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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국토공원화운동을 진단한다 ; 좌담 - 전국토공원화운동을 진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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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국토공원화운동을 진단한다 ; 전문위원 시찰평가 - 충청도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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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국토공원화운동을 진단한다 ; 전문위원 시찰평가 - 강원도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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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국토공원화운동을 진단한다 ; 개선방안
    전국토공원화운동은 단기간 내에 끝나는 운동이 아니라, 영속화되는 운동이 되어야 하므로 국민들이 스스로 참여하는 운동으로 정착되어야 소기의 성과를 거양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하여 시범적으로 점화효과를 거양하기 위하여 금년 상반기 중에 관주도 사업으로 추진하였을 따름이다. 이 운동이 국민운동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이 운동의 근본취지를 국민들이 깊이 인식하고 가정·학교·마을·직장·단체에서부터 손쉬운 일 하나하나 단계적으로 실천되어야 한다. 이를 위하여 대국민홍보 및 교육을 지속적으로 전개하는 한편 지방별로 우수사례를 많이 발굴하여 확산 파급시키는 한편 읍·면별로 시범사업장을 선정, 단계적으로 추진해 나가야 하겠다.
  • 전국토공원화운동을 진단한다 ; 추진방향 및 현황
    우리나라는 지난 20여 년간 지속적인 경제개발정책을 추진하여 비약적인 국가발전을 이룩하였다. 60~70년대에 우리가 이룩한 고도의 경제성장은 비교적 짧은 기간 내에 국가의 총량적 발전을 가속화시켜 국민생활 수준을 획기적으로 향상시켰다. 이제 우리 국민은 그동안 우리가 성취한 어느 정도의 물질적 풍요와 경제적 여유를 바탕으로 「삶의 질」(Quality of life)의 향상을 보다 중시하는 가치관의 변화를 겪고 있다. 날로 고도화되고 있는 국민의 정서적, 심미적 욕구는 깨끗하고, 아름답고, 품위 있는 생활환경을 요구하게 되고, 이러한 의식의 변화는 필연적으로 「환경의 질」의 추구를 더욱 촉진시키게 된다. 즉 생활의 안정감과 쾌적함을 더하고 마음의 여유와 포근함을 줄 수 있는 환경을 갖추기 위해서 아름다운 꽃과 푸른 나무로 가꾸어진 생활공간이 필요한 것이며 소음, 악취, 매연, 색상의 부조화, 오·탁물 등 각종 생활장애 요소들을 하나하나 배재해 나가는 노력이 요청되는 것이다.
  • 전국토공원화운동을 진단한다 ; 외국의 국토가꾸기 - 재정지원을 통한 관광자원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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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국토공원화운동을 진단한다 ; 전문위원 시찰평가 - 경기, 서울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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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국토공원화운동을 진단한다 ; 전문위원 시찰평가 - 경상도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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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강 어떻게 살릴 것인가? ; 한강개발과 환경변화
