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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동 코너 19, 25, 50
Corner 19, 25, 50
부동산 개발과 성수동
성수역과 뚝섬역 근방 성수동 일대는 도심권과 강남권을 잇는 서울 제3의 업무지구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해마다 오피스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어, 신축, 증축, 리모델링 등 건축 공사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부동산 개발 일변도의 성수동 풍경은 역설적으로 이 지역에 질 좋은 공공 공간을 새로 공급하는 가장 큰 동력이자 기회로 작용하고 있다. 흔히 공개공지로 불리는 공공 공간은 건축주에게 용적률 추가 획득 등 혜택을 줘 부동산 가치를 높일 기회를 제공하고, 이를 공공의 어메니티 증진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해 민과 관이 상호 윈윈하는 대표적 도시계획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성수동 일대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공개공지를 포함한) 민간의 질 좋은 외부 공간이 건축 및 인테리어와 더불어 부동산 가치를 올리는 핵심 요소임을 증명하고 있는 곳이다. 때문에 많은 부동산 디벨로퍼가 양질의 디자인을 제공하는 조경가와 건축가를 찾고 있으며, 이는 조경 분야의 양적, 질적 성장에 긍정적 영향을 끼치고 있다.
성수동 코너(이하 코너) 19, 25, 50 프로젝트도 이러한 상황에 기인한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다. 홍콩의 저명한 부동산 디벨로퍼가 한국에 현지 법인을 세우고 투자를 시작했는데, 첫 번째 타깃이 바로 성수동 일대였다. 성수동 일대 세 곳 필지를 구입해 오피스 건물을 신축하게 됐고 우리가 조경설계를 담당하게 됐다. 2018년 처음 설계에 착수했고 코너 50을 마지막으로 세 건물을 모두 준공한 시점이 2022년이니, 설계에서 시공까지 총 4년이 소비된 비교적 긴 호흡의 프로젝트다.
클라이언트가 요구한 외부 공간의 다양한 기능적·미적 요소들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설계를 한 우리가 직접 시공해야 함을 여러 사례를 보여주며 역설했고, 결국 동의를 얻어낼 수 있었다. 시공까지 맡게 되다 보니, 조경설계의 기본 프로세스(계획설계-기본설계-실시설계)를 다 밟은 뒤에도 건물 골조가 완성될 즈음부터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다양한 생각을 공사에 담아낼 추가 설계를 진행하게 됐다. 그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았으나, 클라이언트와 얼굴을 맞대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계획안을 다듬어 나간 것이 계획안의 완성도를 높이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공통의 조형 언어, 개별적 변주
세 대상지는 성수동 구석구석에 떨어져 있지만, 클라이언트는 프로젝트 기획 초기부터 세 건물을 연동해 사용하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나아가 세 프로젝트를 하나로 엮는 일련의 브랜딩 작업(글꼴, 캐릭터, 가구 등)을 통해 건물이 가질 유무형의 가치를 향상시키는 노력을 기울였다. 일례로 클라이언트는 코너 19, 25, 50을 상징하는 동물 캐릭터를 직접 디자인하고, 이를 건물 테넌트 구성 및 인테리어 콘셉트와 연결해 사용하기도 했다.
클라이언트는 건축과 조경에 비슷한 요청을 했는데, 세 건물이 공통의 조형 언어를 갖추되 각각의 개성을 담은 디자인을 원했다. 이에 건축가는 성수동을 상징하는 대표 소재인 벽돌 및 격자창을 공통 재료와 조형으로 선정해 디자인에 통일성을 부여했다. 우리는 전통 한옥 대청마루에서 발견되는 격자를 응용한 포장 패턴을 사용했다. 조형은 대청마루 격자 패턴으로 통일하되, 재료의 색상이나 마감에 차이를 두어 각 프로젝트의 개성은 살리는 방향으로 설계를 진행했다. 그 결과 코너 19는 진회색 콘크리트와 전벽돌, 코너 25는 사비석과 회벽돌, 코너 50은 회색 콘크리트와 고흥석이 변주를 위한 주 재료로 선정됐다.
쿨하고 힙한 이장님 강아지, 코너 19
코너 19는 세 프로젝트 중 대지 면적이 가장 작다. 클라이언트는 각 건물을 상징하는 동물 캐릭터와 콘셉트를 설정했는데, 코너 19는 ‘쿨하고 힙한 이장님 강아지’다. 이는 단순한 캐치프레이즈가 아니라 테넌트 타깃에 그대로 적용되는 중요 콘셉트다. 만화 카페, 멀티숍, 재즈바 등 성수동의 힙한 트렌드를 가장 잘 반영하는 상점들을 유치하기 위한 전략으로 연결된다.
조경설계의 물리적 대상은 지상 1층과 옥상이다. 지상 1층은 서울시 건축조례 상 ‘전면 조경’으로 명명된 곳 인데, 클라이언트는 이곳에 적절한 녹지를 조성하는 것을 조건으로 건물 용적률에 인센티브를 획득한 상태였다. 따라서 광장형 공간보다는 녹지와 어우러진 작은 쉼터를 만드는 설계가 필요했다. 꽃이 매력적인 서부해당화와 개회나무를 이용해 공간의 얼개를 짜고, 하부에는 설유화와 미스김라일락 등으로 풍성함을 더했다. 포장은 진회색 콘크리트 워싱 마감과 전벽돌을 이용해 공통의 조형 언어인 대청마루를 표현하고자 했다. 하지만 전용 면적이 좁은 관계로 이용자 시선에서는 잘 읽히지 않는다. 포장 가장자리에 설치한 석재 벤치는 고흥석 통석을 자연면 마감 처리해 사용했는데, 매끈한 질감이 넘쳐나는 성수동 도심과 대비되는 거친 질감을 의도적으로 드러내고자 했다.
옥상정원은 지상 1층 구성과 사뭇 다르다. 멀티숍, 재즈바, 다용도 오피스 등이 건물의 주요 테넌트로 합류할 것으로 예상되어 중소 규모의 다양한 모임을 돕는 몇 개의 포켓 공간을 만드는 것을 가장 큰 목표로 삼았다. 평상, 벤치, 선베드 등 포켓 공간과 연동해 독특한 공간감을 만들어낸 것이 큰 특징이다. 후면부 식재 공간에는 다간형 마가목을 공간의 전체 배경이 되는 주재료로 사용해 공간에 통일감과 구조미를 부여했다.
게으르고 느긋한 요리사 토끼, 코너 25
F&B를 주 테넌트 타깃으로 설정한 코너 25는 세 프로젝트 중 중간 규모 프로젝트다. 테넌트 타깃과 조경 계획의 자연스러운 연계를 위해 제안한 콘셉트는 ‘지상의 유실수정원’과 ‘옥상의 텃밭 정원(edible garden)’이다. 지상 1층에는 이른 봄에 연분홍색 꽃을 연달아 피우는 유실수(매화나무, 살구나무)와 벚나무을 식재했고 그늘이 드리우는 작은 휴게 공간을 마련했다. 건물 외벽은 황색벽돌로 치장 마감됐는데, 이 톤에 맞추기 위해 사비석 벤치를 선택했다. 벤치는 매화나무와 살구나무 아래에 위치해 잠시 앉아 쉴 수 있는 작은 쉼터가 된다.
옥상정원 중앙에 자리한 유리 온실에는 공유 주방이 들어설 예정인데, 주방에서 쓸 식재료를 옥상정원에서 직접 키울 것을 제안해 클라이언트의 호응을 얻었다. 다만 전체적으로 토심이 부족해 옥상정원의 큰 틀을 토심 확보를 위한 플랜터로 구상해야 했다. 영미권 텃밭정원에서 주로 볼 수 있는 물조리개, 삽 등 정원 도구의 재료인 함석을 주 재료로 사용했고, 옥상정원의 콘셉트를 은연중에 드러내는 함석 플랜터를 제안했다. 한국에서는 함석을 고속도로 가드레일이나 전봇대 외장재 등에 주로 쓰기 때문에 값싼 공업용 소재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영미권에서는 아름다운 도금 무늬와 풍화 후 나타나는 고급스러운 질감 때문에 도시 공간에서 흔히 쓰인다. 다만 우리조차 익숙한 소재가 아닌 까닭에 설계 도면에 스펙 명기가 부족했고, 금속 제작사의 노하우 부족, 디자인 감리 미흡 등의 이유로 인해 의도했던 마감 완성도에 다소 미치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꼼꼼하고 호기심 많은 만능 맥가이버 펭귄, 코너 50
코너 50은 세 프로젝트 중 가장 큰 규모다. 이곳은 코너 19와 코너 25 대지 면적을 합친 것보다 더 큰 면적을 가진 만큼, 지상 1층 공개공지도 비교적 넓었다. 두 개 옥상정원과 건물 층별로 조성된 테라스와 실내 정원까지, 조경에서 다룰 수 있는 인공 지반의 모든 유형을 고민한 프로젝트다.
공개공지를 포함한 지상 1층 외부 공간은 단정한 생울타리와 높은 캐노피를 형성하는 튤립나무로 공간의 기본적 틀을 짰다. 장식적이고 자잘한 디자인을 지양하고 공간 디자인 교과서에 나올 법한 ‘바닥과 천정의 형성’이라는 클래식한 원리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공간감을 만들어낼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코너 50의 공간감을 지배하는 요소는 단연 튤립나무다. 높은 지하고와 단정한 수형, 적벽돌과 병치되는 단풍까지. 우리가 원하는 코너 50 공개공지의 공간감을 만들기 위한 최적의 재료라 할 수 있다. 다만 설계 단계에서 이식의 어려움, 천근성, 하자 등 여러 가지 이슈로 의사결정 과정에서 많은 부침을 겪었다. 준공 뒤 1년 반이 지난 지금, 튤립나무의 생육은 많은 이들의 걱정과 달리 아주 양호하게 유지되고 있다.
튤립나무와 함께 지상 1층 디자인의 큰 단초로 제시한 것은 다름 아닌 단차다. 보도에서 건물 출입구까지 약 50cm 단차가 있었는데, 이를 몇 개 기단으로 나눠 넓은 광장형 공간으로 조성했다. 이 공간은 코너 프로젝트의 공통 조형 언어인 대청마루 패턴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곳으로 진회색 콘크리트 워싱 마감과 고흥석 판석을 패턴화해 적절히 사용했다.
