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더관리
폴더명
스크랩
  • 좋은 계약서, 혹은 나쁜 계약서 설계 환경을 진단하다
    ‘계약서’라는 법적 문서에 서명하기 위해서는 치밀한 전략이 수립되어야 하고 이 전략은 상호 배려라는 상식적 토대에서 출발해야 한다. 좋은 계약서가 좋은 설계안을 만드는 기반이 된다고 우리 스스로가 확신해야 할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설계사무소 소장들의 일상 업무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설계안을 구상하고 발전시키고 완성해나가는 본연의 작업이고, 다른 하나는 ‘설계’라는 현실적 경제 활동을 작동하게 하는 여타의 행정 행위들이다. 프로젝트를 제안하고 계약을 성사시키며 그것이 잘진행되도록 관리하는 후자의 작업은 설계 작업이라는 본업에 밀려 부수적인 업무로 방치하기 쉽지만, 그 결과 어느 순간 너무도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계약서’라는 법적 문서에 서명하기 위해서는 치밀한 전략이 수립되어야 하고 이 전략은 상호 배려라는 상식적 토대에서 출발해야 한다. 좋은 계약서가 좋은 설계안을 만드는 기반이 된다고 우리 스스로가 확신해야 할 필요가 있다. 시작이 중요하다, 제안서를 잘 만들자 모든 설계 계약은 반드시 ‘제안’이라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러니까 계약의 출발은 제안에서 시작된다. 어설픈 시작은 어설픈 결과를 맺기 십상이므로 제안서proposal를 잘 쓰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설계 작업은 아무리 고급스럽고 멋진 성과물을 만든다고 하더라도 보고서나 도면집, 모형물 따위로 평가받는 것이 아니라 설계안이라는 창작물에 대한 평가, 좀 더 정확하게는 그 창작물을 만들기까지 투입된 전문 인력의 인건비와 기술력에 대한 금전적 보상을 받는 것이다. 당연한 얘기인 듯싶지만 많은 경우에 제안 과정이 대단히 형식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몇 가지 중요한 점들을 살펴보자. 우선 모든 가격 제안에는 반드시 인력 투입에 대한 내용이 명기되어야 한다. 공사예가가 정해진 때에는 통상 공사비의 요율에 따라 설계비를 산정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라 하더라도, 이는 공사비에 대한 설계비가 통상적인 범위보다 과다 혹은 과소로 책정되었는지를 살펴보는 참고로만 삼을 뿐, 설계비의 제안은 최종적으로 투입 인건비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는 이 제안을 통해 건축주(혹은 의뢰인)에게 이 작업을 위해 몇 명의 인원이 얼마 동안의 시간을 사용하는지를 알려 주고 설명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전체 과업기간을 월 단위가 아닌 주 단위로 환산하고, 주당 몇 명의 인원이 투입되는지를 표로 정리하는 방법이 유용하다. 그다음으로 구체적인 인력 투입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대부분의 민간 건축주들은 전문 분야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므로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다. 과업의 기간과 투입되는 총인원만으로는 건축주의 입장에서 보면 내가 왜 그 큰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지를 한 번에 이해하기 어렵다. 박승진은 아직까지 조경설계라는 마당을 떠난 적이 없으며,이 마당에 맞닿아 살고 있는 다양한 이웃들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기웃거리고 있다.조경이라는 특징을 잘 보여줄 수 있는 가치 있고 정교한 작업을 늘 꿈꾸지만그것도 만만치가 않다. 그래도 읽고, 쓰고, 가르치며, 배우는 일상에 감사하고 있다.1965년 서울 생으로, 성균관대학교와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조경 디자인을 공부했고, 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 조경설계 서안에서의설계 실무를 거쳐, 2007년 디자인 스튜디오 loci를 열었다.
