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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투르크라프트 Naturkraft
    새로운 자연을 담은 감각적 멀티버스 덴마크 서해안에 위치한 작은 도시 링쾨빙(Ringkøbing)에들어선 나투르크라프트(Naturkraft)는 새로운 형식의 탐험관이자 자연 체험 공간이다. 50에이커 규모의 새로운 자연과 건물에서 사람들은 자연이 지닌 물리적이고 미학적인 힘을 경험하고, 미래 지속가능한 도시와 커뮤니티를 어떻게 형성해야 하는지 살필 수 있다. 핵심 공간은 새로운 자연이다. 이곳에서 신체 놀이, 학습 활동, 인간과 자연의 상호작용을 직관적으로 이해시키는 공간을 통해 자연의 힘을 깨달을 수 있다. 지역 고유의 지질 다양성, 자연, 문화사에 대한 종합적 연구를 바탕으로 서부 유틀란트(Jutland)의 기존 자연 경관을 서쪽에서 동쪽으로 가로지르는 17km 길이의 ‘단면’을 조성했다. 이 단면을 토대로 사구, 황야, 습지, 탄소 숲 등 여덟 가지의 자연 유형을 인간이 만든 새로운 형태의 생태계와 결합했다. 그 결과 다양한 유형의 자연이 집약적이고 초감각적으로 병치되는 풍경이 완성됐다. 이는 자연이 우리 생활과 사회의 근간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자연 기반 도시와 미래 사회를 위한 모델 생명과 삶의 기반으로서의 자연은 나투르크라프트를경험하고 이해하기 위한 기본 원리다. 자연의 물리적 현상과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정서적, 인지적 가치에 초점을 맞춰 설계를 진행했다. 인간이 경험하고 사용하며 느끼는 가시적인 자연의 힘뿐 아니라 자연의 미학적 가치를 자연현상을 통해 일깨워주고자 했다. 궁극적으로는 자연적인 과정을 활용하는 것이 미래 도시와 지역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줌으로써, 자연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에서 배우고 함께 살아가야 함을 깨닫기를 바랐다. *환경과조경417호(2023년 1월호)수록본 일부 글 SLA Lead Landscape Architect(New Nature) SLA Architect(Building, Arena and Experiences) Thøgersen&Stouby Architect Hune & Elkjær Engineers NIRAS, Fuldendt Contractor Hansen & Larsen Client Naturkraft Foundation Supported Financially by A.P. Møller Foundation, Ringkøbing-Skjern Municipality, Realdania, Augustinus Foundation, Vestas, Villum Foundation, Færch Foundation, Tryg Foundation, Velux Foundation, ErhvervsVækst Ringkøbing, Beckett-Foundation, Krogager Foundation, Hedeselskabet. Location Ringkøbing, Denmark Area Site: 50ac Nature Area: 5ac Completion 2020. 6. Photograph Naturkraft, SLA, Thøgersen&Stouby, Torben Petersen SLA는 자연을 기반으로 한 조경, 지속가능한 도시 디자인, 도시계획을 진행하는 디자인 스튜디오다. 덴마크 코펜하겐에 설립되어 지난 30년간 여러 공공 공간과 마스터플랜을 만들었다. 공원과 광장에서부터 도시 전역에 걸친 마스터플랜, 국가 단위의 생물다양성 전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규모의 프로젝트를 다룬다. 현재 유럽, 북미, 아시아, 중동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 SLA
  • 힐스테이트 과천중앙 HILLSTATE Gwacheon Jungang
    힐스테이트 과천중앙은 과천시 중앙동 38번지 일대에 있으며, 과천 시청·경찰서·정부청사, 정부과천청사역과 인접한다. 도심 속에 위치하면서 관악산과 매봉산의 자연을 바라볼 수 있다는 특징에 착안해 도심의 화려함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동시에 담아내는 야외 미술관 개념으로 접근했다. 갤러리 스퀘어 주출입구에 위치한 갤러리 스퀘어는 아름드리 소나무와 미술 장식품이 있는 야외 미술관 개념으로 설계한 공간이다. 은행나무가 있는 관문로와 연결되는 열린 공간으로 보행자가 자연스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동선을 유도했다. 중심부에는 특색 있는 경관을 조성하고자 조형 소나무와 미술 장식품을 중심으로 다양한 수목을 식재해 아름다움을 더했다. 청량감을 줄 수 있는 수공간을 배치하고, 조형미를 느낄 수 있는 퍼걸러와 통석 벤치를 두어 편안한 휴식과 볼거리가 있는 공간으로 조성했다. 피크닉 가든 피크닉 가든은 풍성한 녹음 아래에서 휴식을 즐길 수 있는 야외 휴게 공간으로 중국단풍이 가로수인 교동길과 이어진다. 상록수인 소나무 위주로 식재해 낙엽수 중심이었던 기존 녹지 공간과 대비되는 늘 푸르른 공간으로 계획했다. 노란 색감의 부정형 판석으로 포장한 산책로는 자연스러우면서 온화한 느낌을 선사한다. 산책로를 따라 걷다보면 미술 장식품과 야외 테이블을 만날 수 있고, 아기자기한 데크 공간을 나무와 꽃 사이에 배치해 일상에서의 여유로움과 머무는 즐거움을 느끼게 했다. *환경과조경417호(2023년 1월호)수록본 일부 글 한규식 씨엔케이 설계팀 소장 조경 설계 씨엔케이 건설 현대건설 시공 조경사엔앤씨 위치 경기도 과천시 중앙동 38번지 대지 면적 9,480.18m2 조경 면적 1,537.72m2 완공 2022. 11. 사진 현대건설 씨엔케이(CnK)는 2003년 설립된 조경설계사무소다. 미래를 위한 새로운가치를 추구하며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끊임없이 진화하는 젊은 시각과 철학을 가지고 있다. 공원, 공동 주택, 공공시설, 쇼핑몰, 테마 거리, 정원 등 조경과 환경 디자인이 필요한 분야의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 씨엔케이
  • [어떤 디자인 오피스] 스튜디오테라 시대 골목에서 조경으로 시대를 고민하는 디자인 구멍가게
    오피스 철학 S는 묵음입니다 명함 뒷면의 로고를 보고 “스튜디오스 테라군요”라며 인사하는 사람에게 대답한다. 마치 영어 발음을 잘못한 사람처럼 멋쩍어하는 모습에 미안한 마음이 든다. 테라 맥주가 나왔을 때 이제부터 폭탄주에는 무조건 테라라며 사람들은 장난을 건넸다. 흙, 땅, 대지, 나아가 지구를 의미하는 라틴어 테라(terra)는 대지의 여신이자 10의 12제곱(1조)이며, 온라인 게임의 이름이기도 하고 문제가 된 가상화폐 이름이기도 하다. 각양각색의 테라를 만날 때마다 2010년에 테라를 선점한 우리는 시대정신을 너무 앞서 간 게 아닐까 웃기도 한다. 스튜디오테라 는 조경에 대한 몇 가지 생각을 공유하는 느슨한 네트워크다. 스튜디오테라가 지향하는 바는 이름에 암호처럼 코딩되어 있다. 조경계의 새로운 종(species)이 되길 바라는 바람으로 학명을 닮은 이름을 지었고, 스튜디오가 뿌리 내린 동네와 대학의 약자(UOS)가 숨어있으며, 여느 생명체처럼 성장과 세포 분열을 통해 분화한 복수(plural)의 스튜디오 연합체(studios)를 추구한다. 그리고 땅에서 시작하고 땅으로 회귀하는 풍경의 근원인 대지terra의 총체성과 복합성, 근원성과 수평성을 추구한다. 설계적 연구 집단인 서울시립대학교 조경설계연구실 리서치 스튜디오, 연구적 설계 실무 집단인 디자인 스튜디오, 그리고 아직 테스트 단계지만 만들고 실험하는 필드 스튜디오가 현재의 단위 스튜디오이며, 끈끈한 이웃 회사인 MDL(대표 송민원)과 시대조경이라는 공간 플랫폼을 함께 쓴다. 동네 어귀마다 터줏대감처럼 자리하던 구멍가게가 사라지고 편의점이 들어선 지 오래다. 작지만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구멍가게는 마을의 가장 중요한 공공 공간이자 사교의 장이었고, 가게 주인은 동네의 모든 정보를 꿰고 있는 거간꾼이자 감시자기도 하다. 우리는 작은 오피스다. 몸집이 크지 않지만 큰일을 하기 위해 연합한다. 시(립)대 옆 주택가 골목 귀퉁이라 동네 아주머니들의 잔소리는 익숙해져야 한다. 쪽문을 빠져 나온 학생들이 맘 편히 들락날락할 수 있도록 낮게 자리 잡았다. 연구와 실무의 복합적 탐구와 작업 방식의 결과로 공간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중 대표적인 세 가지 주제를 소개한다. 놀이를 탐색하다 우리가 만드는 수많은 공간의 본질은 놀이에 닿아있다.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놀이의 속성처럼 놀이는 노동과 공부, 목표를 좇는 숨 가쁜 삶으로부터 벗어나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자발적이며 창의적인 재충전과 즐거움의 활동이다. 놀이를 담는 공간인 놀이터 디자인에는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놀이의 핵심은 어린이의 눈으로 간파할 수 있다. 유니세프한국위원회와 일련의 작업, 그리고 연세대학교 어린이생활지도연구원과의 협업은 이 단순한 질문을 무한대의 탐색으로 확장하였다. 갈수록 놀이 기구는 화려하고 다양해지며 각종 인증 기준으로 안전 문제와 위생이 개선되었지만 어린이와 야외 놀이 환경에 대한 사회의 근본적인 철학과 태도가 크게 달라졌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놀이터는 빈 그릇 같아야 한다. 물론 재미있는 그릇이어야 한다. 비어야 채울 수 있다. 어린이가 스스로 상상하고 변형시키며 채우는 그릇, 즉 공간의 수동적 소비자가 아니라 공간을 구성하는 주체로서 성장할 수 있는 놀이터를 디자인한다는 것은 매우 추상적이며 이론적인 목표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에서 놀이터를 디자인하는 일은 놀이의 인프라, 혹은 놀이의 플랫폼을 만드는 일이라고 볼 수 있다. 어린이들은 누구나 자기만의 소우주를 가지고 태어난다. 어린 시절 바깥에서 놀았던 경험은 자연에 대한 원천의 관계를 형성하고 나아가 지구와 세계에 대한 근원적 태도를 만드는 중요한 바탕이 된다. 