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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 7017를 묻다] 서울로 7017, 과정을 돌아보다
Looking Back to the process of Seoullo 7017
‘서울로 7017’(이하 서울로)이 모습을 드러냈다. 완공과 대시민 개방 일정이 다가오자 말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미리 서울로를 걸어본 사람들, 오며 가며 서울로의 공사 과정을 목격한 사람들, 혹은 SNS에서 서울로에 대한 소문(?)을 확인한 사람들, 그리고 자문회의에 참여했던 사람들 등. 기대보다 우려가 컸다. 가나다순으로 심긴 빈약한 식물의 상태에 대한 실망이 쏟아졌고, 콘크리트의 삭막함에 대한 우려가 이어졌다.
그리고 지난 5월 20일 서울로가 시민들에게 개방되었다. 첫날만 15만 명이 다녀갔으며, 개장 한 달 만에 203만 명이 방문했다. 서울시는 연말까지 1천만 명이 방문할 것이라고 추정하며, “그늘 부족, 디자인 논란 속에서도 도심의 새로운 명소로 자리 잡는 모양새”라고 자평하고 있다. 서울시에서도 인식하고 있듯이, 개장 직후 흥행은 성공한 듯 보이지만 그럼에도 서울로에 대한 디자인 논란은 끊이질 않는다. 보행로라고 하는데 길을 가로막는 화분 때문에 걷기 힘들다거나, 설계공모 결과 공개된 조감도를 보며 푸른 정원을 상상했는데 시멘트 화분이라니, 실망감을 숨기지 않는 명사들의 칼럼도 이어졌다. 여전히 고가 보존 자체에 대한 반대 의견이 있으며, 고가 위라는 물리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이 상상하고 원하는 모습은 제각각이다.
항간에서는 설계공모의 당선자인 비니 마스가 설계안을 고집하며 현장과 서울의 기후에 맞춰 수정하지 않았다거나 서울시가 설계자의 편만 들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동시에 외국 설계사니까 그나마 설계안을 존중받을 수 있었다는 의견, 즉 국내 설계사가 직면하는 관행에 대한 불만 또한 존재한다.) 그러나 지적의 핵심인 식물의 가나다순 배치와 화분 식재는 핵심적인 디자인 언어이므로, 설계공모라는 절차를 거쳐 도출된 안을 존중하려 한 서울시의 노력은 온당하다. ...(중략)...
인터뷰
어려움을 극복하고,시민의 공간으로_권완택 서울역일대 종합발전 기획단 재생사업반장
공간 이용을 지켜보며 계획하겠다_온수진 푸른도시국 조경과 서울로총괄기획팀 주무관
거버넌스의 실패가 아니라, 시작이다_조경민 서울산책 공동대표
* 환경과조경 351호(2017년 7월호) 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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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스퀘어
Times Square Redesign
타임스퀘어 극장가 중앙에 위치한 대상지는 브로드웨이와 웨스트 42번가, 웨스트 47번가, 7번 애비뉴를 경계로 둔 나비넥타이bowtie 형태의 공간이다. 맨해튼의 격자 도시 체계를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브로드웨이는 남북으로 뻗은 7번 애비뉴와 만나며 변칙적인 교차점을 만들었다. 이 교차점은 보행자와 차량 운전자 모두에게 위험 요소로 작용했는데, 특히 붐비는 보행로에서 차도로 밀려나온 보행자로 인해 다른 애비뉴보다 사고 발생률이 137% 높았다. 이런 안전 문제를 해결하고자 2009년 뉴욕 시 교통과는 ‘미드타운을 위한 그린 라이트Green Light for Midtown’의 일환으로 본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2009년 5월 웨스트 42번가와 47번가 사이의 차량 통행을 금지해 임시적인 보행자 전용 광장으로 바꾸었는데, 그 결과 보행자 사고가 40%, 차량 사고가 15%, 전반적인 범죄율이 20% 감소했다. 대기 오염 물질도 감소하여 보다 안전하고 쾌적한 공공 공간을 확보하게 되었다. 이같은 성공을 바탕으로 2010년 뉴욕 시 디자인·건설과와 교통과는 건축·조경설계사무소인 스노헤타Snøhetta에게 새로운 타임스퀘어 디자인을 의뢰했다.
