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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스코 홈플러스 아카데미 TESCO Homeplus Academy
    무의도는 영종도가 손에 잡힐 듯 서해의 너른 바다를 사이에 두고 섬의 모양이 장수가 관복을 입고 춤추는 모습을 닮았다 하여 이름 붙여진 곳이다. 이러한 무의도의 동쪽 언덕에 자리 잡은 ‘테스코 홈플러스 아카데미(이하 테스코 아카데미)’는 홈플러스 그룹이 글로벌 기업인 영국 테스코와 함께 영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 세운 첫 아카데미다. 테스코는 직원들의 자아 개발과 리더십 교육을 제공하고 인적 교류와 구성원 모두를 위한 재충전의 기회를 부여하고자 친환경적인 연수원을 이곳에 조성했다. 아카데미는 대지 면적 59,303m2(약 17,900평), 연면적 16,020m2(약 4,800평) 규모에 총 22개의 강의장과 87개의 숙소, 도서관과 비즈니스센터, 실내외 복합공연장, 피트니스 센터 등 생활 레저 시설을 두루 갖추고 있다. 공간의 얼개 아카데미의 건축적 개념을 수용하여 크게 세 개의 얼개로 외부 공간의 설계 콘셉트를 정리했다. 첫째는 교육 프로그램 활성화를 위해 야외 공간과 교육 공간이 어우러지는 외부 공간 계획Build a winning team이고, 둘째는 교류와 활동을 통해 협동심과 단결력을 고취하기 위한 다양한 야외 활동 공간의 창출Build a relationship, 세 번째는 아름다운 경관을 활용하여 정신적·물리적 재충전을 돕는 편안하고 즐거운 휴식 공간을 마련Build a good health하는 것이다. 바다의 품으로 맞이하다Welcome Plaza 대양을 항해하는 듯 파도치는 바다를 향해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크루즈 모양의 아카데미 건물이 웅변해주는 것처럼, 대상지가 가진 가장 큰 매력은 손만 뻗으면 닿을 듯이 가까운 바다와 갯벌이다. 진입 광장에 들어서면 오대양 육대주를 상징하는 석재 조형물을 지나 타원형의 캐노피가 나타난다. 처음 이곳을 찾는 방문객은 자연스레 이 캐노피에 이끌리게 되고 하늘로 뚫린 둥근 창 아래서 시원한 수평선을 바라보며 비로소 일상에서 벗어난 ‘자연 속의 나’를 발견하게 된다.물 흐르듯 디자인된 캐노피 하부의 데크 라인은 마치겹겹이 밀려오는 파도의 결과 같다. 샘솟는 물에 마음을 정화하다Spring Garden 테스코 아카데미는 국내뿐 아니라 아시아를 비롯한 전세계의 테스코 직원들을 위한 연수원이다. 해외에서 이곳까지 오는 긴 여정에서 방문객들은 설렘과 기대를 안고 일상의 탈출을 꿈꾸며 이곳에 도착하게 될 것이다. 그들이 연수 프로그램을 시작하기 전에 잠깐 동안끊임없이 솟아오르는 샘물을 보며 정화의 시간을 가지도록 했다. 발원지의 원시성을 상징하듯 짙은 흑색의 반석에서 샘물이 솟고 작은 시내가 되어 대지를 적시고 폭포가 되어 거칠게 심호흡을 하고 바다로 흘러간다. 물의 여정을 함축적으로 묘사하여 자연 속에서 마음을 정화할 수 있는 작고 상징적인 공간을 연출했다. 조경설계 그룹한 어소시에이트 조경시공 장원조경 건축설계 시아플랜 건축시공 삼성물산 발주 테스코 홈플러스 그룹 위치 인천광역시 중구 무의동 대지면적 59,303m2 완공 2011. 7. 그룹한(대표 박명권)은 1994년 창립 이래, 경제 발전의 피로에 찌든 도시인에게 자연과 호흡하는 아름다운 삶의 방식을 제시해 왔다. 그룹한의디자인은 삭막한 주거 환경의 한복판에 고향에 대한 향수와 어린 시절의추억, 그리고 자연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가치를 구현해 왔으며, 여유와즐거움이 넘치는 문화 환경을 헌정해 왔다.
    • 박명권 / 그룹한
  • [비평] 9회 말 구원 투수의 딜레마
    여느 수도권의 교외와 마찬가지였다. 길 양옆으로 즐비한 짝퉁 르네상스 양식의 모텔, 빅토리아풍의 펜션, 촌스러운 대형 폰트로 붕어찜과 매운탕을 광고하는 원색의 요란한 간판들…. 그 어지러운 풍경에 눈이 쉬이 피로해지지만 그럼에도 양평으로 가는 길은 여전히 푸르렀다. 차창 밖으로는 굽이굽이 산과 강이 근경, 중경, 원경으로 계속 펼쳐졌다. 양평은 분명히 녹시율이 높다. 국내 최초의 ‘치유의 숲’이 들어설 만큼 산림 자원이 풍부하다. 한마디로 양평은 일상 탈출을 꿈꾸는 자의 안식처다. 서울 시민에게는 한 시간 안팎을 투자하면 고밀도 회색 도시에서 벗어나 풀과 흙 내음이 가득한 전원의 여유를 느낄 수 있는, 경제학적으로 말하자면 시간과 비용의 투자에 비해 꽤 큰 만족감을 얻을 수 있는 최적의 입지인 셈이다. 그래서인지 양평에는 전원주택, 레저 시설뿐만 아니라 기업의 연수원도 많이 자리 잡고 있다. 산 좋고 물 맑은 서울 교외에서 업무에 지친 직장인들에게 리프레시와 함께 각종 세미나와 워크숍을 진행하는 데는 안성맞춤이다. ‘Healing in Nature’라는 슬로건을 내세우고 있는 현대 블룸비스타 또한 그런 목적으로 계획된 기업 연수 전문 리조트(시공 중에 호텔로 변경)다. 마무리 투수와 조경가의 상관관계 흥미롭게도 블룸비스타의 건물은 여타의 리조트 같이 생기지 않았다. 오히려 남영동 대공분실의 외관을 설계 모티브로 삼은 듯한 무채색의 차갑고 각진 도심 속 오피스 건물의 모습을 하고 있다. 십 몇 층의 날카로운 매스가 남한강을 향해 쌍둥이처럼 서 있는 모습은 전원 풍경을 기대하며 도시를 떠났던 사람들에게는 뜻밖의 정경일 것이다. 게다가 가파른 기울기의 경사로 이루어진 땅에 지하 주차장을 끼워 넣고 그 자락에 건물과 시설을 앉히다 보니 수직의 높은 콘크리트 벽과 지하 주차장의 입구가 무엇보다 도드라지는데, 이 또한 사람들이 양평에서 기대하는 ‘양평’의 모습은 아님이 틀림없다. 왠지 첨단화된 신도시에서 볼 수 있는 오피스 건물 같기도 하고 최신식 아파트 단지의 입구 같기도 하다. 어쨌든 여기까지 와서 반가울 만한 얼굴은 아니다. 탈도시 아니 탈서울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다지 성공적이라고 보기 어려울 만큼 세련된 도회지풍의 분위기를 내뿜기 때문이다. 즉, 건축적 측면에서 블룸비스타는 ‘양평’하면 으레 연상되는 탈서울적 체험을 충분히 만족시키지도 못하고, 또 강렬하게 전달하지도 않는다. 외부 환경과 건축물의 조화를 통해 전체 경관의 완성도를 높여야만 하는 조경가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것만큼 어려운 과제도 없을 게다. 건축가로부터 구체적인 작업을 위해 캔버스를 넘겨받을 때 왠지 억울한 심정까지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젠장, 또 9회 말 구원 투수구나… 어떤 구속과 구질로 극적인 역전승을 이끌어내야 하나 고민스러울 만한 상황이다. 고심 끝에 찾은 해법이 바로 외부 공간의 ‘대비’와 ‘중재’다. 양평의 자연성을 극대화시켜 경험하게 하는 것과 동시에 건물의 인공미를 순화시키는 전략이었다. 전략과 전술에 관하여 먼저 대비를 위해서 크게 두 가지 다른 이미지의 공간을 엮었다. 이 두 가지는 다름 아닌 건물과 직접 맞닿아 있는 모던한 공간과 산과 이어진 자연적인 공간이다. 특별한 전이의 장치 없이 병치되어 연결된 이들 공간은 각 개별 공간의 체험을 더욱 강렬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예를 들어, 원래는 수영장으로 조성될 예정이 었던 건물에 접한 남서측 인공 지반의 공간은 도시적인 형태와 소재의 데크와 수경 시설로 이루어진 다목적 이벤트 공간이다. 반듯하게 잘 짜인 건축적인 벽으로 구획된 중정의 모습을 지닌 이 공간은 사실 서울 시내 고급 레스토랑의 앞마당과 같은 느낌이다. 특히, 야외 강연 등의 행사를 수용하기 위해 조성된 계단식 스탠드에서 느껴지는 세련된 조형미와 깔끔하게 다듬어진 재료의 물성은 - 비록 시점의 끝에는 자연스러운 배경으로 연출된 소나무 군식이 있을지라도 - 이곳이 산과 강으로 둘러싸인 ‘양평’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게끔 한다. 