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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설의 산
    Mountain of legend (중략)…한 사람을 만나니 산관야복山冠野服으로 길이 읍하며 나한테 이르기를, “이 길을 따라 북쪽으로 휘어져 골짜기에 들어가면 도원이외다.”하므로 나는 박팽년과 함께 말을 채찍질하여 찾아가니, 산벼랑이 울뚝불뚝하고 나무숲이 빽빽하며, 시냇길은 돌고 돌아서 거의 백굽이로 휘어져 사람을 홀리게 한다. 그 골짜기를 돌아가니 마을이 넓고 틔어서 2, 3리쯤 될 듯하여, 사방의 벽이 바람벽처럼 치솟고, 구름과 안개가 자욱한데, 멀고 가까운 도화 숲이 어리비치어 붉은 놀이 떠오르고, 또 대나무 숲과 초가집이 있는데, 싸리문은 반쯤 닫히고 흙담은 이미 무너졌으며, 닭과 개와 소와 말은 없고, 앞 시내에 오직 조각배가 있어 물결을 따라 오락가락하니, 정경이 소슬하여 신선의 마을과 같았다.…(중략) 백굽이로 흐르는 시냇길을 따라 들어가는 마을입구, 마을 앞에 넓고 트인 논과 밭, 그리고 앞 시냇물, 그리고 마을 뒤에 멀고 가까운 도화 숲은 안평대군의 발문에서 표현된 도원의 모습이다. 에덴에서 표현된 이상향이 과수로 이루어진 숲과 물 그리고 근심 없는 삶이라면 무릉도원은 도화 숲과 시냇물 그리고 신선의 마을로서 표현된다. 도원에 들어가는 방법은 백굽이로 휘어져 흐르는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물이 굽이굽이 흐른다는 것은 좌우의 산이 서로 교차되고 있다는 것이다. 풍수지리에서는 이러한 형국을 장풍국 명당이라고 한다. 그리고 마을 뒤에 있는 도화 숲은 주산(主山), 마을 앞에 넓게 트인 곳은 명당(明堂), 앞 시내는 명당수(明堂水)라고 풍수지리에서는 말한다. 장풍국의 명당이란 주변 산세들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어 외부로부터 보호된다. 이러한 지형은 외부에서 쉽게 접근할 수 없기에 전쟁을 피해 안전하게 살 수 있게 된다. 흔히 말하는 십승지가 바로 이와 같은 터이다. 우리민족에게 있어 산은 신앙의 대상이자 삶의 터전이다. 마을을 지켜주는 어머니와 같은 보호막이며, 우리와 같이 호흡하는 살아있는 생명이다. 백두산에서 발원한 산은 우리 마을의 이름 없는 뒷동산에 이르러 삶의 쉼터를 형성한다. 여기에는 전설이 있고 민중들의 희노애락이 묻어 있다. 꿈틀거리는 산은 마을에 생명력을 부여하고 민중의 삶에 믿음과 희망을 준다. 어머니 山! 호랑이 山! 연꽃과 같은 山! 부자를 만들어 주는 山! 재상을 만들어 주는 山! 바로 우리의 산은 민중들의 염원이며 삶의 터전인 것이다.
