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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도가 만든 도시] 제도의 한계: 제도는 정당한가?
    연재를 시작하며: 제도는 좋은 것일까 나쁜 것일까 필자는 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대형 건축사사무소가 아닌 이른바 아틀리에 사무실에서 건축 실무를 했다. 서른을 훌쩍 넘겨 도시로 전공을 확장해 공부를 다시 시작하기 전까지, 설득력 있으면서 독창적인 안을 제시하는 것이 십여 년 해왔던 일에서 가장 우선되는 가치였다. 그것은 달리 말해 ‘특수해’를 만드는 것이다. 건축 프로젝트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었다. 역사 지구나 신도시 중심지를 위한 설계, 쇠퇴한 구도심의 도시재생 계획 같은 도시 스케일의 작업에서도 기본적으로 같은 태도를 취했다. 대상 공간의 특수성과 소유자 또는 이용자의 차별적인 요구를 읽어내고 그것을 부각해 디자인의 근거로 삼거나, 혹은 공간을 구성하고 재료를 적용하는 일반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대담한 형태와 새로운 기능 관계를 취하는 등의 접근 방식이다. 그러나 특수해에 해당하는 개별 공간은 도시계획과 각종 법규, 지침이라는 ‘일반해’의 틀 안에서 만들어진다. 어떠한 개별적이고 임의적인 선택이 이루어지더라도 우리 사회가 합의한 도시 공간의 요소들이 갖춰야 할 기능과 미덕을 확보하기 위해 일반해는 필요하다. 더욱이 도시의 모든 건축물과 공간 환경이 소위 ‘디자인’을 통해 특수해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며, 그럴 필요도 없다. 시민 다수가 거주하고 이용하는,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필요를 담는, 비슷하고 반복되는 공간 요소들이 도시의 대부분을 차지하기에 최소한의 기준인 일반해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렇다 면 우리의 도시 공간이 만족스럽지 못한 현실은 이 일반해에 그 원인도, 해법도 있는 것 아닐까? 근대 이후 도시계획과 각종 공간의 형태 규제에 대한 비판적 고찰은 스티븐 마셜(Stephen Marshall)이 엮은 『도시 규제와 계획(Urban Coding and Planning)』(2011)1과 에런 벤-조셉(Eran Ben-Joseph)이 쓴 『도시의 규정(The Code of City)』(2005)2을 비롯해 많은 연구자의 이론적 접근과 여러 나라의 방대한 사례를 되짚는 노력으로 발전해왔다. 한국에서도 2010년대 좋은 도시 공간을 만들기 위한 다수의 제도 개선 연구가 수행되었으며, 그 결과는 관련 법 개정과 정책 수립으로 이어지기도 했다.3 격월로 연재할 글을 통해 필자가 이러한 성과에 견줄 개선 방향과 해법을 내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러한 연구를 우리 도시의 현실을 사례로 뒷받침하고자 한다. 이 연재는 일반해가 우리 도시의 보편적인 모습―공간적 형태와 그에 결부된 현상―에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살펴본다. 그 과정에서 도시의 모습을 구성하는 여러 ‘차원’을 따라 살펴보되 다양한 형식과 위계의 도시 제도와 결부시켜 설명하고자 한다. 여기서 도시계획, 건축 법규처럼 범위가 확정적인 용어를 채택하지 않는 것은 이 연재의 목적이 관련 법제들을 개론적으로 전달하려는 데 있지 않으며,4 몇 가지 법제로 도시의 모습을 설명하는 접근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도시 공간을 만드는 질서는 우리가 (모두 동의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합의한 ‘사회적 규약’으로서 ‘제도’여야 하기 때문이다. 제도가 만든 도시의 모습 도시를 정의하는 다양한 관점과 표현이 있지만, 도시는 인류가 만든 가장 복잡하고도 복합적이며 수많은 사람이 물리적으로나 비물리적으로 밀도 높게 개입한 공간적 장치라고 한다면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달리 말해 도시는 지극히 인위적인 공간 현상이다. 건축역사학자 스피로 코스토프(Spiro Kostof)가 이의를 제기한 것처럼,5 비정형적 도시 조직을 가진 옛 도시들을 으레 ‘자연발생적’이라는 말로 설명하고 심지어 도시 형태적 우월성의 근거로 삼는 것은 도시의 본질과 어긋난다. 완만한 곡선을 이루는 길과 그에 이어지는 독특한 형태의 광장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중세 도시 시에나(Siena)도 실은 의도적으로 계획된 디자인을 엄격하게 강제한 결과다. 골목길이 미로처럼 얽혀 일견 혼돈 그 자체인 옛 이슬람 도시들조차도 특유의 종교와 문화에서 기인한 일관된 배치 원칙을 품고 있다.6 즉 도시를 식물의 자생 군락지처럼 지리적 특성이나 기후 조건의 필연적 결과라고 해석하는 것은 도시의 모습을 설명하거나 그 의미를 파악하는 데 충분치 않다. 결국 도시의 모습, 즉 도시 공간의 형태와 거기서 일어나는 공간적 현상은 사람에 의한 의식적 행위의 집합적 질서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2023년 현재, 서울을 비롯한 대한민국 대도시의 모습을 설명하는 질서는 무엇일까? 그것은 어떻게 작동해 왔을까? 한국전쟁 이후 도시 인구의 급격한 증가와 국가 주도의 경제 개발 등 사회경제적 틀이 가장 근본적인 질서를 구성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두 가지 이유라면 그 어떤 것도 용인되었다는 뜻이다. 부동산을 매개로 한 자본 축적의 욕망 또한 우리 도시의 강력한 주형(鑄型)으로서 우선순위를 차지해왔다. 물론 이를 공공의 이익에 반하지 않도록 제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끊이지 않았다. 이러한 상위의 가치 질서가 실제 도시 공간에 투영되어 구현되는 과정에는 다양한 위계의 법정, 비법정 계획과 수많은 법규와 지침 등으로 구성되는 실행 질서가 작동한다. 이 연재는 한국 도시의 모습을 만든 여러 위계의 질서 중 이 실행 질서에 초점을 맞추며, 이를 ‘제도’라는 용어로 표현하고자 한다. 근대 이후 도시를 만드는 제도는 그 지위 자체로 합리성과 공공성을 추구하는 것으로 가정되어 그 강제력을 인정받는다. 한국의 현대 도시제도 또한 마찬가지다. 그러나 많은 학자와 실무자가 지속적으로 비판해왔고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다수가 느껴왔듯, 도시 제도는 완전하지도 의도한 대로 작동하지도 않으며 심지어 예상치 못한 결과를 만든다. 