건물 남측과 북측 옥상에는 각각 옥상정원이 있다. 남측 옥상정원은 깨끗한 판석 포장과 다간형 화살나무 캐노피로 이루어진 정갈한 휴게 공간으로 연출했고, 북측 옥상정원은 조망이 좋은 관계로 주변을 두루 전망할 수 있는 긴 앉음벽과 개방감 있는 화단 및 휴게 공간을 조성했다. 대조적 분위기의 두 옥상정원은 한층 차이를 두고 마주보고 있다. 관리차 옥상정원을 방문할 때마다 이용자 행태를 비교 관찰하는 편인데, 설계 당시 의도한 방식으로 두 정원을 잘 이용하고 있는 것을 목격할 때면 뿌듯함을 느낀다.
자본과 공공 공간
조경설계를 업으로 삼은 이래, 꽤 많은 부동산 디벨로퍼를 만나왔다. 그간의 경험을 통해 부동산 개발업은 ‘거대 자본을 투입해 단 시간에 건물을 올려 유무형 가치를 만든 뒤 이를 되팔아 일정 이상 수익을 남기는’ 냉철하고 차가운 분야라고 인식했었다. 하지만 이번 프로젝트의 클라이언트가 건축, 인테리어 및 조경 공간을 통해 여러 말랑말랑한 생각들을 만들고, 이를 사업에 효과적으로 이용하는 모습을 보고 우리의 인식이 꽤 구식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그들이 동시대 트렌드를 정확하게 읽고 이를 장소성과 연결해 마케팅 수단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은 조경설계를 하는 우리에게도 좋은 자극이 되었다. 이는 조경설계가 단순히 공간을 직조하는 설계 행위 자체뿐 아니라 민간 자본의 브랜딩, 마케팅 방식 등 주변 분야에도 지속적인 관심을 두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어지게 된다.
최근 많은 정책 결정자와 공공 공간, 정원, 녹지 확충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관 주도 아래 많은 예산이 투입되어 서울 시내에 수많은 공공 공간이 만들어지고 있다. 조경 분야 성장으로 보면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바꾸어 생각해보면, 공공 공간의 양적, 질적 수준을 높이는 작업을 순수히 공익적 차원, 관의 차원, 메가 프로젝트 차원에서만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부동산 가치를 높이기 위한 민간 투자자의 자발적 공공 공간 조성 욕구를 새로운 동력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게다가 민간은 공공보다 대체로 트렌드에 민감하기 때문에 디자인 방식이나 재료와 마감 선정에 있어 훨씬 더 자유로운 것이 사실이다. 새로운 시도가 질 좋은 공공 공간 탄생 가능성을 더 높인다. 하나둘 마치 점조직처럼 이곳저곳에 발생하는 성수동의 다양한 공공 공간이 성수동 일대 외부 공간의 전반적 완성도를 자연스럽게 올리고 있는 것이 좋은 예가 될 것이다. 도시민이 점심 식사 후 가볍게 커피 한 잔 사서 들러 쉴 수 있는 작은 공간이 서울 시내에 많이 필요하다. 조경가가 그 선두에서 큰 역할을 해 나갔으면 한다.
정욱주·원종호 인터뷰
도심 속자연을 설계하다
위치가 떨어져 있는 세 건물을 연동하고, 그 가치를 높이는 독특한 프로젝트다. 참여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정욱주(이하 정) 우란문화재단(2016)에서 시작된 인연이 성수동 코너(이하 코너) 프로젝트까지 이어졌다. 우란문화재단을 설계한 더시스템랩 건축사사무소와는 2014년부터 함께 일하고 있다. 미팅 차 더시스템랩에 방문했는데, 사무소 한편에서 장난감 레고로 만든 것 같은 건물 모형을 발견했다. 격자창과 벽돌을 활용해 건물 외형 디자인을 실험 중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자연스럽게 프로젝트 이야기를 하게 됐고 우리에게 조경설계를 제안하게 되면서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됐다.
세 건물을 하나의 프로젝트로 읽히게 하는 전략이 있다면?
원종호(이하 원) 클라이언트는 공통의 조형 언어를 갖추되 각각의 개성을 담은 디자인을 요구했다. 건축가는 벽돌과 격자창을 공통 재료로 선정했지만 세 건물 색은 다르게 했다. 우리도 콘크리트와 통석을 공통 요소로 활용하면서 대청마루의 패턴으로 조형을 통일했다. 그리고 건물과 조경 공간이 하나의 공간으로 읽힐 수 있게 건물 색감과 조화로운 조경설계를 했다. 코너 25 정원에는 노란색 계열의 건물 분위기에 맞추고자 사비석 통석 벤치를 배치했다. 코너 19는 전체적으로 흰색 계통인데, 같은 색을 쓰기보다 흰색과 대비되는 검은색을 활용한 설계를 하고자 했다. 그래서 진회색 콘크리트를 사용했다.
정 코너 50의 경우 법으로 정해진 생태면적률을 지켜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벽돌을 쓰지 않고 인조 화강석 블록을 사용해야 했다. 코너 50은 붉은색이 특징인데, 붉은 계열의 인조 화강석 블록으로 설계안을 만들어보니 원하는 방향과 맞지 않았다. 그래서 여러 테스트를 해보고 클라이언트와의 상의를 통해 회색 계열의 콘크리트를 사용하게 됐다. 지금 돌이켜보면 기존 녹지의 녹색과 건물의 붉은색 그리고 회색 포장이 건물과 외부 공간의 조화를 이뤄낸 것 같다.
세 곳 모두 옥상정원이 있다. 오피스의 특성에 따라 옥상정원을 달리 설계한 부분이 있다면?
정 옥상정원에서 최대한 다양한 행위를 할 수 있게 하고 싶었다. 세 옥상정원 중 가장 특색 있는 곳은 코너 25 옥상정원이다. 다른 옥상정원과 달리 이곳에는 유리 온실이 있어 이 온실을 공유 주방으로 활용할 수 있게 했다. 직장인에게 옥상에 올라와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회식을 즐기는 문화를 만들어주고 싶어 주방에서 사용하는 식자재를 키우는 텃밭정원을 콘셉트로 제안했다.
코너 19는 공유 오피스로 다양한 유형의 오피스가 입주할 예정이었다. 회사에서는 사람들이 모이는 일이 많은데 많은 인원을 수용할 공간이 부족하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옥상정원을 광장형 공간으로 조성했다. 긴 벤치를 배치하고 빈 공간을 확보해 크고 작은 행사를 옥상에서 개최할 수 있도록 했다. 현재는 벤치 앞에 여러 테이블이 놓여 있어 이곳에서 파티를 즐기기도 한다.
코너 50은 남측(12층)과 북측(13층) 두 곳에 옥상정원이 있다. 한 곳은 개별적으로 휴식을 취할 공간으로, 다른 한 곳은 여러 사람이 모여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하고자 했다. 특히 클라이언트가 옥상에서 바라보는 경관을 중요시 여겼다. 남측 옥상정원은 전망이 좋아 이곳에 앉아 풍경을 바라보며 쉴 수 있도록 설계했다. 바닥을 0.9m 들어 올려 계단을 만들고 스탠드를 조성해 높은 곳에서 먼 곳을 바라볼 수 있게 했다. 이 곳을 우리는 ‘멍석(멍 때리기+石)’이라 부른다.
코너 25 옥상정원의 화단 모양과 코너 19 옥상정원의 벤치 디테일이 독특하다.
원 코너 25 옥상정원 화단을 처음 계획할 때 여러 계획안을 그리고 고민했다. 그러던 중 정 교수님이 악어 등껍질 모양처럼 선을 그렸고 그 선형을 발전시켜 W모양의 화단 배치안이 완성됐다. 코너 25 옥상정원은 공유 주방이 있어 삼삼오오 모여 먹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포켓 공간을 만들고자 했는데, W 모양 덕에 화단 앞 틈새 공간이 생겼다 이 틈새에 벤치를 두고 테이블을 놓아 사람들이 모여 앉을 수 있는 공간을 조성했다.
정 코너 25 옥상이 ㄷ자 모양이어서 화단을 배치하기가 어려웠다. 처음 설계한 화단 위치는 지금과는 반대였다. 클라이언트가 도면을 보더니 배치를 바꾸자고 제안했다. 한강 앞 아파트에 살지 않는 이상 한강을 정면으로 바라보기 어려운데, 코너 25 옥상에서는 한강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클라이언트는 한강을 보며 식사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했고, 지금 위치로 화단을 옮겼다.
다양하고 재미있는 경험을 선사해주고 싶어서 벤치 모양도 많이 고민했다. 코너 19 옥상정원에는 세 개의 벤치가 있는데, 그중 두 벤치는 편히 누워 쉴 수 있도록 계획했다. 목업 작업을 통해 1대1 스케일로 곡선형 벤치 도면을 출력해봤다. 출력한 벤치에 직원들이 누워보면서 편안한 모양을 찾아갔다. 최대한 편안하게 누울 수 있도록, 그리고 누워서 하늘을 바라볼 수 있도록 각도를 조절하며 설치했다. 다른 하나는 평상 모양의 벤치로, 널브러져 누워 쉴 수 있도록 유도했다.
코너 19 지상 1층에 정원을 조성하기 위해 맞닿아 있던 현대테라스타워의 펜스를 철거하고 생울타리 식재를 제안한 점이 인상 깊다. 코너 50 옥상정원에 꽤 큰 화살나무를 심었는데 토심 확보가 어렵지는 않았나.
정 코너 19는 현대테라스타워 옆에 위치해 있어 두 건물의 지상 1층 공간이 맞닿아 있다. 두 공간을 구분하는 형광 녹색 펜스가 놓여 있었다. 다른 건물의 공간이지만 하나의 공간으로 보이게 하고 싶어 최연욱 이사(스타프라퍼티코리아)와 함께 현대테라스타워에 찾아가 펜스 철거를 제안했다. 현대테라스타워 지상 1층에 수생 비오톱 정원이 조성되어 있어 풀이 무성하게 자라는데 펜스가 풀의 성장을 억제할 뿐 아니라 시각적으로도 방해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펜스 철거 이유를 설명했다. 다행히 관계자의 동의를 얻을 수 있었고 펜스를 철거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새로운 인연이 되어 현대테라스타워 앞 공개공지 리모델링 조경설계를 담당하게 되었다.
