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더관리
폴더명
스크랩
  • [그들이 설계하는 법] 행복한 설계가
    첫 회의 글을 쓰기 시작할 땐 뜨거운 한여름의 끄트머리를 지나고 있었는데 어느새 겨울의 문턱에 접어들었다. 집 앞의 숲도 이미 잎을 다 떨어뜨리고 마당엔 낙엽이 쌓여 간다. 해 뜰 무렵 창밖에 드리운 옅은 붉은 빛으로 변한 나뭇잎들은 얼마나 아름다웠던가. 계속 반복되는 풍경, 당연한 듯 스치는 풍경들이 너무나 소중한 것임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내가 지금 마주하고 있는 작은 마당은 이전에 살던 아파트에서는 겪을 수 없는 경험을 하게 한다. 꽃이 피고 낙엽이 지는 풍경을 온몸으로 감각하게 하고 이는 내가 살아있음을, 살 수 있음을 일깨워준다. 그것도 아주 행복하게. 첫 번째 글을 쓸 때 골랐던 풍경화가 생각난다. 풍경에 감탄하며 그 모습을 스케치북에 옮기던 때에는 그 풍경이 왜 나를 끌어당겼는지 잘 몰랐다. 그저 너무나 인상적이라는 생각만 했을 뿐. 결국 그런 풍경이 우리가 늘 가까이하고 싶고 더불어 살고 싶어 하는 것임을 깨달았을 때 비로소 내가 하는 일이 이해됐다. 이어진 두 번째 글에서는 내가 하는 일을 통해 조금씩 설계가로서 성장하는 이야기를 했다. 그저 멋진 공간을 만들기 바라는 설계가에서 조금씩 공간에 투영된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볼 줄 아는, 아직은 설익은 애송이 조경가로 성장한 나의 모습. 아직 하지 못한 이야기가 있다. 바로 설계 작업의 일차적 환경인 디자인엘과 나와 함께 작업하는 설계가들에 대한 이야기다. 공감, 색깔 찾기 작년 새해에 2015년이 사무소를 시작한 지 십 년째 되는 해임을 깨닫고 무척 놀랐다. 벌써 십 년이라니. 급히 뭔가 해야 한다는 중압감으로 사무소의 설계가들과 함께 무엇을 할지를 의논해봤다. 다양하지는 않지만 연말에 십 주년 기념행사를 하자, 해외 답사를 하자, 책을 하나 내보면 어떨까 하는 이야기가 오갔다. 책은 다음 기회로 미뤘고, 조촐하게 직원들과 지난 십 년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고, 희망에 따라 두 팀으로 나눠 싱가포르와 뉴욕을 답사했다. 연말에 워크숍을 하며 나눈 마지막 다짐은 우리의 색깔을 찾자는 것이었다. 누구나 말하는 자기만의 색깔 찾기. 어쩌면 지금까지는 우리의 색깔을 드러내는 시간이라기보다 제자리를 찾고 사무소의 틀을 세우는 기간이 아니었을까. 이 생각 안에는 우리의 색깔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무언가를 해내지 못했다는 반성 또한 숨어 있다. 그러므로 앞으로의 십 년은 우리의 색깔을 찾고 드러내는 시간으로 삼자는 이야기를 했다. 그 색깔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십 년 동안 한결같은 마음으로 설계에 임했다면 우리 나름의 색깔이 옅게라도 있었을 텐데, 왜 없다고 생각했을까. 혹 다른 것을 찾고 있지 않았을까? 설계가가 스스로 자신의 작품이 독특하지 않다고 인식한다는 것은 설계가가 존재할 이유가 없는 것일 수도 있다. ...(중략)... 박준서는 ‘Link Landscape with Life’라는 모토로 디자인엘을 설립해운영하고 있는 조경 설계가다. 조경이란 근원적 삶의 터전으로서의 자연을 문화적으로 해석해 일상에 녹여 내는 행위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한국에서 조경 설계의 사회적 역할을 바로 세우기를 바라고, 지어지는 설계를 실천하고자 한다.
  • [재료와 디테일] 실천이다
    상징 방배역을 조금 지나 서쪽으로 걸으면 작은 건물들이 나온다. 그중에서도 별 특징이 없는 건물이 하나 있다. 기억에 오래 남지 않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몹시 평범한 건물이다. 어느 날 무심코 그 곁을 지나다 생경한 경험을 했다. 튜브형 알약처럼 생긴 볼라드형 조명 때문이었다. 왜 저렇게 만들었을까 한참 고민하다가 결국 건물 안을 들여다봤다. 제약 회사 건물이다. ‘아!’ 하는 작은 탄식과 함께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듯 잠시 멍하게 서 있었다.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나는 공간의 정수가 잘 표현된 곳을 보면 가끔 질투와 무력감에 작은 충격을 받곤 한다. 알약처럼 생긴 작은 조명은 직접적인 메시지를 전달함은 물론이고 기능적인 부분도 간결하게 처리하고 있다. 합목적적이라는 단어가 잘 어울리는 장치라고 생각했다. 합목적적, 늘 염두에 두고 있지만 실천하기란 얼마나 힘든 단어인가. 실천하기 전에 먼저 고안되어야 하는데 그 디자인 과정이 얼마나 고되고 힘든 일인가 말이다. 최근 아파트 설계 의뢰를 받았다. 아주 재수 좋게도(?). 모두의 반대를 무릅쓰고 일하기로 마음먹었다. 그 첫 번째 일은 답사를 가는 것이었다. 우리는 이 정도 질의 공간을 원하니 비슷한 곳에 가서 보고 그처럼 해달라는 것이다. 강남 요충지의 어마어마한 땅값을 자랑하는 몇 곳을 다녀왔다. 대단히 놀라고 또 놀랐다. 아파트라곤 동네 뒤편에 있는 단지 몇 곳밖에 가보지 않은 내게 그곳은 가히 천국의 모습 같았다. 큰 나무들로 이루어져 숲처럼 보이는 녹지, 고급스러운 시설물, 놀랍도록 정리되어 배치된 공간 등 하나같이 멋진 모습에 두 눈이 너무 바삐 움직여 머리가 아플 정도였다. 그런데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석가산처럼 생긴 폭포였다. 현무암을 얼기설기 쌓아 언덕을 만든 다음 사이사이에 작은 나무와 초화를 심어 놓았다. 꼭대기에서는 물이 떨어져 개울을 따라 흐르고 있었다. 마치 고미술관에서 본 산수화를 연출한 것 같았다. 불편했다. 