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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스튜디오 loci] 아모레퍼시픽 원료식물원
Amorepacific Botanic Garden
여름이 왔다. 연일 기온이 삼십 도를 오르내리고 습도 또한 높아 견디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창밖의 나무들이 짙은 녹색의 기운을 씩씩하게 내뿜고 있으니 그나마 위안이 된다. 불과 두어 달 전만 해도 옅은 어린잎에 불과한 것들이 이제 완전히 자라나서,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여름의 한가운데를 지나는 이즈음에는 식물들의 이런 모습에 늘 감탄한다. 작은 씨앗들이 땅에 떨어져 때를 기다리다가 어느새 움을 튼다. 떡잎을 내밀어 제 존재를 드러낸 후에는 날마다 자라고 변신을 거듭한 끝에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한겨울을 나목의 상태로 버틴 나무들은 또 어떠한가. 무슨 신호를 받았는지 때가 되면 저마다의 일정으로 잎을 내밀고 빛을 받아들인다. 꽃이 피고 열매가 달리면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것이다. 한여름 동안 무성하게 자란 잎들은 겨울에 앞서 생장을 멈추고, 후대를 위해 지상으로의 장렬한 낙하를 기다릴 것이다. 성장과 번식이라는 이 오묘한 생명의 순환을 지켜보고 있자면 새삼 자연에 대한 경외감을 가지게 된다.
2016년 늦가을 우리 일행은 서둘러 런던으로 날아갔고, 시내에 있는 첼시 약용식물원(Chelsea Physic Garden)으로 향했다. 며칠 후면 시즌이 마감되기 때문에 바쁘게 결정하고 실행한 일정이었다. 경기도 오산시에 있는 가장산업단지에는 아모레퍼시픽의 주력 제품을 생산하는 통합 공장(아모레퍼시픽 뷰티 파크)이 자리하고 있다. 2012년에 준공한 이 공장은 당시에도 화장품에 사용되는 원료 식물들을 소재로 일부 조경 공간을 구성했으나, 준공 4년 차를 지나면서 좀 더 본격적인 ‘식물원’으로서의 성장을 도모하고 있었다. 규모가 비슷한 첼시 약용식물원은 아모레퍼시픽 원료식물원의 중요한 벤치마킹 사례지였다. 이 식물원은 3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런던의 가장 오래된 식물원이다. 기본적으로 약제의 원료가 되는 식물을 연구하는 곳이기에, 공간의 구성이 식물을 효율적으로 분류하고 관리하기에 적합해야 한다. 방문자들에게 식물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쓰임새를 중요하게 설명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템스 강변의 이 오래된 식물원은 이제 막 새롭게 ‘원료식물원’을 만들려고 하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얘기해주고있었다. ...(중략)...
*환경과조경388호(2020년8월호)수록본 일부
설계
총괄:조경설계 서안(정영선,박승진)
진행:디자인 스튜디오loci(박승진,최상민,장수연,오지훈)
시공 아모레퍼시픽 원료식물원(총괄:한권영)
발주 아모레퍼시픽
위치 경기도 오산시 가장산업단지 내 아모레퍼시픽 뷰티파크
면적 약18,000m2
설계 기간2016~2019
시공 기간2017~2019
준공2019. 7.
사진 양해남
박승진은 아직까지 조경 설계라는 마당을 떠난 적이 없으며, 이 마당에 맞닿아 살고 있는 다양한 이웃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기웃거리고 있다. 조경이라는 특징을 잘 보여줄 수 있는 가치 있고 정교한 작업을 늘 꿈꾸지만 그것도 만만치가 않다. 그래도 읽고, 쓰고, 가르치며, 배우는 일상에 감사하고 있다. 성균관대학교와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조경 디자인을 공부했고, 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 조경설계 서안에서 설계 실무를 거쳐 2007년 디자인 스튜디오 loci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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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스튜디오 loci] 어퍼하우스 남산 전시관
Upper House Namsan Exhibit Hall
고민 없이 작업 의뢰를 수락하는 경우는 두 가지다. 예상되는 작업량에 비해 현저히 많은 보상이 주어지는 경우와 작업이 까다롭고 보상이 적어도 그 이상의 재미가 보장되는 경우. 하지만 대부분의 작업은 여기에 속하지 않는다. 일한 만큼 받게 되어 있고, 보상이 클수록 재미는 반감되기 마련이다. 설계 사무실의 많은 작업은 이 틀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그래도 가끔은 일탈의 수준을 넘나드는 작업을 상상할 때가 있는데, 어퍼하우스(Upper House)남산 전시관이 여기에 해당됐다.보상보다는 ‘재미’. 이때 재미는 단순한 유희가 아니라 낯선 미적 쾌감으로 해석할 수 있다.