또한 본질적으로 도시 제도는 특수해가 아닌 일반해의 성격이 강하므로 현실의 다양한 상황에 획일적으로 적용될 때 오히려 불합리한 결과를 야기하기도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공공의 이익과 특정 집단의 이익 사이를 중재하기보다 오락가락한다. 그 와중에 개개인은 수혜와 대가의 계산서에 일관성이 없다고 느낄 수 있다. 이 연재에서는 제도가 만든 도시의 모습에서 특히 이런 점들을 다각적 차원으로 들춰내고자 한다. 이번과 다음 회에서는 그에 앞서 제도에 대한 더 근본적인 질문, 즉 제도는 정당한지 그리고 효율적인지 다룬다.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이리저리 헤집는 방식으로. 각주 정리 1. Stephen Marshall ed., Urban Coding and Planning, London: Routledge, 2011. 2. Eran Ben-Joseph, The Code of the City: Standards and the Hidden Language of Place Making , Cambridge: The MIT Press, 2005. 3. 대표적으로 건축공간연구원이 수행한 ‘건축의 품격 향상을 위한 건축물 형태 규제 개선방안 연구’(2011), ‘근린생활환경 향상을 위한 건축물 규제 개선 기본방향 연구’(2012), ‘사람 중심 가로 조성을 위한 도시설계 연구’(2015), ‘장소기반 전략계획을 위한 도시계획체계 개선방안 연구’(2018) 등이 있다. 4. 한국어로 쓰였으나 전공자도 이해하기 어려운 법 조항을 옮기는 것은 최대한 피하려고 한다. 5. Spiro Kostof, The City Shaped: Urban Patterns and Meanings Through History , London: Thames & Hudson, 1991, pp.10, 70~71. 6. Marshall, 앞의 책, p.10. *환경과조경417호(2023년 1월호)수록본 일부 유영수는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이로재와기오헌에서 건축 실무를 경험했다. 런던 정치경제대학교에서 도시디자인 및 사회과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돌아와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며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병행했다. 현재는인천대학교 도시건축학부에서 법, 제도, 현대 도시 설계 이론, 스튜디오를 가르치고 있다. 건축과 도시를 아우르는 스케일에서 개별적인 공간 현상과 법제 사이의 관계를 연구하고, 계획과 디자인의 역할을 확장하기 위한 이론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 [모던스케이프] 주택 정원의 유행
    소설가 이효석(1907~1942)은 ‘낙엽을 태우면서’(1938)에서 낙엽을 타는 냄새가 갓 볶은 커피와 잘 익은 개암이 생각날 정도로 좋다고 했지만, 삼십여 평의 뜰에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가득 쌓이는 낙엽을 긁어모으는 게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닐 수 없다며 잔뜩 푸념을 늘어놓았다. 낙엽을 그대로 두었다가는 비에 젖거나 흙 속에 묻혀 지저분해지니 날아 떨어지는 족족 뒷시중 들 듯 치워내야 했으니, 정원 관리가 번거로워도 부지런히 챙겨야 하는 일임을 아는 이들에게는 충분히 공감할 만한 표현이다. 한편으로 벚나무, 능금나무, 단풍나무, 담쟁이의 초록빛이 사라지고 칙칙한 낙엽으로 뒤덮인 상황을 묘사한 글을 읽다 보면, 문득 작가의 정원이 궁금해진다. 교수이자 작가인 이효석이 몸소 가꾸던 정원일 것인데, 이 시절 지식인의 주택 정원은 과연 어땠을까 싶은 것이다. 수필이 발표된 1930년대는 일부 계층에서 주택에 정원을 두는 것이 유행이었다. 주택 정원에 관심을 두고 가꾸기에 열중한 이는 대체로 문학인, 음악인, 교수, 사업가 등이었는데, 이들 중 대부분은 해외 유학 경험이 있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효석과 함께 구인회(九人會) 동인이었던 소설가 이태준(1904~미상)은 도성 밖 성북동으로 이사하고 ‘나무와 꽃 속에 싸인 초옥草屋’을 꾸몄다. 지금은 수연산방이라는 전통 찻집으로 바뀌었지만, 이태준 생전에는 음악을 전공한 부인 이순옥과 함께 마당 곳곳에 다양한 수종을 심고 가꾸어서 대중 잡지에 정원이 소개될 정도였다. “샛노란 꽃이 산들거리고 파초와 석류나무가 있으며, 담장에는 한련과 봉선화, 다알리아, 씨 없는 개량종 해바라기를 식재했다. 나무를 집 울타리 삼아 뺑 둘렀고 그 아래에는 갓나무, 진달래, 채송화, 백일홍을 가득 심었다. 정원 한편에는 텃밭을 두어 채소를 심었다.” 특히, 부인 이순옥의 화초에 대한 설명은 매우 흥미롭다. “이 다알리아는 일본서 주문해왔는데 보통 다알리아는 꽃이 피면 무거워서 고개를 숙이는데 이것은 그대로 꼿꼿하게 서있다고 해서 사왔어요. 그리고 이 해바라기는 꽃 가운데 씨가 생기지 않고 가운데서부터 꽃잎이 족– 연달아 나와서 여간 이쁜 게 아니라고 합니다. 그래서 프랑스 어떤 유명한 미술가가 이 꽃을 보고 기가 막히게 감탄하고 칭찬을 했다고 해서 사다 심었어요.” 정원에 심기 적절한 원예 품종이 시장에서 거래되고 있었다는 사실도 신선하지만, 정원에 해바라기를 심게 된 이유가 (어쩌면 반 고흐일지도 모르는) 어느 유명한 화가의 해바라기에 대한 감상평 때문이라는 것도 재미있다. 참고문헌 길지혜·박희성, “1920~30년대 한국 주택정원 인식과 정원가꾸기 양상”, 『한국조경학회지』 50(2), 2022, pp.138~148. “나무와 꽃 속에 싸인 초옥, 소설가 이태준씨 댁”, 『신가정』 1933년 6월호. “自然的으로 만든 庭園, 은행가 김연수씨 댁”, 위의 책. “장안의 국제결혼 스윝홈순례 류일한씨”, 『여성』 1937년 11월호. 이효석, ‘낙엽을 태우면서’, 1938. 사진 출처 그림 1. “조선말을 사랑한 선비 작가 이태준”, 「한겨레」 2015년 10월 1일. 그림 2. “나무와 꽃 속에 싸인 초옥, 소설가 이태준씨 댁”, 『신가정』 1933년 6월호, pp.127~129. 그림 3. 『신가정』 1933년 6월호. *환경과조경417호(2023년 1월호)수록본 일부 박희성은 대구가톨릭대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한중 문인정원과 자연미의 관계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에서 건축과 도시, 역사 연구자들과 학제간 연구를 수행하면서 근현대 조경으로 연구의 범위를 확장했다. 대표 저서로 『원림, 경계없는 자연』이 있으며, 최근에는 도시 공원과 근대 정원 아카이빙, 세계유산 제도와 운영에 관한 일을 하고 있다.