이렇게 멋진 시설물이 왜 굳이 이곳에 놓여야 할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재현의 방식이나 구조에 대해서는 잘 모르니 언급할 수 없지만, 위치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었다. 이곳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답사지에서 이런 시설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마치 퍼걸러나 벤치 같은 시설물의 한 종류인 것처럼 답사지의 중심부에 놓여 있었다. 유행처럼 번진 것일 거다. 특화라는 방식이 만들어낸 공식 중 하나에 속하는 듯했고, 과하게 느껴졌다. 단출한 상징으로 해결할 순 없었을까. 진정 산수를 옮겨오고 싶었다면 말이다. 나는 장소에는 그에 가장 적합한 상징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중략)... *환경과조경344호(2016년12월호)수록본 일부 이대영은 여기저기 살피고 유심히 바라보기 좋아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려 노력하고 있다. 만드는 것에 관심이 많으며, 작고 검소하며 평범한 조경설계를 추구하고 있다. 영남대학교에서 공부했고 우대기술단과 씨토포스(CTOPOS)에서 조경의 기초를 배웠다. 조경설계사무소 스튜디오엘(STUDIO L)을 시작하고 작은 작업들을 하고 있다.www.studio89.co.kr
  • [공간 공감] 두 가지 물음
    ‘당신이 좋아하는 공간은 어디인가’라는 물음을 던지며 시작된 ‘공간 공감’이 총 36회에 걸친 연재를 마무리하는 좌담회를 가졌다. 이미 작년 겨울에 ‘좋은 공간감은 무엇인가’란 주제로 한 차례 좌담회를 개최(본지 2015년 12월호 수록)했기에, 이번 좌담회는 의도적으로 묵직한 주제에서 좀 벗어나 보고자 했다. 그래서 선택한 방식은 두 가지 질문 던지기. 지난 11월 11일, 본지 사무실에 모인 필자들은 테이블 위에 놓인 지금까지의 연재물을 살펴보며 편집진이 준비한 두 가지 질문을 중심으로 지난 답사를 반추하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 과정에서 첫 회의 프롤로그 이후 필자들이 함께 둘러 본 ‘이태원(상업 시설 건축물 외부 공간), 무교공원, 성곡미술관, 대학로, 서울시립대학교 캠퍼스, 연남교 교차로, 메리츠타워, 책테마파크, 백남준아트센터, 지앤아트스페이스, 웅진싱크빅 옥상정원, 파주 환경과조경 사옥(미메시스 아트 뮤지엄), 서초동 삼성출판사 공개공지, 합천영상테마파크, 서울대학교 미술관, 양재동 꽃시장, 석파정, 알토사옥 옥상정원, 창덕궁 후원, 박수근미술관, 명동성당, 홍익대학교 중앙광장, 알뜨르비행장, 제주 주택, 제주도립미술관, 부르델 정원, 국회의사당 사랑재, 커먼그라운드, 아파트 외부 공간, 정독도서관, 서석지, 연남동 골목길, 화담숲’ 등 서른 세 곳의 답사지가 때로는 주연으로, 때론 조연으로 등장했다. 프롤로그와 작년 겨울의 좌담회를 제외하고 지금까지 총 서른 세 곳을 둘러보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곳과 마무리하는 소회를 들려준다면? 정욱주:서른 세 곳을 답사하며 3년의 시간이 흘렀다. 이 모임은 ‘작은 공간 연구회’라는 이름으로 시작됐다. 도시를 빛내주는 보석 같은 공간을 답사하고 다섯 명의 조경가가 토론을 벌여 발전의 기회로 삼자는 구상이었다. 절묘한 시점에 『환경과조경』에 꼭지가 만들어져서 ‘공간 공감’이라는 이름으로 공식적인 활동을 펼칠 수 있었다. 매번 답사 장소를 정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우리 도시에 보석 같은 공간이 넘칠 정도로 많지 않다는 방증일 수 있고, 무엇이 좋은 장소인가에 대한 물음에 쉽게 대답하지 못한 이유일 수도 있겠다. 합의를 통해 선정한 장소들은 소위 대중이 ‘조경이 잘 되었다’라고 인식하는 공간과 일치하지는 않았다. 연남교 교차로나 양재동 꽃시장은 조경이라는 단어와 연결 짓기 힘든, 다른 룰에 의해 발생한 곳이었고, 홍익대학교, 서울시립대학교, 창덕궁은 시간의 힘을 빌려 자연이 연출을 맡은 공간이었다. 때로는 커먼그라운드나 합천영상테마파크처럼 비일상적인 장소도 선정되었다. 공간은 다양한 방식으로 기억에 남는다. 그중 다양한 생각을 일으키는 차원에서는 제주의 알뜨르비행장을 꼽을 수 있다. 경관의 독특함, 거칠지만 매력 있는 질감, 다음 세대가 다듬어 활용할 수 있는 잠재력 등 장소와 설계자가 교감할 수 있는 것들이 풍부한 공간이라 생각됐다. 박승진:무엇인가를 정확히 기억하는 것은 때때로 힘든 일이다. 시간도 흐르고 나도 흐르고. 그래서인지 세월의 속도를 체감하는 것은 정작 어떤 시점이 한참 지나서야 가능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토론의 질문이 무엇이었던가. 개인 사정으로 답사를 함께 하지 못한 몇몇 곳들을 제외하더라도 대략 서른 곳쯤? 그중에서 어느 한둘을 골라 무언가를 반추하는 것도 쉽지 않다. 개별 장소에 대한 공동 필자들의 리뷰는 그간의 글에서 충분히 피력되었을 터. 다만 연재를 종료하면서 아쉬운 점을 들자면, 독자들의 리뷰를 답사 현장에서 함께 토론할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는 점이다. 먼 곳에 있거나 특별한 허락을 받아야 방문이 가능한 소수의 장소는 빼더라도 홍익대학교와 서울시립대학교, 서울대학교 같은 대학 캠퍼스를 비롯해 명동성당, 연남동 골목길 같은 곳들 말이다. 나중에라도 특별 이벤트로 기획을 추진해 볼 것을 제안한다. ...(중략)... *환경과조경344호(2016년12월호)수록본 일부 이 연재를 위해factory L의 이홍선 소장, KnL환경디자인 스튜디오의 김용택 소장,디자인 스튜디오loci의 박승진 소장 그리고 서울대학교 정욱주 교수와 서울시립대학교 김아연 교수 등 다섯 명의 조경가가 의기투합하여 작은 모임을 구성했다.이들은 새로운 대상지 선정을 위해 무심코 지나치던 작은 공간들을 세밀한 렌즈로 다시 들여다보며, 2014년1월부터 한 달에 한 번씩 유쾌한 답사 모임을 이어가고 있다.
