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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조경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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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일 2016년 7월
이매거진 가격 9,000

기사리스트

용산공원, 연대와 논의를 위한 첫걸음
공원을 만드는 일은 백년지대계다. 하나, 용산공원은 온전한 모습으로 회복하여야 하고, 둘, 시민과 함께 계획하고, 만들고, 운영해야 하며, 셋, 긴 호흡으로 천천히 추진해야 한다. _ 용산공원 시민포럼 선언문 지난 6월 2일 대한상공회의소 중회의실에서 ‘용산공원 시민포럼(이하 시민포럼)’이 발족했다. ‘용산공원 시민포럼 준비위원회’가 조직된 지 1년만의 일이다. 이들은 시민이 주체가 되는 용산공원을 만들기 위해 열린 토론의 장을 마련하고, 단계적으로 사회적 관심 조성, 공원 민간 파트너십 체결, 공원 거버넌스 구성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날 열린 ‘용산공원 시민포럼 발족식 및 토론회’는 용산공원의 계획 과정과 활용에 대한 폭넓은 논의를 위한 첫걸음으로 마련되었다. 행사의 1부는 시민포럼 공동대표인 김성훈 국장(천주교서울대교구 청소년국), 이영범 교수(경기대학교), 조경진 교수(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조명래 교수(단국대학교)의 용산공원 시민포럼 선언문 발표로 마무리됐다. 2부에서는 최혜영 팀장(West 8)의 ‘용산공원 조성계획 추진현황 및 향후계획’, 조명래 교수의 ‘용산공원계획의 바람직한 방향’, 조경진 교수의 ‘용산공원계획, 시민참여의 필요성’에 대한 주제 발표가 진행된 후 토론회가 이어졌다. 토론회의 좌장은 이영범 교수가 맡았으며 김성홍 교수(서울시립대학교), 김제리 의원(서울특별시), 박은실 교수(추계예술대학교), 배정한 교수(서울대학교), 이강오 원장(어린이대공원), 이세걸 사무처장(서울환경운동연합), 이승민 부국장(천주교 서울대교구 청소년국), 이원재 소장(문화연대 문화정책센터), 우미경 의원(서울특별시), 최정한 대표(공간문화센터), 홍서희 대표(Gate 22)가 토론자로 참여했다. 특히, 이번 행사에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청소년국에서 시민포럼 운영위원과 토론자로 새롭게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이승민 부국장은 “미래 세대를 위한 공간을 조성할 때, 청소년의 의견을 묻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성인들이 생각하는 청소년에 대한 접근이 아닌, 청소년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명래 교수도 앞선 주제 발표에서 “우리 세대에서 용산공원에 대한 모든 것을 결정해서는 안 된다. 다음 세대가 채워 넣을 수 있는 공간을 남겨 두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날 진행된 토론에서는 국토교통부(이하 국토부)와 시민사이의 소통 단절 문제와 ‘용산공원 콘텐츠 선정안’의 타당성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국토부는 2015년 6월 용산공원에 적합한 콘텐츠를 발굴하기 위해 소위원회를 구성했고, 10월 한 달간 공원 내 선호 콘텐츠에 대한 온오프라인 설문조사와 관계기관 수요조사를 수행했다. 그리고 2016년 4월 말, 9개의 기관에서 제시한 18개의 콘텐츠 중 설문 조사 결과와 10차례의 소위원회 심의를 통해 선정된 8개의 콘텐츠를 발표했다. 선정된 콘텐츠는 국립어린이 아트센터(문화체육관광부), 국립여성사박물관(여성가족부), 아리랑무형유산센터(문화재청), 국립경찰박물관(경찰청), 용산공원 스포테인먼트센터(문화체육관광부), 아지타트나무상상놀이터(산림청), 국립과학문화관(미래창조과학부), 호국보훈 상징 조형광장(국가보훈처)인데, 공원 조성 목적과의 부합성, 콘텐츠 선정 과정의 불투명성 등에 대한 문제가 제기됐다. 최정한 대표는 “현재 대상지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내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설계를 진행하는 것은 위험하다. 땅을 제대로 이해하고 긴 호흡으로 용산공원 계획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시민을 배제한 국가 공원 조성은 불가능하다. 라운드테이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시민과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국토부에게 시민 사회와의 소통을 부탁했다. 이원재 소장도 이에 동의했다. 그는 “시민뿐만 아니라 용산공원과 관련된 전문위원들도 정보를 공유받지 못하고 있다”며 국토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또한 “공원에 들어설 수 있는 콘텐츠는 무궁무진하지만 규칙과 원칙은 있어야 한다. 용산공원에 국립 시설을 조성해야 하는 이유를 알 수 없다”며 ‘용산공원 콘텐츠 선정안’에 대한 의문을 제시했다. 우미경 의원도 이에 대해 “용산공원의 역사성과 문화성이 과소평가되고 있는 것이 아닌지 걱정스럽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용산공원 콘텐츠 선정안’에 대한 비판의 방향에 문제를 제기하는 이들도 있었다. 박은실 교수는 “현재 발표된 콘텐츠는 용산공원의 극히 작은 부분이며, 보존하기로 정해진 건물을 활용하는 방식이기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배정한 교수는 “센트럴 파크 역시 수많은 건물과 프로그램으로 작동되는 곳이다. 공원에 콘텐츠가 없다면 공원으로서의 가치를 가질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중요한 것은 무엇이 들어가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들어가느냐다. 그 방법을 고민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특히 그는 “긴 호흡으로 천천히 추진하는 것과 계획의 중단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이슈다. 국회가 용산공원 관련 예산을 전액 삭감하는 것은 있어서는 안 될, 매우 비합리적 일이다”라는 의견을 펼쳤다. 조경진 대표는 “앞으로도 당면한 문제를 피하지 않고 이 같은 토론의 장을 열어가야 한다”며 두 시간에 걸쳐 진행된 토론을 정리했다. 또한 “앞으로 시민포럼은 다양한 시민 사회와 연대해 논의의 장을 열어가고, 용산공원에 대한 욕망을 키워가는 자리로 만들어나갈 것이다”라고 약속했다.
향으로 탐구하는 공원의 ‘마이크로코스모스'
건축가, 바이오 전문가, 도시공학도, 큐레이터, 예술가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도시 공원의 풀숲을 뒤지고 흙을 파헤쳤다. 그들이 찾아 나선 것은 고대 유물도, 잊혀진 궁터도 아닌 공원의 ‘향’, 냄새다. 미래의 공원, ‘프라미스 파크’를 주제로 뉴미디어 작품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는 미디어 아티스트 문경원 작가가 지난 5월 25일부터 27일까지 도시, 예술, 역사, 건축, 디자인, 고고학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및 학생들과 함께 문화역서울284에서 프라미스 파크 워크숍, ‘미래 공원의 제안’을 진행했다. 워크숍은 ‘향’을 테마로 감각적 매개체를 통해 공원이라는 상징적 개념에 새롭게 접근하는 데 목표를 두었으며 현장 답사와 발표·토론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었다. ‘프라미스 파크’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함께해 온 일본 야마구치 미디어 아트센터Yamaguchi Center for Arts and Media(YCAM)의 바이오랩 연구원과 큐레이터도 한국을 방문해 이번 워크숍에 함께했다. ‘향’이 말해주는 공원의 정보현장 답사는 선유도 공원과 청계천에서 진행됐다. 문경원 작가는 “한때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졌던 과거를 지닌 도심 속 공간의 생태계가 얼마나 건강한지, 이들의 향에서 어떤 흔적을 찾을 수 있을지 궁금했다”고 설명했다. 워크숍 참가자들은 25일에 선유도 공원에서 풀, 열매, 흙, 곤충 등 효모가 서식할 만한 것을 채집하고 문화역서울284에 꾸려진 간이 실험실에서 채집물의 효모를 배양했다. 이튿날은 전날 채집한 효모와 YCAM 팀이 따로 청계천에서 채집한 효모가 어떤 유형이며 어떤 변화가 있는지, 배양된 효모가 어떤 향을 풍기는지 관찰했다. 이를 통해 참가자들은 평소 공원에서 맡는 향이 어떤 물질에서 비롯되는지 확인했다. YCAM 바이오랩 카즈토시 츄타 연구원은 “효모는 대개 곤충들에 의해 운반되기 때문에 효모를 분석하면 그 지역에 어떤 벌레가 많이 서식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이동하는지와 같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워크숍 일정이 짧아 결과를 분석할 수 있을 정도로 효모가 많이배양되지는 않았지만 청계천은 과거에 매립되었던 곳이라 초파리와 같은 곤충이 많이 서식했고 효모를 분석하니 아직도 뚜껑으로 덮여 있는 매립된 공간에서 나올 법한 결과가 나왔다”고 설명했다. 한양대학교 대학원에서 도시공학을 공부하고 있는 김홍렬 씨는 “처음에는 ‘향과 공원이 무슨 관계가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공원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었다. 공원을 이야기할 때 눈에 보이는 디자인에만 접근했는데 앞으로는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활용해 공원을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고 워크숍에 참가한 소감을 전했다. ‘향’이 이끄는 또 다른 세계 언뜻 보기에는 마이너한 방법으로 ‘공원’에 접근하는 것 같지만, 문경원 작가는 공원의 역사와 미래, 현재의 의미에 대한 탐구 결과를 시각, 청각, 촉각 등 다양한 감각으로 체험할 수 있는 영상과 설치 작품으로 선보여 왔다(본지 2016년 4월호 ‘폐허에서 그리는 약속의 공원: 문경원 인터뷰’ 참고). 문경원 작가는 “냄새는 각자 다양하게 경험하는 감각이지만 여러 사람이 공유하는 향의 기억이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이 경험하는 향을 가시화해서 빅데이터로 만들 수 있는 과학적 방법을 찾고 있다.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 공통으로 내재된 향의 기억을 공감하고 연대 의식을 나눔으로써 공원의 의미를 새롭게 생각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이번 워크숍에 참여한 YCAM의 카즈오 아베 부관장은 “냄새는 아직 표현의 수단으로 쓰기에는 어려운 소재지만 다른 감각들과는 달리 후각은 대뇌에 직접 전달되어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는 감각이다. 이번 워크숍은 ‘냄새는 예술적인 소재가 될 수 있는가’, ‘냄새로 공간의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을까’와 같은 질문에서 출발했다”고 워크숍의 의의를 설명했다. 그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주인공이 홍차에 적신 마들렌의 향을 맡으며 유소년기를 떠올리는 장면을 인용하며 냄새를 통해 기억을 환기하는 ‘프루스트 효과’를 이용해 시각과는 다른 차원의 세계를 구현할 수 있을지 기대된다고 말했다. 미래의 공원에서는 어떤 향이 날까? 향으로 공원을 구현하려는 아이디어는 엉뚱하고 무모한 도전일까? 향은 시각이 환기할 수 없는 무의식 속 과거의 경험과 보이지 않는 미생물의 세계를 열어준다. 각자가 갖고 있는 개별적인 향의 기억과 체험을 통해 거대한 공원의 이미지를 구축하려는 문경원 작가의 시도는 시각이 주는 단순하고 직접적인 정보에 의존하는 현대인을 새로운 세계로 이끈다.
‘형태 없는 형태’ 전
지난 6월 6일부터 12일까지, 대구에 위치한 아트클럽 삼덕에서 ‘Formless Forms형태 없는 형태’라는 타이틀의 최이규 개인전이 열렸다. 최이규는 계명대학교의 도시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며 뉴욕시립미술관, 센트럴 파크, 소호 및 대구, 두바이, 올랜도, 런던, 위니펙 등에서개인전 및 공동 전시를 개최한 바 있다. 이번 전시는 3D 프린팅으로 제작된 오브제를 선보이며, PLAPoly Lactic Acid 소재의 기하학적 형태와 액체, 빛, 그림자 등 형태가 없는 각종 물질들이 어우러져 만드는 효과와 의미를 다뤘다. 최이규는 “이 전시는 뚜렷한 형태가 없는 인공 건조물, 즉 도시를 이루고 있는 경제적이며 효율적인 물리적 환경에 대한 스터디”라고 밝혔다. 그는 평소 눈에 띄지 않지만, 품위 있고 묵묵하게 제 할 일을 해내는 공간에 감동을 느껴왔다.또한 “알맞은 비례와 크기를 가지며, 머무는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고, 촉각적인 즐거움을 선사하는 창작의 산물들은 마치 수십억 년을 단련해 온 자연에 필적할 만큼 자연스럽고 군더더기가 없다”고 덧붙였다. 다양한 형태의 오브제에는 정적이지만 가볍고 날렵함을 갈구하는 인공물에 대한 기하학적 추론이 담겨있다. 그는 “본질적으로 동적이며 수학적으로 정제되고 응축되어 장광설로 힘겹게 해명할 필요가 없는 기하학은 매력적인 학문이었다”며 어린 시절부터 품어 온 기하학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기도 했다. 전시장에는 30여 점의 작품이 설치됐다. ‘돈탑’은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져가는 50원짜리 동전을 3D 프린팅으로 제작한 타워에 삽입한 오브제다. 작가가 태어난 1976년 이후 제작된 동전들은 반짝임, 긁힌 자국, 변색, 뒤틀림, 그을림 등을 통해 다양한 개인사를 은유한다. 또한 동전이 모여서 이루는 낡았지만 찬란한 탑은 우리 사회에 대한 은유로 비춰진다. ‘물, 소금, 빛, 재, 피, 암석, 파동’은 우리 생명에 반드시 필요한 기본적 요소를 담는 그릇들로 구성된다. 거친 콘크리트 블록 제단祭壇에 놓인 고대 토기를 연상시키는 단순하고 기하학적인 형태의 그릇은 복잡한 형태form 위주의 디자인 시류에 대한 냉소주의cynicism를 내포한다. 이 외에도 로댕의 글귀를 볼 수 있는 정육면체의 조명 ‘텍스트 라이팅‘, 세제가 마르면서 나타나는 패턴과 투명함의 우연성을 관찰한 ‘세제회화’ 등 다양한 소품들이 전시됐다. 최이규는 이 같은 작품들을 통해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과연 정지된 물체에도 움직임이 존재할 수 있는가? 중력을 잊은 듯한 자갈의 물수제비처럼, 소년의 경쾌한 발걸음처럼, 문지방을 타고 넘는 바람처럼.”
