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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이름 짓기
이번 11월호의 특집은 프랑스의 아장스 테르(Agence Ter)다. 매년 한두 호는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국내외 조경설계사무소의 근작만으로 지면을 구성한다는 편집 구상. 작년에는 마르틴 라인-카노(Martin Rein-Cano)가 이끄는 독일의 토포텍 1(TOPOTEK 1)을 실었고(2015년 2월호), 올해는 이 달에 아장스 테르를 다룬다.
온천수의 생태적 프로세스를 시각적으로 강하게 전달해 큰 화제를 모았던 ‘아크바 마기카’ 이후, 아장스 테르는 유럽을 넘어 남미와 중국에 이르는 여러 문화권에서 다양한 스케일의 작업을 펼쳐 왔다.
특히 도시 스케일의 조경 계획과 물을 기반으로 한 대형 프로젝트에서 탁월한 성과를 거두어 왔다. 만일 찰스 왈드하임의 신간 제목처럼 ‘어바니즘으로서의 조경(landscape as urbanism)’이 우리 시대 조경의 과제라면, 아장스 테르는 아마도 그것에 가장 근접한 실천을 전개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초기 취재를 하며 모든 에디터들은 아장스 테르라는 이름의 뜻에 대해 똑같은 짐작을 했다. 아장스는 영어 에이전시(agency)와 마찬가지이니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없었고, 테르는 흙이나 땅을 의미하는 라틴어에서 따왔을 것이라고 믿었다. 수년 전에 출판된 그들의 작품집 제목도 ‘Territories’이고 이 중에 앞의 Ter만 다른 색으로 인쇄한 걸 보면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나는 뭔가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듯 확신에 찬 진지한 목소리로 에디터들에게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아장스 테르나 김아연 교수의 스튜디오 테라(Terra)나 결국 같은 뜻이지.” 그런데 본지 파리 리포터 박연미 선생이 공들여 진행한 인터뷰 원고를 보니 그게 아니었다. 첫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급하게 사무실 이름을 짓다가 대표가 세 명이라서 숫자 3에 해당하는 라틴어 ter를 썼다고 한다. 당황스러웠지만 재미있게 느껴졌다.
이름을 짓는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아이의 이름을 지을 때 우리는 깊고 깊은 고민에 빠진다. 논문을 다 써놓고도 제목을 정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다못해 이 에디토리얼처럼 짧은 글쓰기에서도 가장 어려운 게 제목 달기다. 회사 이름 짓기, 사정은 더 하다. 이름이란 자고로 크고 좋은 의미를 담아야 한다. 이름이 운명을 좌우한다는 설도 무시할 수 없다. 어감도 중요하다. 겉멋처럼 보이지는 않을까 망설이지만 그래도 ‘뭔가 있어 보이는’ 멋은 있어야 한다. 유행도 의식할 필요가 있다.
비교적 널리 알려져 있거나 금년 『환경과조경』 지면에 등장했던 조경설계사무소 몇 곳의 이름에는 어떤 의미나 사연이 있을까. 거칠게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눠볼 수 있을 것 같다(물론 정확하게 조사를 하거나 직접 문의를 한 건 아니다. 대부분은 짐작이고 떠도는 말을 주워 담은 이야기다). 첫 번째 유형은 작심하고 작명을 한 것처럼 느껴지는 전통적인(?) 2음절의 한자어 이름이다. 가원, 서안, 서인, 신화, 유림, 한림처럼 설립된 지 비교적 오래된 한국 조경의 대표적인 사무실들에 이런 이름이 많다. 이런 유형의 이름에서는 의미가 중요하다. 계림원, 동심원, 이화원처럼 3음절인 경우도 있는데, 이때의 ‘원’은 아마 정원이라는 조경의 대상에 해당한다는 점에서 다음의 두 번째 유형으로 볼 수도 있겠다.
설계의 대상 자체를 이름의 중심에 놓는 경우가 두 번째 유형이다. 아장스 테르의 테르가 3이 아니라 땅이었다면 바로 이 경우다. 테라, 로사이(loci), 사이트, 플레이스랩 등이 여기에 속한다. 신생 사무실인 경우가 많다. 이 유형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엘’이 아닐까. 스튜디오 엘도 있고 디자인 엘도 있다. 참, 팩토리 엘도 있다. 소장의 성인 이(Lee)에서 따온 경우도 있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 L은 동시에 랜드스케이프의 L이다. 땅이든 장소든 경관이든, 영어—심지어 라틴어— 표현이나 그 약자를 쓰는 게 대세다.
