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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까이 보기, 다시 읽기] 주차장 = 정원?
    날카롭고 반듯하게 제작된 철제 경계에지다. 1cm 이상의(1/2인치) 두꺼운 내후성강weatherproof steel을 마치 얇은 종이를 접듯 예각을 살려 제작했다. 두꺼운 종이를 접을 때도 그렇듯이, 철판을 구부리거나 접으면 그 모서리가 둥글게 휘어 날카로운 디테일을 만들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사진의 사례는 디자인한 평면과 높이에 맞추어 거푸집을 짜고, 금속을 주조한 후, 모서리와 접힌 안쪽 면을 매끄럽게 다듬은 후가공의 결과물이다. 예각의 모서리나 다른 철판과 T자로 만나는 부위 어디에도 이음매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세심하게 가공된, 공예품 수준의 솜씨 좋은 경계에지 디테일이다. 흥미로운 부분은, 이 정도 디테일을 적용한 장소가 일반적으로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넘어가기 쉬운 주차장의 연석이라는 점이다. ...(중략)... 안동혁은 뉴욕에 위치한 제임스 코너 필드 오퍼레이션스(James Corner Field Operations)에서 활동하고 있는 펜실베이니아 주 등록 미국 공인 조경가(RLA)다.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조경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 현재 회사에 8년째 근무하면서 Philadelphia Race Street Pier, 부산시민공원, London Queen Elizabeth Olympic Park, Hong Kong Tsim Sha Tsui Waterfront 등의 프로젝트를 진행해 오고 있다. * 환경과조경 354호(2017년 10월호) 수록본 일부
  • [다른 생각, 새로운 공간] 안완배 문호리 리버마켓 감독 시장은 디자인이다
    경기도 양평 서종면 문호리의 리버마켓은 예전부터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다. 일 년쯤 전에 안완배 선생의 강연에서 셀러와 자녀들이 함께 모델이 되는 패션쇼를 보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렇지만 매달 셋째 주말에 맞춰 가는 게 쉽지 않았다. 마침내 기회가 왔다. 조카들 데리고, 밀리는 강변북로를 꾹 참고 통과해 드디어 서종 도착. 결과적으로 우리는 6시간을 머물렀다. 날씨도 덥고 뙤약볕이었지만, 1.2km 구간을 오르내리며 구경하고 체험하고 강변에서 쉬다 보니 어느덧 해질녘이다. 예상보다 쇼핑도 많이 했다. ...(중략)... 최이규는 1976년 부산 생으로 뉴욕에서 10여 년간 실무와 실험적 작업을 병행하며 저서 『시티오브뉴욕』을 펴냈고, 북미와 유럽의 공모전에서 수차례 우승했다. UNKNP.com의 공동 창업자로서 뉴욕시립미술관, 센트럴 파크, 소호 및 대구, 두바이, 올랜도, 런던, 위니펙 등에서 개인전 및 공동 전시를 가졌다. 현재 계명대학교 도시학부에 생태조경학전공 교수로 재직하며 울산 원도심 도시재생 총괄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다. * 환경과조경 354호(2017년 10월호) 수록본 일부
  • [명사의 정원 생활] 괴테의 정원, 충동과 열정을 다스린 예술의 장
    독일 최고의 대문호로 불리는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1749~1832)는 문학뿐만 아니라 철학, 신학, 법학은 물론 과학, 지질학, 원예학, 광물학에도 해박했다. 여덟 살에 시를 쓰고 열세 살에 시집을 낼 만큼 타고난 문재로 소설, 산문, 희곡에 걸쳐 방대한 업적을 남겼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후 변호사로 활동하기도 했고 바이마르 공국의 재상이 되어 정치가로서 재능을 떨치기도 했다. 튀링겐 지방의 여러 숲을 찾아다니며 식물을 깊이 연구한 식물학자이면서, 사람 앞니 뼈를 최초로 발견한 비교해부학자로 이름을 알리기도 했다. 괴테는 고전주의 미학에 근거한 조화와 완전성을 갖춘 인간상의 전형으로, 불멸의 예술적 가치를 주창한 선도적 문학사상가로, 인간 정신과 자연을 파괴해 온 근대 과학에 최초로 반기를 든 인문과학자로 칭송된다. 