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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디토리얼] 내 고향 서울
    “내 고향 서울은 만인의 타향이다. 그러므로 서울에 고향을 건설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영원한 뜨내기일 뿐이다.” 얼마 전 열린 한양 도성 학술회의, 작가 김훈의 음성이 가슴을 파고든다. 부산에서 났지만 백일을 갓 넘겨 서울로 이주했으니 내 고향도 서울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누가 고향을 물으면 “부산에서 태어났고 서울에서 자랐다”고 답한다. 서울과 고향 사이에 등호를 넣지 못하는 나는 서울의 구경꾼이나 이방인이라고 스스로를 정의하는 게 훨씬 마음이 편하다. 서울로 올라온 부모님은 참 이사를 많이 다니셨다. 주민등록초본을 떼어보니 스물 세 개의 주소가 찍혀 있다. 2년에 한번 꼴로 이사를 다닌 셈이다. 덕분에 나는 셀 수 없이 많은 동네에서 거대 도시 서울의 변화와 발전을 역동적으로 경험하며 성장했다. 내가 서울을 고향이라 말하지 못하는 건 단지 유목민 같았던 이사의 역사 때문일까? 아마도 거주한 장소의 숫자보다는 그곳들에 대한 기억의 상실이 고향의 부재를 낳았을 것 같다. 어쩌면 고향은 공간이기보다는 시간일 것이다. 시간은 한쪽 방향으로만 흐르고 붙잡을 수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기억의 힘을 빌려 시간의 역류를 꿈꾼다. 기억은 시간의 방향을 거스를 수 있다는 기대감의 다른 이름이다. 그래서 고향, 그것은 곧 기억이다. 초록의 산야보다 콘크리트 주차장이 더 익숙한 원조 아파트 키드이지만, 나에게도 장소의 기억은 여러 개의 파편으로 조합되어 남아있다. 그러한 단편들의 콜라주가 그나마 나의 고향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서울은 고향의 매개체를 너무나 빠른 속도로 변화시켜 왔다. 연 날리던 들판이 롯데월드가 된 건 이미 오래 전의 일이다. 지금의 로데오거리에선 스릴 넘치는 화약 놀이 카니발이 열렸었고, 타워팰리스 자리에선 총천연색 만국기 아래를 달리며 스케이트를 탔다. 기억할 수 있는 고향이 물리적으로 사라졌다는 건 불행한 일이다. 이제 시간을 거스르기 위해, 고향의 파편을 경험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침대 맡에서 아이패드의 스크린을 두 손가락으로 벌리고 오므리기를 반복하며 옛 위성사진을 들여다보는 일뿐이다. 2012년에 서울시가 시행한 ‘서울시민의 고향 인식도’ 조사를 보면 매우 놀랍게도 시민의 81.1%가 서울이 고향이다, 또는 고향 같다고 응답하고 있다. 서울을 고향이라고 생각하는 이들 중 반은 서울 태생이고, 나머지 반은 다른 지역 출신이다. 이들에게 서울은 고향‘이기’보다는 고향‘이어야’ 하는 도시인 셈이다. 그것은 패티김이 노래한 “종이 울리네 꽃이 피네 새들의 노래 웃는 그 얼굴 … 아름다운 서울에서, 서울에서 살렵니다”(서울의 찬가, 1969년)라는 역설과 다르지 않다. “아, 우리의 서울, 거리마다 푸른 꿈이 넘쳐흐르는 아름다운 서울을 사랑하리라”(서울, 1982년)는 이용의 맹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서울, 서울, 서울, 아름다운 이 거리 … 네버 포겟 오 마이 러버 서울”(서울 서울 서울, 1988년)이라는 조용필의 고백도 고향을 갖고자 하는 보편적 욕망의 표상일 것이다. 우리가 서울을 고향이라 여기고 싶은 건 서울이 육백 년의 역사 도시이기 때문이 아니다. 산 많고 강좋은 도시라서 그런 것도 아니다. 전쟁의 상흔을 딛고 짧은 시간에 일구어낸 기적 같은 경제 발전때문도 아니다. 63빌딩이나 DDP 같은 화려한 랜드마크가 서울을 고향으로 만들어주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서울을 고향으로 열망하는 건 서울이라는 도시의 시공간이 일상생활의 현실과, 또 그 기억과 뒤엉켜 있기 때문일 것이다. 2006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터키 작가 오르한 파묵Orhan Pamuk은 그의 고향 풍경과 삶을 담은 자전 에세이 『이스탄불』에서 이렇게 말한다. “도시는 우리 자신의 삶과 정신을 우회적으로 보여준다. 우리 자신 외에 도시의 중심부란 없다.” 도시의 핵심은 사람이며 삶임을 강조한 것이다. 도시 자체가 정치의 최전선이었던 지난 10여 년간 서울은 또 한 번의 큰 변화를 꿈꾸었다. 이명박, 오세훈, 박원순 시장은 도시의 구조와 형태를 재조직하고 삶과 문화를 재편성하는 그랜드 플래너를 자임했다. 계획가로서의 서울 시장들, 그들이 선언하고 추진해 온 서울의 비전과 대형 프로젝트는 서울이라는 도시를 살고 있는 우리의 현실과, 우리의 희망과 어떻게 접속해 왔는가? 이번 호의 서울 특집은 이런 의문에서 기획되었다. 애초에 구상했던“그들의 서울, 우리의 서울”이라는 주제는 “서울의 오늘을 읽다”로 축소되었지만, 그들의 ‘세계 도시서울’, ‘걷고 싶은 서울’, ‘디자인 수도 서울’, ‘공유도시 서울’, ‘푸른 도시 서울’이 서울을 우리의 고향으로 만드는 일에 어떻게 기여했는가 하는 문제의식은 읽힐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나는 튀는 도시보다 참한 도시가 좋다』의 정석, 『서울, 공간의 기억 기억의 공간』의 조한, 『서울은 도시가 아니다』의 이경훈, 『랜드마크; 도시들 경쟁하다』의 송하엽, 『건축·도시·조경의 지식 지형』의 조경진 등 조경, 건축, 도시 분야의 베스트셀러 필자들이 이번 특집에 흔쾌히 참여해 주셨다. 이들은 시정市政, 기억, 거리, 랜드마크, 공원을 단면으로 잘라 건강하고 편리하고 아름다운 도시 살이를 디자인해야 할 우리 전문가들의 과제를 드러내 주고 있다. 김훈은 이렇게 글을 끝맺는다. “나는 내 고향 서울이 만인의 … 고향으로 거듭나기를 기원한다. 타향사람들아, 서울이 당신들의 고향이다.”
