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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농업: 도시농업과 정책 제도
도시농업 국내 제도우리나라에서 도시농업에 대한 조례를 처음으로(2009년 12월 31일) 만든 곳은 광명시이다. 광명시 시민농업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조례이며, 이 조례는 환경과 생명을 살리는 시민농업 활성화 및 지속적인 발전을 통해 도시의 살아 있는 흙과 공동체 문화 공간을 넓히고, 시민들이 친환경적인 생활을 영위하는데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다음으로(2010년 3월 29일) 만든 곳이 수원시이다. 수원시 도시생태농업 육성 조례이며, 이 조례는 수원 시민에게 친환경적이고 생태적인 농사 체험의 기회를 제공하여 공동체 문화 공간을 넓히고, 건강한 삶을 영위하는데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다음이 안양시 도시농업 육성·지원 조례이며 2010년 10월 7일에 제정되었다. 서울특별시 강동구의 친환경 도시농업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조례는 2010년 11월 10일에 제정되었다. 그리고 경기도의 도시농업 활성화 지원 조례가 2011년 5월 3일에 제정되었다. 아울러 현재 김학용 국회의원실을 중심으로 농림부는 법 제정을 준비하고 있다. 가칭 도시농업의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며, 이 법은 도시농업을 육성·지원하고 그 발전 기반을 마련함으로써 도시민의 농업·농촌에 대한 이해를 증진하고 자연 친화적인 도시 환경을 조성하며 도시민의 정서 순화와 공동체 의식 함양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향후 정책 제도의 방향국내의 정책과 제도 그리고 외국의 정책과 제도를 쭉 열거하면 본지의 지면도 부족할 것이다. 문제는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측면이 무엇인가? 정책과 제도 측면에서 정말로 현 시점에서 필요한 것은 도대체 무엇이고 왜 그런가? 그리고 나아가 조경학이나 조경업 측면에서 어떤 것들이 아쉬운가 하는 점이다.
첫째는 중앙 정부의 역할이 중요한데 먼저는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여 도시공원 내에서 도시농업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다. 도시농업에 대한 시민의 수요는 폭발하고 시민 사회의 활동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문제는 도시농업을 할 장소가 없다는 것이다. 이를 좀 배려해 주었으면 한다. 여기서 조금 더 욕심을 낸다면 중앙 정부가 각 광역시도별로 한 개소 정도의 도시농업 공원을 조성해주었으면 한다. 현재 도시공원 분야에서는 장기 미집행 도시공원이 가장 큰 이슈이다. 이를 일정 해소하면서 최근의 수요를 받아들일 수 있는 즉,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방안이다.둘째, 멘토를 어떻게 양성할 것인가이다. 전국귀농운동본부는 이미 민간 차원에서 멘토를 양성해 왔다. 농촌진흥청과 경기도농업기술원은 이에 대한 수요를 파악하고 공식적인 자격 제도를 연구하고자 하고 있으며, 경기농림진흥재단은 민간 차원에서 자격 제도를 시도하고자 하고 있다. 다만, 한 가지 이슈는 이에 대한 용어이다. 보통 전문가, 지도자, 안내자 등으로 불리고 있는 가운데, 수원시는 생태도시농업 안내자로 명명하기로 했다고 한다. 이들의 명명만이라도 빨리 합의를 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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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농업: 도시농업과 환경 복지를 잇는 커뮤니티 가든
최근 도시농업이란 용어가 뜨고 있는데 이는 친환경, 녹색이라는 최근의 트렌드 속에 안전한 먹거리 확보라는 가장 기본적인 욕구가 깔려있고, 참여자들이 소통할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으로서의 역할이 기대되기 때문이다.
최근 일본에서는 우리가 말하고 있는 도시농업을 원예 복지란 측면에서 접근하면서 전국적으로 네트워크를 구성하여 원예 복지를 전 국민에게 보급 확산시키고 있다.원예 복지 활동이란, 꽃이나 채소를 재배하고, 자연과 접촉하면서 모두가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나아가 도심과 자연 속에서 식물의 종자가 발아하고, 성장, 개화, 결실, 수확의 과정에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참가하면서 식물과 접하고 재배하는 즐거움과 기쁨을 공유하는 것이다. 원예 복지 활동의 분야는 대체 치료의 분야에서부터, 환경 보전, 마을 만들기, 정서 교육과 생애 교육, 장애우와 고령자의 복지 등 넓은 분야에서 활용될 수 있다. 또한 각각의 가정뿐만 아니라 인근과 지역 사회 속에서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방법 그리고 이를 체감하는 장소나 공간을 만들어가는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도시농업과 관련한 사회적 현상이 조경과 복지와 무관하지 않음을 알 수 있으며, 일각에서는 조경의 나아갈 방향과도 연계하여 도시농업과의 관련성이 주요한 분야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도시농업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기능 중 환경 복지란 측면에서 접근할 경우, 커뮤니티 가든의 용어가 가지고 있는 주목해야 할 몇 가지 단서를 찾아볼 수 있다. 안전한 먹거리 생산이라는 농업적 의미 이외에도, 도시농업의 공간으로서의 커뮤니티 가든은 공간이 가지고 있는 경관성과 환경성, 그리고 이 공간에서의 참여 과정에서 나타나는 참여자 간의 소통, 참여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원예 치료와 같은 심리적인 효과 등 복지와 관련한 다양한 가치가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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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농업: 도시 문제의 새로운 해법, 도시농업
도시화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 도시는 심각한 환경 문제를 겪게 되었다. 대기 오염, 수질 악화와 같은 일반적인 도시 환경 문제 외에도 지나친 토양의 피복이라는 문제를 안게 되었다. 선진화된 도시는 신발에 진흙을 묻히지 않도록 잘 포장된 인도와 먼지를 날리지 않는 차도가 상징이었다. 하지만 외국의 선진 도시에는 충분한 녹음과 쾌적한 공원도 같이 조성되었다. 하지만 급하게 도시화가 진행된 우리 도시는 충분한 녹지와 공원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도시의 대부분이 도로와 건축물에 의해 피복되었다. 뿐만 아니라 주택에 마련된 작은 정원들도 편의에 따라 거의 대부분 콘크리트로 포장되어 하늘에서 내리는 빗물이 거의 땅속으로 스며들지 못하고, 빠른 시간 안에 강으로 흘러들게 되었다.이와 같은 도시 개발 과정에서 가장 쉽게 훼손되는 것은 도시 주변의 크고 작은 농경지들이다. 농경지는 도시를 부양하는 가장 중요한 식량 공급원이지만, 도시 확장 과정에서는 부족한 도시 용지를 공급하는 유보지와 같은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하지만 도시의 확장과 고밀 도시 개발로 도시 생태 문제를 보다 넓은 면적으로 확산시키는 악순환이 반복되게 된다.