그의 작품에 일관된 휴머니즘은 동독과 서독의 정신적 융화에도 중요하게 작용했다는 평가가 있다. ...(중략)... 성종상은 서울대학교에서 조경을 공부한 이래 줄곧 조경가의 길을 걷고 있으며, 지금은 대학에서 조경을 가르치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선유도공원 계획 및 설계, 용산공원 기본구상, 2013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장 마스터플랜, 천리포수목원 입구정원 설계 등이 있다. 최근에는 한국 풍토 속 장소와 풍경의 의미를 읽어내고 그것을 토대로 풍요롭고 건강한 삶을 위한 조건으로서 조경 공간이 지닌 가능성과 효용을 실현하려 애쓰고 있다. *환경과조경354호(2017년 10월호)수록본 일부
  • [시네마 스케이프] 프란츠
    서양 현대 철학자들이 아시아 중에서도 한반도의 상황을 예시로 들어 자신의 철학 사상이나 이론을 펴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유일한 분단국으로 북한에서 연일 미사일을 쏘아대지만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대범함(?)을 지닌 민족, 짧은 기간에 경제 성장을 이루었지만 대다수가 힘들다고 느끼는 나라. 명료하게 설명하기 어렵다. 마르크스와 자크 라캉의 정신 분석에 기반한 이론가로 알려진 슬라보예 지젝은 최근 저서 『자본주의에 희망은 있는가』(박준형 옮김, 문학사상, 2017)에서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이렇게 본다. “일제강점기 피해는 심각해서 한국인은 끔찍한 상처를 잊고 일상을 지속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래서 ‘잊지는 말되 용서하라’는 니체의 표준화된 공식을 완전히 반대로 적용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즉, 일본의 잔학성을 ‘잊되 절대 용서하지는 말라’는 것이다.” 지젝은 용서는 하지만 절대 잊지 않겠다는 태도에는 언제까지나 죄책감을 느끼게 하겠다는 강력한 협박의 뜻이 교묘하게 담겨 있다고 해석한다. 어쩌면 잊지 말아야 할 일을 자주 ‘잊는’ 한국인의 태도를 비판하는 것으로도 들린다. ...(중략)... 서영애는 조경을 전공했고, 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다. 지난 8월 말, 그간의 연재를 묶어 단행본 『시네마 스케이프』를 선보였다. 책이 나오기까지 마음 써 주신 분들, 출판 북토크에 와 주신 분들, 격려해 주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출간을 계기로 더 분발해야겠다는 책임감을 느낀다. 다시 초심이다. *환경과조경354호(2017년 10월호)수록본 일부
  • [예술이 도시와 관계하는 열한 가지 방식] 내부의 난민들
    “도대체 저 사람은 상식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우리는 가끔 타인의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에 화가 날 때 이렇게 말하곤 한다. 그러나 우리가 말하는 상식이란 결국 나 개인이 ‘상식’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즉 어느 정도 이미 합의된 사회적 약속이며 나와 내 주변에서 통용된다고 내가 믿는, 학습에 기반을 둔 스스로의 믿음이자 지레짐작이다. 언어가 합의를 ‘가정’해야만 그 위에 가상의 건물이라도 지을 수 있듯이, ‘상식’ 역시 불가능한 합의를 가정하는 것이다. 우리는 단 한 번도 자신이 학습한 그룹 이외의 집단이나 상대에게 나의 상식이 통용 가능한지 실험해 보지 못한 채 사회의 상식을 상정한다. 그것이 누구에게나 당연한 것이라고 여긴 채 어떤 상황에 대응했다가 상처를 받거나 가시 돋친 말로 상대의 몰상식을 탓한다. 내가 사회와 공유한다고 믿고 있는 상식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 우리의 상식, 도덕, 법과 제도는 우리 모두를 담거나 모두에게 동일할 수 있는가? ‘우리’는 누구일까? 