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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실과 화해의 숲 국제설계공모] 그 다리 4등작
    대전시 동쪽에 위치한 대상지는 한국전쟁 중 희생된 민간인 피해자의 유해가 발견된 지역이다. 산에 둘러싸인 계곡에 자리하고 있으며, 빽빽한 산림을 비롯해 산, 강, 숲 등 풍요로운 경관 요소가 주변에 가득하다. 부지 위에 세워질 추모관은 하나의 문화적 건축물로서 역사적 사건을 전시하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을 넘어 사람들이 삶을 반추하고 평화를 사랑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해야 한다. 주변 환경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추모의 공간을 통해 역사 속의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했다. 전쟁으로부터 남겨진 상처들은 땅속에 묻혀 있다. 시간에 따라 공간은 서서히 변화했고, 주변을 끊임없이 흐른 강물은 전쟁이 사람들에게 가한 고통을 목격하고 평화에 대한 사람들의 열망과 갈구를 지켜보았다. 이 강을 설계의 출발점으로 삼아, 강을 건너는 다리를 만들어 대상지에 걸쳐둔다.… (중략)
    • domarchitects
  • [진실과 화해의 숲 국제설계공모] 진실과 화해의 숲의 여름 4등작
    공간의 시퀀스 대상지는 동쪽의 주차장과 건물, 서쪽에 펼쳐진 공원으로 구성된다. 메모리얼 홀을 동쪽에 배치해 건물과 그 주변에서 벌어지는 활동, 차량 통행으로 인한 영향이 공원까지 전해지지 않도록 한다. 발굴 지역 전역에 고요함과 평안함이 깃들게 된다. 대상지의 가늘고 기다란 계곡을 닮은 건물의 선형은 기념 공간과 전시 공간의 배열 방식에서 비롯됐다. 입구는 동쪽에, 전시 공간에서 빠져나오는 출구는 입구 반대편인 서쪽에 배치했다. 관람객들은 순차적으로 전시 공간을 통과한 뒤 서쪽 출구 앞에 펼쳐진 너른 초원을 바라보며 환한 빛이 내리쬐는 전시 공간 밖으로 나서게 된다. 이 일련의 경험은 메모리얼 홀의 핵심 요소인데, 무거운 주제가 진열되어 있는 전시 공간을 빠져나가는 관람객에게 안도감과 해방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건물 남쪽에 세운 곡선의 벽은 공간을 더욱 넓어 보이게 할 뿐 아니라, 도로와 안뜰을 구분하고 메모리얼 홀과 공원의 입구가 어디인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한다.… (중략) *환경과조경394호(2021년 2월호)수록본 일부
    • Studio Irander
  • 행정중심복합도시 5-1생활권 스마트 조경 기본 및 실시 설계공모
    행정중심복합도시(이하 행복도시)는 친환경 기술과 정보통신 기술의 융합을 통해 제로에너지 도시를 실현하는 스마트 도시를 지향한다. 행복도시 5-1생활권은 금강과 미호천이 만나는 곳이며, 동쪽에는 건강한 산림 생태계를 가진 황우산이 솟아있다. 가치가 높은 자연환경을 최대한 훼손하지 않고 주변 경관과의 조화를 도모하는 단지 계획이 필요했다. 이에 2020년 9월, LH는 ‘행정중심복합도시 5-1생활권 스마트 조경 기본 및 실시 설계공모’를 개최했다. 스마트 서비스를 구축할 수 있는 조경설계 모델을 제시하는 것이 공모의 목표다. 대상지는 근린공원, 역사공원, 완충녹지, 경관녹지, 저류지, 광장으로 구성된다. 근린공원은 생활권의 중심이 되는 중앙 녹지로, 황우산과 연결되어 그린 네트워크의 거점 역할을 한다. 교육 시설과 주거지에 둘러싸인 근린공원의 입지를 고려해 주민의 요구를 수용하는 다목적 복합 문화 공간을 조성해야 한다. 