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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타고 싶은 도시
Bicycle City
자전거는 이제 단순한 레저의 차원을 넘어섰다. 주요한 도심 이동 수단이자 녹색 도시의 대표 아이콘으로 떠올라, 최근에는 영국의 ‘런던 사이클 슈퍼하이웨이London Cycle Superhighway’와 같은 혁신적인 자전거 위주의 교통 시스템이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화석 연료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도 매력적이지만, 자동차 위주의 교통 패러다임에 대한 반성이 자전거를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한 덕분이다. 세계 주요 도시의 자전거 인프라는 사람들의 일상과 자전거를 더욱 긴밀히 연결시켜 색다른 도시 문화를 창조하고 있다. 자동차와 전혀 다른 속도로 기존과 다른 문화 지형도를 그려가고 있는 자전거가 이제는 도시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하지만, 자전거는 그 결이 무척이나 다양하다. 지구 온난화와 같은 거창한 담론과 결부되기도 하고, 보행자와 함께 느린 속도를 대변하는 역할도 떠맡고 있다. 누군가에겐 초등학교 입학 선물로 받았던 애틋한 추억의 한 페이지이면서, 또 다른 이에겐 페달을 밟는 것 자체가 목적이자 기쁨이 되기도 한다.그린 시티, 에너지 문제, 대안적 교통수단, 자출족(자전거로 출퇴근 하는 이들), 데이트 등 자전거의 앞뒤에 매달리는 단어의 스펙트럼도 폭넓다.
우리는 그 가운데 하나의 이슈에 집중하기보다, “자전거 타고 싶은 도시”라는 타이틀 아래 다양한 형식의 원고를 통해 ‘두 바퀴로 움직이는 도시’의 거친 밑그림을 그려보고자 한다.
1. 자동차를 위한 도시에서 사람을 위한 도시로 _ 박용남
2. 대한민국에서 자전거 타기가 정착되려면 _ 신희철
3. 자전거 도시 설계의 황금률 _ 백남철
4. 유럽 도시를 달리다 _ 이수창
5. 도시를 누비는 라이더를 위한 안내서 _ 김정은
6. 서울 자전거 출근기 _ 조한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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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자전거의 조용한 혁명
21세기 들어 자전거는 전 세계에서 유례없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 오늘날의 자전거 붐은 1890년대‘자전거 대유행기’에 버금가는 것이다. ‘자전거 대유행기’는 1890년 중반의 세계적인 자전거 열풍을 말하는 것인데 이 시기를 거치면서 자전거는 세계로 널리 확산됐고 가장 대중적인 교통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21세기의 자전거 붐은 ‘자전거 르네상스’라고 할 만하다.
이처럼 자전거가 인기를 끄는 것은 세계 각국이 도시의 교통 문제와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으로 자전거에 눈을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또 자전거의 소박한 매력에 이끌려 다시 페달을 밟기 시작한 사람이 늘고 있는 것도 자전거 붐이 확산되는 데 한몫을 하고 있다. 도시 생활에 지친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대자연으로 향하고 있다. 사이클링 스포츠의 열기도 본고장인 유럽 대륙을 넘어 다른 대륙으로 확산되고 있다.
지난 한 세기 동안 도시의 거리를 지배한 것은 자동차였다. 그러나 자전거가 다시 도시의 거리에 돌아오면서 도시의 풍경이 바뀌고 있다. 변화를 이끈 것은 바로 파리와 뉴욕 같은 대도시들이다. 세계 주요 도시들이 자전거를 미래의 교통수단으로 꼽으며 도시 어디서나 자전거를 빌려서 탈 수 있는 공공 자전거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2007년 파리는 공공 자전거의 대명사가 된 ‘벨리브velib’를 도입해 성공을 거뒀다. ‘자전거와 자유’라는 뜻을 담고 있는 벨리브는 이제 파리 거리의 아름다운 풍경이 됐다. 2013년에는 뉴욕 시가 오랜 준비 끝에 야심차게 미국 내 최대 자전거 공유 시스템인 ‘시티 바이크City Bike’를 시작했다. 이 두 도시는 공공 자전거를 더 확대할 예정이다. 안 이달고Anne Hidalgo 파리시장은 올해 초 자전거 전용 도로를 확장해 파리를 자전거 친화적인 도시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우리나라도 서울, 대전, 창원, 고양, 순천 같은 여러 도시에서 공공 자전거가 도시를 누비고 있다. 서울시는 2020년까지 공공 자전거를 2만 대로 늘린다는 계획을 지난해 말에 발표했다.
2014년 6월까지 세계 712개 도시가 공공 자전거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이 공공 자전거는 도시의 교통 혼잡과 소음, 환경 오염을 줄이기 위해 도시에서 짧은 거리는 자동차 대신 자전거를 이용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공공 자전거의 도입으로 도시에서 자전거 이용이 늘고 자전거에 대한 인식이 좋아진 것이 큰 성과다.대중이 다시 자전거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후반이다. 특히 1970년대 들어 사람들은 자전거를 다시 발견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자동차 문화에 염증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어갔다. 자동차는 편리하지만 수많은 인명 피해를 가져오고 교통 체증, 환경 오염의 주범이 됐다. 대도시에서 자동차는 점차 악몽이 되어 가고 있다. 자전거 저술가인 리처드 발렌타인Richard Balentine은 자동차 문화의 비효율성을 이렇게 비판한다.
“자전거를 탄 사람이 움직이는 데는 1마일에 35칼로리를 소모하고 자동차와 한 사람이 움직이는 데는 1,860칼로리를 소모한다. 150마력의 2,200kg에 달하는 차를 68kg의 사람을 움직이는 데 사용하는 것은 카나리아를 죽이기 위해 원자 폭탄을 사용하는 것과 같다.”
선진국은 자동차 문화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자전거 이용을 장려했다. 자전거 운동가들이 통근과 오락을 위한 자전거 도로 건설에 앞장섰다. 선진국은 도시에 자전거 도로를 건설했다. 유럽에서는 강과 운하를 따라 길게 자전거 도로가 놓였다. 또 버려진 철도는 훌륭한 자전거 전용 도로로 거듭났다. 선진국이 자전거 이용을 장려한 반면 이 시기에 개발도상국은 역설적으로 경제 발전을 위해 자동차 이용을 장려했다. 개발도상국에서 자전거는 가난한시대의 상징이었다. 중국의 베이징은 자전거 물결이 아름다운 도시였으나 경제 발전 과정에서 자전거는 거리에서 밀려났다. 오늘날 베이징의 하늘은 스모그가 뒤덮고 있다. 끔찍한 재앙이다.