    • 배정한[email protected] / 편집주간, 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
  • [CODA] 부산시민공원이 남긴 것
    특집의 원고 청탁이 이렇게 수월했던 적이 없었다. 그들은 일종의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에서 오랜 시간 붙잡고 있던 하야리아에 대한 경험을 공유하려는 의지가 느껴졌다. 황금연휴의 다음날 부산으로 향했다. 하루 일찍 부산에 도착한 사진작가는 그 연휴에 엄청난 인파가 부산시민공원에 몰렸다고 전했다(그래서인지 이달의 사진에 사람이 유난히 많이 등장한다). 아무리 개장 직후라지만 우리나라 도시 공원의 인기가 이렇게 높으리라 예상하지 못했다. 5월의 부산은 더웠다. 공원을 걷는 연인들이 그늘을 찾으며 불평하는 소리도 들렸고, 벤치마다 이미 주인이 있어 앉을 자리를 찾아헤매는 이들의 조급한 눈초리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지금 그늘이 좀 부족한 것 쯤이야 어떠랴 싶었다. 공원의 나무야 자랄 것이고, 그늘은 시간이 만들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새 공원이라 그런지(?) 공간보다는 시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도시인의 로망인 저 푸른 잔디밭을 둘러싼 각종 놀이 시설에서, 바닥 분수에서, 미로 정원에서 수많은 아이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게다가 시민공원의 시설은 무료이니 웬만한 테마파크 못지않은 매력으로 다가서는 듯했다. 나중에 들은 설명이지만, 부산 사람들은 바람을 쐴 때 대개 바다를 찾는다. 그런데 내륙에 대규모 공원이 들어섰으니, 이 새로운 유형의 공간에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된 것이다. 공원 문화도 학습하며 형성되기 마련이다. 지금 부산 시민들은 부산의 유일한 공간에서 공원 문화를 탐색하는 단계인 셈이다. 공원을 돌아본 후 공원의 북문으로 나서는데, 지금은 아주 일부만 남은 캠프 하야리아 시절의 담장에 시선이 가 닿았다. 그 너머로 집들이 보였다. 의외로 너무 가까운 거리였다. 지난 100여 년간, 부산 시민의 지척에서, 이 큰 공간이 저 담장 아래 꽁꽁 숨겨져 있었겠구나 싶으니 새삼 기가 막혔다. 그리고 다음날, 이번 특집의 두 필자인 김승남 사장과 강동진 교수를 함께 만났다. 두 사람 모두 하야리아공원포럼을 통해 오랫동안 캠프 하야리아의 공원화에 노력해 온 만큼 현재 공원의 모습에 아쉬움도 컸다. 특히 캠프 하야리아의 역사적이고 문화적 가치가 있는 건물들이 토양 오염을 이유로 대부분 철거된 점을 안타까워했다. 환경 오염을 정화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는 것이다. 독일 함부르크의 도시 재생 사업인 하펜시티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김승남 사장은 독일에서도 역시 기름이 유출되었으나 5년에 걸쳐 천천히 치유했다고 설명한다. 반면 부산시민공원의 경우는 ‘싸고 빨리’ 추진하기 위해 한꺼번에 밀어버리고 덮어버리는 방법을 택했다는 것이다. 그나마 살아남은 건물들도 새로 페인트를 칠하고 부재를 새것으로 바꾸어 이도저도 아닌 어정쩡한 모습이 안쓰럽다. 디자인의 완성은 디테일이 아니던가. 옛 건물을 무조건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상책은 아니겠지만, 차라리 그대로 두었다면 어땠을까. 마치 하야리아 담장의 파편처럼 오히려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장소의 기억을 호출하는 매개체가 되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어쩔 수 없다. 대부분의 미군 기지의 토양이 오염되었을 것으로 예상되는 지금, 반환되는 땅에 우리가 어떻게 대응해야 할는지, 환경이 오염되었다는 사실에 집중하는 것만큼 어떻게 치유와 보존을 병행 혹은 선택할 것인가 고민하는 시간도 필요하다. 한편 부산시민공원에는 기억의 숲이 조성되어 있다. 캠프 하야리아 곳곳에 심어져 있던 플라타너스를 한 곳에 모아 가식해 둔 것인데, 오히려 사람들의 반응이 좋아 그 모습 그대로 남게 된 공간이다. 개인적 선호의 차이가 있겠지만, 부산시민공원에서 지금 자연스러운 경관은 이렇게 과거의 것이 그대로 남은 곳들이다. 안타까운 것은 부대 내부의 철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캠프 하야리아의 부지와 부전역 사이에는 삼각형 모양의 주거 지역이 쐐기처럼 부대 쪽으로 밀고 들어온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그런데 ‘효율적인 공원 토지 이용’과 뉴타운 계획을 이유로 이 주거지역을 철거하고 공원 부지로 편입시켜 부지를 정형화했다. 이를 두고도 두 필자는 입을 모아 안타까움을 표한다. 이 오밀조밀한 주거 지역이 남았다면, 독특한 상업 공간과 문화 공간으로 진화해 가며 공원의 경계에 활력을 불어넣었을 것이라는 말이다. 한번 없애버린 것은 다시 되돌릴 수 없으니 이런저런 아쉬움이 남지만, ‘하야리아공원포럼’의 노력으로 기존의 계획을 변경시켜 몇몇 건물을 남긴 것도 의미 있는 결과다. 무엇보다 부산시민공원의 성과는 사람들에게 남은 듯하다. 여하튼 부산의 시민들은 공원의 탄생에 크고 작게 기여했고, 이러한 경험에서 오는 자신감도 그 성과의 일부다. 이 경험은 부산에 남아있는 다른 많은 것, 폐선부지나 워터프런트(북항), 달동네 등에서 다시 진화하리라 믿는다. 부산시민공원을 담은 6월호 특집을 마무리하는 지금, 용산공원의 미래를 고민하는 이때, 또 대한민국의 현재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세월호 참사의 여진이 강하게 남은 지금, 예술평론가 수전 손택의 글을 공유하며 글을 닫고 싶다. “부디 다 같이 슬퍼하자. 그러나 다 같이 바보가 되지는 말자. 역사를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그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그 다음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 매혹의 공간, 정원을 이야기하다 9인의 정원 디자이너가 펼친 가든 토크
    정원 디자이너 9인이 한 자리에 모였다. 올해 설립된 한국조경학회(회장 김한배) 정원학연구센터(센터장 조경진)가 ‘정원문화 심포지엄’이란 타이틀을 내걸고 판을 깔았다. 부제는 좀 길다. ‘Garden Talk: 매혹의 공간, 정원을 디자인하다.’ 그 밑에 설명이 한 줄 더 달려있다. ‘아홉 명의 디자이너의 정원 이야기.’ 9인의 발표자는 30대 신진 디자이너부터 50대 중견 디자이너까지 연령대만 다양한 것이 아니었다. 서울숲 같은 대형 공원을 설계한 조경가부터 설계 교육과 실무를 병행하는 대학 교수, 여러 프로젝트에서 색다른 플랜팅 디자인을 선보인 정원 디자이너, 쇼 가든 부문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정원 설계사의 대표, 정원은 물론 인테리어 성격의 공간까지 통합적으로 다루는 디자이너까지, 활동 무대도 경력도 다양했다. 그들이 풀어낸 정원 이야기도 개인 주택 정원부터 공공 정원, 전시회까지 그 폭과 결이 다채로웠다. 지난 5월 8일 고양국제꽃박람회와 코리아가든쇼가 펼쳐진 일산호수공원 내 플라워컨퍼런스룸에서 만난 정원 디자이너들의 9인 9색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9인 9색 정원 이야기 “우리의 도시는 가꿈과 돌봄이 필요하다”는 말로 발표를 마무리한 정욱주 교수(서울대학교)는 복지관 정원 두 곳과 보육원 정원 조성 사례를 소개했다. 본지 4월호 특집 “다시, 정원을 말하다”에 “어느 정원의 8경”이란 제목으로도 소개된 바 있는 ‘어울누리뜰’(지적장애인복지관)은 일반적인 개인 주택 정원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엄연한 정원이다. “가꾸는 도시”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그의 발표는 정원의 범주와 정의가 확장되고 있으며, 정원의 핵심 키워드인 가꿈이 왜 도시로 확산되어야 하는지를 깨닫게 했다. 박승진 소장(디자인 스튜디오 loci)은 아예 스몰 퍼블릭 가든이란 용어를 언급하며, 식물원이나 미술관처럼 공공이 만들었으나 법적으로 공원으로 분류되지 않는 곳, 개인이 만들었으나 공공에게 개방된 장소에 만들어지는 정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공공 정원을 조성하는 과정의 지난함에 대한 그의 위트 넘치는 발표도 흥미로웠지만, 공공 정원을 많이 만들어야 하는 이유로 그가 제시한 여러 근거(커뮤니티 활성화, 범죄율 저하 등)도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그의 발표 제목이기도 했던 “열린 정원, 공공 정원”이 도시를 풍요롭게 하리란 기대감도 싹텄다. 이어진 발표에서 이재연 소장(조경디자인 린)은 자신이 디자인한 세 곳의 정원을 소개했다. ‘삶 속의 정원, 일터의 정원, 장식적인 정원’으로 구분된 정원 사례는 이미지만으로도 충분한 볼거리를 전달했지만, 그 정원을 디자인하는 과정에서 소개된 에피소드는 이미지에서 얻을 수 없는 더 많은 생각거리를 전달했다. “오래된 정원은 가족사의 기록이다. … 때로 정원은 식물에대한 작은 호기심에서 시작된다. … 정원은 시간이 완성한다.” 