용도가 폐기된 넓은 실내는 낯선 공간이다. 바닥과 천장, 벽과 창만 남은 이 단순한 구조체는 2,700m3의 큰 용적을 갖는다.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은 사뭇 영화적이다. 사각 틀을 통과한 빛은 거침없이 바닥에 닿고, 서서히 움직인다. 아침의 빛은 가볍고 신선하며 늦은 오후의 빛은 지쳐 있고 농도가 짙다. 실내 공간은 자연을 배척한다. 빛은 제한적이고 공기와 물의 흐름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살아있는 식물은 실내에서 스스로 생육할 수 없다. 실내라는 공간적 한계, 여기에 자연의 일부를 이식한다는 역설에서 이 작업은 출발했다. 3개월 남짓 유지되는 한시적 설치 작업이라는 전제가 있기에 가능한 작업이었다. ...(중략)...
*환경과조경388호(2020년8월호)수록본 일부
조경 설계 디자인 스튜디오loci(박승진)
조경 시공 태극조경
건축 설계 두마인드오피스(민준기,장별)
발주 어퍼하우스
위치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동260.199
면적900m2
준공2019. 6.
사진 장미
박승진은 아직까지 조경 설계라는 마당을 떠난 적이 없으며, 이 마당에 맞닿아 살고 있는 다양한 이웃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기웃거리고 있다. 조경이라는 특징을 잘 보여줄 수 있는 가치 있고 정교한작업을 늘 꿈꾸지만 그것도 만만치가 않다. 그래도 읽고, 쓰고, 가르치며, 배우는 일상에 감사하고 있다. 성균관대학교와 서울대학교환경대학원에서 조경 디자인을 공부했고, 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 조경설계 서안에서 설계 실무를 거쳐 2007년 디자인 스튜디오 loci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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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스튜디오 loci] 정원의 감각
아모레퍼시픽 원료식물원과 통의동 브릭웰 산책
잠 못 드는 장마 기간의 밤이다. 여기 안성은 해가 떨어지면 아직은 제법 선선하다. 창문을 열면 기분 나쁘지 않을 정도의 축사 냄새와 형언하기 어려운 미묘하게 기분 좋은 자연 내음, 거기에 내 옷의 섬유 유연제 향이 뒤섞여 후각을 적신다. 귀를 기울이면 근처 아파트 예정지의 늪지에서 개구리가 비지엠BGM을 깔고 산책하는 사람들의 속삭임이 이따금 간섭하며, 가까운 소형 블루투스 스피커에서는 피아노와 전자음이 뒤섞인 고요한 음악이 들린다. 여름밤의 ASMR. 보이는 것은 스마트폰 메모 앱의 한글 자모뿐이건만 다른 감각기들이 나를 이 여름밤의 낭만으로 휘감는다.
시각이 사라지니 다른 감각이 깨어난다. 아모레퍼시픽 원료식물원(이하 원료식물원)과 브릭웰 정원에 관한 원고를 청탁받고 답사도 다녀왔으나 마감을 앞둔 지금까지도 착상이 떠오르지 않다가 문득, 그곳의 지금, 그러니까 밤 풍경이 궁금해졌다.
식물원이라는 로망
원료식물원의 밤엔 인기척이 없을 것이다. 퇴근 시간이 되면 인적이 드물 테니까. 그런데도 그곳의 밤이 궁금해지는 건 식물원이 내게는 실재보다는 낭만, 말하자면 로망의 영역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한 여름밤에 요정이 나타나 마술을 부려 동식물과 곤충 그리고 물과 흙, 돌에게도 목소리를 주어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지는 않을까.
아모레퍼시픽 원료식물원은 화장품 원료로 쓰이는 식물을 그러모아 유럽의 식물원 콘셉트로 디자인한 공간이다. 원료식물원은 2012년 오산 아모레 뷰티 파크(이하 뷰티 파크)의 조경을 디자인할 때 이미 조성되어 있었다. 뷰티 파크 정면의 도로와 맞닿은 부지에 마련되었던 원료식물원에 경사면을 평지로 만들어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한 뒤 작년에 다시 디자인했다. 듣도 보도 못한 피부 건강에 좋은 식물들로 가득한 아름다운 정원이자 인플루언서를 초대해 브랜드를 홍보하는 쇼룸의 역할도 한다. 거기에 화장품 원료의 실험, 연구, 대중 교육 기능도 담당하니 지적인 호기심까지 충족시키는 종합 정원 세트인 셈이다. 공원도 그렇지만식물원이라는 콘셉트는 서양, 특히 유럽에서 발명되어 20세기 전후에 우리나라에 소개되었다. 유명한 창경원 식물원은 한반도에서 보기 힘든 진귀한 식물의 전시장이었고 우리는 이국적인 식물 취미(taste)에 열광했다.