그런데 그 현대적인 스타일의 벽과 계단을 넘어가면 바로 산자락의 지형이 그대로 남아있는 소담한 수목원 형태의 후원을 만나게 되는데, 이러한 대비가 전해주는 느낌은 사뭇 강렬하다. 특히 그 ‘낭만의 공간’과도 같은 산책로를 걷다 보면, 사시사철 변하는 숲의 자연성이 이전의 정형성과 대비가 되어 더욱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뭐니 뭐니 해도 이런 이분법적인 이미지를 중재하는 가장 지배적인 조경 요소는 물이다. 조경 소재로서 물은 특별한 힘을 지녔다. 정靜과 동動, 규칙과 불규칙, 빛과 그림자 등 상반되는 특성이 함께 내재되어 있는 물은 아무리 정형적인 형태의 수반에 갇혀 있어도 잔잔한 움직임과 소리를 만들어내며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우리 마음을 편안하게 만드는 자연을 만나게 한다. 민병욱은 1975년생으로, 경희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환경대학원과 네덜란드 바허닝헨 대학교(Wageningen University)에서 조경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미국 애리조나 주립대학(ArizonaState University)에서 환경설계 및 계획에 관련된 이론으로 박사 학위를받으면서 학제간 교육과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동심원과 오이코스등에서 다양한 조경 및 도시 관련 실무 프로젝트를 수행한 바 있다. 얼마전까지 계명대학교 생태조경학과에서 교수로 지냈고, 현재는 경희대학교환경조경디자인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 블룸비스타 The Bloomvista
    콘도에서 연수원으로 기본설계와 설계변경 처음 이곳은 콘도 시설로 계획되어 건물과 외부 공간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후 이런 저런 사정으로 발주처의 직원들을 위한 연수 시설의 성격이 가미되었다. 이 시점에 우리는 조경 계획을 맡게 되었다. 시설의 목적이 변경되면서, 야외수영장으로 단일하게 계획되어 있던 기존 외부 공간의 변경이 필요했다. 이미 건물과 외부 구조물은 어느 정도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어서 설계안의 결정이 시급한 상황이었다. 설계 시 주로 고민했던 부분은 콘도와 연수원, 서로 상충될 수도 있는 이 두 가지 기능을 외부 공간에서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였다. 고급스러움과 다소 사적인 공간이 보장되어야 하는 콘도와 다수를 위한 연수원의 성격을동시에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공간의 기능과 커뮤니티의 성격ㆍ규모, 그리고 그에 따른 경관이 상황에 맞게 탄력적이어야 했다. 다양한 목적과 규모의 활동을 위한 계획 건물의 성격이 변하기 전 외부의 주 공간은 야외수영장이었다. 유아와 성인을 위해 사각형과 원형의 야외수영장이 인접해 있었고 그 주위로 경사 지형을 활용한 계단식 테라스에 선베드와 자쿠지 등 수영장의 부대 공간이 배치되어 있었다.반면 연수원은 큰 규모의 인원을 수용하고 조직의 단합을 비롯한 다양한 목적의 활동을 소화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므로 중심에 위치한 원형 수영장은 비워두기로 했다. 사람들이 모일 수 있도록 원형 스탠드를 두르고 가운데는 한여름 밤 소규모 공연도 가능한 콘서트 무대로 계획했다. 주변으로 물을 둘러 마치 물위에 떠있는 광장을 연출하고 싶었으나 실제로는 경계부의 수로 폭이 너무 좁게 시공되어 그러한 분위기는 다소 부족해 보인다. 계획의 의도를 실시설계 시 좀 더 정확하게 전달했다면 잘 구현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커뮤니케이션이 부족했다고 느껴지는 순간이다. 일반 이용객을 위해서 시선을 끌 수 있고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바닥 분수를 계획했는데 관리상의 이유로 없어진 것은 아쉽게 느껴진다. 선베드 테라스는 중앙 공연장의 추가적인 객석이 되거나 직원 연수 시 많은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는 스탠드가 된다. 비정형적으로 계획된 패턴은 개인부터 단체까지 커뮤니티에 따라 다양한 규모의 공간 활용이 가능하다. 많은 인원이 줄지어 앉게 되는 답답함을 피하고 ‘야외’가 제공할 수 있는 여유와 빈틈을 주기 위함이며 소규모 그룹 단위의 이용도 고려했다. 큰 경관, 작은 경관 대상지에는 크게 두 개의 경관축이 있다. 하나는 대상지 내부에서 남한강을 바라보는 축이고, 다른 하나는 건물 내 카페테리아에서 수영장을 조망하는 축이다. 이 두 경관축은 원형 광장에서 교차한다. 대상지 앞을 흐르는 남한강을 조망할 수 있다는 점은 이곳의 가장 큰 매력이다. 주변은 산으로 둘러싸여 별다른 시설이 눈에 띄지 않는다. 외부의 계단형 테라스는 남한강변의 멋진 경관을 조망할 수 있는 훌륭한 장소이지만 야외수영장이라는 장소적 특수성으로 내외부의 공간이 분리되어 있었다. 우선 남한강으로의 조망을 가로막는 폐쇄적인 수영장의 벽들을 어떻게든 열어야 했다. 시선을 방해하는 반원형의 벽체를 절개하여 열었으며 주변 구조물들의 높이도 전반적으로 낮췄다. 계단식 테라스에서는 소나무숲 사이로 남한강을조망할 수 있으며 내부에서 외부의 자연 경관까지 이어지는 시원한 개방감을 확보했다. 평지가 아닌 탓에 계속 시야에 들어오는 회색 구조물의 입면은 경관적으로 부담이다. 대상지를 방문했을 때 눈길을 끄는 것은 육중한 건물의 매스와 인근에 가식해놓은 흰색 자작나무 줄기의 강한 대비였으며 설계 시 이 점을 활용하고자 했다. 하지만 일부만 반영되었고, 이와 별도로 시공 과정에서 선택된 개비온의 입면은 무채색의 무거운 건축입면을 잘 받아내고 대상지 전체에 통일감을 주고 있다. 아니 오히려 자작나무보다는 좋은 선택이었던 듯하다. 건축의 매스가 너무 육중하여 얇고 가벼운 자작나무와 대비시키기 무리였을 듯하다. 건물에서 외부를 바라보면 주차장에서 올라오는 경사로를 따라 조성된 옹벽과 터널의 거대한 벽면과 마주하게 된다. 옹벽은 건물 1층 마감에 사용된 개비온을활용하여 통일감을 주었고 터널의 벽면은 장소를 상징할 수 있는 벽천으로 계획하여 시선을 집중시켰다. 벽천은 규모가 크고 수직의 입면임에도 디테일이 잘 풀려 물이 흩날리지 않고 물의 양에 따라 다양한 연출이 가능하다. 마약 같은 설계 처음 사진으로 받아본 완성된 모습은 꽤나 만족스러웠다. 설계의 디테일을 풀어내기 위해 실시설계와 시공코디네이터를 맡았던 노동균 과장이 고생을 했을 것이라 여겨진다. 생각했던 공간의 이미지와 실제 시공된 현장의 괴리가 크지 않아 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그동안 계획 중심의 페이퍼 디자인을 주로 진행했던 탓에 현장을 완성하고 확인할 수 있는 기쁨을 누릴 기회가 별로 없었다. 작은 공간감과 디테일을 고민해 볼 수 있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조경설계 그룹한 어소시에이트 조경시공 환경그룹 자연누리 건축설계 H.A.M 건축사사무소 건축 리노베이션 최작 시공 파라다이스 글로벌 시행 현대종합연수원 위치 경기도 양평군 강하면 전수리 1235 대지면적 31,585.00m2 조경면적 10,482.41m2 준공 2013. 10. 24. 그룹한(대표 박명권)은 1994년 창립 이래, 경제 발전의 피로에 찌든 도시인에게 자연과 호흡하는 아름다운 삶의 방식을 제시해 왔다. 그룹한의 디자인은 삭막한 주거 환경의 한복판에 고향에 대한 향수와 어린 시절의 추억, 그리고 자연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가치를 구현해 왔으며, 여유와 즐거움이 넘치는 문화 환경을 헌정해 왔다. 김기천은 1977년생으로 2002년 그룹한에 입사하여 현재까지 재직 중이다. 2007년 행정중심복합도시 국제 공모전 이후 현재까지 국내외 주요 설계공모를 진행하고 있다. 주요 작업으로는 서울대공원 재조성 국제 공모, 시흥 군자 배곧신도시 수변공원 공모, Brunei Sungai Kedayan Eco-CorridorArtist Impression 국제 공모 등이 있다. 노동균은 1980년생으로 경원대학교(현 가천대학교)에서 조경을 전공했고 씨토포스를 거쳐 그룹한에입사하여 9년째 근무하고 있으며, 현재는 계획본부에서 책임디자이너로일하고 있다.
