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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풍경 감각] 방 안의 온실
    식물 집사들의 SNS 계정을 둘러보니 방 안에 온실을 만들었다는이야기가 많다. 물론 식물원에서 볼 수 있는, 철제 골격에 유리로된 거대한 온실이 아니다. 유리 수납장에 식물 생육용 전구와작은 선풍기, 가습기, 그리고 온습도계를 달아 직접 만든 것이다. 온실을 만드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건 희귀한 열대 관엽식물이 인기를 얻고 있기 때문인 듯하다. 이 식물은 높은 습도와적정한 온도를 유지해줘야 무탈히 자라나는데, 이런 환경을만들어주지 못하면 상태가 나빠지고 때론 고사한다. *환경과조경401호(2021년 9월호)수록본 일부
  • [사람과 사람을 잇는 사람들] 보이지 않는 마음을 돌보는 조경
    연재를 진행하며 정작 조경가를 인터뷰하지 않은 게 아쉬웠다. 이번에는 오랫동안 조경을 매개로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작업을 진행해온 한 조경가를 만났다. 다니엘 윈터바텀(Daniel Winterbottom)은 30년 가까이 워싱턴 대학교에서 조경을 가르치며 도외시되는 사회적 약자를 위한 공간을 디자인해왔다. 평면이나 완공된 공간의 사진만으로는 그의 프로젝트를 설명할 수 없다. 공간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켜켜이 쌓인 많은 대화와 관계를 들여다보아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연구와 실무를 오랫동안 병행하면서 누적된 경험의 폭과 깊이를 짧은 인터뷰에 다 담기에 역부족이었지만, 몇 가지 대표 프로젝트를 주제로 이야기 나누며 그의 디자인 철학과 치유 도구로 조경이 갖는 강력한 힘을 알 수 있었다. 간단한 소개를 부탁한다. 미국 시애틀의 워싱턴 대학교 조경학과 교수로 27년째 재직 중이다. 1995년에 학부생 대상 디자인/빌드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현재까지도 프로그램 디렉터를 맡고 있다. 지금은 필수과목으로 채택되어 학부 졸업 전에 반드시 진행해야 하는 캡스톤(capstone)스튜디오로 자리 잡았다. ‘윈터바텀 디자인(Winterbottom Design)’이라는 개인 설계사무소를 열어 다양한 프로젝트도 수행하고 있다. 1995년에 만든 디자인/빌드 프로그램이니 오랜 시간 동안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이 쌓였을 것 같다. 프로그램은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궁금하다. 디자인/빌드 프로그램은 설계와 시공을 융합하는 스튜디오 과목이다. 요즘의 설계 과목은 대체로 이론 쪽에 치우쳐져 실무에 관한 내용을 다루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조경 윤리의 적용과 이론만큼 경험을 통한 배움도 중요하다. 구조물이 어떻게 지어지는지 모른다면 시공이 가능한 설계안을 만드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내가 디자인/빌드에 관심을 두게 된 건 필연적인 일이었다. 학부에서 조소와 회화를 전공했는데, 16살 때부터 시공 현장에서 일하며 작품 활동에 필요한 돈을 벌었었다. 시공 기술을 접목한 미술 작업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1970년대 ‘환경 미술’이라는 분야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조경과의 인연이 그때 시작되었다. 공예적 관점에서 조경 일을 시작했기 때문에 손으로 직접 재료를 다루는 일의 장점을 알고 있었다. 1990년대만 하더라도 여성이 설계 분야에서 존중받기 어려웠지만, 재료에 대한 깊은 이해를 쌓고 현장에 나가면 큰 강점이 되었다. 또 디자인/빌드는 지역 사회에 공헌할 기회를 마련해준다. 1970년대에 학교를 다녔던 사람으로서 대학에 다닐 수 있다는 것 자체를 특권으로 느꼈고,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학생들과 함께 캠퍼스 조경이나 빗물 정원을 디자인하기도 하지만 정신병원, 참전 용사 주거 공간, 피난민 커뮤니티 등 취약 계층을 위한 프로젝트를 더 많이 한다. 이런 작업에서 다양한 참여 방식과 대화를 시도하며 사람들의 트라우마 극복을 위해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파악하려고 노력한다. 참여 디자인 기법을 선호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트라우마가 있는 이들을 위한 설계를 시작했을 때 내가 가진 전문 지식이 너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석사 논문 몇 편이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이들, 학대 피해자, 피난민 공간을 다룬 연구의 전부인 상황이었다. 당사자와 대화를 나누지 않고는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 길이 없었다. 참여 디자인의 또 다른 장점은 사용자가 공간에 대한 주인 의식을 갖게 된다는 점이다.