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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목장
2011년 초록이 지천이던 여름, 백두대간이 남쪽으로 뻗어내려 오면서 오대산에서 병풍처럼 펼쳐졌다가 동쪽으로 휘어져 선자령과 대관령으로 이어지는 능선에서 다시 서쪽으로 갈려 나온 완만한 능선을 따라 초지가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 골짜기의 중턱에 우사와 방목한 소들이 있었다. 건너편 능선에는 목구조와 블록으로 지어진 오래된 우사가 지어진 당시의 모습 그대로 남아 있었고, 그 안에는 소들이 있었다. 구름이 수시로 모습을 바꾸는 하늘 아래 바다처럼 너울지는 초지와 소 울음소리, 풍력발전기의 두툼한 굉음이 들리는 낯선 풍경의 역사는 1970년대 중반 목장이 들어서면서 만들어졌고, 지난 40여 년간 공식적으로 외부에 개방된 적은 없었다. 이 300만 평의 목장을 일반인에게 개방하기로 하면서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새가 날개를 펼친 형상의 목장은 송천이 만든 계곡을 사이에 두고 두 개의 단지로 나뉘어져 있다. 설계가 진행되는 동안 1단지에 신축 우사가 지어지면서 2단지의 우사는 폐쇄되었지만 초지에서는 여전히 일 년에 두 번 이상 수확한다. 목장 내에 있는 연수원은 제한적으로만 이용되고, 목우원이라 이름 붙은 정원은 조심스럽게 손질되어 왔지만 이용한 지 오래되어 쇠락해버렸다. 초지와 초지를 잇던 촘촘한 작업로는 목장일이 기계화되면서 주요 동선을 제외하고는 이용되지 않았다. 흔적만 남은 길 위에는 온갖 풀이 우거져 발길을 놓을 수 없었고, 목장 여기저기에 오래된 살림살이가 버려진 듯 적재되어 있었다. 목장에는 생산지로서 정돈되지 않은 어수선함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먼풍경의 호방함과, 목축과 목초 재배를 위해 필요한 시설과 숙소 이외에는 군더더기가 없는 목장은 시간의 켜가 쌓이고 지켜진 또 다른 자연이었다. 개방에 따른 공간의 재구성에는 목장의 고유한 기능인 목축과 꼴牧草의 생산을 유지하면서 어떻게 관람객을 맞이할 것인가, 목장이 가진 압도적인 풍광과 훼손되지 않은 자연을 어떻게 온전히 느끼게 할 것인가, 그리고 이제는 쇠락해버린 정원을 어떻게 다시 살려낼 것인가 하는 실질적인 과제가 있었다. 무엇보다도 어떤 방식으로 개방을 할 것인지, 거기에 따른 개발의 수위와 방식을 정하는 것이 필요했다.
기존 목장의 경관을 해치지 않으면서 새로운 공간으로 계획하는 일은 목장 고유의 기능을 유지하고 그것을 통해 자연스럽게 스스로를 드러내는 일이다. 이를 위해 공간을 기능적으로 분리하여, 목축을 위한 기존 공간에 체험 목장의 다양한 프로그램 공간이 충돌하지 않고 엮일 수 있도록 재구성하고 시설을 집중하였다. 여기에 작업로를 매개로 공간을 엮었다. 또 기존 시설과 지형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새로운 기능의 공간으로 바꾸고, 쓰임의 가변성을 위해 비우거나 내버려두기도 했다. 이렇게 무심한 풍경 속으로 들어가 그 자체가 되거나 풍경을 마주한 자리에 ‘작은’―물론 ‘작다’는 것은 상대적 의미지만― 표식만 놓아 고개 들어 바라보게 하였다. 목장의 축척과 사람의 축척을 이어주는 매개로서 시설물을 놓고, 이것들이 이 낯선 풍광에 어울리는 새로운 경험을 위한 트랜지스터(transistor)가 되기를 희망했다. 그리고 단계별 개발을 위해 실행의 우선순위에 따라 실시설계와 공사가 진행됐다.
글 이수학
사진 유청오
설계 및 감리 아뜰리에나무(이수학)
1·2단지 마스터플랜계획: 서은진, 조정원
1단지 실시설계: 윤중열, 신상의, 서은진, 송현정
1단지 산책로 실시설계: 윤중열, 송현정, 박윤하
감리: 윤중열
시공 한일개발
발주 한일산업, 우덕축산
위치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
면적
1 ·2단지 마스터플랜계획: 11,032,700m2
1단지 실시설계: 5,889,700m2 중 초지마당,
놀이정원, 목우원, 우사구역, 산책로
준공 2014. 08.
아뜰리에나무는 처녀자리 초은하단의 국부은하단 속 오리온팔 끝에 있는 태양계 중심별의 세 번째 행성에 뿌리를 내린 나무, 이 우주의 극소미립자로, 우주 시간의 찰나(刹那)로 지내면서 정원, 마당, 공원, 광장, 거리, 마을, 도시의 하부 구조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꿈은 당신의 마음에 나무 한 그루 심는 것. 마음의 뜰과 숲을 만드는 일, 그리고 그 풍경 속으로 함께 들어가는일. 불시착한 2002년부터 체류기간이 길어지고 있다. www.ateliernam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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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외고 트위트 가든
관계의 재구성, 그리고 모두의 정원
이화학원, 첫 만남
창립 128년이라는 오랜 역사를 가진 이화학원 캠퍼스는 정동 일대의 도심에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푸른 녹음이 우거져 있다. 오래된 수목들이 시간의 흐름을 말해주고 있고, 이곳을 찾아드는 다양한 산새들은 재잘재잘 거리며 교정을 날아다닌다.
이화학원은 1886년 선교사인 스크랜턴(William Benton Scranton, 1832~1909년) 여사가 창설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교육 기관으로, 고종 황제가 이화학당이라는 이름을 하사하였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유서 깊은 장소임을 입증하듯, 캠퍼스 곳곳에는 세월의 두께를 간직하고 있는 석등, 벅수, 물확 등이 놓여 있다. 하지만, 그 위치가 산발적이었고, 시설들과 어우러지는 연출이 좀 아쉬웠다. 특히 가장 큰 문제로 여겨진 부분은 지형이었다. 스크랜턴관 앞 오픈스페이스는 비교적 넓은 공간임에도 세 개의 단으로 나뉘어 분절되어 있었고, 시야도 답답했다. 가장 높은 단은 경사면에 여러 수목들이 밀집되어 있고, 중간 단은 넓은 잔디밭으로 되어 있었으나 주변을 장미로 둘러싸 그 안으로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았다. 가장 낮은 단은 노후화된 콘크리트 휴게 시설 몇 세트가 놓여 있는 열악한 휴게 공간이었다.
이러한 대상지의 문제점과 잠재력을 파악한 후, 감수성이 예민한 여고생들의 생기발랄한 활동들을 담아 내고, 자부심을 느끼는 캠퍼스가 될 수 있도록 기본 구상을 발전시키기 시작했다.
학교 측의 첫 번째 요구는 집중 강우 시 스크랜턴관 안으로 빗물이 들이치는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것이었다. 기본적으로 땅의 레벨이 미세하게 건물 방향으로 낮아지는 형세였고, 배수 시스템의 문제 때문에 호우 시 빗물이 건물 내부로 들어가거나 지상으로 넘쳐나고 있었다. 잔디밭 하부의 토양은 배수가 잘 되지 않아 식물 생육도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우리는 땅을 전반적으로 다듬기로 하였다. 표면 배수가 건물 쪽이 아닌 운동장 쪽으로 흐르도록 유도하면서, 단차를 줄여 기능적으로 사용가능한 터를 만들기 위해 레벨을 조정했다. 또한 배수 시스템을 파악하고 기존 우수관을 활용하되 우수와 오수는 분리되도록 계획함으로써 악취를 제거하고, 잔디밭 하부에는 맹암거를, 건물 전면부와 경사지 하단부에는 트렌치 등을 추가 설치하였다. 이러한 방법으로 대상지의 물리적 관계를 재구성함으로써 쾌적한 환경을 위한 기반을 다졌다.
글 김이식
사진 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
조경 설계 조경설계 이화원
토목 설계 유진ENG
시공 대현조경
발주 학교법인 이화학원
위치 서울특별시 중구 순화동 1-1
면적 9,200m2
완공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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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힐 가든
이음의 풍경을 거닐다
갈대 언덕, 힐 가든The Hill Garden
노원구는 과거 노들평야를 중심으로 농업이 이루어지던 지역으로, 역마들이 뛰놀던 갈대 평원이었다. 1980년대 이후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며 도시 기반시설이 갖추어지기 시작했고, 점차 주거단지의 규모가 커지면서 지역의 밀도가 높아졌다. 하지만 가파른 인구 증가에 비해, 지역의 문화시설은 이에 미치지 못해 문화적 혜택이 많이 부족한 실정이었다. 시간이 지나며 지역 활성화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동시에 서울시립미술관의 수장고가 부족해 이를 해결하기 위한 미술관 신축 문제가 대두되었다. 이에 서울시는 서울동북부 지역의 부족한 문화시설 확충을 위해 노원구 중계동 등나무근린공원 내의 부지를 새로운 미술관 건립 대상지로 선정했고, 시립미술관
강북 분관에 대한 설계공모를 진행, 삼우종합건축사사무소의 설계안을 당선작으로 뽑았다.당선안은 기존의 근린공원 내에 자그마한 동산을 계획하고, 공원에서 시작된 녹지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미술관으로 이어지는 자연친화적인 공간 계획을 담고 있다. 미술관은 언덕 위에 고즈넉이 앉은 하얀 미술 상자의 형태로, 다양한 동선을 유입해 미술관과 공원이 만날 수 있게 했다. 미술관을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 사람과 자연 그리고 예술이 함께 숨 쉬는 문화 소통의 ‘이음공간’이 되도록 한 것이다. 지하층은 교육시설과 다목적시설을 배치하여 지역 주민의 소통과 교류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했다. 1층은 도서 및 정보 검색실을 비롯하여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전시실로 계획했다. 주변 경관의 연장선상에 있는 옥상부 공간은 야외 조각공원으로 꾸며 미술관의 내·외부를 연결하는 전시공간으로 계획했다.
미술관 외부 공간 설계에 임하며, 이화원은 기존 등 나무근린공원과 미술관의 관계 설정에 가장 중점을 두었다. 갈대 언덕을 뜻하는 노원蘆原이라는 지명의 의미를 살려 다양한 형태의 언덕에서 예술과 자연이 조우하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지역의 문화적 명소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인상적인 조경 설계가 필요했다. 규모는 작지만 그곳을 거닐면 특별한 정원을 만날 수 있길 바랐다. 외부 공간 설계의 주안점은 다음과 같다.
