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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공원 연구로 본 근대 공원의 민낯
서울학연구소 심포지엄, ‘근대 동아시아 수도의 재편’
한국 최초의 근대식 공원인 탑골공원이 세워진 지 올해로 117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공원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남산의 ‘공원’ 변천 과정으로 본 근대 공원의 일면을 조명한 연구가 발표됐다. 지난 6월 26일, 서울시립대학교 경농관 빨간벽돌갤러리에서 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의 심포지엄 ‘근대 동아시아 수도의 재편’이 열렸다. 세션1에서는 ‘남산의 근대화로 본 서울의 수도성’을 주제로 우동선 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의 “이토 츄타와 조선신궁”, 박희성 교수(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의 “근대기 남산의 ‘공원’ 변천 과정으로 본 한국 도시공원의 일면”, 염복규 교수(서울시립대학교 국사학과)의 “일제하 조선의 전원도시론 수용과 남산 남록 개발 논의의 의미” 등 3개의 주제 발표와 토론이, 세션2에서는 ‘동아시아 수도의 근대화’를 주제로 박삼헌 교수(건국대학교 일어교육과)의 “도쿄 투어리즘과 ‘제도帝都’, 도쿄의 탄생”, 신규환 교수(연세대학교 의사학과)의 “20세기 전반 북경의 도시공간과 위생”, 이길훈 교수(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의 “철도로 본 도쿄의 근대화” 등 3개의 주제 발표와 토론이 진행됐다. 이 심포지엄에서 박희성 교수의 발표는 남산의 ‘공원’ 변천 과정을 당시의 역사적 맥락과 사회·문화적 배경에서 파악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연구였다.
서울 도심 한가운데 위치한 ‘일본인’을 위한 공원
서울 도심 한가운데 위치한 남산공원은 오늘날 서울시민에게 여가와 휴식을 제공하는 안식처인 동시에 서울을 대표하는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했다. 서울의 전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서울타워, 연인들이 남기고간 수천 개의 자물쇠가 달린 조망대, ‘남산’ 하면 떠오르는 음식인 ‘남산 왕돈까스’까지 남산공원과 남산을 둘러싼 일대는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다. 하지만 남산에 생긴 첫 공원인 왜성대공원의 개원 당시(1898년 11월, 대신궁 봉안식 기준) 남산 일대는 일본인을 위한 행락지로 개발됐다. 왜성대공원이 자리했던 남산의 북사면 일대는 임진왜란 때 일본인이 주둔했던 곳으로 일본인 거류지인 본정통과 인접하며 이후 조선신궁이 세워져 종교적 기능까지 담당하게 된다. 박희성 교수는 이 점에 주목해 근대 공원의 일면을 포착했다. 영국과 프랑스의 경우와 같이 시민 사회의 성숙과 함께 자생적으로 ‘공원park’으로 발전한 것이 아니라 ‘일본인을 위한, 일본식 공원’이 세워졌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초기 근대공원의 한계를 조명했다. 공원park과 정원garden, 공공정원public garden 개념이 혼재되어 사용되었던 당시 일본의 조원학은 우리나라에 그대로 이식되었고 엄밀한 의미의 공원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공공 정원에 머물게 되었다는 요지다. 또한 박희성 교수는 신사와 사찰을 중심으로 공원과 행락 문화가 결합한 일본 특유의 양식이 남산에 조선신궁이 세워지는 데 일조했다는 점도 강조했다.
이 발표에 관해 토론의 패널로 참석한 성종상 교수(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는 “남산 공원은 우리와 친숙한 곳이지만 그 족보나 역사에 대해 정확히 알 기회가 없었는 데 제대로 공부할 수 있는 자리가 되었다”고 평가하며 “공공 정원과 공원의 개념 정의에 대한 부분은 논의가더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당시 남산에 조성된 공원의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았고, 시민에게 건강과 휴식, 레크리에이션 기능을 제공했다는 이유로 공공 정원에 적합하다고 보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공공 정원의 개념을 설명하는 중요한 키워드는 ‘식물’이라며 초창기의 근대 공원이 식물원과 과수원을 포함한 식물과 관련된 시설을 어떻게 갖추고 있었는가가 중요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근대 공원의 민낯을 보는 일
지난해 한 인터넷 신문에 “남산 케이블카 ‘오 마이 갓’, 볼거리 부족 ‘오, 노’”라는 제목의 기사가 올라왔다. 드라마나 영화 등을 보고 남산을 찾은 외국인들이 생각보다 즐길 거리가 부족하다며 실망감을 안고 돌아간다는 내용이었다. 남산을 찾은 외국인들은 케이블카, 서
울타워, 야경 등의 파편적이고 단순한 이미지만 기억하고 돌아갔을 것이다. 남산이 축적하고 있는 역사와 문화의 지층이 깊고 두터움에도 우리에게 친숙한 공간이기에 단순하게 이해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친숙한 공간을 다양한 관점에서 조명했다는 점에서 서울학연구소 심포지엄은 의의가 있다. 남산에 조성된 공원의 변천 과정을 통해 어원과 개념, 역사적 배경과 문화적 뿌리를 더듬으며 근대 공원의 민낯을 보는 일은 당시의 근대성을 이해하고 현재를 돌아보게 한다.
남산의 ‘공원’ 변천 과정으로 근대 도시 공원의 일면을 추적한 박희성 교수뿐만 아니라 조선신궁의 건립 이유와 양식과 유형을 연구한 우동선 교수, 남산주회도로 부설과 고급 주택지 개발 등에서 나타나는 일제강점기 전원도시론을 연구한 염복규 교수는 남산 일대의 근대화 과정을 재구성하며 남산을 다각도로 바라보았다. ‘근대 동아시아 수도의 재편’ 심포지엄은 ‘근대이행기남산’을 조경적, 건축적, 도시학적 시각을 통해 봄으로써 서울에 근대적 요소가 유입됨에 따라 도시가 어떻게 변화·재편되었는지 심층적으로 접근했다. 우리의도시가 한 가지 얼굴로만 보인다면 얼마나 따분할까?
이번 심포지엄을 통해 화려하게 화장한 얼굴로만 인식되던 서울의 민낯을 본 듯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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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캔버스가 되다
앱솔루트의 시티 캔버스 프로젝트
“아름답게 세상을 입히는 삶, 관심 있게 잘 감상했습니다. 정말 감동이네요.”
“숨 쉴 수 있는 도시를 만들었군요.”
“이면지 도시에 젊음이 색을 입혔네요. 그들의 열린 열정에 박수를 보냅니다.”
유튜브에 올라온 앱솔루트Absolut의 2분 40초짜리 광고가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www.citycanvas.kr). 지난 6월 13일에 업로드 된 앱솔루트의 시티 캔버스City Canvas 광고는 현재 35만 명 이상이 시청했다. 앱솔루트 페이스북 페이지의 시티 캔버스 게시물에는 2만 명 이상이 ‘좋아요’를 눌렀고 천 개 이상의 댓글이 달렸다. 시티 캔버스 프로젝트로 새롭게 변신한 골목길은 블로거 사이에서 새로운 출사出寫 장소로 떠오르고 있다.
보드카 브랜드 앱솔루트는 브랜드 정신인 ‘트랜스폼투데이Transform Today’를 모토로 한 문화, 예술 프로젝트를 전 세계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시티 캔버스는 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기획되었다. 서울 도심을 캔버스삼아 젊은 아티스트들이 자신의 작품을 통해 거리를 예술적으로 변화시키는 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40명의 젊은 아티스트들은 가회동, 문래동, 성수동, 이태원, 홍대 등 서울 시내 주요 장소 5곳을 선정해 5월 2일부터 18일에 걸쳐 완성했으며 완성작은 6월 16일에 공식적으로 공개되었다. 공사장 가벽, 철공단지의 골목길, 주택가의 외벽, 지하철 교각 등 도시의 미관을 해치거나 무심코 지나칠만한 평범한 공간이 예술가의 손에서 생동감 넘치는 장소로 재탄생했다. 특히 공공을 위한 예술 사업을 정부나 사회단체가 아니라 민간 기업이 주도했다는 점에서 앱솔루트의 프로젝트는 사람들의 호응을 샀다.
