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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로 상상하기, 픽셀로 그리기] 파라메트릭 플랜팅 I
수련
나는 식재(planting)를 디자인 교육으로 배워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정말 웃긴 일, 지독하게 웃긴 일이야. 몇 년 전 사무실을 시작하고 태경이에게 처음 배웠다. 뭐 사실 배운 건 아니지. 그가 가르쳐준 적은 없으니까. 어깨너머로 배우고 렌더링해주면서 배우고(그림 1), 매일 아침 아이스 라테를 책상 위에 준비해놔야 했어. 주말에는 청계산을 등반해 폭포수를 맞으며 학명을 암기하곤 했지. 정말 웃긴 일이야,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과 배우지 않는다는 것은. 지독하게 슬픈 사실이지.
인과의 측면에서 이보다 선행된 원인을 굳이 밝히자면, 이제 와서 다 무슨 소용이겠냐 만은, 수련 생활을 시작하기 전 실수로 배운 포레스트 팩(Forest Pack)이 결정적 빌미를 제공하고 만 거야. 알 수 없는 일이지, 내일의 인생이 어디로 흘러가게 될지는. 사실 지나고 보면 단 하루도 예측할 수 없었던 건데, 사람의 뇌라는 게 늘 편향된 착각을 만드니까. 교육받은 습관에 따라 논리적인 미래를 그리고, 다음날이 되면 기대가 어김없이 무너지지. 그래도 뭐 또 괜찮아지잖아. 무려 망각의 동물이니까. 정말 그럴듯한 핑계지. 어제까지만 해도 논리를 말하다가 마음대로 안 되니까 망각이라니. 핑계가 없으면 살 수 없다는 사실만이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인 거야. 굳이 아이스 라테일 필요는 없는 거잖아.
실수
그래서 실수를 하고 만 거야. 하지만 실수를 하려고 실수를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 실수는 원하지 않은 미래의 다른 표현일 뿐이야. 포레스트 팩을 배우기로 결심한 건 단지 유치한 영웅 심리였어. 당시 아는 사람이 별로 없더라고. 그러니까 나중에 잘난 척을 실컷 할 수 있겠다 싶었지. 충분하지 않아? 사람들은 다 그래서 무언가를 하잖아. 그 외의 복잡한 얘기는 다 거짓말이야. 사람은 그렇게 될 수밖에 없어.
하지만 그 미래가 청계산으로 이어질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지. 누구의 잘못도 아니야. 서로의 이해관계가, 각자의 호승심이, 어제의 바람과 오늘의 썩은 사과가 교차된 미래를 만든 것뿐이야. 통제할 수 없지. 바꿀 수도 없고. 식재를 렌더링 플러그인에서 시작해 배울 줄 누가 알았겠어. 그렇다고 세상이 달라지진 않았어. 나도 달라지지 않았고, 태경이도 여전하지. 모두가 환상과 망각 사이에서 전전긍긍할 뿐이지.
그렇지만 얘기해야 할 거야, 포레스트 팩의 과거와 미래에 대해. 인지하고 있다고 도망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잖아. 그럴 수 있다면 마음을 왜 먹겠어. 잘 안 되는 거겠지. 얘기하지 않고는 참을 수 없는 정신적 결핍에 오갈 데가 없겠지. 다 털어놔야겠어. 망설인다고 누가 이해해 주는 것도 아니잖아.
맥스 생태계
포레스트 팩(그림 2, 3)이 뭐 그렇다고 대단한 프로그램은 아니지만, 조금 다른 영역이라고 봐야 돼. 건축 프로그램이 아니거든. 뭐 그렇다고 할 수는 있지만, 지금까지 말해온 브이레이나 루미온 같은 것들과는 분명히 결이 다르지. 나도 여기서부터 조금 너무 나갔다는 느낌이 들긴 했어. 그런데 나란 인간은 어쩔 수 없어. 그만큼의 결핍이 무언가의 과장으로 이어진 걸 테니까. 인과율이지. 그래서 왜 또 이렇게 질질 끌고 있는 거냐면 3ds맥스 시장의 맥락에 대해 먼저 설명해야 하기 때문이야. 나는 이제 맥락의 노예가 되고 말았어. 설계 교육의 부작용이지. 맥락이 없으면 아마 치킨도 먹을 수 없을 거야.