  • 소나무를 추억하다
    Reminisce about Pine Tree (상략)솔수펑이에 소나무들이 팔려가면서 놀란흙이 드러난 솔숲은 그대로 내버려두는 경우가 숱했으므로 멀리서도 소나무가 없는 휑한 자리는 한눈에 들어왔다. 소나무들로 숲을 이루던 때를 떠올리는 일이 어쩌면 부질없는 짓일 테지만, 저녁 빛이 비껴들 때 솔숲은 가던 길을 멈추게 했다. 붉고 늙은 소나무 보굿에 맑고 밝은 볕뉘가 스며들면 마치 관능적인 관음보살상을 보듯, 어디에서도 다시 볼 수 없는 구경거리였지만, 소나무들이 매우 흔했으므로 때때로 무관심했다. 우리 마을 숲정이를 돌이켜보면 소나무들로 빽빽했던 시절도 한때였다. 지금은 참나무류가 소나무들 보다 더 너른 영역을 차지했다. 넓은잎나무들이 잎을 떨어뜨리는 겨울이면 왜소해진 솔숲은 한결 더 도드라져보였다. (중략)어느 집 마당에 숲에서 잘라낸 소나무들이 발구에 실려와 쌓이기 시작하면 굳이 ‘성주풀이’를 들먹거리지 않더라도 그 집에서 집칸을 늘리거나 아니면 헛간이라도 짓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지붕에 볏짚이엉을 올리든 기와를 올리든 집에 뼈대가 되는 것은 틀림없는 소나무들이었다. 대들보는 물론이거니와 하다못해 작은 서까래까지 모든 소나무들은 숲에서 베어다 썼다. 왕실은 물론 서민들이 짓는 집까지 소나무로 지었다는 것은 그만큼 소나무가 흔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자신들이 사는 곳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먹을거리를 제사상에 올리는 까닭에 지역마다, 집집마다 제사상에 올라가는 음식이 다른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중략)마찬가지로 삼국시대부터 고분이든, 선비들 그림이든, 심지어 자주 쓰던 그릇에 등장했던 소나무도 많았던 만큼 어쩌면 제값을 받지 못했던 것이 지금은 ‘명품’이란 이름으로 값비싸게 거래되고 있었다. 솔숲에 소나무들을 그저 바라만 보는 일이 잘하는 일은 아닐 것이지만, 어느 한쪽을 거덜 내는 짓 또한 잘하는 짓은 아닐 것이다. 깊은 산골 소나무는 방구들을 덥히는 땔감으로도 쓰여야 하고, 또 누군가의 집을 짓는 부재로도, 가구를 제작하는 데도 이용할 수 있어야 하겠지만, 문제는 소나무를 파낸 다음 뒤처리 문제였다. 도심의 공원이나 도시에 살고 있는 누군가의 저택으로 팔려갈 때, 소나무를 파낸 자리는 그대로 내버려두는 일이 잦았다. 하다못해 꼴풀이라도 길러야 했지만, 도무지 산주인들은 무관심했다. 한겨울 마루에 놓인 무쇠난로에 소나무를 땔감으로 넣을 때면 사람보다 오래 사는 나무들이 내뿜는 어떤 향기는 온전히 나무 냄새만은 아니었다. 인간은 그 비밀을 영영 알아채지 못하겠지만, 당장은 나무 타는 냄새만으로 따스한 온기를 느낄 수 있었으니 그것만으로 넉넉하게 기뻤다. 숲에서 사라지는 것이 어디 소나무뿐이겠는가 마는 조금 더 오랜 세월 청정한 소나무들과 함께 했으면 하는 바람을 끝내 놓지 못했다. 솔숲이 자꾸 사라지고 있다는 것은 인류에 대한 어떤 묵시록은 아닐까.
  • 식영정
    Sigyongjeong 식영정은 전라남도 담양군 남면 지곡리 산 75-1 일원면적 28,039㎡에 위치하며, 조선 명종 때의 서하당 김성원이 그의 장인 석천 임억령을 위해 조영한 정자이다. 정면 2칸, 측면 2칸의 단층 팔작집으로, 주변에 자리한 조선 중기 가사문학의 산실인 환벽당, 취가정, 소쇄원 등과 함께 자연과 인공이 화합하는 순응의 미학을 공간적, 지형적으로 연계시키고 있다. 1979년 1월 29일 전라남도기념물 제1호로 지정된 이후 2009년 9월 18일 명승 57호로 승격 지정되었다. Sigyeongjeong which is located in San 75-1, Jigok-ri, Nam-myeon, Damyang-gun, Jeollanam-do was constructed by a great scholar Kim, Sung Won and his father-in-law Im, Eok Ryeong in the King MyeongJong’s reign of Joseon dynasty. It is 2gan(front) by 2gan(side) size on the center of the turtle-shaped rock. The aesthetic of adaption is connected spatially, topographically, and functionally with Sigyeongjeong, the valley and the lake. It was appointed as Scenic Spots and Places of Historic Interest no.57.
