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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코딩 파이프 퓨처 레거시 아이디어 공모 수상작
    캐나다의 건축ㆍ조경 계간지 더 사이트 매거진The Site Magazine은 2017년 캐나다 건국 150주년을 맞이해 퓨처 레거시Future Legacy 아이디어 공모전을 개최했다. 캐나다 왕립 예술위원회Canada Council for the Arts와 뮈자제트 재단ArtsEverywhere Musagetes의 후원으로 진행된 본 공모전은 그 제목이 시사하듯 국가적 유산을 다가올 150년을 견인하는 사회적ㆍ물리적 동력으로 탈바꿈시키기 위한 디자인적 해법을 모색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유산’의 정의와 범주,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을 새롭게 규정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지난 8월 17일, 1등, 2등, 가작을 각각 다섯 작품씩 선정했으며, 2018년 1월 토론토 아트스케이프Artscape에서 전시회를 앞두고 있다. 세 가지 층위의 코드 코드 [명사] 1. 컴퓨터 작동을 위한 기호 체계. 데이터 코드, 오류 검사 코드 등. 2. 어떤 사회나 계급, 직업의 규약이나 관례 체계. 3. 특정 이념, 성향 및 이를 반영하는 기호 체계. 코드 인사, 패션 코드 등. 2등으로 당선된 우리의 작품 ‘리코딩 파이프Re-Coding Pipes(Kyung-kuhn Lee, Mamata Guragain, Nubras Samayeen)’는 코드code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캐나다 국토를 가로지르는 석유 및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의 확장된 역할을 제안한다. 새롭게 코딩coding된 인프라스트럭처의 기능, 제도code의 수정과 보완, 그리고 개발과 보존의 가치가 대립하는 관습적인 정치ㆍ사회적 코드에서 벗어난 새로운 담론의 발생이 그것이다. ...(중략)... *환경과조경356호(2017년 12월호)수록본 일부 이경근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와 동 대학원을 거쳐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조경학 석사를 마쳤다. 일리노이 어바나-샴페인 대학교 조경학 박사 과정에 재학 중으로 지속가능한 미학이라는 주제로 동시대 생태적 조경 설계와 한국 경관 전통의 접점을 모색하고 있다.
  • 세계 디자인 회담 World Design Summit, 캐나다 퀘백 주 몬트리올 컨벤션센터, 10월 16일 ~ 25일
    인류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인류세人類世, Anthropocene는 인류가 지구 기후와 생태계를 변화시켜 만들어진 새로운 ‘인문적’ 지질 시대다. 산업 혁명 이후 250년 만이다. 그렇다. 가장 최근의 지질학 시대인 충적세는 약 1만 년 전이었지만 인류는 단 250년 만에 새로운 지질 시대를 열어젖혔다. 인류세의 가장 큰 특징은 인간에 의한 환경 파괴다. 끊임없이 환경을 훼손하고 파괴함으로써 인류가 이제까지 진화해 온 안정적이고 길들여진 환경과는 전혀 다른 환경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엘니뇨, 라니냐, 라마마와 같은 해수의 이상 기온 현상, 지구 온난화 등 기후 변화로 인해 물리·화학·생물 등 지구의 환경 체계가 근본적으로 변화했으며 현재 진행 중이다. 인류세의 시작을 인지하고 살아가는 인간이라는 종種의 개체로서, 어느 누가 이 현상을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어느 누가 혹독한 환경 훼손의 대가를 치러야만 하는 다음 세대에 대한 책임감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도시 행성을 향한 낙관론 세계 디자인 회담WDS(World Design Summit)에 초대된 기조연설자 중 한 명인 조경가 더크 시몬스Dirk Sijmons는 낙관적이다. 그는 인류세가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시대와 세계를 묘사하는 적절하고 도발적인 용어라 인정하며, 이러한 개념 덕분에 환경에 끼치는 인간의 영향력에 대한 심도 깊은 관찰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한다. 또한 그는 21세기 도시 행성urban planet의 실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인류가 이 행성에 못 할 짓을 했다며 자책하며 감상에 빠지는 것은 전혀 소용이 없다는 완강한 입장이다. 인류세에 살고 있음을 인정하고, 좋든 싫든 간에 현재에서 진전해야 하며, 그것을 이룰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 방법 중 하나는 바로 인간의 창의력이다. ...(중략)... *환경과조경356호(2017년 12월호)수록본 일부 이혜인은 대학과 대학원에서 조경학을 전공했으며, 현재 캐나다 밴쿠버의 폴 상하 조경설계사무소(Paul Sangha Landscape Architecture)에 근무하고 있다.