    • 김기천, 노동균 / 그룹한
  • 홍티문화공원 Hongti Culture Park
    홍티둔벙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며 ‘도시공원 예술로 부산 홍티둔벙 프로젝트’라는 다소긴 이름을 가지고 있는 이 공공예술 프로젝트는 공원이라는 장소를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예술가들의 작품을 체험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대지는 부산광역시 사하구의 장림공단 내에 있다. 장림공단은 서부산 지역의 최대 공단인 사상공단과 사하공단에 걸쳐 있는 한 부분이다. 이 공단 내에 공원 부지가 공터로 남겨져 있었다. 앞으로는 낙동강 하구의 홍티포구와 인접해 있고, 뒤쪽으로는 아미산이 배경으로 펼쳐져 있다. 아미산에 올라가면 강과 바다가 만나는 낙동강 하구의 퇴적된 모래톱과 철새, 낙조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경을 한 눈에 볼 수 있다.공주, 함양, 계룡에서 진행되었던 ‘도시공원 예술로’ 프로젝트가 기존의 공원에서 예술 행위를 기획하고 작품들을 전시했다면, 부산의 경우는 달랐다. 공원 부지는 체육공원으로 인가만 나 있었을 뿐, 실상 인근 공장들의 화물 적치장으로 방치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 이전에는 부재했던 장소의 정체성을 만드는 것이 프로젝트의 주요 목표가 되었다. 공단 근로자들이 쉬고 체육 활동을 할 수 있는 일반적인 공원이라기보다는, 당시 공사 중이던 홍티아트센터를 중심으로 다양한 문화 예술활동을 펼칠 수 있는 예술 플랫폼을 제안했다. 프로젝트의 제목은 ‘사구둔벙’이라는 간단한 이름이었는데, 낙동강 하구의 아름다운 모래톱의 이미지를 어떻게 사람들이 땅의 예술을 통해 경험하게 할 수 있을 까 하는 상상에서 출발한 것이다. ‘사구’란 모래언덕을 뜻하고, 둔벙은 예전에 농사를 짓기 위해 물을 가두어두었던 물웅덩이를 지칭한다. 여기서는 모래언덕을 가두고 있는 사각형의 공간이 된다. 그리고 그 사각형의 공간들 사이에 ‘두렁길’을 두어 사람들이 모래 공간을 여기저기 누빌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공원을 조성하는 것이 본래 의도였던 부산시 및 사하구와 몇 번에 걸친 협의 끝에 사구둔벙의 개념은 잔디와 나무에 둘러싸인 공원의 모습으로 점차 변화되었다. 기획자와 부산시가 프로젝트의 본래 취지나 행정 사항, 실행 방법을 두고 사사건건 대립하다 보니, 실행과정에서 정작 현재 주민의 삶을 찬찬히 관찰하고 그것들을 공공예술의 영역으로 흡수하려는 노력이 많이 미흡했다. 올 봄에 프로젝트를 보러 부산에 내려간 평론가들의 일침도 기껏 예쁘게 만든 장소에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계절이 바뀌면서 다행히 공원 곳곳에 녹음이 우거지고, 근처의 노동자들이 일과 중 휴식을 취하기 위해 두렁길을 어슬렁거리기도 한다. 손몽주 작가의 ‘바람의 드로잉’에는 공단 근로자들과 워크숍을 한 결과물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지난 늦가을에는 인근 다대포에 거주하는 작가들이 부산문화재단과 함께 ‘SAHA 沙下’전을 시작했다. 크지는 않지만 작은 움직임들이 좀 더 활발하게 홍티둔벙을 채우고 있다. 고립된 입지이기에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기까지는 시간이 좀 더 걸리겠지만, 홍티아트센터가 홍티둔벙을 앞마당처럼 잘 사용하여, 이 프로젝트의 결과는 성공적일 것이라는 기대가 생겼다. 건축가의 시각을 가진 기획자의 장점은 땅의 가능성을 잘 살리는 것이 아닐까 싶다. 기획자로서 이리저리 이끌려 다니며 부대끼면서 초기의 의도가 변경된다 하더라도, 건축가라는 ‘종’은 일말의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는다(건축가가 뛰어난 ‘종’이라서가 아니라, 건축 프로젝트가 건축가를 단련시킨다). 여기서의 가능성은 낙동강 하구의 자연생태계, 아미산 전망대와 이어지는 산책로, 이전에 이 일대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아트팩토리인 다대포의 작가들 그리고 홍티아트센터다. 이 프로젝트는 부산 ‘홍티문화공원’의 공사가 끝나서 완성된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기획 장영철·전숙희(와이즈 건축) 조경설계 윤성융(서호엔지니어링) 자문 강영조(동아대학교 조경학과) 시공 대덕조경 예산지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부산광역시 위치 부산광역시 사하구 다대동 1608번지 대지면적 6,787.1m2 건축면적 754.84m2 작품설치면적 5,700m2 완공 2014 장영철은 홍익대학교를 졸업하고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캠퍼스에서 수학했다. 이로재, 스티븐 홀 아키텍츠(Steven Holl Architects), 라파엘 비뇰리 아키텍츠(Rafael Vinoly Architects)에서 실무를 하고, 현재는 전숙희와 함께 와이즈 건축을 운영하고 있다. 파주 출판단지 마스터플랜 디자인 가이드라인 매뉴얼 작성, 링크드 하이브리드(LinkedHybrid in Beijing), 브루클린 어린이 박물관(Brooklyn Chidren’sMuseum in New York) 등의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전숙희는 이화여자대학교를 졸업하고 프린스턴 대학교(Princeton University)에서 수학했다. 이로재, 과스메이 시겔 앤 어소시에이츠 아키텍츠(GwathmeySiegel & Associates Architects)에서 실무를 하고, 현재는 장영철과 함께 와이즈 건축을 운영하고 있다. 웰콤사옥, 3 Trees House, 에반스 레지던스(Evans Residence), 마이애미 현대미술관(Museum ofContemporary Art in Miami) 등에 참여했다. 윤성융은 1975년생으로, 동아대학교에서 조경을 공부하고 우대기술단조경사업부에서 실무를 시작했다. 중국 베이징 공업대학교 건축도시대학원에서 건축학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디알에이디자인그룹 베이징사무소를 시작으로 설계사무소를 설립해 현재는 서호엔지니어링의 대표로 베이징, 서울, 부산에 사무실을 열고 활동하고 있다. 이후 동아대학교에서조경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동 대학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중국 탕산테마파크, 충칭 선녀산 테마파크, 베이징 삼성타워 등의 프로젝트를 수행했고, 한국을 비롯한 해외 각지의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조경을 통한 도시재생 프로젝트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 장영철·전숙희, 윤성융 / 와이즈 건축 + 서호엔지니어링
  • 포 하버 루프 파크 Four Harbour Roof Park