‘헤더윅 스튜디오: 세상을 변화시키는 발상’ 전
지난 6월 16일, 세계적인 디자이너 토마스 헤더윅Thomas Heatherwick과 그의 스튜디오를 다룬 ‘헤더윅 스튜디오: 세상을 변화시키는 발상New British Inventors: Inside Heatherwick Studio’ 전이 막을 열었다. 디뮤지엄D museum이 주최하고 영국문화원이 함께 주관한 이번 행사는 영국의 국가 홍보 사업인 ‘그레이트 브리튼 캠페인the GREAT Britain campaign’의 일환으로 진행된다. 헤더윅 스튜디오는 가구와 제품 디자인부터 도시설계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분야에서 융합적인 접근 방식으로 혁신적인 프로젝트를 구현해 왔다. 영국 디자인계의 거장인 테런스 콘란Terence Conran은 토마스 헤더윅에게 ‘우리 시대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는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이번 전시는 헤더윅 스튜디오의 작업 중 26개의 핵심프로젝트를 다뤘다. 작품과 더불어 프로젝트의 진행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드로잉, 프로토타입, 테스트 모형, 1:1 사이즈의 구조물, 사진과 영상물 등을 선보인다. 이를 통해 관객은 끊임없는 질문과 실험으로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헤더윅 스튜디오만의 디자인 과정을 살펴 볼 수 있다. 전시는 크게 세 개의 주제로 구성됐다. 첫 번째 주제인 ‘사고’에서는 디자인의 핵심 개념을 도출해 내는 과정을 소개한다. 헤더윅 스튜디오는 디자인 과정을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공유해 그들의 비평을 수용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 디자인 전반에 걸친 질문과 재분석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왔다. 런던 시의 의뢰로 50년 만에 새롭게 디자인 된 ‘런던 버스New Bus for London’가 그 대표적인 예다. 사고’ 과정을 통해 승객들의 편의성과 에너지 효율성 등 기능적인 문제를 해결했을 뿐만 아니라 미적인 부분도 향상시켜 런던 시민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런던 패딩턴 유역Paddington Basin에 설치된 ‘롤링 브리지Rolling Bridge’도 같은 과정을 통해 부드럽고 세련된 메커니즘을 도출해냈다. 다리의 양 끝이 올라가며 열리는 일반적인 방식을 사용하지않고, 한쪽으로 둥글게 말리도록 설계해 런던 브리지를 하나의 조형물처럼 보이게 했다. ‘제작’에는 소재에 대한 다양한 실험을 통해 새로운 가치와 아이디어를 발견하고, 이를 창조적인 형태로 구현하는 과정을 담았다. 웰컴 트러스트Welcome Trust 본사의 아트리움에 설치된 ‘블라이기센Bleigiessen’은 이질적인 소재인 물과 금속을 결합한 작품이다. 물이 떨어지며 변화하는 형태를 형상화하기 위해 차가운 물에 액체상태의 금속을 떨어뜨리는 실험을 수백 번 반복했다. ‘소통storytelling’에서는 작품에 고유의 이야기를 담아 사람들에게 놀라움, 즐거움, 기쁨 등 다양한 감정을 선사하는 방법을 보여준다. ‘엑스포 2010 상하이’에서 선보인 영국관은 단순히 한 국가를 대표하는 건축물을 넘어 독특한 구조로 사람들에게 놀라운 경험을 제공했다. 건축물을 관통하는 6만 개의 투명 막대 끝에는 25만 개의 씨앗이 담겨 있어 ‘씨앗 대성당seed cathedral’이라 불리기도 했다. 이 막대는 낮에는 햇빛을 건축물 내부로 끌어들이고 밤에는 내부의 빛을 외부로 발산해 관객에게 신비로운 체험을 선사한다. 또한 전시를 위해 헤더윅 스튜디오가 특별히 제작한 ‘스펀-훌라!Spun-Hula!’가 최초로 공개된다. 이 작품은 2008년에 제작된 ‘스펀 체어’에 뿌리를 두고 있다. 당시 금속과 플라스틱으로 의자를 만드는 데는 성공했지만, 스스로 회전하는 메커니즘을 만들지는 못했다. 2016년 디뮤지엄과의 협업으로 현실화된 ‘스펀-훌라!’는 보이지 않는 메커니즘과 빛 센서를 통해 자동으로 반응하고 회전한다. 주변 환경의 미묘한 변화에도 반응해 시시각각 모습을 바꾸는 설치 작품이다. 이 외에도 토마스 헤더윅의 대학 재학 시절의 작품과 초기 작업들이 장르를 넘나들며 발전해 온 스튜디오 철학을 보여준다. 작은 디테일과 큰 구조를 넘나드는 유연한 사고방식과 실험적인 도전들은 사고의 틀을 확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떠도는 시선들, 큐레이터 뷰] 진행 중인 붕괴에 대한 접근
최근 세상은 더 흉흉한 분위기다. 시대의 불안은 동시대 여러 예술가들의 작업에서도 예민하게 감지된다. 필자가 얼마 전 기획한 전시 ‘컬랩스Collapse’는 ‘무방비적인 붕괴가 일상이 되어버린 현시대’에 대한 질문을 시각적 구조로 다뤄보고자 했다. 본고에서는 전시 소개와 더불어 참여 작가와의 인터뷰를 통해, 사회적 붕괴에 접근하는 동시대 예술 현상을 다루고자 한다. 붕괴를 공모하는 사회 구조 작년 영국 신문 「가디언guardian」에서는 세계적으로 명망이 높은 건물을 50개 선정해, 50회에 걸쳐 집중적으로 소개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 시리아의 시타델 등 도시 역사에서 주요한 건물들이 등장한 가운데 한국의 한 건물도 선정되었다. 놀랍게도 최대의 붕괴 참사로 전 세계인을 경악시킨 삼풍백화점이다. “삼풍백화점 참사로부터의 교훈”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된 기사는 한국의 개발 중심 성장이 불러일으킨 연쇄적 붕괴를 언급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선되지 않는 안전 불감증을 전 세계인에게 경고한다. 위기 속에서도 개개인이 견디면 살아남을 수 있다는 막연한 희망은 시스템의 오작동 속에서 무너져 내렸다. 언젠가부터 우리에게 붕괴의 이미지는 흔한 일상이 되어 버렸다. 전 세계에 충격을 준파리 총기 난사 사건, 우리 사회의 부패된 시스템을 보여준 세월호, 중국의 고도성장을 증명하는 도시 심천에서 쓰레기더미에 매몰되어 죽은 사람들, 그리고 증시 파동으로 인한 세계 경제 공황… 무너지고 전복되고 좌초되고 휘감기고 난장판으로 흩어지고 쓰나미처럼 몰아쳐 파괴되고 싱크홀처럼 순식간에 매몰되는 참혹한 사건, 사고, 재해는 각종 미디어를 장악하며 충격과 혼란의 이미지로 드러난다.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화려하게 시선을 장악하던 파국 이미지는 더 이상 스펙터클하지 않다. 순식간에 배가 침몰하고 건물이 무너지고 다리가 붕괴되고 도로가 함몰되고 수백 명 수천 명의 사람들이 급작스런 재난에 떠밀린 상황이 지금 우리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다. 보이지 않는 개개인의 자아 붕괴, 공황 상태는 극한의 살인이나 범죄로 이어진다. 최근 더 빈번해진 가족 간의 살인 사건, 더 잔혹하고 극악해진 범죄의 이미지. 일상 속에서 시체가 유기되는 비인류적 사건은 비단 한 개인의 인간성, 윤리적 붕괴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순식간에 무너져버린 사회적 윤리, 도덕 안에서 개개인의 인간성은 그 충격을 더 병리적, 더 파괴적으로 감지한다. 컬랩스된 사회ㆍ정치적 구조, 전 지구적 재난 등 그 힘에 밀려 세상은 마치 끝을 향해가고 있는 듯하다. 개인을 무력화하는 이 급작스런 붕괴로부터, 그리고 붕괴의 충격으로부터 우리는 어떻게 스스로를 바로 세울 수 있을까? 이번 전시는 무방비적으로 노출되어 온 붕괴 이미지가 일상이 되어버린 현시대에 대한 질문으로부터 출발한다. 사회적 붕괴를 시각적으로 다루고 있는 6명의 참여 작가는 오늘날 붕괴 현상과 그 배후의 구조에 대해 각각 신문 매체, 슬럼 이미지, 자연재해, 버섯구름, 가족 제도를 통해 접근한다. 심소미는 독립 큐레이터이며 미술과 건축 관련 글을 쓰고 있다. ‘신지도제작자’(송원아트센터, 2015), ‘모바일홈 프로젝트’(송원아트센터, 2014), ‘Hidden Dimension’(갤러리 스케이프, 2013) 등 다수의 전시를 기획했다. 갤러리 스케이프 책임큐레이터, 갤러리킹 공동디렉터, 보충대리공간 스톤앤워터 큐레이터로 활동했다. 2015년 동북아시아 도시 리서치(예술경영지원센터 후원)를 진행했으며, 2016년 난지창작스튜디오 연구자 레지던시에 입주해 활동 중이다.
[시네마 스케이프] 브루클린
소설가 김연수는 산문집 『소설가의 일』에서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을 “다리를 불태우다”라는 말로 비유한다. 지나온 다리를 불태우면 다시는 이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다. “대부분의 인생에서는 그게 다리였는지 모르고 지나가고, 그러고 나서도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야 뒤늦게 그게 다리였음을, 그것도 자기 인생의 이야기에서 너무나 중요한 갈림길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전통적인 이야기 작법에서 플롯은 3막으로 구성되는데 1막의 끝에 이 돌아올 수 없는 다리가 있다고 한다. 내 인생에서 적어도 한 번 이상은 건넜을 다리, 그때가 언제였을까. 그 다리를 건너지 않았다면 지금과 얼마나 달라져 있을까. ‘브루클린’은 195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로, 주인공 에일리스(시얼샤 로넌 분)가 고향 아일랜드를 떠나 미지의 땅 브루클린에 적응하는 이야기다. 에일리스가 브루클린으로 가는 배 위에서 멀어지는 엄마와 언니를 보며 손을 흔들 때, 관객은 그녀가 다시는 이전의 그녀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란 걸 안다. 낯선 브루클린에 도착한 후 한동안 지독한 향수병을 앓는다. 하숙집의 딱딱한 저녁 식사 자리도, 고향과는 다른 번잡한 출근길도, 화려한 백화점의 점원 생활도 모든 것이 낯설다. 잔뜩 주눅이 들어 누가 건드리면 금세 울음을 터트릴 것만 같은 표정이다. 그러던 그녀가 먼 훗날 그녀와 같은 경험을 하게 될 이에게 이렇게 말할 정도로 변한다. “힘들지만 향수병으로 죽지는 않아요. 곧 지나가죠.” 영화는 두 도시에서 일어나는 일상의 변화와 만나는 사람들과의 화학 작용을 통해 그녀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매우 디테일한 시선으로 묘사한다. 영화에서 짧은 슬로우 모션이 두 번 등장하는데, 한 번은 그녀가 입국 심사장을 통과한 후 파란색 문을 열고 환한 밖으로 나가는 장면이고, 또 한 번은 타국에서 보내는 첫 번째 크리스마스 날 밤에 눈이 오는 장면이다. 아일랜드인을 위한 무료 급식소에서 봉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앞 장면이 물리적으로 다른 공간에 첫발을 내딛는 날이라면, 두 번째는 어떤 인식의 전환점이 되는 날이다. 고향을 그리워하지만 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구슬픈 고향의 노래를 부르고 함께 모여 술에 취하는 모습을 보며 그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무료 급식소에서 봉사하며 하루를 보내고 비로소 자신이 발붙이고 있는 곳에서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지를 깨닫는다. 같은 공간을 다르게 보기 시작한 지점이다. 신부님의 도움으로 야간 대학에 다니면서 회계 자격증을 취득하고, 생활에 적응해가면서 까다롭기만 하던 하숙집 주인과 백화점 상관에게 인정받기 시작한다. 배관 일을 하는 다정한 남자친구도 생긴다. 어리숙하던 그녀의 표정은 모두 놀랄 정도로 당당해지고 활기에 넘친다. 코니아일랜드에 놀러 가기 위해 최신 유행의 수영복과 선글라스를 준비하고, 이탈리아 이민자인 남자친구네 집에 초대받고는 하숙집 친구들에게 스파게티 먹는 방법도 배운다. 엉엉 소리 내어 울며 고향에서 온 편지를 몇 번이고 다시 읽던 그녀가 이제 브루클린이 마치 집같이 느껴진다고 답장을 쓴다. 사랑하는 사람과 그녀를 인정하는 좋은 사람들이 있고, 무엇보다 그녀 스스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다. 그렇게 낯선 공간에 자신만의 경험과 기억이 쌓여 새로운 정서와 의미가 생기면서 공간은 장소가 된다. 브루클린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새로운 세계관을 바탕으로 꿈을 펼칠 수 있는 곳이 되었다. 서영애는 ‘영화 속 경관’을 주제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한겨레 영화 평론 전문 과정을 수료했다. 조경을 제목으로 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으며 영화를 삶의 또 다른 챕터로 여긴다. 영화는 경관과 사람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관계 맺는지 보여주며 인문학적 상상력을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텍스트라 믿고 있다.
