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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술이 도시와 관계하는 열한 가지 방식] 가까운, 또는 먼 이웃
    대규모 단지의 재개발이 이루어지려면 그곳에 살던 원주민들은 영구적이든 한시적이든 이주를 해야만 한다. 새로 지어진 건물에 원래 살던 이들이 항상 입주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설사 입주할 수 있는 경우라 하더라도 임시로 거주할 만한 공간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려운 상황 때문에 살던 곳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음에도 재개발을 늦추지 못해 강제 철거를 하는 경우 역시 비일비재하다. 이러한 폭력적인 과정에서 삶을 파괴당하는 것은 비단 사람만이 아니다. 그곳에 터를 잡고 살던 고양이를 포함한 동물들이 철거 과정에서 압사당하기 일쑤고 드넓은 배밭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등, 그 땅을 기반으로 지속해 온 생태계 전체가 거대한 삽 앞에서 무력하게 스러지곤 하는 것이다. 때문에 둔촌주공아파트 단지의 대규모 재건축이 예정되면서 동네 고양이들을 돌보던 이들은 고양이들의 안전한 이주를 고민하게 되었다. ‘둔촌냥이’는 봉우곰스튜디오의 김포도 작가, 마을에숨어의 이인규 작가, 개인 활동가 정미진 씨가 함께 둔촌주공아파트 단지 내에 살던 고양이들의 이주를 위해 만든 일시적 모임이다. 이들은 고양이를 도시 공동체의 한 일원이라 여기고, 생태적 이주를 모토로 고양이가 최대한 자발적으로 아파트 단지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이 프로젝트로 (재)건축의 논리가 자연과 공존으로 좀 더 폭넓은 관점을 가지게 되었으면 한다는 이들의 활동은 정재은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로 기록될 예정이다. ...(중략)... 진나래는 미술과 사회학의 겉을 핥으며 다방면에 관심을 갖고 게으르게 활동하고 있다. 진실과 허구, 기억과 상상, 존재와 (비)존재 사이를 흐리고 편집과 쓰기를 통해 실재와 허상 사이 ‘이야기-네트워크-존재’를 형성하는 일을 하고자 하며, 사회와 예술, 도시와 판타지 등에 관심이 있다. 최근에는 기술의 변화가 만들어내는 지점에 매료되어 엿보기를 하고 있다. 2012년 ‘일시 합의 기업 ETC(Enterprise of Temporary Consensus)’를 공동 설립해 활동했으며, 2015년 ‘잠복자들’로 인천 동구의 공폐가 밀집 지역을 조사한 바 있다. www.jinnarae.com *환경과조경355호(2017년 11월호)수록본 일부
  • 자연 자원을 활용해 지역의 가치를 드높이다 허태정 대전시 유성구청장
    매년 10월이면 대전시 유성구 유림공원 일대가 노란 물결로 일렁인다. 2010년부터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열리는 ‘유성 국화전시회’를 빼곡히 채운 국화꽃들이다. 지난 10월 14일부터 29일까지 유성구 공원녹지과는 “또 하나의 상상 또 하나의 즐거움”이라는 주제로 ‘제8회 유성 국화전시회(이하 국화전시회)’를 열었다. 올해의 테마는 ‘빛’으로 다양한 조명이 밤에도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했고, 유성천에 새로 조성된 섶다리 옆으로는 LED 물고기가 헤엄쳤다. ‘국향천리 인향만리’를 주제로 개최된 작년과는 확 달라진 풍경이다. 이처럼 매번 새로운 모습을 선보이기 때문일까, 국화전시회는 이제 유성구민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 사람들도 방문하는 관광 코스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사실 국화전시회는 유성구 양묘장에서 청사 환경 개선과 가로 환경 조성 사업을 위해 직접 기르던 국화를 유성구청사에 조촐하게 전시한 데서 출발했다. 이렇게 작은 행사가 어떻게 유성구민을 넘어 다른 지역 사람을 끌어들이는 축제로 발전할 수 있었을까? 허태정 대전시 유성구청장을 만나 그 성공 비결을 들어보았다. 