건축계가 캐드, 스케치업, 라이노, 브이레이와 루미온, 그래스호퍼, 레빗 등의 미디어와 함께 발전해왔다면, 3ds맥스와 마야Maya는 게임과 애니메이션, CG 영화의 세계에 있었어. 이 둘은 근본적으로 다른 관점에서 미디어를 상대해왔지. 건축에서는 어디까지나 중간 과정으로, 맥스의 세계에서는 최종 결과물로 말이지. 그리고 이 차이가 완전히 다른 시장 구조와 프로그램의 개발 방향을 만들어온 거야. 단적으로 건축에서는 컴퓨터 프로그램에 대해 그렇게 진지할 필요가 없었어. 요즘에는 좀 달라지고 있긴 하지만, 복합 학문이고 배워야 할 것도 많고 인문학과 시공 결과물 사이에 어색하게 껴 있었지. 하지만 맥스의 세계에서는 컴퓨터 그 자체가 전부잖아? 그래픽과 애니메이션이 최종 판매 제품이라고. 따라서 처음부터 제대로 프로그램 교육을 받지. 아마추어를 위한 프로그램은 필요가 없어. 개발자들이 대중적인 플랫폼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없다고. 극단적인 전문성만 추구하면 돼. 그래서 어렵지, 복잡하고. 소위 말해 프로페셔널 생태계만 존재하는 거야...(중략)
*환경과조경390호(2020년 10월호)수록본 일부
나성진은 서울대학교와 하버드GSD에서 조경을 전공했다.한국의 디자인 엘,뉴욕의 발모리 어소시에이츠(Balmori Associates)와 제임스 코너 필드 오퍼레이션스(JCFO)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고, West 8의 로테르담과 서울 지사를 오가며 용산공원 기본설계를 수행했다.한국,미국,유럽에서의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귀국 후 파트너들과 함께 얼라이브어스(ALIVEUS)라는 대안적 그룹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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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잇기] 묵묵히 한곳을 지켜온 사람들
그는 늘 용산에 있었다
용산전자상가에서 각종 전자 제품의 부품 도급을 맡고 있는 박종승 사장은 적산 가옥이 즐비한 1960년대 용산 만초천 근방 골목의 어느 집에서 태어났다. 동네 형들을 따라 만초천에서 물장구치며 놀던 희미한 기억에서 시작되는 그의 추억은 늘 용산에 머물러 있다. 개구쟁이 유년 시절과 말썽쟁이 학창 시절을 거쳐 첫사랑, 첫 사업, 신혼집, 첫 아들 모두 용산과 함께했다. “용산에서의 기억 중 가장 인상 깊은 에피소드가 있나요?” 질문을 받자 그의 입가에 천진한 미소가 번진다. “있고말고요. 아주 많죠. 제 인생은 용산전자상가 터가 변해온 역사와 궤적을 같이 하는 거나 마찬가지에요.”
얼마 남지 않은 머리숱처럼 옅어진 기억이라도 또렷이 떠오르는 게 있다. 지금의 용산전자상가 자리에 만초천이 흐르고 바로 옆에 청과물 시장이 있었을 때, 어머니 치맛자락을 잡고 장보러 다닌 게 어린 시절 기억의 시작이다. 김장철이면 배추를 몇백 포기씩 사다 이웃 아주머니들과 친척 어른들이 골목길에 자리잡고 모여 온 동네가 며칠 동안 시끌벅적했다. 그는 골목과 청과물시장을 부지런히 오가며 심부름을 했다. 어느 이웃집 아주머니 앞에 서건 입을 아, 하고 벌리면 육즙이 좌르르 흐르는 삶은 돼지고기를 싼 갓 만든 겉절이가 입안으로 들어왔다. 심부름값으로 최고였다. 평생 잊을 수 없는 인생 최고의 맛으로 남아 있다.
용산은 조선 시대부터 전국의 물자가 들어오고 나가는 서울의 주요 관문이었다. 일제 식민지기에는 일본인 거류지로 쓰여 적산 가옥이 많이 들어섰다. 용산전자상가 앞 한강을 향해 곧게 뻗은 도로에 있던 만초천은 지형을 따라 용산나루로 굽이굽이 흐르며 한반도와 만주를 연결하는 물류의 출발지로 역할했다. 19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청과물시장은 전국에서 올라온 싱싱한 채소와 과일을 사고파는 사람들로 활기가 넘쳤다. 86 아시안게임과 88 서울올림픽 준비를 위한 도시정비계획의 일환으로 청과물 시장은 1983년 송파구 가락동으로 확장 이전했다. 1987년, 상인들이 삶의 터전을 옮겨 빈 자리에 당시로선 신산업인 컴퓨터와 각종 전자 제품을 취급하는 용산전자상가가 들어섰다.
1990년대의 메카, 용산전자상가
1990년대 전자 산업 유통의 중심지 용산전자상가는 크게 나진상가, 선인상가, 원효상가, 전자랜드, 터미널상가(현 서울드래곤시티 호텔)로 구분된다. 현재 약 21만m2의 부지에 4,000여개 점포가 있는 국내 최대의 전자상가다.1 조성 초기인 1980년대 후반에는 아시아 최고의 전자상가로 불렸으며, 이후 조립형 컴퓨터, 게임, 조명, 음향, 영상, 전자 제품 관련 각종 부품과 소프트웨어를 망라하는 도소매 및 유통 관련 업종이 30여 년 간 흥망성쇠를 거듭했다.
1970년대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가전 및 전자 제품 업종의 중심은 세운상가와 청계천변 상가였다. 1980년대 후반, 신산업으로 떠오른 퍼스널 컴퓨터PC에 관심이 많고 컴퓨터 조립 기술을 습득한 젊은 상인들, 전산원 같은 전문 교육 기관에서 소프트웨어 기술을 배운 청년들이 새로운 기회의 땅 용산에 둥지를 틀었다. 최고 전성기였던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소위 잘 나가던 용산전자상가는 조립 PC와 부품을 사려는 사람들과 새 전자 제품을 구매하려는 얼리어답터들의 핫 플레이스였다.
