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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순하게 말 붙여 올 때까지 너와 나의 경계를 허물고 서로 손 잡는 숲이 될 때까지
폐선부지의 변신, 경의선숲길
한 번이라도 해보면 “그 기쁨을 아는 몸”이 되어 멈추기 어렵다는2 설계 공모전과는 달리, 무엇인가를 만들거나 짓는 사람에게는 다시 반복되는 일이라도 그 때마다 기쁨을 기대하는 ‘완성’이라는 순간이 있다. 흥분감이나 초조함이라는 자극적인 상태는 이미 잉태의 시간을 거치는 동안 차분해졌고, 희열이라는 자극적인 표현보다 그 때만큼은 ‘엄숙함’이라고 해도 좋지 않을 까? 자신이 설계에 참여한 공간을 (바쁘다보니?) 완성된 이후에도 가보지 못했다는 설계자도 있지만, 시공 현장까지 면밀하게 체크해가면서 설계를 피드백하고 해결해가는 책임 있고 부지런한 설계자에게도 그 완성의 순간 이전과 이후에 느끼는 감정은 다를 것이다. 그저단 하루의 차이라 하더라도….
공원이라면 그 순간은 언제일까? 사사키 요우지는 이 순간을 “준공식이 있던 날 초대된 어린이들이 느티나무 숲 속을 환성을 지르며 달려가고 아이들의 신선한 옷 색깔이 모노톤으로 통일된 바닥과 대비되어 약동하였다. 그 풍경이야말로, 우리들이 목표로 한 ‘사람이 주인공이 되는 도시 광장’ 탄생의 순간이었다”3라고 간접적으로나마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마음속에는 기대했던 모습을 확인하는 희열과 함께 그 순간부터 공간이 어떻게 작동하고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두려움도 뒤섞여 있다. ‘설계 의도를 잘못 이해하지는 않을까? 불편해하거나 생각하지 못한 더 좋은 안을 떠올리지 않을까’ 등등의 복잡한 감정일 것이다. 비유한다면 집이 완성되어가면서 전기와 상하수도, 가스, 인터넷 등 설비 장치들이 외부와 연결되어 마치 생명체와도 같이 박동하기 시작하는 부팅 모멘트에서 초조해하는 감정의 교차와도 같다. 출산의 순간, 무엇보다 아이의 손발가락부터 세어볼 때의 설렘…. 자기 새끼 아니면 누가 알까?
경사진 산책로를 내려가며, 저 아래에서 다소 불편한 관절을 내색 않으려는 걸음걸이로 올라오고 있는 주민에게 말을 붙인 것도 혹시라도 그런 어색함이 있는지, 있다면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 확인해보고 싶은 생각에서였다.
“이 동네에 사세요? 철길이 공원으로 바뀌니까 좋으신가요” 옷차림이 정갈해서 왠지 말붙여도 긴 답을 기대 못할 것 같은 어르신. 정답과도 같은 간단한 답만 되돌아오고, 다시 제 갈길 걸으며 사진 찍느라 아무래도 지체하고 있던 사이 마지막 지점을 되돌아와 반갑게도 다시 말을 붙여 오신다. 그래서 시작된 동행은 느릿느릿 연남동 구간의 끝인 홍대입구역까지 이어졌다. 이 부근에서 1960년대 후반부터 거주했다고 하시니 누구보다 지역의 변화에 대해 훤하시다. 당시 집에 유선 전화를 신청하고 설치하기까지 몇 년을 기다려야하는 힘든 시대였지만 특별히 신촌로터리에서부터 전봇대 5개 설치할 비용을 들여 쉽게 했다는, 그래도 동네 사람들에게 공용으로 쓰게 했다는 신화 같은 이야기까지. 그 정도로 힘쓸 만한(?) 위치에 있었으면서도 ‘이주’가 미덕인 서울에서 50년 가까이 한 동네에 정주하신다는 것이 반가운 일이다. 실은 필자도 1970년대 중반(엊그제 같은데 딱 40년 전이다!)이 지금 같았더라면 이 공원 길을 따라 서강대가 있는 노고산 아래의 고등학교를 통학했을 것이다. 이미 은퇴하고 공원 산책을 유일한 운동으로 하시는 어르신은 필자에게는 아버지 정도의 나이셨지만 적어도 이 부근의 경관 변화를 공유한다는 접점이 있었던 탓인지 말씀도 즐겁게 하시고 듣는 사람도 흥미 있는 동행이 되었다. “주민들 의견을 듣는다고 해서 나가보기도 했고 오래된 나무를 훼손하지는 않을까 걱정도 했는데 어떤 것은 잘 보전하고 옮겨 심은 것도 잘 되었어. 지하에서 나오는 물을 활용한 연못도 마음에 들어. 저절로 물고기가 살기 시작했다니까.”, “에엣, 정말이요?”
조동범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에서 학사와 석사 과정을, 원예학과에서 박사 과정을 수학했다. 전남대학교 조경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로컬에서공원 녹지 거버넌스 활동과 마을 만들기, 시민 가드너 양성의 현장 활동도 하고 있다. 2000년경부터 광주 도심 철도 폐선 부지 공원화 운동과 그 이후15여 년에 걸쳐 공원 조성, 주변 지역의 마을 만들기, 주민 참여 운영 관리 방안 마련에 참여하고 있다. 2011년부터 2014년까지 한국조경학회 기획·설계분과 부회장을 맡아 환경조경대전 심사위원장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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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의선숲길을 그리다
폐선부지의 변신, 경의선숲길
경의선숲길은 총연장 6.3km의 경의선 철길 폐선 부지에 조성된 선형 공원으로, 경의선(용산선)과 공항철도가 기존 철길의 지하에 건설되면서 공원화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현재 경의선숲길의 지하 약 10~20m 아래에는 경의선 철로(복선)가, 그보다 더 아래인 지하 약 30~40m에는 공항철도가 지나간다. 서울시가 철도 부지의 소유권자인 한국철도공사와 앞으로 30년간 무상으로 공원 부지를 사용할 수 있는 협약을 체결함으로써 그동안 지역 간 단절 요소로 남아 있던 철길이 새로운 소통과 교류의 장으로 기능하는 계기가 되었다.
홍제천부터 용산문화체육센터까지 이어지는 6.3km의 길 중 약 4.3km는 공원 조성 구간이고 2km는 복합 역사 구간이다. 공원 구간의 면적은 약 101,700m2, 폭원은 10~60m이며, 총 3단계에 걸쳐 조성되고 있다. 2012년 2월에 1단계 구간(대흥동 구간, 길이 760m, 설계 선진엔지니어링)이 준공되어 활발하게 이용되고 있다. 이번에 소개하는 연남동·염리동·새창고개 구간은 2단계 구간으로 올해 6월에 준공되었다. 3단계 구간은 와우교·신수동·원효로 구간으로 2016년 5월을 목표로 한창 공사 중이다.
경의선의 어제와 오늘
마포와 용산 일대를 횡단하는 이 길은 열차가 다니기 훨씬 이전부터 많은 사람과 물자가 왕래하던 활발한 교통로였다. 조선 시대에는 한양을 오가는 경강 상인들이 넘어 다니던 고갯길이었고, 길 주변으로 창고와 마을이 번성하기도 했다. 새창고개, 염리동, 광흥창, 신수철리(신수동) 등 경의선숲길이 통과하는 곳의 지명을 살펴보면 이 지역의 옛 모습을 가늠할 수 있다. 1906년 군사적 목적으로 철길이 놓인 이후에도 물류 수송의 중심 지역으로 기능하면서 점차 도시가 확장하는 양상을 보였으나, 1970년대 이후 운송 수단의 발달로 인해 점차 그 중요성이 약화되기 시작했다. 이후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이 도심 속 철길은 생활 환경을 저해하는 주범으로 낙인 찍혔고 주변 지역은 자연스럽게 슬럼화되었다.