직접 재배한 국화, 손수 제작한 조형물 허태정 구청장은 국화전시회의 차별화 전략으로 ‘직접’ 재배한 국화와 ‘직접’ 만든 조형물을 꼽았다. 실제로 공원녹지과 직원들은 매년 외부 용역에 의존하지 않고 직접 국화를 재배할 뿐만 아니라 전시에 필요한 조형물도 손수 제작하고 있다. 이로써 직원들이 자연스럽게 행사에 애착을 갖게 되었으며, 예산 절감 등 행사의 효율성도 극대화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식물을 다루는 행사인 만큼 뜻하지 않은 어려움이 발생하기도 한다. 특히 올해는 유난히 무더위와 가뭄이 심해 걱정이 많았다.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과 저녁에 물을 주고 방제도 했지만, 조형물에 전시해 놓은 생육 상태가 좋은 국화가 7~8월에 갑자기 고사하는 바람에 새로운 국화로 바꾸는 작업을 밤새 진행하기도 했다. 다행히 잘 마무리되어 성공적으로 전시회를 시작할 수 있었다. ...(중략)... * 환경과조경 355호(2017년 11월호) 수록본 일부
  • [편집자의 서재] 건축왕, 경성을 만들다
    왜 ‘건설왕’이라 하지 않고 ‘건축왕’이라 했을까? 책장을 덮고 든 첫 번째 의문이다. “식민지 경성을 뒤바꾼 디벨로퍼 정세권의 시대”라는 부제목처럼 정세권은 1920년대에 북촌, 익선동, 창신동 등 경성 전역에 한옥 대단지를 건설한 부동산 개발업자다. 그가 지은 한옥 단지의 규모가 크지 않았다면 한옥 집장사로 불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그의 활동은 단순한 집장사와는 거리가 멀다. 전통 한옥에 근대적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한 개량 한옥을 대량 공급하여 조선인의 주거지를 확보하고 주거 문화를 일대 개선했으니, 그 업적이 결코 폄하되어선 안 될 것이다. 게다가 이 책의 적지 않은 분량은 조선물산장려회를 기반으로 한 그의 민족운동에 할애되어 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그가 건축왕일까? 사라지지 않는 의문을 안고 북촌의 한옥 게스트하우스로 향했다. 이 한옥도 정세권이 지은 것일까를 궁금해하면서…. 안국역에서 5분 정도 걸어 올라가면 만날 수 있는 계동 골목의 한옥 게스트하우스는 생각보다 컸다. 마당이 꽤 넓었고, 한옥의 고풍스러움도 느껴졌다. 대문에서 보았을 때 마당의 왼편에는 유리 통창이 시선을 끄는 사랑방이, 오른편에는 별채가 자리 잡고 있다. 전면의 본관 건물에 안방, 큰방, 건넌방이 있으니 객실만 다섯 개에 이른다. 각 객실마다 별도의 화장실이 딸려 있고, 거실과 부엌은 물론 사무실도 별도로 있을 정도로 작지 않은 규모다. 우리가 머문 곳은 별채다. 기역자 형태의 원룸 구조로, 게스트하우스에서 가장 독립적인 공간이다. 목소리가 유난히 큰 어떤 멤버를 위해 굳이 별채를 골랐다고 한다. P가 다음 독회 책으로 『건축왕, 경성을 만들다』를 추천했을 때, 누군가 북촌의 한옥에서 독회를 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그 근사한 계획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2017년에서 1920년대로 잠시 동안의 타임 슬립을 시도했다. 우리는 애써 주인장에게 이 한옥이 언제 지어진 것인지를 묻지 않은 채,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오는 별채의 안쪽에 작은 상을 펴고 둘러앉았다. 대개는 책을 고른 사람의 아주 짧거나 혹은 꽤 긴 발제로 이야기를 시작하곤 했는데, 이 날은 달랐다.누군가 던진 감상평 탓이다. 한마디로 아쉬움! 그러자 일제히 아쉬웠던 점들을 나열하기 시작했다. 이전과는 완연히 다른 전개였다. 오고가는 말들의 처음과 끝에는 “일반 독자였다면 흥미로울 수 있었겠지만”이란 단서가 자주 달렸다. 본문만 199쪽인 두껍지 않은 책인데 “책의 절반 이상이 정세권이 경성을 만드는 스토리가 아니라, 정세권이란 인물에 할애되었다”, “기대했던 경성이란 도시의 개발 이야기가 너무 부족했다”, “물산장려운동에 얼마나 많은 자금을 쓰고 노력했는지, 우리는 궁금하지 않다”, “도면을 더욱 보완해야 했다”, “기대에 못 미쳤다. 얕고 거친 추적이었다. 건축이나 도시 자료가 턱없이 부족했다. 3장은 생뚱맞았다. 그 동기가 도시개발과 연계되었다면 모를까”와 같은 독후 소감이 이어졌다.