  • 캐서린 구스타프슨, 동탄에 작가정원 조성 동탄여울공원 국제작가정원 기본계획(안) 설명회 개최
    화성시와 LH동탄사업본부는 11월 15일 동탄여울공원 국제작가정원 기본계획(안) 설명회를 개최했다. 고속철도와 광역비즈니스 콤플렉스 등 각종 인프라스트럭처가 계획된 동탄2신도시의 중앙 근린공원(동탄여울공원)에 는 이미 아홉 개의 작가정원이 조성되어 있다(『환경과조경』 2017년 11월호 pp.66~85 참조). 이번 설명회를 통해 앞으로 갖춰질 나머지 녹지 공간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었다. 지난 9월 동탄여울공원의 국제작가정원 초청작가로 미국 조경설계사인 GGNGustafson Guthrie Nichol이 선정되었다. GGN은 광역비즈니스 콤플렉스와 공원을 연결하는 축에 놓인 지하 주차장 상부 플라자와 동탄여울공원의 잔디마당 부지 설계를 맡았다. 기본계획구상안에는 지난달 준공된 동탄여울공원과 잔디광장, 음악분수대, 그리고 지하 주차장까지 이어지는 새로운 공간 경험을 발견하는 프로그램이 담겨 있다. 문턱을 넘어 반석산으로 다이애나 기념 분수로 잘 알려진 GGN의 캐서린 구스타프슨Kathryn Gustafson, 제니퍼 구트리Jennifer Guthrie, 그리고 치히로 도노반Chihiro Donovan은 작가정원 설계 전반에 대해 발표했다. GGN은 두 개 사이트를 다양한 프로그램이 벌어지는 일련의 공간 경험의 일부로 보았다. 서양 조경사와 우리나라 궁의 공간 구성으로부터 문턱threshold 개념을 빌려 각각의 공간을 나누거나 잇고, 음악분수대와 같은 기존 프로그램 역시 문턱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기존 설계와 새로운 구상을 모두 아우르는 개념을 부여했다. 방문객은 지하 주차장 상부부터 여울공원까지 하나의 내러티브를 따라 반석산을 향해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어지는 축을 타고 새로운 경험을 발견한다. ...(중략)... *환경과조경356호(2017년 12월호)수록본 일부 신명진은 뉴욕 대학교(NYU)에서 미술사를 전공했다. 동 대학원에서 석사 논문을 쓰던 중 공간과 경관에 마음을 빼앗겨 조경학으로 발길을 돌렸다. 현재 서울대학교 생태조경학과 통합설계·미학연구실에서 석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 더 새로운 공원을 향하여 공원은 진화하는가?, 2017 조경비평상 가작
    역사에서 가장 처음 나타난 것과 가장 오래된 것, 즉 ‘최초’와 ‘최고最古’는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들은 가장 좋은 지위를 차지하고 언제나 해당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것 중 하나로 언급된다. 현대 공원의 역사에서 이와 같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공원으로 뉴욕의 센트럴 파크가 있다. 1876년 공식 개장한 센트럴 파크는 현대 공원사에서 여러 가지 중요한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런던의 하이드 파크Hyde Park와 함께 근현대 도시 공원의 전형적인 표본이자 모델처럼 생각된다거나, 센트럴 파크를 설계한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Frederick Law Olmsted가 ‘조경가landscape architect’라는 직업을 자신의 전문 직업으로 처음 소개한 사람이자 조경의 아버지로 여겨진다는 점, 뉴욕이라는 세계적인 도시의 핵심적인 상징이자 랜드마크라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센트럴 파크의 여러 타이틀은 지금도 상당히 유효하다. 센트럴 파크 개장 이후 약 15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뉴욕의 센트럴 파크 같은 공원을 만들겠다”는 말은 여전히 시민에게 영향력 있는 문구다. 이는 ‘도시는 악이고, 자연(공원)은 선’이던 시대에 도시 문제의 해 법으로 등장했던 센트럴 파크가 오늘날에도 도시 문제의 해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처럼 현대 공원의 모델이자 시민에게 사랑받는 공원이라는 센트럴 파크의 타이틀은 아직도 견고하다. 물론 다른 의견도 있다. 센트럴 파크가 현대 도시 공원의 모습과 특성을 만들어낸 대표적인 모델인 것은 분명하지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도시 공원의 모델이 되어야 하는가와 같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센트럴 파크 이후 얼마나 다양한 도시 공원이 있었던가. 공원이 여러 모습으로 변화하고 발전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왜 아직도 센트럴 파크 ‘같은’ 공원이 이상적인 도시 공원의 모델처럼 여겨지고 있는 것일까? ...(중략)... *환경과조경356호(2017년 12월호)수록본 일부
    • 손은신 서울대학교 대학원 협동과정 조경학 박사과정[email protected]