[편집자의 서재] 색맹의 섬
포스터의 “절대 현혹되지 마라”는 경고를 일종의 선전포고로 읽었어야 했다. 영화 ‘곡성’은 상징과 메타포, 블랙유머로 뭉친 ‘떡밥’을 관객들 앞에 던진다. 이미 영화를 보고 온 사람들의 증언에도 코웃음 치며 나는 절대 감독의 의도에 홀리지 않으리라는 굳은 결의를 하고 의자에 삐딱하게 기대앉았다. 그렇지만 선로를 이탈한 기차처럼 폭주하는 이 영화를 어떻게 당해내랴. 영화 초반부, 주인공 종구(곽도원 분)가 밥 먹고 나가라는 장모의 만류에 못 이기는 척 아침밥을 배불리 먹고 사건 현장에 지각할 때, 이 영화는 사건의 전말을 보여주는 데에는 애초부터 관심이 없다는 걸 알아차렸어야 했다. 종구의 직업은 경찰이지만 그가 사건의 원인을 파헤치고 해결하는 방식은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수사와는 거리가 멀다. 종구는 허술하고 친근한, 우리 주변에 한 명쯤은 있을 법한 평범한 인물이다. 관객들은 그의 시선을 따라 정신없이 끌려다니다 영화관을 나서면서 중얼거리게 되는 것이다. “뭣이 중헌디, 뭣이 중허냐고.” 관객들의 예상과 기대를 비껴가며 ‘들었다, 놨다’하는 영화의 장치는 대부분 상징적 의미를 내포한 시각적 이미지에서 출발한다. 피해자들의 집마다 걸려 있는 해골을 닮은 금어초, 속을 알 수 없는 무당 일광(황정민 분)이 미끄러지듯 차를 몰며 등장할 때 배경으로 보이는 구렁이 같은 능선과 도로, 일본에서는 길조로 보지만 한국에서는 흉조를 뜻하는 까마귀 등의 상징적 이미지가 반복해서 등장하면서 관객들에게 무언의 메시지를 주입시킨다. 주인공 종구 또한 ‘보는 것’에 집착한다. 일본인을 조심하라고 충고하는 무명에게 “직접 봤냐”고 추궁하다가 급기야는 “내 눈깔로 직접 봐야 쓰겄다”며 나선다. 하지만 영화의 결말은 어떤가. 종구와 관객이 ‘본 것’은 극히 일부분일 뿐이고 사건의 전말은 여전히 알 수 없다. 만약 우리의 시각적 정보가 제한적이라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변할까? 최근에 읽은 올리버 색스의 『색맹의 섬』은 태평양 한가운데 미크로네시아 제도의 조그만 섬핀지랩에 살고 있는 색맹 원주민의 삶, 풍습, 역사, 섬의 생태 등을 관찰한 여행기다. “완전한 색맹으로 태어난 사람들이 보는 세계는 어떨까? 그 사람들은 뭔가가 부족하다는 것 자체를 느끼지 못할까? 그들도 우리가 보는 세계 못지않게 강렬하고 활기 넘치는 세계를 갖고 있을까”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를 비롯해 『뮤지코필리아』, 『나는 침대에서 내 다리를 주웠다』 등 뇌와 정신 활동에 관한 서적을 10여 권 저술한 저명한 신경과 전문의인 작가는 단순한 의학적 호기심을 넘어 색맹의 ‘삶’에 관심을 갖고 색맹의 섬을 찾아 떠난다. 그가 도착한 핀지랩에서는 색맹을 ‘마스쿤’(‘안보인다’는 뜻)이라고 하는데 이 섬 인구의3분의 1이 마스쿤 유전자 보유자이며, 전체 인구 약 700명 가운데 57명이 색을 완전히 구별할 수 없는 전색맹이다. 세계 다른 지역에서 색맹의 발생률은 30,000분의 1 미만이지만, 핀지랩에서는 12분의 1에 달한다. 이 섬에서 색맹은 불쌍한 장애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불편할 뿐인 흔한 질병이다. 올리버 색스는 일반적으로 병원에서 뭔가를 검사할 때, 대개 상당히 사적으로 이루어지는 것과 달리 핀지랩의 색맹 검사는 “마을 축제라도 벌어진 것처럼 즐겁고 경쾌한 분위기”였다고 묘사한다.1 올리버 색스의 가장 큰 미덕은 환자를 ‘치료 대상자’로만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병의 원인을 탐구하고 치료방법을 연구하지만, 환자의 삶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편견 없이 바라본다. 그래서 그의 책에는 따뜻한 인간미와 유머가 넘친다. 그는 색맹 원주민이 어떤 면에 있어서는 일반인보다 뛰어난 감각을 지녔다고 기술한다. 색맹원주민은 밝기만으로 색을 구분하기 때문에 색채의 대비가 뚜렷하지 않은 색깔들을 쉽게 구분해 아름다운 무늬의 깔개를 만들기도 하고, 어둠 속에서도 명암을 잘 구분할 수 있어서 밤낚시를 할 때 발군의 기량을 발휘하기도 한다. 한번은 올리버 색스의 일행 중 한 명이 노란색과 녹색을 구분할 수 없는 색맹 원주민에게 바나나가익었는지 안 익었는지 어떻게 알 수 있냐고 묻는다. 원주민은 대답 대신 연두색 바나나를 내민다. 아직 푸른 기가 돌지만 껍질을 벗겨보니 속은 완전히 익은 바나나다. 놀라워하는 색스의 일행에게 원주민은 말한다. “색깔만 보는 건 아니에요. 우린 눈으로 보고, 만져보고, 냄새 맡고, 또 알아요. 여러분들은 그냥 색깔만 보겠지만 우린 모든 걸 따지는 거지요!”2 지난 5월, 문경원 작가의 프라미스 파크 워크숍, ‘미래 공원의 제안’이 문화역서울284에서 열려 취재를 다녀왔다. ‘향’으로 공원을 탐구한다는 기획을 처음 들었을 땐 막연하고 추상적이라는 느낌이 들었지만 “다양한 감각을 이용해 구체적인 개념을 만들어가는 시도와 과정 자체가 하나의 플랫폼으로서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문경원 작가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시각이 지배하는 현대인의 얕은 사유 방식에 경종을 울리는 새로운 작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만약 기대했던 결과에 이르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수집한 자료와 연구 방식은 ‘공원’이라는 개념을 이해하고 예술의 언어로 표현하는 초석이 될 것이다.
[CODA] 살아남지 못한 구절
가다듬고 지우고 살리고 없애고 되살리고 줄인다. 그 과정에서 일부는 결국 살아남지 못한다. 좌담회 녹취록 정리 이야기다. 대부분의 좌담회는 2시간 남짓 진행된다. 예정된 주제들을 하나씩 소화하며 순조롭게 이야기가 풀리기도 하지만, 곁가지로 새는 일도 다반사다. 어떤 경우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이야기가 펼쳐져 원래의 주제로 되돌아오기까지 한참이 걸리기도 한다. 그럴 때 녹음기를 바라보는 에디터의 속은 바짝바짝 타들어간다. 예상했던 분량이 안 나올까봐 걱정이 되어서다. 한 가지 주제에서 나아가지 못하고 논의가 빙빙 맴돌 때도 마찬가지다. 마치 도돌이표가 표시된 것 마냥 중언부언된 부분을 쳐내고 나면 지면에 옮길 텍스트가 몇 단락 안 될 때도 있다. 30분 넘게 이야기가 오고갔는데도 말이다. 물론 정반대의 경우도 있다. 패널들이 이야기에 심취해 예정했던 2시간을 훌쩍 넘기는 경우다. 게다가 주제에 대한 집중도까지 좋은 경우는 요즘 말로 웃픈 상황이다. 내색 할 순 없지만, 없던 다크서클이 절로 생기기도 한다.녹취 분량도 어마어마해지고 다른 지면을 줄여서 새로 지면도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표정은 웃고 있어도 머릿속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어떨 땐 애꿎은 녹음기의 정지 버튼만 노려보다가 녹취를 풀기도 전에 그림 먼저 그리기 시작한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는 통째로 들어내야지. 안 그랬다간 A4 30매도 넘기겠어.’ 물론 내용이 알차다면 지면을 더 할애하는 것이 순리이겠지만, 그게 꼭 득인 것만은 아니다. 지면을 빽빽하게 채운 활자 더미에 독자들은 시선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내용의 질과는 무관하게…. 지난 호 특집에 실린 좌담회 ‘설계비, 무엇이 문제인가’는 좀 독특했다. 평균 좌담회소요 시간인 딱 2시간 동안만 진행되었음에도 초벌 녹취 분량이 A4 26매에 달했다. 초벌 녹취 단계에서는 불필요한 부분을 미리 배제하고 정리하기 때문에 보통 20매 이내에서 정리되는데, 이번 좌담회는 달랐다. 그만큼 곁가지도 잔뿌리도 없이, 굵직굵직한 메인 줄기를 따라 2시간 내내 주제에 부합한 이야기가 펼쳐졌다. 패널들이 준비해 온 자료도 순도가 높았다. 그럼에도 “텍스트가 너무 많아서 읽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는 반응도 있었고, “설계 환경의 가장 큰 이슈를 결국 ‘기-승-전-설계비’로 맺은 점 또한 아쉽다”(이번호 칼럼)는 지적도 있었지만, ‘기-승-전-설계비’에 대한 아쉬움은 특집의 전체적인 ‘기획’에 대한 것이고 텍스트의 양을 더 간결하게 구성하지 못한 것은 편집부 탓일 뿐, 좌담회 자체는 기억에 남을 만큼 인상적이었다. 살아남지 못한 구절을 굳이 여기서 되살리려는 까닭이다(공식적인 좌담회의 기록은 아니기 때문에 이니셜로 표기한다). A: 조경 업계를 거칠게 구분하자면 설계, 시공, 시설물로 나눌 수 있는데, 조경설계사무소의 대표는 대부분 조경학과 출신이다. 조경학과 학부 때부터 디자인의 매력에 끌려서 설계를 자신의 천직으로 여겨 이 일에 몸담고 있는 이들이다. 그러나 조경 시공이나 조경 시설물 회사의 대표는 조경학과 출신이 아닌 경우가 많다. 그런데 회사 경영은 이들이 더 잘한다. / B: 돈을 벌기 위해 사업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 C: 하버드 대학교에서는 설계대학원에서도 경영을 가르친다. 회사의 안정적인 경영이 가능해야 원하는 설계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A: 적정 설계비를 받지 못하면서 생기는 문제 중의 하나는 조경학과 학생들이 설계 분야로의 진출을 꺼리는 점이다. 업무양도 많고 초봉도 낮다보니 설계를 기피한다. 예전에는 조경학과의 상위 그룹이 설계를 했지만, 지금은 그 반대다. / B: 조경설계사무소의 급여가 가장 낮다는 이야기인가? / A: 가장 적다. 대기업 연봉은 세배 이상인 경우까지 있다. / A: 조경 분야 내에서도 설계 분야가 가장 연봉이 적은 가? / C: 내가 알기로는 2000년대 중반에는 조경 분야 내에서 설계사무소의 연봉이 가장 높았다. 시공 회사 대표가 설계사무소에서 신입 직원에게 월급을 너무 많이 줘서 시공 회사로 취직하려는 졸업생이 없다고 항의도 받았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역전되어서 설계사무소가 제일 적고 자재 회사가 제일 많이 준다. / D: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프를 좀 다르게 봐야 한다. 출발선상에서 보면 대기업과 설계사무소의 연봉에 많은 차이가 있다. 하지만 대기업의 초봉이 4천만 원 혹은 5천만 원에서 시작되더라도 1억 원까지 빨리 가는 게 아니다. 대기업은 그래프가 완만하다. 게다가 몇 퍼센트만 살아남는 구조다. 반면 설계사무소는 개인의 역량에 따라 그래프의 곡선이 얼마든지 가파르게 상승할 수 있다. 조경 분야끼리만 비교해도 마찬가지다. 시공 회사가 설계사무소보다 그래프가 완만하다. 설계 분야의 가능성이 더 크다는 이야기다. / A: 그런데 그렇게 버틸 수 있는 경우가 많지 않다. 시공이나 시설물 분야는 10년 이상 계속 다니는 경우가 많은데, 설계는 적은 연봉으로 10년 이상 버티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러다보니 요새는 10년차 경력자는 웃돈을 주고 스카우트해야 한다. / C: 상승 곡선을 가파르게 탈 수 있는 기회는 분명히 설계 쪽이 많은데, 현재 취업을 목전에 둔 젊은 친구들은 초봉 비교를 조경업종 내에서 하지 않고 일반 대기업과 한다. 기회가 될 때마다 학생들에게 대기업이 초봉은 많아도 10년 후를 생각하면 설계 분야가 더 비전이 있다고 설명을 하지만, 당장의 초봉에 연연해하는 경우가 많다. 큰 그림을 그려야 하는데 말이다. / B: 요새는 설계사무소가 어렵다는 말들이 많아서 교수들도 설계사무소 취업을 권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분명히 비전이 있다. 설계자의 희소가치도 점점 높아질 것이다. 양질의 설계를 할 수 있는 전문가에 대한 수요는 커질 수밖에 없고, 단가도 자연스럽게 높아질 것이다. 성공 확률은 확실히 과거보다 지금이 더 크다. / A: 설계사무소는 여성에게 유리한 측면도 많다. 경력 단절 이후에 재취업할 수 있는 확률이 다른 분야보다 월등히 높다. 초벌 녹취 원고 A4 26매 중에서 지면에 담긴 분량은 A4 14매다. 절반 가까이가 살아남지 못했다. 그 중에서 아주 일부를 옮겨 보았다. 설계비와 직접적인 관련성이 옅어서 딜리트 키를 피해가지 못했던 대목이다. 왜 옮기는지에 대한 부연은 생략한다.
[100 장면으로 재구성한 조경사] 누가 중세를 두려워하는가?
