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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P에 누워 백두대간을 노닐다
‘백두대간 와유’ 전, 2016. 4. 2. ~ 2016. 5. 29.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가 문을 연 지 만 2년이 지났다. 개관 이후 매번 흥미로운 전시를 올리고 있지만, DDP 특유의 비정형 공간을 ‘활용’하여 작품의 의미를 더하는 전시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건축은 사람이 생각할 수 없는 것들을 생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는건축가 자하 하디드의 말이 무색하게도 전시를 통해 DDP의 흥미로운 공간성과 소통하며 의미를 끌어내는 노력이 열매 맺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처럼 막연하게 생각해오던 ‘DDP 공간과 소통하는 전시’가 비로소 무대에 올랐다. 바로 지난 4월 2일부터 5월 29일까지 진행된 ‘백두대간 와유臥遊’ 전이 그 주인공이다. 이번 전시는 작품, 내러티브, 그리고 건축의 힘이 한데 맞물려 시각, 촉각, 체험, 그리고 공간성이 시너지 효과를 자아내며 관람객을 백두대간 안으로 이끌고 있다.
와유, 누워 노닐다 ‘백두대간 와유’ 전은 문봉선 작가의 수묵 산수화 ‘강산여화’(2014), 가구 디자이너 하지훈의 ‘자리’(2014), 산악사진가 10명의 백두대간 실경 사진, 그리고 동선의 곳곳을 꾸미고 있는 백두대간 자생 동식물 일러스트와 문학, 역사, 철학 자료 30점 등이 상호 작용을 통해 풍부한 의미를 생성하고 있는 역동적인 공간으로 구성되었다. 전시의 메인 작품인 문봉선의 ‘강산여화’는 산과 들,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우리 강산의 담담한 모습에장대한 서사시와 같은 격格을 부여한다. 하지훈의 작품‘자리’에 누워 이 강산여화를 감상할 수 있도록 전시가 꾸며져 있는데, 이것이 바로 와유臥遊(누워서 작품을 감상하는 것)다.
와유란 중국 송나라 화가인 종병이 산천을 돌아다니며 그림을 그리다 나이가 들어 나가지 못하자 집 안에 그림을 걸어놓은 채로 누워 감상했다는 데에서 유래한 감상법이다. 사실 이 감상법의 진면목은 직접 체험을 통해 확실하게 드러난다. ‘자리’에 기대 누워 ‘강산여화’를 올려보면 고고한 높은 산봉우리를 마주하는 듯하고, 귓가에 시원한 계곡 바람이 느껴지는 듯하다. 디자인 둘레길을 따라 끊임없이 계속되는 백두대간은 발걸음을 멈추고 편안하게 누워 감상할 때 그 속내를 조금씩 풀어낸다. 수묵 수풀 사이로 점차 사람이 보이고, 그늘을 내어주는 짙은 녹음이 보이고, 드문드문 자동차와 비닐하우스, 철도 길처럼 화폭에 현재성을 부여하는 작은 요소들도 시야에 들어온다. ‘강산여화’와 ‘자리’가 표현하는 공간은 오래된 과거가 아닌, 느긋한 완행열차를 타고 갈 때 창밖으로 보일 법한 실제의 공간이다.
푸른 녹음에 둘러싸인 폭포수 앞에 술잔을 놓고 바위언덕에 걸터앉아 강산을 사유하는 신선의 모습은 우리가 잘 아는 동양 산수화의 한 모습이다. 신선을 바라보는 이는 그 모습에 자신을 대입시키며 화폭의 산수를 ‘체험’한다. 이처럼 화폭이라는 매개를 통해 재현되는 것은 강산이 아니라 그림을 바라보는 나 자신이다.
따라서 동양 산수화의 산수는 화폭 안에서뿐만 아니라 우리의 차원에 실재한다. 어릴 적 읽던 무협지에 나오는, 산수화를 통해 이 산 저 산으로 노니는 고승의 모습을 기억하는가? 비록 높은 도력이 없더라도 시원한 ‘자리’에 의지해 ‘강산여화’ 속 두타산 너머 해돋이를 바라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환유 공간과 수묵화의 만남
‘강산여화’의 백미는 무엇보다 작품의 스케일 그 자체다. 폭 1m, 길이 150m에 달하는 국내 최대의 수묵 산수화가 한눈에 관람객의 시선을 앗아간다. 둥그렇게 꺾어지는 벽을 따라 전시된 작품은 나선형 비탈을 걸어 올라갈수록 새로운 면모를 보인다. 마치 산길을 걸어 오를수록 지평선으로부터 새로운 경관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 같다. 비록 실내라도 꾸준히 비탈을 오르며 산수를 감상하니 그 기분만은 덕유산, 지리산을 오르는 것과 다름이 없다.
‘강산여화’의 힘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데는 공간의 힘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서로 주고받으며 동선을 따라 오가는 DDP 안팎의 공간을 거닐고 있으면 거대한 클라인의 병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이 열린공간들이 상생하는 것을 건축가 자하 하디드는 환유의풍경metonymic landscape이라 표현한 바 있다. DDP내부 전시 공간도 외부의 비정형 곡선에서 생겨난 경관 요소를 그대로 이어받아 둥근 원기둥, 경사면, 타원형 공간 등으로 이루어져 전시 공간의 새로운 형태를 제시한다.
하지만 이런 비정형 공간이 미술 작품의 전시에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근대 미술에 있어 하얀색 직사각형 공간, 또는 화이트 큐브white cube가 지니는 의미는 각별하기 때문이다. 20세기 뉴욕에서 ‘발명’된 근대 공간의 일환으로서 현재까지도 ‘갤러리’ 공간은 보편적으로 하얀 벽, 높은 천장, 그리고 무채색의 바닥으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유행처럼 전 세계로 번졌던 이 양식이 포스트모던 시대에 와서 많은 비판을 받는다. 공간의 단조로운 형태가 미술 작품의 한계로 작용한다는 것이 그 이유다. 거슬러 올라가자면,미국 근대 건축의 아버지라 불리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의 설계로 건축되어 1959년 문을 연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역시 이 화이트 큐브 현상의 문제에 부딪혔다. 작은 추상 작품을 걸 목적으로 원기둥 형태의 곡면을 가지게 된 이 미술관은 이후 여러 근대 작품―크고, 무겁고, 입체적이며, 벽에 거는 형태의―의 전시에 어려움을 겪었다. 화이트 큐브를 전시 공간으로 상정하여 제작된 작품이 화이트 큐브가 아닌 공간에 전시될때 문제가 생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미술계에서 화이트 큐브의 영향은 아직도 가시지 않아 비정형 공간 내 회화 전시는 아직도 여러 문제를 동반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DDP와 같이 현대적, 또는 미래적 공간에 흔히 ‘오랜 전통’과 함께 연상되는 수묵 산수화를 전시하며 시너지 효과를 냈다는 점은 선입견을 깨부수는 놀라운 방식이 아닐 수 없다. 낮은 비탈을 오를수록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는 ‘자리’의 추상 지형역시 공간 내러티브의 깊이를 더해준다. 흑백의 강조가 공간을 순간적으로 단순하게 보이게 할지 몰라도, 그안에서 벌어지는 내러티브는 무한히 확장하고 있다.