감각하는 자연
식물원에는 자연의 생명이 충만하게 살아 숨 쉬고 우리는 그 기운을 감각기로 받아들인다. 예술가는 자연의 감각을 우리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 사랑을 설명하는 데 활용하곤 한다. 루카 구아 다니노 감독의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Call Me By Your Name)’(2017)에서 주인공 소년은 이탈리아의 북부 시골에서 여름 휴가를 보내면서 첫사랑을 만나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간다. 여기서 시골의 아름다운 자연 풍경은 낭만으로 적셔진 찬란한 한때, 내가 온전히 살아있었던 그 순간을 비유하는 데 동원된다. 전작 ‘아이 엠러브(I Am Love)’(2009)의 주인공인 상류층 부인은 갑갑한 현실을 벗어나 도시 외곽의 자연을 만끽하며 사랑하는 이와 정사를 나눈다. 육체는 자연과 뒤엉킨다. 우리의 땀과 자연의 내음이 혼재된 이미지. 야생 초화류의 향기와 거기에 도취한 벌의 몸짓과 노래와 함께. 사랑의 편에서 보면 사랑이 자연처럼 싱그럽고 때론 야생적(wild)이라는 의미지만, 자연의 편에서 보면 자연이 우리의 사랑같이 낭만이면서 추억이고 에로틱한 심상마저 지니고 있다는 뜻이다.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귀를 간지럽히고 살짝 불어오는 바람에 풀과 꽃, 흙 향기가 코안을 두드리는 야릇한 청량감, 그런 살아있는 자연의 기운을 감각하며 우리가 살아있(었)음을 느낀다.
움직임-감정의 정원 예술
18세기 후반에 활동한 독일의 정원 이론가 히르시펠트(C.C.L. Hirschfeld)는 정원을 움직임(motion)을 통해 감정(emotion)을 불러일으키는 다감각적 예술 장르라고 설명했다.1 여기서 움직임은 자연의 여러 생명의 생동, 그러니까 나뭇가지와 잎의 흔들림, 그것이 만들어내는 그림자, 잔잔한 물의 파장과 같은 것들을 의미한다. 자연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자연의 생동을 우리가 움직이면서 온몸으로 감각한다. 이러한 움직임은 우리의 정신과 마음을 감동시키는 감정이라는 움직임으로 이어진다. 앞의 두 영화에서 사랑을 자연과 동일시하는 건 움직임과 감정이라는 경험이 서로 비슷하기 때문이다.
원료식물원은 히르시펠트가 설명한 정원 예술의 정수를 보여 준다. 원료식물원은 뷰티 파크가 공들여 만든 투어 프로그램의 일부다. 큰 틀에서 보면 원료식물원은 아모레퍼시픽의 창업부터현재까지의 기업 문화를 스토리텔링 전시로 구현한 스토리가든과 아모레퍼시픽과 관련한 과거와 현재의 모든 기록을 그러모아 구축한 박물관인 아카이브 사이에 위치한다. 아쉽게도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다른 곳은 방문할 수 없었지만, 원료식물원은 아모레퍼시픽이 꼼꼼하게 기획한 투어 프로그램에 따라 움직이면서 경험하는 정원이다. 먼저 기업 문화를 이해하고 식물원을 거닐며 화장품 원료로 사용되는 식물들을 실제로 만난 뒤 아모레퍼시픽의 사료를 찬찬히 살펴보면서 마무리하는 여정이다. ...(중략)...
*환경과조경388호(2020년8월호)수록본 일부
각주 1. 이명준·배정한, “18~19세기 정원 예술에서 현대적 시각성의 등장과 반영: 픽처레스크 미학과 험프리 렙턴의 시각 매체를 중심으로”, 한국조경학회지 43(2), 2015, p.32.
이명준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에서 오랫동안 공부하다가 지난봄 안성으로 이사와 한경대학교 친구들과 즐거운 일상을 보내고 있다.꼰대는 되지 말자 노력하면서.코로나19확산으로 봄학기 내내‘집콕’했고 여름 방학에는‘홈캉스’를 즐길 예정이다.간만의 답사 기회를 얻은 데 감사하며,그런 마음을 답사 일기로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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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탄 재난안전공원
Dongtan Disaster Prevention Park
1970년대 이후 비약적 경제 성장으로 도시화가 가속화되며 대규모 택지 개발과 사회 기반 시설 건설이 급속도로 이루어졌다. 생태 환경이 지속적으로 훼손됐고 오염 물질이 과도하게 유입된 하천은 자정 능력을 상실하기에 이르렀다. 치마골천 역시 개발로 인해 수순환 체계가 붕괴되어 유지용수가 부족해지며 사라질 위기에 놓인 곳이었다. 하지만 2010년 화성시 소하천재정비계획을 통해 실도랑과 실개천을 복합적으로 조성하며 지속가능한 자연 순환형 계류로 재탄생했다. 이 치마골천을 중심으로 재난안전공원, 어린이를 위한 커스텀놀이터 등 도시에 새로운 변화를 불어넣는 공간을 마련해 동탄의 도시 경쟁력을 확보하고자 했다.
