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영석 Place_On
NEW START, MY DESIGN OFFICE
01 2015년 여름, 독일 뮌헨에서 도시 공간과 미디어 테크놀로지 사이의 접점을 찾고 있었다. 조경가로서의 진로에 대한 고민으로 쉽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있던 차에 서울에서 ‘노들꿈섬 운영구상 1차 공모’에 함께 참가하자는 연락이 왔다. 네덜란드 로테르담과 독일 쾰른, 뮌헨을 오가며 주민참여형 프로그램과 단계별 협의체 조직을 위시한 새로운 운영 조직과 전략을 담은 ‘노들노들 놀아들: 도시 야생터에 우리들의 놀이로 만드는 문화의 섬’을 완성해 제출했다. 이 설계안은 ‘노들꿈섬 운영계획·시설구상 2차 공모’에 참가할 수 있는 10개의 작품 중 하나로 선정됐고, 보다 구체적인 계획안을 작성하기 위해 서울로 돌아왔다. 반팔을 입기에는 조금 추웠지만, 자신감으로 가슴이 가득 찼던 초가을이었다.
노들꿈섬 공모의 형식과 제출 내용은 주최 측에게도 참가자에게도 생경한 방식이었다. 우리는 팀 이름처럼 ‘빅바이스몰Big by small’하기 위해 최대한 다양한 계층의 많은 사람에게 자문을 구하고 협조를 요청해야 했다. 건축가, 조경가, 관계 부서 공무원 등 조경 산업 분야의 종사자뿐 아니라 문화 기획자, 사회 활동가, 예술가, 요리 연구가, 유아 교육 전문가, 공연 연출가, 사회적 기업가, 도시 양봉가,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임원, 지역 협동 조합원, 지역 구청장 등 도시 안에서 나름대로의 생태계를 구축하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과 만났다. 이때의 만남과 대화는 조경가로서 도시를 공간적인 행위만으로 접근하려던 관점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노들꿈섬 운영구상 1차 공모’의 최종안을 제출한 뒤 3일을 쉬기로 했다. 밤낮으로 사람을 만나느라 체력적으로 지쳐있었고 5개월여를 노들섬에서 노들거리는 꿈을 꾸느라 정신적으로도 그로기groggy 상태였다. 속도를 늦추고 방향을 다잡을 필요도 있었지만, 제안서를 작성하면서 구축된 네트워크와 건전한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욕심이 컸다. 결국, 휴식 후 곧장 마을만들기 사업에 동참하기로 했다.쉬는 동안 노들섬 운영 관리에 시간을 오롯이 바쳐야 하는지 다시 연구자로 돌아가 지난한 연구를 시작해야 하는지 따위의 질문을 스스로에게 할 작정이었다. 하지만 늦은 오후에 잠에서 깼을 때, 핸드폰 액정에서 노들섬을 계기로 알게 된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임원에게서 걸려온 부재중 전화를 발견했다. 그 임원은 선뜻 서울 압구정 로데오역에 위치한 지플러스G+ 스타존의 시즌 5 리뉴얼 작업을 맡겼고, 그날 저녁에는 몇 년 만에 연락이 온 대학 선배가 국가기술표준원의 휴게 공간 설계를 부탁해왔다.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아무데도 없는 듯 했지만 사실 어디에나 있었다.
박영석은 1984년생으로, 성균관대학교에서 조경을 공부한 뒤 서울대학교에서생태조경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도시연대 커뮤니티디자인센터에서 다양한 주민참여형프로젝트를 진행하고 독일 뮌헨 공과대학교 경관 및 산업 경관 연구소에서초청 연구생으로 수학했다. 도시 경관 웹진 ‘지니어스케이프(Geniuscape)’의설립자이자 편집장이며 도시 공간 연구 집단 빅바이스몰(Big by small)의 공동 대표다.뿐만 아니라 마을 드라마 연구소 ‘이웃(OIOTA)’의 대표를 맡고 있으며 공간 작업소‘플레이스온(Place_On)’을 이끌고 있다.
-
박경탁 salmworkshop
NEW START, MY DESIGN OFFICE
01 작년 11월에 창업을 했다. 회사에서 쫓겨난 지 8개월 만이다. 미국에서 5년간의 회사 생활을 뒤로하고 만난 자유는 예전에 비해 나를 느긋하게 만들어 준 것 같다. 무엇인가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때는 이보다도 2년 전의 일이다. 마음은 있었지만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시작을 몇 년 후로 미루고 있었다. 회사가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안락한 울타리가 되어 주었고 한 때 거침없던 심장도 안락한 보금자리 덕택에 새로운 시작을 조금 두려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계획보다 좀 더 일찍 등 떠밀려 퇴사한 덕분에 다른 회사에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경험해 볼 시간과 기회가 생겼지만, 만약 다시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면 자의로 나오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마도 창업을 하게 된 첫 번째 이유는 덜 두려운 곳으로 가기 위함일 것이다.