세 번째 그룹은 대표 조경가의 이름을 사용하는 경우다. 전통적으로 변호사, 의사, 건축가와 같은 전문가들은 사무실 이름에 자신의 이름을 내거는 경우가 많았다. 해외의 여러 조경설계사무소 역시 마찬가지다. 특이하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사례를 많이 볼 수 없었다. 오래 전의 『환경과조경』 광고란에서 매달 볼 수 있었던 ‘김종해조경설계사무소’가 내 기억으로는 이 유형의 대표 사례다. 이원은 이교원에서 교를 뺀 이름 아닐까. 흥미롭게도 지난 십여 년간 새로 문을 연 사무실인 경우, 린, 오피스박김, D스퀘어, JWL, KnL처럼 소장(들)의 이름을 쓰거나 조합하거나 응용하는 추세가 급증하고 있다. 로직은 논리가 아니라 초기 창립자들의 영문 성 첫 글자의 조합인 LOSYK이다. HLD의 뜻이 무엇일지 무척 궁금해 문의했더니 ‘호영리디자인’이라는 답이 돌아오기도 했다. 물론 신생 사무실만의 경향은 아니다. CA도 ‘진’과 어소시에이츠이니 이 유형에 속할 테고, C’Topos는 ‘최’의 땅이니 이름과 대상이 결합된 예다.
네 번째 그룹은 사무실 이름에 설계의 지향점이나 설계 태도를 담는 경우다. 마당, 라이브스케이프, 비욘드, 빅바이스몰, 사이, 어리연, 우리엔, 채움, D+H(디자인 플러스 호프(Hope)), salmworkshop 등을 떠올릴 수 있다. 다섯 번째 유형에는 기타 또는 우연 정도의 카테고리 이름을 붙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살펴보면 재미있는 사연이 많다. 이작은 ‘이번 작품’의 줄임말이라는데, 확인한 팩트는 아니다. 스튜디오 101은 수년 전의 『환경과조경』 연재물 제목을 그대로 썼다고 한다. 이수는 소장의 딸 이름 ‘이수◯’에서 앞의 두 글자를 가져온 경우. 많은 사람들은 사무실이 이수역 근처에 있냐고 묻는다고 한다. 그룹한의 작명 사연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분분하다. 조경에 ‘한’ 맺힌 사람들이 모여 한을 풀어보자는 뜻이라는 설도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사무실로 성장한 걸 보면 크다(大)라는 뜻의 우리말 ‘한’에서 이름을 따왔다는 설이 더 유력한 것 같다.
아장스 테르 특집 덕분에 우리나라 조경설계사무소들의 이름과 그 사연을 새삼 즐겁게 생각해 보았다.
전진형 교수의 리질리언스 연재가 이번 호로 막을 내린다. 6개월간의 수고에 깊이 감사드린다. 올해를 마감하는 다음 호에는 여러 연재물의 마지막 원고가 실릴 예정이다. 편집실의 가을 풍경은 또 다른 시작을 새롭게 준비하느라 몹시 분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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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A] 11만2천5백
남기준 편집장의 코다를 오매불망 기다리고 계실 독자 여러분께 죄송하게도 이번 달도 코다를 쓰고 있다. 편집장과 번갈아 쓰고 있는 이 지면을 석 달째 붙들고 있는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지난달에도 말씀드렸듯 10월 여러분께 찾아갈 ‘2016 서울정원박람회’ 때문이다. 지금 이순간도 박람회 준비로 동분서주하고 있는 편집장의 낭랑한(!) 전화 통화 목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힌다.
그리고 다른 이유는 편집장이 동심원의 20주년 기념 작품집 제작 역시 총괄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조경계에서 한 설계사무소가 20년을 버텨왔다는 것도 축하할 일이지만, 그 기록을 남긴다는 점도 반길 만하다. 20주년을 기념하는 책자라면 한 기업의 사적 기록이기도 하지만 조경계의 역사라고 부를 법하다. 최근 몇몇 설계사무소에서 작품집을 만들기 위해 사진작가에게 작품 촬영을 의뢰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조경계가 어렵다고들 하지만 크고 작은 사무실들이 작품집을 만든다는 소식은 좋은 징조처럼 보인다. 책을 만드는 과정은 과거를 정리하고 반추하며, 미래를 위해 장점과 강점을 찾아가는 과정과 다르지 않을 테니 말이다. 스스로의 작업을 존중하고 아끼지 않는다면 누가 우리를 존중하겠는가.
결론은 그래서 이번 달도 바쁜 편집장을 대신해 코다를 쓰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리하여 서울정원박람회 오픈이 코앞에 다가온 지금, 그 뒷이야기로 이 지면을 채워볼까 한다.
식물을 경험하는 또 다른 감각
성황리에 사전 접수가 마감된 ‘해설이 있는 정원 투어’는 서울정원박람회장에 조성된 정원을 전문 가드너와 함께 돌아보며 식물과 자연스럽게 친해질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김성식 국립수목원 식물클리닉센터장, 노회은 제이드가든 가드너, 남수환 천리포수목원 가드너, 한택식물원의 강정화 이사, 그리고 더가든의 김봉찬 대표와 김장훈 전문정원사까지 총 6명의 전문가가 흥미로운 정원 식물의 세계로 여러분을 안내할 예정이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에는 본래 독특한 디테일이 더 있었다. 기획자인 이형주 기자가 장애인을 위한 정원 투어를 제안했다. 감각에 제한이 있는 사람도 정원을 통해 자연과 접하는 기회를 만들어보자는 의도였다. 저널리스트 고규홍에게 투어 해설을 부탁드렸다. 고규홍은 시각 장애인 피아니스트 김예지와 나무 바라보기를 시도한 경험을 담은 『슈베르트와 나무』라는 책을 펴냈고, 이 기자는 이 두 사람의 사례에 감화된 상태였다.