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그곳을 유지하고 관리하는 태도를 갖게 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만약 지역 사회에서 주인 의식에 관심이 없다면, 나 역시 굳이 설계안을 그리지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어떤 공간이 필요한 사람들은 정작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이야기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프로젝트는 주로 누가 주도하고 어떻게 발주되는가. 프로젝트마다 다른데, 대부분 필요한 공간이 있는 NGO나 시민 단체의 의뢰로 시작된다. 이러한 중간 조직들은 이미 수년 동안 커뮤니티와 소통하며 그들의 요구를 파악한 상태이기 때문에 훌륭한 연결 창구가 되어준다. 또한 프로젝트 기금을 마련하고 협력할 이들을 모으는 데도 힘써준다. 단체와 연결되었다고 해서 설계와 시공에 바로 돌입하는 것은 아니다. 첫해에는 주로 신뢰 관계를 쌓는 데 집중한다. 사람들과의 관계가 형성되면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나눌 수 있다.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 놓고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는데, 해외 프로젝트의 경우 중간 단체에 의지해서 소통을 이어나가는 편이다. 오랜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다. 4년 전에 크로아티아 로비니(Rovinj)의 공립 정신병원과 치유정원을 설계했는데 여전히 실현하지는 못한 상태다. 하지만 소통을 워낙 자주하다 보니 병원장과 좋은 친구 사이가 되었다. 2010년에 완성된 ‘시애틀 어린이 놀이정원(Seattle Children’s Play Garden)’을 인상 깊게 보았다. 커뮤니티가 원동력이 되어 조성된 공간의 아주 좋은 사례인데, 구체적인 과정과 역할을 이야기해달라. 이 프로젝트를 위해 4년이나 무료 봉사를 했다. 비영리단체와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이 단체에게는 처음으로 공립 공원과 연계해 공간을 만드는 시도이기도 했다. 지역의 언어 치료사들이 자폐나 발달장애가 있는 어린이들의 효과적인 치료를 위해서는 바깥 공간이 필요하다고 조언했고, 공간 확보를 위해 시애틀 공원녹지과와 20년 기한 임대 계약을 맺었다. 시 입장에서도 공원을 무료로 개선해준다고 하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시애틀 시가 내어 준 공간은 공놀이 공간이 있는 어린이 놀이터였는데, 주민들은 운동 공간이 사라지는 데 강력한 반대 의사를 표했다. 공원을 디자인하다 보면 여러 이해 관계자가 생각하는 공원의 모습이 각기 달라서 충돌이 일어나는 상황을 자주 마주한다. 운동 공간을 우선해야 할지 치료 공간을 우선해야 할지 갈등이 있었고, 결과적으로 두 의견을 모두 충족하는 안을 만들게 됐다. 다섯 단계로 나뉘어 시공이 진행됐는데, 원안대로 조성된 부분도 있지만 다른 단체들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면서 바뀐 부분도 많다. (후략) *환경과조경 401호(2021년 8월호)수록본 일부 다니엘 윈터바텀(Daniel Winterbottom)은 워싱턴 대학교의 조경학과 교수이자 윈터바텀 디자인(Winterbottom Design)의 대표다.장소 만들기,치유 정원,커뮤니티 참여 디자인에 관심을 두고 다양한 연구와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1995년에 개설한 조경학과의 디자인/빌드 스튜디오를 통해 학생들과 미국을 비롯해 해외의 다양한 지역을 다니며 사람들의 트라우마를 치유하기 위한 조경 설계를 하고 있다. 조성빈은 유년 시절을 미국과 한국의 다양한 도시에서 보냈고,공간과 도시에 매료되어 한국과 노르웨이에서 건축과 조경을 공부했다.늘 경계에 있는 사람으로 살아와 깊이는 부족해도 본질에 관심이 많고,관계에서든 공간에서든 진정성을 추구한다.조경설계 서안을 거쳐 조경작업소 울에서 놀이터와 커뮤니티 디자인을 하고 있다. 김연금은 서울 옥수동에서 태어나 살고 있고, 2009년부터 옥수동 옆 약수동에서 조경작업소 울을 운영하고 있다.『텍스트로 만나는 조경』,『커뮤니티디자인을 하다』,『소통으로 장소만들기』,『우연한 풍경은 없다』등 다양한 집필 작업을 해왔다. 2020년에는 서울시립대학교 명예교수인 이규목 교수를 비롯해 여덟 명의 조경가의 글을 엮어『이어 쓰는 조경학개론』을 펴냈다.
  • [북 스케이프] 옴스테드의 첫 영국 여행
