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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디토리얼] 다시, 변신을 꿈꾸는 샹젤리제
    도시계획의 종주 도시 파리가 또 한 번의 변신을 꿈꾼다. 지난 1월 초, 안 이달고(Anne Hidalgo)파리 시장은 샹젤리제 거리를 ‘특별한 정원(extraordinary garden)’으로 개조하는 계획을 발표해 전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가로로 이름 높지만 자동차와 오염, 관광과 소비에 점령당한 샹젤리제 거리를 생태적이고 포용적인 장소로 되살려낸다는 장기 프로젝트다. 2030년까지 약 2억5천만 유로3,340억 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개선문이 있는 샤를 드골 광장과 콩코르드 광장을 잇는 길이 2km, 폭 70m의 샹젤리제 거리는 프랑스의 국가 상징 가로이자 화려한 명품 쇼핑 거리로 유명하다. 1667년, 태양왕 루이 14세의 정원사이자 베르사유의 설계자인 앙드레 르 노트르가 튈르리 정원에서 도시로 뻗어 나가는 길을 설계하면서 가로의 형체를 갖추기 시작했다. 그랑 쿠르(Grand Cours)라 명명된 넓은 산책로 양쪽으로 두 줄의 플라타너스 가로수가 늘어섰고 프랑스식 정원도 조성됐다. 앙리 4세의 왕비 마리 드 메디치가 즐겨 걸어 ‘여왕의 산책로’라고도 불리던 이 길은 18세기에 들어서며 변모한다. 1709년, 산책로를 확장하면서 ‘엘리제의 들판’이라는 뜻의 샹젤리제(ChampsElysees)로 이름도 바뀌었다. 엘리제는 그리스 신화의 낙원이다. 18세기 말, 가로수가 하늘을 덮을 정도로 높고 풍성하게 자란 샹젤리제 거리는, 혁명의 도시 파리 시민들이 일상의 산책과 피크닉을 즐기는 대중적 공공 공간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다. 파리가 나치 독일로부터 해방된 1944년 8월 25일, 드골 장군은 개선문에서 출발해 콩코르드 광장까지 샹젤리제 거리를 따라 시민들과 함께 행진했다. 프랑스 현대사의 중요한 사건들이 일어난 샹젤리제 거리는 파리를 대표하는 역사적 장소로 발돋움한다. 파리에 가보지 않은 사람들도 대부분 샹젤리제 거리를 안다. 감미로운 멜로디의 샹송, ‘오aux 샹젤리제’ 때문일 것이다. 프랑스어를 모르더라도 부를 수 있는 경쾌한 후렴구를 따라 부르다 보면, 마치 열병식 장면처럼 가로수가 직선으로 늘어선 파리의 도심을 흥겹게 산보하는 착각을 하게 된다. 이 노래의 가사처럼 “샹젤리제에는…당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 있다.” 하지만 임대료가 세계에서 가장 비싸다는 번화한 거리, 도시의 욕망과 소비가 겹겹이 쌓인 샹젤리제는 고유의 장소성을 잃은 지 오래다. 샤넬, 에르메스, 루이비통, 메르세데스 벤츠 같은 명품 브랜드의 플래그십 매장만 즐비하다. 시간당 평균 3천 대의 차량이 통과하는 혼잡한 대로는 파리를 순환하는 고속도로보다 대기 오염을 더 많이 유발한다고 한다. 코로나19로 관광이 중단되기 전에는 매일 10만 명이 이 길을 걸었는데 그중 72%가 관광객이었다고 한다. 정작 파리 시민은 찾지 않는 ‘한물간’ 관광지, 고급 공항 면세점의 야외 버전 같은 이곳을 인류학자 마르크 오제(Marc Auge)식으로 말하면 바로 비장소(non-place)일 것이다. 엘리제(낙원)의 영예를 더 이상 담지 못하게 된 샹젤리제 거리를 개선하기 위해 2018년 ‘샹젤리제 위원회’가 결성됐고, 시민 9만6천 명의 의견을 수렴해 만든 구상이 이번에 아달고 시장이 발표한 ‘특별한 정원’ 프로젝트다. 차도를 반으로 줄여 보도 폭을 두 배로 넓힌다. PCA 스트림(Stream)의 설계안 동영상을 보면, 2030년의 샹젤리제 거리는 넓은 녹지대와 풍성한 나무 터널 사이를 마음껏 걷고 어디서나 앉아 쉴 수 있는 도시 산책자의 낙원이다. 파리 올림픽이 열릴 2024년까지 콩코르드 광장과 그 주변을 개선하고 나머지 구간은 2030년까지 단계적으로 바꿔나간다고 한다. 이 프로젝트의 배경에는 지난해 6월 재선에 성공한 안 이달고 시장의 도시 혁신 공약, ‘파리를 위한 선언’이 있다. 이달고는 새 임기 6년간의 시정 비전으로 생태, 연대, 건강을 제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도시가 직면한 위기에 맞서기 위해 사회 정의와 환경 보호를 모든 정책의 중심에 놓아야 한다. 경제적 효율성 때문에 생태적 이상을 포기할 때가 아니다. 도시를 회복해야 건강도 지킬 수 있다. 생태는 미래를 위한 가치의 중심이다.” 