#87 빛을 담는 방법 - 중세의 고딕 성당 이런 이야기가 있다. 중세 유럽 한복판에 쉴다라는 도시가 있었다. 이 도시의 시민들은 본래 너무 똑똑했다. 그러나 똑똑해봤자 사는 것만 복잡하지 아무 이득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모두 바보가 되어 살기로 했다. 이제 바보가 된 똑똑한 쉴다 시민들은 그 기념으로 시청사를 짓기로 결의했다. 곧 작업에 착수, 모두 힘을 합쳐 도운 끝에 건물이 완성되어 성대한 준공식을 열었다. 그런데 바보들답게 창문 내는 것을 잊은 까닭에 청사 안이 깜깜절벽이라 업무를 볼 수가 없었다. 다시 호프집에 모여 회의를 열었다. 홧김에 맥주잔을 거푸 기울이던 어느 시민이 갑자기 무릎을 치며 외쳤다. “그렇지! 이거야. 맥주를 이렇게 잔에 담는 것처럼 햇빛을 양동이에 담아서 나르면 되지 않을까” 모두 갈채를 보냈다. 다음 날 아침 동이 트자마자 시민들은 양동이며 부대자루 등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열심히 빛을 담아종일 청사 안으로 날랐다. 참으로 부지런히 나른 끝에 해 질 무렵 모두 녹초가 되었다. 마침내 어둠이 내리고 쉴다 시민들은 기대감에 잔뜩 부풀어 시청으로 향했다. 그 결과가 어땠을지는 보고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들은 결국 지붕을 들어냈다. 눈비가 내리면 지붕을 다시 덮고. 그러다가 우연히 벽의 갈라진 틈으로 빛이 새어들어 오는 것을 발견하고 창문을 냈다고 한다. 교회 혹은 성당을 ‘빛의 집’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신은 곧 빛이므로 교회에 빛이 가득하면 이는 곧 신이 거하시는 것이라 믿게 된다. 그러므로 교회를 지을 때 되도록 많은 빛이 들어오게 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그 대답이 창문에 있다는 사실은 쉴다 시의 현명한 바보들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알고 있다. 그들처럼 지붕을 걷어낼 수는 없으므로 천장을 매우 높게 지어서 지붕이 거의 하늘에 닿게 해야 더 많은 빛을 담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창문도 매우 커야 한다. 문제는 ‘기술적으로 이를 어떻게 해결하는가’였다. 창문을 많이 내면 벽의 지탱하는 힘이 약해져서 거대한 지붕의 무게를 받아내지 못한다. 12세기 중반, 프랑스 중세 건축가들이 이에 대한 해법을 찾아내어 결국 빛이 가득한 성당을 만드는 데 성공하게 된다. 벽이 해체된 순간이라고도 말한다. 기존의 두꺼운 벽 대신에 창문과 기둥을 연속시켜 성당의 외관을 완성했다. 이런 구조로 인해 하늘에 닿을 듯 높이 짓는 것도 가능해졌다. 성당 건축은 대개 선박처럼 긴 홀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성당 내부 공간을 선체라고도 부른다. 이 홀은 다시 길이에 따라 세 구역으로 구분된다. 그중 중앙의 홀을 신랑身廊이라고 하며 이를 좌우에서 좁은 복도와 같은 측랑이 보좌한다. 신랑과 측랑은 벽으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 열주에 의해 분리되며 열주의 기둥과 기둥 사이는 대부분 아치로 이루어져 있다. 이런 구조를 ‘바실리카’라고 한다. 바실리카는 본래 고대의 공공건물이나 신전을 짓던 방식을 뜻했는데 기독교가 도입되면서 서서히 교회 건축을 일컫는 용어로 굳어졌다. 흔히 말하는 중세의 고딕 양식이란 바실리카의 기본 형태를 더욱 발전시킨 것이다. 성당은 대개 동서 방향으로 길게 짓는다. 신도들은 서쪽으로 입장하여 예루살렘이 있는 동쪽을 바라보게 된다. 이것이 정석이다. 동쪽의 좁은 벽을 반원형으로 만들고 벽 전체를 창문으로 대체하면 해가 떠오르면서 빛이 곧 가득 차게 된다. 빛의 집을 짓는 첫 번째 원리다. 바실리카는 신랑의 천장이 측랑의 천장보다 훨씬 높은 것이 특징이다. 측랑은 중앙의 신랑을 되도록 높게 지을 수 있도록 좌우에서 받쳐 주는 역할을 한다. 홀을 크게 지었으므로 지붕 역시 매우 커서 그 무게가 만만치 않다. 이 지붕의 무게를 벽체로 받치는 것이 아니라여러 개의 기둥에 분산시키는 것이 구조적 해법이었다. 그래야만 두껍고 투박한 벽체를 최소화할 수 있게 된다. 무게를 사방으로 분산시키기 위해 궁륭형의 독특한 천장 구조가 고안되었다. 돌로 만들었을 뿐 그 원리는 텐트와 같았다. 평평한 것도 아니고 완벽한 구형도 아닌 텐트 구조의 궁륭을 여러 개 연결해 천장을 완성했다. 대개 네 개의 기둥이 궁륭 하나를 받친다. 그러므로 연결된 궁륭의 숫자에 따라 기둥의 수도 결정되며 당연히 성당 홀의 길이도 결정된다. 그다음으로 기둥 사이의 아치를 뾰족하게 변형시켰다. 기둥 사이의 간격이 같더라도 아치가 높아짐으로써 천장도 같이 들어 올려졌다. 창문의 형태를 아치의 형태에 맞추었으므로 좁고 길며 끝이 뾰족한 고딕 특유의 창문이 탄생했다. 외벽 바깥쪽에는 추가로 ‘ㄱ’자의 구조물(버트레스라고도 함)을 대어 측면으로 가해지는 압력을 지탱했다. 물론 아무리 날렵하게 지었다고 하더라도 돌의 총 무게가 만만치 않았으므로 이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기초를 튼튼하게 닦아야 했다. 지하에 묻힌 돌의 무게와 지상에 쌓은 돌의 무게가 거의 같았다고 한다. 고정희는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나 어머니가 손수 가꾼 아름다운 정원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어느 순간 그 정원은 사라지고 말았지만, 유년의경험이 인연이 되었는지 조경을 평생의 업으로 알고 살아가고 있다. 『식물, 세상의 은밀한 지배자』를 비롯 총 네 권의 정원·식물 책을 펴냈고,칼 푀르스터와 그의 외동딸 마리안네가 쓴 책을 동시에 번역 출간하기도 했다. 베를린 공과대학교 조경학과에서 ‘20세기 유럽 조경사’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베를린에 거주하며 ‘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리질리언스 읽기] 리질리언스 개념의 등장과 확장
제방이 무너져 내렸을 때 ‘제방이 무너져 내렸을 때When the Levees Broke’는 2005년 8월 미국 남동부를 강타한 허리케인 카트리나에 의해 처참하게 무너져 내린 뉴올리언스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다. 영화는 가족을 잃은 주민들의 인터뷰로 시작된다. 그들은 카트리나가 뉴올리언스에 접근 중이라는 소식을 접했을 때 해안 제방이 이를 충분히 막아낼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재앙은 카트리나 상륙 사흘 후 새벽에 일어났다. 뉴올리언스를 보호하고 있던 폰차트레인Pontchartrain 호의 제방이 붕괴되어 멕시코 만의 검은 바닷물이 순식간에 뉴올리언스를 덮쳤다. 해수면보다 지대가 낮은 뉴올리언스 지역의 80% 이상이 물에 잠겼다. 2만 명 이상이 실종 혹은 사망했고 8만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이로써 화려했던 재즈의 도시가 종말을 알리는 듯 했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당시 미국에서 경제적·사회적·환경적으로 가장 취약한 지역이었던 뉴올리언스는 거대한 재난 이후의 상황을 감당하지 못했다. 치한을 위해 ‘사살권’을 발효하는 등 무정부 상태를 방불케 했다. 약탈과 방화, 주민 간의 총격전, 성폭행, 구조대와 이재민의 마찰, 시체썩은 물과 토양 속의 오염 물질이 뒤섞인 식수…. 강력한 인공 구조물로 폭풍을 막으려고만 했지, 폭풍이 도시를 붕괴시킨 이후 사회와 환경을 재건하는 방법과 이전으로 회복시킬 수 있는 계획을 전혀 갖고 있지 않았다. 카트리나는 완벽한 재난 대응법은 없다는 것을 일깨웠다. 오히려 재난을 받아들임으로써 피해를 줄이고 피해를 입은 지역을 회복시킬 수 있는 대응법이 더욱 중요했다. 이에 미국 사회는 회복력, 즉 리질리언스resilience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세계 최대 규모의 자선 단체인 록펠러 재단Rockefeller Foundation과 손을 잡고 1조 원 규모의 ‘국가 재해 리질리언스 대회National Disaster Resilience Competition’를 개최했다. 이는 리질리언스 개념을 도입하여 대형 재난 대응 계획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키기 위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뉴올리언스를 비롯한 뉴욕, 뉴저지, 뉴멕시코, 시카고 등 많은 해안 도시가 이에 동참했다. 프로젝트는 조경계획과 도시계획 중심으로 진행되었으며, 미국조경가협회ASLA(American Society of Landscape Architects)는 2014년 학술 대회 주요 테마로 ‘리질리언스’를 선정해 계획과 설계뿐만 아니라 시공과 관리에 이르는 다양한 분야에 적용시킬 방안을 논의했다. 리질리언스라는 실천적 개념을 미국 조경계에 환기시키기 위한 방법이었으며, 이를 시작으로 리질리언스 향상을 위한 조경 정책에 재정적 지원이 이루어졌다. 도시 조경에 집중되어 있던 미국 조경계가 방재, 해안 복원, 기후 변화, 사회 생태 시스템 등 거시적이고 복잡한 시스템에도 관심을 갖도록 유도했다. 리질리언스 개념은 지속가능한 사회 구현의 전략적 수단이자 예측 불가능한 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핵심 어젠다로 급성장했다. 전진형은 고려대학교 생명과학대학 환경생태공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며, 습지생태계 조성과 생태환경회복기술 개발, 시스템 다이내믹스를 활용한 도시 내 저탄소 경관 디자인 요소 개발 및 야생생물 군집 변화 모델링 등 생태계 복원 및 설계와 관련된 다양한 연구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생태학적 이론과 과학적 데이터를 근거로 한 다양한 디자인 시뮬레이션을통해 설계 단계부터 시공 후까지 생태계 변화를 예측하여 대상지가 지속가능할 수 있는 생태적 조경 설계와 유지관리 방안을 연구하고 교육하고 있다. 최근에는 생태환경의 보존과 인간의 이용 및 개발의 조화라는 패러독스를 해결하기 위해 디자인을 통한 생태회복성(eco-resilience)에 관심을 갖고 이를 조경 분야에서 적용하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연재 순서 1. 21세기 패러다임의 변화,지속가능성을 넘어 리질리언스로 2. 리질리언스 개념의 등장과 확장 3. 새로운 사고의 틀, 리질리언스 사고 4. 리질리언스 향상을 위한 전략, 적응과 전환 5. 새로운 패러다임을 위한 도전1: 도시 리질리언스 6. 새로운 패러다임을 위한 도전2: 해안 리질리언스
[조경의 경제학] 공원의 적정량을 사회적 합의로 도출할 수 있을까?
다수결은 합리적인가? 대표자와 관료는 우리를 위해 일하는가? 거버넌스는 정부의 대안인가? 다수결은 합리적인가 땅이 있을 때 그곳에 공원의 조성 여부를 어떻게 결정하는 것이 좋을까? 예산이 있을 때 그 돈으로 어디에 공원을 조성할지를 어떻게 결정하는 것이 좋을까? ‘좋다’는 말은 가치 지향적이다. 게다가 ‘좋음the good’이 ‘옳음the right’과 항상 일치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위 질문은 대답하기가 아주 어렵다. 이 글에서는 ‘좋다’는 말의 의미를 사람들의 불만이 가장 적은, 그래서 만족이 가장 큰 상태라고 정의한다. 이 연재를 처음부터 읽어온 독자라면 그 상태에서 공원에 투입되는 자원의 배분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것을 이해할 것이다. 그러면 위 질문에는 이제 가치가 아닌 수단의 문제만 남는다. 지난 호에서 우리는 사회적 의사결정의 수단으로서 비용편익분석을 살펴보았다. 이 글에서는 또 다른 수단인 사회적 합의를 살펴본다. 비용편익분석이 구체적이고 기술적인 것과 달리 사회적 합의는 추상적이고 포괄적이다. 공원의 조성을 사회적 합의로 결정하는 방법은 주민들이 모여 투표하는 것일 수도 있고, 주민이 선출한 대표자와 정부에게 일을 맡기는 것일 수도있고, 그 외의 또 다른 정치적 대안일 수도 있다. 어떤 방법을 활용하든 사회적 합의를 잘 이끌어낼 수만 있다면 우리는 공원의 적정량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먼저 투표라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보자. 투표는 여러 사람의 선택을 모으는 것이다. 따라서 그 결과는 만장일치인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만약 사람들이 공원을 추가로 조성하는 대가로 기꺼이 지불할 용의가 있는 금액, 즉 한계지불의사를 정확히 표현한다면, 정부는 공원의 적정량에 대해 만장일치에 버금가는 수준의 결정을 할 수 있다. 바로 모든 개인이 표현한 한계지불의사의 합과 공원 조성의 한계비용이 같아지는 점을 찾는 것이다.1 물론 세금은 각 개인이 표현한 한계지불의사만큼 걷어야 한다. 린달Erik Lindahl이 제시한 이 상태를 경제학에서는 린달균형Lindahl Equilibrium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론서에 나오는 이 상태는 현실에 없는 이상에 불과하다.2 실제로는 ‘오늘 점심에 뭐 먹지’라는 문제조차 만장일치로 결정하기 힘들다. 그래서 우리는 다수결을 주로 활용한다. 다수결은 사회 전체의 만족이 가장 큰 결과를 찾는 방법으로서 손색이 없어 보인다. 비록 ‘다수의 선택을 따르는 것이 항상 정의로운가’와 같은 철학적 이슈는 있을지언정 다수결에 방법적인 문제는 없다고 우리는 믿고 있다. 과연 그럴까? 대답은 ‘그렇지 않다’이다. 다수결의 문제는 표를 세는 과정이 아닌 질문을 던지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용산의 미군이 이전했다고 가정하자. 오래전부터 이 땅은 공원으로 조성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미군이 이전을 하고나니 다른 주장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그중에 시민의 공감을 크게 얻고 있는 대안은 대학을 건립하자는 주장과 병원을 건립하자는 주장이다. 정부는 결국 세 가지 대안을 놓고 투표를 진행하기로 한다. 상황을 단순화해서투표자가 청소년, 학부모, 고령자 세 집단으로 구성되었다고 가정하자. 세 집단의 구성원 수는 동일하다. 청소년의 선호는 공원>대학>병원 순이다. 하지만 자녀를 대학에 보내야 하는 학부모의 선호는 대학>공원>병원 순이다. 자식을 다 키운 고령자의 선호는 병원>공원>대학 순이다. 이를 정리하면 <표1>과 같다. 이들을 대상으로 정부는 두 가지대안 중 하나를 선택하는 투표를 여러 차례 진행하고자 한다. 먼저 공원과 대학으로 투표를 하면 공원이 선택될 것이다. 청소년과 고령자 두 집단이 대학보다 공원을 더 선호하기 때문이다. 비슷한 이유로 대학과 병원으로 투표를 하면 대학이 선택되고, 병원과 공원으로 투표를 하면 공원이 선택될 것이다. 결국 세 대안의 순위는 공원>대학>병원이 된다. 사실 세 번째 투표는 할 필요도 없었다. 앞선 두 번의 투표를 통해 순위가 이미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제 정부는 확신을 가지고 미군이 이전한 용산에 공원을 조성할 수 있다. 민성훈은 1994년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조경설계 서안에서 2년간 일했다. 그 후 경영학(석사)과 부동산학(박사)을 공부하고 개발, 금융, 투자 등 부동산 분야에서 일했다. 2012년 수원대학교로 직장을 옮기기 전까지 가장 오래 가졌던 직업은 부동산 펀드매니저다.