  • 설계 환경을 진단하다 Problems of Design Environment in Landscape Architecture
    조경설계가 위축되고 있다. 경기 침체와 건설 경기 악화라는 외적 영향은 물론이고 분야간 경계가 흐려지는 경향도 전반적인 설계 환경을 변하게 하고있다. 이런 가운데 조경설계사무소는 수주 기회의 축소, 저가 입찰 경쟁, 설계공모 불신 등 여러 문제에 직면한 상황이다. 설계 환경의 변화는 조경 분야의 구조적인 문제와 맞물려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본지는 조경설계 환경을 진단하고 미래의 과제를 조망하기 위해 설계 계약,설계공모, 설계 전문가와 자격 그리고 설계비에 관한 꼭지를 마련했다. 이번획이 반복적으로 제기되는 외부 환경에 대한 문제제기를 넘어 근본적 원인을 성찰하고 우리 내부의 불합리함을 숙고하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 남기준, 김정은, 조한결, 김모아
  • [재료와 디테일] 톤
    다르게 할 것을 요구 받는다. 아주 노골적으로. 새롭지 않으면 늘 뒤쳐진 낡은 것을 하고 있다는 오해를 한다. 심지어 능력 부족이라는 오명과 함께 지켜온 자리마저 위협받는다. 경쟁 시대의 현실이다. 종교는 없지만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성경의 한 구절을 늘 마음에 새기고 있다. 이런 내게 혹은 나와 닮은 이들에게 새로움을 강요하는 현재의 분위기는참 견디기 힘들다. 조경은 살아있어 항상 변하는 재료를 사용하는 아주 독특한 분야다. 입이 아프게 말하고 귀가 따갑게 듣던 이야기다. 이렇게 늘 새롭게 변화하는 재료를 사용해 계획하고 만드는 우리에게 요구되는 새로움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혹시 말(보고서)로는 시간이 지나며 더 아름답게 변하는 경관 중심의 공간을 계획했다고 하지만, 변화는커녕 낡아빠진 형형색색의 시설물로 가득한 공간을 보여주었기에 사람들이 우리의 거짓말을 알아채 버린 것일까. 이 연재를 하며 나에게 많은 질문을 하고 있다. 과연 소재를 많이 아는 것과 그 구법에 능통한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그게 굳이 필요한 것인가? 뻔하지만 답도 없는 생각으로 머리만 바쁘다. 지금까지 내린 결론은 이렇다. 좋은 공간적 ‘톤tone’을 만들기 위해서라고. 사전에서 찾아보면, 톤은 본래 음악 용어로 일정한 결합 관계를 가진 몇 개의 음이 융합되어 만드는 음조를 말한다. 회화에서는 개개의 색채가 명암, 농담의 차이에 따라 형성되는 조화를 말한다. 색의 명암, 강약, 농담 등이 나타내는 미묘한 차이와 그 혼합으로만들어내는 조화로운 변화를 말하는 것이다. 이대영은 여기저기 살피고 유심히 바라보기 좋아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려 노력하고 있다. 만드는 것에 관심이 많으며, 작고 검소하며 평범한 조경설계를 추구하고 있다. 영남대학교에서 공부했고 우대기술단과 씨토포스(CTOPOS)에서 조경의 기초를 배웠다. 조경설계사무소 스튜디오엘(STUDIO L)을 시작하고 작은 작업들을 하고 있다. www.studio89.co.kr
  • [공간 공감] 커먼 그라운드
    시커먼 남자 세 명이 함께 가기에 어색한 공간들이 있다. 백화점, 파스타 전문점 그리고 벽화마을…. 여자와 동행한 남자들을 간혹 볼 수 있기는 하지만 왠지 자발적으로 방문한 표정들은 아니다. 이 장소들이 모든 여성들의 로망은 아니지만 여성이 우점 성별임에는 틀림없다. 화창한 5월에 방문한 건대입구의 커먼그라운드는 컨테이너 적층 건축의 인지도를 급격히 상승시킨 히트작이다. 비슷한 스타일의 프로젝트 가운데 유독 큰 주목을 받은 커먼그라운드는 오프라인 상에서 건축 담론을 형성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해시태그에 의한 공간감의 확대 재생산을 논할 수 있는 곳이어서 더욱 흥미롭다. 쇼핑, 파스타, 벽화의 세 가지 요소를 고루 갖춘 커먼그라운드는 여성 취향을 저격하는 종합 세트장으로서, SNS 게시물에 최적화된 다양한 배경을 제공한다. 배경이 주 임무가 된 공간을 부정적으로 볼 생각은 없다. 자칫 피상적으로 흐를 수 있었던 공간감은 구조와 디테일의 세련됨으로 극복하고 있다. 새로운 핫스팟에게 상위 검색 자리를 물려준다 할지라도 공간의 기본기가 제법 탄탄한 커먼그라운드는 계속해서 즐겁게 활용될 수 있는 공간으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_ 정욱주 컨테이너는 물건을 운반하는 수송 수단이기도 하지만 대표적인 가설 건물이기도 하다. 커먼그라운드에는 일반 가설용 컨테이너가 아닌 좀 더 튼튼한 수송용 컨테이너가 쓰였다. 하지만 가볍고 쉽게 해체 가능하리란 이미지는 잃지 않았다. 어릴 적 최초의 가설 건물에 대한 기억은 원두막이다. 몇 개의 기둥과 짚더미를 대충엮어 만든 원두막에는 딴 세상이 있었다. 고작 2m 남짓한 높이였지만 그곳에 오르면 구름 위에 올라선 것 마냥 시원하고 아늑하고 세상을 내려다보는 다른 시선이 있었다. 가볍고 삐꺽거리는 위태로움이 높이에 대한 감각을 증폭시킨 것 같기도 하다. 어려서 그랬는지 그 가벼움과 시원함이 좋았다. 견고한 건물에서 내려다보는 것과는 분명 다른 감각이었다. 게다가 원두막에는 사람을 들뜨게 만드는 감성이 있다. 그곳에 달달한 수박과 참외가 있어서일지도 모르지만…. 컨테이너로 쌓아올린 이 가벼운 건축에서 원두막의 감성을 떠올리는 것이 지나친 비약은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이곳에 모인 젊은 친구들이 훗날 이곳을 내 어릴 적 원두막과 같은 공간으로 기억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친다. 젊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탈일상의 공간이면서 잠깐의 추억이 돼줄 수 있는 공간이니까. _ 김용택 이 연재를 위해 factory L의 이홍선 소장, KnL 환경디자인 스튜디오의 김용택 소장, 디자인 스튜디오 loci의 박승진 소장 그리고 서울대학교정욱주 교수와 서울시립대학교 김아연 교수 등 다섯 명의 조경가가 의기 투합하여 작은 모임을 구성했다. 이들은 새로운 대상지 선정을 위해 무심코 지나치던 작은 공간들을 세밀한 렌즈로 다시 들여다보며, 2014년 1월부터 한 달에 한 번씩 유쾌한 답사 모임을 이어가고 있다.