결국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도시 생태 해결 방안의 하나로 부각된 것이 1990년대 이후 서울을 중심으로 활성화되기 시작한 옥상 녹화 등의 인공 지반 녹화 운동이다.<중략>우리나라의 경우도 2000년대 중반 이후 이와 같은 목적에서 옥상을 도시농업을 위한 중요한 거점 공간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흐름이 부각되기 시작하였다. 대표적으로 이와 같은 흐름을 주도한 그룹은 서울그린트러스트와 같은 시민 단체들이다. 서울그린트러스트에서는 2008년부터 상자 텃밭 보급 사업을 시작하여 토지가 부족한 도시 공간에서도 옥상 등을 활용하여 도시농업을 활성화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였다. 2011년부터는 기존 상자 텃밭이 가지는 화분의 부피, 파손된 화분으로 인해 발생하는 새로운 폐기물 문제 등을 감안하여 폐 현수막 등을 이용한 자루 텃밭 보급 사업을 시작하고 있다.
또한 옥상 녹화 전문 업체를 중심으로 기존의 옥상 녹화 및 옥상 조경의 틀에서 벗어나 옥상 텃밭 조성과 같은 사업들이 진행되고 있다. 특히 기본 영농 관련 회사들을 중심으로 단순한 취미적 도시농업의 한계를 벗어나 적극적으로 도시의 건축물을 영농 대상으로 삼고자 하는 건축물 개간이라는 관점에서 기존의 채소 재배를 넘어서 과수 재배, 가금이나 가축 기르기 등과 같이 보다 적극적인 도시농업의 형태를 추구하는 것도 새로운 경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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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농업: 도시농업, 도시 공원의 새로운 흐름
도시농업에 대해서 요즘 새롭게 생각해 본다. 도시농업이란 무엇일까? 농업의 한 형태일까, 아니면 도시의 토지 이용의 한 형태일까? 농업인에게 도시농업은 농업의 일부로 보일 것이고, 조경인에게는 조경의 일부로 생각할 수 있다. 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영국인들이 가드닝에 취미를 가지고 있듯이 도시농업을 텃밭을 가꾸는 취미로서 향유할 수도 있으며, 또한 경제 활동의 일부일 수도 있고, 아이들에게는 자연의 향기를 조금이라도 느끼게 할 수 있는 체험 교육 활동의 일부로 볼 수도 있다.도시농업에 대한 생각이 다르다는 것은 각자의 역할이 다른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으로는 도시농업은 도시+농업으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도시농업을 ‘업(산업)’으로서 농업의 일부로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도시농업의 역사를 얘기하는 사람들은 기원전 몇 년 얘기를 한다. 옥상텃밭(정원)은 바빌로니아의 공중정원을 얘기하기도 한다. 물론 그런 역사를 통해 우리가 긴 삶의 흔적, 가치의 계승 등을 얘기할 수는 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얘기하는 도시농업은 현재의 우리 도시에대한 이야기이다. 우리의 도시는 어떤가. 미국의 도시, 유럽의 도시, 일본의 도시와는 다르다. 쿠바 아바나의 도시와는 더더욱 다르다. 또한 우리 안에서도 도시농업의 배경이 되는 도시는 서로 다르다. 0.6% 면적에 인구의 1/2이 살고 있는 서울의 도시농업과 전라남도 순천시의 도시농업을 같은 맥락으로 얘기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쿠바의 도시농업은 생존과 경제적 자립을 위한 수단이고, 미국의 커뮤니티 가든은 공동체 운동의 일환으로, 독일의 클라인가르텐은 도시민의 정서적 안정과 휴식처로서, 일본의 시민농원 역시 다른 의미와 역할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각 도시가 가지고 있는 사회경제적 처지와 토지 환경에 따라 도시농업은 서로 다른 이름으로 등장하고 발전해오고 있다. 그래서 도시농업은 도시와 농업의 합성어이다. 도시농업은 여전히 농업의 한 유형이기도 하면서 도시의 발전 과정에서 나타나는 사회·경제·문화적 활동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필자는 도시농업을 서울이나 수도권에서, 그리고 대도시에서 주도하는 것에 큰 문제점과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도시마다 다른 느낌과 철학과 지위를 가지고 도시농업을 얘기할 때 좀 더 솔직해질 수 있다. 오히려 도시농업은 중소도시에서 훨씬 파괴력을 가지고 있고, 강력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2010년 도시농업을 고민하는 시민활동가들이 모여 ‘도시樂농업네트워크’를 발족하고 토론회를 가진바 있다. 이때 몇 차례의 기획 과정을 거쳐 도시농업의 의미를 ‘자립, 소통, 순환’으로 규정하였다. 이 때의 논의가 어떤 사회적 배경을 갖는지, 또 앞으로 얼마의 역사를 함께할지는 모르는 일이다. 2010년에 많은 사람들이 집중하여 도시농업에 대한 정의, 범위, 개념을 정리한 ‘자립, 소통, 순환’의 의미에서 도시농업은 서울에서 실현하기 매우 어렵다. 아니 불가능하다. 첫째 자립이라는 관점에서 서울의 모든 옥상 면적과 그린벨트 농경지를 합하더라도 식량 10%의 자립을 얘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반면 상추는 25% 정도 이미 자급하고 있다고 한다. 이유는 근교하우스원예 때문이다. 싱가포르도 20% 정도 채소를 자급하고 있다고 하니 대도시에서도 자립에 대한 얘기를 전혀 할 수 없는 주제는 아니지만, 중소도시에는 도시농업을 통한 채소의 자립이 충분할 만큼 여유 있는 농경지와 농부가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둘째 소통이라는 문제는 상대적으로 대도시에서도 유효하다. 사람과 자연이, 자연과 자연이(도시생태계의 구성을 도시 + 농경지 + 숲과 물로 본다면) 소통하는 경계에 도시농업이 존재한다. 