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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수작: 시흥始興 초록바라지 시흥장현 공공주택지구 조경 기본 및 실시설계용역 설계공모
    ‘바라지’는 ‘돌보다’, ‘기원하다’라는 뜻을 가진 우리말이다. ‘방죽’을 이르는 말이자 소금기가 가득해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땅에 붙인 이름이기도 했다. 300년 간척의 역사와 함께 해온 시흥 호조벌은 땅과 자연에 순응하는 옛 시흥 사람들의 지혜의 결실이다. 현재 기능적인 개발로 격자 형태가 된 도시 위에 사라져버린 땅, 산수 경관의 기억과 흔적을 재배열하여 사람과 자연이 교감하는 새로운 시흥바라지로 거듭나게 한다. 시흥 장현의 옛 지명에서 드러나는 우리 고유의 경관을 바탕으로 산山, 수水, 곡谷, 고개峙, 들野에 순응하는 공간을 계획했다.
    • 서안알앤디조경디자인 + 최정민 / 서안알앤디조경디자인 + 최정민
  • 최우수작: 늠내골 시오리, 갯향기의 추억길 시흥장현 공공주택지구 조경 기본 및 실시설계용역 설계공모
    굽이굽이 끝없이 펼쳐진 시흥의 넓은 갯벌은 서해 낙조의 아름다운 풍경 중 하나다. 수많은 철새와 바다 생물에게는 소중한 생명의 땅이며 예로부터 이곳을 지키며 살아온 갯마을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다. 긴 고개를 뜻하는 ‘장현長峴’이라는 지명처럼 바다로 향하는 길고 굴곡진 옛 길의 흔적은 삶과 풍경, 생명이 어우러진 이 땅의 색다른 매력을 선사한다. 땅이 전하는 이야기를 통해 갯골의 흔적, 갯등 위의 생명의 쉼터인 숨골, 바다를 향해 굽이쳐 흐르는 긴 고갯마루 길의 풍경과 그와 관련된 기억을 되살려 대상지가 가진 고유한 잠재력을 최대한 이끌어 낸다. 이를 통해 땅이 가진 과거의 기억, 현재의 가치, 미래의 개발 사이에서 역동적인 작용을 이끌어 내고자 한다.
    • 그룹한 어소시에이트 + 건화 / 그룹한 어소시에이트 + 건화
  • 시흥장현 공공주택지구 조경 기본 및 실시설계용역 설계공모
    설계공모 경과와 심사평 지난 3월 8일, LH 본사의 3층 2회의실에서 ‘시흥장현 공공주택지구 조경 기본 및 실시설계용역 설계공모’의 심사가 진행됐다. 심사는 1차와 2차로 나뉘어 이루어 졌으며 1차 심사를 통해 총 7개의 출품작 중 2차 심사에 진출할 3개의 작품이 선정됐다. 2차 심사의 결과 최우수작으로 그룹한 어소시에이트와 건화의 ‘늠내골 시오리, 갯향기의 추억길’이, 우수작으로 서안알앤디조경 디자인과 최정민의 ‘시흥始興 초록바라지’가, 장려작으로 조경설계비욘드의 ‘바라지 시흥 그리고 장현 사람 소통터’가 선정됐다. 시흥장현 공공주택지구는 남쪽과 북쪽, 서쪽의 세 면이 군자산 자락으로 둘러싸인 곳이다. 부지 내에는 완만한 구릉지가 분포하고 있으며 부지의 왼편에는 장곡천이, 오른편에는 장현천이 남쪽에서 북쪽을 향해 흐르고 있다. 이런 지형적 특징을 활용하고 자연 요소를보존할 수 있는 친환경적인 계획을 수립하는 것이 이번 공모의 목표 중 하나다. 장곡천과 장현천의 경우 수변 학습 공간, 저류지 활용 방안 등을 통해 테마별 친수 공원으로 조성해야 한다. 이 같은 생태 환경적 특화계획을 통해 구축되는 그린-블루 네트워크의 구체성도 설계안의 평가 요소다. 부지의 중앙에는 장현천을 기준으로 왼편에 시흥시청, 오른편에 시흥시청역이 위치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문화의 거점이 될 것으로 예상돼 장현천을 따라 흐르는 선형 공원과 시청 맞은편의 중심 광장을 시흥시의 상징적 공간으로 조성할 계획이다. 이는 공모의 가장 큰 목적으로, 평가 항목 중 ‘지역 특성을 감안한 특화 용도 제안의 독창성 및 명소화 가능성’이 100점 만점 중 20점을 차지해 심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최우수작 늠내골 시오리, 갯향기의 추억길 그룹한 어소시에이트 + 건화 우수작 시흥始興 초록바라지 서안알앤디조경디자인 + 최정민(순천대학교) 장려작 바라지 시흥그리고 장현 사람 소통터 조경설계비욘드
    • 김모아
  • 올보르 워터프런트 2단계 Aalborg Waterfront Phase II - House of Music Areas
    올보르 워터프런트의 2단계 마스터플랜은 1단계에서 도출된 여러 원칙에 기반을 두고 있다. 또한 피오르fjord 경관의 특별한 특징인 사구와 평평한 해변 사이의 만남에서도 영감을 이끌어냈다. 기존의 항구가 비교적 낮은 높이이기 때문에 콘서트홀, 캠퍼스, 학생용 기숙사 등 새로운 건물은 효율적인 홍수 방지를 설계의 핵심 요소로 고려할 수밖에 없었다. 2단계 과정의 핵심적인 아이디어는 대상지 전체를 하나로 묶는 역할을 하는 프롬나드를 일종의 ‘습지’로 활용하고 완만한 곡선의 플린스plinth를 이용해 그 위에 독립적으로 세워진 독특한 건물들이 마치 솟아오른 사구와도 같은 경관을 형성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조화 속에서 콘서트 홀 주변에 들어선 광장은 직사각형 형태의 독립적 플린스에 의해 부각되게 된다. 도시의 플린스는 홍수에 대한 방비책이 되는 동시에 다양한 활용이 가능한 일련의 공간을 제공하게 된다. 