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퓌블리크 광장
Place de la République
레퓌블리크 광장은 파리 시 3, 10, 11구의 경계에 위치한 광장으로, 그 면적이 3.3ha에 달하는 대규모 공공공간이다. 광장의 중앙에는 프랑스혁명의 상징인 마리안느Marianne 동상이 서 있고, 그 밑에는 ‘자유, 평등, 박애’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드골 장군은 1958년10월 4일 이 광장에서 제5공화국 헌법을 공포하기도 했으며, 최근에는 샤를리 엡도 테러 사건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집회가 열리기도 하는 등 레퓌블리크 광장은 정치적인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한때 생기 있고 활동적인 도시 광장이었던 레퓌블리크 광장은 현대 이동 수단으로 인한 문제에 직면했다. 대상지에는 매일 114,000명 이상의 지하철 통근자와 관광버스 대열, 주차 중인 택시, 자전거 족, 자동차 운전자, 마을버스 등이 몰려 교통 흐름이 정체되고 단절되어 매우 위험한 교통 환경을 만들었다. 이로 인해 지역적 성격과 도시 맥락적 의미를 잃어버렸다. 2010년 베르트랑 들라노에Bertrand Delanoe 파리 시장은 레퓌블리크 광장을 ‘모두를 위한 광장’으로 재탄생시키기 위한 공모전을 개최했다. 새로운 광장에 대한 요구 사항을 정리하기 위해 지역 계획 워크숍, 청소년위원회, 지역 장애인위원회, 상인, 장인, 전문가 그리고 주민연합회를 망라하는 광범위한 설문조사를 실시해 의견을 수렴했다. 공모 결과 TVKTrévelo & Viger-Kohler 팀의 안이 선정되었다. TVK 팀의 설계안은 대상지를 지나가는 유동 인구를 지속시키면서도 한편으로는 대상지에 머무는 사람들에게 더 오래 머물 이유를 제공함으로써 광장의 사회적 기능을 복구했다. 대상지의 이질적인 구역들을 통합하고 광장의 중핵 주변으로 차량 흐름을 재연결함으로써 다양한 범위의 활동과 도시적 프로그램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기능적 공간을 재창조했다.
Landscape ArchitectMSP
ArchitectTVK Architectes Urbanistes
Associate Landscape ArchitectAREAL
ClientCity of Paris, Highways Department
LocationParis, France
Area3.3 ha
Completion2013
PhotographsClement Guillaume
마사 슈왈츠 파트너스(Martha Schwartz Partners)는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도시조경설계사무소로 35년 이상 세계 20여 개국에서 다양한 규모와 성격의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도시 경관이 지속가능한공간을 만들기 위한 플랫폼으로 기능해야 한다는 생각을 중심으로 도심활성화 및 재생 프로젝트에 집중해 왔다. 복잡한 도시 환경에 대응하기위해 조경은 물론, 건축·도시계획·원예·시공 등의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로 구성되어 있으며, 항상 로컬 디자이너와의 협업을 통해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려고 한다.
- MSP Martha Schwartz Partners / MSP
-
파펜부르크 도시 공원
Stadtpark Papenburg
정원 박람회는 1980년대 독일 및 오스트리아에서 인기를 얻게 된 이래로 삶의 질과 도시 환경을 향상시키는 것을 목표로 추진되어 왔을 뿐만 아니라, 지역적·정치적 개발 목표를 달성하는 데 있어서도 효과적인 방법의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특히 주로 사회적 혜택이 충분히 미치지 못했던 지역을 중심으로 개최되는 지방 정원 박람회의 경우에는 낙후된 고장을 매력적이고 쾌적한 공간으로 변모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독일 파펜부르크 도시 공원에서는 이러한 정원 박람회의 이점과 혜택을 확장시켜 도시 공원에 필요한 여러 가지 요구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도록 하는 기능적인 변화가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새롭게 도입되는 경관 요소들은 해양 도시인 파펜부르크가 기존에 지니고 있는 모습에 성공적으로 접목되고 있다(파펜부르크는 조선 산업의 중심일 뿐만 아니라, 원예의 중심이기도 하다. 매년 3천5백만 본의 초본 식물과 2천5백만 개의 오이가 파펜부르크에서 재배되고 있다).
박람회장에서 공원으로 새로 도입되는 공원 설계는 이러한 정원 박람회 개최에서 비롯된 지역의 변모를 뒷받침하고 있다. 단순히 이동을 위한 환승 공간에 불과했던 대상지는 이번 도시 공원 조성을 계기로 파펜부르크 도심의 핵심적 부분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으며, 새로운 공간 요소의 추가를 통해 해당 지역을 현대적으로 활성화시키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보행 네트워크는 공원의 역사적 구조와 기존의 식생을 바탕으로 조심스럽게 현대화되었다. 공원 공간의 전반적인 모습은 이러한 주 산책로와 총림을 통해 규정된다.
DesignRMP Stephan Lenzen Landschaftsarchitekten
ClientLandesgartenschau Papenburg 2014 gemeinn,Durchführungsgesellschaft mbH
LocationPapenburg, Germany
Area15ha
Design2012~2013
Construction2013~2014
PhotographsJuliane Werner
RMP 스 테판 렌 젠 조경설계사무소(RMP Stephan Lenzen Landschaftsarchitekten)는 독일의 본(Bonn) 지역에 기반을 두고 활동하는 조경설계사무소로 쾰른(Cologne), 함부르크(Hamburg), 만하임(Mannheim)에 지사를 두고 있다. 대상지에서 수집된 정보를바탕으로 설계안을 도출하기에 앞서, 스스로 규정한 ‘정원으로의 회귀(return of the garden)’, ‘지속가능한 도시 경관(sustainableurban landscapes)’, ‘건축의 영역에서 조경의 영역으로(from thearchitectonic realm to the realm of landscape)’, ‘건조된 환경과의 대화(dialogue with constructed space)’라는 개념적 접근법을 적용해 대상지와 조건을 해석한다. 이를 통해 단순히 데이터만을 활용한 프로젝트에서는 드러나지 않는 가치와 기능을 갖는 공간을 만들고자 한다.
- RMP Stephan Lenzen Landschaftsarchitekten / RMP
-
이민의 정원
Le Jardin des Migrations
마르세유 연안 지역에서 거대한 도심 재활성화 프로젝트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도시와 바다 사이, J4의 옛 부두 위에 유럽과 지중해 문명 박물관MuCEM이 수평적인 볼륨을 드러냈다. 이 박물관의 ‘수직적 성채vertical casbah’는 생-장St. Jean 요새와 대화하고자 하는 열망의 표현이다. 요새의 높은 외벽에 위치한 프로젝트는 수용적 태도를 통해 대상지에서 프로그램을 끌어내는 것이 중요했다. 감각적이고 변증법적인 정원은 그 안에서 자연사 혹은 인간의 역사를 드러내는 지식의 근거를 발견하기 위해 길을 잃어야 하는 ‘항상 열려있는 책livre toujours ouvert’으로 간주되었다. 비정형적인 정원의 모습은 그 자체로 시간의 두께를 표현하고 있으며, 정원에서의 산책은 마치 여행의 이야기처럼 각각의 날짜나 이름에 상응하면서 역사를 재구축한다.
사람과 식물의 도착지인 마르세유의 항구에 솟아오른‘이민의 정원’은 지중해 일대 문화의 교류와 이를 통해 이루어진 식물의 교류를 상기시킨다. 연속되는 15점의 그림(정원)은 과시적인 장식이 두드러지는 것을 거부하고 각양각색의 이파리와 질감, 향기로 인한 다양한 감각적 경험에 중점을 둔다. 다양한 통로와 층은 주의 깊은 방문자나 산만한 산책자 모두에게 개화기와 상관없이 일 년 내내 흥미로운 요소를 보장한다. 이는 관리를 크게 필요로 하지 않으며 관수나 시비, 혹은 식물 병충해 방제 처리가 전혀 필요 없는 드라이 가든의 맥락에서 지중해 식물의 식물학적 컬렉션에 가치를 부여한다.
