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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설계하는 법] 종이 작업
설계를 하는 사람으로서 자신의 ‘설계하는 법’에 대한 원고 의뢰를 받은 후의 중압감은 표현하기 힘든 수준이었다. 2015년 10월, 단 사흘간의 고민을 통해 설계사무실을 열 때의 생각이 다시금 떠올랐다. 나라는 사람의 설계 철학은 무엇인지 무한 갈증을 느끼며 잘 다니던 회사를 무작정 퇴사했다. 3년 가까운 시간이 지난 지금, 나의 설계 철학은 무엇일까? 이번 원고의 주제는 다행히 ‘설계하는 법’이기에 그나마 무게를 덜고 나의 설계 방법을 써 내려가 보기로 한다.
2003년 여름, 신입 인턴사원으로 설계사무소 생활을 시작했을 때 아는 것이 무엇이 있었으랴. 무작정 주위를 살피며 배워볼 만한 건 무엇이든 배우려 하던 시절이었다. 일반적인 설계사무실의 구조가 그러하듯 사무실 전체가 드로잉에 많은 시간을 투여하고 있었고 나 또한 드로잉을 잘해보려는 욕심으로 가득했던 그때가 지금도 생생하다.
“드로잉을 잘해야 조경을 잘한다. 디자인을 잘해야 조경을 잘한다. 실시 설계를 잘해야 조경을 잘한다. 계획안을 잘 잡아야 조경을 잘한다. 나무를 많이 알아야 조경을 잘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 시절, 조경 설계에 무식하게 접근하던 내 모습을 지금은 잊었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이 ‘잘한다’ 시리즈가 지금의 기초가 된 게 아닌가 싶다.
‘종이 작업’은 아름답다. 물론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에 한해서지만. 드로잉 도구를 이용한 감각적 표현과 멋과 기교를 낼 줄 아는 이의 무한한 펜 스킬은 많은 이에게 종이 작업을 아름답게 보이게 한다. 나 또한 손 드로잉을 통해 디자인을 하고 공간을 구성하지만, 설계를 시작하고 10년간은 어떻게든 드로잉을 잘해보려고 많은 노력을 했던 기억이 난다. 10년 넘는 시간 동안 무수히 많은 프로젝트에서 종이 작업 공부를 한 셈이다. 종이 작업의 절대 강자 드로잉은 설계 작업의 가장 화려한 방법으로 인식되며 국내 조경 설계의 가장 큰 흐름으로 자리 잡았었다.
하지만 어느 시점부터인가 드로잉은 내게 지루함의 연
속으로 다가왔다. 언제부터인가 사이트 베이스 맵 위
에 옐로 페이퍼를 깔고 드로잉을 하는 멋진 조경가의
이상이 즐겁지 않고 반복적인 일상의 연속이 되어버린
바로 그때, 나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했다. 드로잉만
을 통한 설계 방법은 일면 원시적인 방법으로 여겨질
수도 있지만 보고 배운 게 그뿐인지라 조경 설계에 입
문한 후 1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매여 있던 것이다.
종이와 펜을 잡고 있던 나는 내 종이 작업의 한계를
보고 말았다.
프로젝트의 종류를 구분하지 않는다. 이른바 아파트 조경 설계가 저급한 설계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20년 가까이 내 손을 거쳐 간 아파트 프로
젝트의 숫자만 건설기술인 경력 증명에 10쪽 넘게 기
재되어 있기에, 그럴 수가 없었다. 10여 년의 종이 작업
의 한계를 보았을 때, 또 맡겨진 아파트 프로젝트. 하지
만 그때는 조금 달라졌다. “저 이번 아파트 프로젝트에
는 일주일에 한 번 현장에 나가 볼게요.” 에버랜드 디자
인 그룹의 책임 디자이너 시절, 좋아하는 파트 장에게
나지막이 드린 나의 소망 섞인 통보였다. 허락을 구하
는 듯했지만 실은 통보였다. 현장에 나가고 싶었기에.
이후 일주일에 한 번씩 현장을 방문하게 되었을 때 프로젝트의 전 과정을 이해함과 동시에 무수히 많은 이
해관계와 맞물린 현실에 맞닥뜨리게 되었다. 다시 생
각해 볼 필요가 있었다. 설계가가 해야 하는 것은 무엇
인가? 이 모든 이해관계자를 충족시킬 수 있는 설계를 하고 있는가? 소나무의 얼굴 방향이라도 알고 설계를
하고 있는 것인가? 말하기는 쉬운 공간감은 느끼며 설
계를 하고 있는 것인가? 현장 소장의 애로 사항이 무
엇인지 인식하며 설계를 하고 있는 것인가? 식재 소재
의 국내 시장 수급 현황을 파악하며 설계를 하고 있는
것인가? 건설사 대표 소장의 안목과 성향을 파악하고
설계를 하고 있는 것인가? 현장 작업 반장의 고착된
식재 방식을 알고 설계를 하고 있는 것인가?
책상을 버린 것, 잘한 일이었다. 그 현장에서만 6개월
간 많은 이견과 충돌이 있었다. 종이 작업과 비교하면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어려움이 있었지만, 즐거움도
있었고 이런 과정을 통해 주변에 많은 사람이 생겼다.
독창적 디자인은 개인이 할 수 있을지 몰라도 디자인의 완성인 목적물은 결국 사람들이 하는 일이었다. 목적물은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야 비로소 완성된다.
설계와 시공이 분리 발주되는 국내 건설 현장의 프로
젝트 진행 방식에서 발생하는 현장 소장의 다양한 설
계 변경 요구에 맞서 싸우기도 하고 어르기도 하며, 여
우처럼 영악하게 행동해야 했다. 내가 설계한 현장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지켜보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들어
가 현장을 조율하고, 현장에서 발생하는 여러 이해관
계가 엉킨 실타래를 풀 해법을 찾았다. 나의 디자인에
부합하도록 그들의 생각을 변화시키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일 때, 비로소 나의 설계가 보였다.
종이 작업, 필요한 만큼의 생각만 정리할 수 있으면 된다. 각자의 방식에서 무수히 많은 경우의 수가 발생하
겠지만, 설계 행위는 결국 물리적 재료와 환경을 활용
해 무언가를 표현하기 위해 행하는 과정의 일부에 지
나지 않는 것 아닌가. 디자이너라는 호칭에서 오는 자
만심을 버려야 한다. 종이 작업 중심의 표현을 위해 디
자이너가 존재하는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여건이 주어지지 않아 그렇지 못한 프로젝트가
비일비재하겠지만, 어떻게 보면 핑계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명심했으면 한다.