정원 투어 요청에 대해 이 기자가 받은 답변은 이러했다.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여러 사람과 짧은 시간에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아니다. 고규홍은 김예지와 1년 가까이 교감한 덕택에 그녀가 나무를 느끼는 데 중계자 역할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 관계도 한쪽이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이 아니었으며, 두 사람 모두 식물에 대한 또 다른 시각을 배우는 과정이었다는 전언은 인상적이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장애인과 교감하는 방식에 관해 특강을 열어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역으로 해주기도 했다. 조경가나 전문가들에게 정원을 조성하는 데 색다른 시각을 던져주고 싶다는 것이 이유다. 여러 여건상 그 특강은 이번 박람회에서 성사되지 못했지만 이 일련의 대화는 우리에게도 의미 있는 과정이었다.
오팔지 휘날리며
그리고 많은 고민과 토론, 시행착오 끝에 점차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그늘막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박람회의 개ㆍ폐막식, 정원 음악회를 비롯한 각종 공연, 영화 상영 등이 벌어질 박람회장 중앙무대 앞 광장에 그늘막을 설치하는 미션에 관한 이야기다. 200여 평에 달하는 면적을 가려야 하므로 기성품으로는 해결하기 힘들었다. 처음에는 천막을 치듯 광목천을 씌우려고 했지만 천의 무게를 감당하는 기초의 천문학적(!) 제작비 때문에 좌절되었다. 그다음 등장한 아이디어가 헬륨 풍선으로 그물망을 지탱하는 안이었다. 그러나 헬륨 풍선은 7시간 밖에 못 견딘다는 한계 때문에 탈락. 그럼 이번엔 일반 풍선. 애드벌룬 업체에서는 바람이 불면 그물을 지탱하던 풍선이 터져 버린다며 고개를 저었다. 이어진 난상토론 끝에 나온 아이디어가 그럼 가벼운 셀로판지를 달자는 것이었다. 반신반의하던 차에 L.A.의 퍼싱 스퀘어(Pershing Square)에 설치된 ‘Liquid Shard’가 확신을 주었다. 그물망에 불투명한 셀로판지를 달아 하늘로 날리는 영상은 우리에게 한줄기 빛처럼 다가왔다. 그물망에 투명한 셀로판지를 달아 타프(tarp)를 치듯이 지지하기로 결정하고 좋은 아이디어라며 환호성을 질렀다. 기쁨도 잠시, 그늘막 디자인을 맡았던 C 실장은 매번 초조한 얼굴로 편집부 문을 밀고 들어왔다.
C 실장은 셀로판지를 달 그물망을 찾아 전국을 뒤졌다. 새를 막는 방조망부터 차량 덮개용 그물, 운동 경기용 네트까지 알아본 끝에 부산에서 적당한 어망을 발견했다. 그물코를 계산해 어망을 제작하니 이번에는 셀로판지가 문제로 떠올랐다. 도대체 어느 정도 간격으로 몇 장이나 달아야 할까. 이때 쓰인 셀로판지의 이름은 업계 용어로 ‘오팔지’, 쉽게 설명하면 사탕 포장지다. 환경과조경 사무실 한쪽 구석에서 마케팅팀의 P 부장과 H 대리가 그물망과 씨름하며 적당한 모듈을 찾아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옛 동기가 떠올랐다. 졸업 후 유명 패션 디자이너의 휘하에 들어간 지 한 달 만에 파리 패션쇼 준비를 한다기에 모두들 부러워했다. 그런데 비즈(beads) 2천 개를 일일이 달고 있다는 말을 듣고 모두들 다시 한 번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2천 개 쯤은 별거 아니라는 결론이다. 계산 결과 11만2천5백 조각의 오팔지가 필요했다. 그 다음의 제작 과정은 독자들의 상상에 맡기겠다. 제발 청명한 가을 하늘에 오팔지가 만국기처럼 휘날리기를 기원하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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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의 서재]로드
때때로 배경은 인물의 표정이나 대사보다 많은 것을 전달한다. 주인공의 눈물 대신 하늘에서 폭우가 쏟아지기도 하고, 가로등 불빛만이 유일한 조명인 골목길은 스릴러 영화의 단골 소재다.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여름 풍경은 청춘의 상징으로 곧잘 사용된다. 영화 ‘러브레터’에서 여주인공이 잘 지내냐는 외침을 던지는 장소가 짙푸른 수목이 우거진 산이었다면, 설산의 풍경을 배경으로 두었을 때만큼의 감동을 줄 수 있었을까? 끝없이 펼쳐진 하얀 눈밭은 영화의 분위기와 상대에게 닿을 수 없는 물음을 더욱 먹먹하고 아련하게 그린다.