[그들이 설계하는 법] 이스탄불에서 설계하는 법
1 마음에 든 몇 가지 이스탄불의 일을 하면서 마음에 드는 게 몇 가지 있다. 우선 간섭을 받지 않는 게 마음에 들었다. 대상지 경계의 확정 같은 주요 의사 결정을 빼면, 일을 진행하는 동안 이런저런 간섭을 크게 받지 않았다. 우리가 초기에 제안한 설계안은 이스탄불 시가 정해준 경계의 밖을 과감하게 포함하고 있었다. 면적이 크면 클수록 높은 설계비를 받는데 유리한 면도 있지만, 그보다는 하천 복원이 인접 토지의 이용 전환과 맞물릴 때 효과가 더 좋기 때문이었다. 이스탄불에서 사유지의 수용이 우리보다 더 어렵다는 것도 이번에 알았다. 공공 기관이 공익을 목적으로 토지를 싼 값에 수용하는 시스템—우리나라의 LH나 SH공사 등이 늘 하는 것처럼—이 아마 이스탄불, 터키에는 정착되지 않은 듯 했다. 있어도큰 규모의 택지 개발 사업이 아닌 블록 규모의 소규모 도시재생 사업은 이에 해당되지 않는지도 모르겠다.공유지가 아닌 하천 주변의 사유지는 토지 수용과 매입의 어려움 때문에 모두 제외됐다. 다행스러운 건 하천 주변에 우리나라보다는 시유지 등의 공유지가 많다는 것이다. 프로젝트 대상지의 경계 외에도 불법 오수 처리와 유지용수 급수 방식은 워낙 중요한 문제라 오랫동안 서로 토의하며 협의해야 했다. 우리의 아이디어에 대한 그들의 판단과 실무상의 어려움에 대한 얘기를 주로 주고받았다. 우리가 제안하면 엔지니어가 기술적으로 검토해 결과를 보내주는 방식이었다. 조경은 물론이고 토목, 수자원, 도시계획, 경관 등 복원 계획 전체를 다루는 상위 기본계획SD 팀으로 우리를 인정하고 예우하는 태도가 협의 과정 전반에 깔려 있었다. 아주 마음에 드는 부분이었다! 대상지 경계와 수자원 파트와의 실무적 협의를 제외하면, 설계에 관해서는 일절 얘기가 없었다. 첫 번째 강인 젠데레Cendere의 SD를 3개월 만에 끝내고 PT를 하러 이스탄불에 갔을 때, 발주처 과장이 주도한 첫 회의는 7시간이 넘게 걸렸다. 관련 부서의 모든 엔지니어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설명을 듣고 확인하는 자리였다. 3일 뒤에 부시장 보고, 다시 3일 뒤에 시장 보고를 했다. 보고 중에 설계안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하는 말을 듣지 못했다. 질문은 매우 많았지만 기본적으로 수고했다는 의미의 코멘트가 많았다. 다행히도 아직까지는 이스탄불 시청 대부분의 사람들이 만족하고 있는 듯하다. 2 고래도 춤추게 한다니까 젠데레의 설계안은 잘 풀렸다. 현재 이스탄불의 여건을 잘 읽어냈고 이스탄불의 역사 속에서 젠데레라는 하천의 문화적 함의도 잘 찾아냈다. 하천 복원에 꼭 필요한 수리·수자원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 즉 홍수위, 통수 단면, 오수의 분류 또는 합류에 대한 시스템과 유지용수의 공급에 대한 이해를 갖춘 조경설계사를 잘 만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이스탄불 시의 전폭적인 믿음과 신뢰, 자료 지원—물론 자료가 우리가 원할 때마다 빨리빨리 지원된 것은 아니다. 혹 이슬람 국가와 일할 기회가 있다면 이들의 여유로움, ‘인샬라’라고 부르는 것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이 동반되어서 가능했던 일이기도 하다. 과장 보고, 국장 보고, 부시장 보고 그리고 시장 보고까지. “도대체 어디까지 가야해, 그리고 어디가 제일 높은 데야”하고 의아해했듯이 보고 체계가 다소 복잡하고 많았다. 하지만 그 모든 보고에서 호평을 받았다. 국장은 보고가 끝나자마자 당장 부시장 보고 약속을 잡았고, 부시장은 희색이 만면했다. 나이 지긋한 노老시장은 보고가 끝난 후, 자리에서 일어나 악수를 청했다. 그때 내가 “사진 좀 찍을까요”라고 청했고 노시장은 기꺼이 응해줬다. 노시장은 꼭 설계안처럼 시공될 수 있도록 해달라는 부탁도 잊지 않았다. 이 정도 되니까 드디어 ‘발표까지 끝났구나’하는 안도감보다는 걱정이 더 많아졌다. 보고는 대개 잘 나온 공간 위주로만 요약되니까 말이다. 어쩔 수 없이 무시되거나 안 풀린 공간이 없을 리 없다. 이 때문에라도 좋은 DD, CD팀을 만나야 한다는 생각을 계속하고 있다. 미국도 그렇고, 유럽도 그렇고, 이번에 보니 이스탄불의 경우도 자문 회의가 없었다. 적어도 설계사가 설계한 내용에 대해서 자문하는 절차가 없던 것이 확실하다. 사실 설계를 담당한 설계사보다 해당 설계를 더 많이 아는 사람은 없다. 하물며 설계공모의 경우, 당선작으로선정된 설계안의 정당성과 퀄리티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몇 십 년의 전투로 단련됐고 지금도 일선에서 땀 흘리며 전투를 치러 내는 야전 사령관에게 어떻게 싸우라는 전투의 방법을 자문할 수는 없다. 발주처 입장에서는 해당 설계의 방향, 특히 예산의 범위나 민원, 설계안이 진행되면서 행정적인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정도의 자문이 필요하다. 자문 위원회의 자문은 자문으로 끝나지 않는다. 자문내용을 고쳤는지 안 고쳤는지 발주처가 감독하는 현실에서는 자문 내용이 맞고 안 맞고 간에 설계사가 고치지 않을 재간이 없다. 이스탄불에서는 단 한 차례도 자문이 없었다. 인허가와 관련된 지루한 협의 과정도 없었다. 오롯이 설계만 풀면 됐다. 그리고 풀린 설계안에 대해 지금까지는 진심 어린 칭찬을 많이 받았다. 설계안이 좋다고 하니, 이런저런 트집을 잡는 자문 단계가 없으니 정말 일하는 기분이 났다. 우리나라도 설계사가 신명나게 설계할 수 있는 상황이 되기를 희망한다.어떤 발주처의 감독관은 자기가 설계하겠다고 연필까지 든 경우도 있었다. 우리는 그 설계 작업을 우리의 설계 목록에서 뺀 지 오래다. 진양교는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와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환경조경학과, 미국 일리노이 대학교 조경학과 및 도시지역계획학과에서 공부했으며, 강원대학교와 서울시립대학교에서 10여 년간 학생들을 가르쳤다. 2002년부터 CA조경기술사사무소를 열고 실무의 최전방을 절절하게 체험하고 있다. 2010년 봄부터 홍익대학교 건축도시대학원의 전임교수를 겸하고 있다. 주요 설계 작품으로 하늘공원, 한강 반포공원 등이있으며, 저서로 『기억과 상징으로의 여행』, 『건축의 바깥』 등이 있다.
[공간 공감] 아파트 조경의 디자인 마케팅
19세기 말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가 이끈 ‘미술공예운동’은 수공업과 공예의 회복을 통해 산업 사회의 인간 소외를 극복할 수 있다는 신념을 지향했다. 20세기 초 페터 베렌스Peter Behrens를 필두로 한 ‘독일공작연맹’은 예술과 대량 생산 체제의 협력을 통해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자 노력했다. 상반된 접근이지만 이 두 흐름은 근대적 디자인 사고의 출발점이라 볼 수 있으며, 1919년 설립된 바우하우스를 통해 한 지점으로 합류된다. 전후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옮겨간 근대 디자인은 산업의 한 분야로 자리 잡게 된다. 경제 호황기의 미국에서 자본주의와 마주한 디자인은 마케팅과 결합되기 시작하고, 사회 운동으로 시작된 유럽식 디자인은 이내 본연의 모습을 잃고 소비를 선동하기에 이른다. 윤리적 디자인을 주장한 1970년대의 빅터 파파넥Victor Papanek은 1970년대부터 마케팅에 종속된 디자인과 마케팅에 영합한 디자인을 강한 논조로 비판한다. 소비가 최종 목적인 디자인은 화장술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위의 글은, 언젠가 지속가능한 디자인을 주제로 한 강연에 초대받았을 때 정리한 내용의 일부다. 물론 현대사회에서 디자인과 마케팅은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는 것이 되었지만, 지속불가능한 사회에 대한 파파넥의 경고는 여전히 유효하다. 이 연재를 위해 factory L의 이홍선 소장, KnL 환경디자인 스튜디오의김용택 소장, 디자인 스튜디오 loci의 박승진 소장 그리고 서울대학교정욱주 교수와 서울시립대학교 김아연 교수 등 다섯 명의 조경가가 의기투합하여 작은 모임을 구성했다. 이들은 새로운 대상지 선정을 위해 무심코 지나치던 작은 공간들을 세밀한 렌즈로 다시 들여다보며, 2014년1월부터 한 달에 한 번씩 유쾌한 답사 모임을 이어가고 있다.
[비평] 일곱 번의 불만족
1 나는 로스앤젤레스에서 유년을 보냈다. 어쩌다 보니 20대의 끝자락에서 30대의 시작을 다시 이 도시에서 맞이했고, 그 후 30대의 절반을 이곳에서 지냈다. 세상에 원색만을 남기려는 듯 강렬한 태양은 변함이 없었지만, 유년의 LA와 30대의 LA는 전혀 다른 도시였다. 1980년대의 LA 다운타운은 가까이 가서는 안 될 쇠락한 우범 지대였다. 2010년 즈음에는 새로운 레스토랑과 라운지 바가 즐비한, 늘 상기된 동네로 변했다. 그런데 젊은 욕망과 에너지가 가득한 다운타운의 일상적 풍경과 좀처럼 섞이지 않는 이질적인 공간이 있었다. 퍼싱 스퀘어, 다운타운에서 가장 오래된 공공장소다. 퍼싱 스퀘어가 직장과 집 중간에 있었기 때문에 나는 늘 이곳을 지나가야 했다. 특별한 행사가 열리는 동안은 잠깐 생기가 돌지만, 대개 이 광장은 고립된 수도원처럼 고요했다. 거의 매일 이곳을 지나갔지만 막상 광장에는 두어 번만 들어가 봤다.내 경우가 특별히 이상한 것은 아니었다. 대다수의 앤젤리노들은 퍼싱 스퀘어를 싫어했다. “우리는 왜 퍼싱 스퀘어를 싫어하는가”1 「LA 타임스The Los Angeles Times」의 한 칼럼니스트가 던진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굳이 예리한 통찰력까지 갖출 필요는 없다. 애써 방문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찾아와도 막상 광장으로 들어가는 일이 망설여진다. 광장은 주변과 단절되어 있다. 지하 주차장 출입을 위한 네 개의 차량 램프가 광장의 모든 면을 차지하고 있다. 경계를 둘러싼 높은 담으로도 불안했던지, 식물 해자가 광장을 한 번 더 이중으로 감싼다. 게다가 광장의 지반고가 주변 거리보다 높다. 사람들은 모퉁이의 계단과 보행 램프를 통해서만 이 높은 광장에 들어설 수 있다. 광장은 마치 정적에 잠긴 성과 같다. 내부는 시각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숨겨져 있다. 가려진 성 안에는 아름다운 공주가 잠들어 있을지도 모르지만, 끔찍한 마녀의 저주가 도사리고 있을 수도 있다. 실제로 광장에 들어서면 용도를 알 수 없는 보라색 탑과 거대한 붉은 공, 메마른 콘크리트 바닥, 광장 곳곳을 차지한 노숙자들과 시큼한 소변 냄새를 만나게 된다. 이곳을 혐오하는 대다수 시민의 일관된 의지가 70만 불을 퍼싱 스퀘어 재개발에 기부하겠다는 기업체의 호의를 만나면서, 이미 일곱 번 모습을 바꾼 광장이 여덟 번째 변신을 맞게 되었다. 2016년 봄, 공모전을 통해 선정된 네 개의 결선작이 공개되었다. 김영민은 1978년생으로, 서울대학교에서 조경과 건축을 함께 공부했고 하버드 GSD에서 조경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의 SWA Group에서 6년간 다양한 조경 설계와 계획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USC 건축대학원의 교수진으로 강의를 했다. 동시대 조경과 인접 분야의 흐름을 인문학적인 시각으로 읽어내는 데 관심이있으며, 설계와 이론을 넘나드는 다양한 활동을 펴나가고 있다.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을 번역했으며, 『용산공원』 등 다수의 공저가 있다. 최근에는 설계 방법론을 다룬 저서 『스튜디오 201, 다르게 디자인하기』를 펴냈다.