이번 샹젤리제 거리의 ‘특별한 정원’화는 파리 전역의 차량 속도 시속 30km로 제한, 집과 직장과 학교를 15분 안에 오가는 ‘15분 도시’로 차량 교통 제어, 주차장 면적을 절반으로 줄이고 도시 전체에 자전거도로·보도·녹도 형성, 고층 개발 백지화와 대형 숲 조성, 시민들의 새로운 연대 등의 공약을 구현하기 위한 프로젝트라고 볼 수 있다. 팬데믹의 충격에서 세계의 어느 도시도 자유롭지 않다. 역설적이게도 가장 선진적인 경제 시스템과 정치 체제를 자랑하던 도시일수록 공간적 기반 자체가 흔들렸다. 코로나 이후의 도시가 가야 할 길을 예견하는 많은 목소리가 녹색과 공공성에 초점을 맞추는 지금, 이달고의 파리 선언과 샹젤리제 계획은 ‘뉴노멀’을 준비하는 지구촌 많은 도시들이 뒤따를 모델이 될 가능성이 크다. 샹젤리제와 파리의 변신에 마냥 환호를 보내는 태도에 대해서는 경계의 시선도 필요하다. 자동차의 추방, 자동차의 도시에서 사람의 도시로의 전환이라고 요약할 수 있는 구상에 왜 ‘정원’이라는 상표를 달았을까. 복잡한 이해관계가 치열하게 얽힌 도시 혁신에 낭만의 정원을 대입한 이유는 무엇일까. 은유로서의 정원은 시민의 공감을 얻기 쉽지만, 이 낭만적인 은유가 다른 도시들로 속속 전파되면 피상과 장식으로 흐를 우려도 적지 않다. 우리는 자연의 외피를 흉내 내며 녹색을 앞세운 계획들이 졸속의 전시적 화장술로 치달은 선례를 숱하게 목격하지 않았던가. 이번 호에는 『LA+』가 실험한 ‘생물체 설계공모’, 한국전쟁의 민간인 희생자를 기억하는 ‘진실과 화해의 숲 설계공모’, 신도시의 조경 네트워크를 짜는 ‘행정중심복합도시 5-1생활권 조경 설계공모’ 수상작들을 싣는다. 전혀 다른 성격의 세 가지 설계공모에서 동시대 조경의 넓은 스펙트럼과 쟁점들이 발견되기를 기대한다.
  • [풍경 감각] 풍경의 주인
    차들이 빼곡한 지하 주차장에서 자신의 자동차를 찾는 친구의 모습이 꽤나 능숙해 보였다. 대학 시절 학교에 차를 몰고 다니는 동갑내기가 있다는 이야기를 믿기 어려웠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꽤 많은 친구들이 차를 소유하고 있다. 성큼성큼 걸어가는 친구 뒤를 쫓으며 나란히 세워진 차들을 살핀다. ‘큰 건 버스(혹은 트럭), 작은 건 승용차’인 나 같은 까막눈은 혼란스럽다. 룰을 모른 채 무작정 바둑판을 보는 느낌이랄까. 문득 자동차도 표정이 있다고 했던 후배가 떠오른다. 헤드라이트는 눈과 눈썹, 그 사이를 코, 아래 긴 부분을 입이라 생각하면 표정이 보인다나. 그래서 어떤 차는 화가 나거나, 놀라거나,순진한 얼굴을 하고 있다고 했다. … (중략) *환경과조경394호(2021년 2월호)수록본 일부
  • [『환경과조경』 400호 돌아보기] 지금은 맞고, 그때도 맞다
    오래된 기억 하나를 들춰 본다. 학부 때 일이다. 조경 관련 수입 서적을 방문 판매 하는 분들이 있었다. 아마도 기억날 것이다. 여러 학교와 사무실을 다니면서 책을 팔았기 때문에, 나름 조경계의 유명인사로 통했다. 학부생 형편에 화려하고 무겁고 비싼 책들을 살 여력이 없었기에, 나는 그분들의 단골이 되지는 못했다. 어느 날 처음 보는 좀 젊은 분이 왔는데, 비싼 수입 서적이 아니라 『환경과조경』 합본을 팔고 있었다. 대략 열 권 정도 되는 잡지를 모아 하나의 소장본으로 묶은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딱히 사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창간호부터 묶은 것이라 책값의 일부를 외상으로 남기고 덜컥 사고 말았다. 다음에 오시면 나머지를 드리겠다고 했는데, 어찌 된 일인지 그 뒤로 만날 수가 없었다. 시간이 흘러 입대 휴학을 하고 또 복학을 하는 사이에도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다. 여러 번 이사를 하면서도 그 두꺼운 책을 꼭 챙겨 다녔는데, 책값을 다 치르지 못한 게 늘 마음에 걸렸다. 언젠가부터 책장에서도 사라져버린 책. 내가 『환경과조경』을 처음 접한 기억이다. 김모아 기자로부터 오는 전화나 메일에는 조금 긴장을 하게 된다. 원고 청탁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환경과조경』에 꽤 많은 글을 썼는데도 원고를 청탁받으면 늘 부담이 된다. 400호 기념 기획에 대해 들었다. 내가 맡은 부분(51호~100호)의 시기를 따져보니, 거의 30년 전이다. 1992년 6월호부터 1996년 8월호까지, 4년이 조금 넘는 시간. 옛 추억들이 떠올랐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대학 연구소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으며 이후 설계사무실로 옮겨 실무 초년병 시절을 보낸 시기다. 