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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조경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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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일 2015년 12월
이매거진 가격 9,000

기사리스트

[CODA] 올해의 광장
지난 9월, 그러니까 거리를 점령한 야외 테이블에서 시간을 보내기 안성맞춤인 계절이었다. 그날도 회사 근처 단골 곱창집 간이 테이블에서 여름 내내 지겹게 쐰에어컨 바람 대신 선선한 저녁 공기를 만끽하던 중이었다. 전화벨이 울렸다. 광주에 함께 가자는 한 건축 잡지 편집장의 전화였다. 저녁 공기(?)에 취해있던 나는 한 옥타브 높은 목소리로 대답했고, 본래 취재 예정일보다 빨리 광주행 새벽 기차에 몸을 실었다. 10년 전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하 ACC) 국제공모가 치러졌을 때가 가물가물했다. 10년은 긴 세월이다(요즘 나의 기억력은 믿을 수가 없다). ‘빛의 숲’이라는 작품의 제목 정도가 기억 저 아래 남아 있었고, 대부분의 공간을 지하로 넣는 바람에 높고 멋들어진 건물을 원했던 광주 시민들과 갈등을 빚었다는 소식을 풍편에 들었던 듯 했다. 그만큼 광주가 나의(우리의) 관심사에서 멀리 떨어져 있던 탓도 있다. 과연 당선안대로 만들어졌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사실 처음 계획안이 좋았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았다. 도면이라도 파악하고 답사에 나서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쏟아지는 졸음에 눈꺼풀은 이미 감기고 있었다. 광주역에서 잡아 탄 택시에서 내리니 길 건너편으로 몇 블록을 차지한 ACC가 눈앞에 펼쳐졌다. 만약 지하철을 타고 건물 내부의 아시아문화정보원 지붕에서 ACC를 처음 보았다면, 아니면 충장로 쪽에서 5.18민주광장을 바라보면서 들어 갔다면 동선이나 첫인상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눈에 처음 들어온 것은 어린이문화원 쪽을 둘러싸고 있는 가림막이었다. 9월 개관인 줄 알았는데, 공식 개관은 11월이었고 일부 공사가 남았던 것이다. 사진작가까지 동행했는데 촬영은 할 수 있을까 더럭 겁이 났다. 메인 출입구 앞 광장은 보는 둥 마는 둥 서둘러 아시아문화광장으로 향하는 계단에 내려섰다. 들어가는 길에 광장 중앙의 1980년대 스타일의 파란색 분수대를 흘깃 보면서 아마 이곳은 대상지가 아닌가보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중에 깨달았다. 이곳이 5.18 민주화운동의 현장이며, 건축가와 조경가 모두 이 공간의 목격자들을 세심하게 선별해 남겼다는 것 등. 90년대 학번인 나에게 1980년 광주는 가슴을 채우는 기억은 아니어서 무심결에 넘겼노라고 잠시 변명해보지만 무언가 부채감이 남는다. 인터넷으로 찾아본 1980년 광장의 모습은 분수대를 중심으로 2만여 명의 시민과 학생들이 모여 ‘민족민주화대성회’를 여는 장면이었다. 그 사진을 보니 파리의 레퓌블리크 광장Place de la République이 떠올랐다. 지난 11월 13일 충격적인 파리 테러 이후 뉴스에서는 연일 테러의 참상과 추모 물결, 그리고 그 가운데 빛나는 성숙한 시민의식에 관한 기사를 내보냈다. 그 배경은 모두 ‘공화국 광장’, 그러니까 내가 지난 여름 답사했고 『환경과조경』 10월호에 소개되었던 그 광장 말이다. 머플러로 눈을 가린 한 청년이 “나는 무슬림이지만 테러리스트는 아니”라고 시민들과 프리 허그를 하며 연대와 포용의 메시지를 전한 눈물의 현장도 레퓌블리크 광장이었다. 이런 광장의 모습이 프랑스인들의 충격과 긴장, 그리고 이슬람 세계와의 구조적 문제를 모두 덮을 수는 없겠지만 광장을 가득메운 시민들의 모습에 가슴이 뛰기도 하고 콧등이 시큰거리기도 한다. 평화로운 오후 스케이트 보더들이 활보하는 광장과 추모와 집회의 현장 모두 레퓌블리크 광장의 일면이리라. 5월의 광장에서 레퓌블리크 광장을 떠올린 것은 그런 광장의 역동 때문이었을 것이다. 전남대학교의 천득염 교수는 이제 광주 사람들은 ACC를 굳이 5월과 연결시키지 않는다고 말해주었다. 과거의 유산만큼 미래도 중요할 테니. 5.18민주광장이 누군가에게는 그날의 기억을 상기시킨다면, 누군가에게는 새로 만들어진 아시아문화광장과 함께 일상과 축제가 공존하는 공간이다. 조동범 교수가 특집 원고에서 “2015년 가을은 이제 막 시민 광장의 역사가 열리는 시점”이라고 썼듯이 상처를 간직한 광장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아시아문화광장은 ACC의 모든 시설로 연결되는 중심의 빈 공간이다. 5.18민주광장에서 시작해서 아시아문화광장을 따라 오르락내리락 건물의 안과 밖을 넘나들며 걷다보니 예술극장이었다. 마침 개관 페스티벌 기간이었는데 공연을 준비 중인극장 앞에서는 그루브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막 저물기 시작한 해는 흰색 노출콘크리트 벽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그때 이미 난 무장 해제되었다. 극장 앞 계단에 걸터앉아 고개를 돌리니, 그 풍경 또한 마음을 흔드는 것이었다. 마치 7가지 다른 사랑 이야기가 동시에 펼쳐지는 영화 ‘러브 액츄얼리’처럼, 눈앞에서 수많은 프레임이 교차하면서 각기 다른 장면이 펼쳐졌다. 조금씩 틀어서 앉혀진 건물 사이사이에는 정원이 그리고 저 멀리 구도심의 오래된 건물들과 사람들이 있었다. 아마도 설계자는 이곳에서 5.18민주광장에서 아시아문화광장으로 이어지는 시나리오의 클라이맥스를 상상하지 않았을까. 오래 전에 읽었던 건축가 피터 줌토르의 글이 생각난다. 그는 좋은 건축적 체험은 ‘분위기atmospheres’로 만들어진다고 했다. 예를 들어 휴일 오전 11시의 햇빛, 그 빛을 받은 건물의 그림자 색깔, 따뜻한 공기, 그 주변에 모여 있는 사람들의 대화 소리. 이 모든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은 평소보다 좀 더 천천히 걷고,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그 공간의 분위기와 나의 감각이 화학작용을 하며 지극히 주관적인 의미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곳의 분위기 없이, 즉 그 장소를 떠나면 동일한 느낌은 다시 받을 수 없다. 피터 줌토르는 이를 ‘실제의 마법Magic of the Real’이라고 부른다. 12월이다. 한해를 돌아보고 그 공을 평가하는 각종 시상식이 열리는 시기다. 그래서 나도 아주 주관적이고 편파적인 ‘올해의 광장’을 뽑아보았다. 두둥! 영예의 수상자는 바로 ‘아시아문화광장’이다. 천득염 교수의 특집 원고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ACC 앞에는 난제들이 많다. 그럼에도 아시아문화광장이 새로운 역사를 쓰기를 기대한다. 아마 그 역사는 시민 개개인의 마법 같은 기억으로 채워지리라. 아시아문화광장의 미래를 응원한다.
[편집자의 서재] 빌딩블로그
언제나처럼 역시 표지가 문제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성격이 좀 달랐다. 전반적인 디자인은 이미 오케이가 난 상태였다. 원서의 표지 디자인을 그대로 사용하기로 했기에, 작업하는 데 시간도 얼마 걸리지 않았다. 최종 오케이를 눈앞에 둔 표지 시안은 두 가지 버전이었다. 모든 점이 동일했지만, 오직 한 가지가 달랐다. 바로 앞표지 상단에 깨알 같은 크기로 실려 있었던 “경고문: 이 책에는 ‘삘딩’이 등장하지 않는다”라는 문구였다. 담당 편집자였던 나는 ‘삘딩’이라는 비표준어를 과감히(?) 앞표지에 내세움으로써,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빌딩(건물)’과 이 책에서 강조하고 있는 ‘빌딩build+ing’의 차이점을 부각시키려고 했다. 물론 띠지를 했더라면 고민할 필요도 없이 띠지 문구로 활용했을 테지만, 이 책의 경우 처음부터 띠지는 계획에 없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계속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경고문‘의 앞표지 삽입을 전격 취소하는 대신, 친절한 ‘역자의 글’을 앞쪽에 배치하고, “‘삘딩’이 등장하지 않는 ‘빌딩build+ing’ 이야기!”라는 문구를 보도 자료와 출판사 서평에서 강조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그럼, 도대체 ‘삘딩’과 ‘빌딩’의 차이점이 무엇이었을까 번역자가 ‘역자 서문’을 통해 잘 소개해주고 있듯이, 『빌딩블로그』에서 ‘빌딩’은 두 가지 의미로 쓰이고 있다. 첫 번째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바로 그 ‘빌딩’이다. “건축architecture에는 건물building 이상의 것이 있다”는 저자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빌딩’은 건축보다 하위 개념인 즉물적인 구조체일 뿐이다. 그리고 저자는 이 ‘삘딩’을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삘딩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경고문이 허언은 아니었던 셈이다. 그런데 “왜 건축이냐”라는 질문에 대해 저자는 “우리가 삶의 거의 모든 순간을 인공 환경에 둘러싸여 살아가기 때문”1이라고 답한다. 바로 ‘빌딩’의 두 번째 의미이자 진정한 의미인 ‘build+ing’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즉, 사람들은 언제나 무언가를 만들고 환경을 변화시킨다. 똑같은 단위 평면을 가지고도 각각의 집들이 사는 사람에 따라 엄청나게 다른 느낌으로 바뀌는 우리의 아파트 문화만 봐도 우리는 언제나 ‘빌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빌딩’이란 삶의 방식이자 결과다. 또한 사람의 영향이 미치는 모든 것이 빌딩의 범주에 포함된다고도 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저자가 의미하는 빌딩의 진정한 의미다. 이 ‘빌딩’이 인류가 살아가는 방식과 관련된 수많은 이슈들과 접점을 갖게 되면서, 『빌딩블로그』의 관심사는 단순한 건물(삘딩)에 그치지 않고 지구 깊숙한 지질 단층, 도시의 지상과 지하 세계, 바다, 하천과 각종 인공 수 체계, 폐허, 미생물, 소리, 대기 등 지구의 곳곳을 입체적 스케일로 해부해 나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때 ‘빌딩 < 건축 < 빌딩’이라는 새로운 부등식이 성립한다. 이 부등식을 바탕으로 저자는 인류의 ‘빌딩’ 과정의 매체이자 결과물들이 어떻게, 왜 만들어지게 되었는지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어떤 파급 효과가 있는지를 흥미롭게 파헤쳐나간다. 추천사를 써준 저스틴 맥거크가 지적했듯이 “생전 가본 적 없는 여러 방들을 탐험하는 것 같은 느낌”을 안겨주면서 말이다, 은밀하게 때로는 기발하게. 편집자의 작업은 대개 보도 자료용 ‘출판사 서평’ 쓰기로 마무리된다. 몇 달 동안 붙들고 있던 책이니, 그 핵심 내용을 간추리는 출판사 서평쯤이야 뚝딱 만들어질 것 같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인쇄소에 최종 편집본을 송고할 때쯤이면 진이 빠질 대로 빠져서 원고를 거들떠보기 싫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또 다른 경우도 있다. 책의 구절구절이 모두 마음에 들어서 어느 부분을 덜어내고 어떤 대목을 강조해야 할지 애매할 때다. 또 출판사 서평 작성이 책 편집못지않게 부담스러워서 진도를 빨리 빼지 못할 때도 있다. 온라인 서점에서 출판사 서평을 별도의 편집 없이 그대로 올려주기 때문에 독자들에게 책을 어필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지만, 그만큼 부담감은 클 수밖에 없다. 물론 온라인 서점의 출판사 서평을 보고 책을 구입하는 독자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의문이긴 하지만 말이다. 앞에 소개한 내용은 2013년 봄에 『빌딩블로그』의 출판사 서평을 작성하며 끼적였던 글이다. 출판사 서평에 그대로 살린 부분도 있고, 날린 대목도 있다. 도서출판 한숲에서 곧 출간(2016년 1월 1일 출간 예정)될 김영민 교수의 『스튜디오 201, 다르게 디자인하기』의 보도 자료를 준비하다가, 문득 이 책의 출판사 서평이 떠올랐다. 뭐라 명확히 규정할 수 없는 독특한 내용에 맞춰, 나름 색다른 시도를 했던 기억이 나서다. 『빌딩블로그』 출간 즈음에는 번역자들을 꼬셔 책에 실리지 않은 ‘역자 소회’라는 것도 쓰게 해서 블로그에 올렸다. 또 표지 날개에 수록된 역자 소개글에도 잔뜩 힘을 줬다. 이를 테면 이런 식이다. “고등학교 때도 사지 않았던 독서대를, 이 책을 번역하며 두 개나 샀다. 하나는 사무실에, 하나는 집에 두고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제프 마노와 그 독서대 위에서 만났다. 그러다 간혹 악몽을 꾸기도 했다. 아프가니스탄 고원에서 기나긴 도피 생활에 지친 오사마 빈 라덴을 상대로, 모래 바람을 이용해 폭풍 전쟁을 벌이는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고 한다. 제프 마노를 너무 오랫동안 만난 탓이다.” 당시에는 책 내용과 묘하게 어울려 보여 신통했는데, 독자분들이 보시기에는 어떨지 모르겠다. 이제 잡지 마감도 끝나가니 본격적으로 『스튜디오 201, 다르게 디자인하기』의 보도 자료를 써야 한다. 첫 문장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이 정도면 괜찮을까? “왜 스튜디오 101이 아니고, 스튜디오 201인가?”
제12회 대한민국 환경조경대전 시상식
‘근대문화유산의 공간에 대한 조경적 접근’이란 주제로 개최된 제12회 대한민국 환경조경대전(이하 ‘환경조경대전’)의 시상식이 지난 11월 23일 푸르지오 밸리에서 열렸다. ‘작은 규모의 대상지, 큰 생각’ 부문과 ‘대규모 대상지, 미시적 접근’ 부문으로 나누어 진행된 이번 공모전에는 총 63점의 작품이 접수되었고, 그중 28팀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김성균 회장(한국조경학회)은 인사말을 통해 “근대문화유산에 대한 조경가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과 실천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이번 환경조경대전의 주제에 대한 의의를 밝혔다. 제1회 환경조경대전부터 10여 년 넘게 공모전 개최를 지원하고 있는 늘푸른의 노연상 이사장은 “수상작들을 통해 공간의 가치를 끌어올리는 조경의 중요성을 엿볼 수 있었다”며 참신한 아이디어를 펼친 수상자들에게 축하의 인사를 건넸다. 올해부터 환경조경대전을 공동 주최하게 된 본지의 박명권 발행인은 응원과 격려의 인사를 전한 후인상 깊었던 수상 소감을 소개했는데, “15년 후, 대한민국 환경조경대전 심사위원으로 찾아뵙겠습니다!”라는 재기발랄한 소감에 장내에 웃음꽃이 번지기도 했다.10명의 심사위원을 대표해 심사 과정과 총평을 소개한 최원만 심사위원장(신화컨설팅 대표)은 “장소성의 가치와 선택한 대상지의 장소적 기억을 조경적인 측면에서 어떻게 풀었는가에 심사의 주안점을 두었다”고 밝힌 후, “디자인 위주로 대상지에 접근한 응모작들이 상대적으로 소외 받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며 디자인 부문이 별도로 기획되었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람을 내비쳤다. 본격적인 시상식에서 영예의 국토교통부장관상은 송아라·홍진아(가천대학교 조경학과)의 ‘솜씨창고, 틈에서 피어나다’와 이수현·박래림·김의솔(순천대학교 조경학과)의 ‘징게맹갱외에밋들’이 차지했고, 한국조경학회장상 2팀, 늘푸른재단상 4팀, 환경과조경상 6팀, 입선 14팀 등 총 28개 팀이 수상하였다(수상작은 이번호 12~45쪽에 수록). 시상식 직후 전시장의 테이프 커팅식과 함께 전시회가 개막되었고, 국토부장관상과 한국조경학회장상을 받은 ‘솜씨 창고, 틈에서 피어나다’, ‘징게맹갱외에밋들’, ‘Park Greaves’, ‘주인 없는 대지 알뜨르’의 작품 설명이 이어졌다. 이번 수상작 전시회는 ‘제1회 아시아태평양 환경조경포럼’과 동일한 장소에서 개최하자는 한국조경학회의 의견에 따라, 푸르지오 밸리에서 열렸다.
삶의 경관 다시 돌아보기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와 세계조경가협회IFLA가 협력하여 1970년 설립한 문화경관분과위원회International Scientific Commit tee on Cultural Landscapes(이하 ISCCL)는 문화 경관의 유산 가치 정립과 보존 및 관리를 위한 연구 및 학술 활동을 총괄하는 단체로 매년 연례 회의를 진행한다. 또한 문화경관분과위원회는 문화 경관을 보존·관리하고 관련 연구를 진행하는 전문가와 학자들 사이의 정보 교환 및 교류의 장으로서 활용될 수 있도록 2년에 한 번씩 연례회의와 함께 국제 심포지엄을 개최하고 있다. 올해는 제주에서 11월 1일부터 3일까지 진행된 연례 회의에 이어 3일부터 6일까지 국제 심포지엄이 개최되었다. 두행사는 각각 해녀박물관과 제주돌문화공원에서 진행되었으며, 세계 각국의 문화 경관 전문가들이 참여하여 서로의 지식을 공유하고 문화 경관의 보존과 관리에 대해 깊이 있는 토론을 나누는 장으로서 활용되었다. 또한 연례 회의와 국제 심포지엄은 회의와 연구 발표를 통한 지식 교류와 함께 3번의 문화 경관 답사가 포함된다. 참석자들은 올레길, 별방진, 불턱, 돌하르방공원, 성읍민속마을, 용눈이오름, 아부오름, 비자림, 만장굴 등 제주도가 가진 독특한 경관을 직접 둘러보고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일상과 연계된 경관 26개국에서 약 100여 명의 연구자가 참여한 이번 국제 심포지엄은 ‘삶의 경관 다시 돌아보기 - 일상과 연계된 경관Re-thinking Lifescape: Linking Landscape to Everyday Life’이라는 주제 아래 총 4개의 세부 주제(문화경관에 대한 새로운 생각과 이론, 보존과 관리 전략 및 계획, 사례와 경험, 섬 경관)로 나누어 진행되었다. 심포지엄의 기조 연설자로 나선 매기 로Maggie Roe(영국 뉴캐슬대학교 건축계획조경학부 부교수)는 일상 경관의 가치에 대한 오늘날의 인식변화와 유럽경관협약European Landscape Convention에 대해 설명하며 경관과 우리 삶의 상호 작용 과정에서 우리가 느껴야 할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제시했다. ‘경관의 계획, 관리, 디자인 및 보호 측면에서 ‘상호 작용’을 고려하는 것이 왜 중요한가’, ‘경관 여행에서 지나치는 장소에 대한 의미의 이해에 경관의 묘사는 어떤 관련성을 갖는가’, ‘인간과 자연 프로세스 사이의 상호 작용에 관해 생각하는 방식에 대한 고려가 어떻게 ‘무형 경관’을 소중하게 여기는 근거와 일상적 경관이 제공하는 문화적 의미 및 연상에 대한 지각을 제공할 수 있는가’, ‘‘경관 의식’의 개념이 어떻게 일상의 풍경에 대한 가치를 확립하도록 도울 수 있는가?’. 이어서 두 번째 기조 연설에서 정광중(제주대학교 부총장)은 심포지엄이 개최된 제주도의 특별한 일상 문화 경관에 대해 설명했으며, 이후 심포지엄은 네 가지 세부 주제별로 각각의 연구를 발표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심포지엄을 아우르는 주제에서도 잘 나타나듯이 이번 심포지엄이 주목한 경관은 우리의 평소 생활상을 담은 일상 경관이다. 주제에 맞춰 일상 경관의 가치에 대한 오늘날의 인식 변화를 보여주는 사례 연구가 심포지엄에서 다수 발표되었다. 세계조경가협회 전 회장이 었던 마사 세실리아Martha Cecilia Fajardo는 유럽경관협약에 이어 일상 경관의 가치를 이해하고 보존하기위해 도입된 두 번째 국제적 협력의 결과라 할 수 있는 LALILatin American Landscape Initiative를 소개하며 문화 경관의 보존에서 해당 지역의 일상 경관이 가지는 독자적인 성격에 기반한 보존과 활용이 모색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LALI는 경관을 ‘사람들이 살아가는 환경의 필수적인 요소이자 다양성과 정체성의 표현’으로 이해한다. 따라서 LALI는 이에 참여하는 각 국가들이 가지고 있는 특수성을 어떻게 이해하고 보존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논의를 담고 있다. 이외에도 밀라노공대 건축건설환경시공학과의 리오넬라 스카조시LionellaScazzosi는 시골 경관Rural Landscape의 유산적 가치에 대해 논의했으며, 이어 다른 발표자들의 중국과 인도, 그리고 그밖의 많은 나라의 다양한 문화 경관 사례에 대한 설명들이 이어졌다. 중국 칭화대 건축학과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후 유안Xu Yuan이 발표한 ‘티베트의 일상 경관 형성에 있어 불교가 미친 영향에 대한 분석’ 등은 그간 우리가 알 수 없는 해외의 독특한 사례를 접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되었다. 섬 경관과 제주 이번 심포지엄에서 무엇보다도 흥미로웠던 세부 주제는 개최지의 특성을 고려한 섬 경관이었다. 섬 경관이라는 주제 아래 제주도를 비롯한 세계 각지의 섬이 가지고 있는 내륙과는 다른 독특한 일상 경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심포지엄 개최지인 제주도의 경관에 대한 다양한 논의 이외에도 한국의 다도해와 터키 쿤다섬Cunda Island, 크로아티아 흐바르섬Hvar Island, 오스트레일리아 로트네스트섬Rottnest Island 등의 문화 경관이 소개되었다. 제주학연구센터의 최혜경은 제주의 해녀 문화에 대해 해석하고 제주의 독특한 바다 경관인 해녀 문화를 어떻게 보존할 것인가에 대해 논의했다. 기조 연설에서 정광중이 ‘해녀 경관’이라 표현한 제주도의 독특한 해녀 문화는 불턱 등 다양한 형태로 제주도의 물리적 경관 형성에도 그 영향을 미쳤으나 현재는 고령화가 심화되어 해녀 경관의 보존이 절실한 상태다. 섬 경관과 같은 작은 지역의 독특한 문화 경관에 대한 사례 연구를 접할 기회는 많지 않기 때문에 본 심포지엄에서 여러 국가의 섬 경관에 대해 보고 들을 수 있었던 것은 문화 경관을 연구하는 한 사람으로서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이를 계기로 보다 많은 문화 경관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섬 경관에 대한 흥미를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격년제로 운영되는 ICOMOS-IFLA ISCCL 국제 심포지엄은 2016년 터키의 이스탄불 연례 회의에서는 개최되지 않으며, 2017년 인도의 델리에서 연례 회의와 함께 ‘유산과 민주주의Heritage & Democracy’라는 주제로 진행될 예정이다. 김순기는 서울시립대학교와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조경을, 플로리다 대학교에서 역사 보전을 공부하고 하회마을의 세계유산 지정이 마을주민과 관광객에게 가져온 인식 변화와 마을 문화 경관 보존 방안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세계유산과 문화 경관, 그리고 그 변화과정의 기록 방법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고 있다.