원 코너 50 옥상정원을 처음 설계할 때 층층나무, 때죽나무, 쪽동백나무로 식재 계획을 세웠다. 계획안대로 시공을 하기 위해 적절한 나무를 찾아다녔는데, 우리가 원하는 수형의 나무가 없을 뿐더러 하자 발생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정 교수님과 함께 대안 수종을 고민했다. 그러다 서울시립발달장애인복지관에 심었던 화살나무가 떠올랐다.
정 2010년 서울그린트러스트의 의뢰로 만든 서울시립발달장애인복지관 정원의 수목들은 우리가 관리하고 있다. 그곳에 심겨진 화살나무 20여 그루가 재건축으로 인해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었다. 10년 동안 자란 화살나무는 수고가 4~5m이며 잎이 무성하다. 우리가 찾던 수형이었고, 폐기하기보다 활용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복지관측 동의를 얻어 10여 그루를 코너 50 옥상정원으로 옮겨 심었다. 복지관 재건축이 끝나면 새로운 공간에 맞는 수목을 기증할 예정이다.
원 화살나무는 느티나무, 소나무처럼 대형 교목은 아니지만 키가 높게 자란다는 걸 잘 모르고, 옥상정원 생육에도 적절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화살나무는 잔뿌리가 많아 활착이 잘되고 하자가 거의 없는 장점이 있어 옥상이란 환경에서도 잘 적응한다. 그래서 코너 50 옥상정원의 주요 수목으로 선정했다. 복지관에서 가지고 온 화살나무들은 현재 코너 50 옥상정원에서 잘 자라는 중이다.
DWP 하늘정원,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옥상정원 등 옥상정원 조경설계를 많이 했다. 옥상정원 설계에 접근하는 방식이 있는지 궁금하다.
정 옥상은 많은 잠재력을 품고 있는 곳이다. 높은 곳에 위치하니 전망이 좋고, 공공 공간이 될 수도, 건물 주인들만 이용할 수 있는 사적 공간이 될 수도 있다. 예전에는 조경설계 의뢰가 오면 지상 1층 공간에만 설계를 요구했고 옥상은 설계 대상이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다양한 공간에 조경설계를 하게 되고 지상 1층에서 실내 정원, 옥상정원까지 범위가 확대됐다.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옥상정원(2014)과 DWP 하늘정원(2017)은 옥상의 활용성을 알린 계기가 된 프로젝트다. DWP 하늘정원을 조성할 때 건축주가 옥상에 정원을 만든다는 것을 의아해했는데, 막상 완공된 정원을 보니 공간 활용 가치가 높아진 것 같다며 좋아했다. 전국의 옥상정원 개수가 늘어나게 되면서 옥상이 지닌 환경과 옥상의 활용성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고 건축과 함께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
원 옥상 조경설계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디자인 요소로 활용한다. 옥상은 인공 지반이므로 식물을 식재하기 위해 토심을 확보해야 한다. 토심을 마련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고심하는 데, 이것이 옥상정원 디자인의 출발점이 된다.
정 옥상정원을 조성할 때 주로 지면을 일정 높이로 띄워 토심을 확보한다.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옥상정원을 조성할 때 1.3m 정도 지면을 높여 나무가 자랄 수 있는 환경을 확보했을 뿐 아니라 계단, 스탠드 등을 조성할 수 있게 됐다. 코너 50 옥상정원에도 이와 같은 방식을 적용했다. 어떻게 보면 서울대학교 옥상정원의 미니 버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옥상이라는 제한된 공간의 활용도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찾아나가고 있다.
흔히 완공된 직후보다는 세월이 흐른 뒤 모습이 진정한 풍경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유지·관리 계획이 중요하다.
정 유지·관리는 또 다른 프로젝트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주로 클라이언트와 처음 상의할 때 완공 후 2~3년 동안 우리가 직접 관리하고 싶다고 제안한다. 2~3년을 제안하는 이유는 지주목 때문이다. 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활착해 잘 정착하기 위해선 2년 정도의 세월이 필요하고 지주목이 이 과정을 도와준다. 2년이 지나 지주목을 제거하면 설계 당시 기대했던 모습이 구현되었는지 정확히 확인할 수도 있고, 이 시기에 이르면 정원도 어느 정도 안정되어 클라이언트가 관리하기에 큰 무리가 없기도 하다.
원 도심에 위치한 정원을 잘 유지·관리하려면 관수가 중요하다. 예전에는 관수 시설이 선택 사항이었지만 이제는 필수 요소 중 하나다. 물을 주는 빈도, 물의 양, 스프링클러 사용법 등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으므로 클라이언트와 관리자에게 자세히 이야기해주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나면 관리자가 바뀌게 되고 관리가 잘 안 되는 일이 다반사다.유지·관리는 도심 속 정원뿐 아니라 다른 공원, 정원에도 해당되는 문제이므로 더 신경을 쓸 필요가 있다. 우리도 더 연구하고 공부해야 한다. 디자인 팽선민 사진 유청오
글 원종호 제이더블유랜드스케이프 소장
사진 유청오
조경설계 제이더블유랜드스케이프
조경시공
성수동 코너 19, 25: 제이더블유랜드스케이프, 광합성, 쌔즈믄
성수동 코너 50: 제이더블유랜드스케이프, 조경시공서화, 쌔즈믄
건축설계 더시스템랩 건축사사무소
발주 스타프라퍼티코리아
위치
성수동 코너 19: 서울시 성동구 성수동2가 314-19
성수동 코너 25: 서울시 성동구 성수동1가 656-25
성수동 코너 50: 서울시 성동구 성수동2가 273-50
대지면적
성수동 코너 19: 418m2
성수동 코너 25: 480m2
성수동 코너 50: 1,500m2
완공 2022. 6.
제이더블유랜드스케이프(JWL)는 2014년 설립한 조경설계사무소다. 도시 규모의 마스터플랜부터 작은 주택 정원까지 다양한 스케일의 공간을 계획하고 설계한다. 화려하고 눈에 띄는 디자인보다 대상지가 적절하게 작동할 정도의 적정 조경을 원칙으로 설계에 임하고 있다.
정욱주는 서울대학교 조경학과와 펜실베이니아대학교 디자인 대학원 조경학과를 졸업했다. WRT, Olin Partnership, Field Operations 등 국내외 설계사무소에서 10년가량 실무 경력을 쌓은 뒤, 2005년부터 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14년부터는 제이더블유랜드스케이프의 디자인 디렉터 활동을 겸하고 있다.
원종호는 서울대학교 조경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쳤다. KnL환경디자인스튜디오에서 설계의 기본을 익혔으며, 현대건설에 근무하며 해외 현장에서 시공 경험을 쌓았다. 현재는 제이더블유랜드스케이프의 소장으로 다양한 규모의 공간을 만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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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농업기술대 사클레 캠퍼스
AgroParisTech Saclay Campus
프랑스 그랑제콜(Grandes écoles) 파리농업기술대(Agro-ParisTech)와 프랑스 국립농업연구소(INRA)가 함께 이용할 새 캠퍼스는 에콜 폴리테크닉(École Polytechnique) 지역에 위치하며, 사클레 고원 과학 단지의 대표 프로젝트 중 하나가 됐다. 도시와 자연을 조화롭게 융합한 캠퍼스는 도시와 건축이 만드는 경관에 둘러싸여 있다. 이 경관은 고원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동시에 21세기 캠퍼스의 지향점을 보여준다.
정원의 원칙
프로젝트의 핵심은 정원으로 내부 공간을 연결하는 것이었다. 대상지는 이용자의 관점과 생물학적 접근으로 보면 살아있는 토양에 비유할 수 있다. 다양한 이용 목적을 수용하거나 조절하면서 공간을 계획했다. 전반적으로 단조로운 평지 안에 자유로운 활동을 수용하되 생태 환경과 이용 빈도를 고려한 녹지 공간을 조성해 공간의 다양성을 꾀했다. 또한 생물다양성 보존을 위해 각기 다른 생태적 환경을 가진 섬 형태의 녹지를 마련했다. 일부는 생물다양성 보호구역으로 지정해 기후 안정성을 꾀했다.
*환경과조경424호(2023년 8월호)수록본 일부
글 Agence Ter
Landscape Architect Agence Ter
Consultant Team GTM lead consultant, Engie Cofely, Marc MIMRAM Architecture, Lacoudre Architectures, WSP, TEM, Artelia, Frank Boutte, Cider, DAL Alternative, Topager
Client Campus Agro SAS
Location Saclay, France
Area 2.5ha
Design 2018~2022
Completion 2022
Photograph Aldo Jimenez
아장스 테르(Agence Ter)는 베르사유 국립조경학교에서 학위를 받은 세 명의 조경가 장 루이 니델(Jean-LouIs Knidel), 질 오투(Gilles Ottou), 위베르 기샤르(Hubert Guichard)가 1997년 공동으로 설립했다. 변화하는 거대한 경관과 토지, 자연, 도시, 혹은 대규모 상징적 공간, 공공 공간은 아장스의 관점과 사고를 구축하고 형성하는 영역이다. 그들의 작업은 맥락적, 시적, 감각적 전개를 중시한다. 생태적인 면뿐만 아니라 이용과 사회적 실천에도 주의를 기울이며 기억을 드러내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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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 우드
Wonder Wood
유틀란트(Jutland) 북쪽, 스쾨르핑 초등학교(Skørping Skole)에 위치한 원더 우드(Wonder Wood)는 전통적인 학교 운동장의 개념을 전복시키는 프로젝트다. 원더 우드는 아이들이 자연과 교감하고 학교 인근의 숲속으로 탐험과 여행을 떠나도록 유도한다. 탐험가가 된 아이들은 원더우드에서 뛰어 놀며 자연과 상호작용하고 자연에 대해 배우게 된다.
스쾨르핑과 개발회사는 좀처럼 움직이려 하지 않는 학생들, 특히 저학년 아이들만큼 뛰어노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12~16세의 아이들이 활발한 신체 활동을 즐기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또한 이 운동장을 학생뿐 아니라 스쾨르핑 지역사회 구성원에게 매력적인 공간으로 만들어 주말에도 사용되는 장소로 탈바꿈시키고자 했다. 이를 위해 지역 커뮤니티, 학교 교직원과 학생, 다수의 지역 이해관계자가 참여한 협의를 진행해 그들의 관심사와 일상생활에 필요한 기능이 무엇인지 파악했다.