골목은 마케팅 시험장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시티 캔버스 프로젝트에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지만 부정적인 의견도 종종 눈에 띄었다. 한 누리꾼은 “마케팅의 이름으로 도시에 마구잡이 그림을 그리는 이런 마케팅 행위는 매우 폭력적이라 생각한다. 골목은 마케팅 시험장이 아니다”라는 의견을 남겼고, 다른 누리꾼은 “공공 영역에서는 젊은 아티스트들의 참여가 아름답지만 적어도 지역 마을의 담장은 그 마을에 사는 아이들이 함께 참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보존과 관리가 중요하다. 상업적이라 아쉽다” 등의 의견을 전하기도 했다.
시티 캔버스 프로젝트를 비롯한 이른바 ‘벽화 마을’ 사업은 2006년 경남 통영시 동피랑 마을이 전국적으로 유명해지면서 유행하기 시작했다. 철거가 계획되었던 낡은 마을 골목길과 담벼락이 벽화로 꾸며지면서 동피랑 마을은 젊은이들 사이에서 새로운 관광 코스로 떠올랐고 철거 계획도 철회되었다. 동피랑 마을이 ‘도시재생’과 ‘공공 미술’의 아이콘으로 급부상하자 서울 삼청동 벽화골목, 부산 감천동 벽화마을 등 전국적으로 100여 곳이 넘는 마을이 ‘지역 경제 활성화’와 ‘골목환경 개선’을 기치로 조성됐다. 하지만 지역 주민과의 소통 부재, 지역성에 대한 고려 부족, 관리 소홀 등으로 인해 예술이 아닌 ‘흉물’로 전락한 곳도 적지 않다.
진정한 ‘트랜스폼 투데이’ 될까?
시티 캔버스 프로젝트에 의해 새롭게 바뀐 모습을 기대하고, 또 한편으로는 걱정하면서 직접 프로젝트 대상지를 방문했다. 과도하게 알록달록한 페인팅이 오히려 도시 미관을 해치고 있지는 않을까 우려했던 나의 걱정과는 달리 세련된 색채와 디자인이 눈을 사로잡았다. 주변의 상가나 주택과의 분위기를 고려한 설치 작품과 벽화는 주변 풍경과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시티캔버스는 대상지에 대한 이해와 고려를 바탕으로 작업이 진행됐다. 수제화 타운이 형성되어 있는 성수동에는 위트 있는 신발 그림이, 문래동의 노쇠한 철공단지에는 기계 부품을 소재로 한 컬러풀한 벽화가 그려졌으며, 주점과 바가 많이 들어선 홍대의 한 빌딩은 보드카 모양의 설치 작품으로 장식했다. “언제 이런 것이 생겼어”하면서 신기해하는 젊은 커플들, “큐트cute!”를 외치며 사진을 찍는 외국인 관광객 등 작품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구경하는 사람들의 표정은 대체로 밝았다.
앱솔루트의 시티 캔버스 프로젝트는 ‘트랜스폼 투데이’라는 브랜드 정신처럼 일단 ‘오늘’을 변화시키는 데는 성공한 듯하다. 하지만 ‘오늘’이라는 단어는 어렵다. ‘오늘’이 과거형으로 지나가버리지 않고 지속적인 현재 진행형이 되기 위해서는 이 프로젝트가 일회성의 환경 미화 프로젝트에 그치지 않고 미래를 품을 수 있어야 한다. 시티 캔버스 프로젝트 관계자에게 작품의 관리는 어떻게 할 예정인지, 작품과 연계한 프로그램을 기획한 것이 있는지 등 향후 계획에 대해 물었다.
칠이 벗겨진 벽화 작품을 보수하는 계획이 잡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 이상의 구체적인 답변은 이어지지 않았다. 진정한 ‘트랜스폼 투데이’가 되기 위해서는 예술가의 작품들이 무관심 속에 방치되어 거리의 흉물로 전락하거나 변화하는 거리의 모습에 뒤쳐져 이질적인 공간이 되지 않도록 공공 미술의 새로운 ‘내일’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시티 캔버스 프로젝트의 도전은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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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TV ROAD 캠페인
폐 브라운관 활용한 승리 기원의 길
친환경 캠페인을 담은 조경 공간
삼성전자는 지난 5월부터 약 한 달 반 동안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승리 기원의 길-TV ROAD’ 캠페인을 진행했다. TV ROAD는 삼성전자의 폐 브라운관 TV로 친환경 길을 조성하는 ‘TV 굿 스위칭good switching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2014 FIFA 브라질 월드컵을 맞아태극 전사들의 선전을 기원하기 위해 조성되었다.
시민들이 기증한 폐 브라운관 TV 1만여 대를 에코 블록으로 재생산해 길을 조성했는데, 캠페인은 폐 브라운관으로 인한 환경 문제를 인식하고 이를 개선하려는 의지의 발로다. 버려진 폐 가전제품이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될 수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기존 시설의 노후화를 개선해 지속가능한 길을 제안하는 데 그 의미가 있다.
디자인 전략
TV ROAD가 설치된 수원월드컵경기장 조각 공원은 2002년 월드컵 당시 많은 방문객을 수용할 수 있는 진입 광장으로 이용되었고, 이후 월드컵 개최를 기념하는 조각 작품을 설치해 문화 휴식 공간으로 조성되었다. TV ROAD 조성 시 고려한 사항은 외부 도로와 광장의 전이적 공간이라는 점과 매표소가 잘 인지되게 하여 접근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조각 작품과 잔디식재 구간은 보전하기로 했으나, 인조 잔디 포장은 노후화로 훼손된 부분을 개선할 필요가 있었다. 잔디와 조각으로 구성된 공간에 상징성을 부여해 월드컵경기장과 어우러질 수 있는 길을 조성하고 폐 브라운관을 이용해 만든 시설을 통해 시각 효과, 휴식, 재미, 편리성이 더해진 다양한 활동이 가능한 공간으로 계획했다.
그리고 월드컵 이후 공간을 적극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여 CRT 재활용 블록의 홍보 효과를 높이고, 일시적인 포장이 아닌 지속성을 갖춘 상징적인 길이 되도록 했다.
승리 기원의 길
노력, 열정, 역동성을 테마로 1,315m2 공간에 슈퍼그래픽을 패턴화 하여 걷고 싶은 길을 조성했다. 승리 기원의 길에 사용된 재료는 다성기업에서 연구 개발한 199×99×T60 규격의 CRT 재활용 콘크리트 블록을 사용했고, 주위 구조물 및 천연 잔디 등과 어우러지도록패턴의 주조색을 녹색 계열로 선정했다. 그래픽의 인위적인 느낌을 줄이고 친환경적인 캠페인의 성격을 나타내기 위해 비슷한 색이 어우러져 표현되는 임의 포장패턴을 반영했다. 또한 슈퍼그래픽 패턴에서 자연스럽게 그러데이션gradation 되는 느낌을 주도록 계획하여슈퍼그래픽과 공간의 조화로운 연결과 확장을 도모했다. 산책로의 진출입 부분에는 TV ROAD 글씨를 패턴으로 반복하여 공간의 의미와 장소성을 나타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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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IFLA 학생 공모전
29개 국가에서 408개 팀 참여
지난 6월,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제51회 세계조경가협회(이하 IFLA) 국제 회의에서는 ‘2014 IFLA 학생 공모전’의 심사도 함께 진행되었다. ‘Urban Landscapes in Emergency’를 주제로 한 이번 공모전에는 29개 국가에서 총 408개 팀이 출품했고, 최종 심사 결과 탄광지대의 재생 방안을 제시한 ‘Prospect of Rebirth’가 영예의 1등작에 선정되었다. 본지는 IFLAInternational Federation of Landscape Architects로부터 자료를 협조 받아, 1등작과 2등작을 소개한다.