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하지만 이 책 덕분에 북촌의 한옥 지붕 아래에 모여 앉은 우리는 서로의 한옥에 대한 추억을 엿보기도 하면서, 이 책의 장점에도 눈길을 주기 시작했다. ‘경성 건축왕’이란 단어를 접했을 때의 호기심은 누구랄 것 없이 컸다. “정세권이란 인물을 발굴하고 조사하고 추적해서 한 권의 책으로 엮어낸 저자의 노력은 기억할 만하다.” 어떤 이는 프레시안에 연재될 당시의 글을 읽은 적도 있어서, 한 권으로 묶인 단행본에 대한 기대가 더 컸다고 한다. 특히 앞부분에 대한 호감도는 모두 높았다. 한 멤버가 120쪽 밖에 읽지 못했다는 고백을 하자, 필요한 부분은 모두 읽은 셈이라는 다독임이 뒤따랐다. 결국 정세권을 알게 된 점이 가장 큰 수확이란 점에 의견 일치! 게다가 디벨로퍼의 저항 운동이라니! 개인적인 또 하나의 소득은 ‘경성 3왕’의 존재를 알게 된 점이었다. “일제시대 경성의 대자본가들은 ‘왕’이라는 타이틀로 불렸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화신백화점 소유주로 1930년대 조선 최대 갑부 소리를 들었던 박흥식이 있는데, 그는 ‘유통왕’이라 불렸다. 그에 필적할 만한 부를 축적한 인물에 ‘광산왕’이었던 최창학이 있다. 그리고 이들과 더불어 경성 3왕이라 불린 인물이 ‘건축왕’ 기농 정세권이다. 정세권은 한옥집단지구를 경성 전역에 걸쳐 건설하면서 단기간에 대자본가로 성장했다.”(각주1) 토론 중 가장 고개가 끄덕여졌던 대목은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일제강점기에도 ‘일상의 삶’이 영위되었다는 엄정한 사실이었다. 이 지점에서 L이 이야기했다. “어려운 사람은 부리는 사람만 바뀔 뿐 어려운 일상은 그대로다. 그대로의 삶을 살아간다. 어떻게든. 토지의 서희처럼 어쩌면 독립운동이나 민족운동보다 일제강점기에 한 경제 행위가 더 중요할 수도 있다.” 처음의 의문에 답할 차례다. ‘건설왕’이 아닌 ‘건축왕’으로 칭한 (대단하지 않은) 까닭은 독자들의 관심을 더 끌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두 번째 의문인 우리가 잠시 머문 한옥은 정세권이 지은 집이 아니라는 데 의견이 모였다. 지나치게 크고 넓기 때문이다. 멤버 중 한 명의 증언이 이를 뒷받침했다. “다섯 살 때 삼선교 장수마을에서 살았다. 도심형 한옥 주택인 ㅁ자 집이었다. 마당에 볕이 한 줌만큼 들어왔다. 지독히 좁고 어두운 마당이었다. 정세권이 지었을 법한 집이다.” 저녁 9시, 우리는 책을 덮고 계동 골목을 빠져 나와 간단한 뒷풀이를 하고 헤어졌다. 남자 사람들은 집으로, 여자 사람들은 다시 한옥 게스트하우스로. 1. 김경민, 『건축왕, 경성을 만들다』, 이마, 2017, p.55.
  • [CODA] 땐뽀걸즈, 버티는 청춘에 관하여
    민족 최대의 ‘연휴’ 마지막 날. 얼마나 많은 사람이 해외로 나갔는지 ‘도떼기시장’이 되었다는 인천공항의 모습을 뉴스로 보면서, 항공 티켓 한 장 발 빠르게 구하지 못했다고 한탄하며 휴일을 마무리하던 중, 약속 장소인 홍대 근처로 향했다. 정면에 보이는 건 헌팅천국으로 불리는 ‘쏠로포차’. 메르스포비아도 비켜갔다는 청춘사업에 이곳은 여전히 젊은이들로 바글바글. 그들의 젊은 열기가 부럽기도 하면서 얼른 이 시끄러운 곳을 뜨고 싶은 기분이다. 오랜만의 상상마당. 그날 모인 ‘언니들’은 돌아가며 홍대 일대와 얽힌 무용담을 꺼내들지만 10년이 훌쩍 넘은 일들이다. 머쓱해진 어제의 용사들은 서둘러 어두운 영화관으로 몸을 옮겼다. 다큐멘터리란 것만 알고 보기 시작한 영화는 ‘땐뽀걸즈’. 올해 4월 KBS 스페셜로 방송된 거제여상 댄스스포츠반(이하 땐뽀반) 학생들의 이야기를 영화로 다시 편집한 작품이란다. 따뜻한 성장 영화나 성공한 도전기이겠거니 짐작했고, 전형적인 스토리에 쉽게 감동받지 않을 작정으로 삐딱한 시선을 스크린에 고정했다. 조선소의 도시, 거제도 풍경을 스치듯 지난 카메라는 빠르게 경연 대회에 참가한 땐뽀반 아이들과 이규호 선생을 비춘다. 그리고 다시 몇 달 전으로 돌아간다. 수능철이 되면 그 또래 학생들이 모두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것처럼 온 나라가 떠들썩하지만 상업고등학교 학생들의 풍경은 사뭇 다르다. 인문계 고교생에게는 입시가, 실업계 고교생에게는 취업이 지상 과제이련만 지금 이 아이들에게 소중한 것은 댄스스포츠다. 