주택으로 본 질곡의 현대사
사전적 정의로 ‘사람이 살 수 있도록 지은 집’을 의미하는 ‘주택’은 단순히 주거 공간으로 기능하는 것을 넘어 시대를 반영한다. 특히 광복 이후 70년간 국가적으로 가장 급격한 변화를 겪어온 한국인의 주택은 절박한 희망에서 출발해 개발에 대한 욕망을, 핵가족화의 단면을, 고도성장의 명암을 투영해왔다. 광복 이후 현대사의 세찬 파고 속에서 세워지고 부서졌던 우리의 주택은 어떤 지형도를 그려왔을까? 또 그 지형도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미래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여 대한건축학회(회장 김광우)와 한국토지주택공사(사장 이재영)는 우리나라 근현대사와 맥락을 같이 하는 주택·도시의 궤적을 돌아보는 전시, ‘광복 70년, 주택도시 70년: 9평의 희망에서 우리의 도시로’ 전을 마련했다. 전시는 광복 이후 70년간의 주택·도시 변천 과정을 그린 ‘타임캡슐70’, 1945년부터 지속되어 온 건축학자들의 주택 도시 연구 보고서 아카이브 ‘아키피디아 2015’, 국가 주도의 공공 개발 자료를 모은 ‘신도시 개발 변천사’, 주택 문화 코드로 자리 잡은 브랜드 아파트를 조명하는 ‘브랜드 아파트, 그 달콤한 반란’, 건축가들의 우수 주택 작품을 모은 ‘우리의 도시를 아름답게 했던 우수 주택선’, 젊은 건축가들의 새로운 주택 실험을 소개하는 ‘동시대, 젊은 건축가들의 주택 실현’, 어린이 건축 교실에서 아이들이 직접 만든 건축 모형을 전시한 ‘미래 꿈나무들의 주택 건축 실험’ 등으로 구성된다. 과거 우리 부모님이 살았던 주택에서부터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주택까지 우리의삶을 지배하는 주택의 현주소를 살펴보고 미래의 주택문화를 그린다. 이번 전시는 11월 5일부터 15일까지는 서울 대치동 푸르지오 밸리(대우건설 주택문화관)에서, 11월 24일부터 12월 5일까지는 경상남도 진주시 한국토지주택공사 사옥에서 진행된다. 특별 연계 프로그램으로 ‘오늘, 주택을 말하다’, ‘건축 큐레이터 토크’, ‘건축가와의 만남’, ‘노후공동주택 맞춤형 리모델링’ 등 다양한 주제의 세미나 및 프로그램이 함께 기획되었다. 한국의 주택과 도시의 흐름 주택 건설과 도시 개발은 광복 이후 70년 동안 한국현대사의 주요 이슈였다. 그동안 한국의 주택이 흙벽 돌 집에서 판잣집, 외인주택, 농촌표준주택, 새마을운동 개량 주택 등으로 끊임없이 변모하는 동안 우리의 도시에는 개인과 사회의 모든 욕망과 고뇌가 펼쳐졌다. ‘타임캡슐70’, ‘아키피디아 2015’, ‘신도시 개발 변천사’등의 전시실에서는 광복 이후 지금까지 한국 사회의 변화와 주택과 도시가 밟아온 도정을 소개하고 그 과정에서 이룬 성과와 과제를 반추한다. 특히 ‘타임캡슐70’은 가로 22m, 세로 12m, 높이 3.3m 크기의 전시실 한 칸을 꽉 채워 주택 문화사를 캡슐 형태로 전시해 근현대 한국 주택 문화사와 당시의 문화, 경제, 정치, 기술, 사건 등을 한 눈에 비교·대조할 수 있게 했다. 시대 순으로 정렬한 연표와 사진, 영상이 주택·도시 역사를 공감각적으로 전달한다. ‘신도시 개발 변천사’는 수도권 및 5대 광역시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신도시의 공간적 확산 과정을 그려낸다. 손바닥 크기만 한 작은 마당이라도 소유하고자 했던 중산층은 편리와 쾌적을 충족시켜주는 신도시의 아파트 단지에 열광했다. 신도시와 중산층의 끈끈한 관계이면에는 대단위 택지 확보를 가능하게 했던 ‘택지개발촉진법’이 있었다. 민간과 공공 주택 공급 기관이 더불어 주도한 신도시의 주택 상품인 아파트 단지는 한국인의 욕망을 부추기고 담아내는 보편적 재화로 자리하게 되었다. 폭발적으로 팽창하던 중산층의 아파트 수요를 충족시켰던 ‘택지개발촉진법’은 지난해 9.1부동산정책에 의해 폐지될 예정이다. 대규모 신도시 개발의 시대를 뒤로 하고 재생의 시대로 나아가기 위함이다. 한국의 주택·도시가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는 시점에 ‘신도시 개발 변천사’는 지난 시대의 개발 역사를 되짚어 본다. 주택이 그리는 미래의 삶 격변하는 근현대사 속에서 숨 가쁘게 변모해 온 우리의 주택과 도시는 어떤 미래를 향해 달려가고 있을까? 1층에 전시된 ‘동시대, 젊은 건축가들의 주택 실현’과 ‘미래 꿈나무들의 주택 건축 실험’은 새로운 미래 주택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동시대, 젊은 건축가들의 주택 실현’은 개성과 창의성으로 무장하고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젊은 건축가들의 주택 작품을 사진과 모형으로 소개한다. 이정훈(조호건축), 조진만(조진만 아키텍츠), 오신욱(라움), 조성욱(조성욱건축사사무소) 등 신진건축사 대상과 젊은 건축가상을 수상한 24명의 젊은 건축가들의 작품을 통해 우리 시대를 읽고 주택 분야의 미래 트렌드를 전망할 수 있게 했다. ‘미래 꿈나무들의 주택 건축 실험’은 대한건축학회에서 매년 진행하는 어린이 건축 교실에 참여한 학생들의 작품으로 꾸며졌다. 삭막하고 획일화 된 아파트 단지의 풍경이 익숙한 아이들의 작품으로는 보이지 않을 만큼 미래 주택에 대한 기발하고 재미있는 상상이 펼쳐졌다. 아이들은 집을 공중에 띄우기도 하고 집 내부에 나무와 벤치를 들여 놓아 공원처럼 꾸미기도 하는 등 미래지향적이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광복 70년, 주택도시 70년: 9평의 희망에서 우리의 도시로’ 전은 우리나라 주택과 도시의 궤적을 추적하고 주택과 도시가 반영하는 시대상을 비춘다. 단순히 주택·도시 변천사의 단면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이를둘러싼 정치, 경제, 문화, 예술 흐름과 엮어나감으로써 우리 사회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를 돕는다. 하지만 주요 아파트 브랜드의 특징을 소개하는 ‘브랜드 아파트, 그 달콤한 반란’ 섹션은 특정 회사들의 아파트를 홍보하는 데 그쳤고 한국건축문화대상과 한국건축가협회상 수상작을 모은 ‘우리의 도시를 아름답게 했던 우수주택선’ 섹션은 평면적 전시 구성으로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
분단에서 화합으로 ‘넘어가는 길’
지난 11월 5일 ‘통일기원 공간디자인 학생 아이디어 공모(제2회 예건 조경나눔공모전)’의 심사 결과가 발표되었다. 이 공모전은 환경조경나눔연구원(원장 임승빈)이 주최·주관하고 예건, 환경과조경, 한국조경학회, 한국토지주택공사가 후원했다. 통일의 ‘기원’을 주제로 한 이번 공모전은 분단 시대를 기억하고 통일을 준비할 뿐만 아니라 그 이후까지 기념하는 공간을 설계할 것을 요구했다. 전국의 조경·건축·디자인 관련 대학과 대학원에서 총 53팀이 참가 신청해 35팀이 작품을 접수했으며 이 중 10팀의 작품이 수상했다. 올해는 최우수상(상금 2백만 원)에 ‘넘어가는 길’(청주대학교 환경조경학과 최대운, 금성철, 윤병두), 우수상(상금 1백만 원)에 ‘내게 강 같은 평화’(울산대학교 실내공간디자인과 이혜나)와 ‘2+1=!’(한경대학교 조경학과 양인욱, 김세훈), 가작(상금 50만 원)에 ‘소막을 기억해’(청주대학교 환경조경학과 서홍석, 차다영, 허지은, 김다인), ‘서해5도’(청주대학교 환경조경학과 김영대, 옥성민, 황정아), ‘Flying to the Moon’(한경대학교 조경학과 조설희, 김나래, 권은송), 입선에 ‘마당을 통하다’(한경대학교 조경학과 김경민, 정윤조), ‘통하는 길’(청주대학교 환경조경학과 임재원, 최영규, 김수진, 유지영), ‘바람 참 좋다’(청주대학교 환경조경학과 오수현, 박지은, 한태용, 이지수), ‘통일의 문을 두드리다’(가천대학교 조경학과 박지은, 성웅기, 이소연)가 선정되었다. 심사위원단은 최우수작 ‘넘어가는 길’에 대해 “DMZ의 서쪽 끝 한강 하구의 철책을 구간별로 개방, 유지, 재배치하는 독창적인 설계 개념을 통해 ‘분단 체제 극복’의 상징성을 담아내면서도 생태계 보전의 지혜를 담아내었다”고 평가했다. 한편 마지막 단계까지 최우수작과 경합을 벌인 우수작 ‘내게 강 같은 평화’는 임진강 양편의 북한 개성과 남한 파주를 잇는 교량을 설계하여 통일을 준비하는 적극적인 공감의 공간을 제시한 것으로평가받았으며 우수작 ‘2+1=!’는 한국전쟁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는 철원군 갈마읍의 폐교량인 승일교 양측에 공원을 조성함으로써 근대문화유산을 재조명하고 통일의 염원을 담아내려한 시도가 인상적이었다는 평을 받았다. 최우수작을 포함한 모든 수상팀에게는 『환경과조경』 1년 정기구독권이 부상으로 주어진다. 넘어가는 길 최우수작 ‘넘어가는 길’의 설계 개념은 DMZ와 관련해 현재 강원도에 이미 조성된 공원, 박물관 등의 다양한 시설물이 사전에 계획했던 관광지 및 관광 자원으로서의 역할과 방문객에게 통일을 환기시키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했다. 수상작은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역대 정부들의 개발 위주의 DMZ 정책과 박근혜 정권이 추진하고 있는 ‘DMZ세계생태평화공원’의 실효성에 대해 고민했다. 더불어 한반도의 생태축(횡축)을 담당하고 있는 DMZ를 생태적가치가 높다는 이유로 무조건 보전하는 것이 적절한지 다시 검토했다. ‘넘어가는 길’은 지금처럼 남과 북이 대립을 이루고 있는 상황에서는 하나의 상징적인 공간이 조성(개발)된다고 하더라도 그곳이 통일의 기원이 되기에는 부족하다고 판단하고 상징성을 가진 동시에 기능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설계하고자 했다. 통일의 발판을 마련하는 동시에 자연을 보전하는 길을 모색하던 중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기수 구역에 주목했다. ‘넘어가는 길’의 대상지인 ‘한강 하구 중립 지역’은 육지의 DMZ보다 생물다양성이 풍부하여 보전 가치가 높다는 점, 육지·강·바다가 만나는 지점이라는 점, 대상지에 풍부한 물의 속성이 남과 북의 화합을 상징한다는 점등에서 주목할 가치가 있는 공간이다. ‘넘어가는 길’은 남과 북을 가로지르는 철책을 부분적으로 철거, 개방, 이용함으로써 다양한 활용 방안을 모색했다. 정전 협정 당시 철책은 일시적으로 설치된 것이었으며 우리 민족에게 통일과 철책 제거는 반드시 단시간 내에 이루어야 할 지상과제였다. 하지만 현재 철책은 한강 하구의 동식물을 인간의 간섭으로부터 보호하고 야생 생태계를 보전하는 생태적 역할을 하는동시에 동물의 자유로운 이동을 제한하기도 한다. 수상작은 철책의 아픈 역사를 치유하기 위해 철책 일대를 개방하되 모든 구간의 철책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 상황을 반영하여 부분적으로 개방함으로써 남과 북이 서로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도록 계획했다. 이를 통해 단기적으로는 남과 북이 서로 경계를 유지하되 신뢰를 회복하면서 통일을 준비할 수 있게 하고, 장기적으로는 통일 이후 자연과 인간의 경계 역할을 하여 한반도의 생태축 역할을 수행하게 하기 위해서다. 먼저 수상작은 한강 하구 중립 지역의 철책 구간을 그 곳에 살고 있는 생물의 특성, 지형, 인간의 영향을 받은 정도 등을 평가하여 구간 A와 구간 B로 나누었다. 인간의 영향을 많이 받은 구간 A는 자연 생태를 보호하기 위해 일부 개방 구간을 제외한 대부분의 철책을 유지하고, 상대적으로 인간의 손이 덜 미친 구간 B는 남과 북이 마주하고 있는 지형적 특성을 반영해 철책을 허물되 보이지 않은 경계를 유지한다. 현재 한강 하구 중립 지역의 철책은 산지와 한강 하구가 직접적으로 접해있는 유형(유형1)과 산지와 철책 사이에 도로가 있는 유형(유형2)으로 구분된다. 수상작은 ‘산지-철책-한강하구’로 이어지는 유형1의 경우에는 기존의 철책을 제거하고, ‘산지-도로-철책-한강 하구’로 이어지는 유형2에는 도로 위로 생태 통로를 조성할 것을 제안했다. 구체적인 철책의 활용 계획으로는 남과 북을 단절시키고 있는 철책을 넘어뜨리고 그 높이만큼 서로의 거리를 좁히는 방안을 제시했다. 공간의 상부는 인간이 이용하고 공간의 하부는 자연에게 내어줌으로써 각자의 공간을 존중하며 공존할 수 있도록 계획했다. 즉, 남과 북의 거리를 좁히되 경계는 여전히 유지하고 자연과 인간이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도록 유도한 것이다. 특히 수상작은 분단의 상징물인 철책을 버리지 않고 역사를 ‘기억’하고 ‘기념’하는 매개체로써 활용해 아픈 역사의 상흔을 지우고 감추기보다는 기억하고 활용하는 새로운 통일 한국의 미래를 보여주었다.
