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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작: A Thousand City Plateaus
잠실종합운동장 일대 도시재생 구상 국제공모
잠실종합운동장 도시재생 구상을 통해 문화와 일상의 이벤트를 담는 새로운 그릇과 같은 ‘도시 고원City Plateaus’을 만들고자 한다. 도시 고원은 길과 광장을 관통하며 도시 플랫폼을 창조하고 잠실 주경기장, 새로운 프로그램, 경관을 엮는 거대한 지도를 만든다. 도시 연결적 지형Urban Connective Topology 현재의 잠실종합운동장 지구는 시설이 노후화되었음은 물론 코엑스 지역 및 한강 변과 단절되어 도시의 활력이 떨어진 섬과 같은 장소가 되었다. 삼성역 코엑스 지역과 탄천 지역, 잠실종합운동장 지역, 한강 워터프런트 공원을 동시에 연결하는 도시적 지형을 재구축하고자 한다. 끊어지지 않는 하나의 수평적 고원을 구성하여 스포츠, 문화, 컨벤션, 엔터테인먼트의 복합 공간연속체를 구성한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일관된 어휘의 도시 개발 방식을 실현하기 위해 기존의 개발 방식을 버리고 인간이 산책할 수 있는 수평적인 도시를 만들필요가 있다. 도시 고원의 거대한 모뉴먼트는 가장 수평적이고도 지속적인 방식의 도시 개발을 실현할 것이다. 삼성 코엑스 지역에서부터 한강 변에 이르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담아내는 수평적인 매트로서의 도시를 재현하려 한다.
뿌리 구조의 인본 도시Rhizomorphous Human City 현대 도시의 데카르트적인 도시 개념은 도로와 고층 빌딩으로 이루어진 인간과 단절된 공간 구조와 스케일을 만들었다. ‘천 개의 도시 고원’은 과거의 근대적 도시 문법을 오늘날의 요구에 대응하는 이동적, 대안적, 일탈적인 영역을 만들어내는 유연한 문법의 도시를 구성해 내는 데 의의가 있다. 잠실종합운동장 도시재생을 통해서 도시의 도로, 보행로, 건축, 조경 등을 구분하지 않는 수평적 틀의 리좀적 인간 도시 구조를 구성하려 한다. 기존의 도시 구조를 변형하여 경관, 건축, 길, 광장, 공간 프로그램을 구분 없이 담아내는 시스템으로서 통합체와 같은 대지를 구성한다.
- 조한결 / 운생동건축사사무소 + 동해종합기술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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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종합운동장 일대 도시재생 구상 국제공모
International Ideas Competition for Urban Regeneration of the Jamsil Sports Complex in Seoul
설계공모 경과 및 심사평
9월 4일 서울시는 ‘잠실종합운동장 일대 도시재생 구상 국제공모’의 결과를 발표했다. 시는 지난 해 4월 ‘코엑스~잠실종합운동장 일대 종합발전계획’을 수립ㆍ발표한 이후, 올림픽대로 지하화 등 이 일대의 여건 변화를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으며, 두 차례에 걸친 시민 아이디어 공모, 이번 국제공모 등을 진행했다. 서울시는 이번 국제공모의 결과를 반영해 올해 말까지 국제교류 복합지구의 마스터플랜을 수립한다는 계획이다. 다음은 잠실종합운동장 일대 도시재생 구상 국제공모의 심사평 전문이다.
공모 및 심사 과정
이번 공모의 주된 목적은 서울시에서 구상하는 잠실종합운동장 일대에 대한 종합 마스터플랜에 반영할 참신하고 다양한 아이디어 콘셉트를 받고자 하는 것이다. 공모는 2015년 5월 7일 공고하고, 8월 12일까지 약 3개월여 동안 진행되었다. 최초 참가등록은 698개 팀이었고, 최종 제출된 작품은 98개였다. 작품은 총 23개 국가에서 제출되었으며, 국내 44개 팀, 국외 54개 팀이 제출해 국외의 관심과 참여가 많았다.
심사 기준은 실제 구상 계획에 반영할 것이므로 창의성(40점)과 경제성(30점)을 중시했고, 기타 공공성(15점), 국제성(15점)으로 배분되었다. 심사는 9월 1일과 2일, 이틀간 진행되었다. 첫 번째 날 심사는 오전에 공모 개요와 심사 기준에 대해서 논의하고 심사위원 전원이 잠실종합운동장 일대 사이트를 방문하였고, 오후에 1차 예비심사를 진행했다. 1차 심사는 심사위원들이 작품을 살펴본 후 탈락시킬 작품을 투표하는 방식으로 진행했고, 위원들의 투표 후에 내용에 대한 토론을 거쳐서 1차 예비심사를 통과할 40개의 작품을 선정했다.두 번째 날 2차 본 심사에서는 40개 작품을 대상으로 심사위원들이 작품의 내용을 다시 살펴보고 투표한 후 투표 결과에 대한 토론을 거쳐서 16개의 작품을 선정했다. 이어서 우수작 3점을 선정하기 위한 투표를 실시하고, 상위 작품에 대해서는 한 작품씩 장·단점을 토론하고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을 거쳐서 우수작 3점을 만장일치로 선정했다. 이어서 남은 작품을 대상으로 가작 후보에 대한 투표를 다시 실시하고, 이 결과를 종합하여 가작 5점을 선정했다.
우수작
A Thousand City Plateaus
천 개의 도시 고원
운생동건축사사무소 + 동해종합기술공사
우수작
Jamsil Ludens Park
잠실 루덴스 파크
종합건축사사무소 건원
우수작
SynchroniCity
싱크로니시티
우규승(Kyu Sung Woo Architects) + Vital Albuquerque(Kyu Sung Woo Architects) + 장광엽(다인건축) +
Oswald Nagler(Oswald Nagler Consultant) + Paul Cattaneo(Kyu Sung Woo Architects)
가작
e[X] Sports City
e[X] 스포츠 시티
Richard Plunz, Seiyong Kim, Viren Brahmbhatt(Columbia University) + 민승렬(한빛건축) + 손상혁(DH Asset)
가작
JAMS[H]ILLS
JAMS[H]ILLS
Caramel architeckten zt-gesellschaft m.b.h
가작
Polyculture
폴리컬처
Junkyeu Song, Blake Smith, Nnaemeka Mozie, Junyang Tang(POLYMASS)
가작
Seoul Culti-polis
서울 컬티폴리스
플래닝코리아
가작
Seoul EGG
서울 에그
나우동인건축사사무소 + 유승종(livescape 조경) + 양우현(중앙대학교 건축학부) +
한광야(동국대학교 건축공학부) + 김주석(이토플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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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녹색 강박증
Column: Obsession with the Green
재독 철학자 한병철은 그의 베스트셀러 『피로사회』에서 성과주의에 매몰된 현대 사회를 비판하면서, 긍정성의 과잉으로 인한 대표적인 질병으로 우울증,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경계성 성격장애 등을 꼽았다. 이러한 질병들은 과거 시대의 질병처럼 박테리아적이거나 바이러스적이지 않고 신경증적인 질병이라고 말한다. 현대 사회의 특징인 과잉 생산, 과잉 가동, 과잉 커뮤니케이션이 긍정성의 폭력을 낳았고, 이러한 유형의 폭력은 적대적인 상황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관용적이고 평화로운 사회에서 내밀하게 확산되기 때문에 바이러스성 폭력처럼 눈에 잘 띄지도 않는다고 한다. 짧은 에세이의 내용이 다소 무거워서 그 뜻을 잘 헤아렸는지 자신이 없지만, 무엇인가를 잘 해보려는 요즘 긍정적인 행동들이 오히려 과장되고 과잉의 양상으로 나타나면서 그것이 또 하나의 스트레스로 작용하는 것을 간간히 목격하면서, ‘피로사회’라는 개념으로 성과 주의 사회를 비판하는 그의 견해에 공감하게 된다.
