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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인재개발원
Samsung Electronics Leadership Center
삼성전자 인재개발원은 삼성전자 최초의 연수원 시설로 창립 45주년을 맞아 2014년 개원했다. 용인시 서천지구에 위치한 이 연수원의 서쪽 입구 방향에는 공동주거 단지가 위치하고, 북쪽과 남쪽으로는 서그네근린공원과 농서근린공원, 그리고 동쪽으로 삼성전자 기흥사업장이 접하고 있다.
대지는 나지막한 산에 위요되어 아늑한 느낌을 주지만 주변 근린공원 산책로의 레벨이 부지 레벨보다 높아서 시민들에게 시각적으로 노출된다. 또한 연수원 내로 생태 통로가 관통하면서 구조물이 노출된다. 삼성전자 기흥사업장과 붙어 있어 미세한 소음이 전달되며 공장이 경관을 저해한다.
건축 설계는 ‘건축의 틀을 넘어Beyond the Frame’라는 개념으로 내부 공간에서 경관을 품을 수 있도록 유리를 많이 이용했다. 건물 안에서 지속적으로 자연과 교감할 수 있도록 의도한 것이다. 이러한 건축 개념은 조경 계획과도 이어진다. 한국의 전통 터 잡기 방식에 착안해 경관의 틀을 짜는 방식과 차경 기법 등을 조경 설계의 모티브로 삼고자 했다.동쪽에서 발원한 물은 대지를 관통해 서쪽으로 흘러 연못으로 이어진다. 물의 흐름에 따라 경관이 연속적으로 변화하도록 유도하고 이는 전체 공간이 유기적으로 이어지게 하는 매개가 된다. 전체 공간은 크게 전정, 중정, 후정으로 구성된다.
작은 언덕들Wooded Knoll
연수원에 들어서면 입구부터 건물의 입구까지 가는 동안 보안 영역과 울창하게 숲을 이룬 작은 산을 지나가게 되는데, 지면의 레벨이 3m 정도 올라간다. 이 작은 산은 정문 앞에서는 주거 단지와 연수원을 분리하는 역할을 해주며, 운동장으로 향하는 시선을 차단한다.
이 산에는 주변 근린공원에서 자생하는 나무와 유사한 수종을 도입해 주변 자연과 자연스럽게 조화되도록 했다. 진입부뿐만 아니라 중정 부분에서도 작은 곡선 마운딩이 지속적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주변 자연과의 연결을 위한 장치다.
기본계획 Thomas Balsley Associates
기본설계 Thomas Balsley Associates, 제일모직
실시설계 제일모직
건축설계 삼우종합건축사사무소
시공 제일모직 리조트·건설 부문
위치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서천동로 59
대지면적 57,146.80m2
조경면적 23,435.06m2
준공 2014. 5.
제일모직(구 삼성에버랜드)은 1955년 조경 사업을 시작한 이래로 산업시설, 주거 단지, 공공시설, 오피스 등의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국내 조경의 역사에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해 오고 있다. 전문 역량과 경험을 바탕으로 국내 최대의 식물 연구소를 비롯해 디자인, 영업, 소재 조달, 시공,조경 관리 등 조경 사업 관련 전 조직이 구축되어 있어, 외부 공간의 가치를 끌어내기 위한 토털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 제일모직 / 토마스 바슬리 어소시에이츠 + 제일모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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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옥상정원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Roof Garden
올해도 가문 해인 듯하다. 몇 년 전부터 정원을 짓고 관리하면서 비가 언제 오는지 예민해졌다. 걱정에 잠깐 들려 본 옥상정원에는 역시나 식물들이 축축 쳐지고 있다. 해질 무렵 다시 와서 물을 줘야겠다고 생각한다.