책상에 앉아 유려한 디자인 선형을 뽑아내며 행복해
하고 실현되지 못할 다양한 개념과 설계 전략을 채우며 만들어내는 종이 작업에서 지금도 프로페셔널한 느낌을 받고 있는 점,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종이
작업에 한정된 디자이너의 역할을 수행하기에 앞서,
전체 프로젝트의 목적물 완성을 위한 철저한 목적 의
식과 이를 아우르는 유연한 사고를 통해 해법을 찾는
프로젝트 매니저로 설계가의 역할을 확장했으면 한다.
국내 설계 업계에 많은 어려운 점이 있는 것,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나 또한 종이 작업에서 끝이 나는 현실
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지만 항상 도전하며
기회를 찾고자 한다.
디자인(행위의 기교)하지 않는 디자인(사고의 산물)
추측하건대, 국내 조경 설계 시장의 90% 이상은 건축
부문의 협력사로 진행되는 건축 외부 공간 조경 설계
일 것이다. 물론 개인적인 판단이다. 몇 개의 설계사무소가 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1970~1980년대
부터 주로 진행되어 온 조경 설계에서 평면 드로잉은
의사 결정의 절대 강자였다고 본다. 2015년 10월, 급
히 설계사무실을 개소하며 처음 맞닥뜨린 건축 설계공
모 프로젝트에서 잊고 지내던 국내 조경 설계의 현실
을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패턴 좀 그려주세요.” 포장 패턴을 뜻하는 게 아니다.
아는 사람은 알 만한 요구 사항이다. 자존심이 상한다.
마음이 아프다. 속이 상한다. 화가 난다. 무수히 많은
프로젝트 중 가장 밑바닥 조경 설계 일부터 시작해야
했다. 10여 년의 종이 작업에서 벗어나 프로젝트 매니
저의 시각에서 설계를 하던 나의 모습에서 하루아침
에 조경 패턴을 그리는 사람으로 변해버린 잊지 못할
사건이다. 잊지 않으리라 지금도 생각하며, 그 건축사
사무소와는 결별했다. 아니, 결별을 당했다.
그들이 말하는 조경 패턴이 무엇인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건축 설계공모에서 무수히 많이 보이는, 건축
물을 중심으로 한 큰 흐름이 보이는 선형 패턴 작업.
나도 예전에 했으며 지금도 다들 많이 하는 그 디자
인. 하지만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계획안을 잡지 않
았다. 아니 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약간의 강렬한 펜
스킬을 이용한 ‘행위의 기교’를 보여주었다.
계획안을 보낸 지 10분 정도 지나 실무 담당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소장님, 보내주신 계획안 잘 봤습니다.
그런데 약간 흐름이 보였으면 합니다. 중심에서 뭔가
잡아주는 듯한 느낌을 줄 수 있는, 그런 패턴 있잖아요.”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나는 200%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후 3일 동안 협의가 진척되지 않았다. 그 일은 버리는 프로젝트가 되고 말았다. 다소 반항적인 드로잉을 끝으로
경험적 사고와 현실적 해법
설계 표현의 중요한 방법인 드로잉이 기교가 되어 조
경 패턴으로 인식되고, 그런 인식을 가진 협력사(또는 발
주처)의 의사가 국내 조경 설계 시장을 오래 전부터 무
너뜨리고 있었다. 조경 설계의 내공이 성장도 하기 전
에 조경 설계란 고작 패턴 만들기라는 인식이 굳어졌다. 모두 그렇지만은 않을 테지만, 아주 많은 경우 외
부의 인식이 그렇게 고정된 현실에서 우리는 우리의
잘못을 되짚어 볼 필요도 있다. 우리가 먼저였다. 예전
의 나도 그랬고, 다른 많은 이들도 그렇게 하고 있다.
멋스럽게 드로잉을 하고 행위의 기교를 부리며 디자인
을 하는 것이 조경 설계의 전부인 것처럼.
설계사무실을 운영하며 프로젝트를 선별해 수주하기란 매우 어렵다. 처음 사무실을 열며 다짐했던 많은 생각이 무너지며 어느 정도 현실과 타협하며 다듬어지고
있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하지만 주요 프로젝트인 경우에는 다양한 접근을 위해 창의적 사고와 경험적 사고를 바탕으로 임하고 있다. 10년 동안의 시공사 디자인 그룹 재직 경험이 지금 설계의 근간을 만들고 있다.
국내의 어느 설계 조직에서 디자인 제안 후 5~6개월
이내에 준공하는 모습을 1년에 대여섯 번 경험하며,
시공하는 동안의 현장 지원과 조율을 경험할 수 있을
까 싶다. 이번 원고를 쓰며 확인해보니 다양한 프로젝
트에서 디자인 제안부터 실시 설계, 그리고 현장 지원
과 조율까지 경험했다. 설계의 전체 프로세스를 진행
하며 얻은 경험적 사고를 통해 습득한 현실적 해법은
기본적인 창의적 사고와 함께 설계를 해나가는 중요한
도구가 아닐 수 없다.
현실적 사고와 해법을 찾기 위해 개념적 의미는 배제한다. 쉽게 말해 말장난은 하지 않으려 한다. 전략적
사고로 도출되는 언어가 아닌, 클라이언트를 설득하기
위한 표현은 지향한다. 과거의 내가 드로잉과 종이 작업에 미쳐 있었다면, 요즘 설계가들은 언어적 유희를
통해 만들어낼 수 없는 대상의 개념을 표현하려고 하
는 것 같다. 어떠한 행위의 기교가 아닌 목적 대상이
있는 사고의 산물로서 디자인을 하기 위해 노력했으면
한다.
디자인하지 않는 디자인: 예장
행위의 기교에서 벗어나 목적 대상의 본질에 대해 생각
했다. 남산이다. 흔히 알고 있듯이 애국가에 등장하는
서울의 남산은 서울의 앞산이며 안산(案山)이기도 하다.
비슷한 성격의 사업을 장충과 회현에서 진행했으며,
예장(남산 예장자락 재생사업 설계공모)은 마지막 남은 남산
자락의 재생 사업이었다. 앞서 진행된 회현이나 장충과
달리 복합 기능을 담는 공간으로 조성되어야 했다. 이
점이 남산 자락 재생의 근본 목적에 걸림돌이 되는 부분이었는데, 약 7,000평의 사이트는 곤돌라 스테이션과 버스 주차장의 기능을 수행하며 동시에 남산 재생이라는 목적을 달성해야 했다(이후 2016년에 곤돌라 스테이션은 취소되었다). 이율배반이다. 하지만 설계는 항상 문제와 함께 시작한다. 이를 해결하는 자가 설계가다.