『로드The Road』의 배경은 잿빛이다. 잿빛은 파괴된 도시의 모습과 희망이 없는 미래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모든 것이 전부 불에 타버린 도시에는 색이 없다. 부서진 아스팔트, 바람에 날리는 재, 금이 간 건물, 신발에 끈끈하게 달라붙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 등 명도나 질감에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 모두 회색빛이다. 일반적으로 희망이나 생명력을 상징하는 나무도 이 책 속에서는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를 연출할 뿐이다. 숯덩이처럼 타버려 하늘을 향해 뻗은 날 선 나뭇가지가 메마른 느낌을 더하고, 검은 상록수 숲 사이에서는 알 수 없는 무언가가 튀어나올 것 같아 긴장을 늦출 수 없게 한다. 유일하게 색을 지닌 것은 조리된 고기의 단면에 맺힌 핏물이나 고장 난 자판기에서 발견한 코카콜라 캔(붉은 물체 중 가장 선명하게 묘사되는데, 책의 저자인 코맥 매카시는 과거 코카콜라의 지원금을 받아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등의 먹을거리와 계속해서 도시를 태우고 있는 불길과 소년의 마음속에 있다는 ‘불’이다. 모든 생명체를 비롯해 문명, 인간성까지 파괴된 세계에서 생명력 또는 희망을 품은 것만 색을 지니고 있다. 한 남자와 그의 아들의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흑백의 여정 사이에서 툭툭 튀어나오는 색들은 어둠에 지친 마음을 달래준다.
회색빛 세계에 『로드』의 불친절한 전개 방식은 막막함을 더한다. 일반적인 재난, 지구 종말을 다룬 작품과는 달리 이 책은 세계가 불타버린 이유를 설명해주지 않는다.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처럼 원인을 알 수 없는 전염병이 사람들의 눈을 멀게 했다는 수준의 설명은커녕, 언제부터 세계가 타기 시작했는지도 알려주지 않는다. 이야기가 시작될 때부터 남자와 소년은 당연하다는 듯이 파괴된 도시 위를 걷고 있었다. 둘의 관계나 이름 하나 나오지 않지만, 둘의 대화에서 ‘아빠’라는 호칭이 오가는 것으로 부자 관계라는 것을 짐작할 뿐이다. 여정의 목적이 무엇인지도 알 수 없다.
이야기에는 어떤 극적인 요소도 없다. 먹을 것을 찾고, 잠자리를 찾고, 바닷가로 향하는 길을 찾는 일이 반복되며 시간은 흐른다. 수식어구 하나 없는 문장으로 표현된 풍경과 담담한 대화를 통해 이들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마음이 답답해진다. 그 긴 시간을 “한 해가 저물어 갔다. 몇 월인지는 알 수 없었다”라는 두 문장만으로 표현하는 대목에서는 어떤 공포감마저 느껴진다. 영화 ‘그래비티’에서 스톤 박사가 어디가 끝인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우주에 홀로 남겨졌을 때처럼. “제가 죽으면 어떡하실 거에요? 네가 죽으면 나도 죽고 싶어. 나하고 함께 있고 싶어서요? 응. 너하고 함께 있고 싶어서. 알았어요.” 부자의 담담한 대화에는 부성애와 더불어 고독에 대한 두려움이 함께 녹아있다. 식량을 약탈하려는 사람이나 인육을 먹는 사람과 마주했을 때 느끼는 공포와는 다른 종류다.
긍정적인 일을 상상할 수 없는 참담한 현실 속에서도 이들의 여정은 계속된다. 그저 길이 있기 때문에 걷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어두운 현실 때문에 소년의 가슴 속 희망을 상징하는 ‘불’이 더욱 귀하게 느껴진다. 살아남기 위해 상대를 해쳐야 하는 상황 속에서 “그 작은 아이 기억나요, 아빠?”, “그 아이 괜찮을까요?”, “길을 잃었던 걸까요?”, “길을 잃었던 걸까봐 걱정이 돼요”라며 지나쳐온 아이를 걱정하는 아이의 대사가 밝게 빛난다.