그래서 놀이터를 만드는 일은 미래의 과거를 만드는 일, 그리고 어른의 바탕을 만드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초저출생 사회에서 수가 줄어든 아동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은 국가 경쟁력을 위한 중요 사안이며 놀이는 아동의 발달과 행복의 핵심 요소다. 어린이놀이터는 공평한 생애 첫출발을 위한 그들만의 공공 공간이기도 하다. 우리가 개별 놀이터 디자인에 진심인 동시에 누구나 동등하게 놀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놀이 정책에도 관심을 가지는 이유다. 주거를 탐구하다 집은 그곳에 사는 사람을 비추는 거울이다. 우리는 집이라는 가장 원초적 공간을 개인 주택정원과 공동주택 외부 공간이라는 두 가지 틀 속에서 탐구해왔다. 주택정원은 주인의 자연관을 재구성하는 작업이니 그들의 인생을 고스란히 들여다보게 된다. 우리가 설계한 첫 번째 집은 자연이 가지는 생명력과 파괴력을 절제된 방식으로 구현하길 바랐다. 두 번째 집은 어린 시절 엄마가 가꾸던 꽃밭을 닮고 싶어 했다. 세 번째 집은 유년기에 누워서 바라보던 비행기가 상징하는 여행을 다룬다. 네 번째 집은 풍경을 큐레이팅하는 컬렉터의 시선으로 현재 진행형이다. 주택정원은 한 사람이 자연을 경험하고 사유해온 삶의 여정을 공간과 식물로 각색하고 그를 위한 헤테로토피아를 만드는 일이다. 아파트는 더 어렵다. 공간을 공유하지만 그들의 욕구는 균질하지 않다. 옆 단지보다 더 나은, 적어도 뒤지지 않아야 한다는 입주민들의 집에 대한 욕망은 아파트 조경을 공식처럼 만들었다. ‘해마다 리뉴얼되는 상품’이 된 공동주택의 조경 트렌드 속에, 잊거나 잃어가는 자연 본연의 모습이 아파트에 구현하는 게 과연 불가능한지 반문한다. 몇 차례 아파트 조경 디자인 가이드라인과 컨설팅 연구를 수행하며 한국 아파트 조경의 근본적인 문제와 새로운 지향점을 고민해왔다. 한국의 대표 주거 유형인 아파트가 변하면 주변의 풍경이 바뀔 수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 만들어진 삼성 래미안 갤러리에 자연이 가진 근원성(origin)과 래미안 조경의 고유성(origin)을 담는 ‘오리지널 네이처(The Original Nature)’를 제안했다. 자연 그대로의 자연, 삶이 돋보이는 조경을 구현하려는 네이처 갤러리에 미세 지형과 물의 흐름이 만들어내는 미기후와 환경적 요인을 분석하여 군락 식재 모델과 건강한 생장을 위한 식재 밀도를 제안했다. 관망하는 외관이 아닌 작동하는 외관(performative appearance)은 우리가 지향하는 원칙 중 하나다. 원 서식처의 군락 구조와 수종 간의 관계를 파악하기 위해 숲과 계곡을 찾았고 경관적·기능적으로 부족한 부분은 자생종과 원예종을 섞어 생육 환경에 따라 연출하였다. 도면 작업으로 경관과 서식처의 구역을 정하고 건물과 나무에 의한 음영, 빗물과 식재 기반에 따른 흙의 습기까지, 예상되는 땅의 환경을 고려해 후보 종을 선택하고 자세한 연출은 현장에서 진행했다. MDL과 함께 진행한 네이처 갤러리는 이후 스튜디오테라 초창기 멤버이자 제주도에서 식물 전문가로 거듭난 연수당의 신준호 대표가 합류해 발주처, 시공사와 한 팀으로 완성했다. 예술을 탐하다 우리는 조경 작업에 내재한 가치와 비전을 대중적인 언어와 예술적 표현으로 전달하려는 설치 작업을 병행해왔다. 이러한 설치 작업의 가장 큰 장점은 클라이언트의 요구로 재단되지 않은 작가의 개념을 온전히 실현할 수 있는, 그야말로 독립적이며 실험적인 결과물이라는 점이다. 그동안 십여 차례에 걸쳐 미술관의 안과 밖에서 설치물을 만들거나 전시회를 기획하여 개최했다.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을 만나 생각을 나누고 바깥에서는 잘 쓰지 않은 재료와 공법을 공부한다. 이 과정을 통해 조경의 예술적 측면, 즉 자연이 가지는 시학과 감동을 예술이라는 매체를 통해 표현할 수 있는 나름의 방식을 탐구해 왔다. 팬데믹과 기후위기를 온몸으로 겪고 있는 지금, 다양한 정책적, 전문가적 해결 방안이 모색되고 있는데, 이런 해결책들은 행정가, 정치인, 기업인, 전문가들의 영역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우리는 자연을 대하는 대중의 태도가 바뀌어야 비로소 이러한 정책들이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중 하나가 일상에서 자연을 더 잘 이해하고 자연에서 감동을 받고, 그래서 나와 자연을 이어주는 계기들을 계속 만들어가는 일일 것이다. 여기에 조경이라는 예술이 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이 있다. 자연이 가지는 본연의 예술성을 드러내는 일 혹은 자연을 예술적으로 체험하는 일이 궁극적으로는 인류가 자연을 대하는 태도를 서서히 변화시키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조경과 예술은 지구를 살리는 실천으로 만날 수 있고, 그 실천에 우리는 동참하고 있다. 우리의 낙선 다이어리 생각의 원석들 설계안은 자식 같아서 못나도 가장 예뻐 보이는 법이다. 참 많은 설계공모에서 떨어졌다. 당선됐지만 폐기된 설계안도 꽤 된다. 낙선은 우울함과 좌절감을 주지만 설계공모를 준비하면서 벼리는 디자인적 고민의 날은 무뎌질 뻔한 감각과 생각을 자극하는 중요한 계기를 만든다. 떨어졌을 뿐 실패가 아니라고 스스로를 달래기도 하지만, 꽤 두꺼워진 낙선 다이어리 속의 생각과 스케치들은 현실에 희석되지 않아 오히려 더 또렷한 힘을 가진다. 스케치와 파일로만 남아 있는 낙선작을 가끔 부여잡고 성찰하는 이유는 뒤끝이 아닌 그 안에 매장된 생각의 원석들을 언젠가 다시 채굴할 날이 올 거라는 소소한 바람 때문일 것이다. 광주공원 심사위원과 시민들의 투표로 당선안을 선정한 소위 ‘나는 가수다’식 지명 설계공모에서 당선된 광주공원(2011)은 예산과 행정의 이유로 건축물만 지어졌지만, 우리는 시민회관이라는 건축적 자산이 공원으로 확장되고 5·18 민주화운동의 역사적 유산과 시민의 힘이 공원의 정체성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신했다. 춘천 시민공원 춘천 시민공원(구 캠프 페이지) 설계공모(2020) 때는 이미 사라진 미군기지의 흔적을 시민들의 공간 점유와 전유를 통한 자발적 해체라는 관점에서 접근했다. ‘공원문화의 최전선, 파키비움 춘천’을 제안한 ‘기록 장치로서의 공원(Parkiveum)’은 살아있는 유산 만들기로서 우리가 공원을 바라보는 중요한 개념이기도 하다. 배곧신도시 배곧신도시 공원 설계공모(2012)는 기수역이라는 역동적 생태계와 도시의 질서가 공존할 수 있는 대안적 방식을 고민한 기회였다. 옛 염전의 기하학적 질서는 새로운 생태계가 태어나는 모눈종이 역할을 하며 도시와 바다의 경계(Urban Ecotone)에서 재구성된다. 만리동공원 공공미술 서울로 7017 초입 만리동 공원의 공공미술 작품 지명 설계공모(2016)에서는 전쟁 후 서울역을 매일 바라보며 가족을 기다리던 피난민들의 동네라는 만리동의 의미와 현대 도시의 새로운 아이코닉 장소 만들기에 집중했다. 약속을 의미하는 반지 모양의 구조물을 통해서 공공 미술의 기능을 하는 도시 정원을 제안했다. 테라의 어제와 오늘 테라 동창회의 월간테라 어떤 방식이든, 얼마만큼 머물렀든 스튜디오테라를 거쳐 간 많은 사람이 하나씩 쌓아 올린 돌담이 지금의 우리를 정의한다. 10년을 넘기는 어느 해 테라 동창들(Alumni terra)은 기념행사를 하자는 관성적 제안을 꺼내 들었다. 숫자가 주는 이상한 압박이 가끔은 어떤 계기를 만들기도 하지만, 우리는 형식적이며 물리적인 행사보다 10년 동안 스튜디오테라를 거쳐 간 여러 사람의 현재를 공유하기로 결정했다. 각자 지금 활동하는 곳에서 그들만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꺼내놓기로 말이다. 그것이 2021년 4월 이후 새 글이 올라오지 않고 있는 월간테라(Monthly terra)다. 그다음 연재를 맡은 친구는 창업과 사업 확장에 분주한 날들을 보내고 있다. 청년들이 활동하느라 바빠서 글쓰기에 소홀하다면 오히려 잘된 일 아닌가 하는 마음으로 언젠가 그가 소수의 독자를 위해 연재를 재개해주길 기다린다. 지구에 최소한의 흔적 남기기 사는 동안 자연인으로 또 디자이너로서 우리는 최소한의 혹은 절제된 흔적을 남기기로 한다. 여기에는 과도한 조형적 어휘와 디지털 흔적도 포함된다. 요즘 같은 시대에 다양한 온라인 매체 소통에 소홀하다는 꾸짖음에 대한 궁색한 변명이기도 하지만, 수많은 말과 자기 매니페스토가 초과 용량으로 밀려드는 정보 소화 불량 시대에, 말을 아낀 틈새에서 자라는 생각의 새싹들을 응시하는 일이 조금은 구닥다리인 우리에게 더 편안한 것 같다. 디자인은 자연과의 어떤 조우를 통해 자연의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우리의 삶을 담는 그릇이어야하고, 디자인의 이름을 통해 행해지는 장치들이 공간의 본질을 뛰어넘는 그 자체의 조형으로 남지 않도록 자기 검열을 자주 한다. 우리를 몇 가지의 생각을 공유하는 느슨한 집단으로 소개했지만 사실 그게 정확히 무엇이며 몇 개의 생각인지는 아직 잘 모른다. 아마도 함께 실천하며 생각을 나누는 가운데 어느덧 수렴되는 수평선 같이 무언가가 나타날 것이라는 기대에 가까울 것이다. 동네의 문지기이자 자연과 사람의 거간꾼, 작은 오피스 스튜디오테라는 오래된 것, 느린 것, 낮은 것, 수평적인 것, 작은 것 그리고 사라지는 것들을 존중하며 디자인한다. 이 다짐이 아직 규정되지 않은 그 몇 가지의 생각 중 하나임은 틀림없다. 스튜디오테라는 조경에 대한 몇 가지의 생각을 공유하는 느슨한 네트워크다. 조경을 통해 건강하고 아름다운 세계를 만들 수 있고, 좋은 생각과 상상력이 좋은 디자인을 만든다고 믿는다. 설계 실무 중심의 디자인 스튜디오(design studio), 연구 중심의 리서치 스튜디오(research studio), 만들고 실험하는 필드 스튜디오(field studio)가 독립적으로 혹은 연대하여 작업한다. 현재 디자인 스튜디오의 수장인 안형주는 송가림, 박근우, 육아 중인 최진호와 함께 일하며, 리서치 스튜디오는 윤정원, 손영호, 전효정, 김선주, 정영재, 임용재, 이수빈, 김문기가 4학기 제때 졸업을 목표로 공부하며 신입생들을 기다린다. 이 틈새에 김아연이 활동한다. 현재 원주의 미술관, 논산의 예술 놀이터, 네 번째 주택정원, 장항의 폐선 철도 공원을 설계 중이고, 양양의 어린이집과 제주 중문대포해안 주상절리대가 공사 중이다.
