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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설계 환경을 진단하다’를 읽고
Column: Review of ‘Problems of Design Environment in Landscape Architecture’
  • 환경과조경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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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설계 환경을 진단한 지난 호 특집, 반가웠다. 그 반향에 기대감도 크다. 하지만 설계 환경을 진단하려 했으나 정작 ‘설계’에 대한 이야기와 ‘환경’에 대한 이야기는 여러모로 부족해 보인다. 설계 환경의 가장 큰 이슈를 결국 ‘기-승-전-설계비’로 맺은 점 또한 아쉽다. 그 전제인 조경설계의 ‘위축’은 매우 상대적인 개념인데, 무엇과 비교해 위축되었는지에 대한 논의 없이 마치 한 십 년 전쯤에 비해 지금은 살기 어려워졌다는 데 초점을 맞춘 것 같아 이점 또한 아쉬웠다.


물론 합리적 계약을 통한 갑을 관계 청산과 의뢰인-설계자의 대등한 관계 재정립, 모호한 조경설계가에 대한 사회적·제도적 지위의 확립, 경쟁력 있는 공모 개최를 통한 설계 경쟁력의 제고, 현실성 있는 설계비의 기준 마련 등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조경가에게, 그리고 설계사무소를 운영하는 경영자에게 매우 중요한 제도적·사회적 환경이기는 하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는 객관적 자료를 토대로 할 때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설계 회사의 몇 퍼센트가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지난 수년간 수익 구조가 어떻게 됐는지, 유관 분야와 비교할 때 업무량 대비 설계비가 얼마나 적은지 등에 대한 개략적인 수치라도 보였어야 이해와 동의가 뒤따르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또한 발주자 그룹의 의견도 함께 다루었어야 했다. 지자체나 LH 등의 발주 현황이나 입장이 함께 실려야 문제의 심각성을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형편없는 설계비만 강조하다가 혹시나 반감이 생겨 계약, 공모, 자격 등의 문제까지 그 심각성이 희석될지도 모르겠다는 노파심이 들었다.


지난 호 특집에 등장한 다양한 진단의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지금 이 사회가 조경가를, 조경설계라는 일 자체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가 단적으로 보인다. 결국 우리 조경가는 (국제 설계공모에서 외국조경가를 꺾을 정도로) 그림은 화려하게 잘 그리는데 일은 제대로 해내는 게 없고, (공모를 통해 안이 뽑혔는데도 시행 과정에서 다 바뀌어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필요로 하는 설계적 대응은 못할 정도로) 실제 설계는 잘 못하며, 설계비만 늘 많이 달라고 하면서 일의 양이 얼마나 될지 어떻게 정리될지 제대로 살펴보지도 않고 반값이고 뭐고 덤핑으로 수주한다는 이야기 아닌가. 이 조경가나 저 조경가나 결과물은 크게 다르지 않으니 더 싼 데 줘도 되는 일이고 그만큼 별로 가치 없는 일이니 첫 번째로 삭감되는 게 설계비 예산이다, 뭐 이렇다는 이야기 아닌가. 무섭다.

 

이런 사회적 인식은 어제 오늘 형성된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근 들어 위축되었다’는 말에는 어폐가 있다. 우리나라의 조경설계 분야는 잘나갔던 적이 없다. 왜냐하면 그 사회적 역할 기반이 이처럼 부실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조경은 절대 권력자의 말 한마디로 탄생했다. 조경의 사회적 역할이 일상의 전통이나 문화적·사회적 필요에 바탕을 두고 생겨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사회는 조경의 역할을 잘 모르거나 조경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거의 없다. 그들에게 지금에서야 우리가 하는 일에 비용을 지불하라고, 자격을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어쩌면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 아닐까. 내게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들이 밀면서 이게 앞으로 꼭 필요할 테니 사세요, 이렇게 외치면 살 사람이 누가 있을까. 사기꾼으로 의심받지 않으면 다행이다.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 우리의 논의는 건설 시장의 일부로서 조경의 역할에 한정되어 있었다. 지난 특집에서도 드러나듯, 거대한 토목 공화국의 건립이라는 습관적 틀에서 잠시 벗어나게 된 어떤 낯섦이 모든 위기론의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위기론의 중심에는 건설 시장의 축소로 일거리가 줄어들어 어려운 상황이고 다시 일감이 늘고 대가가 좋아지면 자연스럽게 위기를 탈출할 수 있을 것이라는 논리가 자리 잡고 있다. 과연 그럴까?

 

조경설계라는 일이 충분한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가치 있는 일이라는 보편적 인식이 존재하지 않는 현재의 상황, 바로 이것이 우리가 극복해야할 설계의 위기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제도와 사회 시스템은 그러한 보편적 합의와 인식을 뒷받침하고 지켜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보편적 인식과 합의가 없는 상태에서 제도와 시스템을 만들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제도와 시스템을 바꾸는 일 못지않게 더 시급한 것은 조경의 사회적 역할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이 시점에 그 역할을 찾고 좋은 결과물을 보여주는 일이다. 그렇게 해서 더 나아진 삶의 모습이 바로 조경가의 역할로 인한 것임을 인식하게 하는 일이다. 눈을 돌려 이 거대한 도시를 보면 조경가의 역할을 기다리는 일이 너무나 많다. 이것을 보려는 노력을 우리가 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환경이 열악해지고 건강이 나빠지고 사회적 관계가 엉망으로 꼬인다. 이 난제를 풀어내는 역할을 조경가가 할 수 있다. 조경가의 역할을 제대로 정립하는 것이 지금의 위기(나 위기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정도正道일 것이다.

지금 당장 나부터 실천해야 한다. 실천할 수 있는 일이다. 이런 실천이 모여야 인식도 변하고 나아가 제도도 바뀔 수 있다. 지금은 좀 힘들겠지만 그런 노력을 해야 우리 후배들이, 우리 자녀 세대가 이 일을 이어갈 수 있고, 그들이 이 일을 할 때쯤에는 사회가 조경가에게 지불하는 비용이 아깝지 않다고 여기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는 그 설계 환경도 나아질 것이다.

 

지난 호의 특집은 진단의 시작점이라는 점에서 충분한 의미를 지닌다.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해 다방면의 진단, 논의, 해법 제시 등을 이어갈 것이라고 기대한다.

 

 

박준서는 ‘Link Landscape with Life’라는 모토로 디자인엘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는 조경설계가다. 조경이란 근원적 삶의 터전으로서의 자연을 문화적으로 해석해 일상에 녹여 내는 행위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한국에서 조경설계의 사회적 역할을 바로세우기를 바라고, 지어지는 설계를 실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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