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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녹색성장 관련 조경공무원 회의
    IFLA APR 총회 이틀째, 인천 송도컨벤시아는 ‘녹색성장 관련 조경공무원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전국에서 모여든 조경관련 공무원들로 붐볐다. 이 회의는 최근 국가 정책의 핵심으로 떠오른 ‘녹색성장’과 관련하여 각 지자체별로 그동안의 성과를 짚어보고 앞으로의 방향을 모색해보기 위해 마련된 자리로, 서울과 인천, 김천과 순천 등 전국 4개시의 녹색성장 관련 제도와 실천전략들이 선을 보였다. 무엇보다 녹색성장을 주도하는 전국의 공무원들이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여서 의견을 나눴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이날 회의는 조직위원회 자원봉사분과위원장을 맡고 있는 동국대학교 오충현 교수의 사회로, 녹색성장위원회 김형국 위원장과 Third Space의 고정희 소장의 기조연설을 포함해 약 5시간 동안 진행되었다. 녹색 發성장, 조경이 주도해야 _ 김형국 김형국 위원장(녹색성장위원회)은 ‘저탄소 녹색성장 추진방안’이라는 주제의 기조연설에서 앞으로의 경제성장은 녹색 주도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하며, 조경분야가 적극 나서줄 것을 주문했다. 녹색성장의 시대는 “경제가 환경을 이끌기도 하지만 환경이 경제를 이끄는 시대”라며 작년 한해 260만명의 관광객을 불러들여 1천억원의 부가가치를 창출한 순천만을 예로 들어 환경보존 및 조성에 조경분야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역설했다. 즉, 요즘 국민들이 인식하는 조경이란 공공프로젝트가 대부분이라면서, 이제는 땜질형, 뽐내기형 조경이 아니라‘경제증진형 조경’, ‘국민정서순화형 조경’으로 영역을 넓혀갈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서울을 세계적 녹색 선진 도시로 _ 안승일 이어서 서울시 안승일 푸른도시국장은 ‘2030 서울형 저탄소 녹색성장을 위한 공원녹지분야 계획’이란 주제로 서울시의 녹지계획 성과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발표했다. 구체적인 공원녹지분야 전략으로는 오는 2030년까지 공원녹지의 면적을 서울시 면적의 3분의 1 수준으로 확대할 계획으로, 신규공원조성, 도시계획시설 이전적지 공원화, 도시재개발·재건축시 공원의 우선 확보, 옥상녹화 의무화, 아파트 담장녹화, 학교공원화 등을 꾸준히 실천하겠다고 말했다. 중소도시의 녹색성장 벤치마킹 대상, 김천 _ 석성대 김천시는 ‘저탄소 녹색성장 으뜸도시 김천’이라는 주제로 석성대 김천시 기획실 기획예산담당관이 발표자로 나서 김천 시내의 죽은 공간을 녹색공간으로 변모시킨 다양한 사례위주로 발표를 이어나갔다. 석담당관은 “김천시에는 비탈면과 절개지가 많은데, 이런 곳을 방치하기보다 디자인이 가미된 녹색공간으로 조성해 우수한 경관을 연출했다”며 공원 및 쉼터 조성과 시내전역 87km에 녹색벨트화, 도로 중앙분리대 조경, 자연친화형 하천정비 등 녹색공간 확충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쓰레기매립장의 체육공원화, 직지천 수질오염의 주범인 상류부 축사지대의 생태공원화, 고속도로 절개지 공원화 등 도시 내의 죽은 공간을 녹색공간으로 바꾸는데도 앞장서고 있다고 전했다. 녹색도시 생명의 숲 정책으로 일류 명품도시로 _ 최태식 (사)한국조경학회와 함께 이번 IFLA APR 총회의 공동주최자인 인천광역시는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녹색성장 생태도시 Incheon Vision’을 주제로 인천시 녹지정책팀의 최태식 팀장이 발표에 나섰다. 세계 일류 명품도시로 가는 미래 청사진으로서 “선진도시 수준의 녹지율 향상(8.9㎡→14㎡(2020))과 생태도시형 녹지율 향상(45㎡→56㎡)에 노력을 기울일 방침”이라고 전했다. 이에 도시중앙가로녹지 조성, 담장허물고 나무심기, 옥상녹화, 학교 숲 조성, 도시 숲 조성 등 ‘녹색도시 생명의 숲 1천만㎡ 늘리기’ 정책을 통해 도심권 웰빙 그린을 실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가운데 학교 숲 사업은 인천시가 매년 1백억원을 투입해 추진하는 역점사업으로, 소규모 공원에서 시작된 것이 ‘학교 생태숲 조성사업’으로 발전하였으며, 학교녹화 추진단 운영과 학교 생태숲 협의회를 구성하여 운영하고 있고 조성 및 관리가 우수한 학교에 ‘푸른학교상’을 수여하는 등 현재까지 204개교에 학교 숲이 완공되어 성공적으로 추진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2013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를 발판으로 생태수도로 도약 _ 양동의 2013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추진단 양동의 단장이 발표자로 나선 순천은 순천 시내를 가로지르는 동천을 중심으로 한 생태축 연결계획과 오는 2013년 국내 최초로 개최하는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에 대하여 발표했다. 