  • [모던스케이프] 모던걸과 모던보이의 옥상정원
    옥상정원은 도시의 부족한 녹지 공간을 확대하는 장점도 지니지만 에너지 활용과 절감 측면에서도 효과가 있어 패시브 하우스에서 종종 언급되는 아이템이다. 그런데 이런 유용성은 최근 부각된 것이고, 원래는 근대 건축과 근대적 소비 문화에 기반해 탄생한 공간이다. 옥상정원은 뾰족한 경사 지붕을 가진 옛 건축물에는 설치하기 힘들었지만, 철근 콘크리트 기둥에 의지해 세운 평면 슬래브 건축물은 옥상정원을 두기에 안성맞춤의 장소였다. 모더니즘 건축의 거장 르 코르뷔지에(1887~1965)는 ‘근대 건축의 5원칙’에서 철근 콘크리트 건물 상부에 정원을 둘 것을 권장했다. 르 코르뷔지에에게 있어 녹색의 옥상정원은 건물로 상실된 자연의 대체재이자 건물에서 자연으로 나아가는 연속적 경험의 중간자다. 관찰자의 이동에 따라 펼쳐지는 건축적 산책의 종착지는 옥상정원인데, 관찰자는 벽체와 천장, 건축적 오브제를 거쳐 마침내 도달하게 되는 옥상정원에서 열린 하늘을 만나고 자연 경관을 조망하게 된다. 건축가들과 이론가들은 르 코르뷔지에의 옥상정원을 두고 자연과 건축 관계의 실례에 관한 다양한 해석을 내놓았지만, 이러한 담론과 무관하게 옥상정원은 근대 건축과 함께 점차 도시민에게 익숙한 공간이 되었다. 한국에서는 옥상정원이 주로 백화점이나 호텔에 처음 설치됐는데, 사람들은 도시 한복판 건물 최고층 높이에서 일상 공간을 내려다보면서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생소한 개방감과 낯선 시선을 경험했다. 모더니스트 시인 이상(1910~1937)은 미쓰코시백화점(三越百和店) 경성점 옥상정원에서 망망대해를 바라보는 마음으로 도시를 조망했고, 김기림(1908~?)은 그곳에서 바라보는 도시를 금붕어가 흐느적거리는 바닷속으로 표현했다. 세련된 장식과 시설, 최고급 서비스를 향유하는 서양식 사교 활동이 가능했기에, 자본과 권력을 가진 상류 계층은 물론 진보적 성향의 모던걸과 모던보이는 옥상정원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환경과조경417호(2023년 1월호)수록본 일부 참고문헌 김영민, “르 코르뷔지에의 자연관에 대한 비판의 전개 양상”, 『대한건축학회논문집』 37(6), 2021, pp.117~126. 박진아, “르 꼬르뷔지에 유토피아적 자연관의 절대적 이데올로기화 과정 연구”, 『건축역사연구』 13(2), 2004, pp.7~19. 신세계백화점 자료 제공, “미쓰코시 백화점 사진 자료”, 『이상리뷰』 3, 2004, pp.169~176. 이길훈, “미츠코시백화점의 설립과 경성 진출”, 『대한건축학회논문집』 32(1), 2016, pp.81~89. 전상인·김미영, 『옥상의 공간사회학』, 건축도시공간연구소, 2012. 朝鮮建築会, 『朝鮮と建築』 11(9), 1930, pp.13~39. “옥상정원을 개조하여 호텔 개방을 계획하고 동시에 아래층 정원에도 손을 대 여름용 납량원을 만들다”, 「朝鮮時報」 1921년 6월 9일. “屋上庭園開放”, 「경성일보」 1924년 7월 12일. 서울역사박물관 서울역사아카이브 사진 출처 그림 1. 『京城名所』 그림 2. 신세계백화점 자료 제공, “미스코시백화점 사진 자료”, 『이상리뷰』 3, 2004, p.174 박희성은 대구가톨릭대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한중 문인정원과 자연미의 관계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에서 건축과 도시, 역사 연구자들과 학제간 연구를 수행하면서 근현대 조경으로 연구의 범위를 확장했다. 대표 저서로 『원림, 경계없는 자연』이 있으며, 최근에는 도시 공원과 근대 정원 아카이빙, 세계유산 제도와 운영에 관한 일을 하고 있다.
  • 오후 4시에 머물러 있는 집 프로젝트 스페이스 ㅁ(미음), ‘오후 4시’ 잉고 바움가르텐 개인전
    오후 2시는 점심을 먹은 뒤 졸린 시간이고, 3시는 일하는 시간, 5시는 퇴근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그렇다면 오후 4시는 어떤가. 잉고 바움가르텐(Ingo Baumgarten)은 4시를 어떤 조짐이라고 말한다. 무엇이 일어나지도 않았고, 무엇이 일어난 뒤도 아니다. 바움가르텐은 우리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선 건축물들이 오후 4시에 머물러 있음을 표현한다. ‘오후 4시’ 전에서 다룬 건축물들은 한국이란 공간에 있는 집이다. 사물화된 공간에 사는 존재들은 그 사물성에 지배 받아 사물화된다. 모든 공간은 시간의 영향 아래 있다. 그의 시각을 빌리자면 인간은 어디에 살고 있든 오후 4시의 공간 속을 표류하고 있다. 공간을 주제로 그리는 독일인 작가 바움가르텐은 1964년 서독에서 태어나 독일 카를스루에(Karlsruhe) 국립미술대학교에서 미술 학위를 받고 도쿄 예술대학원에서 미술 석사를 받았다. 그 후 프랑스 파리, 영국 노리치(Norwich)에서 미술을 공부했다. 바움가르텐은 가까운 주변 환경으로부터 모티브를 얻는데, 일상생활에서 가장 가까운 것이 건축물이라 생각한다. 건축물들은 문화의 현상, 징후가 되기 때문이다. 그는 건물을 단순한 공간이 아닌 인간의 일상, 도시의 문화, 사회 이념이 투영된 사회적 구조물로 여긴다. 이러한 점에서 바움가르텐이 그려낸 건축물은 인간의 생활과 밀접한 욕망과 소망, 생활과 환상을 어우르는 표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도시의 풍경을 관찰하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사람들의 욕망의 변화를 건축물의 외곽으로 드러냈다. 작업 순서는 다음과 같다. 우선 집과 빌딩, 학교, 지하철역, 교량 등 다양한 건축물 사이에서 자신의 심미안을 자극하는 것들을 선택한다. 대칭과 비대칭의 구조, 다양한 건축 자재와 색감이 만들어내는 조화와 리듬 등 조형적 요소들을 일차적으로 주목한다. 동시에 건축 스타일이 나오게 된 문화적, 사회적 배경을 이해하며 심미적 표피 속에 숨겨진 의미와 가치들을 발굴하고 총체화해 작품으로 표현한다. *환경과조경417호(2023년 1월호)수록본 일부
  • 어제로 미래를 묻다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어제의 미래’ 전
    비바 마젠타(Viva Magenta)는 팬톤이 정한 올해의 색이다. 차가움과 따뜻함이 공존하는 이 색은 용기와 패기를 상징하기도 한다. 이 색과 어울리는 사진작가를 꼽는다면, 바로 마리아 스바르보바(Maria Svarbova)일 것이다. 마리아는 무표정한 인물과 정교한 구도, 따뜻한 색감이 절묘하게 조화된 작품으로 주목받고 있는 젊은 사진작가다. 2010년부터 활동한 그는 『포브스』가 선정한 30세 이하 영향력 있는 30인 중 한 명이며, 2018년 핫셀블라드 마스터 아트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다. 전통적인 초상화에서 벗어난 실험적인 사진 스타일은 국제적 찬사를 받으며 특히 『보그』, 『포브스』, 『가디언』 등 전 세계 출판물의 특집 기사로 소개됐다. 국내에서도 SNS 등에서 주목받는 작가로 떠올랐다. 유년시절부터 예술가를 꿈꾸며 목조 조각 복원 등을 했지만, 창작자로서 한계에 봉착하며 좌절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동생으로부터 받은 DSLR 카메라로 사진을 찍기 시작하며 사진의 매력에 빠지게 된다. 현재는 전 세계로부터 러브콜을 받는 작가가 됐다. 정규 사진 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오히려 이러한 점은 틀에 얽매이지 않는 독특한 시각적 표현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차갑지만 정교한 구도, 따뜻한 색감 그리고 신구(新舊)의 적절한 결합이다. 제대로 겪어본 적 없던 공산주의 시절 슬로바키아의 향수와 감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작품으로 탄생시켰다. 국내에서도 그의 작품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 전시 ‘어제의 미래’는 그의 실험적인 작품 스타일을 조명한다. 174점의 주요 작품을 노스탤지어(Nostalgia), 퓨트로 레트로(Futuro Retro), 스위밍 풀(The Swimming Pool), 커플, 로스트 인 더 밸리Lost in the vally 다섯 개 섹션으로 나누어 한눈에 감상할 수 있게 구성했다. 다섯 개 섹션은 작가의 예술적 경험과 개인적 경험을 다룬다. 대표작인 스위밍 풀 시리즈 외에도 기업과 협업한 작품 및 최신 작품까지 선보이며 현재와 과거를 총망라한다. *환경과조경417호(2023년 1월호)수록본 일부
  • [기웃거리는 편집자] 알아두면 쓸데 있는 사전 지식