시작부터 가지고 있는 문제, 그리고 프로젝트가 진행
되며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와 이견 속에서 설계가는
본래의 목적을 손에서 놓지 말아야 한다. 수단과 방법,
가리지 않는다. 그림이 필요하면 그려야 하고, 대화가
필요하면 대화해야 하고, 설계가의 자존심이 걸림돌이
된다면 가차 없이 버릴 줄 알아야 하며, 현실과 타협해
야 한다면 본질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선 충분히
타협해야 한다.
숲이다. 디자이너의 얄팍한 기교와 과장은 사전에 차단되어야 한다. 아무것도 하지 말라. 숲으로 만들어라.
무엇을 행하려고 하는 이들의 욕망을 잠재워야 한다.
그것이 1,000만 시민의 숲을 대하는 설계가의 자세라고 생각한다.
2년 4개월, 고된 시간이었다. 아니 비루한 싸움이었다.
프로세스의 각 단계를 넘기며 몸과 마음은 피폐해졌다. 공모부터 설계 준공까지, 그리고 예정된 설계 변경까지, 프로젝트 PM을 직접 수행했다. 건축사사무소의
협력사로 시작한 프로젝트이기에 저작권을 가지고 오지도 못하지만 그만큼 나에게는 애절한 프로젝트였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싶었다.
철거와 터파기는 6개월 전에 완료됐으며, 예전과는 달
리 이제 나의 역할과 권한이 제한되어 있다. 설계 준
공과 동시에 현장 설계 변경에 대한 조율 권한이 없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준비했다. 시공 중에 현장 설계 변
경을 할 수 있는 사항이 어떤 것이 있을 것이며, 변경
사항이 예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인지, 그리고 설계의 근본 목적을 훼손할 것인지에 대해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행했다. 이제 내일이면 최종 납품이다. 2년 4개월의 기나긴 여정이 일단락되는 순간이기
도 하며, 새로운 시작이 전개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원고를 쓰며 잠시 컴퓨터의 프로젝트 폴더들 제목에
담긴 지난 시간의 애환을 떠올려 본다. 다양한 나의 모
습이 스쳐 지나간다. 거만한 아티스트, 프로페셔널 엔지니어, 속없이 비비적대는 설계가, 수다쟁이 동네 남
동생, 고집불통 협상가, 나무 찾아 헤매는 산사람, 세
속에 물든 사업가, 피곤에 찌든 설계쟁이, 이 모두가
나의 모습들이었다. 예장을 설계하며 본래의 목적을
지켜내기 위한 나의 모습들이었다. 그게 바로 이번 호
원고에서 보여줄 수 있는 나의 설계 방법이 아닌가 싶다.
김호윤은 기술사사무소 아텍과 삼성에버랜드 디자인 그룹에서 조경가로서 영업, 설계, 공사의 관계를 조율하며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현재는 조경설계 호원(Landscape Design Office HOWON)을 설립·운영하고 있으며, 바른 설계 집단을 구성하고자 기본을 중시한 설계를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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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생각, 새로운 공간] 박길종 길종상가 관리인
미술이 만드는 도시
도시에 대한 지배적 인상은 대개 사람의 눈높이 근처에서 만들어진다. 작은 화분 하나, 닳은 문고리 한 짝, 계단 난간의 유려한 선이나 담뱃재를 떠는 휴지통 모양의 영리함에서, 혹은 미술관 리플릿이 놓인 책장이나 쉼터의 벤치, 동네 술집의 아담한 간판에서 우리는 한 도시의 시민들이 공동으로 성취해 낸 문화적 수준을 느낀다. 거대한 건축물이나 도로는 세계화된 자본과 권력의 의지를 통해 단시일내에도 이식될 수 있지만, 전능한 자본의 물결도 습관의 층과 결이 배어든 수천수만 가지의 일상적 오브제까지 적실 수는 없다. 어느 나라의 고속 전철도 속도는 비슷할지 몰라도 객실 의자의 팔걸이와 테이블의 부드러움, 쿠션의 지지력에는 나라마다 상당한 차이가 있다. 작가와 장인들이 쌓아온 노력의 세월, 실력의 민낯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디테일, 그리고 딱 그만큼의 사회적 눈높이가 쌓여 물건은 기쁨의 대상이 되고,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는 사랑스런 경관이 된다.
우리는 어떤 문제든 돈으로 사서 해결하는 데 익숙해져 버렸다. 너무 쉽게 버리고 갈아치우는 시대, 소비를 통해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표현한다는 광고성 문구가 이상하지 않은 사회에 살고 있다. 부엌은 셰프의 주방이 되어야 하고, 침실은 특급 호텔 같아야 하고, 거실은 쇼룸이 되는 것이 정상이라고 수많은 디자인 매체가 부추긴다. 인테리어 데코 상품을 파는 사람은 스스로를 라이프스타일 디렉터라 칭한다. 남이 정의해 준 멋을 스스로 찾아낸 것이라 착각하며 물건에 치여, 스타일에 치여 사느라 다들 피곤하다.
도시도 마찬가지다. 습관적인 고급 지향, 틀에 박힌 데코, 현실과 불일치한 책상머리의 허세가 거리를 꽉꽉 채워진 쓰레기통으로 만들고 있다는 개탄이 적지 않다. 잘 만든 하나보다는 형편없는 다량이 비좁게 들어찬 도시. 이제, 기름기 걷어내는 도시의 재편이 절실하다. 소박하고 영리하며 지적인 길과 광장. 현명한 사람이 꾸민 집처럼 있는 그대로의 우리 자신을 인정하는 디자인. 요즘 가장 잘 나간다는 가구 디자이너 박길종이 어떤 잡지에서 툭 뱉은 한마디가 마침 눈에 들어왔다. “사용하는 게 있으니까, 새로 만들 필요도 없구요.” 물건에 자신을 맞추지 않고, 물건을 자기 삶의 기준에 맞게 만들 수 있는 흔치 않은 디자이너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 소개된 그의 집 또한, 인테리어가 없는, 그냥 ‘집’이었다. ...(중략)...