미호천에 인접한 부분은 수경관을 고려해 계획하고, 자연보호구역 관찰소의 경우 친환경적으로 조성해야 할 뿐만 아니라 자연 생태, 철새 등 주변 자연환경을 활용한 교육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역사공원은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41호인 합호서원을 중심으로 조성된다. 문화재를 보호할 수 있는 완충 녹지를 확보하고, 합호서원의 정체성이 드러나는 공간을 구성할 것이 요구됐다. 더불어 인접한 교육 시설에서 활용할 수 있는 역사 학습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 BRT 정류장과 가깝고, 다양한 활동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용도혼합용지에 놓이는 광장에는 커뮤니티, 이벤트, 휴게 시설, 수공간 등 이용 기반 시설을 배치해야 한다. 과도한 포장을 지양하고 식재가 가능한 부분은 가급적 수목을 심어 부지의 생태적 능력을 증진하도록 권고했다. 2020년 9월 22일부터 11월 12일까지, 약 세 달간 진행된 공모에 네 팀이 작품을 제출했다. 심사는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됐다. 1차 심사에서 한 작품이 기준에 미치지 못해 탈락됐으며, 2차 심사 결과 그룹한+경동엔지니어링+사람과나무 컨소시엄의 ‘스마트온 파크’가 당선작으로 선정됐다. 2등작은 동인조경마당의 ‘천정가도’, 3등작은 플레이스랩기술사사무소+그린어스 컨소시엄의 ‘인터랙팅 파크’가 차지했다. 당선작은 공모의 추진 배경에 부합하는 공원을 계획했으며, 주변 도시의 요구나 현광과 사회의 변화에 적절히 변화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안했다는 평을 받았다. 온파크(onpark), 온루프(onloop), 온그린인프라(ongreeninfra)라는 설계 전략이 체계적이며, 특히 정보통신 기술을 활용해 다양한 모빌리티를 공유하게 하는 온루프 전략의 실현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됐다. 당선팀에게는 기본 및 실시설계권이 주어진다. LH는 선정된 작품을 바탕으로 마스터플랜을 마무리해나갈 예정이다. 당선작 스마트온 파크(Smart on Park) 그룹한 어소시에이트+경동엔지니어링+사람과나무 2등작 천정가도(天庭街道) 동인조경마당 3등작 인터랙팅 파크(Interacting Park) 플레이스랩기술사사무소+그린어스 주최LH 위치 세종시 연동면 용호리, 합강리 일원 면적 2,741,213m2(조경 면적: 1,024,942m2) 방식 공개 공모 대상 근린공원 2개소(382,240m2), 역사공원 1개소(88,531m2),완충녹지 15개소(26,990m2), 경관녹지 4개소(526,530m2), 광장2개소(651m2), 저류지 2개소(15,863m2, 공원 중복 지정), 융복합놀이시설1개소(건축물+야외 공간), 가로수 1식 시상내역 당선작(1점): 설계권 부여 2등작(1점): 2,500만원 3등작(1점): 1,500만원 심사위원 정낙승(LH, 조경) 이시영(배재대학교 교수, 조경) 이애란(청주대학교 교수, 조경) 주신하(서울여자대학교 교수, 조경) 김태원(LH, 토목) 이희영(조선대학교 교수, 토목) 박형균(인천도시공사, 도시) 자료제공 LH, 당선팀
  • [행복도시 5-1생활권 스마트 조경 설계공모] 스마트온 파크