특히 1년 동안 경관이 변화하는 모습을 4계절 9절기로 나누어 디자인을 한다는 대목은 꽤 인상적이었다(그가 소개한 작품 중 한 곳은 이번호 48쪽에 수록되었다.) “때론 나뭇가지 하나가 정원의 분위기를 좌우하기도 한다”는 말로 발표를 시작한 김용택 소장(KnL환경디자인스튜디오)은 “도시 정원의 유형과 디테일”이란 제목 하에 구체적인 사례를 바탕으로 어떤 방식으로 디자인을 풀어나가는지를 찬찬히 소개했다. 마치 원래 그러한 지형이었던 것처럼 보이는 사진 속 정원의 모습이 섬세한 지형 조작을 통해 완성되었다는 설명에서는 디테일의 중요성이 달리 보이기도 했다. 우현미 소장(디자인 알레)은 다채로운 오브제를 갖춘 쇼룸, 실내외 조경, 플라워 & 인테리어 데커레이션, 디스플레이 등 복합적인 디자인 솔루션을 제안하는 디자이너답게 현대백화점 옥상 정원을 비롯한 독특한 상업 공간 정원 사례를 소개했고, 김아연 교수(서울시립대학교)는 “네 개의 정원, 두 개의 질문”이란 타이틀로 개인 정원과 공공 정원(하나는 전시회)을 디자인하면서 각각 맞닥뜨렸던 근본적인 질문 두 가지를 던졌다. ‘당신이 꿈꾸는 자연은 무엇입니까’는 “통제 가능한 자연과 야생의 거친 자연”을 원했던 각기 다른 개인 정원 클라이언트를 상대하며 마주했던 물음이고, ‘당신에게 자연은 어떤 의미입니까’는 한 사람의 꿈보다 여러 사람에게 의미 있는 자연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며 디자인한 공공 정원 작업에서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이었다. 안계동 대표(동심원조경기술사사무소)는 한옥 정원 한 곳과 가든 카페 한 곳을 디자인했던 경험을 나누어주었다. 특히 제대로 된 한옥 정원 사례가 많지 않은 상황이기에, 그가 소개한 율수원 디자인 과정은 그 의미가 더 커보였다. 또 사옥 1층을 가든 카페로 디자인한 사례는, 자신이 디자이너이자 클라이언트였기에 가능했던 여러 가지 디테일 실험이 흥미로웠다. ‘화무십일홍’을 늘 마음에 새기며 작업을 한다는 조혜령 소장(정원사친구들)은 “식재 계획시 꽃의 화려함만을 고려하는 것은 어리석다”며 정원의 즐거움이 시각에만 국한되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 후 자신만의 ‘정원 문화 사용법’을 들려주었고, 최윤석 대표(그람디자인)는 이제 국내에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쇼가든에 얽힌 경험담을 전했다. 가장 대표적인 과일인 사과의 경우, 사람들이 사과 열매는 잘 알아도 정작사과나무를 직접 본 사람은 거의 없어서 쇼 가든에 일부러 포함시켜보았다는 이야기를 비롯해 색다른 아이디어와 접근방식에 시선이 쏠렸다. 그는 마지막으로 “가든과 힐링은 같지 않다. ‘가드닝’과 힐링이 같다”는대목을 힘주어 강조했다. 심포지엄이 끝난 후 코리아가든쇼를 둘러보는 내내최윤석 대표가 이야기한 “정원은 늘 우리 곁에 있던 것이다”라는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 남기준
  • 나무는 삶의 무늬다 고규홍의 ‘우리나라의 특별한 나무 이야기’
    나무를 매우 사랑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사비로 수목원을 세우고 증권사를 다니며 번 돈으로 나무를 세심하게 돌보고 관리했다. 수목원이 커지면서 관리에 많은 노력이 투입되었지만, 그럼에도 그가 고수한 세 가지 원칙이 있다. 가지치기를 하지 않는다(현재는 생육을 위한 최소한의 가지치기를 하고 있다). 화학비료를 쓰지 않는다. 농약을 치지 않는다. 이는 모두 나무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유지하고 식물의 생육 환경을 좋게 해주기 위함이었고, 그만큼 나무를 사랑했다는 걸 의미한다. 그런 그가 특별히 아낀 나무가 있었다. 벌컨magnolia vulcan 이란 이름의 목련이다. 수목원의 모든 나무를 사랑했지만, 벌컨은 꼭 한 번 더 들여다보고 관심을 기울였다. 그러던 그가 2000년 암 선고를 받고 2년 뒤 세상을 떠났다. 무슨 조화인지, 그 해 벌컨은 꽃을 피우지 않았다. 푸른 눈의 한국인 고 민병갈 원장과 벌컨의 이야기다. “나무는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생명체다. 내가 없으면 그가 없고, 그가 없으면 내가 없다.” 지난 4월 24일 삼성에버랜드 디자인 그룹의 렉처 시리즈 강연자로 나선 고규홍 교수는 민병갈 원장과 천리포수목원 내 수목의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고 민병갈 원장의 나무 사랑은 익히 알려져 있지만, 벌컨이 꽃 피지 않았다는 일화는 아는 이가 드물다. 신비롭게 느껴질 수도 있다. 이때 고 교수는 “전설적인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라고 못 박았다. “인문학이란 사람이 삶의 무늬를 찾아가는 것이다. 삶의 무늬를 가장 잘 간직한 것은 나무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 사람은 사라지지만, 사람이 살았던 흔적은 나무의 결에 그대로 살아있다.” 나무가 사람의 흔적을 일러주는 화자임을 강조한다. 마치 옛날이야기를 전해주는 할아버지를 대하는 듯하다. 고규홍 교수는 기자 생활을 그만둔 이후 16년 동안 사람의 이야기를 간직한 큰 나무를 찾아 다녔다. 나무와 살았던 사람살이의 무늬가 남아있는 나무를 찾았고, 그 이야기를 글로 쓰고 사진으로 남겼다. 자주 찾아와서 바라보던 사람이 오지 않아 꽃을 피우지 않았다는 나무 이야기는 그중 하나다. “사람 사는 곳 어디라도 나무가 없는 곳은 없다”면서 그가 전한 또 다른 이야기는 나무를 보는 관점을 달리하게 했다. 가족에게도 버려진 한센병 환자의 외로운 마음을 받아준 소록도 솔송나무(전라남도 고흥군 도양읍)와 사람의 손길이 닿자 꽃을 피웠다는 전곡리 물푸레나무(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이야기가 그랬다. 특히 전곡리 물푸레나무는 고규홍 교수가 천연기념물 지정에 기여한 나무로 손꼽히는데, 일화가 하나 있다. 이곳은 6·25 전까지 마을을 형성하고 물푸레나무를 당산나무로 모셔 당산제를 지냈다. 이후 사람들이 하나둘씩 떠나면서 마을이 사라졌고, 물푸레나무에는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 고 교수가 이 나무를 찾았고, 2003년 문화재청에 보호를 신청해 2005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근처에 거주하던 할머니 증언에 따르면 수십 년 동안 이 나무는 2004년과 2006년 딱 두 번 꽃을 피웠다고 한다. 하나는 사람이 나무에게, 하나는 나무가 사람에게 마음을 표현한 사례다. 서로 교감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관계를 통 한 상호작용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일상에서 나무를 교감의 존재로 대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아마 대부분 배경으로 인식하고 지나칠 것이다. 한 나무를 지키려 전력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주변의 나무가 조금은 달리 보일지 모르겠다. 용포리느티나무(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 이야기다. 이 마을에는 15가구의 노인들이 살고 있는데, 팔려갈 처지의 당산나무를 지키기 위해 몇 년에 걸쳐 투쟁하고 결국 나무를 사 공동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중 돈을 꾸어 나무 구입에 보탠 사람도 있는데, 고규홍 교수가 마을 사람들에게 그렇게까지 나무를 지키려 한 이유를 물었더니 다음과 같이 답했다고 한다. “우리 삶의 기반을 지키기 위해 돈을 꾸러 다니는 건 자랑스러운 일이다. 당산나무를 지키는 건 우리 조상의 얼을 지키는 일이다.” 그 나무 아래에서 마을 사람들은 새로운 무늬를 그리며 살고 있다. 고 교수는 사람처럼 나무도 말을 한다고 강조한다. 다만 사람이 듣지 못할 뿐이다. 그는 나무가 전하는 말을 해석해 이야기로 풀어내고 사람들에게 전하고 있다. “나무는 바라보는 대상이 아니다. 우리가 ‘그’ 안에 들어서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를 찾을 수 없다.” 오던 이가 사라지자 꽃을 피우지 않은 목련, 누군가 찾아가니 꽃을 피웠던 물푸레나무, 그리고 나무에서 위안을 얻은 사람들과 모든 걸 바쳐서라도 나무를 지키려 하는 사람들. 이들에게 나무는, 그리고 이 나무들에게 사람은 교유交遊의 대상으로, 서로 다르지 않다. 어쩌면 누구나 나무와 교유의 순간이 있었는지 모른다. 가만히 돌이켜볼 일이다. 고규홍 교수의 ‘나무 이야기’는 나무주변에 그려지는 삶의 무늬를 담고 있다. 고규홍 교수는 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출판사를 거쳐 10년간 중앙일보에서 기자 생활을 했다. 이후 큰 나무를 찾아 전국을 돌며 사진과 글로 세상에 알려 왔으며, 솔숲닷컴(www.solsup.com)을 통해 ‘나무 편지’를 발행하고 있다. 다수의 방송으로 나무 이야기를 전해왔고, 저서로는 『이 땅의 큰 나무』를 시작으로 『나무가 말하였네』, 『한국의 나무 특강』 등이 있다. 그가 소개한 나무의 다수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기도 했다. 천리포수목원 감사로도 활동 중이며, 현재 인하대학교에서 겸임교수로 강의하고 있다.