또 아이들의 환경 교육, 가족의 소통, 이웃 간 소통의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 역시 지역 사회의 협력과 소통이 익숙한 중소도시의 도시농업을 통한 소통과 비교하면 매우 추상적이고 제한적이다. 셋째 순환은 제한된 공간에서 논리적으로 가능할 수 있지만, 대도시에서 도시 전체를 배경으로 하는 음식물의 순환, 흙의 순환, 물의 순환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도시생태계의 일부가 될 수 있는 도시농업 공간은 이러한 순환 과정에서 매우 미미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도시농업은 ‘자급, 소통, 순환’이라는 측면에서 대도시나, 중소도시에서 규모와 질적으로 다르긴 하지만 모두 그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도시농업이 도시의 자급 능력에, 소통에, 순환에 크게 기여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최소한 사람들을 고민하게 하고, 잊었던 생명에 대한 생각들을 떠오르게 한다. 노동의 기쁨, 작물과 흙의 촉감을 통해 가족과 이웃 간의 유대 관계를 느끼게 해준다.도시농업은 그런 것이다. ‘문화’, 자급 또는 자립하고자 하는 문화, 소통하고자 하는 문화, 순환하고자 하는 철학과 문화를 얘기한다. 도시농업은 구체적인 과정과 결과물을 갖고 있으면서도 음악과 미술과 같은 문화 예술의 영역이기도 하다. 도시농업을 도시 공원과 같은 공간적인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것 같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도시농업은 시민들의 행위이자 문화 활동으로 정의하고, 공간 개념으로는 여러 가지 유형의 도시텃밭으로 구분하여 정의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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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농업: 도시농업과 도시 재생
도시농업은 새롭거나 유별난 것이 아니다. 오랜 전부터 우리 주변에서 많은 사람들이 도시에서 농업을 하고 있었다. 마을에 버려진 땅을 훌딱 고랑을 만들고 채소밭으로 만드는 우리 주변의 할머니, 할아버지, 어린이들과 주말농장을 찾는 가족들, 그리고, 옥상과 베란다에 작은 모종화분에 고추니 상추 등을 길러내며 즐거워하는 우리들의 어머니, 이들 모두가 도시농업의 구성원이자 참여자들이다.
1. 도시농업은 이제 우리의 일상이 되고 있다도시농업(urban agriculture)은 도시와 농업이라는 두 단어가 어울리지 않게 결합된 것 같다. 이처럼 부조화의 개념 조합처럼 느끼는 것은 농업은 도시가 아닌 농촌에서 행해진다는 인식 때문이다. 하지만, 도시농업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도시에서 행해지고 있으며, 시대에 따라 작물을 심는 공간·방법·목적이 달라지면서 다양하게 정의되고 있다. 지금까지 도시농업에 대한 주요 개념을 여러 측면에서 개략적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나영은, 2010).① 대상적 측면에서 도시농업은 도시민과 농업인의 농사 목적에 따라 구분하였다. 도시민은 상업적 생산보다는 안전한 먹거리를 위한 자급자족적인 텃밭이나 취미용 농업 형태를 갖는 반면, 농업인은 상업적인 농업 형태를 갖는다.② 생산적 측면에서 도시농업은 도시 과정에서 농업을 복합 산업화라는 차원으로 접근하여 농업의 영역을 확장하는 형태이며 농업 생산을 위해 계획적으로 보전되어야 하는 농업으로 규정했다.③ 환경적 측면에서 도시농업은 도시의 환경 문제와 결부하여 도시의 녹지 공간으로 간주하고 있으며 도시의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보고 있다.④ 농업의 다원적 기능 측면에서 도시농업은 생태지향적인 성격을 갖고 도시 문제의 완화내지 해경을 위하여 농업의 다원적 기능을 최대한 확충해 나가는 농업으로 간주하고 있다.⑤ 삶의 질 향상 측면에서 도시농업이란 도시에서 농업 활동을 통해 먹고, 보고, 즐기는 것으로 인간 중심의 생산적 여가 활동으로 몸과 마음의 건강과 행복을 피하는 것으로 2009년 도시농업연구회 창립 심포지움 자료에 언급하고 있다.
또한 농촌진흥청 도시농업 중장기 추진 계획에 다르면, 도시농업은 도시 또는 도시 인근에서 다양한 작물이나 가축을 생산하기 위해 자연 자원이나 도심의 폐자원을 재활용하여 집약적인 생산, 가공, 유통을 하는 행위와 더불어 도시의 공동체 회복을 위해 이루어지는 일련의 농업적 활동이라고 정의하고 있다.도시농업이란 도시민들이 도시 안에 소규모 농지를 조성하고 그곳에서 농사를 지음으로써 ‘먹고 보고 느끼는’ 인간적이고 자연적이며 생산적인 여가 활동을 의미한다. 농사 목적은 소득 창출보다는 농산물의 소중함, 생명의 가치를 이해하는 정서 향상의 의미가 크다. 전 세계적으로는 10%가 참여하고 있고, 우리나라는 붐을 이루고 있지만 아직은 시작 단계로 서울시의 경우 12% 정도의 시민이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엄청난 변화이고 이를 사회적 현상으로 해석하는 학자들도 있다.이와 같이 도시농업의 개념은 나라마다, 지자체마다 환경과 목적에 따라 다양하게 정의되고 있다. 따라서 이런 다양한 개념을 포괄적으로 수용할 수 있도록 녹색생장위원회는 도시농업을 도시 행정구역 내에서 농업의 다원적 공익 기능을 도시에 접목하는 모든 농업 활동으로 정의하고 있다(나영은, 2010).조경가들에게 도시농업은 낯선 용어는 아니다. 농민이 아닌 도시의 시민이 농지를 빌려 경작하는 제도인 독일의 분구원(kleingarten)이 조경사(造景史)에는 오래 전부터 잘 알려져 있다. 유럽과 북미 등 거의 모든 나라에 도시농업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국의 얼롯먼트 가든(allotment garden, 분할 대여된 농지), 네덜란드의 폴크스타인(volkstuin), 스웨덴의 코로니트레거드(kolonitradgard), 프랑스의 자르뎅 파밀리으(jardin familiaux), 미국의 커뮤니티 가든(community garden) 등이 대표적인 도시농업이다.