플린스의 측면은 바람을 피할 수 있는 장소가 되며, 사람들이 앉을 수 있는 계단식 좌석이 마련된다. 널찍한 광장들이 프롬나드의 한 부분으로 통합되며, 노스 유틀란트North Jutland 피오르 경관의 토착 식물로 구성된 빽빽한 수목을 바탕으로 풍성한 녹지 공간을 제공한다. Landscape ArchitectC.F. Møller Landscape EngineerCOWI CollaboratorÅF Hansen & Henneberg(lighting design) ClientAalborg Municipality LocationAalborg, Denmark Size170,000m2(total) Year of Competition2012 Construction Period2013~2015 PhotographsJoergen True
    • C.F. Møller / C.F. Møller
  • 올보르 워터프런트 1단계 Aalborg Waterfront Phase I - Linking Port & City
    현재 12만5천 명의 주민이 거주하는 올보르는 인구 규모로 치면 덴마크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다. 또한 덴마크에서 두 번째로 큰 산업 도시이기도 한 올보르는 1970년대부터 산업의 침체에 따라 쇠퇴의 길을 걷다가 1990년대부터 연구 및 지식의 중심지로 새롭게 부흥하고 있다. 현재 올보르의 문화적 활동은 피오르fjord를 따라 들어선 과거의 공장 건물로 확대되었다. 산업 사회가 종말을 거둔 바로 그 지점에서 항만 활용의 대안적 방안들을 새롭게 모색하고 있다. 올보르 시정부는 항만 지역을 새로운 여가 공간으로 변모시키기 위한 공모전을 개최했다. 공모전의 기본 골격은 시민과 여러 기업들이 참여한 토론회 등을 통해확보한 아이디어를 기초로 했지만, 설계를 통해 추가적인 구상을 하도록 요구했다. 과거 대상지에는 터미널과 창고 건물, 도심과 피오르 지역을 단절시키는 혼잡한 4차선 접근로 등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항구로의 접근성을 확보하기 위해 도로의 방향을 재설정했고 3동의 창고 및 터미널 건물이 철거되었다. 이 지역의 소중한 역사 유적인 창고, 로열 커스텀 하우스Royal Custom House, 올보르 성Aalborg Castle은 그대로 보존해 새롭게 건립한 4동의 건물과 조화롭게 어우러지게 했다. 학문과 지식의 도시로서 올보르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학생들을 유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었다. 따라서 항구 지역에서 최적의입지를 지닌 장소에 청년 및 학생들을 위한 레지던스와 기숙사가 들어섰다. 공모전은 각기 다른 성격을 지닌 생태 친화적 공공 공간을 설계하고 피오르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막아낼 수 있는 시설물을 계획하도록 했다. 또한 제한된 예산 안에서 합리적으로 건설 가능해야 한다는 점도 지침에 포함되었다. 당선작에서 가장 쟁점이 된 아이디어는 4차선 도로를 2차선으로 줄이는 것이었다. 이전까지 이 도로에는 매일 2만5천 대 가량의 차량이 통행했는데, 재조성 과정에서 극심한 교통 혼잡이 초래되어 4년의 공사 기간 내내 비판이 쏟아졌다. 하지만 이후 새롭게 마련된 대로를 통해 도시에서 항구까지 방해받지 않고이동할 수 있게 되었고, 차량 통행 역시 하루 약 1만8천 대 수준으로 감소했다. 올보르 워터프런트의 마스터플랜은 도시의 중세 시대 중심지와 주변의 피오르 지역을 하나로 연결한다. 산업용 항만과 이로 인한 과중한 교통량으로 인해 피오르지역은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시민들의 접근이 그리 용이하지 않은 편이었다. 도시의 전반적인 구조와 결합하면서 도시와 피오르 사이에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었고, 이전에는 배후에 가려져 있던 공간이 새롭고 매력적인 모습으로 변모해 전면에 등장하게 되었다. 다섯 가지 핵심 구역 마스터플랜은 다섯 가지 핵심 구역을 강조했다. 먼저 ‘블러바드Boulevard’는 폭이 넓은 간선 도로를 중심부에 여백을 둔 2차선 도로로 탈바꿈시켰다. 도로의 경로가 남쪽으로 변경되었는데, 워터프런트를 확장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를 통해 시내에서 피오르로 접근하는것이 가능해졌다. 부두를 따라 약 1km 이어지는 블러바드의 양변에는 나무를 식재했으며 자전거 이용자와 보행자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도록 세밀한 디테일에 신경 썼다.‘프롬나드Promenade’는 워터프런트를 따라 배치된 일련의 광장으로서 계단, 테라스, 전망 플랫폼 등을 통해 사람들이 물에 가깝게 접근할 수 있고, 다채로운 경험과 조망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욤프루 앤 파크Jomfru Ane Park’는 다양한 테마와 특성을 지닌 일련의 도시 정원들로서 프롬나드를 통해 하나로 연결된다. 주변의 상업 시설을 이용할 수 있고 공놀이, 일광욕 등의 활동을 즐길 수 있다. 