창업을 결심하게 된 또 다른 이유는 5년을 보낸 샌프란시스코와 실리콘밸리에서의 경험 때문이다. 시간이 많이 흐른 뒤 삶을 회상하게 되면 아마 그때의 경험이 내 커리어에 가장 중요한 변곡점을 만든 행운의 순간이라 생각될 것이다.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테크숍Techshop에서 수업과 프로젝트를 통해 워터젯waterjet, 비닐커터vinyl cutter, 3 or 4 axis router 등의 CNCComputer Numerical Control 장비와 진공성형vacuum forming, 사출성형injection molding, 샌드블라스트sand blasting, 분체도장powder coating 등의 패브리케이션fabrication 장비, 직물 및 전자 장비를 배우고 사용하게 됐다. 이는 구상을 먼저 한 후 구현에 대해 고민하던 나의 디자인 관성을 재료와 제작 방식의 선택과 구상을 시작할 때부터 함께 고려하는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변화시켰다.
직접 시공을 한다는 가정 아래에서의 재료와 제작 방식·장비의 선택은 디자인의 디테일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콘셉트와 방향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줬다. 이러한 경험과 디자인 프로세스의 변화는 큰 스케일의 디자인에서 중간 또는 작은 스케일의 디자인으로, 늘 사용해왔던 재료에서 새로운 재료의 활용으로, 현장 중심의 공사 방식에서 사전 제작을 적극적으로 늘린 공사 방식으로 나의 관심사를 옮겨 놓았다. 결국 이러한 관심사를 실천할 수 있는 틀을 만들고 싶어 창업을 하게 됐다.
삶워크숍salmworkshop은 그러한 실천의 틀로써, 샌프란시스코 피어pier에 위치한 전 세계 메이커maker들의 꿈의 공간인 오토데스크 피어 9 워크숍Autodesk's Pier 9 Workshop1에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
박경탁은 1979년생으로, 서울시립대학교에서 조경을 공부했고 하버드 GSD에서조경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미국 SWA 그룹의 샌프란시스코 사무소(SWAGroup San Francisco Office)에서 5년간 다양한 조경 설계·계획 프로젝트를수행하며 미국조경기술사(RLA) 자격증을 취득했다. UC 버클리 익스텐션(UCB erkeley Extension)에서 강의를 진행하기도 했으며 테크숍(Techshop)에서프로토타이핑(prototyping), 패브리케이션(fabrication), 제조(manufacturing) 등과관련된 다양한 장비 사용법을 익혔다. 후에 이 장비 사용법을 활용한 프로젝트를수행하기도 했다. 2007년부터 프로젝트 팀 O3스코프(O3scope)를 이끌고 있으며2015년에 salmworkshop을 열어 운영 중이다.
-
김호윤 Landscape Design Office HOWON
NEW START, MY DESIGN OFFICE
01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최근 조경 분야는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무런 준비 없이 사무실을 열었다. 일주일 만에 다니던 회사에서 퇴사했고 일주일 후 사무실을 오픈했다. 특별한 계기는 없었다. 기존의 회사를 다니며 느꼈던 경제적인 문제와 업무에 대한 낮은 만족감 등을 해결하겠다는 거대한 포부 때문도 아니었다. 설계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설계사무소를 여는 것이 큰 희망 중 하나일 것이다. 나 역시 꿈꿔온 일을 실천했을 뿐이다. 조경에 대한 나만의 틀을 구성하고자 했던 것이 계기일지도 모른다. 오래 전부터 설계에 대한 개인적인 철학과 방향에 대해 생각해왔다. 현재 짜인 틀에서 생각을 발전시키고 실행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었고 창업은 그 갈증의 해소 방법이었다.
국내 조경설계사무소는 소장의 마인드, 인력의 구성, 구성원의 세대와 경험, 주요 프로젝트의 성격 등에 소소한 차이가 있지만 단조롭고 비슷한 직능 영역을 구성하고 있다. 게다가 다른 분야에 비해 대화와 토론이 빈곤하다. 최근에야 생성되기 시작한 담론에서 다른 영역이나 조직과의 연대를 통해 다양한 활동에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을 들었을 때, 왜 기본은 강조되지 않는지 답답했다. 포화 상태에 이른 조경 산업의 기반 영역을 확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설계의 기본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한다.