오늘날 자전거는 단순히 기계가 아니라 삶의 한 방식이 되고 있다. 그것은 단순하면서도 아무에게도 해를 주지 않는 삶이다. 자전거는 사람의 두 다리로 움직이는 기계로 자급자족이 가능하다. 자전거를 타다 죽거나 크게 다치는 경우도 자동차를 타는 것보다는 훨씬 적다. 어릴 적부터 자전거는 사람들의 좋은 친구가 되고 오랫동안 마음속에 남아있는 가장 선한 기계라고 할 수 있다. 자전거는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소박하고 단순한 삶의 방식을 상징한다. 자전거를 시대에 뒤떨어진 기계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오히려 자전거는 가장 문명화된 기계다.도시에 다시 자전거가 돌아오면서 자전거의 혁명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결코 요란하지 않다. 그것은 조용한 혁명이다. 자전거는 도시의 환경을 살리고 좀 더 인간다운 삶을 살도록 해준다. 자전거는 삭막한 도시에 인간의 따스한 숨결을 불어넣고 있다.
장종수는 중학교 때부터 취미로 자전거를 타기 시작해 지금까지사이클과 산악자전거를 타고 있다. CBS의 사회부와 경제부에서기자로 일했으며, 대한사이클연맹 MTB 위원회 홍보위원, 한국산악자전거협회 이사 등으로 활동했다. 지금은 인터넷 자전거 매거진 ‘바이시클 뉴스’ 대표를 맡고 있다. 저서로는 『재미있는 자전거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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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자전거 탄 풍경
다시 봄입니다. 봄의 절정인 4월 특집으로 자전거를 올린 건 온화한 기운을 열망하는 마음과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도시·환경 전문지의 편집을 맡고 있으니 자전거 하면 녹색 도시, 지속가능한 환경과 에너지, 대안적 교통 같은 묵직한 주제를 이야기해야 마땅하겠지만, 왜 그런지 사랑, 추억, 동경 같은 낭만적인 낱말이 먼저 연상됩니다. 자전거는 이미 19세기에 발명되었지만 속도와 효율을 먹고 사는 우리 도시의 현실에서는 아직, 아니 여전히, 일상적이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자전거가 등장하는 영화 속 장면들이 머리를 스쳐갑니다. 어릴 적 KBS ‘주말의 명화’에서 봤던 ‘내일을 향해 쏴라’의 자전거 신이 제일 먼저 떠오릅니다. 혹시 기억나시나요? 폴 뉴먼이 로버트 레드포드의 연인 캐서린 로스를 몰래 자전거 핸들 위에 태우고 아침의 목장을 가로지르는 풍경 말입니다. 자전거 위에서 사과를 따 함께 먹는 이 장면엔 지금 들어도 경쾌한 팝송 ‘Raindrops keep falling on my head’가 흐릅니다. 피비린내 나는 서부 활극을 낭만으로 전환시킨 이 명장면은 여러 광고에서 패러디되기도 했습니다.
너무 옛날 영화인가요? 그럼 3040세대의 추억 ‘ET’는 어떤가요. ET 최고의 명장면을 하나만 꼽는다면 영화 후반부의 ‘공중 부양’ 신일 겁니다. 자동차를 타고 쫓아오는 어른들에게 잡힐 듯한 찰나, ET의 초능력으로 아이들의 자전거가 훌쩍 날아오릅니다. 이 장면에 전 세계의 수많은 아이들이 발 구르고 손뼉 치며 환호했습니다. 주인공이 자전거에 ET를 태운 채 달을 배경으로 날아가는 이 컷은 다양한 장난감과 퍼즐로도 만들어졌습니다. 자전거가 아니라 자동차였다면 그만큼 매력을 주지 못했을 겁니다.
15초, 30초짜리 광고에서도 자전거는 꿈과 사랑의 메신저로 등장하는 단골손님입니다. “그녀의 자전거가 내 가슴 속으로 들어왔다.” 1990년대 초를 강타했던 빈폴의 광고 카피, 아마 많은 분들의 기억 속에 아직도 생생할 겁니다. 이 땅의 뭇 남성들을 설레게 했던 포카리스웨트 광고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내일을 향해 쏴라’의 캐서린 로스보다 훨씬 예쁜 손예진이 디테일 없는 순백의 원피스를 입고 자전거를 타며 지중해 산토리니의 새파란 하늘과 바다를 배경으로 도시를 달립니다. 자전거가 음악과 모델과 배경을 하나로 엮는 고리 역할을 합니다. 당대의 역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렇게 자전거는 여유와 낭만을 아름답게 매개하지만, 현실의 도시인들에게는 일상이 아닌 환상입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자전거에 대한 로망은 있지만 막상 실제로 타는 건 엄두도 내지 못합니다. 서울 같은 자본주의 도시에서 속도를 포기한다는 건 아주 두려운 일입니다. 속도보다 더 큰 이유는 무섭기 때문입니다. 초등학교 시절 자전거로 동네 여행을 하다 움푹 파인 노면에 자전거가 뒤집혔고 브레이크 핸들이 목에 꽂혔습니다. 다행히 동맥을 피해갔지만 아직도 목에는 커다란 흉터가 남아있습니다. 대학교 때는 다섯 시간짜리 지루한 드로잉 시간을 견디다 못해 자전거에 몸을 실었다가 오픈 트렌치에 자전거와 함께 빠졌습니다. 얼굴 전체가 피범벅이 되어 교실로 귀환한 저를 교수님은 바로 응급실로 보내셨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캠퍼스 전체의 트렌치에 철제 덮개가 설치됐습니다.이런 트라우마 때문인지 저에게 자전거는 로망과판타지일 뿐, 현실의 세계에선 불안과 위험의 상징입니다. 딸아이가 하도 졸라대기에 어린이날 선물로 자전거를 사준 날, 제발 그 자전거가 베란다에서 먼지 쌓인 고물로 변해가길 기도했을 정도니까요.
이번 호 지면을 넘기다 보면 김정은 팀장의 원고에서 『사이클 시크Cycle Chic』라는 근사한 책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덴마크의 영화감독이자 사진작가인 미카엘 콜빌레-안데르센Mikael Colville-Andersen의 역작입니다. 그가 말하는 ‘사이클 시크’는 자전거 타기와 도시적 스타일링을 함께 담은, “자전거와 함께하는 ‘패셔너블한’ 일상 그 자체”를 가리킵니다. 얼핏 보면 스트리트 패션 화보집 같지만 찬찬히 다시 보면 자전거 타기가 환상이 아니라 일상인도시 코펜하겐의 힘이 읽힙니다. 그의 말처럼 “치마를 입고 힐을 신고 자전거로 도심을 유유히 누비는 여자, 더블 재킷에 로퍼를 신고 자전거로 출근하는 남자”가 도시의 평범한 풍경이 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다면, 저에게도 자전거가 낭만이나 두려움이 아니라 현실의 일상으로 다가오겠지요.