15개의 정원-산책로
정원-산책로jardin-promenade는 15개의 그림을 전개한다.
1. 오렌지나무 정원La cour des orangers: 지중해의 이미지, 무와히드 왕조(12세기에 세워진 베르베르 인과 무슬림 왕조, 북아프리카부터 이베리아 반도까지 지배했고, 코르도바와 세비야도 이들의 영토였다) 정원의 첫 번째 안뜰, 코르도바 혹은 세비야의 대 모스크의 오렌지나무 정원의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2. 도금양 정원Le jardin des myrtes: 꽃과 이파리에서 섬세한 향기가 나고, 그 이름이 항상 그라나다의 알함브라를 상기시키는 작은 도금양Myrtus communis 정원. 도금양과 석류나무로 경계를 두른 직사각형 소로가 있는 엄격한 디자인은 이제는 사라진 총독의 위용을 드러내는 화려한 정원을 상기시킨다.
3. 요새의 야생 풀Les salades sauvages du fort: 가혹한 환경의 시련을 극복한 재정복reconquest 식물들에 대해 일종의 경의를 표하는 공간이다. 폐허와 같은 환경에서 저절로 싹을 틔우는 풀들을 위한 정원이다.
DesignAgence APS
EngineeringSitétudes
LightingAgence Lumière Régis Clouzet
Mediterranean Vegetation ConsultantOlivier Filippi
AgronomistVéronique Mure
CollaboratorBiotope, Enviroconsult, Antoine Bruguerolle
ClientMinistère de la Culture et de la Communication
LocationMarseille, France
Area15,000m2(Fort), 6,500m2(Planting)
Completion2013. 6. 4.
Cost6 millions euros
PhotographsAgence APS, Agence Lumière
발랑스에 기반을 둔아장스 아페에스(Agence APS)는 베르사유 국립조경학교에서 학위를 받은 3명의 조경가인 장-루이 니델(Jean-LouIs Knidel), 질 오투(Gilles Ottou), 위베르 기샤르(Hubert Guichard)가 1997년 공동으로 설립했다. 현재 아장스는 조경, 건축, 조명, 생태, 원예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8명의 팀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양한 관여(intervention)를 고민하는 아장스 아페에스는 ‘조경가-도시설계가’ 문화를 통해, 프랑스 남동부의 대조적인 지리적 영역에 기꺼이 헌신하면서 다양한 규모의 연구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변화하는 거대한 경관과 토지, 자연, 도시, 혹은 문화재적이고 상징적인 거대한 대상지, 공공공간이 아장스의 시각과 사고를 구축하고 형성하는 영역이다. 그들의 작업은 맥락적, 시적, 감각적인 전개를 중시한다. 이는 생태적이지만 이용과 사회적 실천에도 주의를 기울이며 기억을 드러내기 위해서다.
-
[칼럼] 공원에서 표정 짓기
Column: Make Expressions on the Park
“공원엔 잘 가지 않고 산에 다닌다”고 답하고 나서 몇 초 후에 자주 다니는 도봉산이 국립‘공원’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또 다시 몇 초 후 집 근처에 벤치와 간단한 운동기구, 분수, 연못 등이 있는 곳이 ‘초안산근린공원’이라는 사실도 떠올랐다. 거의 매일 걷기 위해 가는 중랑천변 산책로도 어쩌면 공원일지 모른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공원에 자주다녔고 공원 가까이에 살고 있는데 왜 공원에 다니지 않는다고 했는지 스스로 물었다.
나름의 답은 공원에 대한 선입견이 있다는 것. 우선 공원이라고 하면 큰 규모의 인공 조림이 떠올랐고, 여의도공원이나 선유도공원 또는 뉴욕의 센트럴 파크 같은 곳이 생각났다. 하지만 여의도공원은 가본 지 20년이 넘었고(그러니까 그땐 여의도광장이던 시절), 선유도공원은 5년이 넘었고, 뉴욕엔 가보지도 못했다.
공원에 대한 선입견은 하나 더 있다. 공원에 있는 사람들은 여유로워 보인다는 것. 70대 할아버지가 농구복에 헤어밴드까지 하고 신중하게 드리블을 하다가 슛은 지나가는 사람이 제일 많을 때를 골라쏜다. 통 넓은 바지에 헐렁한 티셔츠를 입은 30대 여성이 철봉에 매달려 발을 버둥거린다. 길게 매달리지 못하고 이내 떨어지지만 한번 키득거리면 그만이다. 강아지를 데리고 나온 노부부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강아지가 예쁘다고 칭찬해 주기를 바라는 표정이다. 돗자리를 깔고 싸온 음식을 먹는 커플은 그 시간, 그 장소에 같이 있는 것에 만족하는 표정이다. 벤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치들은 관심과 무관심의 적절한 조화를 찾고 있다. 무관심한 표정은 매사에 무기력한 사람처럼 보이게 하고, 지나치게 관심을 갖고 다른 사람을 쳐다보면 오지랖이나 주책으로 보이기 십상인 것을 알고 있다. 분수대에서 놀든 공을 차든 모두 편안하고 여유 있어 보인다. 집 근처 초안산근린공원의 풍경이다.
여유로운 모습은 공원에 있는 사람들이 남들 보라고 일부러 짓는 표정이나, 단순한 선입견이 아닌 공원이 주는 표정이다. 공원이 있기에 생기는 여유다. 나무, 꽃, 잔디, 분수, 벤치, 간단한 운동기구가 주는 표정이다. 이런 것들이 있는 곳에서 사람들은 젊음을 과시하고 싶은 마음이 되고, 몸을 움직여 보고 싶은 마음이 되고, 남들에게 관심을 주고 싶은 마음이 되는가 보다. 공원은 이런 이유로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규모에 상관없이….
집 근처 공원에 갈 땐 어떤 옷을 입을지, 뭘 신을지 고민하게 된다. 모두가 여유로워 보이는 공원에 맞는 차림을 하고 싶어서 신경을 쓴다. 운동복 광고지에 나오는 여자처럼은 입지 않되 어쩐지 활동적이고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여자처럼 입으려 노력하고, 공원에 나가면 이번엔 표정이 신경 쓰인다(사람이 많은 곳에서 지나치게 자신을 의식하는 것은 직업병이다). 공원과 날씨에 어울리는 표정을 지으려고 노력하지만 모르는 사람들만 있는 곳에서 은은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천성이 아니라, 괜히 혼자 퉁명스러운 표정이 된다. 도대체가 공원과는 어울리지 않는 표정이라고 혼자 생각한다. 공이나 훌라후프라도 들고 나왔어야 한다고 후회할 때도 있다. 그래서 산에 간다.