“강박장애는 불안장애의 하나로서, 반복적이고 원하지 않는 강박적 사고와 강박적 행동을 특징으로 하는 정신 질환이다. 잦은 손 씻기, 숫자 세기, 확인하기, 청소하기 등과 같은 행동을 반복적으로 함으로써 강박적 사고를 막거나 그 생각을 머리에서 지우려고 하는 경우가 흔하다. 그러나 이런 행동은 일시적인 편안함을 제공할 뿐 결과적으로 불안을증가시킨다.”
강박증이라는 병리적인 현상이 과거 농경 사회에서부터 존재했던 질병인지 혹은 근대 산업 사회를 거치면서 새롭게 등장한 것인지 잘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강박증으로 인해 고민하고 있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자신이 이 증세를 앓고 있다고 생각하지 못하고 오히려 더 과잉 행동을 일삼는 경우다. 어쩌면 한병철의 지적대로 강박증도 현대 사회의 병리적인 현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오세훈 시장의 ‘서울시’ 시절이 생각난다. 이명박시장의 ‘청계천’이 대중의 히트를 친직후라서 그런지 모든 행정에 ‘디자인’이라는 단어가 강박처럼 들어갔다. 조직이 만들어졌고, 대단한 ‘용역’이 발주되었다. 디자인을 문화적으로 차근차근 성숙시키기 이전에 홍보를 위한 전략으로 삼았다. 디자인이라는 말이 빠지면 마치 갑자기 구닥다리 꼰대가 되는 것 마냥 모든 종류의 미디어는 디자인이라는 화두를 쏟아내고 있었다. 지금도 논란이 되고 있는 한강의 세빛둥둥섬과 동대문의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는 그러한 ‘디자인 행정’의 대표적인 결과물들이다. 당시 모 교수는 ‘디자인’이라는 말 자체에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현상을 ‘디자인 피로증’이라고 일갈하기도 했다. 아무리 의도가 좋다고 해도 그것이 과잉이 되면 사회구성원들은 피곤해지는 것이다. 하물며 진정성 없이 성과 위주로 추진되는 사업에어떤 행복과 가치가 담겨질 수 있을까.
요즘 서울시를 비롯하여 수도권, 지방의 많은 지자체에서 ‘조경’ 혹은 ‘정원’이라는 화두가 대세다. 수 많은 조경 관련 공모전이 성행하고, 박람회도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불과 몇 년 만에 분위기가 반전된 듯하다. 설계사무소나 일선 현장의 작업 여건과 경영 환경은 별반 나아진 것이 없는데, 외형적인 분위기만 봐서는 이미 조경 선진국의 대열에 오른 느낌이다. 이러한 분위기 때문인지 어느 조경전문가는 설익은 ‘조경대세론’을 펼치기까지 한다.
모든 도시 행정을 조경(혹은 정원)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도시 안에서 조경 공간을 극대화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예산 확보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식이다. 조경가 출신의 국회의원이 나와야 한다는 기대 섞인 주장도 덧붙인다. 그래야 ‘업계’와 ‘분야’가 살아나고 결과적으로 시민들의 행복지수도 수직상승한다는 것이다. 필자도 이십년 넘게 조경분야에서 일하고 있지만 이런 식의 강박이 정당한 것일까.
며칠 전 서울 외곽의 도시공원으로 산행을 가게 되었다. 시민들이 많이 이용하는 등산로인지라 최근에 계단을 보수하고 안전 펜스까지 정비한 모양이다. 그런데 등산로를 따라 나무 그늘에 야생초화를 잔뜩 심어놓았다. 공원의 양지바른 산책로도 아니고 숲이 우거진 등산로에까지 가로수를 심고 야생화를 줄지어 심어야 직성이 풀리는 강박은 애처롭기까지 하다. 그냥 놔두어야 더 좋은 자연을 왜 자꾸 조경이라는 이름으로 덧칠을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이처럼 조경 사업은 성과주의 사회에서 눈에 보이는 결과를 저렴한 예산으로 치장하는 효과적인 방법이 되었다. 녹색의 치장과 품격 있는 조경 행위는 당연히 구분되어야 할 것인데, 표피적인 것들만 난무한다. 자칫 ‘조경 피로증’이라는 말도 생겨날지 걱정이다. 조경은 근본적으로 치유하는 행위다. 과잉 진료와 과잉 처방은 환자에게 독이 된다. 진료와 처방 이전에 정말 중요한 것은 정서적인 연대감과 존중감이라고 한다. 녹색에 대한 강박은 자연에 대한 존중이라는 조경의 본질을 간과하고 현상에만 집착하는, 그래서 과잉 처방전만남발하고 있는 의료 행위와 다를 바 없다.
모든 것을 자기가 속한 전문 분야의 틀을 통해서만 해석하려는 강박증은 현대 사회의 공통적인 특징이다. 분야는 늘 대결하고 있으며, 이 살벌한 경쟁 구도를 곧바로 자신들의 이익과 연결시킨다. 여유와 관용, 깊이 있는 성찰과 소통은 사라지고 가장 익숙한 세계 속으로 스스로를 유배시킨다. 그리고 그 깊은 유배지에서 그들만의 왕국을 만들고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세상에 군림하려고 한다. 그러므로 나는 조경이 최고의 선이고, 어떤 것보다 높은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자신감에 선뜻 동의할 수 없다. 조경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을 다 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화려한 녹색에 가려진 삶의 이면을 살펴야 한다. 비록 한그루의 나무를 포기하더라도 우리 주변에 더 이상 가난하다는 이유로 점심을 굶는 아이들이 있어서는 안 된다. 멋진 공원 몇 개를 만들지 못하더라도 힘없는 서민들의 소중한 주거 공간을 함부로 빼앗아서는 안 된다. 우리는 멋진 조경가이기 이전에 누군가와 마음을 나눠야 하는 평범한 시민이고 이웃이기 때문이다.
박승진은 아직까지 조경 설계라는 마당을 떠난 적이 없으며, 이 마당에 맞닿아 살고 있는 다양한 이웃들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기웃거리고 있다. 조경이라는 특징을 잘 보여줄 수 있는 가치 있고 정교한작업을 늘 꿈꾸지만 그것도 만만치가 않다. 그래도 읽고, 쓰고, 가르치며, 배우는 일상에 감사하고 있다. 1965년 서울생으로, 성균관대학교와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조경 디자인을 공부했고, 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 조경설계 서안에서의 설계 실무를 거쳐,2007년에 디자인 스튜디오 loci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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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설계공모의 맥도날드화 배정한
Editorial: The McDonadization of Design Competition
10월호 마감이 한창이던 9월 중하순, 유럽조경학교협의회ECLAS가 주최한 컨퍼런스에 다녀왔다. 목적지는 머릿속 지도에 위치가 쉽게 그려지지 않는 에스토니아의 타르투였지만, 내심 이 미지의 중세도시보다 더 궁금했던 곳은 경유지로 삼은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였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이름만 들어도 심장이 두근거리는 도시다. 러시아를 유럽의 제국으로 만들고자 야망에 불탄 표트르 대제의 계획 도시, 발트 해를 향한 연안의 늪지대와 네바 강 하구의 100개 섬을 365개의 다리로 이어 건설한 북쪽의 베니스다. 러시아의 심장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작곡가 차이콥스키, 극작가 안톤 체호프, 시인 푸슈킨, 대문호 도스토옙스키의 도시이기도 하다. 그뿐인가, 세계 최초로 공산주의 혁명이 성공한 레닌그라드가 아닌가. 굴절 많은 이 역사 도시의 2015년 풍경과 만나기 위해 목적지가 아니었음에도 닷새라는 넉넉한 일정을 잡았다. 낭만과 환상에 부푼 초행길 이방인의 기대와 달리, 표트르의 도시는 피로감과 불안감을 안겨주었다.