FINALIST: 퍼싱 그린
로스앤젤레스의 일상이 만들어지는 공간 로스앤젤레스는 그 어떤 도시보다도 복잡하고 현대적인 곳으로 많은 사람과 다양한 장소, 사건이 어우러지며 발전하고 있다. 거리마다 다양하고 독특한 요소가 숨어있고 시시각각 변하는 담론과 사회적 토론이 가득하다. 이 도시의 중심지에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고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퍼싱 그린을 조성한다. 퍼싱 그린은 만남, 운동, 놀이, 학습, 휴식을 즐길 수 있는 공원이 되어 로스앤젤레스 전역과 연결될 것이다. 또한 로스앤젤레스의 하위 문화에 힘을 불어넣고 사람들의 관심을 모을 것이다. 장소와 역사, 사람들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설계를 시작했다. 기존의 광장과 전혀 다른 공간을 만들어내기보다, 과거 퍼싱 스퀘어에 반복적으로 사용된 재료와 형태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활기가 넘치는 공원주변부, 넓은 중앙 공간, 편리한 동선, 편안한 공간과그늘 등 시민에게 필요한 공원을 만들고자 했다. 공원과 도시의 연결성을 높이기 위해 보도와 도로를 재정비한다. 공원의 많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주차장 진입 램프 중 2개를 폐쇄해 공간의 활용도를 높인다. 또한 기존에 설치된 두 개의 에스컬레이터 주위에 구멍을 뚫어 주차장의 일부를 개방한다. 빛과 소리, 공기, 녹지를 주차장 안으로 끌어 들여 주차장과 공원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한다. 이 주차장을 덮고 있는 공원의 표면은 도시 공원의 레이아웃, 패턴, 원칙을 기반으로 휘고 구부러져 새롭게 조성된다. 이 새로운 퍼싱 그린에서 다양한 활동과 사회적 모임, 프로그램 등을 즐길 수 있다. Sherwood Design Engineers(Civil Engineering) Kimley-Horn(Traffi c) Buro Happold(Structural / Mechanical / Electrical / Plumbing) HR&A Advisors(Economics and Financing) Wallace Laboratories(Soils) Tillett Lighting Design Associates(Lighting) Simpson Gumpertz & Heger(Waterproofi ng) ARUP(Acoustics) CMS Collaborative(Water Features) Perry & Associates(Horticulture) DD Pagano Inc.(Landscape Irrigation Design) EGG Offi ce(Graphics and Wayfi nding) Rider Levett Bucknall(Construction Cost Estimation) 시비타스(Civitas)는 덴버(Denver)에 기반을 둔 조경설계사무소다.조경가 마크 존슨(Mark Johnson)이 이끌고 있으며 대표작으로는샌디에이고 컨벤션센터(San Diego Convention Center)의 옥상 정원,캐나다 캘거리(Calgare)의 세인트 패트릭스 아일랜드 파크(St. Patrick’s Island Park),시카고의 잭슨 파크(Jackson Park) 등이 있다.건축가 꿀라빳 이안뜨라사스뜨(Kulapat Yantrasast)가 이끄는건축설계사무소 wHY와 함께 새로운퍼싱 스퀘어를 제안했다.
FINALIST: 퍼포머티브 파크
로스앤젤레스는 모든 사람이 자신의 꿈을 투영할 수 있는 스크린이다. 퍼싱 스퀘어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진행되며 다양한 사람이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2016년은 본래 목초지였던 공간이 퍼싱 스퀘어로 재탄생한 지 150년이 되는 해다. 퍼싱 스퀘어는 그간 6번의 리노베이션을 겪었다. 1965년에는 주차장을 설치하게 되면서 광장의 높이가 주변 도로보다 높아졌다. 이로 인해 사람들이 퍼싱 스퀘어에접근하기 어려워졌고 주변 지역으로부터 고립되었다. 우리는 퍼싱 스퀘어의 모습을 1951년 이전으로 되돌려 놓고자 했다. 시민들도 공원의 레벨이 다시 낮아지고, 휴식을 즐길 수 있는 나무 그늘과 잔디밭이 마련되기를 바라고 있다. 과도한 설계로 인해 공원의 기본적 요소인 자연, 그늘, 안전, 접근성이 사라질까 걱정하는 시민들의 염려에 귀 기울여 새로운 퍼싱 스퀘어를 계획했다. Thomas Balsley Associates(Public Space Design) BRV(Programming, O+M) ELP Advisors(Financing + Funding) Pentagram(Branding + Signage + Wayfi nding) HLB Lighting(Architectural Lighting Design) Fluidity(Water Future Design) Sam Schwartz Engineering(Traffi c Engineering) John A. Martin Associates(Structural Engineering) KPFF(Civil + Water Resources Engineering) Buro Happold(Mep Engineering + Sustainability Consulting) Page + Turnbull(Historic Preservation Architect) Walker Parking(Parking Consulting) Veneklasen Associates(Acoustical Consulting, AV/IT + Security) Sweeney + Associates(Irrigation Design) Simpson Gumpertz + Heger(Building Enclosure Consulting) Geocon(Geotechnical Engineering + Hazmat) DHARAM Consulting(Construction Cost + Risk Consultants) SWA와모포시스(Morphosis)는 미국의 고밀도 도시 공간의 미래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SWA는 로스앤젤레스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털사(Tulsa)의 거스리 그린(Guthrie Green) 공원 등다양한 공공 공간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실력을 인정받았다.같은 로스앤젤레스에 위치한 모포시스는 프리츠커 상을 수상한 톰 메인(Thom Mayne)이 이끄는건축설계사무소다. 모포시스의 협업 제안을 SWA의 제르도 아키노(Gerdo Aquino)가 받아들여퍼싱 스퀘어 리뉴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FINALIST: 가든 시어터
새로운 센트럴 파크, 가든 시어터 퍼싱 스퀘어는 도심에 활기를 불어 넣고 사람과 사람, 공간과 공간 등 새로운 연결을 만들어 낼 수 있는 허브공간이다. 시민들은 퍼싱 스퀘어가 다양한 프로그램과 나무, 그늘, 정원, 잔디가 어우러진 편안한 공간이 되기를 원했다. 이런 요구를 반영해 퍼싱 스퀘어를 도시 문화의 중심이 되는 그린 플랫폼으로 조성하고자 했다. 여러 차례 리노베이션이 이루어졌던 과거의 퍼싱 스퀘어에서 좋은 요소를 선정해 하이브리드 형태로 결합한다. 이는 ‘국경 도시’인 로스앤젤레스의 본질과 잘 어울리며, 다양한 문화를 수용하고 혁신, 기업가 정신 등을 통해 성숙하는 도시의 성격을 반영한다. 새로운 광장은 사방으로 뻗어나가 로스앤젤레스의 여러 지역을 하나로 잇는다. 이를 통해서 퍼싱 스퀘어는 로스앤젤레스의역사를 담은 상징적 오픈스페이스이자 도시 문화를 끊임없이 발전시키는 미래 지향적인 공간이 될 것이다. HLB Lighting DEW TOMATO Perry & Associates Greenlee & Associates Scott Kleinrock Marc Pally Place It! KPFF Buro Happold Gardiner & Theobald Fehr and Peers HR&A Advisors 제임스 코너 필드 오퍼레이션스(JCFO: James Corner Field Operations)는사람과 공간이 교감하는 생동감 넘치는 도시공원을 조성하는 데 힘쓰고 있다.대표작으로는 맨해튼의 하이라인, 산타모니카 통바 파크(Tongva Park) 등이 있으며현재는 샌프란시스코의 프레시디오 파크랜드와 시애틀의 센트럴 워터프런트,마이애미의 링컨 로드, 클리블랜드(Cleveland)의 퍼블릭 스퀘어 설계에 참여 중이다.
WINNING DESIGN: 다이내믹 하트 오브 로스앤젤레스
퍼싱 스퀘어는 단순한 공원 혹은 광장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지역 사회 전체를 위한 공간이며 로스앤젤레스 도심이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이기도 하다. ‘다이내믹 하트 오브 로스앤젤레스’는 시민과 방문자뿐 아니라 로스앤젤레스 전역을 향해 열려 있는 공원이다. 기존의 장벽을 허물고 높게 솟은 공원의 가장자리를 평평하게 다듬어 퍼싱 스퀘어와 주변 지역을 다시 연결시켰다. 이를 바탕으로 도시 전체를 촘촘하게 잇는 하나의 흐름을 계획했다. 이처럼 단순해 보이는 설계목표는 퍼싱 스퀘어를 로스앤젤레스의 심장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첫걸음이다. 브로드웨이Broadway와 그랜드 애비뉴Grand Avenue, 사우스 파크South Park와 벙커 힐Bunker Hill을 연결하는 핵심적인 그린 링크로 계획한다. 이로 인해 퍼싱 스퀘어는 사람들이 자주 찾는 장소가 될 것이며, 경관, 사회, 문화, 경제적 관점에서 중요한 노드node가 될 것이다. 다양한 레이어를 겹쳐 도시와 자연을 연결시킨다. 기존 공원의 벽과 장애물을 제거해 도시의 중심을 가로지르는 장소를 만들고, 광장의 바닥을 도시와 같은 레벨로 평평하게 조성해 사람과 소통할 수 있도록 한다. 평평한 표면 위에서 공원과 광장, 하드 스케이프와 잔디, 해와 그늘 등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박스와 스마트 캐노피, 정원과 트리 캐노피, 독특한 도시 경계부, 잔디광장이 단조롭게 느껴질 수 있는 퍼싱 스퀘어를 다채롭게 만든다. SALT Landscape Architects Deborah Murphy Urban Design + Planning Kelly Shannan(RUA, Landscape Urbanism Consultant) Community Arts Resources LA(Urban Programming) Rachel Allen Architecture Pentagram(Branding) Still Room(Wayfi nding and Graphic Design) Leo Villareal(Light Artist) Fehr & Peers(Transportation Consultants) KPFF(Structural / Civil Engineers) M-E Engineering(Mechanical / Electrical / Plumbing Engineers) Lighting Design Alliance(Architectural Lighting Design) 아장스 테르(Agence Ter)는 경관을 토대로 도시를 설계하는 것을 기본 원칙으로 삼고 있다.30여 년간 다양한 공공 공간을 조성해온 경험을 바탕으로 세계 각지의 주요 공원을 만들고 있다.대표작으로는 프랑스 파리의 코르메이유 공원(Parc des Cormailles),불로뉴 공원(Parc de Boulogne), 생투앵 공원(Parc des Docks de Saint-Ouen),스페인 바르셀로나의 레스 글로리에스 광장(Plaça de les Gloriés),독일 바트 외인하우젠의 아크아 마기카 공원(Aqua Magica Park)과뒤스부르크의 중앙 광장 등이 있다.