우리 시대 아버지의 꿈의 초상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의 두 번째 정원 전시인 ‘아버지의 정원 - 어떤 정원에 대한 현고학現古學적 사색’이 186일간의 전시 일정을 모두 마치고, 한 달 전인 11월 1일 막을 내렸다. 개막 전에 도록을 제작해 배포하는 여타의 전시회와 달리, ‘아버지의 정원’은 계절에 따라다른 느낌과 감성을 전달하는 야외 전시인 점을 고려하여 4월, 6월, 8월, 11월에 작품 사진을 촬영하여 전시 종료 후 도록을 제작했다. 본지는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의 협조로, 이 도록에 수록된 김아연 교수(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의 작품 해설 ‘우리 시대 아버지의 꿈의초상’을 전재한다. _ 편집자 주 전시 개요 •전시명: 아버지의 정원 - 어떤 정원에 대한 현고학적 사색 •장소: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 아티스트 가든 •작가: 박승진(디자인 스튜디오 loci 소장), 정상철(jsc archi-tects 대표) •면적: 약 100m2 •주최: 김해시 •주관: 김해문화재단 클레이아크김해 이 시대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아버지라는 단어는 특별하다. 그들은 전쟁, 유신과 독재, 경제 성장, 민주화의 격동기를 어떤 식으로든 몸소 치러낸 세대다. 우리 사회가 빚을 지고 있는 그들의 뼈 마디마디에 대한민국의 성장통이 스며 있다. 누구나 아버지가 있다. 그는 큰 산같이 엄하되 든든한 사람일 수도, 다정한 친구 같을 수도, 혹은 벗어나고 싶은 굴레 같은 존재이기도, 한 번도 만나지 못한 갈망의 대상일 수도 있지만 누구에게나 아버지는 있다. 그렇게 제각각인 아버지들의 보편적인 이야기를 작은 땅덩어리에, 그것도 정원이라는 매체로 과연 표현할 수 있을까. 작가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소박하게 표현했을 거라는 막연한 추측을 가지고 김해로 향했다. 그날은 비가 내렸고, 이걸 보러 멀리까지 왔는데 참 운도 없다 생각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비를 털어내는 자동차 와이퍼 사이로 들어온하얀 지붕과 담벼락을 보았다. 나는 그렇게 자동차 유리창을 통해 하나의 빛바랜 엽서 속 풍경처럼 아버지 의 정원을 처음 만났다. 박승진의 정원은 늘 얄미울 정도로 간결하고 함축적이다. 스스로 정원을 ‘시’를 만드는 과정에 비유하듯 그가 만들어내는 공간 역시 읽는 사람에게 많은 역할을 떠넘긴다. 그의 정원은 이야기를 좇아가다 보면 나를 잊고 글에 몰입하게 되는 소설이 아니다. 나의 어떤 부분을 끄집어내지 않으면 도무지 읽히지 않는 한 편의 시에 가깝다. 정원을 거닐고 이해하는 과정에서 나는 낯선 아픔을 느꼈다. 그의 아버지와 나의 아버지가 의도치 않게 이 정원에서 마주쳤기 때문이다. 예상치도 않게 그의 아버지의 이야기에서 나의 아버지를 끄집어낸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대한민국 아버지들의 꿈이 닮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대한민국의 성장과 왜곡된 주거 문화의 단면‘아버지의 정원’은 주택 정원을 묘사한다. 작가는 여느 서울 사람들처럼 인생의 대부분을 아파트에서 살았다. 작가가 묘사한 이 집은 대한주택공사가 1970년대 판박이처럼 찍어내어 분양한 서울 변두리의 ‘국민주택’으로 불리던 어느 단독주택을 묘사한다. 박공지붕과 콘크리트 블록 담장은 보급형 단독주택을 담백하게 재현하고 있다. 2015년 현재 70% 이상의 대한민국 사람이 아파트, 연립주택과 같은 공동주택에 살고 있다. 불과 1970년대 초반만 해도 95%가 단독주택에 살았다는 사실을 도무지 믿기 힘든 ‘아파트 공화국’에 살고 있다. ‘아버지의 정원’은 작가의 유년 시절 기억을 소박하게 묘사하는 동시에 아파트라는 현대의 지배적 주거 문화를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집에 대한 따듯한 시선의 이면에는 정원을 빼앗아버린 물량 공급 중심의 주택 정책에 대한 날선 아쉬움이 배어 있다. 사고파는 투자 상품으로서의 아파트가 상실한 집의 가치는 정원에 투영된다. 아버지의 정원은 우리가 무엇을 놓치고 살고 있는지를 묻는다. ‘아버지의 정원’은 오래된 흑백 텔레비전의 영상처럼 탈색된 기억의 소품들을 담고 있다. 고유의 색을 빼앗긴 사물들은 그래서 누구나의 기억을 투영할 수 있는 도화지가 된다. 작가의 어린 시절 강아지인 로미는 나의 뽀삐이자 이웃집의 바둑이, 누군가의 누렁이가 된다. 작가는 자신만의 은밀한 유년기의 기억 속에서 호출해온 사물들의 색을 제거하여 모두의 기억으로 만들어버렸다. 우리의 기억들은 ‘보급된’ 집과 사물들에서 자유롭지 않은 셈이다. 정원, 땅과 공간을 정의하는 일 그의 정원 작업은 땅을 찾는 과정에서 시작한다. 넓은 미술관 부지에서 하필이면 잘 보이지도 않는 주차장 옆 한 편이라니. 여느 작가라면 눈에 잘 띄고 주변이 정돈된 반듯한 부지를 탐냈을 테지만 박승진과 정상철은 후미진 전시관 뒤편을 선택했다. 거대한 건물을 배경으로 세든 듯 들어선 ‘아버지의 정원’은 대형 아파트 사이에 아슬아슬하게 남아있는 오래된 집 한 채를 보는 것 같다. 두 건축물의 스케일적 대비는 정원에 또 다른 콘텍스트를 제공해 준다. 정원은 멀리서 볼 때 하나의 순백색 오브젝트로 보이다가 대문을 통과하는 순간 시각에 의존했던 단편적 감각이 4차원으로 팽창한다. 정원은 더 이상 볼거리가 아닌, 나의 지금을 정의하는, 나를 둘러싼 공간이 된다. 화려한 초화류의 꽃들에 시선을 뺏길 우려가 없으니 훨씬 더 편안하게 정원을 장소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정원이 적절한 위요를 필요조건으로 한다면, 그건 주변으로부터의 분리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과의 관계를 다시 설정한다는 것이다. 경계는 단절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와 마주하는 창이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그의 정원은 주변을 기웃거린다. 동네의 담벼락은 아파트의 벽체와 같이 완벽한 단절과 통제를 의미하지 않는다. 이 담장은 골목을 지나다니는 이웃의 섣부른 참견을 걸러내지 못하며, 동네 아이들의 월담을 눈감아주는, 칸막이 정도의 존재다. 정원의 사다리는 나무의 열매를 딸 때보다 옆 집에 건너갈 때 더 유용하게 쓰였으리라. 심지어 이 담장은 구멍투성이다. 동네 똥개들도 버젓이 제 집처럼 다녀가는 이 허술한 담장이 만들어내는 위요감은 나만을 바라보라는 이기적인 욕망을 포기한 것처럼 보인다. 아버지의 정원은 그렇게 가족들을 위한 내부지향적인 공간이자 이웃과 사회를 만나는 마당이 된다. 아름다운 볼거리보다 공간의 ‘쓸모’에 관심을 갖는 이곳은 그래서 어머니가 아닌 아버지의 정원이다. 어머니가 예쁘게 가꾸는 것에 마음을 쓴다면 아버지는 아이들이 뛰어노는 잔디밭을 관리하고, 함께 공을 차고, 과일 나무의 가지를 치는 일을 중시했을 것이다. 작가들은 ‘아버지의 정원’이라는 주제를 통해 미술관의 전시품이 아닌 미술관의 풍경을 만들었다. 보여주는 것보다 기능하는 것이 중요한 아버지의 정원은 그래서 ‘예쁘다’는피상적인 시각적 감상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것이다. 아버지에게 정원은 보여주기 위한 장소가 아니다. 가족들이 채워줄 빈 그릇 같은 공간인 것이다. 동네 아버지들이 만드는 정원 어린 시절 아버지가 만들어준 가오리연, 팽이, 새총, 개집을 기억하는가. 아버지는 무언가를 뚝딱뚝딱 잘 만들어주셨지만, 사실 아이들은 썩 맘에 들어 하지 않는다. 부잣집 친구가 아버지가 외국에서 사온 멋진 장난감을 가지고 놀이터에 등장하는 순간 우리 아버지가 만든 어설픈 수제 장난감들은 부끄러움의 상징이 된다. 저런 근사한 장난감을 사줄 능력 없는 야속한 아버지. 아버지가 만든 사물의 정체성은 완벽하지 못함에 있다. 그러나 어설퍼서 생긴 그 틈새를 사랑이 메우고 있다. 건담, 미니카, 바비 인형, 레고는 아버지의 손때 묻은 장난감만큼 기억 속에 오래 남아있지 못하다. 그래서 아버지가 만드는 사물은 엉성하지만 단단하다. 작가들은 정원 만드는 일의 상당 부분을 미술관이 위치한 지역에서 해결했다. 아버지의 정원은 동네 아저씨들, 즉 진례의 아버지들이 함께 만든 곳이다. 동네 자전거 가게에서 허름한 짐자전거를 사고, 벽돌 쌓는 아저씨, 용접하는 아저씨, 목수 아저씨, 철물점 사장님을 모아 ‘마을 잔치하듯’ 만들었다. 정원을 만들며 벌어지는 아버지들의 시끌벅적 야단법석 잔치 한 판이 ‘아버지의 정원’으로 완성되었다. 80%의 미학 아버지의 정원은 모자란다. 난 그 모자람을 사랑한다. 정원은 누군가가 꽉 채워주길 바라는 채우다 만 그릇 같은 곳이다. 작은 일화가 있다. 정원에 심은 수수꽃다리에 슬쩍 무궁화 한 뿌리가 묻어왔다. 이 녀석이 여름에 꽃을 피우기 전까지는 누구도 그 밀항을 알아채지 못했다. 담당 큐레이터가 발견하여 작가에게 묻자 “원래 정원에는 좀 부실한 놈들이 자라는 법이니 측은지심도 정원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나는 최근 유행처럼 번지는 정원박람회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정원이라는 공간이 ‘경쟁’이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처럼 기획되고 조성되는 것이 서글프고, 짧은 기간의 전시를 겨냥해 모든 것을 화려한 클라이 맥스로 연출하는 상황에 숨 막히기 때문이다. 개별 정원 하나 하나의 완성도에 초점이 맞춰진 ‘박람회’이니만큼 전체로서의 경관 운운하는 것은 옳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정원의 본질이 기다리고, 변하고, 기르고, 가꾸는 것이라고 할 때, 완성품으로 정원을 소비하는 문화가 정원을 사유하고 가꾸는 것에 앞설까 걱정이다. 정원의 본질은 결과보다는 과정에 있다. 이 부분을 간과한다면, 잡지 화보나 SNS를 점령한 예쁜 사람, 예쁜 물건, 예쁜 장소 사진들처럼, 정원은 예쁘게 포장된 자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지금의 정원 박람회는 너무나 빽빽이 자기만을 바라보길 바라는 이기적인 욕망을 가지고 있다. 하나로 어우러지는 풍경이 아니라 자기만의 완결성과 우월성을 중시하는 모자이크식 공간 체험은 결국 정원에 대한 피로감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이러한 측면에서 ‘아버지의 정원’은 최근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장식적 정원에 던지는 질문과도 같다. 100%를 향한 완벽과 통제의 패러노이아가 아닌, 몰래 묻어온 ‘부실한 녀석들’을 품을 수 있는, 동네 똥개가 당당하게 똥을 싸고 갈 수 있는 구멍을 내주는 여백같이 너그러운 존재가 아버지라면 박승진과 정상철의 ‘아버지의 정원’은 그 모자람과 비어있음을 성실하게 구현하고 있다. 우리 시대 아버지에게 바치는 송시 결국 작가는 이 정원을 모두의 아버지의 정원으로 만든다. 작은 땅덩어리 딸린 집 하나 마련해서 가족들과 단란하게 지내고 싶어 자신의 몸뚱이 돌보지 않고 살아온 우리 시대 아버지 누구나 꿈꾸던 작은 이상향이기 때문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것을 통하여 지독히 보편적인 감성을 만드는 그들의 작업. 결국 우리는 같은 꿈을 꿀 수밖에 없는 결핍을 공유하던 세대의 자식들로 태어났다. 자식들 역시 그들의 자식을 위해 정원이 있는 행복한 집 한 칸을 욕망한다. 그렇게 우리 세대는 꿈을 물려받았다. 희망보다는 결핍을 상속받은 것이다. 박승진과 정상철의 정원은, 고단했던 삶, 맘 한 편에 묻어둔, 이 시대 아버지들이 가졌던 ‘우리 집’이라는 꿈의 초상이다. 작가가 부제로 쓰고 있는 ‘현고학現古學’은 동시대 사람들이 기억하는 가까운 과거를 고고학적 시선으로 탐구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정원을 마주치기 전까지 나는 우리 시대가 이토록 무서리우리만큼 같은 꿈을 꾸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이 글을 처음 끼적거리기 시작할 때 그의 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들었다. 그 이후로 좀처럼 글의 진도를 나가지 못했다. 박승진의 아버지는 직접 김해에 오지 못하셨지만 어린 아들이 뛰어놀던 이 작은 정원을 사진으로 보고 잠드셨다. 정원이 작게는 작가의 가족들을, 크게는 이곳을 찾은 많은 가족들을 기억과 꿈이라는 끈으로 다시 한 번 엮어주었으리라. 이 작은 땅덩어리의 위대한 힘, 정원의 본질이 여기에 있다. 김아연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와 동대학원 및 미국 버지니아 대학교(University of Virginia) 건축대학원 조경학과를 졸업했다. 미국Stephen Stimson Landscape Architects와 가원조경기술사사무소, 디자인 로직에서 실장으로 일했으며, 국내외 다양한 스케일의 조경설계를 진행해왔다. 자연과 문화의 접합 방식과 자연과 커뮤니티의 변화가 가지는 시학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현재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느슨한 설계 집단 스튜디오 테라의 대표로서 조경 설계 실무와 설계 교육 사이를 넘나드는 중간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도시 문화 축제, 릴 3000
파리 북역에서 TGV로 한 시간, 릴 유럽역에 내리자마자 습하고 차가운 바람 덕에 북부 도시의 우울한 가을이 물씬 느껴졌다. 프랑스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인 릴Lille은 브뤼셀, 런던, 암스테르담 등 북유럽 주요 도시를 이으며 중세시대부터 군사 요충지와 상업 도시로발달했고, 산업혁명 후에는 탄광과 섬유 산업으로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아시아시장에 주도권을 뺏기며 심각한 경제적 타격을 입게 되었다. 버려진 공장, 더 이상 연기를 뿜지 않는 굴뚝, 배가 다니지 않는 운하, 일자리를 잃어버린 노동자들, 그리고 구름이 짙게 깔린 먹먹한 하늘. 도시는 활력을 잃고 자연은 그 자리를 되찾기 시작했다. 릴은 과거의 영광이 폐허로 남아 있는 슬픈 도시로, 프랑스인들에게 가장 살기 싫은 도시로 손꼽히기도 했다. 1990년대, 렘 콜하스, 장 누벨, 크리스티앙 드 포잠박 등 내로라하는 건축가를 초대해 TGV역과 유로스타역을 포함한 교통 및 사업 지구인 유라일을 건설하며 미래지향적 도시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으나, 인근도시를 아우르는 릴만의 지역적 정체성을 찾지 못한채 살기보다는 거쳐가는 도시 이상의 매력을 창출하지 못했다. 그러나 2004년 ‘유럽문화수도’로 선정되면서 도시 변화의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버려졌던 과거의 산업 유산이 릴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살릴 핵심 대안으로 떠올랐다. 새로운 것을 집어넣기보다 기존의 폐건물을 문화와 예술 공간으로 되살려 지역 주민의 참여와 소통을 유도하는 도시재생 실험을 시작한다. ‘릴 3000’ , 도시 여행을 시작하다 2004년, 유럽인들에게 릴이라는 도시를 각인시키는 데 성공하며, 이듬해 도시 문화 축제 ‘릴 3000’이 제정되었다. 3년에 한번씩, 4개월간 한 주제를 가지고 도시곳곳에서 벌어지는 이 행사는 동시대성을 보여주는 젊은 작가들과 다양한 문화 행사 및 참여 프로그램을 통해 도시를 재발견하고 더 나아가 사회와 문명에 대해 고찰하고 미래의 모습을 찾아가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2006년 인도의 ‘뭄바이의 사람들’을 시작으로, 2009년 동유럽과 이스탄불까지 연결하는 ‘유럽 XXL’, 2012년 골목부터 집문 앞까지 도시 곳곳에 공공 작품을 설치해 일상을 뒤집어엎는 ‘판타스틱’이란 주제로 2백만 명의 관람객을 끌어 모았다. 그리고 2015년, 심각한 유럽 경제 위기로 인한 재정긴축에도 불구하고 ‘르네상스’라는 주제를 걸고 지난 9월 26일 리우의 화려한 카니발로 축제의 시작을 알렸다. 800여개의 이벤트와 문화 행사 그리고 35개의 전시회를 통해 도시의 새로운 미래에 대한 가능성에 질문하고 해답을 찾아나가는 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릴, 르네상스를 일으키는 그 예외적 영감과 정신을 회복하라 불어로 ‘다시 태어나다’라는 의미의 르네상스는 중세의 억압적인 종교의 그늘 속에서 피어난, 유럽 역사에서 가장 혁신적이고 중요한 시기였다. 오늘날 테크놀로지의 발전과 함께 삶의 방식에 대한 새로운 접근과 실험이 세계 곳곳의 도시를 변형시키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여 릴은 21세기의 르네상스를 맞이하고 있는, 유럽인들에게 조금은 낯선 다섯 도시인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 덴마크의 에인트호번, 미국의 디트로이트, 캄보디아의 프놈펜, 한국의 서울을 초청해 ‘릴 3000’ 축제를 열었다. 특히 이 도시들은 전쟁, 경제적 쇠퇴, 독재의 잔재 등 역사적인 고통을 극복해가며 새롭게 태어나고 있는 도시로, 그 모순과 갈등의 목격자이자 대안을 제시하는 적극적인 창조자로 존재하는 예술가들을 초청했다. 각 도시의 전시는 릴 각지에서 열렸는데, 무엇보다 전시가 열린 장소와 초청된 나라 간의 고려가 매우 흥미로웠다. 폐허, 잠재된 생명의 장, 디트로이트, 그리고 생 소뵈르역 짐 자무쉬의 영화, ‘오직 사랑하는 자만이 살아남는다’에는 한밤중에 디트로이트Detroit의 버려진 건물들 사이를 자동차로 배회하는 뱀파이어 연인이 나온다. 시간을 거스르는 그들의 차가운 아름다움과 깨지 못할 꿈을 꾸는 듯한 우울한 폐허의 도시는 묘하게 닮아 있었다. 100년 가까이 모터 시티로 아메리칸 드림을 이끌던 도시는 쇠퇴와 회복을 반복했고, 2008년 이후 40만 명의 실업자를 내며 범죄의 도시가 되었다. 그러나 현재 이 꿈의 도시는 테크노, 블루스, 힙합, 그라피티, 도시 농장, 젊은 도시 예술가들의 은신처가 되면서 또 다른 문화적 아메리칸 드림의 도시가 되고 있다. 디트로이트 전은 19세기 산업 부흥과 함께 지은 화물전용 철도역이지만 산업 침체로 버려졌던 생 소뵈르역Gare Saint Sauveur에서 열렸다. 버려졌던 모습으로 최대한 보존된 이 전시장은 묘하게 산업 도시의 황금기를 맞이하다 유령 도시가 된 디트로이트와 닮아 있었다. 작품을 설치했다기보다 디트로이트 예술가들의 아틀리에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전시는 작품 전체가 어울려 도시적 분위기를 만들어내면서 우리로 하여금 릴이 아닌 디트로이트를 여행하게 한다. 디자인으로 새로 태어난 하이테크 도시 에인트호번 그리고 메종 폴리 드 물랭 필립스의 도시로 호황을 누리던 에인트호번Eindhoven은 필립스가 암스테르담으로 본거지를 옮기며 쇠퇴기를 맞이한다. 2차 산업 쇠퇴와 함께 버려진 공장들은 1990년대 이후 창작 스튜디오로 바뀌며 컬처 메이커culture maker들을 만들어내는 인큐베이터 도시로 재탄생, 현재 세계적으로 가장 혁신적인 디자인 도시로 꼽힌다. 에인트호번 전은 전통적인 전시에서 탈피하여 3D 프린팅과 목공 일을 할 수 있는 팹랩fab lab 형태의 공동 작업장을 제공했다. 참가한 퍼포먼스 아티스트들이 관객과 함께 교류하는 장소인 셈이다. 18세기의 양조장이었던 메종 폴리 드 물랭Maison Folie de Moulins에서 열린 이 전시는 일회성 퍼포먼스가 아니라 이후 릴의 도시 정책에 반영하기 위한 전초전 역할을 한다. 파벨라에서 2016 올림픽까지 리우데자네이루 그리고 메종 폴리 와제므 삼바와 카니발의 도시 리우데자네이루Rio de Janeiro는 산을 배경으로 한 긴 하얀 백사장과 강렬한 태양 등 천혜의 자연 조건을 갖춰 브라질 최고의 아름다운 관광지로 꼽힌다. 그러나 인구의 20% 이상이 가난과 마약, 폭력의 문제가 극심한 빈민촌인 파벨라favela에 살고 있다. 젊은 예술가 집단 ‘카리오카스Cariocas’는 도시 변화의 목격자로서 극단적인 도시 리우의 일상을 그들만의 방식으로 보여준다. 해변의 잡상인, 파벨라의 판잣집, 좁은 골목길, 혼재된 문화 등 리우의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부정적이고 제거해야 할 것이 아니라 이 도시를 매력적으로 만들고 있는 요소임을 웅변하고 있다. 이 전시가 열린 와제므 지구MaisonFolie Wazemmes는 릴에서 외국인이 가장 많이 사는 곳으로 매일 오전 대규모 상설장이 열린다. 가장 싸고 인구 밀도가 높아 젊은 예술가와 아마추어가 모이는, 고급스럽지는 않지만 가장 생동감이 넘치는 지역이라 도시 리우를 전시하기에 릴에서 가장 적절한 곳이다. 새로운 정체성을 찾아 프놈펜 그리고 빈민구제소 박물관 동양의 진주라 불리던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Phnom Penh은 붉은 크메르에 의해 1975년 이후 4년간 빈 도시가 되었다. 이후 40년간의 정치적 갈등 속에 백만 여명의 캄보디아인이 사라져갔으며 도시는 그야말로 킬링 필드가 되었다. 1990년대에 되찾은 수도로서 프놈펜은 급속한 도시화를 경험했다. 무질서한 도시 확장, 지옥 같은 교통난, 무작위적인 건설과 부패, 전통과 현대의 충돌, 세대 간의 갈등을 겪으며 도시의 정체성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이런 도시적 혼란 속에서도 정규 교육을 받지 않은 뛰어난 예술가들이 수없이 배출되고 있는 것에 주목, 캄보디아 출신의 세계적 예술가는 물론, 한번도 외국에 소개되지 않았던 다양한 세대의 예술가들이 초청되었다. 프놈펜 전은 릴에서 가장 역사적이고 고풍스러운 동네인 비유 릴Vieux Lille에 있는, 17세기에 지어진 빈민구제소 박물관Hospice Comtesse Museum에서 열렸다. 옛 병원의 작은 교회당에 설치된 대나무 부처는 역사와 종교를 넘어 인간의 보편적인 고귀함을 보여주고 있다. 전통과 하이퍼모더니티의 간극 서울 그리고 트리포스탈 급격한 현대화, 다이내믹, 나이트라이프, 하이퍼테크닉, 전통, 긴장감, 획일성, 다양성, 콘트라스트. 잠시 서울을 방문했거나 서울에 관심 있는 프랑스 사람들이 가지는 느낌이다. 전시 큐레이터 장 막스 콜라르Jean Max Colard가 대조적이고 복합적인 서울의 모습 때문에 작품을 추려내기 어려웠다고 말할 정도로, 다양한 서울과 한국의 모습이 전시되었다. 복사한 듯 똑같은 아파트 주거 형식, 성형한 소녀들의 모습, DVD방, 줄 맞춰 걸려있는 교복 등 서울의 일상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작품부터 찢어진 산하, 급속한 발전으로 인한 전통과현대의 간극 등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모순과 갈등을 표현한 작품들이 섞여 서울의 현재를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이우람의 하이테크 설치미술, 일상 언어를 예술로 재탄생시킨 최정화와 이불의 작품들이 프랑스인들의 이목을 끌었다. 이번 서울 전은 신시가지인 유라일지구 옆에 있는 트리포스탈Tripostal에서 열렸다. 과거 우편물을 분류하는 곳이었던 이곳은 ‘빨리, 빨리’라는 주제에 맞게 깊이 있는 주제를 무겁지 않게 다루고 있다. 또한 10월 14일부터 18일까지 서울 주간을 맞이하여 릴 국립건축조경학교와 릴 3000 주관으로 조경진 교수(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를 초청, 서울의 르네상스에 대한 컨퍼런스가 열렸다. 조경진 교수는 역사적, 문화적, 정치적 역학 관계를 중심에 두고 서울의 변천사를 소개하며 메타폴리스로서의 서울로 발돋움하기 위한 서울시의 최근 도시 정책과 계획을 설명했다. 대부분의 청중은 K-Pop이나 한국 영화 외에는 서울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어 단기간에 급변한 서울의 역동적 모습을 이해하기 쉽지 않았지만 시민 참여를 통해 도시가 긍정적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점에는 큰 공감을 표시했다. 그 밖에 파리에서 이미 큰 성공을 이룬 안은미의 댄스 공연 ‘할머니들Grandmothers’을 비롯하여 K-Pop나이트, 길거리 DJ 공연, 한국 영화 상연 등 이채로운 공연이 열리기도 했다. 릴 3000,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묻다 ‘릴 3000’은 문화라는 주제로 낯선 얼굴들을 도시 속에 받아들이며 유럽인들에게 강한 인상을 주었다. 그로 인해 도시는 예외적인 도약을 해왔으며 지역에 대한 자부심을 불어넣는 계기가 되었다고 릴 시장 마르틴 오브리는 평가한다. 어려운 시기가 올 때마다 문화와 예술은 희생되었고 물질적 가치에 그 자리를 쉽게 빼앗겨왔다. 그러나 마르틴 오브리는 그것은 큰 실수이며 예술과 문화만이 새로운 세상에 대한 성찰과 방향을 제시한다며 유럽 경제 위기 속에서도 ‘릴 3000’에 대한 열정을 강하게 나타냈다. 근 몇 년 전부터 프랑스는 경제적 위기로 공공 프로젝트 투자가 특히 줄고 있다. 그로 인해 공공 영역의 많은 조경 회사 및 건축 회사는 문을 닫거나 살생적으로 비용을 줄이기 시작했다. 정치적으로도 사회적인 불안감을 부추기고 자국민 보호 정책을 내세우며 반이민 정책을 펴는 극우파 수장마린 르 펜이 역사적으로 사회당이 주도하던 프랑스 북동부 지역에서조차 표몰이를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라는 논리는 보호되어야 할 대상과 해를 끼치는 대상으로 나누는 이분법을 적용하며 두려움을 조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릴 3000’은 침제 분위기를 벗어나 미래에 대한 긍정적 의지와 지속가능한 발전에 대한 참여와 액션을 부추기며 축제를 즐기자 한다. 나아가 이번 도시 축제는 다양성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민간 차원이나 로컬 중심의 실천을 독려하는 새로운 도시 정책을 위한 시민 동의 과정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 속 스스로 닫은 도시가 영광을 누린 예를 알지 못한다. 반면 타자를 받아들이는 데 주저하지 않았던 도시만이 영광을 누려왔다. 오늘날 여기저기서 위기를 말한다. 위기를 벗어나는 길은 두 가지 뿐이다. 안으로 숨던가, 밖으로 나서던가.