이어 “기획재정부 외 6개의 중앙부처가 가치를 인정하고 있는 국제정원박람회는 국내 최대 생태정원을 지닌 도시로 거듭난다는 믿음을 가지고 업무를 진행중”이라며 “2013 국제정원박람회를 통해 생태수도 순천이라는 이미지를 굳히고 순천의 생태축을 구축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도심활성화지역과 구도심을 연결하는 곳에 박람회장을 마련해 개발과 보전을 조화시킨다는 전략이다. 구 도심권을 문화컨텐츠화하고 동천변 수변경관지구를 조성하여 장기적으로는 도심의 공원과 연계한 생태수도를 실현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제로시티, 도시설계과정에서부터 고려되어야 _ 고정희 각 지자체의 발표에 이어 ‘녹색성장 시대를 위한 제로시티화 실천전략’이란 주제로 Third Space 고정희 소장의 특별강연이 이어졌다. 이날 발표에서 고정희 소장은 제로시티의 본질과 조건 그리고 다양한 사례 등에 대해 발표하였다. 고소장은 “제로시티원칙은 이산화탄소 배출을 제로화하는 것이 아니라 배출량을 절감하는데 의의가 있으며 오수 및 배수, 쓰레기까지 포함하기 때문에 우리가 많이 쓰고 많이 재생하면 된다는 사고는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하고, “우선 소비를 줄이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즉 Zero City를 위해서는 삶의 방식 자체를 다시 생각하는 ‘에너지절약형 라이프 스타일’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의 조경은 아이템, 산업화에 집중되어 있다”고 지적하면서 “대량의 에너지 소모, 자연자원 훼손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지 않은 상황에서 제로시티를 구현한다는 것은 아이러니컬한 정책일 뿐”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 IFLA와 한국 조경
    세계조경가협회 세계조경가협회(IFLA: International Federation of Landscape Architects)는 1948년 유럽 14개 조경단체 대표가 영국에서 모여 창설하였고, 전 세계 각 나라(country) 또는 지역(region)을 대표하는 단체가 회원이 되며, 각 단체 소속 회원은 자동으로 IFLA 회원이 된다. IFLA는 조경의 발전을 통한 환경보전, 건강하고 아름다운 환경 창조, 회원의 상호 교류와 협력을 목적으로 활동하는 비정치 국제기구를 표방한다. 세계 60개국(또는 지역)을 대표하는 조경단체가 회원으로 가입하였고, 아시아·태평양지역(과거명칭은 “IFLA 동부지역(Eastern Region)”)은 현재 14개 나라/지역 단체가 회원이다(호주, 중국, 홍콩, 인도, 인도네시아, 이란, 일본, 한국, 말레이시아, 뉴질랜드, 필리핀, 싱가포르, 대만, 태국). IFLA 세계총회는 매년 개최되며, 유럽, 북남미주대륙, 아시아·태평양지역이 차례로 개최한다. 지난 2008년에는 유럽지역(European Region(ER))인 네덜란드가 개최했고, 2009년에는 미주지역(Americas Region(AR))인 브라질이 개최(www.46ifla2009.com.br)하며, 오는 2010년에는 아시아·태평양지역(Asia Pacific Region(APR)) 차례로서 중국이 개최한다. 지역총회도 매년 열리지만 지역에서 세계총회를 유치하는 해에는 두 총회를 동시에 개최한다. 우리나라와 IFLA 우리나라는 1992년 8월 31일부터 9월 4일까지 제29회 “IFLA 세계총회(The 29th IFLA World Congress)”를 서울, 경주, 무주에서 개최하였고, 이는 IFLA와 본격적으로 교류하고 참여하는 계기가 되었다. 잘 준비한 결과 외국에서 치른 어느 대회보다 훌륭하여서, 34개국 305명의 외국 정회원 참석자를 포함 총 1천 3백여명의 참가자에게 우리나라의 조경을 잘 알리는 기회, 한국 조경의 새로운 도약의 계기가 되었다. 1999년에는 제9회 IFLA 동부지역회의(IFLA Eastern Regional Conference)를 강원도 양양에서 10월 17일부터 20일까지 개최하였다. 국내외 총 300여명이 참석하였고, 회원국 대표자회의, 학생작품공모전, 학술논문발표회, 디자인워크숍, 학생잼버리, 학술답사 등 다양하고 알찬 내용으로 다시 한 번 참가자들에게 호평을 받은 행사였고, IFLA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행사였다. 2000년대는 우리나라가 또 다른 방향에서 IFLA를 통한 조경발전에 기여한 시기라 할 수 있다. 2002년 10월 유럽 발트해 연안국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에서 열린 IFLA 세계총회 기간 동안 열린 동부지역회의에서는 참석한 한국 대표의 제안으로 “IFLA 동부지역 조경작품상(IFLA APR Landscape Architecture Award”을 신설하기로 결정하였고, 준비 작업을 거쳐 이듬해 5월 캐나다 캘거리에서 열린 세계총회에 이은 동부지역회의에서 작품공모, 시상내역 등 구체사항을 결정하여 시행하게 되었다. 작품공모 시점에서 지난 3년간 회원국 내에서 완성된 조경작품 중 3개 작품을 회원국을 대표하는 조경단체(우리나라는 (사)한국조경학회)가 선정하여 출품하게 하고, 각국 대표가 심사하고 투표하여 IFLA 동부지역담당 부회장상, 우수상, 입선작을 시상한다. 우리나라는 눈부신 조경발전을 반영하듯 해마다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어 여러 회원국의 부러움을 사며 주목 받고 있다.