우중충한 잿빛 하늘 탓일까, 여느 유럽과는 다른 대규모 계획 도시의 웅장한 스케일 때문일까, 아니면 사회주의 도시 경관의 생경한 질서 탓일까. 일행은 여러 가지 진단을 내려 보았지만, 이틀째 여정이 끝나갈 무렵 시각적 당혹감의 가장 큰 원인은 아마 거리를 뒤덮고 있는 러시아어 알파벳에 있을 것 같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영어 알파벳을 마차에 싣고 가다가 떨어뜨려 뒤죽박죽이 된 문자라는 우스개가 있을 만큼 키릴 문자(러시아어 알파벳)는 형태뿐 아니라 발음에서도 상식을 초월했다.
낯선 글자의 정체를 스마트폰으로 수시로 대조하며 시내를 답사하던 중 우리는 뜻밖의 계기를 통해 긴장감을 풀게 되었다. MaKДoHaлдc라는 해독하기 힘든 간판을 단 매장, 그러나 누가 봐도 맥도날드였다. 늘어나는 뱃살의 주범으로 몰리고 있는 맥도날드이지만, 우리는 낯선 도시에서 M자의 익숙한 간판만 보고서도 무장 해제됐다. 눈앞의 경관이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바로크와 신고전주의 양식이 섞인 건물들의 1층에 서울 못지않게 자주 등장하는 CTAPБAKC KOФE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스타벅스 커피, 평소처럼 그란데 사이즈의 핫 아메리카노에 샷을 추가해서 들이켰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명소라는 다른 어떤 카페보다 만족스러웠다. 도시를 뒤덮고 있던 먹구름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독자 여러분도 대부분 비슷한 경험을 하신 적이 있을 것 같다. 낯선 외국 도시에서 낯익은 프랜차이즈 체인점을 마주하면 심지어 고향 사람을 만난 것 같은 반가움을 느낀다. 고민과 두려움이 한 번에 해결된다. 뉴욕의 빅맥은 서울이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빅맥과 똑같다. 맛도 의외일리 없고 가격도 당황스러울 가능성이 없다고 믿기 때문에 편안함을 느낀다. 맥도날드는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현대도시에서 거의 유일하게 확실성을 보장해 주는 예측 가능한 장소인 셈이다. 우리는 맛도 뻔하고 건강에는 오히려 좋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자신의 선택이 매우 ‘합리적’이라고 굳게 믿으며 맥도날드를 주저함 없이 선택한다.
『맥도날드 그리고 맥도날드화The McDonaldization of Society』(시유시, 2003)의 저자인 사회학자 조지 리처George Ritzer는 현대 사회가 종교처럼 신봉하는 합리성의 이면을 맥도날드로 대표되는 프랜차이즈체인망에서 발견한다. 리처가 통찰하는 ‘맥도날드화’는 “패스트푸드점의 원리가 미국 사회와 그 밖의 세계의 더욱 더 많은 부문을 지배하게 되는 과정”을 의미한다. 맥도날드 모델이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건 합리성이라는 신화의 네 가지 매혹적 특성 때문이라고 그는 진단한다. 효율성, 계산 가능성, 예측 가능성, 통제라는 특성이 신뢰를 준다는 것이다. 맥도날드화는 “패스트푸드업뿐만 아니라 교육, 노동, 의료, 여행, 여가, 다이어트, 정치, 가정, 그리고 사회의 거의 모든 부문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나 효율과 표준을 앞세운 합리성의 신화는 획일과 몰개성을 낳는다. 도시도, 경관도 마찬가지다. 상트페테르부르크만의 개성과 매력에 불안해하고 맥도날드와 스타벅스의 표준화된 예측 가능성에 안도한 앞의 사례는 합리성의 추구가 비합리성을 연출하는 모순을 예증해 준다. 도시의 다양성, 지역성, 장소성은 발붙일 곳이 없다.
11월호에는 서로 다른 성격의 주목할 만한 공모전세 편을 싣는다. 이번 기획과 편집 과정에서 금년에 실었던 다른 설계공모들을 새삼 들춰보았다. 지난 호까지 잡지에 다룬 열개의 국내 공모, 두 개의 국외 공모를 다시 넘기다보니 엉뚱하게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만난 맥도날드가 떠올랐다. 아마다수의 독자들은 (서울역 고가처럼 정치적·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던 경우는 예외였겠지만) 설계공모를 다룬 페이지를 빠른 속도로 넘겨버렸을 것 같다. 낯익고 익숙한 이미지, 텍스트, 다이어그램으로 표준화된 작품들에서 적절하게 구운 패티, 얇은 토마토 한 장, 슬라이스 치즈, 약간의 오이 피클로 구성된 맥도날드 햄버거의 예측 가능한 맛을 느꼈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물론 제출작만의 문제는 아니다. 주최자의 의도를 대변하는 설계 지침서는 언제나 예외 없이 공모의 목적을 “ㅇㅇ를 ㅇㅇ할 수 있는 ‘독창적’인아이디어와 디자인을 구한다”고 밝히지만, 말 그대로 독창적인 작업은 당선되기 쉽지 않다. 최근의 설계공모 대부분은 계산 가능하고 예측 가능한 안을 뽑는 합리성의 경쟁 과정이기 때문이다. 표준화와 효율성의 상징 맥도날드를 선택하곤 하는 우리의 일상과 다를 바 없다.
맥도날드화에 비판적 거리를 두며 이번 호의 세 공모전을 꼼꼼히 살펴보시면 어떨까 한다. 기회와 쟁점이 교차하는 땅 잠실종합운동장에 던진 비전과 상상력에서, 근대 서울의 시간과 사건들이 묻힌 옛국세청 자리 작은 공간에 펼친 조경가와 건축가의 협력에서, 막막한 빈 땅에 무언가를 상징해야만 한 세종시의 백지 광장 프로젝트에서 ‘탈맥도날드화’의 일면을 발견하실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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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A] 올해의 광장
지난 9월, 그러니까 거리를 점령한 야외 테이블에서 시간을 보내기 안성맞춤인 계절이었다. 그날도 회사 근처 단골 곱창집 간이 테이블에서 여름 내내 지겹게 쐰에어컨 바람 대신 선선한 저녁 공기를 만끽하던 중이었다. 전화벨이 울렸다. 광주에 함께 가자는 한 건축 잡지 편집장의 전화였다. 저녁 공기(?)에 취해있던 나는 한 옥타브 높은 목소리로 대답했고, 본래 취재 예정일보다 빨리 광주행 새벽 기차에 몸을 실었다.
10년 전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하 ACC) 국제공모가 치러졌을 때가 가물가물했다. 10년은 긴 세월이다(요즘 나의 기억력은 믿을 수가 없다). ‘빛의 숲’이라는 작품의 제목 정도가 기억 저 아래 남아 있었고, 대부분의 공간을 지하로 넣는 바람에 높고 멋들어진 건물을 원했던 광주 시민들과 갈등을 빚었다는 소식을 풍편에 들었던 듯 했다. 그만큼 광주가 나의(우리의) 관심사에서 멀리 떨어져 있던 탓도 있다. 과연 당선안대로 만들어졌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사실 처음 계획안이 좋았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았다. 도면이라도 파악하고 답사에 나서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쏟아지는 졸음에 눈꺼풀은 이미 감기고 있었다.