산수 안 공간 초월transcendence
“산과 산, 골과 골의 연결은 높고, 낮고, 깊고, 얇고, 가깝고, 멀고, 비우고, 채우고, 모이고, 흩어지고, 이어지고, 끊어지기를 반복한다… 시점이나 원근은 ‘삼원법’을 버무려 다양한 변화를 주었다. ‘안되면 처음으로 돌아가자’라는 말을 수없이 떠올리며 이 시대의 참된 ‘전통회화의 가치는 무엇’이고 그 방법은 없는가? 나는 수없이 되새기며 풀 한 포기, 소나무 한 그루, 계곡 그대로 그 답을 찾고자 이 산 저 산을 헤매었다.” _ 문봉선, ‘백두대간에 부는 바람’ 중 ‘강산여화’의 산수는 여러 방향, 위치, 시각이 동시에 작동하고 있다. 작가의 시선은 화폭 안에서 여러 켜가 겹쳐 있는 형태로 나타나며, 이들을 따라 그림을 감상하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장소로 빨려 들어가 있는 듯하다. 예로부터 동양의 산수화는 서양의 소실점과 다른 삼원법三遠法을 사용한다. 중국 북송 시대 화가이자 동양 산수화론을 과학적으로 연구한 화론가인 곽희는 화폭을 통해 산을 바라보는 시점에는 산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는 고원高遠, 산 앞에서 산의 뒷면을 넘겨보는 심원深遠, 그리고 먼 산을 바라보는 평원平遠이 있다고 했다. 문봉선은 이 세 시점을 적절히 사용함으로써 관람객을 숲 안에 데려다 놓기도 하고, 구불구불한 계곡이 내려다보이는 절벽 위로 옮겨 놓기도 하고, 또는 넓은 평원에서 날아가는 새와 구름을 보여주기도 한다. 화폭을 통해 모든 공간이 열리며 겹침과 확장을 반복한다. ‘강산여화’에 화답하듯 소설가 김훈이 쓴 글‘강산여율’은 삼원법을 통해 나타나는 산수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본다는 것은 활로 표적을 겨누는 자의 시선이 아니다. 대상이 위치한 환경 전체를 자신의 시야로 받아들이는 일이다. 이 전체 속에서 가파른 봉우리들이 나무와 바위의 개별성을 포용하고, 아무 발길도 닿지 않는 산비탈에서 구부러진 생애를 보내고 있는 나무 한 그루도고유한 존재감으로 당당하다. 이 겹눈의 시선이 산과 산 사이의 보이지 않는 구도를 연결해가면서 화폭을 강물로 흐르게 한다.”
필자가 전시장에 방문한 날은 5월 8일, 어버이날이었다. 부모님을 모시고 하지훈 작가의 ‘자리’에 누워 ‘강산여화’에 펼쳐진 산수를 지켜보니 짙은 안개를 지나 어릴 적 부모님과 함께 다녀온 지리산의 산기슭, 법적 ‘어른’이 되어 처음 가본 겨울의 속리산 자락, 말로만 듣던거창의 고송 모습이 떠올랐다. 문봉선의 거친 초묵법이 흐릿하게 떠오르는 기억의 윤곽을 또렷하게 만들었다. ‘자리’에 앉아 와유하던 중에는 내가 산수의 장소로 옮겨졌고, 또 일어나 걷다 보면 산수가 내 안으로 들어왔다. 고요한 새벽 숲 속의 명상과 같은 행위에서 내 신체는 정신과 산수가 오고 가는 매개가 되어 굳은 땅 위에 자릴 지키는 고목과도 같다 느껴졌다. 시공간 여행이 이런 기분일까? ‘백두대간 와유’에서 일어나는 시공간의 겹침은 전시를 풍부하게 만들고 경험과 체험을 압축하며 우리의 공감각을 불러일으킨다.백두대간은 부분적으로나, 전체로나 우리나라 정서와 가장 맞닿아 있는 기억의 공간이자 살아가는 장소다.
백두대간의 실경 사진과 글, ‘강산여화’의 끊어질 듯 끊이지 않는 산자락과 높이 뻗은 산봉우리, 이 모든 것을 감상하기 위한 ‘자리’, 그리고 미소를 자아내는 동식물 일러스트레이션. 전시장과 산수를 오가다 보면 어느새 북한에 위치한 두류산 산맥의 빈자리에 닿는다. 텅 빈화폭은 우리가 볼 수 없는 이 땅의 경관이 너무나도 많음을 한탄하게 한다. 푸른 천지의 모습과 문봉선 작가의 마지막 글귀가 진하게 울리며, 대지의 경관이 정치,사회적 경계와 별개로 끊임없이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이성이 아닌 감성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백두대간의 감성이 깃든 다양한 작품들과 건축물의 독특함이 만들어낸 ‘백두대간 와유’는 공간과 예술의 독특한 만남을 통해 동서양과 시대를 넘나들었다. 이번 전시는 우리에게 기분 좋은 궁금증을 남겨주고 있다. 앞으로도 DDP의 독특한 공간성이 전시의 내용에 유의미하게 활용되는 신선한 전시 기획이 계속해서 나올 수있을 것인가? 이번 전시를 통해 체감한 전시 공간으로서의 DDP의 가능성과 끊임없이 자신을 재창조하고 있는 예술계에 기대를 걸어본다.
신명진은 뉴욕 대학교(NYU)에서 미술사를 전공했다. 동 대학 대학원에서 석사 논문을 쓰던 중 공간과 경관에 마음을 빼앗겨 조경학으로 발길을 돌렸다. 현재는 석사 졸업 후 몸담았던 회사 생활을 뒤로 하고 학업으로 돌아와 서울대학교 생태조경학과 통합설계·미학연구실에서 석사 과정에 재학 중이다. 바쁜 학기 중에도 좋은 전시 소식이 들릴 때면 종종학교 캠퍼스를 탈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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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도시로부터 배우기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아시아의 근현대 건축’ 국제 심포지엄
지난 5월 6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하 ACC)은 ‘라이브러리 스터디’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아시아의 근현대 건축’이라는 타이틀을 단 국제 심포지엄을 열었다. 또한, ACC ‘라이브러리파크 프 로그램’으로 아시아의 주요도시 및 건축과 관련된 다양한 연구 성과물과 수집 자료를 ‘아시아의 근현대 건축’ 주제관에서 전시하고 있다.이는 국제 심포지엄과 더불어 아시아 특유의 도시 공간을 생생하게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이번 심포지엄은 ‘창조적 생산: 아시아의 형식적, 비형식적 도시 조직 사이의 생산적 가능성’을 주제로 진행되었다. 서울, 뭄바이, 싱가포르, 상하이, 하노이 등 아시아를 대표하는 다섯 개 도시를 사례로 삼아 아시아 근현대 도시 건축의 형태와 각 도시의 특수성에 대한 논의가 펼쳐졌다.
형식적, 비형식적 도시 조직 사이의 창조적 생산 가능성 심포지엄을 총괄한 서예례 교수(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환경조경학과)는 “이번 심포지엄은 아시아 근현대 건축 담론에 대한 결론이라기보다는 실험적 질문을 생산하는 시간”이라며 서막을 열었다. 심포지엄의 큰 주제인 ‘형식적-비형식적’이라는 개념은 반反 도시 대 도시 찬양, 계획 대 무계획, 일시적 개발 대 단계적 개발 등으로 설명할 수 있는데, 서 교수는 “도시의 형식과 비형식에 대한 담론들이 서구에서는 계속 존재했지만, 아시아 도시에서는 이런 담론들에 대한 교류가 충분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형식과 비형식에 대한 담론의 부재 속에서 아시아 도시들은 거대하고 획일적인 ‘형식적’ 도시계획을 빠르게 경험했고, 그 이면에는 ‘비형식적 공간’이 계속 존재했다. 그는 이처럼 비정상적으로 급속하게 개발된 ‘형식적 도시’ 공간 속에서 ‘비형식적 삶’을 살아가는 아시아 도시민들의 삶을 “잡종 메커니즘”이라 칭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서 교수는 “형식-비형식의 문맥에서 아시아의 도시들에 대한 많은 연구가 진행되어야 하고 이제는 유연한 방식의 도시계획을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아시아의 도시들은 서구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활동력, 자생성, 생산성을 보여주는 독특한공간”이라고 주장했다.