공모전의 목적
IFLA 학생 공모전은 세계적으로 변화를 주도할 수 있는 ‘조경에 대한 사고와 실천’의 중요성을 고취시키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지리학적, 사회적, 문화적 맥락의 공간을 다시 연결하고, 지역의 정체성과 가치의 정수를 회복하게 하려는 것이다. 이 공모전의 또 다른 역할은 교육을 통해 조경의 전문성을 향상시키고자 하는 데에 있다. 학생들은 이 공모전을 통해 조경을 배우는 전 세계 학생들의 작품과 함께 자신의 작품에 대한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또 IFLA로서는 학생들이 어떤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고, 조경가의 역할을 어디에서 찾고 있는지를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공모전의 주제:
Urban Landscapes in Emergency –Creating a Landscape of Places
이번 공모전은 학생들에게 다양한 도시 경관을 되돌아 볼 것을 요구했다. 자연과 지역의 문화에 대한 인간의 공격적인 행동 이후에 버려지고 폐허가 되어 땅의 가치를 잃어버린 경관, 또는 인간의 필요에 의해 변화를 받아들였지만 그 결과 환경적으로 균형을 잃어버린 부지 등이 이번 공모전에서 다루려 한 도시 경관이라 할 수 있다. 학생들은 도시에서 발생하는 불안전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반성적 사유’를 담아야 했다. 이‘반성적 사유’는 가장 적절한 제안을 통해 지속가능한 새로운 도시 경관의 건설 및 관리를 가능하게 할 대응법을 제시해야 했다.
1등작: ‘Prospect of Rebirth’
Qi Li, Huishu Sun, Shuang Zheng, Chen Li
_ College of Arts, Xi’n University ofArchitecture and Technology
이 프로젝트는 중국의 산시Shaanxi성 퉁촨Tongchuan시에 위치한 유화Yuhua 탄광의 생태적 재생 방법을 제안한다. 탄광 산업이 지역 경제를 책임졌던 곳이었기에 지속적인 석탄 채굴은 불가피했지만, 그 결과 환경은 파괴되고 오염되었다. 이곳은 관광 산업으로도 유명한 지역이었지만, 최근에는 이 역시 좋지 못한 상황을 겪고 있다. 1등작은 오염된 땅과 물을 정화시켜 다시 아름답고 지속가능한 환경을 만들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한다. 땅의 표면 조직에 대한 작은 수정만으로 대상지의 생태적 재생이 가능함을 보이고 있으며, 대상지와 유사한 형상을 보인 잎사귀의 ‘잎맥’에서 그 실마리를 찾았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프로젝트라 할 수있다.
2등작: ‘The Great Wall’
Yuan Xu, Hui Lyu, Simin Bian
_ Department of Landscape Architecture, Tsinghua University
2등작은 티벳의 고원지대 북동쪽에 위치한 기아나 Gyana 마을의 방재 시스템을 제안한다. 이 계획은 2012년에 발생한 지진으로 파괴된 보행로를 재건축함과 동시에 마을로 흐르는 일종의 진흙 산사태mud-rock flow(이류(泥流) 혹은 토석류라고도 한다)에 대한 방어책을 보여준다. 이 대범한 계획을 진행시키는 데에 있어, 지역내에 버려진 건물을 건설 자재로 이용한다는 점과 이 벽을 완성시키는 과정에서 많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경제적으로도 유용한 계획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이렇게 벽을 건설할 때 습득된 기술은 지진 피해를 입은 마을 내의 다른 곳에 다시 쓰일 수 있다는 측면에서 자활적인 재생이 가능함도 역설하고 있다.
심사평
우리는 매우 심각한 환경 문제에 직면했으며, 자연 재해의 규모 역시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경우가 늘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기술적 접근이 중요해진 상황에 처한 것이다. 조경가 역시 도시 문제 해결을 위한 새로운 해법 제안을 요구받고 있다. 하지만 복잡하게 얽혀 있는 도시 문제가 단지 새로운 기술만으로 해결될 수는 없는 법이다. ‘위급 상황’이 주제로 주어진 탓일까? 이번 학생 공모전에는 다양한 측면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기보다, 색다른 기술적 접근에만 집중한 출품작이 많았다. 다음과 같은 심사평은 그래서 더욱 기억할만하다. “학생들과 대학은 기억할 필요가 있다. 조경은 매우 광범위한 학문이고, 조경에서는 기술적인 측면만큼이나 사람과 그들의 인식, 자연 환경, 문화 등의 중요성 또한 담아야 한다.”
2015년 IFLA 국제회의는 러시아에서 얼마 전부터 IFLA 학생 공모전은 중국 학생들의 잔치가 되고 있다. 올해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7개의 수상작 중 6개를 중국 학생들이 차지했다. 29개 국가에서 408개 팀이 출품했지만, 중국에서만 전체 출품작의 70%가 넘는 292팀이 참가하여 마치 중국 학생 공모전이 된 듯한 느낌마저 든다. 미국 21개 팀, (개최국인) 아르헨티나 15개 팀을 제외하면, 10팀 이상 참여한 나라가 전무하다. 우리나라에서는 단 ‘한 팀’ 만이 출품했다. 참여가 저조한 국가의 학생들에게 탓을 돌리기보다, 주최 측에서도 심각하게 검토해보아야 할 불균형 현상이 아닐 수 없다.
1등상의 공식 명칭은 ‘Group Han Prize for Landscape Architecture’(상금 3,500달러)로 2007년부터 그룹한 어소시에이트에서 후원하고 있으며, 2등상은 ‘IFLA Zvi Miller Prize’(상금 2,500달러), 3등상은 올해부터 독일 브룬스 너서리Bruns Nursery에서 후원하는 ‘Special Prize Bruns Nursery’(상금 1,300달러)가 수여된다. 2015년에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6월 10~12일에 제52회 국제회의가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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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놀음’하는 젊은 건축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10월 8일까지
“산 할아버지, 구름 모자 썼네. 나비같이 훨훨 날아서
살금살금 다가가서 구름 모자 벗겨오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마당에 설치된 ‘문지방(최장원, 박천강, 권경민)’의 작품 ‘신선놀음’에 올라 인왕산 자락을 바라보니 산울림의 ‘산 할아버지’가 떠올랐다. 둥실둥실 흔들리는 공기 풍선 구름 사이에 설치된 트램펄린에서 신나게 뛰어 놀다보면 산 할아버지의 구름 모자도 벗길 수 있을 것만 같다. 국립현대미술관, 뉴욕현대 미술관The Museum of Modern Art(New York, 이하 MoMA), 현대카드가 공동 주최하는 ‘현대카드 컬처프로젝트15: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 전시가 7월 8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공식 오픈했다. 프로젝트 팀 ‘문지방’의 ‘신선놀음’은 이 프로그램의 최종 우승작으로 선정된 작품이다. 도심의 미술관 마당에 신선 세계를 옮겨 온 듯, 상상력을 자극하는 공간이 펼쳐졌다.
YAP, 건축의 트렌드를 보여주다
1998년, MoMA에서 처음 시작한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Young Architects Program(이하 YAP)은 젊은 건축가를 발굴하고 재능을 펼칠 기회를 주고자 기획된 공모 프로그램으로 매년 재기 발랄한 신진 건축가의 작품을 대중에게 소개하고 있다. YAP은 2010년부터 칠레, 이탈리아, 터키 등의 미술관에서도 개최되어 YAP International로 확장됐으며 올해엔 아시아 최초로 한국에 도입되었다.
현재는 글로벌 프로젝트로 거듭난 YAP이지만, 맨 처음 MoMA에서 시작된 계기는 단순했다. ‘여름에 해변에 온 느낌이 들게 하는 설치 작품을 도심 속 미술관에서 선보이자’는 의도였다. 미술관에서 관람객이 피서를 즐기고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는 공간을 제시한 YAP은 사람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후 YAP은 도심 속 휴식 공간을 제공하는 프로젝트이자 신선하고 재능 있는 젊은 건축가를 발굴하는 프로젝트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때때로 아주 실험적이고 기이한 작품을 선보이기도 하는 YAP은 변화하는 건축의 트렌드를 보여준다. YAP은 건축의 환경적인 책임에 관심을 갖고 ‘지속가능성’을 작품의 선정 기준으로 삼고 있다.