광주역에서 잡아 탄 택시에서 내리니 길 건너편으로 몇 블록을 차지한 ACC가 눈앞에 펼쳐졌다. 만약 지하철을 타고 건물 내부의 아시아문화정보원 지붕에서 ACC를 처음 보았다면, 아니면 충장로 쪽에서 5.18민주광장을 바라보면서 들어 갔다면 동선이나 첫인상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눈에 처음 들어온 것은 어린이문화원 쪽을 둘러싸고 있는 가림막이었다. 9월 개관인 줄 알았는데, 공식 개관은 11월이었고 일부 공사가 남았던 것이다. 사진작가까지 동행했는데 촬영은 할 수 있을까 더럭 겁이 났다. 메인 출입구 앞 광장은 보는 둥 마는 둥 서둘러 아시아문화광장으로 향하는 계단에 내려섰다. 들어가는 길에 광장 중앙의 1980년대 스타일의 파란색 분수대를 흘깃 보면서 아마 이곳은 대상지가 아닌가보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중에 깨달았다. 이곳이 5.18 민주화운동의 현장이며, 건축가와 조경가 모두 이 공간의 목격자들을 세심하게 선별해 남겼다는 것 등. 90년대 학번인 나에게 1980년 광주는 가슴을 채우는 기억은 아니어서 무심결에 넘겼노라고 잠시 변명해보지만 무언가 부채감이 남는다. 인터넷으로 찾아본 1980년 광장의 모습은 분수대를 중심으로 2만여 명의 시민과 학생들이 모여 ‘민족민주화대성회’를 여는 장면이었다. 그 사진을 보니 파리의 레퓌블리크 광장Place de la République이 떠올랐다. 지난 11월 13일 충격적인 파리 테러 이후 뉴스에서는 연일 테러의 참상과 추모 물결, 그리고 그 가운데 빛나는 성숙한 시민의식에 관한 기사를 내보냈다. 그 배경은 모두 ‘공화국 광장’, 그러니까 내가 지난 여름 답사했고 『환경과조경』 10월호에 소개되었던 그 광장 말이다. 머플러로 눈을 가린 한 청년이 “나는 무슬림이지만 테러리스트는 아니”라고 시민들과 프리 허그를 하며 연대와 포용의 메시지를 전한 눈물의 현장도 레퓌블리크 광장이었다. 이런 광장의 모습이 프랑스인들의 충격과 긴장, 그리고 이슬람 세계와의 구조적 문제를 모두 덮을 수는 없겠지만 광장을 가득메운 시민들의 모습에 가슴이 뛰기도 하고 콧등이 시큰거리기도 한다. 평화로운 오후 스케이트 보더들이 활보하는 광장과 추모와 집회의 현장 모두 레퓌블리크 광장의 일면이리라. 5월의 광장에서 레퓌블리크 광장을 떠올린 것은 그런 광장의 역동 때문이었을 것이다.
전남대학교의 천득염 교수는 이제 광주 사람들은 ACC를 굳이 5월과 연결시키지 않는다고 말해주었다. 과거의 유산만큼 미래도 중요할 테니. 5.18민주광장이 누군가에게는 그날의 기억을 상기시킨다면, 누군가에게는 새로 만들어진 아시아문화광장과 함께 일상과 축제가 공존하는 공간이다. 조동범 교수가 특집 원고에서 “2015년 가을은 이제 막 시민 광장의 역사가 열리는 시점”이라고 썼듯이 상처를 간직한 광장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아시아문화광장은 ACC의 모든 시설로 연결되는 중심의 빈 공간이다. 5.18민주광장에서 시작해서 아시아문화광장을 따라 오르락내리락 건물의 안과 밖을 넘나들며 걷다보니 예술극장이었다. 마침 개관 페스티벌 기간이었는데 공연을 준비 중인극장 앞에서는 그루브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막 저물기 시작한 해는 흰색 노출콘크리트 벽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그때 이미 난 무장 해제되었다. 극장 앞 계단에 걸터앉아 고개를 돌리니, 그 풍경 또한 마음을 흔드는 것이었다. 마치 7가지 다른 사랑 이야기가 동시에 펼쳐지는 영화 ‘러브 액츄얼리’처럼, 눈앞에서 수많은 프레임이 교차하면서 각기 다른 장면이 펼쳐졌다. 조금씩 틀어서 앉혀진 건물 사이사이에는 정원이 그리고 저 멀리 구도심의 오래된 건물들과 사람들이 있었다. 아마도 설계자는 이곳에서 5.18민주광장에서 아시아문화광장으로 이어지는 시나리오의 클라이맥스를 상상하지 않았을까.
오래 전에 읽었던 건축가 피터 줌토르의 글이 생각난다. 그는 좋은 건축적 체험은 ‘분위기atmospheres’로 만들어진다고 했다. 예를 들어 휴일 오전 11시의 햇빛, 그 빛을 받은 건물의 그림자 색깔, 따뜻한 공기, 그 주변에 모여 있는 사람들의 대화 소리. 이 모든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은 평소보다 좀 더 천천히 걷고,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그 공간의 분위기와 나의 감각이 화학작용을 하며 지극히 주관적인 의미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곳의 분위기 없이, 즉 그 장소를 떠나면 동일한 느낌은 다시 받을 수 없다. 피터 줌토르는 이를 ‘실제의 마법Magic of the Real’이라고 부른다.
12월이다. 한해를 돌아보고 그 공을 평가하는 각종 시상식이 열리는 시기다. 그래서 나도 아주 주관적이고 편파적인 ‘올해의 광장’을 뽑아보았다. 두둥! 영예의 수상자는 바로 ‘아시아문화광장’이다. 천득염 교수의 특집 원고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ACC 앞에는 난제들이 많다. 그럼에도 아시아문화광장이 새로운 역사를 쓰기를 기대한다. 아마 그 역사는 시민 개개인의 마법 같은 기억으로 채워지리라. 아시아문화광장의 미래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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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의 서재] 빌딩블로그
언제나처럼 역시 표지가 문제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성격이 좀 달랐다. 전반적인 디자인은 이미 오케이가 난 상태였다. 원서의 표지 디자인을 그대로 사용하기로 했기에, 작업하는 데 시간도 얼마 걸리지 않았다. 최종 오케이를 눈앞에 둔 표지 시안은 두 가지 버전이었다. 모든 점이 동일했지만, 오직 한 가지가 달랐다. 바로 앞표지 상단에 깨알 같은 크기로 실려 있었던 “경고문: 이 책에는 ‘삘딩’이 등장하지 않는다”라는 문구였다. 담당 편집자였던 나는 ‘삘딩’이라는 비표준어를 과감히(?) 앞표지에 내세움으로써,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빌딩(건물)’과 이 책에서 강조하고 있는 ‘빌딩build+ing’의 차이점을 부각시키려고 했다. 물론 띠지를 했더라면 고민할 필요도 없이 띠지 문구로 활용했을 테지만, 이 책의 경우 처음부터 띠지는 계획에 없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계속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경고문‘의 앞표지 삽입을 전격 취소하는 대신, 친절한 ‘역자의 글’을 앞쪽에 배치하고, “‘삘딩’이 등장하지 않는 ‘빌딩build+ing’ 이야기!”라는 문구를 보도 자료와 출판사 서평에서 강조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그럼, 도대체 ‘삘딩’과 ‘빌딩’의 차이점이 무엇이었을까 번역자가 ‘역자 서문’을 통해 잘 소개해주고 있듯이, 『빌딩블로그』에서 ‘빌딩’은 두 가지 의미로 쓰이고 있다. 첫 번째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바로 그 ‘빌딩’이다. “건축architecture에는 건물building 이상의 것이 있다”는 저자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빌딩’은 건축보다 하위 개념인 즉물적인 구조체일 뿐이다. 그리고 저자는 이 ‘삘딩’을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삘딩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경고문이 허언은 아니었던 셈이다.
