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더관리
폴더명
스크랩
  • 일요일 저녁, 내가 여의도한강공원을 달리는 이유 당신의 공원은 어디입니까?
    한강공원은 자연과 인공이, 휴식과 질주가 절묘하게 조합된 이중적인 공간이다. 일요일 저녁 8시, 애써 의식하지 않으려고 해도 ‘월요병’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벌써부터 마음이 초조해지기 시작한다. 과장해서 비유하자면 전투를 앞에 두고 진격하는 적군의 북소리를 듣는 심정이랄까? 게다가 이 적군은 결코 물러서는 법이 없으며 나 역시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다. 몇 시간 뒤면 주말 동안 밀려있던 일거리가 전원 돌격 명령을 내리고 호환마마보다 무섭다는 월요병이 전염병처럼 도시에 유행할 것이다. 월요일을 앞에 두고 배수의 진을 친 일요일 저녁엔 바람 빠진 타이어처럼 느슨해진 마음에 빵빵하게 자신감을 채우고 식은 엔진처럼 삐걱거리는 몸에 기름칠하고 불을 댕길 무언가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미 시간은 오후 8시. 이대로 밤을 보내기엔 너무 아쉽고 하얗게 불태우기엔 부담스러운 시간이다. 그런 저녁엔 가벼운 옷차림을 하고 여의도한강공원을 달린다. 전열을 가다듬고 숨을 고르는 내 나름의 방법이다. 종로에서 뺨 맞고 화풀이하러 한강에 갑니다 벚꽃놀이나 불꽃 축제를 구경하러 1년에 한두 번 정도 갈까 말까 했던 여의도한강공원을 요즘처럼 자주 찾게 된 것은 2013년부터다. 종로에 있는 한 통신사에서 인턴으로 근무하면서 불규칙한 취재 일정과 예고 없는 잦은 회식으로 인해 몸무게가 왕창 늘어나던 때다. 회사 면접을 위해 산 정장 스커트에 더 이상 엉덩이를 우겨 넣을 수 없게 되자 뭐라도 해야겠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집 근처 여의도한강공원을 가게 되었다. 나는 늘 사람들이 새까맣게 북새통을 이루는 축제 기간에만 여의도한강공원을 갔던 전형적인 시골 사람이었던 터라 평범한 일요일 저녁, 여의도한강공원에 운동하러 가는 것은 신선한 경험이었다. 도시의 삶을 묘사하는 미드(‘섹스 앤 더 시티’나 ‘프렌즈’ 같은)나 외국 영화를 보면 꼭 한 번은 타이트한 운동복을 입고 공원에서 운동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나오는데 그 비일상적인 듯 일상적인 모습을 내가 재현하는 느낌이랄까. 이제는 굳이 살을 빼기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여의도한강공원을 달린다. 종로 빌딩숲 한복판, 그 살얼음판 같은 회사에서 구르고 깨지는 게 일이었던 쭈구리 막내인턴에게 이곳의 자연과 한강 풍경은 말없는 위로를 건네고 해방감을 맛보게 해주었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화풀이한다”는 속담이 전해지는 것을 보면 오래전부터 한강은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에게 ‘만만한 곳’이자 ‘스트레스를 털어버리는 곳’이었던 것 같다. 조선 시대, 나라의 허가를 받아서 물품을 판매하는 종로 육의전六矣廛의 위세 높은 상인에게는 뺨을 맞아도 아무 소리 못하던 서민들이 한강을 중심으로 형성된 비공식적인 시장인 난전亂廛에서는 큰소리치는 상황에서 속담이 유래했다고 한다. 그러니 따지고 보면 오늘날의 나도 종로에서 뺨맞고 만만한 한강에서 화풀이하고 있는 셈이다. 서울의 도시 문화를 맛볼 수 있는 공원 단순히 자연에서 위로를 얻기 위해서라면 선유도나 양화, 망원, 이촌 쪽으로도 갈 수 있지만 총 12개 지구의 한강시민공원에서 굳이 여의도한강공원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다. 나는 보통 여의도로 넘어가는 서강대교와 이어지는 고가도로에서부터 달리기 시작한다.