싱가포르, 고층 주거와 새로운 버내큘러의 영역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에서 ‘1000개의 싱가포르’의 기획과 디자인을 맡았던 플로리안 셰츠Florian Schätz 교수(국립 싱가포르 대학교 건축학과)는 동남아시아에 위치한 작지만 영향력 있는 도시 국가 싱가포르만의 독특한 압축도시 모델을 돌아보고 이에 관한 통찰을 제시했다. 그에 따르면 “싱가포르는 인구수에 비해 국가 면적이 좁기 때문에 건물이 높이 올라갈 수밖에 없는 ‘압축 도시모델’의 모습으로 성장했다. 이 싱가포르 모델은 효과적인 어반 테크닉urban technique과 적절한 테스트를 마친 전략의 혼합체로 타 도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국가 주도의 도시계획을 통해 고층 빌딩이 지속적으로 지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싱가포르는 도시만의 버내큘러vernacular 공간을 유지한다”는 점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예컨대 수직적 녹지 시스템vertical greening system은 “싱가포르의 기후 및 자연 환경과 많은 부분 맞닿아 있는, 싱가포르의 버내큘러를 재해석한 건축 방식이다.” 끝으로 셰츠 교수는 “인구는 점점 증가한다. 그들을 수용할 수 있는 도시가 필요하다. 싱가포르는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많은 도시들에게 좋은 사례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뭄바이, 교환적 공간과 삶의 도시
교류 용적transactional capacity은 몸, 상품, 생각, 금전의 흐름을 가능하게 하는 공간의 용적을 의미한다. 이 흐름이 강할수록 용적도 커진다. 루팔리 굽테Rupali Gupte 교수(뭄바이 환경·건축대학교)는 교류 공간transactional space과 교류 사물transactional object은 “살아있는 도시의 본질을 만드는 데 중요한 몫을 한다”고 주장했다.뭄바이의 주거 유형 중 하나인 차울chawl은 그가 제시한 전형적인 뭄바이의 교류 공간이다. 긴 복도를 따라 방 하나 또는 두 개짜리의 작은 집들이 늘어선 아파트형태의 공간으로 지상층과 그 위의 두 개 층으로 이루어진 주택에는 약 70~100세대가 거주할 수 있다. 차울의 형태는 개개인의 경계를 흐리고, 주택이나 상점으로 사용되는 밀집된 포켓으로 이루어져 있어 연속적인 도시 공간을 창출한다. 이를 통해 주민들의 교류가 확장되고 독특한 도시성을 만들어내는 힘을 지니게 된다.
하지만 1990년대 뭄바이의 부동산 공급 가격 상승과 함께 개발 회사들은 새로운 부동산 개발을 극단적인 방식으로 밀어붙였다. 당시 대다수의 차울은 낡은 상태였고 이는 공격적인 개발 회사가 새로운 부동산을 창출할 수 있는 기회였다. 정부는 재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슬럼 없는 도시를 만들기 위한 개혁 정책이 마련되었다. 뭄바이의 차울과 슬럼가가 사라지고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시민들의 삶도 변하기 시작했다. 굽테교수는 “아파트 단지 경계 지역의 보안이 강화되었고 경계 흐리기는 더 이상 불가능해졌으며, 생활의 대부분이 이루어지던 공동 복도의 부재는 공동체의 소멸을 야기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앞으로 아시아 도시들에서실행될 도시재생의 방식들이 뭄바이의 경우를 교훈으로 삼기를 바란다. 장기간에 걸친 점진적인 개발 방식을 택하기를 권한다”며 발표를 마무리했다.
서울, 전통 도시 조직과 귀금속 산업의 공간적 적응 유형
1970년대의 도시 재건으로 인해 남아 있던 도시의 조직들은 삭제되거나 파괴됐고 근대적인 대형 사무용 건물로 대체되었다. 그러나 대지의 용도가 주거에서 산업으로 변경되면서 기존의 도시 조직이 유지되는 지역도 있는데, 종로3가가 그러하다. 양승우 교수(서울시립대학교 도시공학과)는 종로3가의 귀금속 세공 작업장을 사례로 기존의 도시 조직에 구축된 주거 지역이 어떻게 그 조직에 적응하는지 설명했다.
귀금속 세공 작업장은 기존의 조직에 적응하면서 순환적 유형, 손가락 유형, 집합 유형으로 유형화됐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이 형태는 대지 사용, 건물, 구획, 거리 등 도시의 형태 요소가 지니는 견고함의 차이로 구분되는데, 이전 시대에 자리 잡은 대다수의 지역에서는기존의 도시망을 대체하는 것보다 기존 토대에 새롭게 적응하는 방식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종로3가 귀금속 세공 작업장의 적응 방식을 통해 “서울중심업무지구 도시계획의 혁신적 프로세스의 본질이 무엇인지 찾아낼 수 있고, 이를 통해 도시설계에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 강조했다.
하노이, 프엉坊 조직의 지속과 변동-식민지적 경험과 근대의 도시 건축
우동선 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학과)는 식민지 시대에 하노이의 건축과 도시가 어떻게 변모했는지 살폈다. 이 발표에서 중요한 키워드는 ‘식민성’과 ‘근대성’으로 서구 근대 문명의 이식과 식민지 경험이 하노이의 건축과 도시 변화에 어떻게 기여했는지가 핵심이다. 우리나라처럼 베트남 또한 서구의 식민지가 되면서 근대 건축이 본격적으로 도입되었는데, 식민지 지배층은 ‘치환’과 ‘매립’을 통해 하노이에 자신들의 시설을 확보해 나갔다. 이 과정에서 하노이의 역사적으로 가치 있는 공간의 역사적 의미를 지속하지는 못했지만, 도시의 중요한 터라는 상징성만큼은 계속해서 유지했다.
상하이, 창조 산업의 새로운 도시 모듈로서 로프트
상하이는 현재 중국에서 창조도시 담론이 적극적으로 펼쳐지고 있는 도시 중 하나다. 한지은 교수(가천대학교 아시아문화연구소)에 따르면, ‘창조도시 상하이’ 건설의 핵심은 “상하이 창의산업구의 3분의 2 이상이 옛 공장이나 창고 등 유휴 산업 시설을 개조해 형성됐다”는 점이다.
즉 산업 구조의 변화로 인해 발생한 로프트loft의 활용이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오늘날 중국에서 로프트는 뉴욕의 소호SoHo와 같은 패션과 유행의 상징이며, 자원을 절약하고 도시의 역사를 보존하는 지속가능한 도시 개발 개념으로 환영받는다.
상하이의 창의산업구를 지정하는 과정에서 임대료 상승, 높은 공실률, 불필요한 개발 등의 문제점이 드러났다. 하지만 “도시의 창조적 환경 조성과 유휴 산업 시설의 활용, 산업 구조의 고도화 등의 측면에서 볼 때 상하이의 창조도시 정책은 매우 성공적인 사례로 평가된다”는 것이 그의 견해다.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다섯 개의 아시아 도시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다. 여러 도시들의 형식적, 비형식적 도시 조직 내부와 그 사이에 존재하는 미시적이고 창조적인 생산의 가능성이 논의됐다. 논의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맥은 ‘아시아의 도시로부터 배우기’일 것 이다. 아시아의 도시들에서는 도시 개발에 대한 담론이 전무한 상태에서 급속도로 근현대화가 일어났고, 우리는 잡종 메커니즘이라는 도시 체계 속에서 삶을 꾸려가고 있다. 이제는 단순히 오래된 것을 보존해야 한다는 낭만적인 관점에서 벗어날 때다. 형식적, 비형식적 도시 조직의 공간 유형을 유연하게 넘나들 수 있는 아시아의 도시를 위한 새로운 이해와 시각이 필요하다.서예례 교수의 말처럼, 그 단계를 넘어설 때 “기존에 존재하는 것으로부터의 배움은 혁명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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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도는 시선들, 큐레이터 뷰] 시대에 반응하는 몸
Wandering Eyes, Curator's View: Bodily Reactions to an Era
붕괴로부터 저항의 몸으로
몸이 다시 등장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세기말적 불안과전환 속에서 몸은 여러 화두로 전개되었다. 당시 미술계에서는 몸과 욕망, 몸의 풍경,몸의 정치학, 몸의 변형과 확장 등을 소재로 한 전시가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그러다 2010년이 넘어가며 몸은 예술의 주된 화두에서 사라져 가는 듯 했다. 사회적 침체,경제난, 재난, 파국 등 연일 반복되는 충격의 상황에서 몸이 더 이상 도발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반응하는 몸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계속적으로 존재해 왔다. 최근 몸의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몸짓은 미미하나 거센 진동으로 감지된다.