  • 이촌한강공원 숲 속 놀이터 문길동 한강사업본부 공원부장, 최병언 한강사업본부 생태공원과장
    짙푸른 강물, 초목이 무성한 섬, 고층 빌딩숲 그리고 철커덕철커덕 희미하게 들려오는 전동차 소리. 이촌한강공원은 도심의 인공적 풍경과 자연의 야생성이 교차하는 모습을 극적으로 목도할 수 있는 장소다. 지난 10월 초 이촌한강공원 내 한강대교 부근에 약 3,000m2 규모의 생태놀이터가 시민에게 개방됐다. 2014년 3월 수립된 ‘2030 한강 자연성 회복 기본계획’에 따른 사업의 일환으로 조성된 것으로, 기존의 한강 어린이 놀이터에 비해 규모도 월등하게 클 뿐만 아니라 아까시나무 원목을 사용한 친환경적인 놀이 시설이 들어서 관심을 모았다. 생태놀이터뿐만 아니라 이촌 권역 자연성 회복 사업을 주도하고 있는 문길동 부장(한강사업본부 공원부)과 최병언 과장(한강사업본부 공원부 생태공원과)을 만났다. 이촌 권역은 ‘한강 자연성 회복 사업’의 중점 지역이다. 12월 준공 예정인데, 사업에 관해 설명해 달라. 최병언(이하 최): 박원순 서울시장의 공약이었던 한강 자연성 회복 사업은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2030 한강 자연성 회복 기본계획’은 “두모포에 큰 고니 날아오르고 아이들이 멱 감는 한강”을 미래상으로 삼고 있는데, 서울시의 목표는 큰고니, 황복, 꼬마물떼새, 물총새, 개개비, 오색딱따구리, 삵 등 지금은 모습을 찾기 힘든 일곱 종이 한강을 다시 찾게 하는 것이다. 이촌 권역이 그 첫 시범 사업지인데, 2016년 2월부터 올해 12월까지, 원효대교에서 한강철교 북단까지 전체 9만7,100m2 면적에 자연형 호안과 소생물 서식처를 만들어 한강의 자연 하천 기능과 생태계를 회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번 사업에는 복합적 생태하천복원공법을 적용했는데, 기존의 저수호안 콘크리트 블록을 걷어내 약 1.3km 저수호안에 흙을 쌓아 수크령, 물억새, 사초 식물로 된 매트를 설치해 하천 식생을 복원했고, 저수 호안변에는 큰 돌로 수제를 쌓아 침식이나 세굴을 방지했다. 돌 사이사이에 물고기들이 산란할 수 있고, 수면성 조류가 앉을 수 있는 횃대도 설치해 다양한 수생 생물 서식 공간이 된다. ...(중략)... *환경과조경356호(2017년 12월호)수록본 일부
  • [편집자의 서재] 바깥은 여름
    스물아홉. 생일이 빠르니 정확히 말하자면 스물여덟이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1 훌쩍 다가온 서른이라는 나이가 주는 압박감 때문일까, 올해에는 유독 결혼을 하거나 독립을 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집들이, 결혼식 등으로 올 하반기 주말이 내내 바빴다. 한참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 종종 느닷없는 소식이 끼어들어 오기도 했다. 아직 그렇게 많은 나이도 아닌데, 해를 거듭할수록 장례식장에 갈 일이 잦아진다. 몇 번을 반복해도 누군가의 부고를 전해 듣는 일은 낯설고, 위로의 말을 고르는 건 어렵다. 너무 무겁지도 너무 가볍지도 않은 적당한 무게의 문장을 고민하다, 결국엔 “밥은 잘 챙겨 먹고 있어?”, “날씨가 많이 춥더라, 내일은 따뜻하게 입어” 같은 안부 인사와 닮은 말로 얼버무리기 일쑤다. 내 어설픈 말이 상처가 될까봐 하는 소심한 선택이다. 『바깥은 여름』은 그런 이들에게 조심스레 건네는 위로의 말이다. 역대 최연소 수상으로 이목을 끈 이상문학상 수상작 “침묵의 미래”, 젊은작가상 수상작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등 『바깥은 여름』에 실린 일곱 개의 단편은 모두 사랑하는 누군가 혹은 무언가를 상실한 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입동”에는 어린이집 차량 사고로 아이를 잃은 젊은 부부가, “노찬성과 에반”에는 주워온 강아지 에반이 죽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어린 노찬성이,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에는 제자를 구하려다 학생과 함께 물속에 잠긴 남편을 그리워하는 아내 명지가 있다. 김애란은 “마음의 풍경을 정갈하게 빚어내는 솜씨”로 이들의 “어둡고 힘겹고 서글픈 인생의 사건들을 언어 안에서 거르고 간종여 담백한 음미와 잔득한 성찰의 장소로 재탄생시킨다.”2 깊은 슬픔에 빠진 사람들은 책 표지에 그려진 여인처럼 자신만의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는다. 여름의 싱그러움 혹은 우울함을 떠올리게 하는 푸른 벽지, 상아색 문 너머로 얼핏 보이는 내부의 모습이 어둑하다. “입동”의 아이를 잃은 부부는 그 캄캄한 방에서 아이가 남긴 흔적, 또는 이제 비어버린 자리를 더듬으며 아이를 그리워한다. “이제 다시는 안아볼 수도, 만져볼 수도” 또 “야단칠 수도, 먹일 수도, 재울 수도, 달랠 수도, 입맞출 수도 없”3는 슬픔으로 부부의 계절은 시간의 흐름과는 무관하게 멈춰있다. 계속 겨울이다. 이 시차는 부부에게 일종의 소외감을 느끼게 한다. 