  • 화성 동탄 청계중앙공원 Hwaseong Dongtan Cheonggye Central Park
    시간과 질서의 깨달음 ‘정감情感 동탄’이라는 슬로건 아래, 동탄2신도시에 정과 흥이 넘치고 지역 고유의 정체성을 담은 매력적인 한국적 도시 이미지를 구축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전통 마을을 재해석한 한국적 마을 만들기, 자연과 상생하는 음양오행 사상을 도입한 전통 조경의 재해석을 통해 한국적 도시공원의 모델을 제시했다. 대상지는 본래 동고서저의 지형으로 동쪽 무봉산 자락의 구릉과 숲이 동탄1신도시의 반석산을 향해 흐르는 광역적 녹지 체계를 갖추고 있었다. 숲과 마을 곳곳을 실핏줄처럼 흐르는 물길은 다랭이논과 둠벙을 통해 안성천과 치동천으로 향하고, 굽이치는 마을길은 소규모 공장과 마을로 이어진다. 마을길을 따라 펼쳐지는 풍광은 무봉산과 동탄1신도시의 반석산을 대상지 내로 끌어들인다. 답사 당시, 대상지는 동서로는 무봉산~반석산, 남북으로는 리베라CC~치동천을 연결하는 십자 형태의 구릉과 숲 속의 원형보존지 일부를 제외하고는 평지로 조성되어 있었다. 또한 공동주택, 학교, 상가에 둘러싸여 있어 지역 공동체의 기반이 될 수 있는 장소성을 지니고있었다. 설계 개념과 방향 전통 마을은 산과 물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다양한 마당과 굽은 길 등 물리적·생태적 구성 요소로 이루어 진다. 이는 대청마루에 담 너머 앞산의 풍경을 끌어들이고 정자에서 풍광을 감상할 수 있는 체험적인 경관을 제공한다. 전통 마을의 생태적·문화적 의미를 계승하고 현대적 가치로 재해석해 네 가지 설계 개념인 산경山徑, 수경水經, 수기修己, 승경勝景을 이용한 통합적 설계를 통해 지속가능한 한국적 그린인프라를 재현하고자 했다. 산경, 마을을 보호하는 숲 만들기: 과거의 대상지에서 볼 수 있었던 구릉과 마을숲을 모티브로 입체적인 대 지를 조성해 한국적 구릉형 공원을 계획했다. 주변 현황과 식생 구조를 고려한 다양한 유형의 마을숲을 조성해 동서축과 남북축을 이루는 광역적 녹지 네트워크를 계획했다. 입체적으로 조성된 대지는 무봉산에서 발원한 녹지축으로, 연속성을 갖는 생태적 기반이다. 또한 주변과의 관계를 고려한 마당 및 연계 프로그램을 위한 문화적 기반 요소로 활용되기도 한다. 입체적인 대지 위에 조성된 마을숲은 4가지 유형으로 구성됐다. 동서 녹지축은 전통 마을숲으로, 무봉산과 원형보존지의 식생(소나무, 상수리 군락)과 전통 마을숲의 우점 교목인 느티나무, 소나무를 주 수종으로 하는 다층 구조의 군락이 식재됐다. 남북 녹지축에는 주변 주거 단지의 프라이버시와 경관을 고려해 서어나무, 단풍나무 군락이 조성됐다. 조경설계그룹한 어소시에이트(박명권, 송영탁, 김기천, 하태우, 이경호,전주희, 김성아, 오맹학, 정광조, 정회경) 시공(주)건림원 사업명화성 동탄2지구 택지개발사업 1단계 조경기본 및 실시설계 중 청계중앙공원 발주한국토지주택공사 위치경기도 화성시 석우동, 반송동, 동탄면 일원 대지면적213,724m2(근린공원8) 조경면적153,902m2 준공2015. 10. 31. 그룹한(대표 박명권)은 1994년 창립 이래, 경제 발전의 피로에 찌든 도시인에게 자연과 호흡하는 아름다운 삶의 방식을 제시해 왔다. 그룹한의디자인은 삭막한 주거 환경의 한복판에 고향에 대한 향수와 어린 시절의 추억, 그리고 자연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가치를 구현해 왔으며, 여유와즐거움이 넘치는 문화 환경을 헌정해왔다.