산에 갈 땐 스스로에게 강요하는 표정이 없다. 뭘 입을지 뭘 신을지 고민하지도 않는다. 그냥 가장 편안한 옷과 신발, 물 한 통이면 그만이다. 도봉산에 가는 날은 주로 평일 낮이라 산을 오르는 사람이 거의 없다. 있다고 해도 계속 올라가거나 계속 내려가야 하기 때문에 어딘가 앉아서 누군가를 쳐다보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저 발 디딜 곳을 쳐다보거나 멀리 있는 봉우리를 간간히 보며 걷는다. 그럴 때 마음이 편안하다. 몸이 가벼울 땐 도봉산정상인 자운봉까지 가지만 주로 우이암이라는 봉우리까지 쉬지 않고 걷는다. 우이암에는 나만의 자리가 있다. ‘숨자’라고 이름도 붙여 두었다(‘숨은 자리’라는 뜻이다). 숨자는 무심코 지나치면 보이지도 않는, 한 사람의 엉덩이만큼의 빈 공간이다. 다리는 펼 수 없고 아래는 낭떠러지다. 다리를 접어 턱밑으로 바짝 당겨 앉아서 의정부, 상계동, 노원 등의 동네를 내려다본다. 가져간 물을 마시고 바람을 맞으며 앉아 있으면 참 좋다. 바람이 시원하고 눈앞이 시원하다. 숨자에는 바람이 잘 지나가서 땀도, 근육의 피로도 금세 날아가 버린다. 혼자 산에 오르게 하는 어떤 집착도 잠시나마 날아가고 몸과 마음이 뽀송해 진다. 그럴 때, 숨자에서 혼자서 바람을 맞고 있을 때, 내 표정이 어떤지 모른다. 미간은 펴지고 눈은 평소보다 가늘어지고 볼이나 턱은 밑으로 쳐지고 입은 살짝 벌어져 있지 않을까 싶다. 아니면 바람이 당겨줘서 눈 코 입이 평평하게 펴져 있지는 않을까? 숨은 자리에 자주 가고 싶은 걸 보면 본적 없는 그 표정을 제일 편안하게 느끼는 듯하다. 공원엔 가고 싶지만 사람이 많은 곳에서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숨을 수 있는 빈 공간이 많은 공원이 있는 건 어떨까? 산에 가보면 자신만의 자리에서 얼굴을 수건으로 덮고 누워 있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공원에서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까 고민하는 사람이 나 혼자는 아닌 듯하다. 공원이 공공의 장소이기도 하지만 빈 공간이기도 했으면 좋겠다는 사람들에게 평일의 국립‘공원’을 추천한다. 평일에 못가는 사람들은 주말 오후 3시 넘어서 가면 한적한 곳을 발견할 수 있다. 그곳에서 남들도, 자신도 모르는 표정 하나를 발견해 보는 것도 공원이 주는 즐거움일 듯하다.
윤진성은 스무 살부터 연기를 하고 있다. 마흔을 넘기고는 여기저기서 연기 워크숍 강사를 더 많이 하고 있다. 일 년의 반 정도 일을하고, 일이 없을 땐 도봉산 국립공원, 수락산(거의 국립공원 수준이다), 관악산, 제주도의 한라산 국립공원 언저리를 오르거나 걸으며지낸다.
-
[에디토리얼] 당신에게 공원은 무엇입니까?
Editorial: What is the Park for You?
이번 호 특집 ‘당신의 공원은 어디입니까’는 겨울과 봄이 팽팽하게 줄다리기를 하던 어느 오후에 구상되기 시작했다. 벌써 두 계절 전이니 꽤 철저하고 제법 정교한 기획일 거라 오해하시면 안 된다. 답답한 공기와 마감의 긴장으로 충만한 편집실에서 날이면 날마다 배달 음식 시켜먹으며 궁상떨지 말고 우리도 우리가 매달 다루는 근사한 공원 같은 곳에 가서 따스한 햇살 높은 하늘 벗 삼아 여유로운 시간을 가져보자는, 낭만을 빙자한 푸념이 그 발단이었다. 그나마 ‘단톡’으로 나눈, 회의를 빙자한 ‘집단 잡담’의 부산물이다.
요즘은 어느 직장에서건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고 엄숙하게 앉아서 하는 회의가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카카오톡을 비롯한 여러 모바일 메신저가 회의용으로도 널리 쓰인다. 심지어 학과 교수 회의도 카톡으로 한다. 장학금 배분, 졸업생 사정, 논문 심사 같은 묵직하고 예민한 안건을 메신저로 다루는 시대! 『환경과조경』도 예외는 아니다. 에디터 모두가 둘러 앉아 진지한 표정 지으며 하는 토론의 횟수는 갈수록 줄고 있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뭔가 찜찜한데, 몇 번 하다 보면 대면보다 부드럽고 대화보다 빠른 장점에 이내 길들여진다. 손쉽게 파일을 주고받을 수 있는 이점도 있다. 이모티콘의 힘을 빌려 표정도 관리할 수 있다. 마샬 버먼의 책 제목을 패러디하자면, “모든 견고한 것들은 카톡 속으로 사라진다All That Is Solid Melts into Kakaotalk.” 논리를 압도하는 재기와 발랄, 숙고를 뛰어넘는 순발력의 진격. 일순간에 휘발되곤 하는 이 과정에서 때로는 ‘득템’을 했다며 서로 흥분하고, 기막힌 아이디어를 건졌다며 기뻐한다. 이런 풍경에 심각한 의문의 부호를 단다면 시대착오거나 촌스러움일까. 진단은 사회학자나 심리학자의 몫으로 돌린다.
정작 우리 편집부에게 중요한 건 이번 특집 ‘당신의 공원은 어디입니까’가 매우 느슨한 카톡 회의의 생산품이라는 점이다. 치밀한 취재와 치열한 토론을 괄호 안에 잠시 숨긴 기획. 괜찮다! 괜찮을까 괜찮겠지…. 전문 분야로서의 조경은 기능, 미학, 생태, 구조, 운영 같은 무거운 숙제들을 공원의 켤레로 삼아왔지만, 원래 공원은 여유와 여백의 대명사 아닌가. 그래, 공원은 자유로운 곳, 아니 적어도 자유로워야 하는 곳이니까 느슨해도 괜찮을 거야.
다음 문단에서 지난 몇 달 간의 자유로운 ‘집단 잡담’을 대략 간추려 본다.
‘서울에 사는 일곱 사람, 그들의 공원 이야기’라는 부제를 단 책 『더 파크』가 나왔다. 케이티 머론이 엮은 『도시의 공원』의 가벼운 한국판 변형? 여행, 도시, 건축을 휩쓸고 간 대중적 유행이 이제 공원으로 옮겨가는 조짐일까. … 라이프스타일 전반이 집에서 길로 향하고 있다. 물론 공원도 넓은 의미의 길이다. 삶이 집을 벗어난다는 건 개발 시대를 지탱시켜 준 가족과 스위트 홈 개념의 변화와 해체를 뜻한다. … 집 안에서 집 밖으로 일상이 옮겨가고 있다. 모든 종류의 만남을 집 밖에서 하며 산다. 여가 시간의 반 이상을 집이 아닌 곳에서 보낸다.
가족 모임도 식당에서, 공부도 카페에서. 우리에게 허락된 대표적인 집 밖 공간인 공원에서 사람들은 실제로 무엇을 하며 사는가. 공원에서의 삶을 소프트하게, 그러나 현미경으로 관찰하는 특집, 괜찮다. 그래, 의미 있다. … ‘1인 가구’가 급증하고 있다. TV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는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통계청의 자료에 따르면 2013년의 1인 가구 비율은 이미 전체 가구의 26퍼센트다. 지금 20대인 사람이 40대가 되는 2035년이 되면 35퍼센트에 달할 전망이다. 1인 가구가 핵가족조차 제치고 가장 많은 가족의 형태가 된다. 이건 문제가 아닌 현상이다. 이런 인구학적 변화에 따라 도시의 라이프스타일은 물론 도시의 형태와 구조도 바뀌지 않을 수 없다. 공유를 키워드로 하는 주거 형식과 주택 형태의 실험이 이미 진행되고 있다. 공원도 변할 것이다. 변할 수밖에 없다. ‘두 번째 집, 공원.’ … 박해천, 전상인, 고미숙, 이런 필자들이 좋지 않을까.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의 사회학자노명우도 빼놓을 수 없다. 보스턴에서 열린 전시회 ‘에머랄드 네트워크: 도시 공원의 유산 되살리기’나 일본에서 진행된 설계공모전 ‘공원이 있는/없는 미래 2105’도 엮어 보자. 그렇다, 멋진 기획이 아닐 수 없다. … 아예 단행본으로 돌려서 대박을 꿈꾸는 게 더 낫겠다. 1만 부 돌파하면 동남아, 5만 부는 유럽, 10만 부면 미국 횡단! … 진정하고, 우선은 특집으로 간다. 과연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공원은 무엇인가. 나의 공원, 일상의 공원, 인생의 공원을 묻는다. 제목은 ‘당신의 공원은 어디입니까’로 간다. … 필자 후보로 올렸던 인문학자나 사회학자 말고 우리가 직접 쓰자. 조경물 오래 먹은 우리만의 시각은 진부하지 않을까. 편집부가 총출동해 여름 한 계절을 온통 투자했지만 반응은 시원찮았던 작년 9월호의 ‘활자 산책’ 특집처럼 되지 않을까.