  • 2013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Ⅱ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가 순항 중이다. 4월 20일 개장 이후 13일 만에 50만 명을 돌파했고, 26일째인 5월 15일에는 100만 명을 훌쩍 넘어섰다. 원래 목표는 방문객 400만 명이었다. 그러나 지금 추세라면 6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방문객이 몰리는 여름 휴가철이 있고, 가을에는 또 다른 색깔을 보이는 정원의 특성을 생각하면 무리한 예측은 아니다. 행사 투자비는 2012년 여수엑스포의 반의반도 들지 않았다. 그럼에도 비슷한 숫자의 방문객이 몰리고 있다. 그뿐이 아니다. 사후 활용의 면에서도 효용성이 월등 하다. 산업박람회는 행사가 끝나면 용도 폐기되거나 유지하더라도 세월이 갈수록 초라해진다. 반면 정원박람회장의 식물과 구조물은 갈수록 제대로 된 모습을 갖춰간다. 제조품과 생명체의 차이일 것이다. 박람회의 원래 목적은 소개와 홍보에 있다. 그만큼 성공적인 정원박람회의 진행은 순천시만의 성과가 아니라 국내 조경인 모두의 즐거움으로 다가온다. 정원의 의미와 가치를 널리 알리고, 조경인의 역할을 새롭게 인식시키며, 조경에 대한 수요의 폭을 확대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조경 관련 단체들이 박람회장을 총회나 학술대회장으로 활용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 좀 더 적극적으로 일반인들과의 접촉을 꾀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정원은 그 역사가 매우 길다. 그런데도 뒤늦은 근대화와 획일적인 아파트 중심의 주거문화 등으로 인해 현대에 와서는 제대로 개화를 하지 못했다. 그러나 가슴 한편에 서정의 추억과도 같은 혼자만의 정원을 간직하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다. 박람회에 몰린 많은 인파는 정원에 대한 대중의 관심과 욕구를 잘 보여준다.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를 기점으로 새로운 정원문화의 확산을 기대해 본다.
  • 2013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개장 이후 지금까지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가 가지는 의의요새 공동체라는 단어가 다시 등장하고 있다. 사회의 냉정성이 극에 달하면서 복고열풍과 함께 공동체로 회귀하고자 하는 모습이 곳곳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 주거에서는 그러한 욕구의 산실로서 정원이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 ‘2013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가 개장하여 순항하고 있다. 개장 후 3일 동안 다녀간 관람객이 10만 명을 넘어섰고, 9일째에는 30만 명을 기록했다. 5월 15일에는 누적관람객수 100만 명을 돌파했다. 개장 26일 만의 일이다. 또 5월 18일에는 하루만에 10만 명에 육박하는 관람객이 다녀가 새로운 기록을 예고했다. 일각에서는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가 6개월간 개최된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산술적으로 700만 명을 넘어설 수도 있을 것으로 조심스레 점치고 있다.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개최로 1조 3천억여 원의 경제적 파급효과가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뿐만 아니라 11,000여 명의 고용을 창출할 것으로 분석했다.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가 지역발전의 모범사례로 떠오르면서 다른 지자체들도 이를 벤치마킹하기 위한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의 순항은 비단 문화의 흐름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순천이 가진 자연자원인 순천만을 적극 활용하여 이를 잘 살려 낸 기획도 한몫했다. 이 또한 개발적인 측면이 아닌 보존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했다는 차별성을 가지고 있다.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는 국내에서는 최초, 아시아에서는 한국이 네 번째 개최국가로 기록되는 국제정원박람회이다. 이러한 성과를 이뤄내기까지는 박람회를 추진해온 이들의 노력이 함께했다. 또한 여기에는 순천이 자랑스럽게 내세울만한 순천만이라는 생태적인 자원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지역이 가진 특별한 자연자원의 발굴, 보존을 통한 지역발전모델 창출 그리고 정원이라는 문화 키워드의 적용.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가 남다른 세 가지 이유이다.