  • 2009 인천 IFLA APR 총회의 숨은 일꾼들
    IFLA APR 총회 기간, 총회 사무국에서 가장 많이 불리었던 이름은? 대회장과 공동조직위원장, 그리고 조직위원들도 많이 불리긴 했지만,‘ 박국장님, 유간사님…’등으로 불리던 총회 사무국장, 간사, 그리고 자원봉사자들의 이름만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 횟수에 비례하여 그들의 걸음 또한 바삐 움직였다. 참가자의 손과 발이 되어주었던 총회사무국과 자원봉사자들이다. 개회식 첫날에만 1,500여명이 모이고, 녹색성장 관련 조경공무원 회의와 디자인워크숍 등 총회의 주요행사가 호평을 받았다. 아태지역 10여개국 해외조경가들은 엄지손가락을 들고 ‘Very Good’을 연호했다. 실질적 행사 집행을 맡았던 이들의 숨은 노력이 있었기에, 원활히 그리고 성대히 본 총회를 치를 수 있었다. 무대 뒤편에서 묵묵히 총회의 성공개최를 기원하며, 굵은 땀방울을 떨어뜨렸던 ‘2009 인천 IFLA APR 총회’의 숨은 공로자를 찾아보았다. 박은영 前사무국장, (재)환경조경발전재단 박은영 사무국장은 행사 집행업무의 중심에 있었다. 그녀는 지난해 9월 인천 워크숍을 시작으로 준비위원회 결성 및 IFLA APR 조직위원회 구성 등 행사준비 초기부터 1년여간 집행총괄을 담당해 왔다. 구체적으로 3번의 총괄기획조정위원회의와 10번의 조직위원회의를 꾸려갔으며, 큰 틀에서는 각 프로그램 조정, 인력 및 예산계획 등의 업무를 맡아왔다. 그녀는 IFLA APR 총회를 되돌아보며 “문화와 풍습이 다른 각국의 단체를 통솔하는 일과 신종인플루엔자 같은 예기치 못한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을 때가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었다고 토로하였지만, 미소를 잃지 않으며 “그래도 행사준비 때 가졌던 많은 염려와 달리, 무사히 행사를 마치게 되어 다행이에요. 이는 많은 사람의 노력이 수반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라며 감사의 말을 잊지 않았다. 윤상준 사무국장, (재)환경조경발전재단 박은영 사무국장 다음으로 새롭게 환경조경 발전재단의 사무국장으로 임명된 윤상준 사무국장. 이번 회의는 그가 재단 사무국장으로서 맡게 된 최초의 행사이다. 행사전 그는 각종 매체를 통한 대내외 홍보업무에 주력함으로써 총회기간내 수많은 참가자를 모으는데 보이지 않는 수훈을 세웠다. 또 총회 기간에는 행사전반을 조율하며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윤상준 사무국장은 “개회식은 성황리에 마쳤지만 세부 프로그램에서 도출된 내용들을 어떻게 실속 있고 유용하게 활용할런지는 고민해보아야 할 것입니다”라고 말하며, 현재에 만족하는 모습이 아닌, 다음을 준비하는 자세로 미래를 기다리고 있었다. 유은자 간사, (사)한국조경학회 정산 및 등록·결재업무를 담당한 유은자 간사. 그녀 역시 IFLA APR 총회의 행사준비 시작부터 1년여의 장기 레이스를 달려온 장본인이다. 총회 기간 동안 유은자 간사를 볼 수 있었던 곳은 ‘등록데스크’였다. 짧지 않은 시간동안 총회준비에 주력해왔던 그녀이다. 그러나 등록업무로 총회의 개막식을 비롯한 주요행사를 직접 볼 수 없었다는 점은 유은자 간사로서는 상당히 아쉬운 대목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주위에서 도와주신 분들께 고마운 마음이 한 가득이라고 말한다. 임해숙 간사, (사)한국조경학회 임해숙 간사는 총회의 여러 프로그램 내에서 주로 ‘녹색성장 관련 조경공무원 회의’의 집행전반을 담당하였다. 그녀로서는 99년도 동부지역 총회이후 10년 만에 개최되는 국제대회라 “행사 전반적으로 모든 것이 생경했으며, 공무원회의에는 분야 내 인사들의 참석이 많아 의전부문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 했다” 고 말했다. 임수정 간사, (사)한국조경학회 주로 디자인워크숍 행사준비와 자원봉사자 관리 등의 집행업무를 담당했던 임수정 간사. 총회 기간 내내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혀있을 정도로 바쁜 와중에도 그녀는 언제나 미소를 잃지 않았다. 총회 셋째 날 디자인워크숍의 집행을 담당하며, 걱정되었던 것이 저녁 6시에 행사가 시작한다는 점이었다고 전한다. “결국엔 그런 생각이 기우였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오히려 실무자들에게는 저녁 6시에 개최하였기 때문에 디자인워크숍에 참여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지요. 워크숍을 진행해주셨던 설계사무소 소장님들과 대학 교수님들의 강의내용 또한 알차서 프리젠테이션 자료를 요청하는 해외조경가들도 많았습니다”라고 행사를 진행하며 느꼈던 보람에 대해 술회하였다. 김기송 자원봉사자, 영남대학교 조경학과 조경학과 학생으로서 총회기간동안 자원봉사활동을 수행했던 김기송 군. 김기송 학생이 맡았던 임무는 개회식 준비와 학술논문발표 지원, 그리고 환송만찬 때 해외 조경가 안내 등이었다. 행사 중간 중간 단상을 옮기고, 학술논문이 발표되는 동안 각종 기기의 작동여부를 점검하는 등의 일들을 했다. 그래서 행사기간 내내 앉지도 못하고, 진행에 집중해야 했다. 그래서 본인도 피곤해 할만한데, 주위의 다른 자원봉사자들을 다독이고 응원하는 의젓한 모습을 자주 보여주었다. 행사를 마치며 김기송 군은“IFLA APR 총회에 오신 많은 분들의 고견을 접할 기회가 많았는데 그러지 못한 점이 아쉽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봉사활동을 하면서 친해진 타학교 조경학과 학생들과의 커뮤니티도 앞으로의 인생에 커다란 밑거름이 되리라 생각합니다”라고 전하며, 다음에도 이런 기회가 있다면 다시 한 번 참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 무엇인가를, 누군가를 기억하는 어떤 방식