    여행은커녕 외출도 삼가는 기간이 이렇게까지 길어질 줄 몰랐다. 정리 핑계로 여행 사진을 꺼내 살피기도 하고 남의 여행기를 찾아 읽으며 마음을 달래보기도 한다. 조경의 역사와 관련된 여행기 중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Frederick Law Olmsted, 1822~1903)의 첫 영국 여행을 살펴본다. 마침 내년 IFLA 한국총회에서 옴스테드 탄생 200주년 행사도 있을 예정이니 겸사겸사 한 번쯤 정리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옴스테드는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자연을 벗 삼아 자랐고, 18세기 영국의 픽처레스크 미학 작가들의 책을 섭렵했다. 20대 후반까지 그의 생애를 보면 가족들의 걱정이 많았을 것 같다. 옴스테드는 건강 문제로 대학 진학을 포기했고 일관성 없이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 선원이 되어 중국에 다녀온 뒤 과학적으로 농사를 짓는 농부가 되기로 결심하고 아버지가 사준 농장을 경영한다. 좀 진득하게 하면 좋으련만, 공부하다 건강을 해친 동생이 정양하러 영국에 간다고 하니 아버지를 졸라 따라나선다. 여기까지는 어느 집안에나 한 명쯤 있을 법한, 혼자만 느긋한 이의 이야기다. 하지만 이 여행이 그의 인생, 미국 도시의 모습, 나아가 전 세계 도시와 공원의 역사를 바꾸어 놓았다면 과장일까. 1850년 4월, 27세의 옴스테드와 일행이 영국에 도착했다. 아픈 동생과 철없는 동생 친구를 돌보기 위한 것이라고 했지만, 옴스테드의 진짜 목적은 영국의 선진 영농 기술을 시찰하고 습득하여 자신의 농장을 개선하고 나아가 자기 같은 미국의 소위 젠틀맨 농부들(gentleman farmers)을 계몽하려는 것이었다. 귀국 후 여행에서 보고 들은 것을 정리해 『Walks and Talks of an American Farmer in England(미국 농부의 영국 도보 여행기)』(1852)를 썼다.1 여정은 배를 타고 도착한 리버풀에서 시작한다. 시내를 관광하고, 리버풀 교외의 막 성장하기 시작한 도시 버큰헤드(Birkenhead)를 방문한다. 배에서 만난 현지인의 조언에 따라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요기를 하러 들른 빵집의 주인은 버큰헤드를 떠나기 전에 꼭 “우리의 ‘새’ 공원”을 보라고 추천했다. 이때까지도 공원은 옴스테드에게 신도시 버큰헤드의 구경거리 중 하나에 불과했다. 공원 초입의 정원에서 그는 5분간 감탄한 뒤 자연과 예술의 관계를 숙고한다. 민주주의 국가인 미국에도 이 ‘민중의 정원(People’s Garden)’과 비교할 만한 곳이 없음을 인정한다. 소낙비를 피하러 간 탑 아래에서는 온갖 계층의 사람이 모여 있는 장면을 보고 무척 기뻐한다. (후략) *환경과조경401호(2021년 9월호)수록본 일부 각주 1. 1851년 『Horticulturalist』에 게재한 “The People’s Park at Birkenhead, Near Liverpool(리버풀 인근 버큰헤드의 민중 공원)”을 수정 및 보완해 엮은 책이다. 필자는 2002년 개정판을 참조했다(Frederick Law Olmsted, Introduction by Charles McLaughlin, Library of AmericanLandscape History). 국내에는 『후레드릭·로·옴스테드 전기』(도서출판 조경, 2003)에 일부 소개된 것 외에는 아직 본격적인 옴스테드 연구서나 번역서가 없다. 황주영은 서울대학교 협동과정 조경학전공에서19세기 후반 도시 공원의 모더니티에 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뒤파리 라빌레트 국립건축학교에서 박사후 연수를 마쳤다.미술과 조경의 경계를 넘나들며 문화사적 관점에서정원과 공원, 도시를 보는 일에 관심이 많으며,이와 관련된 강의와 집필, 번역을 한다. 그러는 동안수많은 책을 사거나 빌렸고, 그중 아주 일부를 읽었다.
  • 400호 발간, 새로운 다짐
    국내 유일의 조경 전문지 월간 『환경과조경』의 통권 400호 발간, 새로운 역사를 시작합니다. 『환경과 조경』은 오휘영 초대 발행인(전 한양대 교수)이 초창기 주축 조경인들과 뜻과 힘을 모아 1982년 7월, 계간 『조경』으로 창간되었습니다. 1985년 6월(통권 9호)에는 『환경 그리고 조경』으로, 10호부터는 『환경 & 조경』으로 제호를 바꿨고, 1992년 1월(통권 45호)부터 『환경과조경』이라는 제호를 쓰면서 월간 잡지로 전환되었습니다. 그 뒤 2013년 7월호(통권 303호)에 이르기까지 한 번의 결호도 없이 31년간 계속 간행된 『환경과조경』은 한국 현대 조경사의 살아있는 역사, 조경 분야 대표 언론으로서 국내외 조경 관련 정보와 조경인들의 소통을 위한 중추 역할을 했습니다. 2013년 8월호부터 발행인을 맡은 저는 배정한 편집주간(서울대 교수)과 함께 대대적인 리뉴얼을 준비했고, 2014년 1월호(통권 309호)를 기점으로 월간 『환경과조경』의 새로운 시작을 선언했습니다. 새로운 『환경과조경』은 무엇보다 조경 언론으로서의 정체성과 독립성을 기반으로 ‘조경 문화 발전소’를 지향했습니다. 또한 ‘한국 조경의 문화적 성숙을 이끄는 공론장’, ‘조경 담론과 비평을 생산하고 나누는 사회적 소통장’, ‘세계적 동시대성과 지역성을 수용하고 발굴하는 전진 기지’라는 세 가지 비전을 좌표로 삼았습니다. 새롭게 탄생한 『환경과조경』은 한국을 넘어 지구촌으로 그 위상을 넓히고자 영문 제호를 laK(landscape architecture Korea)로 변경하고 설계, 비평, 이론을 중심 내용으로 다루며, 동시대 조경 담론의 소통장 역할을 해왔습니다. 이러한 노력의 결실로 월간 『환경과조경』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잡지협회가 주관하는 ‘우수콘텐츠잡지’에 7년 연속 선정되었고, 자매 브랜드인 도서출판 한숲과 도서출판 조경이 출간한 서적들이 2015년부터 2018년까지 4년 연속 세종도서(구 문화체육관광부 우수교양도서)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환경과조경』은 한국 조경의 성장 신화를 기록해 왔을 뿐만 아니라 조경의 새로운 영역과 쟁점을 발굴하고 그 경계를 확장해 왔습니다. 