  • Interview _ 정원박람회와 함께 푸르름이 가득한 도시, 대한민국 생태수도 순천의 조충훈 시장을 만나다
    조충훈 순천시장 [email protected] 생태와 문화로 도시를 디자인하는 곳, 생태 인프라로 21세기 자족도시를 꿈꾸는 곳, 한국 최초의 국제정원박람회가 열리고 있는 도시 순천.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의 진두 지휘자 조충훈 시장을 만나 정원박람회의 진행상황과 순천의 생태적 의제, 관련 비전을 들어보았다. 인터뷰는 지난 5월 초 순천시장실에서 약 60분 동안 이뤄졌다. 박람회 부지만도 111만㎡에 달하는 대규모의 국제적인 행사이므로 안내 및 운영, 관리 등 많은 운영요원이 필요할 텐데, 인구 27만 명의 순천시가 대회기간 동안 무리없이 잘 진행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도 있습니다. 행사기간 동안 인력운용은 어떻게 이루어집니까?조직위원회를 중심으로 안내요원, 운영요원, 자원봉사자 등이 시설 안내와 정원해설, 질서유지 등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개막 전 자원봉사에 대한 교육 훈련을 여러 번 실시했으며, 현재도 1일 평균 1,000명의 자원봉사자가 안정적으로 투입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여름철 성수기 때 관람객이 급증할 수 있어 자원봉사자를 추가로 더 모집하는 등 만전의 준비를 다하고 있습니다. 이번 정원박람회 개최를 위한 직간접 비용으로 2,455억 원이 투입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행사의 경제적 효과는 어느 정도로 예상하십니까?박람회 목표 관람객으로 400만 명을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1조 3,000억 원의 생산유발 효과와 6,700억 원의 부가가치 효과, 11,000여 개 일자리 창출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그런데 사실 이러한 숫자계산보다도 첫째, 순천의 브랜드 가치가 많이 올라간다는 것이죠. 순천 700년 역사 속에서 국제적인 박람회가 처음 열린다는 것이 사실 뜻 깊은 일 아니겠습니까? 둘째로는 이번 박람회를 통해 순천은 앞으로 전국 초중고 학생들의 체험학습 수학여행 허브가 될 것이며, 정주도시로서의 여건이 성숙되어 30만 자족도시가 될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생태수도이자 문화도시로 거듭나는 것이지요. 셋째로는 조경, 화훼 등 새로운 산업 발전의 모태가 되고, 힐링의 기초가 될 수 있기에 하나의 신 성장동력으로서 경제적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그 외 문화적인 측면에서도 우리나라에서 최근 컨벤션 산업이 발달하고 있는데 대부분 실내 컨벤션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앞으로는 자연 컨벤션 문화에 대한 수요가 예상되는데, 그렇게 본다면 정원박람회장이 자연 컨벤션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고 봅니다.