  • 참여의 마당 꿈꾸는 용산 국가공원 ‘국민이 만들어가는 용산공원’ 주제로 전문가 세미나 개최
    국토해양부(용산공원조성추진기획단)는 지난 2012년 용산공원 설계 국제공모를 실시했다. ‘치유’라는 콘셉트로 공모에 당선된 West8과 이로재의 “Healing: The Future Park”를 바탕으로 후속 설계가 진행될 예정이었지만, 국회의 예산 전액 삭감으로 기본설계 진행에 차질을 빚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난 5월 21일 용산공원추진기획단과 한국조경학회가 국립중앙박물관 소강당에서 ‘국민이 만들어가는 용산 국가공원’이라는 주제로 ‘용산공원 전문가 세미나’를 개최했다. 용산공원 설계 국제공모를 통해 채택한 마스터플랜이 난항을 겪고 있는 시점에서 시민참여 방법과 전략, 현실적 대안 제시와 제도화 방안을 논의한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다. 집단 지성 발휘해 창의적인 공원으로 “대중의 지혜는 전문가의 지식보다 더 정확한 답을 이끌어낸다” 김영민 교수(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는 영국의 유전학자인 프랜시스 골턴Francis Galton의 말을 인용하며 대중의 지혜를 강조했다. 그는 덴마크 코펜하겐에 위치한 수퍼킬렌Superkilen을 예로 들었다. 덴마크에서 이민자들이 가장 많이 사는 지역에 조성된 이 공원은 고향 국가에 대한 아이덴티티를 나타내고 싶어 하는 시민들의 적극적인 아이디어 개진으로 이국적이면서도 창의적인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김영민 교수는 “수퍼킬렌 공원 조성 과정에서 적용된 시민들의 아이디어가 어떻게 보면 너무 직설적이고 유치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런 것들이 모여 있을 때 다양성을 드러내기도 한다”며 “단순한 상징적인 시설물만으로도 주민들은 이 공간이 자신의 공간이라고 느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용산공원 설계 국제공모 출품작들이 제시한 ‘마당’이라는 전통적인 개념에서 시민참여를 이야기했다. 용산공원 부대 시설을 모두 해체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는 부분적으로만 해체해 시민들이 창의적이고 생산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마당’으로 조성하자는 아이디어다. 홍윤순 교수(한경대학교 조경학과)는 국제공모에서는 당선을 위해 도시 스케일을 넘는 힘이 들어간 계획안이 많았다고 평가했다. 그는 “거시적인 마스터플랜이 조금 와해되고 있는 처지에서 중간 단계의 임시 공원을 중심으로 어떻게 세부적으로 발전시킬까 하는 점이 세부적인 마당이나 주민참여와 연결되어 조금 더 정교하게 모색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마당’은 전기나 수도와 같은 초기 인프라를 갖춘 공간이기 때문에 이용자에 따라 창의적으로 응용되어 쓰일 수 있다는 것이다. 융통성 있고 창의적인 공간의 조성에 관해서 한창섭단장(용산공원조성추진기획단)은 6개 단위 공원에서 생태 중심의 공원으로 용산공원 조성의 기본 방향을 바꾸려고 하는 것은 오히려 융통성을 주기 위한 결정이었다고 설명했다. 6개 단위공원으로 조성하게 되면 각각의 단위공원 개념에 맞춰 공간을 채워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전체적으로 공모 당선작의 개념은 받아들이되 생태 중심 공원으로 단일화시켜서 거기에 필요한 스포츠 시설이나 생태 습지 등 여러 가지를 만들어서 조금 더 융통성 있게 바꾸는 것이지 구체화한 내용은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대형 공원 조성 시 시민참여 사례와 교훈’에 대해 발표한 민병욱 교수(계명대학교 생태조경학과)는 밀레니엄파크, 다운스뷰 파크, 서울숲, 센트럴 파크를 예로 들며 시민참여의 다양한 형태를 소개했다. 그는 “용산공원의 규모와 성격, 한국의 실정을 고려할 때, 국가가 주도하되 민간 파트너십으로 민간의 영역을 키워서 대등하게 이끌어갈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민간 참여 전략으로는 세제 혜택과 제도적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을 제시했다. 참여란 소통이다 세미나에 참여한 발표자와 토론자들은 용산공원 조성과정에 시민참여가 필요하다는 점에는 입을 모았지만, 구체적인 시민참여의 범위와 형태에 대해서는 의견을 달리하기도 했다. 안상욱 단장(LH공사)은 “미군 기지의 이전 시기와 범위가 유동적인 상태이다 보니 문체부, 국방부 등 다른 중앙부처와 의견 조율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라며 용산 전체의 재생이란 틀에서 기초를 다지려면 행정 실무 협의회가 우선으로 구조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영민 교수는 “시민단체들의 목소리는 과연 시민 전체를 대변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도 들었다”며 “어떻게 보면 시민단체들은 특정 목적을 가진 경우도 있어서 공원을 이용하는 불특정 다수의 의견은 어떻게 개진하나 이런 부분을 고민했다”고 현실적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에 대해 김연금 소장(조경작업소 울)은 “시민참여를 도구가 아닌 과정으로 봤으면 좋겠다”며 “전문가와 시민을 분리해서 보는 경향이 있는데 소통이라는 차원에서 본다면 둘은 구분되고 대립하는 관계가 아니라 함께 소통하는 대등한 관계”임을 강조했다. 전문가와 시민의 관계를 함께 공동선을 추구해야 하는 관계로 본 그의 의견은 현재 용산공원 조성계획이 난항을 겪는 상황에 비춰볼 때 시사점이 크다. 미군기지 이전 계획변경, 신분당선 조정 등 용산공원 조성에 있어서 가장 큰 장벽들은 사실 전문가와 시민이 함께 소통으로 풀어나가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김한배 회장(한국조경학회)은 “설계자가 시민을 고려해서 하는 설계도 시민참여가 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며 참여의 개념을 넓게 확장할 필요가 있음을 지적했다. 용산공원은 국제 설계공모를 통해 이미 큰 그림이 마련되었고 설계자도 정해져 있는 상황이지만, 여타의 공원과는 상황이 무척 다르다. 미군기지의 이전 시기와 범위, 신분당선의 조정에 따른 교통문제, 침수에 대비한 물관리체계 수립 등 여러 문제들이 쌓여있다. 또한 국민 참여는 완공 이후에도 어떤 식으로든 폭넓게 추진되어야 할 과제다. 서울의 심장부에 있으면서도 외국군 주둔의 역사로 인해 ‘미지의 땅’으로 인식돼오던 용산 미군 기지가 아픈 역사 위에서 새 시대를 여는 공원으로 탈바꿈하기위해서 공공기관과 민간의 지혜로운 소통이 필요한때다.