다섯 가지 원칙
협의 내용과 스쾨르핑에서 아이들을 가르쳐온 교사들의 경험과 관찰 내용을 바탕으로 다섯 가지 설계 원칙을 세웠다.
첫째, 하나에서 여럿으로. 각 공간의 규모를 축소하고 여러 가지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함으로써 놀이터를 모든 사람이 자신이 원하는 놀이를 즐길 수 있는 다채로운 장소로 만든다.
둘째, 높은 경계선에서 낮은 가장자리로. 운동 경기장에 높은 벽 대신 낮은 울타리나 가장자리를 만든다. 이로써 사람들은 좀 더 쉽게 놀이터에 접근할 수 있게 되고, 더 기술적인 운동과 덜 까다로운 운동 모두를 할 수 있게 된다.
셋째, 관찰자에서 참여자로. 활동 공간 가까이에 거리 시설물을 배치하거나 활동 공간 자체에 좌석을 배치함으로써 관찰자가 참여자로 개입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다.
넷째, 벽에서 구역으로. 숲과 학교 사이에 큰 전환 구역을 조성함으로써 새로운 상호 작용이 이루어지는 자유 놀이 구역을 형성한다.
다섯째, 직선에서 순환고리로. 활동으로 가득 찬 루프를 생성한다. 이로써 놀이터는 시작과 끝이 있는 경로가 아닌, 끊임없이 변화하는 요소로 채워진 체험적 여정이 된다.
*환경과조경424호(2023년 8월호)수록본 일부
글 VEGA landskab
Landscape Architect VEGA landskab
Client Realdania, LOA, Rebild Municipality
Location Skørping, Rebild, Denmark
Area 20,000m2
Completion
Phase 1: 2013~2016, Phase 2: 2022
Photograph Simon Jeppesen, Leif Tuxen, VEGA landskab
베가 랜스게브(VEGA landskab)는 2009년 앤 갈마르(Anne Galmar)와앤 도르테 베스테르고르(Anne Dorthe Vestergaard)가 설립했으며, 덴마크 코펜하겐과 오르후스에 사무소를 두고 있다. 베가는 연결과 커뮤니티에 중점을 두고 모든 사람을 위한 야외 공간을 만든다. 경관이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을 연결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며 주변 환경과 관계를 맺는 동시에 일 년 내내 다양한 경험과 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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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반포 르엘
Sinbanpo LE|EL
신반포 르엘은 330세대로 규모가 작은 단지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분절된 작은 공간들을 확장해 하나의 큰 커뮤니티 공간으로 조성했다. 파티오 리미티드(Patio Limited)라는 콘셉트로 단지 내 안뜰에 작은 리조트와 같은 감성을 더하고자 했다.
워터 파티오
주민 공동 시설 주변은 이용성이 높은 공간으로 입주민의 요구를 반영해 수경 시설과 산책로 및 휴게 공간이 통합된 장소로 계획했다. 서리서리 물이 흘러 서릿개로 불렸던 반포지구의 지역 특성을 녹여내기 위해 하천의 흐름에 초점을 맞춰, 직선을 최대한 배제하고 물결의 곡선 형태로 전체 공간을 구성했다.
단조로울 수 있는 형태에 다양한 단차를 이용해 입체감을 더해 시선을 거스르지 않는 자연스러운 경관을 조성했고, 동선의 흐름 또한 물길의 흐름처럼 유연하게 유도했다. 수경 시설과 티하우스를 중심으로 산책로와 휴게 공간을 조성해 다양한 공간에서 휴식을 취하며 경관을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환경과조경424호(2023년 8월호)수록본 일부
글 장동혁 라모디자인그룹 설계팀장
김승태 롯데건설 조경토목팀장
사진 유청오
특화설계 라모디자인그룹
시공 롯데건설
조경 식재 및 시설 다원
휴게 시설 스페이스톡, 데오스웍스
놀이 시설 원앤티에스
위치 서울특별시 서초구 잠원동 52-2 외 1필지
규모 330세대
대지 면적 12,053.8m2
조경 면적 4,839.83m2
준공 2023. 6.
라모디자인그룹의 ‘라모’는 랜드스케이프와 모자이크의 합성어(landscape+mosaics)로 우리의 삶을 채우고 있는 많은 경관과 조각의 조합을 뜻한다. 2003년에 설립되어 마스터플랜부터 조경 및 도시계획, 주거 등 다양한 규모와 유형의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대지가 들려주는 소소한 속삭임, 사회적 요구, 변화하는 삶을 담아낼 수 있는 실질적이고 실용적인 설계를 하기 위해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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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리 롯데캐슬 스카이-L65
Cheongryangri Lotte Castle SKY-L65
청량리 롯데캐슬 스카이-L65는 동대문구 청량리4 재정비촉진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 신축 공사로 지어진 주상복합아파트로, 청량리역으로 바로 접근 가능한 구조를 갖추고 있다. 최근 청량리역이 서울 동북부 철도의 중심지로 변화함에 따라, 동대문구 재정비사업이 꾸준히 이슈로 떠오르며 주목을 받고 있다. 주상복합단지인 대상지는 지상부에는 공공성을 고려한 설계가 필요했다. 또한 약 6,000m2에 달하는 옥상 공간이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공동주택 조경과 차별화된 설계를진행했다.
지상층_클라우드 플라자
65층에 달하는 초고층 아파트에 걸린 청량한 바람 따라 구름이 흘러내린 정원이라는 콘셉트를 설정했다. 입구에 서면 한눈에 보이는 곳에 폰드를 단단이 쌓아 올려 유선형 구름 모양의 수반을 만들었다. 폰드 마감에 사용한 검은 석재는 반사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어 주변 풍경을 수반 안에 담는다. 본래 평평했던 녹지에는 언덕을 만들어 볼륨감을 형성하고, 주변에 큰 규격의 소나무를 교차 식재해 도심 한가운데 호수 안에 구름이 걸린 숲속을 연상케 하는 경관을 만들었다.
지상층_소나무숲 스탠드
정문 우측에 조성된 소나무 군락지 안의 느티나무는 아파트 단지의 랜드마크로 손꼽힌다. 이 느티나무는 수령이 500년 이상으로 추정되는 고목으로, 줄기와 가지가 뻗어나가는 형상에서 강렬한 힘이 느껴진다. 충청지방에서 굴취해온 이 수목은 수관 훼손을 최소화하기 위해 약 3일간의 훼손 방지 작업을 거쳐 단지에 들어서게 되었다. 주변에는 소나무 등 상록 교목을 배식해 겨울에도 황량하지 않은 풍경을 연출하고자 했다. 여름 느티나무의 청량한 녹음을 입주민들이 즐길 수 있도록 그늘이 드리우는 곳에 앉음벽을 조성했다.
*환경과조경424호(2023년 8월호)수록본 일부
글 노용연 우리엔디자인펌 설계팀장
문상용 롯데건설 조경토목팀장
사진 유청오
조경 기본설계 아텍플러스
조경 특화설계 우리엔디자인펌
건축 설계 해안건축, 건원건축
시공 롯데건설
조경 시공 다원
위치 서울시 동대문구 답십리로 27
대지 면적 26,330.2m2
조경 면적 6,477.94m2
준공 2023. 7.
우리엔디자인펌의 ‘우리엔’은 우리(Uri)와 환경(Environment)의 약자로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아름다운 환경을 지향하는 우리의 마음가짐이다. 우리엔이 꿈꾸는 세상은 삶이 빚어내는 정겨운 이야기를 담은 따스한 소통의 장이다. 자연 속에서 호흡하며, 그 안에서 살아가는 소소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한다. 나아가 무절제한 훼손으로부터 되살아나는 자연, 그 네트워크 속에서 인간과 자연이 더불어 사는 지속가능한 환경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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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호텔 부산 야외수영장
Lotte Hotel Busan Swimming Pool
한국 정원 문화와 수영장
땅콩 모양으로 배치한 철쭉 등 관목 군락, 다채롭게 어우러진 하부 식재 위에 자리 잡은 곡간형 조형 소나무, 그리고 그 속을 굽이치는 산책 동선. 한국 정원이라고 정의하기에는 너무 거창하지만 우리가 마주할 수 있는 일상적 조경 공간의 전형이자 익숙한 장면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렇듯 너무나도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어쩌면 클리셰라고 부를 수도 있을 정원의 모습에서 출발했다.
이 글은 우리가 제안한 수영장에 관한 이야기다. 대부분의 리조트와 호텔 수영장은 넓게 트여 개방감 있는 구성을 기반으로 그 자체의 스케일을 자랑하며 많은 사람이 모여 물놀이를 즐기는 활동적 공간으로 조성된다. 기존 수영장의 전형들에 대해서 반감이나 거부감은 없었다. 다만 이번 프로젝트의 목표는 정원에서 느낄 수 있는 자연과의 사색적 교감을 수영장 공간을 통해 더욱 극대화하는 것이었다. 자연과 깊게 교감하는 사유의 정원으로서의 수영장, 그 지점이 프로젝트의 시작점이었다.
온전히 몸을 담그는 자연
정원을 산책하며 식물을 바라보고 풀 내음을 맡으며 자연 속을 걷는 것은 매우 직접적인 자연과의 교류다. 이러한 교류를 프로젝트의 목표이자 공간에서 제공하는 주요 경험 중 하나로 만들고자 했다. 하지만 우리가 다뤄왔던, 혹은 완성도 있게 조성된 기존 정원에서 경험할 수 있는 자연과의 소통조차 여전히 자연이라는 대상과 일정한 거리감을 유지하며 간접적으로 이루어진다. 반면 사람들은 수영장이라는 유형의 공간에서 최대한 살갗이 자연과 맞닿은 채로 물 속에 들어가는 경험을 하게 된다. 물이라는 자연 그 자체에 온몸을 담그며 느끼게 된다. 이만큼 자연과 직접 강렬하게 교감하는 공간이 있을까.