    밸런스 게임을 해보자. 지금 우울하다면, ‘집에서 쉬며 우울함에서 벗어나기’ vs ‘밖에 나가 사람들과 함께(혼자 나가도 된다) 우울함 탈피하기.’ 나는 무조건 후자다. 우울할 때 집에만 있으면 끝없이 기분이 가라앉기 때문에 누군가와 함께 있거나 바깥 공기를 마시며 침울한 감정에서 빠져 나오려 한다. 우울한 날뿐 아니라 쉬는 날도 종종 밖에서 시간을 보내곤 한다. 나가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다 보니 점차 이동 반경이 국내뿐 아니라 해외로까지 뻗어나갔다. 입시의 굴레에서 벗어나 갓 스무 살 되던 해에 갔던 대만은 여행의 매력을 알게 해주었다. 패키지 상품처럼 여행사가 짜놓은 경로를 쫓아다니는 여행이 아닌 순수 직접 모든 걸 예약하며 알아보고 간 여행이라서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인천공항의 새벽 공기, 긴장한 눈빛으로 대만 공항을 나서던 기분, 혹여 예약이 잘못되었을까 조마조마하며 체크인하던 호텔 로비, 예류Yeliou 지질공원행 버스에서 본 풍경. 사소한 것도 다 기억난다. 처음 주도한 여행이 대성공을 거둬 그 뒤로도 일정을 직접 짜는 자유 여행을 선호하게 됐다. 여행을 대하는 마음가짐을 변하게 한 경우도 있었다. 몇 날 며칠 밤새우며 과제를 반복하던 대학 생활에 잠시나마 쉼을 주고자 휴학을 했을 때다. 아르바이트를 해 모은 돈으로 친구들과 동유럽 여행을 갔다. 한 나라를 한 명씩 맡아 그 나라의 가이드가 되어 숙소부터 일정까지 알아서 진행하기로 했다. 나는 오스트리아 담당이었는데, 대표적인 관광지, 인스타그램 감성을 자극할 포토 스폿, 꼭 먹어봐야 하는 맛집 위주로 계획을 짰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가봐야 할 곳을 조사하던 중, 유명한 뮤지컬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1965)의 배경 장소를 알게 됐다. 영화는 수도원에서 생활하던 마리아가 트랩 소령의 자식들의 가 정교사가 되면서 전개된다. 경직된 가정 환경으로 인해 무뚝뚝하고 표정이 없던 아이들에게 마리아는 음악을 가르치며 생기를 선물해준다. 학창 시절, 음악 시간에 자주 보았던 터라 ‘도레미 송’이 곧장 떠올랐다. 도레미 송은 마리아와 아이들을 끈끈하게 엮어주는 도구 역할을 하는 동시에 영화를 대표하는 곡이다. 정원 가운데 있는 분수대 뒤에서 아이들이 한 명씩 나오며 퍼걸러 주위를 뛰어다니고, 입구에 위치한 계단 위로 마리아와 아이들이 함께 올라와 정원을 등지고 도레미 송을 부르는 장면. 바로 그 장소가 미라벨 궁전 앞에 펼쳐진 미라벨 정원(Mirabell Garten)이다. 미라벨 정원과 더불어 마리아와 트랩이 함께 춤을 추며 사랑을 키워 나간 정자가 있는 헬브룬 궁(Schloss Hellbrunn)도 빼놓지 않고 들렀다. 잘츠부르크 다음 도시는 빈이었는데, 이 도시에서도 미라벨 정원, 헬브룬 궁 같은 곳을 발견했다. ‘비포 선라이즈’(1996)는 빈을 낭만적인 도시로 그린 대표적 영화다. 기차 안에서 우연히 만난 셀린과 제시, 목적지는 달랐지만 서로를 향한 이끌림에 함께 빈에 내려 하루를 보내며 사랑에 빠진다. 셀린이 제시에 대한 호감을 친구에게 전화하듯 고백하던 카페 슈페를(Sperl), 함께 지낸 하루가 꿈만 같다고 이야기하던 테라스가 있는 알베르티나(Albertina) 박물관도 필수 방문 코스에 넣었다. 이곳들에서 영화 장면의 구도처럼 사진을 찍고 싶었기에 다른 그림 찾기 하듯 꼼꼼히 대조하며 공간을 둘러봤다. 그렇게 찍은 사진들이 인스타그램용으로 찍은 사진들보다 왠지 더 정감이 간다. 이제는 반대로 영화 제목을 보면 여행지에서의 일들이 떠오른다. 어딜 가게 되면 먼저 그곳의 숨은 정보를 찾아본다. 여행 도중에 새로운 이야기를 알게 되는 것도 매력이지만, 사전에 지식을 쌓고 가는 여행도 꽤나 흥미롭다.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는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가지는 것”이 진정한 여행이라 말했다. 긴 인생을 산건 아니지만 짧고 굵직한 여행 경력을 가진 내 방식대로 고쳐 써본다. 진정한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사전에 알아두면 쓸데 있는 지식을 쌓고 떠나는 것.
  • [편집자가 만난 문장들] 모든 폐허는 저마다 찬란한 번성과 비참한 쇠락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축소된 제국이다
    공간은 짓는 데 시간이 걸리기에 계획안을 만든 때와의 시차를 갖게 된다.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어 유행처럼 번졌던 공간 유형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비슷한 조건의 대상지를 바탕으로 한 엇비슷한 그림들이 쏟아지고 나면, 기억 속 조감도와 그에 대한 기대감이 희미해진 후에야 실제 공간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렇다보니 정작 완성된 공간에는 설계안을 향해 쏟아지던 관심만큼의 열기가 들끓지 않기도 한다. 그 대표적 공간 중 하나가 고가다. 빌딩과 도로로 포화된 도심에서 기능을 잃은 고가의 잠재력은 뉴욕 하이라인(Highline)을 통해 이미 증명됐다. 빌딩 숲을 색다른 높이에서 거닐고, 킬로미터퍼아워(km/h)를 위한 도로를 느린 걸음으로 산책하는 일은 새로운 경험을 선사했다. 게다가 낡았지만 여전히 단단한, 한때 도시의 번영을 도왔던 고가는 찬란한 페허로 불리기에도 충분하다. “모든 폐허는 저마다 찬란한 번성과 비참한 쇠락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축소된 제국이다.”1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고가의 균열은 사람들의 낭만적인 멜랑 콜리를 충족시킨다. 다리 위는 새로운 나 들이 장소로 적격이지만, 그 아래 공간의 여건은 다르다. 그늘은 어둠 외에도 많은 것을 불러들인다. 축축한 습기, 습기를 좋아하는 곰팡이와 벌레들. 병균과 해충을 피해 발 길이 뜸해진 곳에는 숨기고 싶은 행위를 벌이는 사람이 모여들기 마련이다. 그렇게 고가 하부는 비어 있지만 땅을 가르는 무형의 경계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픈스페이스를 향한 갈증은 다리 아래의 땅도 바꾸기 시작했다. 토론토의 언더패스 파크(Underpass Park), 암스테르담의 A8ernA를 비롯해 버려졌던 다리 밑 공간이 공원, 커뮤니티 공간, 예술가들의 작업 및 전시 장소로 재탄생했다. 한동안 뜸했던 고가 하부 프로젝트 소식이 2022년부터 다시 들려오기 시작했다. 시작은 도쿄의 미야시타 공원(Miyashita Park)(『환경과조경』 2022년 2월호, 이하 발행연월만 기재), 철도 인프라를 주차장, 상업 시설, 호텔과 엮어 시대에 부응하는 다층의 공원으로 만들었다. 옥상이 주요 공간이지만 지상과 상부를 연결하는 거대한 계단을 만들어 하부의 답답함을 덜어내는 동시에 야외 스탠드로 활용하는 영민함을 보였다. 스톡홀름의 셰르토르프스 센트룸(Kärrtorps Centrum)(2022년 9월호)은 지역의 오래된 광장이다. 광장 가장자리를 지나는 지하철 고가 밑에 날씨와 상관없이 즐길 수 있는 체육 시설, 그네, 자전거 보관소를 설치함으로써 활기찬 입구의 역할을 부여했다. 같은 호의 상하이 차오양 백주년공원(Caoyang Centennial Park) 대상지는 폭 10~15m, 길이 1km의 화물 철도다. 기존 철도 인프라에 지하층과 2층을 더하는 복층화 전략으로 부족한 부지를 확보했다. 날렵한 형태의 고가는 지상에 넉넉한 양의 빛을 내린다. 덕분에 식물이 무리 없이 자라고, 농구장의 아이들은 콘크리트 천장 대신 하늘을 보며 운동을 한다. 빛이 들지 않는 지하는 예술가의 전시 공간으로 활용했다. 마이애미의 언더라인(Underline)과 뭄바이의 원 그린 마일(One Green Mile)(2023년 1월호)은 조건은 조금 다르지만 일종의 ‘방’을 만들어 다양한 프로그램을 담는, 같은 전략을 사용한다. 이때 고가의 형태 자체가 둔중한 원 그린 마일은 녹색의 가벽을 세우고 내부에 언덕 놀이터, 테이블과 의자를 두어 아늑한 공간을 만든다. 말 그대로 투과성을 갖는 방을 만든 셈이다. 반면 언더라인의 방은 행위를 담는 개념적 그릇이다. 위요된 공간이라기보다 탁 트인 야외라는 느낌이 훨씬 강하다. 서울시도 2017년 고가 하부를 도심 속 쉼터로 바꾸는 시도를 했다. ‘고가하부공간 활용사업 종합계획’을 수립하고 6개의 사업 대상지(옥수, 이문, 한남, 종암사거리, 금천, 노원역)를 선정했다. (비)일상의 수목원(한남1고가), 지붕마당(이문)을 제외한 다른 고가에는 모두 작은 건축물 형태의 실내 공간이 들어섰다. 이미 콘크리트 구조물로 한차례 감싸인 공간을 또 한 번 박스에 가둔 모양이다. 고가 하부는 열린 듯 닫혀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지 않나, 미세먼지 같은 이슈를 피할 수 없었나, 들어서야만 내부를 볼 수 있는 실내 공간은 찬란한 폐허와 다른 속도로 낡아가지 않을까. 아무래도 직접 가봐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테니, 날이 풀리면 잊지 않고 이곳들을 찾아갈 요량이다. 비행기 티켓 값은 버거워도 지하철 타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으니까. 각주 1.리처드 하퍼, 『세상이 버린 위대한 폐허 60』, 예담아카이브, 2018
  • [PRODUCT] 무장애 도시 환경을 위한 퍼걸러와 놀이터 접근성과 편의성을 높인 BF 디자인
    무장애 도시 환경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이를 뒷받침하는 BF 디자인의 휴게 시설과 놀이 시설이 필요하다. 자인의 퍼걸러는 장애인의 이동 동선을 고려한 유려한 곡선의 벤치 디자인과 깨끗한 화이트 톤이 특징이다. 평상을 곡선 형태로 디자인해 휠체어 이용자의 접근성을 높이고, 편의성을 제공하기 위해서 간이 테이블을 설치했다. 필요에 따라서 USB 충전 등이 가능한 멀티 콘센트도 설치가 가능하다. 타원형 입체 채광창이 있는 지붕은 공간에 개방감을 불어넣는다. 가장자리의 바 테이블에서는 다양한 이용자들이 주변 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 키젯의 아키블럭은 무장애 통합 놀이 시설로 다양한 이용자들이 사회적 평등과 균형을 느끼고 배울 수 있는 공간이다. 아이들의 감성적 발달과 시각적 흥미를 돋우는 다양한 색채와 패턴을 디자인에 활용했다. 휠체어, 유모차 등 다양한 유형의 이용자도 불편하지 않게 이용할 수 있다. 놀이터에 접근이 쉽도록 램프 구조의 데크로 구성했다. 색약 등 사회적 약자의 이용에 초점을 맞춰 핸드 레일을 노란색으로 칠했고, 중앙 메인 타워 아래에는 휠체어 사용자를 위해 회전 공간을 만들어 놀이 시설 내부에서 불편함 없이 이동할 수 있도록 했다. TEL. 02-6289-5100 WEB. dezain.co.kr