  • 야외의 맛, 게으른 피크닉을 꿈꾸며 당신의 공원은 어디입니까?
    회사를 그만두고 오롯이 백수였던 시절이었다. 출근을 하지 않으니 자유로워진 평일 오후, 한 대학 캠퍼스의 넓은 잔디밭에 나와 앉았다. 그 당시 하늘은 넓고 푸르렀고 눈앞에서 낮게 넘실대는 녹색 풍경이 무척 아름다웠던 기억이 선명하다. 게다가 함께 있던 친구가 바로 그 잔디밭으로 짜장면을 시켰다. 야외인데도 음식이 배달된다는 사실이 무척 신기했고 심지어 그 상황이 감격스럽기까지 했다. 그날 이후 ‘풀밭 위의 식사’는 나에게 여유의 상징처럼 각인되었다. 그런데 누군가 ‘화창한 평일 오후에 자연 속에서 맛있는 식사도 했으니 행복한 기억이겠구나’라고 묻는다면 글쎄, 선뜻 답하기 어렵다. 그 감정은 불안과 낯섦 사이를 오간다. 백수 신분에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상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탓일까. 노동이 신성시되는 현대사회에서 이런 강박이 나 혼자만의 것은 아닐 것이다. 작년 가을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벌어졌던 ‘멍 때리기대회’가 언론의 화제가 되었던 것은 아마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그냥 ‘쉼’을 견디지 못하는(혹은 인정하지 않는)이들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이 일을 떠올리게 된 것은 K 때문이다. 이번 특집 주제를 찾느라 고민 중인 나에게 그녀는 공원의 먹거리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얼마 전 광교호수공원을 방문한 그녀는 예전에는 놀이 공원에서나 먹을 수 있던 솜사탕과 추로스를 발견한 덕택에 이 공원에 대한좋은 기억을 남겼다는 것이다. 추로스라니! 막대 모양의 페이스트리 반죽을 기름에 튀겨낸 이 스페인 전통요리의 쫄깃한 식감, 그걸 들고 다니던 놀이 공원의 한 장면, 설탕이 솔솔 뿌려져 있어 달착지근하고 끈적끈적해진 손의 느낌까지 여러 가지 기억이 호박넝쿨처럼 끌려나온다. 솜사탕은 어떤가. 고운 설탕실로 만들어진 솜뭉치의 인공적 맛이야말로 야외의 맛이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과연 광교호수공원에서 갖가지 모양의 솜사탕을 들고 있는 사람들의 사진을 볼 수 있었다. 아, 요즘 아이들은 좋겠다. 우리 때는 하얀색과 분홍색의 단순한 솜사탕 밖에는 없었던 것 같은데, 오리, 꽃, 눈사람 등 믿을 수 없는 모양과 세련된 색상의 솜사탕이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얼마 전부터 솜사탕이 불량식품이라는 민원에 광교호수공원에서 판매가 금지되었다고 한다. 여하튼 K의 주장은 장소와 연결되는 음식, 어떤 공간의 경험을 완성시키는 맛이 있다는 것이다. 미각, 공감각적 경험의 시작 최근 소위 ‘먹방’이나 요리 프로그램의 열풍을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많은 사람들에게 음식이 주는 즐거움은 일상적 경험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야외 활동과 음식은 아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우리가 만약 어떤 장소에 간다면 우선 ‘맛집’부터 검색한다. 혹은 등산을 하는 수많은 중년 남성(?)들은 배낭에 막걸리를 챙겨 넣는다. 산 정상에서 막걸리 한 잔을 마셔야, 아니면 하산 길에 도토리묵에 살얼음 동동주를 먹어줘야 비로소 등산을 마무리한 기분이 드는 것이다. 