    • 조한결
  • 미디어로 말하는 도시 도시를 살리는 ‘소통’ 세미나
    통섭의 시대다. 대화와 소통이 더욱 중요해졌다. 미디어는 사람과 사람, 영역 간 소통의 매개체로 역할을 해왔는데, 전통 미디어의 신뢰 하락과 기기의 발달로 뉴미디어가 확산되고 공동체 미디어가 다변화하면서 그 지형이 변하고 있다. 미디어 홍수 속에서 각각의 미디어들은 ‘소통’이라는 키워드를 어떻게 다룰지 고민하고 있다. ‘도시’의 문제도 공간을 넘어 다른 이슈들과 함께 부각되고 있다. 그런데 미디어를 통한 ‘소통’은 많이 이야기 되고 있지만, 정작 많은 문제를 양산하고 이야깃거리가 만들어지는 ‘도시의 소통’에 대한 고민은 얼마나 되고 있는가? 그리고 누가 여기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것인가? 지난 5월 9일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열린 “도시를 살리는 ‘소통’ 세미나”에서 전상인 교수(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가 던진 물음이다. 도시와 소통, 두 키워드가 만났다. 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와 서울연구원은 최근 발생하고 있는 사회적문제들을 개인 간의 문제가 아닌, 도시 안에서 벌어지는 문제로서 총체적 관점에서 진단하는 세미나를 주최했다. 이창현 원장(서울연구원)은 최근 화두로 떠오른 ‘안전’을 상기시키며 포문을 열었다. “도시는 살아있는 유기체다. 현대 도시는 아주 복잡하고 기계적으로 보이지만, 인간의 몸과 같이 도시도 막힌 곳이 없이 잘 소통해야 건강하고 시민이 안전하게 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소통’이라는 키워드를 살림으로써 도시가 살아난다는 것이다. 이에 세미나에서는 전통 미디어와 뉴미디어, 공동체 미디어, 공공 환경, 그리고 시각적 측면에서 미디어의 모습 등 ‘소통’의 수단을 다각적으로 진단했다. 쌍방향 커뮤니케이션 5인의 주제 발표 이후 토론이 진행되었는데, 소통을 위한 자리인 만큼 토론에 보다 비중을 두고 플로어와 패널의 대화에 많은 시간이 할애되었다. 미디어 전문가 3인과 공간을 다루는 전문가 2인으로 발표자가 구성됐다. 실체가 없는 미디어와 공간이라는 주제를 함께 다루다 보니 하나의 맥락으로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문제 해결의 방안으로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 거론되었다는 점은 동일하다. 차재영 교수(충남대학교 언론정보학과)는 “미디어가 자본과 국가에 의해 독점되는 상황에서 공동체 미디어를 그 대안으로 간주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전통 미디어가 특정 계층이 전담하는 일방향 체계였던 데 반해 공동체 미디어는 일반 시민의 참여를 원칙으로 하는 쌍방향 체계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차 교수는 공동체 미디어가 “주민들의 관심과 요구에 부응하여 지역 사회에 관한 질 높은 정보를 제공하고, 주민들에게 자신들의 의견을 표출할 수 있는 실질적인 공론장 역할”을 함으로써 지지를 얻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종혁 교수(광운대학교 미디어영상학부)는 도시 속 불통의 결과를 해소하는 데 디지털 사이니지digital signage가 역할을 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 교수는 “도시의 소통은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지나치던 잠재된 문제를 발굴하고 그것을 일깨워 줌으로써 자발적으로 문제의식을 고취시켜 주어야 한다”면서, “도시 인프라와 기술의 접점에 놓여있는 디지털 사이니지의 활용은 수용자의 능동적 참여를 도모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조경진 교수(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는 시각적 커뮤니케이션 관점으로 도시를 바라보고 도시의 시각 미디어 환경인 동영상 전광판을 사례로 이야기를 풀었다. 조교수는 “온갖 시각 정보로 채워진 도시 경관에서 사유와 소통을 위한 여백을 찾기 어렵게 되었다”면서, 시민들이 미디어 환경 속에 놓여 일방적으로 무의미한 정보를 받아들이고 있음을 시사했다. 반면 동영상 전광판이 공동체 커뮤니케이션 플랫폼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으로 예상했는데, 이를 위해서는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수용하려는 변화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원재 소장(문화연대 문화정책센터)도 비슷한 시각에서 소통의 수단이 사유화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소장에 따르면 도시는 일방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고 그 대표적인 것이 광고인데, 이는 정보 전달의 사유화로 흐른다. 공간과 미디어의 역학 관계 전상인 교수는 한국의 플래카드 문화를 비판했다. 플래카드의 난립으로 도시 미관이 오염되고 있으며, 대부분의 플래카드 설치가 불법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시민들이 이를 당연시 여기고 지나치고 있다는 것이다. 이원재 소장은 이를 절박함의 표현으로 해석했다. 플래카드 문화가 개선되어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 하지만, 도시에 담긴 사회적 현상을 파악해 보면 시민들의 절박함이 드러나는 것이 플래카드이기에 이를 비판적으로만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라도삼 실장(서울연구원 미래사회연구실)도 이에 동의했다. “압축된 공간에서 한정적인 소비를 하고 있기 때문에 생존을 위한 노력의 결과가 플래카드 문화”라면서, 이러한 현상의 원인은 도시의 소통 문제로 귀결되며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미디어의 문제로도 연결되는 현상이라고 풀이했다. 미디어와의 관계에서 도시의 물리적 측면을 살펴보면 또 하나의 쟁점이 발생한다. “도시를 아무리 멋있게 조성해도 시민들이 보지 않는다”(이재현,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부 교수)는 점이다. 토론자들 사이에서도 비슷한 맥락의 발언들을 접할 수 있다. 조경진 교수는 “지구 어디서나 정보 소통이 실시간으로 가능해졌고 시공간의 압축을 넘어 시공간의 소멸이 진행되고 있다”며, “디지털 미디어가 도시 생활의 중심을 차지하고, 디지털 미디어의 침투는 물리적 공공 공간에서도 가속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미디어와 공간 간의 역학관계가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컴퓨터의 발달과 함께 외부 활동이 축소되었다는 건주지의 사실이다. 여기에 스마트폰의 발달로 미디어가 외부 활동과 공간에 미치는 영향이 가속화되었다는 게 발표자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라도삼 교수는 SNS를 통해 미학적 공간을 찾고, 장소 읽기의 수단으로 미디어가 활용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김찬호 교수는 사람들이 “꽃을 보고 감동하지 않고, SNS에 올리고 관계하면서 그때서야 감동하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공간과 미디어 그리고 관계성에 대해 새롭게 짚어볼 것을 요구했다. 조경진 교수는 미디어를 통해 장소에 관심을 갖게 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는데, 다른 측면에서 보면 이는 “장소의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원인이 된다”고 지적했다. 이에 서울의 ‘동네 문화’가 활기를 띠도록 공간을 다루는 사람들이 역할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전상인 교수가 서두에 밝혔듯이 세미나의 배경에는 분야의 절박함도 있다. 참석자들이 도시와 미디어의 위기 의식을 가지고 공론화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도시를 살리는 ‘소통’, 그 후가 더 기대되는 이유다. 미디어 지형과 도시의 모습, 그 변화에 귀추가 주목된다.
  • 노란 리본의 정원 시민들의 염원을 품은 노란 물결
    서울시는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서울광장에 분향소를 설치했다. 이와 함께 한국조경사회(회장 정주현)는 노란 리본을 달 수 있는 정원을 조성했다. 황용득 부회장(한국조경사회)이 설계한 노란 리본의 정원은 200m2 규모로 스테인리스 기둥을 눈물(혹은 ‘쉼’을 상징하는 쉼표) 모양으로 두른 단정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기둥은 세월호 사망자와 실종자의 수를 합한 302개(조성 당시 발표에 따름)이고, 여기에 초를 밝힐 수 있는 실린더가 설치되었다. 외곽에는 40mm 두께의 기둥을 설치하고 내부에는 60mm 두께의 기둥을 설치해 염원이 내부로 응집되는 무게감을 주었는 데, 이는 리본이 많아질수록 더욱 선명해진다. 주조색에 맞춰 경계부에 황금조팝나무를 심고, 굵은 기둥 하부에 노란무늬비비추를 심었다. ‘노란 리본의 정원’에는 특별한 디자인적 의미가 담겨있지 않다. 설계자는 조경가로서 세월호 참사에 사회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일까 고민했고, 그 결과로 시민들의 마음을 모을 수 있는 추모 공간 조성에 초점을 맞췄다. 일시적 정원인 이곳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완성된다. 조성 초기 기둥만 세워져 앙상하던 정원에는 어느새 시민들이 하나둘 묶은 노란 리본이 빼곡하게 채워져 풍성해졌고, 해질 무렵 촛불을 밝히는 이들의 마음이 더해져 먹먹해진 우리의 마음을 밝힌다. 정원이 만들어진 4월 30일 이후, 한국조경사회 회원들과 서울시 푸른도시국 조경과 직원들이 매일 저녁 불을 밝히고 있고, 늦은 시간까지 자리를 지키며 추모객을 맞이하고 있다. ‘노란 리본의 정원’은 합동분향소철거 전까지 유지·운영되며, 그동안 조경인들에 의해 가꾸어질 예정이다.