* 환경과조경 361호(2018년 5월호) 수록본 일부
최이규는 1976년 부산 생으로 뉴욕에서 10여 년간 실무와 실험적 작업을 병행하며 저서 『시티오브뉴욕』을 펴냈고, 북미와 유럽의 공모전에서 수차례 우승했다. UNKNP.com의 공동 창업자로서 뉴욕시립미술관, 센트럴 파크, 소호 및 대구, 두바이, 올랜도, 런던, 위니펙 등에서 개인전 및 공동 전시를 가졌다. 현재 계명대학교 도시학부에 생태조경학전공 교수로 재직하며 울산 원도심 도시재생 총괄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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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 탐독] 자연과 함께 디자인하기
인간 대 식물
먹을 수 있는 열매를 맺는 과실수는 인간과 가장 오래, 깊게 인연을 맺고 사는 지구의 생명체다. 특히 사과나무는 그리스·로마의 신화는 물론이고 여러 종교의 성경에도 빠짐없이 등장할 정도로 인류의 문명과 인연이 깊다. 현재 사과는 재배종이 7천여 개에 이를 정도로 엄청나다. 그런데 여러 ‘품종’으로 불리는 이 다양한 사과는 인간에 의해 변형된 식물로, 자연 상태에서 사는 자생종과는 다르다. 한때 미국의 워싱턴과 뉴욕은 최대 사과 재배지였다. 그 흔적이 아직 가로수에도 남아 있지만, 도시 뉴욕의 상징이 사과라는 것도 이를 잘 증명한다. 지금도 사과는 좀 더 크고 단맛이 강화되도록 끊임없이 재배종이 만들어지는 중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원래 자연에서 생존했던 야생의 사과는 잊혀졌다. 지나친 유전적 변형이 일어난 품종 사과나무가 급속히 자생력을 잃어가고 단맛의 증폭이 다른 영양분의 결핍을 일으키는 등 문제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품종 사과의 어머니격인 야생 사과는 카자흐스탄 인근의 중앙 유럽 산악 지대에서 자라는 ‘말루스 푸밀라(Malus pumila)’로 최근 밝혀졌다. 물론 이 야생 사과의 특징은 우리가 지금 먹고 있는 사과 품종들과는 매우 다르다. 열매도 작을뿐더러 그 맛도 시고 떫어서 지금의 사과 맛이 아니다. 먹기에 적당하지 않지만 이 야생 사과는 재배종 사과의 유전적 결함을 치료하고 사과 고유의 특징을 다시 복원하는 데 꼭 있어야 할, 생물학적으로 귀한 식물이다. 사과나무뿐만이 아니다. 호모 사피엔스로 분류되는 인류와 식물은 그야말로 동고동락해 왔다. 애증과 공생의 고리가 아주 깊고 복잡하다. 인간은 식물이 없으면 생존이 불가능하기에 식물에 절대적으로 의존해야 하지만, 식물 입장에서도 인간이 아니었다면 지구 전체에 지금과 같이 번식하지 못했을 게 분명하다. 인간만큼 식물을 파괴하는 생명체도 없지만 인간만큼 식물을 키우기 위해 애쓰는 생명체도 없는, 서로에게 참 묘하고 복잡한 공생 관계다. 사과나무에 얽힌 자생종과 재배종의 문제가 최근에는 정원에서도 고스란히 일어나고 있다. ...(중략)...
* 환경과조경 361호(2018년 5월호) 수록본 일부
오경아는 방송 작가 출신으로 현재는 가든 디자이너로 활동 중이다. 영국 에식스 대학교(The University of Essex) 리틀 칼리지(Writtle College)에서 조경학 석사를 마쳤고, 박사 과정 중에 있다. 『시골의 발견』, 『가든 디자인의 발견』, 『정원의 발견』, 『낯선 정원에서 엄마를 만나다』 외 다수의 저서가 있고, 현재 신문, 잡지 등의 매체에 정원을 인문학적으로 바라보는 칼럼을 집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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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스케이프] 쓰리 빌보드
강렬하고 품위 있는 추모 공간
전투복을 입은 주인공과 “죽은 딸을 위해 세상에 맞서는 엄마”라는 카피를 보고, 폭력과 차별에 맞서 장쾌하게 복수하는 영화를 상상했다. ‘쓰리 빌보드’는 우리가 그동안 한 번도 본 적 없는 유형의 영화다. 절대적으로 나쁜 사람도 없고, 절대적인 영웅도 없다. 주인공인 엄마는 도덕적으로 완전무결하지 않다. 누구보다 싸움도, 욕도 더 잘한다. 각자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 행동할 뿐이다. 등장인물들의 행동은 매번 의도와 다른 결과를 낳고, 관객의 예상도 번번이 빗나간다.
폭력과 분노가 충돌해서 빚어낸 결과로 남는 것은 고요와 숭고함이다. 누구하나 우아하게 행동하는 사람은 없는데 희한하게도 품격이 느껴진다. 한편의 블랙 코미디가 끝날 때쯤 기어이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 뜨거움의 정체가 궁금하다. 인종 차별, 젠더, 가족주의, 그 어떤 장르로도 묶이기를 단호하게 거부하는 영화다. 주인공의 추모 공간과 그 추모 방식이 낳은 영향에 주목해 보자.
영화의 첫 장면, 안개 낀 한적한 도로변 들판에 서 있는 세 개의 낡은 대형 광고판 모습으로 시작한다. 이것이 앞으로 초래할 사건과는 달리 아름답고 시적인 풍경이다. 여기저기 찢겨진 채 방치된 광고판은 1980년대 이후로 그 기능이 멎었다. 밀드레드(프란시스 맥도맨드 분)는 광고 회사를 찾아가 계약금을 걸고 광고를 의뢰한다. “내 딸이 죽었다”, “그런데 아직도 못 잡았다고?”, “어떻게 된 건가? 웰러비 서장”, 몇 개의 단어로 광고판을 차례로 채운다. 경찰서장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며 공권력의 무능함을 지적하는 이 대담한 광고는 순식간에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방송에도 보도된다. ...(중략)...