급변하는 정보화시대의 물결에 발맞춰 2016년 9월에는 공식 홈페이지 ‘e-환경과조경’을 리뉴얼 오픈했고, 전문적 깊이와 풍부한 콘텐츠를 바탕으로 인터넷 기반에서도 실시간 서비스를 제공하여 매체의 시간적 ‘동시화synchronization’를 이뤘습니다. 또한 조경, 건축, 도시 등 업역의 경계를 넘어 매체 접근의 공간적 한계를 극복하면서 지식혁명시대의 에너지원인 무한한 지식의 공급처로서 새로운 출발을 알렸습니다. 특히 국내 최대 뉴스 플랫폼인 네이버와 다음카카오 포털에 조경 뉴스를 제공하고, 조경 매체로는 유일하게 국내 뉴스 소비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네이버와 제휴에 성공함으로써 정부, 지자체, 공기업은 물론 국회의원실 등 입법 기관에 조경 분야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e-환경과조경’ 뉴스는 지난해 1일 평균 방문자 수 10만 명을 돌파하고 2020년 K-WEB이 인증하는 과학환경뉴스 분야 연간 1위를 기록하며 ‘Category TOP 연간 인증’ 마크를 획득하기도 했습니다. 환경과조경은 2016년부터 ‘서울정원박람회’와 ‘LH가든쇼’ 등 국내 주요 정원박람회에 주관사로 참여하여 시민들의 일상적 정원 문화 확산과 정원 산업의 활성화에도 기여하고 있습니다. 또한 환경과조경은 전국 조경학과 학생들의 꿈의 무대인 ‘대한민국 환경조경대전’을 한국조경학회와 함께 주관하고 있으며, 조경 분야 발전에 공헌한 분들의 업적을 기리고 미래의 조경을 이끌어갈 새로운 인재를 발굴하기 위해 ‘올해의 조경인’과 ‘젊은조경가’를 제정, 운영하고 있습니다. 지난 1998년 제정된 ‘올해의 조경인’에는 지금까지 총 86명이 선정되었습니다. ‘젊은 조경가’는 한국 조경의 내일을 설계할 젊은 조경가를 발굴하고 그들의 작품과 생각을 널리 알리고자 지난 2018년에 새롭게 제정하여 현재 5명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습니다. 오늘의 한국 조경에는 기회와 위기가 공존하고 있습니다. 기후 위기와 팬데믹 시대 속에서 조경의 위상과 역할은 높아지고 있는 반면, 제도권의 조경은 여전히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조경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대중적 수요가 증가하고 일상 속의 조경 문화는 풍요로워졌는데도 정작 조경이 위기를 겪고 있는 것은, 조경을 정책적 어젠다로 만드는 대응이 없었고 구심점 없는 관련 단체들의 통합적 실천 부재 때문일 것입니다. 이제 400호를 넘어 500호를 바라보는 『환경과조경』은 한국 조경의 역설적 풍경을 정면으로 마주하면서 조경의 미래 지향과 좌표를 설정하고, 변화하는 시대의 한국 조경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다는 사명을 가지고 나아갈 것입니다. 숱한 어려움 속에서도 통권 400호를 발간할 수 있게 된 것은 『환경과조경』을 변함없이 아끼고 사랑해주신 독자 여러분들의 관심과 한국 조경이라는 든든한 울타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종이 매체의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는 현실이지만 한국 조경에 꼭 필요한 담론과 정보를 제공하는 일이 필요하고 중요하다는 점을 다시 한 번 마음 깊이 새깁니다.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며 마음을 다잡아봅니다. 감사합니다.
  • [에디토리얼] 환경과조경, 500호 시대를 향해
    400번째 『환경과조경』이다. 1982년 7월 창간한 『환경과조경』은 한국 현대 조경의 성장사를 기록하고 저장해왔으며, 국내외 조경 설계와 이론의 쟁점을 발굴하고 그 지평을 확장해왔다. 39년의 긴 여정, 변함없이 함께해주신 독자 여러분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지면 곳곳에 녹아든 여러 조경가, 필자, 편집자, 디자이너, 사진가, 번역자의 노력과 정성에도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올해는 다양한 기획 지면을 통해 『환경과조경』의 발자취를 되짚었다. 396호(2021년 4월호)에는 그간의 표지와 책등을 한데 모아 특집 ‘표지 탐구, 책등 탐방’을 구성했다. 잡지의 얼굴 역할을 한 39년간의 표지와 책등을 넉넉한 리듬으로 훑어보면서 『환경과조경』이 그려온 지형의 주요 지점을 조감하고자 했다. 397호(5월호) 특집 ‘편집자들’에는 추억 속의 편집자 김정은, 백정희, 손석범, 양다빈, 조수연, 조한결을 초대했다. 그들은 “당신에게 『환경과조경』은 어떤 잡지였으며, 조경이란 무슨 의미였나요?”란 질문을 받고 그들이 엮었던 옛 기사와 꼭지들을 소환해 당시의 시각으로 다시 살폈다. 398호(6월호) 특집 ‘읽는 행위를 설계하는 법’에서는 『환경과조경』의 편집 디자인 변천사를 다뤘다. 40년 가까운 긴 세월, 잡지의 콘텐츠뿐 아니라 그것을 담는 형식도 여러 차례 바뀌었다. 판형, 글꼴, 줄 간격, 글줄의 길이, 여백, 그림과 사진 배치, 머리말.꼬리말과 쪽수 위치 등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촘촘히 되돌아봤다. 399호(7월호) 지면은 추억의 연재물들로 채웠다. 