바른 설계 집단 = HOWON
기초가 튼튼한 조직을 구성하고 싶다. 조직의 구성은 사람이기 때문에 직원 설계 교육에 많은 역량을 기울이고자 한다. 직원의 입에서 우스갯소리로 ‘HOWON 아카데미’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교육 때문에 말을 너무 많이 해서 목이 아프다. 이런 설계 교육을 받은 신입, 경력 직원들이 국가로 비유한다면 비상시국처럼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다. 조직은 사람과 함께 성장해야 하고 이런 집단이 조용하 지만 강한 설계를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정통성을 기반으로 한 스타트업
특별한 차별화 전략은 없다. 단지 기본에 충실히 더 세심하게 더 강하게 더 즐겁게 일할 뿐이다. 안정적인 조직 구성이 가장 큰 목표다. 해본 적 없는 일이지만 스타트업start-up이 가져야 할 덕목 중 하나가 무모함이 아닐까. 시공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설계 조직에서 진행했던 수많은 프로젝트 경험을 토대로 설계를 기반으로 하는 디자인 빌드design build 오피스를 구성하는 것이 현재의 희망사항이다. 이를 사무소 구성원의 공통된 목표로 만드는 것이 지금 나의 임무다.
나무와 설계사무소
소규모 농장을 준비하고 있다. 조경의 가장 기초가 되는 것 중 하나가 수목이기에 직접 다뤄보고 싶었다. 회사의 경영적인 측면에도 일부분 보탬이 될 것이다. 또한 직원이 가진 식재 설계에 대한 이상을 현실화하는 데에도 많은 도움이 되며 수목의 생리적 특성을 접하기에도 좋을 것이다. 생각 없는 빵빵이는 이제 그만!
김호윤은 1978년생으로, 청주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서울시립대학교도시과학대학원에서 조경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기술사사무소 아텍플러스에서조경 설계의 기본을 다진 후 삼성에버랜드 디자인그룹에서 8년간 조경 디자이너로서영업·설계·시공의 관계를 조율하며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현재는 Landscape Design Office HOWON을 설립해 운영 중이며바른 설계 집단을 구성하기 위해 기초 중심의 설계를 추구하고 있다.
-
NEW START, MY DESIGN OFFICE
설계사무소를 시작한다는 것
조경을 전공한 그 많은 학생들은 모두 어디에 있을까?
설계 분야로 진로를 택하는 학생들이 매년 줄어들고 있다. 설계사무소에 지원하는 학생들이 눈에 띄게 줄어든 만큼 새로운 출발을 모색하는 젊은 조경가도 찾아보기 힘들다. 신생 벤처기업을 뜻하는 ‘스타트업’이 주목받는 시대적 키워드로 부상하고 있지만 조경에서는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린다.
이번 호 특집에서는 자신의 디자인 오피스를 열고 설계가로서의 꿈을 묵묵히 실천해나가고 있는 이들을 소개한다. 이들의 좌충우돌 창업기가 오늘과 다른 내일을 꿈꾸는 이들에게뜨거운 자극이, 또 새로운 희망이 되기를 기대한다.
01.좌충우돌 창업기
김호윤(Landscape Design Office HOWON), 박경탁(salmworkshop),박영석(Place_On),
박은혜(denovo studios),박종완(플레이스랩 기술사사무소),이호영+이해인(HLD),
정성빈(Miners+100. Inc),최영준(Laboratory D+H),최윤석(그람디자인)
02.설계사무소 소장으로 산다는 것, 그 냉정과 열정 사이
강연주(우리엔디자인펌)
03.창업 설계를 위한 매뉴얼
조한결
+
젊은 창업자들에게 던진 세 가지 질문(공통)
Q1. 창업을 결심하게 된 계기와 창업한 회사의 지향점은?
Q2. 창업 전후로 가장 어려웠던 점과 창업하길 정말 잘했다고 느낀 순간이 있다면?
Q3. 지금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나 작업은?
-
설계비, 무엇이 문제인가
설계 환경을 진단하다
서영애 오늘 좌담회는 한국조경설계업협의회(이하 조설협) 기술분과에서 추진하고 있는 ‘설계용역단가 기준 작성’ 기획의 일환으로 마련되었다. 설계용역단가를 주제로 좌담회와 설문 조사, 사례 연구 등을 진행해 ‘적정 설계비 가이드라인’을 체계적으로 마련할 계획이다. 첫번째 좌담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마침 『환경과조경』이 설계비를 비롯하여 전반적인 설계 환경을 진단하는 특집을 준비 중이라는 소식을 접해 이번 좌담회를 공동으로 개최하게 되었다. 설계비 문제가 공론화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우선 오늘은 현황과 문제점에 초점을 맞춰보면 좋겠다. 물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대안도 이야기되지 않을까 싶다. 참고로 하반기에는 대안 모색에 보다 초점을 맞춘 좌담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먼저,조설협의 안계동 회장께서 좌담회 개최 배경을 소개해주면 좋겠다.
