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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8회 올해의 조경인
    본지는 한 해 동안 조경 분야의 발전에 크게 공헌한 분들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지난 1998년부터 본지 독자들의 추천을 바탕으로 매년 연말에 ‘올해의 조경인’을 발굴·선정하고 있습니다. 올해로 18회를 맞이한 ‘올해의 조경인’은 본지 지면, 관련 단체 및 업체 홍보 후 이메일, 팩스, 우편 등을 통해 독자들로부터 후보 추천을 받아, 주요 공적을 토대로 별도의 ‘올해의 조경인 선정위원회(조경 관련 단체장+역대 올해의 조경인 수상자+본지 자문위원)’에서 수상자를 선정하고 있습니다. 제18회 ‘올해의 조경인’은 지난 10월 1일부터 11월 2일까지 후보 추천을 받았으며, 11월 11일 ‘올해의 조경인 선정위원회’를 개최하여, 최종 수상자로 학술분야에 안계복 교수(대구가톨릭대학교), 산업분야에 신경준 대표(장원조경), 정책분야에 백운해 처장(한국토지주택공사 도시경관처), 특별상에 이원영 과장(서울특별시 푸른도시국 조경과)을 선정하였습니다. 학술분야안계복 _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산업분야신경준 _ 장원조경 대표 정책분야백운해 _ 한국토지주택공사 도시경관처 처장 특 별 상이원영 _ 서울특별시 푸른도시국 조경과 과장
    • 편집부
  • Modern Road Covered Heritage 작은 규모의 대상지, 큰 생각 부문 _ 환경과조경상
    한국사에서 근대는 우리나라의 국토가 일제 침략에 따라 외세의 병참기지로 사용되었다는 아픈 역사를 담고 있는 시대다. 일제는 군사력 유지를 위한 중요 요소 중하나인 식량 보급을 위해 조선의 경제 기반인 농업에 대한 수탈을 실시했으며, 이는 한반도 병참기지화의 출발점이었다. 농업 수탈 제1기인 1906년(통감부 개설)부터 1918년(토지 조사 사업)에 이르는 시기에 조선의 경제상황은 급격하게 붕괴되었다. 이 시기에 일제는 조선농민의 농토를 강탈하여 근대 무산자 계급을 생산했고, 원활한 수탈과 보급을 위한 가로 정비도 진행했다. 그리고 이때 조선의 젖줄인 곡창 지대 전라남도에 대한 수탈과 함께 전라남도 내 최대 규모의 읍성 ‘순천부읍성’이 무너지기에 이른다. 당시 순천과 낙안은 각각 순천부와 낙안군에 소속되어있던 지역으로 순천부읍성은 순천 평야와 주변 농업지역의 농산물 집산지였다. 일제는 순천부읍성을 농산물 수탈을 위한 최적의 장소로 보았고, 자연스럽게 순천부읍성을 헐어내는 것이 효과적인 농산물 보급을 위한 가로 정비 사업의 출발점이라 판단했다.
    • 이재현·장재봉·신영재 /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 Viewtiful Promenade 대규모 대상지, 미시적 접근 부문 _ 환경과조경상
    1960년대 초부터 추진된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을 계기로 대한민국은 고도의 경제 성장을 달성했다. 1970년대에 개통된 경부고속도로는 서울과 부산의 이동 시간을 5시간 내로 단축시키며 국민 생활의 편의는 물론 경제 발전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2년 5개월 만에 완공된 경부고속도로는 세계에서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단기간 공사였고, 여전히 우리나라 근현대 경제 발전 과정을 논하는 데 있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그러나 서둘러 진행된 공사 과정에서 77명의 인부가 목숨을 잃게 되었다는 점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잊히고 말았다. 당시 최대의 난공사 대상지의 하나가 ‘대전육교(대전 대덕구 비래동)’다. 대전 육교는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시도된 아치형 육교였다. 상판 길이는200m에 폭은 약 11m이고, 이를 높이 30m의 거대한 아치 교각 세 개가 연속으로 떠받치고 있다. 1999년 9월 이 구간의 도로를 직선화하고 확장하면서 현재는 폐쇄된 상태로 방치되어 있다. 육교 아래의 공간 또한 방치된 채 주차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 최승호·서지연 / 경희대학교 환경조경디자인학과
  • Fill/Feel the Memory 대규모 대상지, 미시적 접근 부문 _ 환경과조경상
    우리 선조들의 삶을 담고 있는 근대문화유산인 한강, 특히 지금은 사라진 한강의 백사장은 다채로운 경관과 다양한 놀이 공간을 제공하는 생활 문화의 기반이었다. 그러나 1960년대 말부터 진행된 호안 직강화사업을 거치면서 콘크리트로 뒤덮이고 말았다. ‘Fill/Feel the Memory’는 우리 선조들의 고유한 문화를 되살려 지금 세대뿐만 아니라 나아가 우리의 후손을 위해 한강의 근대 문화를 되찾아주고자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수리 수문학적 분석 물놀이가 가능한 수준으로 한강의 수질을 개선하기 위해 우선, 자연성 회복, 유역 관리, 오염원 차단 등을 통한 수질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비점오염원(지류합류부)의 관리가 중요하다. 나아가 한강의 자정 능력이 회복되어 이를 뒷받침해주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 수변 식생이 발달한 자연 하안의 복원, 모래톱 유도를 통한 오염원 여과, 하상 오염 물질 제거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
    • 정준식·최보윤·안지환 / 경희대학교 환경조경디자인학과
  • 알뜨르 이야기 대규모 대상지, 미시적 접근 부문 _ 환경과조경상