지난 3월과 4월에 진행한 독자 대상 설문 ‘다시 읽고 싶은 연재는?’의 결과에 편집부의 기획을 보태 옛 연재 여덟 꼭지를 재구성한 ‘연재, 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꾸렸고, 열다섯 명의 필자가 기꺼이 참여해주었다. 1월(393호)부터 지난달(399호)에 걸쳐 실은 ‘『환경과조경』 400호 돌아보기’ 특집은 편집자 김모아, 남기준, 배정한, 윤정훈과 편집위원 박승진, 박희성, 최영준, 최혜영이 옛 『환경과조경』을 50권씩 나눠맡아 재독하고 재조명한 연속 기획물이다. 이달 400호에는 이 특집 원고 여덟 편을 다시 묶어 싣는다. 이번 호에는 『환경과조경』 400권의 목차를 모두 모았다. 『환경과조경』 39년 역사를 세로지르는 총목차는 그 자체만으로도 한국 현대 조경의 궤적을 담은 아카이브 역할을 하리라 기대한다. 잡지 400권의 목차 모음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일은 마치 국어사전을 ㄱ에서 시작해 ㅎ까지 순서대로 읽는 것처럼 지루하겠지만, 마음먹고 한번 도전해보시길 권한다. 한국 조경 50년사의 큰 줄기를 따라 걷는 유장한 산책을 즐길 수 있을 것이며, 산책길 곳곳에는 전혀 기대하지 않은 보석들이 박혀 있을 것이다. 400호 교정본을 넘기다가 문득 500호가 발간될 시점이 궁금해졌다. 연필로 끄적여 따져보니, 2029년 12월이다. 400호를 낸다는 것, 그것은 멀지 않은 500호 시대를 준비하며 조경 저널리즘의 새좌표를 찾는 프로젝트의 시작이다. 이번 400호 발간과 내년 7월 창간 40주년을 계기로 편집부는 독자 여러분의 다양한 의견을 청취하고 치열하게 토론하며 500호 시대의 『환경과조경』을, 2030년대 한국조경 저널리즘의 지향을 질문하고 그 답을 구해볼 작정이다. 이 프로젝트에서 늘 경계해야 할 점은 『환경과조경』이 국내 유일의 조경 전문지라는 사실이다. 경쟁이 없으면 지향을 잃기 쉽다. 실험과 창의를 스스로 막거나 늦춘다. 안주하기 마련이다. 100m 달리기이든 42.195km 마라톤이든 혼자서 뛰면 자기 기록을 깨기 어렵다. 힘든 조건을 감내하며 분야 유일의 전문 잡지를 발행하고 있다는 점, 『환경과조경』의 자부심이다. 하지만 유일하다는 조건 때문에 자칫하면 『환경과조경』은 제도권 조경계만을 대변하는 유사 기관지 혹은 지향점 없이 모든 걸 쓸어 담는 백화점식 잡지로 흐르기 쉽다. 이러한 난맥을 스스로 경계하면서 『환경과조경』이 500호 시대를 향해 묻고 답할 과제는 무엇일까. 첫째는 한국 조경의 전문성(professionality)과 수월성(excellence)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일이다. 그것은 곧 영역을 지켜야 한다는 불안감과 넓혀야 한다는 강박에 이중으로 피로한 한국 조경계에 정체성을 부여하는 일이다. 둘째는 조경 저널리즘의 역할을 기록과 비평을 넘어 이슈 생산과 소통으로 확장하는 과제다. 셋째는 젊은 세대 조경가와 미래 세대 비평가를 발굴하고 그들과 함께 한국 조경의 2030년대를 기획하는 일이다. 세 가지 과제를 다각도로 풀어갈 도전적 노정에 독자 여러분도 참여해주시길 부탁드린다. 박명권 발행인과 남기준 편집장을 도와 편집주간 이름표를 달고 『환경과조경』에 동승한 게 309호(2014년 1월호)부터다. 400호에도 참여하게 된다면 독자 400명을 초대해 심포지엄과 파티를 결합한 환상의 이벤트를 열겠다는 구상이 코로나로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취소가 아니라 연기라고 합리화하며 아쉬움을 달랜다. 무한 공급 맥주와 함께 펼쳐질 신나는 향연을 약속드리며.
  • [에디토리얼] 그때 그 지면을 추억하며
    짙은 한여름 냄새로 후끈한 7월, 『환경과조경』은 400호 맞이 특집으로 추억의 연재물들을 소환한다. 지난 3월과 4월에 걸쳐 독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 조사 ‘다시 읽고 싶은 연재는?’의 결과에 편집부의 기획을 보태 옛 연재 여덟 꼭지를 다시 지면에 올린다. 리부트(reboot), 리메이크(remake), 오마주(hommage, 세 갈래로 변주되는 형식을 취했다. 리부트. 예비 조경가들의 가슴을 쿵쾅거리게 했던 인기 꼭지 ‘그들이 설계하는 법’(2014년 1월호~2018년 12월호)에 최윤석(그람디자인)과 강한솔+김태경+오승환(얼라이브어스)을 초대해 다음 여정을 향한 시동을 다시 건다. ‘또 다른 그들이 설계하는 법’인 셈이다. 2014년 잡지 리뉴얼과 함께 공들여 기획한 ‘그들이 설계하는 법’은 5년간의 긴 항해를 이어가며 동시대 한국 조경가 스무 명(팀)의 작업 과정과 성과를 선보이고 그 이면의 생각을 독자들과 나눴다. ‘그들이 설계하는 법’은 조경가 스스로 설계 사유를 정리하는 기회이자 동료 조경가와 학생들에게 토론의 소재를 펼치는 계기였으며, 한국 현대 조경의 한 시절을 담는 생생한 아카이브이기도 했다. 리메이크. 열독률 높았던 연재 글들의 필자를 다시 초대해 미처 못 마친 이야기, 그간의 변화,새로운 물음과 답을 청취한다. 김아연(서울시립대)과 정욱주(서울대)가 번갈아 가며 조경설계 과정의 열두 개 열쇳말을 풀어갔던 연재 ‘스튜디오 101, 설계를 묻다’(2009년 1월호~2010년 3월)는, 설계 스튜디오에서 머리를 싸매며 밤을 밝히던 학생들에게 등대 역할을 했다. 십 년을 훌쩍 넘겨 다시 만난 그들은 대담 형식으로 구성한 이번 리메이크 버전에서 설계 스튜디오 안팎을 가로지르는 새로운 질문들을 던진다. 개념 상실하기, 말로 때우기, 분석만 하기, 맥락 무시하기, 그림 안 그리기, 그림만 그리기, 베끼기, 꿈꾸기, 유치해지기, 저항하기, 남에게 미루기, 딴짓하기. 