    • 하태우 / 그룹한
  • 용산공원, 연대와 논의를 위한 첫걸음 6월 2일, ‘용산공원 시민포럼 발족식 및 토론회’ 개최
    공원을 만드는 일은 백년지대계다. 하나, 용산공원은 온전한 모습으로 회복하여야 하고, 둘, 시민과 함께 계획하고, 만들고, 운영해야 하며, 셋, 긴 호흡으로 천천히 추진해야 한다. _ 용산공원 시민포럼 선언문 지난 6월 2일 대한상공회의소 중회의실에서 ‘용산공원 시민포럼(이하 시민포럼)’이 발족했다. ‘용산공원 시민포럼 준비위원회’가 조직된 지 1년만의 일이다. 이들은 시민이 주체가 되는 용산공원을 만들기 위해 열린 토론의 장을 마련하고, 단계적으로 사회적 관심 조성, 공원 민간 파트너십 체결, 공원 거버넌스 구성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날 열린 ‘용산공원 시민포럼 발족식 및 토론회’는 용산공원의 계획 과정과 활용에 대한 폭넓은 논의를 위한 첫걸음으로 마련되었다. 행사의 1부는 시민포럼 공동대표인 김성훈 국장(천주교서울대교구 청소년국), 이영범 교수(경기대학교), 조경진 교수(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조명래 교수(단국대학교)의 용산공원 시민포럼 선언문 발표로 마무리됐다. 2부에서는 최혜영 팀장(West 8)의 ‘용산공원 조성계획 추진현황 및 향후계획’, 조명래 교수의 ‘용산공원계획의 바람직한 방향’, 조경진 교수의 ‘용산공원계획, 시민참여의 필요성’에 대한 주제 발표가 진행된 후 토론회가 이어졌다. 토론회의 좌장은 이영범 교수가 맡았으며 김성홍 교수(서울시립대학교), 김제리 의원(서울특별시), 박은실 교수(추계예술대학교), 배정한 교수(서울대학교), 이강오 원장(어린이대공원), 이세걸 사무처장(서울환경운동연합), 이승민 부국장(천주교 서울대교구 청소년국), 이원재 소장(문화연대 문화정책센터), 우미경 의원(서울특별시), 최정한 대표(공간문화센터), 홍서희 대표(Gate 22)가 토론자로 참여했다. 특히, 이번 행사에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청소년국에서 시민포럼 운영위원과 토론자로 새롭게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이승민 부국장은 “미래 세대를 위한 공간을 조성할 때, 청소년의 의견을 묻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성인들이 생각하는 청소년에 대한 접근이 아닌, 청소년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명래 교수도 앞선 주제 발표에서 “우리 세대에서 용산공원에 대한 모든 것을 결정해서는 안 된다. 다음 세대가 채워 넣을 수 있는 공간을 남겨 두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날 진행된 토론에서는 국토교통부(이하 국토부)와 시민사이의 소통 단절 문제와 ‘용산공원 콘텐츠 선정안’의 타당성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국토부는 2015년 6월 용산공원에 적합한 콘텐츠를 발굴하기 위해 소위원회를 구성했고, 10월 한 달간 공원 내 선호 콘텐츠에 대한 온오프라인 설문조사와 관계기관 수요조사를 수행했다. 그리고 2016년 4월 말, 9개의 기관에서 제시한 18개의 콘텐츠 중 설문 조사 결과와 10차례의 소위원회 심의를 통해 선정된 8개의 콘텐츠를 발표했다. 선정된 콘텐츠는 국립어린이 아트센터(문화체육관광부), 국립여성사박물관(여성가족부), 아리랑무형유산센터(문화재청), 국립경찰박물관(경찰청), 용산공원 스포테인먼트센터(문화체육관광부), 아지타트나무상상놀이터(산림청), 국립과학문화관(미래창조과학부), 호국보훈 상징 조형광장(국가보훈처)인데, 공원 조성 목적과의 부합성, 콘텐츠 선정 과정의 불투명성 등에 대한 문제가 제기됐다. 최정한 대표는 “현재 대상지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내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설계를 진행하는 것은 위험하다. 땅을 제대로 이해하고 긴 호흡으로 용산공원 계획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시민을 배제한 국가 공원 조성은 불가능하다. 라운드테이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시민과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국토부에게 시민 사회와의 소통을 부탁했다. 이원재 소장도 이에 동의했다. 그는 “시민뿐만 아니라 용산공원과 관련된 전문위원들도 정보를 공유받지 못하고 있다”며 국토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또한 “공원에 들어설 수 있는 콘텐츠는 무궁무진하지만 규칙과 원칙은 있어야 한다. 용산공원에 국립 시설을 조성해야 하는 이유를 알 수 없다”며 ‘용산공원 콘텐츠 선정안’에 대한 의문을 제시했다. 