수동적 몸의 저항: 히지카타 다쓰미-방언
얼마 전 광주에 다녀왔다. 광주의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아시아예술극장에서 ‘히지카타 다쓰미-방언’(5월 6일~8일) 프로그램을 보았다. ‘히지카타 다쓰미-방언’은 1960년대 일본의 전후 사회적 암흑기에 탄생한 ‘부토舞踏’를 오늘날의 관점으로 조명한다. 당시 일본의 암울한 정치ㆍ사회적 상황에 가역적으로 반응한 히지카타 다쓰미HijikataTatsumi(1928~1986)는 쇠약한 모습으로 무대 위에 쓰러져 다시 서지 못하는 수동적인 몸을 격하게 보여주었다. 마치 나병 환자와 같이 허물어지는 그의 몸은 주저앉은 채로그 움직임을 이어나간다.
“걷고 있는 것이 아니라 걸어지고 있는 인간,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지고 있는 인간, 죽어 있는 것이 아니라 죽어지고 있는 인간… 이런 완전한 수동성에는, 그럼에도불구하고, 인간적 자연의 바이탈리티가 역설적으로 드러나 있는 것이 분명하다.” _ 히지카타 다쓰미, 형무소로
심소미는 독립 큐레이터이며 미술과 건축 관련 글을 쓰고 있다. ‘신지도제작자’(송원아트센터, 2015), ‘모바일홈 프로젝트’(송원아트센터, 2014), ‘Hidden Dimension’(갤러리 스케이프, 2013) 등 다수의 전시를 기획했다. 갤러리 스케이프 책임큐레이터, 갤러리킹 공동디렉터, 보충대리공간 스톤앤워터 큐레이터로 활동했다. 2015년 동북아시아 도시 리서치(예술경영지원센터 후원)를 진행했으며, 2016년 난지창작스튜디오 연구자 레지던시에 입주해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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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스케이프] 헤일, 시저!
Cinema Scape: Hail, Caesar!
나는 비디오 가게에서 어떤 영화인지 모르고 첫 번째 칸부터 차례로 비디오를 빌려보던 시절부터 코엔 형제 감독의 팬이었다. 그들의 초기 영화인 ‘아리조나 유괴 사건’(1987)은 여러 번 봐도 재미있다. 코엔 형제 특유의 코미디 코드가 나와 맞았는지 사소한 장면에도 배를 잡고 웃었다. 최근 그들의 영화는 무거워졌고 잔혹해지기도 했지만 이번 ‘헤일, 시저!’(2016)는 코미디에 가깝다. 다시 그들의 초창기 영화에 반했던 시절로 돌아간 듯해서 반갑다.
하지만 영화의 주제는 가볍지 않다. 할리우드 영화에 종사하는 이들의 민낯과 이들을 조정하고 해결하는 대형 영화 제작사 매니저의 27시간을 통해 대중문화인 영화의 가치에 대해 말하고 있다. 시대 배경은 할리우드 시스템이 정점을 찍고 내리막길에 접어드는 시점인 1950년대 초다. 한창 잘 나갈 때는 사람이든 사회든 사유하지 않는다. 그럴 시간도 없지만 그럴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전 같지 않은 상황이 되면 기존 노선에 반기를 드는 집단이 생기고, 새로운 비전을 가진 혁신이 밀려온다. 자,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새로움을 받아들일 것인가. 고된 현재를 유지할 것인가.
세계 대중문화를 이끄는 대형 영화 제작사의 총괄 매니저가 하는 일은 허접하기 짝이 없다. 그의 일과는 새벽부터 멍청한 배우가 친 사고를 수습하는 일로 시작된다. 진행 중인 촬영과 편집을 점검하는 기본 업무 외에도 수중 발레극 주인공의 임신 문제 같은 배우의 사생활도 해결해야 한다. 뉴욕의 사장은 서부 영화 전문 배우를 드라마 주인공으로 낙점하는데 감독은 그의 ‘발 연기’에 결국 폭발하고 영화사 대표 에디 매닉스(조슈브롤린 분)에게 불평하기에 이른다. 게다가 대형 시대극 ‘헤일, 시저!’의 주인공이 가장 중요한 라스트신을 앞두고 납치당한다. 이런 문제들에 봉착한 그의 주변에는 쌍둥이 기자가 기삿거리를 캐내기 위해 번갈아가면서 나타나 그를 괴롭힌다.
코엔 형제다운 유머는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헤일, 시저!’의 종교적인 부분에 대한 사전 검토를 위해 자문 회의를 개최하지만 계파를 대표하는 종교인들은 엉뚱하게도 신의 본질에 대한 논쟁만 한다거나, 납치당한 주연 배우가 약 기운에서 깨어날 때 문 밖에 들리던 무시무시한 기계 소음이 알고 보니 청소기 소리라는 대목이 그것이다. 몸값인 10만 달러를 마련했지만 가방이 작아서 잘 잠기지 않아 애를 쓰는 모습도 웃음을 자아낸다.
서영애는 ‘영화 속 경관’을 주제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한겨레 영화 평론 전문 과정을 수료했다. 조경을 제목으로 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으며 영화를 삶의 또 다른 챕터로 여긴다. 영화는 경관과 사람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관계 맺는지 보여주며 인문학적 상상력을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텍스트라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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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장면으로 재구성한 조경사] 중세, 정원의 암흑 시대였나?
History of Landscape Architecture with 100 Scenes: Was the Medieval Age the Dark Age of Gardens?
#84
중세와 이상도시 - 성 갈렌 수도원의 설계도
“너희 동양인들이 최고의 문명 수준을 누리고 있을 때 우리는 아직 원숭이처럼 나무에서 살고 있었어.” 독일 친구들로부터 여러 번 들었던 말이다. 물론 심하게 과장된 자기 폄하적 발언이지만 독일, 프랑스, 오스트리아, 스칸디나비아 등 현재 유럽의 중추를 이루고 있는 국가들의 역사가 그리 길지 않은 것만은 사실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고대 그리스와 로마,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페르시아 이슬람 문화는 유럽 대륙을 빙 둘러 감싸며 전개되었다. 주변에서 고대문명이 나타났다 스러지는 동안 유럽 대륙은 문화의 블랙홀이었다. 아시리아의 공중 정원, 페르시아의 파라다이스를 거쳐 주옥같은 이슬람 정원이 만들어지고 있을 때, 유럽 대륙의 정원은 아직 태동도 하지 않았다. 정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정원은 먹고살기 위한 필수 품목이었으므로 사방에 존재했다. 다만 현대인이 기대하는 정원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현대적 의미에서의 정원, 즉 아름다운 휴식 공간, 도시 속의 자연, 혹은 장식 정원 등에 부합하는 개념이 없었을 뿐이다. 중세에는 정원이라는 말이 광범위하게 쓰였고 때로는 몹시 모호했다. 현실적인 개념과 상징적인 개념이 나란히 공존했기 때문이다. 일차적으로는 와일드한 자연을 일궈서 얻어낸 결과물을 모두 정원이라고 했다. 우리의 밭에 해당한다. 채소밭, 약초밭, 사과밭 등이 그들의 정원이었다. 중세는 기독교가 삶의 구석구석까지 지배했던 시대다. 죽은 뒤 돌아가게 될 천국의 정원과 이 세상의 정원을엄격히 구분했다. 이슬람 정원처럼 하늘나라의 것을 미리 앞당겨 이 세상에 재현해 놓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중세 유럽인들에게는 성당이 바로 하늘을 대신하는 곳이었다. 성당에 들어서면 우선 전실을 통과해야 하는데 바로 이곳을 파라다이스라고 불렀다. 중세 기독교의 파라다이스는 의외로 정원이 아니었다.