그러나 발 디딜 틈 없던 호황기에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바가지를 씌우는 일부 상인들이 나타났고, 용팔이(용산+팔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기며 부정적 인식이 커지기 시작했다. 이는 용산전자상가 전체의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소비자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어 다수의 성실한 상인들도 큰 타격을 입었다. 잘못 걸리면 바가지 쓴다는 주변 사람들의 평을 듣고 필자도 컴퓨터 좀 만질 줄 안다는 선배들과 팀을 이뤄 용산전자상가에 갔던 기억이 난다. 고품질의 다양한 전자 제품을 성능과 가격을 비교하며 살 수 있는 곳이 흔치 않았기에, 제품 비교 전시장으로 손색없는 용산전자상가에 사람들이 모일 수밖에 없었다.
늘 번영할 것 같던 용산전자상가는 2000년대 후반 이후 빠르게 변화하는 전자 산업의 생태계를 따라가지 못했고, 사람들의 발걸음도 뜸해지기 시작했다.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하나둘 빈 점포가 늘어났다. 젊고 패기 넘치던 청년 상인들은 어느덧 머리 희끗한 중년의 아저씨들이 되었다.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산업으로의 구조 전환에 성공하지 못해 쇠퇴한 용산전자상가를 다시 일으키려는 노력이 30년 넘게 한자리를 지켜온 토박이 상인들을 중심으로 일어나기 시작했다...(중략)
* 환경과조경 390호(2020년 10월호) 수록본 일부
서준원은 열다섯 살부터 대학 졸업 후까지 뉴욕에서 약10년간 생활했다.파슨스 디자인 스쿨(Parsons School of Design)인테리어디자인학과에서 다양한 주거 공간에 대해 공부했고,한국인의 생활 환경에 대한 관심으로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석사를 마치고 박사를 수료했다. SOM뉴욕 지사, HLW한국 지사, GS건설,한옥문화원,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 등에서 약16년간 실내외 공간을 아우르는 디자이너이자 공간 연구자로 활동했다.한국인의 참다운 생활 환경을 위한 디자인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품고 다양성이 공존하는 도시 공간 연구를 위해 곳곳을 누비며‘공간 속 시간의 켜’를 발굴하는 작업을 긴 호흡으로 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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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스케이프] 정원도시 에도
이달에 있을 공원 아카이브 전시 자료를 뒤지다 보니 어느새 가을이다. 이렇게 많나 싶을 정도로 곳곳에서 나오는 남산공원 자료 중 선인장 조형물 하나가 연구진의 흥미를 끈다. 남산식물원 조성 초기 거대한 선인장 조형물이 입구를 장식했는데, 상세한 도면과 지침까지 발견된 것이다. 남산식물원에는 유독 선인장이 많았는데 식물원의 철학보다는 기증자의 취향이 반영된 결과다.
1971년 재일교포 김용진은 자신이 수집한 208종 1만7,800본의 선인장과 분재, 철쭉 등을 기증했고, 이는 그대로 남산식물원 2~4호관의 컬렉션이 되었다.1 그런데 왜 선인장이었을까? 김용진이 선인장을 수집하던 1950년대 후반에서 1960년대의 일본, 이른바 전후 쇼와 시대에 선인장이 크게 유행했다. 원예업자 와타나베 에이지(渡邊英次)가 접목 선인장을 만드는 데 성공한 이래, 선인장은 일본의 주력 원예 산업으로 발달했다. 한국은 1970년대 접목 선인장을 도입했고 이어 1980년대 세계 1위의 선인장 재배 국가가 되었다.2 남산식물원의 선인장 컬렉션, 그리고 집에 있던 『월간 원예』에 자주 등장하던 알록달록한 선인장에는 이러한 시대적 배경이 있었다.
쇼와 시대의 선인장 유행이 전후 부흥기 사람들의 변덕이려니 생각했다. 독특하고 희귀한 것을 수집해 남들의 부러움을 사는 것은 보편적인 욕망이니 말이다. 그런데 찾아보니 선인장은 꽤 오래전 일본에 전파되었다. 선인장은 일본어로 ‘사보텐(サボテン)’이라고 하는데, 이는 ‘비누’라는 뜻의 포르투갈어 ‘사방(sabao)’에서 유래한다. 에도 초기의 철학자이자 식물학자인 가이바라 에키켄(貝原益軒)의 책 『야마토 혼조(大和本草)』(1709)에서 처음 언급되었고, “기름때를 잘 씻는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에도 시대에는 『본초강목本草綱目』을 토대로 한 『야마토 혼조』 외에도 여러 이론서가 출판되었다. 식물 자체를 다루는 책뿐 아니라 정원과 명승지를 안내하는 도서도 있었다. 18세기 초의 에도(오늘날의 도쿄)는 동시대 런던과 파리를 능가하는 대도시였다. 또 정원이 많기로 유명했는데, 이 넓고 깊은 원예 취미와 정원 문화는 어떻게 형성된 걸까? 이나가키 히데히로稲垣栄洋의 『식물도시 에도의 탄생』에서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다.3 ...(중략)
각주 정리
1. 방용식, “남산식물원 ‘역사로 남았다’”, 「시정일보」 2006년 10월 29일.
2. 박필만 외, “어서와! 선인장은 처음이지?”, 『RDA 인터레벵』 175호.
3. 이나가키 히데히로 저, 조홍민 역, 『식물도시 에도의 탄생』, 글항아리, 2017.