내가 속한 사회의 주류 상식이 내 상식과 달라 어려움을 겪을 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일정 수준의 다름이야 인정하고 공생을 타진할 수 있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 또는 사회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의 상식이 그들과 공생 불가능할 정도로 나의 상식과 다르다고 느낄 때, 특히 그런 상식을 기반으로 한 사회, 도덕과 법, 제도를 포함한 사회가 나와 맞지 않을 때, 나는 어떻게 삶을 살아낼 수 있을까? 언어, 상식, 사회가 모두를 제대로 담지 못하는 애초에 불가능한 합의, 거짓 합의에 바탕을 둔 것이라면 우리는 어째서 이에 근거하여 모든 것을 세우고 있는 것일까? 진나래는 미술과 사회학의 겉을 핥으며 다방면에 관심을 갖고 게으르게 활동하고 있다. 진실과 허구, 기억과 상상, 존재와 (비)존재 사이를 흐리고 편집과 쓰기를 통해 실재와 허상 사이 ‘이야기-네트워크-존재’를 형성하는 일을 하고자 하며, 사회와 예술, 도시와 판타지 등에 관심이 있다. 최근에는 기술의 변화가 만들어내는 지점에 매료되어 엿보기를 하고 있다. 2012년 ‘일시 합의 기업 ETC(Enterprise of Temporary Consensus)’를 공동 설립해 활동했으며, 2015년 ‘잠복자들’로 인천 동구의 공폐가 밀집 지역을 조사한 바 있다. www.jinnarae.com *환경과조경354호(2017년 10월호)수록본 일부
    • 진나래[email protected] / ‘일시합의기업 ETC’, ‘잠복자들’ 공동대표
  • 너, 나, 우리의 정원, 2017 서울정원박람회 여의도공원, 9. 22. ~ 9. 26.
    지난 22일 여의도공원 문화의마당에서 2017 서울정원박람회 개막식이 열렸다. 서울정원박람회는 노후화된 공원을 정원을 통해 재생하고, 정원 문화 확산과 정원 산업 활성화를 위해 2015년부터 시작한 행사다. 올해 서울정원박람회는 서울특별시와 서울정원박람회 조직위원회가 주최하고 환경조경나눔연구원과 본지가 주관했으며, 전시·문화·시민 참여 행사가 결합된 다양한 정원 문화 프로그램과 80개의 전시 정원으로 구성됐다. 2017 서울정원박람회는 ‘너, 나, 우리의 정원’이라는 주제로 추진됐다. 그 일환으로 지난 4월부터 7월까지 공모전을 열어 작가정원 12팀, 포미터가든과 더블포미터가든 각 10팀, 팝업가든 10팀을 선정해 정원을 조성한 후 2차 심사를 거쳐 최종 수상작을 결정했다. ...(중략)... *환경과조경354호(2017년 10월호)수록본 일부
  • 인천 중앙공원 활성화 설계공모 지·오조경기술사사무소의 ‘레거시 2020’ 최우수작 선정
    지난 8월 29일 인천시청 영상회의실에서 ‘중앙공원 활성화 설계공모전’의 시상식이 개최됐다. 인천 중앙공원은 인천시 남구 관교동에서 남동구 구월3동까지 이어지는 폭 100m, 길이 3.9km, 면적 35만4천m2의 선형 공원이다. 인천시는 공모전을 통해 중앙공원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인근 지역과도 연계·소통할 수 있는 기본 계획안을 수립하고자 했다. 이번 공모의 핵심은 기존 공원이 지닌 도시숲 기능을 유지하면서 미래 지향적인 공간을 구성해 공원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도로로 인해 단절된 구간을 연결하고 좁은 폭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야 했다. 주변 주거지, 상업지와 연계한 협력 파트너 등 주민 참여 계획도 요구되었다. ...(중략)... *환경과조경354호(2017년 10월호)수록본 일부
  • 도시는 무엇을 공유해야 하는가?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DDP와 돈의문박물관마을에서 9월 2일부터 11월 5일까지
    서울은 지금 물리적으로 낡은 도시를 재생하는 일로 한창이다. 지난 5월 오래된 고가에서 보행로로 탈바꿈한 서울로 7017에 이어, 9월 1일에는 41년간 닫혀 있던 마포 석유비축기지를 축제와 공연, 전시 등 풍부한 문화 활동이 열리는 문화비축기지로 재탄생시켜 공개했다. 비단 서울만의 일이 아니다. 이미 세계 곳곳에서 역사적·문화적 자원을 기반으로 쇠퇴한 도시를 되살리려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과연 다른 국가에서는 어떤 도시 문제가 발생하고 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을까? 