소설 초반부, 남자는 우연히 자신이 살았던 집을 방문하게 된다. 집 안의 가구를 손으로 쓸어내리며 과거를 추억하는 모습에 나 역시 어린 시절 살았던 동네를 떠올렸다. 같은 동네 안에서 서너 번 이사를 다녔던 탓에 집보다는 골목에 쌓인 추억이 많은데, 체계적인 계획 없이 만들어져 삐뚤빼뚤한 형태로 조성된 골목길은 숨바꼭질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골목은 말끔한 선을 따라 재정비되었고, 몸을 숨길 수 있었던 낮은 벽돌담은 범죄 예방을 위해 허물어졌다. 때때로 옛 동네를 지나갈 때면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보다 주택에 사는 내가 더 많은 추억을 가졌을 거라는 생각이 얼마나 건방진 것이었나 생각하게 된다. 아파트를 허무는 일이 주택을 허무는 일보다는 어려우니, 추억을 되새김할 수 있는 시간도 길 테니 말이다. 이번 달의 특집인 광교신도시에 사는 아이들은 어디에 추억을 쌓게 될까. 아파트 단지 뒤쪽으로 펼쳐져 있는 사라질 염려가 없는 호수공원이 문득 부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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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교신도시의 교훈] '한국형 신도시' 모델은 유효한가?
2000년대 초 우리나라의 급속한 성장이 국외의 주목을 받으면서, 성장에 따른 주택 문제를 단기간에 해결한 ‘한국형 신도시’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불과 수년 만에 허허벌판 위에 수백만 평의 도시를 ‘뚝딱’ 만들어내는 한국의 신도시들은, 비슷한 문제를 눈앞에 두고 있던 개발 도상국에게는 도깨비방망이 같이 보였을 것이다. 당시 국내 시장의 포화로 구조조정을 앞두고 있던 정부 투자 단체와 일부 건설사들은 이와 같은 관심을 등에 업고 한국형 신도시를 수출하려는 움직임을보이기 시작했다.
그 후 몇몇 국내 건설사가 간헐적으로 외국 신도시의 시공 과정에 참여하기는 했지만, 한국형 신도시의 수출은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최근에 와서야 정부가 ‘9대 국가전략 프로젝트’에 ‘세계 선도형 스마트시티 구축사업’을 포함시켜, 이에 대한 관심이 다시 고조되고 있다. 정부는 ‘K-스마트시티(한국형 스마트시티)’가 건설 분야와 ICTInformation and Communications Technologies(정보 통신 기술)의 융합이란 측면에서 창조 경제에 최적일 뿐 아니라 침체된 국내 경기의 돌파구인 수출까지 연계할 수 있다고 보고 이를 적극적으로 추진할 예정이다.
*환경과조경 342호(2016년 10월호) 수록본 일부
이인성은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도시설계 전공으로 환경조경학 석사를, 일리노이 대학교(어버너-섐페인)에서 지역 및 도시계획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 대한주택공사 주택연구소 등에서 연구원으로 일했으며, 1996년부터 서울시립대학교 도시과학대학의 조경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위원, 중앙도시계획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고현재 한국도시설계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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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교신도시의 교훈] 오래된 나의 신도시, 광교
광교신도시는 광교산을 뒤로 하고 원천저수지와 신대저수지를 품에 안고 있는 형상이다. 광교신도시의 이름 역시 이 광교산에서 비롯되었다. 광교산은 원래 광악산光嶽山이었으나,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을 정벌하고 돌아오는 길에 이 산 정상에서 신비로운 광채가 하늘로 솟아오르는 것을 보고 큰 깨달음을 얻어 ‘빛의 가르침’을 뜻하는 광교산光敎山으로 명명토록 하여 오늘에 이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광교산이 광교신도시 안에 위치하는 것은 아니고, 광교산 인근에서 광교라는 지명을 법정 동명으로 오랫동안 사용해 오던 터라 ‘광교’라는 지명 사용에 대해서 광교산 인근 주민의 반발을 가져오기도 했다.
2007년 11월 착공하여 2011년 6월에 입주를 시작하면서 광교신도시는 도시로 기능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행정적 변화 속에서도 신도시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자 하는 목표 아래, 교통·주거·교육·녹지·문화·의료 등이 집약된 인프라와 업무·상업·위락 시설 등을 혼합 배치해 자족성을 갖춘 명품 신도시를 향한 노력이 꾸준히 진행되어 왔다. 2018년 이후에는 주민 입주, 공공 청사의 입주, 상업 용지의 활성화 등 도시의 기능이 완성될 것으로 계획했다. 그러나 현재 경기도청 신청사계획은 난항을 겪고 있고, 컨벤션센터와 광역 상업 시설인 파워센터 등 자족적 기능을 담당해야 할 사업은 폐기된 상태로 새로운 변화가 절실한 시점이다. ...(중략)...