[시네마 스케이프] 더 랍스터
“더 랍스터 한 장 주세요.” “네? 더 셰프 아닌가요” “아뇨, 랍스터요, 랍스터!” “다시 확인해주세요.” 셰프와 랍스터, 연관 단어이긴 하다. 어제 퇴근길, 며칠째 유난히 지치고 힘든 이유를 가을 탓으로만 돌리기에는 무언가 다른 처방이 필요할 것 같아 극장으로 향했다. ‘보고 싶은 영화 한 편 보는 것도 내 뜻대로 안 되는구나’하고 좌절하는 순간 주변의 다른 극장과 헷갈린 것을 깨달았다. 나라 구하는 심정으로 서둘러 달려가 보니 관객석에는 나처럼 혼자 온 사람이 너덧 명 드문드문 앉아 있었다. 고백건대 ‘더 랍스터’를 선택한 건 순전히 포스터 때문이다. 어떤 영화인지 아무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접한 포스터는 그 자체로 너무 아름다웠다. 황량한 갈대밭 사이로 다급하게 어디론가 달려가는 두 사람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여자는 남자의 손을 두손으로 꼭 붙잡고 있다. ‘사랑에 관한 가장 기묘한 상상’이라니, 대체 어떤 영화일까. 극장에서 그다지 오래 상영할 것 같지 않고 이 원고가 실린 후에도 일부러 영화를 찾아보는 이가 열 명이 채 안 될 것을 확신하므로 그 내용을 낱낱이 소개할까 한다. 혹시 나처럼 포스터에 순간적으로 영혼을 뺏겨 영화를 보게 될지 모를 아홉 명은 여기서 멈추시기 바란다. 서영애는 ‘영화 속 경관’을 주제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한겨레 영화 평론 전문 과정을 수료했다. 조경을 제목으로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으며 영화를 삶의 또 다른 챕터로 여긴다. 영화는 경관과 사람이 구체적으로 어떻게관계 맺는지 보여주며 인문학적 상상력을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텍스트라 믿고 있다.
[100 장면으로 재구성한 조경사] 신화 속으로
#66 고고학자들에게 갈채를 1980년대, 독일고고학연구소에서 ‘그리스 폴리스의 주거 문화’라는 주제로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었다. 베를린 자유대학 고고학과 연구원들이 주동이 되어 진행한 국제 프로젝트였다. 그중 베를린에 살았던 팀원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별도로 모여 그리스 고전 읽기 모임을 했다. 어느 날 팀을 이끌던 교수가 퓌클러 정원문화재단1의 초청을 받아 고대 그리스의 ‘정원’에 대해 특강을 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강연을 들으러 팀원 모두 몰려갔는데 거기서 뜻 밖에도 ‘고대 폴리스의 주택에는 꽃밭이 없었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뭣이라고”, “그럴 리가”, “그리스에 가보라고. 꽃이 얼마나 아름다운데”, “고대 문헌에 정원이 얼마나 많이 언급되는데” 등의 반응을 보이며 흥분한 팀원들은 토론 끝에 진실을 파헤치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화제의 특강 후 지도 교수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으므로 자초지종을 물어볼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도움이 필요했다. 수소문해보니 마침 “부조에 나타난 고대 그리스의 풍경”이라는 논문을 발표한 여류 고고학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독일연구재단의 도움을 받아 연구비를 확보하고 그 여류 고고학자를 프로젝트 팀원으로 초대하는 데 성공했다.2 현재 영국 셰필드 대학에서 고고학을 가르치고 있는 모린 캐롤Maureen Carroll 교수다. 이때부터 모린 캐롤은 고전 읽기 팀에 합류하여 옛 기록을 분석하는 한편 발굴 현장을 탐색하고 발굴 보고서를 샅샅이 조사하여 정원의 증거들을 수색해나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결국 폴리스 주택에 꽃을 심었다는 증거를 찾지 못했다.3 아무리 열심히 찾아도 없는 것이 발견될 리가 없다. 그렇다면 고전에 그렇게 자주 등장하는 ‘케포스Κήος’, 즉 정원이라는 개념은 무엇을 뜻한단 말인가. 고대에 꽃을 가꾼 정원이 정말로 없었단 말인가.4 이런 질문이 팀원들을 괴롭혔다. 여기서 우리는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한다. 바로 ‘정원’에 대한 개념이다. 1980년대 중반, 베를린에서 살았던 고고학자들에게 정원이란 ‘꽃이 가득 심겨있는 곳’이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사실, 즉 꽃이 가득한 정원은 ‘20세기적현상’이라는 것5을 그들은 알지 못했다. 원하던 답은 찾지 못했으나 그 대신 다른 수확은 많았다. 우선 케포스라는 말이 언급된 모든 고대 문서를 샅샅이 찾아내어 목록으로 만들었다는 사실만 해도 엄청난 일이었다. 그리고 케포스를 아무리 털어 봐도 꽃밭 대신 과일과 채소만 나온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케포스가 정원이라고 번역되기는 하지만20세기에 생각하는 정원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는 사실을 마침내 깨닫게 된 것이다. 이는 마치 부엌과 주방의 차이와도 같다. 부엌에는 부뚜막이 있지만, 주방에는 싱크대가 있다. 케포스에서 꽃밭을 찾는 것은 마치 조선 시대 부엌에 가서 싱크대를 찾는 것과 같았다. 그럼에도 왜 폴리스 주택에 꽃이 없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되지 않는다. 이에 대한 답을 찾으려면 아마도 두 가지 방향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다. 우선 폴리스라는 고대 그리스 특유의 도시 구조를 살펴봐야 한다. 그리고 꽃에 대한 고대인의 관점도 규명해야 한다. 다시 결론부터 말하자면, 폴리스의 주택들은 너무 협소하여 정원을 만들 자리가 없었다. 꽃은 일상에 꼭 필요한 것이 아니며 신성한 것이라 신들에게 바치기 위해서 존재했다. 개인이 보고 즐거워할 대상이 아니었다. 폴리스는 대략 고대 그리스의 도시 국가라고 널리 이해되고 있으나 정확히 말하자면 성채를 두르고 사람들이 모여살았던 공동 생활 구간을 말했다. 아테네의 민주주의가 확립되기 이전에도 공동으로 의사 결정을 했으므로 성안에서 살아야 참정권 행사가 기술적으로 가능했다. 전쟁이 잦았으므로 안전을 위해서도 성안에 모여 사는 것이 유리했다.6 도시라고 해도 가장 큰 도시 중 하나였던 아테네의 인구가 한창 때에 약 4만 정도였으니 이 역시 지금과 달랐다. 특이했던 점은 도시가 팽창하면 도시의 영역을 확장한 것이 아니라 시민들을 ‘분가’시켜 아주 먼 곳에 가서 신도시를 개척하게 했다는 점이다. 오십 명의 미혼 남성으로 구성된 신도시 개발팀을 내보냈다. 무력으로 정복한 것이 아니라 현지 여인들과 혼인하여 문화적 융합을 꾀했다.7 사실 인구가 너무 많으면 공동의 의사결정도 불가능하지만 ‘어떻게다 먹여 살릴 것인가’하는 문제가 더욱 시급했다. 기원전 8~6세기에 신도시 건설이 가장 활발했으며 6세기 말 소위 고전기가 시작될 무렵에는 이미 서쪽으로 스페인 해안, 남으로 북아프리카, 동으로 지금의 터키, 사이프러스는 물론 흑해 연안까지 그리스인들의 폴리스가 분포되어 있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도시 규모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데 거의 집착했던 것 같다. 폴리스에 대한 개념을 정립했던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열 명으로는 도시를 형성할 수 없지만, 인구가 십만 명이 넘으면 이미 도시라 할 수 없다.”8 플라톤은 5,040명을 적정 인구수로 보았다.9 이런 폴리스들은 격자형 계획도시였다. 똑같은 면적의 블록으로 도시를 나누었으며 이를 다시 균일한 크기의 필지로 나누었다. 한 필지의 규모는 도시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었으나 평균적으로 250m2였다.10 세대 당 두 개의 필지를 배당받았는데,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신분을 가리지 않고 도심에 주택지 하나, 외곽에 같은 평수의 텃밭을 하나씩 나눠받았다. 외곽의 텃밭이 바로 케포스, 즉 그들이 정원이라고 일컬었던 것이었다. 도시 내에는 지금의 연립주택과 다름없는 집이 밀집하여 지어졌고 디자인도 두세 개의 모델로 국한되어 있었다. 주택 구조를 보면 정원이 비집고 들어갈틈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당이 있었으나 협소했고 이곳에 우물과 제단이 있었으며 바닥은 흙다짐되었거나 돌, 모자이크 등으로 포장되었다. 폴리스의 모습만 보면 고대 그리스인들은 참으로 기계적이고 합리적이었던 것처럼 보인다. 공동체적 삶을 위해 개인의 안락함을 포기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당연하게 여겨졌다. 굳이 주택가에서 꽃을 찾으려는 20세기적 발상 자체가 그들에게는 그릇될 것이다. 신화와 문학이 그들의 ‘꽃’이었을지도 모른다. 타임머신을 타고 고대 그리스로 가서 아무나 붙잡고 이렇게 물어보면 어떨까. “평등도 좋고 민주주의도 좋지만 집 좀 크게 짓고 정원도 좀 꾸미지 그랬소” 그러면 아마도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왜 그래야 하는데” 그리고 길을 가리킬 것이다. “저리로 한번 가보시게.” 그 길은 아마도 신화 속으로 가는 길일 것이다. 고정희는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나 어머니가 손수 가꾼 아름다운 정원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어느 순간 그 정원은 사라지고 말았지만, 유년의경험이 인연이 되었는지 조경을 평생의 업으로 알고 살아가고 있다. 『식물, 세상의 은밀한 지배자』를 비롯 총 네 권의 정원·식물 책을 펴냈고,칼 푀르스터와 그의 외동딸 마리안네가 쓴 책을 동시에 번역 출간하기도 했다. 베를린 공과대학교 조경학과에서 ‘20세기 유럽 조경사’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베를린에 거주하며 ‘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그들이 꿈꾼 도시, 우리가 사는 도시] 천의 얼굴을 가진 도시 - 적응성을 향하여
연재를 마무리하며 ‘좋은 도시란 무엇인가’라는 다소 포괄적인 질문과 함께 시작한 본 연재가 어느덧 막바지에 이르렀다. 지난 1년은 도시설계와 관련된 여러 주제를 불특정 다수의 독자들에게 이야기하듯 소개할 수 있다는 기대와 설렘으로 충만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서는 앞선 설렘과는 다른 묘한 감정에 사로잡혀 있다. 그래서, 과연 좋은 도시란 무엇이란 말인가? 도시 공간에 대한 요구가 문화마다 다르고 지역적 특수성의 차이도 큰데, 좋은 도시의 공통분모란 것이 과연 존재할까? 끝은 또 다른 시작이라 했던가. 진작 처리했어야 할 과제를 마지막까지 미루고 있다가 최종 연재에 이르러서야 황망하게 생각을 정리하는 게으름을 피우고야 말았다. 기왕 이렇게 된 바에 초조해 하지 말고 도시의 본질적인 문제로 돌아가 보자. 도시의 가장 흥미로운 특질 중 하나는 도시는 항상 다양한 사회경제적 요구와 환경 변화라는 ‘자극’에 노출되어 있으며, 이에 대응하여 제한된 도시 면적안에서 크고 작은 변화가 끊임없이 나타난다는 점이다. 특히 도시를 구성하는 물리적 환경―거시적인 지역 환경과 녹지 분포, 도시 블록과 가로 패턴, 건축물의 유형과 필지의 종류, 도로와 오픈스페이스, 옥상정원과 공용 주차장 등―은 각종 사회적 요구를 반영하며 변화하는데, 그러한 과정 자체가 공간에 차곡차곡 기록되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불완전한 변화의 파편과 흔적으로 공간에 남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도시 공간은 다시 사람들의 삶과 행태, 미시적인 도시 환경과 거시적인 도시 문화에 근본적인 영향을 주게 된다(그림1). 좋은 도시란 무엇인가 이러한 변화 과정에서 비교적 일관된 특성을 공유하는 연속적인 지역이나 장소가 도시 안에 형성된다. 하버드 대학교의 피터 로우Peter Rowe 교수는 이를 “영역territory”이라 부른다. 이를테면 19세기 후반부터 2차 세계대전 이후에 걸쳐 보스턴 도심부 남측에 금융 관련 초고층 업무 시설이 집중적으로 조성되면서 형성된 ‘파이낸셜 지구’나, 1950년대 독일의 기술 원조를 받아서 각종 전자제품과 이후 군수 물자를 생산하던 국영 산업단지이자 최근 중국 최대 예술가들의 놀이터로 탈바꿈한 베이징의 ‘다산쯔 798지구’가 이러한 영역에 해당한다(그림2). 공통의 성격을 갖는 영역뿐만 아니라 차이와 특이성이 두드러지는 크고 작은 도시 공간을 통해서도 변화를 목격할 수 있다. 이를테면 하나의 단일 도심을 기반으로 성장하던 도시 영역이 급격한 인구 증가 때문에 신시가지와 구시가지로 확산되고 단핵 중심의 도시가 다핵 도시로 변형되는 경우가 그 예다. 여기에 다시 새로운 교통 시스템이 도시내 주요 거점을 연결하면서 개발 잠재력이 높은 지역에서는 필지 합병을 통한 대규모 재개발이 진행되는 반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지역에서는 도시 쇠퇴가 나타나기도 한다. 이와 함께 특정 건축 유형에 대한 자발적 고급화와 타율적 잉여가 반복되면서 넓게 확산된 도시 조직은 미시적인 분화를 겪는다. 이러한 공간의 분화와 차이성의 발현은 공통성을 기반으로 한 도시의 각종 영역을 부분적으로 해체하거나 때로는 오랜 시간에 걸쳐 축적된 지역성을 짧은 시간에 붕괴시킬 때도 있다. 김세훈은 1978년생으로 서울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한 후 하버드GSD에서 도시계획학 석사와 박사 학위(DDes)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도시설계 이론과 스튜디오 수업을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 『신흥도시 개발 모델』, 『도시형태변화분석방법론노트』, 『도시와 물길(A City and Its Stream)』 등이 있으며, 한국, 중국, 동남아시아의 도시 연구와 설계를 함께 진행하고 있다.
[그들이 설계하는] 경계자는 조바심을 관리한다
스스로의 정체성을 경계자로 지칭하는 것은 위험하다. 단지 자신을 묘사하거나 기술하는 단어가 아니라 가치판단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자, 자기 색깔이 뚜렷하지 않은 자’라는 부정적 뉘앙스가 있는가 하면, 함민복의 시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처럼 긍정적 뉘앙스도 있다. 그래서 스스로를 경계자라 말할 때는 부정적·긍정적 뉘앙스를 모두 감내해야 한다. “나는 어디에도 끼지 않을 거야, 내 길을 갈 거야”같은 치기, 혹은 “나는 당신들과 달라” 같은 자기 허영.그럼에도 나는 이 마지막 글에서 스스로를 경계자라 칭하려 한다. 현재의 나에 대한 기술이 아니라 지향점이라 이해해 주었으면 한다. 첫 번째 글의 ‘어.설.자.’는 고백이었고, 두 번째 글의 ‘경관편집자’는 경관을 다루는 나의 관점과 방식에 대한 소개였고, 이번 마지막 글의 ‘경계자’는 나의 바람이다. 경계에 서 있는 점들이 시스템이 만든 영역을 가로질러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새로운 지평을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 책상 vs 현장 20~30대에 직장 생활을 오래 하지 않았다. 아침 9시에 출근해서 6시에 퇴근하는 (물론 정확한 시간에 퇴근한 적은 없지만) 직장 생활은 고작 3년이었다. 석사 졸업하고 2년, 영국에서의 박사 후 연구원(post-doc) 후 1년. 나머지는 거의 학생 신분으로 학교를 다녔다. 20대는 학부와 석사 과정, 30대는 박사 과정과 영국에 가기 위한 준비, 그리고 영국에서의 1년간의 연구 과정.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30대 막바지에 설계사무소를 열었다. 고작 3년이 설계라는 작업을 집중해서 고민하고 배우던 실무기간이었다. 20대부터 현장에 뛰어들어 일을 배웠던 동년배들에 비해 훈련의 시간이 부족했던 셈이다. 대신 동기, 선·후배들에게 틈틈이 배웠고, 특히 한 후배는 몸으로 익힌 실무를 ‘속성’으로 내게 전해 주었다. 이렇게 내 이력을 나열한 이유는 책상과 현장에서 서성이는 나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서다. 2002년 그 ‘유명한’ 한평공원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도시연대의 구성원들과 주민 참여, 참여 디자인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더불어 관련된 여러 이론을 공부했고 외국 사례도 살펴보았다. 그 내용을 정리한 것이 박사 학위 논문이다. 박사 논문을 쓰면서도 한평공원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조바심이 났다. 책을 보고 있으면 현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걱정스러웠고, 현장에 있으면 책 속의 내용이 궁금했다. 그 이후의 몇 년 동안은 박사 논문을 쓰면서 가졌던 질문에 답하고 되새김하는 시간이었다. 막연하게 알던 것들을 보다 선명하게 알아가기, 어떤 책에서 보거나논문에 인용했던 것들을 현장에서 확인하기, 이래야한다고 주장했던 것들을 현장에서 실천해보기. 되새김의 기간이 길었던 만큼 박사 논문의 자장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조바심의 기간도 길었다. 그런데 주어진 현장에 집중하다 보니 언제부터인가 내 실천의 방향과 내용이 논문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몇 년 더 현장에 파묻혀 있다 보면…. 아니 지금도 그런 조짐이 나타나는데, 조바심의 방향이 바뀌고 있다. ‘어떤 언어와 논리로 내가 현장에서 얻은 경험을 정리할 수 있을까’로. 전문가 vs 활동가 내 관계의 지형을 보여주는 것 중의 하나가 페이스북 친구이지 않을까 싶은데, 1/4이 ‘조경’이라는 키워드로 만난 사람들이고 3/4이 ‘시민단체’라는 키워드로 만난 이들이다. 페이스북에 적극적으로 글을 올리는 사람들은 대부분 시민단체라는 키워드로 만난 이들이다. 그들이 최근에 올리는 글은 주로 도시재생, 공유공간, 마을만들기, 사회적 경제 등에 대한 것이다. 이 글들을 읽으며 굳이 노력을 하지 않아도 이 분야에 대한 정보를 얻고 사고의 폭을 확장시킬 수 있다. 오프라인에서 만나는 사람들도 대부분 시민단체라는 키워드가 만들어준 네트워크 속의 전문가들이다. 조경이라는 키워드 속에 있는 사람들 중 지속적으로 만나는 이들은 ‘조경작업소 울’의 구성원 정도다. 시민단체마다 다소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가치’가 활동의 중심이 된다. 어떤 일을 시작할 때, 사회나 단체에 가치 있는 일이라고 판단되면 적자가 나더라도 한다. 그리고 이들은 사람들이 세상을, 시스템을 바꿀 수 있다고 본다. 정치적 판단을 떠나 추구하는 바가 다르다보니 활동가들의 일하는 방식도 행정이나 기업, 학교에 있는 사람들과는 다르다. 올해 도시연대의 일원으로 한 대학교의 연구실과 도시연대가 함께 진행하고 있는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그런데 연구 초기, 학교 연구실과 시민단체 간의 차이로 인해 통역자 역할을 해야 했다. 연구자들의 언어와 일의 방식을 활동가들에게 전달하고 활동가들이 추구하는 내용과 언어를 연구자들에게 전달했다. 시민단체나 활동가들의 특성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 전문가라 여겨진 탓인지, 조경작업소 울의 클라이언트는 주로 시민단체다. 올해만 해도 세이브더칠드런, 장애물없는생활환경시민연대(이하 무장애연대), 생명의숲이 주요클라이언트였다. 시민단체의 활동가들과 일하다보니 그들의 일하는 방식을 배워, 일반적 전문가들이 하는 역할의 경계를 벗어날 때가 있다. 이를 의식하지 못했는데, 올해 몇 번인가 “너는 전문가니? 활동가니”라는 질문을 간접적으로 받았다. 앞서 언급한 연구에서 통역자의 역할을 할 때 그랬고, 연재의 첫 번째 글에서 소개한 어린이공원 작업에 대한 어떤 이의 글을 읽으면서도 그랬다.