이런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는 ‘제1회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Seoul Biennale of Architecture and Urbanism’가 지난 9월 2일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와 돈의문박물관마을(이하 박물관마을)에서 개최됐다. ‘공유도시Imminent Commons’를 주제로 한 이번 비엔날레에는 전 세계 50여 개의 도시가 직면한 환경적, 건축적, 사회·문화적 도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시가 무엇을, 어떻게 공유할지 논의하는 장으로 마련되었다. 총감독은 배형민 교수(서울시립대학교)와 알레한드로 자에라-폴로Alejandro Zaera-Polo 교수(미국 프린스턴 대학교)가 맡았다...(중략)... *환경과조경354호(2017년 10월호)수록본 일부
  • [편집자의 서재]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잡지 편집은 물론, 행사 준비로 정신없던 9월이 끝나가고 있다. 곧 2017 서울정원박람회도 마무리된다. 잡지 마감을 이유로 박람회 기획이나 운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진 못했지만, 이런저런 일을 돕고 나면 고단해져 머리 붙일 곳만 있으면 잠들어 꿈도 꾸지 않았다. 지금보다는 덜 피곤했기 때문일까, 사실 대학생일 때만 해도 나는 쉽게 잠들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소위 말하는 개꿈도많이 꾸고, 적어도 한두 시간은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상상(망상)에 수십 번 뒤척였다. 그런 생각도 곧잘 했다. 만약 나에게 시간 여행이 허락된다면 무엇을 하면 좋을까. 대부분 과거의 나에게 로또 번호를 알려주자는 불온한 결말로 끝을 보았는데, 3년 전 어느 날부터는 이런 상상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 당시로 돌아가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을까 봐 두려워서. 몇 날 며칠 TV 뉴스를 채웠던 바다와 그 한가운데 놓인 배의 모습을 아직도 기억한다. 당시 인턴으로 일하고 있던 회사 인근 식당은 점심시간이면 모두 채널을 뉴스에 고정해 놓았다. 처음에는 화면을 주시하느라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던 사람들은 시간이 흐르며 서서히 뉴스를 외면하기 시작했다. 나도 그 무리에 있었다. 우리의 시선을 밥그릇에 붙들어 놓은 건 일종의 무력감이었다. 발버둥 쳐도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 나의 무력함, 그 사실을 깨달은 데서 오는 불편함. 그때 처음으로 삶이 허무해졌다. 운이 좋아 살아남은 나는, 운이 없으면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 삶을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지 퍼뜩 궁금해지기도 했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가 출간된 1990년대 말도 그 당시와 닮아있던 걸까, 이 책의 등장인물 대부분은 냉소적이고 삶에 어떤 집착을 보이지 않는다. 모두가 허무주의자처럼 보이고, 작품의 톤 역시 상당히 관조적이다. 줄거리는 간결하다. 화자인 ‘나’는 자살을 원하는 사람을 물색해 자살을 돕고 그 대가로 그들의 이야기를 받는다. 이 책에서 ‘나’가 수집한 이야기는 ‘유디트’와 ‘미미’라는 여자의 삶으로, 이 둘은 모두 자살에 성공한다. 즉 작품 제목의 ‘나를 파괴할 권리’는 자신을 속박하고 있던 어떤 틀을 부순다거나 자신을 진창에 빠트리는 것을 넘어 ‘스스로 자신의 삶을 끊을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하는 것이다. 한 번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인생을 끌고 가본 적 없는 유디트와 항상 비슷한 작업을 반복하는 예술가 미미. 그 둘은 제 삶을 바꿀 수 없다는 무력감에 사로잡혀 있었고, 삶을 이어 나가게 할 어떤 목표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런 그들에게 생기를 불어넣은 건 자살뿐이다. 