  • [칼럼] 데자뷰
    30년 전, 내가 대학 2학년이 된 1987년이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날이었다. 박종철 열사가 남영동 치안본부의 차디찬 대공분실에서 갖은 폭행과 전기고문, 물고문을 당해 숨졌다는 비보가 날아들었다. 당시는 서슬 퍼런 전두환 군사 정권의 말기로 캠퍼스에 사복 경찰들이 잠복하며 학생들을 감시하고 억압했지만, 우리는 하루가 멀다 하고 수업 거부, 시험 거부를 해가며 ‘독재 타도’를 소리 높이 외치며 싸웠다. 6월에는 민주화의 열망과 군부 독재의 종식을 바라는 민중의 함성이 들불처럼 일어났고, 노태우의 6.29 항복 선언으로 비로소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할 수 있었다. 이후 문민정부, 참여정부를 거치면서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성장의 길로 접어들었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나도 가을 낙엽 구르는 소리에 가슴 한 구석이 시려오는 반백의 중년이 되었다. 하지만 이명박, 박근혜 정권으로 넘어 오면서 시계는 30년 전으로 거꾸로 돌아갔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민주주의는 퇴보했고, 급기야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는 국민들을 차가운 겨울 광장으로 불러내고야 말았다. 살길을 찾아 제각각 생업의 전선에서 열심히 일해오던 친구들도 다시 광장의 동지가 되어 광화문에서 촛불을 들고 만났다. 일종의 채무감이랄까. 우리세대에서 완성하지 못한 민주화, 해소하지 못한 불평등한 세상과 권위주의적 사회를 내 자식, 내 손자에게 대물림해서는 안 되겠다는 신념 때문일 것이다. 광장에서 외치는 함성 소리에서 30년 전 그날의 기억이 생생히 되살아난다. 대학 3학년, 학생회장이 된 나는 당시 전국의 조경학과 학생들을 하나로 모아 구심체를 만들고자 전국조경학과학생연합회를 조직했다. 그해 겨울, 국회에 입법 예고된 ‘산림조합법 개정안’ 철회 투쟁을 위해 전국의 조경학도들과 함께 분연히 들고 일어섰다. 산림조합법 개정안은 ‘건설업법’에 명시된 조경공사업의 전문성을 무시하고 산림조합이 동등한 자격으로 독점적 특혜를 받으며 조경 공사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법안으로, 기존 조경 업체의 몰락을 초래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학생과 교수 그리고 조경회사 임직원들이 모두 하나로 뭉쳐 개정안 철회 운동을 펼쳐 나갔다. 연일 국회와 관련 국회의원의 지구당사에서 시위를 하며 우리의 생존권 사수를 위해 싸웠고 마침내 개정안은 보류되었다. 조경인들은 승리를 쟁취했다. 그로부터 30년, 광화문광장에는 함성이 다시 울려 퍼지고 있다. 얄궂게도 우리 조경업은 여전히 산림청을 비롯한 여러 인근 분야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산림청이 추진하고 있는 ‘정원전문가 교육기관 지정기준 및 지정표시안’은 조경전문가와 시민정원사 등을 배제해 논란이 되고 있다. 모든 산림 현장에 산림기술자 1명 이상을 배치하도록 해 산림기술자의 영역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은 ‘산림기술 진흥에 관한 법률안’은 조경계와 상생을약속하며 우호적으로 개선되어가던 산림청과의 밀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두 차례 발의했다가 회기 만료로 폐기됐던 ‘도시숲법안’도 언제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지 모르는 상황이다. 우리가 그래도 친정이라고 믿고 있었던 국토교통부는 규제 개혁의 일환으로 ‘건설기술진흥법’상 조경의 직무 범위를 조경기술자를 포함해 산림기술자, 원예 및 종자기술자 등으로 확대했다. 산림기술자도 조경 공사에서 조경기술사와 똑같이 기술 경력을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조경학과 학생들이 조경기사를 아예 포기하고 산림기사나 식물보호 기사시험을 보게 만든 것이다. 통계청의 한국표준교육분류 영역 부문 제정 조정안은 조경을 원예의 한 직업군으로 종속되도록 했다. 한국연구재단의 학문평가분야에서도 조경학이 산림과 통폐합되면서 조경이 산림에 종속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렇게 가다가는 과연 조경이라는 학문과 전문 분야가 독자성을 가지고 지속될 수 있을지 심히 걱정된다. 조경인들이 승리를 쟁취했던 30년 전, 조경학과 교수, 학생, 조경회사 임직원 모두가 일치단결해 국회의사당 앞으로 달려 나가 우리의 주장을 목 놓아 외치며 싸웠다. 지금은 훨씬 많은 수의 조경학과 교수와 학생, 조경 관련 단체와 학회가 있지만, 제각기 흩어져 한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새해에는 저마다의 이해관계에 얽매어 사분오열 갈라지지 말고 조경의 앞날을 위해 하나가 되어야 한다. 조경의 미래를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 함께 목청 높여 외치는 함성은 한겨울 광장의 차디찬 삭풍을 녹인다.