사실 이번 특집은 몇 달 전 조한결 기자가 낸 기획서에서 시작됐습니다. 감사하게도 우리나라의 내로라하는 자전거 전문가와 연구자들이 필자로 동참해주셨지만, 가장 눈여겨봐주셨으면 하는 꼭지는 조 기자의 ‘서울 자전거 출근기’입니다. 기획을 한 원죄로 조 기자는 홍대 근처의 집에서부터 방배동 사무실까지 자전거 타기를 감행하며 환상과 일상의 경계에 도전해 보았습니다. 두 차례의 예행 연습과 실전에서 페달을 밟은 그녀에게, 또 자전거로 동행하며 사진 취재를 맡은 이형주 기자에게 위험이 닥치지 않기를 기도했습니다. 그 심정은 제 아이가 자전거로 아파트 단지를 처음 돌던 날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속도의 도시 서울에서 자전거 출퇴근이 일회성 탐험이 아닌 시크한 일상이 되게 하려면 무엇이 필요하고 우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책과 설계의 과제를 챙겨보아야 할 때입니다. 오늘로 꼭 3주째인 환절기 독감을 떨치고 내일은 자전거 두 바퀴로 서울의 봄을 ‘시크’하게 가로지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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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A] 서론만 있는 글쓰기
글이 써지지 않을 때면, 럼블피쉬의 ‘비와 당신’을 무한 반복해 듣는다. 꽤 오래된 습관이다. 다른 곡을 섞어 들을 때도 있지만 그건 상태가 좋을 때의 이야기다. 한곡만 반복해서 듣는 기능이 있는 줄 몰랐을 때는 ‘비와 당신1’, ‘비와 당신2’, ‘비와 당신3’의 방식으로 파일명을 다르게 만들어 놓고 연이어 재생했다. 왜 ‘비와 당신’이냐고 묻는다면, 답변은 몹시 궁색하다. ‘확실히 멜로디가 키보드 두드리기에 최적화되어 있어’라고 황당한 답을 스스로에게 한 적도 있고, ‘다음 문장을 떠오르게 하는 아련한 목소리야’라며 감탄한 적도 부지기수다. 멋쩍게…. 특히나 ‘빛바랜, 사무친, 이젠 괜찮은데, 바보 같은 난, 눈물이 날까’와 같은 노랫말이 흘러나올 때면, 꾸역꾸역 한 문장 한 문장을 메꿔 나가고 있는 나 자신에게 별 이유 없이 관대해진다.
그런데 이번 달에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들국화 노래를 이 곡 저 곡 찾아 듣다가1집에 실려 있는 ‘오후만 있던 일요일’이란 제목에 꽂혔다(노래가 아니라). ‘서론만 있는 글쓰기’란 작위적인 제목은 그 후유증이다. 미리 자비를 구한다.
서론 하나, 종이 잡지
몇 해 전, 오스트레일리아의 미래학자 로스 도슨은 국가별 종이 신문의 사망 연도를 발표했다. 한두 나라만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친절하게도() 전 세계 52개국의 종이 신문이 몇 년도에 사라지게 될지를 구체적으로 예측했다. 그는 현재의 디지털 저널리즘의 확산 속도를 볼 때, 2017년 미국에서 가장 먼저 종이 신문이 파산을 선고하고, 2040년이 되면 전 세계의 모든 종이 신문이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부에서 보조금을 투입하고 있는 프랑스와 독일은 각각 2029년과 2030년, 일본과 중국은 2031년으로 예측했다. 한국은 이보다 빠른 2026년에 이름이 올라 있다. 언론계의 대체적인 반응은 정확한 연도에는 오차가클 수 있지만, 각 언론사의 기조가 ‘페이퍼 퍼스트paper first’에서 ‘디지털 퍼스트digital first’로 전환되고 있는 만큼 그의 예측이 부도수표가 되지 않을 공산이 크다는 입장이다. 종이 신문의 내일과 종이 잡지의 미래를 전망하는 기사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누군가는 한때 우후죽순 늘어났던 지하철 무가지가 이제 1종 정도만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점을 예로 들며 종이 매체가 실제로 하루아침에 사라질 수 있음을 경고한다.1 공짜로 손에 쥐어주어도 사람들이 더 이상 종이를 펼쳐들지 않을 만큼 종이 매체가 사람들에게 외면 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에 반해,한 해가 다르게 기능과 디자인, 휴대성을 강화해서 쏟아져 나오는 모바일 기기의 성장 속도는 무서울 정도다. 물론 종이 신문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이들도 여전히 존재한다. 그들은 기업 광고가 아닌 ‘독자’를 기반으로 존립하고 있는 독일 신문처럼 종이 신문이 독자와의 소통을 전향적으로 늘려야2 생명 연장이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새로운 생존 전략에 포커스를 맞추기도 하고, 모바일 기기가 대체할 수 없는 종이만의 매력을 어필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 역시 디지털 매체가 대세로 자리 잡고 있음은 부인하지 못한다. 안타깝지만!
서론 둘, 조경 매체
조경 분야의 매체 환경은 이전과 크게 달라졌다. ‘환경과조경’사에서 발행하는 월간 『환경과조경』과 월간 『에코스케이프』 이외에, 『조경세계』라는 제호를 단 잡지도 있고, 일간으로 뉴스를 전달하는 온라인 매체 ‘라펜트’와 주간으로 발행되는 『한국조경신문』도 있다. 『환경과조경』만 존재하던 시기(1982년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에는 인사 동정이나 행사 소식과 같은 뉴스부터 새로 완공된 작품, 설계공모 수상작, 비평, 에세이, 답사기, 신제품 소개에 이르기까지 백화점식 콘텐츠 구성이 불가피했다. 당시에는 적지 않은 독자들이 인사 동정이 실려 있는 뉴스 지면부터 펼쳐보았다. 그만큼 정보 창구로서의 역할이 요구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그때와 다르다. 이는 꼭 관련 매체가 늘어났기 때문만은 아니다. 1980~90년대와 2000년대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인터넷의 발달에 기인한다. 어느 순간부터 정보가 폭발적으로 넘쳐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면 달라진 환경 속에서 『환경과조경』은 어떤 콘텐츠에 집중해야 할까?