우미경 의원도 이에 대해 “용산공원의 역사성과 문화성이 과소평가되고 있는 것이 아닌지 걱정스럽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용산공원 콘텐츠 선정안’에 대한 비판의 방향에 문제를 제기하는 이들도 있었다. 박은실 교수는 “현재 발표된 콘텐츠는 용산공원의 극히 작은 부분이며, 보존하기로 정해진 건물을 활용하는 방식이기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배정한 교수는 “센트럴 파크 역시 수많은 건물과 프로그램으로 작동되는 곳이다. 공원에 콘텐츠가 없다면 공원으로서의 가치를 가질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중요한 것은 무엇이 들어가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들어가느냐다. 그 방법을 고민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특히 그는 “긴 호흡으로 천천히 추진하는 것과 계획의 중단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이슈다. 국회가 용산공원 관련 예산을 전액 삭감하는 것은 있어서는 안 될, 매우 비합리적 일이다”라는 의견을 펼쳤다. 조경진 대표는 “앞으로도 당면한 문제를 피하지 않고 이 같은 토론의 장을 열어가야 한다”며 두 시간에 걸쳐 진행된 토론을 정리했다. 또한 “앞으로 시민포럼은 다양한 시민 사회와 연대해 논의의 장을 열어가고, 용산공원에 대한 욕망을 키워가는 자리로 만들어나갈 것이다”라고 약속했다.
  • 향으로 탐구하는 공원의 ‘마이크로코스모스' 프라미스 파크, 미래 공원의 제안
    건축가, 바이오 전문가, 도시공학도, 큐레이터, 예술가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도시 공원의 풀숲을 뒤지고 흙을 파헤쳤다. 그들이 찾아 나선 것은 고대 유물도, 잊혀진 궁터도 아닌 공원의 ‘향’, 냄새다. 미래의 공원, ‘프라미스 파크’를 주제로 뉴미디어 작품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는 미디어 아티스트 문경원 작가가 지난 5월 25일부터 27일까지 도시, 예술, 역사, 건축, 디자인, 고고학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및 학생들과 함께 문화역서울284에서 프라미스 파크 워크숍, ‘미래 공원의 제안’을 진행했다. 워크숍은 ‘향’을 테마로 감각적 매개체를 통해 공원이라는 상징적 개념에 새롭게 접근하는 데 목표를 두었으며 현장 답사와 발표·토론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었다. ‘프라미스 파크’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함께해 온 일본 야마구치 미디어 아트센터Yamaguchi Center for Arts and Media(YCAM)의 바이오랩 연구원과 큐레이터도 한국을 방문해 이번 워크숍에 함께했다. ‘향’이 말해주는 공원의 정보현장 답사는 선유도 공원과 청계천에서 진행됐다. 문경원 작가는 “한때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졌던 과거를 지닌 도심 속 공간의 생태계가 얼마나 건강한지, 이들의 향에서 어떤 흔적을 찾을 수 있을지 궁금했다”고 설명했다. 워크숍 참가자들은 25일에 선유도 공원에서 풀, 열매, 흙, 곤충 등 효모가 서식할 만한 것을 채집하고 문화역서울284에 꾸려진 간이 실험실에서 채집물의 효모를 배양했다. 이튿날은 전날 채집한 효모와 YCAM 팀이 따로 청계천에서 채집한 효모가 어떤 유형이며 어떤 변화가 있는지, 배양된 효모가 어떤 향을 풍기는지 관찰했다. 이를 통해 참가자들은 평소 공원에서 맡는 향이 어떤 물질에서 비롯되는지 확인했다. YCAM 바이오랩 카즈토시 츄타 연구원은 “효모는 대개 곤충들에 의해 운반되기 때문에 효모를 분석하면 그 지역에 어떤 벌레가 많이 서식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이동하는지와 같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워크숍 일정이 짧아 결과를 분석할 수 있을 정도로 효모가 많이배양되지는 않았지만 청계천은 과거에 매립되었던 곳이라 초파리와 같은 곤충이 많이 서식했고 효모를 분석하니 아직도 뚜껑으로 덮여 있는 매립된 공간에서 나올 법한 결과가 나왔다”고 설명했다. 한양대학교 대학원에서 도시공학을 공부하고 있는 김홍렬 씨는 “처음에는 ‘향과 공원이 무슨 관계가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공원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었다. 공원을 이야기할 때 눈에 보이는 디자인에만 접근했는데 앞으로는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활용해 공원을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고 워크숍에 참가한 소감을 전했다. ‘향’이 이끄는 또 다른 세계 언뜻 보기에는 마이너한 방법으로 ‘공원’에 접근하는 것 같지만, 문경원 작가는 공원의 역사와 미래, 현재의 의미에 대한 탐구 결과를 시각, 청각, 촉각 등 다양한 감각으로 체험할 수 있는 영상과 설치 작품으로 선보여 왔다(본지 2016년 4월호 ‘폐허에서 그리는 약속의 공원: 문경원 인터뷰’ 참고). 