*환경과조경 342호(2016년 10월호) 수록본 일부
강중구는 아주대학교와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건축과 도시를 전공하고 EDAW/AECOM 뉴욕, 베이징, 홍콩 오피스에서 다양한 스케일의 도시 프로젝트를 다뤄왔다.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과 아주대학교의 도시, 건축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도시 속의 공간과 건축에 대해 가르치고 있다. 현재 광교신도시에 거주하고 있으며 다양한 도시에서의 삶과 경험을 바탕으로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변화에 관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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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교신도시의 교훈] 광교호수공원을 보다
필자는 광교신도시에 대한 계획이나 설계에 참여한 것은 아니지만, ‘과정의 기록’이라는 측면에서 광교신도시가 만들어진 전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다. 광교신도시와 필자와의 인연은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광교신도시 기공식이 2007년 11월에 있었으니까 공사가 시작되기 직전이었다. 그린플랜Green Plan의 일환이었던 환경상세계획 중 광교신도시의 개발 전 모습을 어메니티amenity 자원이라는 측면에서 기록을 남기는 일이었다. 광교신도시 사업 지구를 7개 권역으로 나누고 개발이 시작되기 전의 도시 콘텐츠를 기록하기 위해 마을과 저수지를 오갔다. 아직도 그때의 원천저수지와 신대저수지에 대한 기억이 생생하다. 원천저수지는 유원지로 난개발이 되어 주변에 각종 위락 시설과 숙박업소 등이 들어서 있었다. 보트와 수상 가옥, 수영장, 대규모 야영장과 심신 단련장, 원천그린랜드, 원천호수랜드, 물 위를 지나는 케이블카와 관광호텔 등이 었다. 신대저수지는 낚시터로 이용되어서 조용한 편이었으며 주변 산림과 잘 어우러져 있었다. 두 저수지의 서로 다른 모습은 나중에 광교신도시의 호수공원설계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2004년 10월에 있었던 제5차 MP 회의에서도 당시 원천저수지와 신대저수지의 성을 반영하여 전체적으로 녹지축을 보존하고 자연환경 훼손을 최소화하면서 유원지 시설이 집중되어 있던 원천저수지는 활동적 기능을 맡게 하고, 신대저수지는 보존을 중심으로 한정적인 기능만 부여해 차별화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광교호수공원 국제설계공모를 하기 전, 개발 방향을 설정하기 위해 2008년 1월부터 7월까지 9번에 걸쳐 공동 시행자 실무자 회의를 열었고 원천저수지는 활기차고 도시적인 장소로, 신대저수지는 조용하면서도 정적인 장소로 조성하는 콘셉트를 다시 한 번 확인하여 설계공모 지침을 내놓았고, 이에 따라 광교호수공원 설계안이 나올 수 있었다. 광교호수공원이 두 개의 테마를 가지게 된 것은 광교가 원래 가지고 있던 맥락과 맞닿아 있다고 볼 수 있다. ...(중략)...
*환경과조경 342호(2016년 10월호) 수록본 일부
전영옥은 1988년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다음 해 조경학에 입문하여 1998년 서울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2년부터 2007년까지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지역 발전, 도시 문제 등을 새로운 각도에서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2007년 이후 현재까지 도시환경연구센터 소장직을 맡고 있으며 인문학, 공학, 마케팅 등을 넘나들며 삶을 담는 그릇으로서의 도시와 농촌 지역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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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교신도시의 교훈] 광교 그린플랜, 녹색 도시 실현의 효시가 되다
신도시 계획 과정에서 광교가 다른 신도시와 차별화된 것은 관행적인 개발 계획에만 의존하지 않고 별도로 그린플랜을 수립한 점이다. 도로, 토지이용, 기반 시설 등 택지 개발을 위한 계획을 수립하기 전에 환경 보전 및 창출에 관한 그린플랜을 작성하여 이를 신도시 개발 전 과정에 반영했다. 사업 단계별로 녹색 도시를 실현할 수 있도록 그린플랜을 관련 계획의 기본 지침으로 삼은 것은 광교만의 특이점이다. 그린플랜은 도시의 생물 다양성과 기후 안정을 극대화하고, 새롭게 조성되는 공간이 자원 순환과 에너지 자립 공간이 되게끔 사업의 추진 체계와 실천 수단을 친환경적으로 강구하는 전략적이고 기술적인 계획이다. 특징적인 것은 녹색 도시 조성을 목표로 사업 초기부터 생태적 가치가 높은 토지를 보전하고 복원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는 점이다. 개발 이후에도 도시가 지속가능하도록 1990년대부터 논의된 생태 도시 계획 원리와 요소를 전격 도입한 체제였다. 시행자가 구축한 ‘선 환경, 후 개발’이란 지향 체계를 바탕으로 개발 계획과 그린플랜이 협동 작업을 수행함으로써 광교는 한국형 생태 도시설계의 효시가 되었다. 이는 다른 신도시에도 널리 보급되어 중앙정부가 일정 규모 이상의 택지 개발을 추진할 경우 환경 계획 수립을 의무화하는 제도의 전범이 되었다.광교는 수원시의 얼마 남지 않은 녹지로 그간 개발을 제한받아 왔다. 그런데 이 지역의 미래를 둘러싸고 두가지 다른 입장이 충돌했다. 건설 정책 입안자들은 시가지와 연접한 이 지역을 주택 공급 잠재력이 높은 개발 유보지로 여겼고, 시민이나 환경론자는 광교산 주변의 양호한 환경을 품은 보전 지대라 생각했다. 특히 시민 단체는 대상지가 광교산 녹지축에 자리하고 있고, 그 축에는 대규모 저수지와 수변 공간이 있기 때문에 보전 가치가 높은 곳이라 주장했다. 그러던 중 2002년 ‘수원도시개발 기본계획’을 수립하면서 이 지역을 시가화 용지로 편입했고, 여기에 신도시 개발 구상을 포함시켰다. 이 계획은 곧바로 시민과 환경 단체의 개발 찬반론을 불러 일으켰다. 반대론자들이 내세운 것은 이 지역은 큰 산림 생태계의 가장자리로서 생태학적으로 생물 다양성이 높은 지대라는 점이다. 한편 사업의 시행을 맡은 경기도시공사가 개발 지구 지정을 위한 정부 협의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환경부로부터 산림 녹지축, 물길 보전, 바람통로, 광교산 조망축 보전 등 환경 대책을 수립하라는 주문을 받게 된다. 공사는 시민 단체와 환경부의 의견을 수용하여 개발 이전에 환경 보전을 먼저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했는데, 이것이 그린플랜의 출발점이다. ...(중략)...