안계동은 서울시립대학교와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조경학을 전공하고, 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 서인환경, 두산개발을 거쳐 동심원조경기술사사무소를 설립했다. 평화의공원, 서울숲, 난지한강공원처럼 굵직한 작품부터 사도감어린이공원, 율수원처럼 소규모 작품까지 다양한 층위의 프로젝트를맡아 왕성한 활동을 해왔다. 이남진은 서울대학교 산림과학부에서 임학을 전공하고,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조경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09년부터 동심원조경에서 일하고 있다. 2012년 여름부터 경의선숲길 프로젝트를 담당하여 지금까지도 현장과 사무실을 오가는 중이다. 경의선숲길지기의 창립 멤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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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선부지의 변신, 경의선숲길
Gyeongui Line Forest Park
1906년 군사적 목적으로 처음 개통된 경의선은 이후 산업철도로 한동안 사용되었고, 1951년부터 2009년까지는 통근열차가 운행되기도 했다. 그러나 도심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철길로 인해 지역 단절과 생활 환경 낙후 등의 문제점이대두되어 2005년부터 철길의 지중화 사업이 추진되었고, 이로 인해 발생한 폐선부지를 공원으로 조성하는 사업이 본격화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지난 6월 27일, 연남동·염리동·새창고개 2단계 구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 경의선숲길을 그리다 _ 안계동·이남진
• 사람들 순하게 말 붙여 올 때까지너와 나의 경계를 허물고서로 손잡는 숲이 될 때까지
_ 조동범
• 되살아난 옛 골목길의 정취 _ 유현준
• 경의선숲길권역의 문화 재생과 늘장 _ 최정한
• 경의선숲길을 거닐다 _ 조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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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노들섬에 그리는 꿈
Column: A Dream on the Nodeul Island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 사회를 꿈꾸는 노들섬
최근 국립현대미술관의 전시 ‘아키토피아의 실험’은 전쟁 이후 한국 사회가 꿈꿔온 건축·도시의 이상향을 잘 보여준다. 전시에 소개된 세운상가, 파주출판도시, 파주 헤이리아트밸리, 판교 신도시 등은 더 나은 곳을 꿈꾸는 유토피아적 상상력과 욕망이 투사된 장소들이다. 이들 장소에서 건축가와 정치인은 국가 개발의 이상을 탐색해 보았고(세운상가), 코디네이터가 된 건축가는 이상적인 문화 공동체를 실험해 보았다(파주출판도시). 한편 중산층의 개별 욕망이 집적된 최근의 판교 신도시는 국가 주도의 유토피아가 개인적 유토피아로 옮아간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지난 6월 10일 공고되어 진행 중인 ‘노들꿈섬 공모전’ 또한 이처럼 지금보다 더 나은 장소를 그리는 욕망에서 출발한다. 한때 중지도中之島라 불리고 시민들이 강수욕을 즐겼던 곳, 지금은 백로(鷺)가 노닐던 징검돌(梁)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노들섬에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 사회의 이상을 구현해 보겠다는 것이다. 이 공모전의 MP 서현 교수(한양대학교 건축학과)가 공모 지침의 서문에서도 밝혔듯이, 그것은 조선 개국 초기 우리 선조가 내다보았던 도시 천 년의 꿈과 희망의 그림이며 여전히 ‘서울’이 꿈꿔야 할 이상이다.
한강예술섬이 노들꿈섬이 되기까지
노들섬이 우리의 꿈을 그려낼 수 있는 공간이란 의미에서 ‘노들꿈섬’이란 이름을 얻고 공모전을 시행하게 된 배경에는 이 섬을 기념비적 문화 장소로 탈바꿈하려는 거듭된 시행착오가 있었다. 모두가 알다시피, 2005년의 문화 단지 조성 계획은 설계비 과다 요구 등으로 무산되었고, 2008년 재추진된 한강예술섬 조성 사업 또한 지나친 사업비로 찬·반 논란만 지속해 오다가 2012년 최종 보류된 바 있다. 이후 이 섬은 사업 장기 보류와 함께 텃밭으로 임시 활용되어 왔다.그러나 일각에서는 이 매력적인 장소야말로 보다 많은 사람들의 공적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이에 2012년 서울시는 이 섬의 활용 방안에 대한 논의를 재개했고, 2013년에는 전문가 의견을 조사하여 “오페라하우스 건립은 반대하지만 섬 자체는 잠재적 가치가 크므로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활용 방법에 대해서는 충분한 논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얻어냈다. 이와 동시에 다른 한편에서는 ‘노들섬 포럼’(2013년 8월)을 필두로 시민토론회, 워크숍 등 시민·전문가들이 함께하는 다양한 논의가 지속되었고, 사진 공모전, 학생 디자인 캠프, 온라인 시민 투표, 전문가 아이디어 스케치, 시민 아이디어 공모 등의 참여 프로그램이 노들섬의 새로운 활용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형성의 방편으로 진행되기도 했다. 이로써 노들섬의 조성 방향은 크게 두 가지의 가치로 수렴될 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시민 모두가 언제나 함께 가꾸고 즐기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단계적으로 완성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기획·운영 계획 선행 후 공간·시설 계획을 추진하는 단계적 공모 방식
노들꿈섬 공모의 지침은 공모전 주제어를 ‘시민’과 ‘역사’로 제시하고 있다. 즉 시민의 참여로 완성되는 섬, 적정한 규모로 시작하여 시민의 경험과 기억이 적층되는 섬을 지향한다(노들꿈섬 조성 사업은 2015년 시나리오 플랜, 2017년 1단계 완성, 2037년 최종 완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에 따라 공모전 형식 또한 기존과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번 공모전이 ‘기획·운영 중심의 단계적 공모 방식’을 통해 섬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에 대한 기획안부터 운영 전략, 전략에 최적화된 공간 계획, 그리고 탁월한 최초 운영자 모두를 선정하게 된 것은 필연적이다.
서울시가 총 3차로 나누어 진행하고 있는 노들꿈섬 공모 방식을 구체적으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참신하고 유연한 아이디어를 다양하게 받아 다수의 팀을 선정하는 1차 운영구상(기획·운영안) 공모단계를 마치면, 선정된 팀들은 2차 운영 계획·시설구상 공모에서 실현가능성이 담보된 운영계획서와 공간 및 시설에 대한 대략 구상안을 겨루게 된다.
이 2차 공모를 통해 운영자와 운영계획안이 최종선정되면, 선정된 안을 기반으로 시설 설계 지침을 마련하고 이 안에 따라 3차 공간·시설 조성 공모를 별도 추진한다. 이것은 건축, 조경, 도시 전문가가 참여하여 진행하는 전통적인 설계공모 형식이다. 이렇듯 대규모 공공 공간의 기획과 운영을 최초 제안자가 책임지고 맡는 것은 전례 없는 시도로, 꼭 필요한 시설을 점진적으로 완성해 나감으로써 과도한 재정 부담을 어느 정도 해소하고 시설 조성 후에는 공공의 운영비 보조 없이 자체 수익으로 운영이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한다는 점에서 또 다른의의를 갖는다.
한수의 비어있는 섬에 그리는 소통과 화해의 공간
그런데 왜 하필 노들섬일까? 접근성이 좋지 않아 그저 멀리 바라보며 스쳐 지나가던 섬의 아름다운 풍경을 우리 삶 가까이 끌어오려는 시도, 주변과 동떨어져 있어서 오히려 선도적 사업 방식을 적용하기에 상대적으로 자유롭다는 이점 등은 이 질문의 충분한 이유가 되겠지만, 그보다 신영복의 글씨 ‘서울’의 방서傍書 ‘북악무심오천년北岳無心五天年 한수유정칠백리漢水有情七百里’에서 조금 다른 의미를 찾아볼 수 있을 듯하다. 작가는 해설에서 “북악은 왕조를 상징하고 한수는 민초를 상징한다. 북악은 5천 년 동안 백성들의 고통에 무심하였지만 한수는 민초들의 애환을 싣고 700리 유정하게 흐르고 있다”고 쓴 바 있고, 이후 책을 통해 “북악이 권력의 상징이라면 멀리 낮은 곳으로 흐르는 한강이야말로우리가 회복해야 할 소통과 화해의 상징”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1 물론 이것은 시정市政이 지향할 바를 빗대어 표현한 것이겠지만, 이로써 함께 나누고 즐기면서 소통하는 공간을 한수의 비어있는 섬에 구현하려는 시도가 전혀 맥락 없어 보이지 않는다.
