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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꿈꾼 도시, 우리가 사는 도시] 천의 얼굴을 가진 도시 - 적응성을 향하여
Cities of Visionaries, Cities of Reality: Multifaceted City - Toward an Adaptability
  • 김세훈
  • 환경과조경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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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거대한 업무·여가·엔터테인먼트 영역으로 성장하고 있는 싱가포르 마리나 베이 북측의 모델

 

연재를 마무리하며

‘좋은 도시란 무엇인가’라는 다소 포괄적인 질문과 함께 시작한 본 연재가 어느덧 막바지에 이르렀다. 지난 1년은 도시설계와 관련된 여러 주제를 불특정 다수의 독자들에게 이야기하듯 소개할 수 있다는 기대와 설렘으로 충만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서는 앞선 설렘과는 다른 묘한 감정에 사로잡혀 있다. 그래서, 과연 좋은 도시란 무엇이란 말인가? 도시 공간에 대한 요구가 문화마다 다르고 지역적 특수성의 차이도 큰데, 좋은 도시의 공통분모란 것이 과연 존재할까? 끝은 또 다른 시작이라 했던가. 진작 처리했어야 할 과제를 마지막까지 미루고 있다가 최종 연재에 이르러서야 황망하게 생각을 정리하는 게으름을 피우고야 말았다.

기왕 이렇게 된 바에 초조해 하지 말고 도시의 본질적인 문제로 돌아가 보자. 도시의 가장 흥미로운 특질 중 하나는 도시는 항상 다양한 사회경제적 요구와 환경 변화라는 ‘자극’에 노출되어 있으며, 이에 대응하여 제한된 도시 면적안에서 크고 작은 변화가 끊임없이 나타난다는 점이다. 특히 도시를 구성하는 물리적 환경―거시적인 지역 환경과 녹지 분포, 도시 블록과 가로 패턴, 건축물의 유형과 필지의 종류, 도로와 오픈스페이스, 옥상정원과 공용 주차장 등―은 각종 사회적 요구를 반영하며 변화하는데, 그러한 과정 자체가 공간에 차곡차곡 기록되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불완전한 변화의 파편과 흔적으로 공간에 남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도시 공간은 다시 사람들의 삶과 행태, 미시적인 도시 환경과 거시적인 도시 문화에 근본적인 영향을 주게 된다(그림1).


좋은 도시란 무엇인가

이러한 변화 과정에서 비교적 일관된 특성을 공유하는 연속적인 지역이나 장소가 도시 안에 형성된다. 하버드 대학교의 피터 로우Peter Rowe 교수는 이를 “영역territory”이라 부른다. 이를테면 19세기 후반부터 2차 세계대전 이후에 걸쳐 보스턴 도심부 남측에 금융 관련 초고층 업무 시설이 집중적으로 조성되면서 형성된 ‘파이낸셜 지구’나, 1950년대 독일의 기술 원조를 받아서 각종 전자제품과 이후 군수 물자를 생산하던 국영 산업단지이자 최근 중국 최대 예술가들의 놀이터로 탈바꿈한 베이징의 ‘다산쯔 798지구’가 이러한 영역에 해당한다(그림2). 공통의 성격을 갖는 영역뿐만 아니라 차이와 특이성이 두드러지는 크고 작은 도시 공간을 통해서도 변화를 목격할 수 있다. 이를테면 하나의 단일 도심을 기반으로 성장하던 도시 영역이 급격한 인구 증가 때문에 신시가지와 구시가지로 확산되고 단핵 중심의 도시가 다핵 도시로 변형되는 경우가 그 예다. 여기에 다시 새로운 교통 시스템이 도시내 주요 거점을 연결하면서 개발 잠재력이 높은 지역에서는 필지 합병을 통한 대규모 재개발이 진행되는 반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지역에서는 도시 쇠퇴가 나타나기도 한다. 이와 함께 특정 건축 유형에 대한 자발적 고급화와 타율적 잉여가 반복되면서 넓게 확산된 도시 조직은 미시적인 분화를 겪는다. 이러한 공간의 분화와 차이성의 발현은 공통성을 기반으로 한 도시의 각종 영역을 부분적으로 해체하거나 때로는 오랜 시간에 걸쳐 축적된 지역성을 짧은 시간에 붕괴시킬 때도 있다.

 

 

김세훈은 1978년생으로 서울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한 후 하버드GSD에서 도시계획학 석사와 박사 학위(DDes)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도시설계 이론과 스튜디오 수업을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 『신흥도시 개발 모델』, 『도시형태변화분석방법론노트』, 『도시와 물길(A City and Its Stream)』 등이 있으며, 한국, 중국, 동남아시아의 도시 연구와 설계를 함께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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