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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의 서재] 나를 보는 당신을 바라보았다
두고두고 오래 보는 책이 있다. 분량이 방대하거나 내용이 어려워서는 아니다. 읽은 부분은 이따금 다시 읽고 아직 읽지 않은 부분은 나중을 위해 아껴뒀기 때문이다. 『나를 보는 당신을 바라보았다』1는 『씨네21』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에 연재된 글을 모은 책이다. 김혜리 기자가 한 편의 영화를 보고난 후 늘어놓은 문장 앞에서 나는 자주 멈추고 놀란다. 어떤 영화는 그의 글을 더 잘 읽기 위해 보기도 했다.
좋은 게 왜 좋고 싫은 게 왜 싫은지를 잘 설명하는 건 내게 너무 어려운 일이다. 대화하거나 글을 쓸 때 종종 속으로 당황하고 좌절하는 건 이 때문이다. 두루뭉술한 생각과 감정을 또렷하게 표현할 말들이 떠오르지 않는다. 지식의 밑천이 얄팍하고 생각이 게으른 탓이다. 그래서 평소엔 설명이 필요 없는 ‘그냥’을 입에 달고 산다. 많은 이유를 쉽고 간편하게 뭉뚱그려주지만 어쩔 땐 영 개운치 않다. 답답한 순간 중 하나는 깊은 여운을 남기는 책이나 영화를 보고 나서다. 어디가 어떻게 좋은지, 혹은 납득할 수 없는 장면에 대해 잔뜩 떠들고 싶은데 받은 감흥에 비해 내가 구사하는 언어들은 뻔하고 빈약하기 그지없다. 그럴 때면 사전을 찾듯 김혜리 기자의 글에 슬쩍 기댄다.
가령, 왜 나는 귀여운 캐릭터들이 잔뜩 나오는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2015)을 보고 당혹스러울 정도로 서러운 마음이 들었을까? 단순히 주인공의 상상 속 친구 빙봉이 영영 사라져서는 아닐 것이다. 김혜리의 말을 빌려 짐작컨대, “이 예쁜 영화는 놀랄만한 분량과 규모의 파괴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평범한 열한 살짜리 여자애가 이사를 가게 되면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이야기에는 “상실은 성장의 핵심이고 사춘기는 성격이 형성되는 것 못지않게 어린이의 기존 우주가 붕괴되는 시기라는 해석”이 포함되어 있다. 그는 한없이 명랑한 이야기가 주는 역설적 아련함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회상하기 시작할 때 유년은 끝난다는 걸 어른인 우리는 알고 있다. 모든 체험의 불가역학 일회성과 죽음을 인식하며 비로소 사춘기는 시작된다. 비극도 희극도 아니다. 기쁠 것도 슬플 것도 없다. 하지만 거기에는 어렴풋한 아름다움이 있다.”2
노아 바움백의 ‘프란시스 하’(2012)를 보면서 뜨끔했던 진짜 이유는, “성공이건 실패건 아직 제 삶을 장악하지 못”한 채 20대 후반이 다 되도록 ‘제대로 된 1인분’의 몫을 다하지 못하는 주인공의 자괴감이 낯설지 않아서였다. 프란시스가 “처음으로 온전히 제 것으로 취하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체념”이라는 대목에서는 한 대 맞은 기분마저 들었다.3 어떤 해석은 공감과 납득을 넘어선다. 내게 김혜리의 문장은 똑같은 생각으로 점철된 하루에 영화가 주는 생생한 감정들을 놓치지 않도록 손에 꼭 쥐여주는 다정함이었다. “각기 상대적 시간을 살아가지만 영화를 보는 동안 우리의 시간은 무심히 일치한다”는 그의 말을 책을 덮을 때마다 실감했다.
책의 서문에서 김혜리 기자는 자신은 “영화가 보여준 것을 적어두는 속기사”일 뿐이며,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의 제1 저자는 자신이 아닌 영화라고 밝혀둔다. 표면적으로 보면 평론가 혹은 기자가 하는 일은 일차적으로 “시각과 청각이 기능하는 사람이 살아 있다면 하기 마련인 다분히 소극적인 활동”4이다. 이미 온전한 무언가에 약간의 글을 보태는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화려한 영상과 이미지에 온 하루를 소진할 때면 이런 생각은 더욱 뾰족해진다. 하지만 스크린 위에서 빠르게 지나가는 어떤 장면은 몇 줄의 문장으로 인해 누군가를 흔드는 하나의 메시지로 남기도 한다. 미처 정의되지 못한 마음과 설명되지 않는 의문은 때때로 다른 누군가의 말과 글에 비로소 안착한다.