이 새로운 방식의 공모는 지난 7월 31일 1차 운영구상 공모 참가 접수를 마감하고 작품 접수를 기다리고 있다. 사례 없는 첫 시도이니만큼 리스크가 전혀 없진 않을 테지만, 그동안 전문가들과 서울시 공무원들이 시행착오를 최소화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부단히 애써 온 결과가 한강의 작은 섬에 새로운 장소적 의미와 시민이 공유할 수 있는 미래가치로 드러나길 기대해 본다. 그래서 과정과 결과 모든 것이 이 시대의 이상향이 되기를.
정귀원은 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서울건축에서 건축 실무를 익혔다. 『공간(SPACE)』, 『건축인 포아(poar)』 등의 건축 전문지를 거쳐 현재 건축리포트 『와이드(와이드AR)』 편집장으로 한국의 건축과 도시를 폭넓게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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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빅데이터 인문학
Editorial: Big Data as a Lens on Human Culture
가을을 여는 첫 페이지다. 산들바람 같은 글감이 없을까 한참을 고민했지만 9월호를 마감하고 있는 지금은 아직 한여름 폭염의 절정이다. 청량한 가을 맞이 에디토리얼을 쓰기에는 더워도, 너무, 덥다. 독자 여러분은 숨 막히는 무더위를 무엇으로 이겨내셨는지. 부지런하다면 이번 호 특집으로 소개하는 ‘경의선숲길’이라도 거닐며 여름밤의 후끈한 기운을 즐기겠지만, 밖에 나가 몸 쓰기를 천성적으로 싫어하는 나에겐 가만히 앉거나 누워 뒹굴며 닥치는 대로 책 읽기가 최선의 피서 방법이다. 아니 책장 넘기기가 더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며칠째 산만한 잡식성 독서를 이어가다 연초에 샀으나 묵혀두었던 노란색 표지의 책 한 권에서 모처럼 몰입의 기쁨을 경험할 수 있었다. 수학, 진화생물학, 언어학, 컴퓨팅을 넘나드는 젊은 과학자 에레즈 에이든Erez Aiden과 장바티스트 미셸Jean-BaptisteMichel이 지은 『빅데이터 인문학: 진격의 서막』(사계절, 2015).
『빅데이터 인문학』은 “인문학이 인간을 바라보는 방식의 혁명적 전환을 제안”하며 두 저자가 개발한 프로그램인 ‘엔그램 뷰어Ngram Viewer’에 대한 책이다. 빅데이터는 이제 낯설지 않은 용어다. 현재 보통 사람의 데이터 발자국, 즉 전 세계적으로 한 사람이 연간 만들어내는 데이터의 양은 거의 1테라바이트에 가깝다고 한다. 이것은 약 8조 개의 예-아니오 질문(1비트)과 맞먹는 양이다. 빅데이터는 더 커지고, 더 커지고, 더 커지는 중이다. 단순히 정보량이 많다는 뜻이 아니다. 빅데이터는 이전 방법으로는 ‘다루기에 너무 크다too big to handle’는 개념에서 나온 말이다. 두 저자는 넘쳐나는 데이터, 즉 디지털 지문을 분석하여 인류의 역사와 문화를 새롭게 볼 수 있는 렌즈를 고안했다.“인간 문화의 역사적 변화를 관찰하는 새로운 도구”임을 자처하는 ‘엔그램 뷰어’는 검색창에 특정 단어를 입력하면 단1초 만에 800만 권의 책을 검색해 그 단어가 지난 500년간 사용된 빈도의 추이를 그래프로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즉 어떤 단어가 지구상의 거의 모든 책에 매해 몇 회 등장했는지 그 결과를 빈도로 변환시켜 시각화해서 알려주는 놀라운 도구다. 쉼표를 사용해 여러 단어를 함께 입력하면 그 단어들의 사용 빈도를 동시에 비교해 볼 수도 있다.
언어는 인간의 생각과 욕망을 대변하고, 언어를 집적한 기록이 책이다. 엔그램 뷰어에 쓰인 800만 권의 책은 2004년부터 추진되고 있는 ‘구글 북스’ 프로젝트에서 추려낸 것이다. 구글은 이 세계의 모든 책을 디지털화한다고 선언한 후 지구상에 존재하는 1억 3000만 권 가운데 3000만 권 이상의 책을 스캔하여 디지털 텍스트로 만들었고, 2020년이면 이 거대 프로젝트가 완결될 전망이다. 에이든과 미셸은 이 방대한 자료를 1초 만에 읽어주는 독서왕 로봇을 만들어낸 셈이다. 만약 인간이 밥을 먹거나 잠을 자기 위해 중단하는 일 없이 분당 200단어씩
읽는다면 총 1만 2000년이 걸릴 분량을 순식간에 무료로 읽어준다.
충분한 설명이 됐는지 모르겠다. 무협지 이상으로 재미있지만 그래도 책 읽기가 번거롭다면 지금 바로 웹 브라우저 주소창에 books.google.com/ngrams를 쳐보시길 권한다. 직사각형 검색창에 관심 있는 어떤 단어를 넣고 엔터키를 누르기만 하면 엔그램 뷰어의 놀라움을 실감할 수 있다. 아마 많은 독자들이 landscape를 넣어보실 것 같다. 언제부터 경관이라는 단어가 책에 등장했는지, 어느 시기에 이 단어의 사용이 급증했는지, 지금은 어떤지, 그 빈도의 추이를 명징하게 보여주는 그래프가 뜬다. 랜드스케이프 가드너와 랜드스케이프 아키텍트를 비교해 보는 분도 적지 않을 것 같다. 쉼표를 사이에 두고 landscape gardener와 landscape architect를 넣으면, 전자는 1770년대에 처음 등장하고 후자는 1850년대에 처음 쓰이는데 1910년대를 기점으로 둘의 사용 빈도가 완전히 역전됨을 쉽게 알 수 있다.
엔그램 뷰어에 따르면 내가 태어난 1968년부터 ‘커피’가 ‘차’를 앞질렀다. 도넛의 철자가 doughnut에서 donut으로 변하기 시작한 건 던킨도너츠Dunkin’ Donuts가 창립된 1950년대부터라고 한다. 지난 2세기 동안 태어난 사람 가운데 가장 유명한―물론 여기서 ‘유명한’은 책에 이름이 가장 많이 등장했다는 뜻이다― 사람 열 명은 히틀러, 마르크스, 프로이트, 레이건, 스탈린, 레닌, 아이젠하워, 찰스 디킨스, 무솔리니, 바그너 순이다. 일주일째 나는 이 강력한 장난감에 별의별 단어를 다 입력해 보고 있다. 당연히 19금 단어들도 넣어 본다. 조경사 연구에 뭔가 단서를 얻을까 싶어 18세기 조경가들의 이름을쳐 본다. 그냥 이유 없이 이안 맥하그와 피터 워커를 비교해 본다. 환경미학과 환경윤리학은 환경철학의 부분 집합이라는 게 교과서의 설명이지만, 입력해 보니 환경윤리학의 출현 빈도가 환경철학의 세 배 이상이다. 한여름 무더위는 물론 소중한 점심시간도 잊게 해주는 중독성 강한 장난감이다. 데이터 세트를 다운받으면(books.google.com /ngrams/datasets) 시각화된 그래프를 통해 대강의 감을 잡는 것을 넘어 상세한 통계 분석도 할 수 있다.
