 순간 그 정원은 사라지고 말았지만, 유년의경험이 인연이 되었는지 조경을 평생의 업으로 알고 살아가고 있다. 『식물, 세상의 은밀한 지배자』를 비롯 총 네 권의 정원·식물 책을 펴냈고,칼 푀르스터와 그의 외동딸 마리안네가 쓴 책을 동시에 번역 출간하기도 했다. 베를린 공과대학교 조경학과에서 ‘20세기 유럽 조경사’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베를린에 거주하며 ‘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 [그들이 꿈꾼 도시, 우리가 사는 도시] 큰 도시, 작은 도시
    뉴욕은 지나치게 크다 “전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상위 도시들은 시간에 따라 크게 바뀌지 않았다. … 이들은 대체로 부유한 나라에 있는 중간 크기의 도시다.”1 이러한 영국 『이코노미스트』 기사에 따르면 ‘도시 규모’와 ‘살기 좋은 환경’ 사이에는 꽤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정말일까?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중간 크기의 부유한 도시들—이를테면 멜버른, 비엔나,밴쿠버, 헬싱키 등—에서 공통적으로 살기 좋은 환경이라는 특질을 발견할 수 있을까? 반대로 일정 규모를 초과하는 대도시는 그 거대함으로 말미암아 불가피한 도시 문제로 신음해야 할 운명일까(그림1) 흥미롭게도 이미 1990년대 말 미국 시카고의 리처드 데일리 전 시장도 비슷한 생각을 한 것처럼 보인다. “뉴욕은 지나치게 크다.” 데일리 시장은 … 두 팔을 양 옆으로 쭉 펴며 덧붙였다. “마찬가지로 로스앤젤레스도 너무 크다. 그 외의 다른 도시들은 너무 작다. (우리) 시카고가 딱 적절한 크기다.”2 이러한 “딱 적절한 크기”의 도시에 대한 추구는 일부 지역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신규 도시 개발에 대한 수요가 큰 시기에 전 세계 여러 나라에서 보편적으로 이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이를테면 중국에서는 개혁 개방을 전후로 1970~80년대에 적정 규모의 도시에 대한 논의가 정점에 다다른다. 미국 밀워키 대학교 데이비드 벅 교수나 하와이 대학교 궉인왕 교수에 따르면 특히 작은 도시(小城镇 xiǎo chéngzhèn)에 대한 정책적 추구가 이 시기에 두드러졌으며, 이는 중국에서 큰 도시의 수에 비해 작은 도시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나는 이유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3 작은 도시에 대한 정책적 선호는 1980년 개최된 국가도시계획 콘퍼런스에서 잘 드러났다. “큰 도시의 성장을 억제하고, 중간 도시의 확장을 적절히 추구하며, 작은 도시의 개발을 적극적으로 권장하라”는 원칙이 여기서 선언되었고,4 같은 해 12월 중국 도시 개발에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국무원에서 이를 승인하게 된다.이렇게 한 지역이나 국가에서 몇몇 도시가 과도하게 성장하는 것을 규제하자는 주장을 반-수위도시론anti-primate city 혹은 반-대도시론anti-metropolitanization이라 부를 수 있다. ‘수위 도시’란 한 국가나 지역에서 인구, 경제, 일자리, 서비스 등의 측면에서 그 비중이 지배적인 도시를 말한다. 이를테면 한국에서는 서울(혹은 수도권)이, 중국 양쯔 강 델타 지역에서는 상하이가 수위 도시에 해당한다(그림2). 국내에서도 수도권 과밀 해소나 지역 균형 발전과 같은 일종의 반-수위도시론이 서울의 행정 기능 분산이나 지방 거점 도시 육성을 통해 구체화된 바 있다. 좀 더 지역적으로는 서울주변에 분당(계획 인구 39만 명)이나 일산(27만 명)과 같이 비교적 큰 규모의 신도시 개발이 가져올 폐해에 대한 우려가 팽배한 적이 있다. 이에 따라 수도권 신도시 정책을 인구 10만 이하의 미니 신도시 건설로 선회하자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안건혁 교수는 “자족적 신도시의 적정 인구 규모”에 대해 20~30만 명을 그 기준으로 삼아도 별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그리고 인구 집중은 해당 지역이 여러 가지 도시적 매력이 있음을 방증하기 때문에 인구를 강제로 분산시키기보다는, 제한된 수의 신도시를 만들고 인구 집중에 따른 여러 문제를 계획적으로 잘 해결하면된다고 주장했다.5 안 교수의 주장이 옳다. 다수의 미니 신도시를 건설하여 인구 집중의 폐해를 해소하자는 주장은 억지스러워 보인다. 더욱이 현재 분당이나 일산의 규모가 너무 커서 통제 불가능할 정도의 문제가 일어난다고 보기도 어렵다. 