순전히 영화가 보여주는 것들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그의 사유와 글의 비결일까? 종종 궁금해하지만 영영 알 수 없을 테고, 알아도 그처럼 잘 보고 쓰진 못할 것이다. 다만 지금처럼 계속 남의 글에 의탁하면서 한 가지는 잘 기억하고 싶다. 이미 완성된 것이라도 최선을 다해 주시하고 구태여 말과 글을 덧대는 일의 유용함에 대해 말이다. 비평이든 편집이든, 어쩌면 영화뿐만 아니라 누군가 만들어 놓은 공간에도.
각주 정리
1. 김혜리, 『나를 보는 당신을 바라보았다』, 어크로스, 2017.
2. 같은 책, pp.190~193.
3. 같은 책, pp.196~197.
4. 같은 책,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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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A] 외근 일지
이번 달도 너그러운 마음으로 마지막 주 주말을 코다에게 내어주기로 했다. 집에서는 좀처럼 글 쓰는 일에 속도가 붙지 않는다. 일 년 전이었다면 카페 창가 자리에 노트북을 펼치고 워커홀릭 흉내라도 냈을 텐데, 팬데믹의 여파가 어쭙잖은 허세를 부릴 기회도 앗아갔다. 별수 없이 접촉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길 바라며 좁은 책상 앞에 앉아 노트북을 켰다.
제17회 대한민국 환경조경대전, 새롭게 기록하기
비대면 시대는 지치지도 않고 새로운 과제를 던져준다. 매년 이맘 때 열리는 대한민국 환경조경대전 이야기다. 예정대로라면 한 달 전부터 시상식과 더불어 진행될 전시회의 방식, 그러니까 전시장 연출이나 패널 배치 방법, 현수막 디자인에 대한 논의를 한창 나눴어야 했다. 그런데 이번에도 코로나19가 문제였다. 전국의 조경인이 참여하는 공모인 만큼, 대면 행사를 열면 전염병이 전국으로 번질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었다. 시상식은 이제 제법 익숙해진 줌 서비스와 유튜브로 대체하면 된다지만 전시회는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작품집을 만들어 배포하는 데서 끝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을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고르고 골라 선택한 게 아카이브 형식의 온라인 전시였다. VR 같은 기술로 가상의 전시장을 만들지는 못했지만, 공모의 취지와 과정, 심사평, 수상작의 패널과 설계 설명서, 작품의 이해를 돕는 동영상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도록 온라인 페이지를 만들었다. 능수능란한 도슨트가 없다는 점이 아쉽지만, 완성하고 보니 생각하지 못했던 장점들이 눈에 들어왔다. 우선 당연히 시간과 공간의 제약에 쫓겨 허둥지둥 작품을 둘러보지 않아도 된다. 패널 속 깨알 같은 글씨를 들여다보기 위해 눈을 가늘게 뜰 필요도 없다. 클릭 한 번이면 마스터플랜이든 단면도든 화면 가득 띄워 탐구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 같은 형식의 전시가 매년 반복된다면 훌륭한 데이터베이스가 구축될 것 같다는 기대가 생겼다. 단순히 패널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각 작품의 주제와 그에 따른 전략을 키워드로 정리해둔다면, 조경설계의 경향과 흐름을 사회 현상의 변화와 엮어 살펴볼 수 있지 않을까? 이번 온라인 전시회(www.nkla.co.kr)는 2021년 10월 13일까지 계속된다. 아직 들러보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한 번쯤 접속해볼 것을 추천한다.
