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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즈 라인
The Goods Line
굿즈 라인The Goods Line은 19세기 중반에 설치된 철로로 주로 양모, 고기, 밀을 다른 지역으로 운송하는 데 이용됐다. 이 철로는 덜위치 힐Dulwich Hill에서 출발해 큰 레일 야드인 로젤Rozelle과 달링 하버Darling Harbour를 경유하여 시드니 센트럴Sydney Central 역까지 이어진다.
1984년 달링 하버에서 출발한 기차를 마지막으로 공식적인 열차 운행이 종료됐다. 열차 운행이 종료된 후에도 때때로 증기 기관차가 파워하우스 뮤지엄Powerhouse Museum과 달링 하버 사이 구간을 오고 가며 물품을 운송했다. 이 오래된 레일의 일부분은 시드니 라이트 레일Sydney Light Railway로 다시 사용되기도 했다.
뉴사우스웨일스NSW(New South Wales) 주정부가 계획하고 시드니 항만 연안 공사SHFA(Sydney Harbour Foreshore Authority)가 제안한 굿즈 라인 프로젝트는 인구가 급증하고 있는 얼티모Ultimo에 달링 하버의 곳곳에 접근할 수 있는 연결로와 풍부한 녹지를 제공한다. 굿즈 라인은 시드니의 주요 철도역인 센트럴 역에서 출발해 센트럴 역 아래의 데번셔 터널Devonshire Tunnel, 차이나타운, 시드니의 여가와 유흥 지역인 달링 하버를연결한다. 뿐만 아니라 굿즈 라인은 프랭크 게리Frank Gehry가 설계한 호주 시드니 공과대학UTS(University of Technology, Sydney)의 닥터 차우착윙 빌딩Dr Chau ChakWing Building과 ABC 공영 방송사의 사옥, 시드니 주립대학교TAFE(Technical And Further Education) 등 다양한 문화 및 교육, 미디어 시설로 뻗어 나간다.
현재 총 500m의 구간 중 조지 스트리트에서 시작해 닥터 차우착윙 빌딩에 이르는 북쪽 지역이 완공됐다. 얼티모 로드Ultimo Road를 건너 센트럴 역까지 이어지는 남쪽 구간도 심의를 거쳐 곧 공사를 시작할 예정이다. 센트럴 역 아래의 데번셔 터널에서 시작된 굿즈 라인은 얼티모의 심장부를 가로지르는 해리스 스트리트Harris Street와 평행하게 뻗어 나가 파워하우스 뮤지엄까지 이어진다.
이 독특한 고가 공원은 버려진 철길을 초목이 무성한 생명력 넘치는 도시의 중추로 변모시켰다. 기존의 도로보다 4m 높게 조성된 공원에는 보행로와 더불어 자전거 도로가 마련되었다. 이를 통해 8,000여 명의 인근전문학교 학생과 지역 주민, 방문객들은 시드니 달링하버의 관광지에 보다 빠르고 안전하게 접근할 수 있다.
굿즈 라인 아래의 도로에서 공원으로 진입할 수 있는 통로와 계단이 곳곳에 조성되었다. 이 계단은 그 크기와 높이를 확장해 야외 관람석이나 벤치의 역할을 하며 하나의 디자인 요소로 자리 잡았다. 공원의 양측에 불규칙하게 자리한 보조 공간은 다양한 용도로 사용된다. 이런 디자인은 사람들이 길을 단순히 통과해 버리지 않고 잠시 머물며 벤치 등의 시설물을 활용하도록 만든다.
Landscape Architect(Project Design Lead)ASPECT Studios
Architect(Design Partner)CHROFI
Civil, Structural, Hydraulic, and Electrical EngineersACOR
Interpretive DesignDeuce Design
Heritage ConsultantGML
Planning ConsultantJBA
Lighting DesignerLighting Art + Science
Research for Precast ConcreteAR-MA
Head ContractorGartner Rose
ClientSydney Harbour Foreshore Authority
LocationUltimo, Sydney, New South Wales, Australia
Length273m (North section)
Area6,995m2 (North section)
Year2015
PhotographsFlorian Groehn, Simon Whitbread
ASPECT 스튜디오(ASPECT Studios)는 조경, 건축, 도시설계, 최첨단 인터랙티브 디지털 미디어, 환경 그래픽을 제공하여 사람들이 원하는 장소를 만드는 조경가 그룹이다. 호주의 시드니, 멜버른, 애들레이드와 중국의 상하이에 총 6개의 사무소를 두고 있다.
2000년 설립된CHROFI는 주택에서 도시에 이르는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작업하는 역동적인 건축 설계사무소다. 설립 기념작인 TKTS 타임 스퀘어(TKTS Times Square)는 혁신적인 설계로 널리 인정받았다.이외에도 르네 데 상(Lune de Sang), 스탬포드 온 맥코리(Stamfordon Macquarie), 맨리 2015 마스터플랜(Manly 2015 Masterplan)등의 대표작이 있다.
- ASPECT Studios / ASPECT Studios + CHROF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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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젠트리피케이션,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시 험하다
Column: Gentrification, Capitalism and Democracy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 뜨겁다. 도시에서 발생하는 일련의 현상에 대한 관심의 증가는 전 세계적인 추세다. 18세기에 산업혁명과 함께 도시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1800년대에 고작 5퍼센트에 불과했던 도시화율은 2000년대에 50퍼센트를 넘어섰다. 그에 따라 21세기는 인류의 절반 이상이 도시에 거주하는 본격적인 ‘도시세대Urban Age’에 접어들었고, 인류의 미래가 도시에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환경적, 문화적 차원의 난제가 속속 등장함에 따라 도시세대는 새로운 도전과 마주했다. 젠트리피케이션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사회학자 루스 글라스Ruth Glass는 1951년에 런던대학UCL에 도시연구센터를 설립해 도시사회학적 관점에서 도시를 연구했다. 사회학자, 지리학자, 역사학자, 도시계획가와 협력해 급격하게 변하는 런던의 상황을 관찰했고, 이를 정리해 1964년에 『런던:변화의 양상London: Aspects of Change』을 출간했다. 특히 그녀는 인구 변화의 특성에 주목했고, 중산층과 부유층이 저소득층 거주 지역 일대를 점유해 고급화하면서 기존 거주자들이 쫓겨나고 지역의 성격도 완전히 변하는 현상을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진단했다. 글라스의 선구적 연구를 확대 해석하면, 넓은 의미에서 거대 자본이 소자본을 밀어내고 그 결과로 원주민이 쫓겨나는 현상은 로마 시대부터 유래를 찾을 수 있다. 즉 젠트리피케이션은 역사적, 지역적, 시대적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른 모습으로 매우 오래 전부터 존재해 왔음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국전쟁 이후 압축 성장을 거치는 과정에서 젠트리피케이션으로 규정할 수 있는 현상이 나타났고, 뉴타운과 재개발이 대세였던 시기에는 철저한 자본의 논리에 의해 경제적, 사회적 약자의 권리가 보호받지 못함으로써 극단적인 한국형 젠트리피케이션이 뿌리내렸다.