  • 조경 법제화의 전략 정주현 한국조경사회 회장 인터뷰
    정주현 한국조경사회 회장 인터뷰 지난 5월 19일 국회 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조경산업진흥법 제정을 위한 공청회’가 열렸다. 한국조경학회(회장 김한배) 주관으로 진행된 이 공청회는, 지난 2013년 4월 24일 이노근 의원이 대표 발의한 ‘조경산업진흥법’ 제정을 위해 여러 이해 관계자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현재 한국조경학회, 한국조경사회를 비롯한 조경 단체들은 건설 분야의 반대로 제정이 지연되고 있는 이 법안을 6월 국회에서 처리하는 것을 목표로 조경계의 관심과 참여를 요청하고 있다. 이 밖에도 최근 조경 관련 단체들은 산림청을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는 ‘수목원 조성 및 진흥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 반대 의사를 표명하는 등 제도 변화에 활발하게 대응하고 있다. 본지는 한국조경사회의 정주현 회장을 만나 조경산업진흥법을 비롯한 조경 관련 법 제도 정비의 배경과 그 추진 전략에 관해 의견을 들어보았다. 도시 공원에 대한 국고 지원의 의미와 영향: 생활권 공원과 국가 도시 공원 laK 현재 추진하고 있는 조경 관련 법 제·개정 배경에 관해 설명해 달라. CJH 2000년대 후반 조경 산업은 호황의 절정을 누렸으나, 그 이후 조경 분야의 성장 저하 속도는 너무나 빠르다. 경기가 침체되자 조경 관련 법과 제도가 없으니 일을 만들어내기 무척 힘든 상황이다. 그러나 동시에 조경이 미래 지향적인 분야라는 인식도 정책 결정자들 간에 형성되고 있다. 따라서 지금이 제도를 정비할 적기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주장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다. 생활권 공원과 국가 도시 공원이 그것이다. 우선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의 개정을 통해 생활권 공원과 지방의 대형 공원을 지원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사실 국토교통부는 법만 담당하고 있지, 지난 20년 동안 한 번도 예산 지원을 하지 않았다.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1980.6.1. ‘도시공원법’ 제정)을 다루는 곳이 국토교통부의 녹색도시과인데 법의 사업 집행을 모두 지방자치단체 사업으로 위임해 놓았다. 반면 예산을 배분하는 기획재정부는 지방자치단체의 사업에 국고를 지원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기때문이다. 대통령 공약 사항에 ‘도시공원 조성에 대한 국비 지원’이 포함되어 있었으므로, 이를 근거로 공원 사업에 중앙 정부의 지원을 받고자 한 것이 ‘생활(권) 공원’이다. 우리도 이 공약에 큰 기대를 걸었다(지난해 국토교통부는 국비 2,000억 원을 투입해 향후 5년간 총 1,000개의 ‘생활 공원’을 조성하려는 사업계획을 밝혔으나, 올해 예산을 확보하지 못했다). 대통령의 임기 5년 동안, 첫 해에는 계획을 세우고, 올해부터 향후 4년간 1,000개의 도시 공원을 만들자는 계획이었다. 도시 공원 한 개소당 대략 5억 원 정도의 조성비가 든다. 그러면 총5,000억 원에 달하는데, 이를 모두 국고로 감당하긴 힘들 테니 국비와 지방비를 50대 50으로 매칭하여 2,500억 원을 지원받는 것으로 로드맵을 짜고 예산안을 올렸다. 첫해에는 100개의 도시 공원을 조성할 계획이었으니 이에 필요한 국비는 250억 원이었다. 그러나 기획재정부는 이미 복지에 많은 예산이 배정되었다는 이유로 공원에는 예산을 전혀 할애하지 않았다. 이에 국토교통부와 논의해서 예산을 예결위에 다시 올리고 설득하는 과정을 거치는 등 애를 많이 썼으나 최종적으로 국비지원이 무산되었다. 사실 타 부처에 비해 많은 예산을 올리는 국토교통부의 사업 중 공원 관련 업무는 우선순위에서 쉽게 밀려나는 것이 현실이다. 이에 국토교통부는 올해는 다른 항목의 예산을 일부활용해 도시 공원을 조성하고 다음 해에 기획재정부에 다시 신청하겠다는 복안을 내놓았다. 앞으로 도시 공원에 국비를 지원받으려면 선례를 만드는 일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국가 도시 공원은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서 국가 도시 공원 시스템을 만들자는 이야기다. 각 광역자치단체마다 도시 공원 한 개씩을 국가 도시 공원으로 지정하여 국가가 지원하는 것이다. 대형 공원 하나당 조성 비용을 3,000억 원 가량이라고 생각하면 17개 광역자치단체를 합하면 4~5조 원이 된다. 전국에는 2만여 개의 도시 공원이 지정되어있지만, 그 가운데 약 60%는 조성되지 못한 실정이다. 2020년이 되면 장기미집행시설 일몰제 때문에 도시공원 지정이 해제되는 상황이지 않은가(10년 이상 된 미집행 공원이 그 대상인데, 이미 2015년 10월 1일부터 자동 실효되는 미집행 공원이 생기게 된다). 그때가 되면 공원 녹지 시스템에 심각한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 그러니 큰 공원 하나라도 살리자는 이야기다.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이 열악하다보니 큰 공원에는 손도 못대고 있는 실정이다. 한편 국토교통부 입장에서는 일단 지방자치단체에 일임한 사업을 다시 국가 사업으로 가져오기 힘들다. 그러니 오히려 지방자치단체에서 다시 예산을 달라고 국가에 요청하는 편이 수월하다. 그래서 우리는 기초자치단체 시장·군수 협의회에 국고를 요청하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이렇게 생활권 공원과 국가 도시 공원 두 가지에 국고지원을 할 수 있도록 제도를 차츰 정비해 나가야 한다. 국토교통부는 그동안 4대강 건설 등 대형 토목·건축사업이 많았기 때문에 조경 분야에 큰 관심을 쏟기 힘들었다. 그런데 최근 회색 사회간접자본(SOC)보다 녹색 기반 시설의 비중이 높아지는 것이 현실이니 이제 공원이나 녹지에 지원해야겠다는 마인드가 생기는 것 같다. 그래서 국토교통부도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 개정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문제는 기획재정부가 개정안 자체도 반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 그간의 관행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획재정부의 인식도 변화시킬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하드웨어는 ‘도시공원법’ 개정, 소프트웨어는 ‘조경산업진흥법’ 제정으로, laK ‘조경산업진흥법’은 어떤 배경에서 준비되고 있는 것인가? CJH 법 제도 정비에 관해서는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접근하고 있다. 하나는 기존법, 즉 ‘도시공원 및 녹지등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서 실제 하드웨어인 공원·녹지 등을 국고로 지원하도록 하는 것이다. 반면 ‘조경산업진흥법’은 소프트웨어를 지원하는 법이다. 이 진흥법은 완전히 새로운 내용을 만드는 제정법이라 추진이 쉽지 않다. 지금까지는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이 조경과 관련된 유일한 법이다. 산림이나 건축 분야에는 ‘산림’ 혹은 ‘건축’이란 이름이 붙은 법이 10~20여 개가 된다. 반면 ‘조경’이란 이름이 붙은 법은 아직 하나도 없는 상황이다. ‘건축기본법’(2007.12.21. 제정)이 만들어지자, 조경계에서도 그 영향으로 처음에는 ‘조경기본법’을 만들고자 했다(2010년 1월 5일 ‘조경기본법안’이 의원 발의되었으나, 관련 부처가 반대하여 2012년 5월 29일 회기만료로 폐기되었다). 법이란 기본법, 일반법, 특별법으로 구분되는데, 당시 무리해서 기본법부터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건축기본법’은 국가건축정책위원회가 만들어지고 김진애 의원이 치밀한 로드맵을 준비해 시작한 반면, 조경계는 당시 주무부처인 국토해양부와 전혀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 채 법안 제정을 밀어붙였다. ‘조경기본법’이 좌절되자 2012년에는 당시 한국조경학회 양홍모 회장이 ‘녹색기반법’을 추진하기도 했다. 