  • [에디토리얼] 한결같이
    낭만의 가을을 앗아간 청와대 발 황당 뉴스가 겨울의 평화마저 집어삼키고 있다. 덕분에 올 한해의 소중한 기억이 다 날아갔다. 명색이 편집주간인데 바로 지난 호의 내용조차 생각나지 않는 지경이다. 애써 과월호 열한 권을 다시 꺼내 읽으며 금년의 흔적 몇 곳에 ‘오방색’ 포스트잇을 붙여 본다. 2016년 1월호, 방향을 잃고 표류하는 용산공원 설계의 쟁점을 다룬 ‘용산공원의 현재를 묻다’를 특집으로 올렸다. 비생산적인 정치적 논쟁을 넘어 설계 자체에 대한 토론을 이끌고자 한 기획이었다. 여름을 거치며 용산공원이 모처럼 사회적 이슈로 일간지 지면을 타기 시작했는데, 그 중심에 놓인 것은 엉뚱하게도 서울시와 국토교통부 간의 철 지난 기 싸움이었다. 다섯 개의 다리를 모아 특집으로 꾸린 2월호의 ‘다리, 연결 그 이상’에는 기대 이상의 피드백이 있었다. 특히 보행자와 자전거의 천국 코펜하겐에 새로 들어선 시르켈브로엔Cirkelbroen에 여러 독자들이 관심을 보였는데, 마침 이 다리를 디자인한 아이슬란드 태생 아티스트 올라퍼 엘리아슨Olafur Eliasson의 전시회 ‘세상의 모든 가능성’이 지금 리움에서 열리고 있다. 사회학자, 지리학자, 건축가, 아티스트 등이 참여한 3월호의 기획물 ‘젠트리피케이션, 몇 가지 시선’에는 표피적 도시재생의 이면을 진단하고자 하는 의도를 담았다. 같은 호에 실은 최근작 굿즈 라인Goods Line은 19세기에 들어선 철로를 재사용해 시드니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은 프로젝트인데, 올해 국제적으로 권위 있는 여러 디자인 어워드를 휩쓸기도 했다. 4월호에는 오방색 포스트잇을 아티스트 문경원 인터뷰와 그의 ‘프라미스 파크’ 작업에 붙이고 싶다. 그의 미래 공원에 대한 실험은 공원이라는 소우주의 향(냄새) 탐구로 이어지기도 했다(7월호 ‘뷰’). 개인적으로는 4월호 에디토리얼 지면을 빌려‘조경은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인가?’라는 질문을 던져 보았고, 그 연장선상에서 6월호에는 ‘조경이라는 이름’에 문제를 제기해 보았다. 많은 독자들로부터 피드백이 돌아와 내심 놀랐는데, 조금 더 공식적인 방향으로 이 주제를 이어나가지 못한 게 못내 아쉽다. 올해 독자들의 시선을 가장 많이 사로잡은 특집은 아마 5월호의 ‘설계사무소를 시작한다는 것’이 아닐까. 편집부는 이 기획을 창업 특집이라 부르며 꽤 오랫동안 공을 들였는데, 경기 탓, 제도 탓에 지친 독자들은 이 지면에서 다룬 신생 사무소들, 젊은 조경가들의 도전기에 큰 호응을 보내주셨다. 계약, 공모, 자격, 설계비 등 설계 현장의 쟁점을 다룬 6월호의 ‘설계환경을 진단하다’에도 적지 않은 반향이 돌아왔다. 6월호의 근작 바랑가루Barangaroo Reserve는 아마 올해 선택한 작품 중 아이디어, 규모, 작업 방식 모든 면에서 가장 주목할 만하지 않을까. 7월호에는 2016년 세계 조경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퍼싱 스퀘어Pershing Square 설계공모를 담았다. 1866년 이후 150년 동안 무려 일곱 차례나 옷을갈아입은 기구한 광장, 아장스 테르Agence Ter의 당선작이 이곳의 운명을 어떻게 돌려놓을지 주목된다. 마침 이 즈음에 11월호의 아장스 테르 특집 기획을 시작했던 터라, 편집부는 일면식도 없는 그들의 당선에 환호를 터뜨리기도 했다. 8월호에는 경의선숲길 3단계 구간을 실었다. 서울의 대표적인 선형 공원으로 진화해가고 있는 경의선숲길에서 우리는 도시와 공원의 역동적 만남을 목격하고 있는 중이다. 유례없는 무더위를 견디며 만들었던 9월호에는 모처럼 국내 조경가의 작품만을 담을 수 있었다. 지난 10년간 특유의 설계 문법을 실험하고 구축해 온 오피스박김과 이화원의 근작들에 독자들의 시선이 오래 머물렀으리라. 10월호는 지자체가 주도한 신도시이자 공원과 호수로 도시의 골격을 짠 녹색 도시인 광교에 주목했다. 특집 ‘광교신도시의 교훈’을 통해 광교의 조성 과정을 되짚어보고 신도시 개발의 새로운 모델로서 의의를 살펴보고자 했다. 10월호를 편집하던 기간은 『환경과조경』이 주관한 제2회 서울정원박람회 준비와 겹쳐 전쟁 상황을 방불케 했다. 11월호는 조경가 특집에 할애됐는데, 올해의주인공은 파리 기반의 조경설계사무소 아장스 테르였다. 이번 12월호에는 여러 연재물의 마지막 원고가 실린다. 3년 전의 리뉴얼 이후 36회를 완주한 ‘공간 공감’이 이번 호로 막을 내린다. 이 연재를 위해 김아연, 김용택, 박승진, 이홍선, 정욱주, 다섯 명의 조경가는 한 달도 거르지 않고 답사와 토론을 진행했다. 고정희 박사의 ‘100장면으로 재구성한 조경사’도 3년의 긴 항해를 마친다. 동시대의 생생한 장면에서 시작해 고대 이집트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다시 현재로 되돌아온 긴 여정, 말 그대로 조경사의 재구성이었다. 2015년 3월호부터 많은 실무 조경가들의 공감을 얻으며 연재된 이대영 소장의 ‘재료와 디테일’도 아쉬운 끝맺음을 한다. 전진형 교수의 ‘리질리언스 읽기’는 지난 11월호로 6개월간의 연재를 맺었다. 오랜만에 ‘고향 조경 땅’을 여행한 민성훈 교수, 그의 ‘조경의 경제학’도 이번 원고가 12회의 마지막 순서다. 많은 수의 독자를 지녔던 심소미 선생의 ‘떠도는 시선들, 큐레이터 뷰’는 내년 첫 호에 문을 닫는다. 리뉴얼 이후 세 달 마다 바통을 넘겨온 ‘그들이 설계하는 법’은 올해의 서예례 교수, 안세헌 소장, 진양교 교수, 박준서 소장 편에 이어 2017년에도 계속될 예정이며, 서영애 소장의 ‘시네마 스케이프’ 역시 내년에도 독자들을 만난다. 길고 어두운 동굴에 갇힌 것 못지않은 고통을 감내하며 원고를 보내주신 여러 연재 필자들의 인내와 노고에 고개 숙여 깊이 감사드린다. 짐작하시겠지만, 많은 꼭지의 문을 닫는 만큼 2017년의 『환경과조경』에는 적지 않은 변화가 있을 예정이다. 신년호에서 자세히 소개해 드리기로 한다. 『환경과조경』의 자매지로 2003년 3월에 창간된 『에코스케이프』(『조경시공』, 『조경생태시공』이란 이름을 거쳐 왔다)가 통권 100호인 이번 12월호를 끝으로 휴간에 들어간다는 아쉬운 소식을 무거운 마음으로 알려드린다. 매체 환경의 변화에 대한 대응이자 지난 10월 문을 연 ‘e-환경과조경www.lak.co.kr’에 보다 힘을 기울이기 위한 선택임을 깊이 헤아려주시길 부탁드린다. 한결같이 반겨주시는 독자 여러분에게 깊이 감사드리며, 『환경과조경』은 2017년에도 한결같은 ‘조경문화 발전소’로 독자 여러분 곁에 다가갈 것을 약속 드린다. 이렇게 2016년을 마감한다. 아니 통과한다.