White in Green: 공원 속에 위치하는 미술관의 특성을 살려 녹색의 언덕 속에서 하얀 미술관이 부각될 수 있는 공간 연출을 의도했다. 방향과 언덕의 형태를 고려하여 상록 위주의 단아한 식재, 사계절 꽃을 볼 수 있는 식재 계획을 도입했다. Art & Event: 미술관과 공원의 이용 행태를 고려하여, 전시 및 행사 등 다양한 이벤트를 수용할 수 있는 외부 공간을 계획했다. 제안하는 구조물도 하나의 조형 작품처럼 느껴질 수 있도록 독특하고 창의적인 디자인을 선보이고자 했다.
Path with Flow: 공원과 주변 가로가 자연스럽게 연계된 보행 환경을 조성하여 다양한 방법으로 대상지로 접근할 수 있도록 했고, 외부에서 미술관 내부로의 원활한 이동이 가능한 동선 체계를 수립했다. 또한 이 동선이 다시 공원으로 흘러들도록 계획했다.
글 김이식
사진 박영채. 이화원, 이형주
조경 설계 조경설계 이화원
건축 설계 삼우종합건축사사무소
시공 한화건설
발주 서울특별시 도시기반시설본부
위치 서울특별시 노원구 중계동 508
대지면적 6,195㎡
조경면적 2,911㎡
완공 2013년
김이식은 경관의 언어로 세상과 소통하길 희망한다. 어린 시절 접한두 편의 동화, 『어느 멋진 날』과 『나무를 심는 사람』에서 직업의 길을미리 본 듯하다. 조경가로서의 긴 여정에서 이제 막 초입에 들어섰으며, 앞으로 만날 대지의 풍경과 사람에 대한 기대감으로 벌써부터가슴 벅차하고 있다. 1973년생이며, 서울대학교와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조경 설계를 공부하고, 환경계획연구소 및 서인조경에서의 실무를 거쳐, 2008년 조경설계 이화원을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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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로니에공원
도시 공공 영역, 마로니에공원
“마로니에공원, 생성의 공공 영역으로.”
2008년 8월, 일간지에 연재하던 칼럼 한 꼭지의 제목이다. 글 속에서 마로니에공원은, 비록 그 태생은 황당했지만 주변 지역 전체가 문화의 영역으로 재편되어 온 놀라운 과정을 증거하며 계속 이어져 나가야 할 도시 공공 영역의 잠재력이 가득한 곳이라 했다. 칼럼이 실린 얼마 후, 30년을 그렇게 지내왔던 ‘근린공원’이 ‘재정비 기본계획’이란 이름으로 조달청 입찰에 등장했다.
동기:
도시 공공 영역, ‘입찰’되는 처지에 놓이다
토목 엔지니어링 회사 한 곳이 낙찰 받았고 그 회사가 내게 연락을 해왔다. 대학로에 사무실을 둔내가 오랫동안 그 공원에 관심이 있었다는 것을 들어 알고 있던 차에, 위 칼럼까지 읽었으니 이 프로젝트는 내가 맡아주는 것이 좋겠다는 제안이었다. 바로 시작하기로 했다. 시작하자마자 대학로 전체의 역사와 변화 과정에 대한, 문화에 대한, 도시의 기억에 대한 이야기 등, 과업 항목에도 없는 이야기로 당시의 담당자들을 당혹하게 하며 공식·비공식 논의들을 풀어나갔다. 각종 심의 또한 무사히(?) 완료해 주니 그제야 서로 이해의 도가 높아지기는 했지만 이곳을 도시 공공 영역으로 간주하는 근본 인식에는 끝내 함께 도달하지 못했다. 따라서 내가 제기했던,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예술위)와의 경계 지우기, 서울대학교 기념물의 이전 등을 실행시키려는 의지는 결국 엿볼 수 없었다.
2010년 가을, 새로이 선출된 구청장에게 마로니에공원은 이미 익숙하고 각별한 과제였다. 묻혀있던 기본계획이 다시 시작되면서 더욱 많은 협의 과정이 필요했다. 공연 관계자, 시민단체, 주민들을 비롯해 대학로에 관계하는 온갖 분야의 사람들과 단체가 논의 대상이었고, 그 외에 작품을 설치한 작가, 문리대 이적지 기념물과 연관된 서울대 학교 동창회, 김상옥 열사 유족회, 장애우 협회 등 그 범위도 아주 넓었다. 논의 과정은 설계자의 위치에서, 때론 발주자의 위치에서 진행되었다. 어쨌든 그 많은 사람들과 조직들이 가진 희망과 그들 사이의 갈등이 이 과정에서 모두 고스란히 드러났고, 논의되었고, 조정되었고, 합의되었다. 우리 사회의 공공적 과제의 진행에서 이제 본격적인 협치, 즉 ‘거버넌스governance’가 절대적으로 필요함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스스로 떠안은 일을 과장하는 듯 보이지만 결국 누군가는 해야 할 일….자신이 바라는 결과를 얻으려면 나서지 않을 수 없다. 공공적 과제의 치열함을 멀리 피하고 싶은 도시 공공 영역, 마로니에공원 규방의 계획가들은 안전하고 따뜻한 규방에 그대로 남으라.
과정:
설득과 협상의 진수를 겪다
지하의 공중화장실은 안전을 둘러싼 논란이 거듭되다 결국 지상으로 올라왔다. 때마침 터진 도심홍수 덕택에 한 개 층 깊이로 내려가는 계단식 야외 공연장의 경사를 완만하게 조절했다. 이 공연장은 공원의 일부이자 휴식 장소, 작은 모임의 장소가 되었다. 많은 이들이 쏟아낸 요구는, 내가 믿는 바 이 공원이 필요로 하는 최적의 프로그램과 그 운영 원칙에 따라 설득해 나가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그 요구가 각자의 꿈에 관한 것일 경우에는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그 가운데 최고의 사건은 공사 막바지에 벌어졌다. 보기 드문 두께의 장대석을 투수 공법으로 공원 전체에 깔아 나가던 중, 왜 공원을 흙바닥으로 만들지 않느냐는 전임 시장의 지적으로 공사가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쓸모없는 회의가 이어졌고 공사 현장의 리듬이 깨졌으며, 나의 얼마 남지 않은 에너지마저 고갈시켰다. 어처구니없는 그 일은 3개월 후 다시 시작된 현장 작업의 질에 최악의 영향을 끼쳤다. 개탄스러운 일 그 자체였다.
마로니에공원 작업에서 기록되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정은 이 영역의 한 주체인 예술위와의 소통과 협력이었다. 이 공원의 태생적 한계는 사실 눈에 보이지 않는 관할의 문제였다. 모두의 인식 속에 마로니에공원은 공원과 건물 영역이 하나지만 기실 그 속에는 종로구청과 예술위가 엄연히 소유와 관리의 영역을 나누고 있다. 인식과 실재가 다르다는 말이다. 한때 이 모든 영역의 관리가 문예진흥원(예술위의 전신)에 위탁된 시기가 있었지만 어설프게 조각공원을 만들려 시도하다 실패한 일도 있었다. 그 후 공원에는 두 주체에 의해 경쟁하듯 많은 어설픈 것들이 쌓여 나갔고 못난 TTL극장도 그 틈에서 만들어졌다. 예술위 또한 본관 건물(현재는 예술가의 집)에 울타리를 두르고 관공서처럼 이 영역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 모든 모습을 깨뜨리고 정돈하는 일, 그래서 사람들에게 인식과 실재의 영역이 일치하도록 만드는 일을 위해서 두 주체, 종로구청과 예술위의 대화가 무척이나 중요했다.
글 이종호
사진 유청오
총괄 건축가 이종호(한국예술종합학교, 스튜디오 메타)
건축 설계 우의정, 이상진, 김회성(건축사무소 MIC)
조경 설계 박승진(기술 자문), 이든플랜(실시 설계)
토목 설계 대한컨설턴트
구조 설계 제이텍구조 엔지니어링
기계·전기 설계 GK기술단
막구조 설계 대동 시공 삼일기업공사
발주 종로구청
공사비 약 36억
원설계 기간 2009년 9월 ~ 2011년 12월
공사 기간 2012년 2월 ~ 2013년 10월
위치 서울특별시 종로구 동숭동 124-1번지 외
주요 용도 문화 및 집회시설 - 전시장, 공원
대지 면적 5,802.00
건축 면적 323.77㎡
조경 면적 829.41㎡
이종호는 1957년 서울 생이다. 1989년 건축과 예술을 통해 사회의 점진적 발전을 목표로 하는 스튜디오 메타를 설립한 이후 건축, 도시 연구, 문화기획, 출판 등 전방위적 활동을 전개 하고 있다. 박수근미술관, 이화여고 백주년기념관, 노근리역사 평화박물관 등 사회의 기억을 매개로 발언하는 건축 작업을 진행한 바 있으며, 아시아 문화중심도시 광주 도시기본구상, 순천 문화도시연구 등 문화도시 연구를 진행해 왔다. 최근에는 대구 문화창조발전소 조성사업 연구를 진행하는 한편 2014년부터 운용될 차세대 KTX의 차량 디자인 진행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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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의 못
건축에 대한 비평 혹은 대체자연
건축비평으로서의 조경
프로젝트에 초대되었을 때, 이미 건축설계는 마무리되어 있었다. 따라서 대상지 남쪽의 저수지, 주변 구릉경관과 함께 건축은 조경의 맥락context으로 주어졌으며, 우리는 조경행위를 건축에 대한 응답(response)이라고 보았다. 한편, 프랙티스 초기부터 한옥을 깊이 탐구해 온 황두진의 현대건축물을 한옥건축의 연장이라고 생각하였다. 현대캐피탈 복합훈련캠프 역시 한옥의 고전적 구법이 지오메트리(geometry)를 통해 형상화 된 것으로 지형에 반응하는 터잡기 기법과 각 공간 간의 교차적 경험이 한옥의 그것과 매우 유사하기 때문이다.