서론 셋, 저널과 매거진
‘잡지’는 일정한 제호를 가지고 정기적으로 발간되는 출판물을 일컫는다. 동일한 제호와 정기적인 발간이 핵심이다. ‘저널’은 프랑스어인 ‘주르날journal’에서 비롯된 것으로, 1665년 프랑스에서 발간된 『주르날 데 사방Journal des savants』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최초의 정기간행물로 인정 받고 있는 이 잡지는 주간으로 발행된 과학 저널이었다. ‘매거진’은 원래 군대의 무기고 또는 총의 탄창을 가리키는 말이 었으나, 1731년 런던에서 발행된 『더 젠틀맨스 매거진The Gentleman’ Magazine』의 제호에서 유래하여 현재는 잡지라는 뜻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한 권의 책에 다양한 주제의 내용이 담겨 있다는 점을 비유적으로 일컫기 위해 ‘무기고’라는 단어가 쓰였다.3 어쩌면 지식의 탄창, 정보의 무기고 같은 의미였을 수도 있다. 잡지는 신문과 다르게 조금 더 제한적인 독자층을 타깃으로 설정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즉 보다 세분화된 분야나 주제 혹은 취향과 관련된 ‘깊이’ 있는 지식과 정보를 (신문보다 상대적으로 많은 지면을 활용하여) 독자들의 무기고에 차곡차곡 쌓아줌으로써 설 자리를 넓혀 나간 것이다. 신문과 잡지는 같은 제호를 사용하여 정기적으로 발간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바로 이런 지점에서 그 성격이 나뉜다.
『환경과조경』이 독자들의 무기고에 무엇을 채워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본론은 시작도 못하고 서론만 세 가지 버전으로 써버리고 말았다. 정보의 홍수 시대에 더욱 그 빛을 발하는 ‘정제된 정보’를, 오직 여기에서만 볼 수 있는 ‘독자적인 콘텐츠’를, (신문과 달리) 충분히 시간을 투자해도 아깝지 않은 ‘깊이 있는 읽을거리’를, (온라인 매체와 달리) 손으로 펼쳐 볼 수 있는 ‘편집된 지면’에, 시선과 마음을 빼앗을 수 있는 ‘감각적인 디자인’으로 담아내면 될 일이건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잡지는 무엇이고, ‘누가’ ‘왜’ 종이 잡지를 읽을까를 다시 고민하게 된다. 이 대목을 쓰고 나니, 타이밍도 기가 막히게 “바보 같은 난, 눈물이 날까”란 럼블피쉬 최진이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이러니, ‘비와 당신’을 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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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의 서재] 언어의 정원
비가 오는 날은 아무래도 좀 별로다. 출근길에 귀찮게 우산도 챙겨야 하고 땅은 질퍽질퍽, 하늘은 또 왜 이렇게 우중충한지, 몸은 비를 피해 건물에서 건물로 빠르게 옮겨 다니는 신세다. 평상시에도 회색탑에 갇혀 사는 건 똑같지만 공간의 선택권을 빼앗긴 기분이랄까.
그래도 가끔은 비를 즐긴다. 정확히 말하면 프레임 속에 채워진 비오는 풍경이 좋다. 대부분은 비를 피해 건물 속에 웅크리고 바깥은 쳐다보지도 않지만, 어떤 장소냐에 따라 그 풍경은 사뭇 다르게 보인다. 막걸리집에서 파전에 동동주 시켜놓고 잠깐씩 창밖을 응시하면,처마를 타고 현악기의 줄처럼 길게 늘어지는 빗줄기가 시야를 적신다. 마음이 착 가라앉는 기분이 든다. 커피향 은은한 카페에서 내다보는 풍경도 좋다. 특히 처마가 없는 유리창이라면 빗줄기가 씻기듯 흐르는 선은 가히 예술적인 모습이다. 비 내리는 공원은… 글쎄, 좀 애매하다. 비 오는 날 공원을 찾는 이가 있을까? 『언어의 정원』에는 그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비 오는 날 공원에 가본 적은 없지만, 이 작품을 보면 왠지 낭만적이어서 ‘가볼 걸’ 하는 후회가 든다. 어쩌면 내 인연이 더 빨리 시작되지 않았을까 하는 헛된 생각이 들 정도다.
『언어의 정원』은 2013년에 개봉한 동명의 애니메이션을 감독이 직접 재구성한 소설이다. 남녀가 공원에서 우연히 만나 서로 알게 되고 소통하면서 겪는 내면의 치유와 성장을 다룬 일종의 감성 멜로다. 애니메이션에서는 공원을 중심으로 비 내리는 풍경을 묘사하고, 두 남녀 주인공과 공원, 비의 표현에 초점이 맞춰졌으나, 소설에서는 비의 영역을 확대하고 등장인물을 모두 입체적으로 표현했다. 영상에서 담지 못했던 내용을 해석하듯 각 인물의 이야기와 내면을 자세하게 다룬다. 『언어의 정원』의 원제는 ‘고토노하노니와言の葉の庭’다. 고토하言葉는 말이나 언어를 뜻하는데 한자를 직역하면 ‘말을 적은 잎’이다. 종이가 없던 시절에 파피루스나 나뭇잎에 글을 적었던 데서 유래한 말이다. 이 말을 보다 시적으로 표현한 말이 고토노하言の葉인데,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시가집인 『만요슈』를 인용한 의미가 제목에담긴 것으로 보인다. 고전 소설은 시를 읊어 인물의 마음을 묘사하는 기법을 쓰는 특징이 있다. 『언어의 정원』은 이러한 기법을 활용해 인물의 내면을 표현함으로써 서정적 분위기를 북돋운다. 그 언어를 구사하고 관계가 시작되는 장소로 공원이 등장한다. 제목은 정원이라는 용어를 채택하고 있지만, 이는 공원과 정원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거나 보다 부드러운 표현으로 정원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우렛소리 희미하고 구름이 끼고 비라도 내리면 그대 붙잡으련만”(『만요슈』, 11권 2513번). 떠날 것 같은 남자를 붙잡는 여자의 노래다. 비가 내려 남자가 떠나지 못하길 바라는 내용이다. 『언어의 정원』에서 비는 중요한 소재로 다루어진다. 감독은 이작품의 진짜 주인공은 ‘비’라고 할 정도로 영상 표현에 신경을 기울이고 소설 속에서도 다양한 모습으로 묘사한다. 비가 내리면 세상은 이어진다. 서로 떨어져 있는 하늘과 대지가 비를 통해 만나고 새로운 생명을 잉태한다. 하이데거는 비가 내리는 모습을 “하늘과 대지의 결혼식”이라고 표현했다. 하늘의 태양과 대지의 자양분이 내밀한 관계를 맺어 포도나무가 열매 맺는 모습을 ‘결혼식’이라고 표현함으로써 그 가치를 높였다. 여기서는 비가 만남을 주선하는 중매인으로서 역할을 한다. 등장인물들은 저마다 상처를 가지고 있다. 소설 속에서 다루기엔 소소해 보일 정도지만, 우리 일상에 대입해 봤을 때 누구나 하나씩 가진 상처 혹은 사연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감정이 이입된다. 현대인은 치열한 경쟁 체제 속에 피로한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이로 인해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현대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청자가 바로 ‘비’로 은유된다. 서로의 영역에서 혼자가 되고 상처 입은 두 사람은 피난처로 공원을 찾았다. 상처는 혼자보다 같이 이겨내는 게 더 쉬운 법이다. 그런데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건 쉽지 않다. 어른이 되어 학교나 직장이 아닌 곳에서는 더욱이 그렇다. 두 사람은 공원이라는 공공 공간에서 처음 만나고 서로를 통해 치유의 과정에 도달한다. 공원은 개인의 영역이 아니다. 누구의 영역도 될 수 있다. 이에 서로 모르던 두 사람이 대화의 기회를 갖게 되고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공원이 소통의 매개체가 된 셈이다.
