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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복지, 교육에서 실천으로
시민조경아카데미 지난 1년 들여다보기
서울시는 지난해 ‘서울, 꽃으로 피다’ 캠페인을 통해 시민이 주도하는 도시 녹화사업을 시작했다. 3월 20일부터 4월 30일까지를 식목월로 선포해 다양한 나무심기 행사를 개최했고, 주민참여 골목길 가꾸기 사업, 주요 도심부 꽃길 조성 사업 등을 통해 시민의 손으로 생활권 주변의 미관을 개선해 나가고 있다. 기존에 걷고싶은도시만들기시민연대와 서울그린트러스트가 시행해온 자투리땅을 녹색으로 바꾸는 공원화 운동과 함께 ‘환경 복지’ 실천에 힘을 보태고 있다.
캠페인의 성공 여부는 시민참여에 달려 있는데, 서울시는 그 답을 교육에서 찾았다. ‘서울, 꽃으로 피다’ 캠페인을 추진하는 동시에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해 시민의 참여를 끌어내고자 했다. 그 시작점에 ‘시민조경아카데미(이하 조경아카데미)’가 있다.
지난 7월 29일 세 번째 조경아카데미가 막을 내렸다. 작년 7월 첫 선을 보였으니 만 1년이 지났다. 2013년 상반기와 하반기, 그리고 2014년 상반기 매 강연마다 200여 명의 시민이 수강했고, 약 500여 명이 수료했다. 조경아카데미는 서울시와 환경조경나눔연구원(이하 나눔연구원)이 정원 문화 이해 증진과 시민 녹화 의식 함양을 위해 마련한 교육 프로그램이다. 지난해 나눔연구원이 강연을 기획해 커리큘럼과 강사진을 꾸려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조경 강좌 프로그램을 서울시에 제안했고, 서울시가 이를 받아들여 행정적으로 뒷받침하면서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
당초 나눔연구원은 3개월에 걸쳐 진행하는 1회성 프로그램으로 기획했으나 제안을 받은 서울시에서는 매년 상반기와 하반기에 강연을 진행하는 정기 프로그램으로 이를 확대했다. 지난 4월 30일에는 서울시와 나눔연구원이 조경아카데미 운영 MOU를 체결해 내실있는 프로그램 운영 기반 마련을 약속했다.
실천으로 이어지는 조경 교육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조경 프로그램을 지자체가 적극 지원하고 나섰다는 건 고무적인 일인데, 그 배경에는 고개가 끄덕여질만한 이야기가 있다. 사실 조경아카데미가 시작되기 직전, 서울시 푸른도시국은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조경 교육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었다. 2014년부터 상, 하반기로 나누어 4개월씩 실내·외 정원 조성, 실내식물과 조경수의 유지 관리 및 기타전문 분야의 이론과 실습 교육을 병행해 연간 300명의 ‘서울 가드너’를 양성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던 차에 2012년에 나눔연구원이 발족하고 지난해 초 재단법인 인가를 받아 본격 활동을 시작하면서 조경아카데미를 제안한 것이다. 서울시는 2014년을 목표로 계획하고 있었는데, 나눔연구원이 프로그램을 마련해 계획보다 시간을 앞당길 수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첫 아카데미가 성료하고 강연이 지속적인 호응을 얻으며 3회째를 마감했다. 조경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 시민들은 보다 심도 있는 교육을 받길 원했고, 서울시는 당초 기획한 교육 프로그램을 개선해 시민정원사 양성 과정을 만들어 지난 8월 8일에 첫 수료식을 치렀다. 서울시는 조경아카데미가 ‘서울, 꽃으로 피다’ 캠페인의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시민들이 강연을 듣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실제 녹색 문화 확산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도록 장려하고 있다. 수료생들은 자체적으로 원우회를 조직해 커뮤니티를 활성화하고 있는데, ‘서울광장 꽃 심기’, ‘중랑천 녹색브랜드화’ 등에 참여하고 골목길 가꾸기 사업의 대상지를 할당받아 실제로 사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또한 서울시가 공원 관리의 한정된 인력과 예산을 극복하기위해 추진해온 공원녹지 돌보미 사업에도 원우회가 투입되어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는 생활권 주변 녹지를 전담하고 있다. 시민참여 녹화 사업의 모니터링도 담당한다.
조경아카데미를 수료한 한 시민은 “강연으로만 끝났다면 별 의미가 없었을 것 같다. 조경아카데미 이후 사람들이 모여 조경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실제로 도시에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실효성이 높은 프로그램인 것 같다”고 평가했다. 조경아카데미는 녹색 문화 확대를 위한 시민 교육부터 시작해 참여를 끌어내고, 사업의 실행 및 모니터링, 관리까지 이어지는 지속가능한 행정의 우수 사례라 할 만하다.
대중이 공감하는 조경에 대한 고민
나눔연구원은 조경인의 재능을 공유함으로써 지속가능한 환경 조경 복지의 실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재능공유의 대상을 크게 실무에서 활동하는 조경인, 조경학도, 일반인 이렇게 세 그룹으로 보고, 이들이 조경을 통한 나눔을 실천함으로써 조경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고 대중과의 접점을 넓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조경의 영역 중 대중에 잘 알려진 분야를 꼽자면 아무래도 정원을 빼놓을 수 없다. 그 때문인지 조경아카데미의 커리큘럼이 정원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이에 대해 정윤희 사무국장(환경조경나눔연구원)은 “아직까지 시민들이 조경을 통해 기대하는 내용은 정원인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커리큘럼을 짤 때 이를 간과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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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화해야 할 규제의 대상인가, 최소한의 안전장치인가
‘주택건설기준 규정·규칙’ 일부개정안 입법예고
정부가 주택건설 부문의 규제를 대폭 완화하겠다고 나섰다. 국토교통부(이하 국토부)는 시대에 맞지 않는 불합리한 주택 건설 규제를 정비하고 다양한 수요에 맞는 아파트 건설을 유도한다는 명목으로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규칙’ 일부개정안(이하 개정안)을 마련해 지난 7월 24일부터 입법예고했다. 개정안은 아파트 내 의무 주민공동시설 설치 기준을 완화하고, 공동주택 조경 의무 면적을 폐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국토부에서 추진 중인 ‘규제총점관리제’와 1차관이 주재하는 ‘규제개혁지원단 회의’를 거쳐 이번 개정안이 결정되었는데, 김경식 1차관은 “기업 투자를 방해하는 불필요한 규제나 경제적 부담 요소를 지속적으로 개선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소비자의 선택권을 존중하고, 과거에 도입된 획일적인 규제를 달라진 시대 상황에 맞게 손보겠다는 취지와 함께, 기업 투자를 활성화 하겠다는 의도에서 출발한 것이다. 하지만 조경계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중복 규정 정비를 이유로 ‘조경 면적’ 폐지
개정안은 “조경 면적은 ‘건축법’에 규정된 바와 같이 조례에 따라 지역 특성에 맞게 확보·설치되도록, 관련 규정(단지 면적의 30/100 설치)을 폐지”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다른 법령과 중복·추가 규정된 사항을 정비”한다는 취지다. 이에 대한 조경계의 의견은 분분하다. “공동주택은 건물과 외부 공간으로 이루어지는데, 규정이 사라진다고 녹지가 전부 사라지진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 있는 반면, “생활권 주변의 녹지율이 지금보다 현저하게 떨어질 것이고, 결과적으로 주거 환경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예측하는 이도 있다.