LH가든쇼, 정원은 경계를 품었나
서울 촌놈이라는 수식어에 딱 맞는 삶을 살아와서 그런지 한적한 교외에 갈 때면 늘 낯선 감상에 빠진다. 일상을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곳에 버려두고 모른 체하는 듯한 감각은 묘한 해방감을 느끼게 한다. ‘제2회 LH가든쇼’가 열린 동말근린공원이 딱 그런 장소였다. 높은 아파트 대신 야트막한 산을 배경으로 둔 공원은 사회적 거리두기의 영향 때문인지 한갓져 보였지만, 쓸쓸하다는 인상을 주지는 않았다. 덕분에 인파에 치여 정원을 스쳐 지나듯 방문하지 않고 맘껏 머무를 수 있었고, 오랜만에 이어폰을 끼지 않고 바람이나 날벌레의 날갯짓 소리를 들으며 걸었다.
‘정원, 경계를 품다’를 주제로 만들어진 아홉 개의 작가정원이 공원을 채웠다. 다른 정원박람회보다 넉넉하게 지원된 정원 조성비 덕분인지 완성도가 상당해 보였다. 그런데 하나의 길을 따라 꼭 미술품을 전시해놓은 것처럼 배치된 정원의 모습에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국내 정원박람회에서 조성된 대부분의 정원은 존치를 목표로 한다. 미술 작품이야 전시가 끝나면 철거하거나 자리를 옮길 수 있지만, 땅을 조작하고 뿌리를 내리는 식물을 주로 다루는 정원은 애초에 이동에 적합한 대상이 아니기도 하다. 정원 하나하나에는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경계를 지우는 방법이 담겼는지 몰라도, 멀리서 보면 정원의 행렬이 꼭 공원에 새로운 경계를 세운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정원박람회가 과시적 행정이나 일회성 보여주기에 그치지 않으려면 정원 위치를 좀 더 신중히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지난 한 달 편집부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을 더듬었을 뿐인데, 틸란드시아를 걸어둔 창문 너머 하늘이 금방 어둑해졌다. 드디어 마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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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PANY] 자연의벗연구소
마을과 핫교를 잇는 환경 교육의 전초 기지
자연의벗연구소는 지역의 환경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하는 연구소로 2014년에 설립됐다. 거버넌스를 기반으로 환경 정책 제안 및 컨설팅을 하고 있으며, 아시아 시민 사회와 연대하는 생명 평화 운동의 거점으로도 역할한다. 환경 이슈를 발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질적 대안을 만들어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오창길 대표는 21년간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다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무작정 일본으로 떠났다. 기후 위기의 해법을 찾고자 당시 한국보다 환경·생태 부문에서 앞서 있던 일본의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고 매일같이 전문가를 찾아다니며 인터뷰했다. 이 인터뷰를 글로 묶어 책으로 발간하기도 했다. 환경 교육으로 석사 과정을 밟고 생태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교직 생활을 접고 자연의벗연구소를 설립했다.
오 대표는 환경 문제는 정부와 기관의 정책과 사업 추진만으로는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설명한다. “내적 욕구에 의해 스스로 환경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이들이 많아져야 한다. 개인의 실천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마을 단위에서부터 환경 문제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게 하는 일이 해결책의 시작점이 될 것이다.”
자연의벗연구소는 시민들의 눈높이에 맞춘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주로 민관산학의 협력을 통한 지속 가능한 도시 정책 연구를 진행하며, 아동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환경 교육 실행 및 정책 연구 컨설팅, 프로그램 개발 및 실행에도 힘쓰고 있다. 더불어 이들의 생활 환경 및 권리 신장을 위한 제반 사업도 수행하고 있다.
질 좋은 환경 교육의 확산을 위해 산림교육전문가 및 교육 시설 관련 사업도 진행 중이다. 친환경 도시 조성을 위한 도시 농업 및 학교 텃밭 사업에 참여하고 있으며, 국제 교류 및 연수 프로그램을 개발해 시행 중이다. 2019년부터는 환경 교육의 연장선에서 어린이 놀이터 프로그램 및 시설 운영까지 사업의 범위를 넓혔다. 마을과 학교를 잇는 환경 교육은 자연의벗연구소의 핵심 과제 중 하나다. 그 일환으로 국가기술자격을 인정받은 사회환경교육지도사를 양성하고 있는데, 사회환경교육지도사를 양성하는 기관은 수도권에서 단 두 곳뿐이다. 지난 6월에는 서울시 지역환경교육센터(마포구)로 지정됐으며, 시민 후원으로 교육 공간을 갖춰 8월부터 본격적인 센터 운영에 들어갔다. 또한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위탁을 받아 서울시 내 131개 중 학교의 환경 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환경 교육을 위한 교재와 교구 제작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최근에는 미래 세대를 위한 ‘바다로 간 플라스틱 교구’와 ‘미세 먼지를 부탁해 교구’를 선보였다. 바다로 간 플라스틱 교구는 초등학교 고학년을 대상으로 한 동명의 교재를 기반으로 참여형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도록 돕는다. 학생들이 몰입하기 쉽도록 역할극용 머리띠, 분위기 조성용 전시 패널, 물범 체험용 밴드, 플라스틱 대체 용품 등으로 구성되었다. 미세 먼지를 부탁해 교구는 친근한 방식으로 미세 먼지의 원인, 대응 방법, 해결책을 살펴볼 수 있는 학습 도구다. 머리카락과 초미세 먼지의 크기를 비교해볼 수 있는 머리카락 인형, 미세 먼지 인형, 간단한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카드와 보드판, 이야기 그림책 등이 들어있다.