그렇다면 새로운 현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왜 젠트리피케이션이 급부상했을까? ‘도시재생urban regeneration’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서촌, 홍대, 삼청동과 같이 쇠퇴했던 지역이 문화예술인, 주민 그리고 공동체의 노력으로 어느 정도 활력을 되찾는 과정에서 본격적으로 외부 자본이 유입되었고, 정작 변화를 만든 주역들은 급상승한 땅값과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지역을 떠나게 되었다. 또한 균형 발전을 위해 공공 차원에서 추진된 활성화 사업의 혜택이 정작 지역을 지켜온 주민과 상인에게 돌아가지 않았다. 즉 쇠퇴한 지역이 개선되었지만 변화를 주도한 사람들이 마땅한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모순이 발생했고, 이것이 전형적인 젠트리피케이션의 한 단면임을 비로소 감지한 것이다. 곳곳에서 발생하는 심각한 상황을 목격하면서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인식이 활화산처럼 타올랐고, 일련의 대책도 등장하고 있다. 초기의 시행착오를 감안하더라도 젠트리피케이션의 본질과 다양성을 간파하지 못한 채 성급하게 접근한다는 점에서 다음의 두 가지 질문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필요하다.
첫째, 젠트리피케이션을 ‘보편적 기준’으로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나? 도시의 발전 방식, 피해 대상(주거세입자 혹은 상가 세입자), 주민 구성 비율, 원주민이나 세입자를 위한 제도, 부동산 관리 제도, 대자본의 유입 방식, 지역 문화예술과 관광 활성화 방식 등 젠트리피케이션은 철저하게 지역의 여건 및 제도의 수준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출현한다. 다시 말해 젠트리피케이션은 발생에서 진행 과정에 이르기까지 국지적 상황과 긴밀하게 연관되므로 이에 대한 진단과 해법 또한 해당 지역의 특수한 상황을 전제로 마련되어야 한다. 보편적 기준에 편승한 두루뭉술한 진단과 그에 따른 처방은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킬 따름이다.
둘째, 젠트리피케이션을 ‘방지’의 대상으로 간주할 수 있나?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은 자연발생적이다. 피할 수 없는 현상이다. 그럼에도 일정 수준의 공적개입이 필요한 이유는 경제적, 사회적 불균형을 낳는 천민자본주의적 속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여 젠트리피케이션을 마치‘악惡’으로 규정하고 방지해야 한다는 식의 접근은 역으로 도시의 건강한 성장을 인위적으로 통제하거나 저해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왜냐하면 젠트리피케이션이 쇠퇴 지역의 환경 개선, 투자 활성화, 계층간 혼합 등 분명한 순기능도 내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젠트리피케이션을 무조건적인 방지가 아닌적절한 관리의 대상으로 인식해야 하고, 지역의 성장 동력으로 포용하는 세밀하고 높은 차원의 도시계획적 접근이 필요하다.
국내외를 불문하고 현재까지 젠트리피케이션에 대응하는 완벽한 대책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와중에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자는 제안이 설득력을 지닌다. 젠트리피케이션의 부정적 영향에 노출된 일단의 주민, 상인, 예술인을 보호하는 다각도의 안전장치를 갖추자는 것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이 이미진행 중이므로 현재의 상황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제도적 장치가 효과적으로 작동하기 위한 분명한 선제 조건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핵심은 ‘공존의 가치’를 굳건히 뿌리내리는 것이다. 도시는 끊임없이 진화하고, 젠트리피케이션은 도시의 진화 과정에서 등장한 가장 어려운 문제 중 하나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구조적 허점을 관통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관심의 크기에 비해 명쾌한 해법이 등장하지 못하는 까닭이다. 우리나라처럼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경험이 충분하지 않은 경우에는 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다.따라서 구조적 허점을 메우는 것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
오늘날 성숙한 자본주의와 천민자본주의 그리고 성숙한 민주주의와 저급한 민주주의의 차이는 공존의 가치를 이해하고 실천하는 역량에 달렸다. 부자와 일반인이 서로를 존중하고 대화와 타협을 통해 최선 혹은 차선을 도출하는 방식을 훈련하고 익숙해져야 한다. 만약 그렇지 못하면 아무리 훌륭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될지라도 어느 한쪽의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는 불편한 규제이자 갈등을 키우는 불씨일 수밖에 없다. 젠트리피케이션은 불완전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다. 이에 맞서는 과정에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더욱 퇴보할 수 있고, 반대로 성숙할 수도 있다.
김정후는 런던대학(UCL) 지리학과 펠로 겸 한양대학교 도시대학원 특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런던과 서울에서 제이에이치케이 도시건축정책연구소를 운영하며 도시, 건축, 디자인과 관련된 다양한 프로젝트와 연구를 진행 중이고, 여러 지방자치단체에 자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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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뜨는 동네 클리셰
Editorial: Cliché of Hot Places
몇 해 전 낙성대의 좁은 골목 한구석에 애처롭게 문을 연 한 와인바에 동료 교수들이나 지인들을 몰고 가면 한결같이 이렇게 말했다. “꼭 가로수길에 온 것 같은데? 서울대 근처에도 이런 데가 있었어” 물론 없었다. 그런데 ‘그런 데’가 하나둘씩 생겨나더니 무미건조하다 못해 황망하기까지 하던 동네가 거듭나고 있다. 서울의 또 다른 ‘핫 플레이스’로 뜨고 있다. 서울대입구역부터 낙성대 사이의 좁은 골목이 ‘샤로수길’로 불리더니 급기야 구청이 나서서 안내판까지 설치했다. 안내판에는 “서울대 정문의 ‘샤’와 ‘가로수길’을 패러디”한 것이며 “개성 있는 가게들이 모여 있는 거리”라는 친절한 설명까지 붙어 있다. 누가 누구를 위해 무엇을 했다는 건지쉽게 알 수 없지만, 자생적 도시재생과 활성화에 성공한 사례라는 평가도 나돈다. ‘개성 있는 가게들’은 주로 1980년대에 얼렁뚱땅 형성된 무질서한 주택가의 건물 1층에 들어선다. 볼품없는 파사드를 통유리로 시원하게 바꾸거나 거친 질감의 목재를 덧대거나 노출콘크리트를 흉내 낸패널을 덧붙인다. 일부러 깨트려 오래된 것처럼 보이게 한 벽돌도 단골 재료다. 일본 선술집의 격자형문짝을 달거나 휘장을 늘어놓기도 한다. 뭔가 있어보이는, 아티스트의 숨결이 느껴지는 간판이나 ‘응답하라 1988’풍의 ‘레트로 룩’ 간판이 달린다. 국민음료 커피를 마시며 노트북과 하루 종일 놀 수 있는 카페, 국민 외식 파스타를 종류별로 즐길 수 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은 그 수를 세기 힘들다. 음식점과 술집과 카페가 결합되었다는 비스트로, 수제 맥주집, 수제 햄버거집, 크로스오버 막걸리 카페가 아줌마 홈웨어를 파는 오래된 옷가게, 낡은 세탁소, 허름한 철물점과 동거한다. 미국식 브런치와 프랑스식 홍합 요리를 파는 식당이 있고, 태국 수도의 이름을 내건 야시장도 있다. 아르헨티나의 과실주와 칠레의 국민 술을 파는 남미 음식점도 들어섰다. 모두 맛집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명소라고 한다.