팀워크로 가능했던 프로젝트
중앙도서관 옥상정원과 관계를 맺은 것은 지금으로부터 2년 전이다. 2013년 6월, 도서관 측의 요청으로 관정도서관이 들어설 자리에 있던 교목의 이식 계획을 세우고 이식 공사를 감독했다. 이를 인연으로 도서관신축과 관련된 조경 컨설팅을 할 기회가 있었고, 이후도서관장의 요청으로 중앙도서관 옥상정원을 설계하는 책임을 맡게 되었다. 여걸이면서도 꽃을 사랑하는 풍부한 감성을 가진 관장은 아무런 예산이 배정되어있지 않았던 옥상정원 공사를 위해 모금을 하고, 사례가 될 만한 공간을 함께 답사하면서 의견을 교환하고,설계·시공 과정 중 행정이 발목을 잡지 않도록 전방위로 노력한 세련된 클라이언트였다. 정원 조성 과정에서 핵심적 역할을 맡은 또 다른 여걸은 바인플랜의 윤미방 소장이다. 연구실에서 진행한 기본설계를 실시설계로 발전시키면서 최선의 디테일을 끌어내기 위해 많은 의견을 나누었다. 또 함께 시공감리를 진행하면서 윤 소장은 설계 의도대로 온전히 시공될 수 있도록 매진하는 파트너십을 보여주었다. 훌륭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는 설계 능력을 높이려는 개인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실제 공간을 만드는 과정에서 팀워크를 잘짜는 것 역시 무척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한 경험이었다.
설계 개념이 뭐냐고요
2014년 6월말, 뜨거운 초여름 햇살 아래 진행되었던 정원 공사가 여러 고비를 넘기면서 마무리되었다. 신축 도서관이 완공되기 전이었지만 건축물과는 별도의 프로젝트로 진행되었던 옥상정원이라 자체적인 준공식을 열게 되었다. 총장과 내빈을 수행해 정원을 한 바퀴 돌며 설명할 기회가 있었다. 이때 설계 개념이 무엇이냐는 당연히 예상된 질문이 던져졌다. 공간 구성 이유를 간결하게 설명했지만 인상적인 대답으로 들리지는 않은 듯했다. 뇌리에 남는 시적 감상을 전달하지도, 많은 사람이 주목할 만한 명분을 제시하지도 않았으니그럴 법 했다.
설계의 의도를 되짚어 보면, 옥상정원을 캠퍼스 다른 외부 공간과 비교해 월등히 세련된 모습으로 구현하고 싶은 의지가 있었다. 이를 설계 개념이나 의도라고 할 수는 없지만, 대학 구성원이 관성적이고 식상한 조경에 익숙해지지 않았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람이 깔려있었다. 또 다른 욕구는 옥상을 처음 방문했을 때 받았던 강렬한 인상을 어떻게 옥상정원에 투영할 수 있을지에 관한 것이었다. 큰 하늘과 통쾌한 뷰, 그리고 사막 위에 서 있는 듯한 단순 거대한 공간감. 구획되고 다듬어진 이후에도 이 후련한 기분이 스미듯이 이용자에게 전달되었으면 했다. 만약 이 감각이 옥상에서 지워진다면 좋은 설계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중앙도서관 옥상정원
기본설계·디자인감리 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LUL(Landscape Urbanism Laboratory)
실시설계·디자인감리 바인플랜
설계팀 정욱주·원종호(LUL), 윤미방·박현진·양희우(바인플랜)
시공 대우건설
발주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위치 서울시 관악구 대학동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
면적 6,825m2
완공 2014. 6.
관정도서관 중정
기본설계·디자인감리 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LUL
실시설계·디자인감리 바인플랜
설계팀 정욱주·최진영·김상권(LUL), 윤미방·박현진·김재영(바인플랜)
발주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위치 서울시 관악구 대학동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
면적 120m2
정욱주는 서울대학교 조경학과와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디자인대학원 조경학과를 졸업하였다. 같은 대학원에서 겸임교수로 재직하는 동시에 올린 파트너십(Olin Partnership)과 필드 오퍼레이션스(Field Operations)에서 조경가로 활동하면서 대규모 도시 공원, 대학 캠퍼스마스터플랜 프로젝트 등을 수행했다. 현재 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이며, 도시 정원과 대형 공원, 문화적 장소 구성에 대한 디자인 리서치와 실천을 행하고 있다.
- 정욱주 / 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L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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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세상에서 가장 긴 화분
1.