저자들은 엔그램 뷰어에 대한 폭발적 반응에 이렇게 능청을 떤다. “우리는 이 시간 집어먹는 괴물을 만든 데 대해 모든 이에게 사과하고 싶다. 사람들이 그토록 많은 시간을 허비하도록 하는 것은 결코 우리의 의도가 아니었다. 방법이 있기만 하다면 우리는 생산성 저하로 야기된 모든 손해를 원상복구하고 싶다.” 엔그램 뷰어는 누구나 가지고 놀 수 있는 빅데이터 장난감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저자들이 “컬처로믹스culturomics”라고 말하듯, 그 목표는“빅데이터를 통해 언어, 개념, 문화의 진화를 탐구하는 인문학”이다. 물론 우리가 인문학적 상상력에 바탕을 둔 적확한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이 피서용 장난감은 빅데이터의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의 원제는 ‘Uncharted’, 말 그대로 ‘전인미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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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A] 천변 풍경
길고 긴 여행을 다녀오니 힘들었다고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은 지 얼마나 지났다고 다시 여행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지난 8월호 코다 마지막 부분에 이렇게 썼던 것 같다. “아마 올 가을에는 ‘즐거웠던’ 이번 여행을 추억하며 한국의 공원과 거리를 쏘다닐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기억은 단순화와 선택을 능란하게 구사’하기 때문에 그때쯤이면 고달팠던 현실은 생략된 채 감동적인 장면을 이어 붙여 편집한 여행이 남아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그렇다. 지금쯤 공원을 쏘다닐 것 같다던 예감이 맞아 떨어졌고, 지난 여행을 그리워할 것이란 예상 또한 그렇다.
예정대로 이번 10월호 특집의 주제는 ‘공원’이다. 편집주간과 편집장은 내가 휴가차 자리를 비운 사이 매년 10월호 특집은 작년 ‘활자 산책’의 바통을 이어 받아 외부 원고 없이 편집부 전체가 원고를 쓴다는 멋진(!) 전통을 만들었다. ‘당신의 공원은 어디입니까’ 같은 열린(모호한) 주제가 정해진 결과 편집부는, 말년 병장인 양다빈 기자부터 신입 사원인 박인수 기자까지 예외 없이 각자의 주제를 찾아 고민을 거듭하고, 편집회의 때마다 생각이 바뀌고, 주말이면 공원을 헤매고 다녔다.
아무튼 다시 여행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지난 여름 파리에서 이번 호에 소개되는 레퓌블리크 광장을 찾았다. 가보고 싶은 곳이 많아서였는지 이상하게도 파리 시 3구와 11구 경계에 위치한 이 광장 쪽으로 답사 루트를 짜기가 어려웠다. 그럼에도 해외 작품은 가볼 수 없으니 그 사정을 소상히 알지 못한 채 소개되는 것이 늘 아쉬웠던 터라 놓치기는 싫었다. 가까스로 돌아오기 이틀 전 저녁 무렵 광장에 가볼 수 있었다.
도착하고 보니 이곳이 내가 사진으로 미리 본 그 광장이 맞는지 눈을 의심할 지경이었다. 사진 속 광장의 밝은 모습은 모두 햇빛의 장난이었던가. 눈앞에 펼쳐진 광장은 마침 해가 지고 있기도 했지만, 잿빛 바닥에 쓰레기와 낙엽이 함께 굴러다니는 우중충한 모습이었다. 한쪽 계단에 걸터앉아 휑한 광장을 보고 있자니 눈앞의 높다란 동상에는 낙서와 뜯긴 포스터 자국이 가득했다. 동상의 기단에 붉은색 라커로 ‘정의와 보상justice & reparations’이라고 휘갈겨 쓰인 글씨는 음산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이 지역에 저소득층과 유색 인종이 많이 산다던데, 또 근처에 올해 초 테러가 있었던 주간지 샤를리 엡도 사무실이 있다던데,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의 옷차림이나 행동거지가 거칠게 느껴지기도 했다. 동상의 주인이 프랑스혁명을 상징하는 마리안느이고 그 밑에 쓰인 문구가 ‘자유, 평등, 박애’라는 것, 그리고 이 광장이 공화국 헌법이 선포되었고 각종 정치·추모 집회가 열리는 상징적인 장소라는 것은 한국에 돌아와서야 알았다. 광장을 처음 마주한 순간에는 ‘도대체 재작년 리노베이션했다는 이 광장은 무엇이 바뀐 것일까’ ‘과연 이 작품을 게재할 수 있기는 할까’ ‘그런데 이 별것 없어 보이는 광장에 사람들은 꽤 많은걸’, 그런 생각들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다 탕플 거리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다보니 광장의 북쪽 도로는 보행자우선도로로 광장과 도로 사이의 턱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보니 자전거는 광장과 도로의 경계 없이 자유롭게 달리고 있었고, 광장 안에는 넘어지고 구르며 스케이트보드를 연습하는 소년, 소녀들이 유난히 많았다. 탕플 거리를 따라서는 프랑스의 공유 자전거인 벨리브의 스테이션이 설치되어 있었다. 이 광장의 예전 사진을 찾아보니 2011년까지만 해도 마리안느 동상 주변은 자동차가 다니던 도로였다. 보행자나 라이더, 스케이트보더의 입장에서 보면 기존의 교통 광장이 탕플 거리까지 확장된 시민들의 광장으로 돌아온 셈이니 리노베이션은 격변에 가까운 일이었다.
광장 북쪽으로 뻗은 탕플 거리를 따라가면 생 마르탱 운하와 만나게 된다. 이 운하는 영화 ‘아멜리에’ 속 오드리 토투가 물수제비를 뜨던 곳으로 유명하기도 하고 유람선이 떠다니는 운치 있는 관광지라고 한다. 저녁이면 그곳에 젊은이들이 많이 모인다는데, 접근하기 편하도록 광장에서부터 바닥 포장까지 연결한 것을 보니 운하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다. 200여 미터쯤 걸어서 도착한 생 마르탱 운하는 생각보다 좁은 수로였고, 물이 깨끗해 보이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 수로의 양변에는 맥주 한두 병을 사이에 두고 젊은이들이 빼곡하게 앉아 있었다. 옷차림을 보아하니 관광객은 아닌듯 싶고 딱 동네 청년들이 마실 나온 분위기였다. 이런 고즈넉한 저녁 분위기의 열쇠는 공간의 스케일에 있는 듯했다. 수로의 턱에 걸터앉으면 발이 물에 닿을 듯 가깝다. 그러니까 가까스로 1차선이 됨직한 도로와 보도 그리고 운하의 수면 높이가 거의 비슷하고 양 편으로 빈틈없이 들어찬 오래된 건물들이 위요감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래서 화려하지는 않지만 쉽게 모일 수 있는 부담 없는 공간이 된 듯 싶었다.
생 마르탱 운하는 인공 운하다. 19세기 초 파리 시민들의 식수 공급을 위해 만들어졌는데, 간선도로를 만들면서 지금은 일부 구간이 복개되어 있다. 이 운하도 개발의 물결에 밀려 사라질 뻔 했다는데 유람선을 띄우고 몇몇 오래된 호텔 등을 보존하는 등 관광자원화 하면서 살아남았다고 한다. 센 강으로 이어지는 이 수로의 복개 구간에는 녹지가 조성되어 있고 광장이나 소공원이 징검다리처럼 연결되면서 산책하거나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파리 시민들의 일상에 얽혀 들어간다. 레퓌블리크 광장 리노베이션 설계안이 광범위한 지역 주민들과 주변 상인들의 요구를 수용해 만들어졌다는데, 일견 평범해 보이는 광장의 모습은 이러한 시민들의 솔직하고 실제적인 요구가 만들어 낸 것이리라. 이런 눈으로 그날 찍은 광장 사진을 살펴보니, 나름 친근함도 느껴지고 뭘 해도 좋을 것 같은 자유로움도 느껴진다.