    • 배정한[email protected] / 편집주간, 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
  • [CODA] 이폴리타를 추억하며
    오랜만에 만난 H가 이젠 바쁜 일이 끝났냐고 물었다. 그녀의 동그란 눈을 보니 가벼운 질문의 대답도 어렵다. 거의 한 달 만에 찾은 필라테스 스튜디오. 몇 가지를 체크해본 H는 계속 그렇게 나쁜 자세로 앉아서 일을 하면 디스크에 걸려도 이상하지 않다고 경고했다. (에디슨이 발명한 것이 전기가 아니라 야근이라고 주장한 한 카툰이 떠오른다!) 이게 다 프랑스의 긴 휴가 때문이라고 툴툴거려 본다. 환경과조경의 평화로운 루틴을 뒤흔들었던 서울정원박람회가 끝나니 11월호 마감이 코앞이다. 이번 달 『환경과조경』은 무려 100여 페이지를 할애한 해외 작가 특집으로 꾸몄다. 그 주인공은 프랑스 조경설계사무소인 아장스 테르Agence Ter다. 우리 편집부는 바쁜 10월을 대비하여 지난 6월 말부터 아장스 테르에게 작가 특집을 제의하는 주도면밀함(!)을 보였다. 그러니까 아장스 테르가 L.A. 퍼싱 스퀘어 공모전의 우승팀으로 선정되고, 그 결과가 『환경과조경』 7월호에 수록된 직후였다. 섭외는 곧바로 성사되었고, 아장스 테르와의 인터뷰는 프랑스 리포터인 박연미 씨가 흔쾌히 맡아주었다. 박연미 씨는 졸업 설계 작품을 앙리 바바Henri Bava에게 크리틱 받았던 인연을 전하며 반가워했다. 프랑스의 많은 조경학도들이 가고 싶어 하는 설계사무소가 아장스 테르라는 말도 덧붙였다. 7월 중순, 박연미 씨는 아장스 테르의 파리 오피스에서 세 명의 공동대표와 인터뷰를 순조롭게 마쳤다는 소식을 전했다. 모든 과정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다. 잡지에 수록할 작품 리스트를 협의하고 자료만 받으면 정원박람회 행사 준비와 무난하게 병행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그런데 인터뷰 직후부터 담당인 조한결 기자가 고개를 갸웃거리기 시작했다. 휴가를 갔는지 담당자와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럽의 휴가는 길다던데…, 찜찜했지만 길어야 한 달 정도겠지 하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기다림이 9월까지 이어지자 우리의 우려는 불안과 초조로 변해갔다. 그 긴긴 여름이 다 가도록 감감무소식인 아장스 테르 덕택에 조 기자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갔고, 기다림에 지친 편집부는 11월호의 대안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유난히 무더웠던 여름이 물러가고 찬바람이 불기 시작할 무렵, 새로운 담당자인 에밀리에게서 연락이 왔다. 길고 길었던 프랑스의 여름휴가가 끝이 난 모양이었다. 에밀리는 열정적인 직원이었다. 일단 연락이 재개되자 메일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그간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신이 난 조 기자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에밀리와 대화를 이어갔다. 아장스 테르는 네 가지의 아주 구체적인 디자인 전략에 따른 카테고리를 보내왔고, 이에 맞춰 11개의 작품을 수록할 수 있었다. 이 작품들은 3헥타르에서 3천 헥타르까지 그 규모도 다양했다. 수록 작품의 리스트를 만들면서 편집부는 한정된 지면 안에서 몇몇 작업을 자세하게 보여줄 것인지, 아니면 좀 더 많은 작품을 소개할 것인지 사이에서 갈등했다. 결론은 한 설계사무소의 작품 세계를 살펴보는 특집인 만큼 다양한 작품을 수록하는 쪽으로 났다. 사실 몇 백, 몇 천 헥타르에 달하는 도시적 스케일의 작업을 잡지 몇 페이지에서 속속들이 소개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조 기자는 3천 헥타르의 가론 대공원 프로젝트를 편집하면서 책 한 권도 모자라다며 아쉬워했다. 비록 한정된 지면 안에서 작품을 접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스케일과 문화권을 넘나드는 아장스 테르의 작업은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특히 물을 과감하게 이용하는 전략이나 도시권 규모의 계획 프로젝트는 유난히 리서치나 콘텍스트 분석을 강조하는 그들의 디자인 철학이 과장이나 수사가 아니라고 수긍하게 한다. 작품뿐만 아니라 설계사무소의 운영 방식도 관전 포인트 중 하나다. 세 공동대표가 나란히 앉아 있는 프로필 사진을 보면서 아마 이 가운데 누군가는 운영에 집중하고, 누군가는 설계에 주력하는 등의 역할 분담이 있을 거라고 지레짐작했다. 그러나 인터뷰 원고를 받고 보니, 지난 30년간 여러 대륙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도 기본적인 콘셉트를 만들어내는 과정은 언제나 그 셋이 함께 했단다. 처음에는 대외용 멘트가 아닌가도 싶었다. 그런데, 인터뷰는 세 명과 했는데 답변이 하나다. 이를 이상하게 여겨 박연미 씨에게 물으니 “셋이 서로의 이야기를 이어받아 덧붙이는 식으로 대화를 풀어내 답변을 분리할 필요를 못 느꼈어요. 마치 한 사람이 말하듯이 이야기를 해서 좀 놀라울 정도였답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인터뷰 전 박연미 씨는 아장스 테르는 도제식 성향이 강한 프랑스 조경계에서도 시스템에 의한 설계를 지향하고 있는 독특한 아틀리에라고 귀띔해 그 운영 방식에 대한 궁금함이 컸다. 인터뷰 원고를 보니 앙리 바바를 비롯한 세 명의 공동대표는 프로젝트의 핵심 콘셉트를 함께 만들고, 그 구현은 팀원들에게 맡긴다. 이들이 공유하는 것은 대표 디자이너의 스타일이 아니라 프로젝트를 풀어가는 방법론이라는 것이다. 