오 대표는 “자연의벗연구소의 활동은 시민들의 인식 증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우리 일상 가까이에 있는 환경 문제를 이야기해 자연스럽게 흥미를 유발하는 것이다. 사업적 접근보다 신선한 아이템을 통해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새로운 지식을 전파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마을에서 조금씩 환경 문제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다 보면 미래 세대의 아이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살게 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내비쳤다.
TEL. 02-3144-7877 WEB. www.ecobuddy.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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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DUCT] 건강한 놀이 환경을 만드는 ‘빅트리 조합 놀이대’
LED 조명과 안개 분사 기능을 갖춘 놀이 시설
비엔지BnG의 ‘빅트리 조합 놀이대’는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할 뿐만 아니라 쾌적하고 안전한 놀이 환경을 제공한다. 동화 속 커다란 나무를 연상케 하는 구조물에 조명과 안개 분사 기능을 더했다. 잎이 무성한 나뭇가지들을 떠올리게 하는 나팔 모양의 지붕은 한글의 자모음을 조합한 독특한 패턴으로 구성했다. 뒤죽박죽 섞인 한글을 보며 호기심을 느낀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한글을 학습하게 된다.
지붕을 비롯한 조합 놀이대 군데군데에서 분사되는 안개 분수는 무더운 여름 복사열로 달궈진 땅과 공기의 온도를 낮추고, 대기 중 미세 먼지를 흡착해 아이들의 건강을 지켜준다. 야간에는 지붕 형태를 따라 색색의 LED 조명이 들어오는데, 공간의 랜드마크로 활용될 뿐만 아니라 인적이 드문 시간대에는 방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빅트리 조합 놀이대는 분당구의 불정어린이공원에 설치되어 2019년 한국디자인진흥원이 주관한 우수디자인 상품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TEL. 031-708-0693 WEB. www.tory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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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팬데믹 이후의 도시 풍경
바이러스와 동거하는 2020년의 공원, 발 디딜 틈이 없다. 바삭한 바람과 예리한 햇살이 공원에 가을을 채우기 시작하자 공원은 주말은 말할 것 없고 평일 낮과 밤에도 대만원이다. 마스크로 코와 입을 싸맨 인파가 줄지어 걷는 초현실적인 공원 풍경은 훗날 역사 교과서의 한 쪽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코로나19 이후 도시의 일상생활에서 공원 이용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는 현상은 여러 데이터로도 입증된다. 구글의 ‘코로나19 지역사회 이동성 보고서’가 단골로 인용되는 자료였는데, 얼마 전 발간된 ‘카카오 모빌리티 리포트 2020’에도 흥미로운 대목이 많다. 카카오내비에 쌓인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만든 모빌리티 인덱스에 따르면, 사회적 거리두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2월 말 이후 주요 목적지별 방문 순위에 큰 변화가 생겼다. 예를 들어 주말 톱100 관심 지점POI에 을왕리해수욕장(25위), 소래포구종합어시장(34위), 두물머리(36위), 속초관광수산시장(39위), 여의도한강공원(48위), 광교호수공원(56) 등 야외 관광지와 대형 공원들이 새로 포함된 것이다. 이처럼 코로나19 팬데믹은 도시의 일상과 여가는 물론 이동의 패턴까지 변화시키며 공간 구조와 형태를 재편해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390호의 특집 지면 ‘포스트 코로나, 도시의 안녕을 묻다’를 통해 『환경과조경』은 팬데믹과 함께 벌어지고 있는 일상생활, 작업 환경, 공원, 도시의 변화를 두루 짚어보고 다가올 미래의 양상을 조심스럽게 전망해보고자 했다. 조경가, 조경학자, 도시설계가, 도시기획자, 도시학자, 부동산학자, 교통학자, 경영학자 등 다양한 분야의 필자 열아홉 명을 초대했다. 전속 포토그래퍼 유청오는 팬데믹 시대의 공원 풍경을 사진으로 전한다. ‘코로나 일상 탐구’로 묶은 지면에서 최지수, 김진환, 정해준, 김연금, 서웊숲컨서번시, 서영애는 짧은 글과 한두 장의 이미지를 통해 재택근무가 가져온 일상의 변화, 뉴노멀이 된 온라인 강의, 설계 방식의 시행착오, 공원 풍경과 사용의 변화상을 담아냈다.