* 환경과조경 361호(2018년 5월호) 수록본 일부
서영애는 조경을 전공했고, 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다. 모처럼 좋은 영화가 많은 계절이다. 어제 본 영화를 오늘 본 영화가 덮어쓰고, 오늘 본 영화는 내일 또 어떤 영화로 묻힐지 모르겠다. ‘쓰리 빌보드’는 이달에 오늘까지 본 영화 중 최고다. 잠시 멈춰서 생각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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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트릭 블랑, 부산현대미술관에 수직정원을 만들다
부산현대미술관(관장 김성연)이 6월 개관을 준비하고 있다. 낙동강 하구의 을숙도(천연기념물 제179호)에 위치한 현대미술관은 자연과 예술의 관계에 주목하며, 생태와 뉴미디어를 아우르는 미술관으로 탄생할 예정이다. 그러나 건립 초기부터 미술관에 어울리지 않는 건물이라는 비판 여론에 직면하자, 미술관 측은 건물 외형을 보완하기 위해 식물학자 겸 아티스트인 패트릭 블랑(Patrick Blanc)을 초청해 미술관 외벽에 수직정원(Vertical Garden) 설치를 계획한다. 패트릭 블랑은 지난 4월 14일 미술관을 방문해 수직정원의 시공 상황을 확인하고, 본지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동아대학교 학생들과의 식재 행사를 마치고 학생들의 기념 촬영과 사인 요청에 일일이 응하느라 인터뷰 시작이 예정보다 지체되었지만, 시종일관 열정적인 제스처와 함께 답변을 이어갔던 패트릭 블랑과의 대화를 옮긴다.
Q 2013년 인터뷰를 통해 한국의 독자들에게 소개된 바 있다(최이규ㆍ박명권, ‘조경의 경계를 넘어: 조경의 영토를 넓혀나가는 주목할 만한 조경가 12인’, 『환경과조경』 2013년 9월호, pp.100~111).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갑다. 한국에 몇 번째 방문한 것인가?
패트릭 블랑Patrick Blanc(이하 B) 예전에 프랑스 건축가 장 누벨과 함께 서울에서 개인주택(2003년) 작업을 했다. 그때 북한산에서 많은 식물을 볼 수 있었고, 10여 년쯤 전에는 제주도를 탐사했다. 제주는 섬 지역이라 서울과 매우 다른 느낌이었다. 부산은 작년 10월 처음 방문했는데, 서울이나 제주와는 또 다른 분위기였다.
Q 부산의 첫인상은 어땠나?
B 부산은 규모가 아주 큰 도시는 아니지만 그 다양성에 놀랐다. 많은 해산물을 보았고, 특히 시장에서 해산물을 사서 위의 식당에 올라가서 먹는 굉장한 경험을 했다. 해변의 레스토랑뿐만 아니라 곳곳에서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며 즐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도시에 활기가 넘친다. 도시 전체적으로 현대식 건물이 많기는 하지만 경사지가 많고 곳곳에 전통적인 부분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 다양하다는 느낌을 준다. 지금 머물고 있는 코모도호텔도 전통적인 분위기의 호텔이다. 그렇게 다른 건축 양식이 공존한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중략)...
* 환경과조경 361호(2018년 5월호) 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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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의 서재] 쇼코의 미소
핸드폰 액정이 반짝인다. “도무지 엄마를 좋아할 수가 없어.” A다. 엄마와 하나부터 열까지 다르다는 그녀는, 심지어 아침에 일어나서 이를 먼저 닦냐, 밥을 먼저 먹냐는 문제로도 다투곤 한다. 그녀의 어머니는 A가 정 없는 사람이라 이야기하는데, 정작 그녀는 엄마처럼 대놓고 무안을 주는 사람을 본적이 없다고 한다. 그녀의 어머니는 (순전히 어머니의 기준에서) 단정치 않은 그녀의 머리가 마음에 들지 않고, 기어코 미용실에 가라는 잔소리로 A의 신경을 긁어 놓는다(A의 머리는 컬을 살짝 넣은 단발머리다). 둘은 서로의 사고방식과 삶의 방식을 이해할 수 없어, 매번 상처를 주고 상처받는다. 하지만 A는 여느 가족들처럼 그래도 어머니를 사랑한다. “서로 다투면서도 관계를 단절하고 싶은 건 아니란 말이지. 이렇게까지 상처를 주고받으면서도 꼴 보기 싫다고까지 생각하지 않는 건, 역시 좋아하지는 못해도 사랑은 하고 있어서가 아닐까 싶어. 어쨌거나 엄마가 상처받아서 속상해하고 있는 걸 보면 나도 속상하긴 하니까. 뭐, 그러니까 좋아하진 않아도 사랑은 하는 거 같아.”
좋아하지 않고도 사랑할 수 있을까. 서로 맞지 않으면 관계를 포기해버리면 좋을텐데, 세상에는 혈연이나 어떤 인연으로 만남을 이어가야 하는 사이가 많다. 그런 경우 사람들은 상대를 이해해보려 ‘이유’를 찾는다. 그 사람이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그렇게 말한 까닭이 무엇인지 납득할 수 있는 이유. 끊임없이 이해하려 노력하고, 상대의 모든 행동과 말에 의미를 부여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상대를 좋아하게 된다면 다행이지만, A의 말처럼 “아주 근본적인 부분부터 달라 서로 절충안을 찾을 수 없는” 관계도 있다. 그래서 A는 엄마를 이해하기보다 인정하기로 했다. 엄마의 입장에 서보는 대신, 그냥 엄마는 저런 사람이구나 하고 받아들여 버리는 것. 그렇게 하니 도리어 엄마를 좋아하지 않고도 사랑할 수 있다고 한다.
이해와 인정. 『쇼코의 미소』를 읽는 내내 두 단어가 계속 머리를 떠돌았다. 일곱 편의 단편을 엮은 『쇼코의 미소』의 공통 화두는 ‘이해’다. ‘쇼코의 미소’와 ‘한지와 영주’가 전혀 짐작할 수 없는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정직하게 마주한 최은영의 질문이라면, ‘씬짜오, 씬짜오’,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먼 곳에서 온 노래’, ‘미카엘라’, ‘비밀’은 이해라는 키워드를 공감과 유대로까지 확장한다.
‘미카엘라’에서 광화문광장에 선 익명의 여성들은 4월 16일 자신들의 딸이 배에 있었음을 잊지 말아달라고 부탁한다. 그 딸 중 하나인 미카엘라는 어느 교회에나 있을 법한 흔한 세례명이다. 주인공의 세례명도 미카엘라다. 어쩌면 나 또는 나의 가족이나 친구, 선생님, 친척의 세례명이었을 수도 있던 미카엘라라는 이름이 “그저 운이 좋아서, 내가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음을"(각주 1)상기시킨다. 이를 깨닫는 순간 나 역시 광장을 떠나지 못하는 수많은 미카엘라 중 하나가 된 듯 했다. 광장에 선 여성들의 목소리는 높지도, 낮지도, 처절하지도 않다. 최은영의 문체처럼 단정하기만 하다. 관조적이기까지 한 문체는 『쇼코의 미소』 전반에 깔려 있다. ‘먼 곳에서 온 노래’, ‘비밀’에서도 세월호를 간접적으로 다루는데, 작가는 결코 그들에게 위로를 건넨다거나 앞으로 우리는 이래야만 한다는 메시지를 던지지 않는다. 그저 빈 자리를 보며 긴 시간을 견디는 사람들의 모습을 묘사하기만 한다. 이상하게도 이런 담담함이 등장인물의 마음에 공감하게 하고, 그들에게 아무것도 몰랐기에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싶어지게 만든다.