현재 LH가 주관하는 임대주택 사업은 제도적으로 정해진 기준보다 조경 면적이 높거나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대형 건설사의 경우는, 공동주택 단지 내 조경 면적 비율이 기준을 훨씬 웃도는 경우가 많다. 입주자를 모집하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 이상을 갖추어야하기 때문이다. 의무 규정이 없더라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까닭이다. 그러나 ‘대형 건설사와 중소 건설사’, ‘수도권과 지방’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을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이 때문에 녹지를 비롯한 주거 환경의 양극화가 심화될 가능성도 제기되고있다.
조경 면적을 지자체에 일임할 경우, 오히려 기준을 강화하는 것이 지자체 입장에서는 유리하다는 지적도 있다. 지자체 입장에서는 예산을 사용하지 않고도 공공주택이나 건축물 주변에 조성되는 녹지 비율을 늘림으로써 도심 녹지율을 높이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경 관련 공무원들은 “법적으로 규정해줘야 한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지자체에 일임할 경우, “기준을 담은 조례 자체를 전부 다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혼란이 예상되고, 상당수의 지자체는 자체적으로 기준을 만들기 위한 인력과 예산이 부족하다”고 토로했다. 기존의 관련법과 규정이 사실상 가이드역할을 해온 상태이기 때문에 행정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 조경가는 “지금 당장은 큰 차이가 없을 수도 있지만, 장기적으로 상황이 어떻게 달라질지는 누구도 알 수 없기 때문에, 공동주택 단지 내에 일정 조경 면적을 확보할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단지 면적의 30/100’ 조항이 유지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강력히 피력했다. “대형 건설사의 경우도 지금은 기준 이상의 조경 공간을 도입하고 있지만, 입주자들이 원하는 트렌드가 달라지기 시작하면 급속히 조경 공간 축소가 이뤄질 수 있고, 주거 환경의 질 저하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의무 주민공동시설 설치에 예외 허용
이번 개정안에서 또 하나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변화하고 있는 주택건설 환경과 수요에 대응할 수 있는 다양한 유형의 주택 건설”을 유도하기 위해, ‘경로당, 어린이 놀이터, 주민운동시설, 작은도서관 등’을 의무적으로 설치하지 않아도 된다는 ‘예외’ 규정을 포함시킨 점이다. 이용률과 선호도가 낮아 사용되지 않고 방치되는 시설을 최소화하고, ‘소비자의 선호도에 따라 자율적이고 특화된 단지 설계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한 것인데, 입주 후에도 입주민의 2/3 이상이 동의하면 행위신고를 통해 용도를 변경할 수 있도록 하였다.
하지만 입주 후 추가 비용이 소요되는 용도 변경이 어느 정도 이루어질 것인지는 미지수다. 다수의 선택을 근거로, 경로당 없는 아파트 단지, 어린이 놀이터 하나없는 아파트 단지도, 얼마든지 생겨나게 되었다. 사업성에 따라 오히려 늘어나는 시설이 생길 수도 있지만,정반대의 상황도 충분히 발생할 수 있다. 때론 기업에 이익이 되는 시설 위주로 설치될 가능성도 있다. 더구나 다중의 선택으로 소외받는 개인이 생길 수 있다.
“구매자가 필요에 의해 선택권을 갖는 건 당연하지만, 불이익을 받는 계층이 생기지 않도록 최소한의 장치는 필요한 것이 아닐까”라는 지적에도 귀를 기울여야할 이유다. 취재 도중, 어린이 놀이터와 관련해서는 낭만적이지만, 순간 고개가 끄덕여지는 의견도 접했다.
“아파트는 전월세 입주자도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구성원 변경 비율이 상당하다. 입주 당시 중년층 이상의 구성이 압도적이어서 어린이 놀이터가 설치되지 않은 곳에 새로 이사를 오게 된 아이가 놀이터하나 없는 단지를 보고 얼마나 속상해할까? 문득 그런생각이 들었다.” 유아숲체험장이나 생태놀이터 등, 아이들의 놀이 공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더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집과 가장 가까운 단지 내의 놀이터를 의무 설치에서 제외한 것을 문제로 지적한 이도 있다. 감상적으로 비춰질 수도 있지만, 아이들을 스마트 폰에서 구해내기 위해서라도 실외 놀이 공간을 더 적극적으로 조성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의무 시설 예외 조항과 관련해서는, LH 관계자의 생각도 들어보았다. “아파트마다 구성원의 특성이 달라, 필요한 시설이 다를 수 있다. 아무리 좋은 시설이라도 똑같은 잣대를 일괄 적용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규제가 될 수 있다. 의무 주민공동시설 설치에 예외 조항을 두는 것은 다양한 변화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런데 대체되는 자리에 녹지가 확대되면 더 좋은 환경이 조성될 수 있지만, 반대의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한 예로 나무를 한 그루도 심지 않고 외부 공간을 전면 주차장으로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면적 대비 저비용의 시설로 대체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만큼, 외부 공간의 질이 떨어질 가능성도 존재한다는 지적이다.
맞바꿀 수 없는 주거 환경의 가치
이번 개정안의 취지 중 하나가 ‘기업 투자를 방해하는 불필요한 규제의 완화’임을 앞부분에서 소개한 바 있다. 조경 산업을 이루고 있는 구성원 역시 기업이다.