오감의 활용과 공감각적 체험. 조경을 학문으로 접하면서부터 실무적으로 여러 난관을 돌파하고 있는 지금까지 설계를 하며 가장 자주,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하게 되는 이 개념을 실질적으로 적용할 기회라고 여겼다. 동시대의 사람들이 갈구하는 자연에 대한 요구를 채워주는 정원이라는 유형, 자연 소재 중 가장 매력적인 요소 중 하나면서도 다른 그 무엇보다도 자연 그 자체를 깊게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물의 공간 수영장. 이 둘을 접합하는 접근은 새로운 공간을 만들기 위한 우리의 핵심 전략이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설계 과정에 들어갔다.
산책하는 수영장
자연 속을 천천히 걷고 또 걸으며 만나는 정원으로 수영장을 만들어 내고 싶었다. 우선 공간 전체의 골격을 흔들어야 했다. 우리의 의지도 그러했지만 발주처의 요구 사항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필요했다. 앞서 제안된 해외 설계사무소의 설계안을 전면 재검토해야 했으며, 산책이 가능한 수영장의 레이아웃으로 구성했다. 정원은 크게 식물과 교감하는 구간, 물과 교감하는 구간으로 나뉘어 있으며 굽이굽이 산책하며 식물과 물을 만나게 되는 길을 정원 형태로 조성하였다. 그 길을 걷다 보면 어느 순간 물 속에 들어가 유영하기도 하고, 또 어느 지점에서는 불현듯 마주친 정원 속에서 쉴 수도 있다. 더불어 전체 공간 속 다양한 시점에서 미학적으로 만족할 수 있도록, 수영장이라는 주어진 프로그램을 더 풍성하게 경험하도록 섬 형태의 녹지들을 기준으로 서로 다른 공간들을 분리했다.
식재 설계
시공의 현실성을 고려해 교목의 수량을 극도로 제한했다. 목대가 굵은 다간형 교목을 심어 소수의 수량만 활용하면서 야생적이면서도 풍성한 공간감을 만들었다. 공간 전체를 시각적으로 장악하는 주요 수종으로 제주도에서 온 종가시나무를 선정했다. 다간형 상록수이며 제주도에서 자라는 뿌리가 깊지 않은 천근성 수종이라 현장의 현실적 어려움을 극복할 최적의 수종이었다. 본래 공간 전체에 단일 수종으로 종가시나무만 식재해 단일 경관이 주는 웅장함을 연출하고자 했으나, 방문객들에게 더 다양한 볼거리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호텔 측 의견을 수용했다. 종가시나무와 홍가시나무를 주요 대교목으로 정했고, 작은 포인트 수목으로 꽃이 여러 번 피는 산다화, 물가를 향해 조형적으로 가지를 뻗어내는 곡간형 해송을 중앙부에 식재했다.
예상보다 녹지 구간의 폭이 협소했다. 충족해야 하는 수영장 면적뿐 아니라 선베드 등의 좌석 수가 수영장 운영의 핵심적인 부분이기에 녹지 폭을 다소 좁게 계획할 수밖에 없었다. 불가피한 상황 속에서도 최대한 풍성한 자연을 연출하기 위해 부피감이 크면서도 거친 질감으로 야생미를 발휘하는 식물들이 필요했다. 대표적으로 팔손이는 볼륨감이 우수할 뿐 아니라 넓은 잎들이 겹쳐 깊이감을 자아내기에, 차지하는 면적에 비해 매우 깊고 풍성함을 연출하는 주요 수종으로 이용했다.
중앙부 섬 형태의 녹지 구간은 대부분 치자나무 한 수종으로 군락을 조성했다. 하나의 수종으로 구성한 군식은 구불구불한 형태미를 드러냄과 동시에 작은 면적이지만 대경관을 보여준다. 치자나무 군락 사이사이에 독립수로 식재한 설류화는 반듯한 초록의 면 위로 거친 질감이 대비를 이루며, 이른 봄에는 하얀 꽃의 덩어리가 되어 또 다른 경관 포인트를 만들어 낸다. 교목뿐 아니라 모든 관목과 지피 초화는 현장에서 설계사 감리 하에 위치와 방향을 정했다. 설계자로서 현장을 방문하고 손으로 드로잉하며 3D 프로그램을 이용해 세심하게 식재 수종과 위치를 정했지만, 배식만큼은 최종적으로 현장에서 결정한다. 실제 현장에서 느껴지는 공간감, 현장으로 배송된 실제 식물의 형태와 느낌 등을 면밀히 봐가며 오케스트라 지휘자처럼 식물들을 재배치했다. 완성된 후 정원의 식물은 언제나 그렇듯 우리가 의도한 것 그 이상의 아름다움을 스스로 만들어 간다.
포장과 시설물 설계
포장 소재 선정이 가장 큰 도전이었다. 맨발로 다녀야하는 수영장의 특성상, 일반적으로 쓰이는 데크나 타일 혹은 판석 석재가 아닌 철평석 부정형 판석 포장을 제안했다. 호텔 건물 7층에 위치한 400평 남짓한 공간에 깊은 자연을 연출하기 위해서는 거친 느낌의 포장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 설계자 스스로 확신을 갖기 위해 두세 달간 철평석 포장이 보일 때마다 맨발로 걸어보았다. 발주처와 운영팀 모두 수영장 운영 본연의 어려움을 감수하고 공간 전체의 콘셉트를 지키는 데 힘을 실어 주었다. 결국 흑색 철평석 포장이 수영장의 주요 포장재로 선정됐다.
벽면을 포함한 석재 시설물들의 디자인 콘셉트는 같은 석종에 다양한 마감 처리를 적용해 일관성을 갖춘 통일감 속에서 다양성을 추구하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벽체 마감은 포천석으로 통일하되 피죽 마감, 자연면 마감, 잔다듬, 거친 정다듬 등 다양한 마감과 줄눈 디자인을 통해 공간적 위계와 다양성을 부여했다. 수영장으로 진입하는 계단도 마치 평상을 연상시키는 패턴을 적용하고 다듬기 정도에 따라 마감의 세밀한 변화를 주었다. 일부 벽체는 스타코 마감과 종석긁기 마감의 거칠기 정도 차이로 패턴을 구현했다.
조경설계 팀이 건축과 인테리어를 포함한 프로젝트 총괄 PM 역할을 수행했다. 수영장과 맞닿은 레스토랑 건물, 스파 공간, 화장실과 사우나 시설 등 수영장을 이용하는 동안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건축물의 입면 설계까지 조경에서 제안했다. 조경 시설물은 기성품을 배제하고 제작에 기반한 설계를 진행해 구조 검토까지 포함한 과정을 수행하였고, 수영장에 놓일 야외 가구 선정도 조경이 진행했다. 타 분야에 대한 깊은 지식이 부족하지만 과업을 수행하면서 많은 부분에서 도움 받고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준 타 업체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정원으로서의 수영장’이라고 해야 할지 ‘조경으로서의 수영장’이라고 해야 할지 표현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조경과 정원을 분리하고 다른 개념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은데, 필자는 둘의 차이를 알지 못한다. 필자 개인의 취향에 따라 정원이라는 용어를 선택했는데 표현의 오해가 없길 바란다. 모든 과정에서 설계사의 본래 의도와 디자인 시각을 유지하는 것에 가치를 두고 노력한 발주처에 감사의 마음을 표한다. 더불어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해 준 이향지 팀장을 비롯한 팀원들과 설계를 진행하며 설계 의도부터 소재 선정까지 마음껏 디자인 유희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이었다. 활동적 물놀이 공간으로서의 수영장이 아닌 차분하고 사색적인 산책형 정원으로서의 수영장이 많은 사람에게 읽히고 이용되길 희망한다. 진행 금민수 디자인 팽선민
김태경·이향지 인터뷰
자연과 교감하는 도심 정원
주택정원, 공원, 리조트 등 다양한 장르의 프로젝트를 선보이고 있다. 이번 프로젝트를 맡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
김태경(이하 김) 해외 설계사무소의 설계안대로 공사가 진행되는 가운데, 식재 설계를 도와달라는 발주처의 요청으로 시작한 프로젝트였다. 다소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발주처가 수경 시설과 정원이 어우러진 다양한 사례를 보여주며 수영장을 새로운 콘셉트로 기획해 보자고 제안했다. 평소에 식물과 정원을 토대로 다른 장르와의 콜라보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재밌는 프로젝트가 될 것 같았다. 오픈된 넓은 풀과 데크가 있고, 가구들로 구성된 개방감 있는 수영장으로 만들고자 했던 기존 설계안을 재검토하며 새로운 방향의 설계안을 만들어 나갔다. 발주처와의 여러 논의를 통해서 자연과 교감하며 산책하는 정원을 보여주는 수영장을 완성할 수 있었다.
수영장을 정원으로 재해석한 것이 새롭다.
이향지(이하 이) 이용자들이 수영장에서 얻고자 하는 경험 자체를 다르게 해석해 봤다. 공간을 설계할 때 지역의 맥락을 고려해 정체성을 명확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부산이 바닷가 도시인만큼 바다의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요소를 사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상지는 바다에서 다소 떨어진 도심 지역이기에 오션뷰를 가진 호텔만큼 바다의 감흥을 느낄 수 없는 장소였다. 대신 도심 속 호텔에서 온전한 휴식을 취하고 산책 등 정적인 활동을 통해 마음의 치유를 얻을 수 있는 장소로 만들고자 했다. 이를 위해 선택한 요소가 바로 정원이었다. 일상 속 정원처럼 낯설지 않게 언덕을 만들거나 식재를 해 더욱 친밀하게 자연과 교감할 수 있도록 했다. 수영장을 일종의 도심 정원으로 만든 것이다. 물론 발주처가 이러한 콘셉트에 흔쾌히 동의하고 지원한 덕분에 가능했다.
김 조경은 자연과 교감하는 장소를 만드는 일이다. 자연과 교감한다는 것은 감각 기관을 통해 소통하는 일이다. 숲에 들어갔을 때 좋은 이유는 풀 내음과 피부를 스치는 바람, 적당한 온도와 습도 등 오감을 자극하는 감각적인 체험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집에서 키우는 화분을 통해 식물과 교감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입체적인 경험이다. 이러한 자연과의 교감을 체험할 수 있는 작은 스케일의 공간 중 하나가 정원이다.