수공간을 옥외공간 프로그램으로 요청받은 오피스박김은 이에 대한 응답으로 전통정원의 방지를연상케 하는 사각질서의 ‘여울의 못Pool of the Riffles(사면형 캐스케이드)’을 제안했고, 한국정원 연못의 외곽을 둘러싸는 담의 모습과 기능은 ‘물결지형(경계부 지형조작)’이라는 대지조작을 통하여 재현하고자 했다. 여울의 못은 기존 지형에 최소한의 변형만 가하기 위해 세 번 꺾여있고, 꺾인 지점에는 세 개의 다리가 놓여있는데, 다리에는 안상(眼像)을 새겨놓았다. 이는 한국정원과 상이해 보이는 이곳의 근간을 암시하는 구체적인 제스처인 동시에, 경관 관찰자에게 또 다른 해석을 이끌어내고자 하는 실마리적 장치이다. 또한 부지 경계부에 조성된 물결치는 지형은 대상지의 경계를 하늘과 맞닿게 함으로써 시각의 초점을 무한으로 안내한다. 이 지형은 주변 경관을 축경한 것으로 그 형태는 사면 배수라는 엔지니어링 기능에서 기인한 것이다.
외피재료인 익스팬디드 메탈(expanded metal)이 건물에서 수직적으로 활용되었다면, 외부공간에서는 이를 수평적으로 활용하였다. 벌려서 만든 재료의 특성상 판 안에서 여러 개의 곡선이 마치 물결처럼 중첩된다는 점에 착안, 캐스케이드의 바닥재로 씀으로써 물이 단순히 흘러내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내려오면서 수많은 여울riffle을 만들도록 하였다. 일정한 두께로 공급되는 물과 일정한 각도로 벌어져 있는 익스팬디드 메탈이 만나 만들어내는 ‘여울의 못(pool of riffles)’에 다시 햇빛과 바람이 부딪혀 부서지며 만들어내는 찰나의 경험과 공간미는, 물이 없는 겨울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자연하천에서 각기 다른 공간으로 나타나는 여울과 못은, ‘여울의 못’으로 그 기능이 복합되어 또 다른 대체자연을 만들고 있다.
글박윤진, 김정윤
사진김종오, 윤수연
조경 설계 오피스박김
건축 설계 황두진건축사사무소
조경 시공 랜드테크
발주 현대캐피탈
위치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직산읍
대지 면적 22,068m2
조경 면적 11,678m2
완공 2013
박윤진은 하버드 GSD를 졸업하고 Sasaki Associates, West 8등에서 실무를 쌓았다. 미국 보스턴 건축대학교와 네덜란드 바헤닝헨 대학교 등에 출강하였으며, 김정윤과 함께 참여한 2004년 대만 치치 지진 메모리얼 국제오픈 설계경기 당선을 계기로 오피스박김을 설립해 현재까지 활동 중이다. 김정윤은 서울대학교와 하버드 GSD 에서 조경학을 전공한 후 Child Associates, West 8 등에서 실무를 쌓고, 네덜란드 바헤닝헨 대학교와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교에 출강하였다. 2007년 차세대 디자인 리더(산업자원부)로 선정된 바있으며, 광교 공원 디자인 커미셔너(2011)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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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포멀가든
Informal Garden
인포멀가든, 카페
울주군 두서면은 지리적으로 울산광역시의 최북단에 위치하며 동서남북으로 두동면, 상북면, 언양읍, 경주시 내남면과 접한다. 농공단지가 입주해 일부 산업 시설이 있으나 주민 다수는 농업과 축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 지역이라 할 수 있다. 울산시의 광역화로 전형적인 농촌이었던 울주군도 도시화를 겪고 있는데, 이러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도 두서면은 여전히 농촌의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다.
인포멀가든은 이 농촌 지역에 카페, 베이커리, 어린이 야외 놀이 학습터(숲놀이터), 고 심수구 작가(건축주의 외삼촌) 작품 수장고 및 전시장 등 여러 시설을 장기적으로 계획하고 있는 프로젝트다. 그 첫 순서로 진행한 카페의 외부 공간 조경을 의뢰받아 설계와 공사를 진행했고, 2022년 9월 완공되어 카페만 시범 운영 중이다. 현재는 심수구 작가―싸리나무 가지를 한데 모으고 깎아 패널 위에 하나하나 손으로 붙이는 작업을 해서 ‘싸리작가’라는 별명을 얻었다―의 작품을 보관할 수장고와 전시관을 짓기 위한 허가 작업이 진행 중이다.
드러내지 않게 드러냄
건축가의 설계 의도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농업과 축산업을 겸해 온 두서면에서는 곡물 저장 창고와 축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축사의 특징, 즉 채광과 환기에 유리한 긴 덩어리 형태, 값싼 재료로 신속하게 짓기 위해 같은 모듈이 반복되는 산업 시설물의 전형적인 특징을 차용했다.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는 농민들의 삶의 터전과 이질적인 상업 시설이 어떻게 관계 맺어야 할지 고민했다. 즉, 주위 환경이나 형편에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분수와 품위, 즉 ‘격’을 갖추고자 한 것이다.
“인포멀가든 카페는 이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축사나 창고를 그 원형으로 한다. 특별한 것이 없는 단순한 형태, 대수롭지 않게 사용되는 금속 파이프, 경사 지붕과 선홈통까지. 이곳은 주변 환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존재들의 집합체다. 세 채의 건물이 만드는 개방적 외부 공간을 통해 이 장소는 주변과 조우한다. 소리 없이 그곳에 오래 있고자 한다”(이세웅 아파랏체 건축사사
무소 소장).
상업 공간의 조경
대상지에 가보자마자 고민에 빠졌다. 커피로, 공간의 힘으로만 사람들을 끌어들일 수 있을까. 기획력이 부족해 보였다. 사업성에 공감하지 못했다. 과연 조경으로 이 문제를 보완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상업 공간에서 흥행은 어떠한 디자인적 가치보다 더 본질적인 것이다. 상업 영화의 흥행성과 같은 것 아닐까. 말하고자 하는 것은 최고의 흥행을 꾀하자는 것이 아니라, 투자 대비 수익을 보장하는 최소한의 흥행성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주제와 각본이 흥미로워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배우 캐스팅이 설득력 있고 장면 연출이 지루하지 않아야 하며 다음 장면을 궁금하게 만들어야 한다. 너무 자극적이지 않고 편안하기도 해야 하며, 유쾌하면서 긴장감도 유발해야 한다. 의도된 장면을 구현하기 위해 수많은 장치와 기법을 동원하는 매우 전문적이고 섬세한 작업, 어느 정도의 기승전결이 필요한 작업이 분명하다.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대상지의 높이 차를 이용해 흥미를 갖게 하는 공간을 계획했으나, 건축의 설계 방향과 배치를 흔드는 설계안이었다. 설득과 대립 과정을 반복하다 우리의 제안이 흥행성은 보장할 수는 있어도 건축의 방향성과 조화를 이루지는 못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다
바위틈에 자라는 야생화, 추운 겨울 눈 속에서 피어나는 설중화의 모습에서 눈에 보이는 이미지를 넘어 보이지 않는 생명력과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를 느끼게 된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어떤 기업이 브랜드 철학을 갖춰 이미지를 넘은 정체성을 갖게 될 때 품위가 만들어진다. 그런 기업에게 소비자들은 좀 더 관대해진다. 이러한 이유로 아름다움을 만드는 것에서 나아가 친환경적인 메시지를 담고 싶었다.
그래서 빗물을 빌리고 되돌려주고 활용하는 기술을 사용하기로 했다. 이것을 비의 건축술이라 한다. “비의 건축술의 목표는 본래 자연의 토지가 가진 빗물을 머무르게 하고, 하늘과 땅으로 되돌리는 힘을 되살리고자 하는 것이다”(일본건축학회, 『비의 건축술』, 기문당, 2012).
넓고 긴 카페 지붕으로 떨어진 빗물은 건축의 루프 드레인(roof drain)을 통해 모인다. 루프 드레인 끝에서 시작해 돌담 위에서 끝나는 7개의 콘크리트 수로는 빗물을 사면 아래로 이동시킨다. 이때 돌담의 높이로 인해 수로 끝에서 낙수하는 물을 감상할 수 있다. 떨어진 빗물은 계획된 물길의 지형을 따라서 가장 낮은 쪽에 위치한 웅덩이에 모인다. 이 웅덩이는 대상지의 거대한 집수정이다. 웅덩이에 채워진 빗물은 서서히 흙 속으로 스며들어 지하수가 되거나 증발되어 수증기로 되돌아간다. 가둬진 물은 대상지의 미기후를 조절하고 수생 식물과 수변 식물, 다양한 곤충과 동물을 키워낸다. 수면을 조망할 수 있는 시각적 아름다움을 제공하기도 한다. 누군가는 이곳에서 보이지 않는 자연의 순환 과정을 느낄 것이다.
수직적, 병렬적 공간 구조
인포멀가든의 외부 공간은 건축 계획에 의해 카페 후면부, 카페 전면부, 퍼걸러(차양 시설) 구간으로 나뉜다. 세 개 영역은 수직적인 벽이나 담장이 아닌 높이 차이로 인해 구분된다. 영역 간의 높이 차이로 인해 경사면이 발생했고, 자연스럽게 평지는 이용 구간이 되고 사면은 식재 구간이 되었다. 각 영역은 철제 계단이나 자연석 계단으로 연결된다. 영역 간의 이동은 수직적으로 이루어지고 영역 안에서의 이동은 수평적이다. 건축의 방향과 평행으로 놓인 세 개 영역의 포장면은 머름의 공간과 길의 역할을 병행한다. 머무는 공간과 이동하는 공간을 구분하기 위해 포장을 달리했다. 이동 중심의 구간은 보행의 불편함이 없도록 화강석 판석으로, 머무는 공간은 천천히 걷도록 유도하는 사고석으로 포장했다.
식재 계획, 메시지를 담은 공간
남향인 대상지는 대부분 그늘이 없는 양지고 경사면이 있다. 이 조건을 고려해 직사광선과 건조한 환경의 스트레스를 잘 견디는 식물들을 선정했다. 습기가 많은 물가, 웅덩이 주변과 빛이 들지 않는 건물 하부에 맞는 식물을 별도로 선정했다. 느릅나무, 무궁화, 대나무, 귀룽나무, 단풍나무, 버드나무, 참빗살나무, 보리수나무, 병꽃나무, 사철나무, 등골나무 러시안세이지, 솔정향풀, 수크령, 알케밀라, 터리풀, 코만스사초, 큰꿩의비름, 털수염풀, 땅채송화, 섬기린초, 순비기나무, 일당귀, 큰바늘꽃, 타래붓꽃, 제비동자꽃, 무늬해국, 몰리니아, 바이텍스, 실목련, 물싸리, 산오이풀, 꼬랑사초 외 약 90종 15,000본의 식물을 심었다.