도시농업의 주가가 상승세를 타고 있는 가운데, 농촌진흥청이 최근 도시농업 활성화를 위한 중장기 로드맵을 발표했다.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문제점(도시열섬 현상, 식량 부족, 온실가스, 반사회성 등)을 농업이 가지는 다원적 가치(대기 정화, 토양 보전, 수질 정화, 홍수 조절, 기후 조절, 정서 순화 등)로 해결하겠다는 것이다.하지만 얼마 전까지 도시농업에 대한 일반적 인식은 계획적으로 보전되는 농업보다는 도시 내 경과적 또는 잔존적인 농업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이로 인하여 도시 형성 과정에서 장애물로 인식되어 소멸되거나 없어져야 하는 일시적 형태로 인식되었으나 도시농업은 일반적 농업 생산을 바탕으로 취미 농업, 생활 농업, 시민 농업, 교육 농업, 텃밭, 커뮤니티 가든 등 도시 내에서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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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농업: 생산에 관하여
농경은 농업에 대한 가장 보편적인 이해 이상으로 생산이라는 특권을 향한 인프라스트럭처와 어바니즘, 건축, 조경의 변형이다.대부분의 나라에서처럼 한국도 산업화 이전에는 농업이 최우선적인 경제였다. 최초로 인간의 정주를 가능하게 한 농경은 가축뿐 아니라 토지에 대한 일종의 지배를 의미했다. 국제화를 낳은 산업화는 문화와 가정 형태를 변화시켰고 개발된 도시의 경관을 바꿨다. 서울의 부동산 시스템은 본질적으로 토지를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토지와 분리된 생활양식인 “아파트”가 지배적이다. 추상적인 가치이지만 하늘에 둘러싸인 공간은 실제 거래되는 공간의 재산 가치로서 시장성을 띠고 있다. 전통적인 가정의 사회 경제적·성적 역할은 결혼 패턴과 생활방식으로 인해 변화되었다. 그리고 한국의 식량과 가축 수입 의존도는 증가하고 있으며, 2001년에서 2005년 사이에 수입은 30%로 늘었고, 같은 시기의 농업 수출은 5%로 감소했다.오늘날 서울같은 도시에 땅과는 분리된 생활환경이 이미 일상화 되어 있는 것을 고려해 볼 때,농업을 공원이나 아파트 또는 인프라스트럭처의 주변 공간에 재분배한다고해서 ‘땅의 문화’를 다시 도입할 수 있을까? 도시농업이 지역적 생산을 통해 생태적이고, 경제적이며, 건강한 음식물을 안전하게 제공하는 등의 이점을 줄 수 있을까? 현대의 목축 농업을 낭만적으로 묘사한다면 다시 공공 공간의 기반을 만드는 방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가정의 변화 패턴과 함께 도시 경관에 대한 재이해는 “생산적”인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산업화 이전 시대부터 농업에 기반 한 경제와 생산은 인간중심적인 용어로 평가되었다. 환경 차원의 스펙트럼을 다루기 위해서는 단지 인간의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방법만이 아닌 그외 다양한 종의 동식물을 포함한, 새롭게 조정된 규모를 통해 생산을 재평가할 필요가 있다.
Farming, beyond its most common agricultural understanding is the modification of infrastructure, urbanisms, architectures, and landscapes toward a privileging of production.Agriculture, as in most countries, was South Korea’s primary economy before industrialization. Farming, the earliest enabler of human settlement, represents a formal domestication of land as well as animals. With the globalism that emerged from industrialism, changing cultures and forms of domesticity have altered the developed landscapes of the city. In Seoul’s essentially nomadic real estate system, the dominant “apart” [apartment] style of living space is separated from a collectively experienced - if not owned - ground.Abstracted property, enclosed sky space, has assumed a marketable value, a kind of spatial currency that is frequently traded.Traditional socioeconomic and gender roles in households are changing with altered forms of domesticity, along with marriage patterns and lifestyles. And South Korea’s dependency on food and live animal imports is growing - by 30% from 2001 to 2005, as its agricultural exports decline - by 5% in the same period.In the present de-grounded, disseminated domestic environment of cities like Seoul, could redistribution of agriculture into the shared spaces of the city reintroduce a “land culture” to the spaces of parks, apart landscapes, and the margins of infrastructure? Can urban agriculture offer a collective approach to the compelling ecological, economic, health and food security benefits of localized production? Might contemporary pastoralism, even or especially when romanticized, become also a way to re-ground public space?The reconception of the urban landscape with changing patterns of domesticity entails reconsideration of what is “productive.”From the time of pre-industrial, agriculture-based economies, production has been measured in anthropocentric terms. To address a spectrum of environmental parameters, it has become necessary to reevaluate production through scales calibrated on multiple species, animal and vegetable, in addition to and alongside human social and economic meas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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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농업: 영국 얼롯먼트를 통하여 본 도시농업과 정원문화
언제인가부터 도시농업이 우리 주변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하지만 아직 그 실체가 체감되고 있지는 않다. 현실적이기 보다는 의미적으로 보다 다가왔다는 말이다. 이것은 아마도 환경에 대한 자각과 함께 웰빙을 주제로 건강과 먹을거리에 대한 것이 동시에 고려된 키워드라고 보인다.