이들은 댄스스포츠를 가르치는 교사와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며 경연 대회를 준비한다. 아니, 거의 반말에 가까운 소녀들의 말을 50대의 선생이 자연스럽게 받는다. 지난 6월호 이 지면에서 윗사람은 공공연하게 반말을 하고 아랫사람은 높임말을 하면서 실질적인 불평등을 되먹임 하는 한국 사회를 진단하며, 아랫사람이 반말을 할 수 있어야 몸에 밴 순종의 문화를 걷어낼 수 있다는 김광식 교수의 주장을 소개한 적이 있다.(각주1) 그러니까 땐뽀반 학생과 교사는 눈높이를 맞춰가며 수평적 관계를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카메라는 술도 먹고, 수업도 땡땡이치는 아이들을 불량 청소년이나 문제아로 재단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미화도 하지 않는데, 있는 그대로 아름답다. 권위 의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교사는 술을 마신 아이들을 야단치기보단 걱정하며 숙취해소제를 건넨다. 연습이 끝나면 선생은 아이들에게 천 원, 이천 원 버스비를 쥐여주고, 기다리는 동생들에게 나눠줄 빵을 사 손에 들려 집으로 들여보낸다. 그 집 안까지 카메라가 따라 들어가 가정사를 속속들이 들추지 않아도 우리는 상상할 수 있다. 소녀들에게서 느껴지는 위태로움은 거제도의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사실 이 영화의 이승문 감독은 ‘거제시의 조선업 몰락’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준비하기 위해 거제도에 내려갔다가 거제여상의 땐뽀반을 우연히 만나, 방향을 완전히 바꾸게 되었다고 한다. 영화 속에서, 한 소녀가 저녁 식탁에서 아버지에게 왜 조선소를 그만뒀냐고 웃으며 묻는다. 다른 일이 해보고 싶었냐고. 아버지는 묵묵히 밥을 먹는다. 그리고 조선소에 취업할 지 묻는 딸에게 니가 원한다면, 이라고 대답한다. 또 한 소녀는 조선소를 그만두고 새로운 직업 교육을 받기 위해 서울로 떠나는 아버지와의 마지막 저녁 식사에 가지 못한다. 늦어진 땐뽀반 연습 때문인데, 원인 제공자인 친구와 갈등을 빚는다. 그 친구는 생계를 위해 땐뽀 연습 대신 아르바이트를 가야 한다. 선생님은 그 친구의 어려운 집안 사정을 모르고 춤을 배우자고 했다고 미안해한다. 산업 구조 변화는 우리 도시와 가정, 그리고 개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수 있다. 그 변화가 청춘들에게 그대로 투영된다. 안전판이 부실한 사회에서 학생들이 흔들리는 이 시기를 무사히 통과하기를. 이 감독은 말한다. “사실 옆에서 지켜보면 아이들이 많이 위태롭다는 걸 알 수 있다. 조금만 발을 헛디디면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할 수도 있고, 실제로 촬영하는 동안에도 아이들 주변에 그런 일들이 많이 일어났다. 그렇다고 어른들이 이 아이들을 구원해 줄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래도 누군가는 이 위태로운 시간을 붙잡아서 버티게 해주는 게 중요하다.”(각주2) 이아 이들에게 그 누군가는 이규호 선생이고 댄스스포츠다. 갈등과 화해, 걱정과 희망의 시간을 통과한 소녀들은 반짝이는 옷을 맞춰 입고 지역의 큰 문화예술홀에서 공연을 하고 입상도 한다. 영상 편지로 사소한 일에서 느꼈던 감사를 표현하는 아이들, 그 모습을 보며 감동이 번지는 선생의 얼굴이 화면 가득 잡힌다. 경연 대회가 끝나도 학생들을 둘러싼 현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가끔 꺼내보며 스스로를 다독일 수 있는 추억은 되지 않았을까. 그리고 사회 변화가 일으키는 파동을 슬기롭게 넘기는 것은 어른들, 우리 모두의 몫이 아닐까. 어두운 영화관을 빠져 나오니 바깥은 불야성이다. 뜬금없지만 이곳의 청춘도 한결 가깝게 느껴진다. 1. 김정은, “말맛과 글맛”, 『환경과조경』 2017년 6월호, p.143. 2. 서지연, “땐뽀걸즈 이승문 감독 ‘결국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IZE Magazine, 2017년 10월 16일.