왕성하게 영역을 넓혀가는 아장스 테르의 저력이 바로 그 시스템을 유지한 데서 나온 것이 아닌가 싶다. “한 조경가 집단이 보여주는 작업의 진화와 그 다양한 스펙트럼을 살펴보고, 또 그 개념에 몰입하는 과정을 거치다보니, 바로 이 지점에 종이 매체의 역할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공고해졌다. … 정보의 홍수 시대에, 종이 매체는 그 존재의 이유를 고민하게 된다. … 이번 특집이, 그간 지면의 한계 때문에 부족함을 느꼈을 독자들에게 갈증을 해소해줄 수 있는 특별한 편집으로 다가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토포텍 1을 작가 특집으로 다뤘던 작년 2월호의 코다에 썼던 문장이다. 다시 보니 낯간지럽게 편집 의도가 거창했다. 당시 토포텍 1의 특집은 지금은 설계를 하겠다며 훌훌 떠나버린 양다빈 기자가 맡았었다. 그땐 토포텍 1의 담당자였던 이폴리타와 양 기자가 100여 통의 메일을 주고받으며 특집을 꾸렸다. 두 사람 모두 잘 있는지 궁금해진다.
  • [편집자의 서재] 검색, 사전을 삼키다
    이전 직장에서 ‘검색’은 공적인 하루 업무 중 하나였다. 언론인의 꿈을 안고 들어간 모 통신사의 이슈팀에서 인턴 기자로 일을 시작한 첫 날, 각 부서의 부장이 차례로 회의실에 들어와 부서를 소개하고 앞으로 신입 인턴들의 활약을 기대한다는 덕담 한 마디씩 남기며 퇴장할 때만 해도 나는 펜을 무기 삼아 현장을 누비는 미래를 상상하고 있었다. 부장들의 장황한 소개가 끝나고 마지막으로 팀장이 들어와 회사의 띄어쓰기, 표기법, 맞춤법 규칙 등을 정리한 스타일 북한 부와 기사 작성 매뉴얼 한 부를 나눠줬다. 서너 쪽으로 정리된 얄팍한 기사 작성 매뉴얼을 손에 들고 나서야 내가 해야 하는 일이 어떤 일인지 알게 됐다. 우리의 취재처는 정부 기관이나 대기업의 기자실이 아니라 네이버, 다음, 디시인사이드, 네이트판과 같은 포털 사이트 메인 페이지나 오유(오늘의 유머), 인스티즈, 엽혹진(엽기 혹은 진실), 디젤매니아, 파우더룸, 아이러브싸커 등의 커뮤니티 게시판이었다. 말하자면, 회사가 우리에게 기대한 것은 현장 취재가 아니라 ‘검색어 대응’과 ‘어뷰징’이었다. 포털 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를 1위부터 10위까지 팀원끼리 분배해 “누리꾼들은 이에 대해 ~라는 반응을 보였다”와 같은 문장으로 끝나는 스트레이트 기사를 붕어빵 틀로 찍어내듯 생산하는 일이었다. 한동안 이슈팀 인턴 기자라는 이력은 그다지 밝히고 싶지 않은, 자랑스럽지 않은 경력이었다. 다행히 영상 취재 팀에 소속되어 하루 종일 검색어 기사에 매달리는 다른 팀원보다는 나았지만 주말 당직을 서야 하는 날이면 하루 종일 검색어 대응과 어뷰징에 시달려야 했다. 인턴 마지막 날, 모 부장이 격려하며 한 마디 했다. “때로는 회의가 들 때도 있었겠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어떤 기사를 클릭하고, 어떤 이슈에 반응하는지 감이 생기지 않았어?” 그 해 하반기, 그 매체에서 가장 많은 조회수를 기록한 기사는 일명 ‘거제 마티즈 사건’ 기사였다. 불륜 커플이 도심 한복판 차 안에서 성행위를 벌이다 블랙박스에 찍혀 SNS를 통해 신상이 일파만파로 퍼지고 있다는 선정적인 내용이었다. 압도적인 조회수를 기록한 기사였지만 기사를 쓴 인턴 동기는 누가 자신의 이름으로 인터넷에 검색했을 때 그 기사가 뜰까봐 부끄럽다고 했다. 검색 엔진은 단 몇 번의 클릭과 입력만으로도 넘쳐나는 정보를 제공하지만 정보의 질까지 알려주지는 않는다.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으려면 어떻게든 남들보다 더 선정적이고 선동적인 내용의 기사를 써야 했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언론 매체에 대한 실망과 회의를 잔뜩 품고 잡지의 세계로 도망치듯 뛰어들게 되었지만, 경쟁 상대는 바뀌지 않았다. 검색과의 싸움에서 늘 고전을 면치 못하는 잡지 편집자인 내게 지난 5월 출간된 『검색, 사전을 삼키다』는 벼락같은 일갈과 진정성 있는 격려를 동시에 안겨주었다. ‘출판의 꽃이자 자존심’인 사전이 검색에 삼켜져 버린 시대라니. 나처럼 종이 책을 만드는 사람들에게는 마치 사형 선고나 지옥의 묵시록처럼 들릴 법한 책의 제목이다. 하지만 이 책의 진정한 메시지는 ‘검색이 좋아지기 위해서라도 좋은 사전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후의 사전 편찬자’를 자처 하는 저자는 아이러니하게도 사전의 몰락 원인으로 꼽히는 검색 회사에서 웹 사전을 기획하고 있다. 저자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무료로 콘텐츠를 쉽게 찾아 볼 수 있게 되면서 사전이 위기를 맞게 된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검색과 사전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검색 서비스는 대부분 첫 번째 검색 결과로 출판사로부터 저작권을 사들인 사전을 내놓는다. 사전은 ‘최소한의 검색’이자 ‘검색 결과의 뼈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검색이 좋아지기 위해서는 다양한 시각과 관점을 가진 전문 사전이 많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딱지와 우표 수집에서 시작해 음반 수집을 거쳐 수집의 끝판왕이라 할 수 있는 어휘 수집에 이르기까지, 저자는 자신의 수집 역사와 정리벽을 이야기하며 사전에 대한 애정을 담백하고 유쾌하게 드러낸다. 사전이 얼마나 고상하고 우아한 물건인지를 예찬하는 그의 맛깔난 애정 고백을 읽다보면 이제는 한물 간 것으로 보였던, 지루하고 고루하게만 느껴지던 사전이 새롭게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실상 사전은 위기 수준을 넘어 멸종 위기에 놓인 상태다. 