[조경의 경계를 넘어, 조경 속으로] 인터뷰 연재를 마무리하며
2013년 ‘조경의 영토를 넓혀나가는 주목할 만한 조경가’라는 부제를 달고 시작한 ‘조경의 경계를 넘어’ 인터뷰 지면은 2014년부터 ‘조경의 경계를 넘어, 조경 속으로’란 제목으로 지난달까지 총 35명의 조경 관련 디자이너들을 소개하며 3년을 달려왔다. 뉴욕의 대표적조경가인 시그니 닐슨과의 인터뷰로 시작해 지난 호에 소개된 캐나다 몬트리올의 무나 안드라오스와의 인터뷰까지, 다양한 인물과 대화를 이어온 소감을 여기에 정리한다. 『환경과조경』의 해외 인터뷰 시리즈를 시작한 2013년 1월은 개인적으로 디자인에 대해, 조경 설계라는 직업적 자긍심에 대해 상당한 회의를 느끼던 무렵이었다. ‘진짜 좋은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마음에 “쩡”하는 소리를 울리는 작업이란 어떤 것인가’를 스스로에게 질문해 온 지 몇 해가 되었지만 여전히 이렇다할만한 단서는 보이지 않았다. 진정한 공부를 하고 싶었고 배움에 목이 말랐다. 바쁜 설계사무소 일을 소화하면서 아이 둘을 키우는 빡빡한 생활에서 주어진 시간을 쪼개 배움에 대한 욕구를 채우곤 했지만 실망스럽게도 충족보다는 대개 한숨이 앞섰다. 어디선가 이미 봤던, 독창성을 찾기 어려운 설계안들이 미디어와 공모전을 도배했고 패션은 단추 구멍의 위치만 바꾸어가며 끊임없이 재생산되었다. 어디에나 있을 수 있는, 어디에 갖다 놔도 상관없는 ‘맥락 결여’의 장식적 작품들이 마치 문화의 최전선에 나선 듯 우쭐댔고 허공에 메아리치듯 공허한 미사여구의 독백이 이론이라는 투구를 쓰고 그렇지 않아도 지친 안구에 피로감만을 더했다. 진정한 새로움을 향한 여행길에서 보이는 풍경이란 봐도 안 봐도 그만인 딱그 정도였다.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월간·주간·일간지들을 멀리하게 된 것도 비슷한 시기였다. 그래서 나의 관심은 동시대 설계자들의 작업으로부터 점점 더 멀리 과거로 회귀하고 있었다. 인터넷이 모두의 두뇌에 평준화를 시작한 2000년대 이후 조경이라는 동네는 기웃거릴만한 꺼리가 도무지 없는, 참으로 재미없고 지루한 단체 관광 상품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우울함을 달래려면 대신 곰팡내 나는 뉴욕공립도서관의 서가를 뒤져야 했다. 1960~1970년대 미국의 사회적 혼란기, 20세기 초반의 시티 뷰티풀, 그리고 19세기의 옴스테드와 17세기의 르 노트르로 빠져 들어갔다. 한 세기 전 조경이라는 분야가 본격적으로 태동하던 시기, 그 부근에 자리 잡은 귀퉁이 골방에 머물며 나는 스스로 외부와 담을 쌓고 있었다. 그곳에서 자족하고 있었다. 박명권(현 『환경과조경』 발행인) 그룹한 어소시에이트 대표가 이 코너의 공동 작업을 제안했을 때 무언가 자그마한 창이 열리는 느낌이었다. 현 시대 조경에 대한 나의 우울증이 진정한 고수들에 대한 무식과 게으름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어렴풋이나마 의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단편적인 미디어 정보로는 해결할 수 없는 그들에 대한 이해 작업을 본격적으로 착수할 수 있다는 데 신이 났고 아랫배 한 구석에서 의욕이 솟았다. 그해 겨울 휴가를 떠난 자메이카의 해변에서 가족들이 잠들어 있는 새벽, 귓전을 때리는 파도소리와 함께 윙윙대는모기에 뜯겨가며 첫 번째 원고를 썼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은 간단히 두 가지였다. 첫째, 우선 금붕어 같이 눈은 커지고 머리는 작아진 상태를 극복하고 싶었다. 작금의 우리 일에 지성이란 것이 존재 한다면, 아직 지적인 디자인이라는 전통이 남아있다면, 그것을 옴스테드 시대와 같이 환하게 드러내 복원하고 싶었다. 기본에 대해 질문하고 싶었다. 고상한 언어의 도움 없이도 즉각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디자인, 현란한 컴퓨터 그래픽 없이도 사람의 마음을 울릴 수 있는 디자인, 쉽고도 좋은 디자인을 현학의 덫에서 구출하고 싶었다. 최이규는 1976년 부산 생으로 뉴욕에 기반을 두고 실무와 실험적 작업을 병행해 왔다. 북미와 유럽의 공모전에서 수차례 우승했고, 주요 작품이 뉴욕시립미술관 및 소호, 센트럴 파크, 두바이, 올랜도, 런던, 위니펙 등지의 갤러리에 전시되었다. UNKNP.com의 공동 창업자이며, 저서로 『시티오브뉴욕』(공저)이 있다. 현재 계명대학교 도시학부에서 조경 설계를 연구하며 학생들이만드는 것의 기쁨을 알아가도록 돕고 있다.
광주 도시정원 옴니버스 축제와 5.18민주광장
지난 10월 14일부터 18일까지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Asia Culture Center(이하 ACC)의 5.18민주광장 일대에서 ‘정원으로 부활하는 도시, 가드닝으로 만나는 시민’을 주제로 한 광주 도시정원 옴니버스 축제Gwangju Garden Omnibus Fiesta가 개최되었다.1 이 이벤트는 당초 광주광역시 주최의 공모 사업 ‘시민이 함께 하는 게릴라 정원 사업’의 공동 주관자로 전남대학교 조경학과 조경설계연구실이 선정된 후 당초의 범위와 목적2을 자체적으로 수정·기획해 이루어진 것이다. 경기정원문화박람회나 서울정원박람회처럼 정원을 테마로 한 도시 규모의 행사는 아니었다. 굳이 말하자면 ACC의 개관을 시민들과 자축(?)하며 도심에서 정원을 매개로 가을 한때를 즐기는 로컬 이벤트를 벌이는 정도가 이번행사의 취지였다. 증폭되고 있는 정원에 대한 관심을 조경 분야가 어떻게 수용하고 키워갈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시선의 논의와 심층적 진단이 이미 있어 왔기에 이 글에서 새삼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다만 만들고 돌보는 현실적 공간으로서의 정원만이 아니라 즐기고 나누는 문화로서 정원 현상에도 주목한다면 디자인뿐만 아니라 기획의 대상으로도 정원을 다룰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정원 붐에 휩쓸리거나 다른 도시의 정원 이벤트를 따라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다. 그러나 정원은 조경이 사회와 만나는 부드러운 방식의 통로라는 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기에 지나간 작은 행사이지만 그 프로덕션의 성과를 보고하고 공유하고자 한다. 도시정원 옴니버스 축제는 닷새 동안 다음과 같은 다섯 개의 프로그램으로 진행되었다. 시민참가정원(한평×5일 정원)이 전 기간 전시되면서 이와 연계되는 다른 프로그램들이 같은 장소에서 또는 주변 도시 공간을 넘나들면서 이루어지는 방식이었다. 한평×5일 정원 ‘한평×5일 정원’은 시민 참가로 조성된 한평 정원을 5일 동안 전시하는 프로그램이다. 8월 10일부터 9월 10일까지 한 달간 생활 정원과 게릴라 정원 부문의 참가자를 공모하여 다시 한 달 간 준비 기간을 거친 후 개막 전 2일에 걸쳐 행사 광장에 모여 개별 정원을 조성했다. 이 기간 동안 2회에 걸쳐 디자인 워크숍을 개최하여 팀별로 어떤 주제를 정했는지, 정원을 어떻게 조성할지 서로 공유하는 기회를 가졌다. 정원에 관심이 있는 시민들 중에는 나름대로의 목표나 커리어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고 전공 학생들도 참여하는 터라 예상 못한 문제에 대한 조언이 필요한 경우 외에는 그들의 아이디어를 밀어주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포장 광장 위에 설치해야 하는 불리한 여건이나 제작 비용의 한계에 비하면 시민들이 만든 정원의 결과물은 감동적이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개관과 문화도시 광주의 미래
문화도시, 끝나지 않은 논의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 사업은 물리적 공간으로는 광주에 머물지만 과업의 범위는 광주를 넘어 대한민국, 아시아와 전 세계를 포괄하는 거대 사업이다. 시간적으로는 일차적으로 2004년부터 2023년까지 20년간, 그리고 그 이후로도 계속 이어질 장기 프로젝트다. 지난 2002년 노무현 대통령 후보는 ‘광주 문화수도’, ‘충청도 행정수도’란 선거 공약을 내놓았다. 이때 건국 이래 국가가 주도하는 가장 큰 문화 프로젝트로 광주사회에 던져진 소위 ‘문화도시’라는 거대 담론은 다양한 형태로 논란을 야기했다. 그동안 중앙이냐 지방이냐, 순수(문예)냐 현실(산업)이냐, 운동적 선명성이냐 관제 기관이냐, 포섭/편승이냐 배제냐, 부처 현안 사업이냐 국가 균형 발전 사업이냐, 외부적으로 주어진 것이냐 자생적인 것이냐, 지상이냐 지하냐, 랜드마크가 되는가, 문화 향유 시설을 늘려야 한다, 그래도 기대해 볼 것인가 포기할 것인가 등 정말 말이 많았다. 이런 가운데 대통령으로 당선된 노무현은 국정의 총책임자로서 광주의 아픔과 도시가 지닌 문제점들을 총괄한 조성 사업의 종합계획을 대국민보고회를 통해서 확정함으로써 이 논란은 일단은 종결된 듯했다.1 그러나 이후에도 도시적 랜드마크에 대한 기대, 공연장의 필요, 국립아시아문화전당Asia Culture Centre(이하 ACC)의 운영 체계, ACC 설계 당선작, 주차장, 정권 교체에 따른 관심의 향배, 구 도청 건물의 존치, 주차장문제, 콘텐츠의 미비, 정부 예산의 삭감과 집행 지연, 특별법과 법인화, 계획의 축소와 지연 등 끊임없는 이슈를 낳고 있다. 특히 ‘5월 현장 보존’이라는 명제는 거대한 국가 프로젝트의 수행 방식에 대한 큰 교훈을 남겼다. 국가 균형 발전을 위한 선택과 집중인가, 지역 사업인가 문화도시는 참여정부의 정책 목표였던 국가 균형 발전차원으로 자리매김 되면서 질적으로 비약한다. 수도권 집중의 비정상적인 구도를 재편하기 위해 행정수도를 충청도로 옮기고 각 지역의 특색에 맞는 산업을 선택해 발전 방향을 집중 모색한다는 국가적 차원의 밑그림이 그려지면서, 광주를 비롯한 호남은 21세기형 지식기반 산업인 문화를 매개로 미래 활로를 찾는다는 구상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광주 문화수도는 호남의 미래를 위한 선택과 집중이라고 지속적으로 강조했다. 즉 전국 유일의 문화수도, 일종의 ‘only one' 정책이었다. 그러나 벌써 규모 축소와 독립법인화가 논의되고 있는 실정이다. 국가 균형 발전과 호남의 웅도 광주를 살리고자한 원래의 정책적 배려와 의도와는 달리 ‘잘하는지 두고 보자’, ‘돈 먹는 하마’, ‘예고된 재앙’이라는 비아냥이 고개를 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부산에 ‘아시아문화원’을 개설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구체화되어 광주 문화수도가 국가 사업이 아닌 지역의 사업으로 전락해 유일한 사업이 아닌 국가의 여러 문화 사업 중의 하나one of them로 의미가 축소되어 가고 있다. 천득염은 전남대학교 건축학부 교수로 재직하며 문화재위원과 한국건축역사학회장을 맡고 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한국의 명원 소쇄원』, 『백제계석탑 연구』, 『한국의 건축문화재』, 『광주건축사』, 『삶의 공간과 흔적우리의 건축문화』, 『인도 불탑의 의미와 형식』, 『전남의 석탑』 등이 있다.그간 대통령직속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위원 등 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과 관련한 일을 많이 했으며, 100여 편의 연구 논문을 발표했다.
빛의 숲, 국립아시아문화전당
10년 만에 완성된 ‘빛의 숲’ 광주의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하 ACC)이 11월 25일 공식 개관했다. 2005년 12월, 8개월간의 국제 공모를 거쳐 우규승의 설계안 ‘빛의 숲’이 선정된 이후 10년 만이다. 낮추고 비워 도시의 경관을 끌어안은 획기적인 설계 개념 때문에 떠들썩하게 화제가 되었지만, 지난10년간 광주에서 드문드문 들려오는 소식은 랜드마크 논란이나 도청 별관 존치 여부, 읍성 유허 보존 등 그 개념에 영향을 미치는 것들이었다. ACC를 둘러싼 내홍을 접할 때면 국내에서 진행되는 많은 설계공모 당선작의 운명이 그러하듯 ‘빛의 숲’이 온전히 구현될 수있을지 우려스럽기도 했다. ACC는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이 본부로 사용한 옛 전남도청과 경찰청 일대에 자리잡고 있다. 2005년 국제 공모에서 가장 중요했던 요청은 이러한 역사적 현장의 중요성을 공간적으로 드러내고, 바로 그 희생의 자리에서 광주가 과거의 상처를 씻고 아시아의 문화도시로 발돋움하기 위한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당선작인 우규승의 ‘빛의 숲Forest of Light’은 광주의 역사를 기리기 위해 채우는 대신 비우는 전략을 취한다. 공간들(건물)은 지하로 들어가고 그 결과 비워진 땅과 건물의 지붕은 시민들의 공원이 되는 것이다. 우규승은 설계설명서에서 “기존의 보행자 가로체계가 연장되어 역사적인 현장과 만나면서 광주 도심에 대규모 시민공원이 조성된다”고 기술했다. ‘빛의 숲’이란 개념은빛고을 광주光州를 상징하면서 유리 파사드와 천창을 통해 빛을 품고 발산하는 형태로 구현된다. 우규승1은 우리에게는 88서울올림픽선수촌 아파트, 환기미술관의 설계자로 알려진 재미 건축가다. 그는 설계설명서 첫머리부터 시민공원을 ACC의 핵심으로 제시해 건축과 조경의 경계가 없음을 강조한 셈인데, ACC의 조경은 우규승이 평소 함께 작업해왔으며 공모 당시부터 깊게 관여했던 반 발켄버그Michael Van Valkenburgh(MVVA)가 기본설계를 진행했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우규승은 88서울올림픽선수촌 아파트에서 인연을 맺었던 정영선(조경설계 서안)에게 조경 설계의 로컬을 제의했다. 서안은 기본설계 단계에서 건축의 로컬인 삼우건축과 희림건축 컨소시엄에 합류했고, MVVA와 서안의 설계팀은 광주와 보스턴을 오가며 설계를 현실화했다. 공간 배치 광주역에서 차로 20여 분쯤 달리면 작은 건물들 사이에 낮지만 눈으로 더듬어 입구를 찾기 힘들 정도로 거대한 ACC가 모습을 드러낸다.2 옛 관청 일대 필지를 합쳐 조성된 이곳에는 금남로와 만나는 5.18민주광장과 보존 건물(민주평화교류원)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표면 아래에는 중앙의 아시아문화광장을 중심으로 주요시설(어린이문화원, 아시아문화정보원, 문화창조원, 아시아예술극장)이 부지의 생김새대로 자리를 잡았다. 5.18민주광장과 옛 전남도청 한국 민주화 운동의 성지로 불리는 옛 전남도청 앞 광장은 1980년 5월 시민군이 최후의 항전을 준비한 곳이다. 광장 한가운데 남아있는 분수대는 당시 각종 집회의 연단이 되기도 했고 그 주변에서 많은 광주 시민들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교통광장이었던 이곳은 5.18민주광장으로 탈바꿈하여 보행자들에게 열린 공간이자 ACC의 주 관문이 되었다. 우규승은 새로운 공간들은 땅 아래에 배치하고 역사의 증인들은 땅 위의 주인공으로 남겼다. 밝은 회색 석재가 깔린 이 광장에는 어찌 보면 촌스러운 파란색 페인트에 회양목으로 둘러싸인 분수대가 옛 모습 그대로 남아 그날의 기억을 소환한다. 반 발켄버그 역시 5월 당시 총격을 당했던 다섯 그루의 나무를 목격자 나무witness tree라고 부르며 광장과 이어지는 보존 지구에서 가장 중요한 조경 요소로 삼았다. 이 살아있는 역사의 상징 외의 부차적인 요소들은 모두 제거하고 나무들이 잘 생장할 수 있도록 토양 조건을 개선했다. 당시 희생자들의 시신을 안치했던 상무관 주변에는 상록수를 많이 심어 차분한 기념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옛 전남도청은 광주의 역사적 기억을 민주와 인권, 평화의 가치로 승화시킨 콘텐츠를 담게 될 민주평화교류원으로 리모델링되었다. 도청 옆 별관 건물은 5.18민주광장과 아시아문화광장을 시각적으로 이어주고 ACC 안팎에서 무등산을 조망할 수 있도록 철거될 예정이었으나, 설계공모 이후 5월 관련 단체 측의 요청으로 남게 되었다. 기념과 추념이 늘 엄숙한 것은 아닌 법. 평범한 일상에서 5.18민주광장은 크고 작은 행사가 펼쳐질 수 있는 유연한 공간으로 시민들에게 돌아왔다. 새로 설치된 바닥 분수는 더운 여름날의 열기를 가라앉히고 그 안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이 공간을 미래를 향한 희망의 공간으로 만든다. 조경기본설계MVVA(Michael Van Valkenburgh Associates) + 조경설계 서안 조경실시설계조경설계 서안 + MVVA, 씨엔조경 건축설계KyuSungWoo Architects + 삼우종합건축사사무소 + 희림종합건축사사무소 발주문화체육관광부 위치광주광역시 동구 관산동 등 구 전남도청 일원 대지면적96,036m2 조경면적15,091.79m2 건축면적20,938.67m2 연면적139,178.87m2 건폐율21.80% 용적율11.11% 규모지하4층, 지상4층 최고높이20.3m
아시아 문화중심도시를 꿈꾸는 광주
광주의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하 ACC)이 지난 9월 4일 일반인에게 일부 공개된 이후, 11월 25일 공식 개관했다. 2002년 고노무현 전 대통령의 광주 문화수도 육성 공약에서 비롯된 ACC가 2005년 12월 국제 설계공모를 통해 설계안이 선정된 후,10년 만에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민주주의 수호의 상징이었던 만큼 소외의 상징이기도 했던 광주에 국립중앙박물관의규모와 맞먹는 번듯한 문화 공간이 생긴 셈이다. 그러나 문화도시에 대한 국가 차원의 관심이 예전 같지 않은 요즘, 지방 도시의 규모나 수요에 어울리지 않는 대형 공간이라는 우려, 아시아문화라는 테마의 모호함 때문에 이 큰 공간을 어떤 콘텐츠로 채우고 지속할 것인가에 대한 걱정으로 문을 열기도 전부터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빛의 숲,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개관과 문화도시 광주의 미래 _ 천득염 광주 도시정원 옴니버스 축제와 5.18민주광장 _ 조동범
특별상 이원영
“조경이 왜 꽃이냐는 소리도 많이 들었다. 서울시 조경과가 조경을 꽃이나 나무 심는 분야로 만들어 놨다는 말도 있었다. 하지만 주민들에게 다가가려면 이것이 첫 번째라고 생각했다.” “직장인으로서 열심히 한 것뿐이다. 조경 분야를 위해 한 일도 많지 않고 성과도 부족한데 이렇게 큰 상을 주셔서 너무 감사드린다.” 특별상 수상자로 선정된 서울시청 이원영 과장은 소박한 수상 소감과는 달리 선정 과정에서 여러 사업에서의 뚜렷한 공적을 인정받았다. 특히 ‘서울, 꽃으로 피다’를 통해 시민 참여 사업을 도입했으며, 대한민국 조경문화박람회, 서울정원박람회, 식재 유지관리비 지원 제도 등 새로운 사업에서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는 평이다. 조경과 시민의 만남, ‘서울, 꽃으로 피다’ ‘서울, 꽃으로 피다’는 시민이 체감할 수 있는 생활권주변 녹지를 직접 조성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정보와 참여 기회를 제공하는 사업이다. 관 주도의 녹지 정책에서 탈피하고 궁극적으로 시민 주도의 도시 녹화를 활성화하기 위해 2013년부터 추진되고 있다. 처음엔 조경 업체로부터 오해도 많이 받았다. 가뜩이나 지자체마다 조경 관련 예산이 줄어 발주 사업이 적어지고 있는데, 시민 참여를 통한 공모 방식으로 사업을 진행하니 불만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서울, 꽃으로 피다’는 보조금을 확보해 추진되는 사업으로, 서울시 푸른도시국에서는 처음 도입된 주민 참여 사업이다. 주민 몇몇이 협의체를 이뤄 동네 자투리 공간에 ‘뭔가’를 하고 싶다고 제안을 하면, 이를 서울시가 심사해서 재료비 등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지난 2년간 서울 도심에 846만 그루의 나무와 2,120만 본의 꽃을 심는 성과를 거두었으며, 다른 지자체에서도 시민 녹화 운동의 우수 사례로 벤치마킹하고 있다. 하지만 이 사업의 가치는 무엇보다 개인화되고 각박해진 도시의 삶 속에서 서울 시민들이 이웃의 문을 두드리게 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이원영과장은 지난 2013년부터 서울시 푸른도시국 조경과장을 맡아 사업을 추진하면서, 그간의 발주 사업의 관성을 깨고 ‘서울, 꽃으로 피다’와 같은 시민이 직접 참여하는 사업들을 발굴 추진한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지난 2014년 한국조경사회와 함께 ‘대한민국 조경문화박람회’를 개최했으며, 올해에는 서울에서 최초로 ‘서울정원박람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해 생활 속 정원 문화를 확산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식재 공사 완료 후2년간 유지관리비의 일부를 시공 업체에 지원해주는 제도를 서울시 최초로 도입한 점도 공적으로 인정받았다.