적정 규모 이론 주변 사람들에게 한 번 질문해 보자. 당신이 살고 있는 도시는 큰 도시입니까?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잠시 기억을 더듬은 후 이에 답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은 어떠한가. 지금의 도시 규모가 적절합니까? 혹은 인구 천 만의 도시와 백 만의 도시 중 삶의 다양성, 주거 만족도, 출퇴근의 편리성을 모두 고려하면 어느 쪽이 더 좋습니까? 이쯤 되면 난처하다. 적정성 자체와 여기에 영향을 주는 여러 요소에 대한 가치 판단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에서 도시의 적정 규모에 대한 고민은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저서 『정치학』에서 도시 규모는 일정한 하한선과 상한선 사이에서 결정된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도심지 면적의 하한선, 즉 최소 규모는 도시민들이 요구하는 음식이나 땔감을 자급자족할 수 있는 최소 영토로 결정되며, 상한선은 적의 침입으로부터 도시를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있는 최대 면적이라고 보았다.6 꽤 그럴듯한 논리임에도 여기에는 큰 약점이 있다. 물론 도시가 최초로 형성될 시점에 규모의 상·하한선이 존재한다는 설명은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상·하한선이라는 기준 자체가 시대와 관습의 산물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를테면 땔감을 구하는 방법이나 효과적인 방어를 위한 영토라는 기준은 시대에 따라 크게 다르다. 정확한 기록이 없는 상태에서 과거로 돌아가 하나의 규모에 대한 기준이 가장 효과적이었는지를 파악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한 시대의 상·하한선은 다른 시대에 큰의미가 없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조선 초 한성부의 방어를 위한 적정 성곽 규모가 조선 중기 임진왜란 시기에 방어를 위한 최적의 성곽 규모와 얼마나 다를지 떠올려 보자. 적정 규모에 대한 논의는 이와 같은 시·공간적 맥락성과 함께 도시 규모를 결정하는 데 영향을 주는 여러 가지 잠재적 요소—이를테면 도시의 지형적 특성, 주요 이동 수단의 기술적 수준, 또는 한 사회가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도심지 크기나 과거 도시 개발의 관습—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 김세훈은 1978년생으로 서울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한 후 하버드GSD에서 도시계획학 석사와 박사 학위(DDes)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도시설계 이론과 스튜디오 수업을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 『신흥도시 개발 모델』, 『도시형태변화분석방법론노트』, 『도시와 물길(A City and Its Stream)』 등이 있으며, 한국, 중국, 동남아시아의 도시 연구와 설계를 함께 진행하고 있다.
    • 김세훈[email protected] /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환경조경학과 도시설계전공 교수
  • [그들이 설계하는 법] 자진감리自進監理 양화한강공원에 관한 몇 가지 소고
    산수전략 김정윤(이하 김): 우리가 2006년 로테르담에서 서울로 오피스를 이전한 후, ‘서울은 이래야 한다’라는 명제thesis를 만들어 놓고 일을 시작했던 것은 아닙니다만, 3년 정도 일을 하다 보니 그 시점까지 우리가 수행했던 공공 공간 설계를 관통하는 하나의 ‘자세’를 발견할수 있었는데, 저는 그것이 ‘산수전략山水戰略’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즉, 산과 물을 다루는 전략을 우리 스스로 발견했던 것이죠. 아마 이걸 깨닫게 된 계기는 2007년 청라신도시 호수공원 설계공모 때 출품작 제목을 ‘산수전략’이라고 쓰기 시작했던 데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의 산수전략은 무엇입니까? 박윤진(이하 박): 일단, 산수전략의 첫 번째 의미는 산과 물을 다루는 기술입니다. 두 번째는 급속한 근대화 과정에서 잃어버린 우리나라의 지형적 혹은 경관적 문맥을 되살려야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방식에 있어서는 그대로의 복원이 아니라 동시대의 라이프 스타일을 함의하는 동시대적인 복원, 즉 ‘시학적 복원’을 하자는 설계 전략입니다. 