“소년의 손이 살그머니 엄지발가락 끝에 닿았다. 뜨거운 숨결이 닿는 감촉에 차디찬 발끝이 흠칫했다. 심장이 콩닥콩닥 뜀박질을 했다. 혹여 소년이 들으면 어쩌나 겁이 날 만큼 고동소리와 숨소리는 격렬했다.” 구두 디자이너를 꿈꾸는 타카오는 마음이 가는 이성 유키노에게 구두를 만들어주고자 공원에서 그녀의 발을 이리저리 만지며 치수를 잰다. 영화평론가 이동진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는 사실상 베드신이다. 영화 ‘일대종사’(2013)를 보면 양조위와 장쯔이가 겨루는 장면이 있다. 겨루는 과정에 서로의 신체와 호흡이 맞닿고 눈빛이 마주치는 모습이 세밀하게 묘사된다. 이 장면을 슬로우 모션으로 처리하고 교감의 지점을 클로즈업해 관객에게 보여준다. 베드신은 관객에게 등장인물의 심리적 교감을 전달하는 극적 장치다.
『언어의 정원』에서는 이를 구두 치수를 재는 장면으로 대체했다. 감독은 “사랑, 그 이전의 사랑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한다. 단순히 『만요슈』의 시구만 인용하지 않고 1,300년 전에 쓰인 옛날 가요의 ‘사랑’이란 단어가 담은 정서를 모티브로 이야기를 풀어냈다. 지금의 ‘사랑’이란 단어의 정서와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사랑’의 영원성을 강조하려 한 것인지, 아니면 ‘사랑’이란 단어를 통해 언령言靈을 확인하려 한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그 전략이 가슴을 두드렸다. “우렛소리 희미하고 비가 오지 않아도 나는 여기 머무르오 그대 가지마라 하시면”(『만요슈』, 11권 2514번). 사랑의 언어가 비와 함께 파문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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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도시 공원 컨퍼런스, 샌프란시스코 4.11~14
Greater & Greener 2015: Innovative Parks, Vibrant Cities
‘Greater & Greener’는 오늘날 도시 공원이 직면하고 있는 다양한 이슈와 도전,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기 위해 도시계획가 및 설계가, 공공 행정가, 그리고 공원 운영 관리 조직 및 민간 조직의 구성원들이 모이는 국제 도시 공원 컨퍼런스International Urban Parks Conference다. 미국의 각 도시에서 2년에 한 번씩 개최되는 본 컨퍼런스에는 매 회 천 명이 넘는 도시 공원 커뮤니티 리더들이 모여 경험을 공유해 왔으며, 도시공원의 디자인과 개발 방식, 운영 관리를 위한 프로그램 및 재정에 대한 지속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특히, 건강과 과학기술 등 다른 분야와의 연계 및 논의 확장을 통해 경제와 환경, 사회적 참여의 새로운 콘텍스트에서 공원을 재구축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하도록 촉구한다. 이 행사를 개최하고 이끄는 시티 파크 얼라이언스City Parks Alliance(CPA)는 미국의 도시 공원 및 녹지 조성과 지속가능한 운영관리를 위해 앞장서 온 독립적, 범국가적 멤버십 조직으로 2000년 처음 조직된 이래 15년째 활동하고 있다.
혁신적 공원, 활기 있는 도시
이번 컨퍼런스는 ‘Innovative Parks, Vibrant Cities’라는 주제로, 4월 11일에서 15일까지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렸다. 컨퍼런스를 주관한 CPA의 상임이사인 캐서린 네이겔Catherine Nagel은 환영사에서 “도시 공원은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이슈-건강, 교육, 거주성과 사회적 혼합에서부터 경제적인 개발과 도시의 회복탄력성- 등 폭넓은 범위에서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이에 대한 비전과 혁신 요소들은 지역 단위에서 구현되어야 하며, 이번 컨퍼런스의 무대인 샌프란시스코와 베이 지역Bay Area의 공원 커뮤니티들이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도시 공원이 직면하고 있는 많은 일반적 이슈에 대한 창의적인 해법을 모색할 수 있는 곳”임을 강조했다.
이번 컨퍼런스의 핵심 어젠다는 도시 공원의 혁신과 활력 있는 도시를 위한 지속가능성의 모색이었으며. 4개의 세부 주제(Advancing Technology, Weaving Parks into 21st century City Planning and Design, Living and Learning in the New Urban Habitat, City Parks 101 and Beyond) 아래 진행되었다. 특히 각 지역 공원 운영관리 조직에 소속된 실무자들이 다수 참여해 실천적인 사례를 공유하고 실현가능성에 기반한 논의와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장으로 운영되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 심주영 / 서울대학교 대학원 협동과정 조경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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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100’ 프로젝트
작은 변화로 서울의 공공 공간을 바꾸는 100가지 아이디어
거리를 천천히 걷다보면 조금만 더 신경 썼더라면 하는 도시 경관들이 눈에 밟힌다. ‘서울100’은 사소하고 소소한 부분이지만 조금 더 걷기 편하고 정돈된 거리로 마주하게 하는 보도 환경 개선부터, 도시를 생동감 있게 만드는 작은 아이디어까지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던 일상의 공간을 관찰하고 작은 변화를 상상하는 작은 연구다. 소수의 전문가가 그려내는 마스터플랜이 아닌, 시민이 함께 만들어가는 도시를 지향하며 ‘누구나 쉽고 재밌게 즐길 수 있는 공공디자인’을 목표로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시작 - RTM100
‘서울100’ 프로젝트는 한 권의 책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네덜란드에서 도시와 건축을 공부하던 중 『RTM100』이란 미스터리한 책을 만났다. 표지를 넘기면 비슷한 듯 비슷하지 않은 한 쌍의 도시 경관 이미지가 전과 후 Before & After 형식으로 보인다. 마치 틀린 그림 찾기같은 100쌍의 이미지는 보도 환경·도시 경관 개선에서 유휴 공간 활용에 이르기까지 작은 개입(변화)으로 공공 공간을 변화시키는 아이디어들을 담고 있다. 이는 2010년 벨기에의 URA와 네덜란드의 토포트로닉Topotronic이라는 두 건축 집단에 의해 진행된 스터디의 결과물로AIRarchitecture center of Rotterdam의 후원을 통해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졌다. 공공 건물, 카페 등 로테르담 시민들이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장소에 배포되어 공공 공간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관심을 환기시키는 작은 기제가 되기도 했다. 그동안 항공사진 위에서 선을 그려가며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설계를 해오던 나에게 이는 신선한 물음으로 다가왔다.
