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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가치의 혁신
Column: Value Innovation
  • 환경과조경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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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유엔과 회원국, 그리고 전 세계인들의 미래에 대한 값지고 귀중한 통찰!”이라고 극찬한 베스트셀러 『유엔미래보고서 2045』에 따르면, 조경사는 의사, 약사와 함께 로봇으로 인해 멀지 않은 미래에 소멸될 직업이다. 무인 자동차의 등장으로 운전기사와 집배원이 사라지고, 드론의 활약으로 택배기사와 음식 배달원도 지구상에서 사라진다. 또 3D 프린터의 등장은 목수와 건축노동자의 일자리를 빼앗고,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언론 기자와 세무사, 회계사, 변호사, 교사 등의 직업도 사라지게 된다고 한다. 평균 수명 130세 시대, 죽음에 대한 공포가 줄고 인간은 종교로부터 멀어진다. 얼굴도 인간과 똑같고 지능도 인간보다 뛰어난 로봇과 휴머노이드가 등장해 인류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어주는 대신 인간은 일자리의 거의 대부분을 빼앗긴다. 기후 변화는 인류 생존의 문제가 걸려 있는 중요한 문제로, 인류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화석 연료를 대신할 새로운 에너지를 찾는 개인과 기업이 미래의 헤게모니를 쥐게 될 것이라고 이 보고서는 예측하고 있다. 한치 앞을 보지 못하고 하루하루 살아남기에 급급한 조경 분야의 미래는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사라지지 않고 미래의 유망 직업으로 살아남기 위해 조경인들은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무엇보다도 ‘가치의 혁신’이 필요하다. 지난 건설 호황기 시절의 아날로그적인 조경의 방식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 환경에 대한 사회적 기대가 점점 높아질 것이고 건축, 임업, 원예 등과의 경쟁이 더 치열해질 것이므로 소위 ‘노가다’ 시공이나 ‘도면 공장’ 같은 설계 방식으로는 더 이상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기 힘들다. 제조업과 같은 전통 산업도 지식 기반을 고도화하지 않을 경우 날로 치열해져가는 글로벌 경쟁에서 도태되고 있는 실정이다. 디지털 카메라의 등장으로 코닥이 한순간에 사라졌고, 애플의 아이폰으로 최강 노키아가 무너졌다. 반대로 일본의 유니클로가 방한복은 두꺼워야 한다는 상식을 파괴하고 얇고 다양한 색상의 ‘후리스fleece’를 개발해 최고의 패션 기업이 된 것은 가치 혁신의 성공 사례다. 매킨토시 같은 고가 사양의 컴퓨터에만 집중하던 애플이 스티브 잡스의 복귀 이후 과거의 아집을 버리고 고객층을 폭 넓게 끌어들일 수 있는 아이팟 같은 대중적 상품을 만들고 기술 집착증에서 벗어나 CDO(최고디자인책임자)라는 직책까지 두며 개방적 협력을 통해 성공한 사례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조경 분야도 노동 집약적 성격이 강했던 과거의 산업적 구태를 벗고 글로벌 경쟁자들이 모방하기 어려운 차별적인 디자인, 기술력, 경영 시스템을 만들어 가야 한다.

‘가치의 혁신’을 위해서는 조경을 넘어 다른 분야와 협력하는 상호 보완적 관계를 구축하는 일이 중요하다. 현대 사회는 엘빈 토플러가 주창한 제3의 물결(과학 기술 및 정보화 시대)을 넘어 제4의 물결, 즉 융합의 시대를 향하고 있다. 지금의 세계는 모든 사람이 활발하게 소통하고 각국의 경제 체제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하나의 글로벌 커뮤니티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전 세계를 강타한 글로벌 금융 위기의 여파에서 알 수 있듯이, 지구촌 한편에서 일렁이는 작은 물결이 반대편에서는 거대한 해일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모든 전문 분야는 새로운 영역에서 보다 혁신적인 방식으로 경쟁할 것을 요구받고 있다. ASLA(미국조경가협회)는 “조경은 협업이 강조되는 분야”라고 전망한다. 조경은 건축, 도시설계, 엔지니어링은 물론 시각 디자인이나 의상 디자인과도 협력하고 있고 그 중심에 프라임 컨설턴트prime consultant로서 조경가가 있다는 것이다. 세계적인 조경가 제임스 코너James Corner를 중심으로 건축가와 엔지니어가 공동으로 작업했던 뉴욕의 하이라인 프로젝트가 좋은 사례다. 타 분야와의 컨버전스를 통해 영역을 확장하고 상호 협력하고 상생하는 전략적 제휴가 필요한 시점이다.

올 한 해 동안 우리 조경계는 건축과 임업 등 다른 분야의 도전으로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서울역고가를 공원화하는 ‘서울역 고가 기본계획 국제지명 현상설계’나 철거된 옛 국세청 별관 지상·지하 공간을 공공 공간으로 전환하는 ‘세종대로 역사문화공간 설계공모’ 등은 조경가가 앞장서야 할 프로젝트였음에도 건축가들만의 화려한 잔치로 끝났다. 조경계와 긴밀한 협력 체계를 구축하겠다는 산림청의 약속을 믿고 ‘수목원ㆍ정원의 조성 및 진흥에 관한 법률’ 제정에 동의했던 조경계는 건설기술자 조경 직무에 산림과 원예 관련 자격이 포함된 ‘건설기술자 등급 인정 및 교육·훈련 등에 관한 기준’이 이미 지난 6월 30일부터 시행되고 있다는 황당한 소식 앞에 일종의 배신감을 느끼기도 했다. 이제 지키기에만 매달리는 수성 전략을 버리고 오히려 다른 분야와 협력하여 상생을 모색하는 전략으로 돌파구를 찾아야 할 때다. 산림청이나 환경부와의 오래된 갈등을 풀고 산림청 일이든 환경부 일이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면 무엇이든 해야 한다. 서로 얼굴을 맞대고 상생의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다변화와 불확실성의 시대에 우리 조경계의 미래를 보장하는 길은 내부 구성원의 협력과 단합에 있다. 현재의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강한 결속력과 통합된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이런 긴급한 외부 환경의 변화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통일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환경조경발전재단의 공동이사장제 논란으로부터 비롯된 관련 학회와 단체의 갈등은 조경계에 불어 닥치고 있는 연이은 업역 침해에 선제적 대응을 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당장 눈앞에 벌어진 일을 해결하는 것도 벅찬 상황이다 보니 미래에 대한 준비는 기대하기조차 힘들다.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조경의 미래를 위해 권위와 자존심을 내려놓고 머리를 맞대야 한다. 필요하다면 조경 분야를 대표하는 통합된 조직을 새로 만들거나 정비할 필요도 있다. 이제라도 컨트롤 타워를 만들어 한국 조경의 미래를 위한 체계적인 전략을 세우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조경이 해야 할 일은 너무나 많다. 정원을 산림청이 가져갔다고, 조경 설계공모를 건축에 빼앗겼다고 더 이상 원망만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ASLA는 조경가의 역할을 다음과 같이 선언하고 있다. “조경가는 지역 사회와 소통하여 건강한 도시를 만들 수 있으며, 각종 질병과 범죄로부터 안전한 도시, 지속 가능하고 보다 경제적인 도시를 만들 수 있다. 보다 건강하고 경제적이며 경쟁력 있는 도시 조성의 중심에 조경가가 있다는 점이야 말로 조경가가 존재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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