그래도 간다. 우리 전원이 조경 잡지 에디터가 아닌 동시대 도시를 사는 보편적이고 평균적인 한 개인의 시선을 가지고. … ‘괜찮다! 괜찮을까? 괜찮겠지’를 다시 몇 달 간 반복하면서 엄청난 양의 말풍선으로 모니터 한 구석이 도배됐다. … 드디어 마감이 코앞이지만 우리에게 남겨진 건 의문문 단 하나다. 당신의 공원은 어디입니까?
그들의 응답을 듣지 못한 채 몇 시간 후면 발트 해연안의 에스토니아로 떠난다. 유럽조경학교협의회ECLAS 컨퍼런스에서 돌아올 때는 그들의 공원 이야기가 이미 인쇄소를 거쳐 10월호에 담겨 있을 것이다. 대부분 한 개인의 경험과 사정을 바탕으로 풀어낸 이야기지만, SNS를 점령하고 있는 노출증적 자기 취향 고백과는 다를 것이다. 동시대 도시를 사는 우리가 공유할 수 있는 이슈가 적지 않게 녹아 있을 것이다. 즐겁게 읽어주시고 독자 여러분도 ‘당신의 공원은 어디입니까’에 응답해 보시길 기대한다.
본문 속 필자의 글처럼 ‘나의 공원은 없습니다’밖에 떠오르는 게 없으시다면, 이렇게 물음을 바꿔보셔도 좋을 것 같다. 당신에게 공원은 무엇입니까.
-
[CODA] 엄살
“엄살이 심해도 너무 심해.” 내가 아플 때마다 이마를 짚어주던 그녀의 진단이다. 좀 억울한 점도 있지만, 수긍이 되기도 한다. 아무리 아파도 병원에 가지 않기 때문이다. 약국에서 약을 사 먹고는 계속 아프다고 징징거릴 뿐이다. 그러니 “심하게 아프지도 않으면서 엄살을 피우는 것”이라는 그녀의 진단에 고개를 주억거릴 수밖에…. 단, 투덜거리며 입술을 쭉 내민 채말이다.
그런데, 올해는 상황이 달랐다. 두 달이 멀다 하고 병원을 들락거렸다. 먼저, 허리에 이상 신호가 왔다. 정확히는 오른쪽 허벅지 부근이었다. 잠을 잘못 자서 그러려니 했는데, 하루 이틀 시간이 흘러도 통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심해졌다. 걷는 게 불편할 정도가 되니 병원을 안 갈 재간이 없었다. 병원 대기실 의자에 앉아서도 ‘그 가기 싫어하던 병원에 왔구나’라는 생각 따위를 할 여유가 없었다. 식은땀을 흘리며 그저 내 순서가 빨리 오기만을 바랐다. 앉거나 서기 힘들 정도로 몸이 아프니, 다른 생각은 모두 사치였다. 의사는 허리 디스크가 의심된다며 물리치료와 바른 자세, 스트레칭 등의 처방을 해주었다. 허리에 문제가 생기면 허벅지나 종아리 부근이 아프다는 점을 일러주었고, 상태가 더 나빠지면 수술을 할 수도 있다며 겁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물리치료를 받고 사무실로 돌아와 가장 먼저 푹신한 의자를 딱딱한 의자로 바꿨다. 1시간에 한 번 정도 잠깐이나마 일어서서 일을 보았고, 의자에 앉아 있을 때도 나름 자세에 신경을 썼다. 돌아가는 코스이지만 조금 더 걷는 쪽으로 출근길 노선도 바꿨다. 그렇게 허리는 안정을 찾아갔다.
두 번째 병원 방문은 예기치 않은 사고(?) 때문이었다. 여름 휴가를 맞아 물놀이를 할 때였는데, 젖은 슬리퍼를 신은 채 계단을 내려가다가 스텝이 꼬이면서 미끄러졌다. 넘어지는 그 찰나의 짧은 순간에 ‘아, 워터 슈즈를 신고 올 걸’이라는 후회를 했다. 이미 같은 장소에서 반나절 동안 한두 번 미끄러질 뻔한 경험을 했던 터였다. 슬리퍼를 벗고 일어나서 몸 상태를 확인하니, 다행히 크게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오른손 네 번째와 다섯 번째 손가락에 약간 피가 나고 부은 정도였다. 별로 다치지 않았다는 걸 확인하자, 걱정이 썰물처럼 멀어져갔지만 부끄러움이 집채만한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래도 다행이다 싶었다. 쪽팔림은 순간일 뿐이니까. 모자를 푹 눌러 쓰고, 짐짓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주위를 휘휘 둘러보다가 파라솔 아래로 몸을 숨겼다. 그리곤 밴드를 붙이고 더 놀다가 숙소로 돌아갔다. 휴가가 끝나고도 병원에 갈 생각은 하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약국에서 산 연고의 효능을 믿었고, 시간의 치유력을 신봉했다. 그런데 사흘이 지나도 붓기가 전혀 빠지지 않고 더 심해졌다. 게다가 손가락 마디 근처가 욱신욱신 아프기 시작했다. 결국 나흘 째 되는 날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인대 손상과 골절이라는 진단을 내린 후, 절대로 손가락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며 반 깁스를 해주고는 붕대로 칭칭 동여맸다. 태어나 처음 해 본 깁스였다. 그 이물감과 불편함이란 상상 이상이었다. 두 달이 흐른 지금 네 번째 손가락은 완치되었는데, 다섯 번째 손가락은 여전히 붓기와 통증이 남아 있다. 깁스를 한 상태에서는 키보드 타이핑을 도저히 할 수가 없어, 사무실에 있는 동안 깁스를 풀고 지낸 탓이다.
세 번째 병원 방문은 고열을 동반한 몸살, 네 번째는 심한 치통 때문이었다. 작년에도 몸살을 앓은 적은 있지만 고열이 난 적은 거의 없었다. 또, 가장 가기 싫어하는 병원이 치과이지만 치통이 심해지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치아의 신경을 강제로 긁어버리는 고문이 있다는 믿지 못할 이야기도 떠올랐다. 통증이 더 심해지자, 머리보다 빠르게 손가락이 움직여서 어느새 나는 치과에 전화를 걸어 예약을 하고 의사와 간호사 앞에서 입을 벌리고 있었다.
치과에는 앞으로 몇 번 더 가야 하지만 치통은 사라졌다. 열도 내렸고 몸살도 나았고 허리도 괜찮아졌다. 네 군데 병원을 찾은 덕분에, 지금은 다섯 번째 손가락에 만 통증이 남아 있을 뿐이다. 올해는 잔소리를 안 해도 알아서 병원을 찾자, 그녀가 한 마디 한다. “진짜 아프긴 아픈가 보네.” 물론 한 소리 덧붙이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그러니까 건강할 때 운동을 하고, 좀 이상하다 싶으면 미리 미리 병원에도 가야지.” 결국, 엄살과 진짜 몸살의 차이는 아픈 ‘정도’에 있었다.