이번에 완화해야 할 대상으로 지목된 규제(?)가 지탱하고 있는 시장도 분명 존재한다. 정부의 관심이 대기업 투자에만 집중되어 있지는 않을 것이다. 주거 환경의 질과 직결되는 조경 면적이나 놀이터가 규제의 대상인지도 의문이다. 당장은 큰 변화가 없고, 오히려 새로운 개정안 덕분에 입주자가 더 반기는 아파트 단지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맞바꿀 수 없는 가치도 있기 마련이다. 또한 법과 제도는, 때로 아주 중요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로서의 역할을 한다. 규제 완화의 파도가 ‘건축법’ 제42조에서 정하고 있는 ‘대지의 조경’ 항목에까지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아무리 거대한 둑이라도 아주 작은 구멍 하나 때문에 무너질 수 있다. 무너지고 나면, 돌이킬 수 없다.
국토부는 이번 입고예고 기간 동안 폭넓은 의견 수렴과정을 거칠 계획임을 밝혔다. 모쪼록 이번 개정안이 ‘주민공동시설의 자율적인 이용’과 ‘불합리한 규제 완화’뿐만 아니라, ‘공동주택단지의 주거 환경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공감대 형성의 기회도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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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기술의 공존, 내일의 서울을 엿보다
2014 Bio-Digital City
지난 8월 5일부터 17일까지 2014 바이오 디지털 시티Bio-Digital City 한국·프랑스 국제 행사가 개최되었다. 2012년 파리의 팔레 드 도쿄(주제: What does the future hold for living and digital technologies in the city?)에서 최초로 개최된 바이오 디지털 국제행사는 2013년 파리 라빌레트 국립과학관(주제: Invention of an international center of experiments on high-tech urban agriculture)에 이어 2014년 서울시 시민청(주제: Tomorrow’ Seoul Project, urban agriculture architecture)에서 열리게 되었다. 서울 특별시와 주한 프랑스대사관이 공동주최하고, 서울문화재단 및 서울시 시민청과 주한 프랑스문화원이 공동주관한 이번 행사에는 건축, 도시, 조경 등의 디자인 전공자와 첨단 미디어 전공자가 함께 서울의 미래도시 환경을 고민하는 10일간의 MediArchi(Media +Architecture) 워크숍이 열렸다. 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에게 공개되는 자연과 기술의 공존에 관한 전문가 심포지엄 및 Bio-Digital Art & Architecture, 5 Artists + 5 Architects 전시회가 함께 개최되었다.
MediArchi Workshop
‘내일의 서울 프로젝트, 도시농업건축’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워크숍에는 프랑스 라빌레트 국립건축대학장 마제랑Jean Magerand 교수, 프랑스 몽펠리에 국립건축대학 클레르 베이Claire Bailly 교수, 프랑스 건축사회 백승만 회장(영남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및 전문 튜터 등 10여 명의 전문가가 참여했다. 그리고 40여 명의 디자인 및 미디어 전공의 국내외 학생이 참가했다. 당산, 여의도, 이촌, 압구정을 대상지로 한 4개 조는 각각 2~3개 팀으로 구성되어 10일간의 워크숍을 통해 아이디어를 발전시켰다.
워크숍의 마지막 날인 14일, 11팀이 최종 결과물을 3~5분의 동영상과 3D 프린터 모형으로 제출했고 심사위원들은 3팀을 선정해 시상했다. 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상은 도시 인프라에 의해 단조로워진 도시 경관에 다양성을 부여하고 자동화 관리 시스템을 도입한 Striped Farming City 팀(Emilien Gohaud, 오하나, 이서영)이 수상했다. 주한 프랑스문화원장상은 큐브 형태의 요소를 도입하여 농업을 도시로 끌어들인 Weave 팀(김지은, 백정기, 정유진, 현진선)이 수상했으며, 주한 프랑스대 사상은 주거, 상업, 문화 및 농업을 결합한 대규모 단지를 설계한 Turf City 팀(김도희, 배진솔, 신용환, 이희승, 정태권)이 수상하였다. 수상한 작품은 2015년 파리 라빌레트 국립 과학관에 전시될 예정이다.
최종 결과물을 동영상과 3D 프린터 모형으로 발표하는 것은 이례적인 방식이었다. 이러한 시도에 대해 행사를 주최한 백승만 회장은 “이번 워크숍은 건축과 첨단 미디어 전공자의 융합을 시도하고 3D 프린터와 동영상 작업을 활용한 보다 진보적인 기술을 통해 건축 작업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결과물은 신선했고, 패널보다 받아들이기 수월한 부분도 있었다. 다만 10일이라는 짧은 기간과 결과물의 수준을 고려했을 때, 시각적 자료를 생성할 시간을 오히려 아이디어를 다듬는 데 할애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이번 행사는 ‘도시농업건축’을 통해 서울의 도시 환경을 설계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런데 이 ‘도시농업건축’이라는 용어가 다소 생소하다. 도시농업은 그 환경과 목적에 따라 다양하게 정의되고 있지만 크게는 도시에서 이루어지는 작물 생산 활동을 의미하며,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공동체의 가치에 의미를 부여한다.
도시농업이 이루어지는 장소는 텃밭이 될 수도, 건물옥상이나 내부가 될 수도 있다. 그런데 “도시 생활 공간에 적합한 주거 기능과 농업 기능이 결합된 새로운 건축 유형”이라는 주최 측의 설명은, 건축에 도시농업을 결합했다는 점에서 기존의 옥상녹화나 수직 농장Vertical Farm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학생들도 도시농업을 건축과 결합함에 있어서 도시농업의 다원적 기능을 적극 활용하기보다는 주로 생산적 측면이나 환경적인 측면으로 접근하는 한계를 보였다. 하지만 도시농업을 활용하여 한강변의 재생을 고민하는 등의 시도는 인상적이었다.
Bio-Digital Art & Architecture Exhibition
국제워크숍과 함께 개최된 ‘Bio-Digital Art & Architecture’ 전시회에서는 국내 예술가 김진아, 김형기, 오화진, 이병찬, 최우람과 건축설계사무소 dmp, KyOsks, SCALe, System LAB, Unsangdong이 ‘바이오 디지털’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한자리에 모였다.
