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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던스케이프] 제국시대의 경마
    인상파 회화의 감상 포인트는 빛을 고려한 화사한 색감과 생동감 있는 붓 터치에 있지만, 화폭에 담긴 사람들과 풍경을 보는 재미도 특별하다. 빛을 쫓는 데 진심이었던 인상파 화가들은 실내에서 그림을 그리는 대신 이젤을 들고 야외로 뛰쳐나갔고, 화폭에는 마치 사진을 찍듯 포착한 순간의 장면이 담겼다. 그들의 그림에는 일출과 일몰의 장관,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 풍경 등 오묘하고도 역동적인 자연 경관의 모습도 있지만, 증기 기관차가 들어오는 기차역, 거대한 배들이 들어선 항구, 군중이 가득한 공원 등 과거에는 볼 수 없던 도시의 풍경도 종종 등장한다.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1832~1883), 에드가 드가Edgar De Gas(1834~1917) 등이 즐겨 그린 파리 볼로뉴 숲의 롱샹 경마장l’hipodrome de longchamp도 과거에는 볼 수 없던 낯선 근대의 풍경이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경마가 더 이상 왕족과 귀족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증거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근대적이다. 고대 그리스, 로마제국 시대부터 시작된 경마는 유럽에서 왕족이나 귀족 자신들이 소유한 마필(馬匹)의 능력을 견주는 데 주로 이용됐다. 하지만 프랑스 혁명 이후 경마가 하나의 오락으로 여겨지면서 경마장은 부르주아 시민 계급이 모이는 사교장으로 자리매김했다. 제국주의 시대가 열린 나폴레옹 1세 때는 군사력에 직결되는 마종 개량이나 혈통 보전, 마필 산업 육성 등이 중요했기 때문에, 전쟁에 투입될 빠르고 힘 좋은 말을 선별하는 것이 경마의 최우선 목적이었다. 그러나 경마는 박진감 넘치는 속도감에 경쟁이라는 흥미진진함이 직관적으로 드러나는 것이어서 경마장은 유희 시설로 더할 나위가 없었다. 크고 중요한 경주가 열릴 때면, 사람들은 잔뜩 꾸민 화려한 모습에 부푼 기대감과 설렘을 안고 경마장을 찾았고 이곳은 패션과 유행을 선도하는 문화 중심지가 됐다. 유럽에서 진화한 경마장의 이중적 기능, 즉 군마 개량과 위락 기능을 적절히 수용한 곳은 일본이다. 일본은 11세기부터 제전경마(祭典競馬)라고 하여, 궁중 의례나 종교 의식을 할 때 말과 함께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서구식 경마는 이런 전통과는 무관하게 오직 위락을 목적으로 도입됐다. 경마를 도입한 주체가 거류지의 외국인이었기 때문이다. 일본의 첫 서구식 경마는 1862년 봄 요코하마의 명승지 슈칸벤텐사(洲干弁天社) 뒤 서쪽 해안 매립지에 있던 무사의 마장에 환형의 트랙과 경주를 위한 정식 프로그램을 도입하면서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곳은 오직 거류 외국인이 즐기기 위한 곳이었다. 내국인을 위한 경마장은 1866년부터 1867년까지 요코하마 네기시(根岸)에 조성된 것이 시초다. 막부에 의해 계획·준공된 서구식 경마장인 ‘네기시경마장’을 시작으로, 관영 종묘 회사인 미타육종장(三田育種場)의 미타경마, 우에노공원의 시노바즈노이케(不忍池) 호안에서 실시된 공동 경마 등 전국의 마산지(馬産地)마다 다양한 경마장이 속속 생겨났다. 그러나 서양 경마를 도입한 직후만 하더라도 일본에서는 경마장을 단순한 위락 시설로 보았기 때문에, 마산지마다 다양한 경기를 개최했음에도 불구하고 대중적 인기는 많지 않아 대부분 흥행에 실패하여 경영난을 겪었다. 참고문헌 한국마사회, 『한국경마60년사』, 1984. 山崎有恒, “近代日本の植民地と競馬場”, 『第85回 學術大會 韓國日本硏究團體 第1回 國際學術大會』, 2012, pp.222~225. 박희성, “신설리경마장 건설과 1920-30년대 동대문 밖 도시개발”, 『서울학연구소 심포지엄 발표자료』, 2018. "대규모의, 8만 9천 평 되는, 경성에 大競馬場, 기본금은 60만 원으로, 경마장은 청량리나 의정부?”, 「매일신보」 1910년 6월 18일. *환경과조경410호(2022년 6월호)수록본 일부 박희성은 대구가톨릭대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한중 문인정원과 자연미의 관계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에서 건축과 도시, 역사 연구자들과 학제간 연구를 수행하면서 근현대 조경으로 연구의 범위를 확장했다. 대표 저서로 『원림, 경계없는 자연』이 있으며, 최근에는 도시 공원과 근대 정원 아카이빙, 세계유산 제도와 운영에 관한 일을 하고 있다.