  • Interview _ “자연의 축소판에서 경관을 즐기다”
    찰스 젱스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참여작가 [email protected]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를 방문한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오르지 않을까 싶다. 봉화산을 형상화한 16m 높이의 순천호수정원 정상에 오르면 박람회장 전경이 한눈에 보이기도 하고, 그 작업은 세계적인 디자이너 찰스 젱스가 맡았다. 산… 어쩌면 우리에게는 너무 익숙한 것이라 그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몰랐을지도 모른다. 자칭 ‘지형 디자이너’라는 찰스 젱스는, 산을 중심으로 생성된 한국의 경관이 60년간 진행된 도시화 속에서도 여전히 아름다우며 다른 나라와는 차별화된 독특한 경관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인터뷰 답변 하나하나에서 그가 이번 순천호수정원을 작업하면서 얼마나 도전적이고 즐겁게 임했는지 쉽게 알 수 있었다. 자연과 도시가 공존하고 있는 한국 특유의 경관에 흠뻑 매료된 듯한 찰스 젱스에게 이번 순천호수정원은 어떤 작품일지 물어보았다.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의 참가자로서 이번 박람회를 평가한다면 어떻습니까?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를 있게 한 모든 사람들의 비전과 노력에 매우 감동했습니다. 그들은 현 시대의 큰 아이디어를 발견했고 그것을 정원예술의 차원으로 끌어내었습니다. 이러한 시도가 이번 박람회만큼의 규모로 이루어진 것은 아마 처음일 것입니다. 박람회를 위해 만든 프로젝트는 저와 저희 팀에게 매우 특별한 것이었으며, 모두들 이 박람회에 대한 애착이 깊습니다. 설계자로서, 순천지역에 대한 느낌은 어떠합니까?순천이라는 도시는 전체 면적의 70퍼센트 이상이 구불구불한 산지로 둘러싸인 채 30만 명이 넘는 인구가 사는 곳입니다. 바위와 소나무 숲이 울창하며, 세 개의 주요한 강이 관통하고, 콘크리트 건물과 고속도로가 빽빽한 도시 위쪽 산자락에는 계단식 논이 있습니다. 즉, 순천은 전형적 한국 경관의 축소판인 셈이라고 생각합니다. 순천호수정원 설계에서 특별히 세운 설계전략이 있다면 무엇입니까?우리는 자연과 문화, 또는 산과 도시를 명확하게 가르는 시각적 전략인 ‘Holding the Eco-line’ 이라는 전략을 사용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이처럼 명확한 선으로 자연과 도시를 구분하는 도시는 찾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은 이처럼 손대지 않은 자연이 거대도시와 공존해가는 전통이 있는데, 서울의 예를 들자면, 남산공원이 도시공원으로서 서울의 한 가운데 위치하고 있다면 북한산이나 관악산 등은 거의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서울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이러한 대비는 순천에서도 볼 수 있는데, 사람이 만든 콘크리트 빌딩과 고속도로가 나무가 무성한 산지와 함께 나란히 공존하고 있습니다. 순천의 봉화산은 순천시민에게 바다와 농지의 장대한 경관과 주변 산지 경관을 동시에 제공합니다. 봉화산 등산로는 항상 수많은 등산객으로 붐비고 봉화산 꼭대기에서는 계단식 논과 밭 등의 고전적인 경관을 조망할 수 있었습니다. 아마 이러한 경관 덕분에 순천의 시장과 박람회 기획자들이 경관적 요소들의 확실한 대조를 보여주는 박람회를 기획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박람회장 북쪽의 고속도로가 농지의 경관을 차단하고 남쪽 습지 지역의 굽이진 해룡산이 경관적 대조를 보여주는 일련의 상황들이 우리의 설계 영감의 원천인 ‘경계를 유지하는(Holding the Line)’ 전략을 낳게 한 것 같습니다.