  • ASLA Best Books of 2022 ‘2022 올해의 책’으로 선정된 12권의 조경 서적
    연말연시 연휴, 역사와 디자인, 환경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알려주고 영감을 불어넣어 줄 책을 탐독해보는 건 어떨까. 좋아하는 조경가에게 줄 완벽한 선물을 찾고 있는 당신에게, 지적 모험심을 자극해줄 책을 찾고 있는 당신에게 미국조경가협회ASLA가 선정한 2022년 최고의 책 열두 권을 소개한다. 1. 미국 어바니스트: 윌리엄 와이트는 어떻게 틀에서벗어난 아이디어로 공공장소를 바꾸었을까 (Richard K. Rein, American Urbanist: HowWilliam H. Whyte’s Unconventional WisdomReshaped Public Life, Island Press, 2022) 주간 뉴스레터 「U.S.1」의 설립자이자 기자인 리처드 레인(Richard K. Rein)이 쓴 이 책은 어바니스트이며 사회학자, 저널리스트, 그리고 공공 공간에서 사람들의 행태를 근접 관찰한 것으로 널리 알려진 윌리엄 와이트(William H. Whyte)의 삶과 아이디어를 조명한다. 와이트의 대표 저서인 『작은 도시 공간의 사회적 삶(The Social Life of Small Urban Spaces)』(2001)과 『도시: 중심의 재발견(City: Rediscovering the Center)』(2009)을 포함해, 그의 여러 저서와 연구는 인간 중심 디자인에 대한 새로운 주목과 공공 공간의 가치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가능케 했으며 세대를 거쳐 전 세계 조경가에게 영향을 미쳤다. 2. 비트릭스 패런드: 정원 예술가, 그리고 조경가 (Judith B. Tankard, Beatrix Farrand: GardenArtist, Landscape Architect, The MonacelliPress, 2022) 3. 예술로서의 정원: 덤바턴 오크스의 비트릭스패런드 Thaisa Way, Sahar Coston-Hardy, Garden as Art:Beatrix Farrand at Dumbarton Oaks, DumbartonOaks Research Library and Collection, 2022) 조경사학자 유디트 탠카드(Judith Tankard)가 쓴 『비트릭 스 패런드: 정원 예술가, 그리고 조경가』는 조경가 비트릭스 패런드의 삶을 기록한 전기로, 아름다운 사진을 가득 담고 있다. 같은 인물을 다룬 『예술로서의 정원: 덤바턴 오크스의 비트릭스 패런드』는 워싱턴 DC에 위치한 덤바턴 오크스의 경관·정원 연구 책임자인 테이사 웨이(Thaïsa Way, FASLA 회원)의 저서다. 토마스 볼츠 (Thomas Woltz, FASLA 회원)의 에세이와 사진작가 사하 코스턴하디(Sahar Coston-Hardy)의 사진을 더해, 비트릭스 패런드가 설계한 걸작의 마법 같은 풍경을 보여준다. 4. 정원 너머: 자연 시스템과 결합한 주택 경관 설계 (Dana Davidsen, Beyond the Garden: DesigningHome Landscapes with Natural Systems ,Princeton Architectural Press, 2022) 샌프란시스코 서피스 디자인(Surface Design)의 시니어 조경가이자 전 ASLA 인턴 다나 데이비슨(Dana Davidsen)은 생태 디자인의 발전을 가져온 미국과 영국의 아름다운 도시 경관, 교외 경관, 농촌 지역 주거 경관 18곳을 모아 큐레이션했다. 서문에서 『LAM(Landscape Architecture Magazine)』의 편집자인 티모시 슐러(Timothy A. Schuler)는 이 책이 “오래도록 지속가능하게 설계된 주거지 프로젝트를 통해 어떻게 토지와의 관계를 재설정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고 설명했다. 5. 포괄적 계획: 21세기를 위한 지속가능하고회복탄력적이며 공평한 커뮤니티 (David Rouse, Rocky Piro, The ComprehensivePlan: Sustainable, Resilient, and EquitableCommunities for the 21st Century, Routledge,2022) “과거의 관행적 계획은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과제를 해결하기에 부적합하다.” 미국조경가협회 조경가 및 계획가인 데이비드 라우즈(David Rouse), 콜로라도 주 지속가능한 어바니즘 센터의 상임이사이자 덴버 시 전 총괄계획가 로키 파이로(Rocky Piro)의 선언이다. 이 책은 수백 가지의 포괄적 도시계획안을 검토하고, 지속가능성과 회복탄력성 및 형평성에 기반을 둔 새로운 21세기형 계획 모델을 제시한다. 6. 옴스테드 경험하기: 프레드릭 로 옴스테드의 북미 풍경, 계속되는 유산 (The Cultural Landscape Foundation, Experiencing Olmsted: The Enduring Legacy of Frederick Law Olmsted’s North American Landscapes , Timber Press, 2022) 프레드릭 로 옴스테드 탄생 200주년을 맞아, 문화경관재단(TCLF) 이사장 찰스 번바움(Charles Birnbaum, FASLA 회원), ASLA 명예회원이자 조경사학자 알린 레비(Arleyn A. Levee), 역사보존주의자 디나 타세–윈터(Dena Tasse-Winter)가 책을 구성했다. 이 책은 옴스테드와 그의 회사, 그의 뒤를 이은 여러 후임자가 설계한 200곳 이상의 공공·교육·민간 경관을 개괄한다. 지면을 꽉 채운 옴스테드의 계획안과 드로잉을 통해 민주적인 공공 공간에 대한 옴스테드의 비전 뒤에 숨겨진 작업들을 살펴볼 수 있다. *환경과조경417호(2023년 1월호)수록본 일부 손은신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에서 학부 및 대학원을 졸업했고, ‘기억 경관’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건축공간연구원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조경과 건축, 도시의 경계에서 새로운 연구자들을 만나고 외연을 넓히는 일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 손은신