  • [에디토리얼] 중국 현대 조경의 진격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한 기대가 부풀고 있는 봄의 절정, 5월의 특집 지면을 중국 조경설계사무소 Z+T 스튜디오의 근작들로 엮었다. Z+T를 이끄는 조경가 장둥(Zhang Dong)을 처음 만난 건 2019년 1월이었다. 『빅 아시안 북(The Big Asian Book of Landscape Architecture)』(Jovis, 2021) 출판 기획 워크숍을 위해 베이징에 모인 서울의 오피스박김, 상하이의 Z+T, 상하이‧서울‧선전의 랩디에이치(Lab D+H)(본지 2019년 6월호 특집), 도쿄의 오버랩(Overlap), 싱가포르의 샐러드 드레싱(Salad Dressing), 방콕의 SCHMA 등 아시아 여러 나라의 젊은 조경가들은 최근의 혁신적 작업들을 공유했을 뿐 아니라, 식민지 근대화와 파행적 도시화의 유산, 전통에 대한 강박과 피로, 서구에서 수입한 조경 직능의 불안정성과 조경가 간 세대 갈등, 신자유주의 글로벌 경제 체제가 낳은 해외 스타 조경가들과의 경쟁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동시대 중국 조경에 투런스케이프(Turenscape)의 위쿵젠(Yu Kongjian)만 대입하는 게 고작이었던 나에게 베이징 워크숍에서 목격한 조경가들의 작업은 신선한 충격 그 이상이었다. 특히 랩디에이치와 Z+T 스튜디오의 근작들은 중국 조경에 대한 나의 막연한 선입견을 무너뜨렸다. 지체된 근대화와 광속의 도시화를 겪은 중국의 공공 경관과 상업 공간을 급속도로 채운 건 관 주도 조경과 도시설계의 엉성한 졸작이거나 다국적 대형 설계사무소의 무성의한 복제품뿐일 것이라는 편견을 그 자리에서 바로 버렸다. 중국 조경의 변신은 조경 교육의 변화와 긴밀한 함수 관계를 맺고 있다. 1952년 베이징 임업대에서 시작된 조경 프로그램은 1970년대 말 덩샤오핑의 ‘4대 근대화’ 선언과 개방 정책의 여파로 세를 확장했다. 1980년대 후반에는 개설 조경학과 수가 60개에 달했으나 주로 전통적인 원림과 농업 기반 정원술 위주의 커리큘럼을 제공하는 수준이었다. 1990년대 후반에는 대부분이 폐과되어 베이징 임업대, 난징 임업대, 상하이 농대 세 학교에서만 조경 교육의 명맥이 유지되는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세기의 전환기를 앞둔 시점에 귀국한 위쿵젠, 왕샹얼웅(Wang Xiangrong), 후제(Hu Jie) 등 1세대 해외파 조경 인력이 베이징대, 칭화대, 상하이 퉁지(Tongji)대 등에 새로운 조경 프로그램을 열면서 다시 전환점을 맞는다. 뿐만 아니라 21세기의 첫 10년간 급속도로 진행된 도시화와 그에 따른 환경 문제, 베이징 올림픽과 상하이 엑스포 개최, 국가유산 보존, 전국생태보안계획 등과 맞물려 조경 교육의 양적 성장과 질적 진화가 동시에 일어났다. 2011년에 이르면 대학과 대학원 조경 프로그램이 70여 개로 늘었고, 2013년에는 약 180개로 폭증한다. 이제 중국에서 전문 직능으로서 조경가의 위상은 그 어느 국가나 문화권보다 높다. 