    메모리얼: 기념과 추모의 장 사람들은 존경할 만한 국민적 영웅의 죽음을 추모하거나 의미 있는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메모리얼을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묘지는 인류 역사에 있어서 가장 오래되면서도 보편적인 형태의 메모리얼이라고 볼 수 있다. 기념이라는 행위는 기본적으로 죽음의 추모, 과거의 회상, 사건에 대한 사회적 환기 및 치유, 관계자의 명예 고양 등의 목적을 가지고 행해진다. 이러한 기념 행위의 장소인 메모리얼은 개인의 사적인 기억이나 사회 공동체가 공유하는 경험과 기억을 되살리고 치유하는 기능을 담당한다. 즉, 역사적 사건이나 경험을 장소에 새겨둠으로써 공동체의 기억을 더욱 강화시킬 뿐만 아니라 영원한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메모리얼의 디자인 형태 메모리얼의 형태는 국가나 시기별로 다르게 나타나지만 근대까지만 하더라도 대부분은 조각이나 기념물(monument)의 형태로 만들어져왔다. 미국의 얼굴이자 메모리얼의 집합소라고 말할 수 있는 미국 워싱턴 D.C.의 National Mall에 우뚝 선 “워싱턴 기념비(Washington Monument)”가 그 대표적인 예. 이런 형태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머릿속에 고정관념으로 자리 잡아 기념물이라고 하면 무조건 하늘로 우뚝 솟아 멀리서도 우러러 볼 수 있는 형태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이렇듯 수직으로 솟은 기념탑이나 기둥은 외부공간에서 매우 두드러져 시각적 초점이 된다. 우리나라의 4·19국립묘지나 5·18국립묘지의 중앙에 기념탑이 놓인 것도 같은 이치이다. 상징적 표현의 집합체 일반적으로 기념성을 구현하기 위한 조형설계는 어떠한 설계대상보다 다양하고 높은 수준의 상징적 표현이 요구된다. 기념의 내용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아치, 다리, 기둥, 문, 동상 및 조각, 폭포 및 연못, 분수, 조명 등 다양한 조경디테일 요소들이 사용되는데, 이러한 요소들은 메모리얼을 구성하는 실체일 뿐만 아니라 의미를 전달하는 매체로서의 역할을 한다. 워싱턴D.C.의 많은 전쟁 기념물 중에서 유일한 국립 기념물인 “제2차 세계대전 국립기념관(National World WarⅡ Memorial)”은 이러한 특징을 잘 보여준다. 2차 세계대전 중 복무한 1천 6백만 미군을 기리기 위해 지어진 이곳의 중앙에는 분수대가 자리 잡고 있으며, 그 주위로 많은 기둥들이 둘러 서 있다. 분수대의 두 개의 큰 물줄기와 양 끝의 거대한 기둥은 각각 2차 세계대전의 주요 격전지였던 태평양과 대서양을 상징하며, 나머지 작은 물줄기들은 참전국들을 의미한다. 나머지 작은 기둥들은 각각 미국의 50개 주와 그 자치속령을 의미하는데, 국가를 위해 청춘과 목숨을 희생한 군인들의 출생지역을 새겨 넣음으로써 그들의 명예를 다시 한 번 기리고 있다. 기억 속이 아닌 실체적 역사경험의 장 메모리얼은 의도적으로 공동체의 의식이 일어나게 하거나 대화를 만들어 내기 위해 또는 위안을 주거나, 반성과 화합의 장을 만들어내기 위해 디자인 된다. 때문에 잘 설계된 메모리얼에서는 기억 속에만 머무는 역사가 아닌 진정한 물리적인 역사를 경험—방문객들이 그들의 몸으로 메모리얼을 경험함으로써—할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마야 린Maya Lin이 설계한 “베트남 참전용사 기념비(Vietnam Veterans Memorial)”를 들 수 있다. 현상공모를 통해 당선된 당시 스무살의 중국계 미국인, 예일대 건축과 3학년생이 내놓은 이 메모리얼의 디자인은 전통적인 기념비 형식을 깨고 오히려 땅 밑으로 내려가는 파격적인 디자인으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125도 각으로 만나는 250피트(약 70m)의 두 개의 직선이 V자 형의 뾰족한 날개 모양을 이루고, 두 직선은 꼭지점을 향하여 지면으로부터 점점 낮아져 가장 낮은 곳에서 3미터 정도의 깊이가 되었다가 다시 지면으로 올라오게 했는데, 거울처럼 반짝이도록 광을 낸 검은 화강석 표면에는 베트남전에서 죽거나 실종된 57,939명의 참전용사들의 이름을 1957년의 첫 전사자로부터 연도별로 새겨 놓았다. 단순한 디자인이지만, 경사를 이용하고 물성을 이용해 관람자를 참여시킴으로써 참전용사와 현재의 나와의 동질성을 통해 전쟁의 경각심을 말해주고 있다. 땅을 보고 걷다가 고개를 숙여 더 낮은 곳으로 걸어 내려가면서 검은 벽에 새겨진 죽은 자들의 이름을 본다는 사실은 사람들을 종교적인 제의(祭儀)에 참여한 것처럼 슬프게 한다. 사람들은 개개인의 슬픔을 되새기며 눈물을 훔치기도 하고 추억과 명상에 잠기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미국인들 모두가 함께 겪은 국가의 힘겨웠던 역사를 동시에 반추한다. 즉, 개인의 감동이 공공의 감동으로 공유되는 것이다.