이솝 성수점을 시작으로 강릉의 호지 스테이, 인포멀가든까지 빗물 활용과 환경에 대한 메시지를 프로젝트에 담기 시작했다. 작은 공간에서 벌인 설계 행위는 공원 같은 큰 프로젝트와 비교하면 실질적으로 매우 미미한 효과를 낼 것이다. 다만 대중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상업 공간이기에 환경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만 있어도 환경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 생각한다. 상업 공간으로서 인포멀가든의 흥행 성공 여부는 아직 판단할 수 없다. 답을 내리기 이른 시점이다. 시간이 지나고 식물들이 자리를 잡아 몇 해가 흐르면 보이지 않는 것들을 사람들이 알아보리라 믿는다.
이번 프로젝트는 다른 분야와 대립하기보다 우리의 것을 내려놓고 다른 가치관을 수용한 상태에서 작업을 할 때 한 번도 그려보지 않았던 디자인이 나온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새로운 디자인은 다양성에서 시작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오현주·이범수 인터뷰
지속가능성을 말하는
일상의 조경
인스타그램을 통해 안마당더랩이 전국 방방곳곳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를 보고 있다. 이번에는 울산이다. 프로젝트를 맡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오현주(이하 주) 인포멀가든의 카페 건물을 지은 아파랏체 건축사사무소에서 의뢰가 왔다. 현재는 카페만 있지만, 추후 뒤편으로 숲유치원, 양옆으로 베이커리, 미술 작품 수장고 및 전시장 등이 들어서 복합문화단지로 거듭날 것이라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현재 카페 외 다른 공간의 조경 설계를 진행하고 있다.
이범수(이하 수) 사실 특별한 계기는 없다. 보통 건축 공간을 짓다 조경의 필요성을 느낀 건축설계사무소가 연락을 해오는 식이다. 충북 단양의 카페산도 그런 경우였다. 수도권 외의 공간을 설계하겠다는 포부가 있다기보다 안마당더랩이 주로 진행하는 성격의 프로젝트 수가 수도권 외의 지역에 더 많을 뿐이다.
보통 건축사사무소는 어떤 경로를 통해 연락해오나.
수 이전에 함께 프로젝트를 한 건축사사무소가 우리를 추천하는 경우도 있고, 인스타그램 게시물을 보고 연락을 주기도 한다.
주 인스타그램이 상상 이상으로 큰 창구 역할을 한다. 작품 사진을 보고 서로 팔로우하고 있다가 적당한 기회가 생기면 연락해오는 식이다. 프로젝트 수주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되기 때문에 인스타그램 업로드도 신경을 쓰고 있다.
건축 계획이 선행된 상태에서 시작한 프로젝트라 아쉬운 점이 있을 것 같다. 대상지 한가운데에 카페 건물과 퍼걸러가 들어서 있어 조경의 효과를 보여줄 수 있는 부지 크기 자체가 작아 보인다.
수 그 점이 아쉬워 퍼걸러를 빼거나 축소해 전면을 모두 조경 공간으로 쓰는 안을 제안하기도 했었다. 단순히 조경 공간을 많이 확보하려는 게 아니라 퍼걸러와 사면이 크게 공간을 차지한 배치가 방문자에게 호감을 얻을 수 있을지, 사업성이 있을지 의문이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것도 중요하지만 상업 공간인 만큼 사람들을 어떻게 끌어들이고 어떻게 앉게 하고 어떻게 쉬게 할지를 고민해야 하는데, 사면이 대부분이다 보니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게다가 사면에 나무를 심기 힘
들어 그늘을 만들기도 어려웠다. 퍼걸러의 규모가 작아지면 가파른 사면의 경사를 조정할 수 있어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건축에서 퍼걸러가 가진 역할과 의미가 우리가 예상한 것 이상으로 컸다.
주 카페가 높은 곳에 지어지다 보니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자칫 권위적인 느낌이 들 수 있는데, 이 퍼걸러가 중간에서 시선을 한 번 끊어주어 위압감을 덜어주는 역할을 한다. 수차례의 논의 끝에 건축의 배치를 따르기로 결정했고 두 번째 안을 그리기 시작했다.
설명처럼 카페 레벨과 퍼걸러 레벨을 연결하는 경사가 꽤 가파르다. 지반 안정화와 식재 작업이 쉽지 않았겠다.
수 식물의 뿌리 활착으로 결국 잡힐 거라 생각하지만 시간이 필요한 부분이다. 현재 비가 오면 조금은 쓸려내려 가는 구간이 있지만 곧 해결될 것이다. 사면에 심으면 뿌리분이 흙 밖으로 노출되어 분이 큰 교목은 식재할 수 없었다. 한 해 두 해가 흘러 관목이 뿌리를 내려 안정화가 될 때까지 쓸려 내려간 흙을 다시 올려주는 식으로 관리할 수밖에 없다.
건축이 제안한 동선의 형태가 많이 바뀌었다. 경사면을 따라 하나의 동선으로 통합되어 있던 계단이 위쪽은 자연스러운 형태의 언덕과 디딤돌, 아래쪽은 경사 위를 지나는 가벼운 느낌의 철재 계단으로 변했다.
수 건축 배치를 보면 외부 공간이 카페 후면부와 전면부, 퍼걸러 구간으로 나뉜다. 동선이 굉장히 수직적이 될 수밖에 없어서 지루하지 않은 동선을 짜는 데 집중했다. 카페 건물의 위압감을 완화할 수 있는 지역성을 고려한 부드러운 포장재를 택하고 싶어 위쪽에 녹지와 어우러진 디딤돌을 두었다. 건축의 붉은 색이 강렬하기 때문에 눈에 띄기보다는 주변과 잘 어우러지고 사람들에게 거부감이 없는 형태와 질감을 가진 화강석 판석을 택했다. 사면보다는 카페 전면부와 퍼걸러 구간의 판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판이 두드러지고 두 판 사이에 계단이 가설물처럼 얹혀 있는 모습을 상상하며, 축사를 모티브로 한 카페 건물과도 어우러지게 경량화한 철재 계단을 구상했다. 소재보다는 계단의 개수를 고민했다.
주 처음에는 퍼걸러 구간부터 카페까지 한 번에 올라오게 할 계획이었다. 중간에 참을 만들면 사면도 그만큼 깎아내야 하고, 그러면 경사가 더 가팔라지니까. 그런데 쉬지 않고 계단을 한 번에 올라오는 상황을 시뮬레이션해보니 생각보다 너무 힘들어 조정할 수밖에 없었다.
수 결국 계단 중간 참을 만들되 사면은 깎지 않았다. 사면과 계단이 조금 엇나가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이용 측면을 더 고민한 결과다. 이미 건축주의 주택과 주차장이 대상지 주변에 들어서 있고, 복합문화단지로의 미래를 생각하면 도로와의 차폐뿐 아니라 확장 가능성을 고려한 계획이 필요했겠다.
주 앞으로의 과제다. 지도로만 보면 주변 자연을 카페 내부로 끌어들이기 좋아 보이지만 실제 대상지에 가보면 차경을 할 만한 좋은 경관을 찾기 힘들다. 남서쪽은 고운산이 보여서 전망이 좋지만, 다른 부분은 축사가 차지하고 있다. 베이커리와 어린이 야외 놀이 학습터 등이 들어올 부지와 카페 부지가 도로로 다 끊겨 있어서 이 공간을 어떻게 한 단지로 읽히게 할지 고민 중이다.
카페 건물 앞에 놓인 긴 벤치가 인상적이다. 건축주 입장에서는 더 많은 테이블과 벤치를 놓고 싶어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설득했나.
주 건물의 긴 형태와 결을 맞춰 디자인한 벤치다. 고민을 많이 했는데, 해당 판의 폭이 테이블과 의자를 놓기에는 조금 좁았고, 머물기보다는 이동하는 곳이 될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외부 공간이 있는데 앉을 곳이 없는 건 비합리적이다. 그래서 긴 벤치를 설계했다. 루프 드레인이 시작되는 곳에서 벤치 역시 시작하게 해, 사람들이 빗물이 웅덩이로 흐르는 과정을 더 가까이에서 보게 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테이블을 놓지 못한 게 마음이 쓰여 간이 테이블도 디자인했는데, 카페 운영 사정을 보아 설치를 결정할 예정이다.
수 벤치를 디자인하며 스스로 의문을 많이 던졌다. 이 판에 파라솔과 테이블, 벤치가 들어서면 선형의 건축물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분위기가 깨지게 된다. 하지만 카페에서 음료를 마실 수 있는 앉을 공간은 반드시 필요한 요소다.
주 건축주의 판단에 맡겨야 하는 부분이다. 운영하면서 필요하다고 느낀다면 당연히 파라솔이 들어서야 한다. 그래서 고정적인 시설물을 만들기보다 최소한의 벤치를 가장 잘 어울리는 형태로 배치하고, 가변성 있는 가구를 통해 건축주가 답을 만들어갈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놓았다.
벤치가 사면과 상당히 가까이 놓여 있는데, 사람들이 사면을 등지고 앉기를 의도한 것인가.
주 사면과 가까운 쪽을 보면 어느 정도 발을 들여놓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 그곳에 발을 두고 앉으면 고운산의 풍경을 볼 수 있다. 벤치 형태가 이용하기 조금 불편할 수도 있다. 중간 중간 벤치를 끊어 사람들이 들어 갈 수 있는 길을 만들었다면 조금 편했을 테지만 전체적인 분위기가 깨지게 된다. 경사면의 계단과 달리 여러 가지를 감수하고 디자인 측면을 택한 것이다.
수 이 벤치는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시설이다. 테이블과 의자 세트를 가져다 놓으면 선반이 되기도 할 것이다. 또 공간을 경계 짓는 울타리 역할도 한다. 벤치가 없으면 아이들이 사면으로 굴러 떨어질 수도 있다. 도면에서 잘 보이지 않지만, 카페 건물이 바닥에서 띄워진 형태고 그 아래에 다양한 음지 식물이 심겨 있다. 사면을 등지고 앉으면 건물 아래에 식재된 이 식물들을 감상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 프로젝트의 핵심은 루프 드레인과 선홈통을 타고 흐른 빗물이 모여 만들어지는 연못이다. 아이디어의 출발점이 궁금하다.
수 빗물 홈통을 밖으로 노출시킨 루프 드레인은 건축의 계획이다. 본래는 이 루프 드레인을 타고 내려온 빗물을 집수정으로 모아 대상지 밖으로 배수시킬 계획이었으나, 우리는 루프 드레인에서 나오는 빗물을 이용하자고 제안했다. 기후위기를 피부로 느끼며 시대적 화두인 지속가능성을 프로젝트에 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이솝 성수점과 강릉의 호지 스테이에서 비슷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던 참이었다. 레인가든이라는 시스템을 상업 공간에 담아 어떤 효과가 있을까 싶기도 했지만, 일반 시민들이 선홈통이 왜 있는지 궁금하게 만드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수직적으로 드러난 루프 드레인의 선이 매력적이기도 했다.