다양하고 많은 이용객을 만족시킬 수 있는 견고하고 매력적인 공간을목표로 했다. ‘캐슬 스퀘어Castle Square’는 도시와 항구 사이에 존재하는 이러한 휴식 공간들의 가장자리에 해당된다. 역사적 중요성을 지닌 제방을 둘러싼 넓은 녹지 공간을 마련해 중세에 건립된 올보르 캐슬Aalborg Castle이 다시 한 번 항구의 중심으로 우뚝 서게 했다. 끝으로 무성하게 숲이 우거진 ‘우촌 파크Utzon Park’는 구불구불한 산책로와 벚나무가 학생 및 청년들을 위한 주거지와 우촌 센터Utzon Centre를 둘러싸고 있다. 올보르 태생의 세계적인 건축가 이외른 우촌Jørn Utzon을 기념하기 위해 공원과 건물이 조성되었다. Landscape ArchitectC.F. Møller Architects,Vibeke Rønnow Landscape Architects EngineerCOWI CollaboratorÅF Hansen & Henneberg(lighting design) ClientAalborg Municipality LocationAalborg, Denmark Size170,000m2 Year of Competition2004 Construction Period2005~2012 PhotographsAalborg Kommune, Helene Høyer Mikkelsen,Julian Weyer, Martin Kristiansen, Vibeke Rønnow C.F. 묄러(C.F. Møller)는 1924년에 설립된 건축설계사무소로 북유럽과전 세계를 무대로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는 선도적인 회사다.현재 C.F. 묄러 본사는 덴마크 오르후스에 있으며 코펜하겐, 올보르, 오슬로, 스톡홀름, 런던 등지에 5개의 지사를 운영하고 있다. C.F. 묄러는장소 특정적이고 지속가능하며 창조적인 설계 해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C.F. Møller / C.F. Møller
  • [칼럼] 뻘 비치를 사뿐하게 누볐다 Column: Running a Practice Is Just Like Walking on the Mud Beach
    시대가 변했고 가치도 변했다 내가 조경학과에 다니던 시절은 피터 워커와 그의 후학 조지 하그리브스로 대표되는 ‘개인’의 선구적 프랙티스에 매료되었던 시절이다. 그리고 소위 ‘조금 한다’는 학부생들은 설계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내 사무실을 하겠다’는 생각은 아무것도 모르던 그 시절부터 이렇게 자라고 있었다. 설계사무소를 연다는 것을 ‘창업’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어색한 이유는, 이 일을 이윤을 창출해야 하는 ‘비즈니스’라고 생각하며 시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워커나 하그리브스가 비즈니스 면에서도 매우 뛰어나다는 것을 그 후 알았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그들의 비즈니스 모델을 한국에서 적용하기 위해 할 수 있었던 일은 많지 않았다. 시장의 크기, 수주 구조, 계약과 지불 등 모든 면에서 한국과 미국은 달랐다. 뛰어난 재능을 가졌으나 취직할 곳이 없어 경계 없는 국경을 넘어 쏟아져 들어오는 인턴들로 넘쳐나는 네덜란드도 아니었다. 2006년에 서울에서 사무실을 열기는 했지만 어디서 어떻게 일을 수주해야 하는지 전혀 몰랐고, 사실 지금도 잘 모른다. 우연한 계기로 일이 생겼고, 전혀 모르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클라이언트를 소개 받았다. 이런 불확실성을 관통하여 지금까지 10년을 버티어 냈으니, 한편 스스로 자랑스럽기도 하다. 오피스박김의 지난 10년을 뒤돌아보면, 당시에는 힘겨운 시도 혹은 실패로 보이는 순간들이 있었지만,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지적 역량이 축적되었고 우리를 새로운 가능성으로 안내하였다. 그간 남겨 놓은 텍스트를 묶어 단행본으로 출판하자는 의견에 공감하게 되어 올 가을에 그 축적물이 책으로 나올 예정이고, 오피스박김 후학들을 중심으로 랜드스케이프의 미래Landscape for Tomorrow를 조망할 작은 컨퍼런스를 준비 중이다. 앞으로 10년의 미래 역시 불분명하겠지만, 계속 도전해야 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만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누구도 요구하지 않은 일종의 ‘사명감’ 같은 것이 있는데, 나부터가 일을 제대로 해서 제대로 지어야 우리의 일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받을 것이고, 이러한 것들이 쌓이다 보면 우리의 후학들이 지금의 오피스박김 보다 조금이라도 더 수월한 환경에서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마음이다. ‘돈 주고 조경 설계 처음 맡겨 본다’는 분들이 여전히 있고, 이런 클라이언트의 ‘계몽’ 역시 우리의 일이다. 사실 사명감이라고 말했지만 이것은 생존을 위한 반사 작용이기도 하다. 