원고 청탁서와 함께 전달된 목차 리스트를 살펴보았다. 오래된 프로젝트들이 보였고 반가운 이름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지금은 소식이 감감한 선배들의 흔적들도 보였다. 청춘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중년의 시간이 지나고 있음에도 지나간 청춘의 시간은 너무도 가깝다. 우리 회사가 참여한 프로젝트가 소개되니 반갑기도 하고, 지금은 조경계의 중추 역할을 하는 동료 선후배들의 호기 넘치는 패기를 지면에서 마주하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다. 잡지가 발행된 시기(1992년~1996년)는 사회적으로 큰 변화가 있었다. 리우환경회의의 결과로 지 구 환경에 대한 이슈가 어느 때보다 활발했고, 정부 조직에서도 환경처가 환경부로 승격되는 변화 가 있었다. 1995년에 실시된 지방 선거로 본격적인 지방자치시대가 열렸다. 1989년에 전격 시행된 해외여행자유화 조치로 많은 사람이 손쉽게 해외여행을 하기 시작했던 반면, 새로운 무역 기구의 출현으로 시장 개방이라는 압력을 견뎌야 했던 시기다. 일상 속으로 깊숙이 들어온 컴퓨터 기술로 인해 설계 환경이 비약적으로 변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인터넷이라는 낯선 세계를 접하게 된 것도 이때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는 잡지에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환경과조경』은 조경 분야의 유일한 잡지 매체로서, 전문 분야의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내고 전달하는 창구 역할을 했다. 특집, 특별기획, 기획시리즈, 긴급진단, 긴급제안, 특별기고와 같은 다분히 전투적인 제목의 카테고리를 만들었고, 그 속에서 생성된 수많은 글은 당대를 치열하게 살아간 선배 세대의 생생한 기록이 되었다. ‘환경’과 조경이라고? 계간지로 출발한 『조경』이 『환경 그리고 조경』으로 제호를 바꾼 때가 통권 9호(1985년 여름호)다. 어떠한 연유에서 ‘환경’을 삽입하게 되었는지 짐작만 할 뿐, 자세한 내용을 모르고 있다. 2014년 1월 309호로 새 출발을 하면서도 『환경과조경』의 제호는 유지됐다. 조경 분야에서 환경의 이슈를 다루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지만, 환경처가 환경부로 승격되던 1990년대 중반은 꽤 진한 러브콜이 오고 갔던 시기로 보인다. 장관 인터뷰 기사와 여러 환경 관련 이슈들이 특집이나 특별 기획의 형태로 자주 등장한다. 71호(1994년 3월호)와 72호에서 ‘지구환경오염에 따른 생태계의 변화와 전망’이라는 특집을 연속으로 기획했고, 연이어 73호에서는 ‘환경보전적 21세기 농촌상’을 다뤘다. 81호(1995년 1월호)에는 신년 특별기획으로 ‘친환경적 도시관리’, ‘산림생태자원보전’, ‘녹색서울과 남산’이라는 정책적 주제를 다룬 글들이 실렸다. 86호(1995년 6월호)에서는 ‘환경영향평가의 재조명’이라는 특집으로 무려 7명의 필자가 등판해서 환경영향평가제도의 전반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런데 이보다 앞선 63호(1993년 7월호)에서는 긴급진단이라는 구성으로 ‘지금 우리는 지구환경을 위해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절박한 이슈가 등장하는데, 막상 내용을 살펴보니 조경사업법 제정, 조경공사 표준품셈 합리화 방안, 수목단가의 합리적 산정 등 업계 현안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서 주제에서 벗어난 좀 뜬금없는 구성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통권 100호(1996년 8월호)에서 다룬 특집 ‘하천환경 복구 진단’은 12명의 필자가 총출동하여 하천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다룬 역대급 기획이었다. … (중략) *환경과조경394호(2021년 2월호)수록본 일부 박승진은 『환경과조경』 5호가 발행될 때 대학에 입학해 조경을 공부했다. 47호가 나올 때 학교 연구소에서 생애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고, 69호와 함께 설계사무실에 들어가서 실무를 익혔다. 그리고 13년을 다녔다. 227호가 발행되던 날, 작은 설계 스튜디오를 열었다. 며칠 전, 393호가 배달되었고 여전히 작업실에서 설계 도면을 그리고 있다.