중국 출신 조경 인력은 자국을 넘어 구미권 글로벌 조경설계사무소들의 중추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하다. 1990년대 말 이후 중국에서 새로운 조경 교육을 받은 세대의 적지 않은 수는 해외에서 학업과실무를 경험하거나 중국 내에서 자국 특유의 어바니즘에 기반한 실천적 경험을 쌓아가며 선배 세대의 한계를 넘어섰다. ‘빅 아시안 북’ 워크숍에서 만난 젊은 조경가들은 유학을 통해 체득한 서구식 조경을 그대로 이식하고 국가 주도 대형 공공 프로젝트를 통해 급성장한 중국 현대 조경 1세대들과 달리, 동시대 도시성의 회복과 재생, 경관의 재료와 물성, 디자인의 매체와 디테일, 새로운 도시 라이프스타일과 미감에 접근하며 디자인 해법을 생산하고 있었다. 최근 중국 조경의 아방가르드를 한눈에 조감하고자 한다면 『뉴호라이즌스(New Horizons: Eight Perspectives on Chinese Landscape Architecture Today)』(Birkäuser, 2020)를 일독할만하다. Z+T 스튜디오, WISTO, 인스팅트 패브리케이션(Instinct Fabrication), 랩디에이치, YIYU, 모상(Moshang),클로버 네이처 스쿨(Clover Nature School), 푸잉빈(Fu Yingbin) 등 여덟 팀의 다채로운 작업을 접할 수 있다. 베이징 워크숍에서 Z+T의 장둥 소장이 스크린에 투사한 한 장의 사진이 아직도 생생하다. 비 온 뒤 질척거리는 도시 변두리 물웅덩이의 아스라한 추억을 떠올리게 하지만 실은 콘크리트로 섬세하게 조각된 친수 공간의 풍경(‘클라우드 파라다이스’, 2017). 랩디에이치의 최영준 소장이 진행한 이번 호 인터뷰에 실은 사진 속 그 장면은, 전통의 무게와 개발 시대의 속도전을 경쾌하게 넘어서고 있는 동시대 중국 조경의 담백한 한 단면일지도 모르겠다. 브라운필드, 대형 공원, 도심 상업 공간, 유치원 정원을 넘나드는 Z+T 특집 지면이 중국 조경의 현재를 가늠할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초가을, 광주에서 열릴 제58차 세계조경가대회(IFLA 2022 World Congress)에 참가해 Z+T 스튜디오의 강연에 귀 기울여보시길 권한다. [email protected]
  • [풍경 감각] 내달리는 결승점
    한국이 첫 엔데믹 국가가 될 수 있다는 소식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온다. 반가운 마음으로 이 글이 실린 『환경과조경』이 출간될 즈음의 풍경을 상상해본다. 벤치와 퍼걸러를 두른 진입 금지 테이프가 사라지고, 우리는 마스크 없는 서로의 맨얼굴을 마주하고 있지 않을까? 너무 성급하게 행복 회로를 돌리고 있는 걸까? 한 달 사이에 새로운 변이가 유행한다거나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이 다시 강화되어 엔데믹이 기약 없이 미뤄질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줄어들 기미가 보일때 갑자기 확 늘어났던 코로나19 일일 확진자 수와 느슨해질 때마다 바짝 조이곤 했던 사적 모임 제한처럼. 섣불리 끝을 말하기엔 이른 시점이지만, 긴 달리기에서 결승점이 (아주 아주) 어렴풋하게 보이는 기분이다. 라디오 뉴스 꼭지 다음으로 옥상달빛의 노래 ‘달리기’가 이어진다. “단 한 가지 약속은 틀림없이 끝이 있다는 것. 끝난 뒤엔 지겨울 만큼 오랫동안 쉴 수 있다는 것.”