작년 가을, 박원순 서울시장은 뉴욕의 하이라인에 올라 서울역 고가 프로젝트의 시작을 선포했다. “서울역 고가는 도시 인프라 이상의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갖는 산업화 시대의 유산”이므로 “원형을 보전하면서…하이라인 파크를 뛰어넘는 녹색 공간으로 재생시켜 시민에게 돌려드리겠다.…서울역 고가가 관광 명소가 되면 침체에 빠진 남대문시장을 비롯해 지역 경제도 활성화될 것”이다. 산업 유산이므로 남겨서 하이라인처럼 명소로 만든다는 낭만적 논리는 국제 설계공모의 기본 정신으로 이어졌다. 논란과 우려 속에서 강행된 ‘서울역 고가 기본계획 국제지명 현상설계’의 초청사에서 박 시장은 이렇게 말한다. “1970년에 준공된 서울역 고가는 근대 서울의 얼굴을 담고 있는 역사 유산이자 한강의 기적으로 대변되는 서울…의 성장과 발전을 상징하는 추억의 공간입니다.…서울역 고가를 무조건 철거하기보다는 주변 지역과 연계하여 녹지, 문화, 소통의 공간으로 재생하고…사람 중심의 보행 거리로 탈바꿈시키고자 합니다.…서울의 새로운 명소로 조성해 도심의 문화 유산 가치를 높이는 것은 물론 주변 지역의 경제 활성화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설계 지침서에 활자화된 공모의 목적은 “보존을 통해 도시 기억과 시민 공간 주권을 회복”하는 것이다. 즉 서울역 고가는 한국의 근대사를 대표하는 산업 유산이므로 ‘원형 그대로’ 보존하여 공공의 보행로로 재사용한다는 것이다.
이 프로젝트의 쟁점은 결국 서울역 고가를 근대 산업 유산으로 볼 수 있는가로 수렴된다. 이번 공모전은 이 이슈에 대한 해석과 해법을 중심에 놓았어야 한다. 서울역 고가는 1960년대 후반의 폭발적인 인구 집중과 교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불도저 시장’ 김현옥이 주도한 서울 입체 도시화 사업의 산물이다. 그 직전에 도쿄에서 진행된 파괴적 입체 개발의 모방이라는 평가도 있다.
서울역 고가를 비롯한 당시의 고가 도로들은 개발의 상징이자 근대화를 과시하는 경관적 표상이었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은 교통 정체를 유발하고 안전을 위협하며 시민의 보행권과 조망권에 장애가 되는 천덕꾸러기로 전락했다. 2003년 청계고가도로를 시작으로 서울에서만 16개의 고가가 철거되었다. 서울의 관문 경관을 가로막고 있는 서울역 고가는 철거해야 할 위험 시설로 이미 2007년에 진단받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예정이었다. 서울역 고가는 과연 보존할 가치가 있는 산업 유산인가1 옛 것이면 가치를 불문하고 다시 살려 써야 한다는, 강박증적 ‘재생’ 이데올로기는 아닌가? 재활용의 ‘착한’ 이미지에 편승한 포퓰리즘적 논리는 아닌가?
공모전에 초청된 일곱 명의 조경가와 건축가에게는 바로 이 핵심 쟁점을 탐구하는 작품을 요청했어야 한다. 만일 폭력적 도시 개발의 산물인 고가도로를 산업 유산의 하나로 재평가할 수 있다 하더라도, 또 우리가 과거를 지워버리지 않고 기억하며 다시 쓰고자 한다 하더라도, 그 디자인적 해법은 매우 다양할 수 있다. 이를테면 철거하여 기형적 경관을 바로잡고 고가가 있던 자리에는 선을 그어 기록할 수도 있다. 구조체와 재료의 일부만을 살려 전망대로 쓰는 방법도 있다. 철로로 단절된 구역의 고가만 남겨 보행 네트워크의 거점으로 삼을 수도 있다.
‘원형 그대로’ 보존해야 한다는 ‘강한’ 조건의 설계 지침은 설계의 창의적 스펙트럼을 좁힐 수밖에 없다. 강한 지침을 따르며 디자이너가 할 수 있는 건 결국 938m의 긴 고가를 본래의 선형대로 유지하면서 고가 주변의 도시 조직과 적절히 연계되는 보행 위주의 공원을 제안하는 일뿐이다. 서울역 고가―그것이 근대 산업 유산이든 아니든― 자체에 대한 해석을 봉쇄당한 디자이너, 그는 고가 상부의 미려한 포장, 시각적 부담이 없고 동시에 안전에도 문제가 없는 난간, 보행의 원활한 흐름과 다양한 행태를 수용하는 장치 정도를 제시할 수 있을 뿐이다. 무난하면서도 세련된 화장술이 관건인 것이다. 결국 서울판 하이라인이 요구된 셈인데, 역설적이게도 디자이너의 입장에서는 하이라인을 재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조건으로부터 탈출하기 쉽지 않은 설계 과제다. 다음에서 간략히 살펴보겠지만, 제출작들은 기초화장, 네일아트, 원더브라 정도의 제한적 선택지에서 답을 고르는 데 고심했다.