스스로 우리의 것에 가치를 부여하지 않으면, 과연 누가 의미를 부여해 줄 것인가? 어느 주말, 우리 집 강아지 마리와 함께 양화한강공원에서 왕복 4km를 뛰었다. 뛰면서 돌아본 주변에는, 나만큼이나 고된 한 주를 보냈을 것으로 짐작되는 어느 가장이 어린 아들과 딸을 데리고 잔디 사면에 누워 눈을 감고 있었고, 휠체어를 탄 어느 중년은 한강물이 찰랑대는 강가까지 내려가 하염없이 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 다리는 당시 공원 설계와 시공을 회상하며, 갈대지형과 사석호안그리고 뻘 비치를 사뿐하게 누볐다. ‘세상에서 이런 호사를 누릴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 하는 생각은 또 그 후 한동안 진격할 수 있는 힘을 준다. 한국에서의 경험이 아직 일천하여 의견 개진이 매우 조심스러우나, ‘창업’에 관한 기획 의도를 존중하며 소견을 밝히자면, 한국에서 설계사무소를 여는 것을 굳이 장려하고 싶지도, 그렇다고 말리고 싶지도 않다. 그러나 몇 가지 떠오르는 생각들은 있다. 먼저, 너무 빨리 열려고 조급해 할 필요는 없다. 설계를 하다가 자기 사무실을 열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오면 그때 열면 된다. 르네상스 이후 별로 변한 것이 없는 설계라는 직능은 가장 고전적인 업무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개업 초기의 열정도 좋지만 대형 회사에 소모되지 않고 직원들 월급 안 밀리려면 현실을 이겨 낼 수 있는 명확한 대차 대조표가 있어야 한다. 원한다면 때는 언젠가 올 수 있다. 그러나 오지 않더라도, 사무소에서 일하되 소장처럼 일하면 된다. 그렇게 주인처럼 설계하다 보면 자연히 어떤 위치에 있던 소장이 되어 있을 것이다. 만약 이러한 훈수에도 심장박동이 느려지지 않는다면, ‘주변부’를 주목하기 바란다. 설계라는 중심 영역 대신 이와 관련된 새로운 외연을 탐험하는 것도 개척자의 특권이다. 우리가 여전히 조경에 흥미를 느끼는 것은 도입 40여년이 지났지만 아직 개척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공자 역시 “부귀가 구한다고 얻어지는 것이라면 비록 채찍을 잡고 말을 모는 사람 노릇이라도 하겠지만 만약 구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면 내가 좋아하는 것을 따르겠다”라고 하니, 나의 발걸음이 양화의 뻘 비치를 사뿐하게 누빌 수 있나 보다. 김정윤은 서울대학교와 하버드 대학교 GSD 졸 업 후 네덜란드 West 8 등에서 실무를 쌓았다. 치치 지진 메모리얼 국제설계공모당선을 계기로 박윤진과 함께 오피스박김을 설립했다(2004). 네덜란드 조경건축사이며 바허닝엔 대학교에 출강했다. 차세대디자인리더(산업자원부 2007), 광교공원 디자인커미셔너(2008), 서울형공공건축가(2011)로 선정되었고,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교 놀튼 건축대학원이 선도적 조경가에게 수여해온 글림처특훈교수(2011)로 임명되어 강의했다. ‘양화한강공원’, ‘광교신도시 공원시스템’, ‘SBS 프리즘 타워’, ‘현대캐피탈 배구단 캠프’, ‘CJ 광교통합연구소’ 등 공공과 민간 영역을 넘나드는 다양한 스케일의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 [에디토리얼] 그들의 참신함을 응원한다 Editorial: For Their New Start
    강의실이나 작업실이 아닌 내 연구실에서 학생 설계안 크리틱하는 일, 대학원생 논문 지도하는 일, 가끔 찾아오는 졸업한 제자와 대화하는 일을 나는 ‘외래 본다’라고 총칭한다. 물론 그들을 환자 취급한다는 뜻은 아니다. 여유 있게 호흡하며 이야기 나누지 못하고 종합병원 의사처럼 분초를 다투며 대하는 나 자신을 반성하는 의미로 쓰는 말이다. 모든게 새로 시작되는 계절인 탓일까. 이번 봄에는 정말 많은 외래를 봤다. 학업 상담, 진로 상담, 인생 상담이 줄을 이었다. 그중 몇 가지 이야기를 간추려 옮긴다. #1. 고3 티가 여전한 한 신입생. 놀랍게도 중학생 때부터 조경가가 되리라 마음먹었다 한다. 어느 ‘미드’의 배경으로 나온 시카고 밀레니엄 파크에 매료됐고, 몇 번의 클릭으로 그곳의 설계자가 캐서린 구스타프슨임을 알아냈다고 한다. 마사 슈왈츠에게도 강한 팬심을 느끼고 있다 한다. 놀란 내 표정에 고무되어 어떻게 하면 그들 같은 스타 조경가가 될 수 있는지 돌직구 질문을 날린다. 말문이 막힌다. 글쎄, 많이 보고 읽고 그리며 안목을 기르라는, 하나마나한 답을 우물거린다. #2. 3학년 미학 시간에 눈에 띈 한 낯선 남학생. 언제 제대했는지 묻자 이번에 복학한 건 맞는데 군대를 다녀온 게 아니라 2년간 휴학하며 창업 동아리활동에 전력을 쏟아 부었다 답한다. 내성적인 인상이지만 말문이 트이자 미래의 사업 계획이 줄줄 쏟아진다. ‘생태적 디자인으로 지구와 인류를 구하는’ 기업을 고등학교 때부터 구상해 왔다고 한다. 포어스ForEarth.ForUs라는 사명도 미리 지어놓았다고. 뭐라 내가 말을 보탤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관심과 응원의 미소면 충분. 생태학과 상상력을 함께 다룬 책 몇 권을 소개. #3. 