안계동 조경설계사무소 대표자 모임인 조설협이 발족된 이후 설계업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몇 가지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중의 하나가 바로 설계용역대가, 즉 설계비의 현실화다. 사실 적정한 조경 설계비에 대한 논의는 예전부터 꾸준히 있어 왔다. 타 분야에 비해상대적으로도 그렇고, 절대적으로도 우리는 적정한 대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설계비는 설계사무소의 경영과도 직결된 문제이지만, 그보다 설계 품질, 직원 처우, 인재 영입 등 구조적으로 얽혀있는 점들 때문에라도 개선이 꼭 필요한 사안이다. 공공 발주 프로젝트도 그렇고, 민간 발주의 경우에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과당 경쟁으로 인한 과도한 덤핑 수주도 문제다. 제도의 문제점도 따져봐야 한다. 물론 조경설계만의 특성에 대한 인식부족으로 인해 지금 정도의 설계비면 충분하다는 사회적 몰이해도 극복해야 한다. 지금까지 조경설계비가 어느 정도의 수준으로 책정되어야 하고, 왜 그래야 하는지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와 대응이 부족했다. 이제라도 관련 단체에서 적정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한다.
하지만 이 문제는 얽혀있는 요소들이 적지 않다. 각자가 처한 입장에 따라 의견도 각기 다르다. 때문에 우선 설계비와 관련된 현황과 문제점을 꼼꼼히 살펴보고 어떤 방식과 절차를 통해 이 문제를 풀어나가야 할지를 모색해야 한다. 조설협 차원에서 가시적인 성과를거둘 수 없는 사안일 수도 있다. 게다가 본격적으로 관련 자료와 근거를 만들게 되면 비용도 적지 않게 소요될 것이다. 지금은 조설협회원사들이 시간을 쪼개서 각자가 갖고 있는 데이터 위주로 조사정도를 하는 수준이다. 그렇지만 관련 자료와 근거를 모으고 만들어 가는 과정은 분명 유의미할 것이다.
서영애 설계비를 주제로 한 좌담회를 열게 된 취지를 말씀해주셨다. 그럼 본격적으로 ‘설계비, 무엇이 문제인가’를 이야기해보자. 조설협 초대 회장이기도 한 안세헌 대표는 2년여 동안 조설협을 이끌면서 설계비 문제의 심각성을 누구보다 잘 인지하고 있다. 또 조설협의 발족 배경에는 이런 사안에 대한 설계사무소의 공동 대응 필요성도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먼저 개괄적인 문제 제기를 부탁드린다.
안세헌 설계비는 조경설계가 주 업무인 전문가 그룹의 문제다. 하지만 모두가 입장이 동일하지는 않다. 대형 엔지니어링 회사에 소속되어 있는 조경설계 부서와 조경설계만 단독으로 수행하는 기술사사무소, 엔지니어링 활동주체, 일반 사업자의 경우는 처한 상황이 다르다. 전자의 엔지니어링 조경 부서는 엔지니어링이라는 큰 틀 내에서 수주를 하고 대가를 나누기 때문에 그 기준이 상대적으로 명확하다. 공공이든 민간이든 엔지니어링 대가 기준에 맞추어 설계비를 받고, 기술료와 몇 가지 항목을 더해서 적정 대가를 산정한다. 반면 조경설계사무소는 설계비 기준이 천차만별이고 주먹구구식이다. 산정하는 방식도 너무 다양하다. 대부분 대지면적이나 연면적을 기준으로 하는 경우가 많지만, 관행적으로 ‘이 정도면 적당하지 않을까’하는 수준에서 견적을 내는 경우도 많다. 이 대목에서 회사의 자금운영 상태가 결부되면서 저가 수주 경쟁이 발생하기도 한다. 품질경쟁이 아니라, 도면 한 장당 가격 경쟁이 발생하는 경우까지 생기고 있다. 합리적이고 명확한 설계비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문제점은 설계의 범위가 굉장히 다르다는 점이다. 결국은 어떤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을 때, 숙련된 전문 인력을 얼마의 시간동안 어떤 업무에 투입하는가가 설계비를 좌우하게 되는데, 실제로 한 프로젝트에서 수행하는 설계의 범위에 꽤 차이가 있다. 때문에 설계비와 함께 설계의 범위에 대한 규정도 필요하다. 대부분은 공정별로, 기본계획 얼마, 기본설계 얼마, 실시설계 얼마로 책정을 한다. 조금 더 상세하게 견적을 내는 경우에는 수경 시설 포함 여부, 전기나 조명 시설 포함 여부와 함께 특화 설계에 대한 내용을 담기도 하지만, 설계비가 똑같은 경우에도 업무 범위는 천양지차인 경우가 많다. 