  • 인터뷰: 공간과 개개인의 삶을 빚는 조경
    디자인하는 엔지니어 -수상 축하드립니다. 주변 반응은 어떤가요. “‘네가 젊냐?’라는 말을 제일 많이 들었어요. 나이가 딱 만 45세거든요.젊은 조경가 지원 조건 중 하나가 만 45세 이하의 조경가이니, 경계에서 받은 셈이죠. 가까운 친구들이 많이 축하해줬고, 소식이 뜸했던 사람들의 연락을 받기도 했어요. 『환경과조경』 표지 보고 연락하더라고요.” -사진을 열심히 찍은 보람이 있네요. 수상 소식을 듣고 새로운 클라이언트가 찾아오진 않았나요. “아쉽게도 아직은 없습니다.” -남기준 편집장이 수상 소식을 전했을 때, 엄청 놀랐다고 들었어요. “누가 절 추천했다는 걸 몰랐던 터라 놀랐어요. 이전에 지원했다가 떨어지기도 했고, 매년 수상자 발표 소식을 보면서 수상 자격에 대한 생각이 약간 모호해졌었거든요. 전 전통적인 조경 설계를 주로 하는 사람도 아니고, 시공과 정원 일을 많이 하는 편이라 젊은 조경가와는 결이 안 맞을 수도 있겠다고 짐작했어요. 그래서 당황스러우면서도 쑥스러웠죠.” -인터뷰를 준비하며 2020년에 제출한 지원서를 다시 읽어봤어요. 자기소개서에 인상적인 문구가 있더군요. ‘디자인하는 엔지니어’. 스스로를표현한 문구인데, 디자인하는 엔지니어는 일반적인 디자이너, 일반적인엔지니어와 무엇이 다른가요. “다르다기보다 순차적인 단계라고 봐요. 설계 초반에 콘셉트를 잡고 초벌 그림을 그리고 형상을 만드는 게 디자이너라면, 이를 구체화하고 현실로 구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이는 게 엔지니어죠. 조경 설계의 기본 구상, 기본계획 단계에서 디자이너적 역량이 중요한 만큼 시공을 위한 실시설계 단계를 뒷받침하는 엔지니어적 역량도 중요해요. 그런데 현재는 디자이너와 엔지니어 사이에 괴리감이 좀 있어요. 설계 후 시공을 맡기면 이건 그림일 뿐이고 시공할 수 없다는 말 들어본 적 있을 거에요. 그런데 또 시공에만 초점을 맞추다보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반영하기어려워지기도 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자인 단계에서 실시설계와 실제 건설 공사를 염두에 두고 설계를 풀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현실적으로 구현하기가 용이해지고, 효과적인 창의가 돼죠. 기술에 관심을 갖고, 또 염두에 두고 디자인 작업을 하기를 바랍니다.” -언제부터 조경가를 꿈꿨나요. “사실 조경이 뭔지 잘 모르고 조경학과에 입학했어요. 원래는 건축에관심이 많았고, 수능을 본 후에 건축학과, 선박공학과, 조경학과에 지원했죠. 그중 선박공학과와 조경학과에 합격했고요.” -원래 공학 쪽에 관심이 많았나 보네요. “그렇지는 않아요. 본래 수치를 칼같이 다루는 것보다는 말랑말랑하고시각적인 부분에 집중하는 걸 훨씬 좋아했어요. 아기자기하고 공예적으로 만드는 데도 관심이 있었고요. 공대는 조금 삭막할 것도 같았고, 학교 캠퍼스나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서 조경학과에 입학했습니다.” -그럼 조경을 업으로 삼아야겠다는 확신을 언제 했나요? “운 좋게 학교를 다니며 ‘밝바치’라는 조경 동아리 활동을 했어요. 학교 수업에서 배울 수 없는 것들을 얻었죠. 답사도 즐거웠고 술 마시고 놀러 다니는 재미에 더 즐겁게 활동했어요. 전공에도 더 애정을 갖게 됐고요. 워낙에 철이 없어서 조경을 업으로 삼아야겠다는 큰 그림을 그렸다기보다, 졸업하고 나서 바로 취업을 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어요. 4년 동안 사회생활을 통해 등록금을 환수해야겠다는, 딱 그런 마음으로 취직해서 일했어요. 주어진 대로 일하는 철없는 신입사원이었죠. 그러던 중 다리를 크게 다쳐서 수술을 받고 3개월 정도 입원해서 꼼짝없이 누워 있어야 하는 일이 생겼어요. 그 시간이 계기가 됐죠.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자연스레 앞으로 뭘 해야 할까 고민하게 됐어요. 할 일이 없어서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어요. 전공 관련 서적뿐만 아니라 교양, 소설, 자기 개발서까지. 시야가 넓어지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앞으로 어떻게 살고, 뭘 해야 할지 인생을 좀 더 구체화하는 시간을 보냈죠.” -엔지니어적 면모를 갖추게 된 건 역시 첫 직장인 종합엔지니어링 회사의 영향이 큰가요? “첫 직장은 엔지니어링 회사가 아니었어요. 조경설계사무소를 일 년 정도 다니다 선진엔지니어링으로 자리를 옮겼죠. 중간에 쉬면서 배낭여행도 다녀왔고요. 처음에 포트폴리오를 제출했는데 연락이 없어서 떨어진 줄 알았어요. 포트폴리오를 되돌려 받기 위해 회사에 방문했다가 인턴부터 시작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고, 인턴 생활을 하다가 정직원이 됐죠.” -일반적으로 조경설계가를 꿈꾸는 학생 대부분이 조경설계사무소에 가기를 원하잖아요. 엔지니어링 회사에 입사하면 처음에 무슨 일을 하는지 궁금해할 것 같아요. “그 직원이 잘하는 걸 시키죠. 어떤 툴을 잘 다룬다면 그 툴을 다루는일을 우선 맡길 테고, 졸업 작품이나 논문에서 다룬 주제와 부합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면 그 팀에서 일을 하게 되기도 하고요. 제 경우에는 신입사원 시절에 워낙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고 할 수 있는 일은 닥치는 대로 했던 것 같아요. 조경설계사무소와 종합엔지니어링 회사의 가장 큰 차이점은 설계사무소가 설계 프로젝트에 집중적으로 초점을 맞춰 업무를 진행한다면, 종합엔지니어링은 설계 구현을 뒷받침하기 위한 부가 업무도 많았던 걸로 기억해요. 그래서 하루 일과가 굉장히 빡빡한 대신에 출퇴근 시간, 야근 시간도 어느 정도 정해져 있는 편이죠. 돌아보니, 제가 설계사무소와 엔지니어링 회사를 다닐 때는 업무 시간 자체가 굉장히 길었네요. 요새는 여건이 좀 나아졌다고 들었어요. 그람디자인만 해도 야근이 거의 없는 편이고요.” -엔지니어링 회사에 다니는 경험이 시공을 염두에 둔 설계를 할 수 있는조경가가 되는 데 좋은 밑거름이 되겠네요. “엔지니어적 역량이 단순히 시공에 국한된 건 아니에요. 물론 최종 목적지는 시공 결과물이겠지만, 시공에 필요한 전반적인 사항, 예산, 공정, 여러 행정 절차까지도 설계 단계에서 고려할 수 있는 설계자가 되는 걸 뜻합니다. 물론 디자이너도 법적인 사항을 사전에 검토하겠지만, 좀 더 구체적인 전략을 세우는 일은 엔지니어가 하니까요. 설계 실현을 위한포괄적인 사항을 염두에 두고 디자인하는 게 효과적인 설계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감각을 깨우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게 뭐가 있을까요. “조경 설계를 할 생각이라면 두루두루 많은 걸 경험하기를 권해요. 우리 회사 직원에게도 늘 하는 이야기예요. 아이디어나 표현력이 중점이 되는 기본 구상이나 설계공모 같은 계획 파트의 업무도 해봐야 하고, 이를 구체화하는 다음 단계인 실시설계 과정도 치열하게 경험해봐야 해요. 예산 때문에 새로운 공법을 고민하는 과정도 좋은 경험이 됩니다. 실제로 시공 현장에서 실시설계 단계에서 도면화한 것들이 다르게 해석되어 더 나은 결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거든요. 이를 두루두루 경험하고 하는 설계와 그렇지 않고 한 설계는 전혀 달라요.” 설계사무소 대표가 되다 -소장님과 처음 연락을 주고받은 계기가 2016년 5월호 특집 ‘설계사무소를 시작한다는 것’이었어요. 2008년이면 소장님이 32살 때죠. 또래에비해 꽤 어린 나이에 창업을 했는데, 두렵지는 않았나요. “당시의 치기 어린 욕심에 벌인 일이기도 했죠. 흔히 그 연차에 갖게 되는 내 디자인을 하고 싶다는 욕망도 강했고, 연봉에 대한 불만도 조금 있었고요. 말 그대로 어린 나이였기 때문에 할 수 있던 도전이었습니다. 하다가 잘 안되면 다시 취직하면 되지 하는 마음이었죠. 만약 지금처럼 40대를 넘긴 나이에 결혼을 해서 자식도 있는 상황이었다면 더욱 치밀하게 준비했을 거예요. 거래처나 수주 대상도 더 꼼꼼히 살폈을 거고요. 당시에는 잘못돼도 금방 회복할 수 있다는 믿음과 모험심이 있었죠.” -사무실을 열면서 이것만큼은 반드시 지킬 거라고 다짐하며 세운 원칙이 있다면요. “이전에 다녔던 회사에서 안 좋다고 느낀 점들이 없는 회사요. 야근이나주말 출근이 없는 회사, 월급이 밀리지 않는 회사.” -원칙이 잘 지켜지고 있나요. “월급은 밀린 적이 없으니 다행입니다. 야근은 거의 안 해요. 어릴 때 철야나 야근을 너무 많이 하니 회의감이 들더라고요. 내가 뭐 때문에 이 일을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죠. 다람쥐 쳇바퀴 돌듯 살면 자존감도 낮아지고 자아가 점점 사라지는 느낌까지 들어요. 전 제가 쉬고 싶을 때 못 쉬는 게 너무 불만이었어요. 적어도 내가 오늘은 쉬어야 한다고 느끼면 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독립 후에 직원들에게 습관적인 야근을 하지 말라고 당부하기도 했고요. 