*환경과조경 342호(2016년 10월호) 수록본 일부
이상문은 2004년부터 5년간 광교신도시 환경계획의 책임자로 참여하여 생태 보전, 녹지 체계, 자원 순환, 에너지 자립, 생활 유산 발굴 등 생태 도시 실행 과제를 발굴하고 이를 도시설계에 반영하는 작업을 수행했다. 2009년부터 현재까지 광교의 계획·설계, 환경 부문, 개발 백서 등에 대해 전문가로서 계속 자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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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교신도시의 교훈] 지방자치단체가 주도한 신도시
광교신도시는 경기도와 수원시, 용인시, 경기도시공사 등 네 개의 사업시행사가 있다. 광교신도시는 지방자치단체가 주도한 최초의 대규모 택지개발사업인 동시에, 네 마리 말이 끄는 사두마차로 볼 수 있다. 네 개의 사업시행사는 각자의 내부 사정이 있었지만, 거버넌스를 형성하고 광교신도시 사업을 수행했다.수원시는 이의동 지역에 컨벤션센터를 짓기로 계획하고 아파트 2,300세대를 지으려고 했지만 계획대로 잘 되지 않았다. 용인시는 상현동 쪽에서 아파트 분양이 잘되자 계속 수원 쪽으로 내려오면서 개발을 확장했고, 이에 따라 광교도 개발 압력을 받게 되었다. 경기도는 당초 신도시 계획이 없었지만, 경기도청 이전 계획과 함께 행정타운 건설을 추진하고 있었다. 당시 수원시는 현대 측과 MOU를 맺고 광교 쪽 500만 평에 소규모 개발을 하겠다는 구상이었다. 그럴 바에야 광교가 두 개의 저수지와 녹지축, 좋은 입지를 가지고 있으니 지자체가 제대로 한 번 해보자는 의미에서 경기도가 국토교통부(이하 국토부)에 신도시 지구 지정 신청을 했다. 그동안 우리나라 신도시들은 대부분 중앙정부가 주도하면서, 수도권의 택지 개발로 벌어들인 돈을 지방에 투자하는 식으로 진행되어 왔다. 이에 지방자치단체인 경기도가 중심이 돼서 수익을 내려는 목적이 아니라, 이익금은 다시 경기도와 광교신도시에 투자함으로써 제대로 된 신도시를 만들어보기로 한 것이다. 특히 광교는 원천저수지와 신대저수지가 있어 잘 이용한다면 좋은 도시가 될 수 있었다. 환경 단체와 시민 단체들과의 협의, 건설교통부의 계획안 수정 보완 요구 등을 이유로, 지구 지정을 받을 때까지 자그마치 2년의 기간이 소요되었다.결국 지구 지정을 받고 네 개의 공동 시행사가 택지 개발을 시작하게 되었다. 정책 결정 기능은 네 개 기관이 협의해서 조정하되 도지사가 모든 것을 대표하고, 집행 기능은 경기도시공사가 하기로 했으며, 토지이용계획 및 기타 사항은 전체 회의를 통해서 의사결정을 하기로 했다. 네 마리의 말이 힘을 합해 광교신도시라는 대형 마차를 끌고 갈 준비를 마친 것이다. ...(중략)...