    공원은 경제적, 사회적, 환경적, 문화적으로 현대와 미래 세대의 요구를 보장해야 하는 공간이 되었다. 무한한 잠재력을 지닌 스마트 기술을 활용해 시대의 변화에 발맞춰 공원이 어떻게 변화하고 대응해야 하는지 고찰했다. 시민이 행복한 도시를 목표로 공원의 세 가지 비전을 세웠다. 첫째, 더 스마트한 공원을 만든다. 생태 및 문화 환경과 스마트 문화 콘텐츠의 융복합을 통해 독자적인 공원 문화를 생산한다. 둘째, 더 편리한 공원을 만든다. 개인형 이동 수단부터 새로운 교통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스마트 모빌리티를 도입해 공원과 도시 간 이동을 돕는다. 셋째, 더 지속가능한 공원을 만든다. 대상지는 금강과 미호천이 만나고 녹지축이 연결되는 생태 거점이다. 이 풍부한 자연환경을 최대한 훼손하지 않고 공원을 조성하고자 한다. 전략 스마트 기술을 경험하는 온파크: 생활, 학습, 생태를 테마로 한 리빙온파크(livingonpark), 에듀온파크(eduonpark), 에코온파크(ecoonpark)를 계획했다. 각 공원은 세종시의 도시 구조와 같이 환상형 구조를 띠며, 각 특성에 맞는 스마트 중심 시설을 갖추고 있다. 리빙온파크의 미디어테라스는 이용자가 생산하는 스마트 콘텐츠를 실시간으로 연동하는 플랫폼이며, 에듀온파크의 아카이브큐브에서는 증강현실, 가상현실 기술을 활용해 역사를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다. 에코온파크의 에코네스트econest는 사용자 기반의 조류 탐구 네트워크를 활성화하는 생태 플랫폼이다.… (중략) *환경과조경394호(2021년 2월호)수록본 일부
    • 그룹한 어소시에이트 + 경동엔지니어링 + 사람과나무
  • [행복도시 5-1생활권 스마트 조경 설계공모] 천정가도
    세종시에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는 도시 플랫폼을 구축해 기존의 도시 문제를 해결하고, 첨단 인프라와 혁신 기술로 일상의 질을 높이는 지속가능한 도시를 만들고자 한다. 이를 위해 스마트 기술을 이용해 만든 천개의 정원과 아름다운 길, ‘천정가도(天庭佳道)’를 제안한다. 대상지를 상징하는 세 개의 공중 가도를 거닐며 새로운 경관을 맛보게 하고, 자연 훼손을 최소화해 생태적 건강성을 높이고, 스마트 기술을 기반으로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공원을 조성해 독특한 정체성을 확립한다. 전략 천정가도를 위한 세 가지 기본 방향을 세웠다. 첫째, 시대의 요구를 반영한 스마트 정원을 조성한다. 뉴노멀을 맞이해 오랜 시간 체류하기보다 가벼운 산책 등 타인과의 접촉을 최소화할 수 있는 생활형 공원을 계획한다. 더불어 첨단 네트워크를 이용해 다양한 정보를 얻고 체험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한다. 둘째, 역사와 함께 하는 정원을 조성한다. 합호서원을 중심으로 한국 고유의 선과 색, 가락이 지닌 감성과 계절의 변화가 보여주는 서정적 풍광을 통해 한국 문화의 우수성을 담은 도시 이미지를 구현한다. 셋째,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숲 정원을 조성한다. 풍성한 녹지를 따라 다양한 공간이 어우러진 생태 환경을 제공해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도시의 지속가능성을 제고한다.… (중략) *환경과조경394호(2021년 2월호)수록본 일부
    • 동인조경마당
  • 힐스테이트 클래시안 HILLSTATE CLASSIAN
    땅 읽기 힐스테이트 클래시안(HILLSTATE CLASSIAN)은 1,476세대를 수용하는 대규모 주거 단지다. 하지만 인근의 종교 시설과 공원이 단지로 향하는 시선을 분산시키고, 레벨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조성된 계단이 입구성을 약화시킬 것으로 예상됐다. 또한 남향으로 배치된 주동은 외부 공간을 분절시킨다. 주변 신길 재개발촉진지구에 들어서게 될 다른 주거 단지와의 차별화 방안도 필요했다. 단지로 들어서는 입구를 더욱 돋보이게 만들고, 분리된 외부 공간을 하나의 주제로 연결하는 전략을 마련하고자 했다. 