  • 편안한 휴식과 소통의 장 ‘로툰다’ 이국적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안락한 공간
    로툰다rotunda는 돔을 갖추고 있는 원형 또는 타원형의 평면을 지닌 건물이나 방을 의미한다. 아파트 단지 내 대표적인 휴식 공간의 자리를 퍼걸러에 내주긴 했지만, 로툰다는 여전히 나름의 구조적 미학과 소통의 장의 가치를 자랑한다. 주거 단지의 고급스러움과 조형적 아름다움을 부각하기도 하지만, 형태적 차별화를 꾀하기 어려운 아이템이기도 하다. 그래서 라움하우스는 현재의 트렌드에 맞도록 다양한 형태로 변화를 시도한 로툰다를 꾸준히 기획하고 있다. 대개 무채색으로 디자인되었던 기존 제품과 달리 이국적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색을 가미했다. 또한 과다한 장식 대신 조형적으로 아름답도록 비례를 조정해 현대적이면서도 고전적 기품을 잃지 않은 로툰다를 완성했다. 본연의 기능을 다할 뿐만 아니라 주거 단지의 명품화를 추구하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할 것으로 기대된다. TEL. 02-334-0426 WEB. www.raumhaus.co.kr
    • 라움하우스 / 라움하우스
  • [에디토리얼] 근대적 공간의 탄생
    오늘날 우리가 당연시하는 삶의 패턴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 불과 100여 년 전 일이다. 우리의 사고와 행동과 생활을 새롭게 재편한 이른바 근대적 공간은 개항기와 일제 식민지기를 거치며 도입, 이식, 강제 등 다양한 경로로 생산된다. 도시의 건축과 공간, 생활과 문화에도 급격한 변화가 일어난다. 이번 10월호 특집 ‘모던 타임즈’는 근대적 시간과 공간 개념이 우리 삶에 배치되던 시기에 도시 공간과 문화가 어떤 풍경을 그리며 전개되었는지 탐사한다. 탐사의 대상은 공원, 식물원, 유원지, 풍경 사진이다. 박희성 교수(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는 “왜곡된 근대와 공원의 탄생”에서 당시의 공원을 타자의 입장에서 재구성된 공간, 동도서기를 실천하는 정치 도구, 식민지 도시 시설이라는 세 측면으로 해석한다. 김정화 박사의 글 “근대인의 자격, 식물원 소사이어티”는 식물원의 탄생과 확산의 배경이 되었던 인물, 단체, 학회, 모임 등을 조명하고, 근대의 콘텍스트 속에서 취미, 교양, 식물원이 교차하는 지점을 탐색한다. 김정은 박사는 “기차를 타고 도착한 또 다른 세계”에서 유원지의 수용과 여가 문화의 조직을 다룬다. 철도의 부설과 도시의 변화, 이에 따른 행락 공간의 재편을 월미도유원지와 뚝섬유원지를 중심으로 엮은 이 글을 통해 우리는 일상을 떠나 환상의 공간을 찾아 나선 도시민의 삶을, 철도 노선을 따라 재구성된 도시 교외의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이명준 박사의 글 “일제 식민지기 풍경 사진의 속내”는 풍경 사진이 국내에 수용되던 당시의 시각 문화를 검토한다. 특히 풍경 사진에 내재된 자연을 감상하고 인식하는 방식, 이른바 ‘시각 체제’에 주목한다. 이번 특집의 의도가 공원, 식물원, 유원지, 풍경 사진이라는 네 가지 렌즈를 통해 근대적 공간 문화의 양상을 조감하는 데 있는 것만은 아니다. 또 다른 목적은 최근 들어 부쩍 증가하고 있는 근대기 조경 역사·이론 연구를 대중적인 톤으로 소개하고, 나아가 연구의 경향성과 지향점을 설계하는 디딤돌을 놓는 데 있다. 이번 특집에 참여한 네 명의 필자 외에, 최근 김해경 박사, 서영애 박사, 우연주 박사 등 다수의 연구자가 근대기의 도시 공원과 공간을 주제로 한 다각적 연구 성과를 발표하고 있다. 모처럼 풍성하게 생산되고 있는 역사·이론 연구들의 대상과 시간 스케일에 큰 교집합이 있다는 점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별도의 해설보다 연구자들의 생생한 목소리가 소중할 것 같다. 특집에 참여해 준 네 명의 필자에게 세 가지 질문을 던졌고, 그들의 응답 중 일부를 간추려 전한다. 왜 ‘근대기(또는 일제 식민지기)’에 관심을 두고 논문을 써 왔는가? “지금 현재 도시 공간과 시설의 핵심, 그리고 우리가 공원이라고 부르는 것들의 기원, 특히 문화, 공공성, 행정이 탄생한 시기이기 때문이다”(이명준). “우연히 만났다가 이 시기가 좋아졌기 때문이다. 정말 이랬어? 이런 놀라움이 컸다. 생각보다 지금과 비슷했다. 물론 지금은 기술이 더 발달했고 디자인은 훨씬 세련됐지만, 그 원형은, 근본은 그대로다”(김정은). “그 이전 시대에 비해 개개인의 사람이 보이기 때문이다. 