    포 하버 루프 파크는 로테르담 시내 중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포 하버Four Harbours’라 불리는 길쭉한 띠 형태의 완충 지대를 개발한 공원이다. 이 프로젝트에서 주어진 임무는 85,000m2의 면적 내에서 오피스, 상업, 교육 시설을 시민 공원 및 제방과 통합하여 개발하는 것이었다. 이 개발은 로테르담의 가장 중요한 도로 중 하나인 ‘파크 레인Park Lane’을 따라 새로운 랜드마크를 만들고 항구가 도시로 변화하는 데 촉매제와 같은 역할을 할 것이다. 게다가 주변에 위치한 보스폴더Bospolder 근린주구는 녹지가 부족했던 터라 공원이 조성되어 환경의 질이 향상되었다. 옥상 공원은 복합적인 지형을 이용해 다양한 용도의 공간을 집중적으로 형성한 사례다. 고도 제한, 안전 문제, 좁은 형태의 지형, 기후 조건, 공사 관련 요구 사항 등 많은 제약 조건을 극복하면서도 접근이 자유로운 녹색 공원을 만드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최종 목표였다. 포 하버 루프 파크는 주변 환경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옥상 공원은 아래쪽에 자리한 제방과 상업 시설로 인해 완만한 계단식의 흥미로운 지형을 가지고 있다. 공원의 동쪽과 서쪽 부근은 서로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다. 공원의 동쪽 면은 지상 8m 높이로 상업 시설 위에 위치하며, 반대쪽은 두 단으로 나뉘어 인근 주거 지역과 연결된다. 상업 시설의 위에 위치한 동쪽 구역은 도시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반면, 반대쪽은 키가 큰 나무를 식재해 자연적인 분위기를 형성했다. 공원의 정문은 보스폴더 주거 지역의 가로 체계와 연계되며 지상 레벨의 가로에서부터 높이 올라간 공원의 가장자리 부근까지 연결하는 길을 형성한다. 공원의 머리와 꼬리 부분에 형성된 계단은 파크 레인과 연결되어 항구 지역을 새롭게 바꾸고 있다. 선형의 길과경사지는 주변 지역에서 옥상 공원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며, 공원의 높은 곳에서부터 낮은 곳까지 계속 이어지는 중심축은 다양한 공원 요소를 연결시키는 역할을 한다. Landscape Architect Buro Sant en Co Architect Butzelaar CS Client Municipality of Rotterdam Location Rotterdam, Netherlands Area 85,000m2 Completion 2014 Photographs Buro Sant en Co, Stijn Brakkee 뷰로 상트 앤 코(Buro Sant en Co)는 1990년 모니크 데 베테(Moniquede Vette)와 에드윈 산타젠스(Edwin Santhagens)가 설립한 조경설계사무소다. 도시 경관 프로젝트를 전문 영역으로 삼고 다양한 유형의프로젝트를 수행해왔다. 뷰로 상트 앤 코는 프로젝트가 갖고 있는 각각의 문제에 대해 물리적·사회적 맥락과 클라이언트의 요구를 고려해 고유의 설계 해법을 제공한다.
    • Buro Sant en Co / Buro Sant en Co
  • 하르디네스 델 로스피탈 엔 발렌시아 Jardines del Hospital en Valencia
    한때는 병원 단지였지만 현재 발렌시아의 주요 도서관으로 이용되고 있는 ‘발렌시아 공공 도서관Public Library of Valencia’의 기존 정원을 재정비하는 이 프로젝트의 가장 큰 목표는 정원 전체 구역을 통합적으로 구성하는 것이다. 이 정원은 무려 15세기 초에 세워진스페인의 주요 종합 병원 단지 중 한 곳이었던 오스피탈 데 로스 포브레스 이노센테스Hospital de los Pobres Inocentes가 1974년 철거된 자리에 조성되었다. 병원단지가 철거된 자리에는 병원 건물의 익랑transept(현재는 공공 도서관으로 이용), 병원 경내 예배당Capitulet, 15세기 초 병원에 연결되어 있던 16~18세기의 작은 산타루치아 성당Chapel of Santa Lucia만이 남아 있었다. 기존 정원은 보행로보다 약간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철거되지 않은 병원 건물의 판석과 맞닿아있었다. 정원에 식재된 서로 다른 종의 나무와 곳곳에 산재한 고고학적 유산이 장소의 개성을 보여주고 기하학적 형태의 흙길이 외부와 정원의 경계를 표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 정원의 보존 상태가 악화되고 정원 주변에 일러스트 박물관Museum of Illustration이 세워짐에 따라 정원에 전반적인 개선 작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되었다. 정원의 개선 작업 과정에서는 크게 두 가지 사항이 강조되었는데, 먼저 정원을 포함한이 오픈스페이스가 오래된 병원 건물이 철거된 장소라는 점과 현재 남아있는 건물들도 철거된 병원 건물의 일부분이라는 점이다. 먼저 한 가지 재료를 사용하여 바닥을 그리드 형태로 조직하면서 정원 개선 작업을 시작했다. 작은 현무암 조각으로 만든 바닥 포장재가 일종의 태피스트리tapestry처럼 기하학 형태로 배치되었으며 정원의 중심축을 구성한다. 정원의 선큰 구역 역시 바닥을 잔디 등으로 덮지 않고 태피스트리 카펫으로 포장했다. 이곳은 오렌지나무 광장으로 꾸며지며 정원 전체에 산재해있던 고고학적 유산을 모두 수용할 수 있는 안전한 구역으로 이용된다. Architect Guillermo Vázquez Consuegra(documentation &direction of works) Technical Architect Marcos Vázquez Consuegra, Javier Estelles Collaborator Romeck Kruszewski, Gabriel Verd, Pedro Lara yAlberto Altini, Kristian Solaun y Elena Vilches(documentation)Juan José Baena, Teresa Galí(direction of works) Structure Eduardo Martínez Moya(Edartec Consultores) Service Insur-JG, S.L. Contractor Midascon(1st phase), Comsa-Elecnor(2nd phase) Client Diputación de Valencia(1st phase), Conselleria d’obresPubliques, Urbanisme i Transports -Generalitat Valenciana(2ndphase) Location Valencia, Spain Area 26,320 m2(1st phase: 8,720m2, 2nd phase: 17,600m2) Total Cost 4,857,131€ Documentation 1999(1st Phase), 2006(2nd Phase) Construction 2001(1st Phase), 2009~2013(2nd Phase) Photographs Alfonso Legaz, David Frutos, David Zarzoso, Guillermo Vázquez Consuegra arquitecto 길레르모 바스케스 콘수에그라(Guillermo Vázquez Consuegra)는1972년 세비아 대학교 건축대학(School of Architecture of Seville)을졸업하고 길레르모 바스케스 콘수에그라 아키텍토를 운영하면서 동 대학교에서 1987년까지 교수로 재직했다. 2005년에는 세비아 대학교의명예교수로 추대되었다. 베니스 비엔날레(1980, 2004), 밀라노 트리엔날레(1988) 등의 국제 행사에 참가했으며 퐁피두 센터(1990), 시카고 미술관(1992), MoMA(2006) 등에서 작품을 전시했다. 2014년 미국건축가협회(The American Institute of Architects, AIA) 명예펠로(honoraryfellow)로 추대되었다.