그런데 “왜 건축이냐”라는 질문에 대해 저자는 “우리가 삶의 거의 모든 순간을 인공 환경에 둘러싸여 살아가기 때문”1이라고 답한다. 바로 ‘빌딩’의 두 번째 의미이자 진정한 의미인 ‘build+ing’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즉, 사람들은 언제나 무언가를 만들고 환경을 변화시킨다. 똑같은 단위 평면을 가지고도 각각의 집들이 사는 사람에 따라 엄청나게 다른 느낌으로 바뀌는 우리의 아파트 문화만 봐도 우리는 언제나 ‘빌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빌딩’이란 삶의 방식이자 결과다. 또한 사람의 영향이 미치는 모든 것이 빌딩의 범주에 포함된다고도 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저자가 의미하는 빌딩의 진정한 의미다. 이 ‘빌딩’이 인류가 살아가는 방식과 관련된 수많은 이슈들과 접점을 갖게 되면서, 『빌딩블로그』의 관심사는 단순한 건물(삘딩)에 그치지 않고 지구 깊숙한 지질 단층, 도시의 지상과 지하 세계, 바다, 하천과 각종 인공 수 체계, 폐허, 미생물, 소리, 대기 등 지구의 곳곳을 입체적 스케일로 해부해 나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때 ‘빌딩 < 건축 < 빌딩’이라는 새로운 부등식이 성립한다. 이 부등식을 바탕으로 저자는 인류의 ‘빌딩’ 과정의 매체이자 결과물들이 어떻게, 왜 만들어지게 되었는지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어떤 파급 효과가 있는지를 흥미롭게 파헤쳐나간다. 추천사를 써준 저스틴 맥거크가 지적했듯이 “생전 가본 적 없는 여러 방들을 탐험하는 것 같은 느낌”을 안겨주면서 말이다, 은밀하게 때로는 기발하게.
편집자의 작업은 대개 보도 자료용 ‘출판사 서평’ 쓰기로 마무리된다. 몇 달 동안 붙들고 있던 책이니, 그 핵심 내용을 간추리는 출판사 서평쯤이야 뚝딱 만들어질 것 같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인쇄소에 최종 편집본을 송고할 때쯤이면 진이 빠질 대로 빠져서 원고를 거들떠보기 싫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또 다른 경우도 있다. 책의 구절구절이 모두 마음에 들어서 어느 부분을 덜어내고 어떤 대목을 강조해야 할지 애매할 때다. 또 출판사 서평 작성이 책 편집못지않게 부담스러워서 진도를 빨리 빼지 못할 때도 있다.
온라인 서점에서 출판사 서평을 별도의 편집 없이 그대로 올려주기 때문에 독자들에게 책을 어필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지만, 그만큼 부담감은 클 수밖에 없다. 물론 온라인 서점의 출판사 서평을 보고 책을 구입하는 독자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의문이긴 하지만 말이다. 앞에 소개한 내용은 2013년 봄에 『빌딩블로그』의 출판사 서평을 작성하며 끼적였던 글이다. 출판사 서평에 그대로 살린 부분도 있고, 날린 대목도 있다.
도서출판 한숲에서 곧 출간(2016년 1월 1일 출간 예정)될 김영민 교수의 『스튜디오 201, 다르게 디자인하기』의 보도 자료를 준비하다가, 문득 이 책의 출판사 서평이 떠올랐다. 뭐라 명확히 규정할 수 없는 독특한 내용에 맞춰, 나름 색다른 시도를 했던 기억이 나서다. 『빌딩블로그』 출간 즈음에는 번역자들을 꼬셔 책에 실리지 않은 ‘역자 소회’라는 것도 쓰게 해서 블로그에 올렸다. 또 표지 날개에 수록된 역자 소개글에도 잔뜩 힘을 줬다. 이를 테면 이런 식이다. “고등학교 때도 사지 않았던 독서대를, 이 책을 번역하며 두 개나 샀다. 하나는 사무실에, 하나는 집에 두고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제프 마노와 그 독서대 위에서 만났다. 그러다 간혹 악몽을 꾸기도 했다. 아프가니스탄 고원에서 기나긴 도피 생활에 지친 오사마 빈 라덴을 상대로, 모래 바람을 이용해 폭풍 전쟁을 벌이는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고 한다.
제프 마노를 너무 오랫동안 만난 탓이다.” 당시에는 책 내용과 묘하게 어울려 보여 신통했는데, 독자분들이 보시기에는 어떨지 모르겠다. 이제 잡지 마감도 끝나가니 본격적으로 『스튜디오 201, 다르게 디자인하기』의 보도 자료를 써야 한다. 첫 문장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이 정도면 괜찮을까? “왜 스튜디오 101이 아니고, 스튜디오 201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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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회 대한민국 환경조경대전 시상식
‘솜씨 창고’와 ‘징게맹갱외에밋들’ 국토부장관상 수상
‘근대문화유산의 공간에 대한 조경적 접근’이란 주제로 개최된 제12회 대한민국 환경조경대전(이하 ‘환경조경대전’)의 시상식이 지난 11월 23일 푸르지오 밸리에서 열렸다. ‘작은 규모의 대상지, 큰 생각’ 부문과 ‘대규모 대상지, 미시적 접근’ 부문으로 나누어 진행된 이번 공모전에는 총 63점의 작품이 접수되었고, 그중 28팀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김성균 회장(한국조경학회)은 인사말을 통해 “근대문화유산에 대한 조경가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과 실천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이번 환경조경대전의 주제에 대한 의의를 밝혔다. 제1회 환경조경대전부터 10여 년 넘게 공모전 개최를 지원하고 있는 늘푸른의 노연상 이사장은 “수상작들을 통해 공간의 가치를 끌어올리는 조경의 중요성을 엿볼 수 있었다”며 참신한 아이디어를 펼친 수상자들에게 축하의 인사를 건넸다. 올해부터 환경조경대전을 공동 주최하게 된 본지의 박명권 발행인은 응원과 격려의 인사를 전한 후인상 깊었던 수상 소감을 소개했는데, “15년 후, 대한민국 환경조경대전 심사위원으로 찾아뵙겠습니다!”라는 재기발랄한 소감에 장내에 웃음꽃이 번지기도 했다.10명의 심사위원을 대표해 심사 과정과 총평을 소개한 최원만 심사위원장(신화컨설팅 대표)은 “장소성의 가치와 선택한 대상지의 장소적 기억을 조경적인 측면에서 어떻게 풀었는가에 심사의 주안점을 두었다”고 밝힌 후, “디자인 위주로 대상지에 접근한 응모작들이 상대적으로 소외 받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며 디자인 부문이 별도로 기획되었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람을 내비쳤다.