  • 펜타곤 메모리얼
    Pentagon Memorial지난 2001년 9월 11일 미국 국방부를 향했던 테러리스트의 공격으로 희생당한 184명의 유족 대표단은 그들이 사랑했던 이들을 명예롭게 할 메모리얼을 건립하기 위한 계획을 구상하고 착수하기에 이르렀다. 그로부터 8개월 후인 2002년 여름, 펜타곤 메모리얼 국제설계공모가 발표되었고, 미 육군공병단에 의해 공모에 참가한 작품들을 평가할 심사위원들이 구성되었다. 심사위원단은 세계 50개국으로부터 접수된 1천 1백개 이상의 참가작들을 평가하여, 최종 결선에 진출할 6개의 작품을 선별하였다. 이후 2003년 3월 3일 미국 국방부와 미 육군공병단은 만장일치로 KBAS의 계획안을 당선작으로 발표하였다. 아메리칸항공 77편의 충돌 지점에 인접한 펜타곤 메모리얼은 다른 어떤 장소와도 같을 수 없는 특별한 곳이다. 개인적인 해석은 방문객의 몫으로 남기면서, 무엇을 어떻게 느껴야 하는지 미리 정하지 않은 설계를 통해 숙고와 판단을 요구한다. 사실상 개인과 집단 모두에게, 2001년 9월 11일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의 숭고한 중요성을 증언하기를 바라고 있으며, 이는 생명을 빼앗긴 이들의 이야기를 시작하는 특수한 요소들이 설치됨으로써 이루어졌다. 희생자들의 나이에 근거한 시간표가 작성되었고, 184개의 추모의자들(Memorial Units)이 나이의 선(Age Line)을 따라 77편의 궤적에 평행하게 배치되었으며, 이는 1930년에서 1988년까지 분포하는 각 희생자들의 태어난 해를 표시한다. 형태와 배치가 매우 유기적이며, 각 추모의자는 각자에게 헌납된 특별한 장소로 분리됨으로써 이번 프로젝트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되고 있다. 이처럼 캔틸레버(외팔보) 형식의 추모의자의 방향은 그 사람이 충돌의 순간에 미 국방부 건물에 있었거나 77편에 탑승했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각 개인의 이름이 추모의자의 끝에 새겨졌는데, 밤에는 조명을 밝힌 풀(pool)로 인해 물 위에 떠있는 것처럼 보인다. Concept Design _ KBAS(Keith Kaseman & Julie Beckman)Landscape Architects / Architect of Record _ Lee + Papa and AssociatesClient _ The Pentagon Memorial Fund, Inc.Owner _ US Department of Defense / Washington Headquarters ServicesLocation _ Arlington, Virginia, USASize _ approximately 2 acresCompletion _ 2008. 9. 11Building Materials _ Stainless Steel, Granite(Gold & Black), Concrete
  • USS 애리조나 메모리얼과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USS Arizona Memorial & Hiroshima Peace Memorial Park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한국전쟁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아쉽게도 필자가 원고 청탁을 받은 것은 외국에 있는 메모리얼로 제약이 되어있어서 한국전쟁 메모리얼은 다루지 못하고, 대신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전쟁이었던 제2차 세계대전과 관련된 메모리얼을 소재로 글을 전개하고자 한다. 전쟁이야기를 잠깐 해보고자 한다. 제2차 세계대전은 문자 그대로 세계 전체를 전장으로 하고 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를 끌어들인 전쟁이었다. 참가국은 연합국측이 49개국, 동맹국측이 8개국이며, 중립국은 스위스 등 6개국에 불과하였다. 동원병력 1억 1천만명, 전사자 2천 7백만명, 민간인 희생자 2천 5백만명으로, 제1차 세계대전과 비교할 때 제2차 세계대전은 동원병력수가 약 2배, 전사자는 약 5배, 민간인 희생자는 약 50배이다. 서양에서는 독일과 이탈리아가 전쟁을 일으켰고, 동양에서는 일본이 중일전쟁과 미국을 상대로 한 태평양전쟁을 일으켰다. 1941년 12월 7일 아침, 일본 제국 해군이 야마모토 이소로쿠 사령관의 지휘를 받으며 진주만에 대한 기습공격을 시작했다. 하와이 주 오아후 섬에 위치한 진주만에 대한 기습 공격은 미국 태평양 함대와 이를 지키는 공군과 해병대를 대상으로 감행되었다. 전투기 및 폭격기 등으로 구성된 비행단이 발진하여 아침 7시 55분 목표지점에 도착하여 공격을 개시하고, 그들은 완전한 기습공격이 이루어졌음을 알리는 뜻의 암호 통신문인“도라, 도라, 도라”를 함대로 전송하였다. 당시 진주만에는 130척의 미 태평양 함대의 함정들이 평온하게 정박하고 있었고, 9척의 전함중 7척이 포드섬 남쪽해안의“전함 선착장”에 일렬로 묶여져 있었다. 약 8시 10분경 USS 애리조나는 1,760파운드의 관통용 폭탄 세례를 받고 갑판이 뚫려 전방 화약고가 인화·폭파되면서 1,177명의 승무원과 함께 침몰하였다. USS 오클라호마호 역시 수발의 어뢰를 맞고 완전히 뒤집혀 4백명 이상이 그 안에 갇혔으며, 캘리포니아호와 웨스트버지니아호는 정박지에서 그대로 침몰하였다. 이밖에 메릴랜드, 펜실베이니아, 그리고 테네시호 등도 극심한 피해를 입었다. 미국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하와이가 공격을 당하면서 엄청난 피해를 입었고, 이로 인하여 제2차 계대전에 개입하는 것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던 미국인들은 하나로 단결하게 되었다. 일본은 건드리지 말아야 할 미국을 공격함으로써, 결국 일본 제국의 패망으로 이어지게 된 태평양전쟁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미국은 1942년 8월에“맨해튼 계획”으로 명명된 원자폭탄제조계획에 착수하여, 1945년 7월 16일 원자폭탄실험에 성공한 후 일본과의 전쟁종결 수단으로서 동시에 원자폭탄의 효과를 정확히 측정해보고자 히로시마, 고쿠라, 니가타, 나가사키 등을 목표도시로 선정한 후, 비교적 공습피해가 적고 연합군포로수용소가 없었던 히로시마를 제1목표로 정하였다. 일본의 전황이 압도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 15분 인류사상 최초의 원자폭탄이 히로시마에 투하되었다. 원자폭탄은 시가지 상공 약 600m 지점에서 눈을 멀게 할 정도의 섬광과 함께 작렬하여, 폭심지로부터 2㎞에 이르는 시가지의 건물이 흔적도 없이 부서지고 불타버렸으며, 폭풍과 열선 등에 의해 약 14만명(1945년 12월 기준)에 달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이중에는 한국인 2만명도 포함되어 있었다.