조선 시대의 연구 대상이 주로 저명한 문인이나 정치가의 문집과 정원인 데 비해, 근대기에는 수면 아래에 있던 더 많은 사람들, 다양한 직업 의 사람들, 여성, 소설가, 화가, 정치가, 학자들의 생각과 생활이 드러나기 때문에 흥미롭다”(김정화). “그동안의 역사 연구가 사고思考에 집중했다면(또는 집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면), 근대기의 연구는 실증적 접근이 가능하고 연구 방법이 매력적이어서 끌린다. 도시 공간과 문화에서 나타나는 전근대와 오늘날의 간극을 이 시기의 공부를 통해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 개연성 있는 시대의 흐름을 파악하고자 한다”(박희성). 당시의 도시 공간, 환경, 시설, 문화, 생활을 ‘지금’ 연구해야 할 이유는? “도시 개발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고 재생에 주목하고 있는 현재, 공원이나 광장과 같은 도시 시설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진지한 재점검이 필요하다. 재검토는 생성의 지점에서 출발해야 하므로 근대기 연구의 성과는 현재적 의미를 지닌다”(박희성). “근대기와 현재가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기 때문에 ‘지금’ 연구해야 한다. 현재가 근대기와 너무 가깝다면, 예컨대 해방 직후라면, 근대기를 떨어뜨려 놓고 보기 힘들 것이다. 한편 너무 멀지 않기 때문에 그 시대에 시작된 여러 공간의 형태와 시설이 지금도 유효하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모습이 흥미를 유발하고 ‘지금’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김정화). “아직 제대로 연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이명준). 최근 ‘조경학’ 분야의 적지 않은 학자와 연구자가 이 시기와 주제를 다룬 논문을 생산하고 있는 배경이나 이유는?“ 무엇보다도 다른 시기에 비해 신문, 잡지, 보고서, 사진 등 자료가 다양하고 풍부하기 때문일 것이다. 언어가 상대적으로 쉬운 이유도 있다. 일본어와 근대기 한국어 자료는 비교적 해석하기 쉽다. 이런 조건에 연구자 나름의 흥미가 더해져 연구의 양이 증가하고 있는 것 같다”(김정화). “우선 아카이브와 데이터베이스가 잘 구축되어 자료 접근이 용이해진 환경을 들 수 있다. 일찌감치 근대기에 주목해 연구 성과를 낸 건축학, 도시학, 역사학(도시사)의 영향도 있고, 그리고 대한제국기와 일제 식민지기에 대한 객관적·비판적 시각이 등장하는 학계의 분위기도 작용하고 있다. 근대 관련 전시, 학술 심포지엄, 시민 강좌 등 이 시기를 관심 있게 주목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박희성). 이번 호부터 세 달간 ‘그들이 설계하는 법’을 이어갈 조경가는 이재연 소장(조경디자인 린)입니다. 긴 추석 연휴로 이번 10월호의 배송이 열흘 이상 늦어질 전망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양해를 구합니다.
    • 배정한[email protected] / 편집주간, 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
  • [칼럼] 모던 타임‘즈’, 모더니티‘들’
    파리 뤽상부르 정원 근처를 산책하다 보면 하원 맞은편 아케이드 벽에 붙은 특이한 석판을 볼 수 있다. 직선의 띠에 일정한 간격으로 눈금을 새겨 두고, 그 위에는 ‘MÈTRE’라는 글자를 박아 넣었다. 옆에는 이 석판이 프랑스 대혁명 이후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가 규정한 ‘1미터’의 기준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별스럽다 여길 수 있지만 한때 왕의 발足 크기가 길이의 표준이었고 그마저도 파리와 지방에서 달리 쓰였음을 알게 되면, 이 ‘기준’이 가진 의미가 달리 보인다. 길이뿐 아니라 무게와 부피, 도시 간의 거리를 측정하는 도로 원표point zéro, 시간 등 ‘표준’의 대부분이 18~19세기에 정해졌다. 누구의 기준이 표준이 되는가는 국가적 위신이 달린 중요한 문제였고, 이 표준에 따라 통제된 시공간이 서구 근대의 배경이 되었다. 그런데 이 근대의 표준은 언제, 어디일까. ‘일반’적으로는 사유의 중심축이 신학에서 인간 이성 중심으로 이동한 르네상스 이후, 특히 18세기 유럽의 계몽주의 시기를 근대의 기원으로 본다. 기존 질서(도그마)를 부정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지향하는 정신이 서구 근대를 추동한 힘이었고, 이를 근대성 혹은 모더니티라고 부른다. 