‘뉴노멀 시티스케이프’라는 꼭지로 엮은 지면에는 박승진, 이홍인, 조용준, 엘피스케이프, 오현주, 이해인, 홍주석, 민성훈이 참여해 팬데믹 이후의 도시 공간을 전망하거나 상상했다. 민성훈이 전망하듯, 뉴노멀 도시에서 용도의 “경계를 허무는 빅블러big blur의 결과가 지금보다 다양성과 효율성이 높은 상태일지, 반대로 어지럽고 불편한 상태일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변화의 속도가 빨라질 것이라는 점이다.” 박승진의 의견처럼, “도시 녹색 공간의 확충이 팬데믹의 즉효 약이 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시민들의 지친 심신을 위로하고, 앞으로 우리가 함께 걸어가야 할 길이 어느 길인지, 그리고 이 시대가 추구해야 할 정책 목표의 지향점이 어디를 향해야 할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실천 전략임은 분명”할 것이다.
조금 더 긴 분량의 에세이 지면은 김충호, 김세훈, 황기연, 신명진, 모종린이 맡았다. 김충호는 코로나 시대의 한가운데에서 우리는 ‘도시의 안녕hello’을 위해 노력해야 할지 아니면 ‘도시에게 안녕(goodbye)’을 고해야 할지 물으며,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한 시대의 도시에서 중요한 것은 사회생태적 리질리언스(resilience)라는 의견을 피력한다. 김세훈은 올해 4월부터 빅데이터를 분석해 직접 진행하고 있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대중교통과 생활 인구 연구의 일부를 공유한다. 감염 공포의 지속이 여러 형태의 ‘도시 격차(urban divide)’를 키울 것이라는 흥미로운 연구 결과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을 것이다. 황기연은 ‘컴팩트 시티, 언택트 시티, 그린 시티’라는 세 가지 시나리오별로 미래의 도시 교통 과제를 전망한다. 신명진은 공원과 공중 보건의 함수 관계를 역사적으로 짚어본 뒤 포스트 코로나 도시에서 ‘재난의 완충 지대로 재조명되고 있는 공원의 가치’를 논의한다. 모종린은 ‘동네 중심의 일상’을 강조하면서 코로나19와 공존하고 환경과 공동체를 복원하기 위해 필요한 도시 모델은 ‘생활권 도시’임을 역설한다.
이미 지난 봄부터 코로나 이후의 도시와 건축, 공간 문화에 대한 갖가지 예측이 넘쳐났고, 도시는 코로나 이전으로 결코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진단이 번져나갔다. 익숙한 것들과 결별하고 이제는 ‘뉴노멀’을 준비해야 한다는 의견에 공감하는 면도 적지 않지만, 유행에 편승한 ‘질러보기’식, ‘아니면 말고’식 주장들이 감염의 두려움 못지않은 피로감을 우리에게 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편집부는 이번 특집이 피로하다 못해 어느덧 지루하기까지 한 포스트 코로나 전망을 하나 더 보태는 기획으로 흘러서는 안 된다는 점을 자기 검열 기준으로 삼고자 했다. 석 달 넘게 지면을 기획하고 공들여 필자들을 섭외한 김모아 기자와 윤정훈 기자가 특집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이번 특집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좀 더 담담히 바라보게 하고, 소란 가운데 놓치는 중요한 것들을 알게 해”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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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감각] 마스크를 쓴 시인
시 낭독회엔 좀처럼 발걸음이 향하지 않았다. 코로나19 탓도 있지만 혼자 읽어야 더 깊게 집중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가보기로 마음먹은 건 시인은 어떤 사람일지 궁금해서였다.