서로를 이해하거나 인정하는 일이 쉽게만 그려지는 건 아니다. ‘쇼코의 미소’의 소유는 “평생 좋은 소리 한 번 하는 법 없이 무뚝뚝하기만” 한 할아버지가 죽음을 앞뒀을 때야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건 사내답지 않다고 여기며 깔보던 시대에 태어난 사람”(각주 2)이라는 걸 깨달았으니까. 그래도 할아버지는 소유와의 관계를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소유는 “비어져 나왔던 사랑의 흔적”들을 발견한다(각주 3).
소유가 할아버지를 좋아하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한두 시간 만이라도 텔레비전을 끄고 서로의 얼굴을 마주 하고 싶던 마음은 사랑의 일종이었을 것이라 짐작해본다. 소유의 모습에 A가 겹쳐진다. A와 그녀의 어머니가 마주 보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도무지 맞는 점이 없는 둘도 긴 세월 부대끼다보면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될지 궁금해하면서.
*각주 정리
1. 브레히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 물론 나는 알고 있다/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그러나 지난 밤 꿈속에서/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강한 자는 살아남는다.”/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2. 최은영, “쇼코의 미소”, 『쇼코의 미소』, 문학동네, 2016, p.47.
3. 위의 책, 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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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A] 대안과 연대
『환경과조경』 2018년 5월호 특집, ‘따로 또 같이, 느슨한 연대를 실천하다’는 우연한 기획의 산물이지만, 이 기획의 등장이 결코 우연은 아니다. 지난 몇 년간 기존 조경설계사무소나 단체와는 다른 형식의 그룹이 차츰 눈에 들어왔다. 최근 들어서는 부쩍 작품을 소개하거나 원고를 받을 때 그들이 속해 있는 또 다른 모임들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새로운 그룹의 이름을 들으면 포스트잇에 적어 모니터 앞에 붙여 두곤 했다.
우연히 어느 편집회의 테이블에서 막연한 미래 아이템으로 적혀 있던 이 기획이 5월호의 특집으로 급부상했다. 구슬도 꿰어야 보배라고, 막상 손꼽아보니 생각보다 많은 그룹이 있었고, 그렇게 놓고 보니 하나의 흐름으로 읽혔다.
‘대안과 연대’라는 다소 거창하고 딱딱한 키워드로 이루어진 가제로 섭외를 시작했다. 이들에게서는 조경을 기반으로 하지만 고전적인(기성의) 산업과 분야의 경계를 강조해서는 미래를 꿈꾸기 어렵다는 공통의 인식이 보인다. 공통의 지향 아래 모였으나 개개인의 차이를 존중하는 유연함이 특징이다. 물론 우리의 섭외를 고사한 그룹도 있다. 최대한 많은 모임을 통해 다양성을 드러내는 것이 이번 특집의 미덕이라고 생각했으나 미처 우리 편집부에 포착되지 않은 모임도 있을 것이다. 그 결과 서울에 편재되었다는 아쉬움이나 세대를 가르는 것이 아니냐는 불편함도 있을 수 있다는 고려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 기획이 새로운 흐름을 발굴하고 자극하는 첫 단추라 생각하며 섭외를 마무리했다.
특집의 최종 제목은 ‘따로 또 같이, 느슨한 연대를 실천하다’로 정했다. 잠시 ‘지향하다’를 고민했지만 곧 ‘실천하다’로 바꿨다. 이들이 보내온 원고에는 유난히 ‘실천’이란 단어가 많이 등장한다. “자연에 대한 창의적인 접근과 실천 … 새로운 영역의 일을 하나씩 실천하며 … 우리가 실천해나가는 일이 모여 우리가 속한 사회와 환경에 의미 있는 흔적과 영향을 만들어나가길 희망한다.”(자연감각) “이론과 실천, 앎과 삶의 합치를 꾀한다.”(하루.순) “단일 성격의 조경 단위가 하기 힘든 일을 풀어내는 동시에 조경 문화에 긍정적 에너지를 발산하고 싶은 실천적 모임.”(팀 동산바치) “조경이상은 실천을 위한 모임이다. 언젠가 누군가가 할 아이디어는 무의미하다. 바로 지금 여기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기획하고 함께 해나가려는 의지가 구성원의 자격이자 조건이다.” 하나의 깃발 아래 뭉치자 대신, 서로 다름을 인정한 채로 지금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우선 실천해보자는 것이 오래 회자된 ‘조경의 위기’에 대한 이들의 결론이다.
이번 5월호는 편집 디자인에도 많은 공을 들였다.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지난 ‘옥상다반사’ 특집(2017년 2월호) 때 처음 시도했던 명조체의 큰 활자를 다시 한 번 적용했다. 잡지 지면의 메시지는 텍스트로만 전달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어쩌면 훨씬 더 자주) 이미지가 더 강렬하게 의도를 전달한다. 연대란 사람이 하는 것이니 사람이 중심에 오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 원고 청탁서를 보내며, 각 팀의 색깔을 잘 드러내는 단체 사진을 보내달라고 주문했다. 그 결과 각 팀의 아이디어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팽선민 디자이너의 표현을 빌리자면, “막 데뷔를 앞둔 인디밴드의 첫 번째 앨범” 같은 풋풋한 연출의 사진부터, 현장의 공기가 그대로 느껴지는 날것 같은 사진도 있다. 그러나 공통점이라면 이 단체 사진은 주연과 조연이 구분되지 않는다는 점. 혹은 개인의 자의식을 과도하게 드러내기보다 모두가 주연인 수평적 관계를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이 이번 특집의 의도에 부합해 보였다.