5세기 말엽, 게르만족이 로마를 무너뜨리고 중부 유럽의 주도권을 차지했던 시점. 거기서부터 고대와 근본적으로 다른 시대가 시작되었다. 이 시대를 중세라 한다. 고대의 게르만족은 짐승 털과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고 작은 마을을 중심으로 농경 생활을 했으며 나무를 신으로 모셨고 많은 신화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뛰어난 전사였다. 이 전사들이 로마를 멸망시킨 뒤 나라를 세우고 기독교를 받아들였다. 이제 막 자리 잡아가는 국가적 체계를 지속가능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종교가 필요했다. 전지전능한 유일신을 믿는 기독교가 합당해 보였다. 게르만족의 대이동, 로마 제국의 멸망, 유럽 패권의 북상, 그리고 전쟁. 이렇게 부산했던 중세 초기는 예쁜 정원을 만들기에 적합한 토양이 아니었다. 게르만족의 프랑크 왕국이 로마 문화를 계승했다고는 하나, 아직 문화 생활을 할 수준은 아니었다. 중세의 사회는 기사, 수도사, 농부의 세 계층으로 이루어졌다. 기사는 국가의 안보를 담당하는 전사들이었고 그들의 우두머리가 왕이었다. 농부는 양식을 생산하여 모든 사람을 먹여 살렸다. 수도사에게는 가장 복합적인 역할이 주어졌다. 이들의 본업은 영혼을 구제하여 천국으로 인도하는 것이었지만, 그 외에 학문과 기술의 연구, 교육, 질병의 치료도 이들의 몫이었다. 왕과 기사들이 대개 문맹이었으므로 왕실에 출장을 나가 사무와 재무를 돌보는 것도 수도사들의 과제에 속했다. 그러므로 수도원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어마어마했다. “왕과 그의 무리는 수 세기 동안 전쟁에 길든 전사였다. 게다가 왕들은 일정한 거처 없이 떠돌아다녔다. 이 역시 중세만의 특징이었는데 새로획득한 영토의 통치권을 확립하고 백성들에게 ‘내가 여기 있다’라는 사실을 알려야 했으며 또한 변방이 늘 시끄러웠기 때문에 왕은 말과 수레에 부하와 식솔을 태우고 이 지방에서 저 도시로 떠도는 생활을 했다. 왕실만 떠돌았던 것이 아니다. 황제가 큰 원을 그리며 떠돌았다면 영주들은 각자 자기 영토에서 작은 원을 그리며 돌았다. 그리고 그 사이를 수많은 상인이 떠돌았고, 수도사들과 순례자들이 떠돌았으며, 기술자들이 일자리를 찾아 떠돌았고, 도적들이 떠돌았고 기사들이 전쟁과 모험을 찾아 떠돌았다. 심지어는 농부들도 떠돌았다. 바이킹에 쫓겨 남쪽으로 가고, 북에서 오는 낯선 사람들을 피해 서쪽으로 가고, 새로운 농지를 찾아 동쪽으로 갔다. 10세기까지 중세는 이렇게 번잡한 시대였다. 이렇게 부산하던 시대에 유일하게 부동의 정점을 이루었던 곳이 수도원이었다. 당연히 수도원에서 정원이 출발할 수밖에 없었다.”1
수도원에는 두 가지 유형의 정원이 있었다. 하나는 실용 정원으로 의약을 생산하는 약초원이 핵심을 이루었고 식량을 자급자족했으므로 방대한 농경지와 저수지 및 과수원을 소유했다. 이들은 속세에 속하는 곳이었다. 한편 수도원에는 세속인들이 접근할 수 없는 별개의 공간이 있었다. 대개 성당 동쪽에 수도사들의 거처가 붙어있었는데 그곳의 중정은 사제들만의 공간이고 신성한 곳이었다. 이를 ‘클로이스터cloister’라고 했다. 기독교의 성당과 수도원 건축은 새로 고안된 것이 아니라 고대 다신교 시절의 신전 건축에서 출발했다. 본래 존재했던 비너스 신전이나 이시스 신전에서 주인을 몰아낸 뒤 그 안에 성모 마리아와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성당으로 썼던 것이다. 기독교가 동쪽에서 시작되어 서쪽으로 전파되었으니 전달 루트를 따라 소아시아 반도와 북아프리카 지역의 신전들이 먼저 성당으로 탈바꿈했고 그 곳에 최초의 수도원들이 설립되었다. 그러므로 자연스럽게 그 지역의 건축 양식을 받아들였다. 이렇게 하여 오리엔트와 지중해 지역의 특징적 건축, 즉 주랑으로 둘러싸인 ‘ㅁ’자 형태의 건축이 수도원 건축 양식으로 굳어지게 되었다. 고대 그리스의 팔라이스트라2나 로마의 페리스틸리움3을 기억할 것이다. 원칙은 그와 같지만 용도가 달라지니 이름도 새로워져서 클로이스터라고 불렀다. 클로이스터는 본래 사제들의 통행 공간이었으므로 기능에 맞게 잔디를 깔거나 석재로 포장했다. 그러나 어느 모로 보나 정원이 될 운명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중앙에 분수나 우물을 두고 자연스럽게 사분 정원이 자리 잡아갔다. 지금은 클로이스터를 정원과 연결 짓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중세에는 아무도 이곳을 정원이라 부르지 않았다. 그만큼 중세의 정원 개념이 지금과 달랐다는 뜻이다.
고정희는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나 어머니가 손수 가꾼 아름다운 정원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어느 순간 그 정원은 사라지고 말았지만, 유년의 경험이 인연이 되었는지 조경을 평생의 업으로 알고 살아가고 있다. 『식물, 세상의 은밀한 지배자』를 비롯 총 네 권의 정원·식물 책을 펴냈고, 칼 푀르스터와 그의 외동딸 마리안네가 쓴 책을 동시에 번역 출간하기도 했다. 베를린 공과대학교 조경학과에서 ‘20세기 유럽 조경사’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베를린에 거주하며 ‘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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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질리언스 읽기] 21세기 패러다임의 변화, 지속가능성을 넘어 리질리언스로
Reading the Resilience: Beyond the Sustainability
지속가능성의 두 얼굴
1990년대 이후 국제 사회가 주장하고 있는 ‘지속가능한 성장’은 매우 모순적인 용어다. 지나친 경제 개발과 무분별한 환경 파괴로 촉발된 이 용어에는 사회·경제·환경간의 조화를 추구하는 ‘선량한 인간’과 자원을 착취하는 ‘교활한 인간’의 모습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특히 ‘교활한 인간’은 친환경 기술이라는 명목으로 고효율의 녹색 기술을 개발하여 자연 자원을 착취했으며, 착취한 자원의 이용을 통해 인간 사회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기대했다. 그러나 그들은 자연자원에 대한 비용을 자연에게 제대로 지불하지 않았으며, 이는 자연 자원 고갈을 비롯한 기후 변화, 자연 재해 등을 초래했다. 즉, 우리 사회는 현재 닥친 위기의 핵심을 보지 않았고 기존의 방식을 고수하여 안일하게 대처했다. 그 결과, 오늘날 인간 사회는 오히려 ‘지속불가능한 성장’에 갇혀 경제 침체, 생태계 붕괴 등의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현대 과학 패러다임으로의 혁명을 일으켰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새로운 문제에 봉착했을 때 기존과 같은 사고방식으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말을 남겼다. 실제로 그는 ‘빛=파동’이라는 물리학계의 정설을 뒤엎고 ‘빛=입자이자 파동’이라는 새로운 사고방식을 제안했으며, 이러한 사고방식은 그때까지 풀리지 않았던 많은 현상을 설명할 수 있었다. 인류에게 닥친 새로운 위기도 ‘지속가능성’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현재 직면한 위기의 핵심은 ‘지속가능성’ 그 자체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과거보다 복잡해진 사회 시스템이 ‘최적화’, ‘효율성’과 같은 일부 가치에 치중되면서 예측하지 못한 변화와 교란들이 인류를 위협한다는 점이 핵심이다. 따라서 우리 사회가 진정한 ‘지속가능성’을 달성하기 원한다면, ‘효율적인 최적화된 시스템’만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교란에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동시에 구축해야 한다. 무대 뒤에 있는 ‘선량한 인간’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무대 위로 올리기 위해서는 아인슈타인과 같은 ‘기발하고 새로운 사고’가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다.