세 번째는 산수 문화의 일상적인 가치를 인정하되, 산수라는 지리적 한계를 넘어서는, 혹은 대체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우리가 수행한 ‘강남 대체 자연Gangnam Alternative Nature’ 리서치가 이에 해당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것 외에도 산수전략에 대한 크고 작은 아이디어들이 있는 것을 보면, 아마 계속 진행 중인 어젠다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김: 그간 우리는 많은 대형 오픈스페이스 설계공모에 참여했지만, 그중 실시설계까지, 그야말로 끝까지 기회가 주어진 경우는 양화한강공원이 처음이었죠. 우리가 양화에서 가졌던 산수전략은 무엇이었나요? 박: 우선,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의 다른 프로젝트와 비교해본다면 양화한강공원은 가장 가벼운(?) 경쟁을 통해 당선된 경우라 말할 수 있습니다(하하).아무튼, 양화한강공원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한강의 수문학적 특수성을 면밀히 이해하는 것이었습니다. 한강에 엔지니어링적으로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방재기능의 허용 범위는 어디까지인지, 이를 바탕으로 우리가 취해야 하는 포지션은 무엇인가를 고민했습니다. 즉, 엔지니어링과 무관하게, 그 표피를 ‘장식하는 디자인으로 마감하는 것’이 아니라, ‘양화한강공원에 어떤 수문학적인 기능을 부여할 수 있을까’라는 보다 근본적인 질문으로 시작했습니다. 김 대표의 질문에 답을 하자면, 양화 프로젝트는 산수전략의 첫 번째 항목인‘기술’ 혹은 ‘엔지니어링’에서 출발했습니다. 좀 더 부연하자면, 과거 한강은 수운이 발달한 바다와 같은 큰 강이었고, 그 주변으로 여러 가지 여가 문화가 꽃을 피웠죠. 수많은 정자가 있었고요. 마치 조선의 센트럴 파크와 같은 역할을 해왔다고 할까요. 그러나 지금은 서울이 대도시가 되면서 고수부지의 아래 위에방재 시설로서 보가 설치된 것이 가장 큰 변화죠. 양끝에 보가 생기다보니 접시 물처럼 찰랑거리는 고인 물과 다름없었던 거죠. 그래서 지금은 모래 이동이 중지되었고, 하류에서 올라오는 뻘과 지천에서 나오는 모래뻘이 한강 호안을 변화시키고 있죠. 이렇게 접시 물 같음에도 불구하고, 하루에도 1m씩 수위가 변하기도 하죠. 따라서 우리가 한강에서 가장 주목했던 것은 뻘이었어요. 여름에 범람할때마다 엄청난 양의 뻘이 한강 변에 쌓이게 되었죠. 이는 유지 관리의 문제를 항상 불러왔고, 그래서 ‘어떻게 하면 뻘을 더 원활하게 유통시킬 수 있는 공원으로 만들 수 있을까’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습니다. 김: 결국 우리는 한강을 낭만적인 물길로만 보기에 앞서 도시의 인프라스트럭처로 본 거죠. 박: 그렇죠. 뻘에 의해 효용가치가 좌우되는 호안이라고 봤고, 그렇기 때문에 이를 잘 다루는 것이 공원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봤어요. 김: 그리고 거기에 지형과 동선이 잘 부합하게 설계함으로써 공원으로서의 공간 경험을 만들어 내려고 했었죠. 인프라스트럭처이면서 경험을 만들어 내는 공원, 즉 인프라스트럭처 시스템과 지형과 동선이라는 각각의 시스템이 관계하면서 만들어내는 ‘다양한 경험의 매트릭스’를 의도했습니다. 박: 사실은 많은 정책 입안자들이 ‘한강을 과거로 복원시키자’, ‘모래밭이 있는 강으로 돌아가자’라는 말은 쉽게 했었지만, 댐이나 보와 같은 인프라스트럭처의 기본적 변화 없이는 낭만적 그림에 불과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현실적인 뻘에서 출발했던 거죠. 박윤진은 하버드 대학교 GSD를 졸업하고 Sasaki Associates, West 8 등에서 실무를 쌓고 치치 지진 메모리얼 국제설계공모 당선을 계기로 김정윤과함께 오피스박김을 설립하였다(2004). 미국 보스턴 건축대학교 등에 출강하였고, 타이완 쉬이첸 대학교(2007), 미국 하버드 대학교(2008, 2010), 오하이오 주립대학교(2011), 호주 멜버른 대학교(2012) 등에서 교육, 전시, 강연을 위해 초청되었다. 김정윤은 서울대학교와 하버드 대학교 GSD 졸업 후 네덜란드 West 8 등에서 실무를 쌓았다. 네덜란드 조경건축사이며 바허닝엔 대학교에 출강하였다. 차세대디자인리더(산업자원부 2007), 광교공원 디자인커미셔너(2008), 서울형공공건축가(2011)로 선정되었고,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교 놀튼 건축대학원이 선도적 조경가에게 수여해온 글림처특훈교수(2011)로 임명되어 강의하였다.