Pershing Square Renew
설계공모경과와 심사평 몇 년 전부터 로스앤젤레스에서는 활발한 도시재생이 일어나고 있다. 2000년 2만 명에 불과했던 인구가 2010년에 두 배로 늘었고, 현재 로스앤젤레스에는 5만명이 넘는 주민이 살고 있다. 인구의 증가에 따라 음식점, 숙박 및 문화 시설의 수가 늘어나기 시작했고 로스앤젤레스는 미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부동산 시장이 됐다. 또한, 도시재생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LA 시내 전차 프로젝트LA Streetcar Project, 브링잉 백 브로드웨이Bringing Back Broadway 등 다양한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이 도시재생지의 중심에 자리한 퍼싱 스퀘어는 로스앤젤레스의 가장 오래된 공공 공간이다. 1866년 시장 크리스토발 아귈라Cristobal Aguilar에 의해 조성되어 ‘라 플라자 아바하La Plaza Abaja’라 명명됐고, 이후 대규모 리모델링과 수차례의 설계 변경이 이루어졌다. 현재의 퍼싱 스퀘어는 멕시코 건축가 리카르도 레고레타Ricardo Legorreta와 미국 조경가 로리 올린Laurie Olin에 의해 조성되었다. 대중교통의 요충지와 로스앤젤레스 역사 지구, 보석 지구, 벙커 힐Bunker Hill 및 시빅 센터Civic Center 등과 인접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원을 둘러싼 벽과 장애물, 프로그램의 부재 등을 이유로 주민들에게 외면당했다. WINNING DESIGN THE DYNAMIC HEARTOF LOS ANGELES Agence Ter and Team FINALIST GARDEN THEATER JCFO + Frederick Fisher and Partners FINALIST PERFORMATIVE PARK SWA + Morphosis FINALIST PERSHING GREEN wHY + Civitas
‘엑스포 2016 안탈리아’ 한국 정원
지중해에 핀 ‘한국의 꽃’ 전통과 관련지었을 때 재해석은 창조와는 다르게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일의 한계를 인식하고 혁신을 모색하는 것이다. ‘전통’과 ‘재현’의 관계는 모순적인 관계가 아니라 보완적, 공생적 관계다. 새로운 창조적 재현 없이 과거의 것을 현재에 그대로 수용하는 노력은 역사주의적 오류에 빠지게 된다. 대표적인 예로 옛 것을 단편적으로 그대로 모사하는 직설적 재현이 그러한 예다. 이는 과거가 현재에 일방적으로 투영되는 것으로, 역사적 선례를 진부하게 반복하거나, 과거 양식을 맥락을 도외시한 채 전치시키는 결과를 낳곤 했다. 이러한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안탈리아Antalya의 한국 정원은 박제된 전통 조경이 아닌 다양한 한류의 전통문화를 수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했다. 현대적인 언어로 한국 정원의 독창적인 공간 구조를 설정하여 이방인에게 한국의 서정적인 경관을 경험할 수 있도록 디자인의 실마리를 찾아 나갔다. ‘신들의 휴양지’라고 불릴 만큼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다양한 역사 유적지가 공존하고 있는 안탈리아는 지중해 연안, 터키의 남서부 지역에 위치한 휴양 도시다. 여기서 엑스포 2016 안탈리아가 ‘꽃과 아이들’이라는 주제로 6개월간 개최된다. 부제로는 역사, 생물다양성, 지속가능성, 녹색 도시의 4가지 테마가 선정되었다. 안탈리아 한국 정원 조성 프로젝트는 최초의 국가정원인 순천만국가정원을 조성한 순천시와 산림청이 주관했으며 해외에 조성되는 한국 정원의 새로운 모델이 될 것이다. 지난 4월 22일에는 한국 정원 준공식이 있었으며 박람회 기간 중 4월 28일은 ‘한국의 날’로 지정되어 다채로운 한국 문화 행사가 열렸다. 특히 에르도안 콕 엑스포 2016 안탈리아 조직위원장은 “안탈리아 엑스포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에게 한국 정원은 중요한 문화적 자원이 될 것”이라며 “한국 정부와 순천시가 엑스포2016 안탈리아에서 놀라운 일을 해냈다”고 말했다. 설계서안알앤디조경디자인 시공PEY-ART, 우리종건 발주순천시, 산림청 위치터키, 안탈리아 면적약 1,400m2 완공2016. 4. 신현돈은 최근 아스타나 한국 정원 , 브라질 한국 정원, 우즈베키스탄 서울 공원, ‘엑스포 2016 안탈리아’ 한국 정원 등의 작업을 통해 외국에 우리의 문화를 널리 알리는 작업을 하고 있으며, 압구정동 가로 정원, 도초섬 한국 정원, 테헤란로 가로 정원 등 한국성을 구현하는 디자인에 관심이 많다. IFLA 디자인 1등상, ASLA Honor Awards, Junior GrandPrix, 대통령포장 및 표창 3회, 2016년 서울시 환경상 최우수상 등을 수상했다. 성균관대학교 조경학과 겸임교수와 LH 기술심의위원, 동남권국제교류복합지구 추진위원, 한국조경학회 감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광저우 반케 클라우드 시티 2단계
광저우 클라우드 시티 구도심에서 15km 떨어진 클 라우드 시티는 광저우Guangzhou 시의 새로운 경제 동력으로 기획된 IT 계열회사 집적 지역 한가운데에 위치한다. 두 개의 구역, 총 네 개의 필지로 이루어진 작은 도시와도 같은 복합 용도의 프로젝트는 중국에서 선구적인 개발 유형이다. 외국인 학교, 대형 쇼핑몰을 포함하는 A 필지와 각종 오피스 타워를 중심으로 구성된 B 필지는 시공 준비 단계에 있다. 세일즈 센터가 문을 연 본 대상지인 C 구역은 한 세대가 8평(35m2)에 불과한 마이크로 아파트micro apartment 타워로 L자형의 타워 4동에 5,354세대가 초고밀도로 자리하게 된다. 지상부의 상업 시설과 각종 편의 시설은 이러한 밀도를 소화하면서 대도시권의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소도시와 같은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계획되어 새로 이주하는 외부의 젊은 인력이 내 집, 내 동네처럼 정착할 보금자리를 제공하는 데 목표를 두었다. 이에 따라 설계의 두 가지 기본 도전 과제는 젊고 트렌디한 계층의 욕구를 충족하고 초소형의 부동산 모델에 맞는 경제적인 공사비의 디자인을 도출하는 것이었다. 근래에 완공되어 대중에게 공개된 세일즈 센터 구역은 프로젝트의 핵심 철학을 반영하고 내부의 정점이 되는 일부 시설물을 시연하여 잠재 거주자들에게 경험하게 하는 장이다. 잠재 거주자의 기호 탐색 한 유닛의 크기가 반영하듯 클라우드 시티가 목표로 하는 거주자는 미혼의 1인 가구 또는 신혼부부다. 그에 따라 기존 아파트의 전형적인 옥외 공간과는 차별화된 조경 프로그램에 대한 탐색 과정이 디자이너와 개발회사에 의해 동시에 진행되었다. 디자이너는 지속적으로 옥외 공간의 구조와 프로그램을 제안했고, 개발 회사에서는 발전시키고 있는 디자인의 모형과 렌더링을 블로그와 SNS에 선택적으로 공개하며 관심 있는 잠재 입주자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장을 마련했다. 가장 흥미로운 과정 중 하나는 프로젝트의 홍보 블로그를 구독중이면서 실제 입주를 고려하고 있는 시민들과 문자 메시지 어플을 이용하여 단체 대화창에서 직접 ‘대화’를 진행한 설문조사 이벤트였다. 입주민들이 희망하는 조경 공간의 성격과 프로그램을 직접 들을 수 있는 기회였고 제안 요소들에 대한 피드백도 얻을 수 있는 귀한소통이었다. 디자인 팀의 제안과 소비자의 요구가 크게 다르지 않아 최종적인 결정에 순조롭게 다다를 수 있었다. 그 결과, 네 곳의 중정을 각각 사교, 독서, 운동, 아트의 성격으로 구분하고 각 성격에 맞는 세부 프로그램들을 추후에 구체화했다. Landscape ArchitectLaboratory D+H EngineerGuangzhou Hanhua Architects+Engineers Co., ltd ArchitectTsushima Design Studio ClientChina Vanke Co., Ltd. LocationGuangzhou, China Area Sales Center: 0.4ha Parcel C: 3.5ha Entire Phase 2: 8.9ha Completion2016 PhotographsGuoyan Cheng 최영준은 1982년생으로,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설계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의 SWA Group과한국의 오피스박김에서 다양한 성격의 프로젝트를 수행했고, ArchiprixInternational 본 상, 뉴 욕 신 진건축가 공 모 대 상, 대 한민국환경조경대전 대상 등을 수상하였다. 『공원을 읽다』, 『용산공원』 등의 공저가 있으며, 현재는 후이챙 종과 함께 로스앤젤레스 기반의 설계사무소Laboratory D+H를 설립하고 활동중이다.
UTS 알럼니 그린
시드니 공과대학교UTS(University of Technology, Sydney)는 시드니의 고밀도 지역 중 하나인 얼티모Ultimo의 중심부에 자리하고 있다. 얼티모 시는 브루탈리스트brutalist 건축 양식뿐만 아니라 시민을 위한 공간이 열악하기로 유명하다. 이로 인해 UTS의 학생과 교직원,시민들은 자연 속에서 어울리고 휴식할 수 있는 기회가 부족했다. ASPECT 스튜디오ASPECT Studios는 UTS알럼니 그린 프로젝트를 통해 캠퍼스를 녹색 오아시스로 만들고 캠퍼스를 넘어 더 넓은 생활권을 위한 시민중심 공간이 되기를 바랐다. UTS는 캠퍼스 설계공모에서 ‘활기 넘치는 외부 공간’을 요구했다. 또한 캠퍼스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학생 커뮤니티를 캠퍼스 안으로 끌어들이고, 그들을 캠퍼스에붙잡아 둘 수 있는 ‘친밀한 캠퍼스’를 조성해 주기를 원했다. ASPECT 스튜디오가 제시한 설계안의 핵심 목표는 ‘사람이 중심인 캠퍼스’였다. 디테일, 레벨의 변화 등 모든 계획 요소가 사람들을 공간에 끌어들일 수 있을지 검토됐고, 이 설계안은 UTS 캠퍼스 설계공모의 당선작으로 선정됐다. UTS 알럼니 그린의 지하에는 스포츠 홀과 수많은 장서를 보관한 중앙 도서관이 위치하고 있다. 따라서 우수한 방수 시스템이 필요했고 식재에 필요한 토양 깊이를 충분히 확보하기 위해 600mm 정도 땅을 돋워야 했다. 이 계획을 기반으로 조각적이고 연속적인 앉음벽을부지 전체에 다양한 스케일로 조성했다. Project Lead and Landscape ArchitectASPECT Studios Structural EngineeringTaylor Thomson Whitting HydraulicWarren Smith + Partners, Arup Lighting & ElectricalSteensen Varming Architects for the Science and Graduate School of Health Building(Building 7)Durbach Block Jaggers + BVN Donovan Hill Architects for the Library Retrieval SystemHassell Project ManagerSavills Project Management Head ContractorRichard Crookes Constructions Landscape ContractorRegal Innovations ClientUniversity of Technology Sydney LocationUTS City Campus, Ultimo, Sydney, NSW, 2007,Australia Area6,500m2 BudgetAUD 5 million Completion2015 PhotographsSimon Wood, Florian Groehn ASPECT 스튜디오(ASPECT Studios)는 조경, 건축, 도시설계, 최첨단 인터랙티브 디지털 미디어, 환경 그래픽을 제공하여 사람들이 원하는 장소를 만드는 조경가 그룹이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시드니, 멜버른, 애들레이드, 브리즈번과 중국의 상하이에 총 7개의 사무소를 두고 있다. 2015AILA SA Awards, 2015 Good Design Award 도시 디자인 및 공공공간 부문, 2016 202020 Vision Green Design Award 등을 수상했다.
암스텔베인 존하우스 요양원
그린 오아시스 삶의 경험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 도시의 거주자들에게는 잘 조성된 녹지 공간이 필요하다. 암스텔베인Amstelveen의 존하우스 양로원Zonnehuis Care Home은 과거에는 도시의 다른 지역 커뮤니티와 교류하지 못해 일명 ‘노인들의 섬elderly island’으로 불렸다. 양로원의오래된 건물을 허물고 완전히 새로운 공간을 조성하면서 사회적 교류, 고품격의 거주 환경, 건강한 라이프스타일, 시설과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 질 높은 주변 환경, 미적인 요소 등에 목표를 두었다. 존하우스 양로원의 정원을 생기 넘치는 녹색 보행 공간으로 변모시키는 계획안을 제시했다. 이 대지에 들어선 다양한 건물은 개성있는 디자인의 광장으로 연결했다. 이 광장에는 그린 오존하우스 요양 시설 단지의 정원 아시스와 레크리에이션 및 기타 시설이 들어섰다. 노인을 위한 디자인 전체 프로젝트는 두 단계에 걸쳐서 이루어졌다. 첫 번째 단계에서는 존하우스 요양 시설 단지가, 두 번째 단계에서는 주거동 ‘드 온트모팅De Ontmoeting’이 조성되었다. 전체 단지의 동쪽에는 aTAarchitectuurcentrale Thijs Asselbergs가 설계한 새로운 존하우스 요양 시설 단지가 들어섰다. 요양 시설 주변을 에워싼 외부 공간은 다년생 식물 정원과 입주민들이 정원을 가꿀 수 있는 온실로 이루어졌다. 광장에는 테라스와 놀이 공간, 다년생 식물 정원과 걷기 운동을 할 수 있는 완만한 경사의 길과 계단이 조성되었다. 요양 시설 단지와 드 온트모팅의 정원은 특히 치매 치료에 도움이 되도록 설계되었다. 스코틀랜드 스털링 대학교의 치매 치료 개선 센터의 건축과 조경을 담당한 건축가이자 조경가인 애니 폴록Annie Pollock과 치매 환자들을 위한 치료 정원과 장애아를 위한 자연 놀이터를 주로 설계하는 네덜란드의 조경설계사무소 뷰로 폰켈Bureau Fonkel의 안케 위냐Anke Wijnja로부터 자문을 얻었다. DesignHOSPER(Ronald Bron, Frits van Loon, Elizabeth Keller, Petrouschka Thumann, Marike Oudijk) PartnersDG groep, Bureau Fonkel, Dementia ServicesDevelopment Centre(University of Stirling Schotland),Rijnboutt, architectuurcentrale Thijs Asselbergs, Octatube ClientZonnehuisgroep Amstelland Foundation, M.J. de Nijsproject development Area3ha LocationAmstelveen, Netherlands Year of Design2009~2014 Completion2015 PhotographsFerry Streng(De Ontmoeting),Pieter Kers(Het Zonnehuis) 호스퍼(HOSPER)는 알레 호스퍼(Alle Hosper)가 1991년 설립한 네덜란드의 조경설계사무소다. 조경과 도시계획 프로젝트를 주로 수행하며심도 있는 분석을 통해 장소 특정적인 디자인을 제시한다. 도시와 자연의 이분법적인 갈등을 해소하고 개발과 환경 사이의 균형을 통해 지속가능한 공간을 설계하고 있다.
코펜하겐 국립미술관
1896년 설립된 코펜하겐 국립미술관Statens Museum for Kunst(SMK)은 코펜하겐의 중심부에 있는 덴마크 최대의 미술관으로 14세기 미술품부터 현대 미술에 이르기까지 덴마크와 해외 작가의 유명 예술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과거 코펜하겐 국립미술관의 정원은 날카롭게 다듬은 생울타리와 건물 입구 계단에서부터 뻗어나가는 직선의 길을 강조한 바로크 양식을 따랐다. 오래된 양식의 정원은 미술관을 생기 넘치는 주변 지역과 단절시켰고 미술관이 사람들의 일상과 동떨어진 공간인 듯한 인상을 주었다. 2011년, 카레스 앤드 브란트karres+brands는 폴리폼 아키텍터Polyform Arkitekter와 협업하여 코펜하겐 국립미술관의 뮤지엄 가든을 새롭게 디자인하는 국제 설계공모에 당선되었다. ‘SMK, 다시 공원으로SMK tilbage i Parken’라는 제목의 설계안은 도시 요새 위에 위치한 외스트레 안레그Østre Anlæg 공원과 뮤지엄 가든을 서로 연결한다. 외스트레 안레그 공원의 작은 언덕과 구불구불한 오솔길, 커다란 그늘을 드리우는 나무들이 코펜하겐 국립미술관을 둘러싸고 미술관을 공원으로 끌어들인다. 이를 통해 코펜하겐 국립미술관은 자연스럽게 공원의 일부로 녹아들게 되어 예전의 위상을 회복할 것으로 기대했다. 새롭게 조성된 뮤지엄 가든은 코펜하겐 국립미술관과 외스트레 안레그 공원의 개방적인 입구 공간을 형성한다. Landscape Architectkarres+brands CollaboratorPolyform Arkitekter, Svava Riesto,Oluf Jørgensen Ingeniører, Via Trafik ClientStatens Museum for Kunst Area7,500m2 LocationCopenhagen, Denmark Year of Design2011~2013 Completion2014 PhotographsWichmann + Bendsten, Ida Tietgen Høyrup 카레스 앤드 브란트(karres+brands)는 네덜란드와 해외의 여러 프로젝트와 연구, 공모전 등에 참여하고 있다. 토지 계획, 기반 시설 프로젝트, 공원 및 정원 설계, 도시계획, 시설물 디자인 등 다양한 영역의 공간 디자인 작업을 수행고 있으며, 현대의 공간적 도전에 맞서 적절하고창의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기 위해 열정과 장인 정신으로 지평을 넓히고있다.