서울100
‘서울100’ 프로젝트는 ‘작은 공간을 자세히 관찰해 작은 변화를 만들어내는 작은 연구’라는 의미로 한국에 돌아온 이듬해(2014년)부터 시작했다. 10년 넘게 매 수요일마다 서울의 마을들을 답사하는 건축가 조정구처럼, 공간을 다루는 디자이너로서 눈의 화소 수를 높이는 연습이자 작은 실천들을 긴 호흡으로 이뤄보자는 소박한 마음가짐으로 출발했다. 유명무실하게 놓인 노란색 점자블록부터 도시 속 유휴 공간에 이르기까지, 날마다 서울이라는 도시의 풍경을 자세히 관찰하다 보니 평소에 무심코 지나치던 도시의 일상이 새롭게 다가왔다. 작은 변화로 사람들의 무표정한 얼굴과 무채색의 도시 공간에 활기를 줄 수 있는 상상들을 더해 갔다. 매일 아침 현관문을 열고 나와 사무실에 도착하기까지 통과하는 무수한 도시 공간부터 시작한 ‘서울100’ 프로젝트는 두 명의 동료를 만나면서 박차를 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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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omimicry
‘ICD/ITKE 리서치 파빌리온’, 자연의 건축 비법을 파헤치다
“저급한 자는 베끼고, 위대한 자는 훔친다.” 예술적 행위의 속성과 창의적 사고의 핵심을 지적하는 말로 자주 인용되는 피카소의 말이다. 전자와 후자의 차이가 어디서 오는걸까? 독일 슈트트가르트 대학교University of Stuttgart의 컴퓨터응용디자인연구소The Institute forComputational Design(ICD)와 동 대학 건축구조설계 연구소The Institute of Building Structures and Structural Design(ITKE)의 연구진으로 구성된 프로젝트 팀이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한 노력을 올해로 6년 째 이어가고 있다. 이들은 생체모방biomimicry1 분야의 한 갈래를 지향하며 매년 ‘ICD/ITKE 리서치 파빌리온ICD/ITKE Research Pavilion’이라는 새로운 모습의 공공 공간을 만들어 내고 있다. ‘ICD/ITKE 리서치 파빌리온 2013-14’는 이 연구의 네 번째 결과물로 인간의 엄지손가락만한 ‘딱정벌레’의 건축 비법을 담고 있다.
의생학적 연구
이번 연구는 슈트트가르트 대학교의 건축가 및 공학자들과 튀빙겐 대학교University of Tübingen의 생물학자들의 학제 간 협업을 통해 진행되었으며, 올리베르 베츠Oliver Betz(생물학) 교수와 제임스 네벨시크James H. Nebelsick(지구과학) 교수(이상 튀빙겐 대학교)가 주도한 ‘생체공학과 건축적 모듈에 대한 연구the Module: Bionics of Animal Constructions’가 그 바탕이 되었다. 다양한 동식물에 대한 표본 연구가 이루어졌고, 그 과정에서 딱정벌레의 날개와 복부를 보호하는 껍질인 엘리트론elytron(키틴질 섬유 다발로 구성된 단백질 매트릭스 조직)이 건설 재료의 모델로써 고도의 효율을 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초 자료가 확보되었다. 보다 구체적인 활용법을 고안해 내기 위해서 다양한 딱정벌레의 엘리트론에 대한 고해상도 3차원 모델이 필요했다. 카를스루에 공과대학교Karlsruhe Institute of Technology에 속한 ANKA 싱크로트론 방사광 시설ANKA Synchrotron Radiation Facility과 광양자·싱크로트론 방사광 연구소Institute for Photon Science and Synchrotron Radiation의 기술력이 결합된 컴퓨터 단층 촬영을 통해 여섯 가지 모델을 추출해냈다. 이렇게 추출된 모델은 튀빙겐 대학교에서 제공한 SEMscanning electron microscope 스캔본과 함께 조합되었고 딱정벌레 껍질의 내부 구조에 대한 분석을 가능하게 했다.
건축 재료로서 엘리트론이 지닌 고효율성은 딱정벌레 껍질의 기하학적 형태와 각 껍질을 구성하는 천연 섬유 합성물natural fi ber composite의 기계적 특성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특성은 엘리트론 내 기둥 모양의 이중 곡선 지탱부, 즉 섬유주trabecula에 의해 연결된 이중층 구조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중층 구조를 이루는 껍질의 윗부분과 아랫부분은 끊임없이 이어진 섬유주를 통해 결합된다. 섬유주 다발의 분포 및 기하학적 결합 방식이 딱정벌레 껍질 전체에 걸쳐 상당한 정도의 변화무쌍함을 보이고 있었고, 이러한 비등방성anisotropic2은 껍질 전체에 걸쳐 부분마다 차별화된 소재적 특질이 나타날 수 있도록 하여 더욱 안정적으로 형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한다.
구조 논리 및 소재
이렇게 분석해낸 자료를 바탕으로 실제 건축 가능한 형태를 개발하기 위해 이중층 구조 모듈 시스템double layered modular system이 고안되었다. 이 시스템은 유전적으로 발현되는 생체 구조를 공학적 방식으로 재구성하는 데 사용된다. 추출된 유전 정보의 해석을 바탕으로 수차례의 컴퓨터 시뮬레이션 연구가 이루어졌고, 적합한 기계식 제작 방식이 마련되었다. 생성적 디자인generative design(컴퓨터를 활용한 디자인 개발 및 시뮬레이션 기법으로 기계화된 제작 방식에 필요한 알고리즘을 생성해낸다) 기법을 기반으로 이 기계식 제작 방식을 구동시키는 데 필요한 알고리즘을 생성해 냈다.