공간에 활기를 부여하기 위해 우선 대상지를 방문하는 군중의 규모와 동선 패턴을 파악해야 했다. 서쪽에는 항만공사 버스 터미널Port Authority Bus Terminal, 동쪽에는 그랜드 센트럴 역Grand Central Station을 둔 타임스퀘어는 뉴욕 시의 주요 관문이며, 매일 평균 33만 명이 오가는 곳이다. 따라서 다양한 보행 속도를 고려한 설계를 통해 보행자들이 편안하게 광장을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Architecture and Landscape Design Snøhetta
Landscape Architecture Mathews Nielsen Landscape Architects
Broadcast Engineering Bexel
Structural Engineering Buro Happold
Security Consulting Ducibella Venter and Santore
Lighting Design Arup, Leni Schwendinger Light Projects
Security Design Review Rogers Marvel Architects
Civil Engineering, Traffic Engineering, Utilities
Thornton Tomasetti Weidlinger Transportation Practice
Security Engineering Thornton Tomasetti Weidlinger Security Engineering Practice
MEP Engineering Wesler Cohen
ClientNYC Department of Transportation & NYC Department of Design and Construction
Location Times Square, New York, USA
Size 25,000m2
Timeline 2010 ~ 2017
Completion 2017
스노헤타(Snøhetta)는 노르웨이에 기반을 둔 건축설계사무소로 건축, 조경, 인테리어, 브랜드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의 일을 하고 있다. 여러 학문을 넘나드는 자유로운 사고방식으로 장소의 정체성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강화하고,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의 질을 향상시키고자 노력하고 있다. 현재 노르웨이의 오슬로(Oslo), 미국의 뉴욕과 샌프란시스코, 오스트리아의 인스부르크(Innsbruck)에 사무소를 두고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등 여러 국가의 프로젝트를 수행 중이다.
환경과조경351호(2017년7월호)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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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탄역 푸르지오
Dongtan Station Prugio
대상지 남측에는 큰재봉공원과 반석산근린공원이 있고, 서측과 남측으로는 오산천과 치동천이 흐른다. 특히 반석산근린공원의 낮은 능선과 어우러지는 동탄1신도시의 빌딩들이 독특한 경관을 선사한다. 도심 속에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는 의미의 ‘어반 플라워Urban Flower’를 콘셉트로, 주변 풍경을 끌어들여 지역적 감성이 묻어나는 친환경 단지를 조성하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목표다.
동탄역 푸르지오는 자연과 문화, 사람이 한 데 어우러진 생활 문화 공간으로 계획됐다. 먼저, 일상 속에서 숲과 만날 수 있는 푸르지오의 조경 상품 ‘힐링포리스트Healing Forest’를 도입해 소나무숲과 대왕참나무숲을 조성했다. 순환 동선에는 왕벚나무길, 보조 동선에는 단풍나무길, 산책로에는 이팝나무길과 회화나무길을 조성해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도록 했다.
다양한 문화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어린이, 학생, 노년층 등 연령대에 따라 맞춤한 공간을 마련했다. 단지 동측에는 치동초등학교에 이어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들어설 예정인데, 이를 고려해 곳곳에 어린이 놀이터와 청소년 운동 공간을 배치했다. 아이들은 단지 남쪽 부출입구에 배치된 새싹정류장에서 안전하게 셔틀 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단지 중앙에 위치한 실버클럽 앞으로는 텃밭, 간단한 운동 시설, 지압 보도 등을 갖춘 로맨스가든을 조성해 노년층의 부족한 운동량을 늘릴 수 있도록 유도했다.
사람들이 교류할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으로는 잔디마당과 석가산, 아쿠아가든, 터칭팜Touching Farm, 전망데크, 티가든, 작가정원 등을 조성했다. 작가정원은 공모를 통해 선정된 전문 가드너(작가 권아림)가 만든 정원으로, 허브나 초화류 등을 사용해 유럽식 정원 풍경을 구현했다. ...(중략)...