  • [나의 미개봉작 상영기] 설계공모의 뒤끝
    선택받지 못한 결정체 지난 연말 동심원조경에 잠시 다녀왔다. 종무식을 앞두고 분주한 분위기 속에서 최근 ‘춘천 시민공원 마스터플랜 설계공모’에 당선된 승자들의 여유를 느낄 수 있었다. 안계동 대표에게 공모의 뒷이야기를 들으며, 총성 없는 전쟁터에 발을 담그지 않아 다행이었다는 생각과 함께 그 판에 참여하지 못한 아쉬움이 들었다. 당선되지 못한 입상작들을 보며 여러 팀의 고뇌와 열정을 상상했고, 한편으로 예전에 참여했다 떨어졌던 공모들이 새록새록 떠올라 가슴 한 켠이 시려왔다. 선택받지 못한 설계공모 낙선작. 한국 조경의 역사가 해를 거듭할수록 설계공모 출품작들이 쌓여가지만 세상에 드러나긴 어렵다. 당선작 공고문의 맨 위에 있지 못해 의미가 없다고 하기엔 아까운 결과물들이다. 한 설계사무소의 철학과 자존심, 모든 역량이 담긴 성과는 결과를 떠나 존중받고 알려질 필요가 있다. 설계공모는 당첨이 보장되지 않는 복권이라지만 ‘졌지만 잘 싸웠다’고 위로하기엔 너무나 많은 사람의 영혼을 끌어 모은 결정체이기에 아쉬움이 크다. 통영 폐조선소 도시재생 마스터플랜 국제공모 나는 1년에 두 번 정도 설계공모에 참여하고 있다. 실시설계 프로젝트와의 균형을 고려해 감을 잃지 않을 정도로, 대신 의미 있는 공모를 잘 선별해 참여하고자 한다. 최근 참여한 공모 중 가장 기억에 남고 아쉬운 것은 2018년의 ‘통영 폐조선소 도시재생 마스터플랜 국제공모’다. 폐조선소의 인프라를 그대로 남겨둔 부지가 매력적이었으며 여러모로 도전적이고 흥미로운 과제였다. 통영이라는 도시와 대상지인 폐조선소가 그러했고, 산업 유산을 리모델링하는 프로젝트이면서 부지 성격상 대규모 오픈스페이스를 품고 있는 점이 그러했다.… (중략) *환경과조경394호(2021년 2월호)수록본 일부 이남진은 서울대학교 산림자원학과와 환경대학원 환경조경학과를 졸업하고,동심원조경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다.현재 조경기술사사무소 바이런(VIRON)을 이끌고 있으며,좋은 설계는 좋은 회사에서 나온다는 생각으로 설계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함께 성장하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북 스케이프] 인류 최초의 환경 파괴범, 길가메시
    기후변화를 넘어 기후위기가 찾아왔고, 변화를 돌이킬 수 없는 지점이 멀지 않았다는 불안한 예측마저 낯설지 않게 들려온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과 함께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다시 살피며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길가메시(Gilgamesh)를 만나게 된다. 길가메시는 고대 수메르의 전설적인 왕이다. 그의 행적은 오랫동안 노래로 전해졌고, 이를 점토판에 설형 문자로 새긴 것이 인류 최초의 문학 작품인 『길가메시 서사시(The Epic of Gilgamesh)』다.1 이는 호메로스의 서사시보다도 이천 년 앞서 쓰였고, 신화와 문학, 전설의 원형으로 평가받는다. 길가메시의 3분의 2는 어머니처럼 신이지만, 3분의 1은 아버지처럼 인간이다. 신에 가깝지만 완전한 신이 아니기에 인간의 조건인 죽음을 피할 수 없다. 이를 넘어서고자 분투했으나 실패한 인류 최초의 ‘히어로’로서 그의 행적은 수없이 노래되었다. 하지만 생태적 관점으로 보면 길가메시는 최초의 환경 파괴범이며, 톨킨J. R. R. Tolkien이 사루만에 대해 쓴 표현을 빌리자면 ‘나무 도살자’다. 길가메시는 강력하고 거대하고 현명하며 고귀했으나 또 소란스럽고 거만하며 충동적인 젊은 폭군이었다. 어느 날 그는 당시 장례 관습에 따라 성벽 너머 강으로 시체를 띄워 보내는 풍경을 보았다. 처음으로 두려운 생각이 든다. 모든 걸 다 가졌어도 죽으면 모든 게 사라지는 것이다. 죽음 후에도 남는 것, 즉 명예에 대한 욕구가 생긴다. 그는 삼나무 산의 나무를 베어 오겠다고 선언한다. 당시 메소포타미아에서 나무는 귀한 자원이었다. 큰 재목을 구해오는 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모험이자 업적이었다. 큰 나무가 자라는 숲은 신들의 영역이기에 이곳의 나무를 자른다는 말만으로도 우루크의 사람들은 두려움에 떤다. 게다가 길가메시가 가려는 삼나무 산은 신들의 지배자인 엔릴의 영토다. 엔릴은 삼목이 우거진 거대한 숲을 보호하기 위해 괴물 후와와(또는 훔바바)를 숲에 두고 일곱 개의 후광을 부여했다. 후와와가 외치는 소리는 거대한 홍수이고 그의 입은 불덩이인 데다가 그의 숨은 바로 죽음이니, 숲에 들어가는 이는 누구든 병으로 쓰러진다. 우루크뿐 아니라 서구 문명에서는 오랫동안 숲 자체를 두려워했다. ‘야만적인’, ‘흉포한’이라는 뜻의 영어 단어 새비지(savage)는 ‘숲’이라는 뜻의 라틴어 실바(silva)에서 유래한다. 후와와는 숲에 살기에 신의 대리자가 아니라 악한 괴물로 여겨진다.… (중략) *환경과조경394호(2021년 2월호)수록본 일부 황주영은 서울대학교 협동과정 조경학전공에서19세기 후반 도시 공원의 모더니티에 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후파리 라빌레트 국립건축학교에서 박사후 연수를 마쳤다.미술과 조경의 경계를 넘나들며 문화사적 관점에서정원과 공원, 도시를 보는 일에 관심이 많으며,이와 관련된 강의와 집필, 번역을 한다. 그러는 동안수많은 책을 사거나 빌렸고, 그중 아주 일부를 읽었다.