* 환경과조경 390호(2020년 10월호) 수록본 일부
황주영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불문학과 영문학을 공부하고,미술사학과에서 풍경화와 정원에 대한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서울대학교 협동과정 조경학전공에서 19세기 후반 도시 공원의모더니티에 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파리 라빌레트 국립건축학교에서박사후 연수를 마쳤다. 미술과 조경의 경계를 넘나들며문화사적 관점에서 정원과 공원, 도시를 보는 일에 관심이 많으며,이와 관련된 강의와 집필, 번역을 한다.그러는 동안 수많은 책을 사거나 빌렸고, 그중 아주 일부를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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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빈
바이러스 감염 걱정 없이 뛰놀 수 있는 비대면 놀이터
쓸쓸한 놀이터 풍경
접근 금지 테이프를 두른 미끄럼틀,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 그네, 적막에 휩싸인 놀이터는 이제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쓸쓸한 풍경이 되었다. 코로나19 사태로 가장 고통받는 이들은 어린이가 아닐까. 답답함을 떨치기 위해 이따금 산이나 바다, 가까운 교외로 탈출을 감행할 수 있는 우리와 달리 그들은 누군가의 도움 없이 집밖을 나서기 어려우니 말이다. 재택근무와 화상 미팅 등을 통해 온라인의 위대함을 체험했지만, 놀이터에서 또래와 함께 어울리며 신체 활동을 하고 사회성을 기르는 경험을 대체하는 방법은 아직 마련되지 않은 듯 하다.
림빈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사라진 놀이터의 모습을 안타까워하던 독일의 디자이너가 바이러스 걱정 없이 뛰놀 수 있는 놀이터 디자인을 제안했다. 예술가 마르틴 빈더(Martin Binder)와 심리학자 클라우디오 리멜레(Claudio Rimmele)가 설계한 비대면 놀이터 ‘림빈(Rimbin)’이다. 림빈은 경계를 뜻하는 단어 림rim과 무언가를 담는 통을 의미하는 빈bin의 합성어다. 경계가 있는 통과 같은 개별 플랫폼을 아이들에게 제공해 안전하게 놀이를 즐기면서도 서로 소통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고자 했다...(중략)
* 환경과조경 390호(2020년 10월호) 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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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오시개, 미술관으로!
‘모두를 위한 미술관, 개를 위한 미술관’ 전, 10월 25일까지
최근 몇 년 새 반려동물은 인간의 생활 반경 안으로 한층 깊숙이 들어왔다. 2019년 농림축산식품부의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반려동물 양육 인구는 약 591만 가구다. 한 가구를 2~3명으로 추산해도 1,500만 명에 이르는 수준이다. 이에 따라 반려동물 관련 산업과 법안이 발전하고, 동물과 사람이 함께 누릴 수 있는 장소가 늘어났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공적인 공간에 반려 동물을 동반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인식의 간극 또한 크다. 반려인에게 반려동물은 친구이자 가족, 혹은 그 이상으로 깊은 유대 관계를 맺는 존재이지만 다른 이들에겐 한낱 동물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예술 공간은 이 같은 변화에 어떻게 반응할 수 있을까. 지난 9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개를 위한 미술관으로 변모했다. ‘모두를 위한 미술관, 개를 위한 미술관’은 미술관의 확장성을 실험하는 전시다. 미술관이라는 지극히 인간 중심적 공간에서도 반려동물이 가족이자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될 수 있는지, 나아가 미술관이 비인간을 얼마만큼 고려할 수 있을지 묻는다. 미술관에 개를 동반할 수 있게 했을 뿐 아니라 개들을 위한 전시 공간과 작품을 마련했다. 예술가 외에도 수의사, 법학자, 조경가, 건축가 등 다양한 전문가에게 자문하거나 이들을 전시에 직접 참여시켜 작품을 선보였다. 전시장 마당에 반려견 장애물 경주에서 영감을 얻은 조형물이 놓이고, 적록 색맹인 개의 특성을 고려한 작품이 전시되는 등 이색적인 경관이 연출됐다. ...(중략)
* 환경과조경 390호(2020년 10월호) 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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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의 서재] 그 여름의 포지타노
‘[Web발신] 여행 떠나기 전 여권 확인은 필수!’ 여권 유효 기간 만료일을 알리는 외교부의 문자였다. 만료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런 시기에 이런 문자라니. 평소 같았으면 오래된 여권 속 못생긴 사진도 갈아치울 겸 서둘러 준비했을 테지만 이 시국에 여행은 무슨. 사람 속도 모르고 쓸데없이 성실하기만 한 알림 문자에 괜히 마음만 울적해졌다.
코로나19가 곧 끝날 거라 기대했던 여름까지만 해도 해외여행을 못 간다는 사실은 슬프지 않았다. 바이러스가 아니라도 떠날 수 없는 현실적 이유는 차고 넘쳤으니까. 당분간 남들 놀러 다니는 거 보면서 부러워할 일은 없겠거니 태연하게 넘겼는데, 0에 가까운 가능성이 막상 0이 되버리니 자꾸 아쉬운 말만 나온다. 여행 좀 많이 다녀 놓을 걸, 남들 다 간다는 유럽을 왜 나는 여태 안 갔나, 이대로 영영 아시아에서 발 한 번 못 떼보고 죽는 거 아냐. 전염병이 계속 유행하면 전세기나 외딴 섬에 개인 별장이 없는 다수의 사람들은 ‘겨우 기분만 내는 정도’로 만족해야 할지도 모른다. 얼마 전 대만의 한 여행사가 내놓은 가상 제주도 여행처럼 말이다. 이륙 전 공항에서 한복 체험을 하고 기내식으로는 치맥을 먹으며 제주도 상공 한 바퀴를 돌아 다시 대만으로 돌아가는 코스. 출발만 있고 도착은 없었다. 사람들은 환하게 웃고 있었지만 어쩐지 슬퍼 보였다.