다른 ‘길’들에 비해선 아직 미미하지만 아티스트나 건축가, 문화 기획자 같은 이른바 ‘창조계급’의 작업실도 꽤 있다는 소문이다. 여성 의류 편집숍들도 속속 문을 열고 있다. 샤로수길의 중간쯤에서는 핫한 여성의 취향을 저격하는 ‘브라질리언 왁싱’ 숍까지 만날 수 있다. 현란한 맛집 블로그들을 잠깐 검색해 보면, 사장들은 대부분 명문 대학을 나온 이삼십대다. 아티스트 출신도 있다. 안정적인 직업에 염증을 느끼고 뭔가 창조적인 일을 하기 위해서라는 창업의 변 일색이다. 유학을 통해, 하다못해 워킹홀리데이나 해외 신혼여행을 통해 사업 아이템을 구상했다는 점도 공통분모다. 단언할 순 없지만 모종의 기획 세력이 활동한다는 풍문도 있다. 그러나 ‘개성있는 가게들’의 입지 여건, 건물, 업종, 업주 모두가그렇게 개성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전형이나 획일 같은 단어가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힙한 문화를 즐기는 개성 있는 사람인 양 아낌없이 지갑을 열고 셀카와 음식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자랑스럽게 포스팅하는 이곳의 소비자들은 과연 개성 있는 사람들일지 궁금하다. 신사동 가로수길, 홍대앞, 합정동, 연남동, 북촌, 서촌, 이태원 경리단길과 우사단길, 해방촌, 성수동처럼 이미 뜬 ‘길’들에는 비할 바못되겠지만, 샤로수길도 곧 젠트리피케이션을 겪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미 권리금이 두 배로 오르고 임대료도 매년 20퍼센트씩 상승하고 있다고 한다.
이번 호의 특집은 전문적인 학술 용어를 넘어 일상적인 부동산 용어로까지 쓰이고 있지만 적합한 번역어를 찾지 못할 정도로 애매하고 복잡한, 문제의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의 다각적 양상을 짚어주신 이선영, 황두진, 신현준, 진나래, 김경민, 이한아 선생의 다양한 시선은 한국적 특수성을 띈 채 진행되고 있는 ‘상업적’ 젠트리피케이션의 현상과 도시재생의 이면을 목격하게 해 준다. ‘어느 동네가 뜨면 얼마 후 임대료가 상승하여 결국 동네를 띄운 임차인이 쫓겨나는’ 과정에서 ‘뜨는 동네’의 물리적 디자이너인 도시·건축·조경 전문가들이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 반성적으로 검토해 보는 기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특히 그동안 별다른 여과 없이 도시재생과 젠트리피케이션에 수용된 문화·예술 콘텐츠의 미학적 성향을 점검해 보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뜨는 동네의 대부분은 서울에서는 상대적으로 오래된 (골목)길이다. 건물들도 비교적 오래되었거나 오래되어 보인다. 감각 있는 디자이너의 손을 거친 인테리어와 가구도 오래된 것의 매혹을 더한다. 동네건 건물이건 가구건 원래 그곳에 있던 오래된 것을 남기고 다시 살린 경우도 있지만 새로 만들거나 가져온 ‘억지 빈티지’나 ‘가짜 레트로retrospective 룩’도 적지 않다. 급속한 개발 시대를 통과하며 사라져간 옛 것에 대한 존중과 회복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겠지만, 사회 전반의 복고 열풍이 도시 공간을 통해 미학화되어 소비되고 있다는 해석도 공존한다. 복고 문화의 기저에는 경기 불황, 힘든 현실, 오래된 (=좋았던) 시절에 대한 향수가 맞물려 있다는 진단을 흔히 접할 수 있다. 물론 ‘뜨는 동네’에 우리가 응답하고 있는 이유는 복고가 유행할 때마다 지적되는 ‘퇴행적 추억 팔이’ 그 이상일 것이다. 그러나 뜨는 동네의 복고 미학을 관통하는 노스탤지어는, 많은 심리학자들이 지적하듯, 현재로부터 과거로의 정신적 도피라는 의혹이 짙다.
새봄을 앞두고 있어선지 여기저기서 불러낸다. 약속 장소는 죄다 ‘길’들이다. 몇 년 전엔 그 ‘길’들에서 밥을 먹고 술을 마시면 뭔가 문화적인 창조계급이 된듯한 우월감이 들고 내가 미학적 인간Homo aestheticus일 수도 있겠다는 우쭐한 마음도 생겼다.
그런데 이젠 좀 지겹다. 일제강점기의 집장사 한옥내부를 낡은 벽돌로 포장한 공간에 앉아 억지 빈티지 테이블에 올라온 핫한 셰프의 한국식 파스타를 먹으며 와인을 홀짝이면 영문 편지의 ‘당신의 진실한 벗으로부터sincerely yours’처럼 틀에 박힌 느낌이다. 그리고 뭔가 이상하다. 정교하게 기획된 미학적 매뉴얼에 따라 지갑이 열리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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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A] 인공지능 시대를 맞이하는 자세
The Age of AI
몇 년 전 ‘디지털 미디어 시대, 전문지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라는 주제로 해외 저명잡지의 편집장에게 원고를 청탁했다. 조경 문화 발전소가 될 것을 다짐하며 새로운 30년의 시작을 힘차게 준비하던 때였다. 당연히 (순진하게도 동종 업계에 몇 십 년 몸담고 있는 그였기에) 어려운 시기이지만 놀라운 혜안으로 희망 섞인 방향을 제시해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전문지를 매개로 활발했던 담론의 시대는 막을 내렸고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 종이 잡지의 미래는 불투명하다는 자조적인 이야기가 낯선 언어의 원고로 돌아왔다. 물론 담론이 사라진 것이 디지털 미디어 탓은 아니다. “다들 살기에 급급해 보인다”는 그의 관찰은 충격적이었다. 소위 디자인 선진국의 상황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는 데 놀랐던 것일까.
세기의 대결이라고 불리는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국을 보면서 왜 이 일이 떠올랐을까. 자신만만했던 이세돌이 1국에서 패배하면서 모두들 인공지능이 가져올 미래에 대해 한 마디씩 하기 시작했다.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던 정신노동이나 창의적 사고의 분야 역시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있으며 종국에는 나의 일자리를 빼앗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창의적이고 예술적인 분야라고 생각했던 ‘설계’도 인공지능의 영역이 될까? “엄청나게 많은 양의 요구 조건을 넣으면, 거기에 딱 맞는 설계안을 5분 안에 뽑아낼 듯.” 누군가의 답이다. 설계를 문제 해결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면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작동하는 인공지능의 설계가 인간의 설계를 대체하지 못하란 법도 없을 것이다. 인공지능의 원리에 대해 무지한지라 알파고도 이번 달 ‘그들이 설계하는 법’의 안세헌 교수가 말했듯이 끊임없이 돈오頓悟하고 점수漸修하면서 인간의 직관과 우연의 산물인 창의적 설계를 할 수 있을까 궁금해진다. 그런데 안세헌 교수는 기술의 진보와 패러다임의 변화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돌이켜 생각해보면 설계하는 과정과 방법이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나름대로 체계가 세워졌다고 생각했을 때마다 직관 능력이 점점 사라졌다. 항상 새로운 변화―CAD 설계, 친환경적 설계, 생태적 설계, 참여적 설계, 감성적 설계 등 수많은 패러다임―가 일어났고 이에 대한 대응이 필요했다.” 사실 크든 작든 기술의 진화는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지금 이 순간도 시나브로.