*환경과조경 342호(2016년 10월호) 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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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펙 파크 마스터플랜
Overpeck Park Master Plan
대상지가 위치한 뉴저지New Jersey 주는 가든 스테이트Garden State, 즉 정원의 주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오랜 기간 뉴욕 시와 인근 메트로폴리탄 지역의 채소와 축산물 공급처였으며, 뉴욕 시민들이 즐겨 찾는 자연과 휴양 시설이 풍부한 까닭이다. 그중에서도 북부 뉴저지는 미국 최대의 공업 지역 중 하나로 광대한 고속 도로망과 정유 시설, 발전 시설, 공항과 항만 및 배후지, 대형 유통 창고, 환승 센터 등이 밀집된 면모를 보여준다. 뉴저지는 미국 경제의 엔진이었으며, 현재 한국의 유수한 기업들 또한 이곳에 북미 시장을 총괄하는 본부를 두고 있다. 활발한 공업 활동의 여파로 수많은 브라운 필드와 슈퍼 펀드superfund 사이트가 생겨났으며, 대표적 수자원이라 할 수 있는 해컨섹Hackensack과 퍼세이크Passaic 강은 전국에서 가장 오염이 심한 강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설계의 배경북부 뉴저지의 이미지를 개선하고 주민들이 느끼는 삶의 질을 향상시켜야 한다는 논의는 오래전부터 제기되어 왔다. 그러나 인접한 뉴욕 시와 비교했을 때 턱도 없이 모자라는 예산과 인적 자원, 리더십이 부족한 행정으로 인해 그나마 있는 공원조차 제대로 운용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에 불만을 가진 시민 단체와 전 카운티 청장 캐슬린 도너번Kathleen Donovan은 민관 협력 사업을 통해 이를 타계하고자 했고, 나는 나의 뉴욕 전시를 관람한 환경 운동 단체 ‘그린클럽Green Club’의 멤버와 정치인들을 소개받아 오버펙의 재생에 대한 전체적 마스터플랜 수립 작업에 착수하게 되었다.그러나 도너번 청장이 차기 선거에서 낙선한 후, 사업은 한동안 동력을 잃고 지지부진해졌다. 하지만 새 정부의 공원국 체제가 정비되고, 시 의원 조안 보스Joan Voss의 적극적인 지지로 공감대가 형성되어 이제 새로운 탄력을 받고 있다.
설계최이규, Michael Chaveriat발주Green Club New Jersey위치Bergen County, NJ, USA면적805ac
최이규는 1976년 부산 생으로 뉴욕에서 10여 년간 실무와 실험적 작업을 병행하며 저서 『시티오브뉴욕』을 펴냈고, 북미와 유럽의 공모전에서 수차례 우승했다. UNKNP.com의 공동 창업자로서 뉴욕시립미술관, 센트럴 파크, 소호 및 대구, 두바이, 올랜도, 런던, 위니펙 등에서 개인전 및 공동 전시를 가졌다. 현재 계명대학교 도시학부에 재직하며 울산원도심 도시재생 총괄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다.
*환경과조경 342호(2016년 10월호) 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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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곧생명공원
Baegot Ecological Park
배곧, 염전에서 신도시로배곧신도시는 북측으로 월곶 포구와 남측으로 오이도, 서측으로 서해와 면해 있고, 옥구공원과 ‘시흥 늠내길’이 조성되어 있다. 한글 학자 주시경 선생의 한글 교육 장소인 ‘한글배곧’에서 창안하여 ‘배곧’이 도시 브랜드로 명명되었다. 1970년대에는 갯벌과 천일염 생산을 위한 염전으로 이용되었고, 1980년대에는 총포 화약 성능 시험장 용도로 매립되었으며, 1990년대에는 주변 지역의 개발이 본격화되어 2000년대에 화약 성능 시험장을 폐기하고 토지를 매입해 본격적인 개발을 시작했다. 서울대학교 시흥캠퍼스가 연내 착공할 예정이다.
도시 브랜드의 상징시흥 배곧신도시의 삶의 질을 제고하고 도시 브랜드를 형성할 수 있는 새로운 오픈스페이스로 공원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관의 일방적 주도가 아닌 시민과 함께 할 수 있는 이용자 중심의 공원, 시민 참여형 도시 공원의 모델로서 단계적으로 만들고 완성하는 미래 지향적 방향이 요구되었다.‘생명도시 시흥’이란 정신 아래 ‘인간을 품은 도시’, ‘자연을 품은 도시’라는 개발 목표에 부합하고 자연 경관을 활용한 환경 친화적인 공원을 조성하고자 했다. 이를 위한 차별화(특화) 전략으로 바다(해수)와 갯벌을 활용하고 조류 서식처를 조성해 생물다양성을 보전할 수 있도록 했다.
설계그룹한 어소시에이트시공상록건설발주시흥시위치경기도 시흥시 정왕동 일원면적232,464m2(근린공원1)완공2015그룹한(대표 박명권)은 1994년 창립 이래, 경제 발전의 피로에 찌든 도시인에게 자연과 호흡하는 아름다운 삶의 방식을 제시해왔다. 그룹한의 디자인은 삭막한 주거 환경의 한복판에 고향에 대한 향수와 어린 시절의 추억, 그리고 자연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가치를 구현해 왔으며, 여유와 즐거움이 넘치는 문화 환경을 헌정해 왔다.
*환경과조경 342호(2016년 10월호) 수록본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