낭독회는 시집 출간을 기념해 시인과 시를 좋아하는 이들 그리고 동료 시인 몇 명이 모여 소리 내 시를 읽고 해설해주는 식으로 진행됐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을수록 짐작과 많이 달랐다. 그는 다른 우주의 존재 같았는데 내 작업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었고, ‘걷어찼다’는 표현은 은유가 아니라 진짜 발차기였다(의외로 격투기를 오랫동안 했다고). 오래도록 가져갈 수밖에 없는 상처에 관한 대목을 읽는 그의 목소리는 살짝 떨리기도 했다. 아픔을 드러내지 않은 것이 아니라 아직 완전히 벗어나지 못해 그 경험을 그대로 적을 수 없었던 걸까.
집에 계신 아흔 넘은 할머니를 떠올리면 지나치는 사람들이 마스크로 코와 입을 잘 가렸는지 확인하게 된다. 그러다 그 시인이 생각난다. 지나간 이 중에, 그가 있지 않았을까. 마스크보다, 마스크 밖으로 드러낸 것과 감춘 것을 살펴야 하지 않았을까. 왠지 코로나19가 만든 마스크 풍경이, 조금은 달라 보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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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코로나, 도시의 안녕을 묻다
새로운 바이러스가 발견된 뒤로부터 열 달이 지났다.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전파 속도만큼 변화 또한 신속히 일어났다. 옆자리 동료와 모니터를 사이에 두고 회의를 하는 모습이나 투명 가림막이 세워진 초등학교의 책상, 마스크 낀 수많은 사람이 지하철 계단을 오르내리는 풍경은 재난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닌, 일상을 유지하는 안온한 풍경이 됐다.
팬데믹은 분야를 막론하고 사회 전반을 뒤흔들었다. 하루아침에 산업의 중심으로 급부상한 분야가 있는가 하면, 어쩌면 영영 회복을 기대할 수 없는 분야도 생겼다. 세계 곳곳에서 진단과 분석, 예측이 넘쳐났다. 일부 섣부른 결론과 어설픈 예측, 유행에 편승해 목소리를 높이려는 주장은 바이러스에 대한 막연한 공포로 지친 우리에게 피로감을 더하기도 했다.
코로나19는 사스SARS나 메르스MERS와 같이 일시적 유행병에 그칠까, 아니면 역사의 중대한 변곡점으로 남을까. 아직 판단하긴 이르다. 효과적인 백신과 치료제가 개발되면 지금의 활발한 포스트 코로나 논의가 무색하게 금세 모든 것이 예전으로 돌아갈지도 모른다. 반면 페스트나 콜레라가 의료 기술의 집약적 발전을 가져오고 공중위생과 도시계획의 새로운 토대를 닦은 것처럼, 코로나19 발병이 기술과 공간의 실제적 변화를 촉발하는 지점으로 기록될 수도 있다.
팬데믹 이후의 도시를 구체적으로 예측하기보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보기로 했다. 19명의 필자는 관찰, 진단, 분석, 예측 등 다채로운 관점으로 도시를 살핀다. 개인의 일상을 탐구하거나, 실현 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는 과감한 상상을 펼치는가 하면, 도시 공간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굴하기도 하고, 회의 가득한 눈으로 현 대응책의 한계를 일깨우기도 한다. 더불어 팬데믹에 발 빠르게 대응한 도시공원의 모습과 다양한 공모전의 아이디어를 함께 실었다. 지면에 실린 이야기가 혼란스러운 상황을 좀 더 담담히 바라보게 하고, 소란 가운데 놓치는 중요한 것들을 알게 해주길 바란다.