[칼럼] ‘설계 환경을 진단하다’를 읽고
조경설계 환경을 진단한 지난 호 특집, 반가웠다. 그 반향에 기대감도 크다. 하지만 설계 환경을 진단하려 했으나 정작 ‘설계’에 대한 이야기와 ‘환경’에 대한 이야기는 여러모로 부족해 보인다. 설계 환경의 가장 큰 이슈를 결국 ‘기-승-전-설계비’로 맺은 점 또한 아쉽다. 그 전제인 조경설계의 ‘위축’은 매우 상대적인 개념인데, 무엇과 비교해 위축되었는지에 대한 논의 없이 마치 한 십 년 전쯤에 비해 지금은 살기 어려워졌다는 데 초점을 맞춘 것 같아 이점 또한 아쉬웠다. 물론 합리적 계약을 통한 갑을 관계 청산과 의뢰인-설계자의 대등한 관계 재정립, 모호한 조경설계가에 대한 사회적·제도적 지위의 확립, 경쟁력 있는 공모 개최를 통한 설계 경쟁력의 제고, 현실성 있는 설계비의 기준 마련 등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조경가에게, 그리고 설계사무소를 운영하는 경영자에게 매우 중요한 제도적·사회적 환경이기는 하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는 객관적 자료를 토대로 할 때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설계 회사의 몇 퍼센트가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지난 수년간 수익 구조가 어떻게 됐는지, 유관 분야와 비교할 때 업무량 대비 설계비가 얼마나 적은지 등에 대한 개략적인 수치라도 보였어야 이해와 동의가 뒤따르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또한 발주자 그룹의 의견도 함께 다루었어야 했다. 지자체나 LH 등의 발주 현황이나 입장이 함께 실려야 문제의 심각성을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형편없는 설계비만 강조하다가 혹시나 반감이 생겨 계약, 공모, 자격 등의 문제까지 그 심각성이 희석될지도 모르겠다는 노파심이 들었다. 지난 호 특집에 등장한 다양한 진단의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지금 이 사회가 조경가를, 조경설계라는 일 자체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가 단적으로 보인다. 결국 우리 조경가는 (국제 설계공모에서 외국조경가를 꺾을 정도로) 그림은 화려하게 잘 그리는데 일은 제대로 해내는 게 없고, (공모를 통해 안이 뽑혔는데도 시행 과정에서 다 바뀌어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필요로 하는 설계적 대응은 못할 정도로) 실제 설계는 잘못하며, 설계비만 늘 많이 달라고 하면서 일의 양이 얼마나 될지 어떻게 정리될지 제대로 살펴보지도 않고 반값이고 뭐고 덤핑으로 수주한다는 이야기 아닌가. 이 조경가나 저 조경가나 결과물은 크게 다르지 않으니 더 싼 데 줘도 되는 일이고 그만큼 별로 가치 없는 일이니 첫 번째로 삭감되는 게 설계비 예산이다, 뭐 이렇다는 이야기 아닌가. 무섭다. 이런 사회적 인식은 어제 오늘 형성된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근 들어 위축되었다’는 말에는 어폐가 있다. 우리나라의 조경설계 분야는 잘나갔던 적이 없다. 왜냐하면 그 사회적 역할 기반이 이처럼 부실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조경은 절대 권력자의 말 한마디로 탄생했다. 조경의 사회적 역할이 일상의 전통이나 문화적·사회적 필요에 바탕을 두고 생겨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사회는 조경의 역할을 잘 모르거나 조경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거의 없다. 그들에게 지금에서야 우리가 하는 일에 비용을 지불하라고, 자격을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어쩌면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 아닐까. 내게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들이 밀면서 이게 앞으로 꼭 필요할 테니 사세요, 이렇게 외치면 살 사람이 누가 있을까. 사기꾼으로 의심받지 않으면 다행이다.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 우리의 논의는 건설 시장의 일부로서 조경의 역할에 한정되어 있었다. 지난 특집에서도 드러나듯, 거대한 토목 공화국의 건립이라는 습관적 틀에서 잠시 벗어나게 된 어떤 낯섦이 모든 위기론의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위기론의 중심에는 건설 시장의 축소로 일거리가 줄어들어 어려운 상황이고 다시 일감이 늘고 대가가 좋아지면 자연스럽게 위기를 탈출할 수 있을 것이라는 논리가 자리 잡고 있다. 과연 그럴까? 조경설계라는 일이 충분한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가치 있는 일이라는 보편적 인식이 존재하지 않는 현재의 상황, 바로 이것이 우리가 극복해야할 설계의 위기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제도와 사회 시스템은 그러한 보편적 합의와 인식을 뒷받침하고 지켜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보편적 인식과 합의가 없는 상태에서 제도와 시스템을 만들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제도와 시스템을 바꾸는 일 못지않게 더 시급한 것은 조경의 사회적 역할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이 시점에 그 역할을 찾고 좋은 결과물을 보여주는 일이다. 그렇게 해서 더 나아진 삶의 모습이 바로 조경가의 역할로 인한 것임을 인식하게 하는 일이다. 눈을 돌려 이 거대한 도시를 보면 조경가의 역할을 기다리는 일이 너무나 많다. 이것을 보려는 노력을 우리가 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환경이 열악해지고 건강이 나빠지고 사회적 관계가 엉망으로 꼬인다. 이 난제를 풀어내는 역할을 조경가가 할 수 있다. 조경가의 역할을 제대로 정립하는 것이 지금의 위기(나 위기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정도正道일 것이다. 지금 당장 나부터 실천해야 한다. 실천할 수 있는 일이다. 이런 실천이 모여야 인식도 변하고 나아가 제도도 바뀔 수 있다. 지금은 좀 힘들겠지만 그런 노력을 해야 우리 후배들이, 우리 자녀 세대가 이 일을 이어갈 수 있고, 그들이 이 일을 할 때쯤에는 사회가 조경가에게 지불하는 비용이 아깝지 않다고 여기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는 그 설계 환경도 나아질 것이다. 지난 호의 특집은 진단의 시작점이라는 점에서 충분한 의미를 지닌다.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해 다방면의 진단, 논의, 해법 제시 등을 이어갈 것이라고 기대한다. 박준서는 ‘Link Landscape with Life’라는 모토로 디자인엘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는 조경설계가다. 조경이란 근원적 삶의 터전으로서의 자연을 문화적으로 해석해 일상에 녹여 내는 행위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한국에서 조경설계의 사회적 역할을 바로세우기를 바라고, 지어지는 설계를 실천하고자 한다.
[에디토리얼] 어느 광장의 추억
이번 7월호에 퍼싱 스퀘어Pershing Square 지면을 기획하며 5년 전 기억이 떠올랐다. 퍼싱 스퀘어 개조 설계공모에 대한 평문을 써준 김영민 교수가 그 당시 LA 다운타운에 살고 있었는데, 출장 중에 마침 여유 시간이 생겨 하룻밤 신세를 졌다. 이국땅에서 들이부은 소주에 취해 깨어나지 못하는 선배의 손에 그는 아파트 열쇠와 다운타운 지도 한 장을 쥐어주고 서울 출장길에 올랐다. 친절하게도 지도에는 걸어서 가볼 만한 스타 건축가와 조경가의 작품들이 표시되어 있었다. 프랭크 게리의 디즈니콘서트홀, 톰 메인의 작업들, 이미 고전이 된 로렌스 핼프린의 광장과 공원들을 스치듯 둘러보다 어느 광장 입구에 도착했다. 지도를 보니 거친 X자와 함께 ‘로리 올린, 위험, 가지 마세요’라는, 굵은 사인펜으로 휘갈겨 쓴 김 교수의 메모가 적혀 있었다. 퍼싱 스퀘어였다. 올린 할아버지가 설계한 곳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당당히, 거침없이 들어갔다. 도심의 고층 빌딩사이에 파묻힌 사각형 공간, 넓이는 오륙천 평 남짓. 주변 가로보다 높아서 계단으로 광장에 올라간다는 게 우선 생경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보라색의 높은 콘크리트 탑 안에 오렌지색 공이 들어 있고, 같은 색의 큰 구형 오브제들이 바닥에도 있다. 루이스 바라간을 연상시키는 짙은 노란색 가벽이 광장을 가로지르고, 진분홍색 원형 기둥들이 촘촘히 늘어서서 광장과 가로의 경계를 확실하게 나눈다. 어느 방향으로 카메라를 들이대도 작품이 나오는 강한 사진발. 셔터 누르기를 멈추고 광장 중앙의 바닥분수 곁 앉음벽에 걸터앉았다. 그제야 불안감이 엄습했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화려한 색채 때문은 아니었다. 광장 그 자체가 하나의 예술 작품이라고 외치는 강렬한 조형미 때문도 아니었다. 까닭 없이 불안하기는 했지만 김 교수의 경고처럼 위험을 감지하지는 못했다. 잠시 시간이 흐르자 의문이 풀렸다.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불안감의 원인은 북적이는 도심 한복판의 광장에 나 혼자 있다는 데 있었다. 활력 있는 가로로 둘러싸인 요지에, 세상 어느 곳보다 밝을 것 같은 캘리포니아산 태양빛이 쏟아지는 매력적인 공간에 왜 아무도 없을까. 『이방인』의 뫼르소에 버금가는, 찌르는 듯한 현기증을 느꼈다. 담배를 꺼내 물었다. 불안감이 공포감으로 급변했다. 분명히 나 혼자였는데 순식간에 서른 명 가까운 사람들이 나를 둘러쌌다.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광장 구석구석의 그늘에 흩어져 있던 남루한 차림의 노숙인들이, 퀭한 눈빛의 마약 중독자들이 모여든 것이다. 귀까지 얼어붙어 그들의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했지만 손동작을 보고 담배를 요구하는 것임을 즉각 알아챘다. 두려웠지만 태연하게 웃으며 주머니속의 한 갑과 카메라 가방 속의 비상용 한 갑까지아낌없이 풀어 한 개피씩 나눠 피니 그들은 바로 나를 ‘브로’라 부르며 형제로 대했다. 몇 분 후 우리는 모두 흩어져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지난 4월 말, 인터넷 잡지에서 퍼싱 스퀘어 공모전의 결선작 선정 뉴스를 읽고 한 이방인을 강타했던 그날의 현기증을 다시 느꼈다. 누가 봐도 입지 조건이 뛰어나지만 어느 업종이 들어와도 장사가 안 되는 팔자 사나운 건물이 더러 있다. 광장이나 공원같은 도시의 공공 공간도 기구한 운명을 겪는 경우가 적지 않다. 계속 조경가를 바꿔가며 ‘다른’ 디자인으로 덧칠을 해도 공간의 성격이 바뀌지 않는 예가 많다. LA의 퍼싱 스퀘어도 그런 곳 중 하나다. 1866년에 처음 조성된 이 광장에는 150년 동안 무려 일곱 차례나 새로운 디자인이 투입되었다. 리차드 세라의 ‘기울어진 호Tilted Arc’를 걷어내고 마사슈왈츠의 자유분방한 곡선 벤치와 마운드를 얹었다가 다시 백지 위에 마이클 반 발켄버그의 얌전한 조경을 우겨넣은 뉴욕의 제이콥 자비츠 플라자Jacob Javits Plaza 못지않은 변화를 경험한 곳이 퍼싱 스퀘어다. LA 시민들이 외면하다 못해 혐오하기까지 한다는 현재의 퍼싱 스퀘어는 멕시코 출신 건축가 리카르도 레고레타가 뉴욕의 골치 덩어리 브라이언트 파크Bryant Park를 성공적으로 개조한 조경가 로리 올린과 협력해 만든 1994년 버전이다. 퍼싱 스퀘어가 배제와 소외의 광장으로 전락한 것은 1950년대에 지하 주차장을 넣으면서 광장의 레벨을 주변 가로보다 높이고 높은 담으로 광장을 감금하면서부터라고 알려져 있다. 여덟 번째 개조 작업인 이번 프로젝트의 당선작은 광장 외부로부터 “높게 솟은 지면을 평평하게 만들어 퍼싱 스퀘어와 주변 지역의 연계성을 회복하고 … 지속가능한 녹지 공간으로 만들어 활기 넘치는 공간이 되게 할 것”을 전면에 내세웠다. 아장스 테르 앤드 팀Agence Ter and Team의 당선작뿐만 아니라 다른 세 개의 결선작도 크게 다르지 않다. 모두가 탁 트인 경관을 확보한 ‘녹색천국’이다. 나와 함께 집단 흡연을 즐겼던 그들은 이제 어디로 갈까. 이번 퍼싱 스퀘어 프로젝트의 지향점은 결국 동굴처럼 닫혀 있던 광장을 열어 노숙인과 부랑인을 도시의 또 다른 어느 동굴로 몰아내는 것과 다름이 없다. 지속가능한 운영과 관리를 위해 민관이 협력하여 비영리 주식회사까지 만들었으니 당분간 새로운 퍼싱 스퀘어는 안전하고 청결하고 낭만적인 녹색의 별천지로 유지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호 본문의 비평에서 김영민 교수가 단언하듯,“미래의 어느 시점에 퍼싱 스퀘어는 여덟 번째 불만족을 경험할 것이고, 아홉 번째 변화를 겪게 될 것”이다. 퍼싱 스퀘어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두고 우리는 몇 가지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디자인은 도시를 구원할 수 있는가? 공원은 자본주의 도시의 면죄부인가? 녹색 공간은 도시 정치의 만병통치약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