  • 한국 조경의 어제를 읽고 미래를 쓰다 『한국 조경 50년을 읽는 열다섯 가지 시선』 북토크
    지난 12월 16일 선유도공원 이야기관 강연홀에서 『한국 조경 50년을 읽는 열다섯 가지 시선』 북토크가 열렸다. 1부는 강연, 2부는 토크쇼와 청중과의 대화로 진행됐다. 책을 엮은 한국조경학회를 대표해 조경진 교수(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환경조경학과)는 오랜 시간 노력해온 필자들의 노고에 대해서 감사 인사를 전하며 ‘한국 조경 50년 기념전’과 ‘IFLA 한국 개최 성과전’이 개최된 선유도공원 이야기관에서 북토크를 하는 것이 무엇보다 의미가 깊다”라고 소회를 밝혔다. 이 책은 한국 현대사의 흐름 속에서 도시와 경관, 지역과 환경, 삶과 문화의 틀과 꼴을 직조해온 조경 50년사의 주요 담론과 작품을 기록하고 해석했다. 중성적 아카이브나 백서보다는 해석적 비평서에 가깝다. 1부에서는 한국 조경의 전반적 지형과 풍경에 대한 해석을 담았으며, 2부에서는 주요 단면에 대한 클로즈업으로서 50년의 역사에서 주요한 주제를 포착하고 설명한다. 3부에서는 조사 결과를 통해 선정된 ‘한국 현대 조경 50’의 작품을 소개한다. 한국 조경 50년의 현재와 미래에 관한 담론을 실제 사례에 녹여 조경을 알고자 하는 학생에게는 조경 담론에 대한 지식을 전달하는 참고서, 조경 산업 종사자에게는 한국 조경과 자신이 나아가야 할 길을 안내하는 안내서, 조경에 관심이 있는 일반인에게는 조경의 아름다움을 소개하는 책이다. 저자와 함께 읽는 한국 조경 1부는 박희성 교수(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 임한솔 연구원(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 남기준 편집장(환경과조경)의 강연으로 이뤄졌다. 박희성 교수는 ‘개발 시대의 조경, 그 결정적 순간들’을 주제로 이야기를 진행했다. 전국토공원화운동, 서울시 공원녹지 확충 5개년 계획, 신도시 건설 등 한국 조경의 주요한 변곡점이 조경에 미친 영향을 살펴봤다. 아울러 정원도시 담론, 오래된 신도시 중앙 공원의 유지 및 관리 등 미래 조경을 위한 과제와 방향성을 제시했다. 이어서 임한솔 연구원이 ‘살아있는 과거, 전통의 재현’에 대해서 발표했다. 한국 조경의 역사에서 전통이 어떤 식으로 전개되었는지를 시대별로 살펴보는 동시에 내적 원리의 재현, 창발적 변용 등 전통을 이용한 설계의 유형에 대해서 소개했다. 임한솔 연구원은 “설계에서 전통은 수동적으로 살아남은 것이 아닌 살아 있는 과거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하며 설계에 있어서 전통과 한국성에 대한 관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연의 마지막 순서로 남기준 편집장이 ‘텍스트로 읽는 한국 조경’을 주제로 50년의 역사를 조경 도서로 조망하며 조경 도서의 가치에 대해 논했다. 고정희 대표(써드스페이스베를린)의 ‘100장면으로 읽는 조경의 역사’를 읽고 2013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개최를 결정했다는 순천시장의 일화를 소개하며, 조경 도서는 조경의 역사적 흐름을 읽을 수 있는 동시에 조경가들이 새로운 그림을 그려나갈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바탕이라고 말했다. *환경과조경417호(2023년 1월호)수록본 일부
  • 제25회 올해의 조경인, 제5회 젊은 조경가, 창간 40주년 조경비평상 시상식
    12월 16일 선유도공원 이야기관 강연홀에서 본지가 주최한 ‘올해의 조경인·젊은 조경가 시상식’ 및 ‘조경비평상 시상식’이 개최됐다. ‘제25회 올해의 조경인’에는 조경진 교수(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환경조경학과)가, ‘제5회 젊은 조경가’에는 최윤석 대표(그람디자인)가 선정됐다. 정평진 대표(스코어러)는 ‘창간 40주년 조경비평상’에서 가작을 수상했다. 시상식이 개최된 선유도공원 이야기관은 ‘한국 조경 50년 기념전’과 ‘IFLA 한국 개최 성과전’이 열리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박명권 발행인은 “한국 조경의 중요한 분기점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리는 장소에서 시상식을 개최해 더욱 의미가 깊다”며 “이번 수상이 끝이 아니라 한국 조경 분야의 발전을 위한 새로운 도전의 시작이 되길 바란다”고 수상자를 격려했다. 조경진 교수는 한국조경학회 회장으로서 한국조경50 비전플랜을 수립하고, 다양한 포럼과 세미나를 개최해 도시가 직면한 난제의 해결책을 제시하는 데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또한 조경헌장제정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서 2013년 ‘한국조경헌장’ 제정, 2022년 ‘한국조경헌장’ 개정에 이바지하고, 서울시 공원녹지 총감독으로 활동하며 녹지 환경 개선에 앞장섰을 뿐 아니라 ‘푸른도시 선언 전략계획’ 수립 등 관련 정책을 제안해 조경의 위상 제고에 힘쓴 점이 높게 평가됐다. 