“사람들을 만나면 으레 안부 인사로 이야기의 물꼬를 트게 된다. 그 날의 날씨가 가장 만만한 소재이기 마련이다. ‘요즘 갑자기 쌀쌀해졌죠? 작년부터는 가을이 사라진 것 같아요.’ 같은 업종이라면, 업계의 동향을 포괄적으로 언급하면서 동의를 구하기도 한다. ‘이쪽 경기는 왜 갈수록 어려워지죠’ 질문을 던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여전히 많이 바쁘시죠’
내가 잡지사에 다니고 단행본도 만드는 걸 알고 있는 이들은 첫인사로 이런 말들을 건네곤 한다. ‘요즘 잡지사(혹은 출판사)는 사정이 좀 어때요? 아무래도 예전 같지는 않죠. 종이책 보는 사람들이 갈수록 줄어들어서 걱정이 많겠어요.’ 이런 염려를 접할 때마다, 나는 ‘종이책 시장은 해마다 단군 이래 최대의 불황을 경신하고 있다’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엄살을 떨곤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엔 엄살이었지만 어느 시기부터는 엄살의 수준을 넘어섰다. 슬슬 정말로 불안해졌기 때문이다. 종이책의 쇠락에 대한 체감의 ‘정도’가 그만큼 달라진 것이다.”
이런 내용의 글을 써내려가다가, 우선 정확한 ‘진단’이 필요하다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모든 종이 잡지가 동일하게 어려운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한 달 한 달 정해진 지면을 채우는 데에 급급한 나머지, 종이 잡지의 역할과 지향점에 대한 고민이 느슨해졌다는 생각도 들었다. 감정에 호소하는 읍소보다는 냉철한 ‘진단’이 먼저 이루어져야 효과적인 ‘처방’도 가능할 터. 독자가 원하는 콘텐츠를 얼마나 시의 적절하게 제공하고 있는지, 독자가 기꺼이 지갑을 열고 싶도록 매력적인 잡지를 만들고 있는지를 먼저 되돌아보아야 하지 않을까 등등의 고민이 이어졌다.
엄살로 치부하면 많이 억울하겠지만, 고열을 동반한 몸살과 극심한 치통이 마감 기간에 나란히 찾아왔기 때문이다. 이번 달 ‘코다’가 이렇게 뒤죽박죽이고, 지극히 개인적인 병원 방문기 내지는 질병 치유기로 점철된 까닭은…. 어디선가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하여튼 엄살이 심해도 너무 심해.”
-
[편집자의 서재] 맛
Editor’s Library: Une Gourmandise
윗입술과 아랫입술을 가볍게 붙였다 떼고 혀를 천장에 갖다대며 “맛”이라고 발음하는 짧은 순간, 우리는 얼마나 많은 상상을 할 수 있는가. 쓴맛, 단맛, 신맛, 짠맛 등 네 가지 기본 맛에서부터 19금의 불온한 이미지까지. 고백하건대 이 책을 사게 된 건 순전히 제목 때문이었다. 이 책이 어떤 상을 받았는 지, 작가가 누구인지, 언제 나온 소설인지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표지의 덜 떨어져 보이는 인상의 젖소 쿠키가 잠깐 구입을 망설이게 했지만 결국 단순하면서도 함축적인 제목에 끌려 책을 계산대로 가져갔다.
‘146쪽 밖에 되지 않는 소설쯤이야 ‘호로록’ 읽어버려야지’하는 생각으로 야심차게 책의 첫 장을 폈지만 몇 장 넘기지 않아방구석 양지바른 한 편에 고이 모셔두게 되었다. 뮈리엘 바르베리의 『맛』은 시한부 선고를 받은 음식 평론가가 인생의 마지막 48시간 동안 그동안 경험했던 수많은 음식 중 최고의 맛을 찾는 미식 여정을 묘사한 소설이다. 책의 주인공이 음식 평론가이다 보니 원초적이고 간결한 제목과 달리 소설의 문장은 너무 길고 화려했다.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단어도 많이 등장해서 읽다보면 ‘내가 지금 같은 구간을 계속 읽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의심할 정도로 몽롱해지는 기분마저 들었다. “콩을 뿌려 장식한 수척한 마들렌 몇 개를 접시 위에 올려놓는 것으로 만족하고 끝날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마르케의 디저트에 대한 모욕이 될 것이다. 페이스트리는 하나의 구실, 즉 설탕과 꿀이 들어간 살살 녹고 크림이 발린 시편時篇을 위한 구실에 불과했다. 거기에는 케이크, 설탕에 절인 과일, 글라사주,1 크레프, 초콜릿, 사바용,2 붉은 열매, 아이스크림, 소르베에 대한 광기 속에서 뜨거움과 차가움의 점진적인 변화가 연주되고 있었고 내 숙련된 혀는 강박적인 만족으로 지친 채 엄청난 희열의 무도를, 격렬한 지그를 추고 있었다.
번역이 썩 매끄럽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아이스크림에 대한 위의 묘사는 화려한 수식어를 너무 진지하게 구사하는 바람에 우스꽝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아, 나는 성급하게 책을 집어 들기 전에 책의 프랑스어원제목 ‘Une Gourmandise’는 직역하면 ‘맛’보다는 ‘진미’라는 뜻에 가까운, 상당히 고급스럽고 까다로운 단어라는 것을 한 번 더 생각했어야 했다.
음식이든 책이든 음악이든 취향의 문제에 있어서는 이상하게 고집이 세서 조금 부끄럽지만 편식이 심한 편이다. 책이나 글을 읽을 땐 간결하고 담백한 문체를 사랑한다. 특히 화려한 수식어나 관념어가 많고 길게 늘어지는 문장은 싹둑 잘라 깔끔하게 다듬어주고 싶다. 확고했던 나의 취향이 조금 바뀌게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편집 일을 하고부터다. 처음에는 마음에 들지 않는 문장을 가차 없이 재단하고 마름질해 ‘읽기 편하게’ 만들어 놓았지만 어쩐지 글을 고쳐놓고 읽어보면 입에 잘 붙지 않았고 개성 없는 문장이 되어 버렸다. 담당한 연재 원고를 매달 꼼꼼히 읽다보니 꼭지마다 필자의 특색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조금 읽기 불편하고 어딘가 투박하더라도 글쓴이의 개성이 묻어나는 글이 내가 고친 무미건조한 글보다 친근하게 읽혔다. 익숙한 ‘맛’에 길들여져서 시간을 들여 읽으면 발견할 수 있는 매력을 그동안 놓치고 있었던 것이다.
최근에 『맛』을 다시 읽었다. 처음 책을 읽을 땐 그토록 정신 사납게 느껴지던 문장이 이번에는 감칠맛 나게 느껴졌다. 질색을 했던 모호한 관념어와 화려한 수식어도 어느 정도 참을만 했다(솔직히 아직 극복하지는 못했다). 기억을 더듬으며 그동안 경험했던 황홀한 맛을 묘사할 때면 죽어가는 시한부임에도 과도(?)하게 흥분하는 주인공의 어투마저 왠지 모르게 유쾌하게 느껴졌다. 생야채를 마요네즈에 찍어먹는 행위의 관능성을 묘사하는 부분은 어찌나 아찔하던지!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소설 속에서 식탁 위의 군주로 군림하던 음식 평론가의 미식 여정은 슈퍼마켓의 싸구려 슈케트4를 맛보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어릴 적엔 몰랐던 양파의 달짝지근함, 가지의 고소함, 고추의 풋풋함을 나이가 들어가면서 조금씩 알게 되는 것처럼 확고하고 뚜렷했던 취향도 삶의 경험이 쌓이고 보는 시각이 넓어짐에 따라 조금씩 바뀌기 마련이다. 사실 편식은 편견과 무지로 비롯되는 것임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이번 호에는 조경, 도시, 건축계에서 이슈가 되었던 3개의 공모전이 연달아 실린다. 공모전이 많이 실린 잡지는 독자들에겐 다양한 유형의 설계 해법을 살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겠지만 편집자에겐 설계자의 의도와 전략을 이해하느라 머리를 싸매고 고민했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그동안 설계안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어려워서, 이미지가 별로라서 등 수많은 핑계를 대며 설계안과의 정면 승부를 피한적이 없었을까? 뒤돌아보니 성미가 급한 나는 맛을 보기도 전에 삼키려고 한 적이 너무 많다.