학교에서 배운 내용과 다른 정반대의 가치들, 정正이 아닌 반反의 설계를 모색한 ‘스튜디오 201, 설계를 다시 생각하다’(2014년 1월호~2015년 1월호)의 김영민(서울시립대)은 이번에는 ‘지향하기’를 제시한다. “함께 지향하고, 따로 지향하라.” 그가 말하는 좋은 조경설계의 필요조건이다. 좋은 도시란 무엇인가. 이 복잡한 난제에 도전하며 한국 도시설계의 이론적 경계를 확장한 ‘그들이 꿈꾼 도시, 우리가 사는 도시’(2015년 1월호~12월호)의 김세훈(서울대)은, 연재의 막을 내린 지 5년 반이 지난 지금도 같은 화두를 놓지 않고 있다. 2021년 여름, 그는 “좋은 도시란 다양한 변화에 활짝 열려 있는 도시”라고 말한다. 그러한 도시는 “과거에 개발이 완료되어 구조와 외관, 즉 겉면은 바삭하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충분히 말랑말랑해 지금보다 좋아질 여지가 큰 ‘겉바속촉’의 도시”다. 여러 도시의 재생과 문화적 풍경을 탐색한 연재 ‘떠도는 시선들, 큐레이터 뷰’(2016년 1월호~2017년 1월호)의 심소미(독립 큐레이터)는, 이번 리메이크 글에서 팬데믹 이후의 도시 공간과 문화·예술의 지형 변화를 포착한다. 그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코로나19로 봉쇄된 도시 공간에서 비제도권 예술가, 문화 활동가, 여러 시민 주체가 익명의 거리 예술가로 등장하면서 연대하는 흐름을 목격할 수 있다. 315호부터 374호까지 60회를 이어간 ‘시네마 스케이프’(2014년 7월호~2019년 6월호)는 그 어느 지면보다 독자들의 시선을 붙잡은 인기 꼭지였다. 2년 만에 다시 초대된 서영애(이수, 보라)는 김초희 감독의 ‘찬실이는 복도 많지’를 통해, 일상의 소소한 행복과 긴밀히 접속하는 소박한 공간들의 의미를 짚는다. 오마주. 옛 연재 글의 주제와 형식을 다른 필자의 시각으로 전개한다. 김영표(대구대)의 ‘스케치업으로 하는 3D 조경설계’(2005년 2월호~6월호)를 비롯해 컴퓨터 조경설계와 관련된 여러 연재물을 오마주하며 나성진(서브디비전)과 조용준(CA조경)은 계속 진화하고 있는 설계 매체의 가능성을 진단한다. 나성진의 “그래스호퍼로 하는 조경설계”와 조용준의 “곡선으로 하는 조경설계”는 재현의 도구를 넘어 생성의 매체로 작동하고 있는 컴퓨테이셔널 디자인의 새로운 지평을 보여준다. 김아연, 김용택, 박승진, 이홍선, 정욱주, 다섯 명의 조경가가 매달 답사와 토론을 통해 들려주던 ‘공간 공감’(2014년 1월호~2016년 12월호)을 이번에는 한 독립 잡지의 젊은 편집자들이 맡았다. 도시 경관과 지역 사회의 다채로운 현상과 사례를 이론과 비평의 틀로 포착하는 『ULC』의 박영석, 신명진, 임한솔이 용산공원 부분개방 부지의 장소성과 공간감을 서로 다른 시선으로 해석한다. 40년 가까운 긴 시간, 399권의 『환경과조경』에는 많은 필자의 연재 글이 차곡차곡 쌓였다. 연재 글쓰기는 스스로 ‘글 감옥’에 갇히는 일이고 피 말리는 마감의 늪으로 자신을 내모는 일이다. 필자들의 분투와 노고에 깊이 감사드린다. 통권 400호 발간을 맞아 매달 50권씩 『환경과조경』을 다시 읽는 연속 기획, 이번 달이 마지막 차례다. 윤정훈 기자가 2013년 5월호(301호)부터 2017년 6월호(350호)를, 최영준 편집위원이 2017년 7월호(351호)부터 2021년 7월호(399호)를 리뷰한다. 다음 달, 드디어 400호가 나온다.
  • [풍경 감각] 한때 나무가 있던 자리
    대학교 정문 앞 광장은 원래 작은 숲이었다.군대에 다녀오니 가장 큰 나무 세 그루만 띄엄띄엄 남은 채 광장이 되어 있었다.학기가 지날수록 나무들의 잎은 적어졌고 줄기에 박힌 주사는 많아졌다.생태연구실 사람들은 공사 과정에서 뿌리가 많이 상했고 급격히 변한 환경에 오래된 나무가 적응하지 못해 죽어가는 것 같다고 했다.안타까웠다. 그렇지만 새로 생긴 광장이 좋기도 했다.정문을 가로막는 어두운 숲과 달리 탁 트여 시원해보였기 때문이다.깔끔하게 포장된 광장엔 때때로 알록달록한 축제 부스가 들어섰다.학생들은 기타와 젬베를 연주하곤 했다. (후략) 조현진은 조경학을 전공한 일러스트레이터다. 2017년과 2018년 서울정원박람회, 국립수목원 연구 간행물 『고택과 어우러진 삶이 담긴 정원』, 정동극장 공연 ‘궁:장녹수전’ 등의 일러스트를 작업했고, 식물학 그림책 『식물 문답』을 출판했다. 홍릉 근처 작은 방에서 식물을 키우고 그림을 그린다. [email protected]
  • [나의 미개봉작 상영기] 철쭉과 억새 사이
    황매산 군립공원 입구 조경 계획 봄에는 철쭉, 가을에는 억새가 장관을 이루는 황매산은 영남의 금강산이라 불리며 많은 관광객을 끌어모으는 합천의 대표적 관광 명소다. 이곳이 철쭉과 억새로 대표되는 독특한 경관을 갖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 1984년 정부의 축산 장려 정책의 일환으로 황매산 입구부에 180헥타르에 달하는 대규모 목장을 조성해 360여 마리의 젖소를 사육하기 시작했다. 젖소와 양들이 독성이 있는 철쭉만 남기고 주변의 풀을 먹는 바람에 자연스레 대규모 철쭉 군락이 형성되었고, 1990년대 중반부터 농가들이 낙농업을 포기하고 나간 자리에 억새가 무성히 자라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지역을 대표하는 관광지이기에 입구부를 대상으로 여러 차례 조경 계획이 진행되었다. 