계곡에서는 백숙, 고속도로에서는 호두과자, 소풍에는 김밥… 예는 수없이 많다. 우리는 음식을 보고 공간을 떠올리고, 어떤 장소에 갈 때 특정한 음식을 맛보길 기대한다. 미각은 공간을 경험하는 사람의 감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술을 예로 들어보자. “알코올은 분위기 설정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우리는 알코올이 우리의 기분을 끌어올릴 것으로 기대하고, 그것은 자주 그렇게 한다. 이완과 흥겨움을 나타내는 표시로서의 알코올은 심지어는 술을 마시기도 전에 몸에 해방을 준비한다.”1 우리가 야외에서 추구하는 미각은 필연적으로 다른 감각과 기억, 정서적 활동과 연관된다. 전통적으로는 화전놀이가 그런 예가 아닐까 싶다. 당시 젊은 남녀나 부녀자들은 추운 겨울이 지나고 봄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경치 좋은 곳을 찾아 벌이는 꽃놀이를 기대하며 한동안 설레었을 것이다. 얇고 하얀 찹쌀가루 반죽 위에 진달래꽃이나 장미, 국화의 선명한 꽃잎이 올라간 화전의 맛은 어땠을까. 사실 화전의 맛 자체는 중요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눈으로 먹고, 분위기로 먹고, 간만에 쐬는 콧바람에 이미 맛있게 먹을 준비가 되지 않았을까. 공원 계획과 음식 도시 공공 공간의 양적 팽창이 한계에 접어들면서 최근 좀 더 활기 있는 공공 공간을 위한 질적 변화에 대한 고민도 늘고 있다. 혹자는 공원에 필요한 것은 미술품이 아니라 음식을 제공하는 시설이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실제 공원을 계획할 때는 음식과관련된 활동에 대한 고려는 크지 않은 편이다. 피크닉장이나 캠핑장이 기본적인 시설로 계획되는 정도다. 미국의 도시학자인 윌리엄 화이트William H. Whyte는 그의 저서 『The Social Life of Small Urban Spaces』(1980)에서 공공 공간에서 사람들의 활동을 끌어들이고 싶다면 음식을 내놓으라고 권고했다. 특히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곳을 예민하게 알아채는 코를 가진 노점상은 사람들을 끌어 모은다. 음식은 사람들을 모으고, 음식이 있는 곳은 사회적 장소가 된다. 몇 개의 접이식 테이블과 의자만으로 커다란 시각적 효과를 노릴 수 있다.
  • 나의 공원은 없습니다 당신의 공원은 어디입니까?
    공원은 자본주의 도시의 한가운데에 있지만 토지를 함께 소유하고 사용하는 모순의 장소이기도 하다. … 개인적 욕망보다는 늘 사회적 가치가 우선이다. 우리는 가득하지만 나는 없는 곳, 공원의 리얼리티다. 나의 공원은 없습니다 그동안 쓴 글과 지은 책의 소재 대부분이 공원이고 이런저런 공원의 계획과 설계에도 참여해 왔지만 막상 ‘당신의 공원은 어디입니까’라는 질문에 맞닥뜨리니 숨이 턱 막힌다. 시간의 물성이 켜켜이 쌓인 선유도공원, 하늘을 향해 열린 자유와 해방의 하늘공원, 시적 공감각이 신체를 감싸는 빅스비 파크, 황폐한 숭고미가 새로운 희망과 동거하는 뒤스부르크-노르트 파크 정도가 언뜻 떠오르기는 하지만, 이 장소들의 매력이 나의 삶과 한데 뒤섞이는 것은 아니다. 답사의 대상이거나 연구의 주제이거나 강의의 소재이기는 하지만, 내가 도시를 살아가는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숱하게 찍은 내로라하는 유명 공원들의 사진을 다시 보면 전형적인 구경꾼의 시선만 느껴진다. 사진에 담겨 있는 건 그저 조경 잡지에서 본 프레임을 복습하는 모범생의 무표정한 시각, 아니면 스타 조경가의 작품을 앞에 두고 연예인 보듯 들뜬 마음이다. ‘나의’ 공원은 어디인가. 