조경 설계 (주)기술사사무소 아텍플러스
건축 설계 (주)정일엔지니어링종합건축사사무소
시공 (주)대우건설
시공 감리 (주)행림종합건축사사무소
조경 식재·시설물 주원조경(주)
위치 경기도 화성시 동탄순환대로 881-10
대지 면적 52,195m2
조경 면적 25,383m2
완공 2017. 6.
*환경과조경351호(2017년7월호)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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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스케이프] 불완전이 만든 완성품
지난 5월, 드디어 서울로가 열렸습니다. 개장 2주 만에 방문객이 100만 명을 넘어섰다는 소식도 들리고, 한편으로는 여러 가지 아쉬움을 지적하는 기사들도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슈즈 트리’ 논란까지 가세하면서 조경 프로젝트(‘건축’이라고 규정하는 분들도 있긴 합니다만)로는 이례적으로 큰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저 역시 이 프로젝트에 대한 아쉬움이 있지만, 조금 더 사람들이 이용한 후로 판단을 미룹니다. 공간도 시간이 지나가면서 익어가는 경우가 있으니까요.
오늘 사진의 주인공은 서울로 7017의 한쪽 끝에 위치한 ‘윤슬’이라는 공공 미술 작품입니다. ‘서울을 비추는 만리동’이라는 부제도 달려 있네요. 윤슬은 햇빛이나 달빛에 비치는 반짝이는 잔물결을 의미하는 순우리말이라고 합니다. 어감도, 뜻도 참 예쁜 말입니다.
‘윤슬’은 서울시가 추진하고 있는 ‘서울은 미술관’의 일환으로 진행된 공공 미술 프로젝트입니다. 건축사사무소 SoA(강예린, 이재원, 이치훈)의 작품인데, 이들은 2015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지붕감각’을 설치하는 등 공공 공간에 큰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최근 한강예술공원 프로젝트에 몇몇 조경가가 참여해 멋진 결과를 보여 주었습니다. 더 많은 조경가가 공공 미술에도 관심을 가지고 참여했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중략)...
주신하는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거쳐, 동 대학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토문엔지니어링 건축사사무소, 가원조경기술사사무소, 도시건축 소도 등에서 조경과 도시계획 분야의 실무를 담당한 바 있으며, 신구대학 환경조경과 초빙교수를 거쳐 현재 서울여자대학교 원예생명조경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로 조경 계획 및 경관 계획 분야에 학문적 관심을 가지고 있다.
* 환경과조경 351호(2017년 7월호) 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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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설계하는 법] 이중성
나는 아직 남들과 공유할 수 있을 만큼의 원숙한 설계 노하우를 체득하지 못했다. 그러나 내가 설계하는 법은 꽤 오랜 기간 몸담았던 순수 예술이라는 영역, 함께 일하는 다양한 분야의 동료들, 스튜디오 MRDOStudio MRDO와 제임스 코너 필드 오퍼레이션스James Corner Field Operations의 확연한 작업 방식 차이 등에서 비롯한 다중성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 같다. 이번 호에서는 그동안의 작업에서 예술과 설계라는 다른 두 분야가 서로 간섭했던 흔적들을 소개하고, 두 영역의 교집합과 차이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조소과 재학 시절 인접 분야의 수업을 두루 들어보던 중 조경이라는 학문을 접하게 되었다. 당시 나에게 조경은 핸드 드로잉보다 훨씬 세련된 컴퓨터 드로잉으로, 외국에서 실무를 마치고 귀국해 설계 쪽 일을 하는 사람들의 화려함으로 인식되었다. 조경의 일부만을 피상적으로 이해했던 것이다. 자연과 시스템 그리고 예술의 조합이라던 이 분야는 쿨한 창작을 하면서 동시에 규칙적인 보수도 기대할 수 있는 영역이자, 순수 예술이나 건축과 비교할 수 없는 블루오션으로 비춰졌다. 막연한 예상과 현실에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물론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10년간 조경, 특히 조경 설계를 알아가면서 노력만큼 대가가 따르지 않는다고 느낀 적은 있었을지언정 그때의 착각이 큰 실수였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만일 내가 미술에 조경을 더함으로써 하나 이상의 프레임으로 디자인적 사고를 하는 디자이너라면, 미술만 할 때보다 창작에 있어서 더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있는 중이라면, 그때의 성급했던 결정은 역설적이게도 보다 넓은 풀pool을 만나게 해 준 고마운 사건이기 때문이다. ...(중략)...