이성, 보편, 상식, 합리성, 진보, 계몽, 합목적성 등이 모더니티의 가치를 담는 키워드이고, 이 기준을 좇는 일이 중대했던 때를 근대라 한다. 근대/모던 타임즈는 언제이고 어떤 근대성/모더니티를 어떻게 추구했는가는 흥미로우면서도 민감한 주제다. 우선 명칭부터 보자. 조경학뿐 아니라 서구에서 들여온 학문의 연구에서 가장 정교하게 다루(었)어야 할 부분으로 용어의 번역을 꼽는다. 일상적 의미와 학문적 용례가 다른 경우도 조심스러우나, (일본의 번역어를 다시 옮긴 경우가 많은) 번역어와 외래어/외국어의 의미의 결이 다른 경우는 해당 맥락에서 어떻게 쓰이는지부터 정해야 한다. 근대와 모던 타임즈, 근대성과 모더니티는 후자에 해당할 것이다. 서구화와 근대화가 동일시되는 것은 제3세계 국가들의 발전 과정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이를 ‘ctrl+c, ctrl+v’의 등가적 복제로 설명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얼마 전 참여한 루브르 학교의 박물관학 여름 국제 세미나에서도 이 질문은 반복되었다. 올해의 주제인 ‘정원의 박물관학’에 관련된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의 강연은 풍요로웠으나, 프랑스에 위치한 역사적 정원으로 대상이 한정되었고, 이를 정원 예술의 ‘기준’으로 삼는 점은 어쩔 수 없었다. 역사적 정원의 복원과 복구, 재창조의 문제에 대해서도 피렌체 헌장의 가치만을 반복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참여자들의 비평과 토론은 모든 사람이 똑같이 ‘지금, 여기’에 있지 않음을 상기시켰다. 케브랑리 박물관 컬렉션에 대한 비판과 이어진 토론은 근대성과 종속성, 주체성의 관계를 돌아보게 했다. 하지만 ‘비서구 미술 = 원시 미술’이라는 오래된 양분법적 도식과 이를 둘러싼 담론조차도 다양성이라는 이름으로 흡수해버리는 동화주의의 힘은 강력했고, 수많은 중국풍 혹은 일본풍 정원의 정통성에 대한 필자의 질문은 특정 양식의 양상으로 치환되기 일쑤였다. 세미나 마지막 날의 공동 연구 발표를 알제리 출신의 건축학도와 함께 준비했다. 알제리의 수도 알제에 위치한 함마 정원과 서울의 용산공원을 미술관과 공원의 관계 측면에서 간단히 비교, 소개하기로 했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식민지화와 근대화가 동시에 진행된 나라 출신이라는 공통점에서 출발했으나, 식민지 시기를 보는 온도는 사뭇 달랐다. 알제리는 격렬한 저항과 내전을 겪은 후 백여 년 만에 프랑스로부터 독립했고 오늘날의 프랑스 이민자 문제는 이에 기원을 둔다고 배웠으나, 프랑스에 대한 그의 태도는 예상과 달리 적대적이지 않았다. 프랑스 건축가가 프랑스식으로 설계한 국립미술관과 외래 식물의 현지 적응을 위한 온실이 딸린 정원, 동물원이 여전히 탈식민지 수도의 중요한 공공장소로 애용되고 있다. 반일 교육을 받고 조선총독부 청사 철거를 목격하며 자란 필자에게는 이 점이 놀라웠는데, 역으로 그는 내가 놀라워하는 것을 신기한 듯 보았다. 해방을 기준으로 하면 한두 세대 정도 차이가 나지만, 근대화를 이룬 식민지기에 대한 태도는 그가 더 ‘쿨’했다. 우리의 대화는 평행선을 달렸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 뒤풀이에서 나온 이야기 또한 오늘 이 장소에 모인 우리가 사실은 각기 다른 지점에 있음을 상기시켰다. 서유럽 출신의 누군가에게 모더니티는 과거의 유산이지만, 근대화(새마을운동!)를 이룬 한국을 동경하는 부르키나파소 인에게는 지향점이 된다. 근대(성)의 기준이 시간과 장소에 따라 바뀌고 동시대에 있을 법하지 않은 일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근대의 시간들과 근대성들이 복잡하게 얽혀 공존한 이 상황이 탈근대적이라고 웃어넘겼으나 뒷맛이 개운하지는 않다. 황주영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불문학과 영문학을 공부하고, 같은대학 미술사학과에서 풍경화와 정원에 대한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서울대학교 협동과정 조경학전공에서 19세기 후반 도시공원의 모더니티에 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술과 조경의경계를 넘나들며 문화사적 관점에서 정원과 공원, 도시를 보는 일에 관심이 많으며, 관련 도서 몇 권을 함께 쓰고 옮겼다. 최근 옮긴책으로는 자이미 레르네르의 『도시침술』(푸른숲, 2017)이 있다. 파리 라빌레트 국립건축학교의 ‘건축, 환경, 경관’ 연구실에서 박사후연수를 막 마쳤다.