유엔개발계획에 따르면, 도시농업이란 “도시 또는 도시 인근의 토양과 수상에서 다양한 작물이나 가축을 생산하기 위해서 자연 자원이나 도심의 폐자원을 활용하여 집약적인 생산, 가공, 유통을 하는 행위”라고 정의하고 있지만, 실상은 보다 다의적으로 쓰이고 있다. 개발도상국에서는 주로 식량 시스템의 보완, 빈곤의 완화, 유기질 폐기물의 재활용이라는 관점에서 영양 부족과 배고픔 해결을 위한 식량 생산을 주목적으로 한다. 반면 선진국에서는 보다 많은 목적을 담고 있다. 첫째 생산, 여가, 취미, 보건, 생태의 측면에서 다양하게 활용하고, 도시 녹지를 보전하는 하나의 축으로서의 활용; 둘째 일부 자급을 통해 수송 거리 단축에 따른 에너지 절감과 이산화탄소 배출량 감소와 생활 쓰레기를 퇴비화해서 재사용하는 과정에서 자원 순환; 셋째 경작을 통해 표토 유실의 감소와 대기 중의 수분 조절과 같은 미세기후 조절; 넷째 현대 사회에서 쟁점이 되고 있는 패스트 푸드(fast food), 정크 푸드(junk food), 유전자 변형(Genetically Modified Organism, GMO) 작물, 환경 호르몬 등으로 인해 먹을거리에 대한 불안감 해소를 위해 직접 재배한 안전한 먹을거리; 마지막으로, 가족, 나아가 이웃 주민과의 교류를 통한 공동체 의식 향상 등을 목적으로 한다.
우리의 경우도 이러한 목적과 의미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도시농업이 자리를 잡고 발전해오고 있는 선진 사례는 그 기반에 있어 우리와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도시농업의 대표적 아이콘으로 여기는 독일의 클라인가르텐(Kleingarten)이나 영국의 얼롯먼트(Allotment)는 정원 문화를 기본으로 형성 혹은 발전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주거 형태의 급격한 변화로 인하여 현대의 정문 문화가 성립되지 못한 큰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도시에 살고 있는 인구의 비율은 2009년 90%가 넘었고 1980년만 해도 단독주택이 87%를 차지하였지만 아파트를 비롯한 공동주거가 200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80%가 넘어섰다. 우리의 경제 발전과 함께 일어난 주거 형태의 변화는 인간과 외부 공간, 녹지와의 관계 변화를 가져왔다. 이는 마을공동체 구성원 간의 소통 공간 부재로 인한 이웃과의 단절, 삭막한 외부 환경을 통해 도심에서의 녹지 부족으로 인한 자연과의 단절을 가져왔다. 물론 많이 늘어난 도시 내의 공원과 아파트의 공개공지들을 이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정원은 사람이 자연을 주체적으로 일상에서 느끼게 해주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공공의 공간과는 큰 차이가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실천적으로 도시농업이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단어라고 보기에는 아직 어렵다. 그동안 도시농업이 주는 좋은 영향, 필요한 이유는 많이 제기되어 왔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와 정원 문화를 잃어버린 현실에서 이것을 어떻게 실천할 것이며, 어떠한 체계로 확립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이에 주로 도시농업의 형태를 얼롯먼트 가드닝Allotment gardening이라고 하여 정원 문화의 하나로 인식되고 있는 영국에서 그동안 변화·발전되어온 사례를 통하여 우리가 도시농업의 방향성을 어떻게 설정하고 무엇을 중심으로 실천해야 하는지를 엿보는 기회를 가지고자 한다.
영국의 얼롯먼트란영국에서 도시농업이라고 하면 산업농업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즉 전부는 될 수 없지만 산업농업에 대한 부분적 대안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도시농업이 산업농업에 비하여 규모의 경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보다 작은 규모, 보다 지역적이고, 환경적 훼손이 덜하고, 보다 생산적이고, 보다 저렴하다는 인식은 도시농업에 대한 관심을 증대시켰다. 따라서 도시농업은 보다 효율적이며 도시 내 작은 공간에서도 가능하다는 것이 중요한 고려 사항이다. 또한 증가하는 도시 인구에 맞추어 식량의 자급자족을 높이는 방식으로도 인식되고 있다. 여기에 산업농업 생산물에 대한 우려감도 한몫하고 있다. 런던에서만 보더라도 얼롯먼트, 공동정원 그리고 도시 경계부의 자투리 땅 등에서 스스로 먹을거리를 키우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 이것은 대안적 식량 생산의 증가와 농산물 직판장을 통한 판매와 함께 관련 산업이 형성되는 것을 가능하게 하였다.
이러한 도시농업의 형태로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얼롯먼트이다. 얼롯먼트를 국내에서는 단어의 의미로 할당원이라고 해석되어 통용되고 있으나 영국에서는 일반적으로 식용작물 재배하기위해 임대한 땅을 이야기하며 밭의 크기가 정확하게 규격화 되지는 않았지만 평균적으로 250㎡ 정도가 된다. 땅은 주로 지방정부가 소유하고 관리하고 있으며 연합체의 성격으로 스스로 관리하는 곳과 특정 단체에서 공급하는 곳도 있다. 얼롯먼트의 중요한 개념은 바로 개인에 의해서 경작, 관리된다는 점이다. 형태적으로는 다르지 않지만 경작, 관리 주체가 특정 단체 혹시 모임이면 이를 커뮤니티 가든Community Garden이라고 부른다.
현재는 얼롯먼트가 지역적 특성과 함께 기능, 의미, 미가 결합한 하나의 문화 경관의 중요한 요소로 인식되고 있다.