수시 입시 면접 때부터 대학원생급 전공 지식으로 강한 인상을 남긴 한 4학년 여학생. 학년이 올라가며 설계 스튜디오는 물론 이론 과목에서도 빼어난 성과를 보이고 있고 공모전 수상도 다수. 졸업 후의 계획을 묻자 명문 디자인 스쿨로 유학 가서 도시설계를 전공해 사회적 기여를 하는 전문가가 되고 싶다 한다. 생각했던 것보다 엉성하고 허약한 조경판이 못마땅하거나 불안한가 보다. 상담의 제1원칙은 잘 들어주는 것임을 알지만, 아까운 인재 하나 놓칠 판이니 적당히 개입하지 않을 수 없다. 다 안하려고 할 때 하면 100미터 달리기 혼자 하는 것처럼 쉽지 않을까. 늘 고상한 척 하는 교수가 평소와 달리 현실적으로 접근하자 다시 생각해 보겠다 한다. 갑자기 책임감 비슷한 게 생긴다. #4. 비교적 늦은 나이에 유학해 조경학 석사를 마치고 유명 설계사무소에서 2년여 일하다 돌아온 삼십대 중반의 제자. CG 숙련공 역할만 반복하다 보니 세계 최고의 오피스라는 간판에서도, 뉴요커 생활의 그럴싸한 허세에서도 만족감을 얻지 못했다한다. 비슷한 처지로 십 년씩 버텨온 선배들 그림자를 밟느니 열악하더라도 한국 조경에서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하는 게 낫겠다 싶어 미련 없이 짐을 쌌다고 한다. 돌아오니 광야에 던져진 것처럼 막막하다는 그에게는 오백 몇 잔이 답이다. 책임질 수 없어 주저했지만 취기를 빌어 독립을 권했다. 자, 건배사, 내가 ‘독’하면 넌 ‘립’하는 거다. #5. 대학원 졸업 후 신생 설계사무소에 들어가 근십 년을 묵묵히 버텨 온 제자. 세상 잘 읽는 영민한 친구들이 줄줄이 설계 일을 접는 중에도 말없이 설계실을 지키며 집중해 온 그, 제자지만 존경한다. 그런 그가 요즘 조금 흔들리나 보다. 보수나 근무환경 탓이 아니라 한다. 십 년 하면 뭔가 통찰력 있는 디자인 감각이 생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더란다. 앞으로 십 년 더 한다고, 그러다 오십대가 된다고 달라질 것 같지 않음을 절감한다고 고백한다. 언젠가 자신의 사무실을 열어 따뜻한 공간, 좋은 환경설계하는 걸 꿈꾸지만 그럴 수 있을지 의심된다며의기소침. 괜찮아, 조금 더 가면 길이 나올 거야. 내말이 형식적으로 들렸을 테지만, 분명히 진심이다. 테이블에 빈 맥주잔이 가득 찬다. 얼핏 아무 관계가 없어 보이는 이들의 이야기를 하나로 묶는 키워드가 있다. ‘하고 싶은 일’이 분명하다는 점이다. ‘하고 싶은 일’이 ‘해야 하는 일’과 소통하고 또 ‘잘 하는 일’과의 교점을 찾는다면 그들은 앞에 마주친 두꺼운 벽을 유연하게 통과할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그들의 생각이 선생들처럼, 선배들처럼 진부하지 않고, 참신하기 때문이다. 막 자신의 작업 공간을 꾸려 독립한 삼십대 조경가 아홉 명의 이야기를 다룬 이번 달 특집 ‘설계사무소를 시작한다는 것’을 기획하며 여러 젊은 조경가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맥주 살이 더 늘었음은 물론이다. 경험해 보지 못해서인지 나는 ‘창업’이라는 두 글자에 심한 중압감을 느낀다. 그들은 하나같이 그렇지 않았다. 설계 배우고 설계해오면서 늘 가졌던 꿈이 이제 현실로 다가왔을 뿐이라고 한다. 누구는 우연한 기회에 갑자기, 누군가는 몇 년간의 준비 기간을 거쳐 시작한 차이가 있을 뿐. 그들에게서 발견한 또 하나의 공통점은 태도와 작업 방식의 참신함이다. 그 참신의 바탕에는 하고 싶은 일, 해야 하는 일, 잘 하는 일의 행복한 동거가 있었다. 그들과 만나고 돌아와 참신斬新의 뜻을 사전에서 확인해 봤다. 새롭고 산뜻하다. 그런데 ‘참斬’자의 유래가 예사롭지 않다. 고대 중국에서 죄인을 죽이던 극형 틀인 수레와 도끼로 이루어진 글자다. 참신이란 과거를 도끼로 치는, 완벽한 단절을 뜻하는 말이다. 참신함을 유지하는 일은 더 어렵다. 종이 한 장 차이로 참신은 진부가 된다. 진부陳腐. 사상, 표현, 행동 따위가 낡아서 새롭지 못함. 썩은 고기腐를 남들 보라고 전시陳한다는 뜻이다. 어렵게 구한 고기를 자랑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 계속 꺼내 보여주다 보면 고기는 썩고 악취가 난다. 고기주인은 썩은 고기에 익숙해져 고약한 냄새가 나는지도 모른다. 교훈과 계몽으로 흘러버린 글, 한 번 더 막 나가며 맺는다. 한국 조경 40년, 그러나 아직 걸음마 단계다. 미숙하다. 새로운 시작, 당신들의 영토가 무한히 펼쳐져 있다. 진부함을 경계하고 참신함을 이어가길 당부한다.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 배정한[email protected] / 편집주간, 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
  • [CODA] 누구에게나 시작은 있다