빗물 홈통을 타고 들어온 물, 그냥 경사를 따라 흐른물, 주변 도로에서 유입된 물이 모두 최하단의 연못에 모인다. 일부 집수정에 모인 빗물도 이 연못으로 흘러 들어오도록 연결시켰다. 연못에 일정 수위 이상 물이 차오르면 인근 하천으로 빗물이 빠져나가게 된다. 오염된 빗물이 바로 하천으로 흘러들지 않으니 수질 오염 방지의 효과도 있다. 그 과정에서 땅으로 스며든 빗물은 지하수 문제를 해결할 것이고, 증발한 빗물은 미기후 조절 효과를 낼 것이다.
이솝 성수점과 호지 스테이의 이야기도 궁금하다. 우배수 시스템을 만드는 게 말처럼 쉽지 않을 텐데 제대로 작동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나.
주 의도한 것은 아닌데 근래 계속 물과 관련된 작업을 해왔다. 어쩌면 시리즈처럼 볼 수도 있겠다. 첫 번째 작업이 이솝 성수점인데, 이곳도 지면보다 땅을 꺼트려서 비가 오면 물을 고이게 했다. 이후 작업한 호지 스테이는 비가 오면 비의 양에 따라서 지형이 낮은 곳부터 잠기는 구조의 정원이다. 여름철 우기에는 땅이 완전히 잠기기도 하고, 물이 스며들어 촉촉한 상태를 유지하기도 하고, 때로는 바짝 말라있다. 완공은 순차적으로 이루어졌지만 사실 인포멀가든을 포함해 설계는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됐다.
수 비가 많이 오는 날 걱정이 되서 잠을 못 잔 적이 있기는 한데, 현재까지는 아무 문제없다. 오히려 조성하는 과정이 힘들었다. 법적으로 반드시 설치해야 하는 배수 처리 시설이 있기 때문에 자연 배수를 꾀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집수정이 모든 대지에 꼭 필요한 시설인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연못의 방수 처리 방법을 많이 고민했다고 들었다.
주 지속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를 담으려고 한 기획인데 인위적으로 방수 처리를 하는 것 자체가 맞는지부터 고민했다.
수 물은 고이면 썩는다. 수생 식물이 정화한다 하더라도 여름이면 녹조가 생긴다. 결국 물이 빠져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결론에 닿았다. 하지만 이곳이 상업 공간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일정 기간 동안은 물이 차 있는 경관이 필요했다. 그래서 완벽하지 않은, 어느 정도 물이 새는 방수가 적당하겠다고 생각했다. 가장 쉬운 시공법은 콘크리트 방수 패드를 치는 것이지만, 너무 완벽한 방수라 물이 새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시트 방수를 했다. 처음에는 빗물이 담긴 지 3일도 지나지 않아 물이 전부 빠져버려 걱정했는데, 침전물이 공극을 막으며 물이 빠지는 속도가 느려지고 있다. 비 가 오랫동안 오지 않는 시기도 고려해 산의 실개천에서 흘러내려온 물이 조금 흘러들 수 있도록 보완하는 작업도 해놓았다.
식생은 어떤 식으로 구성했나. 대상지 주변에 산이 많은데 이런 곳에 정원을 만들 때 주변 식생을 고려하는지, 오히려 주변에서 볼 수 없는 식물을 택하는지 궁금하다.
주 대부분 전자다. 주변 식생을 조사하고, 주변의 식생과 대상지를 연결시키려고 노력한다. 대상지 북서측에 대나무가 굉장히 많이 자라는데, 거기에 착안해 카페 뒤에 대나무를 심었다. 식물을 선택하는 기준을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는데, 하나는 주변 식생이다. 그 지역에서 자생하고 있으니 그 환경에서 잘 살 것이라 생각하고 수목들을 선정한다. 두 번째는 경비다. 수목과 식물의 가격 자체도 중요하지만 운반비 역시 고려해야 하는 사항 중 하나다.
수 인포멀가든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는 기청산식물원에 방문해 식생을 조사했다. 자생 식물은 무엇이 있는지 인근 산에는 어떤 식물이 분포되어 있는지 봤다. 본격적인 식재를 위해 울산과 부산에 있는 농장을 다녔는데 크기가 큰 무궁화와 사철나무가 엄청 많았다. 알아보니 한때 유행해 잔뜩 심었지만 유행이 끝나며 팔리지 않은 나무들이었다. 마침 관목이 많이 필요했는 데, 저렴한 가격에 구할 수 있었다.
주 대상지 주변 도로의 경관을 가려줄 수목이 필요했다. 보통은 교목을 쓰면 차폐가 잘될 거라고 생각하지만, 교목은 하부에 가지가 아닌 목대만 노출된다. 사람 눈높이는 지하고에 머물러 있으니 차폐 효과가 없다. 필요한 건 긴 세월 동안 크게 자란 관목이다. 보통은 규모가 큰 관목을 구하기 쉽지 않은데, 운 좋게도 울산과 부산의 농장에 팔리지 않고 재고처럼 쌓여 있는 사철나무와 무궁화 대형목이 가득했다.
수 예산이 빠듯했는데 정말 다행이었다. 평지에 식재를 하면 줄기들이 중첩되어 보여 밀도를 조금만 높여도 풍성해 보이는데, 사면에서는 그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 특히 위쪽 단에서 내려다보면 더욱 허전해 보인다. 웬만한 개수의 나무로는 풍성한 느낌을 낼 수 없고, 높은 밀도로 식물을 심어야 한다. 카페 건물 하부도 다 녹지다. 보행로인 몇 부분을 빼면 모두 녹지인 셈이다. 예상보다 예산이 많이 투입된 프로젝트다.
도면을 보니 마운딩에 필요한 토량을 산출한 그림이 있더라. 정확한 시공을 위해 도면을 그리는 노하우가 따로 있나.
주 언덕을 만들며 시행착오를 통해 몇 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보통은 건축에서 제공한 도면을 믿고 그에 따라 토량을 산출하는데, 현장 상황과 다른 경우가 많다. 반드시 직접 찾아가 레벨이 어떤지 확인해야 한다.
수 단순하게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결국 조경 도면을 만드는 이유는 공간의 완성도를 높이고 공사비를 책정하기 위해서다. 인포멀가든 같이 개인 클라이언트인 경우의 장점은 여백이다. 어느 정도의 공사비를 잡아놓고 현장에서 얼마든지 설계안을 바꿀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좀 더 규모가 큰 프로젝트의 경우에는 설계와 시공이 명확히 구분되어 있고, 설계자가 현장에 계속해서 있을 수 없으니 변수가 발생했을 때 시공과의 긴밀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도면에서 다양한 표현 방식을 추구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현장에서 시공까지 관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목의 경우에도 일반적으로 쓰는 원형 심벌을 그리지 않는다. 나무를 기울어지게 심고 싶다면, 기울어진 나무를 위에서 본 모양을 그린다. 원하는 사항을 도면이 아닌 현장에서 그림과 말로 협의할 수 있다. 하지만 당연히 납품하는 도면을 그릴 때는 이 방식이 좋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최근 카페에서 머무르며 바라볼 만한 풍경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주요 경관 포인트로 삼은 지점이 있나.
주 인포멀가든은 예상보다 내부 지향적인 곳이다. 바깥 경관보다는 대상지의 안쪽을 바라보게 되어 있다. 아쉬운 점 중 하나가 도로에서 인포멀가든을 처음 맞닥뜨리는 순간 인포멀가든 내부 공간이 한눈에 읽힌다는 점이다. 공간에 들어서 보이지 않던 곳을 천천히 경험하게 만드는 시퀀스도 중요한데 그 가치가 확 줄어 아쉽다. 하지만 이범수 소장과 그런 대화를 하기도 했다. “이 땅이 조경 단독 프로젝트로 주어졌다면 이런 디자인 못했겠지.”
수 협업으로 끌어낸 결과인 것 같기도 하다. 인포멀가든은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은 디자인이다. 조경가마다 결이 있기 마련이고, 그간 그린 도면을 살펴보면 비슷비슷한 부분이 많다. 그런데 건축가의 배치를 받아들이고 건축가의 시선에서 바라보자 마음먹으니, 한 번도 그려보지 못한 선들이 나왔다. 평소에는 이렇게 수직적이고 강한 선을 권위적이라 생각해서 잘 쓰지 않는다.
클라이언트의 안목도 큰 역할을 했다. 장식으로서의 조경보다 사회적 메시지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고 4~5년이 지나면 이곳이 훨씬 좋은 공간이 될 거라고 믿어주었다. 이곳저곳에서 카페와 스테이가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는데, 10년 넘게 살아남는 곳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비슷비슷한 공간에 싫증내기 시작할 테니까.
만약 인포멀가든이 서울이나 수도권이 놓였다면 더 빠른 시간 내에 주목받았을 것이다. 울산에서 원하는 것은 좀 더 화려하고 즐길 거리가 많은 문화 공간인 것같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분명히 화려함과는 다른 가치가 점점 돋보이는 공간이 될 것이라 믿는다.
답을 듣다보니 안마당더랩의 결은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주 예전에는 축을 비튼다든지 판을 쪼개는 디자인을 자주했는데 작년부터는 안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수 어쩌다보니 비슷한 결의 선이 그려지는 것이지 시그니처처럼 무언가를 남기진 않는다. 안마당더랩이 나와 오현주 소장의 사무실이 아닌,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 잡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또 공간 만들기는 나의 예술성과 작가 정신을 발휘하는 작업이라기보다 클라이언트를 위한 공간을 만드는 일이라 생각하기도 한다. 예술성도 좋지만 우선 클라이언트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어야 한다.
주 둘이서 사무실을 운영할 땐 이 때문에 다투기도 했다. 지금은 이범수 소장의 의견에 동의한다.
카페 공간 같은 상업 공간을 다룰 때 무엇을 가장 중요시하나.
수 클라이언트의 생각과 주어진 공간이 어떠한 성격인지 정확히 파악하려 한다. 사실 사업주의 생각과 브랜드의 정체성이 또렷하다면, 이를 따라가는 것만으로 좋은 공간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여건이 안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럴 경우에는 사업주가 가져야 할 방향성을 제시하기도 한다.
주 이 소장이 잘한다. 나는 오히려 그런 면에서 무딘 편이다.
수 어떤 노하우가 있다기보다는 계속해서 생각한다. 만났을 때의 말투와 취향, 했던 말들을 생각하면서 어떤 것을 좋아할지 고민한다. 비슷한 맥락으로 첫 PT에 굉장히 공을 들인다. 그 PT에서 클라이언트의 마음에 드는 것을 내놓게 되면 다음 과정이 큰 문제없이 흘러가기 마련이다.