    제주도는 지난 2005년 ‘세계 평화의 섬’으로 선포되었다. 더 이상 한반도와는 전혀 다른 풍광만으로 눈길을 끄는 섬이 아니다. 제주도가 ‘세계 평화의 섬’이 된 것은 제주도를 국가 자유 도시로 발돋움시키겠다는 국가적 비전과 더불어 1991년 한·소 정상 회담을 치른 이후 세계 각국 정상의 방문이 이어지면서 국제적으로 부각된 데 힘입은 바가 크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곳에서 ‘세계 평화’를 말할 수 있는 것은 제주도가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평화와 관련된 역사와 전통을 깊이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주도에는 태평양전쟁을 비롯하여 국제적 분쟁이 일어날 때마다 일찍이 그 지정학적 중요성을 알아본 세계 열강의 힘겨루기 속에 수난의 상처를 입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나라 국민의 상당수에게 ‘세계 평화의 섬’이란 이름은 익숙하지 않다. 산방산과 송악산이 선사하는 풍광에 수없이 감탄하면서도, 일본군의 손에 일그러졌던 이 땅과 이 땅에 살았던 제주도 민의 삶을 알지 못하며, 제주도에서 내로라하는 큰 들판인 알뜨르 비행장과 일본군 전쟁 유적지도 주목하지 못하고 있다.
    • 신단비·오다인·김나영 / 경희대학교 환경조경디자인학과
  • 외양포 로드뷰 작은 규모의 대상지, 큰 생각 부문 _ 환경과조경상
    1904년, 일본은 러일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대륙 전초 기지를 외양포 마을에 구축했다. 러일전쟁이 끝나고 일본군이 철수한 마을에는 군 막사, 관사, 탄약고 포진지와 같은 군사 시설이 가득했다. 국방부가 소유하고 있어 개발이 어려운 외양포 마을은 100년 전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2010년 거가대교가 개통되고 급격히 늘어난 관광객이 포대 진지, 막사, 관사 등을 보러 외양포 마을을 찾고 있으나, 관광객을 수용할 만한 시설을 추가로 구축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주민들은 스스로 지역 해설가를 자처하며 외양포의 역사와 옛날이야기를 들려준다. 다만, 개발의 바람이 마을에 불어 닥쳐 그들의 역사와 삶의 현장이 사라질까 두려울 뿐이다. 우리는 기존 마을을 뜯어내고 고치지 않고 각 유산들을 주인공으로써 부각시키고 보존함으로써 주민들의 삶이 유지되고, 비로소 더 이상 버려진 마을이 아닌, 100년의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역사의 장을 만들고자 한다. 마을 사람들이 주체가 되고 외양포 마을 자체가 주인공이 되어 사람을 반기고 그들과 소통할 것이다.
    • 조보경·김다혜 / 경희대학교 환경조경디자인학과
  • 남영동 2027 작은 규모의 대상지, 큰 생각 부문 _ 환경과조경상
    대상지는 한강대로나 서울역, 남영역, 숙대입구역으로 이어지는 철도와 같은 도시 기반시설, 그리고 용산공원 부지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 자연스럽게 용산공원 부지의 역사에 따라 그 형태와 성격에 변화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 일제강점기 시대에는 용산 공설 시장(현남영 아케이드), 총독부 직원 숙소, 일식 주택 등이 건설되었다. 해방 이후 용산공원 부지에 미군 기지가 들어서자 각종 스테이크 하우스 등의 관련 부대시설이 유입되기 시작했고 지금도 그 당시 모습의 많은 부분이 유지되고 있다. 현재 남영동을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크기와 형태의 필지는 일제강점기에 진행된 격자형 가로 정비 사업에 의한 것이다. 대로변에 자리한 건물은 대부분 연면적이 큰 상업 및 업무 시설이며 공원에 인접한 건물은 주로 주거와 숙박시설로 이용되고 있다. 시대에 따라 변화가 많았던 대로변에 비해 대상지 내부에는 과거의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흔적이 상대적으로 많이 남아있다. 특히 목조 구조물인 남영 아케이드는 건축적으로 매우 독특한 형태를 가지고 있어 그 보존 가치가 매우 높다. 남영동의 이러한 역사적·지리적 맥락은 용산공원 조성과 향후 이용 방식을 결정하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 윤병두, 김명조, 유지민 / 청주대학교 환경조경학과,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전통조경학과, 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 슬프고도 아름다운 섬 대규모 대상지, 미시적 접근 부문 _ 늘푸른재단상
    소록도는 섬 전체가 병원으로 지정되어 있는 곳이다. 그리고 그 내부에 한센병 환자를 위한 국립소록도병원이 있다는 점도 일반적으로 볼 수 없는 점이다. 그러나 이러한 특수성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부정적인 인식으로 이어져 외부와의 소통을 단절시키는 요인으로 지적되어 왔다. 더욱이 한센인 감소로 병원 운영에 필요한 직원이 감축됨에 따라 빈집이 증가하게 되었고, 특별한 조치 없이 방치된 건물들은 점차 지역 흉물이 되어가고 있다. 또한 2009년 소록대교가 개통된 이후 증가하고 있는 관광객에 대한 관광 프로그램도 부족한 상황이기에 대처가 필요한 상황이다. 이렇게 아픈 사람들의 쉼터와 버려진 공간이라는 긍정적이지 못한 기억을 가진 소록도이지만, 이곳에도 수려한 자연 경관, 온난한 기후, 소록도와 관련된 문학 작품등, 지역 이미지를 개선하고 활성화시킬 긍정적인 요소도 적지 않다. 더욱이 ‘치유의 섬’이라는 특수한 의료문화유산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한센인을 넘어 일반 시민 모두를 위한 힐링의 공간이 될 가능성이 있다.