  • [모던스케이프] 어린이의 탄생
    민족, 사회, 시민, 문명, 자유, 가족 등 지금은 마땅하다고 알고 있는 개념 중에는 근대기에 처음 등장한 것이 생각보다 많다. 대체로 서구의 전근대 체제가 붕괴하고 그 자리에 새로운 질서가 구축되면서 만들어진 개념들인데, ‘어린이’도 그중 하나다. 산업혁명이 시작된 시기의 서구 사회에서 어린이는 그리 환영받는 존재가 아니었다. 상류층 가정에서조차 어린이는 최소한의 관심만 받았고(당시 유아 사망률이 매우 높았던 점이 이유였다고 한다) 서민 가정의 아이들은 일찌감치 도제 수업에 뛰어들어 부모의 직업을 이어받는 장인이 되거나 계산에 밝은 숙련된 상인으로 컸다. 또 공장에서 기계를 돌리려면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는데 아동의 노동은 성인보다 손쉽게 취할 수 있었다. 그 바람에 가난한 하층민 아이들의 노동이 착취되거나 그들에게 학대가 자행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즉 근대 초기만 하더라도 어린이를 가족의 끈끈한 유대감 속에 두기보다는 철저하게 소외하거나 노동의 수단으로 여기는 상황이 보편적이었다. 근대 계몽주의자들이 강조했던 ‘교육’은 이러한 어린이의 이미지에 반전을 가져왔다. 계몽주의의 대표 주자인 장 자크 루소(Jean Jacques Rousseau, 1712~1778)는 자연의 본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아동의 천성을 강조하면서 이에 맞는 교육관을 주장했다. 루소에게 어린이는 어른과 명확하게 다른 존재였다. 그는 냉혹한 현실에 내던져진 어린이의 고달픈 삶을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 변화는 상류층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들은 백지장처럼 무해한 어린이가 본성이 건강한 인간으로 성장하려면 학습의 경험이 필요하며 따뜻한 가정 환경과 책임감 있는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때마침 활황이었던 소비 문화가 아동을 주제로 한 문학과 회화를 유행시켰고 서커스, 인형 쇼, 동물원 등 어린이에게 매력적일 만한 아이템들을 만들어냈다. 문학은 아동을 작고 귀엽고 지극히 사랑스러운 낭만의 이미지로 묘사하고 어린이들의 세계를 공상과 동경의 장소로 예찬했다. ‘천진난만한’ 어린이는 회화에도 등장했는데, 이 또한 전에는 없던 일이다. 이전에는 그림의 주인공이 어린이라면 가문의 후계자거나 예견된 지위와 부를 드러낼 목적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근엄한 표정과 움직임이 없는 경직된 자세를 취하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이 시기에는 나비, 꽃, 애완동물 등 여러 소재를 끌어들여 아이의 순수하고 순진한 이미지를 극대화하고자 하는 쪽으로 변했다. 참고문헌 김정은, “일제강점기 창경원의 이미지와 유원지 문화”, 『한국조경학회지』 43(6), 2015, pp.1~15. 박훈, “근대일본의 ‘어린이’관의 형성”, 『동아연구』 49, 2005, pp.35~162. 이영석, “근대 영국사회와 아동 노동”, 『영국 연구』 43, 2020, pp.1~20. 이인영, 『한국 근대 아동잡지의 ‘어린이’ 이미지 연구 – 『어린이』와 『소년』을 중심으로』, 2014, 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朝鮮博覽會京城協贊會 編, 『(朝鮮博覽會)京城協贊會報報告書』, 1930, 京城: 朝鮮博覽會京城協贊會. 그림 출처 그림 1. 조선박람회경성협찬회, 『(朝鮮博覽會)京城協贊會報報告書)』, 1930 그림 2와 3. 조선총독부, 『조선박람회기념사진첩』, 1930 *환경과조경409호(2022년 5월호)수록본 일부
  • [에디토리얼] 해피 버스데이, 미스터 옴스테드
    1822년 4월 26일, 센트럴파크의 설계자이자 현대 조경의 창립자인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가 미국 코네티컷 주 하트포드에서 태어났다. 옴스테드 탄생 200주년을 맞아 미국 전역에서는 다채로운 기념행사와 강연회가 줄을 잇고 있으며, 옴스테드의 도시 철학과 공원관을 재해석함으로써 동시대 도시의 기후위기와 팬데믹, 공간적 불평등에 처방전을 구하는 학술대회들도 연이어 열리고 있다. 옴스테드의 생애와 업적을 갈무리한 다양한 아카이브도 구축되어 이제 클릭 몇 번이면 그가 남긴 글과 도면을 누구나 직접 만날 수 있다. 『환경과조경』은 이미 2년 전부터 2022년 4월호를 옴스테드 특집호로 엮는 구상에 들어갔다. 하지만 지속되는 코로나19의 여파로 한국조경학회와 연계한 옴스테드 세미나, 해외 기관과 공동 주관하는 전시회, 제58차 세계조경가대회(IFLA 2022) 옴스테드 세션 등 초기의 여러 계획을 발전시키지 못한 채 2022년 봄을 맞고 말았다. 