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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스케이프] 브루클린 공간은 어떻게 장소가 되는가
  • 환경과조경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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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연수는 산문집 『소설가의 일』에서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을 “다리를 불태우다”라는 말로 비유한다. 지나온 다리를 불태우면 다시는 이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다. “대부분의 인생에서는 그게 다리였는지 모르고 지나가고, 그러고 나서도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야 뒤늦게 그게 다리였음을, 그것도 자기 인생의 이야기에서 너무나 중요한 갈림길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전통적인 이야기 작법에서 플롯은 3막으로 구성되는데 1막의 끝에 이 돌아올 수 없는 다리가 있다고 한다. 내 인생에서 적어도 한 번 이상은 건넜을 다리, 그때가 언제였을까. 그 다리를 건너지 않았다면 지금과 얼마나 달라져 있을까.

‘브루클린’은 195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로, 주인공 에일리스(시얼샤 로넌 분)가 고향 아일랜드를 떠나 미지의 땅 브루클린에 적응하는 이야기다. 에일리스가 브루클린으로 가는 배 위에서 멀어지는 엄마와 언니를 보며 손을 흔들 때, 관객은 그녀가 다시는 이전의 그녀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란 걸 안다. 낯선 브루클린에 도착한 후 한동안 지독한 향수병을 앓는다. 하숙집의 딱딱한 저녁 식사 자리도, 고향과는 다른 번잡한 출근길도, 화려한 백화점의 점원 생활도 모든 것이 낯설다. 잔뜩 주눅이 들어 누가 건드리면 금세 울음을 터트릴 것만 같은 표정이다. 그러던 그녀가 먼 훗날 그녀와 같은 경험을 하게 될 이에게 이렇게 말할 정도로 변한다. “힘들지만 향수병으로 죽지는 않아요. 곧 지나가죠.” 영화는 두 도시에서 일어나는 일상의 변화와 만나는 사람들과의 화학 작용을 통해 그녀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매우 디테일한 시선으로 묘사한다.

영화에서 짧은 슬로우 모션이 두 번 등장하는데, 한 번은 그녀가 입국 심사장을 통과한 후 파란색 문을 열고 환한 밖으로 나가는 장면이고, 또 한 번은 타국에서 보내는 첫 번째 크리스마스 날 밤에 눈이 오는 장면이다. 아일랜드인을 위한 무료 급식소에서 봉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앞 장면이 물리적으로 다른 공간에 첫발을 내딛는 날이라면, 두 번째는 어떤 인식의 전환점이 되는 날이다. 고향을 그리워하지만 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구슬픈 고향의 노래를 부르고 함께 모여 술에 취하는 모습을 보며 그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무료 급식소에서 봉사하며 하루를 보내고 비로소 자신이 발붙이고 있는 곳에서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지를 깨닫는다. 같은 공간을 다르게 보기 시작한 지점이다.

신부님의 도움으로 야간 대학에 다니면서 회계 자격증을 취득하고, 생활에 적응해가면서 까다롭기만 하던 하숙집 주인과 백화점 상관에게 인정받기 시작한다. 배관 일을 하는 다정한 남자친구도 생긴다. 어리숙하던 그녀의 표정은 모두 놀랄 정도로 당당해지고 활기에 넘친다. 코니아일랜드에 놀러 가기 위해 최신 유행의 수영복과 선글라스를 준비하고, 이탈리아 이민자인 남자친구네 집에 초대받고는 하숙집 친구들에게 스파게티 먹는 방법도 배운다. 엉엉 소리 내어 울며 고향에서 온 편지를 몇 번이고 다시 읽던 그녀가 이제 브루클린이 마치 집같이 느껴진다고 답장을 쓴다. 사랑하는 사람과 그녀를 인정하는 좋은 사람들이 있고, 무엇보다 그녀 스스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다. 그렇게 낯선 공간에 자신만의 경험과 기억이 쌓여 새로운 정서와 의미가 생기면서 공간은 장소가 된다. 브루클린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새로운 세계관을 바탕으로 꿈을 펼칠 수 있는 곳이 되었다.

 

 

서영애는 ‘영화 속 경관’을 주제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한겨레 영화 평론 전문 과정을 수료했다. 조경을 제목으로 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으며 영화를 삶의 또 다른 챕터로 여긴다. 영화는 경관과 사람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관계 맺는지 보여주며 인문학적 상상력을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텍스트라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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