이제 10월이다. 10년 전 이맘때 청계천 ‘복원’ 사업이 마무리되며 ‘도심 속 자연’이라는 이미지로 새로운 청계천 시대가 열렸다. 덕분에 당시 서울시장은 대통령이되었고, 전국의 지자체에는 생태 하천 조성이 유행처럼 번졌다. 10년 전 청계천프로젝트를 취재하던 나는 이 인공 하천이 개장 10일 만에 전국에서 330만 명의 사람들이 다녀갔을 정도로 대중적 성공을 거두었다는 데 놀랐던 기억이 난다. 요즘도 각종 축제의 무대이자 서울에 가면 한 번쯤 방문하고 싶은 장소로 꼽히는 청계천의 인기는 여전히 전국구인 듯싶다. 그런데 그 많던 청계천 상인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10주년을 맞은 청계천 ‘복원’ 사업. 과연 청계천은 누구의 삶을 반영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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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의 서재] 파크 라이프
Editor’s Library: Park Life
이건 순전히 분량 탓이다. 처음에는 기욤 뮈소의 『센트럴 파크』를 쓰려고 했다. 어떤 장르인지도 모른 채, 오로지 ‘센트럴 파크’라는 제목만 보고 장바구니에 담았던 책이다. 동시에 클릭한 책으로는 에릭 오르세나의 『오래 오래』가 있다. 『센트럴 파크』는 336쪽이고, 『오래 오래』는 611쪽 분량이다. 『오래 오래』에는 중국의 원명원, 파리 식물원, 프랑스의 베르사유, 세비야의 정원, 영국의 시싱허스트, 벨기에의 정원, 일본의 고산수식 정원 등이 배경으로 등장하고, 더구나 주인공이 원예가다. 저자는 파리에서 태어나 베르사유에서 자랐고, 경제학자이면서 대통령 문화 보좌관, 최고 행정 재판소 심의관, 국제 해양 센터 원장 등의 경력도 쌓았지만, 특히 국립고등 조경 학교 학장을 역임했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저자 소개 문구는 “여러 공직을 역임하는 동안에도 매일 새벽 두 시간씩 글을 써가며 왕성한 사회 활동의 경험을 문학으로 승화시켰다”는 대목이다. 혹하지 않을 수 없는 이력이다. 하지만 책의 전체 분량이 만만치 않다. 결국 “사랑과 감동의 마에스트로 기욤 뮈소의 매혹적인 스릴러”란 카피가 앞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센트럴 파크』를 먼저 집어 들었다. 택배가 도착했던 그 당시에 말이다.
하지만, ‘편집자의 서재’에 뭔가를 쓰기 위해서는 둘 중의 한 권을 ‘새롭게’ 펼쳐야 한다. 문제는 시간이 촉박하다는 점이다. 그 때, 불현 듯 10년 전에 읽었던 책한 권이 떠올랐다. 요시다 슈이치가 지은 제127회(무려 127회다) 아쿠타가와 상 수상작인 『파크 라이프』다. 전체 지면은 190쪽이지만, ‘파크 라이프’는 채 100쪽이 되지 않는다. 나머지 90여 쪽은 ‘플라워스’라는 별개의 작품이 차지하고 있다. 더구나 이 책은 열림원에서 2003년 3월(오유리 옮김)에 초판을 출간한 후, 노블마인에서 2010년 3월(이영미 옮김)에 다시 펴냈고, 은행나무에서도 2015년 8월(이영미 옮김)에 새로운 표지 디자인으로 개정판을 발간했다(책값은 7,800원에서 10,000원으로, 다시 12,000원으로 계속 올랐다). 즉, 꾸준히 팔리는, 여전히 읽을 만한 책이라는 의미다. 게다가, 제목이 ‘파크 라이프’라니? 바로 이번 특집을 위한 책이 아닌가. 주저 없이 노란색 건물과 공원이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파크 라이프』(요시다 슈이치 지음, 오유리 옮김, 열림원, 2003)의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주인공 ‘나’는 거의 매일 히비야 공원의 어느 벤치로 출근한다. 그렇다고 백수는 아니다. 자신이 지정해 놓은 공원 벤치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근처 쇼핑몰 미팅에 참석하는 게 중요한 일과다. 지하철에서 실수로 말을 걸었던 여자와 히비야 공원에서 우연히 다시 조우하게 되면서, 공원에서의 만남이 하루 이틀 이어진다. 급기야는 공원을 벗어나 사진 전시회도 함께 보러 가게 되고, 그곳에서 돌아 나오며 소설이 끝난다. 대단한 반전도, 조마조마한 갈등도 없다. 한마디로 사건이 거의 전무하다. 하지만 다음 줄을 읽게 만드는 묘사의 힘이 탁월하다. 빨간 기구를 공원상공으로 띄우는 노인을 비롯해, 저마다의 ‘파크 라이프’를 즐기는 여러 인물들을 바라보는 것도 흥미롭다. 굳이 이유를 따질 필요도 없다. 그들이 왜 그런지를. “‘무언가가 항상 시작되고 있지만 아직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는다’는 현대인의 존재의 불안감과, 뒤틀린 유머는 미미한 희망 같은 것을 획득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는 무라카미 류의 심사평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책장을 모두 덮고 나면.
그녀와 헤어져서 혼자 히비야 입구로 걸어갔다. 분수 광장 앞 벤치는 약간 지쳐보이는 회사원들로 만원이었다. 예전에 “도대체 왜 모두들 공원으로 몰리는 거죠”하고 긴토 씨에게 물은 적이 있다. 긴토 씨는 평소와는 달리 진지하게 한참을 생각하다가 “한숨 돌리려는 거 아니겠어”하고 시원스레 답했다. 딱 떨어진 대답이었기 때문에 별다른 대꾸 없이 그대로 지나치려 하자, “보라고, 공원이란 장소에선 말이야,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고 누가 뭐랄 사람은 없잖아. 오히려 누굴 붙잡고 권유를 하거나, 연설을 하거나, 뭔가를 하려고 하면 내쫓기지”하고 덧붙였다.1
흥미로웠던 대목 중의 하나다. ‘공원에서 무언가를 하면 쫓겨날 수도 있겠구나’란 생각을, 이 부분을 읽으며 처음 했다. 공원에서 어떤 새로운 걸 할 수 있을까, 공원이란 공간을 좀 더 색다르게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만 고민했지, 공원의 금기에 대해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물론 작가는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자유가 허락된 공간이란 점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겠지만 말이다.
“그쪽, 항상 저기 저 벤치에 앉지” 여자가 연못 건너편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가지를 쭉 뻗은 소나무 밑에는 확실히 내가 혼자 이곳에 올 때마다 앉는 벤치가 있다. “그쪽, 저 벤치에 먼저 와서 앉은 사람이 있으면 일부러 그 앞을 왔다갔다 하지? 요 며칠 전에도 먼저 와서 앉아 있던 커플 앞에서 일부러 휴대전화를 걸지 않았어? 큰소리로 3분 정도 계속 떠들어서 결국 그 커플이 못 버티고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신나하던 그 표정, 난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걸.”2
가장 신나하며 읽었던 대목이다. 참, 별거 아닌 부분인데 말이다. 공공 공간에 놓인 공공의 시설물이 순간적으로 한 개인에 의해 사적인 영역화가 이루어진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심리적으로 혹은 순간적으로 말이다. 그리고 그게 왠지 꽤 근사해 보였다. ‘이 공원엔 나만의 벤치가 있다!’ 실제로 긴토 씨의 대답처럼 “한숨 돌리려” 혹은 아무 것도 하지 않기 위해 공원에 간다면 좋은 위치의 벤치를 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꼭 이 대목 때문은 아니지만, 이즈음부터 벤치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틈만 나면. 그렇게 찍은 사진의 일부가 이번호 특집 원고에 실렸다. 곰곰이 생각해본다. 나의 공원이 아니라, 나의 벤치가 있었던가? 나의 ‘파크라이프’는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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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이 공원을 경영하는 시대, “공원을 부탁해”
공원경영자임포럼 심포지엄, ‘Who makes parks? : 나와 함께 할 사람들을 찾습니다’
철거 예정이었던 폐선부지를 공원으로 만든 ‘하이라인 친구들Friends of the Highline’, 시민의 힘으로 로테르담에 공중 고가 도로를 세운 ‘아이 메이크 로테르담I make Rotterdam’ 등 시민이 경영하는 공원과 공공 공간의 사례는 더 이상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서울그린트러스트를 비롯해 공원을 활동 무대로 삼고 공원 경영의 길을 개척해 나가고 있는 모임과 단체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들의 이야기와 비전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됐다. 지난 9월 10일 서울 은평구 서울혁신파크에서 공원경영자임포럼심포지엄 ‘Who makes parks? 나와 함께 할 사람들을 찾습니다’가 열렸다. ‘공원경영자임포럼’은 공원 경영이라는 새로운 임무를 스스로 맡은 사람들이 모여 공원과 도시를 이야기하며 현장에서의 경험을 연결 짓는 오프라인 포럼이다. 이강오 어린이대공원 민간 원장, 이호진 방울단 대표, 이민옥 서울그린트러스트 서울숲사랑모임 국장, 조경민 고가산책단 대표, 오성화 서울프린지 네트워크 대표 등 공원에 대한 새로운 상상을 펼치고 있는 다섯 사람들의 이야기가 심포지엄에서 소개됐다.