2.
제목을 달지 않은 마르틴 라인-카노Martin Rein-Cano(Topotek 1)의 제출작은 ‘강한’ 설계 조건에 역으로 대응해 서울역 고가를 화려한 주연보다는 충실한 조연으로 규정한다. 가장 ‘약한’ 디자인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바꿔 말하자면 설계적 개입을 전략적으로 최소화했다는 점에서 다른 작품들과 확연히 구별된다. 비움과 개방을 통해 역동적인 유연성을 꾀한 이 작품에는 아무런 구조물이 없다. 고가 전체를 하얀 콘크리트로 포장하여 단순한 공간미를 주고 고가 가장자리에 선형의 벤치를 겸할 수 있는 목재 데크의 선큰 플랫폼을 놓는 게 전부다. 프로그램별로 공간을 구획하지도 않는다(그림1). 거의 전 구간이 동질적이고, 그 위에서 일상적 이용과 계절별 이벤트가 자유롭게 펼쳐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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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제대로 된 쇼를 하라
서울역 고가 공모, 진화인가 퇴보인가?
흔히 부정적으로 얘기할 때 쓰는 ‘쇼를 하고 있네’의 천박한 의미의 ‘쇼’가 아니다. 멋지고 유려하며 감동을 주는, 그래서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 브로드웨이의 공연과 같은 ‘쇼’. 뉴욕의 더 로케츠나 파리의 물랭루즈와 같은 볼거리가 화려한 ‘쇼’. 수를 부리고 허를 찌르는, 짜임새가 탄탄하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해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사극 드라마에 나오는 정치적 ‘쇼’. 무엇이든 간에 ‘쇼’의 핵심은 흡입력, 구성, 그리고 명분이다. 이 세 가지가 잘 갖춰지면 관객은 몰두한다. 그러나 서울역 고가는 흡입력도 없었고 구성도 빈약했으며 명분도 제대로 세우지 못했다.
물론 멋진 쇼를 하고 싶었을 것이다. 서울역 고가는 장소적 특성으로 인해 그 이전의 마포석유비축기지, 그리고 그 이후의 세운상가 공모전보다 훨씬 더 주목 받을 수 있는 곳이다. 서울의 대표 프로젝트로 청계천과 한강 르네상스가 있었다면 이번 시장에게 서울역 고가는 좋은 기회가 아닌가? 제대로 인정받는 쇼를 통해 명분도 얻고 무얼 하든 따라붙는 정치색도 지우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하이라인으로 갔다. 여러 가지 계산이 깔려 있었을 것이다. 먼저 하이라인은 서울역 고가처럼 철거 논의가 많았지만 결국 공공 공간으로 지켜낸 프로젝트다. 그리고 성공 사례다. 드러내 놓고 얘기할 순 없었겠지만, 서양의 것이라면 그저 좋다고 여기는 천박한 시민 의식도 살짝 건드릴 수 있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한국에서 해도 될 것을 굳이 멀리 뉴욕까지 갔다. 파란하늘, 선명한 색감, 하이라인의 시크하면서도 야생적인 느낌, 고풍스러워 보이면서도 현대미가 물씬 풍기는, 우리가 동경해 마지않는 뉴욕이라는 도시를 배경으로 서울역 고가 프로젝트의 시작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It’s show time! 여기까지만 보면 쇼의 시작은 성공적인 듯 보인다. 하지만 강력한 한 방을 선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하이라인이 발목을 잡았다. 아이러니하게도 하이라인의 빼어남이 서울역 고가의 잠재력을 잠식했다. 많은 논란 끝에 고가를 활용하기로 했다면 왜 그것이 하이라인과 같은 공간이 되어야 하는가? 우리만의 독특하고 창의적인 장소를 표방할 순 없었을까? 하이라인이 생기기 전의 성공 사례로 파리의 프롬나드 플랑테가 있었다. 그러나 하이라인은 자기만의 브랜드를 만들어 냈다. 정말 쇼를 제대로 하고 싶었다면 서울역 고가에 올라가서 해야 했다. 하이라인 위에 올라 서울역 고가를 얘기함으로써 이 프로젝트의 근본적인 정체성을 본편이 아닌, 성공하기 힘들다는 속편으로 만들어버렸다. 쇼를 보는 관객은 혼란스럽다. 하이라인이 좋은 건 알겠는데 그래서 서울역 고가는 어떻게 된다는 건가? 좋게 말하면 ‘벤치마킹’이지만 실상은 정체성의 ‘카피’와 무엇이 다른가? 관객은 본 공연을 보기도 전에 김이 샌다.