연중행사로 큰맘 먹고 가는 정도지만 그래도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던 공원은 집에서 멀지 않은 분당중앙공원과 율동공원이다. 이 두 공원에는 적지 않은 추억도 녹아 있다. 아이들의 성장사가 영상처럼 재생된다. 자전거 타기에 성공한 큰 아이의 흥분된 모습이, 갈고 닦은 인라인 스케이트 실력을 뽐내는 작은 아이의 상기된 얼굴이 생생하다. 하지만 소중한 시간과 기억보다 더 강하게 남아 있는 건 획일적인 녹색의 풍경, 다른 어떤 곳으로 탈출하지 못한 무력감, 공원에서도 내일 할 일을 생각해야 하는 피로와불안, 명절 세일 중인 백화점보다 더 많은 운동 인파, 이런 것들이다. 나의 공원은 과연 어디인가. ‘어디인가’를 ‘무엇인가’로 바꿔 보아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나의 공원은 없습니다’라는 답은 나만의 공원을 발견하고 또 소유하고 싶은 욕망의 다른 표현이다. 그래서 공원이다 ‘조경비평 봄’의 세 번째 책 『공원을 읽다』(나무도시, 2010)는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공원이 각광받고 있는 시대에 공원의 여러 숨겨진 단면을 노출시켜 독해함으로써 그 기능과 역할을, 그 이념과 가치를 되묻고자 한 기획이었다. 책의 서문격인 글 ‘그래서 공원이다’의 일부를옮긴다. “… 공원의 어깨는 무겁다. 우리는 공원이라는 단순한 장치가 아주 복잡하고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작동되기를 기대한다. 공원은 아침형 인간이 하루를 여는 조깅코스다. 남편을 출근시키고 아이를 등교시킨 주부가 모처럼 여유를 느끼며 걷는 산책의 장소다. 모니터 앞에서 오전을 시달린 직장인이 햇볕을 쬐며 커피와 독서를 즐기는 카페테리아다. 물론 평범한 가족의 주말 휴식을 공원에서 빼놓을 수 없다. 공원은 또한 유치원 꼬마들의 소풍으로 가득하다.
    • 배정한[email protected] / 편집주간, 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
  • 당신의 공원은 어디입니까?
    진행하는 도중에 케이티 머론이 엮은 『도시의 공원』이 떠오르긴 했지만 처음부터 그 책을 염두에 두진 않았습니다. 그 보다는 바람이 좀 선선해지면 한강공원에 퍼질러 앉아 특집 기획을 빙자해 치맥을 즐기자는 누군가의 바람이 이번 특집의 출발점입니다. 작년인가, 김정은 팀장이 취재차(?) 다녀왔던 서울광장에서 열린 ‘멍 때리기 대회’를 시연해보자는농담도 곁들여졌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각자의 공원 이용 행태가 하나씩 튀어나왔습니다. 바로 그 자리에서 말이죠. 그런데 요리사가 집에서 요리하지 않는다는 속설처럼, 의외로(?) 공원을 즐기는 이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늘 공원을 모니터 속에서 노려보아서일까요? 특히 조경학과 출신 에디터들의 공원 이용 실적이 저조했습니다. 여기에는 조경학과 출신 편집주간도 포함됩니다. 그동안 너무 조경의 대상지로만 공원을 바라보았다는 자책까지 나오진 않았지만, 공원의 일상성에 주목해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었습니다. • 나의 공원은 없습니다 _ 배정한 • 야외의 맛, 게으른 피크닉을 꿈꾸며 _ 김정은 • 일요일 저녁, 내가 여의도한강공원을 달리는 이유 _ 조한결 • 공원, 상상하는 대로 _ 박광윤 • 미래 지구인들로부터 공원을 빼앗는 몇 가지 방법 _ 양다빈 • 사랑의 떨림이 시작된 공원 _ 이형주 • 기억이 머무는 공간, 나의 공원 _ 박인수 • 공원 탐닉 _ 남기준