  • 발리 메모리얼과 멜버른 전쟁기념관 중정
    유족들의 참여로 만들어진 발리 메모리얼 2002년 발리 폭파사건은 어쩌면 우리에게 낯선 사건일지 모른다. 당시 우리는 2002년 월드컵 열기의 감흥이 아직 남아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호주 사람들에게 있어 2002년 10월 12일은 그들의 역사상 가장 기억하고 싶지 않은 순간중 하나가 되었다. 202명의 무고한 생명이 테러의 희생물이 되었고, 그중 91명의 호주인들이 생을 마감한 날이기 때문이다. 이날을 추모하는 공간들이 크게 영국, 호주, 발리에 생겨났고 가장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호주는 멜버른과 퍼스, 시드니 그리고 캔버라에 각각 추모 공간을 만들었다. 그중 22명의 희생자가 있던 빅토리아주는 사건발생 3주기를 맞아 멜버른 Lincoln Square에 Bali Memorial을 조성했다. 여타 추모공간이 남은 유족들에게 큰 의미가 되고 있는 건 분명한 사실이지만, 대상지 결정이나 디자인만큼은 그들의 의사나 의도와 상관없는 공간이 되곤 하는 게 일반적인 예가 아닌가 싶다. 그러나 발리 메모리얼은 조금은 다른 시도가 이루어진 사례로 남을듯하다. 바로 대상지 선정과 계획 및 설계에 있어서 유족들의 절대적인 의견과 의도가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희생자들의 대부분이 젊은 청년들이었기에 유족들은 그들의 젊음을 상징하는 지역을 대상지로 삼길 원했고, 이러한 이유로 발리 메모리얼이 대학가에 들어서게 되었다. 또한 그들은 물과 햇볕 그리고 탁 트인 공간이 대상지내에 포함되길 원했다. 이러한 그들의 제안은 202개의 자그마한 바닥조명(전체 희생자를 상징)과 91개의 분수(호주인 희생자를 상징) 그리고 빅토리아주의 희생자 22명의 이름이 기록된 추모 현판의 도입으로 실현되었다. Design _ Melbourne Council & Victim’s FamiliesLocation _ Lincoln Square, Melbourne, AustraliaBudget _ Au$ 185,000Construction _ 2construct 강한 대비가 인상적인 멜버른 전쟁기념관 중정멜버른에는 ‘Shrine of Remembrance’라는 이름의 전쟁기념관이 있다.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기념관인데 이 기념관의 중심축이 멜버른 중심가를 한축으로 가로지르는 Swanston Street의 축과 같이 하고 있어 이곳의 역사적 무게감을 더해 주고 있다. 여기에 소개하는 정원은 이 전쟁기념관의 한 부분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을 처음 방문하면 한눈에 들어오는 전쟁기념관 건물의 모습과는 달리 이 정원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하지만 하나 둘 계단을 오르다 보면 어두운 대리석과 대조되는 두 가지 색이 눈에 들어오는데, 하나는 기념관을 바라볼 때 왼쪽에 위치한 붉은색의 안내센터 입구부분이고 다른 하나는 오른편에 위치한 ‘Garden Courtyard’이다. 평면상으로는 두 곳 모두 왕관형태를 가지고 있으나 기념관 입구에서 볼 때는 단순한 벽과 같은 형태를 하고 있어서 잘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안내센터 입구로 들어서면 전혀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 붉은색의 벽과 바닥 그리고 헌화할 수 있는 곳 말고는 벽에 새겨진 몇몇 글들이 눈에 보이는 전부. 상당히 건축적인 공간이지만 거대한 기념관이 압도하는 느낌의 외부공간과 달리 위요된 분위기가 느껴지는 곳이다. 붉은 색의 벽면과 함께 위요된 듯 비어있는 이 공간은 때로는 기념을 위한 공간으로 단순히 비어두는 것도 효과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게 한다. ‘Garden Courtyard’역시 안내센터 입구와 같은 형태의 공간 가운데 위치하고 있다. 형태적으론 같지만 반대편의 빈 공간과는 달리 이곳은 올리브, 오크, 덩굴류 식물과 함께 목재데크로 채워져 있다. 즉 틀은 같지만 다른 내용의 그림이 그려있는 곳이다. 이러한 특성은 기념관 테라스에 올라가면 확연히 확인할 수 있다. ‘Garden Courtyard’ 디자인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전쟁으로 인해 목숨을 잃은 고인을 추모하고 소중한 가족을 잃은 유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올리브 나무를 이식시킨 것이다. 이식된 올리브 나무 주변으로는 사암과 목재데크, 낙엽성 오크로 마감되었는데, 이러한 요소들은 이 정원을 보다 드라마틱하고 시적인 인상마저 들게 한다. 이 공간은 특별한 날의 기념 및 회상의 자리로 이용된다. 벤치와 벽구조물은 꽃을 헌화하기 위한 제단이 되기도 하는데, 이러한 구조물 아이템은 헌화된 꽃들의 섬세함과 강한 대조를 이룬다. Architect _ Ashton Raggatt McDougallLandscape Architect _ Rush/Wright AssociateClient _ Shrine of Remembrance TrusteesLocation _ Shrine of Remembrance, Melbourne, Australia
  • 제주 4·3 평화공원과 부산 유엔기념공원