전진현은 스튜디오 MRDO(Studio MRDO)를 공동 설립해 조경뿐 아니라 더욱 확장된 영역에서 디자인을 실험·연구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조소과 졸업 후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과 하버드 GSD에서 조경학 석사 과정을 마쳤다. GSD 입학 전 신화컨설팅에서 근무했고, 현재 제임스 코너 필드 오퍼레이션스(James Corner Field Operations)에서 조경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보더스: DMZ 지하 대중목욕탕(Borders; Korean DMZ Underground bath house Competition), 세종대로 역사문화공간 설계 공모, 서울 도시 디자인 공모전 등 다수의 공모전에 당선되었다. www.studiomrdo.com
* 환경과조경 351호(2017년 7월호) 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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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보기, 다시 읽기] 순수한 조형적 아름다움을 위하여
수목이 계단식 앉음벽의 층계를 뚫고 나온 듯한 모습이다. 계단식 앉음벽의 형태를 최대한 연속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수목 보호대를 계단의 형태 그대로 만들어 덮었다. 즉, 계단식 앉음면의 세 면을 파내고 그 공간에 수목을 식재한 후, 계단 모양의 뚜껑을 덮은 디테일이다. 일반적인 경우, 나무가 식재된 주변의 단을 들어올려 플랜터 벽으로 처리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진의 장소에서는 계단의 조형적 형태를 부각하기 위해 독특한 플랜터 디테일을 만들었다. 계단과 같은 재질의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수목 보호대에는 통기구들이 가늘게 뚫려 있고, 업라이트 효과를 위한 조명 기구가 설치되어 있다.
계단의 형태 변형을 최소화하기 위해 수목이 위치한 구멍을 작게 만들었지만, 그 구멍의 중심은 계단 디딤면이 아닌 수직면에 정렬되어 있다. 결과적으로 수직면과 이에 인접한 위아래 디딤면을 관통한 듯한 형태가 되었다. 일반적이지 않은 재미있는 제안이지만, 한편으로는 계단 수직면의 구멍으로 전기 배선이나 콘센트 등 숨겨 놓은 설비와 구조 내부의 모습이 눈높이에서 보여 깔끔하지 못한 마무리로 보이기도 한다.
장소를 조금 이동하자 약간 다른 모습의 계단식 수목 보호대를 발견할 수 있었다. 기본적인 원리는 동일하지만 수목 보호대가 놓인 위치가 계단식 앉음벽이 아닌 일반 계단이기 때문에 보호대의 형태도 이에 동화하는 형태로 바뀌었다. 디딤면과 수직면의 크기가 앞의 사례보다 절반으로 줄었기 때문에 계단 수직면에 위치한 구멍 또한 작아져, 계단의 형태를 유지하려는 본래의 디자인 의도를 보다 잘 전달하고 있다.
안동혁은 뉴욕에 위치한 제임스 코너 필드 오퍼레이션스(James Corner Field Operations)에서 활동하고 있는 펜실베이니아 주 등록 미국 공인 조경가(RLA)다.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조경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 현재 회사에 8년째 근무하면서 Philadelphia Race Street Pier, 부산시민공원, London Queen Elizabeth Olympic Park, Hong Kong Tsim Sha Tsui Waterfront 등의 프로젝트를 진행해 오고 있다.