대략 수량 산출만 하고 실시설계가 마무리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세밀하게 일위대가까지 모두 산출해서 정리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당연히 투입 인력과 시간에 큰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설계비는 업무 범위와 무관하게 책정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재차 강조하지만, 설계대가의 기준을 정하는 것 못지않게 설계의 범위를 명확히 정하는 것도 필요하고 중요하다. 시장 경제 체제이긴 하지만, 설계사무소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설계비를 마치 부동산 중개 수수료처럼 일률적으로 딱 떨어지는 금액으로 책정하기 어려운 점도 있다. 또 회사 규모에 따라서 1인당 매출액에 차이가 있는 경우도 많아서 설계비를 획일화·표준화하기 곤란한 점도 있다. 하지만 각 회사의 사정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변주하더라도, 기본적인 가이드라인은 분명히 만들어져야 한다.
서영애 설계비 기준을 세우기에 앞서 설계의 범위를 명확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짚어주셨다. 진승범 대표는 현재 설계비가 문제가 되고 있는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말씀해주면 좋겠다. 진승범 기본적인 설계용역대가의 기준이 없다는 점도 문제지만, 몇해 전부터 설계비 문제가 많이 거론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에서 찾을 수 있다. 건설 경기가 침체되면서 발주 물량이 현저히 줄었지만, 조경설계사무소는 오히려 늘어났다. 게다가 조경설계와 가장 밀접한 건축설계사무소의 경영 상태가 심각한 수준으로 악화되었다. 자연히 발주 물량과 금액이 2000년대 중반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축소되었다. 한창 호황이었을 때는 설계비 기준이 없다는 점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 건설 시장이 급격히 위축된 후부터 저가 경쟁이 바닥을 모르고 내려가면서 설계비 문제가 수면 위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요즘에는 그동안 받았던 수준의 설계비를 청구하면, 다른 업체의 견적을 들이밀면서 날강도 취급을 하는 경우까지 있을 정도다. 일례로 아파트 조경설계비는 호황이던 시절의 1/2, 1/3 수준까지 급락했다. 조경 물량이 풍족했을 때는 건축도 호황기여서, 전체 금액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 조경설 계비에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불황이 장기화되다보니 발주측에서 조경설계비까지 최대한 줄이려 하고 있다. 더구나 1/3보다 더 낮은 금액에도 일을 하겠다는 설계사무소가 있다 보니, 적정 설계비의 기본선이 완전히 붕괴된 상태다. 설계에 대한 자부심도 무너져버려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물론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최소한 이 정도의 설계비는 받아야 한다’는 명확한 기준이 없었던 점이다. 그동안 견적을 낼 때 대체로 아파트는 면적을 기준으로 했고, 공원을 비롯한 공공 프로젝트는 공사비 대비 요율로 산정했다. ‘전체 공사비에서 3% 정도는 받아야 하지않나’라는 식으로 설계비를 대략 책정하곤 했다.
토론안계동 한국조경설계업협의회 회장, 동심원조경 대표,안세헌 가원조경 대표,
가천대학교 조경학과 교수,이호영 HLD 대표,진승범 한국조경사회 수석부회장,
이우환경디자인 대표
사회서영애 한국조경설계업협의회 기술분과, 기술사사무소 이수 대표
정리남기준, 김모아
주최한국조경설계업협의회, 월간 환경과조경
일시2016년 5월 9일
장소푸르너스가든 서울숲점
-
조경설계 전문가와 자격
설계 환경을 진단하다
조경설계 전문가의 자격은
우리나라 조경설계 분야에서만 특별히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전문가를 위한 장치다.
조경설계에 자격이 필요한가?
최근 조경 영역과 관련한 문제들은 특정 산업 분야(건축, 산림, 경관, 공공디자인 등)를 위해 만들어진 정책과 법령으로부터 출발한다. 제도적 뒷받침 없이는 업역 분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조경진흥법’이 만들어졌다고 당장 조경을 위한 성과를 바랄 수는 없다. 조경진흥법은차세대를 위한 밑거름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지금은 조경설계 산업의 매출액, 보수, 산업 연관성, 향후 수요와 공급에 대한 전망 등 기본적인 정보도 파악할 수 없다.