-
다음 세대의 도시를 위한 고민
더 나은 도시디자인 포럼 2015
지난 2013년 6월 쇠퇴하는 도시의 자생적 성장 기반을 확충하고 경쟁력을 제고하며 지역 공동체를 회복하기위해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우리나라도 지속가능한 도시를 위한 본격적인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법이 제정된 지 2년이 넘은 지금, 한국의 도시는 다음 세대로 넘어가기 위한 준비가 되어있을까?
지난 10월 2일, 서울경제신문과 한국FM학회 더 나은 도시디자인 위원회(회장 김용수)가 주최하고 더 나은 도시디자인 연구소, 중앙대학교 예술문화연구원(원장 김영호), 한국공공디자인학회(회장 서혜옥), 수목건축(대표 서용식)이주관하는 ‘더 나은 도시디자인 포럼 2015’가 개최되었다. 지난 2014년 ‘지속가능한 도시재생의 미래’를 주제로 처음 개최된 ‘더 나은 도시디자인 포럼’은 우리의 도시를 인간 중심의 도시로 발전시키는 방안을 고민하는포럼이다. 올해에는 ‘From Europe-역사·문화에 기반한 도시재생의 교훈’을 주제로 논의의 장을 마련했다.
유럽 도시재생의 교훈
포럼은 총 2부로 나뉘어 1부에서는 유럽의 도시재생역사와 사례를 살펴보고 2부에서는 한국에서 시행되고 있는 도시재생 정책과 한국형 도시재생의 방향에 대해 고찰했다.1부 첫 발표를 맡은 폰타나 조경설계사무소Fontana Landschaftsarchitekten의 마시모 폰타나Massimo Fontana 대표는 ‘도시의 문맥에서 문맥까지 From Context to Context’라는 주제로 최근 바젤, 취리히, 루체른 등지에서 작업한 도시재생 프로젝트의 사례를 소개했다. 폰타나 조경설계사무소는 스위스 바젤에 기반을 두고 국내외에서 다양한 유형의 공간을 설계하는 설계사무소다. 그는 도시설계에서 가장 중요시 하는 세가지 요소로 환경, 시간, 인간을 꼽았다. 즉, 대상지의 생태, 역사, 문화를 분석해 도시적 맥락과 연속성 있는 설계를 해야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는 것. 그는 “설계자는 시간을 들여 장소의 혼을 존중하는 설계를 해야 한다. 하지만 대상지와 관계된 요소를 너무 많이 남용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조언했다.
민현식 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 명예교수, 건축사사무소 기오헌 대표)는 유럽의 도시설계 역사를 되짚어봤다. 그는 과거 르 코르뷔지에를 비롯한 건축가들이 ‘창조적 파괴’에 골몰하고 획기적인 것에만 가치를 두었다면 최근에는 기억의 축적 위에 새롭게 합의된 아이덴티티를 더하는 도시재생에 주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세운상가 활성화 프로젝트를 사례로 들며 1960년대 폭력적인 방식으로 지어졌던 세운상가 일대의 역사를 인정하면서도 주변의 도시 조직과 연계해 상처를 치유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형 도시재생
고주석 교수(바허닝엔 대학교 명예교수, 오이코스 디자인 대표)는 유럽의 어바니즘이 한국의 경관에 미친 영향과 한국형도시재생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그는 “우리는 도시의 일부이기 때문에 마치 항공사진을 찍듯이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관점에서 도시를 디자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도시를 보는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는 브라질리아를 방문했던 경험을 예로 들며 “브라질리아를 사진으로 보았을 땐 거대하고 시원시원한 도시의 풍경이 멋있어 보였는데 실제로 잔디만 깔린 뜨겁고 광활한 대로를 걸어 건물 사이를 이동하려니 무척 고통스러웠다. 우리의 도시를 ‘건축 박람회장’이 아니라 ‘집’이라고 생각하고 따스한 시각으로 바라보기 시작하면 지역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정체성과 정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구자훈 교수(한양대학교 도시대학원)는 한국의 도시재생 정책의 현황을 소개하고 앞으로의 과제를 제시했다. 그는 특히 최대 35개소를 선정해 지원할 예정인 2016년 도시재생 일반지역 사업의 유형 중 최대 10개소에 100억 원 이내로 국비를 지원할 예정인 중심시가지형 도시재생사업에 주목했다. 그 대상지는 중심 상가, 공공 청사등의 기능이 밀집했던 원도심을 포함하는 지역으로 상권 활성화, 집객 시설 유치, 교통 체계 개편 등의 도시계획적 처방이 필요한 곳이다. 그는 사업 효과를 위해 선택과 집중 전략이 필요하며 전문성 있는 민간 조직을 길러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럽의 도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기존의 도시가 가진 역사성을 존중하면서도 새로운 개발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 왔다. 오랜 시간 천천히 쌓아 올린 유럽의 경험을 우리나라의 도시에 바로 대입할 수 있을까? 발표가 끝난 후 토론 시간에 한 참가자가 유럽의 경험이 한국형 도시재생을 논의하는 데 유의미한지 질문을 던졌다. 이에 대해 구자훈 교수는 “한국의 도시재생사업은 이제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며 “정부의 도시정책 사업을 통해 한국형 도시재생의 방향을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답변했다.
-
‘곶자왈을 잃은, 그대에게’ 최우수작 선정
제7회 대한민국 도시숲 설계공모대전
지난 10월 1일 산림청(청장 신원섭)은 ‘제7회 대한민국 도시숲 설계공모대전’ 수상작 11편을 선정ㆍ발표했다. 도시숲 설계공모는 ‘주변과 조화되고 다양한 동·식물이 공존하는 자연 생태적 역할을 수행하는 도시숲 표현’을 주제로, 산림·조경·건축·도시계획·디자인 등 관련 대학(원)생 및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다. 설계 대상지는 산림청에서 선정한 도시숲 설계 대상지 중 선택해 정할 수 있다.
올해 최우수작은 김수정·신혜인(서울여자대학교 원예생명조경학과)과 윤다운(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환경조경학과)이 함께 출품한 ‘곶자왈을 잃은, 그대에게’로 정부 포상과 함께 상금 500만 원이 수여된다. 최우수작은 쓰레기 매립 등으로 훼손된 곶자왈 지대를 주변 식생의 단계별 천이를 통해 복원한 작품으로, 국민 건강 증진 등 ‘도시 숲과 건강’이라는 주제를 효과적으로 표현해 높은 점수를 받았다.