정책분야 백운해
“뜻깊은 마무리를 하게 해주셔서 감사하다.” 올해로 한국토지주택공사(이하 LH)에 근무한 지 만 30년이 되어 현역으로 활동하는 마지막 해를 보내고 있는 백운해 처장의 수상 소감이다. 지난 1월 도시경관처 처장으로 부임하면서 조경계의 크고 작은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부심했던 그다. 또 올해는 한국조경학회 산학협력 부회장으로 활동하면서 조경 업계와 학계 사이의 가교 역할을 맡기도 했다. 그 가운데 특히 ‘조경설계 현상공모 간소화’를 추진해 설계공모의 문턱을 낮추고, ‘업체 평가에 따른 조경자재·공법선정위원회 가감점 제도’를 도입해 시공사와 시설물 업체의 노력에 대한 보상 체계를 마련하는 등, 제도 개선에 노력한점을 인정받아 정책분야의 ‘올해의 조경인’으로 선정되었다. “ 최근 대규모 개발은 줄어들고, 대신 재개발, 재생 사업들이 많아졌다. 앞으로 후배들은 이러한 분야에서 우리 조경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새 길을 개척해주기를 바란다.” 업계에서 환영받는 제도 개선 백운해 처장이 몸담고 있는 도시경관처는 LH에서 조경을 총괄하는 부서다. 부서의 이름에 ‘경관’이란 단어가 들어가 있음에도 ‘경관법’과 관련된 일에서 조경직은 기본적인 계획 단계에서만 협조하는 정도의 역할을 맡고 있다. 조경 분야 내에서도 경관과 관련된 일을 하면 ‘왜 조경 외의 일을 하느냐’고 의아해 한다니 더더욱 조경직은 부수적인 역할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이렇듯 조경의 자리를 찾기 힘든 상황에서도 백운해 처장은 2007년 ‘경관계획 수립 방향 설정 및 기준 마련을 위한 연구’와 ‘개발대상지 도시경관 향상을 위한 경관계획 체계 수립 연구’ 등 경관 연구에 꾸준히 참여했다. 2010년에는 ‘낙동강 수변생태경관사업’ 정책 업무를 직접 수행해 치수 위주의 4대강 사업을 생태성을 고려한 녹색 공간으로 조성하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특히 2014년 ‘경관법’ 개정에 따라 경관계획 수립이 의무화되자 ‘개발사업 경관계획 용역기준 개선방안’을 마련해그 공적을 인정받았다. “경관계획이 실제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조경설계에 대한 대가를 제대로 지급하자는 취지의 개선안이다.” 평소 LH의 조경설계대가 요율이 다른 발주처에 비해 낮다는 업계의 목소리를 반영해 설계비를 현실화하고자 한 노력이다. 올해 추진한 ‘조경설계 현상공모 간소화 방안’ 역시 설계사들이 반기는 일 중 하나다. 이미 건축과 같은 인접 분야에서는 설계공모의 제출물과 절차가 상당히 간소화되어 있다. “조경은 멋진 그림을 그리지 않으면 당선이 어렵다는 생각이 팽배해 조감도나 패널에 비용을 많이 들이는 것 같다.” 설계공모 당선을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과도한 출혈 경쟁을 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설계공모 간소화 방안은 제출물의 수량이나 크기 등을 간소화해 참여 업체의 부담을 줄이고, 응모 자격이나 제한 조건을 완화해 참여 기회를 확대하는 데 목적이 있다.
산업분야 신경준
“ 독일은 기능장이 있는 마을에 기旗를 하사해 치켜세워 준다. 그 정도로 유럽은 기능 인력을 대우해 준다.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기능 인력 시장으로 유입되려면 유럽형으로 바뀌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가 형성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분야의 내부적인 노력이 먼저 필요하다.” 하자는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명문화 하는 것이다 조경 시공인들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하자 관리 문제다. 살아있는 자재를 다루다보니 세심한 관리가 요구되는 조경 시공에서는 하자 관리가 가장 큰 관건이다. 토양, 비배, 병충해 관리뿐만 아니라 가뭄, 홍수 등 자연 재해와도 맞서 수목을 지켜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최근 기후변화와 저가 입찰로 인해 시공 하자를 해결하는 것이 더욱 힘든 상황이 됐다. 그런데 관련 제도조차 관리의 책임 소재를 시공사에 전가하는 양상을 보여 업체들의 어깨가 무겁다. 신경준 대표는 이러한 제도적 불합리함을 바로잡기 위해 ‘조경공사의 하자 사례 연구 및 개선방안’, ‘조경공사 하자 이행기준 및 개선방안 연구’ 등의 자문위원으로 참여해 하자의 기준을 명확히 하고, 하자 관리 노하우와 정보를 공유해 대처 방안을 제시하고자 했다. 또한SH공사 ‘조경매뉴얼’ 시공 부문 연구책임자로 나서 하자율을 줄일 수 있도록 시공 기준을 마련하는 데도 일조했다. 한국외국어대학교는 ‘조경식재업종 표준하도급계약서제정안’ 마련을 위한 연구 용역을 수행했는데, 신 대표가 자문위원으로 참여해 가뭄과 병충해도 불가항력적인 자연 재해로 규정하는 조항을 넣어 하자 판정에 대응할 근거를 마련했다. 또한 하자보수보증금을 중간 정산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조항도 추가했다. 표준하도급계약서는 정부기관에서 관리하는 만큼 하자 문제에 대응하는 근거로 실효성이 있다. 이번 표준하도급계약서 제정안은 내년부터 시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신경준대표는 20여 년 동안 장원조경을 경영해오면서 관련 기술 개발과 연구 활동을 통해 업계 전문성을 강화하는데 기여했다. 직장 생활까지 시공 분야에서만 30여 년 외길 인생을 걸어온 그는 명실공히 자타가 인정하는 조경 시공 장인이다. 특히 조경 하자 관리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전문가다. 그리고 한국환경계획·조성협회장을역임하면서 자연환경복원업 신설을 위해 분투하는 등 업역 확장을 위해서도 힘써 왔으며, 젊은 조경 기능인 육성을위해 꾸준히 신입 직원을 선발하고 시공 환경을 개선하는 데 주력해 왔다.
학술분야 안계복
“현재 전통 조경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겉으로 보이는 경관 연구에만 몰두하고 있는데 목재 분석이나 화분 분석과 같은 연구 방법을 도입해 연구 영역을 넓힐 필요가 있다.” 총 101편의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까지 대구가톨릭대학교 원예조경학부 교수로 재직 중인 안 교수는 박사 과정 중 본격적으로 전통 조경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당시 그의 지도교수는 ‘전통 조경에 대한 연구가 아직 미미하니 다른 쪽의 연구를 해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권했지만, 안 교수는 전통 조경에 대한 고집을 꺾지 않았다. “박사 과정을 밟을 때 학술논문발표대회에서 우리나라의 옥외 공간 양식의 발달에 대한 체계도를 그려 발표한 적이 있다. 그런데 당시 그 발표에 대한 토론이 진행되지 않았다. 전통 조경에 대해 토론할 밑바탕이 없었기 때문이다.” 안 교수가 처음 전통 조경을 연구할 당시만 해도 관련 연구가 불모지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한국전통조경학회지에 실리는 논문의 수가 한국조경학회지에 실리는 논문의 수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성장했다. 그 이면에는 안 교수와 같이 하나의 주제나 문제에 오랫동안 천착했던 전통 조경학자들의 노력이 있었다. “전통 조경을 공부해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가장 연구하고 싶었던 대상이 안압지(월지)였다. 1984년 즈음 안압지 발굴조사보고서의 도면을 들고 안압지를 조사하러 갔는데 안압지에서 발굴된 경석이 제대로 복원된 것이 하나도없었다. 우리나라 전통 조경에서 경석을 놓는 기법을 밝히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데, 전혀 엉뚱하게 복원되어 십수 년간 논문을 쓰지 못하다가 다른 방면으로 뚫고 들어가서 논문을 쓰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안압지에 대한 논문을 약 10편 발표했다. 이런 식으로어떤 논문은 문제의식을 가졌던 당시에는 해법을 찾지 못해 보류해두었다가 10여년 뒤에라도 해결해서 발표하기도 한다.” 안계복교수는 전통 조경에 대한 연구가 태동하던 시기부터 전통 조경 연구에 뛰어들어 근 40년간 한 길을 걸어왔다. 그동안 그는 학술 논문과 저서(보고서)를 합해 총 101편에 달하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여 전통 조경의 기본 토양을다지고 조경의 학문적 발전에 기여했다. 특히 경상북도의 역사와 문화, 농촌에 대한 연구에 진력하면서 문화재청 문화재위원(전문위원)과 설계 심사위원, 경상북도와 대구시 문화재위원회위원(전문위원)으로 활동하며 문화재 보존을 위해힘썼다. 또한 현재 한국전통조경학회장으로서 조경의 업역과 전문성을 보호하기 위해 국토부의 ‘건설기술자 등급 인정 및 교육·훈련 등에 관한 기준’과 문화재청의 ‘문화재수리 등에 관한 법률’ 개정 서명 운동을 추진하고 관련 개선안을 작성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추진하고 있다.
제18회 올해의 조경인
본지는 한 해 동안 조경 분야의 발전에 크게 공헌한 분들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지난 1998년부터 본지 독자들의 추천을 바탕으로 매년 연말에 ‘올해의 조경인’을 발굴·선정하고 있습니다. 올해로 18회를 맞이한 ‘올해의 조경인’은 본지 지면, 관련 단체 및 업체 홍보 후 이메일, 팩스, 우편 등을 통해 독자들로부터 후보 추천을 받아, 주요 공적을 토대로 별도의 ‘올해의 조경인 선정위원회(조경 관련 단체장+역대 올해의 조경인 수상자+본지 자문위원)’에서 수상자를 선정하고 있습니다. 제18회 ‘올해의 조경인’은 지난 10월 1일부터 11월 2일까지 후보 추천을 받았으며, 11월 11일 ‘올해의 조경인 선정위원회’를 개최하여, 최종 수상자로 학술분야에 안계복 교수(대구가톨릭대학교), 산업분야에 신경준 대표(장원조경), 정책분야에 백운해 처장(한국토지주택공사 도시경관처), 특별상에 이원영 과장(서울특별시 푸른도시국 조경과)을 선정하였습니다. 학술분야안계복 _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산업분야신경준 _ 장원조경 대표 정책분야백운해 _ 한국토지주택공사 도시경관처 처장 특 별 상이원영 _ 서울특별시 푸른도시국 조경과 과장
[재료와 디테일] 거푸집, 무엇이든 만들 수 있어요
콘크리트로 무엇인가를 만들기 위해선 거푸집이라는 형틀이 필요하다. 원하는 모양으로 틀을 만들고 그 안에 콘크리트만 채워 넣으면 어떤 형상도 만들어낼 수 있는 요술램프 같은 장치다. 웬만한 공사에서 빠지지 않는 단골손님이랄까. 아니, 없어서는 안 될 주인 같은 손님이 더 어울리는 표현이다. 구조재로 사용될 뼈대를 만들 때, 혹은 마감재로 쓰일 매끈한 물건을 만들때 이 요술램프 없이는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다. 게다가 그 효용에 비해 얼마나 저렴한가. 몇 개의 나무 각재와 판재만 있으면 뚝딱뚝딱 만들어 조립하고 공장에서 미리 배합해서 만들어 놓은 콘크리트를 채우기만 하면 된다. 물론 그 쓰임에 따라서 사용 횟수를 정해 놓기도 하고 비용도 다르게 책정되어 있으며 원하는 품질의 수준에 따라 금액이 천차만별이라는 까다로운 조건이 붙어 있지만 말이다. 20여 년 전 실무를 시작할 무렵 일본에 놀러 갈 기회가 생겼다. 그때 도쿄의 가사이 임해공원葛西臨海公園에서 만난 일본의 한 유명 건축가가 설계한 노출콘크리트 건물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당시 나는 노출콘크리트의 미학적 의미를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냥 거푸집을 떼어낸 후 드러난 콘크리트 면 자체를 마감으로 쓴다는 아주 초보적인 지식만 있었는데, 건물을 손으로 만져본 후 온몸에 전해지는 감각에 전율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리석보다 더 부드러웠다. 차라리 따뜻했다. 거푸집과 콘크리트의 관계에 대한 나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기에 놀란 채로 그 곁에서 한참을 보냈다. 후에, 그런 마감을 내기 위해서 어떤 일본 건축가는 콘크리트를 타설하는 날이면 모든 사무실 식구들과 함께막대기를 들고 콘크리트를 비빈다는 이야기를 책에서 읽고 놀라기도 했다. 레미콘에서 콘크리트가 쏟아지는 순간 마치 무엇인가 이루어질 것 같은 느낌에 긴장했던 경험이 겹쳐졌다. 이대영은 여기저기 살피고 유심히 바라보기 좋아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려 노력하고 있다. 만드는 것에 관심이 많으며, 작고 검소하며 평범한 조경설계를 추구하고 있다. 영남대학교에서 공부했고 우대기술단과 씨토포스(CTOPOS)에서 조경의 기초를 배웠다. 조경설계사무소 스튜디오엘(STUDIO L)을 시작하고 작은 작업들을 하고 있다. www.studio89.co.kr
[공간 공감] 당신이 좋아하는 공간은 어디인가
2014년 1월, ‘당신이 좋아하는 공간은 어디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시작된 ‘공간 공감’이 연재 2주년을 맞아 좌담회를 가졌다. 한 달에 한 번씩 대상지를 답사한 후 함께 둘러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그 결과를 수록해 왔기에 ‘공간 공감’ 멤버들에게 좌담회는 무척이나 익숙하다. 하지만 이번 좌담회에서는 특정 대상지가 아니라, 지금까지의 답사를 바탕으로 ‘좋은 공간감이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첫 회의 프롤로그 이후 ‘이태원(상업시설 건축물), 무교공원, 성곡미술관, 대학로, 서울시립대학교 캠퍼스, 연남교 교차로, 메리츠타워, 책테마파크, 백남준아트센터, 지앤아트스페이스, 웅진싱크빅 옥상정원, 파주 환경과조경 사옥(미메시스 아트 뮤지엄), 서초동 삼성출판사 공개공지, 합천영상테마파크, 서울대학교 미술관, 양재동 꽃시장, 석파정, 알토사옥 옥상정원, 창덕궁 후원, 박수근미술관, 명동성당, 홍익대학교 중앙광장’까지 총 스물두 곳을 찾았다. 알토사옥은 허승효 회장(알토)의 안내로, 창덕궁 후원은 건축사진작가인 김용관 대표(다큐멘텀)와, 박수근미술관은 정재헌 교수(경희대학교 건축학과)와 함께 둘러보았다. 담당 에디터도 연남교 교차로, 웅진싱크빅, 삼성출판사 등의 답사에 동행했다. 경남 합천부터 강원도 양구까지 거리에 구애받지 않고 차를 몰았던 동력 중의 하나는 공간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물론, 함께 답사한 이들이 같은 공간을 얼마나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지도 궁금했다. 답사 수첩에 대상지가 하나씩 차곡차곡 쌓이고 공간감과 디테일에 대한 갑론을박이 풍성해지는 동안, ‘공간 공감’ 멤버들은 첫 원고에서 밝혔던 “우리 도시에서 당신이 생각하기에 좋은 외부 공간은 어디인가? 그리고 그곳을 왜 좋아하는가”란 질문의 답을 얼마나 찾았을까? 스물두번의 답사 이야기를 반추하며, ‘좋은 공간감이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놓고 벌인 스물세 번째 좌담회를 이지면에 옮긴다. _ 편집자 주 “공간의 질이 아니라 이야깃거리를 품고 있느냐가 중요” 정욱주 어느덧 연재를 시작한 지 2년이 흘렀다. 지금까지 답사한 22곳의 대상지를 하나씩 떠올려보니 특징이나 성격이 꽤 다양하다. 처음에 의도했던 “우리 도시에서 좋은 공간을 발굴하고 이를 설명하는 어휘를 개발하고 축적”하기 위한 목적에서 살짝 비껴간 곳도 있고,“우리의 정주 환경을 구성하고 있는 양질의 공공 공간”을 탐색하겠다는 뜻에 정확히 부합하는 곳도 있다. 그 달의 답사 대상지를 선정하는 과정 자체가 큰 공부가 되었다는 생각도 든다. 공간감이나 디테일이 뛰어나서 대상지로 선정된 곳도 있고, 정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아쉬운 점이 있는 공간을 꼼꼼히 살펴봄으로써, 역으로 좋은 공간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실마리를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박승진 대상지 발굴이 쉽지 않았다는 점이 곧 우리 도시 환경의 현주소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싶다. 처음 의도와 결이 다른 공간을 둘러본 것이 단점으로 여겨질 수도 있지만, 좋든 아쉽든 다양한 공간을 소개했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었다. 내년 답사에서도 이기조를 유지할 것인지는 논의가 좀 필요하다. 정욱주 설계자의 의도에 따라 만들어진 공간도 있었지만 ‘연남교 교차로’처럼 자연적으로 발생된 공간을 답사하기도 했다. 건강한 비평 기능을 살리고 실제로 설계자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는 디자인된 공간 위주로 답사를 하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그런데, 연남교 교차로는 개인적으로 참 좋았다. 김아연 결국은 좋은 공간감을 불러일으키는 공간의 조건이 무엇인지를 찾는 것이 우리의 과제가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누군가에 의해 디자인된 곳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곳이더라도 좋은 공간감에 대한 힌트를 줄 수 있다면, 기꺼이 가보아야하지 않을까. 박승진 그렇다. 공간의 질이 중요하다기보다 이야깃거리를 얼마나 품고 있느냐, 공간에 대한 다양한 판단을 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해줄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지금까지 답사한 곳 중에서는” 이홍선 그동안 답사한 곳 중에서는 메리츠타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반전이 있었다. 뭐랄까, 공간 구성 자체가 극적이었다. 그런 점을 보면, 단순히 디자인이 아름답거나 뛰어나다고 해서 공간감이 생기는 것은 결코 아니다. 또 메리츠타워는 대상지가 안고 있는 레벨 차이라는 한계도 상당히 잘 활용했다. 나무는 그리 수형이 좋은 편이 아니었지만, 화분의 크기나 배열 방식, 리듬감 등이 나무랄 데 없었다. 최근에 찾은 홍익대학교 중앙광장은 공간이 커가는 과정을 꽤 오랫동안 지켜보았기 때문인지, 지금의 모습이 감탄스럽다. ‘공간 공감’ 답사 이후에도 몇 차례 더 가보았는 데, 찬찬히 둘러보니 그 매스감이 더 놀라웠다. 처음에는 학교 캠퍼스의 광장을 왜 수목 농장처럼 만들어 놓았는지 의아했는데, 한 해 한 해 지나 식물이 커나가면서 전혀 다른 공간감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나무를 아예 건드리지 않고 그대로 놔둔 것이 주효했다. 나무들이 자기들끼리 싸우면서 처지기도 하고 죽기도 하는데,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근사한 도시 숲이 탄생했다. 어느정도 설계자가 이렇게 의도한 공간이 아닌가 싶다. 박승진 때론 너무 깔끔하고 계획적으로 관리하는 것보다 스스로 자랄 수 있는 여지를 두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들 교육도 마찬가지다. 의도대로 가꾸기 위해 치밀하게 관리하다 보면 더 엇나가거나 불필요하게 웃자랄 수 있다. 풀어두는 것도 좋은 방법 중의 하나다. 김용택 나 역시 그런 전략을 의도적으로 취하는 편이다. 스스로는 그것이 나의 관리 매뉴얼이라고 이야기하곤 한다. 그대로 두는 것 말이다. 홍대 중앙광장의 경우, 숲을 만들겠다는 것은 디자인을 했겠지만 관리하는 방식은 풀어두는 전략을 취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홍대라는 공간이기 때문에 그 점이 더욱 돋보였다. 그 외에 답사하면서 좋았던 곳으로는 박수근 미술관을 꼽고 싶다. 조형적인 디자인이 뛰어나거나 조형물이 돋보이는 곳보다는 분위기가 잘 갖추어진 곳을 선호하는 편이다. 재료가 시간을 머금고 있다거나 물성이 잘 드러나는 디테일에도 애착이 간다. 박수근미술관이 바로 그런 공간이었다. 재료와 공간이 잘 어우러져, 그 공간의 인상을 좌우하는 곳. 좋은 공간감이 바로 거기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이홍선 박수근미술관과 명동성당은 아쉬움과 만족스러움이 비슷한 측면에서 동일했다. 전면부를 좀 더 여유있게 비워두었다면 어땠을까 싶다. 박승진 명동성당의 경우는 조경 설계 이전에 이루어진 기본 방향 설정에서, 전면 공간에서 집회를 하지 못하도록 하자는 의도가 개입되어 지금과 같은 공간 연출이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 싶다. 성당 뒤편 공간은 그 의도에서 자유로웠기에 지금처럼 아늑하고 만족스러운 공간이 유지될 수 있었고. 김용택 ‘공간 공감’ 멤버들은 과도하게 디자인된 공간을 좋아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분당의 책테마파크 같은 경우, 디자인 자체만 보면 상당히 공들여 설계된 곳이지만 공간의 맥락에서 바라보면 디자인이 조금 과해 보인다. 그 때문에 답사 당시에 아쉬운 점에 대한 토로가 많았다. 김아연 개인적으로는 지앤아트스페이스와 양재동 꽃시장의 생명력이 돋보였다. 디자인 차원을 떠나서, 판매행위를 위해 제품을 외부에 내놓은 공간들인데 그곳만의 확실한 생명력이 있었다. 이 연재를 위해 factory L의 이홍선 소장, KnL 환경디자인 스튜디오의김용택 소장, 디자인 스튜디오 loci의 박승진 소장 그리고 서울대학교정욱주 교수와 서울시립대학교 김아연 교수 등 다섯 명의 조경가가 의기투합하여 작은 모임을 구성했다. 이들은 새로운 대상지 선정을 위해 무심코 지나치던 작은 공간들을 세밀한 렌즈로 다시 들여다보며, 2014년1월부터 한 달에 한 번씩 유쾌한 답사 모임을 이어가고 있다.