주 클라이언트를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조경의 깊은 의미를 전달하려는 것도 지양하는 편이 좋다. 상업 공간에는 수많은 가치가 공존하기 마련인데, 조경을 최우선의 가치로 이야기하며 클라이언트를 설득하는 건 위험한 일이다. 꽃 하나가 더 피어난다고 커피 한 잔이 더 팔리는 건 아니니까. 더불어 전문 용어보다는 클라이언트가 이해하기 쉬운 언어를 사용하는 것도 중요하다. 조경의 가치를 과도하게 강조하는 순간 클라이언트는 거부감을 느끼게 된다.
한 인터뷰에서 대중과 친숙한 조경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대중에게 친숙한 조경이란 무엇인지 의견이 궁금하다.
주 친숙한 공간은 사람들을 오래 머무르게 할 수 있는 공간이라 생각한다. 사람들을 오래 붙잡아두는 공간에서는 치장 여부보다 주변과 얼마나 맥락이 잘 닿아 있고, 편안함을 느끼게 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수 “대중에게 친숙한 조경”이라는 표현은 조경의 중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적은 현실을 이야기하며 했던 말이다. 좋은 조경 작업이 대중들이 접근 가능한 지점에서 벌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간을 내서 찾아가야 하는 공간보다 일상에서 흔히 마주칠 수 있는 카페에서 좋은 조경을 마주하게 되기를 바라고, 좋은 작업을 하는 조경가가 그런 공간을 설계했으면 한다. 클래식 음악이 훌륭하지만 대중음악도 클래식 음악과 구별되는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앞으로 안마당더랩의 작품이 대중에게 조경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데 기여하기를 바란다. 사진 유청오 디자인 팽선민
글 오현주·이범수 안마당더랩 소장
조경 설계 안마당더랩
조경 시공
시설물 및 포장: 메이크더
식재: 안마당더랩
건축 설계 아파랏체 건축사사무소
대지 면적 1,924m2
조경 면적 1,574m2
위치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서면 차리 292
완공 2022. 8.
사진 진효숙
안마당더랩(Anmadang the Lab)은 상생의 가치 아래 균형, 단순, 조화, 대비, 스토리, 실용성, 합리성 등 다양한 디자인 철학을 담아 외부 공간을 기획, 설계, 시공하는 디자인 작업실이다. 새로운 관점을 제공하고 지속가능한 것에 관심이 많다. 좋은 공간이 우리의 삶을 개선시킨다고 믿는다.
오현주는 안마당더랩의 공동 소장이다. 경희대학교 환경조경디자인학과에서 조경을 전공하고, 기술사사무소 렛과 그람디자인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다. 2016년부터 조경 지식을 기반으로 외부 공간을 기획, 설계, 시공하는 디자인 작업실 안마당더랩을 이끌고 있다. 인간 중심의 공간을 디자인하고, 공간을 삶의 배경으로 만들고자 한다. 예술성과 대중성의 중간 지점에서 새로운 환경을 제안하는 것이 목표다.
이범수는 안마당더랩의 공동 소장이다. 한경대학교 조경학과에서 조경을 전공하고, 비오이엔씨와 조경디자인 이레(현 디자인스튜디오 이레)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다. 2016년부터 안마당더랩을 이끌고 있다. 새것보다 오래된 것, 격이 느껴지는 것들, 진정함 속의 우아함, 철학이 깃든 것들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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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흥숲공원
Yeongheung Forest Park
천년수원에서 영흥숲공원으로
수원 영흥숲공원은 민간공원특례법에 의거하여 민관협력 방식으로 진행한 최초의 사업이다. 수원시는 오랫동안 공원화하지 못하고 있던 영흥숲의 가치를 살리기 위해 사전 검토 후 몇 가지 주요 사항을 결정해 2016년에 공모를 진행했다.
민간공원 개발 사업의 진행 과정은 비공원 시설과 공원 시설, 그리고 각종 평가와 인가 대응 분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우리는 개발 사업이 공원 중심 구도로 진행되는 동시에 사업의 비전을 제대로 구현하기 위해 많이 고민했다. 공원 내 수목원 시설을 특화하고 공원 건축과 상호 관련성이 있으며 포용이 가능한 협력 구도를 만들었다. 3명의 MP위원, 수원시와 함께 치열하게 검토하고 논의를 나누며 의사결정을 했다. 다양한 전문가의 수많은 자문 의견도 수렴했다.
건설사는 예상보다 줄어든 공기를 극복하고, 연속되는 난관 속에 최선을 다해 공사를 진행했다. 기대와 바람이 우려와 어려움을 극복하게 하고 마침내 공원은 공모 후 7년 만에 준공됐다.공모 단계에서 우리는 ‘천년수樹원_가치 있는 미래숲으로 자라는 공원’이라는 표제를 제시했다. 숲은 긴 시간을 보고 자연과 미래의 주인공들을 위해 준비되어야 한다는 뜻으로 ‘천년’을 기약하고자 했다. 한층 더 의미있게 숲을 조성하고자 ‘나무 수’를 쓰고 수원의 상징물이 될 것을 기대하여 '뜰 원’을 붙여 ‘수원’으로 담아냈다.
천년수원은 세 가지 방향성과 12가지의 약속을 담고 있다. 방향성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공원을 통해 삶의 질과 시민 참여 의식이 높아질 수 있도록 라이프스타일을 선도하는 녹색 문화 인프라를 제안한다. 둘째, 생태성을 최대화한 명품 수목원으로서 조성 단계에서 수목이 정착될 때까지 자족적 운영 계획을 이루는 지속가능한 성장을 책임진다. 셋째, 사업의 구조인 비공원 시설로 인해 공공성을 축소하지 않고 공원 속의 쾌적한 주거를 약속한다. 또한 수익성과 경제적 효과가 지역 사회에 환원 되도록 사회적 공원의 모델을 제시한다. 이 선언적 방향성은 지속적인 난관에 부딪혔지만, 문제에 대응하며 고군분투하는 과정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중심이 됐다.
천년수원의 12가지 약속
가치 있는 미래숲으로 자라나는 공원을 구상하며 다음의 12가지를 주요 실천 전략으로 제시했다. 천년을 준비하는 건강한 참숲, 1,000가지 꽃과 들풀이 있는 수목원, 모두에게 열린 공원, 산지형 공원을 연결하는 6% 구름마루길, 지역 맞춤형 공원 프로그램, 수원다운 수원성을 담은 공원, 스마트 수목원, 사회적 자본으로서의 공원, 지속가능한 시민 참여 문화 자치 공원, 보행축을 공원으로 내어주는 상생, 공원이 있는 삶과 우수한 주거 단지의 연결, 기분 좋은 콘텐츠가 있는 복합 문화 체육 공간. 일부 변경된 내용이 있지만 기본적인 가치는 모두 담고자 했다.‘천년수원’의 명칭은 최종적으로 공모를 통해 ‘영흥숲공원’으로 정해졌다. 미사여구 없이 지닌 모습 그대로의 이름을 갖게 되었다.
개발 사업이라는 과업
영흥숲공원은 2022년 10월 가을 정취를 맞으며 시민들에게 개방됐다. 수목원은 조성 후 적정한 보완·숙성을 거쳐 만물이 소생하는 올해 봄에 개장할 예정이며, 5월에 비공원 시설인 공동주택에 입주가 이뤄지면 사업이 완결될 예정이다. 해당 사업은 민간공원 내 공동주택 건설을 위한 도시관리계획으로 전략환경영향평가를 시행했고,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의 장기 미집행 도시공원 민간공원 조성 시 ‘공원 시설 면적과 비공원 시설 면적의 합이 10만 제곱미터 이상인 사
업’에 해당되어 환경영향평가를 진행했다.
땅의 속성, 형상, 적어도 쓰임새를 바꾸는 일은 섣불리 하면 안 된다. 이곳은 영흥숲공원으로 지정되어 일부는 공원으로 이용되고 있었지만 존재 근거의 명분이 다하고 있었다. 공원이 정말 공원다워지기까지 7년이 걸렸고, 그 이전에 사업 방향을 정하기 위해 소요된 시간은 별도로 봐도 사뭇 길었던 기다림의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영흥숲공원은 섣부르게 조성되지 않았는데, 특히 환경영향평가를 통하여 사업 시행으로 인해 발생되는 문제들을 예측·분석하고, 이를 보완할 방안을 강구하며 문제를 해결해왔다. 환경영향평가와 같은 일련의 과정들은 설계 과정과 공사 일정을 좌지우지하는 큰 결정권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공공의 힘
존재하기만 하던 숲이 공원이 되면 공공성에 의한 효용 가치가 성숙되고 상승된다. 이것이 바로 공원의 힘이다. 대중의 호응을 받는 공원을 조성하는 것은 조경가의 사명이다. 조경가는 세상의 어떤 이기적 논리보다 우선하여 이타적 공공성을 위한 선의의 프로그램을 구상할 수 있다. 이는 공원 설계가 가진 선한 권력이다. 그러나 구상과 수행은 간극이 있고, 공원이 공공에 기여하는 바람직한 가치를 만드는 선의의 권력 수행 중에는 예상보다 많은 저항이 도처에 발생한다. 우리는 천년수원의 약속에 집중하되 유연한 대응으로 하나둘씩 문제를 풀어가며 설계를 진행했다.
공원 구역
공원 구역은 영통건강마당에서 시작하여 시민참여마당, 도란마당, 청소년체험숲, 그 외 순환형 구름마루길과 숲 공간으로 구성된다. 영흥숲공원은 가깝고 편리한 근린생활시설이며 동시에 시민들에게 숲 문화 경험을 제공하는 체험 공원의 역할도 수행한다. 공간의 구성은 공모안과는 다소 다르다. 환경 문제를 해결하고자 4차선 도로와 새로운 입구를 만들었다. 고즈넉한 참나무 산등성이가 사라지고, 남측으로 막혔던 지형이 입구 공원이 되었다. 흐르듯 머물 수 있는 가로공원으로길과 공간이 중첩되도록 유선형 공간을 계획하였으며, 영통체육관과 건강마당을 넓게 열어 일상에 가깝게 했다.
입구와 도시계획도로, 생태터널
공원 내 도로 신설로 인해 수원시 동·서 녹지축의 흐름이 끊기지 않도록 80m가량의 생태터널이 필요했다.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 상부에 생태숲을 조성해 녹지 흐름을 잇는 생태 브리지를 만들었다. 보강토 옹벽에는 내후성 강판을 부착해 벽 아래 담쟁이가 점차 시간을 타며 구조물을 뒤덮을 예정이다. 공원다운 공원의 진입 공간이 되길 바라본다.