치마골천의 부활
저영향개발LID을 적용한 수순환 계획을 통해 치마골천의 물순환 생태 기능을 회복하고자 했다. 30m~130m 높이에 걸쳐 펼쳐지는 치마골천의 수직적 경관 스펙트럼을 기반으로 하천, 들, 도시, 산이 공존하는 동탄의 풍경을 담아냈다. 더불어 물길을 이용해 다채로운 수경관을 연출했다. 물놀이장, 생태 습지 등 다양한 형태의 수공간은 물길이 재생되며 점차 변해가는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6개월간 함양지 수원을 방류하고 꾸준히 모니터링해 함양지에서 신리천까지 이어지는 긴 투수 공간을 따라 물이 끊이지 않고 흐르는 수순환 체계를 구축했다.
재난안전공원
토지 이용이 고밀화되고 복합적으로 바뀌며 재난 발생률이 높아졌을 뿐 아니라 대형 복합 재난으로 이어질 위험성 또한 커졌다. 도시계획을 통한 근원적 관점의 도시 방재 계획의 필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방재 대책은 크게 구조적 대책과 비구조적 대책으로 나뉜다. 구조적 대책은 시설 중심의 예방책으로, 도시 기반 시설 개선을 예로 들 수 있다. 직접적인 피해를 저감할 수 있지만 지속적인 효과를 기대하긴 어렵다. 반면 비구조적 대책은 꾸준한 재난 교육을 통해 재난 발생 시 대피 요령 및 대처 능력을 향상시켜 장기적이며 균형 있는 방재 체계를 구축한다. 한국은 일반적으로 비구조적 대책에 대한 체계가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에 공원의 영향권에서 수용할 수 있는 재난의 규모를 산정하고, 공원에 방재 기능과 재난 교육 기능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공간을 설계했다. ...(중략)...
*환경과조경388호(2020년8월호)수록본 일부
설계 그룹한 어소시에이트
시행 한국토지주택공사
시공 중흥토건
위치 경기도 화성시 동탄2신도시 목동 일원
면적
재난안전공원: 39,571m2
커스텀놀이터: 4,800m2
치마골천: 1,565m
사업 기간2015. 8. ~ 2020. 5.
준공2020. 5.
사진 유청오
그룹한 어소시에이트는1994년 창립 이래,도시인에게 자연과 호흡하는 아름다운 삶의 방식을 제시해 왔다.삭막한 주거 환경의 한복판에 고향에 대한 향수와 어린 시절의 추억,자연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가치를 구현하며,여유와 즐거움이 넘치는 문화 환경을 헌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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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마루 놀이터
Sanmaru Playground
서울의 옥상, 창신동
창신동은 맑은 바람과 높은 하늘을 만날 수 있는 서울의 옥상이다. 대상지는 서울 도심을 조망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에 위치하지만 가파른 도로와 밀집한 주택들로 인해 인근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 외엔 사람의 발길이 드물었다. 2007년 창신·숭인 일대의 재개발 계획이 추진되어 뉴타운 지구로 지정됐지만 2013년 해제되었으며, 이후 부지는 소규모 어린이 공원과 도시 텃밭, 주차장으로 이용됐다. 2015년 서울시는 창신·숭인 지역을 도시재생 선도지역으로 지정해 사업의 일환으로 아이들이 자유롭고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는 친환경 자연형 어린이 놀이터에 대한 설계를 공모했다.
아이들의 감성을 키우는 놀이터
자연 지형을 최대한 활용하고 주변 여건을 살려 지역 사회의 특색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개발로 인해 깎이고 사라진 창신동의 언덕과 산세를 다시 흙으로 치환해 연속적인 풍경을 조성하고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 수 있는 터를 마련했다. 일반적인 놀이터는 어린이를 대상화하고 미숙한 존재로 치부한다. 도널드 위니컷(D. W. Winnicott)은 “어린이들은 놀이를 통하여 타자성을 실험한다. 이를 통하여 타자와 만나는 법, 대화하는 법, 공감하는 법을 배워간다”고 말했다. 놀이터는 아이들이 자연과 접촉하며 감성을 키우는 공간이며, 다양한 놀이를 유발하는 창작 터이자 사회 생활 터가 되어야 한다. 아이들이 놀이 기구가 아닌 흙을 만지며 어울리고 자발적으로 새로운 놀이를 만들어가는 이용 방식을 구상했다. ...(중략)...