무엇보다 이번 특집은 팬데믹 한가운데 서 있는 당신에게 전하는 안부이기도 하다. 언제 어떤 경로로 감염될지 모르는 무형의 바이러스에 그저 최선을 다해 손을 씻고 마스크를 쓰는 개개인에게 특집 속 다양한 생각이 가벼운 소식처럼 닿길 바란다. 이 안부가 월간 『환경과조경』이 미처 다루지 못한 도시 구석구석, 공간과 사람들 틈으로 뻗어 나가 더 나은 메아리로 되돌아오길 기대한다.
코로나 일상 탐구
조경가 엄마의 직장 생활 _ 최지수
불안함과 성실함 사이 _ 김진환
코로나19 캠퍼스 일기 _ 정해준
기본을 되짚기, 문제를 잘게 쪼개기 _ 김연금
위드 코로나 시대의 공원 사용법 _ 서울숲컨서번시
보라매공원에 헬리콥터가 떴다 _ 서영애
뉴노멀 시티스케이프
별의 안녕을 묻다 _ 박승진
가상의 벽, 블루스케이프 _ 이홍인
호모 언택트 도시 _ 조용준
올인빌딩 _ 엘피스케이프
공원에서 정원으로 _ 오현주
불확실성의 뉴노멀 _ 이해인
도시, 새 출발 _ 홍주석
언택트와 온택트, 그래서 빅블러 _ 민성훈
도시의 안녕인가, 도시여 안녕인가 _ 김충호
빅데이터로 본 코로나 시대의 도시 서울 _ 김세훈
코로나와 교통의 미래 _ 황기연
재난 완충 지대, 공원의 가치 _ 신명진
코로나 시대의 생활권 도시 _ 모종린
미래는 이미 과거가 되었다 _ 신명진
더 읽을거리, 더 볼거리 _ 편집부
팬데믹, 공원 풍경 _ 유청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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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코로나, 도시의 안녕을 묻다] 조경가 엄마의 직장 생활
샌프란시스코.하루의 일정을 알리는 슬랙Slack메시지가 도착했다.구글 캘린더로 미팅 일정을 확인하고 밤새 지구 반대편에서 온 이메일을 훑어본다.간단히 아침 요가를 하고 아이의 도시락과 아침을 준비한 뒤 출퇴근 시간을 아껴 조금 이른 시간 일과를 시작한다. 6:00 am
나는 초고층 빌딩으로 유명한 대형 건축 사무소 SOM(Skidmore, Owings & Merrill)의 오픈스페이스 프랙티스 팀에서 조경가로 일한다. 한창 진행 중인 일은 뉴욕의 건축 팀과 협업하고 있는 서울의 프로젝트다. 몇 달 전부터 15명 정도 되는 뉴욕의 건축, 구조팀과 샌프란시스코의 오픈스페이스 팀원들이 서부보다 세 시간 빠른 동부 시간에 맞춰 매일 아침 프로젝트 미팅으로 만나고 있다. 신입 사원부터 파트너까지 한 화면에 모여 디자인 진행 상황을 발표하고 리뷰하며 자유롭게 의견을 주고받는다. 긴장과 열정으로 시작하는 아침은 이제 익숙한 일상이 됐다. 8:00 am
코로나19로 인한 재택근무가 시작되기 전에도 샌프란시스코, 시카고, 뉴욕, LA, 워싱턴 DC의 지사와 런던, 상해, 홍콩 등 전 세계의 동료와 같이 일해왔기에 원격으로 업무를 조정하고 진행하는 것이 완전히 새로운 방식은 아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같은 오피스에 있는 팀원과도 원격으로 의사소통을 해야 한다는 점과 클라이언트 미팅도 모두 화상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미팅 횟수와 시간이 점점 늘어나면서 의사소통, 협의, 신뢰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는 요즘이다...(중략)
* 환경과조경 390호(2020년 10월호) 수록본 일부
최지수는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조경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에이컴(AECOM), 하그리브스 어소시에이츠(Hargreaves Associates, 현 Hargreaves Jones)를 거쳐 SOM에서 조경 설계를 지속하고 있다. 건축, 도시, 구조, 인테리어 등 다양한 분야와 협업해 조경가의 역할을 유연하게 정립하고자 한다. 더불어 아이와 함께하는 제3의 공간에 대한 관심이 많아 「시소(Seesaw)」의 해외 특파원으로 활동하며 브런치에 정기적으로 글을 소개하고 있다. brunch.co.kr/@playwitha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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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코로나, 도시의 안녕을 묻다] 불안함과 성실함 사이
오늘도 확진자 수가 200명을 넘었다. 3주 넘도록 이런 상황이 지속되니 추가 확진자 수를 확인하는 것이 더는 무의미해 보인다. 코로나19 유행 초기에는 엄습하는 불안감에 수시로 확진자 수를 헤아리는 데 많은 시간을 쏟았다. 아마도 생전 처음 겪는 일에 반쯤 패닉 상태였던 듯하다. 불안도 계속되면 익숙해지는지 지금은 그 수가 몇 백이 되어도 아무런 감흥이 없다.