    4·3 Peace Park in Jeju-do & UN Memorial Park in Busan 죽어간 넋이 진정으로 위로 받는 날이 오길 제주 4·3 평화공원에는 사건의 증언, 유가족 기록, 관련 자료의 보관 및 진상규명에 관한 연구, 또한 평화와 인권 관련 학술대회 및 전시 문화 행사를 진행할 공간으로서 제주 4·3 평화 기념관이 들어서 있다. 공원은 크게 두 개의 공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하나는 주진입부에서 가까운 위령탑을 중심으로 한 공간이며, 다른 하나는 그 너머에 위치한 위령제단이 세워진 추념광장이다. 공원의 중앙부에는 이유 없이 죽어간 사람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조형물“귀천(歸天)”과 제주도민의 화합과 평화, 통일을 기원하는 위령탑이 세워져 있다. 조형물 “귀천”에는 제대로 된 장례조차 치르지 못한 영혼들이 이제라도 수의를 입고 편안히 저승길을 가시라는 해원의 의미를 담았다. 이를 중심으로 주변에 원형을 그리며 동선이 나 있는데, 동선상에는 수변공간과 조형물“비설飛雪”, 지역별 추념의 광장 등이 들어서 있다. “비설”은 조형물이 위치한 부근에서 희생된 두 모녀의 비극을 죽음의 순간까지 아기를 꼭 껴안은 모성애로 표현한 작품이다. 눈 쌓인 겨울에 아무런 이유없이 죽어간 두 생명이 마치 덧없이 흩날리는 비설을 닮았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4·3 위령제단은 오석의 아치형으로 영원성을 상징하는 동시에 도민화합, 민주와 인권 그리고 안락의 공간을 상징하며 참배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내 나라를 지켜 준 이방인의 희생을 생각하면 너무나 작은 보답 유엔기념공원은 크게 진입부(정문 광장), 상징구역, 주묘역, 녹지지역으로 나누어진다. 상징구역에는 터키, 그리스, 뉴질랜드, 노르웨이, 태국 등 참전국의 전쟁 기념비들이 각국의 지원을 통해 건립되어 있고, 주묘역에는 호주 기념비, 프랑스 기념비, 캐나다 기념 동상, 영연방 위령탑과 호주, 캐나다, 프랑스, 네덜란드, 터키, 영국, 미국 등 7개국의 묘역이 있으며, 녹지지역에는유엔군 위령탑, 제2기념관, 연못, 유엔군 전몰장병 추모명비, 무명용사의 길(수로), 한-태 우정의 다리 등이 조성되어 있다. 공원 안에는 추모관, 기념관 등의 건물도 들어서 있다. 이중 유엔군 전몰장병 추모명비 건립은 2006년에, 노르웨이 기념비는 2007년에, 수로水路인 “무명용사의 길”은 2008년에 준공하는 등 각종 정비 사업이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다. ‘유엔군 전몰장병 추모명비’는 대한민국의 지원으로 2006년 10월에 건립된 것으로, 우주를 뜻하는 원형수반에 전몰영혼들이 머무는 하늘과 명비 그리고 보는 이들이 담겨 있으며, 수반 안에는 전쟁을 상징하는 철모가 맞은편에서 평화로운 연꽃으로 승화하는 내용을 표현하고 있다. 검정색 명비에는 참전 각국에서 제공한 40,895명의 전사자(실종자 포함)의 이름이 알파벳 순서(국가별, 개인별)로 새겨져 있다. ‘무명용사의 길(Unknown.. Soldiers’Pathway)’은 2008년에 준공되었다. 유엔군 위령탑에서 남향으로 내려가는 길에 조성된 수로水路인 이 무명용사의 길은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된 11개국을 상징하여 11이라는 숫자와 많은 것을 연관시키고 있다. 11개의 물 계단, 수로 위쪽의 11개의 분수대, 수로 가에 늘어선 11주의 소나무 등. 또한 수로 위쪽의 분수대는 각 11개씩 양쪽에 자리하고 있는데, 이는 유엔기념공원 안장국인 11개국 뿐 아니라, 한국전쟁에 참전한 22개국(한국 포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 기억과 공간
    축구화, 슬리퍼, 쪼리, 스니커즈. 작은 신발에서 큰 신발까지 사이즈도 다양하고, 디자인도 다양하고, 당연히 색상도 다양했다. “조금 오래되고 낡고 더러웠지만”, 내가 신을 것은 아니므로 크게 문제될 것은 없었다. 다시 생각해 보니, 친구의 신발 상자는 보물 상자가 아니었을까. 그 지저분한 것들을 모으기 시작한 것은 언제 부터였을까? “장가가면 버려야 겠지”라며 민망한 듯 뚜껑을 덮는 친구를 보면서, ‘그럴거면 왜 그런 짓을 하니’라는 이해할 수 없는 눈빛을 보내면서도, 그 이상의 궁금증을 가져 보지는 못한 듯 하다. 그 친구의 괴상한 취미 신발은 모두 버렸다고 했다. 사랑하는 그의 아내와 새집 냄새가 나는 아파트에서 알콩달콩 재밌게 살고 있다며 안부를 전했다. 하지만, 지금도 부모님이 살고 있는 신창동 집에 가면, 일기장이며, 편지며, 영화 티켓이며, 버리지 않고 쌓아둔 시간의 흔적들이 너무 많아서, 모두 버리겠다는 어머니와 가끔 실갱이를 벌이기도 한단다. 나는 병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취미라고 강변했다. 어쨌든 그 괴상한 취미 덕택에 우리에게는 이야기거리가 남지 않았는가. 그 조경가의 괴상한 설계 선유도에 가면, 기존 정수장의 “오래되고 낡고 조금 더러운” 철제와 콘크리트 벽체 등의 황폐한 시설들이 여기저기 남아 있다. 정수장 시설을 모조리 밀어버리고, 새로운 벽돌과 나무, 첨단 디자인의 시설물들을 도입하여 아주 발랄한 공원으로 만들 수도 있었으나, 선유도는 운이 조금 나빴다. 조금 괴상한 취미를 가진 조경가들은 많은 사람들의 일반적인 기대를 저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낡아 보이는 공원 안에는 뭔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분위기가 흘렀다. 그 덕에 많은 사람들이 환호했고, 밤이 되면 연인들이 찾아 들었다. 