*환경과조경388호(2020년8월호)수록본 일부
설계 조진만건축사사무소,임옥상미술연구소,조경작업소 울
면적
대지 면적: 2,220m2
건축 면적: 815.75m2
위치 서울시 종로구 창신동
설계 기간2016~2018
완공2019
사진 유청오
조진만건축사사무소는2013년 서울에 설립된 건축설계사무소다.조진만은 한양대학교와 베이징 칭화대학교에서 수학하고 이로재와OMA에서 실무를 익혔다.한국 및 네덜란드 건축사를 취득하고 한양대학교 겸임교수이자 서울시 공공건축가로 활동하며 고가하부 종합 활용계획 수립,낙원상가 공용공간 개선 설계,창신동 채석장 전망대,산새마을 두레주택,한강 유수지 활용방안 연구,문화가 흐르는 서울광장,도시건축센터 운영계획 수립 등을 담당했다. 2016대한민국 공공건축상, 2017국토부 신진 건축가상, 2018서울시 건축상, 2019세계건축상 등 다수의 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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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치원문화정원
Jochiwon Cultural Garden
‘세종문화정원 조치원정수장 설계공모’에서 당선된 이엠에이건축사사무소로부터 협업을 제안받았다. 1935년부터 2013년까지 사용된 낡은 정수장을 펜스로 단절되어 있던 인접 공원과 통합하여 다양한 문화 활동을 누리는 도시 정원으로 재생시키는 프로젝트였다.
당선안은 북측 정수 시설과 서측 공원을 연결하는 순환 동선을 복잡한 외부 환경에 대응시켜, 다양한 문화 활동이 가능한 실용적 외부 공간을 계획하는 동시에 여러 개의 정원으로 연속된 공간과 경험을 제시했다. 이 같은 콘셉트와 기본 방향에 공감했고, 계획을 구체화하는 세 가지 전략을 설정했다.
첫째, 설계안의 의도를 명쾌하게 전달하고 구현한다. 외부 공간 계획을 최대한 수정하지 않고 설계안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최적의 재료와 톤 앤드 매너(tone and manner), 디테일(구현 방식)을 찾는 데 주력했다. 예를 들어 외부 공간을 하나로 엮는 핵심 동선인 순환 산책길의 재료를 콘크리트로 정하고, 멕시코 콘크리트 포장 기술을 보유한 회사를 섭외해 원하는 수준의 포장을 구현했다. 또한 외부 진입로의 디딤돌 포장은 순환 산책길과 구별되면서도 무난히 어울리도록 적절한 포장 종류와 패턴을 찾는 식으로 진행했다. ...(중략)...
*환경과조경388호(2020년8월호)수록본 일부
조경 설계 에이치이에이
건축 설계 이엠에이건축사사무소(이은경)
시공 동보건설, 성지
구조 설계 미래에스디지
기계 설계 청림설비기술사사무소
전기 설계 대경전기설계사무소
위치 세종시 조치원읍 수원지길 75-21
면적
대지 면적: 13,538m2
건축 면적: 1,156.26m2
설계 기간 2018. 3. ~ 2018. 8.
완공2019. 7.
사진 유청오, 텍스처 온 텍스처(texture on texture)
에이치이에이(HEA)는 도시 공간의 자연을 다루는 창의적 디자이너를 위한 디자인 회사다. 합리적이고 세심하며 감각적인 자연을 만드는 브랜드 그룹 자연감각을 공유하고 있다. 자연과 도시 라이프의 새로운 균형점을 모색하고 감각 차원의 자연 경험을 창출하기 위한 설계 및 디자인 빌드 과정에서 새로운 형식과 방법을 고민한다. 자연의 가치에 기반해 지속 가능한 사회적 영향력을 추구하며, 도시 자연의 핵심 가치를 발견하고 공유하는 일에 관심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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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포 글빛누리공원
Mangpo Geulbitnuri Park
2017년 가을, 망포4지구의 공원 설계를 의뢰받았다. 기존 설계안을 참신한 아이디어로 변경해주기를 요청했는데 일정이 매우 촉박했다. 하지만 공원 스케일의 공간을 설계할 좋은 기회였기에 프로젝트를 수락했다. 김현 교수와 대상지를 처음 방문했을 때 받은 인상은 ‘이대로도 좋다’였다. 방치된 농경지가 하늘과 나란히 놓여 탁 트인 초지가 펼쳐지고, 주변엔 대규모 주거 단지가 올라가고 있었다. 단지가 완공될 즈음 현재의 경관이 유지된다면 그 자체로 매력적인 공원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초지의 경관을 담는 도시공원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시간과 인력이 부족한 일정 속에서 조경가 조제와 협업해 계획안을 발전시켰다. 공원의 중심부는 기존의 땅을 최대한 보존하는 한편, 주변부는 새롭게 건설되는 주변 도시 맥락에 대응하도록 중심부와 구별했다. 더불어 중심부와 주변부, 주변부와 도시가 만나는 경계 공간의 성격을 정의해 나갔다. 공원 북서측에는 도서관이, 서측에는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들어설 예정이었으므로 이와 연계한 놀이, 운동, 휴게 공간을 서측 주변부에 연속적으로 계획했다. ...(중략)...