왜 조경설계의 자격을 이야기하는가? 조경 관련 산업의 출발은 ‘설계’다. 자격증이 없어도 설계는 할 수 있다. 공공 부문의 설계를 직접 수주하지 않거나 민간 부문의 설계라도 발주자가 굳이 설계 자격을 요구하지 않고 자신의 이름으로 설계 경력을 관리할 필요가 없다면, 개인사업자 또는 프리랜서의 자격으로 설계를 업으로 삼을 수 있다. 하지만 관련 법령상 자격증이 있는 사람과 불필요한 협업을 하거나 설계비를 저가로 수주하기 쉽다. 적정한 설계 대가 확보와 설계 계약 관련 분쟁이 생겼을 때 법적으로 보호받기 어렵다. 조경설계 전문가의 자격은 우리나라 조경설계 분야에서만 특별히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전문가를 위한 장치다.
조경설계 전문가의 호칭
지금까지 ‘조경학과’는 다른 학과에 비하면 학과 이름이 잘 유지된 편이었는데 대학 구조조정으로 학과 명칭에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 하지만 어떤 변화가 있더라도 조경설계는 조경학과의 핵심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아직까지 조경설계 전문가에 대한 자격과 명칭이 불완전하다. 조경기사와 조경기술사가 있지만 건축 분야의 건축기사, 건축시공기술사와 비교해 보면 분명 차이점이 있다. 기사, 기술사 시험은 설계 능력 평가를 하는 시험이 아니다. 건축설계 전문가는 건축사 시험을 통과한 ‘건축사’다.
이민우는 서울대학교 조경학과와 환경대학원 환경조경학과에서 공부했고,대한주택공사(현 LH) 주택연구소, 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 토문, 신한 이앤씨 등에서일했다. 1999년부터 2013년까지 가원조경기술사사무소 대표로 활동했으며,한국조경사회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현재는 공주대학교 조경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
조경설계공모, 무용론과 대안
설계 환경을 진단하다
떨어진 사무실들은
경쟁에 참여하는 부담이 더 커지고,
승률은 더 낮아진다.
설계공모가 설계사무소들을 양극화시킨다.
설계공모가 만든 또 하나의 풍경이다.
설계공모가 바꾼 풍경
2007년 이전, 조경설계공모는 가뭄에 콩 나듯 했다. 설계 경쟁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그 자리를 가격 경쟁(설계가 입찰)이나 자격 경쟁(PQ)이 대신했다. ‘용역’이라는 말이 함축하고 있듯이, ‘시켜도 좋을 만한 자격’과 ‘적당한 비용’이 우선이었다. ‘경쟁이 없고 경쟁할 수 없다는 것’은 ‘경쟁력이 없다’의 다른 표현이다. 디자인 경쟁이 없어도 살아가는 데 지장이 없다면, 굳이 디자인을 고민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무난한 조경이 양산된 이유이기도 하다. 설계에 대한 고민에 시간을 많이 할애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동시에 여러 건의 설계를진행하지 않으면 살아가기 힘든 설계 시장이었다. 그 고단함을 견디게 한 것은 조경 동네 사람들의 정서적 유대감과 자긍심, 그리고 내일에 대한 희망이었다.
2007년 이후, 조경설계공모는 풍부해졌다. 양뿐만 아니라 질적으로도 이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국내 공모뿐만 아니라 국제 공모도 빈번해졌다. 승자는 대부분 국내 팀이었다. 한국 조경이 서구의 유명 설계사와 견줄 만큼 성장했다고 볼 수도 있었다. 설계공모는 조경을 사회적으로 의제화하는 데 기여했고 관성적인 무난한 조경에 주의를 환기시켰다. 공모에 당선된 설계사무소는 잉여 축적이 가능했다. 심사위원은 홍보 차 찾아오는 이들로 인해 새로운 설계 경향을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었다. 발주처는 설계공모를 통해 이미지를 제고했다. 하지만 과다한 경쟁에는 부작용이 있었다. 조경 동네사람들의 정서적 유대감은 약화되고 경쟁자로서의 경계심은 커졌다. 자긍심은 비즈니스 마인드로 대체되었다. 대부분의 분야가 그렇듯이, 설계 경쟁에서 승리하는 자는 거의 모든 것을 가지게 된다. 공모에 당선되면 잉여를 바탕으로 인적 자산과 경험을 축적해 공모전 승률을 높인다. 설계 경쟁에 참여하는 일은 많은 비용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승률이 낮아질수록 비용은 증가한다. 떨어진 사무실들은 경쟁에 참여하는 부담이 더 커지고, 승률은 더 낮아진다. 설계공모가 설계사무소들을 양극화시킨다. 설계공모가 만든 또 하나의 풍경이다.