한 예로, 미디어에서도 큰 관심을 보였던 MoMA YAP 2014에 선정된 우승팀 The Living의 ‘HY-Fi’는 작품에 사용된 모든 재료가 옥수숫대, 버섯 등의 유기물질로 되어 있어 이산화탄소를 전혀 배출하지 않는다. 국립현대미술관과 MoMA, 현대카드가 공동 주최한 YAP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페드로 가다뇨Pedro Gadanho(뉴욕 MoMA 현대건축 큐레이터)는 7월 8일 ‘신선놀음’ 공개에 맞춰 국립현대미술관에 방문하고 완성작을 관람했다. 그는 이날 현대카드가 학생들을 대상으로 마련한 강연에서 “YAP이 올해 아시아 최초로 한국에서 개최되면서 진정한 글로벌 프로젝트로 거듭났다고 생각한다”며 “건축에 대한 전 세계적 담론이 형성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현대카드 컬처프로젝트 15: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의 우승작 ‘신선놀음’은 국내뿐 아니라 뉴욕(MoMA PS1), 산티아고(CONSTRUCTO), 로마(MAXXI), 이스탄불(ISTANBUL MODERN)의 미술관에서도 전시되어 전 세계 우승작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다.
경계 위에서 ‘신선놀음’하다
‘문지방’이라는 팀명에는 건축의 경계를 넘나들며 새로운 시도를 보여주겠다는 의미가 담겼다. 문지방의 ‘신선놀음’은 이번 프로그램의 필수 요소로 제시되었던 그늘, 쉼터, 물을 활용해 도가 사상에서 그려지는 신선 세계를 형상화했다. 직경 2m, 높이 3~5m의 거대한 공기 풍선 기둥 60개를 마당에 세워 그 사이를 지나는 사람이 마치 구름 속에 들어간 느낌을 받도록디자인했으며 구름다리를 설치해 전체적인 경관을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구름 모양의 공기 풍선 기둥 사이에 2개의 트램펄린을 설치해 그 위에서 뛰어노는 사람들이 구름 위를 떠다니는 느낌을 받도록 했다. 작품 안쪽에 설치된 안개 분사기는 작품 전체를 감싸는 안개를 만들어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구름 모양의 기둥, 구름다리, 안개 등의 요소가 만들어낸 ‘신선놀음’의 아이디어는 독특하면서도 재미있다. 화단이 조성된 바닥과 휴게 공간을 보면 조경적 요소가 담겨 있고, 구름다리가 만들어 내는 구조적인 틀에서는 건축적 특징이 나타난다. 공기 풍선과 안개가 자아내는 신비로운 미감과 트램펄린을 이용한 유희적 요소는 설치 미술 작품을 보는 듯하다. ‘신선놀음’은 건축, 설치 미술, 조경 등 그 어느 분야에 한정할 수 없는 새로운 경계에 도전한 작품이다.
‘신선놀음’은 신선하고 재기발랄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작품이지만 아쉬운 부분도 눈에 띄었다. 우선 YAP은 건축의 환경적인 책임을 강조하며 ‘지속가능성’에 가치를 두고 있다. 하지만 ‘신선놀음’의 신비로운 미감을 만들어내기 위해 계속 뿜어져 나오는 안개는 순환적인 시스템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소모적인 느낌이었다. 또한 도심 속 휴식 공간을 제공한다는 YAP의 취지에 맞게 ‘신선놀음’에는 공기 풍선 기둥 안쪽으로 벤치를 설치해 휴게 공간이 마련됐다. 그런데 벤치와 안개 분사기 사이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 벤치는 습기로 젖어 있었다. 실제적인 쓰임을 고려했을 때 이용객의 불편이 예상되는 부분이다. 구름 모양의 공기 풍선기둥 너머로 도약하는 느낌을 주도록 설치한 트램펄린은 실제로 뛰어보았을 때 높이가 낮아 ‘구름 위로 튀어오를 것 같은 느낌’은 받지 못했다. 공기 풍선 기둥의 높이와 트램펄린 위에서 도약했을 때의 높이를 고려해 디테일을 살렸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또한 안개로 인해 트램펄린에 물방울이 많이 맺혀 위험해 보이기도 했다. 섬세한 부분에서 아쉬운 점이 보였지만, 상상 속으로만 그려왔던 공간을 현실에 마음껏 구현했다는 점에서 ‘신선놀음’을 기획한 젊은 건축가들의 ‘패기’는 유쾌하고 재기 발랄하게 다가왔다. 건축은 ‘건축=건물’이라는 사고를 깨부수며 지평을 넓혀가고 있다. 이번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에서 그 실험의 결과물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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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변화: 보스턴’ 전시회
기후 변화 인식에 경종을 울리다
해수면은 지속적으로 상승하여 금세기 중반이 되면 2피트, 2100년에는 6피트가량 높아질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새롭게 형성될 해안선은 보스턴 지역의 해안 경관을 크게 바꿀 것이며, 도심지를 초토화시킬 만한 거대 폭풍의 발생 가능성 역시 한층 높아질 것이다.
지난4월 7일부터 6월 15일까지 보스턴에 위치한 디스트릭트 홀District Hall에서 개최된 ‘바다의 변화: 보스턴’ 전시회를 통해 보스턴이 해수면 상승에 얼마나 취약한지 알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건물, 도시 그리고 지역 차원에서 취할 수 있는 적극적인 전략들은 무엇인지 살펴볼 수 있었다. 전시의 기획 의도는 해수면 상승이 초래할 여러 문제들과 지역에 미칠 영향 등에 대해 보다많은 사람들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는 것이었다.
미국 전역의 다양한 해안 지역을 비롯한 세계 여러 국가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사사키 어소시에이츠Sasaki Associates의 전문가들은 기후 변화, 해수면 상승 그리고 생태적 복원력 등에 대한 이해를 증진할 필요가 있음을 인식했다. 또한 허리케인 샌디Sandy가 보스턴을 살짝 비껴가는 사건이 있은 후, 사사키 어소시에이츠는 자연 재해를 입고 나서야 비로소 마지못해 변화를 추구하기보다는 보스턴의 회복탄력성 증진을 위한 프로그램을 선제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점을 인식하게 되었다. 일 년여의 기간 동안 각기 다른 분야의 구성원으로 이뤄진 디자인 팀은 향후 나타날 수 있는 위험요소가 무엇인지, 그리고 보스턴 지역이 미래의 기후변화에 대비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디자인 팀의 구성원들은 사사키의 연례 인턴십 프로그램은 물론 보스턴 건축대학Boston Architectural College(이하 BAC)의 디자인 스튜디오와 함께 워크숍을 진행했는데, BAC의 경우 보스턴의 남부 및 동부 지역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환경 변화에 취약한 이들 지역을 위한 맞춤형 해결책을 마련하고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사사키 어소시에이츠는 BAC, 보스턴 시 정부, 그리고 보스턴항만 협회Boston Harbor Association 등과의 협력 관계를 보다 공고히 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지역 사회의 보다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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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스케이프] 경주
도시의 시간, 기억의 대상
대한민국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40대 이상이라면 경주에 대한 첫 기억이 수학여행일 확률이 높다. 동트기 전부터 산에 올라가 졸린 눈을 부비며 화장실인 줄 알고 들어가서 본 석굴암은 충격적으로 비현실적인 느낌이었다. 첨성대는 상상했던 것보다 작았고 포석정은 미니어처 같이 느껴졌다. 사진 속에서 본 유적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전통 양식을 어설프게 모방한 기와 장식의 4층 민박집과 넓은 잔디밭 위의 벚꽃이 석가탑보다 더 기억에 남는다. 바람에 흩날리던 벚꽃 아래에서의 수다는 눈부셨고, 민박집에서의 크고 작은 에피소드는 여전히 단골 안줏거리다. 경주의 첫인상은 불국사 앞에서 찍은 단체 사진(내 얼굴 찾기도 힘들다)처럼 박제된 이미지로 남아 있다. 첨성대 뒷모습의 표정이 앞모습의 그것과 어떻게 다른지, 황룡사의 빈터가 어떤 울림을 주는지 느끼게 된 것은 그로부터 시간이 한참 지난 후였다. 영화 ‘경주’(감독 장률)에는 불국사나 첨성대 같은 경주의대표 선수들이 등장하지 않는다. 오래된 골목, 찻집의 정원, 노래방 앞, 아파트 주변, 자전거 길 등 일상의 공간이 주요 무대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두 공간은 고분과 찻집 정원이다. 장률 감독은 재중 동포 3세로 특정한 장소가 가진 정서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이방인의 감성을 주로 그려 왔다. 장률은 경주를 처음 방문했을 때 백 개가 넘는 고분이 일상과 아무렇지 않게 섞여 있는 모습이 특이해 보였다고 한다. 영화 속 남자 주인공은 베이징 대학 교수로, 선배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에 왔다가 남은 시간을 경주에서 보낸다. 남자는 고분 앞에서 교복 입은 고등학생들이 입을 맞추거나 소풍 나온 유치원생들이 재잘대며 지나가는 장면을 본다. 장률이 실제 느꼈을 경주의 첫인상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남자는 미모의 찻집 여주인과 얽히면서 그녀의 일상에 하루 동안 동행하게 된다. 여자는 아파트 창문을 열면 보이는 고분을 바라보며 “경주에서는 단 하루라도 능을 보지 않고는 살 수 없어요”라고 말한다. 여자의 모임에 따라가 술을 마신 남자는 그 여자를 좋아하는 남자와 함께 술에 취한 채 걷다가 고분 위로 올라간다. 그녀는 고분에 엎드려 고분을 향해 소리치기도 하고, 건너편 고분에 올라가 자신과 똑같은 포즈로 누워있는 남자를 바라보기도 한다. 옆으로 누운 여자의 허리선과 고분의 부드러운 곡선이 닮아 보인다.