채 두 달이 남지 않은 시점에 이번 특집 ‘옴스테드 200’을 다시 기획할 수밖에 없었지만, 참여 필자들의 헌신적인 수고로 그나마 옴스테드의 삶과 업적, 공원관, 저작과 작품, 기록물을 폭넓게 아우르는 지면을 꾸릴 수 있게 됐다. 옴스테드 관련 한국어 논문을 출간한 경험이 있는 연구자들을 급히 섭외했는데, 마감 시간이 촉박했음에도 모두 흔쾌히 집필을 수락해주었다. 오랜 기간 옴스테드 공원 철학의 형성 배경을 연구해온 조경진(서울대 교수)은 이번 원고를 통해 그의 책과 글에 담긴 공원관을 재해석하고 그 의의와 한계를 되짚었다. 옴스테드의 공원 복지 개념을 주제로 논문을 출판한 바 있는 김민주(환경과조경 출판‧기획팀)는 이번 특집에서 옴스테드가 남긴 글과 공공 프로젝트, 그리고 그를 다룬 주요 저작을 꼼꼼히 목록화했다. 옴스테드의 파크웨이와 19세기 북미의 어바니즘을 다룬 여러 편의 글과 논문을 발표해온 신명진(서울대 박사과정)은 옴스테드가 계획한 일련의 선형 공원을 도시 그린 인프라의 선례로 재평가하고 현대적 의미를 탐색했다. 조경사 연구자 두 명도 기꺼이 특집에 참여해주었다. 임한솔(ULC 에디터)은 옴스테드의 성장 과정, 두 번의 여행과 작가·저널리스트로서의 활동, 센트럴파크 감독관 시절과 공모전 당선, 위생위원회 사무국장 경력, 전업 조경가로서의 다각적 실천 등 생애 전반과 업적을 살폈다. 김정화(막스플랑크예술사연구소 4A_Lab 연구원)는 미국의회도서관의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 페이퍼’와 ‘옴스테드 어소시에이츠 레코드’, 페어스테드의 ‘옴스테드 아카이브’ 등 관련 아카이브를 면밀하게 소개하면서 각 아카이브의 배경과 구조적 특징, 최근의 변화와 움직임까지 개괄했다. 편집부 김모아, 금민수, 이수민 기자는 촌각을 다투는 시간의 한계 속에서 옴스테드 재단, 센트럴파크 컨서번시 등 관련 기관과 계속 접촉하며 다양한 문건을 협조받았고 특히 많은 시각 자료의 저작권 문제를 해결했다. 월간지의 특성상 조금 더 충분한 준비 기간을 확보하지 못한 점이 못내 아쉽지만, 그 명성에 비해 한국어로 정리된 옴스테드 관련 자료가 매우 부족한 현실을 고려하면 이번 호 특집이 여러 독자들에게, 나아가 향후의 국내 옴스테드 연구자들에게 적어도 입문 가이드 역할은 할 수 있으리라 자평해 본다. 1903년 8월 28일,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는 매사추세츠 주 웨이벌리에서 81세를 일기로 작고했다. 특집을 꾸리며 여러 자료와 기록을 분주히 들추다 당시의 부고 기사를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그의 사망 다음 날 「뉴욕 타임스」에 실린 장문의 부고를 겨우 찾아낼 수 있었다. “센트럴파크와 프로스펙트 공원뿐 아니라 미국 여러 도시의 뛰어난 공간들을 디자인한 위대한 조경가”로 시작하는 부고 기사는, 그를 다룬 후대의 그 어떤 전기들보다 생생한 목소리로 옴스테드에 대한 당대의 평가를 담고 있었다. 급격한 도시화와 산업화의 광풍 속에서 도시 위생과 시민 건강을 위해 미국 전역의 여러 도시에 대형 공원과 공원 녹지 시스템을 정착시킨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 그는 도시 혁신의 비전을 지향하는 조경가(landscape architect) 직명을 창안하고 조경(landscape architecture) 직능을 창설한 선구자였을 뿐 아니라 도시 사상가이자 사회 개혁가였다. 옴스테드 탄생 200주년을 맞은 2022년, 기후변화와 팬데믹에 신음하는 지구촌 곳곳의 조경가들에게 도시와 공원, 사회와 공공 공간이 맺는 함수 관계를 다시 조회해야 할 과제가 주어졌다. 해피 버스데이, 미스터 옴스테드[email protected]
  • [풍경 감각] 행군과 식물
    군인 시절 가장 힘든 훈련은 행군이었다. 20년간 끼니와 운동에 소홀히 했던 내 몸은 무거운 짐을 지고 수십 킬로미터를 걷는 일을 버티지 못했다. 훈련 중 다친 무릎이 때때로 아팠지만, 부대의 모든 병사는 행군을 해야만 했다. 같은 무게의 군장을 메고 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행렬. 짧은 휴식 시간을 기다리는 긴 발걸음. 그 곁에 있었던 식물을 기억한다. 농지 사이 연못에 핀 노랑어리연꽃, 개울 옆 풀밭에서 하늘거리던 금꿩의다리, 도로변에 줄지어 피었던 좁쌀풀과 개망초, 그리고 검은 숲속에서 하얗게 빛나던 은사시나무. 행군은 힘들었지만 식물은 아름다웠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니 행복하겠다.” 이 말을 들을 때마다 그때의 행군을 떠올린다.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다 해도 일은 일. 누구에게나 그렇듯 나의 일도 공평하게 무겁고 기나긴 여정이다. 다만 나는 그 행렬 속에서 식물을 헤아리는 중이라고, 늘 하지 못했던 대답을 이 글로 대신한다.