우수작은 충남대학교 건축학과의 ‘이.끌림’, 가천대학교 조경학과의 ‘송우리에 숲을 태그하다’가 수상했으며 그 외 장려상 3점, 입선 5점이 각각 선정됐다. 이용석 과장(산림청 도시숲경관과)은 “기존 공원과는 차별화된 참신하고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발굴하여 도시숲 조성에 적극 반영할 계획”이라며 “참가자들의 높은 관심이 도시숲과 산림 정책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곶자왈을 잃은, 그대에게 최우수작의 대상지는 용암이 만든 제주도의 대표적 자연 경관인 곶자왈 지대다. 곶자왈이란, 곶(숲)과 자왈(암석과 자갈)이 합쳐진 암석과 가시덤불이 뒤엉킨 숲을 말한다.
이곳은 과거 제주민들의 삶의 터전이 되기도 하였으며 제주의 허파, 생태계의 보고라고 불린다. 또한 높은 지하수 함량과 보온·보습 효과로 남방 한계 식물과 북방 한계 식물이 함께 공존하는 세계 유일의 독특한 숲이다. 그러나 이러한 가치가 조명되기 전에는 골프장이나 리조트 건설 등으로 파괴되는 일이 많았다.
이번 대상지 역시 쓰레기 매립, 초지를 위한 불 놓기 사업, 인위적인 해송 식재 등 사람의 손길로 인해 건강하지 못한 채로 남겨져 있다.
수상작은 곶자왈을 제주민들에게 다시 돌려주되, 지금의 곶자왈과는 다른 곶자왈을 제안한다. 기존의 곶자왈이 대부분 극상림 단계에 있다면, 수상작이 제안하는 곶자왈은 극상림으로 변화해 가는 천이 과정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2헥타르 안에서 곶자왈을 체험하고, 제주의 다른 파괴된 곶자왈 복원을 위한 시험림의 성격도 부여한다.
훼손된 식생 본래의 건강을 되찾아 주기 위해 첫째, 사람의 간섭에 의해 교란된 식생을 제거한다. 다음은 같은 해발의 선흘곶자왈 식생을 목표종으로 도입하고, 자연 스스로 천이가 시작될 수 있도록 한다. 이렇게 기반을 다져줌으로써 사람들은 공간별로 각기 다른 천이를 느낄 수 있게 된다.
또한 대상지 현황에 따라 3가지 종류의 곶자왈 공간을 만든다. 먼저 자갈과 암석이 드러나 요철 지형을 느낄 수 있는 공간에는 암석원을 계획했다. 이곳은 천이의 초기 형태를 띠는 곳으로서 보호 공간이기도 하며, 데크 길을 이용해 천이를 관찰할 수 있다. 또한 다져진 지반에 우수가 집수될 수 있도록 계획한 아아aa 못이 있다. 이곳도 암석원과 같은 용도의 데크 길이 사용되며 비보호시에는 억새 속을 걷는 동선으로도 사용된다. 그리고 덤불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지형인 함몰지가 드러나도록 했다. 햇빛에 노출되어 융기된 곳에는건조에 강한 식물이, 습도가 높은 아랫부분은 이끼류들이 살아 곶자왈의 다양한 생물종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대상지에는 기존의 근린공원과 연결되는 순환형 동선을 계획했으며, 보조 입구와 연결되는 보조 동선, 학술용으로 사용되는 세부 동선이 있다. 이렇게 열리고 닫히는 공간을 통해 오름 등 다양한 경관을 만날 수 있다. 또한 이 길은 1.5~2.5m의 좁은 폭으로 만들어져 천이를 통해 자연이 만들어내는 식생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한다. 더불어 천이 중인 식물을 보호하기 위한 구름다리, 팻말, 데크 길은 곶자왈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요소가 된다.
‘곶자왈을 잃은, 그대에게’는 공감하고 이해하는 과정속에서 힐링하며 곶자왈이 뿜어내는 가치를 새로운 눈으로 바라 볼 수 있는 기회를 제시하고 있다.
-
서울숲 10년의 의미와 과제
서울숲이 10주년을 맞았다. 2005년 6월 18일, 뉴욕의 센트럴파크 혹은 런던의 하이드파크와 같이 서울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도시숲’을 꿈꾸며 서울숲이 개장했다. 공원녹지를 통해 도시 공간 재편을 꾀했던 민선 3기 이명박 서울시장은 ‘생활권 녹지 100만평 늘리기’ 사업을 추진하면서, 주거·업무 지역으로 개발할 경우 4조원에 달하는 개발 이익이 예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문화관광 타운 등으로 구상했던 서울숲 부지를 공원화했다. 서울숲 뿐만 아니라 서울광장, 청계천 복원 등 같은 시기 조성된 공원녹지는 환경 가치를 중시하는 새로운도시 마케팅의 핵심 요소로 떠올랐다. 당시 서울숲은 앞으로 (용산 미군 기지를 제외하고) 확보하기 어려운 대규모 녹지를 서울 동북부 지역에 마련함으로써 균형 발전의 토대를 만들고, 도시의 생태적 네트워크 구축의 교두보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특히 공원을 만들고 관리하는 측면에서 볼 때, 서울그린트러스트와 같은 민간단체를 통해 시민이 직접 조성부터 관리까지 참여한다는 민관 협력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었다는 중요한 의의가 있다. 여러모로 서울숲은 새로운 공원 문화의 테스트베드이자 다른 공원들의 벤치마킹 사례가되어왔다.
2015년 10월 16일 서울시와 서울그린트러스트(이사장 양병이)는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후생동에서 지난 10년을 되돌아보고 향후 10년을 고민하기 위한 ‘서울숲 10년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현재 서울숲을 관할하고 있는 서울시 동부공원녹지사업소의 이춘희 소장은 ‘서울숲의 조성과 운영이야기’를 주제로 첫 번째 주제발표를 했다. 그간 서울숲의 변화를 살펴보면, 수목은 22종 2만주가 늘었고(2015년 현재 109종 64만주), 초화류는 99종 3만본(2015년 현재 183종 49만본), 온실 식물은 23종 3천본(2015년 현재 254종 8천본)이 늘어나는 등 식물의 다양성이 증가했다. 반면 서울숲 개장 당시 서울시장의 요청으로 꽃사슴 104수와 고라니 7수가 사육되었는데 현재는 각각 59수와 5수로 줄어들었다. 과도한 수의 꽃사슴을 방사하면서 생태숲이 파괴된 결과 조정된 것이다. 그밖에 나비정원이 신설되었고, 어린이 시설이 확충되는 등 시설도 보완되었다. 서울숲 주변으로는 2011년 ‘갤러리아 포레’가 완공되었고 2012년에는 분당선 ‘서울숲역’ 개통, 성수동 뒷골목 상권 활성화 등의 변화가 있었다. 시민참여 현황을 보면 공원안내 30여 명, 청소년 자원봉사 연간 3천 여명, 대학생ㆍ기업자원봉사 8천4백여 명 등이 활동하고 있으며, 27개의 직영 프로그램과 30개의 위탁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서울숲의 미래를 위한 설계자의 제안
서울숲의 설계자인 안계동 대표(동심원 조경)는 ‘도시공원의 새로운 모델’을 지향했던 서울숲의 변화 10년을 되짚었다. 2003년 조경계의 큰 잔치였던 ‘뚝섬 숲(안) 조성 설계공모’(설계공모가 마감된 2003년 4월 4일 ‘뚝섬숲’의 명칭이 ‘서울숲’으로 공식 결정되었다)에서 ‘진화, 네트워크, 재생’을 핵심 전략으로 내세운 동심원의 ‘서울숲’이 당선되었다.
안계동 대표는 시공과 개원 이후 아쉬운 부분으로 숲의 기반인 토양 개량 미흡, 생태숲의 동물 방사, 이전 예정 시설의 존치 등을 꼽았다. 그 가운데 설계 당시 승마장, 정수장, 삼표 레미콘 공장 등의 이전을 전제로 문화예술 및 생태 프로그램을 계획하였으나 10년이 지난 지금도 이전이 이루어지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정수장(뚝도아리수정수센터)은 오히려 시설을 고도화 했으며, 삼표레미콘 공장은 소음과 분진 때문에 지역 주민과 갈등 중이지만 언론 매체를 통해 이전 의사가 없음을 확인할 수 있다. 승마장 부지는 본래 사설 승마훈련원이 운영되고 있었으나 경영 악화로 작년 말 폐쇄된 상태다.