    도시는 강을 끼고 있을 때 한층 그 겨관이 돗보여지고 평화로움을 느끼게 해준다. 강 기슭에서 바라다 보는 저 건너 거리의 풍경은 그처럼 아늑하게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가 없다. 이때문에 프랑스의 파리를 찾았던 사람들은 고국에 돌아와서도 세느강을 잊지 못한다. 유럽에서도 가장 멋진 도시적 센스가 넘쳐 흐르는 곳이 바로 세느강이기 때문이다. 강폭은 그리 넓지 않지만 풍부한 물은 깨끗하기만 하다. 강 양쪽 기슭에는 주요한 기념비적 건물인 노틀담사원 루불박물관 에펠탑 등이 줄비하게 늘어서 있고 다리의 훌륭한 디자인 또한 건축적공간을 형성하고 있다. 쉴 새 없이 오가는 유람선들, 거기에는 어린이들과 함께 나온 가족과 관광개그로 늘 붐비고 있고 유람선의 고동소리와 함께 세느강은 줄거운 회유공간이 되고 있다. ※ 키워드 : 한강, 세느강, 환경, 물 ※ 페이지 : 36 ~ 39
  • 한강 어떻게 살릴 것인가? ; 한강의 어제와 오늘
    한강을 지배하는 자가 나라를 지배한다는 말은 옛부터 있어 온 말이다. 그래서 삼국시대는 한강을 차지하기 위해 피를 흘리며 싸웠다. 한강을 가장 늦게 나라로 자리잡은 신라에게 넘어가게 된다. 그러나 신라가 한강을 차지한 뒤에도 한강을 빼앗기 위한 세나라의 싸움은 그칠 날이 없었고 신라는 고구려와 백제로부터 악착같이 한강을 지킨결과 풍부한 물적자원을 확보했을 뿐 아니라 당나라로 가는 길까지 열어 마침내 삼국통일을 이룩했으니, 한강을 차지하는 나라가 나라를 차지한다는 말은 이미 옛날에 사실로 나타난 셈이다. - 일찍이 한강은 중부와 동부 산악지대를 서울로 잇는 큰 물길이였으니, 이미 고려조 공양왕때 한강에 수첩을 설치한 것만 보아도 나라에서 이 강을 산업로로서 얼마나 중시했는가를 알 수 있다. 그때부터 한강 곳곳에 창을 설치, 강원도 충청도 경상도 일대에서 조세로 징수한 적곡을 저장하였다가 한강 수로를 이용하여 서울로 운반하고, 또 서울에서는 거꾸로 어물이며 소금, 그밖의 생활 필수품을 배어 실어 한강 상류 각 고장으로 날랐다, 한강 곳곳에 소금배에 얽힌 노래, 서울로 가는 적곡을 실은 배를 털던 강도들 이야기 따의가 많이 남아 있는것도 이래서이다.- 한강에서 가장 볼만한 것은 역시 뗏목이었다. 떼에는 궁궐떼, 가재목떼, 편목떼, 화목떼가 있었다. 궁궐떼, 가재목떼는 건축용 상질의 재목으로서 12자가 넘는것이 허다했으며, 하질의 편목떼나 화목때도 여섯자는 실히 되었으며, 상질 화목의 떼를 타는 쪽이 품삯이 더 높은 것은, 더 조심스럽게 다루지 않으면 안되었기 때문이다.더욱이 한강은 의암댐, 소양댐, 청평댐, 팔당댐, 충주댐 등으로 뗏목이니 소금배 커녕 꼴이 아예 바뀌고 말았다, 댐을 막을 강 유역에는 엄청나게 큰 육지 속의 바다가 생겨, 가령 소양호나 충주호는 배를 타고 백리를 훨씬 더 가야 끝에서 끝을 갈 형편이 되었다. - 문제는 소양댐, 춘천댐, 팔당댐 등으로 해서 몇 천의 자연부락이 물에 잠겼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이 삶의 터전을 잃느나는 눈에 보이는 문제만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오랜 삶의 모습, 삶의 뿌리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는 것은 당장의 삶의 터전을 읽는 것에 못지 않게 중요한 일이다. 문화란 하루 아침에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에 걸쳐 땀과 때로 얼룩지는 역사적 쌓임이기 때문이다. 양수리에서 팔당에 이르는 강유역 20리는 특히 선사시대의 유적이 집중되어 있던 지역이다, 그것이 연구되지도 않은채 물 속에서 잠기고 말았다. 팔당댐을 만들 때, 이댐이 가동하게 되면 선사시대의 유적들은 다 어떻게 할 것이냐는 걱정을 먼저한 것은 우리나라 사학자도 아니였으며, 댐관계자들은 더욱 아니였다. 부끄럽게도 그것은 댐을 만들기 위해 와서 일하고 있던 외국 기술자였던 것이다. ※ 키워드 : 한강, 한강의역사, 댐, 물길, 뗏목, 자연※ 페이지 : 26 ~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