작품은 8월 5일부터 17일까지 13일간 서울시 시민청지하 1~2층의 갤러리에 전시되었다. 이번 전시는 자연과 기술의 융합을 고민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한 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기회였다. 특히 예술과 건축에 바이오 디지털 요소를 결합하여 또 다른 새로운 기술과 생물학적 형태를 표현하는 방식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다만 전시장 내 작품의 배치가 산만하고 설명이 부족했던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자연과 기술의 공존
바이오 디지털 국제 행사는 프랑스와 한국 정부의 지원을 통한 국가 간 협력기반 조성사업STAR program의 일환으로 진행되었다. 이번 국제 행사에 이어 2015년 파리 라빌레트 과학관 국제 행사가 기획되어 있으며, 이를 통해 미래 도시환경에 대한 양국 간의 교류를 증진시켜 나갈 계획이다. 최근 ‘자연과 기술의 공존’이라는 이슈는 지속가능성 및 회복탄력성 등의 키워드와 결합되어 국제적인 화두가 되고 있다. 앞으로 계속될 바이오 디지털 시티 국제 행사에서 자연친화적 미래도시 환경의 새로운 실마리를 발견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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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특정적 식재
싱가포르 국립대 황윤혜 교수 특강
열대우림에 잔디밭을 조성한다면? 고개가 갸웃거린다. 지역의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싱가포르의 조경 사례다. 지난 7월 30일 제일모직 건설사업부 조경디자인 그룹(구 삼성 에버랜드)의 렉처 시리즈 강연자로 나선 황윤혜 교수(싱가포르 국립대학교 조경대학원)는 “싱가포르는 선진문화를 받아들이는 데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지만 정작가지고 있는 자원을 간과하는 모순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대학 캠퍼스에서 잔디밭은 없어서는 안 될 굉장히 중요한 장소로 문화적, 사회적, 교육적 가치가 높은 곳이다. 반면 싱가포르에서 잔디는 1년 내내 녹색이지만 앉아있는 사람을 찾기 어렵다. 잔디 관리를 하는 사람들만이 밟는 공간이다.” 고온다습한 열대 기후의 싱가포르는 식물 생육 조건이 좋아 나무가 크고 우거진다. 잔디 문화는 이러한 정글에서 볼 수 없는 모습인데, 90% 이상의 녹지가 이 지역의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영국 풍경화식 정원을 모방하는 데 그치고 있다는 것이다.
이날 황 교수는 조경이 타 디자인 분야에 비해 강조되는 특징으로 장소 특정성을 꼽았다. 지역에 따라 문화와 환경, 관심사가 각기 다른데, 이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접근하는 것이 장소 특정성의 기본 방향이라고 설명했다.
황 교수는 장소 특정성의 개념을 네 가지 키워드로 구분하여 설명한다. 범지구적으로 생각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 서로 다름, 부조화,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 디자이너가 꿈꾸는 계획이 아니라 대상의 요구를 충족해야 한다. 과정과 실행을 중요시한다. 특히 경제적으로 어려운 지역의 주민에게 조경가가 생물 다양성이나 녹지가 주는 삶의 여유로움을 이야기하는 것은 맥락에서 벗어나는 행위라고 경계했다. “그들에겐 큰 공원을 갖는 것보다 먹고 사는 것이 더 중요한 문제다.” 이렇듯 주어진 맥락 안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해법을 제시하는 것이 조경가의 역할이라는 설명이다.
황 교수는 지난 5년간 동남아시아 도시(싱가포르, 마닐라, 프놈펜 등)에서 추진해 온 세 가지 연구의 과정을 ‘자생경관과 저관리 조경’, ‘의식주 조경과 생존 조경’, ‘고밀도 도시를 위한 다기능 조경’이라는 주제로 설명했다. ‘자생 경관과 저관리 조경’ 연구의 연장선에서 시작한싱가포르 국립대학교 건축대학 옥상 경관 프로젝트는 ‘열대우림의 잔디밭 깎기를 멈추고 그냥 두면 어떻게 될까’하는 호기심에서 시작되었다. 이 옥상은 1년 뒤근사한 정원으로 탈바꿈했고, 생물 다양성을 품는 생태적 능력도 월등히 향상되었다. “시간에 따른 자연의 변화를 수용하고 관리의 일부를 설계 원칙으로 고려하려는 시도는 어렵지만 가치 있는 일이다.” 황 교수는또한 건물의 옥상이 이러한 자생식물을 활용한 서식지로 이용된다면 작은 도시 국가의 생태적 징검다리로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프놈펜에는 프랑스 NGO가 저소득층 아이들의 자립을 위해 설립한 PSE 직업기술학교Pour un Sourired’nfant가 있다. 이곳은 기부를 통해 운영되고 있는데,3천 명이 넘는 학생에게 제공할 식자재를 해결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황 교수가 이끄는 싱가포르 국립대학교 연구 팀은 이러한 실정을 파악하고 이용되지 않는 외부 공간을 활용해 키친 가든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버스 대기장으로 쓰이던 공터는 세 가지 식물이함께 자라는 고성능 농장으로 변모했고, 오토바이 주차장의 지붕과 벽면, 트렐리스를 이용해 다양한 농작물을 생산할 수 있게 했다. 교사와 학생도 함께 참여하면서 캠퍼스 곳곳에 버려진 공간이 식재료를 얻는 공간이 되었다. 텃밭은 요즘 정원에 공식처럼 등장하는 요소지만, 지역적 맥락을 고려하여 정말 필요한 부분을 채웠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남다르다.
도시 국가인 싱가포르는 빠르게 개발되고 고밀화가 점점 심화되고 있다. 황 교수는 이렇게 고밀화 된 도시를 위해 부족한 땅을 보다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방법으로 ‘다기능 조경’의 적용을 제안했다. 싱가포르 아파트의 단지 구조는 외부가 녹지로 둘러싸여 있고 안에는 아스팔트 주차장이 있는데, 그 주차장 면적이 축구장 몇개 규모에 이르기도 한다. 황 교수는 아파트 단지 내 주차장이 낮엔 대부분 사용되지 않는다는 데 착안하여, 주차장에 공원과 놀이터의 기능을 더한 다기능 주차장을 제안했다. 이렇듯 조경 공간이 여러 가지 기능을 품을 수 있도록 계획하는 것이 고밀도 도시를 살아가는 조경가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올해 렉처 시리즈의 대 주제는 ‘조경 식재의 새로운 담론’이다. 그간 주로 이야기되어 왔던 식물의 생리나 관리보다는, 도시적 차원에서 식물의 이용과 전략을 강조한 황윤혜 교수의 강연은 식재 부문에서 자칫 소홀할 수 있었던 사람과 장소에 대한 중요성을 재환기했다는 점에서 의미있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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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정원
A Garden Design for Revival 하명종+신상섭+정룡, 중국 국제원림박람회 당선
중국 중앙정부가 주최하고 중국풍경원림학회 등이 주관한 ‘국제원림박람회 설계공모전’에서 하명종(AIN Associates 대표)+신상섭(우석대학교 교수)+정룡(람정제주개발)컨소시엄의 ‘부활의 정원’이 당선작으로 선정되었다. 30여개 국가에서 900여 작품이 출품된 이번 공모전은‘생태 원림, 그린 생활’이라는 주제 아래 쓰레기 매립장에 대한 생태적·경관적·문화적 재생에 대한 아이디어를 모집했다. 하명종 컨소시엄의 작품 외에 중국의 ‘The Regrowth Garden(張建林)’, 미국의 ‘Happy Valley Garden(Christopher Counts)’, 독일의 ‘GreenWater Vortex (Staffan Robel) 등 9개 당선작은 향후 1년간 실시설계 및 시공 과정을 거쳐 ‘2015 중국 무한 국제정원박람회’에 설치된다. 이 박람회는 2015년 9월말부터 2016년 4월말까지 중국 호북성 무한시武漢市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본지는 당선자인 하명종 대표로부터 작품 소개글을 받아 수록한다. - 편집자 주
궁궐이나 사대부집의 조경을 우리의 조경이라 내세우고 있지만, 그것은 일부분일 뿐 결코 우리를 대표하는 조경이라 할 수 없다. 우리 민족의 정체성은 오히려 소박한 가옥 안에, 투박한 장독대 밑에 내재되어 있다. 앞마당과 뒤뜰, 초정과 연못, 돌탑 등 우리의 정서를 자극하는 장소에는 우리 조상들의 자연을 대하는 지혜가 담겨있다. 우리 조상들은 자연과 상극하는 행위를 지양했다. 모든 건축과 조경 행위에는 자연과의 상생을 추구하는 자연 존중 사상이 밑바탕에 깔려 있었다. ‘부활의 정원’에 담고자 한 것은 바로 이 자연 존중 사상이다.