마찬가지로 수영장은 물속에 몸을 담그며 물이란 자연과 자연스럽게 교감할 수 있는 장소다. 호텔에서 오래 전부터 수영장이 유용한 요소로 활용됐던 것도 이러한 점 때문이다. 우리는 이러한 특성을 적극 활용해 수영장과 정원의 결합이 가능할 것이라고 봤다. 둘 다 자연과의 교감이란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식물 사이사이를 걸으며 눈높이에서 볼 수 있는 식물과 교감하고, 물에 몸을 담근 채 걸으며 자연과 교감할 수 있는 ‘산책의 정원’을 만들고자 했다.
정원 공간을 섬 형태 녹지를 중심으로 나눈 이유는 무엇인가?
이 섬 형태로 녹지를 설계할 때 굉장히 여러 번 그리면서 각도와 위치 등을 고심했다. 우선 섬 형태로 녹지를 구성한 이유는 산책할 때 시야의 개폐를 통해 다양한 경험을 주고 싶었다. 숲 사이로 들어가서 걷기도 하고, 어느 곳에서는 물이 잘 안 보이기도 하고, 탁 트인 수공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등 작은 공간이지만 다양한 보행 경험을 느낄 수 있게 하고 싶었다.
또한 산책할 때 걷는 재미를 주고 싶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걷고자 하는 모든 길과 모든 요소가 보이면 재미가 없을 것 같았다. 모든 길이 뻔히 보이는 길을 걷는 게 아니라 걷다가 새로운 공간을 마주치도록 굽이치는 곡선 형태로 중심 동선을 조성했다. 수영하며 뛰어놀 수 있는 수영장보다 유유히 산책하며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바랐다. 물속에서도 걸으면서 공간을 둘러볼 수 있게 일반 수영장에서 볼 수 있는 장방형이 아닌 곡선 형태로 수영장 풀을 만들었다. 특정한 포인트가 아니면 수공간 전부를 볼 수 없기 때문에 물 안에서 극적으로 자연을 느끼며 산책할 수 있다.
김 대상지는 지상층이 아니라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호텔 7층 옥상으로, 주변의 빌딩 숲에 둘러싸여 있어서 밖의 전망보다는 공간 내부에서의 경험이 중요했다. 내부에 들어와서 섰을 때 진짜 숲속에 있는 느낌을 주기 위해 섬 형태의 녹지를 중첩해 녹지 너머로 서 있는 위치에 따라 공간이 가려지고 보이도록 연출했다. 굽이치는 동선을 중심으로 다채로운 공간을 구성해 다양한 전이 경험을 유도했다.
자쿠지 등 다양한 공간을 어떤 방식과 기준으로 구성했나?
이 전체적으로 한눈에 보일 수 있도록 연출했다. 수영장의 자쿠지에서 키즈존까지 이어지는 곡선의 형태가 흐름이 끊기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했다. 자쿠지는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는 행위가 일어나는 장소인 만큼 정원의 가장 깊은 숲에 배치해 온전히 그 시간을 즐길 수 있게 했다. 선베드 등 수영장에는 필수적으로 들어가야 하는 요소가 있다 보니 녹지의 폭이 자연스럽게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식물의 높이나 식물의 잎사귀들이 만들어 내는 밀도를 통해서 공간의 깊이감을 형성해 작은 공간에서도 밀도 있게 자연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수영장 자체는 인공 지반 위에 조성된 테라스 공간이지만, 전체적으로 실제 자연처럼 느껴지게 만들고 싶었다. 플랜터에 심긴 나무가 주는 인위적인 느낌을 덜어내기 위해서 토심에 상관없이 플랜터를 사용하지 않고 식재했다. 진짜 숲처럼 느껴질 수 있도록 땅에 뿌리 내린 나무의 형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줬다.
건축물의 입면 등에 여러 가지 마감 방식으로 패턴을 구현했다.
김 조경가의 역할 중 하나는 자연을 재해석한 공간을 통해 자연을 극적으로 경험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번 프로젝트는 단일 석종을 이용해 건축물 입면부터 시작해서 바닥 포장까지 다양한 방식의 마감으로 패턴을 구현했다. 이를 통해 자연 속 계류의 경관을 표현하고 싶었다. 서울을 벗어나 한적한 시골의 계류에 가면 군데군데 나무도 있고, 깎아지른 큰 절벽도 있고, 석종은 같지만 마감이나 형태, 물성, 색감이 전부 다 다른 돌들이 흩어져 있지 않나. 이처럼 자연 속에서 단일한 석종의 다양한 마감이 보여주는 아름다움을 모티프로 삼아 이 프로젝트에 구현했다. 건축과의 협의를 통해 밝은색 화강석으로 석종을 통일하고, 마감과 패턴은 각 공간의 위계에 맞게 다양하게 처리해서 하나의 덩어리로 이루어지지만 단조롭지 않도록 만들었다.
거친 질감의 철평석 부정형 판석을 수영장에 사용하면서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이 자연을 구현한 정원 속에서 딛는 땅들이 거친 자연 안에 놓인 대지처럼 느껴지기를 바라며 철평석 부정형 판석으로 바닥 포장을 했다. 철평석이란 소재를 수영장에 적용하면 운영상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어 한강 반포지구에 있는 다양한 철평석 포장을 맨발로 걸어보며 철평석 특유의 질감을 느껴봤다. 온몸으로 경험해 보면서 이 정원이 가진 특유의 자연 느낌을 살릴 수 있는 소재라고 생각했다. 예상했던 우려와 달리 발주처에서 운영상 어려움보다는 공간의 완성도에 대한 적극적인 의지를 보여주었고,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 보자며 의기투합한 덕분에 철평석 부정형 판석을 바닥 포장으로 사용할 수 있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건축과 인테리어를 아우르는 PM을 맡았다.
이 프로젝트의 특 수성 덕분이다. 수영장을 중심으로 수영장을 둘러싼 건물 벽면을 포함한 전체적인 공간을 리모델링하는 프로젝트였다. 그래서 전체 디자인이 통일성을 갖도록 조율하는 총괄 디자이너가 필요했다. 발주처도 수영장과 건물을 따로 분리하지 말고 정원으로서 기능할 수영장의 배경을 맘껏 제안해 보라고 독려하면서 건축과 인테리어를 아우르는 역할을 맡게 됐다.
특별히 PM이란 공식 직함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주도적으로 프로젝트를 이끌면서 디자인을 조율하는 역할을 맡게 됐다. 이런 역할을 처음 맡게 되면서 많이 배우기도 했고, 많이 반성했다. 건축과 인테리어등 타 분야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다 보니 어려운 점이 많았는데, 다행히 건축 쪽이 많은 도움을 줬다. 앞으로 PM과 같이 주도적인 역할을 맡을 수 있으려면 타 분야에 대한 지식 습득이 필수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다년간 다뤘던 주택정원 프로젝트에서 영향을 받은 부분이 있나?
김 기본적으로 주택정원은 스토리나 맥락, 이용자, 땅의 위치 등 모든 것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설계할 때 실제 보이는 공간감이나 디테일이 중요하다. 또한 일상의 공간이기 때문에 튀는 요소 없이 점점 예뻐지고 질리지 않게 하는 요소를 적절히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작은 규모의 상업 공간에서는 주택정원에서 경험했던 공간감이나 디테일을 많이 사용하지만, 그리는 선이나 디자인은 조금 더 과감하게 시도하는 편이다. 또한 365일 내내 머무는 공간이 아니기 때문에 공간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해서 이용자들이 짧은 시간에 감흥을 충분히 느낄 수 있도록 설계하려고 한다.
상업 공간을 설계할 때 공간의 첫인상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들었다. 이 프로젝트에서는 첫인상을 설계에 어떻게 반영했나?
김 전형적인 수영장의 풍경을 정원으로 해석해 전반적으로 독특한 경관을 자아낸다. 수영장인데 수영장 같지 않다고 할까. 하지만 이러한 경관을 진입하는 입구부터 알려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6층에서 수영장으로 올라오는 계단은 보통의 호텔 로비처럼 만들었다.
수영장으로 진입하는 입구에서 자연적인 요소를 최대한 배제하며 공간에 대한 힌트를 일절 주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계단으로 올라와서 수영장을 처음으로 마주할 때 생각지도 못한 의외의 경관이 펼쳐지도록 만들었다. 이용자에게 공간의 첫인상을 서프라이즈 선물처럼 주고 싶었다.
최근 리조트, 호텔 등 큰 규모의 상업 공간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러한 공간에서 나타나는 현재 조경 트렌드나 특징이 있다면 무엇인가?
이 조경이 일종의 프리미엄 역할을 한다. 호텔이나 리조트는 객실에서 보이는 전망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모든 객실이 좋은 전망을 전부 가질 수 없다. 좋은 뷰를 가진 객실은 높은 가격으로 책정된다. 상대적으로 그렇지 못한 객실의 가치를 좀 더 높이기 위한 전략으로 조경을 활용한다. 높은 가격을 책정할 정도의 수준은 아니지만, 뷰로 인한 객실 간의 간극을 줄일 수 있는 프리미엄 장치로 작동하는 것 같다.
호텔 등 상업 공간에서 조경 공간이 필요한 이유는?
이 조경 공간은 상업 공간에서 가성비 있는 투자다. 건축이나 인테리어와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큰 공간적 경험을 창출한다. 특히 요새는 카페, 복합문화공간 등 다양한 상업 공간이 많이 생겨나면서 정말 차별화된 경험을 제공하는 공간을 만들기가 쉽지 않다.
반면에 도심 내에서 자연과 교감할 수 있는 시간과 장소는 턱없이 부족하다. 따라서 작은 면적이라도 자연과 교감을 꾀할 수 있고, 휴식을 즐길 수 있는 조경 공간이 상업 공간에 들어서면 이용자들을 끌어들이는 좋은 요소가 될 것이다. 특히 요즘 세대는 좋은 장소에 가서 좋은 시간을 보낸 걸 사진으로 남기고 SNS에 공유하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그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조경 공간이라면 상업 공간의 매출과도 연계되는 매력적인 요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김 상업 공간에서 조경의 역할이 중요하다. 특히 호텔이나 리조트는 그 지역에 놀러 오거나 쉬러 오는 사람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는 장소다. 예외적인 경우도 있겠지만, 가급적 호텔과 리조트는 그 지역만의 이야기가 담긴 공간이어야 한다. 조경은 지역의 기후나 지역적 맥락을 고려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호텔이나 리조트 조경 공간을 작업할 때는 공간을 통해 그 지역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그 지역에 대한 이해를 돕는 스토리텔러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디자인 팽선민 사진 유청오, 부산 롯데호텔+얼라이브어스
글 김태경 얼라이브어스 소장
조경설계 얼라이브어스
발주 부산 롯데호텔
시공 경원필드
CM 롯데CM 사업본부
위치 부산시 부산진구 가야대로 772
면적 1,600m2
완공 2022. 12.