  • [조경의 경계를 넘어, 조경 속으로] 제니퍼 키스맷 토론토 도시계획국장
    도시계획 시정의 까다로운 전문가 회의를 지역 방송에 공개하고 실시간으로 트위터를 통해 시민들과 의견을 주고받으며 대중과 토론으로 소통하는 도시계획가, ‘캐나다의 미래를 이끌어 갈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명, 걷는 도시의 전도사, 휴먼 스케일의 도시를 실현하는 전위대로서 전 세계 어바니스트의 주목을 한 몸에 받고 있는 토론토의 도시계획국장, 제니퍼 키스맷이다. 2012년 공직에 임명되기 전에는 캐나다 굴지의 도시컨설팅 기업인 ‘DIALOG’의 공동 창업자이자 탁월한 도시설계 컨설턴트로 업계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 복잡하고 따분한 남성적 문화가 주도적인 도시 분야에서 그녀는 이미 스타였다. 그러나 그녀를 진정 유명하게 만든 것은 그녀의 아이디어다. 명쾌하고 또렷한 논리와 진정성 있는 소신을 통해 수많은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켰고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해 왔던 것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짐으로써 새로운 희망을 일구어냈다. 그녀는 누구나 생활에서 직접적으로 느끼는 경험과 얼핏 사소해 보이는 관찰에서 부터 시작했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함께 했던 등하굣길의 모험이 어째서 한 세대가 지난 지금에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사라졌는지 스스로 원인을 찾아보고 느낀 것을 나누었는데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비단 학생의 건강과 환경에 미치는 영향뿐 아니라 지역 사회의 경제를 살리는 일에도 걷는 사람들, 특히 걷는 학생들의 역할이 막대하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설득력을 더했다. 걷는 사람들은 운전자에 비해 지출이 20% 가량 많다고 한다. 걸으면서 많은 자극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자전거 이용자의 경우도 비슷하다. 다양한 도시 환경에서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쌓은 경험도 값지다. 잘 사는 도시, 살기 좋은 도시로 유명한 밴쿠버에서 실시된 한 조사에 의하면, 사람들이 느끼는 가장 큰 도시 문제는 가난도 범죄도 공해도 아닌 ‘외로움’이었다고 한다. 사람 간의 연결과 연대 또한 걷는 환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이 키스맷의 관찰이다. 고밀도 주거 단지에 걷는 환경이 조성되지 못할 경우, 주차장, 엘리베이터, 유닛으로 연결되는 단순한 동선 구조가 즉흥적인 만남의 기회를 앗아가고 일종의 수직적 교외 지역vertical suburb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키스맷은 인간이 걷도록 설계된 존재라는 것을 믿으며 도시 또한 그러한 자연적 서식처의 특성에 맞게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걷는 사람의 규모에 맞게 계획된 도시, 그러한 도시가 성장을 추동하는 도시다. 그녀는 하워드Ebenezer Howard의 ‘전원 도시’ 이론을 통렬히 비판하며 그러한 단순 도식화와 거리에 대한 무지, 위계를 상실한 공간 개념이 완결적인 마을 형성을 저해하고 넓은 면적에 밀도를 흩뿌림으로써 사람과 건물과의 관계 설정을 무력화했다고 설명한다. 차를 타고 다닐 경우, 건물과 거리 사이의 상호 작용이 사라지고 도시적 맥락의 중요성은 현격히 줄어든다. 공원에 고층 건물이 들어서고, 도시 공해가 증가하며, 대중교통은 낮은 밀도로 인해 실용성이 급격히 줄어든다. 키스맷은 기존의 현대 도시계획이 각각의 토지 이용을 구분하는 것도 문제지만, 실질적으로 건물과 거리 사이가 벌어지고 그 사이의 대화가 단절되는 결과가 더 심각하다고 말한다. 