문경원 작가는 “냄새는 각자 다양하게 경험하는 감각이지만 여러 사람이 공유하는 향의 기억이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이 경험하는 향을 가시화해서 빅데이터로 만들 수 있는 과학적 방법을 찾고 있다.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 공통으로 내재된 향의 기억을 공감하고 연대 의식을 나눔으로써 공원의 의미를 새롭게 생각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이번 워크숍에 참여한 YCAM의 카즈오 아베 부관장은 “냄새는 아직 표현의 수단으로 쓰기에는 어려운 소재지만 다른 감각들과는 달리 후각은 대뇌에 직접 전달되어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는 감각이다. 이번 워크숍은 ‘냄새는 예술적인 소재가 될 수 있는가’, ‘냄새로 공간의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을까’와 같은 질문에서 출발했다”고 워크숍의 의의를 설명했다. 그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주인공이 홍차에 적신 마들렌의 향을 맡으며 유소년기를 떠올리는 장면을 인용하며 냄새를 통해 기억을 환기하는 ‘프루스트 효과’를 이용해 시각과는 다른 차원의 세계를 구현할 수 있을지 기대된다고 말했다. 미래의 공원에서는 어떤 향이 날까? 향으로 공원을 구현하려는 아이디어는 엉뚱하고 무모한 도전일까? 향은 시각이 환기할 수 없는 무의식 속 과거의 경험과 보이지 않는 미생물의 세계를 열어준다. 각자가 갖고 있는 개별적인 향의 기억과 체험을 통해 거대한 공원의 이미지를 구축하려는 문경원 작가의 시도는 시각이 주는 단순하고 직접적인 정보에 의존하는 현대인을 새로운 세계로 이끈다.
  • ‘형태 없는 형태’ 전 아트클럽 삼덕, 6. 6. ~ 6. 12
    지난 6월 6일부터 12일까지, 대구에 위치한 아트클럽 삼덕에서 ‘Formless Forms형태 없는 형태’라는 타이틀의 최이규 개인전이 열렸다. 최이규는 계명대학교의 도시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며 뉴욕시립미술관, 센트럴 파크, 소호 및 대구, 두바이, 올랜도, 런던, 위니펙 등에서개인전 및 공동 전시를 개최한 바 있다. 이번 전시는 3D 프린팅으로 제작된 오브제를 선보이며, PLAPoly Lactic Acid 소재의 기하학적 형태와 액체, 빛, 그림자 등 형태가 없는 각종 물질들이 어우러져 만드는 효과와 의미를 다뤘다. 최이규는 “이 전시는 뚜렷한 형태가 없는 인공 건조물, 즉 도시를 이루고 있는 경제적이며 효율적인 물리적 환경에 대한 스터디”라고 밝혔다. 그는 평소 눈에 띄지 않지만, 품위 있고 묵묵하게 제 할 일을 해내는 공간에 감동을 느껴왔다.또한 “알맞은 비례와 크기를 가지며, 머무는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고, 촉각적인 즐거움을 선사하는 창작의 산물들은 마치 수십억 년을 단련해 온 자연에 필적할 만큼 자연스럽고 군더더기가 없다”고 덧붙였다. 다양한 형태의 오브제에는 정적이지만 가볍고 날렵함을 갈구하는 인공물에 대한 기하학적 추론이 담겨있다. 그는 “본질적으로 동적이며 수학적으로 정제되고 응축되어 장광설로 힘겹게 해명할 필요가 없는 기하학은 매력적인 학문이었다”며 어린 시절부터 품어 온 기하학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기도 했다. 전시장에는 30여 점의 작품이 설치됐다. ‘돈탑’은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져가는 50원짜리 동전을 3D 프린팅으로 제작한 타워에 삽입한 오브제다. 작가가 태어난 1976년 이후 제작된 동전들은 반짝임, 긁힌 자국, 변색, 뒤틀림, 그을림 등을 통해 다양한 개인사를 은유한다. 또한 동전이 모여서 이루는 낡았지만 찬란한 탑은 우리 사회에 대한 은유로 비춰진다. ‘물, 소금, 빛, 재, 피, 암석, 파동’은 우리 생명에 반드시 필요한 기본적 요소를 담는 그릇들로 구성된다. 거친 콘크리트 블록 제단祭壇에 놓인 고대 토기를 연상시키는 단순하고 기하학적인 형태의 그릇은 복잡한 형태form 위주의 디자인 시류에 대한 냉소주의cynicism를 내포한다. 이 외에도 로댕의 글귀를 볼 수 있는 정육면체의 조명 ‘텍스트 라이팅‘, 세제가 마르면서 나타나는 패턴과 투명함의 우연성을 관찰한 ‘세제회화’ 등 다양한 소품들이 전시됐다. 최이규는 이 같은 작품들을 통해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과연 정지된 물체에도 움직임이 존재할 수 있는가? 중력을 잊은 듯한 자갈의 물수제비처럼, 소년의 경쾌한 발걸음처럼, 문지방을 타고 넘는 바람처럼.”