또한 조경분야는 공원을 주제로 하는 전례없는 풍부한 이야기거리를 얻게 되었다. 기억은 머릿 속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선유도는 1978년부터 2000년까지 서울 서남부 지역에 수돗물을 공급하는 정수장으로 사용되다가, 2000년 12월에 폐쇄된 뒤 서울시에서 공원으로 꾸민 것이다. 공원으로 조성되어 개장이 되기 전까지, 그곳은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거의 버려진 공간이었다. 당연히 사람들에겐 그곳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다. 그러나, 선유도가 공원이 되어 돌아 왔을 때, 지난 시간의 흔적들은 신기하게도 공원 안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으며, 그 어떤 공간보다 사람들의 머릿 속에 강한 이미지를 심어주었다. 설계가의 의도와 노력대로 “역사적 맥락”의 표현이 물리적으로 잘 나타났다는 찬사를 받았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 상도 받았고, 전문가들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일등공원으로 손꼽아 주는 호사도 누리고 있다. 울퉁불퉁한 생살처럼 드러난 콘크리트 벽과 기둥, 지워지지 않는 물의 얼룩과 녹슨 자국이 전해 주는 것은 쓸모 없어 폐기된 산업의 잔재가 아니라 재료 자체의 물성이다. 그 물성은 또한 시간의 흔적을 가감 없이 노출시킨다. 노출된 물성과 그것에 녹아있는 시간의 이야기는 자연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또한 과거의 산업 재료와 새로운 방식의 접촉을 시도하고 있는 다양한 종류의 나무와 꽃은 식물의 아름다움을 넘어서 문화와 함께 거주해 온 자연의 역동성을 물질적으로 전하고 있다. 직각 방향으로 공원을 가로지르며 선 한강전시관 앞의 녹색기둥의 정원은 물성의 노출을 통해 시간을 성찰하고 자연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반성적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지하 정수지 위의 콘크리트 상판을 걷어내고 기둥만을 남겨 조성한 녹색기둥의 정원. 위층에서 산책하며 조감하면 일정 간격으로 늘어선 콘크리트 기둥의 조합이 마치 의도된 조각 작품처럼 경험되지만, 램프를 따라 아래층에 내려가 부감의 형식으로 콘크리트 기둥을 대면하면 이곳에 남겨진 시간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기둥 하단부를 따라 감겨 올라가기 시작한 식물은 콘크리트와 식물은 지극히 이질적이라는 선입관을 비웃으며 자연의 문화성을 잔잔히 웅변한다.-배정한, 「시간의 정원, 발견의 디자인 : 선유도공원이 전하는 말」, 환경과 조경 2002년 7월호
  • 모리스 로즈 에어필드의 교훈
    Alter Flugplatz 프랑크푸르트는 현대 산업 자본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깊은 역사와 문화 자본을 가진 도시이다. 이미 12세기에 도시를 이루었고 독일의 대문호 괴테가 태어나고 활동하여 “괴테의 도시”로도 불린다. 이 도시는 테오도르 아도르노, 발터 벤야민, 에리히 프롬, 위르겐 하버마스 같은 사상가들의 활동 무대로도 유명하다. 프랑크푸르트 학파로 불리는 이들의 주요 관심은 현대산업사회와 문명이었다. 이들의 사상은 유럽 사회 변화의 지적 배경이었다. 이런 사회ㆍ문화적 자본을 가진 도시도 2차 세계대전으로 피폐화되었던 아픈 기억이 있다. MauriceRose Airfield의 변화와 기억프랑크푸르트 북쪽 Nidda강변 Bonames 인근은 사람들에게 비행장과 소음으로 기억되던 곳이다. 2차 세계대전 이전부터 비행장으로 사용되던 이곳은 미군이 철수하기 전까지 모리스 로즈 에어필드로 불리던 미군 헬리콥터 기지였다. 1992년 미군 기지가 독일에 반환되자 프랑크푸르트 시정부와 시민들은 활주로를 자전거와 인라인스케이팅 공간으로 활용하고자 했다. 반면에 환경 단체들은 오염을 제거하여 미군 기지로 사용되기 이전의 녹지대로 되돌리고자 했다.GTL(Gnuchtel and Triebswetter Landschaftsarchitekten, Kassel)은 다양한 이해 관계자들이 수긍할 수 있는 설계를 제안했다. 그들의 안은 레크리에이션 활동을 수용하면서도 오염된 기지를 정화하고 자연 천이를 유도하여 생태적 건강성을 회복하는 것이었다. 지금의 모리스 로즈 비행장에는 헬리콥터가 날고 있지는 않지만 군사 시설로서의 과거는 남아 있다. 아스팔트 활주로와 콘크리트 포장은 식물 모자이크로 다시 태어나 프랑크푸르트의 녹색 공간으로 변모했다. 변모한 모리스 로즈 비행장은 2005년 독일 조경상, 2006년 국제 도시 조경상을 수상했다. 모리스 로즈 비행장이 변모한 Alter Flugplatz는 버려진 대지에 대한 아이디어다. GTL의 안은 기본적으로 남겨진 군사시설과 대상지의 특성을 바탕으로 거의 모든 건물과 활주로의 많은 부분을 그대로 남기고 있다. 온전히 새로운 것이라고는 Nidda강 위에 설치하여 보행과 자전거 동선을 연결한 보행교 정도라고 할 수 있다. 군사시설 이전지의 과거는 현존하는 기념품이 되고 있다. 기존 시설물들은 과거 용도와 연속성을 가지면서 현대적인 활동을 담아 새로운 경관을 만들고 있다. 대상지를 양피지(palimpsest)로 읽고 지역적 가치를 재해석하여 끊임없이 ‘차이’를 만드는 동시대 조경의 경향이기도 하다. 대상지의 남겨진 과거가 자연과 사람 모두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