    • 편집부
  • [재료와 디테일] 중력과 싸우는 흙 쌓기
    이십여 년 전 설계사무실 초년병 시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선배들이 다 그려놓은 하얀 트레이싱 페이퍼 뒷면에 먹을 넣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요즘은 캐드에서 폴리라인polyline으로 봉합하고 솔리드solid를 채워 녹지 공간과 시설지의 공간을 구분하는 작업이 손쉬운 일이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연필심을 곱게 갈아 모은 뒤 휴지에 묻히고 곱게 발라줘야 하는 극도로 정교하고 시간을 요하는, 초짜들의 시간 죽이기용으론 최고의 작업이었다. 게다가 조금만 삑사리가 나거나 균일한 농도를 맞추지 못해 얼룩이라도 생기면 어김없이 날아오는 선배들의 가르침이 무지막지했다. 그렇게 도면에 먹을 먹이는 작업을 하면서 유심히 살펴 본 평면도의 녹지 공간에는 어김없이 지렁이처럼 생긴 점선들이 있었고 그 앞으로 경관석이라는 이름의 돌덩어리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그 점선들은 흙을 쌓는 모양과 높이를 알려주는 마운딩mounding이라는 이름의 설계 기법이었다. 웬만한 당시 도면들에는 어김없이 이런 계획이 들어 있었고 이렇게 만들어진 장소를 답사 해보면 그 형태와 기법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당시에는 ‘당연히 이렇게 해야 하는구나’라는 생각으로 별생각없이 받아들이고 몸으로 익히게 되었다. 최근 경기도 인근에 작은 모델 정원을 만들면서 그때 일을 다시 떠올렸다. 터파기를 하며 나온 흙과 나무를 심을 웅덩이를 파내며 만들어진 엄청난 양의 흙이 봉긋하게 쌓여 있었는데, 그 모습에 깜짝 놀라기도 했거니와 예전 마운딩 설계안이 머릿속에 겹쳐졌기 때문이다. 저 많은 흙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하는 한숨과 함께 말이다. 흙이라는 재료가 너무 흔해서 쉽게 생각되지만 그 처리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단위 비중이 돌과 비슷한 몹시 무거운 재료이며, 쉽게 흘러내려서 쌓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면적도 많이 차지한다. 물론 쌓으면 많은 장점이 있다. 이미 단단하게 다짐된 공사장의 지반 위에 성토를 하게 되면 아무래도 흙의 구조가 떼알구조가 되므로 식물들에게 좋은 환경을 제공할 것이고,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경사면은 단조로운 경관에 입체적이고 풍성한 모습을 연출할 것이다. 이대영은 여기저기 살피고 유심히 바라보기 좋아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려 노력하고 있다. 만드는 것에 관심이 많으며, 작고 검소하며 평범한 조경설계를 추구하고 있다. 영남대학교에서 공부했고 우대기술단과 씨토포스(CTOPOS)에서 조경의 기초를 배웠다. 조경설계사무소 스튜디오엘(STUDIO L)을 시작하고 작은 작업들을 하고 있다. www.studio89.co.kr
  • [공간 공감] 명동성당