건축 재료로는 유리 및 탄소 섬유 강화 폴리머가 사용되었다. 이 소재는 중량 대비 강도가 높고 섬유질 배열방식에 따라 다양한 형태를 연출할 수 있다는 것이 강점으로 뽑혔다. 이러한 성형성moldability을 논외로 하더라도, 탄소 섬유 강화 폴리머는 딱정벌레에서 추출된 복잡한 기하학적 형태를 실현하기에 적합한 소재였다. 기존의 섬유 공학적 제조 방식에서는 형태를 만들기 위한 몰드mold가 반드시 요구된다. 몰딩molding 기법은 대개의 경우 지나치게 복잡한 틀과 그에 적합한 특정 소재를 사용해야 한다는 점에서 건축물에는 부적합한 방식이라고 판단되어 왔다. 또한 어떤 구조를 만드는 데 있어 다수의 몰드와 시간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는 구조적 문제도 안고 있었다. 반면에 이 이중층 구조 모듈 시스템은 하나의 기계 공정 안에서 다수의 모델을 구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로보틱 무심 곡선화 공정
이중층 구조 모듈 시스템을 구동시킬 수 있는 로보틱무심 곡선화 공정robotic coreless winding method 개발이 다음 단계에서 이루어졌다. 이중층 구조 모듈 시스템이 소프트웨어라면, 로보틱 무심 곡선화 공정은 하드웨어가 되는 것이다. 여섯 개의 축을 중심으로 작동하는 두 대의 산업용 로봇에 고정된 프레임 이펙터frame effector(이하 이펙터)가 회전하며 수지 함침 섬유 다발resin impregnated fiber bundles을 구부리며 조직하는 방식이다. 쉽게 말하자면, 두 개의 로봇 팔이 뜨개질을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처음 두 개의 이펙터에 엮이는 섬유 다발은 팽팽한 직선의 형태를 유지하며 층을 만들어 간다. 이후 일련의 섬유 층이 서로의 위아래에 놓이며 압박을 가하고 원형 방패와 같은 곡면을 이루게 된다. 이러한 섬유 곡선화 과정에서 로봇팔의 움직임에는 구체적인 순서가 정해져 있으며, 압력과 곡면기울기 등에 대한 데이터 분석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모든 개별적 섬유에 대한 디자인 통제가 가능하다.
이 한 쌍의 이펙터는 소재가 가진 다양한 기하학적 특성에 맞춰 움직임을 조정하며 초기 설정값 설정에 따라 36개의 부분을 모두 만들어낸다. 무심 곡선화 공정이 개발된 덕분에 여러 개의 개별 몰드를 만들 필요가 사라졌고, 이는 상당한 자원 절약 효과로 이어졌다. 뿐만 아니라 무심 곡선화 공정은 그 공정 자체에서도 매우 자재 효율성이 높은 제조 공법으로 폐기물을 거의 발생시키지 않는다. 기성 자재를 잘라낼 때 발생하는 폐기물이 거의 없는 것이다.
유리 섬유 층 한 개(경우에 따라 섬유 층 두 개 필요)와 탄소 섬유 층 다섯 개가 하나의 부분을 구성한다. 이 중 첫 번째 유리 섬유 층이 재료의 기하학적 형태를 결정하게되며, 이후의 탄소 섬유 층을 위한 일종의 거푸집으로 기능하게 된다. 탄소 섬유 층은 구조적 강도를 높이는 역할을 하며, 섬유들의 비등방적 배열을 통해 조금씩 다른 형태를 갖게 된다. 탄소 섬유의 개별적 구조는 각각의 구성 요소에 작용하는 힘에 의해 결정되는데, 이는 포괄적 구조에 대한 유한 요소 분석법finite element analysis(FEA)3을 통해 산출된다.
‘ICD/ITKE 리서치 파빌리온 2013-14’를 구성하는 36개의 부분은 딱정벌레의 엘리트론에서 추출한 기하학적 원리를 따르고 있으며, 전체 무게를 지지하는 데 있어 최소한의 자재를 사용하도록 각기 다른 레이아웃을 갖는다. 기계식 생산 방식을 사용한 덕분에 사람이 해야 할 일이 상당히 줄어든다. 처음 이펙터에 섬유 다발을 연결하고 알고리즘을 입력하는 것만으로 모든 구성요소가 생산되며, 이렇게 생산된 구성 요소를 블록을 쌓듯이 조립하면 파빌리온이 완성된다. 완성된 파빌리온이 차지하는 총 면적이 50m2, 부피는 122m3, 그리고 무게가 593kg으로 적지 않은 규모지만, 구성 요소 하나만을 보면 가장 큰 것도 지름 2.6m에 무게는24.1kg밖에 나가지 않는다. 각 구성 요소가 다소 기괴한 모습을 갖고 있는 것에 비해 최종적으로 나타난 기하학적 형태는 대학교 건물은 물론 주변 공원 풍경에 상당히 잘 어울린다.
2010년 시작된 ‘ICD/ITKE 리서치 파빌리온’의 연구진은 섬유조직합성건축fiber composite construction methods이라는 혁신적인 분야를 이끌고 있다. 이들은 기존의 생체모방 기술이 벨크로velcro(일명 찍찍이)를 시작으로 웨일-파워wale-power(고래, 에너지), 신칸센 고속열차(물총새, 교통), 홍합 접착제(건축·의료) 등 인간의 효율적이고 안전한 삶을 위한 기술에 집중되었던 것을 넘어 이제는 내 뒷마당, 집 앞 공원 등에서도 그러한 기술의혜택을 체감할 수 있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음을 알리고 있다.
생체모방 분야의 선구자, 제닌 베니어스Janine Benyus의 말처럼 “셀룰로오스를 처리하여 종이를 만든 것도, 최적화된 화물 배치를 시도한 것도, 방수 혹은 어떤 구조체의 가열 및 냉각을 시도한 것도, 누군가를 위해 집을 지은 최초의 존재도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지한다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식의 디자인이 가능할 것이다. 분명 우리 주위의 자연계는 인류가 해야할 일과 상당히 비슷한 종류의 일을 해내고 있다. 게다가 그들의 방법은 지난 수십억 년 동안 지구상에서 우아하고 안전하게 살아올 수 있게 한 보장된 비법이 숨겨져 있다. “당신이 무언가를 발명하고자 할 때마다, 우선 자연이라면 어떻게 할지 생각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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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스케이프] 위플래쉬
선택과 집중, 그 아찔한 전략
위플래쉬Whiplash(2015년 국내 개봉)는 입소문을 타고 절찬 상영 중인 음악 영화다. ‘재즈 연주자를 위한 공포 영화’, ‘음악 영화 탈을 쓴 무협 영화’라고 알려졌지만 ‘그래봤자 장르가 음악인데 과장이 좀 심한 것 아냐’라고 생각하며 영화를 보러 갔다. 나는 놀이동산의 롤러코스터도 무섭고 멀미가 나서 못 타고, 피가 낭자하는 칼부림 영화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심약한 심장의 소유자다. 원빈의 셀프 삭발 장면이 영화 ‘아저씨’에서 마지막으로 본 장면이다. 그가 제대로 싸우기 시작할 때쯤엔 극장 문을 나와 안전한(?) 장소에서 동행을 기다렸다. ‘채찍질’이라는 의미 그대로 ‘위플래쉬’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마지막 시퀀스가 끝나고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쯤에야 정신이 차려질 만큼 영화 내내 긴박감이 넘친다. 보는 동안 심장 박동수가 평소보다 몇 배는 빨리 뛰었다. 어지간한 자동차 추격신보다 스릴감이 넘쳤고, 칼 한 자루 등장하지 않지만 칼부림 영화보다 더 잔인하게 느껴졌다. ‘아저씨’를 두 번이나 본 강심장인 지인도 비슷하게 느꼈다고 한다.