* 환경과조경 351호(2017년 7월호) 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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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생각, 새로운 공간] 김종석 쿠움파트너스 대표
공유 공간의 마법
최근 가장 ‘핫’하다는 연희동과 연남동. 그 변화를 주도한 것은 그다지 잘 알려지
지 않은 한 사람이다. 이 일대에서 50여 채에 이르는 건물을 리노베이션하면서 불과 5~6년 만에 완전히 새로운 도시를 창조한 중심에는 수십, 수백억 원의 공적 자금이 아니라 지역에서 건축업을 하는 김종석 대표가 있다. 그렇다, 그는 소위 말하는 ‘업자’다. 학자도 아니고, 건축가도 아니고, 흔히 듣는 ‘공공◯◯가’는 더더욱 아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가 대화에 사용하는 언어는 어바니즘의 고전에 등장하는 설계 기법들이다. 노출 계단, 오픈스페이스, 선큰sunken, 발코니, 시선의 높낮이, 빛과 밝기, 공간 심리학 등. 어쭙잖은 건축가가 종종 내뱉는 말뿐인 소통이 아니라,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소통, 대화, 연계와 맥락의 디자인’을 그의 건축을 통해 너무도 쉽고 분명하게 볼 수 있다. 거리와 건물의 소통, 사유 재산과 도시의 대화, 손님과 주민, 건물주와 세입자 간의 상호작용을 볼 수 있는 현실의 교과서다.
그는 언제나 현장을 두고 말한다. 그가 쌓아온 방식이다. 경남 함양 출신으로 스무 살에 상경해 연희동의 전파상인 정음전자에서 일하다 제대 후에 사장님이 돌아가신 가게를 인수했다. 그 후 연희동에서 30년.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에는 사람들의 온갖 인생 스토리가 녹아 있다. 책상머리에서 구상한 거창한 마스터플랜 없이, 정부도 손 놓고 있는 젠트리피케이션을 혼자서 해결하고 있는 이 독특한 남자의 경험 보따리는 도시재생이 가야 할 방향을 일러준다. 그의 도시재생은 어찌 보면 자본주의 사회 체제에 가장 부합하는 도시재생이다. 공중에서 투하되는 지원 자금에 의해서가 아니라 모두의 욕망, 서로의 행복에 충실한 도시재생이기에 현실적이다. 우리 도시재생에 필요한 것은 눈먼 자금이 아니라 불합리한 절차와 제도의 개선을 통해 창의적인 개인이 뜻을 펴고 굴레를 벗어 던질 수 있도록 돕는 일일 것이다. 사업 성과를 위한 재생, 도시재생의 이름을 빌린 지자체의 치적 쌓기가 아니라, 삶을 위한 재생, 강소 경제 서민 상권을 부활시키기 위해 철저히 시장성을 바탕으로 한 살아남을 수 있는 재생이다. ...(중략)...
최이규는 1976년 부산 생으로 뉴욕에서 10여 년간 실무와 실험적 작업을 병행하며 저서 『시티오브뉴욕』을 펴냈고, 북미와 유럽의 공모전에서 수차례 우승했다. UNKNP.com의 공동 창업자로서 뉴욕시립미술관, 센트럴 파크, 소호 및 대구, 두바이, 올랜도, 런던, 위니펙 등에서 개인전 및 공동 전시를 가졌다. 현재 계명대학교 도시학부에 생태조경학전공 교수로 재직하며 울산 원도심 도시재생 총괄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다.