  • ‘헤더윅 스튜디오: 세상을 변화시키는 발상’ 전 디뮤지엄, 6. 16. ~ 10. 23.
    지난 6월 16일, 세계적인 디자이너 토마스 헤더윅Thomas Heatherwick과 그의 스튜디오를 다룬 ‘헤더윅 스튜디오: 세상을 변화시키는 발상New British Inventors: Inside Heatherwick Studio’ 전이 막을 열었다. 디뮤지엄D museum이 주최하고 영국문화원이 함께 주관한 이번 행사는 영국의 국가 홍보 사업인 ‘그레이트 브리튼 캠페인the GREAT Britain campaign’의 일환으로 진행된다. 헤더윅 스튜디오는 가구와 제품 디자인부터 도시설계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분야에서 융합적인 접근 방식으로 혁신적인 프로젝트를 구현해 왔다. 영국 디자인계의 거장인 테런스 콘란Terence Conran은 토마스 헤더윅에게 ‘우리 시대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는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이번 전시는 헤더윅 스튜디오의 작업 중 26개의 핵심프로젝트를 다뤘다. 작품과 더불어 프로젝트의 진행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드로잉, 프로토타입, 테스트 모형, 1:1 사이즈의 구조물, 사진과 영상물 등을 선보인다. 이를 통해 관객은 끊임없는 질문과 실험으로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헤더윅 스튜디오만의 디자인 과정을 살펴 볼 수 있다. 전시는 크게 세 개의 주제로 구성됐다. 첫 번째 주제인 ‘사고’에서는 디자인의 핵심 개념을 도출해 내는 과정을 소개한다. 헤더윅 스튜디오는 디자인 과정을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공유해 그들의 비평을 수용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 디자인 전반에 걸친 질문과 재분석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왔다. 런던 시의 의뢰로 50년 만에 새롭게 디자인 된 ‘런던 버스New Bus for London’가 그 대표적인 예다. 사고’ 과정을 통해 승객들의 편의성과 에너지 효율성 등 기능적인 문제를 해결했을 뿐만 아니라 미적인 부분도 향상시켜 런던 시민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런던 패딩턴 유역Paddington Basin에 설치된 ‘롤링 브리지Rolling Bridge’도 같은 과정을 통해 부드럽고 세련된 메커니즘을 도출해냈다. 다리의 양 끝이 올라가며 열리는 일반적인 방식을 사용하지않고, 한쪽으로 둥글게 말리도록 설계해 런던 브리지를 하나의 조형물처럼 보이게 했다. ‘제작’에는 소재에 대한 다양한 실험을 통해 새로운 가치와 아이디어를 발견하고, 이를 창조적인 형태로 구현하는 과정을 담았다. 웰컴 트러스트Welcome Trust 본사의 아트리움에 설치된 ‘블라이기센Bleigiessen’은 이질적인 소재인 물과 금속을 결합한 작품이다. 물이 떨어지며 변화하는 형태를 형상화하기 위해 차가운 물에 액체상태의 금속을 떨어뜨리는 실험을 수백 번 반복했다. ‘소통storytelling’에서는 작품에 고유의 이야기를 담아 사람들에게 놀라움, 즐거움, 기쁨 등 다양한 감정을 선사하는 방법을 보여준다. ‘엑스포 2010 상하이’에서 선보인 영국관은 단순히 한 국가를 대표하는 건축물을 넘어 독특한 구조로 사람들에게 놀라운 경험을 제공했다. 건축물을 관통하는 6만 개의 투명 막대 끝에는 25만 개의 씨앗이 담겨 있어 ‘씨앗 대성당seed cathedral’이라 불리기도 했다. 이 막대는 낮에는 햇빛을 건축물 내부로 끌어들이고 밤에는 내부의 빛을 외부로 발산해 관객에게 신비로운 체험을 선사한다. 또한 전시를 위해 헤더윅 스튜디오가 특별히 제작한 ‘스펀-훌라!Spun-Hula!’가 최초로 공개된다. 이 작품은 2008년에 제작된 ‘스펀 체어’에 뿌리를 두고 있다. 당시 금속과 플라스틱으로 의자를 만드는 데는 성공했지만, 스스로 회전하는 메커니즘을 만들지는 못했다. 2016년 디뮤지엄과의 협업으로 현실화된 ‘스펀-훌라!’는 보이지 않는 메커니즘과 빛 센서를 통해 자동으로 반응하고 회전한다. 주변 환경의 미묘한 변화에도 반응해 시시각각 모습을 바꾸는 설치 작품이다. 이 외에도 토마스 헤더윅의 대학 재학 시절의 작품과 초기 작업들이 장르를 넘나들며 발전해 온 스튜디오 철학을 보여준다. 작은 디테일과 큰 구조를 넘나드는 유연한 사고방식과 실험적인 도전들은 사고의 틀을 확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 [떠도는 시선들, 큐레이터 뷰] 진행 중인 붕괴에 대한 접근 컬랩스, 6. 3 ~ 6. 25, 합정지구