    • Guillermo Vázquez Consuegra arquitecto / Guillermo Vázquez Consuegra arquitecto
  • [칼럼] 잡지를 만드는 어떤 방식
    아는 사람은 아는, 『연필 깎기의 정석』이라는 책이있다. 뉴욕에서 활동하는 만화가이면서 연필 깎기의 장인을 자처하는 데이비드 리스가 쓴 책이다. 내용은 제목 그대로다. 어떻게 연필을 ‘날카롭게’잘 깎을 것인가! 주머니 칼, 외날 휴대용 연필깎이, 다구형 휴대용 연필깎이, 이중날 회전식 연필깎이 등 다양한 도구를 이용해 연필 깎는 방법을 소개하는데, 완독은 달랑 2시간이면 충분하다. 작가는 “닳아서 뭉툭해진 연필 촉을 깎는 것은 그만의 독특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쉽게 비유하자면 보석을 닦아서 더 반질반질 윤이 나고 원래의 완벽한 형태가더 잘 드러나도록 하는 일과 비슷하다”며 연필 깎는 행위에 콧기름을 바른다. “인간이 만든 이 단순한 물건(연필)은 개인의 권능을 배가시킨다”고 어느 공학 칼럼니스트가 말했다지만, 그래봤자 하찮은 연필 깎기 따위가 뭐라고. 하지만 천성이 ‘호갱’과라 책을 읽은 뒤 한동안 연필 깎는 재미에 빠졌다. 솔직히 말하면 다양한 형태의 연필깎이 모으는 재미를 누린 거지만. 얼마 전 우연히 인사를 나눈 한 건축가가 이런 질문을 던졌다. “어떤 잡지를 만들고 싶으세요” 우물쭈물하다 던진 엉성하고 짧은 답이 이랬다. “혹시 『연필 깎기의 정석』이란 책 보셨나요? 어떤 잡지를 만들고 싶다기보다, 그런 방법으로 잡지를 만들고 싶습니다.” 이 덜 떨어진 이상주의. 절지류 더듬이만큼 감각을 가동해도 생존할까 말까인 게 흔히 말하는 상업 잡지의 숙명인데, 한가롭게 연필심이나 다듬는 스탠스를 입에 올리다니. 맞다. 한 달단위의 상업 매거진을 경쟁력 있는 상품으로 꾸미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실시간으로 전개되는 엔터테인먼트 소식을 부모님 안부 묻듯 챙겨야 하고, 유명 해외 도시 통신원을 써서라도 인구 서베이하듯 글로벌 라이프스타일 트렌드를 확인해야 하고, 브랜드들의 제품 프레젠테이션 행사에 쉼 없이 출석 도장을 찍어야 하고, 시즌마다 열리는 패션 컬렉션에 기자를 보내 두 계절 앞선 스타일 동향을 곳간에 쌓아둬야 안심이 될까 말까다. 노출 빈도가 빈번해진 배우 차승원과 최지우가 같은 소속사에 몸담고 있다는 디테일은 기본, 요즘 트렌드의 최고봉인 ‘먹방’ 프로그램에 등장한 셰프 몇몇과 안면 정도는 트고 있어야 기자들과의 기획회의에서 말발이 선다. 직접 라임을 타진 못해도, ‘언프리티 랩스타’ 파이널 라운드에 치타와 제시와 육지담이 올랐고 최종 우승은 치타의 차지였다는 걸 줄줄 꿰고 있으면 반 발자국 앞선 안도를 누릴 수 있다. 정리하면, 상업 잡지의 최전선에서 승리하려면 링 위에 오른 복서처럼 전신의 감각이 팽팽하게 살아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것도 당대의 복서 매니 파퀴아오처럼. 흥미로운 건 이 ‘어마무시’한 각축장에도 역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전문지가 아닌 종합지의 독자는 말 그대로 이동 타깃이다. 연령대와 성별 정도만 거칠게 가를 뿐 나머진 복불복이다. 전문지가 해당 분야의 선도적 담론 앵글에 전력 투구를 한다면, 종합지는 다양한 길 앞에서 서성거리는 운명을 타고 난 셈이다. 매 호마다 빠지지 않는 고명 같은 기사 소스가 연예인인 건 그 때문이다. 아무리 둘러봐도 이만한 만인의 관심사는 없으니까. 상업지의 꽃이라 불리는 여성 패션지 발행일 직전의 포털사이트에는 각각의 매체가 진행한 연예인 화보가 경쟁하든 디지털 가판에 늘어선다. 아쉬운 건, 한때 ‘기사의 꽃’이라 불렸던 스타 화보의 감도를 좀체 찾을 길 없다는 점이다. 사진에 찍힌 워터 마크를 지우면 이게 어느 매체의 결과물인지 알 방법도 없다. 상업적 경쟁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최전방 공격수로 연예인을 내세웠지만, 골 결정력은 계량되지 않는다. 다른 어느 장르보다 트렌드에 민감해야하는 상업지의 요즘은, (주관을 잔뜩 묻혀 전하면) 그래서 더 재미없다. 회고조로 읊자면, 그래도 얼마 전까지는 매체 각각의 개성이 묻어나던 시절이었다. 필드 위에서 기사 소스를 묻고 찾던 시절이었다. 물론 모두 그런 건 아니지만, 요즘 기사 소스의 베이스 캠프는 포털과 케이블 TV와 SNS인 게 현실이다. 트렌드를 좇는다고 천지 사방을 누볐지만 그게 사실은 모니터 속 포털 화면이거나 리모컨으로 핸들링한 케이블 TV이거나 엄지로 재단한 SNS 세계인것. 역설은 여기서 생겨난다. 누굴 찍어도 흔하고 뻔한 화보로 귀결되듯, 차별적 경쟁을 위해 진행한 기사의 결과 역시 도긴개긴인 것. 그 와중에 세 개의 베이스 캠프에서 조성된 트렌드에선 인공 감미료 맛이 풍긴다. 복기하면 그 획일적 맛을 매체가 각자 취향을 앞세워 따로 느낀다고 생각할 뿐, 아예 트렌드는 존재하지 않았던 게 아닐까. 물론 시장에서의 생존을 위해 연예인과 트렌드라는 두 축을 다루지 않을 도리는 없다. 월간 『인터스텔라』가 아닌 다음에야, 우리 모두는 지구라는 행성에 발붙이고 종이 잡지와 운명을 같이 하는 중이니까. 단지 바람이 있다면 잡지 볼륨의 한 귀퉁이에라도, 연필을 어떻게 깎아야 잘 깎는 것인지 말할 수 있으면 하는 것이다. 두툼한 트렌드 기사와 셀레브리티 화보를 앞세워 많이 팔리는 잡지도 필요하지만, 어디에도 없는 생각을 전하는 한 페이지짜리 기사가 ‘앙꼬’처럼 곳곳에 숨어있는 잡지도 필요한 거 아닐까. 오로지 흥미본위뿐인, 팔리기 위해서라면 도핑도 불사할 것 같은 요즘 상업지 시장에서 딱 낙오될 소리라는 걸 모르는 게 아니다. 잽을 잘 치는 복서가 훅 한 방에 승부를 거는 복서보다 유능하고 매력적이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지 않은가. 문일완은 남성지로 입문해 여성 패션지, 종합지, 현재의 라이프스타일 매거진에 이르기까지 20년 넘게 잡지를 만들고 있다. 경력의 대부분을 남성 라이프스타일을 다루는 일로 채웠지만, 정작 남자들의 본능적 로망으로 불리는 시계, 자동차, 패션 등엔 별 관심이 없다. 김성근 야구와 혼자 영화보기, 그래픽 노블과 르포물을 사들이는 게 최근의 낙이다.