사진 부산 롯데호텔+얼라이브어스
얼라이브어스(ALIVEUS)는 현대 도시를 만들어가는 건축, 조경, 도시재생, 문화 기획에 기반을 둔 디자이너 그룹이다. 평등한 커뮤니케이션과 유연한 관계를 바탕으로 이상적인 학제간 디자인을 추구하며, 이러한 방식이 도시의 다양한 문맥에 더 좋은 디자인 해법을 제시할 수 있다고 믿는다.
김태경은 고려대학교에서 생태공학을, 하버드에서 조경학을 전공했다. 미국과 한국의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2017년부터 얼라이브어스를 운영하고 있다. 디테일과 식재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섬세하게 다듬어진 공간의 미감에 주목한다.
이향지는 동아대학교에서 조경학을 전공한 후, 중국에서 기초 실무를 경험하고 한국에서 다년간 설계 경력을 쌓고 있다. 현재는 얼라이브어스의 구성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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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지
Hoji
하늘 호 땅 지: 굿모닝 굿나이트
호지는 시골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건물을 재해석한 공간이다. 호지에는 손님이 머무는 공간인 둥근집, 긴집, 팔각집, 이렇게 세 가지 형태의 건물이 있다. 그 옆에 호지를 운영하는 가족의 집과 모두가 함께 이용하는 공용 공간을 합해 다섯 개의 건물로 구성된다. 모든 집은 땅에서 허리춤 높이로 떠 있고, 같은 높이의 둥근 길이 다섯 개의 집들과 이어져 있다. 적당한 거리감으로 떨어져 각각이 분리되기도, 둥근 원을 따라 하나로 연결되기도 한다. 가장 편안한 사람과 각자의 시간을 보내다가도, 해질녘 산책을 하거나 아침을 먹으러 이동하는 길에는 둥근 원 위를 따라 이웃과 스치며 걷게 되는데, 마치 담이 없는 작은 마을 같다(호지 홈페이지의 소개 글 일부).
건축 이야기
서재원 소장(에이오에이아키텍츠건축사사무소)의 설계 의도를 정리해보면, 최근 흔히 만들어지는 고급스러움을 지향하는 공간과 과한 인테리어에서 벗어나 조용한 시골 마을 속 소박하고 겸손한 공간을 만들고자 한 것이다.
그는 호지가 머무는 사람들에게 추억을 상기하게 하는 동시에 주변 경관과 잘 어울리는 공간이 되기를 바랐다. 그래서 호지의 건물이 주변 집들보다 크면 안 됐고, 세련되기보다는 둔탁해야 했으며, 시골에서 흔히 보던 것이었으면 했다. 시골에서 보이는 창고나 비닐하우스, 원두막은 대게 자립한 오브제 형태가 많은데, 이를 독립된 형태의 건물로 표현했다. 이 건물들이 재현이 아닌, 적당히 거리를 두면서도 아주 생경하지 않은, 머무는 사람들이 저마다의 기억을 소환하는 정도이길 원했다. 그 결과 건축물은 중립적인 재료로 만들어졌으며, 간단한 대칭을 따르는 디자인으로 구성됐다. 투박한 외부와 반대로 온통 나무로 덮인 내부 공간에서는 첼로 악기상자 안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다(『Space』 2022년 12월호 참조).
정원의 방향성: 식물의 터전
건축과 맥을 같이 하고자 호지의 정원은 스타일이나 조형성에 초점을 두지 않고, 생물과 환경, 그 속의 연결과 다양성에 기반을 둔 곳으로 계획했다. 본래 터가 가진 특성과 변화된 환경에 어우러지는 다양한 식물을 선별해 심었다. 이곳에 뿌린 내린 식물은 곤충, 새, 야생 생물과 함께 먹이사슬의 연결고리 안에서 살아가게 된다. 새로 심은 식물이 주변 식물과 경쟁, 때로는 공생하며 그들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도록 계획했다. 새순이 돋아 성장하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잎이 갈변해 떨어지기까지의 모습은 우리의 삶을 닮기도 했다. 현재 우리가 보는 호지 정원의 모습도 이들이 살아가는 생의 한순간이다. 그 모습이 아름답든 추하든 그저 삶과 죽음 사이의 과정일 뿐이며, 이를 통해 사람들이 보이는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해보길 바랐다.
발아래 정원
땅과 물길, 여린 풀들 위로 살며시 놓인 듯한 둥근 길
위에 서면 발아래의 정원을 내려다볼 수 있다. 건축이
계획한 떠 있는 둥근 길은 식물이 살고 있는 공간에 대
한 존중으로 읽힌다. 정원에 들어가 좀 더 가까이에서
식물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것도 좋지만, 커다란 원형의
길을 따라 걸으며 주변 풍경과 식물의 시퀀스 변화를
보는 것도 꽤 즐겁다. 떠 있는 둥근 길 밑에는 그늘이
생겨 작은 그늘 식물이 살기에 좋은 환경이 된다. 주인
집 강아지도 뜨거운 날에는 이 길 밑을 찾는다.
식재
식재
수목 선정 기준은 마을 경관을 이루는 수종과 지역 자
생종이었다. 정원의 구조와 배경이 될 가장 큰 교목은
주변 마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수종으로 선정해 주변
과 잘 어우러지게 했다. 그리고 강릉 지역에서 잘 적응
하고 자생하는 수종을 택했다. 예를 들면, 타입 1-마을
경관 수목(회화나무, 이팝나무, 단풍나무 외), 타입 2-마을 경관
수목이면서 독립수(계수나무, 중국단풍, 외), 타입 3-마을 경
관 수목이면서 과실수(자두나무, 감나무, 산수유 외), 타입 4-
지역 자생종(마가목, 개암나무, 참죽나무, 국수나무, 옻나무 외), 타
입 5-지역 자생종이면서 대상지 주변에서 흔히 보이는
수종(버드나무, 싸리나무 외), 타입 6-지역 자생종이면서 상
록이며 차폐 기능을 가진 수목 등 마을 경관과 지역
자생종의 기준에 맞는 수종을 선정하고 각 수목의 특
성을 구분해 정리했다.
대상지를 입구 중심으로 봤을 때 오른쪽은 논 경관, 위
쪽은 계절마다 감자, 파 등이 심겨 바뀌는 밭 경관을
가지고 있다. 이를 고려해 초화와 관목을 심었다. 둥근
길의 오른쪽 부분에 논 경관의 연장 요소로서 진퍼리
새와 솔새를 식재했다. 밭 경관을 올려다보는 팔각집,
긴집, 둥근집의 바깥 마당에는 초화 식재를 최대한 줄
이고 밭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시선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도록 대관목을 심었다.
땅을 잔디와 토끼풀로 덮고자 했는데, 공사비 절감을
위해 씨 뿌리는 방법도 계획했다. 씨를 뿌리는 식재 방
식은 발아가 돼서 자라기까지 물과 잡초 관리에 심혈
을 기울여야 한다. 호지 정원의 핵심인 중앙은 야생의
아름다움을 보여줄 수 있는 식물로 구성했다. 건축의
콘크리트가 가진 거친 질감과 섬세한 식물 잎의 부드
러움이 균형을 이루길 바랐고, 정원이 아닌 자연의 모
습과 더 가까웠으면 했다. 땅의 건습도에 따라 내건성
식물(순비기나무, 매화오리나무, 바이텍스, 붓들레아, 좀새풀, 멍석딸기,
사초류, 톱풀 외), 호습성 식물(버드나무, 골풀, 창포류, 꼬랑사초 외),
그늘 식물(고사리류, 풍지초, 휴케라 외)을 식재했다. 주인집과
가장 가까운 구간에는 허브 식물 위주로 심었다.
물웅덩이: 둠벙
호지의 터는 본래 그늘이 없는, 뜨겁고 매우 건조한 땅
이었다. 토질이 모래 같았고 그래서 물이 빨리 빠질 것
으로 판단했다. 그런데 물을 좋아하는 버드나무와 사
초류, 여러 잡풀이 자생하고 있었고 비가 오면 빗물이
며칠을 빠지지 않고 고이는 구간이 있었다. 지하수위가
매우 낮아, 비가 올 때 순간적으로 지하수위가 높아지
며 물이 고이게 되는 현상으로 보였다. 모래 성질의 흙
은 물을 쉽게 빠지게 하는 만큼 물이 거꾸로 타고 오르
기도 좋았던 것이다. 방수를 하지 않았는데도 비가 많
이 오면 물이 열흘 이상 차 있기도 했다. 그래서 자연
스럽게 물이 고이도록 일부 구간의 땅을 꺼트려 물이
담기는 그릇, 즉 물웅덩이를 만들었다. 물이 찬 웅덩이
의 모습은 주변 농경지에서 볼 수 있는 ‘둠벙’ 같기도
하다.
자연으로의 정원
호지의 건축주는 숙박 시설을 지으며 자본주의의 최고
가치인 효율성과 생산성을 따지지 않았다. 건물의 수와
배치뿐 아니라 대지의 중앙 공간을 자연에 양보했다.
그로 인해 돈으로 따질 수 없는 더 많은 가치를 얻었다
고 생각한다. 호지 정원은 점차 힘의 질서에 따라 자연의 모습으로 바뀌어갈 것이다. 배식 계획의 아름다움
을 유지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통제와 가꿈이 필요하
겠지만, 특별한 형태를 만들지 않았기에 조성 초기의
모습을 유지하려 애쓸 이유도 없다. 강한 것은 억제하
고 약한 것은 도와주며 균형을 잡아가면 될 일이다. 그리고 호지 정원에는 조명이 없어 밤에 잘 보이지 않는다. 대신 수많은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하늘에서 쏟아
지는 듯한 별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글 오현주, 이범수 안마당더랩 소장
조경 설계 안마당더랩
조경 시공 안마당더랩
건축 에이오에이아키텍츠건축사사무소
위치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신왕길 78
대지 면적 3,361m2
건축 면적 436.86m2
조경 면적 2,924.15m2
완공 2022. 6.