“우리 때는 기자가 도면 배달도 했어. 트레이싱 페이퍼에 그려진 도면을 설계사무실에서 받아와서 몇 퍼센트 축소할지 계산하는 게 기자들 일이었지. 출력소에서 축소 복사를 해 도면이 들어갈 자리를 남겨둔 필름지에 앉히는 거야. 이때 도면을 깨끗하게 쓰고 설계사무소에 다시 돌려주는 것이 관건이었어. 요즘은 이메일로 주고받으니 얼마나 편한 세상이야!”
햇병아리 기자 시절 선배들에게 재미있게 (백 번쯤!) 들었던 1990년대 중반까지의 잡지사 풍경이다. 요즘 같으면 클라우드와 메신저로 불과 몇 십 초 만에 자료를 받은 후 일러스트레이터와 인디자인 프로그램에서 디자이너의 마우스 클릭 몇 번에 끝날 일이다(기술은 발전하는데 야근 시간이 줄어들지 않는 현실은 미스터리다). 나 역시 잡지를 인쇄하는 데 필름을 쓰지 않게 되는, 상상하지 못했던 변화를 목도했다. 10여 년 전까지 출력소의 라이팅 박스에 필름을 올려두고 교정 보던 기억이 생생하다. 간단한 수정은 고칠 부분의 필름을 칼로 오려내고 다시 그 모양대로 조각 필름을 붙이는 일명 ‘따붙이기’를 했다. 그러면 전지 사이즈의 필름을 새로 뽑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이 ‘따붙이기’를 정교하게 못하면 인쇄된 잡지에 칼자국이 남기도 했다. 이런 번거롭고 추가 비용이 드는 작업을 피하기 위해 소위 ‘대세에 지장이 없는’ 실수쯤은 넘어가기 마련이었다. 지금은 필름을 쓰지 않고 디지털 파일에서 바로 인쇄판을 뽑는 과정으로 넘어가게 되니 마지막 순간까지 눈치 보지 않고 교정을 볼 수 있다.
기술의 진보가 잡지 제작에 들어가는 물리적인 수고를 많이 줄여 주었다면, 기자들의 핵심 업무라고 할 수 있는 기획 및 취재와 기사 작성에는 변화가 없을까? 기획과 취재는 인터넷 검색부터 시작된다. 구글 번역기는 낯선 언어로 된 정보도 대략적인 파악이 가능하도록 도와준다. 구글과 네이버는 핵심 취재원이 된 지 오래다. 동시에 종이 매체는 디지털 미디어와 경쟁하고 있다. 전문지는 실시간으로 정보가 업데이트되는 디자인 포털 사이트를 의식할 수밖에 없다. 이미 종이 매체는 최신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상실해가고 있다. 따라서 기획과 편집은 웹사이트가 제공하는 정보 이상의 가치를 만들기 위해 고민하는 과정이다.
요즘 쏟아지는 기사 가운데 상당수는 인공지능의 발달로 향후 없어지게 될 직업군이 무엇인가에 대한 예측이다. 그리고 향후 20~30년 내에 없어질 직업 순위에 기자도 포함되어 있다. 최근 로봇 저널리즘에 대한 연구가 국내에서 시작되었는데, 알고리즘으로 기사를 생산하고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보니 로봇 기사에 대한 신뢰도 가 인간이 쓴 기사에 대한 신뢰도 못지않다고 한다. 앞으로는 미모의 안드로이드 기자가 나를 대신해 조경가 인터뷰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대단한 지능의 로봇이 없어도 이미 벌어지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각 기관에서 배포하는 보도 자료를 가감 없이 지면에 옮겨 놓는다면 굳이 인간 기자의 손을 거칠 필요도 없다. 혹은 건강한 비판을 거부하고 유리한 기사만을 원하는 일부의 요구를 수용한다면 기자란 직업이 필요할까? 그렇다고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현상에 대한 가치 판단을 빅데이터에 의한 통계에만 맡겨둘 수는 없다. 지난 2014년 1월, 『환경과조경』은 새로운 시작을 선언하면서 ‘한국 조경의 문화적 성숙을 이끄는 공론장’, ‘조경 담론과 비평을 생산하고 나누는 사회적 소통장’, ‘세계적 동시대성과 지역성을 수용하고 발굴하는 전진기지’, 이 세 가지 비전을 지향한다고 천명했다. 인공지능에 내 업무를 넘겨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러한 비전이 나의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음을 절감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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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의 서재] 나는 언제나 옳다
Editor’s Library: The Grownup Kim Mo A
금요일 밤이 기다려지는 이유 중 하나가 사라졌다. 얼마 전, 열렬히 시청해 온 드라마 ‘시그널’이 종영했기 때문이다. 가족과 함께 떨리는 마음으로 드라마를 시청하며 주말을 맞이하던 밤이 허전해졌다. ‘시그널’은 과거와 연결되는 무전기를 통해 미제 사건을 해결하는 경찰의 이야기다. 5가지의 미제 사건을 16부작으로 다뤘다. 사건을 모두 해결하고 드라마의 전체적인 스토리를 끌고 나가기에는 주어진 시간이 조금 빠듯하다. 게다가 등장인물의 섬세한 감정선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개개인의 이야기도 들려줘야 한다. 이 모든 것을 방영 시간 안에 풀어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잘 만들어진 드라마일 경우) 시청자에겐 매력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군더더기 없이 긴박하게 흘러가는 이야기는 시청자를 작품 속에 깊게 몰입시킨다. 실제로, 시그널을 보며 마시려고 사온 맥주 한 캔을 다비우지 못한 채 드라마가 끝나기 일쑤였다. 또한 짧은 시간동안 강한 인상을 남기기 때문에 드라마가 끝난 후의 여운도장편 드라마보다 상대적으로 오래 남는다. 이는 드라마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며 소설 역시 같은 특징을 갖는다. 미스터리나 범죄를 다룬 짧은 단편 소설의 경우 긴 호흡으로 진행되는 장편 소설보다 반전을 더 효과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단편 소설을 좋아하는 내게 『나는 언제나 옳다』는 반가운 책이었다. 특히 여러 단편 소설을 하나의 단편집으로 묶어 펴내지 않고 한 편의 단편 소설(96페이지)만으로 책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시집처럼 느껴지는 얇은 책의 두께에서 어떤 자신감마저 느껴졌다. 책을 두르고 있는 붉은 띠지에서 저자가 2014년에 개봉한 스릴러 영화 ‘나를 찾아줘’의 원작자라는 문구를 읽자마자 망설임 없이 책을 구입했다.