유명한 출판 브랜드의 백과사전 한 질이 중산층의 기준으로 여겨지던 과거의 전성기가 무색하게 올해 종이 사전은 45년 만에 소비생활 대표 종목에서 제외됐다. 지난해 사전의 월평균 소비지출액이 231원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러한 사전의 몰락을 무조건 검색의 탓으로만 돌리지 않는다. 지난 6월, 그가 한 인터뷰에서 ‘종이 사전의 몰락과 원인은 인터넷 검색에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해 내놓은 대답은 나를 숙연하게 했다. 종이 사전의 쇠퇴에는 일본이나 영미권 사전을 생각 없이 번역하거나 콘텐츠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고 개성 없는 사전을 펴내던 종이 사전 편집자의 태만과 무능 탓도 있다는 것. 편집자로서의 근본적인 자세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곱씹어볼 만한 대답이다. 잡지의 세계로 뛰어들었지만 어쩌면 지금의 작업도 인턴 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해외 작품을 소개하는 경우, 인터넷 검색을 통해 회사와 작품에 대한 정보를 탐색하는 과정이 필수적으로 수반된다. 약 100쪽에 달하는 분량의 이번 아장스 테르 특집도 마찬가지로 구글 검색과 함께 했다. 검색과 종이 매체는 경쟁 관계가 아니라 떼려야 뗄 수 없는 공생 관계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분야를 가로지르는 접근을 통해 전문 영역의 한계와 가능성을 실험한다는 아장스 테르의 디자인 철학이 새삼 새롭게 읽힌다. * 환경과조경 343호(2016년 11월호) 수록본 일부
  • 베를린 시티 랩 ZK/U 시티 프로젝트
    베를린 서북부의 모아비트Moabit는 제조 산업을 담당한 공장과 발전소 등이 있던 외곽 도시로, 베를린 제조 역사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다. 모아비트의 서북 경계선에 위치한 ‘ZK/UZentrum für Kunst und Urbanistik, 보통 제트 코우라고 발음한다’는 기차역을 아트 스튜디오로 개조한 예술 공간이다. 디렉터 마티아스 아인호프Matthias Einhoff, 필리프 호르스트Philip Horst, 하리 작스Harry Sachs가 설립했으며 베를린 시에서 무려 40년 동안 공간을 장기 임대받아 활용하고 있다. “40년이라고요?”라고 경외심을 담아 묻자, “이웃 도시 암스테르담은 이런 경우 99년간 장기 임대를 해준다. 40년은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지극히 유럽스러운 대답이 돌아왔다. 비영리 단체인 ZK/U는 베를린의 수많은 예술 공간 중에서도 ‘도시’에 집중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아트 스튜디오다. 찬찬히 스튜디오를 살펴보니 과거 기차역이 지닌 공간의 특성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특별한 기운이 느껴진다. 게이트를 열고 들어서면 펼쳐지는 너른 마당은 역 앞 광장, 건물이 들어선 곳은 기차의 선로, 인터뷰를 진행한 테이블이 놓인 공간은 플랫폼이다. 플랫폼 안에는 주전부리를 팔던 매점도 천연덕스럽게 그대로 놓여 있다. 유휴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는 도시 베를린의 예술 공간답다. 베를린의 예술 유휴 공간 유휴 공간을 활용해 예술 공간을 탄생시키는 것은 이미 전 세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스토리가 되어버렸지만, 베를린은 그중에서도 원조 격 도시라고 부를 만하다. “왜 건물을 신축하거나 리모델링하지 않나요?”라는 질문에 모두가 납득할 만한 대답이 돌아왔다. “돈이 없었으니까.” 서독과 동독의 통일로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난 뒤, 독일은 거의 경제적 파산 상태가 되었다. 독일의 수도는 베를린이지만 GDP나 도시의 물가는 뮌헨이나 뒤셀도르프, 함부르크가 훨씬 높다. 오히려 베를린은 독일에서 가장 높은 실업률(11%)을 기록하고 있는 가난한 도시다. 하지만 예술가에게 우호적인 도시 환경을 지녔고, 저렴한 물가로 전 세계 젊은 예술가를 모이게 만드는 젊은 예술 도시이기도 하다. 가난하지만 섹시한 도시poor but sexy라는 베를린의 닉네임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베를린의 특성은 무엇이든 그대로 남겨둔다는 것이다. 폭격을 맞은 상태 그대로 내버려 둔 성당, 기차역이나 우체국 등 공공건물을 그대로 사용하는 아트 스튜디오 등이 너무나 많다. 예술 공간뿐 아니라 카페, 바, 클럽 등 일상에서 쉽게 만나는 건물도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면 과거에 어떤 공간으로 사용되었는지 유추할 수 있을 정도다. 이런 독특한 건물 재사용 문화가베를린의 정경—어딘가 모르게 음습하지만 섹시하고 흥미로운—을 형성하는 큰 역할을 하고 있다. * 환경과조경 343호(2016년 11월호) 수록본 일부 조숙현은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영상 커뮤니케이션 석사 학위를 받았다. 영화 전문지 『Film 2.0』과 미술 전문지 『퍼블릭아트』에서 기자로 일했으며, 저서로는 『내 인생에 한 번, 예술가로 살아보기』(스타일북스, 2015)와 『서울 인디 예술 공간』(스타일북스, 2016)이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에 깊은 관심을 두고 있으며, 서울이 예술가와 생활인이 공존할 수 있는 도시가 되기를 꿈꾼다. 현재 베를린에서 표류 중이며, 미래 도시의 희망을 베를린에서 찾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썼다.