제인 제이콥스Jane Jacobs가 지적한 ‘거리의 눈eyes on the street’, 혹은 ‘공원의 눈eyes on the park’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녀의 도시 철학인 ‘모두를 위한 도시’라는 명제는 ‘보행자 생태계’, ‘보행자 일조권’이라는 흥미로운 개념을 던져준다. 토론토를 예로 들면, 최근에 이루어진 성장 중 약 40%가 걷기 편한 작은 면적의 도시 지역에 집중되었다. 사람들의 활동이 있어야 걸을 맛이 나는, 걷기 좋은 도시가 되는데, 사실 명품 건축보다는 서민들의 어설픈 건축 스타일이 늘어선 곳이야말로 가장번성하는 거리였다는 관찰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공적 영역을 무시하는 거만한 건물은 결과적으로 시민의 건강을 해치는 반면, 주인공이 아니라 배경으로서위치하는 건물은 공적 공간을 보호하고 보행자의 위상을 드높이기 때문이다. 건물은 거리와 대화해야 하며 보행자는 건물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정보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 거대하고 디테일이 없는 빈 벽으로 형성되는 대형 마트나 호텔 건물이 도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이유다. 한편, 건축 스타일은 환경 윤리적 측면과도 연결되는데, 지속성, 복원가능성, 시간에 따른 가변성이 높은 재료와 공법으로 지어진 건물이 장기적으로 도시 폐기물을 줄이고 에너지를 절감하며 좋은 도시를 만든다는 주장 또한 되새겨 볼 만하다. 제니퍼 키스맷은 창조적인 도시계획을 강조한다. 특히 도시계획가는 복잡하고 어려운 도시 문제를 시민에게 차근차근 쉽게 설명해 줄 의무가 있음을 역설한다. 본 인터뷰에서는 그녀의 대표적인 소통의 철학이 담긴 혁신 사례들을 간략히 다루어 본다. 이 꼭지를 연재하고 있는 인터뷰어 최이규는 1976년 부산 생으로, 그룹한 어소시에이트 뉴욕 오피스를 이끌며 10여 차례의해외 공모전에서 우승했고, 주요 작업을 뉴욕시립미술관 및 소호, 센트럴파크, 두바이, 올랜도, 런던, 위니펙 등지의 갤러리에전시해 왔다. 저서로 『시티 오브 뉴욕』(공저)이 있다.
    • 최이규 / 그룹한 어소시에이트 뉴욕지소장
  • [공간 공감] 삼성출판사 공개공지
    서초동에 위치한 삼성출판사 사옥에는 정원이 딸려 있다. 이 정원은 사유지이지만, 동네 주민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개방된 공개공지다. 좁은 골목과 건물만 빼곡할 것 같은 장소에서 만난 뜻밖의 열린 정원은, 공간의 질에 대한 논의와 별개로 사유 공간의 공공적 활용에 대한 이야기 소재가 되기에 충분하다. 겨울에 방문한 정원이라 을씨년스럽고 황량하기까지 하다. 겨울의 흔적을 통해서 푸르렀을 때의 상황을 짐작하기란 쉽지 않지만, 다행히 지난 여름에 이곳을 찾았을 때 찍어 둔 사진이 있어서 참고할 수 있었다. 전체적인 공간 구성을 살펴보면, 삼성출판사 건물이 안쪽 벽을 맡고 그 좌우는 높은 코르텐 스틸 벽면과 자작나무에 의해 위요되어 있다. 특히 코르텐 스틸의 단순명료한 질감과 과감한 스케일이 눈에 띈다. 이미 만들어진 공간에 대해 호불호를 말하기는 쉽지만, 설계 단계에서 재료와 스케일에 대한 확신을 갖는 데는 오랜경험이 요구된다. 입구 주변은 단차를 극복하기 위해 설치된 계단이 둘러싸인 느낌을 주고 있어, 공간 전반에 걸쳐 정원다움의 기본 속성 중 하나인 위요감은 꽤효과적으로 설정된 것으로 판단된다. 이곳에 서 있으면 주변 요인들의 방해를 받지 않고 온전하게 ‘내부에 들어와 있음’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 보면, 이곳이 과연 공개공지로서 적합한 구성을 취하고 있는가를 따져볼 수 있다. 공개공지는 건축주가 일정 인센티브를 받고 공공에게 제공하는 공간이다. 따라서 개방성과 접근성이 매우 중요하며, 다른 사례를 떠올려 보아도 스퀘어나포켓 파크의 형태로 조성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욱주는 이 연재를 위해 작은 모임을 구성했다. 글쓴이 외에 factory L의 이홍선 소장, KnL 환경디자인 스튜디오의 김용택 소장, 디자인 스튜디오 loci의 박승진 소장 그리고 서울시립대학교의 김아연 교수 등 다섯 명의 조경가가 의기투합했고, 새로운 대상지 선정을 위해 무심코 지나치던 작은 공간들을 세밀한 렌즈로 다시 들여다보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