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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본 경관 -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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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차 IFLA총회를 다녀와서
제 23차 IFLA총회가 동경과 아름다운 “녹”의 도시인 고베를 배경으로 지난 5월 26일부터 6월 1일까지 6일간 개최되었다. 이번 총회는 “환경의 창조”라는 주제로 열렸으며, “자연자원”과 “문화유산”에 관한 워크샵도 가졌다. 우리나라는 오휘영 교수를 단장으로 학계, 업계를 대표하는 30여명의 회원이 참가했는데, 오휘영 교수가 이사회에 참석한 것을 비롯, 워크샵에서 민경현 박사의 논문(한국의 전통정원에 관하여, 수석정원을 중심으로)과 이규목 교수의 논문(서울의 한옥보존)이 발표되었다. 이번 총회에서 우리는 미국 캘리포니아의 로버트교수를 비롯하여 이론의 기타무라씨, 헝가리의 메쉐니교수 등 세계의 저명한 조경가와 접하는 기회를 가졌다. 이번 대회에 참가하면서 수년전 일본이 전후의 당면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토를 넓히고 가꿔야 한다는 신국토창성론을 주창했던 것이 떠올랐다. 그들은 이 글에서 자연에 인공을 가미해 지상낙원을 만들겠다고 하였는데, 이는 식량과 에너지난의 해결은 물론이고 「경제동물」이라는 불명예를 벗고 「동양의 군자」가 되겠다는 그들의 의지를 반영한 것이었다. 이번 대회를 통해 일본을 돌아보면서 이들의 꿈이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음을 느꼈다. ※ 키워드 : ※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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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처치
1929년 경제공황이 몰고 온 금융가 월스트리트(Wall Street)의 파산은 그간 미국 조경가와 건축가가 이루어온 경관조성작업에 일대 변화를 가져왔다. ‘아름다운 공간’을 슬로건으로 하여 설립되었던 대규모의 조경회사들은 점차 소규모로 바뀌기 시작했다. 1933년 경제가 회복되면서 다수의 중상류층의 주택은 교외주택이나 전원적인 주거형태로 나타났고, 조경디자인에도 새로운 변화가 일어났는데, 이러한 획기적인 변화는 대부분 토마스 돌리버 처치(Thomas Dolliver Church)에 의해 이루어졌다. 조경의 거장 처치는 당시 극심한 불황속에 있던 샌프란시스코에서 그의 경력을 쌓아나갔다. 처치는 1902년 4월 27일 보스턴에서 알버트와 윌다 윌슨 처치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초기에 널리 사용된 세탁기를 개발해 낸 발명가였고, 어머니는 샌프란시스코 K.G.O라디오 방송국의 해설가이자 버클리대학에서 드라마강의를 했다. 토마스 처치의 조경가로서의 자질은 그가 정규교육을 받기 훨씬 이전부터 나타났다고 한다. 3세 때부터 꽃에 대해 비상한 관심을 보이는가 하면 12세 때에는 그의 집 정원을 재구성해 보기도 했다. ※ 키워드 : ※ 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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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재개발 ; 재개발의 재개발을 막아야 한다.
도시재개발은 주민의 생활개선이나 도시미관, 복지, 복리향상이라는 복합적인 문제를 함께 생각하는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진행과정에서 야기되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배제할 수는 없는 일이고 또 생존적으로만 해결 될 수도 없는 일이다. 따라서 사화전체의 참여와 관심이 병행되어야 할 일임에 틀림없다. 환경이란 생활체를 둘러싸고 있는 외계를 일컫는 말이다. 곧 우리의 삶의 터전이 되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삶의 터전인 환경의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최근 생물학에서는 환경이 유전인자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느냐의 문제까지 연구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이것은 환경의 중요성을 말해주는 동시에 이제껏 우리가 환경에 대하여 가져왔던 막연한 생각에 변화가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환경이란 자연환경이나 경관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환경은 인간관계와 같은 대단히 복합적인 요소까지도 포함하고 있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 연구결과에 의하면 극도로 인구밀도가 과밀한 상태에서는 인간적인 특성의 어느 부분을 상실케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성의 상실은 이미 도시에 인구가 밀집됨으로써 빚어지고 있는 현상을 통해 체험적으로 우리는 알고 있다. ※ 키워드 : ※ 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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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한정
소한정(小閒亭)의 발견은 1983년 6월 상순에 경남 양산지방사원의 원림과 별서의 원림을 조사하던 중 우연히 발견되었다. 양산군 물금면 화룡리 새터 부락에서 발견된 후 동년 6월 하순에 실측조사를 했었다. 소한정의 경영의 목적과 취지를 살펴보면 “소한”은 “안한”의 뜻으로 곧 명리지문을 피하고 재화지장을 멀리하여 예의염치와 양친과자를 지표로 삼아 정사에 안한을 취하고 자질을 강학하여 선조역동우탁세야의 거룩한 유풍과 유운을 계승하는데 있음을 명확히 하였다. 그리고 소한정의 원림을 경영흐는 의장과 정취는 못을 일러 세심당이라 하고 바위를 일러 침천암이라 하며 시내를 일러 삼미천이라 하여 사시화와 칠곡수와 천층석의 삼미천이라 하여 사시화와 칠곡수와 천층석의 삼미를 갖추었으니 곧 은일과 풍류의 경승을 이루었다. 또한 오동을 심고 연화를 심고, 회수를 심고, 매화를 심는데 봉황, 거북, 사슴, 학으로 하여금 의지하여 봉립오림, 귀상연지, 녹하회정, 일쌍매학을 조성하였다. 그리고 완연한 바위를 취하여 용와운곡을 이루고 형상의 돌로 세워 천년석불을 이루었으니 이것이 그 심오한 뜻이 지닌 십이경이다. ※ 키워드 : ※ 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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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인 경관속에서