계절이 변하고 해가 바뀌면 제자리로 돌아갈 거라는 기대는 시들해진 지 오래다. 혼자서 잘만 흘러가는 시간이 어느 때보다도 야속한 요즘, 언젠가는 갈 수 있겠지 믿고만 있던 여행지를 더 자주 생각하게 된다. 누구에게나 그런 곳이 있지 않나. 훌쩍 다녀올 수 있는 가깝고 편리한 곳 말고, 좀 더 멀리 있고 오래 있다 와야 해서 돈도 시간도 많이 드는 곳. 일이고 미래고 난 다 모르겠고 확 사라지고 싶을 때 생각나는 곳. 그러다가 ‘그래서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바람직한(?) 결론으로 붕 뜬 마음을 제자리에 가져다 놓는 곳. 내게 포지타노는 그런 곳 중 하나다.
포지타노는 이탈리아 남쪽, 그러니까 장화 모양의 땅의 발등쯤에 해당하는 아말피 해안에 있는 마을 중 하나다. 밀라노, 로마, 피렌체, 나폴리 같은 이탈리아의 이름난 도시와 달리 죽기 전 꼭 봐야 하는 유적지나 화려한 건축물 같은 건 없다. 그래서 바쁜 단체 여행객들은 잠깐 들러 사진만 몇 방 찍고 가버리지만, “오래 머물러야 할 여행지는 절대 그 크기로 가늠할 수 없듯” 수많은 알록달록한 지붕의 건물이 겹겹이 붙어 있는 절벽과 그 아래 펼쳐진 옥색 해변은 여행자의 발을 단단히 묶어두기에 충분하다. 화가 파울 클레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수평축이 아닌 수직축으로 만들어진 곳”이라 일컬었고, 존 스타인벡은 포지타노에서의 여운을 “한껏 물려 버렸다(positano bites deep)”고 표현하기까지 했다.
세계 지리에 어두운 나는 『그 여름의 포지타노』1를 읽기 전까지 포지타노의 존재 자체도 몰랐다. 하지만 책을 덮고 난 뒤로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 종종 그곳에 있는 나를 상상한다. 아쉬워서 한 번 더, 그렇게 예닐곱 번쯤 포지타노를 찾은 이의 이야기를 내 것인 양 되새기면서. “수없이 많은 각도와 눈높이를 허용해 주는 도시”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뜯어보다,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을 걷다 지칠 때쯤 지중해의 진짜배기 레몬으로 만든 시원한 셔벗 한입. 그림
같은 풍경 속에서 사사로운 생각만 하다 별 소득 없이 끝나는 하루. 내가 알던 내가 아니어도 괜찮은 곳은 누구에게나 필요하지 않나. 포지타노라면 지금보다 살이 얼마나 붙든 나이가 얼마든 부끄러워하지 않고, 사람 많은 해변에서 수영복을 입고 꺼끌꺼끌한 모래를 잔뜩 몸에 묻힌 채 폴폴거리며 나다닐 수 있을 것 같다. 본 조르노(buon giorno)라며 노래하듯 말하는 사람들 틈에서 싱겁기 짝이 없는 내 억양도 좀 더 명랑해지지 않을까. 포지타노가 아니어도 할 수 있는 것들이지만 그곳이어야만 하는 이유 또한 분명하다. 술, 향수, 디저트 온통 레몬으로 만들어진 것투성이와 진한 이탈리안 에스프레소가 있는 곳, 어딜 가도 햇빛이고 절벽이고 또 바다인 곳은 거기뿐이니까.
가지 않아도 갈 수 있고 만나지 않아도 만날 수 있는 방식에 살만하다 느끼면서도 왠지 모를 허전함은 커져만 간다. 그러니까 잊지 않고 조만간, 아직 먹어보지도 않은 레몬 셔벗의 맛을 떠올리며 여권 사진을 찍으러 갈 요량이다. 하루빨리 이 코로나 귀신이 모두에게서 물러가길 비는 마음으로. 지금이 영영 지금 같지는 않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아, 하나 둘 셋 찰칵!
각주 1.맹지나, 『그 여름의 포지타노』, 브레인스토어,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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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A] 집에서 잡지를 만들 수 있을까
팔뚝을 시원하게 드러낸 반소매부터, 가벼운 카디건, 도톰한 재킷까지 거리를 채운 각양각색의 옷차림을 보면 간절기의 한복판에 있음을 실감한다. 조금 이르지만, 지금부터 겨울까지를 크리스마스 시즌이라 부르기로 마음먹었다. 갑자기 확진자 수가 치솟아 소소한 가을 나들이를 취소해야 했던 나를 위한 위로다. 또 놀랍게도 크리스마스가 100일도 채 남지 않은 게 사실이니까. 본래 취미도 얄팍한 데다 나돌아다닐 수 없게 되며 일상이 단조로워진 탓일까, 요즘 이 짧은 지면을 채울 글감 찾는 게 쉽지가 않다. 그래서 지겹겠지만 양해를 구한다. 또 코로나19 이야기다.