지속가능성을 넘어 리질리언스로 기존 ‘지속가능성’의 핵심은 지구 환경을 하나의 평형 상태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평형 상태란 물질 혹은 에너지의 유입과 유출의 양이 같아서 마치 어떤 반응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안정된 상태를 말한다. ‘지속가능성’ 패러다임 속에 살아가는 우리는 지구의 ‘안정된 상태에 최적화된 시스템’1을 구축했다. 그러나 지구 환경은 무섭게 변하고 있다. 간단한 예로 여름철 강우 패턴을 살펴보자. 1970년대 우리나라에서 1시간 동안 50mm 이상 폭우는 5.1회에 그쳤으나 2000년대 들어서서 12.3회로 급증했다. 급증한 국지적 폭우는 수질 오염, 토양 침식, 도심 홍수 등의 문제를 발생시키는데, 이러한 위협은 근래에 발생한 우면산 산사태나 강남역 침수 등으로 가시화되었다. 이와 동시에 최근 2015년에는 극심한 가뭄도 찾아왔다. 중부 지역의 누적 강수량이 평년 대비57%에 그쳤고, 바닥을 드러낸 소양강댐은 방류량을 80% 이상 줄여 생활용수 제한 급수를 단행하게 되는 상황까지 치닫게 되었다. 과거의 강우 패턴에 최적화된 우리나라의 수자원 확보는 예상치 못한 환경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하면서 큰 사회적·경제적 손실을 안겨주고 있다. 겨울철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지난 겨울 제주도에서의 예상치 못한 이틀간의 폭설은 9만 명의 여행객의 발을 묶었고, 59억 원의 피해와 86억 원의 복구 비용이라는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유발했다. 변화하고 있는 환경에 인간이 만든 시스템은 점차 마비되고 붕괴되고 있다.
연재 순서
1. 21세기 패러다임의 변화,지속가능성을 넘어 리질리언스로
2. 리질리언스 개념의 등장과 확장
3. 새로운 사고의 틀, 리질리언스 사고
4. 리질리언스 향상을 위한 전략, 적응과 전환
5. 새로운 패러다임을 위한 도전1: 도시 리질리언스
6. 새로운 패러다임을 위한 도전2: 해안 리질리언스
전진형은 고려대학교 생명과학대학 환경생태공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며, 습지생태계 조성과 생태환경회복기술 개발, 시스템 다이내믹스를 활용한 도시 내 저탄소 경관 디자인 요소 개발 및 야생생물 군집 변화 모델링 등 생태계 복원 및 설계와 관련된 다양한 연구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생태학적 이론과 과학적 데이터를 근거로 한 다양한 디자인 시뮬레이션을통해 설계 단계부터 시공 후까지 생태계 변화를 예측하여 대상지가 지속가능할 수 있는 생태적 조경 설계와 유지관리 방안을 연구하고 교육하고 있다. 최근에는 생태환경의 보존과 인간의 이용 및 개발의 조화라는 패러독스를 해결하기 위해 디자인을 통한 생태회복성(eco-resilience)에 관심을 갖고 이를 조경 분야에서 적용하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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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의 경제학] 공원의 적정량을 비용편익분석으로 도출할 수 있을까
Economics of Landscape Architecture: Can We Estimate the Proper Amount of Parks by Cost-Benefit Analysis?
비용편익분석, 벗어나기 힘든 굴레
비용편익분석cost benefit analysis은 실용적인 수단이다. 이름 그대로 해석하자면 어떤 사업 또는 투자에 소요되는 비용과 기대되는 편익을 비교하는 (그래서 진행 여부를 결정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타당성 검토feasibility study는 정부의 공공사업이나 민간의 수익사업뿐만 아니라 개인이 대학에 진학할지를 결정하는 데에도 활용될 수 있다. 하지만 경제학에서는 비용편익분석이라는 단어를 주로 정부가 공공재를 공급하는 경우에 한정하여 사용한다. 정부가 공원의 조성여부를 비용과 편익을 비교하여 결정하는 것은 비용편익분석의 전형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지난 호에서 설명했듯이 공원과 같은 공공재의 가장 큰 특징은 (시장기구가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필요한 적정량이 얼마인지 알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비용편익분석이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정부는 해답을 찾을 수 있다. 편익이 비용을 초과하는 공원만 빠짐없이 조성하면 사회적으로 적정한 공급량에 도달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비용과 편익이 제대로 추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모두가 알다시피 공원뿐만 아니라 어떤 공공재에 대해서도 우리는 비용과 편익을 정확하게 계산할 능력을 갖추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로, 철도, 발전소 등 공공사업에 비용편익분석은 널리 활용되고 있다. 때로는 고속도로가 산을 뚫고 교각을 놓아가며 울창한 수림을 관통해야 하는 근거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고압의 송전탑이 신성한 능선들을 밟고 지나가야 하는 근거가 되기도 하면서 말이다. 비용과 편익을 추정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면서도 비용편익분석을 사용하는 것은 우리가 이를 대신할 합리적인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제대로 할 능력은 없지만 대체할 수단 또한 없는 것. 이것이 비용편익분석에 대해 우리가 가진 딜레마다.
공원에 드는 비용
비용을 추정하는 것이 어려운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비용편익분석에 필요한 것은 회계적 비용accounting cost이 아닌 기회비용opportunity cost이다. 경제학에서는 어떤 자원을 사용하는 데 드는 기회비용을 ‘그 자원을 다른 용도로 사용해서 얻을 수 있는 가치 중 가장 큰 값’이라고 정의한다. 예를 들어 공원에 심는 나무의 기회비용은 그것을 얼마에 샀는가(회계적 비용)가 아니라, 그것으로 집을 짓든 젓가락을 만들든 공원에 심기 위해 포기한 다른 모든 용도의 가치 중 가장 큰 값이다. 그런데 이 값을 어떻게 일일이 계산하여 비교한단 말인가? 다행히 경제학자는 시장이 완전하다면 시장가격market value에 이 값이 잘 반영된다는 논리로 수고를 피해간다. 공원에 드는 비용은 공원에 투입되는 자원들의 시장가격을 합하여 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시장가격은 내가 시장에서 나무를 사는데 지불한 액수와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다. 나는 상황에 따라 나무를 싸게 살 수도 있고, 비싸게 살 수도 있다. 때로는 원래 가진 나무가 있어서 추가적인 현금 지출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어떤 상황일지라도, 내가 나무를 공원에 심는다면 나는 합리적인 당사자들이 일반적인 상황에서 주고받았을 시장가격을 지불한 것이다. 바로 이 값들을 합해야 공원에 드는 비용이 계산된다.
한편 공원에 드는 비용이 오늘 전부 지출되지 않고 미래에 조금씩 지출되는 것도 비용의 추정을 어렵게 한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슈가 숨어 있다. 첫째, 비용이 미래에 지출되면 우리는 그것을 ‘확인’하지 못하고 ‘예측’해야 한다. 경제학자가 아닌 점쟁이에게도 미래의 예측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비용의 추정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반드시 틀린다고 봐야 할 것이다. 둘째, 총지출을 계산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시점의 미래 지출을 오늘의 값으로 환산해야 한다. 오늘의 백만 원과 10년 뒤의 백만 원은 그 가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문제는 환산의 비율이다. 이 비율을 정하는 과정에는 분석가의 주관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결국 누가 추정하는가에 따라 달라지는 값을 놓고 우리는 공원의 조성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셈이다.