Modern Road Covered Heritage
한국사에서 근대는 우리나라의 국토가 일제 침략에 따라 외세의 병참기지로 사용되었다는 아픈 역사를 담고 있는 시대다. 일제는 군사력 유지를 위한 중요 요소 중하나인 식량 보급을 위해 조선의 경제 기반인 농업에 대한 수탈을 실시했으며, 이는 한반도 병참기지화의 출발점이었다. 농업 수탈 제1기인 1906년(통감부 개설)부터 1918년(토지 조사 사업)에 이르는 시기에 조선의 경제상황은 급격하게 붕괴되었다. 이 시기에 일제는 조선농민의 농토를 강탈하여 근대 무산자 계급을 생산했고, 원활한 수탈과 보급을 위한 가로 정비도 진행했다. 그리고 이때 조선의 젖줄인 곡창 지대 전라남도에 대한 수탈과 함께 전라남도 내 최대 규모의 읍성 ‘순천부읍성’이 무너지기에 이른다. 당시 순천과 낙안은 각각 순천부와 낙안군에 소속되어있던 지역으로 순천부읍성은 순천 평야와 주변 농업지역의 농산물 집산지였다. 일제는 순천부읍성을 농산물 수탈을 위한 최적의 장소로 보았고, 자연스럽게 순천부읍성을 헐어내는 것이 효과적인 농산물 보급을 위한 가로 정비 사업의 출발점이라 판단했다.
Viewtiful Promenade
1960년대 초부터 추진된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을 계기로 대한민국은 고도의 경제 성장을 달성했다. 1970년대에 개통된 경부고속도로는 서울과 부산의 이동 시간을 5시간 내로 단축시키며 국민 생활의 편의는 물론 경제 발전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2년 5개월 만에 완공된 경부고속도로는 세계에서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단기간 공사였고, 여전히 우리나라 근현대 경제 발전 과정을 논하는 데 있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그러나 서둘러 진행된 공사 과정에서 77명의 인부가 목숨을 잃게 되었다는 점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잊히고 말았다. 당시 최대의 난공사 대상지의 하나가 ‘대전육교(대전 대덕구 비래동)’다. 대전 육교는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시도된 아치형 육교였다. 상판 길이는200m에 폭은 약 11m이고, 이를 높이 30m의 거대한 아치 교각 세 개가 연속으로 떠받치고 있다. 1999년 9월 이 구간의 도로를 직선화하고 확장하면서 현재는 폐쇄된 상태로 방치되어 있다. 육교 아래의 공간 또한 방치된 채 주차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Fill/Feel the Memory
우리 선조들의 삶을 담고 있는 근대문화유산인 한강, 특히 지금은 사라진 한강의 백사장은 다채로운 경관과 다양한 놀이 공간을 제공하는 생활 문화의 기반이었다. 그러나 1960년대 말부터 진행된 호안 직강화사업을 거치면서 콘크리트로 뒤덮이고 말았다. ‘Fill/Feel the Memory’는 우리 선조들의 고유한 문화를 되살려 지금 세대뿐만 아니라 나아가 우리의 후손을 위해 한강의 근대 문화를 되찾아주고자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수리 수문학적 분석 물놀이가 가능한 수준으로 한강의 수질을 개선하기 위해 우선, 자연성 회복, 유역 관리, 오염원 차단 등을 통한 수질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비점오염원(지류합류부)의 관리가 중요하다. 나아가 한강의 자정 능력이 회복되어 이를 뒷받침해주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 수변 식생이 발달한 자연 하안의 복원, 모래톱 유도를 통한 오염원 여과, 하상 오염 물질 제거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
알뜨르 이야기
제주도는 지난 2005년 ‘세계 평화의 섬’으로 선포되었다. 더 이상 한반도와는 전혀 다른 풍광만으로 눈길을 끄는 섬이 아니다. 제주도가 ‘세계 평화의 섬’이 된 것은 제주도를 국가 자유 도시로 발돋움시키겠다는 국가적 비전과 더불어 1991년 한·소 정상 회담을 치른 이후 세계 각국 정상의 방문이 이어지면서 국제적으로 부각된 데 힘입은 바가 크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곳에서 ‘세계 평화’를 말할 수 있는 것은 제주도가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평화와 관련된 역사와 전통을 깊이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주도에는 태평양전쟁을 비롯하여 국제적 분쟁이 일어날 때마다 일찍이 그 지정학적 중요성을 알아본 세계 열강의 힘겨루기 속에 수난의 상처를 입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나라 국민의 상당수에게 ‘세계 평화의 섬’이란 이름은 익숙하지 않다. 산방산과 송악산이 선사하는 풍광에 수없이 감탄하면서도, 일본군의 손에 일그러졌던 이 땅과 이 땅에 살았던 제주도 민의 삶을 알지 못하며, 제주도에서 내로라하는 큰 들판인 알뜨르 비행장과 일본군 전쟁 유적지도 주목하지 못하고 있다.
외양포 로드뷰
1904년, 일본은 러일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대륙 전초 기지를 외양포 마을에 구축했다. 러일전쟁이 끝나고 일본군이 철수한 마을에는 군 막사, 관사, 탄약고 포진지와 같은 군사 시설이 가득했다. 국방부가 소유하고 있어 개발이 어려운 외양포 마을은 100년 전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2010년 거가대교가 개통되고 급격히 늘어난 관광객이 포대 진지, 막사, 관사 등을 보러 외양포 마을을 찾고 있으나, 관광객을 수용할 만한 시설을 추가로 구축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주민들은 스스로 지역 해설가를 자처하며 외양포의 역사와 옛날이야기를 들려준다. 다만, 개발의 바람이 마을에 불어 닥쳐 그들의 역사와 삶의 현장이 사라질까 두려울 뿐이다. 우리는 기존 마을을 뜯어내고 고치지 않고 각 유산들을 주인공으로써 부각시키고 보존함으로써 주민들의 삶이 유지되고, 비로소 더 이상 버려진 마을이 아닌, 100년의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역사의 장을 만들고자 한다. 마을 사람들이 주체가 되고 외양포 마을 자체가 주인공이 되어 사람을 반기고 그들과 소통할 것이다.
남영동 2027
대상지는 한강대로나 서울역, 남영역, 숙대입구역으로 이어지는 철도와 같은 도시 기반시설, 그리고 용산공원 부지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 자연스럽게 용산공원 부지의 역사에 따라 그 형태와 성격에 변화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 일제강점기 시대에는 용산 공설 시장(현남영 아케이드), 총독부 직원 숙소, 일식 주택 등이 건설되었다. 해방 이후 용산공원 부지에 미군 기지가 들어서자 각종 스테이크 하우스 등의 관련 부대시설이 유입되기 시작했고 지금도 그 당시 모습의 많은 부분이 유지되고 있다. 현재 남영동을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크기와 형태의 필지는 일제강점기에 진행된 격자형 가로 정비 사업에 의한 것이다. 대로변에 자리한 건물은 대부분 연면적이 큰 상업 및 업무 시설이며 공원에 인접한 건물은 주로 주거와 숙박시설로 이용되고 있다. 시대에 따라 변화가 많았던 대로변에 비해 대상지 내부에는 과거의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흔적이 상대적으로 많이 남아있다. 특히 목조 구조물인 남영 아케이드는 건축적으로 매우 독특한 형태를 가지고 있어 그 보존 가치가 매우 높다. 남영동의 이러한 역사적·지리적 맥락은 용산공원 조성과 향후 이용 방식을 결정하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슬프고도 아름다운 섬
소록도는 섬 전체가 병원으로 지정되어 있는 곳이다. 그리고 그 내부에 한센병 환자를 위한 국립소록도병원이 있다는 점도 일반적으로 볼 수 없는 점이다. 그러나 이러한 특수성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부정적인 인식으로 이어져 외부와의 소통을 단절시키는 요인으로 지적되어 왔다. 더욱이 한센인 감소로 병원 운영에 필요한 직원이 감축됨에 따라 빈집이 증가하게 되었고, 특별한 조치 없이 방치된 건물들은 점차 지역 흉물이 되어가고 있다. 또한 2009년 소록대교가 개통된 이후 증가하고 있는 관광객에 대한 관광 프로그램도 부족한 상황이기에 대처가 필요한 상황이다. 이렇게 아픈 사람들의 쉼터와 버려진 공간이라는 긍정적이지 못한 기억을 가진 소록도이지만, 이곳에도 수려한 자연 경관, 온난한 기후, 소록도와 관련된 문학 작품등, 지역 이미지를 개선하고 활성화시킬 긍정적인 요소도 적지 않다. 더욱이 ‘치유의 섬’이라는 특수한 의료문화유산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한센인을 넘어 일반 시민 모두를 위한 힐링의 공간이 될 가능성이 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현 부평 미군 기지는 일제가 대동아시아 전쟁을 위해 육군 조병창을 건설하고 소총과 탄약, 군수 차량, 잠수함 등의 군수품을 제조했던 곳이다. 당시 이곳에서 일하면 강제 징용을 피할 수 있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피난처로 삼기도 했다. 부평 지역 주민은 물론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사람들이 조병창 주변에 새로운 마을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6·25 전쟁 이후 조병창이 있던 곳에 미군 부대가 주둔하게 되었고, 군 본부, 군수품 공장, 군수 물자 보관창고, 소각장, 빵 공장 등이 추가로 들어서게 되었다. 특히 신촌이라 불리던 기지촌은 부평 경제의 핵심이자 미군이 필요한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는 영업소가 즐비했다. 오늘날에 이르러 이 지역은 부평에 남은 유일한 구도심이지만 과거와 같은 경제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지는 못하다. 또한 군 기지 주변 도시인 까닭에 안전과 오염에 대한 여러 문제가 제기되면서 시민 단체의 반환 요구와 비판을 받아 왔다. 2016년 반환 예정인 인천 부평 미군 기지를 공원화함으로써 대상지가 가진 역사와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오늘날 부평에서 살아가는 지역 주민들뿐만 아니라 동시대를 살아가는 타 지역 시민들이 근현대사의 아픔을 공유하고 지역 역사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도록 유도한다. 나아가 주변 산 및 공원과의 연계가 가능하고 주민의 생활과 직결되는 공간을 제공한다. 현재 부족한 화합과 연계, 소통 등을 해소하기 위해 ‘묶다’, ‘무리를 이루다’, ‘띠를 이루다’를 의미하는 ‘밴드band’를 설계 모티브로 내세웠다.
피어나다
근대문화유산, 도심 속에서 다시 피어나다 600년 역사의 지층을 품고 있는 서울의 도심은 근대화와 현대화의 중심지로서 수많은 격변의 시기를 견뎌냈다. 그럼에도 서울의 역사와 문화유산은 무분별한 철거와 재개발 그리고 전쟁으로 사라지고 있다. 이러한 근대문화유산의 보전과 도심 재개발이라는 서로 다른과 제를 동시에 안고 있는 곳 중의 하나가 중구 정동이다. 정동은 서구 열강의 공사관이 밀집해 있던 곳으로, 조선 후기인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조선에 대한 보다 많은 영향력을 갖기 위해 벌어진 여러 역사적 사건의 현장이기도 하다. 이 격동의 구한말을 통과한 역사적 장소 한편에 구 러시아 공사관이 있다. 처음 러시아 공사관이 지어질 때, 이곳은 정동 어디서든지 쉽게 알아보고 찾을 수 있었다. 도심 개발로 고층 빌딩이 들어선 후 이제는 가까이 가지 않고는 그 존재를 인지하기도 어렵다. 6·25 전쟁과 무분별한 개발을 겪으며 예전의 모습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훼손되기 전의 건물의 모습이 배치도로만 간단하게 설명되어 있을 뿐, 이곳이 구한말 아관파천(1896)이 발생한 역사적 공간임을 인지시키는 정보도 거의 없는 상황이다.
100년 전 매산등으로 마실가기
매산등은 1894년 처음 해외 선교사들의 방문을 시작으로 1930년대까지 다양한 주택·의료 시설, 종교 시설, 교육 시설이 유입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 당시 건물의 상당수가 소실되었고, 현존하는 건물은 순천 최초의 도시 기반 시설이라는 점이 높게 평가되어등록문화재, 전라남도 문화재 자료 등으로 등록되었다. 프레스톤 선교사 가옥, 조지왓츠 기념관, 매산관, 코잇선교사 가옥 등 총 여섯 점의 건축물이 등록되어 있다. 매산등은 초기 근대문화유산이 많이 사라졌음에도 순천 최초의 계획 도시였던 만큼 남아 있는 시설을 기반으로 예전의 도시 기능(의료, 종교, 교육)을 유지해왔으나, 현재 매산등은 근대화와 산업화로 인한 변화의 몸살을 겪고 있다. 무분별하게 자동차 도로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보차분리 없는 도로가 늘어나 보행자 안전을 보장할 수 없게 되었으며, 이는 마을 안 골목길까지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늘어난 차도와 차량 통행 량만큼 주차장이나 쓰레기장 같은 편의 시설이 충분히 보급되지 못해 주차 공간 부족, 골목길 범죄, 쓰레기투기, 녹지 공간 부족 등의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대상지 내 근대문화유산은 기독교의 선교 문화를 담고있다. 이는 우리나라 선교 문화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중요하지만, 지역 근대문화유산에 대한 인식은 그리 높지 못하다. 이러한 문화재에 대한 인식 부재는 도시 개발에 따라 지역 근대문화유산의 훼손, 나아가 소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어지럽혀진 동선체계를 재구축하여 골목길 문제, 울타리, 벽화, 주변 공터의 쓰레기 문제 해결을 비롯하여 지역 근대문화유산에 대한 인지도를 높일 수 있는 해결책이 필요하다. 또한 현존하는 근대문화유산을 널리 알릴 수 있는 대책이 요구된다.
주인 없는 대지 알뜨르
제주도는 1900년대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의 군사적 요충지였던 만큼 지금도 일본군과 관련된 다수의 전쟁 유적이 남아 있다. 특히,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와 하모리 일대에 그 흔적이 많이 몰려 있으며, 그 중심에 제주도의 마지막 전적 비행장인 알뜨르비행장이 있다. 패전 위기의 일본이 미군의 본토 공격을 막기 위한 전초기지로 이곳의 마을과 밭을 없애고 건설한 것으로, 대부분이 제주도민의 노동력을 착취하여 완성되었다. 활주로와 격납고 같은 알뜨르 비행장시설의 대부분이 여전히 원형에 가까운 모습으로 남아있는 것은, 국방부가 종전 후에 해당 지역을 군사 보호구역으로 지정했기 때문이다. 세 가지 주체 알뜨르 비행장 일대는 국방부의 소유다. 즉, 국방부의 허가 없이는 그 어떤 건축 행위나 토지를 사용하는 행위가 이루어질 수 없다. 알뜨르 활주로는 지금도 훈련용으로 쓰이고 있으나, 여론상 대상지 전체를 군사기지화 하는 것도 어려운 실정이다. ‘토지 원 소유주’라할 수 있는 지역 주민에게 알뜨르는 농사를 짓기 위한 땅, 즉 생계 유지 수단이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유개엄체호(격납고)는 농기구를 보관할 수 있는 여분의 창고 공간이 되기는 하나, 여전히 밭을 일구는 데에는 걸림돌인 것도 사실이다. 한편, 중간자적인 입장에 있는 서귀포시는 제주특별자치도와 함께 이 부지를 일종의 ‘평화 공원’으로 만들고자 시도한 바 있다. 일본 전적지를 중심으로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을 추진하여 알뜨르 일대를 관광 명소로 만든다는 목표로 진행한 것이다.
PARK GREAVES
우리나라의 근대는 전쟁의 역사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여전히 진행 중인 전쟁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그 누구도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땅이 바로 군사분계선 너머의 비무장지대DMZ(de-militarized zone)다. 대상지는 비무장지대 일대의 기나긴 침묵과 끊임없는 긴장의 숲속에 자리한 옛 미군 기지 ‘캠프 그리브스Camp Greaves’다. 이곳은 6·25전쟁 정전 협정이 맺어지고 사흘이 지난 1953년 7월 30일부터 1997년까지 미2사단 506보병대대가 주둔해 온 군사 기지다. 체류형 안보 교육장을 제공하겠다는 의도로 2013년 안보체험시설 지원 협약이 체결되었지만 단 한 동의 건물만 사용되고 있으며―현재 경기도와 파주시가 체류형 안보 체험 시설로 운영하고 있다―, 교육 프로그램은 기존의 주변 관광 자원만을 활용하는 등 매우 제한적이다. 또한 DMZ 일대의 뛰어난 생태 환경과 임진강으로 대표되는 훌륭한 경관, 남·북 대화 및 군사 정전 회담이 열리는 곳인 판문점에 인접해 있다는 점 등의 장소적 잠재 요소도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징게맹갱외에밋들
현대인들은 음식의 중요성만큼 농업이 갖는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농업은 경제발전과 산업화, 나아가 국제적 농업 교류로 위기에 처해 있다. 인구의 약 67%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는 김제시 죽산면도 이와 같은 위기를 겪고 있다. 우리 농업을 살리기 위해선 농업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알리고, 그 근대문화유산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특정 시대의 이야기는 반드시 그 근대문화유산의 물리적 형태나 공간적 개념을 통해 전달될 필요는 없다. 해당 시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나 노래를 통해 생활상을 간접적으로 체험하도록 하고, 이를 통해 역사 의식의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한반도에서 유일하게 지평선이 보이는 징게맹갱외에밋들(김제 평야)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민족의 수난과 투쟁을 대변하는 소설 『아리랑』의 중심이었다. 현재 김제시 죽산면에서는 이러한 지역 근대문화유산을 활용한 관광 상품을 제공하고 있지만, 단발성 문학 기행은 큰 수익과 지역 홍보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솜씨 창고, 틈에서 피어나다
용산의 서쪽에 자리한 삼각지에는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낡은 목조 건축물인 용산 창고와 일본식 가옥뿐만 아니라, 이러한 근대의 시대상을 그려온 이른바 ‘솜씨인간’들의 화랑 거리와 같은 다양한 근대문화유산이 남아 있다. 용산 미군 기지의 이전이 확정되고 그 부지에 공원을 조성하려는 계획으로 인해 주변의 땅값은 지속적으로 오르고 있다. 지역 주민들은 창고 부지 일대의 노후 시설에 대해 개발과 개선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며, 이 용산 창고 부지 일대의 철거를 포함하는 도시 정비 사업이 예정되어 있기도 하다. 여러 요인에 따라 임대료는 계속 상승하게 되었고 화랑 거리의 화가들은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곳을 찾아 떠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근대와 ‘틈’ 해방 이후 지역 사회가 점차 안정되고 도시가 발전함에 따라 대로변에 접해 있는 도시의 겉살은 높은 건물의 파사드나 간판으로 뒤덮여 도시의 속살 풍경을 가리고 있다. 그럼에도 골목길이나 빌딩 속에 가려진 소형 건물 등 도시의 내부를 엿볼 수 있는 ‘틈’이 다양한 형태와 규모로 생겨났다. 또 도시의 겉과 속이 분리됨으로 인해 화방 문화가 거리 내부로 고립되고 화방끼리도 소통의 어려움을 겪는 폐쇄적인 형태를 갖게 되었다. 이러한 화랑 거리의 쇠퇴는 내부인과 외부인의 소통의 어려움(주민과 외부인 사이의 틈)으로 이어졌다. 우리는 방치된 용산 창고와 점점 사라져 가고 있는 화랑 거리의 문화로 대표되는 지역 근대문화유산이 도시 곳곳의 ‘틈’을 통해 스며들어 상생하고 퍼져 나갈 수 있는 공공 공간을 조성하고자 한다.