부부에겐 “풍경이, 계절이, 세상이 우리만 빼고 자전하는 듯한, 점점 그 폭을 좁혀 소용돌이를 만든 뒤”4 자신을 삼키려는 괴물처럼 다가온다. 그 시차가 주는 괴리감, 상실감을 이겨내기도 힘든 사람들을 더욱 몰아붙이는 건, 무신경하다 못해 무례한 주변 사람들의 행동이다. “입동”에서 부부의 직업이 보험 회사 직원이라는 이유로 이상한 이야기를 수군거리는 이웃은 아직 아물지도 않은 상처 위에 또 다른 생채기를 낸다. 아버지가 동남아시아인이라 차별받는 “가리는 손”의 재이를 위로하기 위해 재이의 어머니는 말한다. “너희 아빠 여기 일하러 온 거 아니야. 공부하러 온 사람이었어. 고향집에 하인도 있었대.”5 편견으로 괴로워하고 있는 재이에게 전해진 또 다른 편견으로 점철된 문장. 묘사되지는 않았지만 언젠가 “엄만 한국인이라 몰라”6라고 말했다던 재이의 얼굴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바깥은 여름』에서 내가 좋아하는 부분은 그런 고통 속에서도 주인공이 다시 일어서는 장면이다. “입동”의 부부는 지저분해진 벽지를 다시 바르다 눈물을 쏟고 서로를 보듬는다.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의 영지는 남편이 구하려던 학생의 누나에게 감사하고 죄송하다는 편지 한 통을 받고서야 누군가의 삶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삶을 버린 남편을 용서한다. 편지를 보낸 아이가 밥은 제대로 먹고 있는 건지 궁금해한다. 뒷이야기는 없었지만 왠지 영지가 아이를 찾아가는 장면이 어렵지 않게 상상된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를 사람으로 치유하며 방밖으로 나설 채비를 하는 모습에는 “마지막에 사람의 손을 잡고 일어서는 모양새가 됐으면 좋겠다”7는 김애란의 바람이 묻어 있다. 책이 집에 도착한 건 여름 무렵. 30~50쪽 남짓한 단편 소설 일곱 편을 읽는 데 꼬박 두 계절이 걸렸다. 바깥은 벌써 겨울이다. 얼마 전 마지막 소설인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의 첫 장을 펼치고 나서야, 각 소설이 시작할 때마다 그려진 그림이 달이 아님을 깨달았다. 회색 원과 그 속을 메운 하얀 점들이 그제야 동그란 유리 볼에 겨울을 담은 스노우볼로 보였다. 문득 나에게 안부 인사 같은 위로의 말을 들은 사람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간다. 나 또한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 적은 없을까? “볼 안에선 하얀 눈이 흩날리는데, 구 바깥은 온통 여름일 누군가의 시차를 상상”8해본다. 1. 김광석의 노래 ‘서른 즈음에’ 중에서. 2. 2017년 동인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된 『바깥은 여름』에 대한 심사평. 박해현, “2017 동인문학상에 김애란 ‘바깥은 여름’”, 조선일보 2017년 10월 30일. 3. 김애란, “입동”, 『바깥은 여름』, 문학동네, 2017, p.21. 4. 위의 책, p.21. 5. 위의 책, “가리는 손”, p.204. 6. 위의 책, p.196. 7. 박세희, “5년 만에 돌아온 김애란은 ‘번번이 과정’이라 말한다”, 허핑턴포스트코리아 2017년 7월 4일. 8. 앞의 책, “풍경의 쓸모”, p.182.
  • [CODA] 시공을 가르는 문화 산책
    11. 1. 조감도, 제국의 야심을 그리다 ‘조감도鳥瞰圖, 제국의 야심을 그리다’ 전(한양대학교 박물관, 10. 16. ~ 11. 3.)은 제목이 암시하듯이, ‘제국’ 그러니까 일본이 동아시아를 대상으로 식민지를 개척하던 시기에 그려진 조감도에 관한 전시다. 조감도bird’s-eye view는 새의 눈, 즉 높은 시점에서 땅의 모양이나 나무, 건물을 실물에 가깝게 묘사한 투시도다. 이번 전시는 일제 식민지기에 요시다 하츠사부로를 비롯한 일본인 화가들이 그린 조감도를 소개한다. 전시를 기획한 한양대학교 동아시아건축역사연구실의 서동천 겸임교수(건축학부)가 말하는 요시다 하츠사부로식 조감도의 특징은 “새의 눈으로 보는 한계를 뛰어넘어 보이지 않는 것도 보여준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교토를 대상으로 그린 조감도에는 교토 시가지는 물론이고 멀리 도쿄와 규슈, 조선이나 대만, 지나, 심지어 유럽의 명칭까지 보인다. 역으로 조선박람회를 위해 그린 조감도에는 도쿄와 오사카 등의 지명과 후지산이 보이는 식이다. 서 교수는 당시 근대화된 일본에는 측량을 기반으로 한 지도가 대중화되었으므로 조감도는 지리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대신 일본과 식민지의 관계 또는 동아시아를 바라보는 일본의 시각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당시 식민지를 개척하던 일본은 굳이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한 장의 조감도에 그려 넣어 그들이 꿈꾸는 제국주의의 열망을 담았다. 요시다 하츠사부로는 1929년경 조선을 방문해 조선총독부의 요청으로 수많은 도시 조감도와 전람회, 박람회, 진흥회를 홍보하는 행사 지도를 그렸고, 백화점이나 철도 회사의 의뢰를 받아 관광용 조감도를 그리기도 했다. 