민성훈은 1994년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조경설계 서안에서 2년간 일했다. 그 후 경영학(석사)과 부동산학(박사)을 공부하고 개발, 금융, 투자 등 부동산 분야에서 일했다. 2012년 수원대학교로 직장을 옮기기 전까지 가장 오래 가졌던 직업은 부동산 펀드매니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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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비, 무엇이 문제인가
설계 환경을 진단하다
서영애 오늘 좌담회는 한국조경설계업협의회(이하 조설협) 기술분과에서 추진하고 있는 ‘설계용역단가 기준 작성’ 기획의 일환으로 마련되었다. 설계용역단가를 주제로 좌담회와 설문 조사, 사례 연구 등을 진행해 ‘적정 설계비 가이드라인’을 체계적으로 마련할 계획이다. 첫번째 좌담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마침 『환경과조경』이 설계비를 비롯하여 전반적인 설계 환경을 진단하는 특집을 준비 중이라는 소식을 접해 이번 좌담회를 공동으로 개최하게 되었다. 설계비 문제가 공론화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우선 오늘은 현황과 문제점에 초점을 맞춰보면 좋겠다. 물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대안도 이야기되지 않을까 싶다. 참고로 하반기에는 대안 모색에 보다 초점을 맞춘 좌담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먼저,조설협의 안계동 회장께서 좌담회 개최 배경을 소개해주면 좋겠다.
안계동 조경설계사무소 대표자 모임인 조설협이 발족된 이후 설계업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몇 가지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중의 하나가 바로 설계용역대가, 즉 설계비의 현실화다. 사실 적정한 조경 설계비에 대한 논의는 예전부터 꾸준히 있어 왔다. 타 분야에 비해상대적으로도 그렇고, 절대적으로도 우리는 적정한 대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설계비는 설계사무소의 경영과도 직결된 문제이지만, 그보다 설계 품질, 직원 처우, 인재 영입 등 구조적으로 얽혀있는 점들 때문에라도 개선이 꼭 필요한 사안이다. 공공 발주 프로젝트도 그렇고, 민간 발주의 경우에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과당 경쟁으로 인한 과도한 덤핑 수주도 문제다. 제도의 문제점도 따져봐야 한다. 물론 조경설계만의 특성에 대한 인식부족으로 인해 지금 정도의 설계비면 충분하다는 사회적 몰이해도 극복해야 한다. 지금까지 조경설계비가 어느 정도의 수준으로 책정되어야 하고, 왜 그래야 하는지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와 대응이 부족했다. 이제라도 관련 단체에서 적정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한다.
하지만 이 문제는 얽혀있는 요소들이 적지 않다. 각자가 처한 입장에 따라 의견도 각기 다르다. 때문에 우선 설계비와 관련된 현황과 문제점을 꼼꼼히 살펴보고 어떤 방식과 절차를 통해 이 문제를 풀어나가야 할지를 모색해야 한다. 조설협 차원에서 가시적인 성과를거둘 수 없는 사안일 수도 있다. 게다가 본격적으로 관련 자료와 근거를 만들게 되면 비용도 적지 않게 소요될 것이다. 지금은 조설협회원사들이 시간을 쪼개서 각자가 갖고 있는 데이터 위주로 조사정도를 하는 수준이다. 그렇지만 관련 자료와 근거를 모으고 만들어 가는 과정은 분명 유의미할 것이다.
서영애 설계비를 주제로 한 좌담회를 열게 된 취지를 말씀해주셨다. 그럼 본격적으로 ‘설계비, 무엇이 문제인가’를 이야기해보자. 조설협 초대 회장이기도 한 안세헌 대표는 2년여 동안 조설협을 이끌면서 설계비 문제의 심각성을 누구보다 잘 인지하고 있다. 또 조설협의 발족 배경에는 이런 사안에 대한 설계사무소의 공동 대응 필요성도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먼저 개괄적인 문제 제기를 부탁드린다.
안세헌 설계비는 조경설계가 주 업무인 전문가 그룹의 문제다. 하지만 모두가 입장이 동일하지는 않다. 대형 엔지니어링 회사에 소속되어 있는 조경설계 부서와 조경설계만 단독으로 수행하는 기술사사무소, 엔지니어링 활동주체, 일반 사업자의 경우는 처한 상황이 다르다. 전자의 엔지니어링 조경 부서는 엔지니어링이라는 큰 틀 내에서 수주를 하고 대가를 나누기 때문에 그 기준이 상대적으로 명확하다. 공공이든 민간이든 엔지니어링 대가 기준에 맞추어 설계비를 받고, 기술료와 몇 가지 항목을 더해서 적정 대가를 산정한다. 반면 조경설계사무소는 설계비 기준이 천차만별이고 주먹구구식이다. 산정하는 방식도 너무 다양하다. 대부분 대지면적이나 연면적을 기준으로 하는 경우가 많지만, 관행적으로 ‘이 정도면 적당하지 않을까’하는 수준에서 견적을 내는 경우도 많다. 이 대목에서 회사의 자금운영 상태가 결부되면서 저가 수주 경쟁이 발생하기도 한다. 품질경쟁이 아니라, 도면 한 장당 가격 경쟁이 발생하는 경우까지 생기고 있다. 합리적이고 명확한 설계비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문제점은 설계의 범위가 굉장히 다르다는 점이다. 결국은 어떤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을 때, 숙련된 전문 인력을 얼마의 시간동안 어떤 업무에 투입하는가가 설계비를 좌우하게 되는데, 실제로 한 프로젝트에서 수행하는 설계의 범위에 꽤 차이가 있다. 때문에 설계비와 함께 설계의 범위에 대한 규정도 필요하다. 대부분은 공정별로, 기본계획 얼마, 기본설계 얼마, 실시설계 얼마로 책정을 한다. 조금 더 상세하게 견적을 내는 경우에는 수경 시설 포함 여부, 전기나 조명 시설 포함 여부와 함께 특화 설계에 대한 내용을 담기도 하지만, 설계비가 똑같은 경우에도 업무 범위는 천양지차인 경우가 많다. 대략 수량 산출만 하고 실시설계가 마무리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세밀하게 일위대가까지 모두 산출해서 정리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당연히 투입 인력과 시간에 큰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설계비는 업무 범위와 무관하게 책정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재차 강조하지만, 설계대가의 기준을 정하는 것 못지않게 설계의 범위를 명확히 정하는 것도 필요하고 중요하다. 시장 경제 체제이긴 하지만, 설계사무소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설계비를 마치 부동산 중개 수수료처럼 일률적으로 딱 떨어지는 금액으로 책정하기 어려운 점도 있다. 또 회사 규모에 따라서 1인당 매출액에 차이가 있는 경우도 많아서 설계비를 획일화·표준화하기 곤란한 점도 있다. 하지만 각 회사의 사정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변주하더라도, 기본적인 가이드라인은 분명히 만들어져야 한다.
서영애 설계비 기준을 세우기에 앞서 설계의 범위를 명확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짚어주셨다. 진승범 대표는 현재 설계비가 문제가 되고 있는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말씀해주면 좋겠다. 진승범 기본적인 설계용역대가의 기준이 없다는 점도 문제지만, 몇해 전부터 설계비 문제가 많이 거론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에서 찾을 수 있다. 건설 경기가 침체되면서 발주 물량이 현저히 줄었지만, 조경설계사무소는 오히려 늘어났다. 게다가 조경설계와 가장 밀접한 건축설계사무소의 경영 상태가 심각한 수준으로 악화되었다. 자연히 발주 물량과 금액이 2000년대 중반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축소되었다. 한창 호황이었을 때는 설계비 기준이 없다는 점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 건설 시장이 급격히 위축된 후부터 저가 경쟁이 바닥을 모르고 내려가면서 설계비 문제가 수면 위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요즘에는 그동안 받았던 수준의 설계비를 청구하면, 다른 업체의 견적을 들이밀면서 날강도 취급을 하는 경우까지 있을 정도다. 일례로 아파트 조경설계비는 호황이던 시절의 1/2, 1/3 수준까지 급락했다. 조경 물량이 풍족했을 때는 건축도 호황기여서, 전체 금액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 조경설 계비에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불황이 장기화되다보니 발주측에서 조경설계비까지 최대한 줄이려 하고 있다. 더구나 1/3보다 더 낮은 금액에도 일을 하겠다는 설계사무소가 있다 보니, 적정 설계비의 기본선이 완전히 붕괴된 상태다. 설계에 대한 자부심도 무너져버려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물론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최소한 이 정도의 설계비는 받아야 한다’는 명확한 기준이 없었던 점이다. 그동안 견적을 낼 때 대체로 아파트는 면적을 기준으로 했고, 공원을 비롯한 공공 프로젝트는 공사비 대비 요율로 산정했다. ‘전체 공사비에서 3% 정도는 받아야 하지않나’라는 식으로 설계비를 대략 책정하곤 했다.