사진 박성욱, 진효숙
안마당더랩(Anmadang The Lab)은 이범수, 오현주가 2016년 설립한 디자인 작업실이다. 소속 디자이너들과 함께 외부 공간을 기획, 설계, 시공하고 있다. 자연의 질서를 따르고 여러 가치를 존중하는 설계를 통해 균형감을 잃지 않는, 선명하지만 따뜻한 공간을 만들어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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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도문 속초
Hadomun Sokcho
모든 것의 처음, 목련
하도문 속초는 카페와 스테이가 결합된 자연친화적 휴양복합시설이다. 시내에서 차를 타고 15분 이상 달려야 만날 수 있는 이곳은 속초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흔히 기대하는 시원한 오션뷰나 장엄한 마운틴뷰와는 거리가 먼 조용한 시골 마을 안쪽에 자리 잡고 있다. 대신 예전 땅 주인이 딸을 낳은 후 집 주변에 심었다는 십여 그루 중 유일하게 30년 넘는 세월을 버티고 살아 남은 거대한 목련이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지구상 최초의 현화 식물인 목련이 지닌 원초적 매력은 서울 토박이 건축주를 이곳까지 불러들이기에 충분했다.
개인적으로도 6년간 근무했던 회사를 나와 홀로서기를 시작한 후 처음 수행한 프로젝트이자 오랫동안 떠나 있던 고향 강원도에 만드는 공간이기에 더욱 애정을 갖고 작업에 임했다.
상승과 하강의 시퀀스
프로젝트명인 동시에 초기 공간 이름을 매그놀리아(Magnolia)(목련)로 정했던 만큼 모든 계획의 방향은 목련 중심으로 결정됐다. 진입도로와 접한 남쪽을 제외한 바깥은 야트막한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여 있고 이부지 위로 중정을 품은 ㄷ자 모양의 건축물이 얹혔다.
목련을 그대로 두고 바닥 레벨이 결정되어 도로와 약 6m의 높이 차가 생겼고, 대중교통과 도보로 접근이 어려운 곳에 위치한 만큼 최대한 많은 주차 공간을 확보하다 보니 3m 높이의 옹벽과 계단이 생겼다. 여기에 목련의 뿌리 손상을 최소화하기 위해 60cm 높이의 툇마루까지 더해져 이동에 불리한 요소들이 늘어났다. 하지만 이를 적절히 활용해 감각의 밀도를 압축적으로 높여 나가고자 했다.
멀리 돌아가도록 조성된 진입로에는 디딤석을 놓아 걷는 속도를 늦추고, 툇마루와 이어진 계단을 오르고 나서야 가려져 있던 빗물 정원이 보이도록 했다. 카페 창과 정원 사이로 난 회랑을 따라 걸으며 부지의 가장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서야 건물 입구를 만날 수 있다. 독채로 운영되는 2층 스테이의 문을 열고 현관을 지나 내부의 꺾인 계단을 오르다보면 숨겨져 있던 또 하나의 자그마한 중정이 반겨주며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1층과는 다른 시선으로 창 너머의 목련을 마주하게 된다. 발 아래로 빗물 정원이 내려다보이는 기다란 복도를 따라 걷다보면 노천탕과 이어진 테라스 정원이 나타나 상승을 통한 극적 체험의 시퀀스가 완성된다.
*환경과조경423호(2023년 7월호)수록본 일부
글 신준호 연수당 공동대표
조경 설계 연수당(신준호)
조경 시공 연수당(신준호, 조현철), 마이조경(김명윤, 손호성), 서권식, 강문권
건축 설계 정초이웍스(정대건, 최수희)
건축 시공 우리마을A&C
위치 강원도 속초시 하도문길 50
대지 면적 1,590m2
건축 면적 412m2
연면적 525m2
완공 2022
사진 권보준, 신준호, 박선영
‘자연스럽게 심는 집’이란 의미를 지닌 연수당(然樹堂)은 자연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아름다움의 원리를 탐구하며 지속가능한 공간을 계획하고 만드는 집단이다. 제주도 서귀포에 베이스캠프를 두고 떠돌며 다양한 생명이 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지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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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온
Waon
휴가차 제주에 오는 방문객의 목적은 대부분 비슷하다. 각박한 생활을 뒤로하고 여유로운 삶을 즐기기 위함이지 않을까. 조금 더 나아가면 도시 생활의 피로함을 치유하고 싶은 마음도 있을 것이다. 제주도 조천읍 함덕 해변, 마을 안쪽 골목길 끝에 자리한 제주 돌집 ‘와온’은 치유를 테마로 한 스테이다. 지친 삶을 치유할 수 있는 테라피 스테이로 설계됐다.
처음 방문한 대상지는 여느 제주 돌집과 마찬가지로 안거리와 밖거리로 구분되어 있었다. 외부 공간은 크게 진입 정원, 중정, 안거리의 후정, 밖거리의 후정으로 나눠볼 수 있었다. 골목을 지나 대문을 열면 보이는 진입 정원을 지나 안거리와 밖거리로 들어서는 구조였다. 안거리와 밖거리 사이에는 건물 크기만큼의 중정이 있었다.
건축 계획에 따라, 스테이 안거리는 편안한 휴식을 취하며 일상생활을 하는 침실과 주방, 욕실로 구성된 컴포트하우스가 되었다. 밖거리인 테라피하우스는 치유와 회복을 하는 온탕과 사우나, 차를 즐기는 다실이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됐다.
치유와 회복이라는 테마가 명확한 만큼 정원도 테라피 그 자체가 되기를 바라며 진입 정원과 중정을 허브로 가득 채웠다. 수종은 단순하게 티트리, 로즈마리, 타임을 선택했다. 대문을 열면 군식된 티트리로 인해 눈앞 가득 초록을 마주하게 된다. 티트리 하부에는 제주의 돌을 배치하고 크리핑 로즈마리, 고사리를 식재해 제주의 자연 소재를 기반으로 한 티트리 숲을 조성했다.
티트리 숲을 지나면 탁 트인 시야 아래로 로즈마리가 가득한 허브정원이 나타난다. 중정인 허브정원에는 높이 2m 정도 되는 호주아카시아를 심었고, 그 외 키 큰 나무는 심지 않았다. 컴포트하우스와 테라스하우스의 창을 통해 봤을 때 답답하지 않은 경관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중층 식재로 로즈마리를, 하층 식재로 크리핑 로즈마리와 타임을 심었다. 모두 사계절 내내 초록을 유지하는 수종으로, 어느 계절에 오더라도 초록을 마주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환경과조경423호(2023년 7월호)수록본 일부
글 송이슬 듀송플레이스 소장
조경 설계 듀송플레이스
조경 시공 듀송플레이스
건축 설계 지랩건축사사무소
건축 시공 진용건설
위치 제주도 제주시 조천읍 함덕리 3181
면적 304m2
완공 2019
사진 이병근, texture on texture
듀송플레이스는 자연 소재를 활용해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조경 디자인·시공 회사다. 현장을 직접 마주한 뒤 콘셉트와 기능, 아름다움을 고려해 그곳만의 오롯한 분위기를 설계해 만들고 유지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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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령지헌
House of the Moon
마을이 반달 모양이라서 이름 지어진 월령리는 선인장 군락지로 유명하다. 월령리 마을 안 좁은 골목길 끝에 월령지헌이 자리 잡고 있다. 오래전부터 이곳을 지켜온 고목이 입구에서부터 반겨준다. 옛 돌집을 밝은 색감으로 마감하고 개조한 스테이 내부는 고재와 빈티지 가구로 가득 차 있다. 스테이 내부처럼 외부 공간도 옛것과 새것이 어우러지도록 꾸렸다. 기존의 큰 나무와 선인장이 가득한 옛 모습을 보존하고, 새로운 수종인 호주아카시아와 유칼립투스, 그라스를 심어 항상 푸르고 따뜻한 분위기의 정원을 조성했다.
긴 골목을 따라 펼쳐지는 제주 경관을 감상하며 스테이의 대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여느 제주 풍경이 아닌 이국적 경관이 펼쳐지도록 제주도에서 흔히 쓰지 않는 수종을 선택했다. 올리브나무, 호주아카시아, 유칼립투스 등 채도가 낮은 수종을 심어 무겁지 않으면서 밝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 나무들은 상록수지만 국내에서 많이 쓰는 수종과는 색감과 톤이 다르기 때문에 정원을 처음 마주보는 사람들에게 낯선 느낌을 주기에 좋다. 하부에는 그라스와 허브를 식재해 이국적 이미지를 극대화했으며, 선인장이 가득했던 후면 담장에는 유카를 심어 제주의 경관을 적절히 섞어주었다.
스테이 외부 공간을 조성할 때 유념하는 것 중 하나는 머무는 동안 다양한 경관을 보고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독채 스테이의 경우, 대부분의 시간을 스테이에서만 보내기 때문에 외부 공간에서 여러 가지를 경험하며 답답함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데 고민을 많이 한다. 월령지헌의 경우 제주 마을의 골목을 지나 대문을 열고 들어오면 제주다움과 다른 이국적 정원을 마주할 수 있도록 했고, 중정의 잔디를 지나면 제주 돌담과 선인장 등 제주의 경관을 볼 수 있도록 연출했다.
두 개의 정원을 이어주는 건 중간에 위치한 잔디와 전체를 아우르는 그라스들이다. 평편한 잔디는 두 경관을 부드럽게 연결하는 경관이 되며, 하층에 심긴 그라스는 서로 다른 두 경관을 하나로 묶어준다.
*환경과조경423호(2023년 7월호)수록본 일부
글 송이슬 듀송플레이스 소장
조경 설계 듀송플레이스
조경 시공 듀송플레이스
건축 설계 탠크리에이티브
건축 시공 탠크리에이티브
위치 제주도 제주시 한림읍 월령1길 13-5
면적 575.88m2
완공 2021
사진 최윤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