*환경과조경388호(2020년8월호)수록본 일부
조경 설계 에이치이에이, 조제(Joje)
조경 MP김현(단국대학교 교수)
조경 실시설계 서인조경
건축 설계 조호건축사사무소
시행 미드
시공 HDC현대산업개발, 롯데건설
위치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동탄지성로 549-15
면적
대지 면적: 45,107m2
건축 면적: 1,664m2
설계 기간2017. 11. ~ 2018. 5.
준공 2020. 5.
사진 유청오
에이치이에이(HEA)는 도시 공간의 자연을 다루는 창의적 디자이너를 위한 디자인 회사다.합리적이고 세심하며 감각적인 자연을 만드는 브랜드 그룹 자연감각을 공유하고 있다.자연과 도시 라이프의 새로운 균형점을 모색하고 감각 차원의 자연 경험을 창출하기 위한 설계 및 디자인 빌드 과정에서 새로운 형식과 방법을 고민한다.자연의 가치에 기반해 지속 가능한 사회적 영향력을 추구하며,도시 자연의 핵심 가치를 발견하고 공유하는 일에 관심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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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 롯데캐슬 골드포레
Yeonsan Lotte Castle Gold Forêt
연산 6구역은 남쪽의 금련산과 인접하여 쾌적한 환경에 놓여 있지만, 남북을 기준으로 단차가 20미터가 넘는 부지였다. 단지 남쪽에는 미관을 해치는 나지가 있어 이에 대한 해결책도 필요했다. 단차 극복과 차폐를 설계의 주안점으로 삼았다. 단지 중앙에 평지의 오픈 스페이스를 확보하고 외곽부와의 단차를 최소화하기로 했다. 동선을 1/12의 구배로 계획하고 옹벽 등 불량한 경관을 차폐하는 다양한 공간을 계획했다.
설계 콘셉트는 ‘블루 포레 파크(Blue Foret Park)’다. 풍성한 녹음의 숲과 푸른 물결을 담은 리조트풍의 외부 공간을 만들고자 다양한 특화 공간을 계획했다. 단지 중앙에 물을 다채롭게 경험할 수 있는 세 개의 수 공간(레이크플라자, 포레스트밸리가든, 블루펀가든)을, 주동 사이사이 공간에 특색을 더하는 네 가지 정원(그라스스트림가든, 갤러리 가든, 파인퓨어가든, 테라스가든)과 수종별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는 다섯 가지 테마 숲(사계숲, 파인숲, 동백숲, 굴거리나무숲, 배롱나무숲)을 마련했다.
금련산맥은 기장군의 달음산에서 영도구의 봉래산까지 이어지는 산맥이다. 대상지 배후에 위치한 금련산맥을 형상화한 석가산을 단지 중앙 광장(레이크플라자)에 조성하고, 이를 중심으로 공간을 전개해 나갔다. 거의 모든 주동에서 석가산을 조망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위치를 선정했다. 산맥의 형상을 구현하기 위해 면적 500제곱미터 이상의 산수 정원에 넉넉한 규모의 석가산과 생태 연못을 조성했다. 퍼걸러와 바 테이블, 티 하우스 등을 더해 이용자의 편의를 높이고, 정원을 한 바퀴 빙 둘러볼 수 있는 순환 산책로를 통해 다양한 공간을 하나로 엮었다.
레이크플라자와 인접한 두 가지 수공간은 공간의 연계성을 한층 높인다. 남쪽에는 풍부한 녹음과 자연형 계류가 있는 포레스트밸리가든을 마련했다. 마치 물이 석가산에서 흘러나오는 듯한 경관이 연출되며, 단지 중앙부터 외곽까지 구불구불하게 뻗어 나가는 녹지의 형상으로 좀 더 자연스러운 자연 풍경이 펼쳐진다. 북쪽에는 물놀이 시설을 갖춘 어린이 놀이터를 조성했다....(중략)...
*환경과조경388호(2020년8월호)수록본 일부
조경 설계 제이티이엔지, 롯데건설 디자인연구소
시공 롯데건설
조경 시공 경원필드
위치 부산시 연제구 연산동 834-4번지 일원
면적
대지 면적: 47,672m2(1,230세대)
조경 면적: 22,972m2
완공2020. 7.