    한동안의 어색함. 성당을 올라가는 계단 아래 모인 일행 모두는 대체로 그런 느낌이었다. 삼 년 만이라고도 했고 오 년, 아니면 그보다 더 되었다고도 했다. 너무 오랜만에 오다보니 이 우뚝 높은 종현鐘峴에 세워진 성당을 무심코 지나쳐 버렸다고. 명동은 이제 우리 세대의 기억에서도 점차 희미해지고 있는 것인지, 상점거리에 넘쳐나는 외국인 관광객들 틈에서 우리말조차 낯설게 들린다. 시가지의 중심을 차지하고서 어느 방향, 어느 지점에서나 랜드마크가 되어주는 유럽의 성당과는 달리 명동성당은 이제 코앞에 다가서서야 비로소그 수려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주변을 둘러싼 높은 빌딩들, 그 커다란 벽면을 차지하고 있는 대형 광고물들 사이로 백 년이 훌쩍 지난 고딕 성당의 첨탑이 간신히 눈에 들어온다. 1898년, 이 아름다운 연와조 고딕 양식의 성당은 비로소 우리의 역사 속으로 편입되었다. 기록에 의하면 1882년 한미수호조약의 결과로 어느 정도 종교의 자유가 허용되어, 당시 교구장이던 주교 블랑M. J. G. Blanc이 성당 부지로 여기 종현 일대를 매수하여 성당건립을 추진했다고 한다. 1892년 5월에 정초식을 하고, 앞서 약현성당(지금의 중림동성당)을 설계한 바 있는 프랑스 신부 코스트E. J. G. Coste가 설계와 공사 감독을 맡았다. 그런데 당시에는 우리나라에 이러한 서양 건축에 대한 기술자가 없었기에 벽돌공, 미장공, 목수 등을 모두 중국에서 데려와 일을 시켰는데 재정난과 청일전쟁으로 공사가 중단되기도 했다. 그 후 종현 일대에는 가톨릭 관련 시설들이 순차적으로 들어서게 되어 현재는 사제관, 교구청, 계성여고, 수녀원, 가톨릭회관(구 명동성모병원) 등이 본당 주변을 둘러싸는 형태를 가지게 되었다. 이 연재를 위해 factory L의 이홍선 소장, KnL 환경디자인 스튜디오의김용택 소장, 디자인 스튜디오 loci의 박승진 소장 그리고 서울대학교정욱주 교수와 서울시립대학교 김아연 교수 등 다섯 명의 조경가가 의기투합하여 작은 모임을 구성했다. 이들은 새로운 대상지 선정을 위해 무심코 지나치던 작은 공간들을 세밀한 렌즈로 다시 들여다보며, 2014년1월부터 한 달에 한 번씩 유쾌한 답사 모임을 이어가고 있다.
  • 최우수작: 씨실과 날실 낙산공원 재조성
    우리의 도시 무릇 살아 움직이는 것 중에서 고정되고 영원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소중한 문화재가 한 자리에 고정되어 남아있다 해도 주변이 변하기 때문에 도시는 결국 늘 변할 수밖에 없고 우리가 기대어 사는 자연도 성장, 진화, 훼손 등 어떤 형태로든지 변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는 도시를 평가할 때 내적 의미나 가치보다는 외적으로 평가해왔다. 내적인 의미와 가치는 계량화하기 어렵고 가시적이지 않아 이를 효과적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이에게 그렇게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그 결과, 높고 화려한 건물이 가득 찬 도시, 넓은 공원과 온갖 첨단 장비로 무장한 도시를 경쟁력 있는 도시이자 우리가 목표로 하는 도시라고 얘기해왔고 우리는 그것이 정답일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해왔다.하지만 진정 그런 도시가 이상적인 것일까? ‘보이는 것’보다는 ‘사람이 만들어가는 삶’과 ‘오랫동안 만들어온 양식’이 공간에 녹아나며 다양한 것을 포용할 수 있는 곳이 바로 도시가 아닐까. 낙산의 역사와 공원 조성 낙산은 내사산을 따라 축성한 한양도성 좌측 청룡에 해당하는 곳으로 과거에 낙타산, 낙산, 타락산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렸다. 겸재 정선의 ‘동소문도’를 보면 낙산은 소나무와 잣나무 등 상록수가 바위와 어울려 아름다운 곳이었다. 조선 시대 한양도성은 성내와 성외를 나누는 견고한 물리적 경계이자 사회적 신분을 구획하는 곳이었으나 근대에 접어들면서 견고한 도성에 틈이 생기게 되었다.