당시 국토해양부는 다양한 공원, 녹지, 하천, 그린벨트 등을 연결하는 시스템은 환경부의 소관이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다. 이후 조경계는 계속 법을 제정하고자 국토해양부와 협의를 해 나갔고 특별법인 ‘조경산업진흥법’을 만들어보자는 분위기를 조성해 나갔다. 사례 조사를 해보니, 다양한 분야에 다양한 산업을 육성하는 진흥법이 있었다. 일례로 ‘소금산업진흥법’도 있고, 특히 IT산업 분야는 진흥법이 많다. 이렇게 다른 진흥법 내용들을 참고하여 국토교통부와 협의해가며 법안을 만들어갔고, 지난해 4월 24일 이노근 의원이 대표 발의하게 된 것이다. laK ‘조경산업진흥법’이 만들어진다면 실질적으로 어떻게 조경 산업을 육성할 수 있는가? CJH 담당 부서인 국토교통부 내부에 이 법을 다루는 담당 조직이 생기게 될 테고, 이는 조경계에 대한 예산 지원으로 이어질 것이다. 조경 산업의 진흥을 위해 국토교통부 장관이 기본계획을 세우게 되고, 조경산업진흥센터와 같은 법정 단체를 만들 수 있으며, 산업진흥단지를 조성해 입주 업체에 세제 지원 등을 할 수도있다.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고 ‘조경산업진흥법’을 제정하게 되면, 조경계에는 기본적으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지원하는 법이 하나씩 생기는 셈이다. 그 이후 계획은 ‘녹색기반법’을 다시 준비하는 것이다. 이제 국토교통부도 그린인프라의 필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laK ‘조경산업진흥법’ 제정에 대해 대한건설협회가 공식적으로 반대 입장을 내고 있다. CJH 대한건설협회는 조경 관련법이 생기면 조경이 건설 분야에서 떨어져 나갈 것이라 우려하고 있다. 현재 법안에는 그런 내용이 없지만, 차후에 법 개정을 통해 분리 발주를 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건설산업기본법’에 따르면 건설업은 일반건설업과 전문건설업으로 나뉘는데, 조경은 이 두 가지에 모두 해당되어 업종이 3개가 된다. 일반건설업이란 토목, 건축, 토목건축, 산업·환경설비, 조경 이렇게 5가지를 말하고, 전문건설업 안에는 조경식재와 조경시설공사업이 있다. 일반건설업으로 본다면 조경은 토목이나 건축과 대등한 건설업의 한 종류다. 그런데 대한건설협회는 조경을 토목·건축의 하위 시스템 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반대의 명분이 부족하다. laK 최근 정원을 포함하는 내용을 담은 ‘수목원 조성 및 진흥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 반대하고 있는데, 이 개정안이 통과되면 실제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라 예상하는가? 지난 5월 14일 있었던 ‘산림청과 조경계와의 상생 발전을 위한 간담회’에서 이에 관한 이야기가 오고갔는가? CJH 산림청과의 대화는, 작년 9월에 산림청장 면담을 하면서 산림청과 조경계 간 실무위원회를 만들어 정기적으로 현안에 대해 논의하자고 제안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지난 연말에 첫 회의를 했는데, 그때 산림청이 ‘수목원 조성 및 진흥에 관한 법률’ 관련 내용을 가져왔다. 내용을 보니 우리가 해야 할 정원에 관한 내용들이 상당 부분 담겨 있었다. 산림 분야가 보기에는 정원에는 주인이 없다고 느꼈던 것 같다. 이러한 산림청의 행보에 위기감을 느껴 지난 해 한국정원문화협회를 발족하게 된 것이다. 이후 올 2월에 ‘수목원 조성 및 진흥에 관한 법률’에 정원 조성을 지원하고 인력을 육성하는 내용을 담은 개정안이 발의되었다. 현재 여·야 국회의원이 모두 비슷한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 (2014.2.14. 이낙연 의원 대표 발의; 2014.2.28. 경대수 의원 대표 발의)했으므로 합의해서 통과시킬 가능성이 크다. laK 조경계 일부에서는 건설 경기가 안 좋은 상황에서 산림청이 정부 예산으로 일을 만들어내면, 어차피 하도급을 받더라도 조경 인력이 참여할 수 있으니 조경계에 도움이 되는 일이 아니겠냐는 의견도 있다. CJH 그런 딜레마도 있다. 이번 산림청과의 간담회에서 이에 관한 구체적인 이야기를 나눴다. 산림청은 개정안이 통과되면 정원 관련 사업은 100% 조경공사업으로 발주하여 산림조합은 빠지고 조경업체만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설득했다. 그러나 문제는 상당수의 산림조합이 조경공사업 면허를 가지고 있으므로 이들도 참여할 수 있다는 거다. 다른 산림 사업처럼 산림조합과 수의계약을 맺지는 안겠다고 하는데, 특히 지방에서는 조경공사업으로 발주한다고 해도 산림조합이 조경공사업 면허를 내면, 나중에는 관행대로 우리 식구 감싸기를 하지 않겠냐는 우려가 있는 것이다. 제도적 울타리, 정부와의 관계 정부에는 조경계와 관련지을 수 있는 여러 부처가 있다. 우리는 우리를 지원하고 예산을 만들어주는 조직이 필요한 상황이다. 국토교통부는 이제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예산과 조직을 만들어가기 시작한 셈이고, 산림청은 그간 조경에 관계되는 사업을 많이 추진해 왔으나 조경 쪽에 실질적으로 일을 많이 주지는 못했다. 문화적 측면에서 생각한다면 문화체육관광부와도관계를 맺을 수 있다. 일전에 문화체육관광부에 ‘정원문화육성법’과 같은 법안을 올리려고도 계획해 보았으나, 아직까지는 부처 내 조경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 앞으로 세미나와 같은 활동을 통해 정원이 문화라는 점을 인식시키는 노력도 필요하다. laK 문화체육관광부는 ‘수목원 조성 및 진흥에 관한법률’의 주무부처인 산림청을 의식해서 정원에 관심을 가지기 힘들지 않겠는가? CJH 그래서 지금 교통정리를 잘해야 하는 상황이다. 지금은 산업적으로도, 법 제도적으로도 정부와의 관계가 굉장히 중요한 시점에 와 있다. 실리적으로 보면 ‘조경’이란 단어에 너무 연연하지 않을 필요도 있다. 여러 부처와 대화를 해보니 ‘조경’이란 말은 결국 국토교통부의 소관이다. 환경부는 생태 복원, 산림청은 도시숲, 국토교통부는 공원 녹지, 문화체육관광부는 정원 문화, 이런 방식으로 유연하게 역할을 분담하면서 여러 부처와 관계를 맺고 시장을 키워야 한다. 도시의 패러다임이 변화하는 변곡점에 와 있다. 좋은 기회를 맞이한 것이다. 조금만 더 서로 도와주며 노력하면 제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 김정은
  • 시민이 디자이너가 되다 시흥시 오이도, 생명의 나무 전망대
    디자인 구상 오션프런트 시민디자이너그룹+UDI도시디자인그룹+시흥시 설계 경호엔지니어링건축사사무소 시공 티엘건설+메탈아트 오이도 오션프런트 섬의 모양이 까마귀 귀를 닮아서 붙여진 이름 ‘오이도’는 아주 먼 과거부터 근·현대 시기까지 오랫동안 사람들이 촌락을 이루며 거주하던 생활 터전이자, 역사·문화·군사적으로 중요한 요충지였다. 전형적인 어촌 마을의 원주민들은 대부분 어패류 채취와 염전일에 종사하였다. 이후 오이도 주민들의 생활은 1987년부터 진행된 시화호 방조제 사업을 전후로 크게 바뀌게 되었다. 국토 개발의 열풍이 오이도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고 간척 사업을 통해 시화산업단지라는 도시적·공업적 산물이 나타나게 되었다. 그 결과 군자염전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시화호를 가로지르는 방조제의 출발점인 오이도는 소금 만들고 조개 캐던 섬이 었다는 추억만을 간직하게 되었다. 시화호 개발은 단순히 바다와 갯벌에만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라 산업화, 도시화, 이주민 단지화로 옛 바닷가 마을 주민들의 넉넉한 인심마저 도시민의 그것으로 변모시켜 버렸다. 작은 어촌 마을이 도시로 변모된 지 25여년이 경과한 시점에서 우리는 오이도를 어떠한 모습으로 재탄생시켜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과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달라진 오이도의 환경을 인정하고 그 속에서 새로운 오이도의 미래와 지속가능한 발전의 뼈대를 구축해야 했다. 