  • [어떤 디자인 오피스] 오픈니스 스튜디오 작지만 강하고 단순하지만 아름다운
    스튜디오를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대학원에서 조경 설계를 전공한 뒤 현장 중심의 설계 경험을 쌓기 위해 KnL환경디자인스튜디오에 입사했다. 주로 장인처럼 정원을 설계하고 만드는 일을 하는 회사였다. 작은 설계 스튜디오에서 전통적인 도제 방식으로 디자인을 배웠다. 일상에서 스승의 작업을 보조하면서 어깨너머로 배우고, 스승의 습작을 트레이싱하면서 감각을 키우는 방식이었다. 디자인을 이끌어가는 방법뿐 아니라 클라이언트와 소통하는 방법, 현장에서 작업자들과 원만하게 어울리는 방법 등 모든 것을 가까운 거리에서 배울 수 있었다. 입사한 지 5년 정도 되었을 때는 서툴지만 일의 시작부터 끝까지 전 과정을 그럭저럭해 내는 방법을 습득할 수 있었다. 6년 차가 되면서 새로운 변화를 고민하던 무렵 우연히 한두 가지 개인 프로젝트를 맡게 되어 자연스럽게 독립하게 됐다. 현재 스튜디오의 구성원은 몇 명이며, 최종 규모는 어느 정도가 적당하다고 생각하는가 현재 대표 포함 8명으로 구성된 스튜디오다. 최종적으로는 10명 정도의 규모가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그 정도면 대표 디자이너가 모든 디자인 결과물을 살펴볼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작고, 동시에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동시에 다룰 수 있을 만큼 충분히 크기 때문이다. 디자인 스튜디오의 경우 규모가 너무 커지면 대표 디자이너는 전업 매니저의 역할을 맡게 되기 쉽다. 반대로 규모가 너무 작으면 할 수 있는 일의 종류가 제한되기 때문에 적정 규모가 중요하다. 작은 스튜디오의 장점은? 작은 스튜디오는 생각보다 장점이 많다. 운영 측면에서 간접비를 줄이고 일의 효율을 높여 원하는 일만 선택할 수 있는 자유도를 가질 수 있다. 대외적으로는 클라이언트가 담당 팀장이 아닌 스튜디오의 대표와 직접 소통한다는 점에서 신뢰를 줄 수 있다. 한 프로젝트를 디자이너 여러 명이 지원하는 구도에서 만족을 얻는 클라이언트가 있는가 하면, 대표 디자이너 한 명과 긴밀하게 소통하기 원하는 클라이언트도 있다. 후자의 경우 작은 스튜디오가 더 큰 강점을 갖는다. 내부적 관점에서 본다면 작은 조직은 큰 조직에 비해 프로젝트 단위로 팀을 유동적으로 개편하기 때문에 업무에 대응하기 쉽다. 촘촘한 직급 체계와 인사 구조를 가진 대형 사무실이라면 적용하기 어려운 대응 방식이다. 프로젝트마다 발 빠르게 팀을 재구성해 대응하는 방식은 때로는 구성원들에게 스트레스를 주기도 하지만, 다양한 역할을 해볼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구성원들이 빠르게 성장하는 원동력이 된다. 오픈니스 스튜디오의 팀원들을 소개해 달라 최재혁 대표 디자이너는 일과 관련된 부분에 대해서는 가감 없이 말하는 편이라 때로는 돌직구 상사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뇌피셜’에 따르면) 속마음은 따듯하고 팀원들을 배려하고자 늘 노력한다. 김지학 디자인 매니저는 오픈니스 스튜디오에서 이제 5년째다. 프로젝트의 핵심을 파악하고 효율적인 진행 계획 수립과 업무 분담에 있어서 탁월함을 보여준다. 디자인 능력과 시공 기술 또한 훌륭해 정원박람회에서 대상을 받은 경력도 있다. 변인환 컨스트럭션 매니저는 나이는 많지 않지만 시공 쪽에서 잔뼈가 굵은 인재다. 식물에 대한 애정이 깊고 여행과 사진을 즐긴다. 전문가 수준의 사진 촬영 능력을 갖추고 있다. 김제인 시니어 디자이너는 디자인 감수성이 뛰어나다. 시와 피아노를 취미로 즐기는 그녀가 만든 디자인 결과물에서는 특별한 온기와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장찬희 시니어 디자이너는 타고난 설계가 기질이 있는 디자이너다. 누구보다 꼼꼼하고 정확한 편이고 빠른 손을 가졌다. 박수미 디자이너는 건축학과를 졸업한 뒤 조경 디자이너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디자인적 직관과 판단력이 좋고 여러 방면에서 뛰어난 팔방미인 디자이너다. 이우정 디자이너는 일러스트 작가 경력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2D 이미지 작업에 뛰어난 감각을 지녔다. 