크레디트
그래도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 아직 공모전은 시작도 안 했다고. 재미있는 쇼는 이제부터 보여주겠지. 그런데 웬걸. 본격적인 쇼 타임이 시작되기도 전에 또 한 번 실망한다. 주최 측은 능력 있는 디자이너들을 심사숙고해 공정하게 뽑았다고 했다. 그런데 오디션이 없다. 오디션이 없었는데 어떻게 공정하게 뽑은 걸까? 어떤 방식으로든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디자이너들로 구성해 놓았으니 주최 측의 능력을 높이 평가해야 할까? 그런데 선발의 기준이 보이지 않는다.
최혜영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조경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뉴욕 AECOM(전 EDAW)을 거쳐 West 8 뉴욕 오피스에서 거버너스 아일랜드 프로젝트를 담당했다.2012년 용산공원 설계 국제공모에서 West 8 + 이로재 팀의 당선을 이끌면서 현재 서울과 로테르담을오가며 용산공원 기본설계 및 조성계획 수립 프로젝트 리더로 일하고 있다. 펜실베이니아 주 등록 미국 공인 조경가(RLA), 친환경건축물 인증제 공인 전문가(LEED AP)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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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상상적 시민들의 공모전
설계 교육의 단면들
어째서 모두는 이 프로젝트의 주인을 박원순 시장으로 전제하고 있는가?
공론화는 시민의 몫이 아닌 서울시의 책임인가?
과연 서울역 고가에서 지역 전문가와 시민들의 내부 성찰은 무엇인가?
그러한 것이 있기는 한가?
아니, 어쩌면 우리는 이 모든 질문에 앞서
이 프로젝트에서 시민들은 과연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할지도 모른다.
축제의 끝에서 남은 질문들
또 하나의 축제가 끝났다. 공모전 때문에 며칠째 집에 못 들어가는 누군가나 당선작의 선정 결과에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내는 누군가는 공모전이 축제라는 말에 공감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공모전이 아니라면 이렇게 많은 전문가들이 한 주제에 대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진지한 고민을 할 기회는 없기 때문에 결과에 상관없이 공모전은 우리 도시와 공간의 담론을 풍성하게 해주는 축제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축제에 누가 참여했는지 주인공들이 무엇을 했는지가 사람들의 주된 관심사지만, 정작 축제의 성공 여부는 어떻게 축제를 기획했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공모전도 마찬가지다. 지난 3월 『환경과조경』은 서울역 고가 설계공모의 방식과 절차에 대해 공모전 기획을 지휘한 김영준 전문위원에게 몇 가지 비판적인 질문을 제기한 바가 있다. 우선 굳이 소수의 작가들만 참여할 수 있는 초청공모 방식을 택한 이유를 물었다. 프로젝트 특성과 작품의 질을 고려할 때, 응모작 수는 많지만 정작 좋은 안들은 소수에 그치는 공개공모보다는 초청공모 방식이 낫다고 판단했다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확실히 지명초청 방식이 저명한 작가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데는 유리하다. 물론 저명한 작가의 안이 반드시 좋은 안이라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공개공모의 방식일 경우 세계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작가들이 참여할 가능성이 매우 낮아지며, 국내의 저명한 작가들의 참여마저도 이끌어내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게다가 서울역 고가 공모전이 서울시가 추진하는 유일한 프로젝트가 아니라 큰 구상의 일부라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미 ‘서소문밖 역사유적지’와 ‘마포석유비축기지’가 공개공모 방식으로 치러졌다. 서울역 고가에 이은 ‘세운상가 활성화’와 ‘잠실종합운동장 일대 도시재생 구상’ 역시 공개공모로 진행된다. 