조경진은 “한국 조경이 탄생한 지 50년 되는 해에 올해의 조경인으로 선정되어 더욱 기쁘다. 제58차 세계조경가대회의 성공적인 개최가 수상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모두가 받아야 하는 상을 대표로 받는다는 마음에 미안하다. 앞으로 조경 분야 발전을 위해 더 열심히 활동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최윤석 대표는 경희대학교 환경조경디자인학과를 졸업하고 선진엔지니어링 종합건축사사무소 등에서 실무를 경험했다. 2008년 그람디자인을 설립해 다양한 유형의 조경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2012년부터는 정원사친구들을 결성해 색다른 정원 문화 프로젝트를 선보이고 있다. 2021년 개최된 제11회 대한민국 조경대상에서는 산림청장상과 한국조경학회장상을 받았다. 최윤석은 “최정상의 조경가보다는 보통의 조경가가 되고 싶었다”라며 소감을 시작했다. “동료와 합심해서 열심히 달려오다 보니 젊은 조경가 수상이라는 성과를 이룰 수 있었다. 올바르고 모범적인 조경가가 되라는 의미로 생각하고 정진하겠다”며 직원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부르며 감사를 전했다. *환경과조경417호(2023년 1월호)수록본 일부
  • [기웃거리는 편집자] 모종삽으로 쓰는 새로운 서사
    이순신 장군에게 12척의 배가 있다면, 내게는 12자루의 연필이 있다. 이순신 장군처럼 해치워야 할 적은 없지만, 매달 해치워야 할 원고들이 기다리고 있다. 옛날처럼 원고지에 글을 작성하거나 다듬는 것도 아니지만, 원고의 목록과 해야 할 일, 취재 일정과 마감일을 적거나 사진의 배열 등을 고민할 때 연필을 쓴다. 물론 볼펜을 쓸 때도 있지만, 수정이 많은 경우 연필을 자주 쓴다. 골 넣은 스타 스트라이커도 좋지만, 연장전까지 뛸 수 있는 근성 있는 수비수가 때론 필요하다. 연필에 빠진 이유는 소설 속 장면 때문이었다. 소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2016)의 주인공이 다니는 설계사무소의 직원들은 업무 시작 전 모두 아침마다 연필을 깎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매해 여름쯤 몽당연필이 유리병에 가득 차면 그들은 긴 워크숍을 떠난다. 몽당연필은 그들에게 시간을 헤아리는 일종의 아기자기한 모래시계였다. 그 귀여운 장면이 마음에 각인된 이후부터 마감이 끝나면 연필을 한 자루 두 자루씩 모으기 시작했다. 미국 대통령 링컨은 낙선할 때마다 깔끔하게 이발을 한 후 단정한 옷을 입고 맛있다고 소문난 식당에서 식사를 즐겼다고 한다. 나 역시도 새로운 마음을 다잡기 위해서 만든 일종의 루틴이었다. 매달 마감을 끝냈다는 일종의 성취와 다음 달을 위한 마음을 다잡기 위해서 연필을 사면서 작은 보상을 했던 것 같다. 그렇게 각기 다른 종류 연필로 구성된 12자루로 1타를 만들면서 한 해 한 해를 보냈다. 꾸준히 연필을 모을 수 있었던 것은 자주 갔던 빈티지 문구점 덕분이었다. 힙스터의 성지로 불리는 동네의 중심지와 떨어져 있어 가게가 위치한 골목에는 다소 한적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시골 학교 교장 선생님 사택처럼 조금 허름하지만 단아한 느낌이 나는 건물의 3층에 자리 잡고 있는데, 그 건물 앞의 단풍나무가 보호수처럼 느껴져서 참 좋았다. 그래서 본래의 문구점 이름 대신 기사식당 간판에서 볼 법한 이름인 ‘단풍나무집’으로 혼자 부르곤 했다. 실명 대신 별명을 부른다는 것은 그만큼 고유한 애정(?)을 담는 행위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으레 학교 앞에서 아폴로 같은 불량 식품을 팔고 초등학생들이 줄지어서 뽑기를 하는 그런 전형적인 문구점은 아니다. 해외에서 하나하나 손수공수한 빈티지 연필과 문구를 판매했다. 부담스러운 호객 행위를 하지 않고 자신의 할 일에 몰두하던 사장님의 응대가 좋았다. 대신 연필에 관해 물으면 늘 자세히 알려주었다. 어떤 연필 한 자루는 책 한 권 가격에 버금갈 정도로 비쌌지만, 그 연필의 적합한 용도는 무엇이고, 어떤 회사가 만들었는 지, 각인된 이미지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등을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내 예산을 초과하는 가격의 연필은 차마 사지 못했지만, 사장님의 열정과 연필에 깃든 서사가 재미있어서 산 연필이 꽤 있었다. 덕분에 매달 연필 고르는 재미로 살았다. 내게 연필의 서사가 중요한 소비의 기준이었던 것처럼 제5회 젊은 조경가로 선정된 최윤석도 서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조경가다. 최정상을 향해 달리는 조경가가 아니라 보통의 조경가가 되기 위해서 노력하는 그는 조금 거칠고 투박할 수 있지만 ‘디자인하는 엔지니어’로서 서사적인 조경이라는 자신만의 장르를 만들고자 노력하는 조경가였다. 남들이 책상에 앉아서 설계에 매달릴 때, 현장에서 몸소 부딪히며 조금 더 구체적인 설계에 치열하게 매달렸다. 무엇이 더 낫다고 감히 판단할 수는 없지만, 그의 치열함이 빚어낸 세월에 대한 보상이 젊은 조경가 수상으로 채워졌기를 바란다. 내게 연필이 그랬던 것처럼. 제3회 LH가든쇼 해외 초청작가 앤디 스터전은 조경의 대중화를 위해서 필요한 것으로 조경 언어의 활성화를 꼽았다. 조경가의 다양한 언어와 그 언어를 기록하는 미디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국과 영국은 여건이 다르지만, 최윤석처럼 자신의 스타일과 장르를 개척해나가는 조경가들이 한국에도 더 있으리라 생각한다. 연필을 삽이라 칭했던 김훈 소설가처럼, 나 역시도 연필이란 모종삽을 들고 대기하겠다. 조경의 다양한 언어를 기록하기 위해 받은 메일함을 비워두며 조경의 새로운 서사를 함께 써나갈 조경가를 기다린다. [email protected]