본격적인 시상식에서 영예의 국토교통부장관상은 송아라·홍진아(가천대학교 조경학과)의 ‘솜씨창고, 틈에서 피어나다’와 이수현·박래림·김의솔(순천대학교 조경학과)의 ‘징게맹갱외에밋들’이 차지했고, 한국조경학회장상 2팀, 늘푸른재단상 4팀, 환경과조경상 6팀, 입선 14팀 등 총 28개 팀이 수상하였다(수상작은 이번호 12~45쪽에 수록).
시상식 직후 전시장의 테이프 커팅식과 함께 전시회가 개막되었고, 국토부장관상과 한국조경학회장상을 받은 ‘솜씨 창고, 틈에서 피어나다’, ‘징게맹갱외에밋들’, ‘Park Greaves’, ‘주인 없는 대지 알뜨르’의 작품 설명이 이어졌다. 이번 수상작 전시회는 ‘제1회 아시아태평양 환경조경포럼’과 동일한 장소에서 개최하자는 한국조경학회의 의견에 따라, 푸르지오 밸리에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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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경관 다시 돌아보기
ICOMOS-IFLA ISCCL 국제 심포지엄, 제주 2015.11.3.~11.6.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와 세계조경가협회IFLA가 협력하여 1970년 설립한 문화경관분과위원회International Scientific Commit tee on Cultural Landscapes(이하 ISCCL)는 문화 경관의 유산 가치 정립과 보존 및 관리를 위한 연구 및 학술 활동을 총괄하는 단체로 매년 연례 회의를 진행한다. 또한 문화경관분과위원회는 문화 경관을 보존·관리하고 관련 연구를 진행하는 전문가와 학자들 사이의 정보 교환 및 교류의 장으로서 활용될 수 있도록 2년에 한 번씩 연례회의와 함께 국제 심포지엄을 개최하고 있다. 올해는 제주에서 11월 1일부터 3일까지 진행된 연례 회의에 이어 3일부터 6일까지 국제 심포지엄이 개최되었다. 두행사는 각각 해녀박물관과 제주돌문화공원에서 진행되었으며, 세계 각국의 문화 경관 전문가들이 참여하여 서로의 지식을 공유하고 문화 경관의 보존과 관리에 대해 깊이 있는 토론을 나누는 장으로서 활용되었다. 또한 연례 회의와 국제 심포지엄은 회의와 연구 발표를 통한 지식 교류와 함께 3번의 문화 경관 답사가 포함된다. 참석자들은 올레길, 별방진, 불턱, 돌하르방공원, 성읍민속마을, 용눈이오름, 아부오름, 비자림, 만장굴 등 제주도가 가진 독특한 경관을 직접 둘러보고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일상과 연계된 경관
26개국에서 약 100여 명의 연구자가 참여한 이번 국제 심포지엄은 ‘삶의 경관 다시 돌아보기 - 일상과 연계된 경관Re-thinking Lifescape: Linking Landscape to Everyday Life’이라는 주제 아래 총 4개의 세부 주제(문화경관에 대한 새로운 생각과 이론, 보존과 관리 전략 및 계획, 사례와 경험, 섬 경관)로 나누어 진행되었다. 심포지엄의 기조 연설자로 나선 매기 로Maggie Roe(영국 뉴캐슬대학교 건축계획조경학부 부교수)는 일상 경관의 가치에 대한 오늘날의 인식변화와 유럽경관협약European Landscape Convention에 대해 설명하며 경관과 우리 삶의 상호 작용 과정에서 우리가 느껴야 할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제시했다. ‘경관의 계획, 관리, 디자인 및 보호 측면에서 ‘상호 작용’을 고려하는 것이 왜 중요한가’, ‘경관 여행에서 지나치는 장소에 대한 의미의 이해에 경관의 묘사는 어떤 관련성을 갖는가’, ‘인간과 자연 프로세스 사이의 상호 작용에 관해 생각하는 방식에 대한 고려가 어떻게 ‘무형 경관’을 소중하게 여기는 근거와 일상적 경관이 제공하는 문화적 의미 및 연상에 대한 지각을 제공할 수 있는가’, ‘‘경관 의식’의 개념이 어떻게 일상의 풍경에 대한 가치를 확립하도록 도울 수 있는가?’.
이어서 두 번째 기조 연설에서 정광중(제주대학교 부총장)은 심포지엄이 개최된 제주도의 특별한 일상 문화 경관에 대해 설명했으며, 이후 심포지엄은 네 가지 세부 주제별로 각각의 연구를 발표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심포지엄을 아우르는 주제에서도 잘 나타나듯이 이번 심포지엄이 주목한 경관은 우리의 평소 생활상을 담은 일상 경관이다. 주제에 맞춰 일상 경관의 가치에 대한 오늘날의 인식 변화를 보여주는 사례 연구가 심포지엄에서 다수 발표되었다. 세계조경가협회 전 회장이 었던 마사 세실리아Martha Cecilia Fajardo는 유럽경관협약에 이어 일상 경관의 가치를 이해하고 보존하기위해 도입된 두 번째 국제적 협력의 결과라 할 수 있는 LALILatin American Landscape Initiative를 소개하며 문화 경관의 보존에서 해당 지역의 일상 경관이 가지는 독자적인 성격에 기반한 보존과 활용이 모색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LALI는 경관을 ‘사람들이 살아가는 환경의 필수적인 요소이자 다양성과 정체성의 표현’으로 이해한다. 따라서 LALI는 이에 참여하는 각 국가들이 가지고 있는 특수성을 어떻게 이해하고 보존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논의를 담고 있다. 이외에도 밀라노공대 건축건설환경시공학과의 리오넬라 스카조시LionellaScazzosi는 시골 경관Rural Landscape의 유산적 가치에 대해 논의했으며, 이어 다른 발표자들의 중국과 인도, 그리고 그밖의 많은 나라의 다양한 문화 경관 사례에 대한 설명들이 이어졌다. 중국 칭화대 건축학과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후 유안Xu Yuan이 발표한 ‘티베트의 일상 경관 형성에 있어 불교가 미친 영향에 대한 분석’ 등은 그간 우리가 알 수 없는 해외의 독특한 사례를 접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되었다.
섬 경관과 제주
이번 심포지엄에서 무엇보다도 흥미로웠던 세부 주제는 개최지의 특성을 고려한 섬 경관이었다. 섬 경관이라는 주제 아래 제주도를 비롯한 세계 각지의 섬이 가지고 있는 내륙과는 다른 독특한 일상 경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심포지엄 개최지인 제주도의 경관에 대한 다양한 논의 이외에도 한국의 다도해와 터키 쿤다섬Cunda Island, 크로아티아 흐바르섬Hvar Island, 오스트레일리아 로트네스트섬Rottnest Island 등의 문화 경관이 소개되었다. 제주학연구센터의 최혜경은 제주의 해녀 문화에 대해 해석하고 제주의 독특한 바다 경관인 해녀 문화를 어떻게 보존할 것인가에 대해 논의했다. 기조 연설에서 정광중이 ‘해녀 경관’이라 표현한 제주도의 독특한 해녀 문화는 불턱 등 다양한 형태로 제주도의 물리적 경관 형성에도 그 영향을 미쳤으나 현재는 고령화가 심화되어 해녀 경관의 보존이 절실한 상태다. 섬 경관과 같은 작은 지역의 독특한 문화 경관에 대한 사례 연구를 접할 기회는 많지 않기 때문에 본 심포지엄에서 여러 국가의 섬 경관에 대해 보고 들을 수 있었던 것은 문화 경관을 연구하는 한 사람으로서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이를 계기로 보다 많은 문화 경관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섬 경관에 대한 흥미를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격년제로 운영되는 ICOMOS-IFLA ISCCL 국제 심포지엄은 2016년 터키의 이스탄불 연례 회의에서는 개최되지 않으며, 2017년 인도의 델리에서 연례 회의와 함께 ‘유산과 민주주의Heritage & Democracy’라는 주제로 진행될 예정이다.