  • [에디토리얼] 조경비평 봄
    ‘조경비평 봄’이 열 번째 봄을 맞았다. 유난히도 추웠던 2005년 이른 봄에 첫 모임을 가졌고, “아, 어서 봄이 왔으면!”이라는 누군가의 탄성에서 모임이름을 땄다. 초창기 문서에 활자로 남아 있는 ‘조경비평 봄’의 지향점은 “조경 비평의 실천 환경 구축, 조경 담론의 생산 기지 조성, 조경 이론과 실천의 연결, 조경과 사회의 상호 개입을 위한 네트워크 조직, 조경 비평의 유통과 저장을 위한 매체 실험”이다. 네 명으로 단출하게 출발했지만, 열 번의 봄을 거치며 이십대 후반부터 오십대 중반에 이르는 여러 세대 스물두 명의 모임으로 성장했다. 고민과 토론의 성과를 모아 『봄, 조경 사회 디자인』(도서출판 조경, 2006), 『봄, 디자인 경쟁시대의 조경』(도서출판 조경, 2008), 『공원을 읽다: 도시 공원을 바라보는 열두 가지 시선들』(나무도시, 2010), 『용산공원: 용산공원 설계 국제공모 출품작 비평』(나무도시, 2013), 네 권의 책을 펴냈다. 우리 조경계에서 비평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기 위한 노력은 비평의 역할을 다룬 몇 편의 글과 논문이 발표된 1990년대 초반에 시작됐다. 그러나 공론장을 통해 초보적이나마 비평이 실험된 것은 1998년의 『Locus』 창간호가 처음이다. “작품의 빈곤, 이론과 비평의 부재 속에서 허덕여 온 한국 조경의 문제를 비평의 장을 통해 해소하며, 현실과 대화하는 조경 비평의 실천 환경을 구축한다”는 선언과 함께 “조경의 대안적 담론 공간”을 자임하며 출간된 『Locus』는 “조경과 비평”이라는 부제를 단 2호(2000년) 이후 아쉽게도 명맥을 이어가지 못했다. 『Locus』가 마주했던 가장 큰 난관은 비평 전문 독립 저널로 자립하기 힘든 여건과 구조였다.『Locus』의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 ‘조경비평 봄’은 지속가능한 비평 환경을 마련하는 데 힘을 쏟았다. 첫 번째 전략은 저널이 아닌 단행본 출판이었다. 비평의 생산을 위한 독립 지면을 확보하여 보다 안정적으로 독자와 소통할 수 있는 방향으로 눈을 돌린 것이다. 그 결과 ‘조경비평 봄’의 이름을 단 네 권의 단행본을 대략 2년 간격으로 선보일 수 있었다. 두 번째 전략은 잠재 인력의 발굴과 신진 인재의 양성을 통해 비평가 풀을 넓히는 것이었다. 초창기 구성원의 추천으로 몇몇 조경 이론·역사학자, 조경가, 언론인이 모임에 동참했고, (때로는 『환경과조경』의 주최와 후원으로, 몇 차례는 자체적으로) 매년 ‘조경비평상’을 열어 젊은 필진을 키우고자 했다. 이 상을 통해 ‘조경비평 봄’에 동승한 신진 비평가가 아홉 명에 이른다. 얼어붙은 출판 시장에 도전하며 네 권의 책을 내는 가시적 성과를 거두긴 했지만 2015년 봄의 ‘조경비평 봄’은 소강 상태를 겪고 있다. 지속가능한 비평활동의 가장 큰 동력이라 할 수 있는 피드백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대상 작가와 독자의 반응은 비평을 성립하게 하는 토대다. 원론적인 이야기이지만, 비평은 ‘창작→작업·작품→경험·감상→비평→창작’이 순환되는 소통의 구조 안에서 작동할 때 의미를 보장받는다. 이 순환 고리의 각 부분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비평은 외마디 외침처럼 공허할 뿐이다. 한국 조경의 현실이 아직 비평을 요청하지 않는 수준에 머물고 있거나 비평을 잉여의 사치 정도로 받아들이기 때문일까. “작가도 없고 작품도 없고 사회적 인정도 없는데 도대체 비평이 어떻게 성립할 수 있고, 그것이 무슨 의미를 지니는가” 비평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한국 조경 비평의 역사가 20년을 훌쩍 넘어선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무반응의 원인을 조경계와 독자의 무관심에서만 찾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 것 같다. 지난 10년간 ‘조경비평 봄’이 주력했던 단행본 중심의 활동이 도리어 비평가와 작가, 비평가와 독자, 비평가와 대중 사이의 활발한 쌍방향 소통을 어렵게 했을 가능성이 크다. 홍수처럼 쏟아지는 공모전과 프로젝트를 해내기에 급급하던 물량주의 조경에 반성을 촉구하고자 했던 『봄, 디자인 경쟁시대의 조경』, 보다 대중적인 시선으로 조경과 사회적 가치의 접촉면을 넓히고자 했던 『공원을 읽다』, 다층적 역사와 의미가 복잡하게 뒤엉킨 한 프로젝트를 심층 조명함으로써 조경의 사회적·정치적 개입을 꾀했던 『용산공원』은 완전히 다른 의도로 기획된 책이었다. 그러나 피드백의 공백, 반응의 진공 상태는 마찬가지였다. ‘조경비평 봄’의 매체 전략에 교정이 필요함을 반증한다. 지난 4월 초에 열린 본지 편집위원 회의에서는 저널리즘과 비평을 주제로 다양한 의견이 오고갔다(이번 호 뒷부분에 짧게 줄여 싣는다). 편집위원들은 비평 대상의 다층화와 비평 형식의 다각화라는 이슈를 놓고 차수를 바꿔가며 새벽까지 논의를 이어갔다. 한 달 내내 『환경과조경』과 ‘비평(가)의 자리’라는 숙제가 머릿속을 떠다닌다. 2014년의 리뉴얼 이후 『환경과조경』은 게재 작품이나 공모전에 대해 적어도 한 달에 한 편 이상의 비평을 싣는 편집 원칙을 지키고 있다. 되도록 외부(의 신진) 필자에게 비평을 청탁하고 있지만 본지 기자가 작품을 읽거나 인터뷰를 진행하는 경우도 있고 동료 조경가가 평문을 쓰거나 대담을 진행하기도 하는 등 다양한 형식을 실험하고 있다. 그러나 ‘조경비평 봄’의 경우와 크게 다를 바 없이 『환경과조경』의 비평에도 작가나 독자의 후속 반응이나 토론이 이어지는 경우는 매우드물다. 비평의 생산뿐만 아니라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플랫폼이 필요함을 절감한다. 이 쉽지 않은 숙제를 함께 풀어갈 신인을 초대한다. 이번 봄에도 『환경과조경』은 ‘조경비평상’을 연다. ‘조경’을 주어로 고민 중인 예비 비평가들에게 조경을 묻고자 한다. 새로운 플랫폼을 만들어갈 ‘조경비평 여름’을 기다리며 ‘조경비평 봄’이 심사를 맡는다. 마감은 7월 1일이다.