토론안계동 한국조경설계업협의회 회장, 동심원조경 대표,안세헌 가원조경 대표,
가천대학교 조경학과 교수,이호영 HLD 대표,진승범 한국조경사회 수석부회장,
이우환경디자인 대표
사회서영애 한국조경설계업협의회 기술분과, 기술사사무소 이수 대표
정리남기준, 김모아
주최한국조경설계업협의회, 월간 환경과조경
일시2016년 5월 9일
장소푸르너스가든 서울숲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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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설계 전문가와 자격
설계 환경을 진단하다
조경설계 전문가의 자격은
우리나라 조경설계 분야에서만 특별히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전문가를 위한 장치다.
조경설계에 자격이 필요한가?
최근 조경 영역과 관련한 문제들은 특정 산업 분야(건축, 산림, 경관, 공공디자인 등)를 위해 만들어진 정책과 법령으로부터 출발한다. 제도적 뒷받침 없이는 업역 분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조경진흥법’이 만들어졌다고 당장 조경을 위한 성과를 바랄 수는 없다. 조경진흥법은차세대를 위한 밑거름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지금은 조경설계 산업의 매출액, 보수, 산업 연관성, 향후 수요와 공급에 대한 전망 등 기본적인 정보도 파악할 수 없다.
왜 조경설계의 자격을 이야기하는가? 조경 관련 산업의 출발은 ‘설계’다. 자격증이 없어도 설계는 할 수 있다. 공공 부문의 설계를 직접 수주하지 않거나 민간 부문의 설계라도 발주자가 굳이 설계 자격을 요구하지 않고 자신의 이름으로 설계 경력을 관리할 필요가 없다면, 개인사업자 또는 프리랜서의 자격으로 설계를 업으로 삼을 수 있다. 하지만 관련 법령상 자격증이 있는 사람과 불필요한 협업을 하거나 설계비를 저가로 수주하기 쉽다. 적정한 설계 대가 확보와 설계 계약 관련 분쟁이 생겼을 때 법적으로 보호받기 어렵다. 조경설계 전문가의 자격은 우리나라 조경설계 분야에서만 특별히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전문가를 위한 장치다.
조경설계 전문가의 호칭
지금까지 ‘조경학과’는 다른 학과에 비하면 학과 이름이 잘 유지된 편이었는데 대학 구조조정으로 학과 명칭에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 하지만 어떤 변화가 있더라도 조경설계는 조경학과의 핵심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아직까지 조경설계 전문가에 대한 자격과 명칭이 불완전하다. 조경기사와 조경기술사가 있지만 건축 분야의 건축기사, 건축시공기술사와 비교해 보면 분명 차이점이 있다. 기사, 기술사 시험은 설계 능력 평가를 하는 시험이 아니다. 건축설계 전문가는 건축사 시험을 통과한 ‘건축사’다.
이민우는 서울대학교 조경학과와 환경대학원 환경조경학과에서 공부했고,대한주택공사(현 LH) 주택연구소, 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 토문, 신한 이앤씨 등에서일했다. 1999년부터 2013년까지 가원조경기술사사무소 대표로 활동했으며,한국조경사회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현재는 공주대학교 조경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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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설계공모, 무용론과 대안
설계 환경을 진단하다
떨어진 사무실들은
경쟁에 참여하는 부담이 더 커지고,
승률은 더 낮아진다.
설계공모가 설계사무소들을 양극화시킨다.
설계공모가 만든 또 하나의 풍경이다.
설계공모가 바꾼 풍경
2007년 이전, 조경설계공모는 가뭄에 콩 나듯 했다. 설계 경쟁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그 자리를 가격 경쟁(설계가 입찰)이나 자격 경쟁(PQ)이 대신했다. ‘용역’이라는 말이 함축하고 있듯이, ‘시켜도 좋을 만한 자격’과 ‘적당한 비용’이 우선이었다. ‘경쟁이 없고 경쟁할 수 없다는 것’은 ‘경쟁력이 없다’의 다른 표현이다. 디자인 경쟁이 없어도 살아가는 데 지장이 없다면, 굳이 디자인을 고민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무난한 조경이 양산된 이유이기도 하다. 설계에 대한 고민에 시간을 많이 할애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동시에 여러 건의 설계를진행하지 않으면 살아가기 힘든 설계 시장이었다. 그 고단함을 견디게 한 것은 조경 동네 사람들의 정서적 유대감과 자긍심, 그리고 내일에 대한 희망이었다.
2007년 이후, 조경설계공모는 풍부해졌다. 양뿐만 아니라 질적으로도 이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국내 공모뿐만 아니라 국제 공모도 빈번해졌다. 승자는 대부분 국내 팀이었다. 한국 조경이 서구의 유명 설계사와 견줄 만큼 성장했다고 볼 수도 있었다. 설계공모는 조경을 사회적으로 의제화하는 데 기여했고 관성적인 무난한 조경에 주의를 환기시켰다. 공모에 당선된 설계사무소는 잉여 축적이 가능했다. 심사위원은 홍보 차 찾아오는 이들로 인해 새로운 설계 경향을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었다. 발주처는 설계공모를 통해 이미지를 제고했다. 하지만 과다한 경쟁에는 부작용이 있었다. 조경 동네사람들의 정서적 유대감은 약화되고 경쟁자로서의 경계심은 커졌다. 자긍심은 비즈니스 마인드로 대체되었다. 대부분의 분야가 그렇듯이, 설계 경쟁에서 승리하는 자는 거의 모든 것을 가지게 된다. 공모에 당선되면 잉여를 바탕으로 인적 자산과 경험을 축적해 공모전 승률을 높인다. 설계 경쟁에 참여하는 일은 많은 비용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승률이 낮아질수록 비용은 증가한다. 떨어진 사무실들은 경쟁에 참여하는 부담이 더 커지고, 승률은 더 낮아진다. 설계공모가 설계사무소들을 양극화시킨다. 설계공모가 만든 또 하나의 풍경이다.
설계공모 무용론
설계공모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분야의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하다는 인식만큼이나 “설계공모가 왜 필요한가”라는 부정적 인식도 많다. 비용이 많이 들고 잡음이 끊이지 않는 설계공모가 좋은 작품을 만들기는 한 것이냐고 묻는다. 설계공모를 통해 조성된 공원이나 일반 입찰을 통해 설계된 공원이나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최정민은 순천대학교 조경학과 교수로 설계 실천과 교육 사이의 간극을 고민 중이다.대한주택공사(현 LH)에서 판교신도시 조경설계 총괄 등의 일을 했고,동심원조경기술사사무소 소장으로서 다양한 프로젝트와 설계공모에 참여했다.제주 서귀포 혁신도시 도시기반시설 조경설계, 잠실 한강공원 설계, 화성 동탄2신도시시범단지 마스터플랜 설계공모 등에 당선되었다. 조경비평 ‘봄’ 동인으로 활동하면서현실 조경 비평을 통해 조경 담론의 다양화에 기여하고 싶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