한동수 교수(한양대학교 건축학부)는 이러한 하츠사부로식 조감도가 일본인뿐만 아니라 조선인에게도 식민지 도시 공간의 구조를 일목요연하게 파악하도록 도움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내선일체 사상을 내면화하는 데도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고 설명한다. 이제 하츠사부로식 조감도는 쓰이지 않는다. 그러나 여전히 조감도에 객관적 정보만 담기는 것 같지도 않다. 오늘날 조감도는 조경이나 건축 계획에서 완공 이후의 모습을 이해시키기 위해 빠지지 않고 쓰인다. 마치 객관적인 정보를 전달하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클라이언트 혹은 (설계공모) 심사위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마스터플랜에 비해 과장하거나 왜곡하기도 쉽다. 그래서 우리는 더 푸르게, 더 넓게, 더 드라마틱하게 묘사된 이미지를 흔히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인공 지반 위에 사계절의 꽃이 만개한 풍경이라든가, 실현을 위해서는 계획된 예산 범위를 훨씬 초과하는 비용이 드는 다이내믹한 구조물 등 말이다. 8. 24. ~ 11. 14. 문화비축기지 이번 호에 소개된 문화비축기지는 갈 때마다 조금씩 다른 인상을 주는 장소였다. 처음에는 휑한 마당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개장에 앞서 열린 기자 간담회 시작 시간에 늦어 헐레벌떡 기지 입구에 다다랐을 때, 텅 빈 마당을 보면서 어디로 가야할지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일단 눈앞에 보이는 탱크를 향해 언덕을 달리고 6번 탱크의 램프를 돌아 간담회장에 간신히 들어갈 수 있었다. 흐르는 땀을 닦으며 들으니, 그 자리에 모인 기자들의 질문은 대부분 이 탱크들이 얼마만한 양의 석유를 비축했고, 현재 공간 운영에 필요한 에너지의 몇 퍼센트를 친환경 에너지로 충당하는지에 집중됐다. 문화비축기지의 전신이 에너지원을 저장하는 석유비축기지였으니 그리 생뚱맞은 질문은 아니었지만, 핵심에서 벗어난 듯한 느낌은 그때부터 받은 것 같다. 질의응답이 끝나고 마침 내리는 비를 맞으며 탱크를 답사했다. 설계공모의 도판으로만 보던 탱크와 폐허와 같은 잔해를 보니 숭고함이라고 부를 만한 압도적인 공간감도 느껴졌다. 그 감동이 뚝뚝 끊어지고 어수선한 느낌은 우르르 몰려다닐 수밖에 없는 행사 자체의 한계라고 생각했다. 몇 주쯤 지나서, 이번에는 저녁에 열린 야시장에 갔다. 첫 방문 때 그렇게 휑하게 느껴진 마당 한 구석에서 여느 축제처럼 셀러들이 직접 만든 가방과 그릇, 음식 등을 팔고 있었고, 체험 프로그램도 빠지지 않았다. 폐타이어로 만든 놀이 시설은 아이들에게 무척 인기 있었고, 작은 음악 공연도 밤 분위기를 운치 있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소위 축제의 최신 트렌드를 따르는 듯했다. 휙 둘러보며 두 손 가득히 물건을 사고 만족했다. 그렇지만 이런 마켓이 열리는 공간이 꼭 문화비축기지 마당이 아니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또 몇 주 뒤, S와 함께 문화비축기지에서 열리는 축제 개막식에 참석했다. 행사는 나쁘지 않았지만 뭔가 익숙한 느낌이다. 최근 서울시에서 문을 연 공공 공간들이 그렇듯 이벤트가 끊이질 않는다. 비워두면 안 된다는 강박과 초조가 느껴진다. 그리고 또 몇 주 뒤, 아티스트 J와 함께 문화비축기지에서 열린 한 답사 모임에 합류했다. 짧은 답사 후, 벤치에 나란히 앉은 우리는 이곳이 꽤 매력적인 공간이란데 공감했다. 그런데 건축이나 조경에 문외한임을 자처한 J는 눈앞의 나무 펜스를 가리키며 물었다. 대략 탱크를 구축한(재활용한) 태도와 저 (비용과 공기 등의 이유로 시공 현장에서 결정되었음이 분명한) 펜스를 만든 태도가 다른 것 같다는 의문이었다. 나는 이 장소 구석구석이 단일한 디렉팅으로 만들어지지 못했음을, 그리고 그러한 관행이 딱 짚어 누구의 책임이라거나 명백하게 잘못되었다고 비난하기 어렵다는 점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감했다. 드디어 사람이 많지 않은 어느 날 아침 문화비축기지를 방문했다. 이번에는 매봉산으로 연결된 긴 산책로가 따뜻하게 다가왔고, 6번 탱크가 단풍과 잘 어울려 보였다. 마포 주민의 눈으로 보기에, 가끔 산책할 수 있는 일상적 공원으로서도 꽤 괜찮은 곳이다 싶었다. 그리고 아주 차분하게, 이번에는 이곳의 진수를 느껴보리라 작정하고 걷기 시작했다. 탱크 하나하나에 담겨 있는 프로그램은 그 자체로 훌륭했다. 그러나 설계자는 어두운 전이 공간으로 연출했을 법한 공간은 환한 전시실이 되었고, 외부의 자연을 향해 밝게 트인 공간은 전시대로 막혀 있었다. 조용히 관람객을 인도하고 싶었을 것이 분명한 무채색 노출콘크리트 벽은 밝은 색 공공 미술 작품이 휘감고 있었다. 설계자의 의도가 성공적으로 구현되었는지, 혹은 그 의도가 적절했는지에 대한 판단에 앞서, 설계자가 의도한 시퀀스를 차분하게 밟아보고 싶었던 나의 시도는 이번에도 미수로 끝났다.