“내가 손으로 해주는 그 일을 그만둔 건 실력이 달려서가 아니다. 오히려 너무 잘해서 그만 둔 거지.”1 이야기는 주인공이 매춘부 일을 그만두게 된 이유를 설명하는 자극적인 문장으로 시작된다. 다소 유머러스하게 느껴지는 주인공의 말투는 소설에 전반적으로 깔려 있는 영국식 블랙 코미디에 큰 일조를 한다. 매춘부를 그만 둔 주인공은 어린 시절 구걸을 하면서 터득한 사람들의 마음을 능숙하게 읽는 능력을 살려 사이비 점쟁이의 길에 나선다. 주인공의 고객은 대부분 상류층이다. 주인공은 상류 사회에서 점이나 심령술이 유행하는 것을 비웃는다. 그녀를 찾아와 고민을 털어놓는 사람들의 슬픔의 이유를 ‘시간이 많기 때문’이라고 말하며 비아냥거리고 그들에게 건네는 그럴듯한(말도 안 되는) 조언과 이 조언이 그럴듯하게 보이도록 옷차림이나 행동을 꾸미는 모습을 우스꽝스럽게 표현한다. 수많은 책을 읽으며 박식함을 뽐내지만, 매주 자신을 찾아와 수음을 부탁하는 남자의 부도덕함을 꼬집는다.
수전 버크를 처음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수전 버크의 옷차림과 행동을 관찰하며 그녀의 성격과 성장 배경을 멋대로 넘겨짚는다. 다른 손님들보다 까다로운 면이 있었지만, 수전 버크도 다른 손님들과 같이 주인공의 거짓 점술에 속아 넘어간다. 수전 버크 역시 수많은 손님들 중 하나일 뿐이었을까 생각되지만, 주인공이 수전 버크의 집에 발을 들이는 순간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수전 버크가 살고 있는 거대한 저택에서는 전형적인 공포 소설에서 이용하는 클리셰가 등장한다. 음산한 기운을 뿜는 빅토리아풍의 저택, 벽지를 물들이는 핏자국, 어두운 복도, 촛대 모양의 조명과 조명에 목을 맨 인형까지. 이 기괴한 저택에는 부유하지만 바쁜 아버지와 새 어머니, 그 둘 사이에서 태어난 딸과 새 어머니와 사이가 좋지 않은 의붓아들이 살고 있다. 자칫 진부하게 느껴질 수 있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런 가족과 대조되는 삶—미혼모 밑에서 어린 시절부터 구걸을 하며 자라서 매춘부가 된—을 살아온 주인공과 수전 버크, 의붓아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팽팽한 심리전이 이야기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숨 가쁘게 이어지는 심리전에 몰입했던 독자들은 “그건 아줌마가 어떤 이야기를 믿고 싶어 하느냐에 달려있죠.”2라는 아이의 말에 혼란에 빠진다. 진실이 무엇인지 이야기가 알려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나는 언제나 옳다’라는 제목이 책을 읽기 전과는 다르게 느껴졌다. 책의 제목은 확신에 찬 문장이 아니라 모든 상황을 합리화하기 위해 자신에게 던지는, 자기반성에 가까운 문장일지도 모른다.
이번 호에는 많은 공모전이 소개됐다. 공모 작품을 소개하기 위해 패널과 설명서를 들여다보고 있으니 대학생 시절 패널을 만들며 밤을 새우던 일이 떠올랐다. 패널은 모형과 더불어 설계 작품에 대해 설명하는 최종 작업물이기 때문에, 패널의 완성도에 따라 작품의 성패가 결정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A1 안에 필요한 모든 요소를 채워 넣고 배치하는 것은 소설가나 방송 피디의 고충과 견주어도 될 만큼 치열한 작업이다. 이번 호를 준비하며 패널을 만들 때와 비슷한 고민에 빠졌다. 어떤 이미지를 얼마나 크게 넣어야 할지, 레이아웃을 어떻게 짜는 것이 효과적일지, 분량을 맞추기 위해 어떤 부분을 생략해야 할지. 과연 설계자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한 것일까? 피곤함과 귀찮음을 이유로 ‘아냐, 내가 옳아’라고 생각하며 자신과 타협을 한 건 아닐까? 언젠가는 ‘나는 언제나 옳다’라는 문장을 변명하듯이 작게 웅얼거리지 않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외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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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LAM2016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조경 공간을 공유하라!
4월은 세계 조경의 달WLAM(World Landscape Architecture Month)이다. 올해 두 번째를 맞이한 세계 조경의 달은 미국조경가협회ASLA(American Society of Landscape Architects)가 2007년부터 추진해 온 조경의 달 NLAM(National Landscape Architecture Month)에 뿌리를 두고 있다. 미국조경가협회는 미국 조경의 아버지라 불리는 조경가 옴스테드Frederick Law Olmsted의 생일(26일)과 지구 환경 오염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서 제정된 지구의 날(22일)이 있는 4월을 조경의 달로 지정했다. 2015년, 미국조경가협회는 세계조경가협회IFLA(InternationalFederation of Landscape Architects)와 함께 조경의 달 행사의 범위를 미국에서 전 세계로 확장시켰고 덕분에 매년 4월은 전 세계가 조경의 의미를 되새기고 기념하는 축제의 달이 되었다. 이 한 달은 조경이 사람들의 일상에 깊이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주는 시간이기도 하다.
작년에 이어, 미국조경가협회가 세계 조경의 달을 기념하는 특별한 이벤트를 준비했다. 이벤트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미국조경가협회가 준비한 파란 카드가 필요하다. 지갑에 쏙 들어가는 크기로 제작된 카드에는 ‘This Is Landscape Architecture’라는 문장이 적혀 있다.
이 카드를 들고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조경 공간—뉴욕의 센트럴 파크에서 소규모 지역 공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공간—에 찾아가 카드와 조경 공간이 잘 보이도록 사진을 찍는다. 그 후, 이 사진을 인스타그램, 트위터, 페이스북 등 다양한 소셜 미디어 플랫폼에 ‘#WLAM2016’이라는 태그와 함께 올리면 이벤트 참여가 완료된다. 이벤트에 참여한 사람들의 사진은 태그보드Tagboard의 웹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미국조경가협회의 이사인 낸시 서머빌Nancy Somerville은 “세계 조경의 날은 전 세계의 아름답고 혁신적이며 지속가능한 조경 작업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설명했고 “게다가 재밌기까지 하다”라고 덧붙이며 이벤트에 대한 기대를 표출했다. 미국조경가협회도 하이라인파크High Line park를 촬영한 사진에 카드를 들고 있는 손을 합성해 가상으로나마 이벤트에 참여했다. 이 이벤트는 조경을 널리 알리고 전 세계의 사람들이 조경에 대해 다양한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소통의 장이 될 것이다. #WLAM2016 태그와 함께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조경 공간을 공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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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예술가로 살아가기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바벨’ 전
몇 년 전부터 서울의 작은 골목길, 외딴 곳에 소규모 전시 공간과 예술가의 작업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전시를 하는 예술가들은 이름 있는 미술관의 보도 자료 대신, 소셜 미디어에 독특한 포스터나 문구를 게시해 전시회를 홍보한다. 전시 방식도 독특하다.