그녀를 짝사랑하는 남자는 그의 아버지가 고분 위에서 술을 마신 후 깔고 앉았던 돗자리를 타고 내려오곤 했다는 옛이야기를 들려준다. 고분에서 술 취한 채 썰매타는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웃음이 난다. “알 만한 사람들이 문화재 위에서 뭐하는 짓들이냐. 문화재는 너희가 올라가 노는 데가 아니야”라고 호통치는 경비원에게 그들은 결국 쫓겨난다. 엄숙한 죽음의 공간과 자잘한 일상이 얽히는 상황은 경주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풍경이다. 고분들과 멀리 보이는 도시의 불빛을 한 프레임에 담은 장면은 영화의 공간과 주제를 함축해서 보여주는 마법 같은 장면이다.
영화 속에서 고분이 경주의 실제 모습이라면, 찻집은 경주를 은유한다. 찻집은 오래전 모습을 간직한 채 현재의 시간이 흐르고 있으며 낯선 사람들이 방문하는 공간이다. 비밀을 간직한 아름다운 여주인이 있고 전통차라는 콘텐츠가 있다. 결코 화려하지 않은 작은 정원이지만 깊이와 신비로움이 느껴진다. 내부 공간과 정원은 주인공들의 시선, 움직임, 감정의 변화로 점점 그 경계가 불분명해진다. 정원의 빛은 방으로 들어와 인물을 비추고, 방안의 인물은 정원에 있는 인물을 훔쳐본다. 소나기가 잠시 왔다가 그치면서 정원의 빛이 석양으로 노랗게 물들면 방안의 빛도 변하면서 인물의 마음도 움직인다. 여주인공으로 분한 신민아는 키가 커서 집과 정원을 더 작아 보이게 만든다.
서영애는 ‘영화 속 경관’을 주제로 석사 논문을 썼고, 한겨레 영화평론전문과정을 수료했다. 조경을 전공으로 삼아 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지만, 극장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 영화는 경관과 사람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관계 맺는지 보여주며, 그것이 주는 감동과 함께 인문학적 상상력을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중요한 텍스트라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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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랜드리와의 아주 ‘평범한’ 인터뷰
진격의 ‘창조 도시’, 그 다음은 무엇인가?
창조 도시의 주창자로 알려진 찰스 랜드리Charles Landry(Comedia 대표)와 메타기획컨설팅(이하 메타)의 인연은 약 십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5년 메타는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추진단이 개최한 국제 콘퍼런스에 『The Creative City: A Toolkit for Urban Innovator』라는 저서를 통해 국제적인 명성을 얻고 있던 랜드리를 초청하는 작업을 도 왔다. 이후 그의 대표적 저서 중 하나인 『The Art of City-Making』의 한국어판인 『크리에이티브 시티 메이킹』 출간을 기획했고, 대구, 부산, 서울, 광주 등에서 랜드리를 초청할 때마다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면서 관계를 돈독히 해왔다. 이번 전라북도에서 개최한 콘퍼런스를 앞두고도 랜드리는 자신의 일정을 미리 공유하면서 서울에서 다시 한 번 메타 식구들과 만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혀왔다. 2014년 6월 9일 오후 4시 반 용산역에서 시작되어 자정에 가까운 시간까지 진행된 이 밀착 인터뷰는 기존의 포럼·콘퍼런스·세미나 등에서 이루어졌던 공식적인 인터뷰 형식이 아니라 함께 먹고 마시고 산책하는 자연스러운 분위기에서 궁금한 내용을 서로 묻고 답하는 아주 평범한, 그래서 더욱 특별한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용산역에서 서머셋 호텔로: 랜드리의 전북 방문기
몸집이 큰 백인 사내가 땀을 뻘뻘 흘리며 커다란 여행가방을 끌고 약속 장소로 다가왔다. “반갑습니다. 랜드리 대표님이시죠.” “오, 반갑습니다. 전화했던 정 부소장이신가요” “네, 이쪽으로 가시죠.” KTX를 타고 용산역에 막 도착한 랜드리와 함께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해 역 앞 광장으로 내려갔다. 길을 건너 신속하게 광화문 방향 택시를 타야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데, 갑자기 랜드리가 발걸음을 멈춘다. “와우, 저기를 좀 찍어야겠어요!” 용산역을 올려다보면서 이곳저곳을 끊임없이 자신의 갤럭시 스마트폰에 담는다.
택시에 올라서도 랜드리의 사진 찍기는 멈추지 않았다. 간판, 길거리, 나무, 독특한 건물들… “저게 국보남대문이죠? 저쪽으로 가면 서울시청이 있고요. 여기가 어딘지 알 것 같아요.” 오세훈 시장 시절, 디자인서울 정책 자문을 위해 시청을 방문한 적이 있었던 랜드리는 그 뒤를 이은 박원순 시장에 대해서는 잘 알지못하고 있었다. “새 시장님 이름이 뭐라고요” “메이어 박이에요. 박.원.순.” 그는 끝끝내 그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했다.
정종은(이하 정): “그건 그렇고, 이번이 한국에 일곱 번째 방문이신데, 전북 방문은 어떠셨나요?”