집으로 들어서며 만나는 숲의 경관 도시화로 고밀도 적층형의 주거 단지가 들어서며 도시는 자연을 가까이할 수 없는 형태로 변해왔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아파트 단지는 21세기 도시에서 커다란 숲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넓은 오픈스페이스와 다양한 수목을 사계절 내내 볼 수 있다. 이러한 가능성에 주목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점점 더 특별해지는 숲을 조성하고자 했다. 단지의 콘셉트는 컬러풀 모던 아트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연의 색이 더해지는 숲과 현대적인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디자인으로 힐스테이트 클래시안만의 숲을 계획했다. 오색의 단풍으로 물든 숲, 붉은 꽃으로 만개한 숲, 하늘을 향해 뻗은 짙은 초록의 숲 등 다채로운 숲을 단지의 첫인상으로 만들고자 했다. 이 숲들은 계단을 올라 단지로 진입하는 사람들에게 극적으로 변화하는 경관을 선사하고, 멀리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경관 요소가 된다.… (중략) *환경과조경394호(2021년 2월호)수록본 일부 조경 설계 라모디자인그룹(강성규, 최진아, 박희성, 주안나, 이소혜, 황지은) 조경 시공 현대건설 식재 시공 다원녹화건설 시설물 시공 조경사엔앤씨 놀이 시설 청우펀스테이션 특화 정원 I.N.G엘(이남철) 위치 서울시 영등포구 신길로28길 9 일원 완공 2020. 10. 라모디자인그룹(Lamo Design Group)은 2003년에 설립되었다. 경관(landscape)과 모자이크(mosaics)의 영문 앞 글자를 조합해 만든 ‘라모’는 우리 삶을 채운 경관의 조각들을 조합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마스터플랜부터 조경 및 도시계획, 주거 단지 등 다양한 스케일과 유형의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대지가 들려주는 소소한 속삭임, 사회적 요구, 변화하는 삶을 반영하는 실용적 풍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 최진아
  • [나의 미개봉작 상영기] 설계공모의 뒤끝
    선택받지 못한 결정체 지난 연말 동심원조경에 잠시 다녀왔다. 종무식을 앞두고 분주한 분위기 속에서 최근 ‘춘천 시민공원 마스터플랜 설계공모’에 당선된 승자들의 여유를 느낄 수 있었다. 안계동 대표에게 공모의 뒷이야기를 들으며, 총성 없는 전쟁터에 발을 담그지 않아 다행이었다는 생각과 함께 그 판에 참여하지 못한 아쉬움이 들었다. 당선되지 못한 입상작들을 보며 여러 팀의 고뇌와 열정을 상상했고, 한편으로 예전에 참여했다 떨어졌던 공모들이 새록새록 떠올라 가슴 한 켠이 시려왔다. 선택받지 못한 설계공모 낙선작. 한국 조경의 역사가 해를 거듭할수록 설계공모 출품작들이 쌓여가지만 세상에 드러나긴 어렵다. 당선작 공고문의 맨 위에 있지 못해 의미가 없다고 하기엔 아까운 결과물들이다. 한 설계사무소의 철학과 자존심, 모든 역량이 담긴 성과는 결과를 떠나 존중받고 알려질 필요가 있다. 설계공모는 당첨이 보장되지 않는 복권이라지만 ‘졌지만 잘 싸웠다’고 위로하기엔 너무나 많은 사람의 영혼을 끌어 모은 결정체이기에 아쉬움이 크다. 통영 폐조선소 도시재생 마스터플랜 국제공모 나는 1년에 두 번 정도 설계공모에 참여하고 있다. 실시설계 프로젝트와의 균형을 고려해 감을 잃지 않을 정도로, 대신 의미 있는 공모를 잘 선별해 참여하고자 한다. 최근 참여한 공모 중 가장 기억에 남고 아쉬운 것은 2018년의 ‘통영 폐조선소 도시재생 마스터플랜 국제공모’다. 폐조선소의 인프라를 그대로 남겨둔 부지가 매력적이었으며 여러모로 도전적이고 흥미로운 과제였다. 통영이라는 도시와 대상지인 폐조선소가 그러했고, 산업 유산을 리모델링하는 프로젝트이면서 부지 성격상 대규모 오픈스페이스를 품고 있는 점이 그러했다.