얼롯먼트의 역사얼롯먼트의 역사는 색슨족이 산림지대를 개간하여 들판을 만들면서 공유지의 개념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이후에 귀족과 성직자로 하여금 토지의 몰수 및 사유화가 가속화되었다. 16세기 엘리자베스 1세는 빈민들이 식량을 재배하고 동물을 기르던 땅을 몰수하였고 그 보상으로 소작인의 거처 옆에 붙은 땅을 할당하여 주었다. 이것이 역사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얼롯먼트allotment의 개념이다. 17세기와 18세기에도 공유지는 계속적으로 사유화되었다. 이로 인하여 밀려난 사람들은 도시로 유입되어 도시의 인구가 증가하는 원인중의 하나가 되었다. 이는 생존 경제로부터 보다 현대적인 산업 체계의 이행으로 인하여 사회보장연금 제도의 혜택을 받지 못하여 식량 부족을 겪는, 또는 식물을 재배할 땅이 없어 굶주리게 되는 많은 빈민을 양산하였다. 19세기에 들어서는 이러한 현상이 더욱 악화되었다. 1838년과 1840년 공유지의 사유화법령General Enclosure Act으로 인하여 토지 대지주들은 국회의 동의 없이도 공유지를 사유화할 수 있었다. 1945년 법 개정을 통하여 소지주와 공공을 위한 보다 나은 장치가 마련되었다. 시민의 불만과 저항에 대한 우려로 사유하는 토지의 25%를 토지를 소유하지 못한 시민들을 위해 마련하도록 한 것이다. 필드 가든field gardens으로 불린 이러한 조치는 현대 개념의 영국 얼롯먼트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이를 반영하지 못하였다. 이 법으로 인하여 총 2,440,750,000㎡의 공유지가 사유화되었으나 약 0.35%인 약 8,910,000㎡의 얼롯먼트만이 만들어졌다. 결과적으로 대지주들이 공유지를 사유화하는 것을 법적으로 수월하게 만들어 주었을 뿐이었다. 18세기 후반에 버밍햄 외곽 지역의 공유지가 도시를 위한 얼롯먼트로 개발된 경우도 있었으나 도시의 확장으로 사유화되거나 건물을 지으면서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1887년에 들어서야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하였다. 농작물을 위한 얼롯먼트와 코티지 가든 보상법Allotments and Cottage Gardens Compensation for Crops Act이 제정되면서 지방정부가 얼롯먼트를 공급해야 하는 의무 조항이 생겼기 때문이다. 지방정부는 이법에 대하여 강하게 반대하였으나 이후 법은 개정을 통하여 더욱 강화되었다. 1907년 소규모 농지와 얼롯먼트 법Small Holdings and Allotments Act에서는 행정교구나 자치정부가 얼롯먼트를 공급해야 하는 책임을 명시하였다. 1908년에는 이전의 모든 관련 법이 통합되었고 상이한 문제들을 해결되면서 얼롯먼트가 국가의 제도 아래에서 조성되고 관리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제도의 뒷받침 속에서 얼롯먼트는 정원 문화의 하나로 자리 잡기 시작하였다. 빅토리아 시대에 얼롯먼트는 정원을 가지지 못한 노동자들에게 건강에 좋은 먹을거리 공급과 잉여 시간의 생산적인 사용을 위해 조성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증에는 독일의 봉쇄정책으로 인한 식량 부족을 해결하기 위하여 얼롯먼트의 사회적 요구가 팽창하였다. 1918년 그 수가 무려 150만 개소에 다다랐다. 특히 철도 회사가 소유한 철도변의 땅은 얼롯먼트로 개발이 되었고 현재까지 상대적으로 많은 수의 얼롯먼트가 철도변에 남아 있다. 전후에는 집의 수요가 늘어나면서 많은 얼롯먼트가 주거지로 개발되어 그 수가 점차 줄어들기 시작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은 영국 내에서 다시 한 번 그리고 역사상 최고로 얼롯먼트에 대한 수요와 공급이 팽창하였던 시기였다. ’승리를 위해 일구자Dig for Victory’라는 구호 아래에서 공공공원 조차도 부족한 식량을 해결하기 위한 얼롯먼트로 바뀌었다. 1942년에는 1,50만 개소가 넘었고, 1943년에는 175만 개소가 조성되어 130만 톤의 식량을 공급하였다. 1950년 얼롯먼트 법이 개정되면서 인구 1천 명 당 16,200㎡의 얼롯먼트를 조성하도록 하였으나 전후부터 가파르게 그 수가 줄어 1970년에는 약 53만 개소에 이르렀다. 이것은 도시 개발을 비롯한 여러 가지 이유에 기인하였다. 그 중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화학 공업의 발전으로 인해 살충제 및 비료의 질이 향상되었고 생산성 및 편리성이 증대되어 산업농업이 발전하여 얼롯먼트의 필요성이 쇠퇴하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1970년대에 들어서 그 감소율은 줄어들었으나 1980년대와 1990년대를 거치면서 지대와 집값이 상승하며 지방정부가 높은 가격에 주택 개발업자에게 얼롯먼트 부지를 매각하면서 다시 감소하게 되어 1999년에는 약 25만 개소에 이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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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농업: 농사로 가꾸는 도시, 풍경 텃밭
도시농업의 대중예술화를 위한 조경義生於衆(의생어중)많은 사람들의 의견 속에서 올바름도 생긴다도시농업을 주제로 몇 가지 활동을 하면서 돌아보게 된 우리집 주변의 텃밭은 이미 일상의 손쉬운 일거리로서 자리잡고 있는 우리 도시농사의 현황을 보여준다.1) 출퇴근의 반복적인 일상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그간 알지 못했던 도시의 풍부한 일상들이 주변에 가득한데 그것을 잘 인식하지 못했던 것을 생각하면, 이것은 살짝 충격적인 경험으로 다가온다. 이러한 일상의 충격은 비단 필자만의 느낌은 아닐 것이다. 독자들도 지금이라도 살고 있는 집 주변을 잠시만 둘러보면 너무도 쉽게 작은 생산 공간과 생산 경관을 확인할 수 있고 자연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반복적인 일상의 외부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 곁에 있었지만 알지 못하던 것들일 뿐이다. 지금 여기 우리가 도시농업을 조경미학 또는 정원예술이라는 큰 틀에서 접근하기 위해서는 우리집 주변 작은 텃밭처럼 일상적 또는 대중적 위상에서 먼저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다. 삶이란 ‘내’ 생활 주변 작은 실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도시농업 말하기의 풍경우리 도시농업은 몇 가지 문화적 풍경을 만들면서 요란한데, 그 요란스러움은 ‘도시’라는 현대적 문제 공간으로 수렴한다.