뜻이 맞는 예술 그룹이 함께 단발성 프로젝트를 기획하기도 하고 작가가 전시장에서 자신의 작품을 적극적으로 판매하기도 한다. 현대 예술은 더 이상 미술관의 벽에 얌전히 걸려 있는 작품이 아니다. 몇몇 사람은 이 같이 미술관의 하얀 직육면체 공간을 탈피한 전시 공간,주로 20~30대의 젊은 작가가 직접 운영하는 창작 공간 등의 예술 플랫폼을 ‘신생 공간’이라 부른다. 신생 공간은 일반적인 예술가들이 기성 작가의 반열에 오르기 어려운 현실과 전시 공간 부족으로 인해 생겼다는 점에서 1990년대 생겨난 ‘대안 공간’과 닮아 있다. 하지만신생 공간은 대안 공간처럼 기성 미술계에 저항하기 위한 정치적인 이유로 생겨난 것이 아니다. 예술가로 살아가기 힘든 현실 속에서 예술가로서 자립하기 위해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공간이다.
이 같은 예술 플랫폼에서 작업 중인 작가가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의 전시장에 모였다. 서울시립미술관 SeMA(Seoul Museum of Art)의 ‘서울 바벨(2016. 1. 19. ~ 4. 5.)’ 전은 ‘SeMA 삼색 전’ 중 하나로, 젊은 유망 작가의 그룹전인 ‘SeMA 블루’의 일환으로 마련되었다. 을지로, 창신동, 청량리 등 서울의 곳곳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난 예술 플랫폼과 SNS 등의 웹을 기반으로 한시적 공동작업을 진행 중인 대안적 공동체의 활동과 방식을 조망한다. 전시에는 총 17팀, 70여 명의 예술가가 참여했다. 본 전시와 함께 퍼포먼스, 작가와의 대화, 아카이브 웹사이트 론칭 등 다채로운 연계 행사가 4월 5일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경계가 없는 공간
관람객은 서울시립미술관의 커다란 유리문을 통과한 순간부터 전시장에 들어선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화려한 무늬가 새겨진 ‘서울 바벨’이라는 글자가 가장 먼저 관람객의 눈을 사로잡는다. 그리고 그 아래에 커다랗게 뚫려 있는 전시장의 입구로 ‘임시재생목록’의 영상 작품이 상영되고 있는 스크린이 보인다. 굳이 전시장의 입구를 통과하지 않아도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전시장 바깥의 오른편에는 수레에 TV, 버스 손잡이 등을 설치한 작품인 ‘펭귄 2-나-9’가 놓여 있고 왼편의 또 다른 입구에는 ‘활활’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도통 어디서부터 전시가 시작되는지 알 수 없다. 전시장 내부에도 작품 간의 경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작품의 감상을 돕기 위해 공간을 분리하는 가벽을 찾아보기 힘들다. 미술관 바닥이나 벽면에 으레 표시되어 있는 작품 감상 순서를 안내하는 화살표도 없다. 한 작품에서 흘러나오는 소리가 다른 작품의 감상을 방해하기도 한다. 활동 지역 혹은 팀 별로 묶어서 비정형적으로 배치된 작품들과 그 사이를 관람객이 자유롭게 드나드는 전시장의 풍경은 시끌벅적한 행사의 현장을 떠올리게 한다.
작품을 감상하기엔 산만한 전시 구성으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이는 ‘서울 바벨’ 전의 기획 의도와 딱 맞아 떨어진다. ‘서울 바벨’ 전은 작가들의 작품에 주목하고 하나하나 소개하려 기획된 것이 아니다. 전시의 목적은 현대의 젊은 예술가들이 어떤 공간에서 어떤 방식으로 작품 활동을 펼치는지를 보여주는 데 있다. 이곳에 모인 예술가들은 자신의 작업실이나 전시실이 위치한 지역의 상황에 맞추어 작업을 진행한다. 예술가들 사이에는 어떤 경계도 없으며 오히려 물리적으로 혹은 SNS등의 웹 공간을 통해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고 있다. 그렇기에 공간의 구획은 아무 의미가 없다. 경계가 없이 펼쳐져 있는 전시 공간은 서울 곳곳에서 산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작업 방식과 공간을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변지혜 큐레이터는 이 공간에 대해 “이 시대에 서울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예술가들의 고민이 만들어 낸 지형도”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들의 이야기
정신없이 배치되어 있는 작품들 사이에는 작가의 인터뷰 영상과 헤드폰이 설치되어 있다. ‘아카이브 봄’은 전시장에 작업실을 옮겨왔는데, 인터뷰를 통해 그 이유를 설명한다. 그들은 단순히 전시장에 작업실을 흉내 낸 공간을 만든 것이 아니라, 그 공간에서 영상, 음악 편집 등 실제 작품을 만들기 위한 작업 활동을 진행한다. 이전시가 장소특정적인 전시로 오해받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작업 공간을 화이트 큐브에 재현하는 것은 연극에 지나지 않다고 생각했고 어떤 형식으로 작업을 진행하고 현실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지 행위 자체를 보여주려 했다. ‘보증금/월세’ 형식의 독특한 이름인 ‘800/40’, ‘300/20’, ‘200/20’은 세운상가에 자리한 공간이다. ‘800/40’에서는 24시간 레지던스 프로그램이 운영되며 이를 모태로 한 상품 판매가 ‘300/20’에서 이루어진다. ‘200/20’에서는 서점이 운영되며 미술과 관련된 글을 수집하고 생산하는 작업이 진행된다. 하나의 레지던스 프로그램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이 파생되는 독특한 예술 플랫폼이다. ‘합정지구’의 바닥에 뉘인 채 전시된 작품들은 빠르게 흘러가는 현실과 달리 자신의 작업 속도에 따라 작품을 만들어 내고 싶은 작가의 바람을 담고 있다. 뉘어진 작품 사이를 오가기 위해서는 작품을 세워서 전시했을 때보다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이용해 관람객이 천천히 작품을 감상하게 만든다. 작품 위에 앉거나 서서 작품을 감상하는 방법을 제안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이를 통해 관람객은 작가에 게 맞는 작업 속도가 있듯이 자신에게 적당한 속도로 작품을 감상하게 된다.
작품과 인터뷰를 통해 작가들은 그들이 직면하고 있는 현실과 이를 헤쳐 나가기 위해 어떤 대안을 모색해가고 있는지 이야기한다. 가만히 전시장과 작품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예술가들의 고민거리가 나와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꿈과 현실, 보증금과 월세의 문제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안고 있는 문제다. 때때로 ‘임시재생목록’의 영상에서 울려퍼지는 지하철 안내 방송 소리가 관람객들을 자극한다. 이 공간은 매일 출근, 통학을 하며 듣는 지하철 안내 방송처럼 우리의 삶과 밀접한 문제를 다루고 있으며 예술가만이 고민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고.