찰스 랜드리(이하 랜): “매우 흥미로웠어요. 흥미로운 콘퍼런스들이 진행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쉬운 것도 있었어요. 콘퍼런스 전날 밤에 호텔에 도착해서 자고 일어났더니, 다음날 아침에 바로 기조 강연을 하도록 일정이 짜여 있었죠. 저녁까지 콘퍼런스를 진행하고 나서야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그런데 내가 있는 여기가 도대체 어디지’ 일단 도시를 둘러보고 나서 프레젠테이션을 했어야 했는데, 기조 발표를 마친 다음에야 도시를 볼 수 있었죠. 저로서는 그 반대로 일정이 짜여있었다면 훨씬 좋았을 겁니다. 그 외에는 만족스러웠어요. 시골에서 전통 장인이 도자기 만드는 것을 본 일도 기억에 남구요, 한옥 마을에서 도시 속의 오아시스라고 불러도 좋을 만한 공간들을 여럿 만난 것도 좋았습니다. 오늘 기차를 타기 전에 익산에서 한 예술 큐레이터가 오래된 거리를 재생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곳을 방문했는데, 너무 멋졌어요. 그런 시도들 이야말로 정말 주목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1990년 영국 최초로 유럽문화수도로 선정된 글래스고에 대한 연구 보고서에서 ‘창조 도시creative city’ 개념을 처음으로 제시했으니, 랜드리가 이 개념을 파고든 지도 벌써 25년이 가까워진다. 그 세월 동안 그가 직접 방문해서 들여다보고 컨설팅을 진행한 도시의 숫자가 유럽은 말할 것도 없고 세계 전역에 걸쳐 수백 개를 헤아린다. 따라서 ‘그 경험에서 나온 알짜배기 교훈을 정제해서 들려주십사’하는 요청이 크게 무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허나 “내용이 없는 형식은 공허하고, 형식이 없는 내용은 맹목적”이라는 칸트의 말처럼,난생 처음 한 도시를 방문한 사람에게 최소한의 ‘내용’을 스스로 채우기 위한 시간을 미리 확보해주었다면 더욱 유익했으리라.
정: “예전에 방문했던 한국의 도시들은 서울, 부산, 대구, 광주 등 대도시들이었는데, 이번에는 전주에 머무셨죠. 어떤가요? 전하고는 좀 느낌이 달랐나요?”
랜: “네, 전주는 인간적인 규모human scale를 갖고 있더군요. 게다가 콘퍼런스 장소가 한옥 마을 주변이었기 때문에 색다른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전통문화가 갖고 있는 독특한 힘이 분명히 있죠. 그런데 제가 더 궁금했던 것은 일상 문화였어요. 그 도시에 관한 생생한 느낌real feeling은 특별한 것에서가 아니라 일상적인 것에서 포착되는 법이거든요. 제가 자꾸 다른 곳, 더 평범한 곳을 가자고 하니까 사람들이 좀 이상해 하더라구요. 한옥 마을 바깥을 충분히 보지 못한 게 아직도 아쉽습니다.”
베이징과 상하이의 타산지석:
한옥 마을과 이태원의 미래를 위한 레시피
잠깐 서머셋 호텔 주변을 산책하며 서울의 ‘평범한’ 것들을 들여다본 후, 저녁 약속 장소인 이태원의 고깃집으로 이동했다. 소맥으로 시작하겠다고 우겨서 우리 일행을 놀라게 한 랜드리. 쌈장을 잔뜩 묻혀 차돌박이와 꽃등심을 흡입하시더니 급기야는 옆 테이블의 쌈장까지 자기 앞으로 가져간다. 한국식 음주 문화에 대한 싸이의 새 뮤직비디오, 중국에서 시작된 한류의 기원, 최근 K-Pop의 기세 등에 대해 한참 동안 담소를 나누다가 상하이, 베이징, 칭다오 등 재빠르게 ‘창조 도시’ 트렌드에 올라탄 중국의 도시들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
랜: “언급한 도시들 외에도 여러 도시들에 초청을 받아 방문한 적이 있지만, 나는 매우 걱정스럽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중국의 도시들이 ‘미쳐가고 있다obviously going crazy’ 또는 ‘폭발할 것 같다explode’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최근 방문한 베이징에서 갖게된 느낌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중국의 여러 도시들이 창조 도시를 언급하지만, 슬로건으로 사용하는 데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중국 정부의 문화 부처차관과 얘기를 나누었던 기억이 떠오르는군요. 창조도시에 관한 얘기가 있었지만 실제로는 ‘창조 경제’에관한 논의, ‘소프트 파워’에 관한 논의였습니다. 각 도시들에 대한 구체적이고 섬세한 논의는 찾아보기가 힘들어요. 물론 나의 주관적 인상이 중국의 대표적인 도시들의 운명에 대해 정확한 판단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러나 나와 교류한 일군의 중국인 전문가들도 매우 유사한 생각을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문제의 근원은 ‘자유의 결핍’입니다. 자유를 동반하지 않은 창조성을 진정한 창조성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물론 서로 다른 문명에서 서로 다른 창조성 개념을 갖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이슬람권의 ‘창조성’과 기독교권의 ‘창조성’, 그리고 유교권의 ‘창조성’ 개념은 같을 수가 없을 테지요. 또한 같은 유교의 영향을 받았더라도 일본의 ‘창조성’과 한국의 ‘창조성’과 중국의 ‘창조성’ 역시 상당히 다를 겁니다.
다시 베이징과 상하이로 돌아가 볼까요? 우리는 중국인들이 보여주는, 무언가 일이 되게 하는 것, 과감한 의사결정 등에 대해서 감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가 뭐죠? 점점 더 그 도시들이 살기 어려운 곳이 되고 있는 것 아닌가요? 오염과 같은 건강 이슈, 사회적 불신과 양극화 등은 문제의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일례로 아까 내가 언급한 전문가들은 꽤나 부유한 사람들이었는데요, 거의 모두가 유럽이나 북미에 따로 집을 갖고 있었습니다. 기회만 되면 중국을 떠나려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어요.”
랜드리는 유럽의 창조 도시가 표방하는 ‘창조성’은 구성원 모두가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곳을 전제한다고 강조했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자유의 결핍’이야말로 중국의 ‘창조 도시’를 진정한 창조 도시로 인정하기 어려운 이유이며, 중국의 도시들이 자신의 문제를 제대로 직면하지도 못하고 폭발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낳게 한다는 것이다. 다소 주제가 무거워지기도 하였으나, 저녁 식사 이후 이태원 구석구석을 산책하게 되자랜드리는 금세 이 세상 모든 것에 호기심을 가진 천진난만한 아이로 되돌아갔다. 이견이 없는 바는 아니지만, 그 지명에서도 잘 드러나듯이 한국에서 이태원梨泰院/異胎院보다 더 국제적인 공간, 더 이문화적인 공간이 있을까? 이태원 뒷골목의 매우 모던한 카페에 자리를 잡고 주문을 마치자마자 랜드리에게 질문을 던졌다.
전통문화의 본산인 전주 한옥 마을과 이문화의 집합소인 이태원 중에서 어디가 더 당신의 마음을 끌어당기느냐고….
정종은은 서울대학교에서 미학을 전공하고 영국 글래스고 대학교에서 문화 정책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메타기획컨설팅에서Knowledge본부의 부소장으로 ‘세계문화정상회의 의제 설정 연구’,‘이야기산업 산업범위 확정 연구’, ‘꿈의 오케스트라 합동공연 효과성연구’, ‘콘텐츠코리아랩 아이디어융합공방’의 프로그램 개발 등을 수행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미학과에서 ‘예술과 사회’를 가르치고 있으며,한국문화정책학회 학술이사를 맡고 있다.