우리가 제시하는 정원은 쓰레기 매립장 위에서 자연과 함께 다시 태어난다. 그리고 이 정원은 사람을 다시금평화롭고 여유롭게 만드는 공간, 즉 부활의 정원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해 한국의 정원에 담긴 겸손, 소박, 해학, 넉넉한 품성 등을 생태 미학과 연계시켰다. 한국적 정원 요소들을 모티브로 하여 인공적인 것을 최대한 자제하고, 친환경적으로 제작한 제반 구조물은 그 자체로서 비오톱의 기능을 담당하며 지속가능성을 가진다.
자연 앞에서의 겸손
우리는 자연에 기대고자 하는 요소들을 나열함으로써 자연 앞에서 한없이 낮아지기를 소망했다. 가공하지 않은 돌, 나무, 억새 등 화려하지 않은 식물들로 마당을 꾸몄다. 기초를 엉성하게 한 돌담을 두르고 장작더미를 쌓은 것 같은 목담도 마련했다. 세월이 흐르면 이 목담은 생명들의 귀중한 보금자리가 될 것이다. 텃밭도 갖추었다. 텃밭은 인간의 욕심이 개입되지 않은 자연과 인간의 공생 공간이 될 것이다. 우리의 초가를 모티브로 한 초당과 초정은 지붕에 빗물저장고를 설치하여 저면관수底面灌水 할 수 있도록 만들고, 억새, 금낭화등 초화류를 심었다. 혹시 한 달 이상의 가뭄이 지속되면 지붕에 물을 뿌려 빗물저장고를 채워주면 그만이다. 작은 생태 연못을 마련하고 그 초입에 옥류천을 설치하였다. 옥류천은 암반을 타고 흐른다. 작은 물줄기가 공명통을 울리며 물소리를 내고, 바람에 사각대는대나무 잎사귀 소리와 어울린다. 울타리는 나뭇가지로 둘렀다. 돌담도 좋고, 흙담도 좋지만, 가장 소박하고 겸손한 형태를 취했다. 담은 상징적 경계의 의미만으로도 충분하다. 초당에는 연기를 피웠다. 아침저녁으로 오르는 연기는 집안의 평안을 의미한다. 뒤꼍에는 닭장을 만들고 살아 있는 닭 두 마리를 두었다. 평화로 이 모이를 줍는 이들은 작은 마당 생태계의 조절자 역할을 한다.
자연스러운 정원
부활의 정원은 저관리형으로 계획되었다. 연못의 물은 순환되어 증발량 정도의 공급이면 지속가능하다. 식물의 수분 공급은 가급적 빗물을 이용한다. 장독대의 옹기를 활용한 플랜터를 설치하고 저면관수 체계를 만들어 소박하고 지속가능한 체계의 녹색 공간을 창출한다. 조명은 초당 안을 밝히는 작은 등 하나면 족하다. 저녁 무렵 툇마루에 앉아 달과 별들을 바라보는 즐거움을 빼앗고 싶지 않았다.자연은 자연스러워야 한다. 스스로 진화하고 변화하는 생명력이 넘치는 자연은 인간이 거주할 수 있는 최고의 공간이다. 이렇게 자연스러운 공간을 만드는 것은 눈에 아름다운 공간을 만드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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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화, 이상향을 꿈꾸다’ 전시회
9월 28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려
‘이상향理想鄕’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장 오랫동안 애호되었던 회화의 주제 가운데 하나다. 국립중앙박물관(관장 김영나)은 지난 7월 29일부터 산수화 속 이상향의 모습을 찾아보는 특별전 ‘산수화, 이상향을 꿈꾸다’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는 국립중앙박물관, 삼성미술관 리움, 미국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중국 상하이박물관, 일본 교토국립박물관 등 국내외 주요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던 산수화 총 109점을 한자리에 모았다.
국립중앙박물관은 동아시아 회화의 큰 흐름 속에서 형성된 이상적인 삶과 사회의 모습을 찾아보려는 시도로 이 전시를 기획했다고 한다. 정선鄭敾과 김홍도金弘道, 이인문李寅文, 안중식安中植, 장욱진張旭鎭 등 각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들의 작품과 함께 국내에 처음 전시되는 중국과 일본의 명작 42점까지 한·중·일의 정통 산수화를 한 자리에서 감상하고 비교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특히 18세기 조선 화단에서 쌍벽을 이룬 이인문과 김홍도의 대작 산수도가 모처럼 대중에게 공개된다. 이인문의 ‘강산무진도江山無盡圖’는 무려 8.5m에 달하는 모습 전체를 한눈에 담을 수 있으며 ‘삼공불환도三公不換圖’ 역시 대작의 면모가 여실히 드러나도록 8폭 전체를 전시하였다. 이는 이번 특별전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로, 이외에도 대작들의 전 장면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산수화, 이상향을 꿈꾸다’ 전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그리고 총 5부로 구성되었다. 프롤로그 청정한 세계, 산수山水는 노영魯英의 ‘담무갈·지장보살예배도’를 통해 고려시대 산수화의 전통을 살펴본다.