  • 모던 타임즈
    최근 많은 도시재생 프로젝트에 기억의 보존, 역사성 회복, 역사 복원 등의 문구가 흔히 등장한다. 이러한 회복과 재생의 대상 중 개항기부터 일제 식민지기 사이의 근대기에 만들어진 도시 건축과 공간이 적지 않다. 그런데 우리는 이 근대기의 도시 공간과 문화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낭만적 환상과 민족주의적 감정이라는 양극단을 막연하게 오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나라의 근대가 구체적으로 어떤 시기에 해당하는지는 학자에 따라 의견이 갈린다. 그러나 개항기부터 일제 식민지기 사이에 우리 사회와 도시 공간이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기차, 증기선, 전기, 사진 등 개항 이후 도입된 문물은 조선 시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유형의 공간을 만들어냈다. 여가 생활 혹은 오픈스페이스와 관련해서는 공원이나 유원지, 정원, 박물관과 동‧식물원, 백화점, 극장, 카페, 목욕탕 등이 등장했다. 이 시기에 탄생한 다양한 공간은 기존의 관념과 충돌하기도 했지만, 또 수용되고 새로운 유행을 만들며 우리 사회의 생활 양식을 변화시켰다. 이 시기에 대한 탐사 없이 현재의 도시 공간과 문화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예를 들어 우리 사회에서 공원이 탄생했던 시기를 외면하고 공원법이 만들어지던 1960년대 공원에 대해 이해할 수 있을까? 근대기의 공원에 대한 인식을 살피지 않은 채 그 이후 도시 공원과 공원 문화의 변화를 이야기하는 것은 사상누각이다. 그 사이에는 어떤 사회적 변화, 문화적 변동이 있었을까? 최근 국사학이나 건축학 등 몇몇 분야를 중심으로 근대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여전히 식민지기를 대상으로 하는 연구는 이 시기의 평가를 놓고 ‘근대화’와 ‘수탈’ 사이를 갈팡질팡하고 있지만, 최근의 적지 않은 연구는 이 시기 변화를 이끌었던 주체(와 그 의도)가 단일하지 않으며 조선인에게도 민족으로 환원되지 않는 다양한 개인의 삶이 실존했다는 데 주목한다. 고대로부터 문화란 언제나 수입되고 전파되는 것이었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이 시기에 등장한 여러 유형의 공간이나 문화 현상을 자생적인지 아니면 이식된 것인지에 따라 옳고 그름의 잣대로 판단하기 어렵다. 이번 기획에서는 소위 근대라 부르는 시기에 도시 공간에 어떤 변화가 있었고 도시민들은 어떤 일을 겪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어쩌면 그 과정에서 100여 년 전의 삶과 지금 우리의 삶이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도시민의 입장에서 본다면 우리는 여전히 모던 타임즈를 호흡하고 있지 않을까? 기원을 더듬는 일이 바로 오늘을 이해하는 길일 것이다. 진행 김정은, 김모아 디자인 팽선민
  • [모던 타임즈] 왜곡된 근대와 공원의 탄생
    19세기 말, 세계 곳곳에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형태와 규모의 도시가 출현한다. 이른바 근대 도시라고 규정되는 이 새로운 도시는 도로와 철도, 상하수도, 전기 등의 기반 시설을 바탕으로 자원과 인구를 흡수하여 자본주의 경제를 동력 삼아 성장하였다. 오늘날 도시의 균일성과 보편성도 이러한 도시 성장 방식에 기인한다. 보편성의 측면에서, 공원 역시 근대 도시라면 당연히 갖춰야 할 도시 시설이다. 그러나 공원은 도시 생성 이후에 불거진 각종 도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었고 도시의 생성보다는 도시의 질서 유지에 필요한 일종의 장치였다. 다른 시설과는 시간차를 두고 등장한 공원은 근대의 이미지를 즉물적으로 드러내기 보다는 반反역사성과 공공성, 계몽과 교화, 자유와 민주등의 근대성을 실천하는 공간이었다. 이상이 우리가 근대의 산물로서 이해하고 있는 공원의 요체다. ...(중략)... 박희성은 중국 사대부의 미의식이 어떻게 완성되어 중국 정원 발달에영향을 미쳤는지를 연구하여 박사 학위를 받았다(『원림, 경계 없는 자연』,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1). 우리엔디자인펌을 거쳐 지금은 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에서 동아시아 각국 수도(首都)를 연구하고 있다. 동아시아 전근대 정원 문화와 근대 도시 시설의 도입, 교류, 발전 양상에 대하여 지속적으로 탐구 중이다. * 환경과조경 354호(2017년 10월호) 수록본 일부
  • [모던 타임즈] 근대인의 자격, 식물원 소사이어티
    지갑을 열어보니 도서관, 헬스장, 커피숍, 화장품 등 각종 멤버십 카드가 눈에 들어온다. 내년이면 식물원 멤버십 카드도 나란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 않을까. 마곡의 ‘서울식물원’에 멤버십 서비스 도입을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국공립 식물원 중 멤버십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 있던가. 이제 막 문을 연 국립백두대간수목원도 멤버십 제도를 갖추고 있지 않다. 약 40만 명의 회원을 보유한 영국의 위즐리 가든Wisley Garden, 개원 1년도 안 되어 2만5천여 명의 회원을 모집한 싱가포르의 가든스 바이 더 베이Gardens by the Bay와 비교해 볼 때, 우리 주변에는 식물원 방문객은 있으나 후원자와 지지자는 보이지 않는다. 김정화는 서울대학교 조경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한 후 우리엔디자인펌, 조경설계 서안, 서안알앤디 디자인에서 설계 실무를 거쳤다. 2017년 서울대학교에서 우리나라 식물원의 역사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취미, 교육, 위생과 근대기 정원 및 공원의 관계를 드러내는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 환경과조경 354호(2017년 10월호) 수록본 일부
    • 김정화[email protected] /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연구소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