- 정종은 / 메타기획컨설팅 Knowledge본부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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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장면으로 재구성한 조경사] 경관의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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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꿈
구겐하임 미술관을 위시하여 불후의 명작을 무수히 남긴 미국의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1867~1959)에게 “당신은 당대 최고의 건축가입니다”라고 누군가 칭송하자 “당대뿐 아니라 동서고금을 통틀어 최고지”라고 응수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1 자신이 천재라는 사실을 알고 있던 천재였던 모양이다. 그의 명작 중 하나로 꼽히는 것이 ‘폭포 위에 지은 집’(낙수장(落水莊) 혹은 Fallingwater)인데 건축주 에드거 카우프만이 애초에 원했던 것은 폭포 맞은편에 집을 지어 창밖으로 폭포를 바라보며 즐기는 것이었다. 라이트는 이를 무시하고 폭포 위에다 집을 지어버렸다. 그리고 폭포 소리, 즉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잠드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카우프만을 설득했다. 그때 집을 폭포 위에 짓지 않고 맞은편에 지었다면 과연 역사에 남을 작품이 되었을까. 라이트는 차갑고 비인간적인 인구 밀집형 도시를 못마땅하게 여겨 평생 그에 대한 대안을 고민했다. 그 결과 1932년, ‘리빙 시티Living City’의 비전을 펼쳐보였다. 한 가족당 1에이커, 즉 4,000m2 정도의 땅을 고루 분배받기 때문에 브로드에이커 시티Broadeacre City라고도 불렀다.2 미국 영토를 4,000m2 단위로 나누어 모든 사람들에게 나누어줌으로써 대륙에 고루 퍼져 살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일정한 장소에 집중적으로 모여 도시를 형성하지 않게 되므로 도시로부터 자유로운 대륙이 될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미 대륙 전체가 하나의 도시이자 국가가 될 것이므로 도시는 결국 ‘어디에나 있고 아무데도 없게’ 된다. 4,000m2의 땅에서 농사도 짓고 살고 싶은 대로 산다면 새로운 사회가 형성될 것이라 했다. 결국 그는 새로운 이상향을 꿈꾸었던 것이며 건축가적 시선에서 도시설계를 통해 이를 이룩해 보려 했다. 만약 그의 비전대로 새로운 세상이 만들어졌다면 미국인들은 현재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설계한 ‘프레리 스타일’의 집에서 살고 있을 것이며 모기지론이니 금융사고니 하는 것도 모른 채 평화로울지도 모를 일이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를 위시한 소위 ‘시카고 학파’의 건축가가 중심이 되어 19세기 말에 짓기 시작한 프레리 스타일 혹은 프레리 하우스의 건축적 특징은 땅에 납작하게 엎드려 있는 듯한 강한 수평성이며, 황토색, 적토색 등 자연적인 색과 소재를 이용했다는 점이다. 자연순응적인 건축 양식이라고도 한다. 프레리 스타일의 건축가들은 그들이 지은 집이 주변 경관에 스며들기를 원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프레리였을까.
프레리는 대초원이라고도 하여 북미 중서부 평원 지대를 이루는 독특한 경관을 말하기도 하고 그 경관을 이루는 식물 군락을 일컫기도 한다. 서부 활극에서 인디언이나 카우보이들이 프레리에서 시원하게 말을 달리는 장면은 누구에게나 익숙하다. ‘프레리 위의 작은 집Little House on the Prairie’이라는 미국의 텔레비전 드라마가 있었는데, 1976년부터 1981년까지 한국에서도 ‘초원의 집’이라는 제목으로 방영되어 많은 사랑을 받은 적이 있다. 서부 개척 시대에 대초원을 ‘개간’하여 마을을 만들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후세의 우리들에게는 낭만을 불러일으키는 장면이지만 당시의 개척민은 그렇게 여기지 않았던 것 같다. 바다처럼 끝없이 펼쳐진 풀밭을 갈아엎어야 했으므로 힘겨운 싸움의 대상일 뿐이었다. 풀이 너무 커서 말 탄 사람들이 완전히 그 속으로 사라질 정도라고 했다. 건조기에도 지하수를 빨아들일 수 있도록 뿌리를 깊이 내리는 프레리의 ‘큰 풀’ 중에는 1.5m에서 7m 깊이까지 뻗는 것도 있었다.
농사 지을 땅을 마련하기 위해 억센 풀과 싸움을 하는 동안에는 프레리가 가진 생태적 가치라거나 경관의 아름다움 등에 연연할 겨를이 없었을 것이다. 1840년경 강철 쟁기가 도입된 후 1900년경까지 프레리는 무서운 속도로 사라져 갔다. 애초에 70만km2, 즉 한국 국토 면적의 일곱 배가 넘던 프레리 면적 중 현재 0.01퍼센트 정도만 남아 있다.3
19세기 말, 사람들은 다른 어느 곳에서도 유사한 것을 찾아볼 수 없는 프레리 경관의 유일성을 ‘발견’한 것이다. 지금의 일리노이 주가 바로 한 때 큰 풀 프레리가 지배했던 곳이다. 시카고를 중심으로 프레리 보존 및 복원 운동이 일어났다. 1901년 헨리 챈들러 카울즈Henry C. Cowles(1869~1939)라는 생태학자가 시카고 주변의 프레리의 형성 과정,변천사와 유형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다.4 물론 아메리카를 발견한 이래 수많은 식물학자가 대륙을 종횡으로 다니며 식물을 수집하고 기록하긴 했지만 하나하나의 개체에 대한 관심에 그쳤다. 이제 처음으로 생물지리학적 관점 하에 기후, 토양, 식물, 인위적 영향 등의 상호작용으로 인해 형성된 독특한 ‘경관’을 하나의 커다란 덩어리로 인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프레리는 백퍼센트 자연발생적인 것이 아니라 서부 건조지대의 ‘짧은 풀 초원Shortgrass Prairie’을 제외한다면 이미 인디언들의 손때가 묻은 경관이었다. 초지를 그대로 내버려두면 언젠가는 숲으로 천이하게 되어 있다. 들소를 사냥해서 먹고살았던 북미 중서부의 인디언은 정기적으로 불을 질러 초원 상태를 유지하는 ‘들불 관리’ 기법을 일찌감치적용했다. 초기 생태학자들은 그 사실을 미처 몰랐으므로 프레리를 복원하기 위해 수십 년 동안 진땀을 흘렸다. 수시로 비집고 올라오는 그악스런 목본식물을 근절하기 위해 농약을 엄청 뿌리기도 했다. 프레리를 복원하고자 하는 의도가 그만큼 절실했다. 사람들은 곧 프레리를 ‘미국적 경관의 이상형’으로 여기기 시작했다. 경관에 인간적 이념을 이입시킨 것이다. 이에 가장 앞장 선 인물이 빌헬름 밀러Wilhelm Miller(1869~1938)였는데, 그는 1915년, 조경에 프레리의 ‘영혼’을 담아야 한다는 내용으로 32쪽짜리 책자를 발간했다.5 프레리를 거의 종교적으로 찬양했던 밀러는 다음과 같은 ‘프레리 헌장’으로 글을 맺는다.
“나는 프레리에서 가장 우수한 인종들이 탄생할 것을 믿는다. 프레리에 세워진 국가와 지역사회의 아름다움을 옹호하기 위해 나는 최선을 다할 것이며, 이 아름다움을 훼손하고자 하는 탐욕에 대항하여 끝까지 투쟁할 것이다.”
빌헬름 밀러는 독일계 학자이며 조경가이며 지식인이었다. 위의 첫 문장과 독일이라는 국가를 합쳐보면 좀 듣기 거북한 대답이 나온다. 조경계의 나치 사냥꾼들 귀에 경종이 울렸다.
고정희는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나 어머니가 손수 가꾼 아름다운 정원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어느 순간 그 정원은 사라지고 말았지만, 유년의 경험이 인연이 되었는지 조경을 평생의 업으로 알고 살아가고 있다. 『식물, 세상의 은밀한 지배자』를 비롯 총 네 권의 정원·식물 책을 펴냈고, 칼 푀르스터와 그의 외동딸 마리안네가 쓴 책을 동시에 번역출간하기도 했다. 베를린 공과대학교 조경학과에서 ‘20세기 유럽 조경사’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베를린에 거주하며, ‘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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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 201, 설계를 다시 생각하다] 베끼기
양심의 가책
중간 발표는 꽤 성공적이었던 것 같다. 나의 설계를 늘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셨던 교수님도 지적보다는 긍정적인 조언을 많이 주셨고, 어떤 교수님은 최종 발표가 기대된다는 격려까지 해주셨다. 그런데 마음이 편하지가 않다. 왜냐하면 저 설계는 며칠 전 잡지에서 본 그럴듯한 작품들을 짜깁기하여 베낀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베낄 의도는 없었다. 참조만 한다는 것이 결국 베끼기가 되어버렸다. 다른 안을 다시 그려보아도 내 눈앞에 있는 모작만 못한 느낌이다. 그냥 이 안으로 끝까지 가볼까? 그러다 원작을 알고 있는 교수님이 지적을 하시거나 친구들이 알아채고 비아냥거릴까봐 걱정이다. 지적과 비웃음을 제쳐두고, 좋은 조경가가 되고 싶다는 내 자존심이 이를 허락하지 않을 것 같다. 작가는 자신만의 생각과 개성을 작품에 담아야 한다고 배워오지 않았던가?