그간 승마가 귀족 스포츠라는 부정적인 인식과 더불어 악취나 먼지, 그리고 인접한 학교의 학습권 침해를 이유로 주민들의 불만이 커진 상태다. 현재 이 부지를 관리하고 있는 서울시 체육정책과는 앞으로 공공 승마장을 운영할 계획으로 현재 주민 의견 수렴 및 기본설계용역을 진행 중이라고 한다. 그간 주민들이 제기한 승마장에 대한 불만 사항을 리모델링을 통해 개선해 지역 주민들도 이용할 수 있는 공공 시설화한다는 계획이다. 반면 안 대표는 승마장 부지를 서울숲에서 직접관리하고, 당초 계획대로 문화예술 관련 프로그램을 도입하자는 제안을 했다. 정원이나 가드닝 스쿨을 넣기 좋은 위치라는 의견을 덧붙이기도 했다. 한편 정수장에 관해서는 이전 대신 서울숲과의 통합 운영을 제안했다.
10만 평 가까운 면적의 거대한 정수장은 현재 보안 시설로 두 겹의 철조망이 쳐져 서울숲과 격리되어 있다. 보안 구역을 조정해 견학 프로그램 등을 서울숲과 통합하고, 정수장의 전망대를 개방하면 서울숲을 시원하게 조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숲의 또 다른 문제는 공원 전면부 상업 용지와 주진입로 일대의 활용 계획에 관해 소통하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 서울숲 진입로 양편 부지는 공원 조성 당시부터 개발되지 않고 비어 있던 땅으로 장벽 같은 가림막이 서 있어 공원 입구를 답답하게 만들어 왔다. 그런데 최근 이 부지들의 개발 계획이 발표되고 있는데, 대림산업은 주상복합단지 ‘서울숲 e편한세상(가칭)’을 내년 상반기 분양할 예정이며, 부영은 49층짜리 관광호텔 3동 개발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들이 나오고 있다.1 개발이 예정대로 진행된다면 서울숲은 주상복합 아파트인 ‘갤러리아포레’와 현재 건설 중인 아파트‘트리마제’ 등을 포함해 40층 이상 고층 건물 최소 7개 이상에 둘러싸이게 된다. 이러한 개발은 서울숲과 인접한 점을 이점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정작 서울숲 운영자들과는 소통할 창구가 마련되지 않았다.
안 대표는 서울숲의 입구, 즉 대림산업과 부영의 토지사이의 도로를 공원으로 변경하자는 의견을 개진하기도 했다. 현재 도로로 지정되어 있는 이 토지는 서울 숲의 입장에서 보면 주 진입로인 셈인데 좁은 통로 외에는 막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토지를 성동구 관할에서 서울숲 관리 대상으로 변경해 공공 용도로 활용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생각이다. 그런데 이 토지 역시 최근 성동구(구청장 정원오)가 롯데면세점, 문화예술사회공헌네트워크와 함께 사회공헌 프로젝트 ‘언더 스탠드 에비뉴Under Stand Avenue’ 사업을 추진 중이다. 100여 개의 컨테이너 박스를 활용해 창조 공간으로 만든다는 구상인데 지난 8월 착공식을 거쳐 10월 말 완공 예정이다. 서울숲 안팎에서 공원에 영향을 미치는 부지의 활용 계획이 공원과 통합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는 안계동 대표의 바람은 공원 개장 후 10년이 지난 지금도각 부지의 관할 기관이나 부서가 다르거나 민간 소유의 토지인 상황으로 여전히 쉽지 않아 보인다. 서울숲 주변의 상업화 또는 공적 활용은 유동 인구를 늘려 이 지역을 활성화시킬 수도 있겠지만 주변 도시의 구조적 변화를 고려한 진화를 전략으로 삼는다는 서울숲의 설계의도가 온전히 구현되기는 어려운 셈이다.
시민참여의 새로운 패러다임
사실 그러한 통합적 계획에 국내 민관 파트너십의 선구적 모델인 서울숲사랑모임이 참여할 수 있다면 조금 더 적극적인 시민 참여를 유도할 수도 있다. 서울숲 운영을 위해 서울그린트러스트의 파견 부서 형태의 서울숲 운영팀이 서울숲사랑모임이다. 서울그린트러스트는 서울의 도시환경 개선 방안으로 상업개발 예정지였던 뚝섬을 도시숲으로 만들 것을 제안했던 사단법인 생명의 숲국민운동이 서울시와 ‘서울그린트러스트’ 협약을 체결하며 설립한 재단법인이다. 서울그린트러스트를 통해 2005년까지 약 50억 원의 기금 조성 및 나무심기에 70개의 기업과 5,000명의 시민이 참여했으며, 지난 10년 동안 서울숲사랑모임은 각종 공익 캠페인과 생태·문화 프로그램을 개발해왔다.
이러한 서울숲사랑모임은 공원 운영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적 장치가 미흡하다보니 그 참여에 난항을 겪고 있다. 서울숲사랑모임의 이민옥 국장은 서울숲 조성 초기에는 서울시와 파트너로 함께 운영하다가 어느 순간 갑을 관계가 되었다고 설명한다. 2009년부터는 공개경쟁에 의한 입찰을 통해 3년 단위 계약을 이어가고 있는 형편으로, 이러한 상황은 서울숲사랑모임의 활동을 위축시키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국장은 예전에는 손님 같던 시민들이 점점 주인의식을 가져가고 있다며, 작년부터는 ‘공원의 주인은 바로 우리다. 우리가 공원과 함께 커 가자. 공원을 함께 고민하자’는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고 전한다. 서울숲사랑모임은 공원에서 생태 프로그램이 생소했던 2005년부터 유아부터 노인까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생태·문화 프로그램을 개발해왔다. 이제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시민들에게 제공하는 방식은 지양하고 함께 만들어가는 프로그램을 고민중이다. 더불어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 공간으로서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가’, ‘사회적 자본을 어떻게 형성할 것인가’를 향후 과제로 설정하고 있다.
이어진 토론 시간, 이성환 서울숲관리사무소 초대 소장은 서울숲은 개원 당시 하루에 10만 명에 달하는 인파가 찾을 정도로 국민 공원으로 사랑받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특히 지방의 관광객들은 같은 해 10월 개장한 청계천과 서울숲을 코스로 묶어 방문하곤 했다고.
그런데 최근에는 이용자가 지역에 한정되었다며, 이용객이 줄어든 이유를 파악해 전 같은 인기를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일갈했다.
이근향 전 서울숲사랑모임 국장(중부공원녹지사업소 공원여가과장)은 공원이 조성된 지 10년이 되니 새로운 사회의 트렌드에 발맞추기 위해 재원이 필요한 곳이 많이 생기는데, 이를 충당하기 위해서는 공원녹지 관련 행정력으로만은 역부족이라고 설명한다. 더불어 얼마 전 참석한 세계 공원 컨퍼런스에서 미국의 내무부 장관이 축사를 하고 아나운서나 의사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이 토론에 참석하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전했다. 공원의 모습을 쇄신하기 위해서 단순히 예산을 늘려달라는 요청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공원녹지 분야를 넘어서는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고, 그래야 풍부한 재원이 마련될 수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정확한 데이터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즉, 사회의 각 분야에서 그 필요성을 이해할 수 있도록 공원의 경제적 가치를 계량화하는 다양한 연구와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제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