  • (주)예건의 디자인 코뮌 퍼걸러의 진화
    단순 휴게 시설에 불과했던 공원 시설물이 경쟁하듯 새로운 기술을 탑재해 지나친 부가 기능으로 문제가 되던 시기를 지나, 다시 본질인 휴게와 편의 기능에 충실한 시설이 자리를 채우고 있다. 주식회사 예건 역시 휴게 시설의 본질에 충실하면서 소통의 기능을 강조한, 다양한 사람이 교류할 수 있는 다목적 대형 이벤트 공간 ‘디자인 코뮌Design Commune’을 새롭게 출시했다. 디자인 코뮌은 건축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파사드 디자인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다. 외벽에 건축 파사드의 패턴과 구조를 적용했으며, 필요에 따라 카페, 대피소, 안내소 등으로 활용할 수 있다. 2017년 새롭게 출시된 디자인 코뮌은 총 8종이다. 조립식 서까래를 지붕에 올린 코니스cornice 코뮌은 코니스 퍼걸러의 연장형으로 하부에 테이블을 두어 휴게 시설이나 카페로 이용할 수 있다. 마루 코뮌은 지붕과 벽체가 평상과 테이블로 연결되는 일체형으로 디자인되었다. 이외에 원형 나무 그루터기와 석순의 형상을 모티브로 한 카사cassa 코뮌, 속이 빈 통나무를 모티브로 디자인되어 식물을 함께 연출할 수 있는 로그log 코뮌 등 다양한 디자인으로 여러 사람의 요구를 충족하고자 했다. TEL. 031-943-6114 WEB. www.yekun.com
  • [에디토리얼] 정원박람회가 남긴 것
    짙은 가을 풍경으로 풍성한 11월, 이번 호에는 『환경과조경』이 주관한 제3회 서울정원박람회(9월 22일~26일)를 비롯해 제5회 경기정원문화박람회(9월 29일~10월 1일), 동탄여울공원 공공정원의 수상작과 초청작을 싣는다. 지난 몇 년간 붐을 이룬 여러 정원박람회의 성과와 의미를 진단하는 지면을 기획했지만, 아쉽게도 내년 봄으로 미루기로 한다. 최근의 정원박람회 열풍은 보다 면밀한 평가와 섬세한 토론을 요청한다는 판단 때문이다. 아쉬운 대로 우선 주변의 반응을 간단히 취재해보면, 정원박람회의 다층적 지향점을 이제는 좀 더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정원 문화의 확산과 정원 산업의 활성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보다는 하나에 집중한 목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노후화된 도시 공원 재생의 계기라는 또 다른 좌표를 지향한다면 박람회 전반의 틀을 수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여러 지자체의 과시적 전시 행정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부정적인 견해도 있기는 하지만, 적어도 몇 년간의 정원박람회는 도시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를 수용하고 선도한 동시대 녹색 문화의 생생한 한 장면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길게 보자면 이미 5년의 역사를 지닌 우리 정원박람회에 어떤 패턴이나 프레임이 생겨 버렸다는 지적도 있다. 이를테면 박람회의 주제와 참여 작품 다수가 낭만적 감상이나 노스탤지어에 호소하는 성향, 일회성 보여주기나 장식적 취미로 흐르는 경향이 고착되고 있다는 우려다. 정원박람회가 감성 취향만을 앞세우기보다 ‘지금, 여기’의 도시 이슈에 적극 개입하는 매체가 되어야 한다면, 적어도 사회적·환경적 의제를 담은 주제를 제시하거나 철저한 미학적 실험을 통해 전문적 해법을 제안하는 장이되어야 할 것이다. 그간의 정원박람회는 조경이라는 전문 직능과 학제에 무엇을 남겼는가. 이 문제는 심도 있는 토론과 장기적인 평가를 요청한다. 하지만 적어도 정원박람회가 신진 조경가의 등용문이자 실험실 역할을 했다는 점만큼은 분명한 성과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제도권 조경계가 침체된 상황에서 설계 시장의 메커니즘에 동승해 조경가로 성장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청년, 신인, 소장, 신진 조경가가 이 막막한 장벽을 뚫을 수 있는 돌파구가 최근의 정원박람회였다는 점은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다. 수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적지 않은 수의 신인들이 자신의 디자인을 실험하고 구현할 기회를 얻고, 자신의 이름을 공론장에 알리고 활동할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 주목할 만한 여러 신진 조경가가 있지만, 우선 2015년 이후 서울정원박람회, 경기정원문화박람회, 코리아가든쇼 등에서 수상하고 이를 계기로 한강예술공원 시범사업,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등에 초대되기도 한 최재혁 소장(스튜디오 오픈니스)과 이메일로 대화를 나눠 보았다. 정원박람회를 통해 더 많은 신진 조경가가 탄생하길 기대하며 그의 이야기 일부를 옮긴다. 처음 정원박람회에 출품한 이유는 무엇이었나? “처음엔 디자인하는 사람으로서 목마름을 해갈하기 위해서였다. 정원 설계하고 만드는 오피스에 근무를 하면 자연스레 실제로 만들어보고 싶은 아이디어들이 쌓여간다. 대개의 주택 정원과 오피스 정원에서는 클라이언트의 삶의 공간을 디자인해야 하므로 설계와 시공에 제약이 많다. 