하지만 대부분 황매산이 가진 독특한 경관을 주인공으로 만들기보다 철쭉제 등 일회성 행사를 지원하는 이질적 요소를 조성해 오히려 원 경관을 훼손하는 식이었다. 따라서 계획의 목표는 처음부터 명확했다. 인간의 개입과 자연의 반응이 적층된 황매산의 역동적 경관을 더욱 선명히 드러낼 것, 황매산의 풍경과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 요소를 제거하고 원 경관을 가리지 않는 선에서 물리적 계획을 세울 것. 기본계획과 기본설계는 JWL이, 실시설계는 그람디자인이 진행했다. 공사 중 변수가 너무 많이 발생해 재설계에 준하는 공사용 샵드로잉을 매주 작성하고 이를 현장에서 시공 소장과 논의하며 우여곡절 끝에 완성시켰다. 절반의 성공, 식재 설계 황매산에 올라서면 사방에 펼쳐진 억새 경관이 매우 인상적이다. 이를 입구부에 함축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대상지에 자생하는 억새류와 수크령류, 새풀류, 파니쿰류를 띠 형식으로 병치해 방문객들에게 각 식물이 지닌 다양한 질감과 색채를 전달하고자 했다. 실제로는 의도한 바의 50% 정도만 구현되었는데, 대상지의 기후 조건과 그라스류의 생장이 갖는 관계를 깊게 분석하지 않고 미적인 부분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새풀류는 생장이 더뎌 질감이 거의 드러나지 않은 반면 압도적인 생장 속도를 보인 파니쿰류의 질감이 지배적 경관이 되어버렸다. 전반적으로 그라스 군락의 크기가 너무 커져서 공들여 설계한 지형의 아름다움이 묻힌 점 또한 아쉬움으로 남는다. (후략) *환경과조경399호(2021년 7월호)수록본 일부 원종호는 서울대학교 조경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쳤다. KnL환경디자인스튜디오에서 설계의 기본을 익혔으며, 현대건설에 근무하며 해외 현장에서 시공 경험을 쌓았다. 현재는 제이더블유랜드스케이프(JWL)에서 훌륭한 동료들과 함께 다양한 규모의 공간을만들어가고 있다. 조경가가 문화인으로 인정받는 날까지 끊임없이생각하고, 공부하고, 실험해 볼 생각이다.
  • [사람과 사람을 잇는 사람들] 미완의 정원으로 대화의 씨앗을 심다
    한국에서 해외의 주민 자치 사례를 꼽을 때 자주 언급되는 것이 일본의 자치회自治(jichikai)1다. 이 자치회는 한국의 통·리 단위 수준에서 결성되며, 원칙적으로는 정해진 구역 내에 거주하는 모든 세대로 조직되고 보통 50~200세대 사이의 규모다. 인구 고령화와 도시 집중화를 거치며 기능을 많이 잃었지만, 지진과 같은 대참사가 일어났을 때 작동하는 사회 안전망으로써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일본에 약 30만 개가량 되는 자치회 중에서도 치바 현의 마쓰도 시 이와세 자치회는 조금 특별하다. 자치회 위원들이 행정 업무를 위해 사용하는 자치회관에는 보통 나이가 있는 관리인이 상주하는데, 이곳에는 젊은 학생 부부가 살고 있다. 이와세 자치회의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그룹의 구성원들이 서로 활발한 상호작용을 통해 창의적인 결과를 도출하도록 돕는 전문가)이자 동네 어린이들의 친구인 미츠나리 테라다와 그의 아내 마리아 에르밀로바다. 둘은 치바 대학교 원예대학에서 공부하던 5년 전부터 자치회관에서 거주하며 주민들과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화상으로 커뮤니티 안에 속해서 매일 화초에 물 주듯이 공동체를 살피며 키워가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현재 거주하는 이와세2는 어떤 곳인지, 그곳에서 자치회는 어떤 역할을 하는지 궁금하다. 치바 대학교 원예대학에서 석사과정을 하고 있을 때 이와세 자치회의 커뮤니티 퍼실리테이터로 초대를 받았다. 당시 내 전공이 교육학이라는 걸 안 자치회장이 지역 아이들을 위한 축제 준비를 요청했다. 그렇게 2016년 2월 마리아와 함께 이와세 자치회관 2층의 관리자실에 입주했고, 무료로 거주하며 이와세 커뮤니티와 협력하고 있다.(미츠나리) 2015년 가을에 치바 대학교에서 환경계획학 박사과정을 밟기 위해 러시아에서 일본으로 건너왔다. 학부에서는 생태학을 전공했는데, 그 과정에서 도시재생과 도심의 녹지 보존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생태학은 이론적 연구에 그치거나 실천을 하려 해도 관료적 절차에 의해 제한되는 경향이 있어 답답함을 느꼈다. 도시계획을 통한 보다 실천적인 접근법을 배우기 위해 일본에 왔고, 학교에서 미츠나리를 만났다.(마리아) 일본 자치회의 역사가 꽤 역사가 긴 것으로 알고 있다. 생성 배경과 시대적 변화에 따라 자치회의 역할이 어떻게 달라졌는가. 자치회는 일본의 농업 사회에 기반을 둔 개념이다. 동네 단위라는 물리적 영역에 토대를 두고 있는데, 지역 사회 공동의 이익을 위한 마을 축제를 열거나 다양한 자원봉사를 하며 주민들이 서로 연결되고 협력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가로등 관리 같은 커뮤니티 시설을 유지하고 보수하는 일도 하지만, 요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방범 활동이나 재난 관리를 통해 동네의 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이다. 과거의 자치회는 어린이부터 부모, 나이 많은 어르신까지 다양한 세대가 어우러져 소속감을 느낄수 있는 형태였는데, 지금은 대체로 노인 세대만 참여하는 상황이다. 