  • [에디토리얼] 400호 시대를 맞으며
    1982년 7월, 국내 최초의 조경 전문지 계간 『조경』이 창간됐습니다. 1985년 6월에는 『환경 그리고 조경』으로(통권 9호), 10호부터는 『환경 & 조경』으로 이름을 바꿔 달았습니다. 1987년 1월에는 한 해에 네 번 나오는 계간지에서 두 달에 한 번 나오는 격월간으로 전환됐고(통권 15호), 월간지로 바뀐 1992년 1월호(통권 45호)부터 쓰기 시작한 제호 『환경과조경』이 지금껏 유지되고 있습니다. 2013년 10월, 박명권 발행인 체제로 옷을 갈아입은 『환경과조경』은 2014년 1월호(통권 309호)를 기점으로 laK 브랜드를 새로 내걸며 대대적인 리뉴얼을 했습니다. 개편 첫 호 에디토리얼의 몇 구절이 생각납니다. “『환경과조경』은 ‘조경 문화 발전소’를 꿈꾼다. ‘한국 조경의 문화적 성숙을 이끄는 공론장’, ‘조경 담론과 비평을 생산하고 나누는 사회적 소통장’, ‘동시대 세계 조경의 보편성과 지역성을 수용하고 발굴하는 전진기지’ 이 세 가지 비전을 지향한다.” 한 차례의 결호도 없이 간행되어온 『환경과조경』은 한국 현대 조경의 살아있는 아카이브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 조경의 성장사를 기록하고 저장해왔으며 동시대 조경의 담론과 쟁점을 발굴하고 그 경계를 확장해왔습니다. 통권 400호가 더 중요한가, 창간 40주년이 더 의미 있는가. 2021년 8월호는 400호, 2022년 7월호는 40주년 기념호입니다. 작년 늦가을 어느 오후의 편집회의, 다음 해 지면의 큰 흐름과 줄기를 구상하다가 예정에 없던 토론이 벌어졌습니다. 결국 일이 커지고 말았습니다. 느슨하게 시작된 편집 구상이었는데, 400호 기념 일회성 콘텐츠를 기획하는 수준을 넘어섰습니다. 2021년에는 『환경과조경』의 발자취를 다각도로 되돌아보며 한국 조경의 현대사를 촘촘히 되짚는 지면을 ‘매달’ 배치한다는 대형 기획으로 확장됐습니다. 연중 기획의 하나로 이번 호부터 7월호(399호)까지 ‘『환경과조경』 400호 돌아보기’가 시작됩니다. 여덟 명의 필자가 매달 50권씩 과월호를 리뷰하는 기획입니다. 창간호부터 통권 50호까지 시간 여행을 떠나는 첫 주자는 무려 20세기부터(1999년 1월호부터) 『환경과조경』을 만들어온 남기준 편집장입니다. 다음 달에는 최장수(2014년 1월호~현재) 편집위원인 박승진 소장(디자인 스튜디오 로사이)이 51호부터 100호까지 이어 읽기를 맡습니다. 여러 편집위원과 편집자가 매달 50권씩 릴레이 리뷰를 이어갈 것입니다. 4월호에 다룰 편집 디자인 변천사는 독자 여러분의 아련한 추억을 소환하게 될 것입니다. 5월호에는 전직 편집자들이 참여합니다. 우리 기억 속에 희미하게 묻힌 특집 기사와 작품을 그들의 기억을 통해 다시 길어 올리는 지면을 꾸립니다. 7월호에는 『환경과조경』의 옛 얼굴, 399장의 표지와 재회하는 기획을 마련합니다. 잡지 한 권으로 40년 가까운 긴 시간을 가로지르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가장 궁금한 건 통권 400호인 8월호의 내용과 형식이겠죠? 독자 여러분의 테이블에 잡지가 놓이기 전까지는 일급 비밀이랍니다. 독자들이 함께 참여하는 방안도 다듬고 있습니다. ‘다시 읽고 싶은 연재 원고는?’이라는 설문에 곧 독자 여러분을 초대할 계획입니다. 독자들이 뽑은 10대 연재물의 옛 필자를 초청하는 지면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편집부와 편집위원회는 조경설계 전문가를 대상으로 ‘한국 현대 조경 대표작’을 묻는 설문도 기획하고 있습니다. 이 기획은 2022년 세계조경가협회IFLA 학술대회 광주 개최 및 한국 조경 50주년을 맞아 출간될 『한국 조경 50+50』(가제)과도 연계됩니다. 400호 시대를 맞이하는 2021년, 『환경과조경』은 한국 조경의 지난 50년을 기록하고 다음 50년을 설계하는 최전선에 서겠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관심과 참여를 기다립니다. 2021년의 문을 여는 이번 호는 ‘제3회 젊은 조경가’ 수상자인 최영준 특집입니다. 중국과 미국, 한국을 넘나들며 다국적 조경설계사무소 랩디에이치(Lab D+H)를 이끌고 있는 최영준, 그의조경관을 요약하는 가장 중요한 어휘는 오피스 이름의 H, 곧 희망(hope)입니다. 