설계공모 무용론
설계공모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분야의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하다는 인식만큼이나 “설계공모가 왜 필요한가”라는 부정적 인식도 많다. 비용이 많이 들고 잡음이 끊이지 않는 설계공모가 좋은 작품을 만들기는 한 것이냐고 묻는다. 설계공모를 통해 조성된 공원이나 일반 입찰을 통해 설계된 공원이나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최정민은 순천대학교 조경학과 교수로 설계 실천과 교육 사이의 간극을 고민 중이다.대한주택공사(현 LH)에서 판교신도시 조경설계 총괄 등의 일을 했고,동심원조경기술사사무소 소장으로서 다양한 프로젝트와 설계공모에 참여했다.제주 서귀포 혁신도시 도시기반시설 조경설계, 잠실 한강공원 설계, 화성 동탄2신도시시범단지 마스터플랜 설계공모 등에 당선되었다. 조경비평 ‘봄’ 동인으로 활동하면서현실 조경 비평을 통해 조경 담론의 다양화에 기여하고 싶어 한다.
-
좋은 계약서, 혹은 나쁜 계약서
설계 환경을 진단하다
‘계약서’라는 법적 문서에 서명하기 위해서는
치밀한 전략이 수립되어야 하고
이 전략은 상호 배려라는 상식적 토대에서 출발해야 한다.
좋은 계약서가 좋은 설계안을 만드는 기반이 된다고
우리 스스로가 확신해야 할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설계사무소 소장들의 일상 업무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설계안을 구상하고 발전시키고 완성해나가는 본연의 작업이고, 다른 하나는 ‘설계’라는 현실적 경제 활동을 작동하게 하는 여타의 행정 행위들이다. 프로젝트를 제안하고 계약을 성사시키며 그것이 잘진행되도록 관리하는 후자의 작업은 설계 작업이라는 본업에 밀려 부수적인 업무로 방치하기 쉽지만, 그 결과 어느 순간 너무도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계약서’라는 법적 문서에 서명하기 위해서는 치밀한 전략이 수립되어야 하고 이 전략은 상호 배려라는 상식적 토대에서 출발해야 한다. 좋은 계약서가 좋은 설계안을 만드는 기반이 된다고 우리 스스로가 확신해야 할 필요가 있다.
시작이 중요하다, 제안서를 잘 만들자
모든 설계 계약은 반드시 ‘제안’이라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러니까 계약의 출발은 제안에서 시작된다. 어설픈 시작은 어설픈 결과를 맺기 십상이므로 제안서proposal를 잘 쓰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설계 작업은 아무리 고급스럽고 멋진 성과물을 만든다고 하더라도 보고서나 도면집, 모형물 따위로 평가받는 것이 아니라 설계안이라는 창작물에 대한 평가, 좀 더 정확하게는 그 창작물을 만들기까지 투입된 전문 인력의 인건비와 기술력에 대한 금전적 보상을 받는 것이다. 당연한 얘기인 듯싶지만 많은 경우에 제안 과정이 대단히 형식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몇 가지 중요한 점들을 살펴보자. 우선 모든 가격 제안에는 반드시 인력 투입에 대한 내용이 명기되어야 한다. 공사예가가 정해진 때에는 통상 공사비의 요율에 따라 설계비를 산정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라 하더라도, 이는 공사비에 대한 설계비가 통상적인 범위보다 과다 혹은 과소로 책정되었는지를 살펴보는 참고로만 삼을 뿐, 설계비의 제안은 최종적으로 투입 인건비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는 이 제안을 통해 건축주(혹은 의뢰인)에게 이 작업을 위해 몇 명의 인원이 얼마 동안의 시간을 사용하는지를 알려 주고 설명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전체 과업기간을 월 단위가 아닌 주 단위로 환산하고, 주당 몇 명의 인원이 투입되는지를 표로 정리하는 방법이 유용하다. 그다음으로 구체적인 인력 투입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대부분의 민간 건축주들은 전문 분야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므로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다. 과업의 기간과 투입되는 총인원만으로는 건축주의 입장에서 보면 내가 왜 그 큰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지를 한 번에 이해하기 어렵다.