1부 절경의 이상화, 소상팔경瀟湘八景은 중국 호남성湖南省의 동정호洞庭湖 일대 8가지 절경을 이상화한 산수화를 다룬다. 가장 이른 시기의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 중 하나로 꼽히는 작품인 하규夏珪의 ‘산시청람山市晴嵐(미국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소장)’이 소개되며, 중국 명대明代를 대표하는 화가인 문징명文徵明의 ‘소상팔경도’ 등 중국 남송~명대에 이르는 대표작을 감상할 수 있다. 이 상경理想景을 표현한 산수화의 상징이 된 ‘소상팔경도’를 통해 명승지를 모아서 그리는 ‘팔경문화’가 동아시아 회화사에서 어떤 의미로 상호연관 되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
2부 현인이 노닐던 아홉 굽이, 무이구곡武夷九曲은 옛 현인賢人이 머물던 곳을 이상화한 대표적인 예를 소개한다. 무이구곡은 성리학이 정착한 당시 조선에서 성행하던 주제로서, ‘무이구곡도武夷九曲圖’는 성리학性理學을 집대성한 주자가 노닐던 중국 무이산의 자연 경관을 그린 산수화이다. 당시 우리 땅 곳곳에 ‘구곡九曲’을 설정하고, 글과 그림으로 남기던 선비들의 특성을 볼 수 있다.
3부 태평성대를 품은 산수는 조선 문화 예술의 부흥기인 18세기, 지식인들이 꿈꾼 사회상을 담은 산수화를 만나볼 수 있다. 이인문의 ‘강산무진도江山無盡圖’는 자연과 사회, 그리고 개인이 서로 평화롭게 어울려 생활하는 이상적인 세계를 그리고 있다. 반면 필자 미상 ‘태평성시도太平城市圖’는 산수의 비중이 작은 대신, 화려한 건물을 배경으로 인물 군상의 다양한 삶이 적극적으로 부각된 도시의 경치를 그리고 있다.
4부 자연 속 내 마음의 안식처는 속세를 떠나 자연에 귀의하고자 한 선비들의 ‘은거’의 삶을 그린 다양한 작품이 소개된다. 이를 대표하는 인물이 바로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주제로 한 ‘귀거래도歸去來圖’(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소장)는 우리에게도 매우 친숙한 작품이다. 김홍도는 자연과 함께 한 삶을 정승의 자리와도 바꾸지 않겠다는 의지를 ‘삼공불환도’를 통해 장대하게 담아냈다.
5부 꿈에 그리던 낙원樂園은 도가道家에서 추구했던 이상향, 즉 낙원이 주제다. 도연명의 ‘도화원기桃花源記’의 무릉도원은 그들이 추구한 인간 본성에 따라 소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이상향을 담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조선의 마지막 화원 안중식安中植의 ‘도원행주도桃源行舟圖’, 중국 화가 정운붕丁雲鵬의 ‘도원도’(중국 상하이 박물관 소장)나 일본의 근대화가 도미오카 뎃사이富岡鐵齋의 ‘무릉도원도武陵桃源圖’(일본 교토국립박물관 소장)와 같이 시대를 초월한 한·중·일 도원도에서 이러한 특징을 모두 찾아볼 수 있다는 점이다.
마지막 에필로그에서는 또 다른 이상향이라는 주제로,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그리고 급격한 산업화를 겪으면서 혼란스러운 사회를 벗어나 일상의 안식을 누릴소박한 이상향으로 산수를 택한 작가들의 작품으로 구성되었다. 특히 ‘풍경’은 장욱진의 미공개작으로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 만나볼 수 있다. 서양식 유화로 동서양의 모습이 혼재된 낙원을 그려낸 여류화가 백남순白南舜의 ‘낙원樂園’도 주목할 만하다.
이번 특별전 ‘산수화, 이상향을 꿈꾸다’에서는 이처럼 시대를 아우르는 대표적인 산수화를 통해 옛 사람의 마음의 눈으로 본 이상향이 시대와 지역에 따라 어떻게 다르고 또 유사한지 살펴볼 수 있는 흥미로운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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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도심에 펼쳐진 책, 북벤치
Bookbench, Books about Town
지난 7월 2일 책 모양의 벤치들이 런던에서 그 모습을 드러냈다. 펼쳐진 책 모양의 50개 벤치는 모두 다른 예술가들이 그림을 그려넣어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영국의 문맹률을 낮추기 위해 설립된 국가 자선 단체인 영국 국립 독서 재단National Literacy Trust이 공공미술 행사 기획사 중 하나인 와일드 인 아트Wild in Art와 함께 ‘북스 어바웃 타운Books about Town’ 캠페인을 주최했다. 이 벤치들은 영국의 문화유산을 기리고 독서를 장려하기 위해 북스 어바웃 타운 캠페인의 일환으로 설치된 것이다. 런던의 시민들과 여행객들은 그들이 좋아하는 책에 앉을 기회를 누리게 된다.
벤치의 이야기들은 『나니아 연대기: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The Chronicles of Narnia: The Lion, the Witch and the Wardrobe』이나 『피터팬』과 같은 유명한 동화에서부터 『1984』나 『트리피드의 날The Day of the Triffids』과 같은 고전 소설까지 다양한 분야의 책에 뿌리를 두고 있다. 셜록 홈즈, 제임스 본드와 같이 사랑받는 주인공들 역시 벤치에 등장한다.
이번 북스 어바웃 타운 캠페인에는 다수의 대표적인 예술가들과 작가들이 참여했다. 전설적인 예술가인 랄프 스테드먼Ralph Steadman은 『거울 나라의 앨리스Through the Looking Glass』 벤치에 그가 수상했던 일러스트-스테드먼은 1972년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일러스트로 프란시스 윌리엄스 책 일러스트상(Francis Williams Book Illustration Prize)을 받았다-를 재탄생시켰다. 영국 국립 독서 재단의 대사인 악셀 쉐플러Axel Scheffler가 줄리아 도날드슨Julia Donaldson과 함께 그들의 작품에 나온 캐릭터들을 벤치에 그려넣으면서 전에는 볼 수 없었던 조합을 만날 수 있다.