따라서 이 많은 공모전 중에 하나쯤은 확실히 흥행을 보장할 주연 배우들을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 시기적으로나 화제성에 있어서나 서울역 고가를 초청공모로 진행한 것은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다음은 폐쇄적으로 진행된 지명 과정의 적절성에 대한 질문이었다. 일단 결과만 놓고 보자면 이번에 초청된 작가들의 구성은 꽤 흥미롭다. 세계적 거장의 반열에 든 작가들이 명단에 없다는 점을 아쉬워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거장들이 국내 무대에서 보여준 무성의한 태도를 보았을 때 차라리 국내의 여건을 충분히 존중해줄 만한 작가들을 선정하는 편이 더 나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이번 공모전에 참여한 국내외의 작가들이 지명도가 낮다는 말은 아니다. 선정 과정이 투명하지 못했다는 문제 제기는 할 수 있어도 초청받은 작가들이 자격 미달이거나 특정한 분야나 국가에 편중되었다고 비판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또한 지난 공모전의 참여 자격에 대한 논란을 의식한 듯 처음부터 공모전의 조건으로 건축, 조경, 구조의 협업을 전제했고, 그 때문인지 염려되었던 특정 분야의 독단과 독주가 두드러지게 나타나지는 않았다.
마지막으로 적극적인 소통의 과정이 간과된 성급한 진행에 대한 질문이 제기되었다. 장황한 답변에도 불구하고 명쾌하게 해결되었다고 느껴지지 않는 이질문은 여전히 진행 중인 논란이자 어쩌면 가장 중요할지도 모르는 비판적 견해를 반영한다. 하지만 이 문제는 정작 설계공모의 기획책임자가 명확히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이는 공모전의 방식과 절차 이전에 이 프로젝트의 당위성에 대한 문제 제기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서울역 고가의 주인
2014년 9월 미국을 순방 중이던 박원순 시장은 뉴욕의 하이라인을 시찰한 뒤기자간담회를 열어 서울역 고가를 재생하는 공모전을 개최하겠다고 발표한다. 발표 직후 호평보다는 비판 여론이 쏟아졌다. 일간지에는 전문가들의 비판적인 의견이 담긴 칼럼들이 실리기 시작했으며,2 남대문시장 상인들과 인근 주민들은 공원화 계획에 거세게 반발했다. 서울시 의회에서도 시장이 절차를 무시했다며 일부 의원들이 제동을 걸었다. 공모전이 끝나고 당선안이 발표되었지만 여전히 서울역 고가 공원화는 모두의 동의를 얻는 데는 실패했다.
서울역 고가는 이제 더 이상 가치중립적인 도시의 공간으로 남을 수 없게 되었다. 이명박 전 시장에게 청계천과 서울숲이 그러했고 오세훈 전 시장에게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와 한강 르네상스가 그러했듯이, 서울역 고가는 박원순 시장의 미학적인 정치 도구라는 사실이 이미 공공연하게 드러났다. 그래서 서울역 고가에 대한 모든 평가는 아무리 신중하게 균형을 잡으려고 노력을 하더라도 어떤 지점에서 반드시 본의 아니게 정치적인 함의 속으로 미끄러지게 된다. 이 프로젝트에 대한 비판은 결국 서울시에 대한 비판으로 귀결되고, 상찬 역시 박원순 시장의 정책에 대한 지지와 동일한 의미를 갖게 되는 묘한 동조 현상이 나타났다.
김영민은 1978년생으로, 서울대학교에서 조경과 건축을 함께 공부했고 이후 하버드 GSD에서 조경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의 SWA Group에서 6년간 다양한 조경 설계와 계획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USC 건축대학원의 교수진으로 강의를 하였다. 동시대 조경과 인접 분야의 흐름을 인문학적인 시각으로 읽어내는 데 관심이 있으며, 설계와 이론을 넘나드는 다양한 활동을 펴나가고 있다. 역서로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이 있으며, 『용산공원』 외에 다수의 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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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품작: SLOW. SOUL. SEOUL
서울역 고가 기본계획 국제지명 현상설계
서울역 고가 프로젝트의 가장 큰 과제는 다양한 가능성을 탐색하는 동시에 현실적이며 구체적인 디자인을 제안하는 것이다. 우리가 가장 크게 관심을 기울였던 부분은 서울역 고가의 물리적 한계 즉, 구조적 불안정성과 10m의 좁은 폭원을 극복하는 것이었다.