‘포스트 코로나, 도시의 안녕을 묻다’의 기획은 꽤 오래전부터 틀을 그리기 시작해 바이러스 확산이 잦아들던 무렵에 완성됐다. 발 빠른 기획은 아니지만 오히려 사태를 차분히 바라볼 기회가 되지 않을까. 긴 글로는 현재를 담담히 진단하고, 짧은 글로 다른 이들의 일상과 산뜻한 상상력을 더한 미래를 엿보게 할 셈이었다. 의도가 잘 전달된 건지 터무니없이 파괴적이거나 비관적인 이야기 대신 친근하고 공감할 수 있는 글들이 도착했다. 그간 각종 심포지엄에서 오간 시끄러운 이야기가 머리와 마음을 지치게 만든 영향인지도 모르겠다. 나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이들이 보낸 매일을 살피다 보니 문득 상상력이 발동됐다. 만약 사회적 거리두기가 더욱심화된다면, 피치 못할 사정으로 재택근무를 해야 한다면, 과연 집에서도 잡지를 만들 수 있을까?
2020년 8월 20일, 회사 단톡방에 공지사항이 올라왔다. “집에서도 회사 네트워크에 접근할 수 있도록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만일을 대비해 재택근무를 할 경우 예상되는 문제점을 미리 파악해주세요.” 곰곰이 따져보지도 않았는데 대뜸 불가능하다는 쪽으로 생각이 기운다. 우선, 업무에 적합한 환경이 갖춰져 있지 않다. 우리집에는 성능 좋은 데스크톱 PC가 없다. 에디터라 하면 보통 한글, 워드처럼 문서 작성 프로그램만 취급한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간단한 이미지 편집이나 도면 정리도 내 몫이다. 포토샵, 일러스트레이터 같이 무거운 프로그램을 동시에 돌릴 수 있는 사양 좋은 컴퓨터는 필수다. 모니터 두 대를 쓸 수 있으면 금상첨화. 그런데 회사에 있는 PC를 집으로 옮겨간다고 해도 당장 좁아터진 방 어디에 두어야 할지 막막하다.
다음은 편집의 문제다. 레이아웃을 고민하다 답이 나오지 않을 때면 디자이너의 자리 뒤에 모여 의논을 하곤 한다. 혼자 머리 싸매고 끙끙대는 것보다 즉석에서 사진 크기와 위치를 변경하며 대안을 실험해보면 무엇이 더 나은지 명쾌해진다. 하지만 디자이너와 에디터가 한 공간에 있지 않다면? 하루에도 수십 번씩 화면 공유 프로그램으로 의견을 나눠야 한다. 게다가 프로그램에 익숙해지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릴 테다.
교정도 쉽지 않다. 데이터에 불과했던 글과 사진이 종이 묶음으로 재탄생되기까지 편집부는 세 차례 정도의 교정을 진행한다. 이 과정은 모두 종이로 출력해 이루어지는데, 신기하게도 모니터에서는 보이지 않던 오탈자와 비문, 미묘하게 엇나간 편집의 문제점들이 종이에서는 발견된다. 각종 이미지와 사진의 색감을 함께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모두의 집에 같은 컨디션의 프린터가 있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교정지를 주고받는 일도 만만치 않게 복잡하다. 교정 부호가 빼곡한 교정지를 스캔해 다른 에디터에게 보내면, 이를 출력해 새로운 교정 사항을 덧붙이고 또다시 스캔해 디자이너에게 전달한다. 좀 번거로운 게 아니다. 마지막으로 뽑은 난제는 의사소통이다. 화상 프로그램을 사용해 편집 회의를 하는 모습을 상상하다가 우리가 주고받는 비언어적 표현이 얼마나 많은지 새삼 깨달았다. 잠깐의 침묵이나 미묘한 표정 변화로 전하는 완곡한 부정과 난감함. 같은 공간에 있을 때만 느낄 수 있는 분위기는 랜선을 타고 흐르지 못한다. 결국 방식을 따지기 전에 필요한 건, 자신의 의견에 대한 확신과 이를 불편함 없이 전할 수 있는 수평적 소통 문화가 아닐까. 소통 이야기가 나온 김에 화제를 돌리자면, 연재 꼭지 중 하나가 작은 변화를 시도했다. 눈치 채지 못했다면 이십여 쪽 전을 슬쩍 둘러보고 오면 된다.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문체를 통일하고 있는 지면에서 낯선 비격식체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눈앞에서 말을 건네는 듯한 ‘해체’로 좀 더 친근하게 다가가고자 했는데 독자 여러분의 의견은 어떤지 궁금하다. 긍정이든 부정이든, 독자의 피드백은 키보드를 두드리는 데 지친 필자를 다시 일어서게 하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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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PANY] 에코앤휴먼
자연과 어우러진 안전한 숲 체험 시설을 개발하는 조경 기업
에코앤휴먼(Eco&Human)은 조경 설계부터 시공, 제품 생산까지 통합 솔루션을 제공하는 신생 기업이다. 2017년 조경 자재와 시설의 개발·생산을 전문으로 하는 에코앤휴먼과 시공 회사인 우리들조경, 두 법인으로 시작해 올해 초 합병을 마쳤다.