‘서울 바벨’ 전은 예술가의 독립적이고 유기적인 행보를 지원하는 동시에 우리 모두의 관심을 모으는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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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도는 시선들, 큐레이터 뷰] 복수의 얼굴을 지닌 홍콩, 표면 너머의 도시
Wandering Eyes, Curator's View: Hong Kong, the Multifaceted City
지난 2월호에 소개한 아시아의 신흥 도시 선전에 비해 홍콩은 거의 100년을 앞서 나간 대선배 격 메가 시티다. 일찍이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으며 아시아에서 나름 ‘오래된 현대 도시’가 되었으나, 여전히 홍콩은 첨단 도시를 향해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중이다. 국제 금융 경제 도시, 개성 있는 마천루, 화려한 야경과 몰려드는 쇼핑족, 코즈모폴리턴 시티, 동서양이 혼재된 도시 풍경, 왕가위 영화와 홍콩 느와르 전성시대, 딤섬과 다국적 식당, 영어와 광둥어의 교차, 아시아의 대표 아트 마켓인 아트 바젤 홍콩, 세계적인 미술 경매 회사, 중국으로의 반환 이후 사회·정치적 변화 등 홍콩하면 연상되는 이미지와 키워드는 끝없이 쏟아져 나온다.홍콩이라는 이름 하나에 붙은 ‘복수의 얼굴’은 셀 수 없이 많다. 이번 지면에서는 홍콩을 향한 수많은 클리셰를 벗어나 도시의 리얼리티에 침투하는 예술가의 작업을 통해, 표면 너머의 도시성에 접근하고자 한다.
홍콩이라는 스펙터클, 거대 자본의 최첨단 문화 도시: 아트 바젤 홍콩
최근 홍콩은 금융, 경제, 관광 도시라는 기존의 타이틀에 더해 문화 도시라는 명성도 쌓았다. 그 대표적인 행사로는 매해 3월에 열리는 아트 페어 ‘아트 바젤 홍콩Art Basel Hong Kong’을 들 수 있다. 세계적인 아트 페어인 ‘아트 바젤’이 ‘홍콩 아트 페어’를 2012년 인수하면서 급부상한 ‘아트 바젤 홍콩’은 동서양 40여 나라의 250여 갤러리의 참여를 끌어내는 등 전 세계 미술인과 컬렉터를 홍콩으로 불러 모아 아시아 미술 시장의 중심에 섰다. 페어 기간 동안 문화 예술 기관과 홍콩 미술계가 대거 협력한 부대 프로그램만도 200여 개가 진행되고 있어, 상업적 가치뿐만 아니라 수준 높은 퀄리티를 갖춘 홍콩 최고의 문화 예술 행사다. 이러한 가운데 2014년부터 시도된 초대형 ‘오디오-비주얼 프로젝트’는 국제 도시 홍콩의 스펙터클을 화려하게 뽐낸 획기적인 사례로 평가 받는다. 마천루의 도시 야경을 활용한 이 프로젝트에서, 2014년 독일 작가 카스텐니콜라이Carsten Nicolai는 490m의 국제상업센터ICC에 특정 주파수의 조명을 비춰 도시 경관 전체를 미디어 아트로 만들었다.
현대 미술은 막강한 자본의 힘을 빌려 도시 이미지를 첨단 예술 문화 도시로 업그레이드시킨다. 이러한 문화 도시 이미지는 전 세계의 수많은 도시가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마다 엄청난 예산을 쏟아 부으며 실현시키고자 하는 이상적인 모델이다. 하지만 최고의 자본, 기술, 미술의 만남으로부터 실현된 ‘찬란한 밤’을 조망하는 사람들은 결국 현대 미술의 향유층, 즉 호화로운 파티에 초대된 전 세계의 VIP뿐이다. 건물 표면을 스크린 마냥 자유롭게 유동하는 인공의 불빛은 마천루로 상징화된 금융 도시 이미지를 세련된 첨단 현대 미술로 재포장한다. 끝없이 하늘로 솟는 마천루로 시선이 향할수록, 우리는 이 도시의 리얼리티로부터 미끄러진다.
도시 경관이 스크린이 된 홍콩, 그 뒤로는 건물의 밀집도 이상으로 겹겹이 쌓여온 시공간의 레이어가 가려진다. 마천루를 타고 미끄러지는 매혹적인 표면을 꿰뚫고 그 안에 숨겨진 도시를 경험하기란 쉽지 않다. 홍콩처럼 스펙터클의 범주가 다양할 경우에는 더욱 쉽지 않다. 경험의 횟수만으로 홍콩의 실체는 경험되지 않는다. 발걸음이 잦아질수록 도시의 표면에 작동하는 ‘복수의 얼굴’만을 경험한다. 홍콩의 스펙터클에 매료된 관광객이나 이방인이라면 스펙터클의 표면을 파고 들어가기란 쉽지 않다. 복수의 얼굴이 대변하는 혼재의 도시, 혼잡의 도시 홍콩을 어떻게 들여다 볼 것인가? 도시의 표면 아래 작동하는 다층의 이야기는 홍콩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예술가, 홍콩의 도시성을 파고드는 예술가의 작업에서 살펴볼 수 있다.
심소미는 독립 큐레이터이며 미술과 건축 관련 글을 쓰고 있다. ‘신지도제작자’(송원아트센터, 2015), ‘모바일홈 프로젝트’(송원아트센터, 2014), ‘Hidden Dimension’(갤러리 스케이프, 2013) 등 다수의 전시를 기획했다. 갤러리 스케이프 책임큐레이터, 갤러리킹 공동디렉터, 보충대리공간 스톤앤워터 큐레이터로 활동했다. 2015년 동북아시아 도시 리서치(예술경영지원센터 후원)를 진행했으며, 2016년 난지창작스튜디오 연구자 레지던시에 입주해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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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스케이프] 동주
심상의 풍경
몸살로 몸과 마음이 무겁기만 한 토요일이었다. 한 주를 간신히 버텨낸 몸, 주말이 되자 작정한 듯 식은땀이 나며 제대로 쉬라는 신호를 보내왔다. 몸이 아프면 마음이 따라 병든다. 작은 일에 서운해지고 화나고 상처받는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 하늘까지 무겁게 내려앉았다. 무언가에 홀린 듯 청운동 ‘윤동주 문학관’을 찾았다. 가압장을 개조해 만든 작은 전시관에는 시인의 고향 집 나무 우물을 가운데 두고 백석의 시를 정성껏 옮겨 적은 원고지와 잉크로 눌러쓴 그의 시들이 유리 상자 안에 놓여 있었다. 영화 ‘동주’의 영향인지 이른 시간임에도 방문객이 적잖았다. 물탱크 천장을 열어서 만든 중정 ‘열린 우물’에 서서 물탱크를 그대로 보존한 전시관 ‘닫힌 우물’에서 상영 중인 영상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어느새 빗방울이 하나둘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물이 담겼던 누런 흔적이 남아 있는 벽으로 둘러싸인 중정에서 올려다보니 잔뜩 찌푸린 네모난 하늘이 보였다. 두꺼운 철문이 열리고 빨강, 파랑, 원색의 등산복을 입은 중년의 사내들이 줄지어 걸어 나왔다. 비슷한 크기의 배낭에는 하나같이 등산 스틱이 꽂혀있었다. 시인은 상상이나 했겠는가. 타국의 교도소에서 숨지고 수십 년 후, 그가 잠시 머물렀던 경성의 어디쯤에서 등산복을 입은 해맑은 사내들과 호기심 어린 연인들과 몸살에 식은땀을 흘리는 조경하는 여자가 그를 만나러 온 풍경을. 그가 내려다봤을 시내 전경까지 감상하고 돌아오는 길,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 어마어마한 소나기가 내렸다.