서울역 고가는 남대문, 남산타워, 서울역, 그리고 멀리관악산이 어우러진 도심의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고 남대문시장, 남산 성곽길, 서울역을 차량에 의한 단절 없이 이어줄 수 있는 보행교로서 가능성을 가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원이나 광장처럼 통행, 휴식, 조망 등의 다양한 행태를 동시에 수용하기에는 공간의 규모가 턱없이 부족하다.
우리가 제안한 복층형 데크Lazy Larva는 서울역 고가의 가능성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구체적인 장치다. 기존 고가 위에 또 하나의 데크를 얹어좀 더 높은(약 20m 높이) 위치에서 주변 도시 경관을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고, 기존고가는 남대문과 서울역을 잇는 주요 보행로이자 휴게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기능을 구분했다. 또한 하부 데크는 반영구적인 실내 공간으로서 그늘을 제공할 뿐 아니라, 날씨의 제약 없이 활용할 수 있도록 제안했다. 남대문시장이 확장되어 길거리 장터가 되기도 하고, 서울역 역사와 연계한 전시 및 이벤트 공간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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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품작: Seoul Mirage
서울역 고가 기본계획 국제지명 현상설계
한 도시의 문화적 경관cultural landscape은 도시의 정체성을 확립한다. 효율성 중심의 시대에 생겨난 산업적 기념비를 재탄생시키고 그것의 문화적 요소들을 지켜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나의 건축적 유형으로서 중정courtyard은 동아시아의 오래된 주거 전통과 깊은 문화적 의미를 함축한다. 서울역 일대 상부를 가로지르는 990m의 보행자 네트워크를 따라 14개의 중정을 순차적으로 배치한다. 주변 환경과 관계를 맺으며 선형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일련의 중정은 유리 패널로 구성된다. 유리는 이중성을 가진 소재다. 유리 소재의 투명한 성질 덕분에 사람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공간적 순수성을 즐길 수 있다. 반면에 유리의 반사성은 한국의 수도 서울의 심장부에 있는 서울역 일대의 문화적 다양성을 높은 유리패널에 신기루처럼 투영한다. 이 공간적 단순성과 시각적 복잡성이 서울 신기루의 시작점이다.
유리의 반사reflection 작용은 단순한 물리적 현상이라기보다는 디자인의 개념으로 이용된다. 이것은 두 가지의 방법으로 작동된다. 먼저 대상지 일대의 도시적·문화적 시나리오가 고가의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요소들(중정 유닛)을 통해 기본적으로 개념화되고 반영된다. 그리고 유리 중정의 형태로 추상화된 주변의 문화적 경관은 훨씬 더 큰 도시 규모의 문화적 경관에 대한정보(서울에 있는 아트 갤러리의 위치나 성곽의 역사와 같은)를 다시 시민들에게 전달한다. 따라서 중정은 도시 문화의 수신기receiver이자 동시에 송수신기transceiver라 할 수 있다.
- 조한결 / Chang Yung Ho | Atelier FCJ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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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품작: Skyway
서울역 고가 기본계획 국제지명 현상설계
토포텍 1Topotek 1은 ‘비움emptiness’의 설계 개념을 제안했다. 비움의 전략은 설계적 개입을 전략적으로 최소화하여 서울역 고가 도로를 극장의 열린 무대처럼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할 수 있는 유연한 공공 공간으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는 최근 세계 여러 도시에서 공공 영역의 개방성과 유연성을 확장시키고자 하는 사회적 흐름과도 일맥상통한다. ‘스카이웨이Skyway’ 역시 이와 같은 시대적 패러다임에 따라 형태와 공간 배치가 결정된 완결적 공간이 아닌, 열린 가능성의 공간으로 제안하고자 한다.