  • [아장스 테르] 조경이 만드는 도시 앙리 바바, 미셸 오슬레, 올리비에 필립과의 대화
    지난 7월 18일 아장스 테르의 파리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프랑스 니스에서 테러가 있은 직후였다. 사뭇 긴장감이 도는 파리의 분위기와는 달리, 다양한 인종이 섞여 사는 동네의 옛 건물을 개조한 그들의 사무실에서 끊임없는 농담과 진지한 대화가 세 시간 넘게 이어졌다. 그날의 흥미로운 인터뷰를 옮긴다. 박연미(이하 P):아장스(회사) 이름이 특이하다. ‘ter’의 의미가 무엇인가? 아장스 테르(이하 T):첫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서류에 써 넣을 이름을 급하게 만들었다. 복잡하고 대단한 이름이 아니라 우리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이름을 찾았다. 공동 대표가 세 명이라 라틴어에서 숫자 3을 의미하는 ‘ter’라는 말을 땄다. P.발음으로는 ‘테르terre’라고도 읽을 수 있다. T.만들고 나니 그렇더라. 프랑스어로 ‘테르’는 땅, 흙을 의미한다. 경관을 다루는 일은 내가 딛고 있는 땅에서부터 시작한다. 또한 지구를 뜻하는 이 말은 프랑스를 넘어서 전 세계로, 정원에서 도시까지 스케일과 장르를 넘나들며 경계 없이 일하겠다는 우리 의도와 잘 맞아 떨어졌다. 무엇보다 이 단어로 많은 말장난을 할 수 있어 사람들이 쉽게 기억한다. 그 후 30년 동안 바꾸지 않고 쓰고 있다(웃음). P.셋이 만나 창립하게 된 배경은 어떻게 되는가? T.1970~1980년대에는 유럽 조경 사회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파리 외곽 도심지 재정비 사업인 라빌레트 공원이 탄생하면서 오랫동안 도시계획에서 소외되었던 조경이 인프라 중심의 현대 도시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으로 제시되었다. 공원 이외에도 공공 영역에 대한 관심이 확장되면서 자크 시몽Jacques Simon(1929~2015)이나 미셸 코라주Michel Corajoud(1937~2014)와 같은 실험적이고 이론과 실천을 넘나드는 대가들이 기존의 베르사유 왕실원예학교를 현재의 베르사유 국립조경학교로 재탄생시켰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미셸과 앙리는 베르사유 국립조경학교 졸업 후 알렉상드르 셰메토프Alexandre Chemetoff 회사에서 팀장으로서 실무를 경험한 올리비에를 만났다. 1984년, 셋은 빠르게 합의를 보고 아장스를 차렸다. P. 셋은 프랑스인이고 프랑스 국가 공인 조경가 자격을 가지고 있다. 이력은 매우 닮아 있지만 그 전의 배경은 다양하다. T.우리 셋은 태생이 다양하다. 프랑코 이탈리아 튀니지 출신의 앙리, 독일계인 미셸, 인도에서 자란 올리비에. 조경가paysagiste 이전에 각자는 생물학, 미술, 세노그라피(무대장식), 여행 등을 통해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문화적으로 복합적인 아장스 DNA는 지금의 아장스 테르가 다양한 프로젝트를 할 수 있게 한 자산이다. * 환경과조경 343호(2016년 11월호) 수록본 일부
  • [아장스 테르] 카노피아 우르바나 Canòpia Urbana
    디아고날Diagonal에 위치한 토레 아그바르Torre Agbar는 건축가 장 누벨이 설계한 타워로 바르셀로나의 랜드마크다. 타워 인근에는 교차로 ‘플라카 데 레스 글로리에스 카탈라네스Plaça de les Glòries Catalanes’가 자리 잡고 있는데, 바르셀로나 시는 이 교차로를 지하화하고 상부를 공공 공간으로 재탄생시키고자 했다. 2013년 바르셀로나 시는 교차로를 도시의 새로운 구심점으로 만들기 위해 국제 지명 설계공모를 개최했다. 공모전에 초청받은 우리는 자연을 중심으로 새로운 경관을 형성하는 카노피아 우르바나Canòpia Urbana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2014년 당선작으로 선정됐다. 카노피아 우르바나의 목표는 크게 세 가지다. 첫 번째 목표는 도시와 자연을 결합하는 도시 생태 시스템의 개발이다. 두 번째는 지하와 지상을 비롯해 도시의 경관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질 수 있는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이며, 마지막 목표는 도시 광장과 공원의 기능을 모두 담을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하는 것이다. 대상지는 세르다Cerdà시의 중요한 축에 위치하고 있으며 15헥타르에 달해 우리의 목표를 모두 달성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공간이라 여겨졌다. * 환경과조경 343호(2016년 11월호) 수록본 일부 Landscape ArchitectAgence Ter CollaborationAna Coello de Llobet, Factors de Paisatge / Manuel Colominas, Estudi Xavier Mayor, JG Ingenieros, Frances Xairo Associats SL ClientCity of Barcelona, Barcelona d’Infraestructures Municipals SA LocationBarcelona, Spain Area15ha Competition2014 Completion2020 GraphicsAgence Ter & Ana Coello
    • 아장스 테르 / 아장스 테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