박승진은 아직까지 조경설계라는 마당을 떠난 적이 없으며,이 마당에 맞닿아 살고 있는 다양한 이웃들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기웃거리고 있다.조경이라는 특징을 잘 보여줄 수 있는 가치 있고 정교한 작업을 늘 꿈꾸지만그것도 만만치가 않다. 그래도 읽고, 쓰고, 가르치며, 배우는 일상에 감사하고 있다.1965년 서울 생으로, 성균관대학교와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조경 디자인을 공부했고, 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 조경설계 서안에서의설계 실무를 거쳐, 2007년 디자인 스튜디오 loci를 열었다.
-
설계 환경을 진단하다
Problems of Design Environment in Landscape Architecture
조경설계가 위축되고 있다. 경기 침체와 건설 경기 악화라는 외적 영향은 물론이고 분야간 경계가 흐려지는 경향도 전반적인 설계 환경을 변하게 하고있다. 이런 가운데 조경설계사무소는 수주 기회의 축소, 저가 입찰 경쟁, 설계공모 불신 등 여러 문제에 직면한 상황이다. 설계 환경의 변화는 조경 분야의 구조적인 문제와 맞물려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본지는 조경설계 환경을 진단하고 미래의 과제를 조망하기 위해 설계 계약,설계공모, 설계 전문가와 자격 그리고 설계비에 관한 꼭지를 마련했다. 이번획이 반복적으로 제기되는 외부 환경에 대한 문제제기를 넘어 근본적 원인을 성찰하고 우리 내부의 불합리함을 숙고하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
Community Design
한국에서 동 단위를 넘어서 이사하는 인구비율은 연20%에 가깝다. 유럽의 10배, 일본의 4배, 대만의 3배이며, 미국의 2배이다. 개발도상국도 아니고 왜 이리 자주 옮겨 다닐까? 높은 인구 이동률은 그 도시의 정주체계에 무언가 문제가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경제활동을 위한 자발적인 이사도 적지 않겠지만, 사실은 도시개발 방식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한국에서 보편화된 뉴타운과 재개발, 초고층 재건축 중심의 스펙터클한 개발사업은 지역주민을 흩어지게 하고 정주성을 낮추는 주범이다. 그리고 도시문제의 상당 부분은 여기에서 비롯된다.서울과수도권은 양적으로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도시이고 거대생활권이다. 그러나 질적으로 따지면 그 위치가 한참 내려간다. ‘경제’나 ‘산업’을 떠나 미래적인 개념의 살기 좋은 도시를 꼽을 때 우리 도시들의 이름을 찾기는 힘들다. 일찍이 미국의 문명비평가 루이스 멈포드가 개념화한 ‘메가 머신(mega machine)’이 바로 우리들의 도시 체계인지 모른다. 전통의 커뮤니티는 하나 둘 사라지고, 온갖 소비적 커뮤니티와 사생활적 커뮤니티만이 번성한다. 그 속에서 구성원들은 개인으로 파편화되며, 시민이 아닌 소비자가 되어간다. 그들의 꿈은 갈수록 도시공간적인 스펙터클에 흡수되어 고유의 매체를 만들어가는 것이 어렵게 되고 있다.숱한 대규모 개발이 주거단지를 만든 대신 다수의 커뮤니티를 파괴했다. 이제 기대하는 것은 메가 머신이 하사하는 미래주의적 대개발이 아니다. 오히려 좀 소박하지만, 도시민 스스로 이끌어가는 공간창출과 관리이다. 그 대안으로 커뮤니티 디자인이 주목받고 있다. 공동체 붕괴와 과도한 도시화가 부른 단절, 소외, 혼란을 극복하기 위한 이 기법의 핵심은 공동체의 재구성을 공간적으로 돕는 데에 있다. 물론 근대성의 상징인 ‘도시’와 전근대성의 흔적인 ‘공동체’를 조화시키기는 쉽지 않다. 둘의 특성들을 하나하나 톱아보면, 개념적으로 서로 대척점에 서 있을 때가 많다. 그래서 커뮤니티 디자인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작업이다.영국 국가통계청은 행복을 위해서는 ‘건강, 관계, 일, 환경’이 가장 중요하다고 정의했다. 이 중에서 관계와 환경, 건강은 거주공간과 직결된다. 커뮤니티 디자인은 이웃과의 관계와 좋은 거주환경에 초점을 둔다. 그렇게 될 때 건강한 삶이 올 수 있을 것이다. 커뮤니티는 서구에서도 최근 몇 십 년 동안 무척 인기가 높아진 용어로 꼽힌다. 도시화의 부작용과 문제는 동서양을 막론하기 때문일 것이다. 커뮤니티 디자인에 좀 더 진지하게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