    • 안스디자인 / 안스디자인
  • 낙산공원 재조성 기본계획(안) 현상설계공모
    서울의 형국을 구성하는 내사산(남산, 인왕산, 북악산, 낙산)의 하나로 소중한 자연 환경과 문화유산을 지니고 있는 낙산에 조성된 낙산공원을 재조성하는 공모전이 지난 7월부터 8월까지 진행되었다. 지난 2002년에 조성되어 시설이 노후화되고 안전성이 취약해진 공원을 주변 지역과 연계하여 상생·협력·소통할 수 있도록 하고 낙산과 한양도성의 역사적 의미를 되살리는 것이 이번 공모전의 주요 과제다. 지난 8월 27일, 공모전의 최우수작으로 안스디자인의 ‘씨실과 날실’이 선정되었다. ‘씨실과 날실’은 낙산, 한양도성 등 역사 공간 및 현황에 대한 연구와 분석을 바탕으로 역사성이 부각될 수 있는 설계를 지향했다.선형으로 넓게 분포한 낙산공원의 공간 형태를 고려해 구역별로 특화해 설계하고 산의 지형적, 지리적 특성을 고려해 각종 시설물을 배치했다. 또한 서울 시내의 조망 명소를 조사하고 주요 공원 방문자의 특성을 고려해 다른 공간과의 차별성을 느낄 수 있으면서도 기존의 낙산공원과 조화롭게 어울리도록 계획했다. 우수작에는 천마이엔씨의 안이 당선되었다. 심사위원들은 최우수작에 대해 “한양도성에 대한 이해와 기본적인 접근 개념이 양호하며 과거의 흔적을 살릴 수 있도록 노력했다”고 평가했다. 반면, “공간 계획과 사업 실행 계획은 다소 추상적”이라며 구체적인 보완을 요청했다. _ 편집자 주
    • 조한결
  • 최우수작: 30 + 30 : 시민의 숲, 다양성의 정원 시민의 숲 공원 재조성
    지난 30여 년 동안 하나였던 숲은 세 구역으로 나뉘어져 성장해왔고 각각 현재와 같은 고유의 특성을 갖게 되었다. ‘30 + 30 : 시민의 숲, 다양성의 정원’은 시민의 숲의 또 다른 30년에 주목하여 다음과 같은 다섯가지의 전략을 채택했다. 양재 시민의 숲 구역에는 ‘숲길, 일상의 숲과 발견의 숲’의 전략을 도입하여 숲과 들, 개울과 물가의 초지, 그리고 정원이 이어지는 짧은 길과 평범한 길을 제공한다. 문화예술공원 구역은 ‘은유의 숲, 구조의 숲’을 테마로 한 경관 식재 기법을 통해 예술과의 조화를 추구한다. 메모리얼 숲 구역은 ‘조용한 경관, 묵상의 숲’의 분위기를 제공하기 위해 동선체계와 숲의 구조를 조정하여 번잡함이 느껴지지 않도록 한다. 이와 함께 대상지 전체적으로는 공원에 대한 인위적 스토리텔링을 배제하고 시민의 숲만의 이야기를 더해갈 수 있도록 하는 ‘함께하는 숲과 기록하는 숲’ 전략과 사계의 다양성과 생명의 다양성이 공존하는 시민의 숲을 목표로 하는 ‘숲 틈, 다양성의 정원’ 전략을 도입했다.
    • 지·오 조경기술사사무소 / 지·오 조경기술사사무소
  • 시민의 숲 공원 재조성 기본계획(안) 현상설계공모
    서울시가 주최한 ‘시민의 숲 재조성 기본계획(안) 현상설계공모’의 결과가 지난 2015년 8월 20일 발표되었다. 최우수작(당선작)으로는 지·오 조경기술사사무소가제출한 ‘30 + 30 : 시민의 숲, 다양성의 정원’이 선정되었다. 시민의 숲은 노후화된 공간에 대해 부분적으로 정비를 해오며 조성 초기의 정체성이 훼손되었으며, 생태적 측면과 이용의 측면에서도 개선이 필요한상황이다. 이번 공모전은 시민의 숲만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나아가 새로운 이야기를 생산할 수 있는 소통의 공원으로 재탄생시킬 독창적이고 참신한 공원 재조성 기본계획안을 찾는 것을 목표로 했다. 첫 조성 후30여년이 지난 시민의 숲의 다음 30년의 비전을 제시하고자 한 당선작은 대상지의 자연·인문·사회적 환경을 바탕으로 한 스토리텔링과 테마를 부여했다는 점과기존 수림의 기능을 최적화하기 위한 소극적·단계적관리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_ 편집자 주 ※ 우수작은 선정하지 않았음을 밝힙니다.
    • 양다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