1) 복고의 유행수년 전, 사적인 자리에서 건축이라는 한자어를 우리말로 번안할 경우 무엇이 좋겠냐는 질문을 건축평론가에게 던진 적이 있다. 그는 ‘으뜸짓기’라 대답하며 몇 가지 역사적, 미학적 입장들을 설명해 주었다. 그의 설명을 들으면서 의문이 들었다. 그렇게 본다면 차운기의 작품들과 같이 건축 역사적 계보를 찾기 힘든 대상은 의미가 약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지 않나 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건축물을 역사적 의미 찾기에 어려움이 있다하여 그들만의 논의 대상에서 제외해도 되는 것인지 궁금했다. 또 짓기라는 실천적 행위가 으뜸이라는 평가 기준을 온전히 수용할 수 있을지도 의문으로 남았다.여기서 드는 생각은 우리가 살아가는 것에 꼭 어떤 가치 평가를 역사적으로 먼저 해야만 하는가 하는 점이다. 순수 예술과 과학적 진리를 지향하는 입장에서는 그것이 중요할 수 있으나, 모두와 함께를, 일상을 지향하는 입장에서는 그럴 필요가 있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일종의 경계를 두고 그 외의 것에는 의미두지 않으려는 입장으로 보여 불편한 맘이 여전하지만, 중요한 것은 어떤 행위가 어떤 위치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이루어지는지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는 점일 것이다. 그 점을 그도 강조한 것이고, 그러할 때 어떤 행위가 보다 아름답게 다가오고 다가가게 됨을 강조한 것이리라.
새로움은 대체로 학문적 겸허함을 통해서가 아니라, 창조적 소수의 파격적 실천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이것을 필자는 큰 틀에서 복고라고 부를 수 있다. 그러나 그 복고는 과거와 역사의 권위에 매달리지 않는다. 자연을 즐기려는 삶의 태도가 본능의 차원으로까지 되돌아간 것이 요즘의 우리 도시 농사 모습이 아닐까 싶고 그것은 자연에 대한 본능적 복고 취향의 발로가 아닌가 한다.우리 도시농업은 으뜸, 즉 배경에 놓여 있는 역사와 위상에서 존재 가치를 찾을 필요는 없다. 그런 점에서 학문의 일이 아니라 먼저 일상의 일로서, 자연을 갈구하는 본능의 일로서 복고의 위치임을 확인해야 한다. 만들어진 것의 측면에서 접근할 것이 아니라 그동안 무시했거나 알지 못하던 것이라는 입장에서, 도시농업을 둘러싼 거대 담론들은 잠시 내려놓고 일상의 미학이라는 미시적 시각으로 현황을 관찰할 필요가 있다. 복고는 그렇게 시작되어 유행이 되기 때문이다.
2) 작품의 유행대학 시절 동아리에서는 동일한 주제로 논쟁이 길어진 경우가 많았다. 습작을 두고 이것이 작품이네 아니네 한참을 싸우다가 해결되지 않으면 술자리로 옮겨가 도전과 응전을 계속하며 술에 먼저 장렬하게 산화하기도 했었다. 무엇이 작품인가에 대한 질문은 그 당시 첨예한 논쟁을 불러왔는데, 시절이 지나고 그런 논쟁을 했었던 생각을 하면 참으로 머쓱해지곤 한다. 그것은 특별한 자격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이제는 누구나 작품을 만들어내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텍스트의 변화, 작가의 죽음이라는 시대적 전환과 배경이 담겨있다.이 시대에 생각할 점은 그러나 무엇이 진정한 작품이냐는 해묵은 질문보다는 모두가 작품이 되게 만든 배경적 전환을 살피는데 있다. 지자체나 평생교육원 등에서 운영하는 도예 교실, 노래 교실, 댄스 교실 그리고 각종 문화 교실 등 대중의 취향과 활동 영역에 맞는 아름다운 삶의 실천 행위들은 우리 삶의 주인공으로 우리 자신을 부각시켜주고 그렇게 부각된 우리의 결과물들은 그 자체로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데, 그것이 작품으로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작가의 차원이 아닌 대중적 접근의 작품들도 충분히 의미있는 작품의 반열에 오르는 것이다. 그만큼 우리 삶에 예술이 가까워졌음은 부정할 수 없고 그것은 결국 우리 삶이 아름다워지게 하는 중요한 배경이 된다.
따라서 일상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작은 활동들은 아름다움을 실천하는 중요한 작품 활동으로 되살아나고 그것은 꼭 인류적, 학문적 근거를 배경으로 둔 무겁고 큰 것이 아니어도 됨을 강조해 준다. 모든 것이 나름의 작품인데 어떤 것이 으뜸이고 어떤 것이 평범하다 기준 두어 지적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 도시농업에는 이러한 작품의 성격 변화, 나아가 작품 활동의 위상 변화라는 사회적 배경이 있음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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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농업: 도시농업에 관련된 인문학적 이해
『환경과 조경』은 창사 29주년을 맞이하여 “조경, 도시농업을 말하다”라는 특집을 꾸리면서, 조경과 도시농업 사이의 쟁점이 무엇인지를 검토하여 조경 분야의 도시농업에 대한 건강한 논의를 활성화하고, 또한 조경 분야뿐만 아니라 도시농업과 관련한 다양한 분야의 의견을 통해 도시농업의 현황과 전망에 대한 열일곱 편의 글을 실을 계획이다. 그런 중에 일종의 총론으로 표제와 같은 글을 청해왔다. 그러면서 도시농업(또는 도시농사)이라는 용어의 개념을 밝힘과 동시에 지금 우리가 도시에서 농사를 짓는 것에 의미를 부여해 달라고 그 세부 내용의 윤곽도 보내왔다.문제의 의미심장함이 이해되면서도 미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요청에 선뜻 나서기가 꺼려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미학에서도 환경미학이라는 분야가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는데다가, 최근에『미학자가 본 인문도시』(지식산업사)라는 글모음을 펴낸 것이 빌미가 된 듯도 하여 요청을 피해가기가 쉽지 않게 되었다. 