    한참을 망설였다. 분홍빛이 살짝 도는 여린 꽃잎이 마치 겹겹이 두른 여인의 농염한 치맛자락처럼 화려한 작약과, 한 달쯤 물을 안 주어도 끄떡없이 늘 푸르름을 선사할 스투키 사이에서 한동안 움직이기 힘들었다. 결국 스투키 화분을 옆구리에 끼고서 아쉬운 발걸음을 L의 사무실로 향했다. 실용주의자인 L은 “꽃은 금방 시들 잖아”하며 스투키를 반겨주었다. L은 공동으로 쓰던 사무실이 문을 닫게 되면서 의도치 않게 개인 사무실을 열게 되었다. 한동안 집 서재를 사무실로 꾸밀 것인지 고민하다가 얼마 전 작은 사무실을 얻었다. 계획된 일은 아니었지만 막상 닥치니 이런저런 아이디어가 떠오른다며 고객 유치를 위한 궁리로 부산한 눈치였다. 특히 새로 마련한 공간이 비좁다며 엄살을 떨면서도 하루에도 몇 번씩 새로운 가구 배치계획을 들려주곤 했다. 작은 공간이지만 자기 자리를 찾아간 화분을 보니 지난달 창업 특집(설계사무소를 시작한다는 것)을 위해 찾았던 강연주 소장과의 인터뷰가 떠올랐다. “사실 번듯한 사무실 공간을 마련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직원을 뽑은 것은 회사를 만들고 1년쯤 지났을 때다. 당시 자리를 빌려 쓰던 사무실에서 나오게 되면서 신혼집 거실에 책상을 놓고 직원들 한두 명을 불렀다.” 강 소장의 마지막 말은 나를 순식간에 30년 전으로 데려갔다. 지금은 가물가물한 기억이지만, 이사 후 갓 생긴 내 방이 다시 없어지고 동생과 한 방을 쓰게 된 것이 불만스러웠던 것 같다. 분명하게 기억나는 것은 어느 날 얼굴이 하얀 아저씨가 “오늘부터 매일 올 거야”라고 말하던 장면이다. 그리고 집에서 넘쳐나는 청사진 뒷면에 그림을 그리던 기억, 버스 타는 법을 교육시킨다며 청사진 굽는 가게에 혼자 보냈던 아버지의 심부름을 완수하지 못해 울면서 돌아왔던 장면들이 끊어진 필름을 이어붙인 듯 재생되었다. 아버지가 창업했을 때가 당신 나이 40일 때였다. 당시 어렸던 나는 집에서 설계사무소를 시작했던 아버지가 이상하게 느껴졌고 그런 인상은 그대로 내 안에 봉인되어 있었다. 아버지는 얼마 지나지 않아 번듯한 사무실을 열었고 그 후로 오랫동안 크고 작은 부침을 겪었다. 내가 어른이 되어가면서 그러한 부침 가운데서도 ‘설계’를 고집하는 아버지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심지어 그것을 대물림하려는 바람은 끝까지 피하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사업 따위는 절대로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고 차분한 목소리로 창업 당시를 설명하는 강 소장을 바라보며 기억의 빗장이 풀리고 지금 내 나이가 30년 전의 아버지와 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생업 전선에 뛰어든 이래로 나에게 창업은 먼 나라 이야기였다. 그런데 이제 주변의 가까운 선후배들이 사무실을 열거나 창업 계획을 세우는 일이 점점 많아진다. 소심한 월급쟁이인 나는 지인들이 새로 오픈하는 사무실을 보면, ‘저 임대료를 감당하려면 일을 얼마나 해야 할까’하는 걱정이 앞선다. 혹은 망망대해 같은 세상에 당당하게 뛰어드는 (혹은 떠밀려가든) 그들의 용기가 부럽기도 하다. 심리 상담을 업으로 하는 L은 이런 나의 넋두리를 듣더니 엷은 미소를 지었다. “용기의 임계점은 변화의 시작이야. 용기를 내지 않는다는 것은 변하기 싫다는 거고. 대신 남이 변하길 바라지.” “망설인다는 것은 회피인 거로군요.” “자신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기도 하고. 또 피하다보면 고여서 썩게 마련이지.” “흔히 ‘창업한다’를 ‘독립한다’고 표현하잖아요.” “그래, 독립은 새로운 시작이지.” “지난 달 칼럼에서 김정윤 소장이 ‘사무소에서 일하되 소장처럼 일하면 된다. 그렇게 주인처럼 설계하다 보면 자연히 어떤 위치에 있던 소장이 되어 있을 것이다’라고 한 말도 창업만큼 주도적인 삶을 말하는 듯해서 인상적이었어요.” “그 집단에서 자아가 독립했다는 의미지.” “이제는 시키는 대로 하지 않는다는 의미인가요(웃음)” “음. 용기를 낼 때 말이야. 접어야 할 것과 접지 말아야 하는 것을 아는 게 아닐까?” “어렵네. 그런데 용기인줄 알았는데 객기일 수도 있잖아요.” “용기는 미래를 예측하는 거고, 객기는 예측을 하지 않는 거지. 용기가 낙천이라면 객기는 낙관? 나에게 일어나는 일을 전체로 볼 때와 하나의 점으로 볼 때의 차이가 있어. 전체로 받아들이면 용기가 없어지지만 멀리서 점으로 보면 용기가 생겨. 지금의 실수도 멀리 보면 과정이거든. 점들이 모여 삶이 되는 거니까, 멀리서 보면 용기를 못 낼 이유가 없어. 근데 말이야, 저 화분은 창가에 놓는 게 더 어울리지 않아” 그날 우리는 옥상 달빛 아래서 술잔을 기울이며 밤새 수다를 떨었다. L은 주변 아파트 단지의 불빛을 가리키며, 주민들을 모두 고객으로 만들겠다는 야심찬 구상을 들려주었다. 30년 전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미래를 낙관했을까, 혹은 변화가 두렵지 않았던 것일까? 아니면 두렵지만 용기를 냈던 걸까? 이번 달 칼럼이나 오피니언 란에 도착한 독자편지를 보면 지난 창업 특집이 여러 사람들의 마음을 휘저어 놓았음을 알 수 있다. 창업을 앞둔 이들 뿐만 아니라 학생과 직장인들, 그리고 오래 전 창업했던 선배들까지. 살면서 우리는 수없이 변화를 도모해야 할 순간이 언제인지 고민하고 시작을 망설인다. 안에 있든 밖에 있든, 나를 포함해 용기 있는 독립을 꿈꾸는 많은 이들을 응원한다.
  • [편집자의 서재] 여보세요, 거기 누구 없어요? Editor’s Library: Hallo?-er det noen her?