북스 어바웃 타운은 벤치를 구경하며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을 위해 네가지 트레일 코스를 만들고 지도를 제공하고 있다. 그리니치 트레일Greenwich trail, 시티오브 런던 트레일City of London trail, 리버사이드 트레일Riverside trail, 블룸즈버리 트레일Bloomsbury trail을 따라가면 50개의 벤치와 런던의 중심지를 모두 돌아 볼 수 있다.이 벤치들은 9월 15일까지 전시 될 예정이며, 10월 7일에는 영국 소외 계층의 문맹률을 낮추기 위한 자금 마련을 목적으로 벤치 경매가 사우스뱅크 센터Southbank Centre에서 개최된다. 50개의 벤치의 사진과 작품 및 예술가, 설치된 위치 이외에도 새로운 소식과 이벤트가 북스 어바웃 타운 홈페이지(www.booksabouttown.org.uk)에서 제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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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르고 넘어지는 즐거움
‘타기 좋은 형태’ 전시회
“여기서 보드를 타면 죽을 수도 있어요.” 이 섬뜩한 경고는 전시를 기획한 작가, 맙소사(김병국)가 오프닝 토크에서 한 말이다. 전시의 제목은 ‘타기 좋은 형태’. 제목과 다소 어울리지 않는 엉뚱한 설명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찬찬히 그의 설명을 더 들어보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스케이트 보더를 위한 공간을 제시한 ‘타기 좋은 형태’ 전은 공간에 대한 일상적 사고를 뒤집는 실험이다.
‘도시를 내 마음대로 디자인할 거야’
지난 8월 1일부터 24일까지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의 갤러리 팩토리에서 ‘타기 좋은 형태’ 전이 열렸다. 스포츠의 한 종목을 넘어 젊은이들 사이에서 문화 아이콘으로 떠오르고 있는 스케이트보드에 대한 전시인 만큼 각양각색의 개성이 뚜렷한 젊은이들이 오프닝 토크를 찾았다. 작품이 전시의 주인공이고 관람객은 손님에 불과한 일반적인 전시와는 달리, ‘타기 좋은 형태’에서는 관람객이 전시의 주인공이다. 전시를 찾은 젊은이들은 전시 공간에서 자유롭게 보드를 타고 큰 소리로 음악을 들으며 즉흥적으로 낙서를 하기도 했다.
앉아서 타는 사람, 전문적인 기술을 시도하는 사람, 전혀 예상하지 못한 구석에서 보드를 타는 사람 등 보드를 타는 방법도 각양각색이었다. 하프 파이프(스케이트보드, 인라인 스케이트, BMX 등에서 사용되는 곡면을 가진 구조물), 플로어, 경사면, 핸드 레일 등 단순한 설치 구조물로 구성된 ‘타기 좋은 형태’는 관람객의 행위에 따라 공간의 성격이 계속 변화하고 진화했다. 갤러리 팩토리의 홍보라 디렉터는 “보드를 타는 친구들에게서는 ‘도시를내 마음대로 디자인할 거야’라는 정신이 느껴진다”며 전시를 기획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보더에게 몸의 상처는 영광이다
스케이트 보더들은 깨끗하고 안전하고 편리한 공간보다는 비일상적이고 낯선 공간에 매력을 느낀다. 한 예로 레드불Red Bull의 스케이트보드 팀은 세계 각 도시를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탐방하며 영상과 사진을 올리고 있다. 그들이 각 도시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공간은 유명한 랜드마크가 아니라 대개 버려진 골목과 망가진 기물 사이다. 다소 과격한 표현이지만 ‘보드를 타다가 죽을 수도 있는 공간’이 ‘타기 좋은 형태’라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홍보라 디렉터는 “보더들은 몸에 상처가 나는 자체를 영광으로 여긴다”고 말했다. 스케이트 보더들은 안전의 규칙을 뛰어넘어 ‘타기 좋은 형태’를 찾는다. 우리에게 익숙한 ‘앉기 좋은 형태’, ‘눕기 좋은 형태’, ‘걷기 좋은 형태’ 등은 안전하고 편리하지만 새롭고 신선하지는 않다. ‘타기 좋은 형태’가 가진 비일상적이고 일탈적인 매력에 보더들은 구르고 넘어지며 위험을 즐긴다.
‘타기 좋은 형태’ 전에서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갤러리의 공간이 협소해 스케이트 보더들이 다양한 기술과 움직임을 구사하는 데 제약이 있었다는 점이다. 좁고 답답한 갤러리를 탈출해 고즈넉한 통의동 골목을 달리는 스케이트 보더들의 모습을 상상해 봤다. 갤러리를 넘어 그들만의 방식으로 도시를 디자인하는 보더들의 작품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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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원 미로
BIG Maze
미국 워싱턴에 위치한 내셔널 빌딩 뮤지엄National Building Museum은 1882년에 준공된 역사적인 건물이다. 이 건물의 대강당Great Hall은 그동안 건축계 주요인사들의 강연 시리즈, 건축적 설치 미술, 지역 커뮤니티 행사 등 다양한 이벤트를 위한 공간으로 활용되어왔다. 이번에는 덴마크 건축설계사무소인 BIGB jarke Ingels Group가 설계한 새로운 미로maze를 위한 무대로 활용되었다.
가로세로 60피트×60피트(약 18m×18m), 높이는 18피트(5.5m)의 규모를 자랑하는 이 거대한 미로는 그동안 외부 공간의 한 요소로 사용되었던 여느 미로와는 그 형태가 다르다. 17~18세기 유럽의 미로 정원, 생울타리 미로hedge maze 그리고 현대 미국의 옥수수 밭 미로corn maze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이 새로운 미로는 내셔널 빌딩 뮤지엄의 대강당의 서쪽 코트에 설치되어 지난 7월 4일부터 9월 1일까지 전시되었다.
미로와 팬옵티콘
흔히 ‘미궁에 빠지다’는 표현을 쓴다. 종이 위의 2차원 형태의 미로 게임을 풀거나, 미로 정원과 같은 3차원 형태의 미로 속으로 들어가면, ‘끝이 안 보인다, 빠져나가는 길이 있기는 한가’ 혹은 ‘분명 왔던 곳 같은 데…’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BIGMaze는 그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면 갈수록 빠져나갈 수 있는 확률이 커지도록 설계되었다. 책임 디자이너 비아르케 잉엘스Bjarke Ingels는 기존의 미로를 보며, “만약 보통의 미로를 여행하는 시나리오를 뒤집어서, 팬옵티콘panopticon같은 기능을 적용한다면 어떨까” 그리고 “이 뒤집힌 시나리오를 통해 내가 여행하고 있는 미로의 구조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면”과 같은 질문을 하는 데서 이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고 했다. 팬옵티콘이란 1791년 영국의 철학자 제러미 벤담 Jeremy Bentham이 죄수를 효과적으로 ‘감시’할 목적으로 고안한 원형 감옥이다. ‘모두’를 뜻하는 ‘pan’과 ‘본다’는 뜻의 ‘opticon’을 합성한 것으로 ‘모두 다 본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진행되는 모든 상황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벤담이 고안한 감옥의 본질적인 특징이다.