올봄의 경험이 떠오른다. 나는 사무실을 떠나 선정릉에 있는 합사에 파견을 나가 있었다. 설계사무소에서 연차가 어느 정도 쌓이면 합사 파견 자체는 그다지 낯선 경험이 아니다. 돌이켜보면 일 년에 한두 번은 합사에서 일을 했다. 사실 설계사무소 직원 대부분은 합사 파견을 별로 반기지 않는다. 싫어한다고 해야 정확할 것이다. 짧은 시일 안에 결과물을 만들어야 하기에 야근도 많고 주말 출근도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그 반면 내게 합사는 별다른 감정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장소만 바뀔 뿐 일하는 것은 어디서든 매한가지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지난봄은 달랐다...(중략)
* 환경과조경 390호(2020년 10월호) 수록본 일부
김진환은 올해로 7년차가 된 설계 노동자다. 서울대학교 학부와 석사 과정에서 조경을 전공했고, 라이브스케이프와 CA조경기술사사무소를 거쳐 그룹한 어소시에이트에서 실무 경력을 쌓고 있다. 조경 외 다양한 분야의 경계를 곁눈질하며 서로 상충하는 것들의 이접을 통한 창발적 생성에 주목한다. 다양한 매체에 호기심이 많으며 특히 인쇄된 활자 묶음에 관심이 많다. 틈만 나면 책을 사 모으지만 정작 읽은 책은 얼마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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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코로나, 도시의 안녕을 묻다] 코로나19 캠퍼스 일기
1월 20일, 국내 첫 확진자 발생. 위기 경보 단계가 ‘경계’로 상향되고, 일주일 뒤 대학 본부는 교수들과 학생들에게 중국 여행 취소나 연기를 부탁한다. 국제 뉴스에서나 보던 바이러스가 한국에 들어왔다니 교내에 긴장감이 돌기 시작한다. 소금물 가글과 마늘 섭취 등의 민간요법, 코로나는 더위에 약하다는 뉴스가 긴장을 이완시킨다. ‘대프리카’에 사는 것이 위로되는 순간이다. 오히려 달성군 도시경관과와 진행하기로 한 3학년 스튜디오 수업 준비가 더 걱정이다. 겨울방학 강의실에서 조경기사와 공모전 준비에 한창인 학생들과 2주 연기된 개강과 한 주 짧아진 방학을 안타까워한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2월 18일, 서른한 번째 확진자 발생. 가벼운 감기 정도로 생각했던 바이러스는 컬트 종교를 숙주 삼아 지역 사회를 초토화했다. 3월 8일 기준으로 대구·경북 지역에서만 6,100명의 확진자가 발생한다. 조경기사 취득 캠프부터 직격탄을 맞았다. 습관처럼 몇몇 학생이 강의실을 서성인다. 모든 것이 정지한 유령 도시를 나홀로 헤쳐온 무용담을 나누고 있다. 멀찌감치 그들의 이름을 부르고 새 학기가 시작되면 만나자는 위로와 함께 그들을 돌려보낸다. 며칠 뒤 대학 내 감염 사례가 전달되고, 그사이 새로운 이름을 얻은 코로나19의 위기 상황은 심각 단계로 격상된다. 대학의 모든 출입구는 3주간 봉쇄됐다. 뉴노멀은 그렇게 시작됐다...(중략)
* 환경과조경 390호(2020년 10월호) 수록본 일부
정해준은 고려대학교 환경생태공학부를 졸업하고, 짧은 실무 경험 후 영국 셰필드 대학교 조경학과에서 문화경관 연구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는 계명대학교 도시학부 생태조경학과에서 경관계획, 역사환경, 경관특성화 관련 강의와 연구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