특집 지면에 담은 그의 에세이, 열두 가지 설계 키워드, 인터뷰에서 우리는 “디자인을 통해 희망과 사회적 책무를 구현”하기 위해 “이웃을 향한, 이웃을 위한 조경”을 실천해온 그의 젊은 조경 정신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와 협업해온 건축가 이치훈(SoA)이 말하듯(본문 63쪽), “최영준의 젊음은 조경…이 처한 사회적 조건의 불합리함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정확하게 대응”합니다. “불합리함에 불평하기는커녕 조경가가 다루어야 하는 공간의 구조에 관한 다채로운 제안으로 대응”합니다. “변죽을 울리는 일 없이 늘 핵심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이런 태도를 기반으로 한 그의 “지속적 작업은 한국 사회에서 조경가의 유의미한 역할 모델을 만들어가는 역사”이기도 합니다. 이번 호 지면뿐 아니라 그의 3년 전 연재 원고 “그들이 설계하는 법”(2018년 1월호~3월호)도 함께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새 꼭지 ‘나의 미개봉작 상영기’를 엽니다. 3개월씩 이어갈 꼭지의 첫 필자는 이남진(바이런소장)입니다. 윤정훈 기자의 지면은 ‘편집자의 서재’에서 ‘기웃거리는 편집자’로, 본문 마지막 쪽 김모아 기자의 지면은 ‘CODA’에서 ‘편집자가 만난 문장들’로 새 제목을 답니다. 물론 이름만 바뀐 건 아니겠죠?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 [풍경 감각] 햇빛을 주워가도 될까요?
    모교의 새 건물을 보고 떠오른 생각은 ‘햇빛 안 쓸 거면 나한테 주지’였다. 해가 들창을 하나도 내지 않고 벽돌로 외벽 전체를 마감했기 때문이다. 솔방울 날개처럼 어슷하게 배치된 벽돌 한 장 한 장에 떨어지는 작은 그림자들이 아름다웠지만, 내 방 창으로 드는 조각 빛을 조금이라도 더 쬐여주려 아침저녁으로 화분을 옮길 때마다 할 수만 있다면 건물에 닿는 햇빛을 주워 오고 싶었다. … (중략) *환경과조경393호(2021년 1월호)수록본 일부
  • [『환경과조경』 400호 돌아보기] 4.12m 이어달리기
    올해 8월, 통권 400호가 출간된다. 책상 바로 앞에 있는 창간호부터 2020년 12월호까지 총 392권의 잡지를 줄자로 재보았다. 4.12m였다. 페이지로는 7만 장이 훌쩍 넘을 것이다. 무게도 재볼까 싶었지만, 김모아 기자가 그러다가 한 권씩 밖에 없는 보관본이 상하기라도 하면 어떡할 거냐며 고개를 저었다. 김기자가 퇴근한 후 재볼까, 아주 잠깐 고민했다. 다행히 사무실에 줄자는 있는데 저울은 없었다(나보다 많이 무겁겠지 따위의 싱거운 생각을 했던 것도 같다). ‘400호 돌아보기’란 숙제를 끌어안고 시작된 고민은 쉽게 해결되었다. 일단 나눴다. 그래서 8과 50이란 숫자를 얻었고, 나누기를 먼저 주장한 탓에 첫 스타트를 끊게 되었다. 1호부터 50호까지가 내 몫이다. 1998년에 입사한 탓도 있다. 잡지사에 제일 오래 다녔으니, 가장 오래된 파트를 맡아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이 있었다. 나는 역으로 편집부 막내인 윤정훈 기자를 적극 추천했지만, 편집주간이 나를 지목하자 윤기자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던 것 같다(뭐, 기분 탓이었겠지만 말이다). 1990년대나 2000년대였다면 400호에 대한 감흥이 조금은 달랐을 것이다. 영화 잡지만 해도 『씨네21』, 『키노』, 『스크린』, 『프리미어』, 『필름2.0』, 『무비위크』 등등 다종했고, 『씨네21』은 한 때 주간 판매 부수 7만부를 기록했다. 한 달이면 20만부를 훌쩍 넘는 부수다. 문학 잡지나 패션 잡지는 일일이 꼽을 수 없을 정도였다. 지금은 독립 잡지들이 속속 생겨나서 잡지 생태계의 다양성은 커졌지만, 휴간과 폐간의 고비를 넘기며 장수하는 종이 잡지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여기까지 쓰고 나니,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가락에 살짝 힘이 들어간다). 1998년 12월에 입사해 1999년 1월호인 129호부터 마감에 참여했고, 중간에 3년 동안 나무도시 출판사를 운영한 기간을 빼면 19년 동안 잡지사에서 일했다. 대략 230여 권의 잡지 제작에 직간접으로 손을 보탰다. 내 몫이 된 통권 1호부터 50호까지와는 무관하지만, 400호와 관련된 일련의 기획을 준비하며 가장 먼저 떠올랐던 건 201호에 실었던 ‘열 개의 공간, 다섯 가지 시선’이란 특집이다. 조경설계 전문가 200인을 대상으로 ‘한국 조경 대표작’ 설문조사를 진행한 후 그 결과를 토대로 다섯 편의 리뷰 원고를 꾸렸다. 어떤 일은, 어떤 시기에만 할 수 있거나 어떤 시기이니까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 4월에서 5월로 넘어가는 순간과 12월에서 1월로 넘어가는 시기는, 아무래도 다르다. 