사진 유청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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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로 상상하기, 픽셀로 그리기] 그래스호퍼 연대기 Ⅱ
변신 Ⅱ
카프카의 ‘변신’은 다양한 의미로 해석된다. 실제로 변한 것이 아니라 주인공 스스로가 변했다고 믿는 정신 착란 상태였다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던 그레고르가 경제력을 잃자 나태해져 있던 가족들이 지금까지의 고마움은 잊고 갑자기 벌레 보듯 그를 바라보게 된 거라는 해석도 있다. 변신은 물론이거니와 ‘학술원에의 보고’와 ‘시골의사’ 등 그의 다른 단편들에서도 카프카는 아무것도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물론 살면서 마주하는 모든 것들을 우리는 언제나 꽤 아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결국에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것처럼, 그런 방식이 그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위대한 표현 방법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스호퍼 연대기를 시작하고 나서 나 또한 실존적 모순에 빠지고 말았다. 내가 그래스호퍼를 알기 때문에 연재를 하는 것인지, 그래스호퍼에 대해 말해야 하기 때문에 안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그래스호퍼를 잘 안다고 추켜세워 주는 것을 사람들은 현대적인 유머처럼 즐기고 있는 것인지. 20대 이후에는 늘 결국 아무것도 의미 없을 거라는 근본적 허무를 가슴에 품고 살았다. 그러면서도 이 연재를 시작한 뒤 온갖 그래스호퍼 영상을 밤마다 보고 있는 나 자신이 이해가 안 간다. 이건 내가 아니다. 자각하지 못하고 있을 뿐 어느 시점에선가 정말 벌레로 변해버린 걸지도 모른다. 아니면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의 그 시선들이 사실은 진짜 나를 바라보고 있던 건지 도 모른다.
목록 Ⅱ
그래스호퍼로 할 수 있는 것들의 목록을 계속 나열해보겠다. 하지만 한 달쯤 지나 생각해보니 사실 그게 맞는 목록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그래스호퍼에 그래놀라와 요거트를 타서 단백질이 풍부한 저칼로리 디저트를 만든다고 한들 누가 뭐라고 할까. 그런 고민을 결국 떨쳐내지 못했다. 그래서 내가 그래스호퍼를 잘 알기 때문에 연재를 하는 사람인지, 잘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잘 알아야 하는 건지를 확인하기 위해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취하지 않고는 참을 수 없는 것들이 언제나 인생을 망치지만.
지난 연대기에서는 그래프 매퍼로 로프트를 하는 예시를 들어 파라메트릭 모델링을 진행하는 기초 구조를 설명했다. 이번에는 그 스크립트를 몇 단계 발전시켜 하나의 프로젝트 모델을 완성해보겠다. 그림 1은 스크립트의 전체 구조다. 00_Loft Base가 모델링의 기본 서피스를 구축하는 섹션이고, 여기에 논리 구조별로 01_Tween Surface, 02_Wood Generator, 03_Fish-Wave Maker 섹션을 단계적으로 구축해 모델을 발전시켰다. 1번부터 설명해보겠다.
트윈 서피스
트윈 서피스(Tween Surface)(그림 2)는 트윈 커브(Tween Curves)라는 명령을 사용해 두 개의 입력 커브 사이에 연속성을 갖는 새로운 면을 만드는 것이다. 여기서 제일 중요한 것은 선을 내가 그리는 것이 아니라 알고리즘을 통해 생성한다는 거고,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곡면의 연속성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라이노의 모든 커브 관련 명령어는 커브를 구성하는 정보들을 재구성해 새로운 결과 커브를 구축한다. 트윈 커브는 2개의 입력 커브 사이에 몇 개의 중간 커브를 만들지에 대한 정보를 입력하면 A에서 B로 향하여 형태와 곡률의 연속성을 유지하며 점진적으로 변하는 커브들을 만든다. 나는 우선 A와 B 사이의 가상의 면을 7개로 나누는 참조 값을 대입해(레인지, Range 사용) 6개의 중간 커브를 만들었다. 그리고 입력 커브들을 포함 0에서 7번까지 총 8개의 커브를 0에서 6번, 1에서 7번의 두 그룹으로 나누고(시프트, Shift 사용) 그래프트Graft를 사용해 데이터 구조를 맞춘 뒤 로프트로 7개의 기본 서피스를 만들었다. ...(중략)...
*환경과조경388호(2020년 8월호)수록본 일부
나성진은 서울대학교와 하버드GSD에서 조경을 전공했다.한국의 디자인 엘,뉴욕의 발모리 어소시에이츠(Balmori Associates)와 제임스 코너 필드 오퍼레이션스(JCFO)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고, West 8의 로테르담과 서울 지사를 오가며 용산공원 기본설계를 수행했다.한국,미국,유럽에서의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귀국 후 파트너들과 함께 얼라이브어스(ALIVEUS)라는 대안적 그룹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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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잇기] 흐릿한 고향 땅, 이야기 지층을 찾아서
내 고향이니까 다시 돌아왔죠
멀리 북한 땅까지 한눈에 보이는 소이산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철원평야는 과거 철원 시가지가 있던 곳이자 사방이 탁 트인 넓은 평원이다. 한국전쟁 때 피난 갔다 고향 땅이 그리워 다시 돌아왔다는 1928년생 임희순 할아버지는 더 이상 번성했던 구철원의 모습을 눈에 담을 수 없다. 한국전쟁을 겪으며 송두리째 사라진 고향은 이제 기억에만 존재해 이따금 꺼내 볼 뿐이다.