“아이들이 핸드폰을 들여다 보는 시간은 하루에 평균 7시간이나 되지만 야외에서 여가를 보내는 시간은 하루 평균 7분에 불과하다.” 흙과 자연이 좋아 ‘흙형’이라는 닉네임으로 포럼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강오 원장의 말에는 빈약한 어린이 놀이 문화에 대한 아쉬움이 묻어났다. ‘어.대.공.(어린이대공원)의 파트너를 찾습니다’란 제목으로 심포지엄의 첫 발표를 맡은 이강오 원장은 그 원인을 매력적인 야외 놀이 공간의 부족에서 찾았다. 그는 외주 업체에 일을 맡기는 오래된 일 방식 때문에 공원 경영이 효율적으로 운영되지 못하는 부분이 많다고 설명했다. 그는 “어린이대공원이 아이들이 야외에서 노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며 “이 꿈을 위해 어린이대공원에 다양하고 매력적인 야외 놀이 프로그램을 함께 기획하고 실행할 파트너를 찾고 있다. 공원에 대한 참신한 아이디어와 재미있는 상상을 공유해준다면 주어진 예산 내에서 지원할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방울단은 선유도 전신마취 음악 행사, 서울숲 DIY 트리 페스티벌, 서울역고가 꽃길 거리 등 공원과 공공 공간을 무대로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사회적 기업이다. 방울단의 이호진 대표는 “공간에 대한 시대적 필요에 반응하고 앞으로의 수요에 대비하는 일이 필요하다”며 방울단을 꾸려나가게 된 계기에 대해 소개했다. 그는 공간에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 ‘이 공간은 용도는 뭐지’, ‘누가 만든 거지’, ‘누가 이용하지’ 등 공간과 사람이 연결되는 맥락을 먼저 찾는다고 했다. 그는 “앞으로는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가 중요한 시대”라며 공원은 이제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에 생길 수요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프로그램을 구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이들에게 숲을 체험하게 해주고 싶어서 공원을 찾았다가 서울그린트러스트에서 상근 활동가로 일하고 있는 이민옥 서울숲사랑모임 국장은 ‘서울숲에서 제(멋)대로 들이댈 사람 찾습니다’라는 주제로 세 번째 발표를 맡았다. 그는 공원이 처음 개장한 2005년에만 해도 공원 문화가 성숙하지 않아 “공원에서 ~하지 마라”를 강조하는 일명 ‘하지 마라 캠페인’이 주를 이뤘다면 이제는 자유로운 활동을 지원하는 ‘해라 캠페인’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람들이 공원에서 다양하고 자유로운 활동을 펼침으로써 그 영향이 지역 사회에 확대되기를기대한다는 것이다. 그는 “서울숲의 프로그램이 단순히 공원 내에서의 활동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기를 바란다”며 그렇기 때문에 서울숲에서 ‘제(멋)대로’ 들이댈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반장’이라는 별명으로 더 많이 알려진 조경민 대표는 “여러분과 서울역 고가의 분양 상의를 하러 나왔다”며 “낮 동안에는 레스토랑, 밤에는 클럽으로 변신하는 공간이 서울역 고가에 생긴다고 생각해보라”고 서울역고가에 대한 새로운 상상을 이야기했다. 그는 보행 친화적인 도시 계획이 활기찬 거리, 생명력 있는 도시를 만든다는 다큐멘터리 ‘얀 겔의 위대한 실험’의 메시지가 서울역 고가 프로젝트에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마포석유비축기지를 생각하면 심장이 뛴다.” 마포구주민으로 서울 월드컵 경기장에 사무실을 두고 일하고 있는 오성화 대표는 시민이 만들어 갈 마포석유비축기지의 미래를 이야기했다. 그는 단순히 낭만적인 생각이나 공상으로는 시민이 경영하는 공원을 만들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단순히 수혜 받는 시민으로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 엄청나게 복잡하고 지난한 합의 과정을 거친다는 각오로 함께 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공원의 잠재된 사회·문화·경제·생태적 가치를 발굴하고 새로운 미래를 찾기 위해서는 복잡하고 지난한 합의 과정을 기꺼이 맡아줄 공원 경영의 자임자가 필요하다. 이날 포럼에서 다섯 명의 활동가가 발표를 마친 후에도 늦은 시각까지 청년들의 질문과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Who makes parks? : 나와 함께 할 사람들을 찾습니다’란 주제로 시작한 심포지엄의 끝에 시민이 공원을 경영하는 시대를 이끌어갈 예비 활동가 들의 모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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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의 각축장, 남산의 역사
‘남산의 힘’, 2015.8.7~11.1
우리에게 남산은 어떤 의미일까. 누군가에게는 데이트코스로 한번쯤 가봤음직한 남산타워와 케이블카의 기억으로, 누군가에게는 한 시절 안기부가 자리한 어두운 공간으로 기억되기도 할 것이다. 한편 2009년부터 서울시는 한양 도성 복원의 일환에서 남산 회현자락 정비를 추진하면서 문화재와 공원의 접점을 모색하고 있기도 하다.
서울역사박물관은 광복 70주년 특별 기획전으로 2015년 8월 7일부터 11월 1일까지 ‘남산의 힘’ 전을 1층 기획 전시실에서 개최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일제강점기와 근현대 시기를 거치면서 권력 등의 힘에 의해 크게 훼손되었다가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온 남산의 변화에 대하여 250여 점의 관련 역사 자료들을 망라하여 생생하게 보여준다. 전시는 ‘목멱, 한양의 안산’, ‘식민통치의 현장’, ‘국민교육장 남산’, ‘돌아온 남산’ 이렇게 4부로 구성되었다.
겸재 정선, 김홍도의 그림으로 만나는 남산
1부 ‘목멱, 한양의 안산’에서는 남산이 한양의 내사산 중 하나로 한양의 수호 산이자 친근한 앞산으로 자리 잡는 과정이 전시된다. 남산은 국가 제사의 공인된 공간이자 민간신앙의 성지로서 조선 초기부터 국사당과 와룡묘, 남관왕묘 등이 자리 잡고 있었다. 또한 아름다운 풍광을 배경으로 관리들의 계회 등 풍류의 장소로도 각광 받았다. 사도세자가 쓴 ‘남관왕묘비명’을 비롯하여, 겸재 정선의 ‘목멱산도’(백납병풍), 김홍도의 ‘남소영도’, 김윤겸의 ‘천우각 금오계첩’ 등 쟁쟁한 조선 화가들의 필치로 남겨져 있는 남산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한일합병조약 체결의 현장이자 황국신민의 언덕
2부 ‘식민통치의 현장’에서는 일제의 강점으로 남산이 겪게 되는 훼손의 역사가 펼쳐진다. 1880년대부터 일제는, 임진왜란 때 일본군 주둔지 ‘왜성대(남산 북쪽 일대)’ 지역에 일본공사관, 통감부, 통감관저 등을 설치하였고, 1910년 8월 22일에는 데라우치 통감과 이완용이 한일합병조약을 체결하면서 남산은 국권상실의 현장이 되고 만다.