그렇다면 이 ‘모두 다 본다’라는 개념이 이 새로운 미로에는 어떻게 적용되었을까? 우선 보통의 평면형 미로는 하나의 입구가 있고 하나의 출구가 있으나, 마치 수만 가지의 길이 있을 것처럼 느껴진다. 그 평면의 미로를 3차원으로 들어 올려 벽으로 구성된 3차원의 공간을 만든다. 마지막으로 아이스크림을 떠먹듯이 미로의 한 가운데가 움푹 들어가도록 파내면 BIG Maze의 구조가 완성된다. 미로의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에는 높은 외벽으로 인해 내부를 볼 수 없지만, 미로 속으로 들어가면 갈수록 벽이 서서히 낮아지면서 미로의 구조가 드러난다. 미로의 벽이 어린이들이 느끼기에도 전혀 갑갑하지 않을 만큼 낮아지면 중심부에 도착한 것이다. 그 순간 사람들은 어떻게 중심부에 들어오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떤 길로 가야 이 미로를 빠져나갈 수 있는지를 360도의 시야를 통해 알 수 있다.
역발상의 즐거움
잉엘스는 “이 미로를 만들면서도 사람들이 정말 재미를 느낄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며 미로라는 고전적인 소재가 사람들에게 식상하게 다가서지 않을까 우려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대본을 쓰지 않는다. 단지 무대를 만들어줄 뿐이다”라며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미로를 설계한 것에 대한 자신감도 내비쳤다.팬옵티콘의 숨은 의도는 교도관 없이도 죄수들 스스로를 감시하는 감옥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한다.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Max Weber는 이 개념을 감옥과 같은 감시 시설에만 국한하지 않고, 군대의 병영이나 병원, 학교나 공장 등에도 적용하여 우리 사회에 은연중에 퍼져있는 권력과 감시의 시스템을 해석한다. 반면 이 ‘뒤집힌 시나리오’에서는 팬옵티콘의 감시 기능을 통해 우리가 미로에서 느끼는 두려움을 알아가는 즐거움으로 바꾸어 준다. “중심으로 가는 길을 찾아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쉴 때, 미리 도착해 있는 사람들이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음을 단번에 알아챌 것”이라는 잉엘스의 말을 들으면, 분명 사람들은 이 미로를 빠져나가기 보다는 어떤 방향으로 여행할까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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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스케이프] 프란시스 하
거주의 지리학
다음은 한 가상 인물에 대한 정보다. ‘대전에서 출생 후 18세까지 거주 - 25세까지 서울 거주 - 약 3년간 강원도 거주 - 32세까지 미국 거주 - 37세까지 서울거주 - 45세까지 분당 거주 - 최근 세종시로 이주.’ 이 가상 인물에 대해 ‘강원도에서 군 생활을 한 남자로 유학을 다녀온 후 서울에서 취직했고 결혼 후 분당에서 살다가 최근 근무지가 세종시로 이전하게 된 공무원이나 연구원’이라고 추측해볼 수 있다. 한 사람의 지리적 이동 경로는 단순한 발자취를 넘어 개인의 많은 것을 내포한다. 일터와 거주지가 조금 멀더라도 자녀 교육을 위해 특정 동네를 고집하는 사람도 있고, 반려견을 위해 쾌적한 교외 생활을 계획하는 사람도 있다. 나이들면 전원에서 살고 싶은 사람도 있고, 한 번도 전원에서 살아보지 않아서 나이 들수록 도시 한가운데서 살아야 마음이 더 놓이는 사람도 있다. 어디에서 살고 왜 거기에 사는지는 그 사람의 현재를 말해주므로 살아온 거주지를 맵핑해 보면 저마다의 독특한 요인과 변화를짐작해볼 수 있다.
‘프란시스 하’는 무용수가 되고 싶어 하는 27세 프란시스가 꿈을 좇는 여정의 영화로, 주로 그녀가 집을 찾아다니는 이야기로 전개된다. 책의 챕터를 나누듯 그녀의 거주지가 영화의 장을 나눈다. 그녀는 영화 속에서 일곱 곳을 옮겨 다니는데 ‘브루클린 - 차이나타운 -캘리포니아 새크라멘토 - 동료의 아파트 - 파리 - 뉴욕 포킵시 - 워싱턴 하이츠’ 순이다. 브루클린에서 절친한 룸메이트와 지내는 일상으로 영화가 시작되고, 돌고 돌아 결국 맨해튼의 북쪽 지역인 워싱턴 하이츠에 본인만의 거주지를 장만하면서 끝난다. 룸메이트가 프란시스를 떠나 이사하는 이유는 평소에 살고 싶어 하던 트라이베카TriBeCa로 가게 될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다. 트라이베카는 로어맨해튼Lower Manhattan에 위치한 비교적 고급 주거지다. 그 친구는 이후 전근 가는 약혼자를 따라 기대에 부푼 채 일본으로 떠나지만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뉴욕으로 돌아온다.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거주지를 옮겨야 하는 프란시스에 비해, 그녀의 친구는 거주지에 대한 욕망이 우정이나 꿈보다 우선순위에 있다. 거주지는 취향의 선택이기도 하지만 개인적인 욕망과 사회적 신분상승을 드러내기도 한다. 프란시스는 그녀가 집착하는 집, 꿈, 친구 관계, 이 세 가지가 모두 불안정한 상태다. 크리스마스를 지내기 위해 방문한 새크라멘토는 가족의 따듯함이 있는 ‘집’이지만 꿈과 관계의 결핍을 채울 수 없기에 거주할 ‘집’은 못 된다. 우연한 기회에 공짜로 이용할 수 있게 된 파리의 ‘집’은 휴대전화 요금까지 걱정해야 하는 타국일 뿐, 꿈이나 관계와는 동떨어진 곳이다. 근사한 펜트하우스조차 그녀에게는 머물 수 없는 ‘집’에 불과하다. 내내 울리지 않는 휴대전화만 들여다보는 프란시스 뒤로 파리의 에펠탑 조명이 이토록 괄시받는 영화라니. 그녀에게 정착하지 못하는 ‘집’이란 이루고 싶은 꿈과 관계 맺기에 실패한 결핍의 상징이다.
서영애는 ‘영화 속 경관’을 주제로 석사 논문을 썼고, 한겨레 영화평론전문 과정을 수료했다. 조경을 전공으로 삼아 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지만, 극장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 영화는 경관과 사람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관계 맺는지 보여주며, 그것이 주는 감동과 함께 인문학적 상상력을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중요한 텍스트라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