    최근 세상은 더 흉흉한 분위기다. 시대의 불안은 동시대 여러 예술가들의 작업에서도 예민하게 감지된다. 필자가 얼마 전 기획한 전시 ‘컬랩스Collapse’는 ‘무방비적인 붕괴가 일상이 되어버린 현시대’에 대한 질문을 시각적 구조로 다뤄보고자 했다. 본고에서는 전시 소개와 더불어 참여 작가와의 인터뷰를 통해, 사회적 붕괴에 접근하는 동시대 예술 현상을 다루고자 한다. 붕괴를 공모하는 사회 구조 작년 영국 신문 「가디언guardian」에서는 세계적으로 명망이 높은 건물을 50개 선정해, 50회에 걸쳐 집중적으로 소개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 시리아의 시타델 등 도시 역사에서 주요한 건물들이 등장한 가운데 한국의 한 건물도 선정되었다. 놀랍게도 최대의 붕괴 참사로 전 세계인을 경악시킨 삼풍백화점이다. “삼풍백화점 참사로부터의 교훈”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된 기사는 한국의 개발 중심 성장이 불러일으킨 연쇄적 붕괴를 언급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선되지 않는 안전 불감증을 전 세계인에게 경고한다. 위기 속에서도 개개인이 견디면 살아남을 수 있다는 막연한 희망은 시스템의 오작동 속에서 무너져 내렸다. 언젠가부터 우리에게 붕괴의 이미지는 흔한 일상이 되어 버렸다. 전 세계에 충격을 준파리 총기 난사 사건, 우리 사회의 부패된 시스템을 보여준 세월호, 중국의 고도성장을 증명하는 도시 심천에서 쓰레기더미에 매몰되어 죽은 사람들, 그리고 증시 파동으로 인한 세계 경제 공황… 무너지고 전복되고 좌초되고 휘감기고 난장판으로 흩어지고 쓰나미처럼 몰아쳐 파괴되고 싱크홀처럼 순식간에 매몰되는 참혹한 사건, 사고, 재해는 각종 미디어를 장악하며 충격과 혼란의 이미지로 드러난다.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화려하게 시선을 장악하던 파국 이미지는 더 이상 스펙터클하지 않다. 순식간에 배가 침몰하고 건물이 무너지고 다리가 붕괴되고 도로가 함몰되고 수백 명 수천 명의 사람들이 급작스런 재난에 떠밀린 상황이 지금 우리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다. 보이지 않는 개개인의 자아 붕괴, 공황 상태는 극한의 살인이나 범죄로 이어진다. 최근 더 빈번해진 가족 간의 살인 사건, 더 잔혹하고 극악해진 범죄의 이미지. 일상 속에서 시체가 유기되는 비인류적 사건은 비단 한 개인의 인간성, 윤리적 붕괴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순식간에 무너져버린 사회적 윤리, 도덕 안에서 개개인의 인간성은 그 충격을 더 병리적, 더 파괴적으로 감지한다. 컬랩스된 사회ㆍ정치적 구조, 전 지구적 재난 등 그 힘에 밀려 세상은 마치 끝을 향해가고 있는 듯하다. 개인을 무력화하는 이 급작스런 붕괴로부터, 그리고 붕괴의 충격으로부터 우리는 어떻게 스스로를 바로 세울 수 있을까? 이번 전시는 무방비적으로 노출되어 온 붕괴 이미지가 일상이 되어버린 현시대에 대한 질문으로부터 출발한다. 사회적 붕괴를 시각적으로 다루고 있는 6명의 참여 작가는 오늘날 붕괴 현상과 그 배후의 구조에 대해 각각 신문 매체, 슬럼 이미지, 자연재해, 버섯구름, 가족 제도를 통해 접근한다. 심소미는 독립 큐레이터이며 미술과 건축 관련 글을 쓰고 있다. ‘신지도제작자’(송원아트센터, 2015), ‘모바일홈 프로젝트’(송원아트센터, 2014), ‘Hidden Dimension’(갤러리 스케이프, 2013) 등 다수의 전시를 기획했다. 갤러리 스케이프 책임큐레이터, 갤러리킹 공동디렉터, 보충대리공간 스톤앤워터 큐레이터로 활동했다. 2015년 동북아시아 도시 리서치(예술경영지원센터 후원)를 진행했으며, 2016년 난지창작스튜디오 연구자 레지던시에 입주해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