일제에 의해 가장 심각하게 훼손된 지역은 전망이 좋은 남산 회현자락이었다. 일제는 이곳에 여의도의 두배에 가까운 43만m2의 대지를 조성하여 조선신궁을 세우고 신사참배를 강요했다. 이 밖에도 남산에는 일본인 거류지였던 왜성대에 경성신사, 경성호국신사, 노기신사 등이 있었다.
조선의 정신을 훼손하려는 시도는 이에 그치지 않고, 충신을 기려 만든 장충단을 장충단공원으로 개조하고 그 안에 이토 히로부미를 기리는 사당 박문사를 짓기도 했다. 한편 남산을 일본식 대공원으로 개조하기 위해 우리 전통 소나무 대신 벚나무와 아까시나무를 계획적으로 이식시켰다.
식민통치의 현장 코너에서는 ‘한국합병조약 및 양국황제조칙의 공포에 관한 각서’(1910), ‘경성부남산공원설계안’(1917), ‘조선신궁전경도’, ‘노기신사 수조’ 등 일제의 남산 개조를 통한 황국신민화 정책의 실체를 보여 주는 자료들이 대거 전시되었다. 특히 ‘노기신사 수조’는 남산 내에서 완형을 유지하는 거의 유일한 식민 유산으로 노기신사 터에 자리 잡은 남산원 측의 배려로 이번 전시를 통해 공개되었다.
한국현대사의 압축 공간
3부 ‘국민교육장 남산’에서는 1945년 8.15 광복 이후 현대사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으로서 남산을 이야기한다. 해방 이후, 다시 남산은 냉전으로 분단된 나라의 상징 공간이 되어 좌익 집회가 주로 열리는 이념의 무대가 되기도 했고, 조선신궁 자리에는 건국 대통령의 초대형 동상이 세워지고, 국회의사당 부지 조성공사가 진행되기도 했다.
1960년대 이후 거대 도시가 된 서울 속의 남산은 콘크리트 바다 가운데 푸른 섬이 되어갔다. 또한 남산은 국민교육장이 되어 반공을 주창하는 자유센터가 장충동에 들어서고, ‘애국애족’의 동상들이 산 중턱에 무수하게 세워졌다.
또 산 아래에는 국가와 정권 수호의 방패 역할을 했던 중앙정보부와 수도방위사령부가 자리를 잡았다. 특히 41개동 건물의 무소불위 ‘중정’은 ‘남산’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한편 정부의 경제발전 드라이브 속에서 남산은 공원용지 해제를 통해 급속히 개발되었다. 거대한 외인아파트와 각급 호텔이 다수 들어섰고 도로와 터널이 남산을 관통했다. 야외음악당, 도서관, 국립극장 등 시민위락 시설과 함께 남산 케이블카와 전파송신탑(서울타워)도 이때 세워지게 된다. 지나친 개발 정책은 향후 남산에 대한 보호 의식을 점차 싹트게 하였다.
권위주의 공간에서 시민의 공간으로
4부는 1990년대 탈권위주의 시대에 들면서 남산이 ‘자연’, ‘사람’, ‘역사’의 공간으로, ‘우리들의 남산’이 되는 과정과 함께 남산의 아름다운 모습과 남산 관련 최근의 주요 이슈들을 소개했다.
‘남산 제모습찾기 사업’은 권위주의 청산과 자연환경문제가 제기되면서 시작되었다. 안기부와 수도방위사령부가 남산에서 떠나갔고, 경관을 훼손했던 외인아파트가 폭파·철거되었다.
최근에는 자연환경 복원과 시민 휴식 공간 조성을 위한 시설 철거 사업이 오히려 역사의 기억을 지운다는 문제제기가 있기도 하다. 안기부 터를 인권기념관 등 평화의 공원으로 조성하자는 목소리 같은 남산을 되살리려는 다양한 노력들이 오늘도 활발하다.
전시 마지막 부분은 우리의 일상에 깊숙이 자리 잡은 남산을 시민들의 눈을 통해 보는 코너로 마련되었다. ‘추억 속의 남산’이라는 제목으로 시민 공모를 통해 모은 사진 중 30점을 전시했다. 남산의 다양한 역사와 기억은, 남산이 ‘산’이라는 자연에만 그치지 않고 문화,그리고 사회 구성원과 소통하며 지금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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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과 외지인, 이주와 정주의 수상한 혼탕
‘수상한 목욕탕’, 2015.8.1~10.11
1930년대 디자인을 그대로 복원한 가로등과 곳곳의 오래된 집들을 지나며 걷다 보면 마치 시간을 거스르는 듯한 느낌을 가지게 되는 이곳, 일본식 가옥과 이성당 빵으로 유명한 군산 영화동에 버려진 목욕탕을 개조한 미술관이 들어섰다. 오랜 역사의 흔적을 간직한 원도심, 그곳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주민들, 그리고 새로이 이사해 둥지를 튼 미술관이 쭈뼛하게 만나게 되었다.
영화동 문화재생 프로젝트 첫 번째 기획전 ‘수상한 목욕탕’은 지역에 문을 두드리고자 이당미술관(관장 정태균)이 마련한 전시다. 이에 레지던시 참여 작가 6인과 지역을 중심으로 전국적인 활동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는 초대 작가 5인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영화동 문화재생 프로젝트, 그 첫 번째 걸음
군산은 여러 시대의 물결이 퇴적된 곳으로 다양한 층위의 맥락을 지닌다. 고려 및 조선 시대에는 세곡을 운반하는 항구이자 수군의 요지였으며 일제강점기에는 일제 수탈의 주요 현장이 되었다. 군산을 중심 무대로 하는 채만식의 장편소설 『탁류』를 통해 이 시기 사회상을 엿볼 수도 있다. 그런가 하면 한국전쟁 이후에는 군사적 요충지인 이곳에 미군이 주둔하여 미군을 위한 위락 시설인 ‘아메리카 타운’이 조성되는 등 지역사 자체가 전쟁과 점령으로 점철된 한국사를 여실히 보여준다. 여느 개항장이나 비슷한 모습을 가지기도 하겠지만 영화동을 포함한 군산 원도심 지역은 근대의 흔적을 아직까지도 간직하고 있다. 이 때문에 최근 전국적으로 유행하는 지역사 발굴과 관광 코스 조성을 포함하는 지역 개발, 또는 도시재생의 정책적 요구와 맞물려 ‘시간여행거리’로 지정되기도 하였다.이렇게 드러나는 지역사는 상대적 미시사라는 측면에서 우리에게 조금 더 친근하게 다가온다. 그러나 여전히 관광 코스와 더불어 팻말에 새겨진 역사는 한 곳에서 온전히 긴 생을 살아낸 몇몇 토박이 어르신들 외에 대다수 방문자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며 예로부터 지금까지 지역에 존재하는 이야기들의 층위를 다각도로 반영하지도 못하게 마련이다. 아마도 그 간극을 비출 수 있는 것이 다양한 시선과 표현을 존중하는 문화와 예술인지도 모른다.
이에 이당미술관은 영화동 일대에 문화적 활력을 불어 넣고자 영화동 문화재생 프로젝트를 연례 기획으로 하여 지역을 경험하는 다양한 시선과 걸음을 해마다 새로이 조명하고자 한다. 그 첫걸음으로 레지던시 작가와 지역 작가들이 함께 하는 전시를 마련하였다. 그런데 첫 만남은 언제나 쭈뼛하기 마련이다. 미술관 역시 이곳에 올해 막 둥지를 튼 시점이었고 짧게는 고작 한달, 길게는 세 달 동안 머문 레지던시 작가들도 지역민과의 친화성 여부를 떠나 외지인 신분으로 잠시 머무는 방문자의 입장일 수밖에는 없었다. 이렇듯 전시 ‘수상한 목욕탕’은 지역과 외지인, 이주와 정주의 틈새 사이에서 만들어진 수상한 만남인 것이다.