공원 인프라 구름마루길
공원과 수목원의 상생을 위하여 구름마루길을 제시했다. 양측에 고저차가 최대 52m까지 나는 숲과 편평한 지형을 아우르는 원활한 동선의 순환과 접근을 위해 입체 순환로를 주요 동선으로 한 것이다. 이를 통해 숲을 포함한 공원 영역이 순환되며, 수목원 영역을 자연스레 분리하고 수목원으로의 진출입을 통제한다. 지형 차이를 이용하여 공원과 수목원을 사이를 잇는 거점과 통로로서 방문자센터를 부지 가장 중심부에 배치했다. 수목원에 입장하지 않은 근린 이용자들은 방문자센터 밖에서 공원의 공공성을 상대적으로 크게 누릴 수 있다.
방문자센터와 도란마당
방문자센터는 지상층으로 공원을, 지하층으로 수목원의 서비스를 지원한다. 건축물의 주변은 너무 넓지 않은 공간으로 비어 있도록 했으며, 공원과 수목원의 문을 터주며 전시, 전망카페, 정원교실, 가든 숍 등으로 이용된다. 목구조에 사용한 목재는 국산 낙엽송이다. 수입에 의존하던 국내 목건축에서는 새로운 시도라 한다. 도란마당은 어느 계절에나 풍성한 식물과 숲을 감상하고, 날이 밝으면 공원 이용자들이 브런치를 먹으며 일상적 행복을 누리는 공간으로 거듭나기를 바라며
조성했다.
공원 건축
공모 시 우리는 생활밀착형 수목원을 공원 프로그램과 연결시키고자 가든센터를 만들고, 여기에 ‘조경진흥센터’를 유치한다는 꿈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공원 설계 권력이 주어지자 반대로 그 꿈은 과업의 명분으로 날아갔다. 치열한 이해관계와 요구를 수용하고 유효한 규모의 필수 시설로서 공원에는 약 1,000평 규모의 방문자센터, 600평 규모의 전시 온실, 500평 규모의 영흥체육관 등 3개의 주요 건물을 공원 내에 설치했다. 각기 다른 필요조건을 수용하느라 통합 디자인을 구현하지 못해 아쉬웠지만, 최선으로 필요한 위치에 안착했다.
숲 활용 설명서, 스토리숲 신갈나무투쟁기
공원 영역은 숲이 대부분이다. 기존 숲을 잘 보전하면서 활용하기 위한 방안을 올바르게 이행하고자 했다. 숲의 공원 영역은 수목원을 감싸며 산마루길, 중턱길을 경계 삼아 바깥쪽과 구분했다. 참나무숲인 척 보이지만 사실 아카시나무가 우점종인 숲은 많은 나무가 간벌됐다. 쓰러졌거나 쓰러질 수도 있는 다 큰 아카시나무를 그대로 숲에 두면 어떨까 생각했다. 이끼며 고사리가 자라는 숲 생태 자연천이를 지켜보자는 설계자의 의견은 ‘숲 가꾸기’ 매뉴얼에 따라 지켜지지 못했다.
그래서 간벌되거나 쓰러진 나무를 활용하여 숲 놀이 시설과 산책로 정비로 활용할 수 있도록 계획했다. 오래된 숲은 다양한 이유로 훼손된 빈터가 생겨나서 우리는 여러 가지 대안을 고민했다. 나무 사이를 높게 걷는 우듬지길이나 키 큰 참나무 사이를 다람쥐처럼 이동할 수 있는 네트 어드벤처 시설, 숲 캠핑장, 전망대, 숲 학교, 후글컬쳐, 땅을 파고 만드는 버기파크 등을 구상했지만 종국에는 거의 빈터인 상태로 남겨둘 수밖에 없었다.
공원 인프라를 우선하느라 공사비가 숲에까지 이르지 못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통나무로 만든 숲 동물을 숲속 빈터에 두고 나오며 길목마다 『신갈나무 투쟁기』(2009)의 발췌문을 새겨 응원했다. 나무가 없는 숲의 빈터 5개 공간에 간벌된 목재를 활용하여 책에서 모티브를 얻은 신갈나무와 숲 요소들을 테마로 한 공간을 조성했다. 부모들이 아이와 손잡고 이 숲을 거닐며 ‘신갈나무’의 투쟁기에 동참해 숲 친구의 동지애를 키워줄 것이라 믿는다.
숲길과 구름마루길
구름마루길은 공원의 골격을 이루는 주동선이다. 방문자센터에서 분지하여 수목원을 감싸고 양쪽 숲 산마루와 수목원 온실 뒤를 돌아 한 바퀴를 이루는 1.5km의 공원길이다. 주요 구간은 4m 폭의 서비스 동선이 된다. 어떤 구간은 아치형 석재 교량, 혹은 철골 교량으로 하부의 수목원 관람로와 교차하고, 야자매트 깔린 숲길이 되기도 한다. 서숲에 이르면 공원이 가진 힘을 내려놓고, 건강한 흙길로 이어지기도 한다. 수목원을 품고 숲 공원을 한 바퀴 도는 구도다. 숲길이 곧 온전히 신갈나무 투쟁기의 현장이 되어 이용자들과 공생하기를 바란다.
공원의 디자인은 땅을 가르고 쓰임새를 열어 두고 지형의 형상을 만드는 역할을 한다. 어쩔 수 없이 지형을 만져 숲 지형을 훼손하게 되는 부분이 계속해서 발생했다. 이에 생태를 고려한 식재 설계에서 다양한 다년생 식물의 계절 특성을 배식도에 반영하고, 씨드스프레이로 대부분의 나대지를 소화해야 했다. 선한 권력에도 무거운 책임은 뒤따른다.
포장, 시설물과 안내판
주동선의 재료는 보행성, 시공성, 경제성, 공사비 등을 고려하여 투수 콘크리트로 결정했다. 공원길이 삭막하고 광활할 것을 우려하여 바닥에 라인마킹 패턴을 구사했다. 필기체로 새긴 글자는 수목의 학명이다. 초록 가득한 어느 곳에도 이름 없는 식물은 없다. 글자들은 이용자들에게 학명으로 분류된 생명과학적 숲에 발을 들여놓는 중이라고 말을 걸 것이다.
공원 내 시설물의 목재 소재와 형태를 통일했다. 작은 보행 브리지, 휴게소, 피크닉 테이블 벤치, 안내판 등에 모두 같은 목재를 사용했다. 당초에 공원 내 여러 간이 건물이 있었는데, 모두 박공지붕 형태로 통일성 있게 디자인했으나 대부분의 시설이 삭제됐다. 최선을 다해 사수한 시설물들은 소박하고 편안하게 공원 시설로의 기능을 다하고 있다. 공원의 테이블과 의자는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배치했으며, 자유로이 이동하도록 가급적 바닥에 고정하지 않았다.
영흥숲공원 안내판은 현 위치를 알려주고 길을 안내해 주는 역할을 하는 동시에, 시설을 최소화한 공원에서 경관 요소로서 일체화된 이미지를 담도록 디자인했다. 하드우드와 철망 프레임, 벌목된 통나무 등을 활용하여 단순하고 견고한 디자인이 되도록 했으며 이는 수원시 디자인 담당과의 협의를 통한 검증으로 최종안을 확정했다.
공원사용설명서
공원과 수목원은 공사 후 지속적인 관리 운영을 통해 시설 조성을 보완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공모 시 공원, 수목원 같은 대형 집중 관리 시설의 지속가능성을 위하여 별도의 재단을 만들어 관리 운영을 하고, 기부, 홍보, 사업 등에 의한 자족적 수익 모델을 창출하는 운영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해왔다. 지자체는 우선 공공성에 집중하여 그 효용을 발산시키고 발전적인 방향으로 관리 방안을 진화시켜 나가길 바란다.
향후 방문자센터를 중심으로 인재 양성을 통한 지역 주민 참여가 활발해지고, 그린트러스트 등이 활성화된다면 두터운 자족 기반이 만들어질 것이다. 영흥숲공원의 조성은 바람직하고 자생적으로 진화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든 것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라이프스타일의 변화에 맞게 시민의식이 높아져 지역 주민이 주로 참여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의 수준도 창의적으로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발길이 닿는 공원의 어느 곳, 공원이 보물 같이 품고 있는 수목원, 숲속의 이야기터 등에서 옳은 바람으로 공공에 기여하는 권한이 문화와 예술의 방식으로 일상화되는 공원을 기대한다. 시민과 함께 계절을 감상할 준비가 되었다. 이곳은 일상을 보내는 누군가에게 진달래 먹고 물장구치고 다람쥐 쫓던 숲과 공원이 함께한 아련한 고향의 장소가 될 것이다.
글 서미경 해안종합건축사사무소 조경설계실
공원 총괄 해안종합건축사사무소 조경설계실(서미경)
공원 설계 주관 해안종합건축사사무소 조경설계실(김은지, 최유미, 정혜림)
공원 설계 참여 해안종합건축사사무소 조경설계실(이상국, 김상우, 김남훈, 이상민, 이은진, 이지훈, 박정은, 이유진, 최소정, 조동희, 조선희, 백지현, 정은숙, 김경엽)
수목원 설계 동심원조경기술사사무소
공원 건축 설계 건축사사무소101(한준일)
사업MP 김인호(전 신구대학교 식물원), 김현(단국대학교), 김건호(천리포수목원)
발주 수원특례시 도시개발과 + 천년수원
시공 대우건설(김명수)
위치 수원특례시 영통구 영통동, 원천동 일원
면적 593,311m2(수목원 146,000m2, 비공원 84,148m2 포함)
완공 2022. 10.
사진 해안종합건축사사무소, 이남선, 안근호
해안종합건축사사무소 조경설계실은 건축 환경, 그린 인프라, 공공 공간, 특화 공간 등을 설계한다. 환경과 삶의 공간에서 자연과의 공생을 고민하여 상호 호응하는 공간 창출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조경을 통해 어우러지는 환경이 견고해지는 동시에 유동적으로 재구조화되어 감동으로 이어지기를 바라며 공공적 가치를 바르게 구현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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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흥수목원
Suwon Arboretum Yeongheung
수원시는 도시공원 일몰제 시행에 따라 도시공원에서 해제될 위기에 처한 영흥숲공원을 ‘친환경적 도심 내 수목원형 공원’으로 조성할 것을 공모 지침으로 요구했다.