밴드 지휘자와 드럼 연주자, 이 두 주인공이 영화의 처음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팽팽한 긴장감을 이어간다. 스승과의 교감을 통해 음악을 매개로 성장하는 스토리는 사실 진부한 소재다. ‘위플래시’의 특별한 전략은 이 흔한 소재를 완전히 새로운 음악 영화로 바꾸어 놓았다. 스승의 인격과 방식이 올바른지, 과연 제자가 성장한 건지는 별개문제로 두기로 하고, 다음에서는 영화의 성취에 대해 집중해 보기로 한다. 영화는 한 괴물과 점점 괴물이 되어 가는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나고 어떻게 부딪혀서 결국 어떤 불꽃이 튀는지 그 발화 과정을 드럼이라는 악기의 연주를 통해 전개하고 있다.
서영애는 ‘영화 속 경관’을 주제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한겨레 영화 평론 전문 과정을 수료했다. 조경을 제목으로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으며 영화를 삶의 또 다른 챕터로 여긴다. 영화는 경관과 사람이 구체적으로 어떻게관계 맺는지 보여주며 인문학적 상상력을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텍스트라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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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회의] 난중일기의 전략
조경 저널리즘과 비평을 고민하다
온라인 미디어의 등장으로 매체의 수가 늘어나고 그 결도 다양해졌지만, 오히려 저널리즘은 풍요 속의 빈곤을 겪고 있다. 실시간으로 바뀌는 검색어와 자극적 헤드라인, 이미지의 향연 속에서 독자들을 사유와 반성, 새로운 시각의 길로 이끌던 저널리즘의 철학은 설곳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 특히 급변하는 매체 생태계 속에서 종이 잡지는 존폐의 위기마저 겪고 있다.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인터넷 뉴스와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정보의 포화 속에서 독자들의 시선을 모니터와 스마트 폰에 빼앗긴 탓이다.
하지만, 조경이나 건축 매체의 환경은 상황이 조금 다르다. 종이 매체가 몹시도 고전하고 있다는 점은 동일 하지만, 최근 2~3년 동안 종다양성 측면에서 새로운 변화가 감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첫 건축비평지를 표방하며 창간된 『건축평단』(2015년 3월 창간), 건축 과정을 이미지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기록하는 『다큐멘텀』(2014년 5월 창간), 건축 밖의 사람들과 연대를 모색하며 하나의 주제에 대한 다각도의 논의를 담아내고 있는 『건축신문』(2012년 4월 창간) 등이 연이어 등장한 것이다. 또한 2008년 1월에 창간된 격월간 건축 리포트 『와이드』 역시 그 색깔을 굳건히 지켜나가고 있다. 이도저한 온라인의 시대에 종이를 기반으로 해서 말이다. 이는 2000년대 중반 이전과도 미묘하게 다른 상황이다. 당시 『SPACE』, 『건축과환경』, 『건축문화』, 『건축인 포아』, 『이상건축』, 『플러스』 등의 건축 전문지들은각기 다른 색깔로 이슈와 담론을 생산해냈지만, 그 내용과 형식이 지금처럼 크게 갈리진 않았다. 실험적이라는 (혹은 무모하다는) 느낌이 드는 잡지도 눈에 띄지 않았다. 오히려 모두가 (지나치게) 잘 만들어졌지만, 변별력이 커 보이지 않았다. 이후 그 잡지들 중에서 몇몇은 기존의 색깔이 점차 희미해지면서 해외 작품 위주의 화보집으로 바뀌거나 폐간의 고비를 넘기지 못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 확연히 구분되는 포맷과 지향점을 내세운 색다른 종이 매체들이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조경 매체는 이와는 사정이 또 다르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온라인을 기반으로 한 ‘라펜트’, 주간으로 발행되는 『한국조경신문』, 해외 작품 위주의 『조경세계』 등이 하나둘 새롭게 생겨났지만, 조경 포털이나 주간신문이라는 본연의 역할에 충실했다. 실험적이지는 않았다는 의미다. 『환경과조경』 역시 마찬가지다. 오히려 2000년대 초반에 두 차례 발간된 조경 무크지 『로커스』가 가장 실험적인 조경 매체였다.
물론 모든 매체가 실험적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종이 잡지를 만드는 이들과 그 (잠재적) 독자들에게 색다른 매체의 등장과 그들의 도전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리고 그 매체들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환경과조경』만의 색깔은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된다. 이번호에는 그 고민의 연장선상에서, 대폭적인 리뉴얼을 단행한 2014년부터 잡지 제작 전반에 걸쳐 도움을주고 있는 편집위원 다섯 분과 함께 ‘편집회의’를 진행하여 그 내용을 지면에 옮긴다(김진오 편집위원(경희대학교 교수)은 당일 부득이한 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했다). 가장 열성적인 독자이기도 한 편집위원들은 잡지 전반에 대한 평가부터 조경 매체의 역할과 비평의 활성화 방안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아이디어와 의견을 보태주었다. 먼저, 박승진 소장이 들려준 이야기를 맛보기로 전하며 ‘편집회의’를 시작한다. 그는 요즘 『징비록』을 읽고 있다는데, 비교가 불가할 정도로 『난중일기』가 재미있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전쟁이 모두 끝난 후 과거를 회고조로 기술한 『징비록』보다는 전쟁터의 한 가운데에서 그 긴박한 순간을 생생하고 치밀하게 묘사한 『난중일기』가 독자 입장에서 단연 재미있고 박진감 넘친다는 것. 한국 조경의 오늘을 기록하고 있는 『환경과조경』은 징비록일까, 난중일기일까? 아니면 손자병법이 되어야 하는 걸까?
김세훈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환경조경학과 도시설계전공 교수
김영민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교수
남기준 편집장
박성태 정림건축문화재단 국장, 「건축신문」 편집인
박승진 디자인 스튜디오 loci 소장
배정한 편집주간, 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
서영애 기술사사무소 이수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