정리하고 돌이켜보고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에는 1월이 제격이다. 129호나 400호나 그저 잡지 한 권일 뿐이지만 400호니까 ‘할 수 있는’ 기획이 있다(‘할 수 있는’ 기획을 꼭 해야 하는 건 아닌데, ‘할 수 있는’을 ‘해야만 하는’으로 느끼는 건 역시 기분 탓일 게다). 월간지라면 통권 50호까지 펴내는데 만 4년이 조금 넘는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환경과조경』통권 1호부터 50호까지는 10년이 걸렸다. 창간호는 1982년 7월, 50호는 1992년 6월에 발행되었으니 정확하게 만 10년이다. 계간지로 시작해 격월간(통권 15호)을 거쳐 월간지(통권 45호)로 자리 잡아서다. 제호도 『조경』에서 『환경 그리고 조경』(통권 9호), 『환경 & 조경』(통권 10호)을 거쳐 지금의 『환경과조경』(통권 45호)으로 바뀌어 왔다. 종로의 공평동 한미빌딩에서 시작해 뚝섬 시대를 지나, 내가 입사했던 역삼동 사무실에서 분당의 오피스텔로, 첫 사옥이었던 파주출판단지에서 지금의 방배동 사무실까지, 편집부의 책상도 일정 시기마다 옮겨 다녔다. 2007년도에 『조경세계』가 창간될 때까지만 해도 국내 유일의 조경 잡지였지만, 지금은 정원 잡지도 많이 생겼고 라펜트, 한국조경신문 등 조경 매체 상황도 꽤 달라졌다. 통권 306호인 2013년 10월호부터는 박명권 발행인 체제로 바뀌어 영문 제호를 비롯하여 크고 작은 변화가 시도되었다. 그럼에도 1호부터 392호까지 펴낸 38년 동안 바뀌지 않은 점이 있다면, 직사각형 국배판을 유지한 판형과 제호에서 한 번도 빠지지 않은 ‘조경’이란 두 글자다(TF팀을 구성하여, ‘조경’이란 두 글자를 빼고 제호를 ‘스케이프’, ‘랜드스케이프 플러스’, ‘Landscape KOREA’, ‘L and Scape’ 등으로 바꿔보려는 시도를 100일 넘게 추진한 적은 있었지만 말이다). … (중략) *환경과조경393호(2021년 1월호)수록본 일부
  • [나의 미개봉작 상영기] 경의선숲길 감독판
    설계안이 실제 작품이 되기까지, 19.3% 설계를 업으로 삼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내 설계안이 그대로 시공되어 눈앞에 펼쳐지는 순간을 꿈꾸며 하루하루 영혼을 끌어 담아 작업 중일 것이다. 나는 2007년부터 조경 설계에 발을 담그고 일을 시작했다.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설계를 배우며 연구실에서 설계사무소와 협업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2009년 동심원조경에 입사해 조경 설계업의 최전선에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2007년부터 2020년까지 14년간 총 124건의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그중 실시설계를 거쳐 실제 완공된 현장은 24건으로 약 19.3%에 불과했다. 결과적으로 80%를 상회하는 100건의 프로젝트는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 ‘미개봉작’이 됐다. 대형설계공모의 수상작 정도가 아니라면 『환경과조경』을 비롯해 세상에 공개하지 못한, 회사 서버에 고이 모셔둔 수집품인 것이다. 왜 수많은 프로젝트가 실현되지 못하는 것일까? 우선 각종 공모전 및 제안 입찰에서 고배를 마신 낙선작이 있겠다. 전체 미개봉작 중 약 25%다. 다음은 공모전, 입찰 당선, 발주처의 지명 등을 통해 설계를 진행했으나 실시설계까지 완성하지 못하고 기본계획이나 기본설계에서 중단된 42.7%의 경우다. 실시설계까지 했지만 공사를 하지 못한 경우도 12.9%로 상당하다. 사유는 다양하다. 발주처의 도산, 대상지 변경, 의사 결정권자의 단순 변심, 발주처의 인사 개편, 공사비 부족에 따른 조경 공사 최소화 등. 착공하더라도 온전히 완성되기까지 수많은 난관을 거치는데, ‘개봉작’ 중에서도 설계안이 그대로 완성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고, 시공 과정에서 다양한 검열을 통해 상당한 편집이 가해진다. 그래서 천신만고 끝에 알을 깨고 나와 세상의 빛을 보는 19.3%의 프로젝트들은 더없이 소중하다. 