  • [CODA] 잃어버린 낙원, 원명원
    낙원paradise은 ‘여기here’가 아닌 ‘또 다른 세계another world’를 의미한다. 지금 내가 발붙인 곳이 아닌 어딘가 다른 곳을 의미하는 낙원이란 말에는 이미 상실의 정서가 내포되어 있다. 그러니 잃어버린 낙원이란, 우리의 상실감을 자극해 ‘낙원’에 대한 그리움을 한층 애틋하게 만든다. 원명원은 중국의 원림 예술이 이미 무르익었던 명·청 원림의 성과를 집대성한 제왕의 궁원이다. 강희제가 ‘최초 원명원’을 옹정제에게 내려준 이래로, 청나라의 전성기인 소위 ‘강건성세’(강희, 옹정, 건륭 134년에 걸친 시기)를 지나 중국이 서구 열강과 충돌하는 도광제, 함풍제 재위기에 이르기까지 원명원은 끊임없이 조영되었다. 청조의 다섯 황제는 500에이커(약 61만 평)가 넘는 땅 위에 100여 개의 전당과 정자가 이루는 ‘낙원’의 풍경을 창조했다. 그러나 원명원은 1860년 영국-프랑스 연합군에 의해 약탈당하고 불살라졌으며, 동치제가 그 일부를 복구했으나 다시 8개국 연합군에 의해 훼손되었다. 중화민국 이래로는 도시화와 현대화에 따른 파괴가 이어졌다. 원명원 약탈은 1970년대 원명원 복원의 움직임이 시작되고서야 비로소 멈추게 된다. 『잃어버린 낙원, 원명원』(도서출판 한숲, 2015)은 지금은 폐허로 남은 원명원을 중국의 원림사와 문화사, 근현대 정치사를 넘나들며 글로 복원하는 흥미로운 책이다. 저자인 왕롱주는 중국에서 태어나 타이완과 미국에서 공부하고 가르치는 역사학자다. 이 책의 초판은 미국에서 영어로 먼저 출간되었고, 이후 타이페이와 중국에서 중국어로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애초에 저자가 영어로 책을 썼다는 것은 다분히 서구의 독자들을 겨냥한 저술 의도가 있었다고 추측하게 한다. 이 책에는 서구 제국주의에 휘말린 원명원의 운명에 슬픔과 분노를 느끼면서도 동시에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를 객관적이고 담담하게 제시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물론 역사적 사실의 선택과 배치에서 우리는 저자의 메시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예를들어 화친이 맺어진 날에도 방화가 여전히 계속되었음을 논증한다거나, 영국-프랑스 연합군이 원명원을 약탈한 것을 정의의 이름으로 비판했던 빅토르 위고가 원명원의 ‘약탈품’을 소장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기술하는 장면에서는 서구의 패권주의와 이중적 태도에 대한 냉소를 느낄 수 있다. 서태후(자희 태후)에 대한 기술도 흥미롭다. 함풍제와 서태후의 유명한 로맨스도 원명원에서 시작된다. 청나라를 40년간 지배했던 그녀는 아편전쟁 이후 파괴된 원명원을 재건하려는 욕망을 억누를 수 없었다. 서태후는 군함을 구매하기 위한 자금을 가로채 청의원 보수를 위한 경비로 충당했다. 물론 그녀가 세계사의 거대한 조류 속에서 중국의 운명을 홀로 바꾸기는 어려웠겠지만, 자신의 향락과 원명원에 대한 애정으로 중국을 더 큰 위험에 빠뜨렸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사의 아이러니는 현재 중국의 대표적인 정원으로 이화원을 남겼다. “크게 보면 이화원은 청의원을 보수한 것이지만, 청의원 본래의 설계를 개선하여 모든 건물과 풍경을 극도로 세밀하게 일치시켜 전체적인 공간의 완전성을 추구했다. 정원의 바위는 예술적으로 쌓아올렸고, 그림 같이 자연스런 배경과 시적 상상력을 자아내는 인공 건축은 정교하게 안배했다. 그것이 지금의 이화원이다.” 원명원을 둘러싼 여러 인물들의 욕망과 일상에 대한 묘사는 지금은 없는 이 낙원에 생생한 숨결을 불어넣는다. 원명원이란 문화 유적을 둘러싼 중국 학계의 논쟁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1980년대 한껏 고양된 애국심은 원명원의 대대적인 복원에 관한 논의를 불러일으켰다. 과연 복원을 해야 하는지부터 복원에 들어가는 천문학적 비용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까지 많은 논란이 있었고 합의를 끌어내기 어려웠다. 그때 왕즈리란 인물이 “원명원의 건축 역사에서 설계의 변동은 늘 있었던 일”이라고 일깨우며, 전체 포국은 유지하면서 “낡은 건축을 현재의 필요에 알맞게 리모델링하는 것을 원칙으로 제시”했다. 시대와 생활에 맞게 설계 변동이 있었던 역사 유적이 비단 원명원뿐은 아니리라. 우리도 파괴되고 훼손된 전통 건축을 복원하는 것이 좋은지, 복원한다면 어떤 시점을 원형으로 삼아 복원하는 것이 좋은지, 또 한 시점의 복원을 위해서라면 이후의 역사적 흔적은 없애는 것이 옳은지 늘 논쟁거리다. 원명원의 복원뿐만 아니라 재현의 문제도 떠올랐다. 중국 저장성에 이번 달 실물크기의 복제 원명원, ‘원명신원圓明新園’이 문을 열 예정이라고 한다. 이 원명신원이 처음 계획될 당시부터 반대했다는 실제 원명원 측은 “원명원은 문화유산 자원으로 유일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복제가 불가능하다”면서 법적 대응도 불사하겠다고 한다.1 원명원을 재현(복제)하려는 시도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97년 홍콩부근의 도시 주하이는 서양루, 구주청안, 방호승경을 모방하여 원명신원을 지었다. 그리고 이 원명신원의 첫해 수입은 1.6억 위안이 넘었다. 이러한 상업적 성공은 새로운 논쟁에 불을 붙였다. “이 제왕 궁원을 완전하게 복원할 수 있는가? 아니면 불가능한가” 복원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역사가나 건축가 할 것 없이 모두현대화 속에서 어떻게 본래 유적을 보호할 수 있을지 의문을 표했다. 『잃어버린 낙원, 원명원』의 저자 왕롱주는 강한 목소리로 말한다. “전통 건축과 원림 공예의 최고 수준의 기술은 이미 알 수 없게 되었다. 비록 자금이 충분하면 언제라도 잃어버린 궁원을 다시 세울 수 있지만, 잃어버린 기예는 다시 되찾을 수 없다.” 저자는 원명원 유적 공원이든 복제 원명원이든 상업주의의 위협에 맞서 완전하게 예술적 품위를 재현할 수 없다면 차라리 지금 상태를 온전히 보존할 것을 주장한다. 그것이 역사가인 저자가 제시하는 역사와 대면하는 진정한 방식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이 도서출판 한숲에서 직접 편집한 첫 번째 단행본이란 의미가 있다. 편집자는 책의 첫 번째 독자다. 지난 몇 달간 원명원이라는 커다란 세계에 한 걸음씩 다가가는 즐거움이 있었다. 반면 끝도 없이 이어지는 건축물과 사람들의 이름에 편집의 속도를 내지 못하기도 하다가, 원명원이 중국의 근현대사와 맞물리는 부분에서는 원명원의 운명 속으로 빠져들면서 서구의 침탈에 함께 분노하기도 했다. 때로는 중국식 한자의 벽 앞에서 좌절(!)을 느끼기도 했지만, 우리에게도 익숙한 문화의 원형을 발견했을 때의 즐거움도 적지 않았다. 그리고 책 한 권을 오래도록(?) 붙잡고 있는 느린 편집자를 진득하게 기다려준 디자이너와 편집장님, 번역자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지금은 한동안 함께 했던 원고를 인쇄소에 보내놓고, 새로운 독자 품으로 보낼 준비를 하고 있다. 마치 잠시 맡아 기르며 정붙인 아이를 입양 보내는 심정이랄까. 부디 두루 사랑받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 [편집자의 서재] 경관의 미래 도구, 디바이스, 그리고 건축적 발명들