우선 조경을 예술의 일환으로 보고, 이에 따라 도시농업과 이념적으로 갈등을 일으킬 가능성을 살핀 다음, 이어서 양자의 통합이 예술과 기술의 재통합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알아보고자 한다. 끝으로 그러한 재통합이 가져올 수 있는 결과를 아도르느의 자연사 개념에 비추어 반성적으로 점검해 보고자 한다. 길지 않은 글 속에 이와 같은 내용들이 제대로 담길지 자신이 서진 않지만, 함께 공부하는 마음으로 그 윤곽이나마 적어 본다. 칸트는 자신의 『판단력 비판』(1790)에서 조원술(造園術)을 “자연 산물의 미적 배치”라고 규정한 바 있는데, 이는 풀, 꽃, 관목(灌木), 수목(樹木), 하천, 구릉, 계곡과 같은 다양성을 가지고 대지를 장식하되 자연과는 다르게 배치하는 것을 의미한다. 나아가 그는 온갖 꽃들이 피어있는 화단을 넓은 의미에서 회화에 넣고자 했는데, 이 때 회화는 당시에 널리 퍼진 대로 “아름다운 자연을 모방함으로써 마음에 다른 어떤 것도 줄 수 없는 독특한 쾌를 생산하는 활동”이라는 예술 정의의 기본 성격을 공유한다. 이에 반해 농업(또는 농사)은 자연이 운행하는 순리를 파악하고, 이에 따라 자연을 가꿈으로써 인간 생활에 이익을 가져오는 활동일 수밖에 없다. 근대 미학의 특징은 한, 둘 정도 예외가 없지 않으나, 이처럼 미 곧 쾌를 목표로 하는 관조 활동과 실용적 이익을 추구하는 생산 활동을 서로 조화될 수 없을 정도로 갈라놓은 데 있다. 그로 인해 “예술을 위한 예술”이 마치 예술의 최고 경지인 양 호도하는 경향마저 낳게 되는가 하면, 그에 대한 반발로 예술을 현실적 이익의 관점에서만 보아 급기야는 선동, 선전을 정당화하는 궤변이 출현하기도 했다. 그리하여 예술 공예 운동을 주도한 윌리엄 모리스의 제자이기도 한 도시학자 루이스 멈포드는 그의 『예술과 기술』에서 양자의 재통합을 위기에 처한 현대 문명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처방으로 강조하기에 이르렀다.조경과 도시농업에 대해서도 유사한 처방이 가능할 수 있다. 사실상 문화를 뜻하는 로마적 표기 kultura는 각종 유럽 언어에서 어원으로 통용되고 있는데, 그 근본이 농사임을 상기해봄직하다. 더구나 도시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는 현대 생활에서 양자의 재통합을 시도하는 일은 실로 중차대한 의의를 가질 수 있다. 그렇다면 이를 위한 모델이 과연 존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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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농업: 도시농업에 관련된 인문학적 이해
『환경과 조경』은 창사 29주년을 맞이하여 “조경, 도시농업을 말하다”라는 특집을 꾸리면서, 조경과 도시농업 사이의 쟁점이 무엇인지를 검토하여 조경 분야의 도시농업에 대한 건강한 논의를 활성화하고, 또한 조경 분야뿐만 아니라 도시농업과 관련한 다양한 분야의 의견을 통해 도시농업의 현황과 전망에 대한 열일곱 편의 글을 실을 계획이다. 그런 중에 일종의 총론으로 표제와 같은 글을 청해왔다. 그러면서 도시농업(또는 도시농사)이라는 용어의 개념을 밝힘과 동시에 지금 우리가 도시에서 농사를 짓는 것에 의미를 부여해 달라고 그 세부 내용의 윤곽도 보내왔다.문제의 의미심장함이 이해되면서도 미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요청에 선뜻 나서기가 꺼려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미학에서도 환경미학이라는 분야가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는데다가, 최근에『미학자가 본 인문도시』(지식산업사)라는 글모음을 펴낸 것이 빌미가 된 듯도 하여 요청을 피해가기가 쉽지 않게 되었다. 우선 조경을 예술의 일환으로 보고, 이에 따라 도시농업과 이념적으로 갈등을 일으킬 가능성을 살핀 다음, 이어서 양자의 통합이 예술과 기술의 재통합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알아보고자 한다. 끝으로 그러한 재통합이 가져올 수 있는 결과를 아도르느의 자연사 개념에 비추어 반성적으로 점검해 보고자 한다. 길지 않은 글 속에 이와 같은 내용들이 제대로 담길지 자신이 서진 않지만, 함께 공부하는 마음으로 그 윤곽이나마 적어 본다. 칸트는 자신의 『판단력 비판』(1790)에서 조원술(造園術)을 “자연 산물의 미적 배치”라고 규정한 바 있는데, 이는 풀, 꽃, 관목(灌木), 수목(樹木), 하천, 구릉, 계곡과 같은 다양성을 가지고 대지를 장식하되 자연과는 다르게 배치하는 것을 의미한다. 나아가 그는 온갖 꽃들이 피어있는 화단을 넓은 의미에서 회화에 넣고자 했는데, 이 때 회화는 당시에 널리 퍼진 대로 “아름다운 자연을 모방함으로써 마음에 다른 어떤 것도 줄 수 없는 독특한 쾌를 생산하는 활동”이라는 예술 정의의 기본 성격을 공유한다. 이에 반해 농업(또는 농사)은 자연이 운행하는 순리를 파악하고, 이에 따라 자연을 가꿈으로써 인간 생활에 이익을 가져오는 활동일 수밖에 없다. 근대 미학의 특징은 한, 둘 정도 예외가 없지 않으나, 이처럼 미 곧 쾌를 목표로 하는 관조 활동과 실용적 이익을 추구하는 생산 활동을 서로 조화될 수 없을 정도로 갈라놓은 데 있다. 그로 인해 “예술을 위한 예술”이 마치 예술의 최고 경지인 양 호도하는 경향마저 낳게 되는가 하면, 그에 대한 반발로 예술을 현실적 이익의 관점에서만 보아 급기야는 선동, 선전을 정당화하는 궤변이 출현하기도 했다. 그리하여 예술 공예 운동을 주도한 윌리엄 모리스의 제자이기도 한 도시학자 루이스 멈포드는 그의 『예술과 기술』에서 양자의 재통합을 위기에 처한 현대 문명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처방으로 강조하기에 이르렀다.조경과 도시농업에 대해서도 유사한 처방이 가능할 수 있다. 사실상 문화를 뜻하는 로마적 표기 kultura는 각종 유럽 언어에서 어원으로 통용되고 있는데, 그 근본이 농사임을 상기해봄직하다. 더구나 도시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는 현대 생활에서 양자의 재통합을 시도하는 일은 실로 중차대한 의의를 가질 수 있다. 그렇다면 이를 위한 모델이 과연 존재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