작품성을 인정받아 잡지에 소개되는 프로젝트는 마치 훈장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한편 아픈 손가락이 돼버린 미개봉작들은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라고 위로하기엔 너무 아깝다. … (중략) *환경과조경393호(2021년 1월호)수록본 일부 이남진은 서울대학교 산림자원학과와 환경대학원 환경조경학과를 졸업하고, 동심원조경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다. 현재 조경기술사사무소 바이런(VIRON)을 이끌고 있으며, 좋은 설계는 좋은 회사에서 나온다는 생각으로 설계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함께 성장하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북 스케이프] 치유와 성장의 공간, 비밀의 정원
    작년에는 극장에 한 번도 못 갔다. 이제 영화관은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는 마법의 공간이 아니라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방문을 삼가야 하는 고위험 시설이 되어버렸다. 영화 ‘시크릿 가든The Secret Garden’(2020)도 하는 수 없이 인터넷 스트리밍으로 보았다. 아끼는 소설이 원작이고 주제도 ‘덕업일치’하며 좋아하는 배우가 출연하기에 오랫동안 기대했건만, 놀라울 정도로 재미가 없었다. 내셔널 트러스트가 관리하는 영국 최고의 정원들을 배경으로 하여 ‘해리포터’ 미술팀이 촬영했으니 눈요깃거리도 화려한데 말이다.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영화 ‘시크릿 가든’의 아이들은 정원을 가꾸지 않는다.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Frances Hodgson Burnett)의 『비밀의 화원』(1909)은 원예 치료(therapeutic gardening)라는 용어가 보편화되기 전 이미 정원 가꾸기가 지닌 치유와 공감의 힘을 우리에게 알려준 소설이다.1 그런데 『비밀의 화원』에 담긴 ‘과정으로서의 정원’의 의미를 축소하고 막연히 정원은 모든 것을 치유하는 마법의 공간이라고 하니 영화의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영화 속 아이들은 정원(이라기엔 너무 넓고 다채로우며 버려졌다기엔 지나치게 잘 가꾸어진 곳)을 가꾸기는커녕 흙 한 번 파보는 일 없는 방문자다. 원작 소설과 이전에 제작된 동명의 영화가 모두 성공한 작품을 리메이크하는 일에는 상당한 부담이 따른다. 잘해봤자 본전치기인 상황에서 전작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영화 ‘시크릿 가든’과 달리 소설 『비밀의 화원』 속 메리는 미슬스웨이트 저택의 숨겨진 정원을 리메이크하는 데 성공한다. 지난 10년 동안 방치된 정원이기도 했고 그녀의 본능적인 가드닝이 자신을 넘어 콜린, 그리고 콜린의 아버지로 확장되었기에 가능했다. 소년소녀세계명작 시리즈를 탐독하던 시절, 『비밀의 화원』의 메리에게 늘 마음이 쓰였다. 버넷의 다른 작품인 『소공자』(1886)의 세드릭이나 『소공녀』(1905)의 사라는 너무나 모범적이고 긍정과 인내의 미덕을 체현하는 인물이라 위인전의 위인들만큼이나 멀게 느껴졌다. 그에 비해 메리는 예의상의 배려도 찾아볼 수 없는 이기적이고 심술궂은 응석받이가 아닌가. 외모마저도 허영심 많은 어머니가 외면할 정도로 볼품없어 세상에서 제일 정 안 가는 아이라고 불릴 정도였다. 그런 무관심한 부모마저 전염병으로 갑작스럽게 잃고, 나고 자란 인도를 떠나 일면식도 없는 영국의 친척 집에 맡겨졌다. 심리 치료가 필요해 보이는데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몸과 마음이 모두 메말랐던 메리가 정말로 회생시키려 한 것은 정원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었을 것이다. … (중략) *환경과조경393호(2021년 1월호)수록본 일부 황주영은 서울대학교 협동과정 조경학전공에서19세기 후반 도시 공원의 모더니티에 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후파리 라빌레트 국립건축학교에서 박사후 연수를 마쳤다.미술과 조경의 경계를 넘나들며 문화사적 관점에서정원과 공원, 도시를 보는 일에 관심이 많으며,이와 관련된 강의와 집필, 번역을 한다. 그러는 동안수많은 책을 사거나 빌렸고, 그중 아주 일부를 읽었다.
    • 황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