그 해답은 몇몇 전문가 혹은 행정의 일방적인 주도로는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는 지역 커뮤니티와 전문가, 행정이 거버넌스를 구축하여 오이도가 잊고 살아왔던 것과 오늘의 오이도에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함께 고민하기 시작했다. 자연 그 자체로도 아름다운 해안 지역에 ‘스며드는 공간 환경’ 구현을 통해, 지역 자원이 갖고 있는 정체성과 해안의 이미지를 부각시키고 오이도를 찾는 이에게아름다운 서해안의 낙조와 쾌적한 해안 경관을 제공함으로써 오이도 지역을 재생하기 위한 ‘오이도 오션프런트’ 프로젝트가 2011년 첫발을 내딛었다. 시민이 디자이너가 되다 오이도 오션프런트의 핵심은 ‘시민 디자이너 그룹’의 운영이었다. 형식적이었던 시민참여의 관행을 과감히 깨보고자 시민이 곧 디자이너라는 선언적 의미를 담아, 지역 주민을 프로젝트 추진의 단순한 보조자에서 주체로 격상시킨 이러한 인식의 전환은 이후 활동에서 그 진가를 발휘하였다. 시민 디자이너 그룹은 주민 자치 활동의 리더 및 구성원들이 지역에 실질적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함께 토의하고, 조경·디자인 전문가의 지속적인 멘토링과 현장 답사 등을 통해 디자인 구현의 실현 가능성과 적용방안을 직접 검토하고 결정하였다. 2014년 현재까지 시민 디자이너 그룹은 지속적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총 25회에 걸친 회의 진행과 현장 토론을 벌였고, 해안에 설치된 ‘생명의 나무전망대’의 기본적인 유지관리까지 맡아 운영하고 있다. 디자인 과정에서 시민 디자이너 그룹은 제방에 그늘이 없으니 나무를 심자는 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인공적인 구조물인 제방 위에 수목의 생육 환경을 무시한 채 나무를 직접 심는 보다는 지역의 역사성을 간직한 마을 어귀의 당산목처럼 크고 당당한 수목 형태의 조형물을 도입하는 방안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지역 주민들의 참여로 도출된 초기 디자인은 현재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형태였다. 시민 디자이너 그룹에서 1차 확정된 디자인은 실시설계와 구조 검토 과정에서 부재의 규격과 두께 등이 계속 커져 원래 구상한 형태가 유지되기 힘든 상황에 처했다. 특히 태풍 또는 강풍이 상존하는 해안 지역의 특성상 안정적인 구조 내력을 유지하기 위한 조치가 불가피했기 때문에 초기의 디자인 콘셉트를 유지하면서 안정성을 확보하는 디자인 수정 토의가 계속 이어졌다. 시공 과정에서도 시민 디자이너 그룹은 ‘주민참여감독관’이란 직책을 맡아 적극적인 활동을 하였다. 공공공간에서 시행되는 사업의 특성상 주변 상가에서 주차 및 영업 차질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졌는데, 같은 시민의 입장에서 이해, 설득, 조율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지역에 상시 상주하는 주민의 관점에서 안전 관리 문제 등 다양한 위해 요소를 즉시 저감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여, 피감독자인 시공자에게도 긍정적인 반응을 얻어냈다. 제작 과정에서는 3D로 도출한 형태를 설계도로 변환하고 스테인리스 관을 20~30cm 내외로 조각조각 재단하고 정확한 각도와 위치에 용접으로 꼼꼼히 이어붙이는 과정이 차분히 진행되었다. 조형물의 현장 반입, 현장 조립, 거치 등이 마무리되어, 시민과 함께 애쓰고고민한 결과물이 드디어 오이도 제방 위에 설치된 순간, 이 조형물은 더 이상 설계자, 시공자, 발주자가 만들어낸 성과물이 아니었다. ‘생명의 나무’는 지역을 되살리고자 같이 고민하고 토의하고 그려온 시민 디자이너 모두의 것이었다. ‘생명의 나무 전망대’는 어찌보면 일반적인 조경 사업의 결과물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시민과 함께 호흡하고 고민하여 이루어낸 결과물이기에, 그 의미는 여타의 사례와 비교할 수 없다. 오이도 시민 디자이너 그룹의 활동이 이상적이고 지속가능한 단계로 접어들었다고 자신할 수는 없지만, 그 기반만큼은 착실히 다져졌다고 자부할 수 있다. 살맛나고 즐거운 오이도, 정이 넘치고 활기가 충만한 오이도를 꿈꾸며 달려온 지난 시간 동안, 시민과 전문가, 공무원들이 쏟아부은 열정이, 이 지면을 통해 소개한 생명의 나무 전망대 이외에 ‘제방 경관 디자인, 교통 소통 활성화 제안, 문화 시설 확충, 주민생활여건 개선분과 운영, 스쿨가든 시행, 오이도 사랑모임 결성, 생활 안전 여건 개선’등 다양한 유무형의 결과물을 오이도에 남겼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오이도에서는 시민과 함께하는 지속가능한 공간 환경 디자인, 경관 만들기, 지역의 스토리텔링 만들기 활동이 지속적으로 시도될 것이고, 해를 거듭할수록 진화할 것이다.
    • 김정철 / 시흥시청 도시정책과 도시디자인계
  • 라장 브리지 L’argens Bridge, Webb Yates Engineers
    프랑스 남부 툴롱Toulon 인근에 400에이커 넓이의 포도밭이 있다. 이 포도밭은 라장 강River L’rgens에 의해 둘로 나뉘어 있다. 농장에 속한 건물과 주택은 부지 관리인의 거처와 가까이 붙어있지만, 반대편으로 이동하려면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강을 건너 이동한다고 해도 차로 약 20분의 시간이 소요된다. 이에 농장주는 보행자와 사륜 오토바이가 다닐 수 있는 저비용의 가벼운 다리 건설을 의뢰했다. 수작업으로 진행된 다리 설치 대상지는 대형 차량의 접근이 불가능해 다리를 만드는 데 크레인을 이용할 수 없다. 이에 수작업으로 부품을 하나씩 조립해 다리를 건설할 수 있는 케이블 현수교cable-suspension bridge가 도입되었다. 수작업으로 다리를 세워야 한다는 점이 설계 과정 내내 주된 고려 사항이었다. 15개의 부품 및 지지 케이블은 제작된 상태로 현장으로 운송되었으며, 강물 위에 설치된 오버헤드 짚 와이어overhead zip wire로 개별 부품들을 북쪽 둑으로 옮기고 남쪽 둑을 향해 이동하면서 설치가 이루어졌다. 이곳은 강둑 자체가 그리 단단하지 않은 충적토로 구성되어 있는데, 다행히 남쪽 둑은 석회암 노두로 이루어져 있어 이를 활용해 다리를 설치할 수 있었다. 단단하지 않은 충적토에 가해지는 압력을 견뎌낼 수 있도록 스쿠프scoop 토대가 활용되었으며, 상대적으로 단단한 남쪽 둑의 암석 노두 위에 마스트mast를 설치하고 케이블을 연결했다. 마스트는 텔레핸들러telehandler를 이용해 설치했으며, 케이블은 수작업을 통해 강 양편으로 당겼다. 케이블의 장력을 견뎌낼 수 있도록 콘크리트 토대는 둑보다 훨씬 아래쪽에 배치했다. 다리가 위치한 지점은 보의 하류에 해당하는 지역으로서 간헐적으로 많은 양의 물이 방류되어 흘러가는 곳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지점의 강물은 예측이 쉽지 않으며, 범람의 가능성이 상존한다. 그러므로 다리 가운데 부분을 위로 살짝 올라오게 함으로써 범람 시 물속의 파편으로 인한 교량의 훼손 가능성을 낮추고자 하였다. 다목적 구조 및 디자인 다리는 총 길이 28m로 무게나 느낌은 비교적 가벼운 편이다. 이용자 및 사륜 오토바이에 의해 발생하는 상당한 정도의 점하중 굴절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교량의 데크 및 수직 난간이 하중을 균일하게 분산시켜야 했다. 때문에 수직 난간 사이에 철근을 격자로 배치했고, 이를 통해 난간 손잡이를 하나로 연결해 보행로가 일종의 트러스가 될 수 있도록 했다. 다리에 활용된 대부분의 구성품들은 복수의 구조와 디자인적 목표를 지니고 있다. 예를 들어 수직으로 배치한 난간의 경우 기둥의 역할을 맡고 있으며, 손잡이와 마룻장은 하중을 분산시키는 전체 구조의 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수직 난간들 사이의 빈 공간을 개방형그물 구조로 채움으로써 교량의 데크 및 손잡이를 트러스로 활용해 교량에 가해지는 하중이 분산되도록 했다. 2톤 이하의 강철이 사용되었고 마룻장에는 약 1톤의 목재가 사용되었다. 다리 설치의 전 과정은 1주일 안에 모두 끝났다. 프로젝트에는 아주 적은 비용이 소요되었으며, 총 비용은 약 7만 파운드로 추산된다. 의뢰인은 애초의 기대 수준을 뛰어넘는 다리 설계에 매우 기뻐했다.
    • 최이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