    때 이른 더위가 서울을 덮쳤다. 지난주에는 32도를 웃도는 날씨에 올해 첫 폭염 주의보가 발령되기도 했다. 굳이 최고 기온을 확인하지 않아도, 출퇴근길에 만나는 사람들의 가벼워진 옷차림과 태양의 열기에 익어 말랑말랑해진 아스팔트 도로가 여름이 오고 있음을 실감하게 한다. 낮도 길어졌다. 퇴근 후, 집 근처 지하철역에 도착해 역사를 빠져나갈 때면 어두웠던 하늘이 전보다 밝아졌다. 본격적인 여름이 찾아오기 전의 초여름 밤은 가을 날씨와 비슷하다.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횡단보도의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으면 점점 마음이 급해진다. 낮이 길어져 밤이 짧아진 데다가 열대야가 찾아오면 사라져 버릴 이맘때의 여름밤이 문득 아까워지는 것이다. 요즘엔 땀이 나도 집으로향하는 계단을 뛰어서 오를 때가 많다. 서양에서는 예로부터 한여름 밤—일 년 중 가장 낮이 긴 하지의 전날밤—에 신비로운 일이 일어난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왔고 셰익스피어는 이에 착안해 『한여름 밤의 꿈』1을 썼다. “깊은 밤 아름다운 그 시간은 이렇게 찾아와 마음을 물들이고 영원한 여름밤의 꿈을 기억하고 있어요. 다시 아침이 와도 잊히지 않도록”2이라고 여름밤을 몽환적으로 묘사한 김현식의 노래가 수차례 리메이크되기도 했다. 그 외에도 여름밤에 진행되는 각종 행사의 홍보 문구에 ‘환상’이라는 단어가 곧 잘 쓰이는 걸 보면, 꽤 많은 사람이 여름밤에 신비로움을 느끼는 모양이다. 『여보세요, 거기 누구 없어요?』의 주인공인 요아킴도 여름밤의 기이함에 대해 알고 있는 인물이다. 어린 시절, 요아킴의 동생을 임신한 어머니가 출산이 임박해 아버지와 함께 집을 비운 사이 믿을 수 없는 체험을 했기 때문이다. 곧 태어날 동생에 대해 생각하며 밤하늘을 바라보던 요아킴은 어둠을 쏜살같이 가로지르는 별똥별하나를 발견한다. 뒤이어 정원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 정원의 사과나무를 살펴보니, 놀랍게도 외계인이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삽화에 표현된 외계인 ‘미카’의 외양은 영화 ‘이티E.T.’의 외계인과는 조금 다르다. 머리카락이 없고 머리가 몸보다 상대적으로 크지만, 팔다리의 길이나 눈, 코, 입의 형태와 위치 등이 사람과 상당히 비슷하다. 무엇보다 미카에게는 손가락 끝을 통해 상대의 감정을 읽어내는 능력이 없다. 대신 미카는 유창하게 지구의 말(정확히는 노르웨이어)을 구사할 줄 안다. 미카는 자신을 보고 혼란에 빠진 요아킴에게 태연하게 묻는다. “너는 누구니?”3 책의 저자인 요슈타인 가아더Jostein Gaarder는 철학 입문 소설로 불리는 『소피의 세계』의 작가다. 『소피의 세계』에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무거운 주제를 쉽게 풀어냈던 그의 능력은 『여보세요, 거기 누구 없어요?』에서도 어김없이 발휘된다. 그는 주인공 요아킴과 외계인 미카의 대화를 통해 우주의 탄생과 인간의 역사, 삶의 가치 그리고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라는 심오한 물음의 답에 관해 이야기한다. 이야기 초반의 미카와 요아킴의 대화는 독자에게 열린 마음으로 책을 읽어줄 것을 은근히 요구한다. 나무에 거꾸로 매달린 미카는 요아킴에게 왜 물구나무를 서있냐고 묻는다. 요아킴은 황당해하며 미카를 땅 위에 바로 설 수 있도록 도와주고, 미카는 자신이 거꾸로 요아킴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어 미카는 달에 갈 때 위쪽으로 여행하는지, 아래쪽으로 여행하는지 묻고 요아킴은 자신 있게 위쪽이라고 답한다. “하지만 넌 달에 내릴때 달 표면으로 날아와 앉잖아”, “그리고 네가 그 곳에 가 있을 때는 이 지구를 올려다보잖니”, “그럼 이 별과 달의 중간 어딘가에는 아래가 위가 되고 위가 아래가 되는 데가 있겠네”4 쉴 틈 없이 이어지는 미카의 질문에 요아킴은 한참을 생각하다가 그게 맞다고 답한다. 단순히 보자면 ‘중력’이라는 과학적 개념을 깨닫게 하는 대화지만, 이는 상대방을 이해하는 방법과 불변의 진리는 없다는 사실도 함께 다루고 있다. 이 둘의 대화는 끊임없이 이어져 ‘진화론’에 다다른다. “그렇지만 우린 다른 별에서 왔는데 이처럼 닮았다는 게 이상하지 않니”5라는 대목에서 미카의 생김새가 사람과 비슷하게 설정된 이유를 깨닫게 된다. 둘은 눈과 코, 입, 귀가 필요한 이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더 나아가 온 우주의 생명체는 하나의 지점을 향해 진화하고 있다고 결론을 내린다. “비록 산 꼭대기로 오르는 길은 많을지 모르지만 산은 하나야. 우리가 많이 닮은 이유는 우리 각자가 산을 오르는 사람이기 때문일 거야. 우린 그 곳에서, 그 산 꼭대기에서 함께 커다란 기념비를 세울지도 몰라”6 요아킴의 부모님이 요아킴의 동생과 함께 집으로 돌아오고 미카는 한여름 밤이 만들어낸 환상이었던 것처럼 사라져 버린다. 어쩌면 이 모든 일들은 꿈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삶에서 가장 중요한 만남은 자는 동안에도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는단다”7는 요아킴의 말처럼 그날 밤의 일이 꿈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내가 책을 통해 요아킴과 미카를 만났고 그들의 대화를 통해 생명의 가치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벌써 6월이다. 1년의 반이 흘렀고 자연스레 지난 반년을 뒤돌아보게 된다. 알찬 시간을 보낸 이에게는 즐거운 일일지 모르지만, 어떤 이는 자신의 삶을 평범하다고 느끼며 자신이 아무 쓸모 없는 존재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런 이에게 힘이 될 만한 미카의 말을 전한다. “그냥 돌멩이라고? 이 세상에 있는 건 아무것도 평범하지 않아. 이 세상에 존재하는 건 모두 그 커다란 수수께끼의 일부분이니까. 너와 나도 마찬가지야. 우린 아무도 짐작할 수 없는 수수께끼야.