꾸역꾸역 야근한다고 좋은 설계가 나오는 건 아니거든요. 그런데 최근 들어서 야근의 필요성을 느끼기도 해요.” -야근에 대한 생각이 바뀐 이유는 뭔가요. “조금 다른 개념의 야근이에요. 어떤 일의 경우 연속성이 필요하기도 해요. 예를 들면, 창의적인 아이디어 도출을 위해 고민하는 일이요. 완성된 설계안을 도면으로 그린다든지 하는 기술적인 일은 굳이 연속적인 작업이 필요하지 않죠. 하지만 깊이 있는 고민을 하다가 끊기면 어려움이 생겨요. 물론 야근을 강요할 생각은 없어요. 결국 자기 몫이거든요. 굳이 사무실에 앉아서 야근하며 고민할 필요는 없어요. 몸은 사무실을벗어나도 되지만, 생각의 스위치는 꺼놓지 말아야 해요. 퇴근하는 순간 그 스위치를 내려버리면 다시 원점에서 고민을 시작해야 해요. 반면 늘 궁리 중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있으면, 주말에 놀러나가서 주변을 구경하다가도 아이디어를 발견할 수 있으니까요.” -그람디자인의 그람은 무게를 재는 단위를 뜻하나요. “초창기 그람디자인을 창업하며 세 명의 대표가 함께 만든 단어예요. 조경설계사무소 명부 같은 게 만들어지면 초반에 위치할 수 있도록 ㄱ으로 시작하는 이름을 짓는 게 최우선 사항이었어요.” -굉장히 전략적인 이름이었네요. “그렇죠. 그람은 인간이 가늠할 수 있는 무게의 최소 단위이기도 해요.보통 설계에서 다루는 단위가 킬로그램이나 톤인데, 그보다 좀 더 디테일하고 아기자기한 부분까지 다루겠다는 의미를 담았어요. 또 일에 경중을 따지지 않겠다는 생각도 있었고요. 사실 진중한 분위기를 잘 견디지 못해서, 가볍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이름을 짓고 싶었어요.” -설립 초기에는 대표가 셋이었군요. “5년 정도 세 명의 대표가 함께했고, 지금은 저와 경정환 대표가 함께 이끌고 있습니다.” -사무실 규모는 어떻게 변해왔나요. “현재 직원은 절 포함해서 9명입니다. 구성원은 계속해서 변했고, 규모는 전반적으로 커진 편이에요.” -창업 초기에 공모 작업을 많이 했더라고요. 시간적·자금적 여유가 괜찮았나요? “생각보다 많이 하진 않았어요. 다만 공모의 내용을 살펴보고 우리가자체적으로 소화가 가능한지 판단한 후 부담 없이 접근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공모 지침을 보면 제출 분량부터 확인합니다. 신생 회사이니 그람디자인을 알릴 방법을 찾고 싶었고, 공모전 수상이 그 방법 중 하나였죠. 또 공모를 계속 끊임없이 하는 것 자체가 실력 배양에 중요한 역할을 하니까요.” -여러 공모 중에서 ‘한글글자마당 조성 아이디어 현상공모’(2011)가 큰의미를 남긴 것 같습니다. 포트폴리오에서 “디자인 목표는 분명했고 디자인 전략도 명쾌하고 단순했다. 한글이 가진 특징이 고스란히 드러나면 된다. 한글은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배우기 쉬운 글자다.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한글의 구성 원리는 편리성과 실용성을 담고 있다. 한글의 창제 원리와 철학을 알게 되면서 디자인은 쉽고 명쾌해야 하는 디자인의 관점을 줄곧 견지하게 되었다”고 한 게 기억나요. “설계는 사람들에게 단박에 읽혀야 한다고 생각해요. 길고 장황하거나너무 무겁고 진중하면 이해하기 어렵죠. 배경 지식이 없는 사람에게도 쉽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해요. 우리의 클라이언트는 조경 전문가가 아닌 경우가 많을 테니까요. 고차원의 이론과 이념으로 무장한 설계는 그 용어도 모르는 사람에게 매력적이지 않을 뿐더러 설득력도 없는 공간이 될 겁니다.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고 눈길을 끌 수 있는 설계는 직관적이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어야 해요. 그만큼 명쾌해야겠죠. 그래서 콘셉트나 주제를 정리할 때 어려운 용어를 쓰는 걸 경계하는 편이에요. 누구나 읽기 쉽고 어렵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는 설계를 하고 싶어요.” -독립할 때 가장 고민하는 게, 회사 설립 후 무슨 일을 하느냐 일 것 같아요. “제가 운이 좋게도 흐름을 잘 탔어요. 사무소를 열었던 2008년은 4대강 복원 사업이 시작되어 일거리 자체가 많고 설계사무소가 많이 늘어났던 해거든요. 엔지니어링 회사에서 함께 턴키에 참여할 조경설계팀을 찾는 경우도 많았고요. 초반에는 전에 일하던 선진엔지니어링에서 일을 따오기도 했어요. 그람디자인을 열면서 이런 일을 하겠다고 정해놓은 것도 아니었고, 단골 고객도 없었어요. 그래서 설립 초창기에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 와중에 가능성을 찾은 곳이 정원 분야였어요. 앞으로 정원을 설계할 뿐 아니라 디자인 빌드까지 해내는 사무소로 자리 잡아 무언가를 해보자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보통의 조경 설계도 놓치지 않고요. 두 가지 일을 병행하는 과정을 거치며 시간이 흐르다보니 소위 말하는 단골 고객도 생겼어요.” 공공 정원에서 상업성을 꾀하는 법 -주로 하는 일은 정원 설계인가요. “많은 사람이 그람디자인을 정원만 만드는 회사라고 오해 아닌 오해를하더라고요. 회사 업무 전체를 보면, 절반은 조경 설계고 나머지가 정원 관련 프로젝트에요. 특정 시기를 뽑아서 따지면 정원 프로젝트가 압도적으로 많을 때도 있지만, 총 업무량을 따지면 조경 설계와 정원 프로젝트가 균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구성원 역시 설계하는 직원, 정원하는 직원이 분리되어 있지 않아요. 모든 직원이 두 분야의 일을 병행합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개인 주택 정원은 저희 사업 분야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주택 정원은 정원의 주인이 직접 만들고 가꿔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거든요. 유지·관리와 정원 문화와 산업 부흥의 측면을 살피면 그 편이 더 장점이 많고요. 되도록 공공 정원을 많이 만들려고 해요.” -정원 설계를 할 때 조경 설계와 달리 어떤 면을 더 살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특별히 다른 태도를 취하진 않아요. 결국 조경 설계가 정원 설계를 포괄하는 광범위한 개념이니까요. 조금 다른 면이 있다면, 주택 정원의 경우에는 좀 더 사용자에게 특화된 공간이죠. 규모도 그렇고요. 정원을 이용하게 될 개개인에게 초점을 맞추는 게 중요하죠.” -서울숲과 서울어린이대공원에 꾸준히 어린이를 위한 정원을 만들어왔죠. 대상지 조건이 꽤 비슷한 편이잖아요. 어린이정원을 만들 때 스토리텔링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들었는데, 한계에 부딪치진 않나요? 영감은 어디서 주로 얻나요? “우연치 않게 어린이정원을 만들 기회를 얻었는데, 어느덧 어린이정원 7호 설계 준비를 하고 있네요. 사실 지금 한계에 다다랐어요. 그래서 걱정입니다. 전에는 본격적으로 설계에 돌입하기도 전에 아이디어가 막 떠올랐거든요. 마녀의 집을 만들었으니 이제 한국적인 도깨비를 등장시켜 보자, 답사를 가서 본 미니어처 정원이 인상적이었으니 나도 만들어보자, 미니어처 정원을 만들었으니 거인의 시점에서 정원을 바라보자 하는 식으로요. 끊임없이 변화하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내심 똑같은 주제의 정원을 다른 버전으로 만드는 것도 의미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해요. 스토리텔링에 필요한 화두는 평소에 미리 찾아놓는 편이에요. 발굴해놓은 화두를 구체화해서 설계로 풀어내고요. 영감을 채우기 위해서 책, 영화, 유튜브 같은 미디어를 구분 없이 봐요. 특정 분야에 관심을 두고 있다기보다 평소 이곳저곳에 시선을 두면서 아이디어를 얻는 편이죠. 그렇게 얻은 아이디어를 잘 모아놓고요. 모아둔 아이디어를 상황에 맞춰 꺼내 쓰는 방식이죠.” -아이디어 정리에는 어떤 툴을 쓰시나요? “아무 때나 편하게 쓸 수 있는 네이버 메모장을 많이 사용합니다.” -공공 공간에 만드는 어린이정원의 경우 어느 나이대의 아이가 올지 예측할 수 없잖아요. 안전 관련 규정이 굉장히 엄격하기까지 해서 설계가까다로울 것 같습니다. “그 부분이 불만입니다. 관리자나 발주처 입장도 어느 정도 이해하지만,안전 문제에 너무 예민하고 민원이 발생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기는 걸 너무 두려워해요. 어린이정원은 어린이 놀이터와는 엄연히 다른 개념인데, 약간 높은 둔덕만 있어도 미끄러져 넘어지거나 아이가 떨어져 다치는 상황을 과도하게 걱정해요. 그나마 다행인 것은 법적으로 놀이터 안전 규정은 있지만 정원 안전 규정은 없다는 점입니다. 아무래도 예산이 한정적인 ‘공공’ ‘정원’이라 발생하는 문제이기도 해요. 귀에 딱지가 붙을 정도로 듣게 되는 말이 저관리 정원입니다.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속으로 무관리/무민원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저관리가 하나의 설계 전략이 될 수도 있죠. 하지만 정원은 기본적으로 계속 관리해야 하고 가꿔야 하고 지속적으로 보수가 되어야 하는 곳이에요. 만약 유지‧관리 예산이 충분하다면 펜스 없이 풍성한 관목을 울타리 삼아 아이들의 안전을 도모할 수도 있고, 화단과 녹지를 더 멋스럽게 만들 수 있거든요. 