평소에 상상만 하며 꿈꾸던 공간과 디테일을 실물로 만들어 볼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해 정원박람회에 망설임 없이 출품했다." 정원박람회는 조경가 최재혁 개인에게 어떤 득과 실을 남겼나? “온전한 나의 아이디어를 직접 구현해 보고 피드백을 얻을 수 있었다는 점, 그리고 많지는 않지만 그 예산을 지원받았다는 것 자체가 큰 소득이었다. 몇 차례의 박람회를 통해 재료, 스케일, 공간감에 대한 설계적 감각과 시공 과정을 훈련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주변 사람들에게 디자이너로서의 나를 알릴 수 있던 점 또한 큰 득이었다. 보통 정원박람회를 하면서 실이 생기는 경우는 직장 생활에서 마찰이 생기는 경우인데, 내 경우에는 당시 직장의 대표가 크게 배려해 주셔서 문제를 겪지 않았다. 특별히 실이 있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정원박람회의 수상이 다른 프로젝트 수주 등으로 이어졌나? “몇 차례 수상을 한 것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나를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일반적인 조경 설계 프로젝트와 달리 정원은 손수 만든 결과물을 보여주고 평가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올해 초 독립한 이후 여러 지인들로부터 조경 설계 또는 정원 시공을 의뢰받아 진행하고 있는데, 박람회에 참여해 수상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최근의 정원박람회 붐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바라는 점이 있다면? “몇 해 전에는 정원박람회가 단발성 행사로 그칠 것이라고 예측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런데 최근의 흐름을 보면 지속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긍정적인 면은 일반 대중에게 정원에 대한 인식을 키워주고 있다는 점, 대학생을 포함한 젊은 층에게 디자이너로서 훈련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다. 바라는 점이 있다면, 최근 정원박람회는 조성 후 존치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박람회 장소, 작품 수, 전시 위치 선정 등에 있어서 더 신중을 기했으면 좋겠다. 양적 팽창보다는 질적 향상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 같다. 구체적인 바람을 한 가지 더 이야기하고 싶다. 작품을 선정할 때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지, 향후 유지·관리상 문제가 없게 설계했는지를 보다 높은 비중으로 평가해야 한다." 지난 9월 8일 마감한 『환경과조경』 주최 ‘2017 조경비평상’의 응모작은 두 편이었습니다. 심사를 맡은 ‘조경비평 봄’ 회원들은 밀도 있는 토론 끝에 손은신(서울대학교 대학원 협동과정 조경학전공 박사과정)의 평문 “더 새로운 공원을 향하여: 공원은 진화하는가?”를 당선작 없는 가작으로 선정했습니다. 수상작 전문과 심사평은 올해를 마무리하는 12월호에 실릴 예정입니다. 수상자 손은신 씨가 이론과 실천의 접면을 가로지르며 조경 문화의 성숙을 주도할 비평가로 성장하길 기대하며 축하와 응원의 박수를 보냅니다.
    • 배정한[email protected] / 편집주간, 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
  • [칼럼] 정원박람회에 대한 세 가지 바람
    2004년이었을 것이다. 『환경과조경』의 남기준 편집장이 독일의 정원박람회에 대한 단행본을 쓸 의향이 있는지 물어왔던 것이. 그래서 2006년 탄생한 것이 『고정희의 독일 정원 이야기: 정원박람회가 만든 녹색 도시를 가다』이다. 순천시 도서관 사서 나옥현 씨가 그 책을 읽고 노관규 전 순천시장에게 추천한 것이 발단이 되었다. 순천시로부터 전화 한통을 받았을 때 그리고 “우리 순천시에서 정원박람회를 개최하는 것이 가능할까요?”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나는 감히 “예”라고 대답했다. 그 무모한 대답에 대한 책임은 순천시 공무원들이 모두 떠안아야 했다. 그리고 2013년, 순천시에서 정말로 국제정원박람회가 개최되었다! 나는 이를 순천의 기적이라고 일컫는다. 따지고 보면 이 기적의 출발선상에는 남기준 편집장의 남다른 혜안이 있었다. 지금은 순천국제정원박람회장이 들어선 그 땅에 적지 않은 개발 압력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 과감하게 생태 도시를 표방하고 “개발 대신 정원을!” 선택한 순천시의 용기와 결단에 다시 한 번 갈채를 보낸다. 정원박람회가 결의되고 나서 개최될 때까지의 힘겨운 행보를 곁에서 지켜보았다. “정원박람회가 뭐예요?”라고 묻던 공무원들이 점점 전문가로 변신해 가던 일. 중앙의 협력 부서를 찾기 위해 담당 공무원이 환경부, 문화부, 경제부 등등 차례로 문을 두드렸다가 “우리 소관이 아닌데”라는 대답을 듣고 쓸쓸하게 돌아서야 했던 일. 결국 마지막에 산림청의 지원을 받게 되었다. 그때 나는 산림청 팬이 되었다. 서울정원박람회, 경기정원문화박람회, 동탄 공공정원 등등의 반가운 소식이 차례로 들려온다. 