매번 무기력하게 늘어져 있던 유디트는 자살 계획을 세우며 처음으로 “확연히 다른 면모”(각주1)를 보여준다. “갑자기 신이 나는 거 있죠. 내게 인생이란 제멋대로인 그런 거였어요. 언제나 내 뜻과는 상관없는 곳에 내가 있곤 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달라요.”(각주2)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을 메우려는 듯 항상 입에 물고 있던 추파춥스도 잊은 채, 그녀는 자살 방법을 검색하고 있는 노트북 화면에 집중한다. 죽음을 계획하며 삶의 기운을 되찾는다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하지만 지나온 인생에서 무언가를 선택할 기회를 얻지 못한 그들에겐 생명을 포기하는 것이야말로 처음으로 얻은 자신에 대한 결정권이었는지도 모른다. 자살이란 살아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교만한 권리이기도 하니까.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건조하게 죽음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책을 덮은 뒤 우울함을 닮은 허무함이 일상을 잡아먹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들의 죽음은 비극이라기보다 후련함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아무도 다른 누구에게 구원일 수는 없어요”(각주3)라는 ‘나’의 말처럼 그들은 다른 누구의 손을 빌리지 않고 직접 자신을 구원했다. 다만 죽은 자는 말이 없기에 그들이 자신의 선택을 만족스러워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죽음을 맞은 그들의 얼굴이 평온해 보이는 이유가 ‘죽음’ 때문인지 자신이 직접 죽음을 ‘선택’했기 때문인지 판단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왜 멀리 떠나가도 변하는 게 없을까”(각주4)라는 물음은 갖은 몸부림에도 바뀌지 않는 상황에 대한 회의이기도 하지만, 바꾸어 말하면 도망치거나 회피해도 변하는 것은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나’를 따라갈 “자신이 없는 자들은 절대 뒤돌아보지 말 일이다. 고통스럽고 무료하더라도 그대들 갈 길을 가”(각주5)야 할 것이다. 3년 전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던 일들이 최근 일어나고 있다. 바뀌지 않을 것 같던 상황의 변화를 목격한 만큼, 내 앞에 3년 전으로 돌아갈 수 있는 버튼이 나타난다면 망설임 없이 누를 수 있는 용기가 생기기를. 1. 김영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문학동네, 2017, p.71. 2. 위의 책, p.71. 3. 위의 책, p.133. 4. 위의 책, p.134. 5. 위의 책, p.134.
  • [CODA] 정원과 음식 문화
    지난 9월 22일, 환경과조경이 환경조경나눔연구원과 함께 주관한 두 번째 서울정원박람회가 여의도공원에서 개최됐다. 조금 일찍 찾아온 추석 연휴 덕택에 10월초에 열리던 박람회가 9월로 앞당겨지긴 했지만 어느새 1년이 흘렀음을 실감한다. 문득 작년 이맘때는 어떤 생각을 하며 무슨 일들을 했는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2016년 10월호 코다부터 들춰 보기 시작했다. 11만2천5백 작년 코다의 마지막 문장은 “제발 청명한 가을 하늘에 오팔지가 만국기처럼 휘날리기를 기원하며 이 글을 마친다”였다. 서울정원박람회 개막을 코앞에 두고 처음 만들어 본 오로라타프가 무사히 완성되길 바라는 내용이다. 당시 중앙무대 앞 200여 평의 면적을 가릴 그늘막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 많은 고민과 토론, 시행착오 끝에 11만2천5백 조각의 오팔지를 어망에 달아 타프를 치듯이 지지하는 디자인을 완성했다. 