    여기 이상한 도구를 뒤집어쓰고 있는 우리의 꼬맹이가 있다. 꼬맹이는 지금 굉장한(?)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 오른손에 설치된 카메라는 개미의 시선에서 바라본 세상을 촬영하고 있으며, 왼손의 카메라는 지면의 풀과 나뭇잎, 작은 모래알 등을 촬영한다. 이 모든 이미지가 한 화면으로 조합되고 꼬맹이의 머리를 덮고 있는 빨간 헬멧으로 전송된다. 조금 전 꼬맹이의 손은 1cm 남짓 움직였지만,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마치 10m를 이동한 것 같다. 굉장히 느린 걸까, 굉장히 빠른 걸까(그림1). 눈속임에 불과할지 모르는 이러한 ‘인지력 확장 기술’이 다음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할 수 있을까? “랜드스케이프…, 그게 도대체 뭐야”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1년 남짓 조경 잡지사에서 근무했다는 놈이 질문 수준하고는….’ 근데 솔직히 가슴에 손을 얹고 얘기해보자. “이거야!”라고 말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 답은 많은 사람의 동의를 구할 수 있을까? 그나저나 이 랜드스케이프란 단어, 참 여기저기 잘 붙어 다닌다. 어떤 미드를 보니, (물론 맥락이 참 많이 다르다) 살인 현장을 설명할 때도 이 단어를 쓰더라. 『환경과조경』에서도 이 단어가 등장할 때, 나를 포함한 몇몇이 긴장하기도 한다. 과연 이 단어를 ‘경관’이라고 번역해도 되냐는 문제에 맞닥뜨리기 때문이다. 지금 이 책의 제목을 저렇게 번역해 놓아도 될까 싶다. 랜드스케이프든 경관이든 참… 애매~하다.조금 다른 얘기가 될 수 있겠지만, 조경학과를 졸업한 사람들이 “뭐하고 먹고 살지”라는 고민을 내뱉는 이유의 하나가 여기 있다고 생각한다. 대학 4년 (본인 역시 제대로 공부한 적도 없지만) 이 경관이란 것에 뚜렷한 실체가 없다는 느낌을 가질 수밖에 없으니, 해당 분야에 대한 접근 자체를 망설이게 된다고나 할까 그러던 중, 제프 마노Geoff Manaugh가 이런 질문을 던졌다. “다빈 씨, 혹시 아주 미묘하고 오묘한 방식으로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게 도와주는 렌즈나 필터, 디바이스, 혹은 중간 다리 격의 도구가 기존의 공간설계(경관 디자인 혹은 조경)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본적 있어요? 새로운 공간을 조성하지 않더라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시각적 경험을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말이죠.” 책 속의 여섯 가지 인터뷰에 공원이나 정원 같은 조경의 주요 대상지가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우리가 흔히 경관(조경)이라 부르는 눈앞의 공간이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어떤 ‘물리적 눈’을 가지고 세상을 볼 수 있느냐가 미래의 경관을 구성하는 요소이자 경관의 미래 자체가 될 수 있다. 인지의 방식을 변화시키는 ‘경이의 디바이스devices of wonder’ 자체가 ‘랜드스케이프’의 범위가 되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우리 모두가 그런 시각적 능력의 변화를 최소 한두 번은 겪게 된다. 갓난아이는 세상을 흑백으로 본다(사실 그 누구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나면 처음으로 색을 구별할 수 있게 된다. 의학 기술의 발달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안경 속 좁은 세상에서 벗어나 훨씬 넒은 화각으로 같은 세상을 전혀 다르게 볼 수 있다. 이젠 그것도 성에 차지 않는지, 새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싶어 여기저기서 드론을 통해 사진과 동영상을 찍고 있다. 이 뿐이 아니다. 영화 ‘다크나이트The Dark Knight(2008)’에 나온 건물이나 도시 구조를 스캔하는 3D 소나sonar 기술은 ―사실 많이 과장되었지만― 도시 복원과 관련된 몇몇 설계 및 리서치 분야에서 활발히 이용되고 있다. 조금 더 과장을 해보면, 오실로스코프, 굴절 매체, 지진계, 광학 간섭계 등의 디바이스로 분석된 도시의 모습이 네트워크화 되어 시각적 정보로 재구성되는 가상의 도시 또한 가능하다. 왜 그래야 하냐고 묻기에 앞서, 이러한 도시에서는 모든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을 볼 수 있는가에 앞서 ‘얼마나 볼 수 있느냐’에 그 초점이 맞춰지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네덜란드의 텐케이트TenCate 사에서 개발한 지오디텍트GeoDetect 기술은 공간 설계가의 눈이 아닌 ‘경관의 눈’으로 작동하는 ‘생각하는 경관’을 꿈꾸게 한다. 환경에 대한 자발적 모니터링을 실시하는 이 인텔리전트-지오텍스타일intelligent-geotextile 기술은 시시각각 변화하는 주변 환경에 따라 최적의 공간 및 지형 구조로 자기 자신을 변형시키는 AI 그라운드 플로어의 개발을 예측하게 한다. 내 집 앞 공원이 자체적으로 수북이 쌓인 눈을 털어내고, 폭우에 대처해 최적의 배수로를 구성했다가 다시 당신의 아이가 뛰어 놀 수 있는 잔디 광장으로 되돌아간다는 이야기다. 언젠가 아키텍트를 대신해 AI 경관의 보수를 담당하는 공간 땜장이spatial tinkerer라는 직업이 생겨날지도 모를 일이다. 무엇을 보느냐, 얼마나 볼 수 있느냐를 넘어 최적의 공간만을 보게 되는 세상이 올 수도 있다. 놀라운 사실은 이 모든 내용이 실제 연구되고 있는 분야이고, 여기 소개된 내용은 아주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주어진 경관에 대한 이해의 차이, 그리고 그 차이를 가져오는 기술과 도구, 디바이스, 건축적 발명들이 가득한 세상. 당신의 눈이 경관의 미래, 나아가 미래의 경관 그 자체인 세상이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