* 환경과조경 351호(2017년 7월호) 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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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 탐독] 문화로 식물을 읽을 때
식물을 그리지 않은 구석기 시대
구석기 시대의 선조가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벽화가 있다. 벽화 속에는 소와 산양 등 주로 사냥감의 모습이 담겨 있다. 사실적 표현이라기보다는 간결한 선과 색으로 표현된 일종의 상징 예술이다. 고고학자들은 아마도 구석기 시대부터 동굴의 벽이나 동물의 뿔과 뼈에 이렇게 전문적으로 그림을 새겨 넣는 작가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런데 여기서 이상한 점이 하나 있다. 이상할 정도로 식물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은 2013년 대영박물관에서 전시된 질 쿡Jill Cook의 ‘빙하시대의 예술: 현대적 감성의 출발Ice Age Art: Arrival of the Modern Mind’에서도 증명됐다. 구석기 시대의 여인상을 비롯한 수많은 조각물에서도 식물을 거의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여기에 대해 전문가마다 주장이 다르다. 하지만 구석기인에게 식물은 지금과 다른 의미였을 것이라는 데는 의견이 일치한다. 즉 동물이 식량이며 잡아야 할 어려운 대상이었다면, 식물은 이런 목적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산, 돌, 구름과 같은 자연의 현상으로 여겨졌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그들이 하늘, 태양, 구름, 산을 그리지 않았던 것처럼 식물도 환경이었을 뿐, 먹고 살아감의 대상이 아니었던 셈이다. 이런 관점에 엄청난 변화가 찾아온 건 그로부터 5천 년이 지나서다. 이 시기는 인류가 수렵에서 농경으로 삶의 방식을 바꾸었던 때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기원전 2,500년 경, 이때부터 식물은 인류에게 풍요와 부활의 상징으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그림과 조각은 물론 신화의 세계로까지 깊숙이 파고든다. 기원전 1,300년 즈음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진 이집트 테베 지역 센네젬Sennedjem 가문의 묘에서 발견된 벽화에는 밀과 아마를 키우고 수확하는 장면이 나온다. 벽화는 씨를 뿌리고 잎과 꽃을 틔우는 식물의 일생을 파노라마처럼 상세하게 보여준다. 그만큼 식물을 키우는 일이 중요했다는 증거다. ...(중략)...
오경아는 방송 작가 출신으로 현재는 가든 디자이너로 활동 중이다. 영국 에식스 대학교(The University of Essex) 리틀 칼리지(Writtle College)에서 조경학 석사를 마쳤고, 박사 과정 중에 있다. 『시골의 발견』, 『가든 디자인의 발견』, 『정원의 발견』, 『낯선 정원에서 엄마를 만나다』 외 다수의 저서가 있고, 현재 신문, 잡지 등의 매체에 정원을 인문학적으로 바라보는 칼럼을 집필 중이다.
* 환경과조경 351호(2017년 7월호) 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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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스케이프] 죽여주는 여자
노인을 위한 경관은 없다
성매매를 하는 소영(윤여정 분)의 주 활동 무대는 탑골공원이다. 일명 바카스 아줌마인 그녀는 5년이나 이곳에서 활동했기에 단골도 제법 있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죽여준다’는 소문을 듣고 고객이 찾아온다. 하지만 성병에 걸린 사실이 소문나는 바람에 활동 무대를 남산공원으로 옮긴다. 수포교와 남산 순환로를 배회해 보지만 탑골공원에 비해 영업이 시원치 않다. 먼저 다가가 “바카스 한 병 딸까요?” 했다가 모욕만 당하기 일쑤다. 딱한 처지에 놓인 코피노 꼬마와 이태원 산동네를 오르는 그녀의 발걸음은 오늘도 무겁다. 소영이 세 들어 사는 허름한 집에는 주인인 트랜스젠더와 장애자와 동남아시아 이주민이 모여 산다. 영화는 서울의 오래된 공간을 배경으로, 주류 사회에서 밀려난 소외 계층의 삶을 묘사하고 있다.
소영은 한국전쟁이 일어난 해에 이북에서 태어났다. 식모와 공장 직공을 거친 후, 동두천에서 만난 미군과의 사이에서 아이를 낳았지만 돌도 안 된 채 입양 보내야 했다. 평생 죄책감을 안고 사는 그녀는 길 고양이뿐 아니라 곤란에 처한 꼬마나 노인들을 살뜰히 챙긴다. 다큐멘터리를 찍는 감독이 “그럼 미군 상대하는 양공주였던 거예요?”라고 묻자, “그럼 일본군 상대했겠니? 그 정도 나이는 아니야”라며, “나같이 못 배우고 늙은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아”라고 씁쓸히 미소 짓는다. ...(중략)...
서영애는 조경을 전공했고, 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다. 동네에 생기는 카페마다 사람들이 가득하다. 그 많은 사람들이 그 전에는 어디서 쉬었을까. 청계천과 서울역 고가를 공원으로 만들자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 많은 사람들이 그 전에는 어디서 놀았을까.