직접 찾아가 보지 못해도 인터넷을 뒤적거리며 응원을 보내고 있다. 개인적으로 세 가지 바람이 있다. 우선 정원박람회가 도시 발전의 큰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더 많은 도시에서 이해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정원 문화에 대한 인식의 폭이 넓고 깊어지기를 바라고 있다. 지난 8월 이곳 베를린에서 열린 행사에 갔다가 한국 문화를 홍보하러 오셨다는 귀한 분을 만났다. 그분이 내게 이런 질문을 했다. “조경이 꽃꽂이랑은 다른 겁니까?” 그 질문을 받자 문득 존경하는 고 박경리 선생의 모습이 떠올랐다. 2004년도 청계천 복원사업 공사가 한창일 때 그분께서 신문에 투고한 글을 읽었다. 선생께서는 “청계천 복원 공사에 조경하는 사람들이 왜 끼어들어”라고 일갈하셨다. 그때 정말 놀랐다. 글을 끝까지 읽어보니 ‘조경하는 사람들은 비싼 시설물 만들어 파는 사람들’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계신 듯 했다. 많은 사람과 정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백이면 백 정원이나 조경을 바라보는 시선이 저마다 다르다. 이는 앞 못 보는 사람들이 코끼리 더듬는 것과는 양상이 다르다. 그들이 앞을 보지 못해서가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확실히 더듬어지지 않는 정원의 속성 때문일 것이다. 정원박람회를 찾는 방문객들이 많아지고 거기서 정원의 수많은 얼굴과 만나게 되면 정원 문화에 대한 인식이 깊어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나의 가장 큰 바람은 정원박람회를 통해 한국 정원이 재발견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옛것의 재현이 아니라 우리 정원의 정체성을 찾아 가는 것이다. 내 경우 여기 독일에서 많이 시달리고 있다. 한국 정원을 소개해 달라는 요청이 이따금 들어오는데 옛것을 소개하고 나면 “지금은?”이라는 질문이 반드시 따른다. 정원의 전통이 한때 단절되었음은 이해하겠는데 언제 다시 연결되어 어떤 모습으로 거듭났는지 혹은 날 것인지 궁금해 한다. 나도 그것이 알고 싶다. 나 홀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이기에 동료들과 후배들이 그 대답을 찾아주기를 바라고 있다. 혹은 함께 찾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매우 어려운 숙제다. 이 숙제를 풀어보기에 정원박람회보다 더 적절한 곳이 있을까?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있다. 정작 종주국 독일에서 정원박람회가 난항을 겪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첫 조짐은 아마도 2013년 함부르크에서 시작되었던 것 같다. 이번 베를린에서 열린 국제정원박람회가 10월 15일 우울하게 문을 닫았다. 2백5십만 명의 방문객을 기대했으나 그 반밖에 달성하지 못했다. 평균에도 못 미친 것이다. 올해 날씨가 너무 안 좋았다는 것을 가장 큰 이유로 들고 있다. 날씨가 정말 안 좋긴 했다. 오프닝 날 추위에 덜덜 떨었고 봄꽃이 다 얼었으며 여름 내내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정말 날씨 탓이었을까? 작품이 좋지 않았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높은 완성도를 보인 백 헥타르의 마스터피스였다. 볼거리도 많았고 음악회 등의 크고 작은 이벤트만 자그마치 팔천 건이었다. 그 때문이었을까? 정원박람회 피로 현상이 시작된 것일까? 독일은 정원 포화 현상을 겪고 있나? 그럴지도 모른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폐허가 된 국토에 다시 꽃을 피우기 위해 정원박람회가 시작되었고 통일 이후에는 구동독의 발전을 돕기 위해 또 한 번 크게 탄력을 받았다. 그리고 이십여 년이 지난 지금 전 국토의 정원화 작업이 마무리 되어가는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느긋하게 즐기는 일만 남은 것 같다. 우리도 정원 포화 현상이 오는 그날을 바라보며 부지런히 걸어야 할 것 같다. 제주도, 충청도, 강원도를 지나는 동안 어느새 통일이 되어 황해도, 평안도, 함경도에서도 정원박람회가 개최되는 그날을 상상해 본다. 고정희는 공학박사다.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에서 농교육학을 전공한 후, 베를린 공대에서 환경조경학을 전공했다. 베를린에서 써드스페이스 환경아카데미를 운영하며 조경과 환경을 접목시키는 과제에 주력. 정원의 역사와 정원 문화에 대한 집필 활동을 겸하고 있다. 독일 칼 푀르스터 재단 부회장, 베를린 건축가협회 조경분과 멤버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는 2019년 독일 바우하우스 100주년을 맞아 개최될 ‘조경의 모더니즘’ 전시회와 학회 준비에 여념이 없다. 개인 소유의 정원, 즉 나만의 낙원보다는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을 중요시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