  • [편집자가 만난 문장들] 종교와 사랑으로 구원되지 않는 사람들은 걷는다
    눈 내리는 게 좋으니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고. 새해 목전에 두고 자꾸 어린이로 머물 수 있는 증거를 찾는다. 나이에 걸맞은 행동을 해야 한다는 게 매년 더 부담스러워진다. 그래도 마냥 거짓말은 아니다. 빙판길과 질척하게 녹은 눈은 싫지만, 창밖으로 펼쳐지는 눈 내리는 풍경은 여전히 좋다. 보고 있으면 겨울은 쓸쓸해도 괜찮은 계절이구나, 생각하게 된다. 나뭇가지에 눈을 지고 선 메타세쿼이아가 쭉쭉 뻗은 풍경이 낯설었다. 눈이 내린 선유도공원을 걷는 게 처음이었다. 겨울인데 이렇게 춥지 않아도되나 걱정한 게 무색하게 엄청난 기세로 기온이 내려가더니, 연말을 맞이해 준비한 시상식(124쪽)을 앞두고 눈이 펑펑 내리기 시작했다. 웬만한 눈은 제설차가 다 치워버리는 도시와 달리, 흰색 초원을 넉넉히 남겨둔 공원 풍경이 연말 분위기와 퍽 잘어울렸다. 몸을 움츠리게 만드는 추위에 시상식과 같은 장소에서 열리는 북토크(122~123쪽)에 방문자가 많이 오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도 했지만, 예상보다 더 많은 사람이 좌석을 채웠다. 날씨의 영향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행사장 내부가 조금 더 따뜻해진 기분이 들었다. 북토크를 몇 차례 열고 지켜보며 느낀 건, 책 속 이야기보다 글쓴이 자체를 좋아하고 그들과 대화를 원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는 점이다. 그렇다보니 청중과의 문답 시간은 오로지 책 속 콘텐츠에 대해 논의하는 시간으로 흐르지 않는다. 이날의 대담도 아슬아슬하게 경계를 달리다가 다시 북토크와 어울리는 궤도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불안함을 먹고 자라 조금 빼족해진 질문 두어 개가 마음에 남았다. “융복합 시대에 조경의 먹거리를 다른 분야에 빼앗기고 있는데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비평 공모가 사라지고 있는데 다시 비평가들을 불러들이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요.” “누가 조경 공간을 만드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누구든 잘하는 사람이 좋은 공간을 만드는 게 중요하죠.” “제대로 된 조경 비평 문화는 아직 없다고 생각해요. 그 문화가 성숙할 수 있도록 지지하는 일을 멈추지 않을 거예요.” 모두가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르는 답변은 마음 한구석을 쓸쓸하게 만들었지만, 한편으로 결국 내가 열심히 잘하면 해결될 일이구나 싶었다. 물론 다수가 열심히 노력하는 데도 불구하고 잘하는 소수만이 살아남는 세상은 조금 슬프겠지만 말이다. 조경 비평의 밑바탕이 마련되려면 조경가들이 자신의 설계 철학과 설계한 공간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할 필요가 있다는 말에는 몰래 고개를 끄덕였다. SNS를 비롯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은 점점 늘어나는데 조경가의 말들은 점점 줄어든다는 게 이상하다. 물론 에디터인 내가 제 몫을 다 하지 못한 탓일지도 모르지만. 가끔 사무실에 남아 어둑한 창밖을 볼 때면, 이 일은 조경을 좀 더 사랑하는 사람이 하는 게 맞지 않나 싶어 머리가 지끈거린다. 이야깃거리를 찾아 언제 어디든 조경 동네 사람을 찾아 걸음을 옮기는 애정을 가진 사람 말이다. 한숨을 쉬며 인터뷰를 정리하다 “직업 자체가 자신의 모든 생활을 잠식하는 상황을 피하려 합니다.”(66쪽)라는 문장을 위로로 삼았다. 12월은 꼭 반성의 달이 되어버리고 만다. 다짐을 실천하기에 내 심지는 물렁하기 짝이 없고 일년은 너무 짧다. 올해도 크리스마스가 오기 전 마감 끝내기에 실패했다. 이 지면을 채우기 위해 커피를 사러 나섰는데 얼굴에 부딪는 찬바람이 꽤 기분 좋게 느껴졌다. “종교와 사랑으로 구원되지 않는 사람들은 걷는다. 공간은 가끔 사람을 구원한다. 도피처, 은신처로 삼을 만한 곳이 많을수록 도시는 애틋한 곳이 된다.”1 떠올린 문장이 무엇과 닮았나 했더니 제58차 세계조경가대회에서 학생 대표로 발표했던 조담빈(서울대학교 사회학과, 조경학과)의 말이었다. “작은 교정 안에도 애착을 가진 공간이 있었습니다. 일상이 힘들 때마다 달려갔던 곳, 작은 언덕을 바라볼 수 있는 나무 아래의 벤치였습니다. …… 그 벤치가 제 고등학교 졸업의 일등공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어떤 공간은 사람들의 삶을 바꿀 수 있습니다.” 나만의 도피처를 소개 해주고 싶었는데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삶이 못났다고 생각하며 한 해를 마무리하고 있을 독자에게 창피한 내 이야기가 작은 위안으로 느껴지길 바란다. 사람 사는 건 다 비슷비슷하다고 믿으며. [email protected] 각주 1. 서한나, “현대의 산책”, 「한겨레」 2022년 12월 19일.