김순기는 서울시립대학교와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조경을, 플로리다 대학교에서 역사 보전을 공부하고 하회마을의 세계유산 지정이 마을주민과 관광객에게 가져온 인식 변화와 마을 문화 경관 보존 방안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세계유산과 문화 경관, 그리고 그 변화과정의 기록 방법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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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으로 본 질곡의 현대사
광복 70년, 주택도시 70년: 9평의 희망에서 우리의 도시로
사전적 정의로 ‘사람이 살 수 있도록 지은 집’을 의미하는 ‘주택’은 단순히 주거 공간으로 기능하는 것을 넘어 시대를 반영한다. 특히 광복 이후 70년간 국가적으로 가장 급격한 변화를 겪어온 한국인의 주택은 절박한 희망에서 출발해 개발에 대한 욕망을, 핵가족화의 단면을, 고도성장의 명암을 투영해왔다. 광복 이후 현대사의 세찬 파고 속에서 세워지고 부서졌던 우리의 주택은 어떤 지형도를 그려왔을까? 또 그 지형도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미래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여 대한건축학회(회장 김광우)와 한국토지주택공사(사장 이재영)는 우리나라 근현대사와 맥락을 같이 하는 주택·도시의 궤적을 돌아보는 전시, ‘광복 70년, 주택도시 70년: 9평의 희망에서 우리의 도시로’ 전을 마련했다. 전시는 광복 이후 70년간의 주택·도시 변천 과정을 그린 ‘타임캡슐70’, 1945년부터 지속되어 온 건축학자들의 주택 도시 연구 보고서 아카이브 ‘아키피디아 2015’, 국가 주도의 공공 개발 자료를 모은 ‘신도시 개발 변천사’, 주택 문화 코드로 자리 잡은 브랜드 아파트를 조명하는 ‘브랜드 아파트, 그 달콤한 반란’, 건축가들의 우수 주택 작품을 모은 ‘우리의 도시를 아름답게 했던 우수 주택선’, 젊은 건축가들의 새로운 주택 실험을 소개하는 ‘동시대, 젊은 건축가들의 주택 실현’, 어린이 건축 교실에서 아이들이 직접 만든 건축 모형을 전시한 ‘미래 꿈나무들의 주택 건축 실험’ 등으로 구성된다. 과거 우리 부모님이 살았던 주택에서부터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주택까지 우리의삶을 지배하는 주택의 현주소를 살펴보고 미래의 주택문화를 그린다.
이번 전시는 11월 5일부터 15일까지는 서울 대치동 푸르지오 밸리(대우건설 주택문화관)에서, 11월 24일부터 12월 5일까지는 경상남도 진주시 한국토지주택공사 사옥에서 진행된다. 특별 연계 프로그램으로 ‘오늘, 주택을 말하다’, ‘건축 큐레이터 토크’, ‘건축가와의 만남’, ‘노후공동주택 맞춤형 리모델링’ 등 다양한 주제의 세미나 및 프로그램이 함께 기획되었다.
한국의 주택과 도시의 흐름
주택 건설과 도시 개발은 광복 이후 70년 동안 한국현대사의 주요 이슈였다. 그동안 한국의 주택이 흙벽 돌 집에서 판잣집, 외인주택, 농촌표준주택, 새마을운동 개량 주택 등으로 끊임없이 변모하는 동안 우리의 도시에는 개인과 사회의 모든 욕망과 고뇌가 펼쳐졌다.
‘타임캡슐70’, ‘아키피디아 2015’, ‘신도시 개발 변천사’등의 전시실에서는 광복 이후 지금까지 한국 사회의 변화와 주택과 도시가 밟아온 도정을 소개하고 그 과정에서 이룬 성과와 과제를 반추한다.
특히 ‘타임캡슐70’은 가로 22m, 세로 12m, 높이 3.3m 크기의 전시실 한 칸을 꽉 채워 주택 문화사를 캡슐 형태로 전시해 근현대 한국 주택 문화사와 당시의 문화, 경제, 정치, 기술, 사건 등을 한 눈에 비교·대조할 수 있게 했다. 시대 순으로 정렬한 연표와 사진, 영상이 주택·도시 역사를 공감각적으로 전달한다.
‘신도시 개발 변천사’는 수도권 및 5대 광역시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신도시의 공간적 확산 과정을 그려낸다. 손바닥 크기만 한 작은 마당이라도 소유하고자 했던 중산층은 편리와 쾌적을 충족시켜주는 신도시의 아파트 단지에 열광했다. 신도시와 중산층의 끈끈한 관계이면에는 대단위 택지 확보를 가능하게 했던 ‘택지개발촉진법’이 있었다. 민간과 공공 주택 공급 기관이 더불어 주도한 신도시의 주택 상품인 아파트 단지는 한국인의 욕망을 부추기고 담아내는 보편적 재화로 자리하게 되었다. 폭발적으로 팽창하던 중산층의 아파트 수요를 충족시켰던 ‘택지개발촉진법’은 지난해 9.1부동산정책에 의해 폐지될 예정이다. 대규모 신도시 개발의 시대를 뒤로 하고 재생의 시대로 나아가기 위함이다. 한국의 주택·도시가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는 시점에 ‘신도시 개발 변천사’는 지난 시대의 개발 역사를 되짚어 본다.
주택이 그리는 미래의 삶
격변하는 근현대사 속에서 숨 가쁘게 변모해 온 우리의 주택과 도시는 어떤 미래를 향해 달려가고 있을까?
1층에 전시된 ‘동시대, 젊은 건축가들의 주택 실현’과 ‘미래 꿈나무들의 주택 건축 실험’은 새로운 미래 주택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동시대, 젊은 건축가들의 주택 실현’은 개성과 창의성으로 무장하고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젊은 건축가들의 주택 작품을 사진과 모형으로 소개한다. 이정훈(조호건축), 조진만(조진만 아키텍츠), 오신욱(라움), 조성욱(조성욱건축사사무소) 등 신진건축사 대상과 젊은 건축가상을 수상한 24명의 젊은 건축가들의 작품을 통해 우리 시대를 읽고 주택 분야의 미래 트렌드를 전망할 수 있게 했다.
‘미래 꿈나무들의 주택 건축 실험’은 대한건축학회에서 매년 진행하는 어린이 건축 교실에 참여한 학생들의 작품으로 꾸며졌다. 삭막하고 획일화 된 아파트 단지의 풍경이 익숙한 아이들의 작품으로는 보이지 않을 만큼 미래 주택에 대한 기발하고 재미있는 상상이 펼쳐졌다.