여유가 없으니 정원 디자인이 밋밋해질 수밖에 없죠. 안전에 관련한 시각이 조금 바뀌어야 한다고 봐요.” -개인적으로, 비가 오면 어린이정원에 사용한 목재가 더욱 짙은 색으로변하는 모습이 매력적이었어요. 목재를 많이 사용하는 것 같은데, 혹시선호하는 소재가 따로 있나요? “늘 강조하는 점인데 가격이 저렴한 소재를 선호해요. 고가의 소재, 희귀한 소재보다 구하기 쉬운 재료가 좋아요. 거창하게 들릴 수도 있는데 친환경적인 부분을 신경 쓰기도 하고요. 재활용할 수 있는 소재에 굉장히 매력을 느껴요. 언젠가는 다른 용도로 쓰일 수 있는 소재를 생각합니다. 대형 건설 현장에서 멀쩡한 자재를 버리는 걸 많이 목격했거든요. 뜯지도 않은 석재 블록을 팔레트 채로 버리기도 하고요. 남은 재료를운송하는 데 드는 비용이 폐기 비용보다 더 드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버려지는 재료를 보며 아깝다는 생각을 많이 했고, 그래서 완성도를 크게 해치지 않는 상황에서는 재활용 가능한 자재를 사용하고 있어요.” -공공 정원 작업이 영리적으로는 괜찮은 편인가요? “물론이죠. 시대적 흐름에서 공공 정원이 중요해지고 있어요. 원래는 톱다운 방식의 관급 발주 정원 사업이 지배적이었는데, 최근에는 민간 기업에서 ESG 경영 차원으로 기부 정원 사업을 많이 진행하고 있어요. 그람디자인의 최근 작업도 대부분 그런 사업들이고요. 물론 사업비가 충분치는 않아요. 그런데 공공 정원 프로젝트 경험이 많이 쌓이다 보니 원가를 절감하는 요령이 생겼어요. 적은 비용과 저렴한 시공 방식으로 최대의 효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을 잘 찾아내죠. 소재를 재활용하는 방식을 추구하는 점이 원가 절감에 도움이 되기도 하고요. 공예적인 작업을 직접 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됩니다. 보통 시설물 업체에 외주를 맡기면 그만큼 시공에 드는 비용도 커지는데, 그 작업을 직접 하니 예산을 절약 할 수 있죠. 공공 정원 일을 많이 하지만 그람디자인은 영리 기업이라는 점을 늘 잊지 않아요. 하지만 노력한 만큼의 정당한 대가를 받기 위해선 끊임없이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해요. 공공 정원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더 많은 예산이 주어진다면 더 좋고요. 그래도 사회 공헌 차원의 프로젝트를 할 수 있다는 게 의미 있고 행운이라고 느껴요. 직원들에게는 큰 수익을 내지 못한다는 점에서 미안하기도 해요.” 식물의 존재감 -전 학창 시절 식재 수업이 참 어려웠어요. 식재 방법을 배운다기보다수목학 수업의 연장선으로 느껴지기도 했고요. 결국 식재에 대해서는하나도 배우지 못하고 졸업한 것 같아요. 정원은 다양한 식물을 다루고배식해야 하는 작업인데 어떻게 공부했나요. “저도 비슷한 고민을 했어요. 식재 설계를 잘 몰랐고, 이전 직장 생활할때도 식물 다룰 일은 거의 없었죠. 관심도 깊지 않았고요. 그람디자인을 차리고 정원 쪽의 일을 하게 되면서 관심이 커졌어요. 평소에도 식물 수종이나 나무의 특징을 유심히 살피게 됐고요. 식재 설계는 작정하고 공부한다기보다 경험을 통해 축적되어서 쌓이는 것 같아요. 이런저런 나무를 심어보고 꾸준히 모니터링하면 비로소 ‘안다고’ 말할 수 있는 수종들이 늘어나요. 결국 관심의 문제에요. 식재 설계는 배식과 조합의 문제죠. 어떤 교목과 관목, 초본이 어울린다는 공식은 없어요. 생육 특징이 맞다면 언제든 새로운 배식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봐요. 어떤 식물을 사용하고 싶다면, 그 식물의 생육 특성, 유래, 의미를 잘찾아보는 게 중요해요. 이 부분이 스토리텔링과 연관되기도 하고요. 평소 식물의 의미를 자주 찾아보는 편이에요. 서울숲 설렘정원의 경우, 야외 결혼식을 할 수 있는 공간인데 어렵게 호두나무를 구해 심었어요. 북유럽의 연인들은 호두나무 가지를 장작불에 넣었을 때 불꽃이 탁탁 튀는 정도를 보고 애정의 깊이를 점치는 풍습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이처럼 이야기가 있는 수목을 심었을 때 사람들이 흥미로워 해요. 어린이정원을 소개할 때는 늘 산사나무 이야기를 해요. 해리포터의 지팡이가 산사나무로 만들어졌다고 말하면 다들 관심을 가지고 산사나무를 기억해요. 그 순간 산사나무가 의미 있는 존재감을 가지게 된다고 생각해요. 설계도 중요하지만 조경의 주요 소재인 식물에게 사람들이 다가가게 만드는 과정도 중요해요. 막 사회 초년생이 된 조경가에게 추천하고 싶은 방법은 시공된 조경 현장을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내내 관찰하는 거예요. 일 년이 다 가도록 수목이 성장하고 변하는 모습을 보는 게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자기소개서에서 디자인 빌드까지 하는 사무소를 차린 이유를 “빠듯한공사비의 문제 등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 디테일에 관하여 글과 도면으로 표현하여 전달하는 데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더라고요. 극복하는 방법이 있나요? 시공 도면 그리는 노하우라든지. “저도 발주처가 요구하는 대로 양식에 맞춰 캐드로 도면 그리는 건 똑같아요. 다만 조경의 특성상 도면에 표현할 수 없는 부분이 있어서 아쉬워요. 메타세쿼이아 같이 비교적 정형적인 수형의 수목이 있는가 하면, 진달래처럼 가지가 뻗은 정도나 잎이 벌어진 정도가 저마다 다른 수목이 있죠. 도면으로 이를 표현하기는 어려워요. 물론 식재할 수목을 설계 단계에서 구해와 어떻게 심을지 고민하며 설계하는 방법도 있어요. 실제로 그 방법을 택하는 설계사무소도 있고요. 하지만 그럴 수 없는 경우가 더 많죠. 보통은 예상한 것과 다른 수형의 수목이 현장에 도착해요. 이럴 땐 수목 하나의 위치를 바꾼다고 해결되지 않아요. 옮긴 수목에 맞추어 다른 식물과 수목을 함께 옮겨야 하죠. 그래서 저는 대형 교목 정도만 위치를 특정하고, 아교목과 관목, 지피 초화는 물량만 확정해 도면에 그립니다. 현장에서 시공하며 그 위치를 유연하게 조정하죠. 포장이나 시설물도 현장 여건에 따라 바뀌는 경우가 많아서 세밀하게 그리기보다 큰 맥락을 보여주는 도면 그리기를 선호합니다.” -시공 현장을 24시간 내내 지켜보고 있을 수는 없을 텐데, 작업자에게주는 가이드라인이나 주의사항이 있나요? “오히려 저보다 시공에 능한 전문가가 더 많아요. 그래서 특별한 주의사항을 드리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일부러 나무를 삐뚤게 심어야 하는 경우 같이 특수한 상황일 때만 미리 알려드리죠. 현장을 수시로 점검해야 하는 프로젝트가 있고, 믿고 맡겨도 되는 프로젝트가 있어요. 때에 따라 달라요. 시공 업무를 직원들과 직접 소화하는 경우도 많아요. 작은 공간 포장을 위해서 전문 작업 팀을 부르기는 곤란하니까요.” -직원들이 설계와 시공 업무를 병행하는 걸 힘들어하진 않나요? “고충이 있죠. 설계 작업할 때는 아침 10시에 출근해 6시에 퇴근하는일상을 보내는데, 시공 현장은 아침 7시부터 시작해요. 오후 4시 반에 일이 끝나면 사무실로 돌아와 당장 내일 작업해야 하는 도면을 수정해야 하는 경우도 다반사고요. 생활 패턴이 완전히 달라져요. 작업 모드를 자주 바꾸는 걸 버거워하는 직원이 많아요. 그런데 하다 보면 요령이 생기죠. 나름대로 여유를 찾는 법도 스스로 찾게 되고요. 사무실에서 설계 작업을 한다고 하루 종일 키보드를 두드리고 마우스를 쓰는 게 아닌 것처럼, 현장에 나간다고 내내 삽질을 하는 게 아니니까요. 모드를 빠르게 전환하는 영리한 나만의 루틴을 스스로 찾아나가는 게 중요해요.” 따로 또 같이 -정원사친구들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어요. 2018년 5월호 ‘따로 또 같이’ 특집에서 “때에 따라 일시적으로 객원 활동을 하는 이도 있고, 각회사 소속원이 이직이나 퇴사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하지만 “그람디자인과 오랜 경력의 설계와 시공 노하우를 가진 디자인스튜디오 이레(조용철 대표) 그리고 영국 유학 후 대학원에서 정원에 관한 더 깊은 연구를 이어가는 조혜령이 주축”인 그룹이라고 소개했는데, 여전한가요? “가입, 탈퇴의 개념이 있는 건 여전합니다. 그런데 디자인스튜디오 이레가 독립적으로 진행하는 프로젝트의 수가 너무 많아져서 정원사친구들 작업에 참여를 못하고 있는 상황이에요. 일을 자주 함께 못할 뿐이지 여전히 자주 왕래하는 친한 친구 사이입니다.” -그람디자인과 정원사친구들의 지향점은 다른가요? “다르진 않아요. 한 몸으로 보는 게 맞을지도 모르고요. 그람디자인에는 조경 설계를 기반으로 두고 있는 직원이 많아요. 현재 그람디자인의 직원들에 객원 멤버를 더해 정원사친구들을 꾸려가는 상황이에요. 정원 관련 프로젝트, 정원 문화 활동을 정원사친구들이 진행하고 엔지니어링적 설계와 관급 설계, 설계공모를 전반적으로 그람디자인이 진행하죠. 정원사친구들의 프로젝트 특성에 따라 조경 시공 현장 담당 소장이나 농장을 운영하는 친구, 시민정원사가 객원 멤버가 되어 함께 작업하고 일이 끝나면 각자의 생업으로 돌아가는 방식이에요.” -두 그룹의 일을 병행하고 관리하는 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닐 텐데, 그 열정이 부럽습니다. 그런데 그람디자인이 때때로 정원사친구들로 변신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많을 것 같아요.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거라 힘들진 않아요. 