    • 이지현·정기쁨·박태순 / 순천대학교 조경학과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대규모 대상지, 미시적 접근 부문 _ 늘푸른재단상
    현 부평 미군 기지는 일제가 대동아시아 전쟁을 위해 육군 조병창을 건설하고 소총과 탄약, 군수 차량, 잠수함 등의 군수품을 제조했던 곳이다. 당시 이곳에서 일하면 강제 징용을 피할 수 있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피난처로 삼기도 했다. 부평 지역 주민은 물론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사람들이 조병창 주변에 새로운 마을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6·25 전쟁 이후 조병창이 있던 곳에 미군 부대가 주둔하게 되었고, 군 본부, 군수품 공장, 군수 물자 보관창고, 소각장, 빵 공장 등이 추가로 들어서게 되었다. 특히 신촌이라 불리던 기지촌은 부평 경제의 핵심이자 미군이 필요한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는 영업소가 즐비했다. 오늘날에 이르러 이 지역은 부평에 남은 유일한 구도심이지만 과거와 같은 경제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지는 못하다. 또한 군 기지 주변 도시인 까닭에 안전과 오염에 대한 여러 문제가 제기되면서 시민 단체의 반환 요구와 비판을 받아 왔다. 2016년 반환 예정인 인천 부평 미군 기지를 공원화함으로써 대상지가 가진 역사와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오늘날 부평에서 살아가는 지역 주민들뿐만 아니라 동시대를 살아가는 타 지역 시민들이 근현대사의 아픔을 공유하고 지역 역사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도록 유도한다. 나아가 주변 산 및 공원과의 연계가 가능하고 주민의 생활과 직결되는 공간을 제공한다. 현재 부족한 화합과 연계, 소통 등을 해소하기 위해 ‘묶다’, ‘무리를 이루다’, ‘띠를 이루다’를 의미하는 ‘밴드band’를 설계 모티브로 내세웠다.
    • 황효선·이호민 / 영남대학교 조경학과
  • 피어나다 작은 규모의 대상지, 큰 생각 부문 _ 늘푸른재단상
    근대문화유산, 도심 속에서 다시 피어나다 600년 역사의 지층을 품고 있는 서울의 도심은 근대화와 현대화의 중심지로서 수많은 격변의 시기를 견뎌냈다. 그럼에도 서울의 역사와 문화유산은 무분별한 철거와 재개발 그리고 전쟁으로 사라지고 있다. 이러한 근대문화유산의 보전과 도심 재개발이라는 서로 다른과 제를 동시에 안고 있는 곳 중의 하나가 중구 정동이다. 정동은 서구 열강의 공사관이 밀집해 있던 곳으로, 조선 후기인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조선에 대한 보다 많은 영향력을 갖기 위해 벌어진 여러 역사적 사건의 현장이기도 하다. 이 격동의 구한말을 통과한 역사적 장소 한편에 구 러시아 공사관이 있다. 처음 러시아 공사관이 지어질 때, 이곳은 정동 어디서든지 쉽게 알아보고 찾을 수 있었다. 도심 개발로 고층 빌딩이 들어선 후 이제는 가까이 가지 않고는 그 존재를 인지하기도 어렵다. 6·25 전쟁과 무분별한 개발을 겪으며 예전의 모습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훼손되기 전의 건물의 모습이 배치도로만 간단하게 설명되어 있을 뿐, 이곳이 구한말 아관파천(1896)이 발생한 역사적 공간임을 인지시키는 정보도 거의 없는 상황이다.
    • 김영경·임다영 / 경희대학교 환경조경디자인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