그런데 문득 의문이 생긴다. 생각을 해보면 어디까지가 참조이고 표절인지 헷갈린다. 좋은 사례를 찾아보라는 교수님들의 조언이 베끼기를 어느 정도 용인한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배우는 과정이라면 어느 정도의 베끼기는 공부의 일부가 아닐까? 그렇다면 실무에서는 베끼기가 윤리적으로 해서는 안 될 짓일까? 베끼기는 과연 나쁜 짓인가?
베끼기의 역사
믿기지 않겠지만 예술의 궁극적인 목표가 베끼기였던 때가 있었다. 오늘날 예술을 논할 때 대개는 르네상스, 바로크처럼 시대를 기준으로 삼거나 낭만주의, 사실주의, 초현실주의와 같이 생각과 작업 방식을 공유하는 예술가들의 그룹을 묶어서 이야기한다. 처음 이러한 방식으로 예술의 흐름을 파악하고자 한 이가 독일의 미술사가 빙켈만Johann Joachim Winckelmann이다. 빙켈만은 한 편의 논문을 통해 작가 개개인의 분석 수준에 머물던 미술사의 담론에 가히 혁명적인 변화를 일으킨다.
빙켈만이 1755년 출판한 논문, ‘회화와 조각 예술에서 고대의 작품을 모방하는 것에 관한 생각’은 귀족 출신도 아니었던 빙켈만을 단번에 저명 인사로 만들 정도로 유럽 지식인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다.1 빙켈만은 이 책에서 고대그리스 예술을 서양 문명이 도달한 최고의 예술적 경지로 극찬한다. 그리고 예술이 창조적이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고대 그리스의 문화로 돌아가 철저히 당시의 예술을 베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금 들으면 궤변 같아도 당시 이러한 생각은 나름 오랜 문화적 근거를 갖고 있었다.
로마 시대의 예술은 대부분 그리스 예술의 모작이다. 예외가 있다면 정치인들의 동상이나 전승 장면을 묘사한 부조 정도밖에는 없다. 그러나 기술적인 측면에서 로마인이 그리스인보다 능력이 떨어졌던 것은 아니다. 로마 예술의 독창성이 떨어지는 이유는 예술가의 능력 문제라기보다는 미의 기준이 고대 그리스 예술에 있었기 때문이다. 로마 시대에 예술의 가치는 창의성보다는 얼마나 그리스의 작품을 잘 모방하였는가에 따라 결정되었다.2 예술가를 높이 평가했던 르네상스 시대에도 모방은 여전히 예술의 중요한 가치였다. 빙켈만은, 라파엘로도 제자들에게 그리스의 조각 작품들을 소묘하라고 시켰다고 전하고 있다. 라파엘로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르네상스의 대가들 역시 고대 그리스의 조각을 훌륭한 예술의 전형으로 여기고 작품에 반영하려 했다. 또한 르네상스 예술 이론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알베르티 역시 『회화론』에서 자연 풍경을 대상으로 습작하는 것과 함께 그리스 작품의 모사도 훌륭한 예술가라면 반드시 따라야 할 훈련 방법이라고 기술할 정도로 모방을 중요시했다.3
놀랍게도 예술가는 철저하게 고대 그리스를 베껴야 한다는 빙켈만의 주장은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는다. 실제로 빙켈만 이후 18세기 후반 예술계의 목표는 고대 그리스의 모방이 되었다. 우리는 이러한 사조를 신고전주의Neoclassicism라고 부른다. 신고전주의는 단순히 회화나 조각에 국한된 움직임이 아니었다. 미술은 물론 문학, 연극, 음악 역시 고대 그리스 비극의 구성을 따르려 했으며 건축에서 역시 그리스 신전의 양식을 재해석한 건물들이 도시의 주요 공간을 지배하게 된다. 오늘날에도 이러한 베끼기의 전통은 다양한 형태로 변형되어 지속되고 있다.
빙켈만의 시대처럼 오늘날 예술의 목표가 모방에 있지는 않지만, 사실 모방만큼 설계의 질을 단기간에 높일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도 없다. 모방이 윤리적으로 해서는 안 될 죄악은 아니다. 모방을 통해서 책으로는 배울 수 없는 뛰어난 디자이너들의 설계를 체득하게 되고 그들의 문제점도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베끼기에 너무 익숙해지면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잡지나 작품집을 통해서 설계를 하다 보면 누군가의 아류가 되어버린 자신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모방은 분명 양날의 칼이다. 문제는 모방을 하느냐 하지 말아야 하느냐에 있지 않다. 문제의 핵심은 어떻게 모방을 하느냐에 달려있다.
첫째, 다른 분야에서 베껴라
그렇다면 어떠한 방식으로 모방을 해야 좋은 베끼기가 될 수 있을까? 가장 안전한 방법은 다른 분야에서 베끼는 것이다. 분야가 다르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매체나 사고의 체계가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다른 분야의 작품을 베낄 때는 체계를 변환하는 고도의 해석이 필요하다. 이 경우 해석 자체가 결국 창조의 과정이 되기 때문에, 마음먹고 베끼려 해도 표절이 불가능할 때가 많다. 작곡가가 외국 곡을 표절했다는 말은 들어봤어도 건축 작품을 표절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다른 분야에서 베끼려면 유사한 인접 분야인 것이 좋다. 접근 방식에서 너무 차이가 생기면 베끼는 과정에서의 해석이 하나마나한 비유의 차원에 머물고 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영화감독들은 유사한 영상 예술 분야인 사진 예술에서 많은 영감을 받으며, 건축가나 조경가의 작업은 회화나조각과 같은 미술 분야의 작업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왔다.
20세기 초 모더니즘 운동의 중요한 흐름 중 하나였던 데 스틸De Stijl이 이러한 베끼기의 대표적인 예를 보여준다. 네덜란드어로 데 스틸은 ‘양식the style’을 뜻한다. 데 스틸은 그 의미처럼 예술의 다양한 매체를 넘어서 그 시대를 대표할 수 있는 보편적인 시각 예술의 양식을 제시하고자 했다.4 단순한 기하학적 구성으로 이루어진 몬드리안Piet Mondrian의 회화는 데 스틸이 생각한 예술의 보편적이고 추상적인 언어에 가장 가까웠다(그림1).5 주로 화가들이 주축을 이룬 데 스틸은 건축가인 리트벨트Gerrit Rietveld가 참여하면서 더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추상적 양식을 구현해나간다. 리트벨트가 디자인한 가구를 보면 기하학적 구성과 삼원색과 같은 몬드리안 회화의 특징이 그대로 반영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그림2).6 다음은 데 스틸의 수장이었던 반 두스부르흐Theo van Doesburg의 공간 구상도이다. 리트벨트의 가구와 마찬지로 이 다이어그램 역시 이차원적인 몬드리안의 평면 구성을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여 입체적인 구성으로 만든 시도라는 점이 분명하게 드러난다(그림3). 건축도 예외는 아니다. 데 스틸 건축의 대표적인 작품인 슈뢰더 하우스Schröder House는 외관상의 형태뿐만 아니라 내부의 인테리어까지도 추상 회화를 연상시키는 구성과 배치로 이루어져있다. 데 스틸의 경우 회화의 형태적 언어를 산업 디자인에서, 그리고 건축에서 베끼면서 그 영역을 확장해 나간 셈이다(그림4).
김영민은 1978년생으로, 서울대학교에서 조경과 건축을 함께 공부하였고 이후 하버드 GSD에서 조경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의 SWAGroup에서 6년간 다양한 조경 설계와 계획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USC 건축대학원의 교수진으로 강의를 하였다. 동시대 조경과 인접 분야의 흐름을 인문학적인 시각으로 읽어내는 데 관심이 있으며, 설계와이론을 넘나드는 다양한 활동을 펴나가고 있다. 역서로 『랜드스케이프어바니즘』이 있으며, 『용산공원』 외에 다수의 공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