아이들은 집을 공중에 띄우기도 하고 집 내부에 나무와 벤치를 들여 놓아 공원처럼 꾸미기도 하는 등 미래지향적이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광복 70년, 주택도시 70년: 9평의 희망에서 우리의 도시로’ 전은 우리나라 주택과 도시의 궤적을 추적하고 주택과 도시가 반영하는 시대상을 비춘다. 단순히 주택·도시 변천사의 단면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이를둘러싼 정치, 경제, 문화, 예술 흐름과 엮어나감으로써 우리 사회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를 돕는다. 하지만 주요 아파트 브랜드의 특징을 소개하는 ‘브랜드 아파트, 그 달콤한 반란’ 섹션은 특정 회사들의 아파트를 홍보하는 데 그쳤고 한국건축문화대상과 한국건축가협회상 수상작을 모은 ‘우리의 도시를 아름답게 했던 우수주택선’ 섹션은 평면적 전시 구성으로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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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에서 화합으로 ‘넘어가는 길’
제2회 예건 조경나눔공모전
지난 11월 5일 ‘통일기원 공간디자인 학생 아이디어 공모(제2회 예건 조경나눔공모전)’의 심사 결과가 발표되었다. 이 공모전은 환경조경나눔연구원(원장 임승빈)이 주최·주관하고 예건, 환경과조경, 한국조경학회, 한국토지주택공사가 후원했다. 통일의 ‘기원’을 주제로 한 이번 공모전은 분단 시대를 기억하고 통일을 준비할 뿐만 아니라 그 이후까지 기념하는 공간을 설계할 것을 요구했다. 전국의 조경·건축·디자인 관련 대학과 대학원에서 총 53팀이 참가 신청해 35팀이 작품을 접수했으며 이 중 10팀의 작품이 수상했다. 올해는 최우수상(상금 2백만 원)에 ‘넘어가는 길’(청주대학교 환경조경학과 최대운, 금성철, 윤병두), 우수상(상금 1백만 원)에 ‘내게 강 같은 평화’(울산대학교 실내공간디자인과 이혜나)와 ‘2+1=!’(한경대학교 조경학과 양인욱, 김세훈), 가작(상금 50만 원)에 ‘소막을 기억해’(청주대학교 환경조경학과 서홍석, 차다영, 허지은, 김다인), ‘서해5도’(청주대학교 환경조경학과 김영대, 옥성민, 황정아), ‘Flying to the Moon’(한경대학교 조경학과 조설희, 김나래, 권은송), 입선에 ‘마당을 통하다’(한경대학교 조경학과 김경민, 정윤조), ‘통하는 길’(청주대학교 환경조경학과 임재원, 최영규, 김수진, 유지영), ‘바람 참 좋다’(청주대학교 환경조경학과 오수현, 박지은, 한태용, 이지수), ‘통일의 문을 두드리다’(가천대학교 조경학과 박지은, 성웅기, 이소연)가 선정되었다.
심사위원단은 최우수작 ‘넘어가는 길’에 대해 “DMZ의 서쪽 끝 한강 하구의 철책을 구간별로 개방, 유지, 재배치하는 독창적인 설계 개념을 통해 ‘분단 체제 극복’의 상징성을 담아내면서도 생태계 보전의 지혜를 담아내었다”고 평가했다. 한편 마지막 단계까지 최우수작과 경합을 벌인 우수작 ‘내게 강 같은 평화’는 임진강 양편의 북한 개성과 남한 파주를 잇는 교량을 설계하여 통일을 준비하는 적극적인 공감의 공간을 제시한 것으로평가받았으며 우수작 ‘2+1=!’는 한국전쟁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는 철원군 갈마읍의 폐교량인 승일교 양측에 공원을 조성함으로써 근대문화유산을 재조명하고 통일의 염원을 담아내려한 시도가 인상적이었다는 평을 받았다. 최우수작을 포함한 모든 수상팀에게는 『환경과조경』 1년 정기구독권이 부상으로 주어진다.
넘어가는 길
최우수작 ‘넘어가는 길’의 설계 개념은 DMZ와 관련해 현재 강원도에 이미 조성된 공원, 박물관 등의 다양한 시설물이 사전에 계획했던 관광지 및 관광 자원으로서의 역할과 방문객에게 통일을 환기시키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했다. 수상작은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역대 정부들의 개발 위주의 DMZ 정책과 박근혜 정권이 추진하고 있는 ‘DMZ세계생태평화공원’의 실효성에 대해 고민했다. 더불어 한반도의 생태축(횡축)을 담당하고 있는 DMZ를 생태적가치가 높다는 이유로 무조건 보전하는 것이 적절한지 다시 검토했다.
‘넘어가는 길’은 지금처럼 남과 북이 대립을 이루고 있는 상황에서는 하나의 상징적인 공간이 조성(개발)된다고 하더라도 그곳이 통일의 기원이 되기에는 부족하다고 판단하고 상징성을 가진 동시에 기능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설계하고자 했다. 통일의 발판을 마련하는 동시에 자연을 보전하는 길을 모색하던 중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기수 구역에 주목했다. ‘넘어가는 길’의 대상지인 ‘한강 하구 중립 지역’은 육지의 DMZ보다 생물다양성이 풍부하여 보전 가치가 높다는 점, 육지·강·바다가 만나는 지점이라는 점, 대상지에 풍부한 물의 속성이 남과 북의 화합을 상징한다는 점등에서 주목할 가치가 있는 공간이다.
‘넘어가는 길’은 남과 북을 가로지르는 철책을 부분적으로 철거, 개방, 이용함으로써 다양한 활용 방안을 모색했다. 정전 협정 당시 철책은 일시적으로 설치된 것이었으며 우리 민족에게 통일과 철책 제거는 반드시 단시간 내에 이루어야 할 지상과제였다. 하지만 현재 철책은 한강 하구의 동식물을 인간의 간섭으로부터 보호하고 야생 생태계를 보전하는 생태적 역할을 하는동시에 동물의 자유로운 이동을 제한하기도 한다. 수상작은 철책의 아픈 역사를 치유하기 위해 철책 일대를 개방하되 모든 구간의 철책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 상황을 반영하여 부분적으로 개방함으로써 남과 북이 서로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도록 계획했다. 이를 통해 단기적으로는 남과 북이 서로 경계를 유지하되 신뢰를 회복하면서 통일을 준비할 수 있게 하고, 장기적으로는 통일 이후 자연과 인간의 경계 역할을 하여 한반도의 생태축 역할을 수행하게 하기 위해서다.
먼저 수상작은 한강 하구 중립 지역의 철책 구간을 그 곳에 살고 있는 생물의 특성, 지형, 인간의 영향을 받은 정도 등을 평가하여 구간 A와 구간 B로 나누었다. 인간의 영향을 많이 받은 구간 A는 자연 생태를 보호하기 위해 일부 개방 구간을 제외한 대부분의 철책을 유지하고, 상대적으로 인간의 손이 덜 미친 구간 B는 남과 북이 마주하고 있는 지형적 특성을 반영해 철책을 허물되 보이지 않은 경계를 유지한다.
현재 한강 하구 중립 지역의 철책은 산지와 한강 하구가 직접적으로 접해있는 유형(유형1)과 산지와 철책 사이에 도로가 있는 유형(유형2)으로 구분된다. 수상작은 ‘산지-철책-한강하구’로 이어지는 유형1의 경우에는 기존의 철책을 제거하고, ‘산지-도로-철책-한강 하구’로 이어지는 유형2에는 도로 위로 생태 통로를 조성할 것을 제안했다.
구체적인 철책의 활용 계획으로는 남과 북을 단절시키고 있는 철책을 넘어뜨리고 그 높이만큼 서로의 거리를 좁히는 방안을 제시했다. 공간의 상부는 인간이 이용하고 공간의 하부는 자연에게 내어줌으로써 각자의 공간을 존중하며 공존할 수 있도록 계획했다. 즉, 남과 북의 거리를 좁히되 경계는 여전히 유지하고 자연과 인간이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도록 유도한 것이다.
특히 수상작은 분단의 상징물인 철책을 버리지 않고 역사를 ‘기억’하고 ‘기념’하는 매개체로써 활용해 아픈 역사의 상흔을 지우고 감추기보다는 기억하고 활용하는 새로운 통일 한국의 미래를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