선큰 플랫폼
스카이웨이는 기본적으로 기존의 도시 공원과 상당히 유사한 역할을 수행하지만, 방문자의 공간에 대한 해석과 상상력에 따라 전혀 새로운 공간이 될 수 있다. 서울역 고가의 만리동 방면 램프에서 퇴계로 방면 램프까지 하얀 콘크리트 포장이 이어지고, 이는 고가 중심부에 새롭게 깔린 플랫폼과 함께 단순한 공간미를 확연하게 보여준다. 특별한 구조물 없이 서울역 고가를 따라 길게 이어지는 오픈스페이스는 보행자의 자유로운 이동을 가능하게 하며, 다양한 이벤트의 유치와 이용자들의 접근성을 증가시킨다. 나아가 고가의 양쪽 가장자리로 선큰 플랫폼을 조성함으로써 구조물의 면적 범위를 더욱 확장한다. 선큰 플랫폼은 그 자체로 고가를 따라 길게 놓인 선형의 벤치가 되고, 방문객들은 이 거대한 소파에 모여 앉아 탁 트인 도시를 조망하며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선큰 플랫폼의 가장자리를 따라 설치된 유리 가로막은 바람을 차단하고, 사람들이 스카이웨이를 보다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 상대적으로 높은 레벨의 중앙 공간에서는 양쪽의 선큰 플랫폼과 유리 가로막이 눈높이 아래에 위치하기 때문에, 방문객들은 도시 위의 열린 공간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 양다빈 / Martin Rein-Cano | Topotek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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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품작: Seoul Evergreen Terrace
서울역 고가 기본계획 국제지명 현상설계
서울시는 역사적인 구도심과 기차역 반대쪽으로 펼쳐진 새로운 도시 개발 지역을 지난 40년 동안 이어준 고가 도로를 보행로로 바꾸고 공원화할 예정이다. 즉, 서울시는 도로의 노후화 문제를 도시재생을 모색하는 원동력으로 삼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러한 서울시의 결정으로부터 ‘서울 늘 푸른 테라스’는 고가의 노후화 문제와 도시재생에 주목했다. 시민에게 지나온 역사의 흔적을 안겨주고, 종국에는 이 도시만의 독특한 모습으로 계속해서 각인될 현대식 공공 공간으로 변모시키는 것이 ‘서울 늘 푸른 테라스’의 목표다. 고가 도로는 고립된 곳이 아니라 지면과 그 위, 아래의 공간 모두와 연계된 입체적인 공공 공간이라는 것이 ‘서울 늘 푸른 테라스’의 핵심적인 아이디어다. 이 목적을 구체화하기 위해 주변의 도시 조직과 고가의 관계를 토대로 우리는 길게 뻗은 고가를 다섯 개의 ‘룸room’―플레잉 룸(Playing Room), 리빙 룸(Living Room), 리딩 룸(Reading Room), 다이닝 룸(Dining Room), 게이트 룸(Gate Room)―으로 분할했다.
- 조한결 / Juan Herreros | estudio Herrer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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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등작: Continuous Landmark: Unifi ed Hyper-Collage City
서울역 고가 기본계획 국제지명 현상설계
‘흐르는 랜드마크Continuous Landmark’는 독특한 선형의 대상지와 그에 인접하여 풍부하게 엮여있는 이질적 도시 구성 요소, 그리고 극도로 파편화된 수많은 도시조건이 한데 모인 ‘통합된 하이퍼 콜라주 도시Unified Hyper-Collage City’의 구현을 목표로 한다. 이와 같이 복잡한 도시에서 단일한 해결책은 바람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적용 가능하지도 않다. 즉, 다수의 특정한 전략이 요구되는 것이다. 서울역 고가 도로의 변화는 전체 구간을 서단에서 동단까지 8개의 구역으로 나누어 전략 거점을 설정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나아가 기존의 서울역 고가를 존치시키고 개발하느냐 또는 철거하느냐를 논하는 비생산적인 양자택일에서 벗어나 개발과 철거의 교차점에서 그 해결 방식을 찾아내려 했다. 불필요한 부분을 철거하고 기존의 유용한 부분은 업그레이드해서 활용하는 것이다. 새롭게 탄생할 서울역 스카이웨이는 전체 시퀀스를 구성하는 8개의 독특한 공간 경험을 통해 역동적인 도시 명소로 자리 잡게될 것이다. 이 ‘흐르는 랜드마크’는 수평·수직적으로 단절된 도시와 그로 인해 비롯된 파편화된 경험을 통합하여 보다 다양하고 융통성 있는 공간적 내러티브를 구성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