박경자는 2021년부터 고문 역할을 하고 있으며, 조경기술사이자 문화재기술자다. 디자인 스튜디오로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실험 정신과 유연한 사고방식, 그리고 디자인한 것은 무엇이든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물론 우리가 모든 것을 디자인하고 다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프로젝트에 임하고자 노력한다. 스튜디오를 개소한 2017년, 한강예술공원 시범사업에 작가로 참여하면서 지름 8m의 거대한 튜브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이 말을 지키기 위해 지방의 고무 보트 제작 업체를 수소문하고 다니면서 몇 차례 고비를 겪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어떻게든 만들어 냈을 때 느꼈던 성취감과 즐거움이 여전히 오프니스 스튜디오의 설계 DNA에 각인되어 있다고 믿는다. 오픈니스 스튜디오의 디자인 스타일이 있다면? 어떤 대상이든 복잡하게 디자인하면서 품질을 떨어뜨리는 일은 쉽고 단순하게 만들면서 높은 품질을 내는 일은 어렵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단순하면서도 아름답고, 더 나아가 감동을 주는 공간을 디자인을 할 수 있을지 늘 고민한다. 그런 작품이 고전이 된다고 생각한다. 클라이언트의 뜻에 휘둘리고 어쩔 수 없이 그 뜻을 따라갈 때가 많지만, 우리는 늘 이런 관점에서 일을 시작한다. 단순함과 모던함, 그리고 자연스러움이 이제껏 오픈니스 스튜디오가 추구한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다. 트렌드의 변화를 의식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트렌드를 좇아 가볍게 소비되는 이미지를 담은 공간을 디자인하는 건 지양하는 편이다. 그보다는 색과 질감, 스케일과 조형 등 기본적인 공간 요소를 균형감 있게 어우러지게 함으로써 공간 안에서 편안함이 느껴지도록 하는 데 관심을 둔다. 공간에서 시각적 균형미가 한눈에 드러나게 만드는 것에도 늘 신경을 쓴다. 식재 디자인의 경우 대상지의 미묘한 환경적 변수들을 감지하여 지속가능한 공간을 구현하는 데 일차적인 목표를 두고 그 후에 미적·사용자적 관점을 고려한다. 시설물 디자인에서는 부피감과 무게감의 표현에 각별한 신경을 쓴다. 너무 투박하게 디자인해 시각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부담감이 느껴지는 일이 없도록 주의를 기울인다. 반대로 너무 가벼워서 공간에 안착하지 못하고 날아가 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도록 디자인한다. 복잡한 형태와 어려운 디테일에 큰 관심이 없고, 가장 기본적인 조형성을 가장 맵시 좋게 드러내기 위해 쉽고 확실한 디테일 디자인에 집중하는 편이다. 디자인 스튜디오 창업을 꿈꾸는 디자이너들에게 조언한다면? 어렵게 생각하면 한없이 어렵고 쉽다면 쉬운 게 자신의 스튜디오를 여는 일이다. 자신감을 가지고 도전하되 한 가지만 기억하면 좋을 듯하다. 디자인하는 게 즐겁고 그것에 보람을 느껴야 한다는 점이다. 일을 일로 대하는 순간 일은 떠나간다. 반대로 일을 친구 삼아 때로는 천천히 때로는 빠르게 걷는다는 생각으로 가까이 두고 친하게 지내고자 하면 어느새 자신이 기대하던 것보다 많은 일이 생기고, 자연스럽게 스튜디오도 성장하게 될 것이다. 스스로 열심히 단련한 뒤 자신감을 가지고 시작하면 좋다. [email protected] 오픈니스 스튜디오(Openness Studio)는 외부 공간의 디자인 빌드 분야에 강점을 가진 디자인 스튜디오다. 단순하고 모던한 조형, 자연스러운 내러티브와 편안한 분위기를 특징으로 한다. 다수의 개인 정원 및 공공 공간을 설계하고 시공했으며. 생태적 관점을 바탕으로 공공 예술과 전시 프로젝트에도 폭넓게 참여해왔다. 한강예술공원,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국립현대미술관 예술놀이마당 전시에 참여했으며,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외부 환경 개선 설계를 수행했다.