그리고 실제로 그람디자인과정원사친구들의 관계를 잘 모르고 입사하는 직원도 있어요. 조경 설계 일도 하고 정원 시공 일도 해야 된다고 말하면 당황하죠. 조경 설계만 배운 직원이 현장에 나가면, 전문 기능공이 아니기 때문에 시공 작업을 잘 못할 뿐더러 뭘 해야 하는지 전혀 모르거든요. 그래도 늘 현장에 데리고 갑니다. 실제로 하는 일이 없더라도 시공 반장과 전문 작업자가 시공하는 모습을 보기만 해도 도움이 돼요. 할 일이 없으면 옆에 와서 쓰레기라도 줍게 해요. 책상에서 설계만 하고 작업 내역서만 들여다보고 있으면 작업 공정이 실제로 얼마나 걸리는 지 알 수 없어요. 간결한지 복잡한지 현장에서 직접 봐야 알 수 있죠. 어떤 방법을 사용해야 같은 결과물을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지, 어떤 순서로 시공하는 게 합리적인지도 체득할 수 있어요. 현장에서 이러한 것들을 본인 것으로 만들기를 바라죠. 설계에도 도움이 돼요. 설계안을 3D 작업으로 만들어보라고 하면 풍성한 나무가 가득한 공간을 만들어놓기 일쑤거든요. 그런데 실제 현장에 가보면 가지치기가 잔뜩 된 앙상한 나무가 심겨지고 있죠. 머릿속 이미지와 완전히 다르게 시공되는 현장을 보며, 내가 상상했던 이미지의 공간이 되려면 6개월은 더 걸리겠구나, 봄이 되면 그 풍경을 볼 수 있겠구나 하면서 현장과 설계의 괴리감을 줄이게 돼요.” -정원사친구들처럼 ‘따로 또 같이’ 협업하는 팀을 꿈꾸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어요. 이런 팀을 꾸리기 전에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하는 부분이 있을까요. “영리를 위한 프로젝트 팀이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해요. 비용이나 협업방식 등을 사전에 계약 방식으로 명확히 정리해두어야 해요. 비용에 대한 부분을 모호하게 정하지 않은 채로 협업을 진행하다 서로 등을 돌리는 경우를 보기도 했어요. 귀한 시간을 내고 기술력을 투자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만큼, 누구도 서운하지 않은 결과를 만들고 마무리를 짓는 게 중요해요.” -2021년에 선보인 드포엠 가든과 아테온 정원이 정원사친구들의 작업물이죠? 아파트의 조경 공간의 감성을 보여주는 드포엠 가든, 자동차의콘셉트와 특성을 드러내는 아테온 정원 모두 신선하게 느껴졌어요. “드포엠 가든은 당시 대림에 근무하고 있던 안동혁 소장(HLD)을 통해 협업하게 된 프로젝트에요. 서울식물원 온실에서 선보인 ‘식물극장’ 콘텐츠가 이 프로젝트 수주의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대림의 아파트 브랜드인 ‘e-편한세상’의 조경 공간에서 즐길 수 있는 시적인 경험을 정원으로 구현했어요. 아테온 정원은 서울가드닝클럽의 이가영 대표의 제안으로 진행된 프로젝트입니다. 식재 연출을 함께하자고 정원사친구들에게 손을 내밀었고 모두가 흥미롭게 받아들인 프로젝트였습니다. 사실 그 당시 몇 년 전부터 조경과 무관한 기업이나 단체들이 전시나 홍보의 목적으로 정원과 식물에 주목하기 시작했고 그런 경향을 감지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우리도 운이 좋게 협업을 통해 그러한 경험을 할 수 있었죠.” -클라이언트의 반응은 어땠나요? “클라이언트도 만족했고, 시민과 방문객의 호응도 좋았어요. 확실히 기업에서 만드는 홍보 공간은 정원의 항상성을 만드는 데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에요. 조성 공사에서 그친 게 아니라 유지·관리 계약도 체결되어서 작업이 이어져요. 긍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후에 또 비슷한 작업 요청이 들어오지는 않았나요? “정원 관련 프로젝트에서 비슷한 성격의 협업 제안이 지속적으로 오는편입니다. 마켓컬리의 ‘샛별숲 키우기 프로젝트’의 경우는 기후위기에 대응해 탄소 저감을 꾀하는 사회 공헌 프로그램이었어요. 일정 공간에 나무를 심고 숲을 조성해 지구를 위해 작지만 의미 있는 노력을 하는 사업입니다. 현대위아가 ESG 활동으로 펼치는 ‘현대위아초록학교’ 프로젝트를 통해서 특수교육기관에 배리어-프리 정원을 조성하기도 했고요. HLD와 함께 작업한 ‘EV6 언플러그드 그라운드 성수’는 아테온 정원처럼 상업적 홍보가 강한 프로젝트였죠. 전반적인 연출과 디자인 콘셉트는 HLD에서 진행한 상태였고, 식재 연출과 시공을 함께 했어요.” -2015 대한민국 한평정원 디자인전에서 선보인 정원의 주제가 업사이클링이었죠. 2013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에서는 물의 소중함을 다루었고요. 늘 재활용에 대한 인식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일회성으로 열리는 전시 설치 작업에서도 그 원칙을 지키시나요? “일시적으로 전시하는 정원에서도 충분히 친환경을 모색할 수 있어요.자원을 낭비하지 않고 적절히 잘 수거해 다른 공간에서 충분히 활용할 수 있어요. 대부분의 조경 전시 팀이 그렇게 하고 있고요. 기후위기나 친환경을 거대한 설계 철학의 화두로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자원 낭비, 경제적 손실에 대한 관점에서 늘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직업이 생활을 잠식하지 않도록 -최근에는 어떤 작업을 하고 있나요?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의 생활밀착형 정원 프로젝트를 최근에 마무리했고, 오늘은 전 직원이 모두 서울식물원에 크리스마스 정원을 꾸미러 갔습니다.” -어쩐지 2층 사무실의 불이 다 꺼져 있더라고요(그람디자인은 직원들이 일하는2층, 두 대표가 머무는 3층의 두 개 층이다). 크리스마스 정원 전시 작업인가요? “서울식물원 실내의 작은 공간에 겨울 경관을 연출하는 일인데, 크리스마스 장식은 너무 뻔하고 표현이 한정적이라 겨울 풍경을 보여줄 수 있는 실내 화단을 만들고 있어요. 나뭇가지랑 억새를 잔뜩 싣고 가서 장식하고 있을 거예요. 또 내년에는 인연이 계속 이어져서 서울어린이대공원에 새로 어린이정원을 만들 예정입니다. 그린트러스트와 함께 서울식물원 내에 어린이 놀이 공간 조성 준비를 하고 있고요.” -‘설계사무소를 시작한다는 것’ 특집에서 ‘창업 전후로 가장 어려웠던순간’을 묻는 질문에 몇몇 창업 식구들의 퇴사를 꼽았었죠. “나와 함께큰 모험을 택한 이들과 나의 비전을 공유하려 노력했지만 개개인의 비전에는 공감하지 않았던 것 같다”고 했는데, 지금은 직원들과 어떤 방식으로 비전을 나누고 있나요? “아직도 첫 사회생활을 떠올리면 철야, 야근을 너무 많이 하는 과정에서 나는 누구인가 고민하던 제 모습이 생각나요. 그래서 우리 직원들이 조경과 정원에 미쳐있는 사람이 되는 걸 경계합니다. 조경가는 직업일 뿐이에요. 직업 자체가 자신의 모든 생활을 잠식하는 상황을 피하려 합니다. 업에서 행복을 얻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와 상관없이 개인의 행복을 찾는 것도 중요해요. 직원들의 생활과 일상이 모두 만족스러워지는 걸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비전을 공유하고 시야를 넓히는 가르침을 주기보다는,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어떤 조경가가 되고 싶은지 고민하는 여유를 만들어 주려고 합니다. 현장에 직원들과 함께 나가는 이유도 그 때문이에요. 시간적 여유와 경험을 지속적으로 제공해주면서 자신만의 관점을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주려하고 있고, 어느 정도 잘 진행되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제 인터뷰를 마무리 지으려고 합니다. 혹, 이런 것 왜 안 물어보지 싶은 건 없었나요? “사무실 위치가 왜 부천인지 안 궁금하세요?” -직주근접을 추구하는 줄 알았는데 다른 이유가 있나요? “처음 조경설계사무소를 차릴 때 많은 사람이 조언했어요. 일을 잘 수주하려면 강남에 있어야 한다고. 그런데 서울에 조경설계사무소가 너무 많았고, 태어나고 자란 곳이 부천인지라 부천의 관과 함께 일을 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물론 처음에 이곳에서 기반을 다지고 서울에 사옥을 짓는 꿈을 꾸기도 했죠. 경기도권에 자리 잡은 작은 무명의 사무소 느낌으로 시작했는데, 이제 이곳에 터를 잡은 언덕이 된 기분이에요. 일 잘하는 설계사무소는 당연히 서울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잖아요. 서울의 그럴 듯한 위치에 있는 사무소만 일을 잘하는 게 아니다, 지역에 토착하고 섞여 들어가 좋은 프로젝트를 하는 회사가 있다는 걸 보여주겠다는 사명감 같은 게 발휘되고 있기도 하고요. 직원 뽑을 때도 사는 곳과 출퇴근 거리를 중요하게 봅니다. 좀 편한 일상의 상태에서 함께 일을 했으면 하고,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일을 하는 게 긍정적인 효과를 내기도 하니까요. 부천에 조경설계사무소가 대여섯 개 정도 있어요. 수가 적다보니 서로 경쟁해야 하는 구도는 아니고 도란도란 이웃처럼 지내고 있습니다. 서울이 아닌 지역의 조경설계사무소에도 그 나름의 매력이 있다는 걸, 지역을 잘 알기 때문에 해낼 수 있는 프로젝트가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