에코앤휴먼이 내세우는 핵심 기술 중 하나는 로프 개발이다. 이현석 대표(에코앤휴먼)는 수목 보호 시설을 연구·개발하는 과정에서 인위적 개입을 최소화하면서 숲을 더 안전하고 건강하게 이용할 수 있는 로프를 고안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많은 등산로나 유아숲체험원 등의 안전 유도 및 체험 시설에 로프가 활용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로프가 흰색의 단일 색상이고 경관에 대한 고려 없이 설치된다. 이 경우 주변 환경과 어우러지지 못하고 야간 식별이 어려워 사고의 위험성을 높일 수 있다. 특히 기존의 PP(폴리프로필렌)로프는 자외선에 취약하고 이용 수명이 짧다. 설치 후 1년만 지나도 딱딱하게 굳고 부서져 분진이 발생한다. 분진이 옷에 묻을 뿐만 아니라 로프에서 떨어져 나온 미세한 파편이 손에 박히기도 한다. 무엇보다 분진이 호흡기를 통해 유입될 수 있기 때문에 아이들이 주로 이용하는 숲 체험 시설에 사용되면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이 대표는 에코앤휴먼의 특허 기술이 적용된 ‘재귀반사 브레이드로프’는 일반 로프와 달리 시간이 지나도 분진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브레이드로프는 반사 실과 고강력사, 면사, 폴리에스터 등을 팔삭기 직조 방식으로 가공한 특수 로프다. 빛을 받으면 광원으로 빛을 되돌려 보내는 재귀반사 기능을 갖춘 특수 실을 사용해 야간 안전 확보에 효과적이다. 어두운 실내나 물 속 등 다양한 장소에 사용할 수 있으며, 줄의 풀림이 없고 인장 강도도 우수하다. 이 브레이드로프를 활용해 세줄 다리 건너기, 외줄 오르기, 그물망 매달리기, 숲속 그네, 숲속 사다리, 두줄 타고 걷기, 대나무 오르기, 외줄 매달리기, 네트 오르기 등 다양한 유형의 숲 체험 시설을 개발했다.
에코앤휴먼은 산림청의 의뢰를 받아 유아숲체험원의 숲 체험 시설을 제작해 로프로 인해 발생하는 민원을 현저히 줄였다. 강원도 홍천군과 인제군의 국유림에도 브레이드로프를 공급하는 등 전국의 다양한 숲으로 영향력을 확대해가고 있다. 이현석 대표는 “일반적인 놀이 시설과 달리 숲속의 놀이 시설은 화려하고 인위적이기보다 주변 자연과 잘 어우러져야 한다”며, 친환경적이고 안전한 시설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이야기했다.
TEL. 031-378-2360 WEB. www.econhum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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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DUCT] 경관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자이안 프레임’
조형적 프레임과 다양한 휴게 시설물을 갖춘 퍼걸러
독특한 형태와 기능을 갖춘 다양한 퍼걸러가 출시되고 있지만, 기성품 가운데 시설물이 설치되는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디자인을 찾기는 쉽지 않다. 반포센트럴자이에 마련된 ‘자이안 프레임Xian Frame’은 단지 내 조경 공간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게끔 설계된 복합 휴게 시설물이다. 원앤티에스의 환경 시설물 브랜드 모나디자인의 제품으로, 잔잔한 수면을 감상하는 쉼터를 제공하는 동시에 단지의 정체성을 부각하는 디자인이 특징적이다.
긴 회랑을 연상케 하는 퍼걸러 내부에는 카페 분위기를 내는 테이블과 의자, 편안한 라탄 소파, 주민 편의를 위한 유모차 거치대, 수변 감상에 재미를 더하는 스윙 벤치가 적절한 간격으로 놓였다. 퍼걸러의 프레임은 인접한 수경 시설의 가장자리와 어우러지며 공간에 통일성을 부여한다. 프레임은 위 혹은 정면에서 보면 나뭇잎의 잎맥을 닮았으며, 갈색과 흰색의 색상이 눈을 편안하게 하고 숲속에 온 듯한 느낌을 준다. 프레임을 따라 바닥에 목재 데크를 더해 차분한 분위기를 강조했으며, 강화 유리 벽으로 주변 경관을 향한 시야를 확보했다.
TEL.070-4469-9147 WEB.monadesig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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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젊은 잡지가 온다
창간 50년을 눈앞에 둔『 샘터』가 작년 말 폐간된다는 소식은 종이 잡지 시대의 폐막을 알리는 부고였다. 독자들의 지원으로 가까스로 수명을 연장하게 됐지만 한때 50만 부를 찍었던 ‘평범한 사람들의 교양지’의 전성기는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시대의 지성을 이끌고 전문 지식의 최전선을 걸어온 전문지들도 거의 대부분 명멸과 부침을 거듭하다 이미 기억의 뒤안길로 퇴장했다. 1966년 같은 해에 창간된 계간 『창작과 비평』과 월간 『공간(Space)』 정도가 아직 발행되고 있는 오래된 전문지로 꼽힌다. 종이 잡지가 웹진의 힘을 당해내기 힘든 현실인 건 분명하다. 온오프라인 할 것 없이 이미지 위주의 가벼운 ‘스낵 콘텐츠’가 대세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특별한 영역의 마니아층을 대상으로 하거나 손에 잡히는 아날로그 감성을 앞세운 고급 종이 잡지들이 속속 창간되고 있기도 하다. 정기 간행물 등록 통계를 보면, 2000년의 등록 잡지는 6천 개 남짓한데 2019년에는 2만 개에 가깝다. 요즘 뜨고 있는 젊은 잡지들의 지형은 크게 세 가지 갈래다. 독자들의 요구에 맞춰 콘텐츠를 구성하는 큐레이션 잡지, 한 권에 특정 주제나 아이템 하나만 깊게 다루는 테마 잡지, 고유한 편집 원칙과 디자인 취향을 지키며 잡지 스타일을 심화해 나가는 독립 잡지.