  • [COMPANY] 에프씨코리아랜드 코르크로 탄소중립을 실천하다
    에프씨코리아랜드는 투수성 코르크 바닥 포장재를 개발해 탄소중립 실천에 앞장서고 있는 친환경 기업이다.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코르크 원료를 국산 자원으로 대체하기 위해 다양한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성세경 대표는 산림청 산하 한국임업진흥원에서 사업비 12억 원을 지원받아 강원대학교와 국산 참나무류의 수피 및 코르크를 이용한 탄성 포장재 개발을 진행 중이다. 현재 에프씨코리아랜드는 투수성 코르크 바닥 포장재 원료인 코르크를 해외에서 수입하고 있다. 이번 연구를 통해 포장재의 원가를 줄이고 국내 목재 산업의 발전에 기여하는 데 큰 성과를 낼 것으로 보인다. 장재혁 기업부설 연구소장은 국산 굴참나무에서 얻은 코르크 칩이 수입산 코르크 칩과 비교해 물성 및 탄소 저장 능력에서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것을 확인했다. 이후 국산 굴참나무로 만든 코르크로 탄소중립을 실현할 수 있는 재료를 개발하는 데 힘쓰고 있다. 투수성 코르크 바닥 포장재의 효과 에프씨코리아랜드의 투수성 코르크 바닥 포장재에 사용된 코르크는 내부에 탄소가 저장되어 있다. 이로써 온실가스 감축 효과를 내고, 열을 덜 흡수해 여름철 열섬 현상을 완화한다. 기존 포장재와 비교하면 지표면 온도가 약 10℃가량 낮게 측정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투수성이 우수해 장마철 폭우 피해를 예방할 수 있다. 인체에 무해한 코르크 전용 바인더로 내구성을 강화하는 가공법을 사용했는데, 시간의 흐름에 따른 색의 변화를 억제할 뿐 아니라 가격 경쟁력을 높이는 효과까지 얻었다. 꾸준한 기술 개발로 에프씨코리아랜드는 2018년 한국산림인증KFCC 획득을 시작으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우수 신기술, KS 제품 인증, 조달청 혁신제품 인증 등을 취득했다. 이러한 기술력은 매출 증대뿐 아니라 산림과학기술 R&D 수행, 해외 수출 판로 개척, 해외 산림 자원 개발 기반을 구축하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인간과 자연의 공생을 꿈꾸다 과거 에프씨코리아랜드는 흙 콘크리트 포장을 주요 사업 분야로 다루는 기업이었다. 하지만 지구 환경을 보존하면서 국민 건강 증진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바닥재에 대해 고민하던 중, 탄성이 있고 탄소를 머금고 있는 코르크 소재를 알게 되었다. 10여 년에 가까운 시간을 코르크 연구에 매진했다. 코르크 포장재가 기존 바닥 포장재에서 방출되는 중금속, 휘발성유기화합물TVOCs, 프탈레이트계 가소제 같은 유해 물질을 덜 방출한다는 점에 주목해 바닥 포장재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현재 공원 산책로, 학교 운동장 및 체육 시설, 어린이 놀이 시설 등 각종 실내외 바닥에 에프씨코리아랜드의 코르크 포장재가 활발히 사용되고 있다. 목재와 탄소중립의 관계 코르크 포장재의 친환경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목재와 탄소중립의 관계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선, 탄소중립이란 이산화탄소 배출량과 흡수량이 서로 균형을 이루게 해 지구 온도가 1.5℃ 이상 상승하지 않도록 기여하는 일이다. 이산화탄소를 흡수한 나무는 산소를 뱉어내고 탄소를 저장하며, 베어져 목재가 되어도 저장된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다.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UN Framework Convention on Climate Change)은 2011년에 연 당사국총회COP17에서 벌채한 산림 자원을 원료로 한 수확된 목재 제품(HWP)도 탄소계정(탄소 저장량=이산화탄소 흡수량)에 포함시키기로 합의했으며, 교토의정서도 목재의 수확과 목재 제품의 생산을 탄소 저감 활동으로 권장하고 있다. 강원대학교 공동 연구팀의 연구와 공인 시험 분석 기관의 분석에 따르면, 코르크 바닥 포장재는 1m3 당 약 142kg의 탄소를 저장할 수 있다. 두께 15mm의 코르크 바닥포장재를 학교 운동장에 1,000m2 면적으로 포장할 경우에는 약 2.1톤의 탄소를, 두께 65mm의 코르크 바닥 포장재를 어린이 놀이터에 300m2 면적으로 포장할 경우에는 약 2.7톤의 탄소를 저장할 수 있다. 현재 코르크 바닥 포장재에 많은 기업과 관계 부처가 관심을 표하고 있다. 성세경 대표는 향후 코르크산업협회를 구성해 코르크 원료의 수급망을 구축하고, 가공 및 시공 기술의 공동 개발을 꾀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각종 난제를 여러 기업과 함께 힘을 합쳐 해결하고 새로운 제품군을 개발하는 등 코르크를 통해 탄소중립 실천에 앞장서고 싶다는 입장이다. 글 박형석 자료제공 에프씨코리아랜드(fc4u.co.kr)
    • 박형석
  • [PRODUCT] 펫팸족을 위한 테마파크 놀이터 왈로 반려견과 견주가 함께 즐기는 반려견 놀이터
    반려동물 인구가 천만이 넘어가면서, 애완동물은 이제 가족이나 다름없는 시대가 됐다. 애완동물을 가족처럼 여기는 ‘펫팸족’(펫과 패밀리의 합성어)이 늘어났지만, 반려동물과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해 아쉬움을 호소하는 견주가 많았다. 이에 예건은 도심 속 공원의 자투리땅을 분리해 손쉽게 개를 위한 놀이터로 바꿀 수 있는 반려견 테마 놀이 시설 ‘왈로(Waalo)’를 개발했다. 왈로는 반려견과 주인이 함께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놀이터다. 반려견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 마치 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처럼 보이게 연출했다. 단순한 놀이 시설의 개념을 넘어 원목을 사용하고 유쾌한 색채감을 연출해 주변 경관과 조화를 꾀했다. 운동량이 부족한 실내견과 소심한 성격의 반려견이 사회성을 기를 수 있도록 개의 습성을 체계적으로 분석 및 연구한 자료를 토대로 과학적인 설계를 실시했다. 개의 습성과 육체적 성장을 고려한 놀이 시설에서 반려견은 주인과 함께 훈련이 아닌 놀이를즐길 수 있다. 또한 휴게 시설물을 설치해 견주가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트와짓&저니브릿지는 일광욕을 할 수 있는 옥상층과 지붕을 타고 오르는 재미를 주는 계단으로 구성한 놀이 시설물이다. 둥둥 떠 있는 구름 속을 탐험하고, 구름 위를 지나는 반려견의 짧은 여정을 연상시키는 디자인이 특징이다. 강아지 벤치는 견주의 편의를 위해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 동안 반려견의 목줄을 잠시 묶어둘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TEL. 031-943-6114 WEB. yekun.com