제12회 대한민국 환경조경대전 공모 경과 및 심사평
지난 4월 3일 ‘근대문화유산의 공간에 대한 조경적 접근’이라는 주제 공개를 시작으로 닻을 올린 ‘제12회 대한민국 환경조경대전’의 최종 결과가 10월 15일 발표되었다. 작년과 마찬가지로 ‘작은 규모의 대상지, 큰 생각’ 부문(이하 ‘작은 규모’)과 ‘대규모 대상지, 미시적 접근’부문(이하 ‘대규모’)으로 나누어 접수를 받았으며, ‘작은 규모’에 42팀이, ‘대규모’에 21팀이 작품을 제출해 총 63작품이 출품되었다. 입선 이상의 수상작으로는 총 28개 작품이 선정되었는데, 심사위원회는 작품의 완성도를 바탕으로 각 부문의 수상작 수에 차이를 두어 ‘작은규모’에서 7작품이, ‘대규모’에서 11작품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예년에 비해 부문별 작품 출품 수에 편차가 큰 이유로는 대상지인 ‘근대문화유산’이 종교, 교육, 주거, 관청, 항만, 공장, 창고 시설 등 건축물과 관련된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우세했다. 수상작에 대한 시상식은 11월 23일 푸르지오 밸리 씨어터에서, 전시회는 11월 23일부터 27일까지 푸르지오 밸리 갤러리에서 개최되었다. 본지는 공모전 주제와 심사평을 수록한다. 주제: 근대문화유산의 공간에 대한 조경적 접근 경관은 공간, 시간, 전통의 형태로 나타나는 현상으로 우리의 유산heritage과 사회문화적 변화의 기반이 된다. 우리나라 곳곳에는 개화기를 기점으로 한국전쟁 전후까지 만들어진, 소위 ‘근대문화유산’이라고 불리는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이들은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았더라도 각종 시설로, 또는 공간의 모습으로 각 시대의 역사를 담아내는 기념비적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문화유산들은 종교, 교육, 주거, 관청, 항만, 공장, 창고, 수운, 철도·운송, 발전소, 농업, 광업 시설 등 다양한 형태로 당시의 삶을 보여주고 있으며, 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 시공간적 환경과 개개인의 기억과 경험에 따라 서로 다른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전쟁 이후 급격한 근대화와 산업화, 나아가 민주화 과정까지 격동의 시대를 지나면서, 어떤 문화유산은 그 시대적 의미를 잃어버리거나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히고 있고, 또 어떤 것들은 기념하는 과정에서 본질이 왜곡되어 해당 시대상에 대한 잘못된 역사인식을 일으키고 있기도 하다. 더욱이 여태까지 진행된 근대문화유산의 보존이나 재생과 관련된 프로젝트를 살펴보면, 주로 건축이나 건물에 대한 처방이 이루어져 왔으며 이러한 건축적 요소와 외부 공간의 관계에 대해서는 소홀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제 우리는 문화유산에 대한 조경(가)의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서로 다른 모습의 문화유산적 공간이 ‘경관적’으로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전해 주고 있는지, 또 그 의미를 긍정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조경의 역할은 무엇이고 조경가로서 우리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기다린다. 심사 총평 올해로 열두 번째를 맞이하는 ‘대한민국 환경조경대전’은 2013년(10회)부터 규모와 생각의 크기를 달리한 두 개의 부문으로 나누어 진행되었습니다. 올해도 ‘근대문화유산의 공간에 대한 조경적 접근’이라는 하나의 주제를 ‘작은 규모의 대상지, 큰 생각’ 부문과 ‘대규모대상지, 미시적 접근’의 두 개 부문으로 나누어 공모전을 진행했습니다.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의 대상지’를 다룬 부문에 작품이 쏠린 점이 우려되었지만, 대규모대상지를 다룬 작품들도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어 열띤 공방을 벌이는 등 우열을 가리기가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수상작 선정을 위해 구성된 열 명의 심사위원들은 심사에 앞서 근대문화유산의 정의와 방향에 대한 신중한 논의를 거쳤고, 63개 응모작 하나하나에 대한 충분한 토론과 심사위원단의 합의 과정을 거쳐 국토교통부장관상 두 작품을 비롯해 총 28작품의 입상작을 선정했습니다. 심사는 ‘장소성의 가치와 선택한 대상지의 장소적 기억을 조경적인 측면에서 어떻게 풀었는가’에 주안점을 두어 이루어졌습니다. 심사위원단은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은 와중에도 아쉽게 입상작에 오르지 못한 작품들을 놓고 추가적인 토론의 기회를 가졌으며, 입상작에 대한 최종 합의가 두세 번씩 미루어져야 했던 만큼 쉽지 않은 심사 과정이었습니다. 저 역시 한국 근대문화유산의 태생적 모순을 알고 있기에 다른 심사위원의 고민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근대문화유산의 속성은 제출된 작품들 속에서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일제강점기, 전쟁과 미군 부대, 피곤했던 삶의 흔적 등등 풍토적인 기반보다, 국가적인 아픔을 갖고 있어 빨리 허물어 버리고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속성을 더 많이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 이유에서 방치되었던 장소(역사)들이 근대문화유산적 가치를 지녔느냐를 판단하기에 앞서, 그들이 학생들의 작품 속에서 아픔을 걷어내고 다양성을 지닌 문화 공간과미래의 희소 자원으로 발견되고 나아가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할 수 있었던 것에 의미를 두고자 합니다.응모작을 보면 그런 점을 의식했는지 과정상의 논리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지만, 대부분 결론 부분에서 감성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에 치중하여 명쾌한 끝맺음을 전달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국토교통부장관상을 받은 ‘솜씨 창고, 틈에서 피어나다’는 완성도 높은 디자인을 제시했다는 공통된 평가를 받았습니다. 난개발이 예정되어 있는 공터에 2층 데크를 도입하여 이를 중심으로 미군을 대상으로 조성된 화랑 골목, 일제강점기의 낡은 창고, 박스형 오피스건물, 오래된 아파트 건물 등 모양과 성격이 제각각인 요소들을 통합하려 한 방식에 좋은 평가가 내려졌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빈틈을 찾아내고 엮어낸 만큼 제안된 프로그램은 구체적이지 못했다는 면에서 아쉬움을 샀습니다.
제12회 대한민국 환경조경대전
Small Scale, Big Idea or Big Issue 작은 규모의 대상지, 큰 생각 부문 국토교통부장관상 솜씨 창고, 틈에서 피어나다 송아라·홍진아 가천대학교 조경학과 한국조경학회장상 PARK GREAVES 최희준·고소미·김산하·안정록·이건희 고려대학교 환경생태공학부 환경디자인융합전공 늘푸른재단상 100년 전 매산등으로 마실가기 주안나·김아연 순천대학교 조경학과 늘푸른재단상 피어나다 김영경·임다영 경희대학교 환경조경디자인학과 환경과조경상 남영동 2027 윤병두 청주대학교 환경조경학과│김명조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전통조경학과│ 유지민 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환경과조경상 외양포 로드뷰 조보경·김다혜 경희대학교 환경조경디자인학과 환경과조경상 Modern Road Covered Heritage 이재현·장재봉·신영재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Big Scale, Micro View or Micro Analysis 대규모 대상지, 미시적 접근 부문 국토교통부장관상 징게맹갱외에밋들 이수현·박래림·김의솔 순천대학교 조경학과 한국조경학회장상 주인 없는 대지 알뜨르 이진선·조현진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늘푸른재단상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황효선·이호민 영남대학교 조경학과 늘푸른재단상 슬프고도 아름다운 섬 이지현·정기쁨·박태순 순천대학교 조경학과 환경과조경상 Viewtiful Promenade 최승호·서지연 경희대학교 환경조경디자인학과 환경과조경상 알뜨르 이야기 신단비·오다인·김나영 경희대학교 환경조경디자인학과 환경과조경상 Fill/Feel the Memory 정준식·최보윤·안지환 경희대학교 환경조경디자인학과
[칼럼] 가치의 혁신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유엔과 회원국, 그리고 전 세계인들의 미래에 대한 값지고 귀중한 통찰!”이라고 극찬한 베스트셀러 『유엔미래보고서 2045』에 따르면, 조경사는 의사, 약사와 함께 로봇으로 인해 멀지 않은 미래에 소멸될 직업이다. 무인 자동차의 등장으로 운전기사와 집배원이 사라지고, 드론의 활약으로 택배기사와 음식 배달원도 지구상에서 사라진다. 또 3D 프린터의 등장은 목수와 건축노동자의 일자리를 빼앗고,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언론 기자와 세무사, 회계사, 변호사, 교사 등의 직업도 사라지게 된다고 한다. 평균 수명 130세 시대, 죽음에 대한 공포가 줄고 인간은 종교로부터 멀어진다. 얼굴도 인간과 똑같고 지능도 인간보다 뛰어난 로봇과 휴머노이드가 등장해 인류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어주는 대신 인간은 일자리의 거의 대부분을 빼앗긴다. 기후 변화는 인류 생존의 문제가 걸려 있는 중요한 문제로, 인류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화석 연료를 대신할 새로운 에너지를 찾는 개인과 기업이 미래의 헤게모니를 쥐게 될 것이라고 이 보고서는 예측하고 있다. 한치 앞을 보지 못하고 하루하루 살아남기에 급급한 조경 분야의 미래는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사라지지 않고 미래의 유망 직업으로 살아남기 위해 조경인들은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무엇보다도 ‘가치의 혁신’이 필요하다. 지난 건설 호황기 시절의 아날로그적인 조경의 방식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 환경에 대한 사회적 기대가 점점 높아질 것이고 건축, 임업, 원예 등과의 경쟁이 더 치열해질 것이므로 소위 ‘노가다’ 시공이나 ‘도면 공장’ 같은 설계 방식으로는 더 이상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기 힘들다. 제조업과 같은 전통 산업도 지식 기반을 고도화하지 않을 경우 날로 치열해져가는 글로벌 경쟁에서 도태되고 있는 실정이다. 디지털 카메라의 등장으로 코닥이 한순간에 사라졌고, 애플의 아이폰으로 최강 노키아가 무너졌다. 반대로 일본의 유니클로가 방한복은 두꺼워야 한다는 상식을 파괴하고 얇고 다양한 색상의 ‘후리스fleece’를 개발해 최고의 패션 기업이 된 것은 가치 혁신의 성공 사례다. 매킨토시 같은 고가 사양의 컴퓨터에만 집중하던 애플이 스티브 잡스의 복귀 이후 과거의 아집을 버리고 고객층을 폭 넓게 끌어들일 수 있는 아이팟 같은 대중적 상품을 만들고 기술 집착증에서 벗어나 CDO(최고디자인책임자)라는 직책까지 두며 개방적 협력을 통해 성공한 사례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조경 분야도 노동 집약적 성격이 강했던 과거의 산업적 구태를 벗고 글로벌 경쟁자들이 모방하기 어려운 차별적인 디자인, 기술력, 경영 시스템을 만들어 가야 한다. ‘가치의 혁신’을 위해서는 조경을 넘어 다른 분야와 협력하는 상호 보완적 관계를 구축하는 일이 중요하다. 현대 사회는 엘빈 토플러가 주창한 제3의 물결(과학 기술 및 정보화 시대)을 넘어 제4의 물결, 즉 융합의 시대를 향하고 있다. 지금의 세계는 모든 사람이 활발하게 소통하고 각국의 경제 체제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하나의 글로벌 커뮤니티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전 세계를 강타한 글로벌 금융 위기의 여파에서 알 수 있듯이, 지구촌 한편에서 일렁이는작은 물결이 반대편에서는 거대한 해일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모든 전문 분야는 새로운 영역에서 보다 혁신적인 방식으로 경쟁할 것을 요구받고 있다. ASLA(미국조경가협회)는 “조경은 협업이 강조되는 분야”라고 전망한다. 조경은 건축, 도시설계, 엔지니어링은 물론 시각 디자인이나 의상 디자인과도 협력하고 있고 그 중심에 프라임 컨설턴트prime consultant로서 조경가가 있다는 것이다. 세계적인 조경가 제임스 코너James Corner를 중심으로 건축가와 엔지니어가 공동으로 작업했던 뉴욕의 하이라인 프로젝트가 좋은 사례다. 타 분야와의 컨버전스를 통해 영역을 확장하고 상호 협력하고 상생하는 전략적 제휴가 필요한 시점이다. 올 한 해 동안 우리 조경계는 건축과 임업 등 다른 분야의 도전으로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서울역고가를 공원화하는 ‘서울역 고가 기본계획 국제지명 현상설계’나 철거된 옛 국세청 별관 지상·지하 공간을 공공 공간으로 전환하는 ‘세종대로 역사문화공간 설계공모’ 등은 조경가가 앞장서야 할 프로젝트였음에도 건축가들만의 화려한 잔치로 끝났다. 조경계와 긴밀한 협력 체계를 구축하겠다는 산림청의 약속을 믿고 ‘수목원ㆍ정원의 조성 및 진흥에 관한 법률’ 제정에 동의했던 조경계는 건설기술자 조경 직무에 산림과 원예 관련 자격이 포함된 ‘건설기술자 등급 인정 및 교육·훈련 등에 관한 기준’이 이미 지난 6월 30일부터 시행되고 있다는 황당한 소식 앞에 일종의 배신감을 느끼기도 했다. 이제 지키기에만 매달리는 수성 전략을 버리고 오히려 다른 분야와 협력하여 상생을 모색하는 전략으로 돌파구를 찾아야 할 때다. 산림청이나 환경부와의 오래된 갈등을 풀고 산림청 일이든 환경부 일이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면 무엇이든 해야 한다. 서로 얼굴을 맞대고 상생의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다변화와 불확실성의 시대에 우리 조경계의 미래를 보장하는 길은 내부 구성원의 협력과 단합에 있다. 현재의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강한 결속력과 통합된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이런 긴급한 외부 환경의 변화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통일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환경조경발전재단의 공동이사장제 논란으로부터 비롯된 관련 학회와 단체의 갈등은 조경계에 불어 닥치고 있는 연이은 업역 침해에 선제적 대응을 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당장 눈앞에 벌어진 일을 해결하는 것도 벅찬 상황이다 보니 미래에 대한 준비는 기대하기조차 힘들다.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조경의 미래를 위해 권위와 자존심을 내려놓고 머리를 맞대야 한다. 필요하다면 조경 분야를 대표하는 통합된 조직을 새로 만들거나 정비할 필요도 있다. 이제라도 컨트롤 타워를 만들어 한국 조경의 미래를 위한 체계적인 전략을 세우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조경이 해야 할 일은 너무나 많다. 정원을 산림청이 가져갔다고, 조경 설계공모를 건축에 빼앗겼다고 더 이상 원망만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ASLA는 조경가의 역할을 다음과 같이 선언하고 있다. “조경가는 지역 사회와 소통하여 건강한 도시를 만들 수 있으며, 각종 질병과 범죄로부터 안전한 도시, 지속 가능하고 보다 경제적인 도시를 만들 수 있다. 보다 건강하고 경제적이며 경쟁력 있는 도시 조성의 중심에 조경가가 있다는 점이야 말로 조경가가 존재하는 이유다.”
[에디토리얼] 마감
마감을 며칠 앞둔 편집실, 출품 전야의 설계실 못지않은 전쟁터 풍경이다. 지면 배열의 수정, 서너 차례 반복되는 원고 교정과 교열, 편집 디자인 수정과 보완이 복합적으로 돌아가는 와중에 내부 원고도 뒤늦게 생산된다. 이어지는 야근과 철야는 문제도 아니다. 가장 심각한 위기는 최종 데드라인까지 외부 필자의 원고가 도착하지 않을 때다. 더 이상 넘어설 수 없는 한계선에 임박해 필자들의 원고를 챙기다 보면 편집자들의 “혼이 비정상”이 되곤한다. 고백하자면 아마추어 편집주간도 혼돈의 마감 풍경에 한몫 톡톡히 한다. 매달 거의 제일 마지막으로 디자이너에게 넘어가는 원고가 A4 두 장이 채못 되는 이 에디토리얼 원고다. 편집된 잡지 전반을 다 검토하고 뭔가 아우르며(?) 쓰겠다는 심산이지만, 잡지 첫 쪽에 등장하는 데 대한 부담감, 글감의 고갈에 따른 막막함, 고질적인 게으름, 이 셋이 절묘한 비율로 혼합된 결과라고 말하는 게 더 솔직할 것 같다. 한해를 마감하는 12월호이니 이번 달만큼은 제 시간에 끝내는 모범을 보이겠다고 작심했다. 그러나 순백색 모니터를 마주하니 갑자기 연말의 멜랑콜리가 몰려오고 창밖에는 열흘째 가을비가 내리고 서울광장의 물대포에, 파리와 레바논의 테러에, 케냐의 학살까지, 핑계거리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아무래도 이번 달도 문을 닫는 원고가될 것 같다. 필자 입장에서도 마감 시한의 압박감은 피를 토하고 뼈를 깎는 고통 그 이상이다. 영어로는 데드라인, 참 무시무시한 단어다. 글쓰기의 스타일이 모두 다르듯 “마감에 임하는 필자들의 태도”도 천차만별이다. 자칭 “야매 출판인” 김홍민이 출판계의 속사정을 다룬 책 『재미가 없으면 의미도 없다』(어크로스, 2015)를 보면, 여러 필자들의 다양한 마감 타입이 소개되어 있다. 첫째 유형은 ‘모범생형’. 마감을 칼같이 지키는 필자, 모든 편집자의 로망이다. 심지어 마감일 하루나 이틀 전에 원고를 보내와 감동을 선사해 준다. 『환경과조경』의 연재 필자 중에도이런 분들이 몇 명 있다. 심지어 일주일 전에 주는 분도 있다. 둘째는 마감을 지키지않았지만 도리어화를 내며 담당 편집자를 당황하게 하는 ‘적반하장형’. 유명 필자와 초보 편집자 사이에서 이런 상황이 심심찮게 벌어진다. 물론 『환경과조경』 필자 중엔 이런 분이 없다. 아주 드문 일이지만, 갑자기 연락을 끊어버리는 ‘잠수형’ 필자가 등장하는 경우는 있다. 세 번째 유형은 ‘천리안형’이다. 편집자는 원고를 청탁할 때 일종의 안전장치를 마련한다는 생각으로 마감일을 당기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이런 안전핀도 잡지사의 생리를 잘 아는 베테랑 필자들에게는 소용없다. 그들은 언제가 진짜 마감일인지 뻔히 알고 있다. 『환경과조경』에도 이런 유형의 노련한 필자들이 여럿 계시다. 그들과의 줄다리기는 즐거운 게임이다. 또 다른 유형으로는 ‘읍소형’이 있다. 별다른 이야기가 없다가 마감이 한참지나 독촉 문자, 메일, 전화를 하면 그제야 아직 못쓴 사연을 구구절절 설명하는 타입이다. 그들에게는 지속적인 관심과 애정이 필요하다고 한다. 『환경과조경』 편집자들을 붙잡고 또 어떤 마감 스타일이 있는지 취재해 보니, ‘연쇄살인형’도 있다고 한다. 며칠 사이에 연달아 가족이 아프고 친구가 사고를 당하고 스승이 돌아가시는 유형. 거의다 썼다, 이제 곧 끝난다고 계속 연락이 오지만 결국엔 맨 꼴찌로 마감하는 ‘철가방형’도 있다. 언제 쓴다고 했냐고 되묻는 ‘기억상실형’, 몸이 너무 안좋다고 하소연하는 ‘동정유발형’, 이제 절필한다는 ‘은퇴형’도 있다. 밤을 새워 다 썼는데 컴퓨터 바이러스에 날아갔다는 ‘목수 연장 탓하기형’도 드물지 않다. 17년 경력의 베테랑 남기준 편집장에 따르면, 마감에 얽힌 인생 최고의 추억은 인쇄소로 넘기기 직전 절체절명의 심야에 캔맥주 식스팩을 들고 편집실에 쳐들어와 편집자와 함께 밤을 새우며 원고를 쓴 어느 필자라고 한다. 듣다보니, 아뿔싸,몇 년 전 나의 행각이다. 도대체 무슨 형이라고 이름 붙여야 할까. 마감에 속이 타고 피가 마르는 강도는 편집자보다 필자의 경우가 더 셀 것이다. 2015년 과월호 열한 권을 다시 펼쳐보니 여러 필자들의 분투가 새삼 피부에 와 닿는다. 그 노고에 감사의 인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연재 필자들의 노력과 인내에 깊이 감사드린다. 연재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모른다. 그것이 일상을 감옥에 가두는 일임을, 불안과 초조의 늪으로 자신을 내모는 일임을. 이번 호를 마지막으로 잡지 리뉴얼 이후 2년간 연속된 최이규 교수의 ‘조경의 경계를 넘어, 조경 속으로’가 막을 내린다. 사실 이 연재 인터뷰는 2013년에도 조금 다른 이름의 꼭지로 실렸으니 그는 3년간 무려 35명의 해외 디자이너와 매달 이야기를 나눈 강행군을 펼쳐온 것이다. 편집부의 도움 없이 뉴욕에서 홀로 기획과 섭외부터 인터뷰와 기사 작성까지 모두 담당했다. 김세훈 교수의 연재 ‘그들이 꿈꾼 도시, 우리가 사는 도시’도 이번 달에 최종회가 실린다. 다른 어느 원고보다도 두터운 독자층을 가졌던 연재물의 마지막 회를 읽으니 인기 드라마의 종영일처럼 아쉬운 마음이 든다. 그는 마지막 원고와 함께 “지난 1년, 글을 쓰는 고통(?)과 함께 했지만, 차분히 우리 도시를 다시 생각할 수 있었다”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두 분의 수고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며, 두 연재물 모두 단행본으로 새롭게 편집되어 더 많은 독자들과 만날 기회가 있기를 기대한다. 김연금 소장의 연재 ‘그들이 설계하는 법’도 이번 달로 맺는다. 세달 간의 수고에 감사드린다. 좁은 지면 탓에 일일이 표현하지는 못하지만, 지난 1년간 옥고를 보내주신 모든 필자들에게도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지난 몇 년간 한창 유행했던 긍정심리학 류의 책들을 보면, 감사할 일을 떠올리고 늘 감사할 때 우리는 가장 큰 행복감을 느낀다고 한다. 『환경과조경』을 사랑해주시는 여러 독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드리며 한해를 행복하게 마감하겠다는 생각이었는데, 순백색 모니터를 응시하다 보니 그만 마감 에피소드로 흐르고 말았다. 문득 우리 인생에는 감당하기 쉽지 않은 아주 큰 마감이 있음을 깨닫는다. 삶의 마감일을 미리 알고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한없는 압박감에 시달리며 살까, 매일의 일상을 소중히 여기며 한층 열심히 살까. 아마 우리는 그 마감의 시한을 알더라도 “마감에 임하는 필자들의 태도” 못지않게 다양한 방식으로 이 세계를 살아가지 않을까? 이렇게 2015년을 마감한다. 아니 통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