  • Interview _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가치를 말하다”
    황지해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참여작가 [email protected]“저는 글 쓰는 것이 서툰 대신 좋은 책 한 권같은 정원을 만들고 싶습니다. 정원이 문화와 산업에 있어 두루 중요한 원론적인 이유는 정원이 선진사회 구성원들의 삶의 로망이자 라이프스타일을 이끄는 문화예술의 결정체이기 때문 아닐까요.” 지난 2012년 월간 <환경과조경> 올해의 조경인 수상소감을 통해 정원 디자이너 황지해 작가는 이같은 소감을 밝히며, 당시 한국의 정원문화 확산과 비상을 바란다는 소감을 내비쳤다. 이후 국내 최초로 열리는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에서 황지해 작가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장 중에서도 주박람회장을 상징하는 공간을 조성해낸 첼시의 여왕 ‘황지해’ 작가. 약 5개월간 칩거생활을 하면서 조성한 ‘갯지렁이 다니는 길(28,000㎡)’과 ‘동천갯벌공연장(5,500㎡)’은 현재 박람회장을 찾은 시민들에게도 인기공간으로 손꼽히고 있다. 이번 작품을 통해 보이지 않는 생태계의 소중함을 전달하고 싶었다는 황지해 작가를 순천시국제정원박람회장에서 만나고 왔다. 갯지렁이 다니는 길’은 박람회장에서 유일하게 ‘정원’이란 이름이 붙지 않은 정원입니다. ‘00정원’ 대신 ‘갯지렁이’가 정원의 이름이 된 배경과 간략한 작품 소개를 부탁합니다.우리가 사는 공간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보이는 것에 대한 개념이나 가치는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공기나 땅 속에 있는 것들처럼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가치는 쉽사리 잊혀지지요. 그런 소중한 것들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고, 그런 생각 끝에 보이지 않는 생태계의 가치를 드러내고자 갯지렁이를 매개체로 하여 정원을 조성하였습니다. 그래서 갯지렁이를 정원이름에 넣기로 결정하였고요. 작품에 대해 간략하게 말하자면 이 정원은 선큰가든으로서 태양을 하루종일 담아두는 공간입니다. 자연의 어머니를 상징하는 여인의 머릿결이 순천만 호수의 시원이 되고 갯지렁이가 다니는 자유분방한 선들을 정원의 길로 조성했습니다. 항공에서 보면 정원의 전체 그림은 나뭇잎의 형상으로 나타나는데, 정원 속에는 갯지렁이 형태의 갤러리와 도서관, 쥐구멍카페, 개미굴 휴게공간 등을 갖추고 있습니다. 정원 안에서의 진정한 “쉼”을 누리길 바라고 갯지렁이를 통하여 드러나지 않는 생태계의 가치를 함께 고민하고 싶었습니다.
  •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속 사람이야기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그 속에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 이야기에는 ‘순천시민소통학교-순알회’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시민들이 직접 온·오프라인을 통해 순천만을 알리고 박람회의 성공개최를 위해 자발적으로 팔을 걷어붙인 것. 특히 SNS를 통한 홍보활동이 눈길을 끈다. 그중 트위터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박선순 씨와 페이스북에서 두드러진 활동을 펼치고 있는 곽정숙 씨의 SNS 활동 내용을 소개한다.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를 통해 인생 제2막을 시작한 이도 있다. 32년간 교직에 몸담아오다 중등교장으로 명예퇴직한 오기순 씨는 정원박람회를 통해 날마다 신기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며 즐거워한다. 광주광역시에 사는 김종운 씨는 박람회 관람을 위해 무려 9시간을 기다린 끝에 1번 입장객이라는 영예를 차지했는데, 자신의 정원을 보다 아름답게 가꿀 방법을 찾기 위해 박람회장을 찾았다고. 이상민 학생은 전공 공부의 일환으로서 박람회장을 방문했고, 조경학과 학생의 시각에서 느낀 점을 전해주었다.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는 조경산업분야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조경수 유통, 자재 생산업체 등 조경산업이 체감하는 변화의 온도가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관련 실무자들에게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본지에서는 이러한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속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아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한다.