많은 사람의 ‘노가다’ 끝에 완성된 타프를 현장에 설치한 기쁨도 잠시, 개막식 날 새벽에 쏟아지는 비와 우박 소리를 들으며 잠을 깼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망했구나’ 싶었지만, 꽤 튼튼하게 만들어진 타프는 다행히 큰 피해를 입지 않아 빗소리를 듣고 달려온 직원들의 노력으로 복구할 수 있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만들어진 타프는 개막식이 열릴 즈음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활짝 갠 맑은 하늘 아래 무지개처럼 빛났고, 11만2천5백 조각의 오팔지가 창공에서 나부끼는 소리는 바람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타프는 곧바로 박람회장의 명물이 되었고, ‘오로라타프’라고 부르기로 했다. 이후 여러 지자체에서 대여와 제작 문의가 들어왔지만, 우선은 서울정원박람회만의 랜드마크로 삼기로 했다. 올해 오로라타프의 재료는 홀로그램지. 그 결과, 2017년 서울정원박람회장 중앙무대 앞에는 은(갈치)색 타프가 일렁거리고 있다. 정원에 차린 식탁 2.0 2016년 9월호 코다에서는 당시 준비하던 서울정원박람회 시민 참여 체험 프로그램인 ‘정원에 차린 식탁’을 소개하고 있다. 대한민국 9대 요리명장 중 한 명인 박효남 셰프를 초청했는데, 셰프가 텃밭 작물을 이용한 레시피를 선보이고, 가족들이 함께 따라해 보며 시식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정원에 차린 식탁’ 역시 작년에 처음 시도해보는 프로그램이어서 이런저런 걱정이 많았으나, (누가 준비했는지!) 성황리에 끝난 덕택에 올해도 마련했다. 물론 변화가 있다. 작년 코다에서는 “‘정원에 차린 식탁’은 최근 높아진 요리에 대한 관심에도 기대고 있지만 단순한 노동의 즐거움, 손수 키워 먹는 재미를 다양하게 확장하려는 욕구에 부응하기 위해 준비”했다는 기획 의도를 소개하고 있다. 한편 올해는 지역의 삶과 음식 문화를 담아보고자 했다. 이번 ‘정원에 차린 식탁’에는 ‘별난청년들’이라는 강원도 평창에서 태어나거나 자라 고향을 지키며 살고 있는 청년네트워크가 참여했다. 별난청년들은 각자 건강하게 농사를 짓고, 지역의 특산물을 활용해 빵과 과자를 만들고, 새로운 음료를 개발하고, 독창적인 음식을 연구한다. 동시에 브레드메밀, 평창다반사, 베짱이농부, 핫플레이스, 산너머음악공방 등의 이름으로 자신만의 회사를 차려 성공적인 경영을 하고 있는 청년 창업가들이기도 하다. 이 청년들이 농촌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는 지난 24일 정오, 올해의 박람회장인 여의도공원의 중앙무대에서 확인할수 있었다. 별난청년들은 평창의 식재료를 가지고 참여자들과 함께 요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시식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날의 프로그램은 간단한 레크리에이션을 통해 음료 전문가 최승수가 직접 블렌딩한 차, 허니문 에이드를 맛보는 것으로 시작됐다. 갓 결혼한 그가 허니문베이비를 갖게 된 것을 기념하는 차 이름이다. 이어지는 메뉴는 장발잔 루스티크에 파머스 샐러드를 넣은 샌드위치, 그리고 파파 소시지 꼬지. 재료와 요리의 이름이 독특한 만큼 담긴 스토리도 재미있다. 직접 농사지은 브로콜리와 감자를 들고 나온 베짱이농부 최지훈은 아이들에게 평소 잘 먹지 않는 야채 줄기의 맛을 보게 해보고 식재료에 대해 설명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평창의 전통시장 안에서 로컬 베이커리 브레드메밀을 운영하고 있는 최효주는 “빵 속에 강원도를 담았다”며 강원도에서 생산된 밀가루와 물, 소금 등으로 만든 건강한 빵 루스티크를 선보였다. 루스티크는 장발잔이 훔쳤다는 그 빵 이름이다. 두 아이의 아버지이자 평창의 로컬 푸드 & 펍인 핫플레이스 대표 김명진은 아이들을 위한 마음으로 준비했다며 제주도산 흑돼지로 만든 파파 소시지를 멋지게 구워냈는데, 어린 친구들의 인기를 독차지했다. 여기에 평창 로컬 뮤지션인 안병근이 만든 음악이 행사장에 흘러 정원에서 즐기는 가을 소풍의 흥겨움을 한층 더했다. 음식에는 지역과 생산자의 이야기가 담기기 마련이다. 대도시에 살다보면 내가 먹는 음식이 어디에서 어떻게 생산되는지 알기 어렵다. 최근 살충제 계란 사태 덕택에 먹거리의 안전과 생산 과정, 가축의 사육 환경과 복지 등에 관한 근본적인 관심이 높아졌다. 청년들이 중심이 되어 마련한 자연과 문화가 어우러진 소풍을 보니, 그 대안을 지역의 삶과 음식 문화를 키우는 데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