철원에서만 15대를 이어온 임 씨 집성촌에서 태어난 임 할아버지는 “철원은 대대로 땅이 비옥하고 좋아 쌀농사가 잘되서 어릴 적 가난하고 없이 살아도 흰 쌀밥만큼은 배부르게 먹었다”고 회상한다. 피난 가서 처음 보리밥을 접해 기름진 고향 땅이 더욱 그리웠다는 그는 친척이자 이웃이던 동네 사람들과 마당에 모여 쌀로 온갖 음식을 만들어 먹던 기억을 풀어놓는다. 마당의 모습, 가족 구성원, 멀리 보이던 석양과 초가집에 대해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이야기하며 마치 그날 그때로 되돌아간 듯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다.
철원역에 있는 쌀 저장 창고에 쌀 포대를 실어 나르던 일본군 트럭을 뒤따라 쫓던 기억부터, 학창 시절 철원역에서 금강산전기철도 타고 금강산으로 소풍을 갔던 추억, 해질녘 한달음에 뛰어올라 바라보던 숨 막히게 아름다운 철원평야와 시가지 풍경이 아직도 영화의 한 장면처럼 눈에 선하다. 모두 사라진 지 오래지만 할아버지에게는 절대로 잊히지 않는 애틋하고 번성했던 고향의 일상 풍경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일상의 장소, 철원평야
일상이란 매일 반복되는 생활을 의미한다. 개인과 역사, 사회뿐만 아니라 주변 환경과의 상호 관계성을 탐구하는 일상사 연구의 거장 알프 뤼트케는 역사 속 이름 없는 대다수 사람의 삶은 고난 속에서 일궈낸 생존의 역사이며 ‘역사 속의 일상들(historische altage)’이라 했다. 또한 역사학자 세르토(M. de Certeau)는 역사가들은 평범한 사람들의 흔적을 마을과 같은 일상의 장소에서 찾는다고 했다. 일상에 대한 탐구는 단순하거나 단편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고, 개인이 영향 받고 관계 맺는 생활 속 모든 대상과의 유기적 상호 관계를 세밀히 관찰해야 한다.
임 할아버지의 경험과 기억 속에 존재하는 고향의 마당, 골목, 평야, 석양의 모습은 유년 시절 일상의 장소에 관한 기억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소회가 담긴 이야기 속 철원역, 일본군, 쌀 저장 창고와 철원평야는 묵직한 역사의 흔적이기도 하다. 거시적인 역사의 흐름에 영향을 받은 개인의 소소한 이야기가 하나둘 모여 고향 땅의 흔적을 찾아주고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의 지층을 드러내는 중요 단서가 된다.
일상의 장소란 우리 주변의 평범한 환경이자, 자연적이고 문화적인 대물림 속에서 사람들과 관계 맺고 교류하며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환경을 말한다. 개인이 애착을 갖는 일상의 장소에 대한 경험과 기억을 수집하고 이를 역사·문화적 맥락에 놓는 일은 평범한 일상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다.
비무장지대DMZ 접경 지역인 철원은 정치적, 지리적 특성이 마을 주민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대표적 장소다. 남북이 번갈아 통치했던 수복 지구라는 특성과 1953년 정전협정 같은 사건은 철원의 역사·문화적 환경 조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굴곡진 역사의 철원평야를 터전으로 삼은 주민들의 일상이 녹아든 사라진 장소, 그곳에 얽힌 평범한 이웃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피할 수 없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 처절한 일상은 자유와 목숨을 담보로 한 것이었다. ...(중략)...
*환경과조경388호(2020년 8월호)수록본 일부
서준원은 열다섯 살부터 대학 졸업 후까지 뉴욕에서 약10년간 생활했다.파슨스 디자인 스쿨(Parsons School of Design)인테리어디자인학과에서 다양한 주거 공간에 대해 공부했고,한국인의 생활 환경에 대한 관심으로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석사를 마치고 박사를 수료했다. SOM뉴욕 지사, HLW한국 지사, GS건설,한옥문화원,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 등에서 약16년간 실내외 공간을 아우르는 디자이너이자 공간 연구자로 활동했다.한국인의 참다운 생활 환경을 위한 디자인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품고 다양성이 공존하는 도시 공간 연구를 위해 곳곳을 누비며‘공간 속 시간의 켜’를 발굴하는 작업을 긴 호흡으로 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