우리가 경관을 얼핏 보고 느기끼에는 변화가 없는 정적인 것 같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현재의 경관이 만들어지는 데에는 경관 구성인자들이 끊임없이 변화되어 온 것임을 느낄 수 있다. 따라서 경관이란 갑자기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과거로 부터 현재를 지나서 미래로 연속하는 일련의 과정속의 한 순간을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모든 경관이 시간성을 내포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특히 시간성 때문에 특징적인 경관이 되는 것을 역사적 경관이라고 한다. 이러한 역사적 경관은 오늘날의 도시경관처럼 수 년이 멀다하고 몰라보게 달라지는 경관도 아니며 일시에 창조할 수 있는 경관도 더구나 아니다. 역사적 경관의 중요성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경관은 그 시대의 인간사회의 특질을 나타내는 것으로 인간에 대한 경관의 형성은 그 시대의 문화적 특셩을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역사적 경관속에서 우리는 우리들 선조들의 우수한 문화적 특질들을 느껴보는 것이 매우 중요한 사실로 여겨진다. ※ 키워드 : 경관, 역사, 문화, 특성, 변화, 역사적경관 ※ 페이지 :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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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모니의 풍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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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거주 환경과 과학기술의 과학만박 - 쯔쿠바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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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숲속의 정원
녹지공간에 대한 필요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인간은 토지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으며 토지에서 멀어질수록 사람은 정서적으로 불안해지고 부자연스러운 생활을 하게 된다. "정원을 사랑하는 사람은 아직도 에덴동산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이다." 라는 말이 있지만 도시만은 그런 즐거움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미국의 도시는 밀도가 매우 높아져서 쓰레기가 덮인 빈터나 주차장이 유일한 오픈 스페이스인 경우가 많다. 루이스멈포드는 "매트로폴리스의 중심지로 쉽게 접근 할 수 있도록 하는 계획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계획가는 도심을 살 수 없는 곳으로 만들었다." 고 말했다. 한동안 뉴욕시 특히 맨하탄 중심부가 이런 경향에 앞장을 섰다. 아마도 이처럼 광선과 공기를 차단하는 마천루로 뒤덮인 도시는 또 없을 것이다. 약 20여년 전 이런현상을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으로서 전 CBS 국장인 윌리암에스팔레이는 이 건물군의 중심에 사람들이 수시로 앉아서 즐길 수 잇는 오픈스페이스가 필요하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그는 이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는 깨닫지 못했다. 팔레이는 대도시의 한가운데 그의 아버지를 기념하기 위한 작은 공원을 세우고자 했다. 그정원은 전형적 의미의 정원 즉, 사람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나무를 심은 오아시스 였다. 그리고 이 공원은 공해물질 속에서도 항상 푸르름을 유지해야 했다. ※ 키워드: 콘크리트, 정원, 녹지공간, 에덴동산, 도심, 대도시. 나무, 토지, 숲속 ※ 페이지 : 76 ~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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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얼굴 간판
낯설은 동네에 가서 남의 집을 찾느라고 길을 헤메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문패들이 왜 이리 작은가' 하면서 짜증스러웠던 적이 있었을는 지 모르겠다, 개인주택의 문패도 말하자면 일종의 간판인데, 그 손바닥만한 크기의 문패를 일일이 확인하면서 집을 찾는 일은 결코 수월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모든 가정집이 한결같은 크기의 문패를 걸고 있는 것은 모든사람이 집안의 사정을 특별히 밖에 알릴 필요도 없고 알리고 싶어하지도 않는 까닭이다. 고작해야 우편물 정도를 받기위해 이름석자를 적어 내다걸면 그 뿐인 것이다. 또한 몇십년씩 한자리에 자리잡고 있는 관공서나, 거대한 빌딩을 가진 대기업체의 사무실들도 일의 규모나 건물크기에 비해서 그다지 크다고 할 수 없을 정도의 점잖은 간판을 달아놓는 것으로 족하다. 그러고보면 적어도 개인주택이나 관청 또는 대기업의 사무용건물들에서는 간판이 도시경관에 관련되어 말썽이 된 적은 없었다. ※ 키워드: 간판, 문패, 이름, 가정집 ※ 페이지 : 86 ~ 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