  • 버려진 목욕탕에서 예술로 목욕하기 5월 15일, ‘행화탕프로젝트’ 개관식 개최
    버려진 목욕탕이 문화·예술 공간으로 다시 태어난다. 지난 5월 15일, 마포구 아현동에 위치한 행화탕에서 ‘행화탕프로젝트’ 개관식이 열렸다. 축제행성이 주최하고 61311 기획단이 주관한 이 행사는 아현동 일대와 더불어 행화탕이 재개발될 때까지, 2년간 진행될 프로젝트의 시작을 알렸다. 기획단의 명칭인 ‘61311’은 행화탕의 지번 주소에서 따왔으며 ‘행화탕’이라는 건물의 명칭을 그대로 사용해 지역의 기억과 문화를 유지하고자 했다. 61311 기획단은 문화, 예술, 공간, 건축, 대중음악, 커뮤니티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하는 젊은 예술 기획가인 권효진(문화·공연 기획가), 김반야(대중음악 평론가, 방송 작가), 김보경(독립 문화 기획가), 박경린(독립 큐레이터), 서상혁(축제 기획가), 양은혜(마실와이드 문화부 에디터), 이아림(매거진 및 사보 에디터), 이원형(건축가, 워니스튜디오(wonystudio) 대표), 임경민(전시 기획·운영가), 주왕택(테크니컬 슈퍼바이저, 제이투커뮤니케이션 대표)으로 이루어진 프로젝트 그룹이다. 이들은 공연, 시각 예술 분야 대부분의 창작자들이 예술 기금에 의존해 신작을 발표해야 하는 현실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누며 대안을 모색해 나가고 있다. 또한 ‘행화탕프로젝트’를 진행하며 행화탕을 지역 커뮤니티 활동과 예술프로그램이 가득한 공간으로 만들어 나갈 예정이다. 낡은 목욕탕의 재발견 1976년에 지어진 행화탕은 아현동의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해오던 목욕탕이다. 그러나 2000년대에 찜질방과 고급 스파 시설이 증가해 행화탕을 찾던 사람들의 발길이 줄어들기 시작했고, 2011년 아현동이 재개발 지역으로 지정되면서 결국 문을 닫게 됐다. 5년여간 비어 있던 공간에 올해 초부터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축제·공연 기획사인 축제행성이 행화탕을 임차해 복합 문화·예술 공간으로 탈바꿈시키고자 한 것이다. 축제행성은 다양한 예술 작품과 프로그램을 선보일만한 장소를 찾고 있었는데, 그들에게 낡고 어둑한 분위기의 행화탕은 예술 프로그램으로 채워지기에 적합한 환상적인 공간이었다. 2월부터 본격적인 공간 보수 작업이 기획 단원인 이원형 건축가의 지휘 아래 진행됐다. 61311의 다른 단원들도 틈틈이 행화탕에 방문해 공사와 청소에 참여했다. 폐관될 때, 욕조와 목욕 시설이 모두 정리되어서 행화탕이 과거에 목욕탕이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는 요소가 많지 않았다. 벽과 바닥에 남은 공간 분할의 흔적을 이용해 기존 목욕탕의 구조를 최대한 되살리고 천장을 제거하여 서까래를 노출시켰다. 이어 물청소, 전기 배선 설치, 지붕 방수, 화장실 보수, 화단 정리 등 대대적인 작업이 진행되었다. 이를 통해 탈의실, 목욕탕, 사우나실 등 10개의 다채로운 공간이 조성되었다. 행화탕은 문이 많아 전시되는 작품의 성격에 따라 입구를 변경할 수 있으며 건물 자체가 하나의 작품이 되기도 한다. 이같이 새로 태어난 행화탕은 다양한 전시와 공연, 워크숍, 교육 등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대관료가 저렴해 창작자들에게 열린 공간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목욕탕을 가득 채운 문화·예술 프로그램 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약 200여 명이 행화탕의 개관식에 참여했다. 특히 과거 행화탕을 이용했던 지역 주민들이 많이 찾아와 그 의미가 컸다. 개관식에는 행화탕프로젝트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공연프로그램인 상상 발전소의 ‘수중인간’, 보이스씨어터 몸MOM소리의 ‘도시소리동굴프로젝트’, 모다트의 ‘전봉준’, 서울괴담의 ‘마술극장’이 진행됐다. 또한, 개관 초청 전시 작품으로 이원형의 ‘몸의 정원’, 구수현의 ‘The Ferris Wheel페리스 휠’, 신용구의 ‘꿈의 조각들을 모으다’가 설치되었다.상상발전소의 공연 ‘수중인간’은 뱃사람을 유혹하던 사이렌의 모습을 현대 융복합 콘텐츠로 승화시킨 작품이다. 탈의실에 길쭉한 원통형 수조를 설치하여 수중 퍼포먼스를 펼쳤다. 목욕탕에 설치된 전시 작품 이원형의 ‘몸의 정원’은 공간의 용도와 동선의 재구성을 통해 버려진 행화탕을 ‘예술로 목욕하는 공간’으로 조성하고자 했다. 바닥을 채운 검은 물과 한쪽 벽면에서 잔잔히 쏟아져 내리는 물, 하얀 징검다리, 전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을 통해 공간을 입체적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작품을 감상하기위해서는 행화탕의 뒷문인 보일러실의 작은 문을 통과해야 하는데, 어둡고 좁은 보일러실은 넓고 밝은 목욕탕을 돋보이게 한다. 또한 목욕탕 바닥의 물과 물이 빚어내는 소리는 잠들어 있던 몸의 감각을 깨우고, 하얀 징검다리 위를 건너는 관객들의 움직임은 작품의 일부가 된다. 작가는 목욕탕에서 몸을 씻겨 주었던 물이 이제 마음을 씻어 주고, 물소리와 말이 뒤섞여 울리는 소리는 음악이 되어 관객이 행화탕을 ‘몸의 정원’으로 느끼기를 바랐다. 창고에 설치된 신용구의 전시 작품 ‘꿈의 조각들을 모으다’는 한지로 만든 꽃을 통해 밝음과 어둠, 삶의 순환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하늘색 계단, 슬레이트 지붕사이로 들어오는 햇살과 꽃이 가진 상징성을 이용해 희망을 이야기했다. 이중 ‘몸의 정원’, ‘The Ferris Wheel’과 공간투어, 기획단 소개 및 행화탕 옛모습 소개 상영 프로그램은 5월 28일까지 전시 및 진행되었다. 이후 ‘몸의 정원’은 공연 프로그램 중 하나인 ‘수중인간’, 수중 사진작가의 사진 전시와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물의 풍경(가제)’이라는 융복합 작품으로 재탄생될 예정이다. ‘물의 풍경’ 전시는 6월 1일부터 12일까지로 계획되어 있으며 자세한 내용은 추후 행화탕 페이스북(www.facebook.com/haenghwatang)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