표지 역시 팽 디자이너의 회심작이다. “다양한 그룹의 존재를 부각하기 위해 표지에 이미지는 적절치 않은 것 같았어요. 그래서 텍스트를 대안으로 선택한 거죠. 컬러는, 텍스트를 강조하기 위해 산뜻한 노란색과 검정색을 배치했어요.” 표지 역시 대안에 도전한 셈. 반면, 이 무크지 같기도 한 표지에 혹시 있을지도 모를 편집부의 반대를 원천봉쇄하기 위해 다양한 종류의 시안을 만드는 관례를 깨고, 우리는 더 이상의 대안을 만들지 않기로 모의했다. 우리의 연대와 대안(!)이 독자들에게도 새롭고 흥미롭게 다가가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코다의 코다
이번 361호를 마지막으로 제가 환경과조경을 떠난다는 소식을 전합니다. 안녕이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라는 어느 노랫말처럼 어떤 방식으로든 다시 만날 기회가 있겠지만 당장은 아쉬움에 발걸음이 무겁습니다. 얼마 전 10여 년 만에 연락한 지인이 잡지를 보았노라며, “너는 여전히 이상주의자로 살고 있구나”라고 말하기에, “나도 시류에 영합하고 싶다”며 웃어 넘겼습니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매체 환경이 급격하게 변화하는 이 시점, 종이 잡지를 만드는 일은 시종일관 이상과 현실을 조율하는 일일 터입니다. 한 호의 문을 닫는 이 지면을 되돌아보니, 종이 잡지가 어떤 가치를 지향해야 하는지, 어떤 대안이 있을지 고민했던 글이 많습니다. 그간 함께 한 독자들께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박명권 발행인을 비롯해 배정한 편집주간, 남기준 편집장 그리고 동고동락한 기자들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변화에 적응하려는 시도 못지않게 가치를 지키려는 노력도 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끝없이 도전하는 환경과조경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저 역시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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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DUCT] 우수한 빗물 투수력을 갖춘 ‘투수코아블록’
하부 모래 유실을 방지하는 빗물 유입량 조절 기능 겸비
걷고 싶은 거리를 만들기 위해 우수한 품질, 혁신적인 디자인의 블록을 개발해온 (주)데코페이브가 우수한 빗물 투수력을 갖춘 ‘투수코아블록’을 출시했다. 투수코아블록은 기존의 투수블록 모서리에 투수코아를 결합해 빗물 투과 기능을 대폭 향상한 제품이다. 투수코아에는 폴리카보네이트를 사용해 내구성을 높였으며, 내부에는 황토볼을 넣어 빗물 유입량을 조절해 블록 하부의 모래가 유실되지 않도록 했다. 흙이나 먼지 등에 의해 투수코아 일부가 막히더라도 고압 살수를 통해 이물질을 제거할 수 있어 유지·관리가 용이하다. 뿐만 아니라 투수코아블록의 표면을 자연석 판석 느낌이 나도록 가공한 데코사암블록, 차도에 적합하게 개량한 차도코아블록을 개발해 필요에 따라 선택해 사용할 수 있게 했다. 투수코아블록은 정부조달우수제품 지정, NET 방재신기술 인증을 받은 제품이며, 서울시의 규정에 따라 투수성 시험을 받아야 하는 투수블록에서 제외되어 여러 인증 절차를 거치지 않고도 쉽게 시공할 수 있다.
TEL. 051-831-9682 WEB. www.decopav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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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행복한 조경가
주말의 소중한 늦잠을 미룰 수밖에 없었다. 600쪽이 넘는 두꺼운 책이지만 한 손에 감기는 크기와 가벼운 무게, 정교하면서도 감각적인 누드 제본,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표지, 자유분방함과 치밀함의 경계를 달리는 편집 디자인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서로 엮여 독자의 숨 쉴 틈을 허락하지 않는다. 첫 장을 열면 단숨에 읽어 내릴 수밖에 없는 따끈따끈한 신간 『도큐멘테이션(Documentation)』, 이 책은 오랜 수련과 실무를 거친 후 자신의 설계사무소 디자인 스튜디오 로사이(design studio loci)로 독립해 10년을 채우고 1년을 더 보낸 박승진 소장의 작업 기록이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아모레퍼시픽 사옥에 이르는 그간의 역작을 모은 작품집이 아니다. 그동안 발표해 온 주옥같은 에세이와 논평을 모은 책도 아니다.
“일과 일상이 자연스럽게 교차”한 10년의 기록을 펴내며 그는 이렇게 말한다. “작업은 늘 조심스럽고 흥미진진하다. 모든 작업은 결국 땅 위에 구축되지만, 거기에 이르기까지 좌뇌와 우뇌, 양팔과 양손 그리고 두 다리의 끊임없는 구동을 요구한다. 긴장과 이완의 지속적인 반복, 불안과 안도의 이상한 동거, 진척과 되새김이 만들어내는 시간의 역행은 설계 작업자의 숙명이다. … 찢어진 메모지에, 혹은 값비싼 몰스킨에, 옐로페이퍼의 구겨진 한 모서리에도 그 흔적은 남는다. 이제는 휴대장치가 만들어내는 고해상도 이미지까지 가세하므로 기록들은 차고 넘친다.” 그는 기록의 “정리라는 행위는 가끔 무의미한 과장과 무책임한 소거를 동반하기 때문”에 특별한 구분과 정리 없이 10년의 일과 일상을 뒤섞어 묶었다고 변명하지만, 이 멋스러운 책에서 독자는 오히려 일과 일상의 행복한 만남을, 일과 일상을 가로지르는 섬세한 삶을 마주하게 된다. 책을 덮으며 마지막 장에 침대 맡 연필을 “압인기”(449, 453쪽) 삼아 꾹꾹 눌러 이렇게 적었다. 행복한 조경가.
일과 일상의 즐거운 동거는 잘하는 일과 좋아하는 일이 일치할 때 가능하다. 이 둘이 일치하는 삶만큼 부러운 게 또 있을까. 좋아하는 일을 잘하는 사람만큼 행복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행복 연구로 이름난 최인철 교수(서울대학교 심리학과)는 한 칼럼에서 최근의 연구를 소개하며 이런 질문을 던진다.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이 일치하지 않는 실존의 비극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내려야 할까? 그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회의, 대화, 운동과 같은 일상적 경험을 하고 있는 그 순간순간의 즐거움과 의미는 그 일을 잘한다고 느끼는 정도보다 그 일을 좋아한다고 느끼는 정도에 의해서 훨씬 크게 좌우”된다고 한다. 일상에서 좀 더 행복감을 느끼기 위해서라면 우리는 잘하는 일을 하는 것뿐만 아니라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에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다.