공원과 수목원의 차이
공원과 수목원은 식물을 심어 아름다운 공간을 만든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공원은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이자 복지의 일환으로 만든 곳이고, 수목원은 관찰이나 연구의 목적으로 여러 가지 나무를 수집해 재배하는 시설이다. 두 공간은 조성 목적에서 차이가 있다.
수목원은 심겨지는 모든 식물을 기록해 관리할 필요가 있고, 무엇보다도 종 보존을 해야 하는 귀한 식물이 있는 만큼 일정 수준의 보안이 요구된다. 유지·관리비가 많이 드는 시설이기에 무료가 아닌 과금 시설로 관리될 필요가 있다.
수목원을 영흥숲공원에 어떻게 대입할 것인가
대상지는 산지형으로 주변이 개발되면서 조금씩 깎여 나가 도심 중앙에 산으로 남겨진 땅이다. 도시 안에서 만나기 힘든 숲이며, 인근 주민들의 산책로이자 학교가는 길이었던 곳이다. 이런 곳을 수목원으로 만들어 입장료를 지불한 사람들만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주민들에게 상실감을 안겨줄 것이다.
식물 전시
이용자들이 소정원을 통해 아름다운 경관을 느낀 후 나무 하나하나를 들여다볼 수 있도록 공간을 구성했다. 아름답고 값비싼 나무들로 된 전시장을 지양하고, 공간이 주는 분위기를 체험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이를 통해 이용자들이 어렵지 않게 꽃과 나무를 접하고 배울 수 있게 하는 것을 목표로 설정했다. 이런 경험으로 환경이 가진 가치를 느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완만한 논밭은 너른 잔디마당과 초화류 중심의 주제원으로 구성했다. 개장하면 바로 감상할 수 있는 디스플레이 가든으로 만들었다. 이곳을 둘러싼 숲은 향후 영흥수목원을 대표할 만한 수목들을 모으고 성장시켜 십 년, 이십 년 뒤를 기약하는 숲이 될 것이다.
생태숲(동숲)과 전시숲(서숲)
남겨진 숲은 밖에서 볼 때와 달리 고사목과 도복목이 많았고 아까시나무가 우점한 숲이었다. 도시생태학연구센터(HUNECO)가 조사한 결과, 장기 계획에 의한 적극적 수종 갱신이 필요한 상태였다. 서숲은 부분적 간벌을 통해 수목원의 컬렉션을 만드는 숲으로, 동숲은 관리를 통해 중부온대림을 보여주면서 하부에는 희귀 초화, 자생 식물을 전시한 숲으로 구성했다. 띄운 데크와 벽체를 활용해 경사도 8% 이하의 길을 구성해 숲을 감상하며 걸을 수 있도록 했다.
‘물의 수목원’ 온실
온실은 물과 맞닿아 있고 5m의 레벨차를 지닌 언덕 위에 배치했다. 온실의 규모는 크지 않으나 지형차를 활용한 동선을 통해 길게 관람할 수 있다. 지하에는 화장실과 사무실 등 부대시설이 위치한다. 수원은 매홀買忽(물골)이라 불리다 수원이란 이름으로 정착됐다. 이러한 이야기를 담아 온실에 여러 물웅덩이를 만들고 연꽃과 수련을 식재했다.
글 김영아 동심원조경기술사사무소 소장
조경 설계 동심원조경기술사사무소(안계동, 김영아, 안원영, 강인화, 백충석, 홍진아, 정세미, 김평주, 최광재, 김혜빈, 한창수, 황동석, 김황순, 박소연, 김영찬, 최이숙, 류승주)
방문자센터, 온실 건축 설계 건축사사무소101(한준일, 박혁준, 김병채)
지원 산내식물원, 도시생태학연구센터, 가림환경개발
위치 수원특례시 영통구 영통동 20-1
면적 146,093.83m2
개장 2023. 4.
사진 이근호, 동심원조경기술사사무소
동심원조경기술사사무소는 땅이 가지고 있는 힘을 충실히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과도한 수사적인 디자인을 경계하고 이용자가 체감할 수 있도록 변화하는 삶을 담아내는 설계를 지향한다. 더 나은 삶의 문화를 이끄는 공간을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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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덤 광장
Freedom Square
프리덤 광장 리뉴얼 설계공모
2016년 파네베지스(Panevėžys) 시의회는 도심의 핵심 광장을 대대적으로 리뉴얼하기로 결정했다. 주요 목표는 시민들이 야외 활동에 참여하도록 장려하는 열린 공간을 만드는 것이었다. 기존 광장의 여건은 21세기 유럽 도시의 역동적 비전을 수행하기에 부족한 면이 있었다.
발티카(Baltica) 철도로의 접근성이 높은 광장은 풍부한 비즈니스 기회를 제공하고 지역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강력한 지역 거점으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을 지닌 곳이었다.
시의회는 파네베지스 프리덤 광장 리뉴얼 설계공모를준비하며 연구와 설문조사를 진행했는데, 응답자의 3분의 2가량은 광장을 그냥 지나쳐가거나 30분이 채 되지 않는 시간만 머무르다 떠난다고 답했다. 시민들은 광장의 중심에서 시간을 보내기보다 광장 주변의 레스토랑이나 카페에 가는 것을 더 선호했다. 많은 응답자가 기존 광장도 만족스럽지만 몇몇 종류의 인프라를 개선하면 훨씬 더 좋은 광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설계 목표
연구와 조사 결과를 통해 설계 목표를 도출했다. 광장의 형태를 과도하게 변화시키지 않는 섬세한 재설계를 통해 넓은 공공 공간, 오래된 나무들, 기능적인 보행자 동선 등 장점과 잠재력을 극대화해 주민들에게 매력적인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작은 섬
역사가 깊고 기능에 충실한 광장의 형태를 변경하지않고 현대적이고 발랄한 디자인, 조명, 천연 소재를 통해 개선 작업을 진행했다. 기존 광장은 주변부에 상업 기능이 밀집되어 있었고, 중심부는 이벤트 공간, 도시공원 구역, 공공 주차장―현재는 시의회 행사 장소로 사용 중―으로 나뉘었다. 그중 넓은 중심부를 작은 섬으로 분할하고, 섬마다 각기 다른 구체적인 기능을 부여해 공간을 활성화하고자 했다. 어린이 놀이터, 차분한 분위기에서 휴식할 수 있는 식물 섬, 섬과 섬 사이에 마련한 개인적인 공간이 그 예다.
*환경과조경417호(2023년 1월호)수록본 일부
글 501 architects
Lead Architect 501 architects(Martynas Norvila, KęstutisKasperavičius, Mindaugas Karanevskis, Laura Gaižutytė, Austėja Balčiūnaitė)
Project Management Mutuus
Landscape Design Consultant AOE Lozuraitis
Lighting Design Consultant Korgas
Civil Engineering Via Projecta
Structural Engineering Projektuok.lt
Manufacturer iGuzzini
Location Panevėžys, Lithuania
Area 8ha
Completion 2021
Photograph Norbert Tukaj
501 아키텍츠(501 architects)는 맥락에 입각한 설계를 하는 도시계획가와 건축가로 구성된 그룹이다. 파네베지스 프리덤 광장 리뉴얼 설계공모에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공공 공간 설계에 적극 참여하며 조경, 주거 건축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엔지니어링과 시공 프로젝트에도 관심을 갖고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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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투르크라프트
Naturkraft
새로운 자연을 담은 감각적 멀티버스
덴마크 서해안에 위치한 작은 도시 링쾨빙(Ringkøbing)에들어선 나투르크라프트(Naturkraft)는 새로운 형식의 탐험관이자 자연 체험 공간이다. 50에이커 규모의 새로운 자연과 건물에서 사람들은 자연이 지닌 물리적이고 미학적인 힘을 경험하고, 미래 지속가능한 도시와 커뮤니티를 어떻게 형성해야 하는지 살필 수 있다.
핵심 공간은 새로운 자연이다. 이곳에서 신체 놀이, 학습 활동, 인간과 자연의 상호작용을 직관적으로 이해시키는 공간을 통해 자연의 힘을 깨달을 수 있다. 지역 고유의 지질 다양성, 자연, 문화사에 대한 종합적 연구를 바탕으로 서부 유틀란트(Jutland)의 기존 자연 경관을 서쪽에서 동쪽으로 가로지르는 17km 길이의 ‘단면’을 조성했다. 이 단면을 토대로 사구, 황야, 습지, 탄소 숲 등 여덟 가지의 자연 유형을 인간이 만든 새로운 형태의 생태계와 결합했다. 그 결과 다양한 유형의 자연이 집약적이고 초감각적으로 병치되는 풍경이 완성됐다. 이는 자연이 우리 생활과 사회의 근간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자연 기반 도시와 미래 사회를 위한 모델
생명과 삶의 기반으로서의 자연은 나투르크라프트를경험하고 이해하기 위한 기본 원리다. 자연의 물리적 현상과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정서적, 인지적 가치에 초점을 맞춰 설계를 진행했다. 인간이 경험하고 사용하며 느끼는 가시적인 자연의 힘뿐 아니라 자연의 미학적 가치를 자연현상을 통해 일깨워주고자 했다. 궁극적으로는 자연적인 과정을 활용하는 것이 미래 도시와 지역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줌으로써, 자연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에서 배우고 함께 살아가야 함을 깨닫기를 바랐다.
*환경과조경417호(2023년 1월호)수록본 일부
글 SLA
Lead Landscape Architect(New Nature) SLA
Architect(Building, Arena and Experiences) Thøgersen&Stouby
Architect Hune & Elkjær
Engineers NIRAS, Fuldendt
Contractor Hansen & Larsen
Client Naturkraft Foundation
Supported Financially by A.P. Møller Foundation, Ringkøbing-Skjern Municipality, Realdania, Augustinus Foundation, Vestas, Villum Foundation, Færch Foundation, Tryg Foundation, Velux Foundation, ErhvervsVækst Ringkøbing, Beckett-Foundation, Krogager Foundation, Hedeselskabet.
Location Ringkøbing, Denmark
Area
Site: 50ac
Nature Area: 5ac
Completion 2020. 6.
Photograph Naturkraft, SLA, Thøgersen&Stouby, Torben Petersen
SLA는 자연을 기반으로 한 조경, 지속가능한 도시 디자인, 도시계획을 진행하는 디자인 스튜디오다. 덴마크 코펜하겐에 설립되어 지난 30년간 여러 공공 공간과 마스터플랜을 만들었다. 공원과 광장에서부터 도시 전역에 걸친 마스터플랜, 국가 단위의 생물다양성 전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규모의 프로젝트를 다룬다. 현재 유럽, 북미, 아시아, 중동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