수상한 목욕탕
참여 작가 강제욱이 담은 군산의 기록에서는 지금처럼 개조되기 이전에 폐허와도 같은 영화장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2008년 이후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져 비둘기들의 휴식처가 되기 전까지 동네 목욕탕 ‘영화장’은 40년 넘게 영화동 주민들의 몸과 마음을 씻겨주었다. 그 목욕탕 위의 2, 3층 객실에서는 각지로부터 온 손님들 역시 여독을 풀었음직하다. 토박이 어르신들, 각기 다른 이유로 기류하는 사람들, 지인을 찾아온 방문객 또는 새로움을 찾는 여행자 등 각기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와 만남이 겹겹이 쌓인 곳이 곧 지역이자 장소, ‘곳’이라면, ‘영화장’은 이렇게 무수한 개개인의 역사와 이야기가 교차하고 만나는 곳이었다.
전시 기간 중 연계 상영되는 영상창작단 큐오브이의 ‘영화동 쇼트다큐멘터리’는 이렇게 지자체의 지역사 스토리텔링에 채 담기지 못한 지역 주민 개개인의 생생한 목소리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러한 주민의 구술사는 곳곳에 전시된 이곳 영화장의 원 설계도와 함께 작가나 이곳을 방문하는 관람객이 전시를 관람하며 보다 다층적인 서사를 구성할 수 있는 재료가 되어 전시장에 투영되었다. 이 짧은 다큐멘터리가 영화동의 생생한 삶과 역사를 풀어냈다면 참여 작가들의 작업은 추상적인 풍경에서부터 군산을 산보하며 얻은 풍경, 사물과 사회적 관계에 대한 이야기에서부터 자연을 담는 작업까지, 영화동을 방문한 가지각색의 시선과 이야기를 드러낸다.
한국화가 정태균은 모필을 사용해 소박한 필치로 영화동의 정겨운 모습을 그려냈고, 정경화는 모필 대신 죽 필을 직접 만들어 금박이 있는 종이 본연의 성질을 매개로 ‘별이 빛나는 밤’을 화폭에 담았다.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깜깜한 밤의 빛나는 별들은 한없이 그림 앞에 멈추어 있게 한다. 실재와 가상 사이에서 우리의 시각과 인식에 의문을 제기해왔던 박종호 작가는 영화 동어느 식당 안에 걸려있던 액자 속의 군산 풍경을 캔버스 안으로 들이고, 회화작가 주랑은 일련의 이미지, 여행 루트와도 같은 그림을 통해 낡음과 새것 사이 영화동이 지니고 있는 다양한 층위를 드러낸다. 권혁상 작가의 그림에는 고향을 버리지 않고 모정이 뛰어난 참새의 모습에 자신의 삶을 투영한 그의 따뜻한 마음과 애정이 담겨 있다.
조각을 전공한 강제욱과 진나래는 미술관 안팎에서 찾을 수 있는 사물에 사회적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을 하였다. 다큐멘터리 사진과 설치를 중심으로 사회 참여적인 작업을 선보이고 있는 강제욱 작가는 최근작 ‘사물들의 우주Thinguniverse’를 통해 사물을 소유자의 모습을 투영하는 거울로 드러낸다. 주변의 사물이 형성하는 관계와 대화가 그의 손을 통해 미술관의 전면 유리에 드로잉되었다. 진나래는 미술관에서 수거한 의자들을 배열하여 사회적 관계의 기표로서 의자를 다루었는데, 이는 그가 ‘사회 조각social sculpture’이라고 부르는 작업 형식의 하나다.
군산 지역을 중심으로 활발히 활동하는 작가들의 작품은 밀도가 높았다. 유기종 작가는 사진과 설치 작업을 통해 한 사람 한 사람, 우리 삶의 여정을 기록하고자하였고, 이주원 작가는 어딘가를 걷는 동작을 낮은 시점으로 화면에 담아 작가가 바라본 주관적인 사회 정체성을 드러낸다. 회화와 설치를 주요 매체로 하는 고나영은 영화동의 특정 순간을 피라미드 안에 담았으며 고보연 작가는 버려지는 폐지와 자연물을 미술 작품의 재료로 하여 폐지 등에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하는 작업을 하였다. 그의 작업은 대지가 되고 그 대지 위에 새싹을 피우는 작품은 많은 삶의 무게를 지탱해야 하는 인간의 형상을 담았다.
길이 화하는 동네
작가들의 다채로운 작업들 외에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가 있다면 그것은 단연 오프닝에 마련된 영화동 맛집 뷔페 잔칫상, ‘영화장 셀렉션’이다. ‘길이 화하는 동네’라는 뜻을 가진 영화동에는 이렇게 퍼주고도 남는 것이 있는지 걱정하게 될 정도로 인심 후한 음식점들이 즐비하다. 이들의 대표 메뉴를 모은 지역 맛집 뷔페가 참여 작가와 지역 상인들의 따뜻한 성원과 노력으로 완성될 수 있었다. 레지던시 작가들과 미술관, 그리고 지역의 사람들이 첫인사를 나누는 데에 본 전시의 목적이 있다고 볼 때 자연스레 지역 주민들과 미술관을 서로 소개하고 이을 수 있는 뜻깊은 자리이기도 했다. 일종의 소셜, 또는 네트워크 다이닝이 되었던 셈이다. 첫걸음인지라 모든 것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이와 같은 주민들의 인심과 작가들의 도움 덕에 전시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
‘지역’이 무엇인지에 대해 우리는 수많은 답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행정 구역상 나누어지는 땅일 수도 있고 그 안에 거주하는 사람들일 수도, 또는 사람들이 인식하는 어느 불확실한 경계를 가지는 지점일 수도 있다. ‘수상한 목욕탕’은 지역을 곧 어느 지점과 그 지점 언저리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보고 이제 막 선착장에 내려 지역에 둥지를 튼 이당미술관, 유목민과도 같은 레지던시 작가들과 군산을 중심으로 활동해온 작가들, 그리고 영화동 주민들의 아직은 서먹한 만남을 주선하여 그 수상한 혼탕 속에서 영화동 문화재생 프로젝트의 후속 이야기를 상상해보는 자리로 마련되었다.
강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개어귀에서처럼 서로 다른 특성을 가진 물이 만나는 곳에는 새로운 흐름이 일어난다. 군산 영화동에 가득한 다채로운 이야깃거리들이 앞으로 보다 탄탄한 준비와 함께 엮여진다면 이는 해를 거듭하며 더욱 값지게 드러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 및 미술관과 더불어 예술과 문화의 주체인 작가들 역시 상생할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할 것이다. 군산의 지역민, 그리고 군산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서로 다른 특성이 만나 영화동에 어떤 새로운 흐름이 일어날 수 있을 지 귀추가 주목된다.
진나래는 미술과 사회학의 겉을 핥으며 문화 예술계 언저리에서 다방면에 관심을 갖고 게으르게 활동하고 있다. 20대 이후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겠다고 서투른 종합 곡예를 해오고 있으나 결론적으로 반드시 뜻대로만 구르지는 못했다. 작업에 있어서는 주로 진실과 허구, 기억과 상상, 주체와 객체, 존재와 (비)존재, 이해와 오해 사이를 흐리는 일에 관심을 두어왔으며 2012년부터는 아트콜렉티브 ETC(Enterprise of Temporary Consensus)를 공동 설립하여 활동하고 있다. 이당미술관의 레지던시 작가로 ‘수상한 목욕탕’의 기획 협력자로도 참여했다. www.jinnara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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