『도큐멘테이션』에서 볼 수 있는 일과 일상의 행복한 만남, 그 열쇠는 ‘좋아하는 일 하기’가 아닐까. 주변의 여러 조경가들을 만나 이야기 나누다보면 비단 박승진 소장뿐 아니라 많은 이들에게서 행복감을 발견할 수 있다. 아마도 좋아하는 일을 하기 때문일 테다. 누군가 지금 조경이라는 두 글자를 앞에 두고 진로를 고민하고 있다면, 조경 일의 전망과 연봉, 조경의 가치와 조경가의 지위 같은 잣대를 잠시 뒤로 물리고 우선 조경이 내가 좋아하는 일인지 스스로 묻고 답해 보기를 권한다. 최인철 교수의 조언을 옮긴다.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 살수 없다는 ‘어른스러운’ 조언이 들려올 때마다, 늘 잘하는 일만 하면서 살 수도 없다는 자기만의 주문을 외워야 한다. 그것이 자기다움의 삶과 행복한 삶을 사는 비결이기 때문이다.”
이 달에는 호주를 대표하는 조경설계사무소 TCL(Taylor Cullity Lethlean)의 작업, 에세이, 인터뷰에 거의 대부분의 지면을 할애했다. 독일의 토포텍 1(Topotek 1)(2015년 2월호), 프랑스의 아장스 테르(Agence Ter)(2016년 11월호) 이후 세 번째 조경가/설계사무소 특집인 셈이다. 대규모 정원과 수목원부터, 습지, 도시 광장, 부두와 항만, 탈산업 경관, 워터프런트, 공항에 이르는 TCL의 다양한 설계 작업에서 조경, 건축, 도시설계를 가로지르는 다층의 지혜와 다각의 디자인 문법을 만날 수 있다. 우리의 시선을 머물게 하는 TCL 작품의 더 큰 특징은 ‘호주 경관의 재해석’이라는 설계 태도일 것이다. 유럽이나 아메리카 대륙과 다른 호주 고유의 지질, 지형, 기후, 식생, 도시 문화를 재해석하는 시도가 프로젝트의 성격과 스케일에 따라 다양하게 전개된다. 그들의 ‘호주성’ 재현 해법은 ‘한국성’의 그것과 무엇이 같고 또 다를까.
김정은 편집팀장과 김모아 기자는 TCL의 작품 사진, 텍스트, 이미지 패키지를 지난 두 달간 검토하고 편집하면서 그들의 작품뿐 아니라 설계 방식과 작업 환경에서 어떤 “따뜻함”과 “편안함”을 느꼈다고 한다. 박승진 소장의 『도큐멘테이션』에 담긴 일과 일상의 행복한 만남과 비슷한 어떤 것이 아니었을까. 잘하는 일과 좋아하는 일의 역동적 이중주. 본문의 인터뷰에서 TCL은 프로젝트 선택 기준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우리가 전문가로서 관심 있는 분야인지, 우리를 흥분하게 만드는 무엇이 있는지”가 잣대다. 개인적으로는 오클랜드 워터프런트를 다룬 지면에서 묘한 행복감을 느꼈다. 몇 해 전 IFLA 학술대회에 참가했을 때 잠시 틈을 내 산책했던 곳이다. 낯선 도시의 청명한 오후 풍경이 지면에서 다시 살아난다.
이번 TCL 특집 기획과 구성에는 이홍인 호주 리포터의 공이 아주 크다. 국내에서 조경 교육을 받고 호주에서 활동해 온 이채로운 경력의 조경가인 그는, 지난 몇 달간 TCL과 본지를 매개하며 열정적으로 기획을 이끌었을 뿐 아니라 네 편의 인터뷰 원고까지 맡았다. 깊이 감사드린다.
2017년 1월호부터 연재된 재미 조경가 안동혁(JCFO)의 ‘가까이 보기, 다시 읽기’가 이번 호로 막을 내린다. 16회에 걸친 긴 연재의 수고,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지면이 넘쳐 ‘그들이 설계하는 법’과 최이규 교수의 연재 ‘다른 생각, 새로운 공간’을 다음 달로 넘긴다. 독자 여러분의 양해를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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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CL
TAYLOR CULLITY LETHLEAN
TCL(Taylor Cullity Lethlean)은 조경과 도시설계를 넘나드는 호주의 대표적 설계사무소다. 지난 30여 년간 도시의 워터프런트부터 사막의 산책로에 이르기까지, 대규모 공공 공간에서 작은 정원까지 광범위한 영역에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해왔다. 특히 장소에 대한 이해와 공동체에 대한 세심한 탐색을 통해 경관과 지역의 문화를 시적으로 표현하는 데 탁월한 면모를 보인다. 광활한 대륙의 자연을 독창적으로 해석한 TCL의 작업은 전문 분야로서 조경의 역사가 길지 않은 호주에서 조경이라는 직능의 토대를 견고히 하는 데 기여했다.
멜버른(Melbourne)과 애들레이드(Adelaide) 두 곳에서 오피스를 운영하고 있는 TCL은 디렉터를 중심으로 조경가, 도시설계가, 건축가가 협업하는 수평적이고 개방적인 스튜디오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현재 TCL을 이끌고 있는 디렉터들은 조경을 공통분모로 삼지만, 케이트 컬리티(Kate Cullity)는 원예학과 시각 예술, 페리 레슬린(Perry Lethlean)은 도시설계, 스캇 아담스(Scott Adams)는 대규모 프로젝트 설계, 데미안 슐츠(Damian Schultz)는 물순환 관리형 도시설계(WSUD)와 습지 디자인 등에 강점을 가지고 있다. 시각화에 특출한 리사 호워드(Lisa Howard)(Studio Principal)는 디렉터들을 지원한다.
이번 호에서는 호주 조경계의 패러다임 전환을 이끌었던 오스트레일리아 가든(Australian Garden)부터 캠퍼스와 공항 같은 도시 프로젝트, 산업 유산의 재생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오클랜드 워터프런트(Auckland Waterfront), 도전적 형태의 엘리자베스 키(Elizabeth Quay) 등 TCL의 최근 6~7년간 주요 프로젝트를 소개한다. 덧붙여 2017년 베를린의 국제 정원박람회IGA에 전시된 컬티베이티드 바이 파이어(Cultivated by Fire)를 수록해, 호주의 생태에 지속적으로 천착하며 그들만의 미학을 일궈나가는 TCL의 일면을 확인할 수 있다. 낯선 대륙의 작업이지만 본지의 호주 리포터인 이홍인이 각 프로젝트를 주도했던 디렉터를 인터뷰해 독자들이 작품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도록 돕는다.
풍요롭지만 때론 무미건조한, 도시적이지만 한편으로 느긋한 경관에 감각을 입히는 TCL의 작품 세계를 탐험하는 매혹적인 여정에 독자들을 초대한다.
진행 김정은, 김모아, 이홍인 번역 안호균 디자인 팽선민 자료제공 TC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