서울에서 태어나 밴쿠버에서 자란 로사 박이 디자이너 리치 스테이플턴을 만나 2012년 영국에서 창간한, 북유럽 스칸디나비아 미학을 살린 디자인 중심 여행 잡지『시리얼(Cereal)』은 전 세계 힙스터들을 매료시켰다. 2015년부터는 한국어판도 나오기 시작했다. 모든 호가 매진이며 중고 과월호는 온라인에서 두세 배 가격으로 거래된다.
‘킨포크 스타일’, ‘킨포크 라이프’, ‘킨포크스럽다’는 말을 유행시키며 하나의 문화 현상을 만들어낸『킨포크Kinfolk』는 2011년 미국 포틀랜드에서 창간된 라이프스타일 독립 잡지다. 처음엔 지역 커뮤니티를 대상으로 한 해에 네 번, 500부 정도 발행하는 소규모 잡지였지만 지금은 한국어를 비롯한 70여 개 언어로 번역 출간되고 있다. 바쁘고 지친 삶을 사는 현대인에게 자연 친화적 라이프스타일을 제시하며 웰빙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다.
출판 전문가들은 국내 테마형 독립 잡지의 붐을 이끈 주역으로 『매거진 B』를 꼽는다. ‘브랜드 다큐멘터리 매거진’을 지향하는 『매거진 B(Magazine B)』는 한 호에 한 가지 브랜드만 심층 탐구하는 전략으로 기성의 주류 잡지와 차별을 꾀했다. 프라이탁, 파타고니아, 이케아, 구글, 넷플릭스, 뉴발란스, 블루보틀 등 MZ세대에게 친숙한 브랜드를 다루면서 여러 번 읽어도 질리지 않는 잡지 이미지를 굳혔다. 매호 2만 부 넘게 팔리고 있으며, 레고, 라이카, 무인양품 등을 다룬 호는 4쇄 이상 찍었다고 한다. 라이프스타일이나 디자인 쪽의 감각적인 독립 잡지뿐만 아니라 새로운 형식의 인문 잡지들도 앞다퉈 창간되면서 핵심 독자층의 관심을 끌어내고 있다. 인문 잡지 『한편』은 ‘책보다 짧고 논문보다 쉬운 『한편』을 통해 지금 이곳의 문제를 풀어나가는 기쁨을 저자와 독자가 함께 나눈다’는 모토를 지향한다. 문학지 『악스트(Axt)』, 문예지 『문학3』, 과학 잡지 『에피(Epi)』, 사진 잡지 『보스토크(Vostok)』, 철학 잡지 『뉴필로소퍼(New Philosopher)』 등 최근 창간한 종이 매체들은 잡지의 시대가 끝난 게 아니라 잡지가 젊어졌음을 보여준다.
2년 뒤면 마흔 살이 되는 1982년생 『환경과조경』의 새로운 좌표를 궁리하며 요즘 아날로그 잡지들이 뿜어내는 ‘잡지스러움’의 매력 포인트를 짚어보다가, 막 배달된 따끈따끈한 새 조경 잡지를 펼쳤다. ‘새로운 기억, 연출된 과거’라는 부제를 단 『유엘씨(ULC; Urban Landscape Catalogue)』 창간호. 아직 기성 조경(학)계 바깥에 있는 예비 연구자와 학자, 비평가들이 편집과 집필을 나눠 맡은 『유엘씨』는, “도시라는 쇼케이스에 담긴 건축과 조경을 상품으로 상정하고, 이를 소비할 도시민에게 그 기능과 특징, 디자인을 알기 쉽게 설명”하는 “잘 만든 카탈로그”를 지향한다. 창간호 발행 비용은 크라우드 펀딩에 참여한 127명의 후원으로 충당했다고 한다. 조경 이론과 비평, 도시 에세이와 경관 영상, 레트로 도시 문화를 다룬 집담을 엮어 만든 창간호에 이어, 올 연말에는 ‘판데믹 도시 기록: 서울의 일상과 오픈스페이스 탐독’이라는 제목을 단 다음 호를 펴낸다고 한다.
『유엘씨』의 촘촘한 지면과 행간을 탐독하다가 잠시 시간 여행을 했다. “조경의 대안적 담론 공간”을 선언하며 창간했던『로커스(Locus)』 창간호(1998)의 서문을 다시 꺼내 읽었다. “조경의 실천과 소통함으로써 … 이론의 복권을 지향한” 그들은 이미 오래 전에 기성의 다리를 건넜다. 젊은 잡지『유엘씨』가『 환경과조경』이 놓치고 있는 지점과 조경 담론의 틈새를 잘 발견해 지속가능한 독립 잡지로 성장해가길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