*환경과조경351호(2017년 7월호)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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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 도시와 관계하는 열한 가지 방식] 나, 너, 그리고 우리의 영역
고즈넉한 호수를 찾아 드라이브를 하던 중에 장엄한 폭포를 만나 들뜬 마음에 차를 세웠다. 앞에 ‘◯◯갈비’란 이름의 식당이 자리한 걸 보니 이게 그 유명한 ◯◯폭포구나 싶어 그 장대함과 아름다움에 감탄하고 있는데, 곁에 있던 동료 작가가 장난삼아 한 마디 던진다. “모르지, 위에 밸브가 있을지도.” 우리는 돌아서며 그럴 법하다고 키득거렸지만(물론 이 말은 장난이고, 그럴 리가 없다고 믿기 때문에), 이내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다시 한번 폭포를 찬찬히 살펴보다 절벽의 맨 위, 밸브를 발견했다. 크리스마스 밤이면 머리맡에 선물을 놓아주던 산타가 실은 부모님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의 그런 허탈한 기분으로 차를 몰아 호수 인근에 당도하니, 어딘가에서 강한 기운의 일렉트로-토속-뽕짝이 귀에 흘러들어온다. ‘설마 호수 쪽에서 나는 소리는 아닐 거야’ 하는 기대와는 반대로 호수 입구에 다다를수록 소리는 커지고, 디즈니랜드와 디즈멀랜드Dismaland 사이 어딘가에서 길을 잃고 맨홀 속으로 떨어지면 있을 법한 미니-놀이동산에 입이 벌어지는 것도 잠시. 블랙홀 같이 벌어진 입과 눈꺼풀 속으로 모든 것을 빨아들일 듯한 거대한 아기 머리-조각 작품 앞에서는 심지어 공포감에 빠졌다. 그리고 그 뒤편으로 모든 것을 압도하는 저 강력한 사운드의 원천, 사방팔방이 오방색으로 뒤덮인 ‘제의’가 열리고 있었으니, 호수의 기운이 그야말로 밑바닥에서부터 요동쳐 금방이라도 거대한 파도가 올라와 덮칠 것만 같았다. “오늘, 도, 추움~을 춘다, 두웅-기 둥기 두둥-실~” 짙은 선글라스를 끼고 흰 타이츠에 빨강, 파랑 치파오를 입은 파마머리 아주머니 셋이 제단 위에서 힘차게 다리를 벌려 선 채로 음악에 맞춰 커다란 장구를 때리는 동안, 그 앞에서 총천연색 아웃도어 복장의 중장년 남녀 한 무리가 이 각설이-테크노 뽕짝의 리듬에 맞춰 짝을 지어 흐드러지게 춤을 추는 것이었다. “얼~쑤! 아~하! 허잇!!! 헛! 헛! 두구두구두구두구 띠로리~~~~” 그런 ‘도란스’ 현장 뒤편으로 보이는 RGB 현수막에 붓글씨체로 쓰인 문구는, 다름 아닌 ‘제◯회 ◯◯시 산악협회 등산대회’. 글씨에 ‘볼드’와 ‘아웃라인’ 처리가 되어있음에도 워낙 현수막이 매직아이 같아서, 문구를 단번에 읽을 수 있던 것은 아니다. ...(중략)...
진나래는 미술과 사회학의 겉을 핥으며 다방면에 관심을 갖고 게으르게 활동하고 있다. 진실과 허구, 기억과 상상, 존재와 (비)존재 사이를 흐리고 편집과 쓰기를 통해 실재와 허상 사이 ‘이야기-네트워크-존재’를 형성하는 일을 하고자 하며, 사회와 예술, 도시와 판타지 등에 관심이 있다. 최근에는 기술의 변화가 만들어내는 지점에 매료되어 엿보기를 하고 있다. 2012년 ‘일시 합의 기업 ETC(Enterprise of Temporary Consensus)’를 공동 설립해 활동했으며, 2015년 ‘잠복자들’로 인천 동구의 공폐가 밀집 지역을 조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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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조경351호(2017년 7월호)수록본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