영화 ‘동주’는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 윤동주의 삶에 대해 한 번도 제대로 된 조명이 없었다는 점에 의문을 품은 이준익 감독에 의해 만들어졌다. ‘시대정신이 투영된 아름다운 시를 남긴 시인, 주목할 만한 독립운동 기록은 없으며 29세 나이에 타국의 교도소에서 독립되기 몇 개월 전에 숨지다.’ 이 드라마틱한 윤동주의 삶을 그리는 전기영화라면 자칫 감상에 빠지거나 평이해질 수 있다. 감독은 두 가지 방식을 선택함으로써 인간 윤동주가 체험한 혼란의 시대와 그의 주옥같은 시를 ‘현재’라는 시공간에 입체적으로 소환해냈다.
서영애는 ‘영화 속 경관’을 주제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한겨레 영화 평론 전문 과정을 수료했다. 조경을 제목으로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으며 영화를 삶의 또 다른 챕터로 여긴다. 영화는 경관과 사람이 구체적으로 어떻게관계 맺는지 보여주며 인문학적 상상력을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텍스트라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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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장면으로 재구성한 조경사: 더 높이, 더 크게, 더 멀리 – 대왕들의 정원
History of Landscape Architecture with 100 Scenes: Great Kings’ Gardens
#78
공중 정원의 진실 게임
‘바빌론의 공중 정원’은 ‘역사상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정원 10’에 필히 포함될 것이다. 그 불가사의한 이름이 상상력을 더욱 자극하지 않는가. 아닌 게 아니라 공중 정원은 ‘세계 7대 불가사의’에 속한다. 바빌론의 네부카드네자르 Ⅱ세(B.C. 604~562)가 고향의 푸른 언덕을 그리워하는 애첩을 위해 지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런데 3년 전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의 스테파니 델리Stephanie Dalley 박사가 『바빌론 공중 정원의 미스터리The Mystery of the Hanging Garden of Babylon: An Elusive World Wonder Traced』라는 책을 발표하여 “바빌론의 공중 정원이 바빌론에 없었다”고 주장해 2천 년 동안 전해 내려온 바빌론 설이 흔들리고 있다. 델리 박사는 공중 정원은 존재했으나 바빌론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보다 북쪽에 있었던 ‘니네베’라는 도시에 있었다는 것. 니네베는 아시리아 제국의 여러 수도 중 하나로 산헤립 왕(B.C. 705~680)1이 건설한 도시였다. 그러므로 정원을 지은 왕 역시 네부카드네자르가 아닌 산헤립 왕이어야 맞다.
공중 정원이 바빌론에 있었든, 니네베에 있었든 그렇게 중요한 것일까. 두 도시 모두 지금의 이라크에 있다. 그래서 지금은 마치 한 나라의 두 도시처럼 보이지만, 고대에는 서로 다른 국가에 속했을 뿐만 아니라 매우 적대적인 관계였다. 한번 상상해 보자. 예를 들어 외국의 책자에 ‘한국에 가면 국내성이 볼 만한데 문무왕이 서라벌에 지었다고 한다’라고 쓰여 있다면 그냥 넘길 일이 아니다. 니네베와 바빌론의 관계가 마치 이와 같았다. 북쪽에 자리 잡았던 아시리아는 제국주의 노선을 따른 호전적인 국가로서 기원전 9~8세기에 바빌론을 위시한 주변 도시 국가들을 차례로 정복하여 오랫동안 복속시켰다. 그러다 기원전 612년, 신흥 국가 페르시아와 손을 잡은 바빌론에 의해 멸망한다. 그 과정에서 정복자들은 수도 니네베를 파괴했는데 수백 년 동안 아시리아에 당한 데 대한 보복으로 아주 완전하고 철저하게 파괴해버렸다. 아시리아가 세상에서 사라진 뒤 바빌론은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전성기에 등극한 네부카드네자르 Ⅱ세는 대규모 토목 공사와 건축으로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특히 성곽이 유명하여 7대 불가사의에 속하게 되며 성경에 바벨탑으로 묘사된 신전2도 짓고 현재 베를린 페르가몬 박물관에 보관된 이슈타르 문을 조성하는 등 걸작을 많이 남겼다.
이로 인해 아마도 공중 정원 역시 그가 만든 것이라는 소문이 돌게 된 것 같다. 그럼에도 니네베의 산헤립 왕이 공중 정원을 조성했다는 설이 솔깃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건축과 토목 사업으로 말하자면 아시리아 왕들이 바빌론의 왕들보다 훨씬 선배였다. 정복 전쟁과 함께 건축, 토목 사업을 벌이는 것은 당대 왕들의 과제로 여겨졌다. 멸망하기 이전, 아시리아의 왕들은 연례행사로 여름마다 주변 국가를 정복하러 나섰으며 왕이 바뀔 때마다 도시를 하나씩 건설했다. 왕 한 명에 도시 하나, 이런 식이었다. 그러므로 당시에는 수도가여러 개였다. 특히 전성기의 사르곤 Ⅱ세와 그의 아들 산헤립 왕은 개인적으로 건축, 기술, 조경에 각별한 관심과 재능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부자가 모두 매우 높고 튼튼한 성곽을 쌓고 그 안에 거대한 궁전을 지었으며 정복지에서 수집한 나무를 모두 심어 거의 식물원 수준의 정원을 조성했다. 또한 건축과 정원 조성에 대해 매우 소상한 기록을 남겼고 부조로 새겨 궁전 벽을 장식했다. 서양 조경사 책, 메소포타미아 편에서 소개되기 마련인 정원 그림들은 모두 아시리아 것들이다. 특히 기둥으로 받친 교량형 테라스를 높다랗게 쌓고 그 위에 정원을 조성하는 것은 아시리아의 전통이었다. 그러므로 ‘공중 정원’은 베르사유 정원처럼 고유 명사가 아니라 아시리아에서 테라스 정원을 이를 때 쓰는 보통 명사였던 것으로 짐작된다.3 공중정원이라는 용어를 최초로 쓴 사람이 바로 산헤립의 아버지 사르곤 Ⅱ세였다. 고대 아시리아어로는 키리마후kirimahu라고 했는데 이를 직역하면 하이 가든high garden이라고 한다.4 지금 뉴욕의 하이라인이나 고층 건물 옥상 정원에 부합되는 개념이었던 것 같다. 이것을 ‘매달려 있는 정원hanging garden’이라고 번역하게 된 경위는 확실치 않다. 한국식 번역인 공중 정원이 오히려 더 정확한 표현이라 하겠다.
고정희는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나 어머니가 손수 가꾼 아름다운 정원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어느 순간 그 정원은 사라지고 말았지만, 유년의경험이 인연이 되었는지 조경을 평생의 업으로 알고 살아가고 있다. 『식물, 세상의 은밀한 지배자』를 비롯 총 네 권의 정원·식물 책을 펴냈고,칼 푀르스터와 그의 외동딸 마리안네가 쓴 책을 동시에 번역 출간하기도 했다. 베를린 공과대학교 조경학과에서 ‘20세기 유럽 조경사’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베를린에 거주하며 ‘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