… (중략) *환경과조경394호(2021년 2월호)수록본 일부 이남진은 서울대학교 산림자원학과와 환경대학원 환경조경학과를 졸업하고,동심원조경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다.현재 조경기술사사무소 바이런(VIRON)을 이끌고 있으며,좋은 설계는 좋은 회사에서 나온다는 생각으로 설계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함께 성장하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북 스케이프] 인류 최초의 환경 파괴범, 길가메시
    기후변화를 넘어 기후위기가 찾아왔고, 변화를 돌이킬 수 없는 지점이 멀지 않았다는 불안한 예측마저 낯설지 않게 들려온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과 함께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다시 살피며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길가메시(Gilgamesh)를 만나게 된다. 길가메시는 고대 수메르의 전설적인 왕이다. 그의 행적은 오랫동안 노래로 전해졌고, 이를 점토판에 설형 문자로 새긴 것이 인류 최초의 문학 작품인 『길가메시 서사시(The Epic of Gilgamesh)』다.1 이는 호메로스의 서사시보다도 이천 년 앞서 쓰였고, 신화와 문학, 전설의 원형으로 평가받는다. 길가메시의 3분의 2는 어머니처럼 신이지만, 3분의 1은 아버지처럼 인간이다. 신에 가깝지만 완전한 신이 아니기에 인간의 조건인 죽음을 피할 수 없다. 이를 넘어서고자 분투했으나 실패한 인류 최초의 ‘히어로’로서 그의 행적은 수없이 노래되었다. 하지만 생태적 관점으로 보면 길가메시는 최초의 환경 파괴범이며, 톨킨J. R. R. Tolkien이 사루만에 대해 쓴 표현을 빌리자면 ‘나무 도살자’다. 길가메시는 강력하고 거대하고 현명하며 고귀했으나 또 소란스럽고 거만하며 충동적인 젊은 폭군이었다. 어느 날 그는 당시 장례 관습에 따라 성벽 너머 강으로 시체를 띄워 보내는 풍경을 보았다. 처음으로 두려운 생각이 든다. 모든 걸 다 가졌어도 죽으면 모든 게 사라지는 것이다. 죽음 후에도 남는 것, 즉 명예에 대한 욕구가 생긴다. 그는 삼나무 산의 나무를 베어 오겠다고 선언한다. 당시 메소포타미아에서 나무는 귀한 자원이었다. 큰 재목을 구해오는 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모험이자 업적이었다. 큰 나무가 자라는 숲은 신들의 영역이기에 이곳의 나무를 자른다는 말만으로도 우루크의 사람들은 두려움에 떤다. 게다가 길가메시가 가려는 삼나무 산은 신들의 지배자인 엔릴의 영토다. 엔릴은 삼목이 우거진 거대한 숲을 보호하기 위해 괴물 후와와(또는 훔바바)를 숲에 두고 일곱 개의 후광을 부여했다. 후와와가 외치는 소리는 거대한 홍수이고 그의 입은 불덩이인 데다가 그의 숨은 바로 죽음이니, 숲에 들어가는 이는 누구든 병으로 쓰러진다. 우루크뿐 아니라 서구 문명에서는 오랫동안 숲 자체를 두려워했다. ‘야만적인’, ‘흉포한’이라는 뜻의 영어 단어 새비지(savage)는 ‘숲’이라는 뜻의 라틴어 실바(silva)에서 유래한다. 후와와는 숲에 살기에 신의 대리자가 아니라 악한 괴물로 여겨진다.… (중략) *환경과조경394호(2021년 2월호)수록본 일부 황주영은 서울대학교 협동과정 조경학전공에서19세기 후반 도시 공원의 모더니티에 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후파리 라빌레트 국립건축학교에서 박사후 연수를 마쳤다.미술과 조경의 경계를 넘나들며 문화사적 관점에서정원과 공원, 도시를 보는 일에 관심이 많으며,이와 관련된 강의와 집필, 번역을 한다. 그러는 동안수많은 책을 사거나 빌렸고, 그중 아주 일부를 읽었다.