  • 정원박람회의 역사적 발자취에서 최신 경향까지
    ‘문화의 세기’인 21세기에 정원․원예 관련 산업, 특히 정원박람회가 가지는 의미와 중요성은 날로 커지고 있다. 국내에서도 2013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가 확정된 이후 지방자치단체와 개인을 중심으로 정원 박람회의 관심이 증대되고 있다. 정원박람회의 초기 형태는 주로 화훼생산물 위주의 원예적 내용이 중심인 화훼축제로 이루었다. 이를 기반으로 점차 정원과 예술을 접목한 영역으로 확대되어왔다. 정원박람회의 시작과 전파는 정원문화의 발달과정과 유사한 경로를 거치게 되는데, 1851년 영국의 만국박람회 이후에는 원예와 정원이 박람회의 주제로 등장하면서 영국을 중심으로 독일과 프랑스에서 번영하였으며, 이러한 번영의 시간과 함께 각국의 정원박람회의 성격과 형태는 각 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특유의 정원 행사로 발전하였다. 또한 국제원예생산자협회(AIPH)가 박람회를 인준해주면서 점차 아시아 국가로 확산되는 현상을 나타낸다. 특히 현대에 들어서 단순한 전시를 넘어 도시개발 및 환경계획과 접목하여 정원과 환경을 문화화 시키는 프로그램으로 기획되고 있다. 중앙 및 지방자치단체의 관광, 건설, 문화, 환경, 지역경제 등 환경문화산업의 전반적 정책 수요에 부응하는 문화사업의 일환으로 정원박람회가 발전되어 사회와 경제, 문화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지속적으로 커지고 있다. 정원박람회의 양대 산맥: 영국 첼시와 독일 BUGA독일의 많은 도시들은 BUGA(연방정원박람회)나 IGA(국제정원박람회)를 통해 새로운 도시 녹지공간을 확보하여 생활의 질을 향상시키도록 계획하고 있다. BUGA의 경우 1951년 하노버를 시작으로 2년 주기로 각 지방을 순회하며 개최되며, IGA의 경우 1953년 함부르크 박람회를 시작으로 10년 단위로 개최되는 특성을 지니며 발전하였다. 독일 정원박람회는 항상 AIPH에 신청을 하여 인증을 받고 있다. BUGA는 국내장기전시인 B1을 IGA는 국제장기전시인 A1을 인증 받고 있다.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정원 전시를 위한 입지공간의 환경적 맥락과 박람회 이후의 사후 활용방안인데 대부분의 경우 도시의 재생이나 지역개발을 주목적으로 특정지역을 선정하여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 목표는 지역발전의 일환으로서 시민들의 휴식과 레크리에이션을 위한 사회적 이익을 달성하며, 생태적인 재개발의 수단으로서, 때로는 환경에 대한 생태적 보완의 수단으로 향후 녹지조성의 기반을 마련하고 도시발전의 계기를 마련하는데 있다. 이러한 목표를 이루기 위하여 정원박람회를 위한 유한회사를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다. 최근의 경향정원박람회의 경향 역시 박람회를 통해 도시의 기반시설 정비 및 구축에 초점이 맞추어진 독일 박람회와 정원 디자인이 중심인 영국의 플라워 쇼에서 그 특징이 잘 나타난다. 1951년부터 매 2년의 주기로 현재까지 한 번도 거리지 않고 있는 독일정원박람회는 약 10년의 주기로 박람회장 조성의 성격이 변화해 왔다. 이는 그 시기의 시대적 흐름을 반영한 결과이며 세계적으로 도시공원의 조성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는 결과와도 같다. 초기인 1950년대는 당시 전쟁으로 파괴된 나라를 재건하는데 중요한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시작된 목적과 부합되는 흐름이었다. 바로 폐허된 공원을 복원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이후 1960~1970년대는 기존의 공원을 개선하고 확장하는데 주력하였고 1980년대는 도시의 확장 혹은 신도시 건설과 맞물려 새로운 공원을 건설하는 흐름으로 나타났다. 2000년대 중반까지는 주로 이전적지를 공원화하였고 현재는 그린인프라 스트럭처 개념과 맞물리면서 한 장소가 아닌 도시의 여러 지역을 연결하여 행사장으로 사용하는 규모와 개념이 확대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정원박람회 도시로 선정되는 심사 기준으로 인하여 항상 미래지향적인 새로운 개념을 담아내려는 참가 도시의 노력에서 기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