젊은 세대는 자치회가 구세대 문화라고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자치회 행사에서 여자는 부엌에서 요리하고 남자만 중요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고령화 사회에 진입하면서 다양한 세대를 연결하는 일이 중요해지고 있고, 자치회에서도 젊은 세대를 다시 끌어들이고자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이와세 자치회장도 이 동네가 노인 중심 공간이 되는 것을 우려해 우리가 이곳의 주민으로서 분위기를 바꿔보기를 바랐던 것 같다. 퍼실리테이터로서 세운 전략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세대를 연결해 안전망을 튼튼히 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어린이 참여와 생태학적 기술을 이용해 조경 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이었다. (후략) *환경과조경399호(2021년 7월호)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 일본은 읍면동 단위에도 동사무소 대신에 협의회 성격의 주민 자치회가 결성돼 있다. 자치회는 1800년대 후반, 메이지 시대 때 행정 말단 업무를 맡아 실질적인 주민 생활, 생산 활동의 중요 기능을 담당했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전시 체제 강화의 도구로 사용되며 부정적인 인식이 생기기도 했다. 2. 이와세는 마쓰도 시의 통 단위에 해당하는 지역 중 하나다. 630세대가 거주하고 있지만 자치회에서 활동하는 회원은 100세대 미만이다. 참고로 마쓰도 시에는 약 24만 세대가 거주한다. 이와세는 1970년대에 도쿄로 통근하는 사람들을 위한 주택 도시로 형성되어 지금까지도 주거지가 많다. 30분이면 동네 한 바퀴를 다 돌 수 있을 정도로 작은 커뮤니티이기도 하다. 조성빈은 유년 시절을 미국과 한국의 다양한 도시에서 보냈고,공간과 도시에 매료되어 한국과 노르웨이에서 건축과 조경을 공부했다.늘 경계에 있는 사람으로 살아와 깊이는 부족해도 본질에 관심이 많고,관계에서든 공간에서든 진정성을 추구한다.조경설계 서안을 거쳐 조경작업소 울에서 놀이터와 커뮤니티 디자인을 하고 있다. 김연금은 서울 옥수동에서 태어나 살고 있고, 2009년부터 옥수동 옆 약수동에서 조경작업소 울을 운영하고 있다.『텍스트로 만나는 조경』,『커뮤니티디자인을 하다』,『소통으로 장소만들기』,『우연한 풍경은 없다』등 다양한 집필 작업을 해왔다. 2020년에는 서울시립대학교 명예교수인 이규목 교수를 비롯해 여덟 명의 조경가의 글을 엮어『이어 쓰는 조경학개론』을 펴냈다.
  • [북 스케이프] 『친화력』과 괴테의 화학 실험 정원
    과학 기술 용어를 일상 속에서 쓰는 일은 낯설지 않다. ‘지속가능한 개발’이나‘회복탄력성’같은 예를 들지 않아도,당황하면 머릿속‘서버가 다운’되고,저녁이면 스마트폰뿐 아니라 나도‘방전’된다.디지털 세상에는 각종‘밈(meme)’이 돌아다니고,학기말이 가까워질수록‘엔트로피’가 증가하면서 방은 점점 더 엉망이 된다.그리고 사람 간 성향이 잘 맞아 조화를 이루면‘케미(스트리)’가 좋다고 한다.마지막 예는 근래 생겼다고 생각했는데,놀랍게도 이미19세기에,그것도 대문호 괴테가 소설『친화력(Die Wahlverwandtschaften)』(1807)에서 사용했다.1친화력(affinity),혹은 선택적 친화력(elective affinity)은 특정 물질끼리 강하게 결합하려는 성질을 뜻하는 화학 개념이다.괴테는 사람,특히 연인 관계에 이 개념을 도입해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이 관계의 변화에서 정원과 자연은 배경 이상의 역할을 한다. 부유한 귀족 에두아르트와 샤로테는 재혼 부부다.젊은 시절 서로에게 끌렸지만 각자의 사정으로 다른 이와 결혼한다.그러다 둘 다 배우자와 사별하고 우여곡절 끝에 재혼한다.동화였다면 이들은 에두아르트의 시골 장원에서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겠지만,애틋한 사랑도 일상에서는 담백해지기 마련이다.단조로운 시골 생활이 지루해진 에두아르트는 어려움에 처한 친구인 대위를 집에 들일 생각을 한다.샤로테는 처음에는 반대했지만,곧 기숙 학교에 있는 조카 오틸리에도 집에 들인다는 조건으로 동의한다.그런데 막상 네 사람이 함께 있게 되자 상황은 미묘하게 바뀐다. (후략) 각주 1.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친화력』은 민음사(김래현 역, 2001)와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오순희 역, 2013)등에서 출간되었다. *환경과조경399호(2021년 7월호)수록본 일부 황주영은 서울대학교 협동과정 조경학전공에서 19세기 후반 도시 공원의 모더니티에 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파리 라빌레트 국립건축학교에서 박사후 연수를 마쳤다. 미술과 조경의 경계를 넘나들며 문화사적 관점에서 정원과 공원, 도시를 보는 일에 관심이 많으며, 이와 관련된 강의와 집필, 번역을 한다. 그러는 동안 수많은 책을 사거나 빌렸고, 그중 아주 일부를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