  • [에디토리얼] 2022년을 보내며
    분주했던 2022년이 저물어간다. 올해 잡지 지면에 가장 많이 등장한 키워드는 제58차 세계조경가대회(IFLA 2022)와 한국 조경 50주년이었다. IFLA 2022 조직위원회 사무국 역할을 맡아 일 년 내내 전쟁터 같았던 환경과조경 편집실을 정리하다 2022년 과월호들을 다시 펼쳤다. 본지가 주최한 ‘제4회 젊은 조경가’ 수상자 조용준 소장(CA조경기술사사무소) 특집으로 1월호를 꾸렸다. 평평한 땅, 생성적 경계, 보이지 않는 깊이, 반응하는 표면 등 그의 설계 사고와 중심 개념을 만날 수 있었다. 3월호에는 IFLA 2022의 주제 ‘리:퍼블릭 랜드스케이프’와 다양한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특집 ‘미리 보는 제58차 세계조경가대회’를 기획했다. 7개월 뒤인 10월호 특집 ‘제58차 세계조경가대회’에는 8월 31일부터 9월 2일까지 광주에서 열린 IFLA 2022의 성과를 기록했다. 제58차 세계조경가대회는 기후변화와 도시 위기에 대응하는 조경가의 비전과 전략을 심층 논의하고 지혜를 모았으며, 이를 통해 한국 조경계 또한 혁신의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근대 조경의 창립자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의 탄생 200주년(4월 26일)을 맞아 4월호 특집 ‘옴스테드 200’을 구성했다. 참여 필자들의 헌신적인 수고로 옴스테드의 삶과 업적, 공원관, 저작과 작품, 기록물을 폭넓게 아우르는 지면을 꾸릴 수 있었다. 5월호에 특집으로 담은 ‘Z+T 스튜디오’의 작업들은 동시대 중국 조경설계의 진격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전통의 무게와 개발 시대의 속도전 모두를 넘어선 작품들에서 중국 조경의 현재를 가늠할 수 있었다는 피드백이 많았다. 6월호 특집 ‘공원, 고쳐 쓰기’는 도시공원의 리노베이션을 둘러싼 복원과 변경, 보존과 재생의 충동 등 여러 난제를 국내외 다양한 사례를 통해 짚었다. 창간 40년을 맞은 7월호(통권 411호) 특집으로는 한국 조경의 기반을 질문하는 기획, ‘조경, 그 이름을 묻다’를 올렸다. 한국 조경의 태동과 함께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의 번역어로 선택된 조경이라는 이름이 조경(학)의 목적과 대상, 영역을 포괄하지 못하며 조경의 사회‧문화적 역할을 전달하지 못한다는 이슈를 일곱 가지 시선으로 다뤘다. 이어서 8월호 지면에는 조경계가 당면한 현안 중 하나인 자격 제도의 문제를 담았다. 2023년에 새 회장단을 꾸릴 한국조경협회가 8월호 특집 ‘조경설계 자격제의 문제와 대안’에서 제시된 과제를 적극 추진해줄 것이라 기대한다. 11월호 특집으로는 북서울꿈의숲에서 열린 ‘2022 서울정원박람회’의 주요 작품을 배치했으며, 지난 8월에 개장한 새 광화문광장도 두 편의 비평과 함께 비중 있게 다뤘다. 이번 12월호에는 한국 조경 50년의 성과와 『환경과조경』 40년의 발자취를 간략하게 기록한 ‘한국 조경 50, 환경과조경 40’을 마련하며, 매년 본지가 주최하는 ‘올해의 조경인’과 ‘젊은 조경가’ 선정 결과를 싣는다. 제25회 올해의 조경인으로는 IFLA 2022 조직위원장으로 활약한 조경진 교수(서울대 환경대학원 원장, 한국조경학회 회장), 제5회 젊은 조경가로는 정원에서 공원에 이르는 다양한 유형의 조경 설계와 시공에서 성과를 낸 최윤석 소장(그람디자인)이 선정됐다. 눈 밝은 독자들은 2022년에 『환경과조경』이 시도한 몇 가지 변화를 쉽게 알아챘을 것이다. 새로운 시도 중 하나는 본문 첫 순서로 근작과 조경가 인터뷰를 배치한 지면이다. 다른 지질, 다른 분량, 다른 구성으로 실험한 이 꼭지에 대해 공간의 형태와 문법뿐 아니라 조경가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었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2월호에 랩디에이치(Lab D+H)의 ‘타임워크 명동 공유 정원’으로 처음 선보인 이 지면에 지난달 11월호까지 에이치엘디자인(HLD)의 ‘LH 시그니처 가든’, 김아연의 ‘전주 야호 맘껏숲놀이터’, 오피스박김의 ‘현대자동차 영남권 연수원’, 바이런의 ‘파리공원 리노베이션’, 조경작업소 울의 ‘광나루 모두의 놀이터’, 얼라이브어스(ALIVEUS)의 ‘포스코 파크1538’, CA 조경기술사사무소의 ‘KT 디지코 가든’, 디자인 스튜디오 엘오씨아이(loci)의 ‘미래농원(mrnw)’을 담았다. 또 다른 새 기획은 본문 후반부에 배치한 ‘어떤 디자인 오피스’였다. 이 꼭지에는 매달 한 회사를 선정해 설계 작업과 설계사무소 경영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다채로운 이야기를 담고자 했다. 조경하다 열음, 안마당더랩, 본시구도, 오픈니스 스튜디오, 엘피스케이프, 조경설계 디원, 얼라이브어스, 안팎, 조경그룹 이작, 씨에이티 조경설계사무소, 조경사무소 사람과나무가 참여했는데, 기사가 나간 뒤 인턴과 신입사원 지원자가 적지 않게 늘었다고 한다. 올해 1월호부터 시작한 박희성 교수(서울시립대 서울학연구소)의 연재 ‘모던스케이프’는 도시공원과 도시계획은 물론 동물원, 경마장, 관광, 전차, 식목일, 어린이 등이 근대 도시의 풍경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탐사하는 내용으로 많은 독자의 시선을 붙잡았다. 내년에도 모던스케이프 시즌2가 이어진다. 지면의 청량제 역할을 해온 조현진 일러스트레이터의 ‘풍경 감각’과 유청오 포토그래퍼의 ‘유청오의 이 한 컷’ 또한 내년에도 계속된다. 한국 조경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기록될 2022년을 이렇게 통과한다. 늘 함께해주신 독자 여러분, 편집위원과 필자, 번역자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린다. 2023년에도 『환경과조경』은 조경 저널리즘의 최전선에서 소통하는 공론의 장이 될 것을 약속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