  • 올림픽이 바꾼 도시의 풍경 ‘올림픽 이펙트: 한국 건축과 디자인 8090’ 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4월 11일까지
    올림픽과 같은 메가 스포츠 이벤트는 한 나라의 모습을 바꾸어 놓곤 한다. 서울의 풍경도 88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은 올림픽에 앞서 1980년대에 이룩한 민주화와 경제 발전의 성과를 전 세계에 보여줄 수 있는 도시 경관이 필요했다. 63빌딩, 장교빌딩 등 고층 빌딩과 아파트가 도심을 따라 줄지어 들어섰고, 버스정류장 표지판 등 세세한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가로 환경을 대대적으로 정비했다. 이처럼 올림픽이 건축과 디자인 업계에 불러온 반향은 경제, 사회, 문화에도 여파를 미치며 우리 생활 전반에 변화를 일으켰다. 지난해 12월 17일,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개최된 ‘올림픽 이펙트: 한국 건축과 디자인 8090’은 1980~1990년대에 올림픽 개최를 계기로 급격히 성장한 한국의 시각 및 물질 문화의 기반을 재조명하는 전시다. ‘올림픽 이펙트’, ‘디자이너, 조직, 프로세스’, ‘시선과 입면’, ‘도구와 기술’의 4부로 구성되는데, 올림픽이 촉발한 도시, 환경, 건축, 사물의 급격한 변화를 사진,도면, 스케치, 영상 아카이브와 작품 300여점으로 시각화했다. 다양한 매체는 단순히 변화의 양상을 짚는 데 그치지 않고 당대의 시각 문화, 물질문화, 인공물이 누구에 의해 어떻게 생산되고 수용되었는지 살펴보라고 권유한다. 전시장에 들어서기 전, 중앙홀 바닥에 펼쳐진 기하학적 패턴과 빛과 색이 점멸하는 LED 화면이 발길을 붙든다. 진달래, 박우혁이 연출한 가상의 무대 ‘마스터플랜: 화합과 전진’이다. 이들은 건축과 디자인, 경기장의 공통점이 선과 단위가 교차하며 만들어진다는 데 주목해 올림픽 당시 건축 및 디자인의 패턴을 중첩해 바닥에 풀어놓았다. 그 위에 끊임없이 반짝이며 원근과 시점의 혼란을 주는 모니터와 운동하는 소리와 일상의 소리가 뒤섞여 흘러나오는 스피커를 설치했다. 이 반복적 패턴은 매스 게임, 경기 규칙과 경기장의 규격, 끝없는 훈련, 미디어의 반복 메시지 등을 연상시키며 올림픽이 현재 사회 시스템에 끼친 영향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한다.… (중략) *환경과조경394호(2021년 2월호)수록본 일부
  • 미래의 흔한 도시 풍경
    돌아보면 도시를 이루는 어떤 것도 처음부터 자연스럽진 않았다. 1900년 4월, 조선의 밤을 희미하게 밝히던 등불 대신 종로 네거리에 최초의 가로등이 켜진 것처럼 말이다. 그로부터 100여 년이 지난 지금 거리를 채우는 형형색색의 조명은 누구에게나 익숙하다. 안서후의 ‘가로 세면대’가 보여주듯 세면대가 늘어선 거리 풍경 또한 머지않아 일상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홈 트레이닝 시대에 운동 기구가 인테리어의 일부가 되거나 공간 활용을 위해 변기는 필요할 때만 꺼내 쓰게 되지 않으리란 법은 없다. 가까운 미래 서울의 주거 상상도를 공유하는 전시가 마련됐다. 아파트, 오피스텔, 원룸과 같이 공간 구성이 보편화된 건물들로 포화 상태인 서울은 앞으로 어떤 변화를 맞이할까. ‘아파토피아(Apartopia)’ 전은 균질한 서울의 주거 환경과 도시민의 다양한 요구 사이에 존재하는 미세한 간극에 주목한다. 작가들은 서울을 일종의 실험 공간으로 삼고 여덟 가지 키워드(수납, 침대, 변기, 세면대, 운동 기구, 부엌, 스크린, 화분)를 미래 대도시의 단초로 삼아 독특한 건축적 상상력을 펼쳐 보인다. 이번 전시는 서울디자인재단에서 주최하는 ‘DDP 오픈큐레이팅’의 일환이다. 재단은 2020년 ‘집과 디자인(Design for Home)’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분야의 전시 기획안을 공모해 4개의 기획안을 선정했고, 그 첫 번째 전시로 ‘아파토피아’를 선보였다.… (중략) *환경과조경394호(2021년 2월호)수록본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