  • [모던스케이프] 나무를 심자
    예로부터 ‘나무를 심는 일’은 기념할 일이 있을 때와 연결되는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으로 딸을 낳으면 오동나무를 마당에 심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민간의 전통이다. 오동나무는 속성수에 목질도 가벼워서 딸이 시집갈 때 혼수로 가지고 갈 가구의 재목으로 사용하기 적절하기 때문이다. 그밖에 우리는 결혼. 회갑, 승진 등 경사가 있을 때도 나무를 심는 것으로 축하를 했는데, 오늘날에도 종종 볼 수 있는 기념식수의 전통이 멀리 있었던 건 아닌 셈이다. 왕실에서도 나무를 심었을까 싶어 『조선왕조실록』을 살펴봤다. 왕실의 가족묘인 능소(陵所)와 원소園所에 보토補土하여 나무를 심었다는 기록이 대부분이다. 검색어를 식목(植木)으로 걸러봤다. 왕릉 일대에 식재한 것을 제외하면, 영남 지방 여러 고을에는 민둥산 때문에 재해가 빈번하니 벌목을 금하고 나무를 많이 심어 토양 유실을 막는 것이 필요하다고 상소한 헌납(獻納)1 권엄의 의견이 유일하다. 나무 심기를 통해 상징과 기념을 넘어 실용의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는 점에서 매우 인상적이다.2 근대가 되면 동서를 막론하고 나무를 심는 일이 도시의 위생과 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하나의 수단으로 주목받는다. 한국에서는 독립협회 회원들이 식목의 기능에 가장 먼저 주목했다. 해외 도시를 경험한 바 있는 그들은 나무 심기가 노력에 비해 효과가 크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종목일, 즉 식목일을 만들어 국민이 나무를 심게 할 것을 권장했다. “우리가 바라건대, 조선의 농상공부에서도 종목일을 작성하여 봄가을로 한 번씩 전국의 인민을 시켜 동네 빈터에 나무를 심게 하고 …… (그러면) 몇 해 지나지 않아 좋은 공원이 생길 것이고 그 나무들이 다 자라 쓸 만하게 되면 해마다 얼마씩 베어 팔아 그 돈을 가지고 공원을 정비하는 등 시민을 위해 쓸 일이 많을 것이다. …… 속성수인 백양목을 비롯하여 단풍나무, 전나무, 가죽나무 등을 일 년에 한 번씩만 심는다면 큰 수고로움 없이도 큰 효과를 볼 수 있다”3 하였다. 그러고는 식목의 효과로 첫째는 산사태 방지로 산 아래 농가들이 농사를 안정적으로 지을 수 있다는 점, 둘째는 공기 정화에 효과가 있다는 점을 꼽았다. 또한 셋째로는 나무로 공기가 깨끗해지면 전염병이 예방된다는 점, 넷째로는 그늘과 맑은 공기를 제공해 백성들의 휴식처가 마련된다는 점을 언급했다. 당시 조선의 주요 도시는 산업화로 인해 망가지지는 않았으나, 비위생적이고 무질서한 도시 환경은 근대로의 개혁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 해결책으로 식목에 주목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각주 1.헌납은 조선시대 사간원의 정4품 관직이다. 각주 2.『정조실록』 12권, 정조 5년 10월 22일. 각주 3.「독립신문」 1896년 8월 11일. *환경과조경408호(2022년 4월호)수록본 일부 박희성은 대구가톨릭대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한중 문인정원과 자연미의 관계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에서 건축과 도시, 역사 연구자들과 학제간 연구를 수행하면서 근현대 조경으로 연구의 범위를 확장했다. 대표 저서로 『원림, 경계없는 자연』이 있으며, 최근에는 도시 공원과 근대 정원 아카이빙, 세계유산 제도와 운영에 관한 일들을 하고 있다.
  • [그들이 설계하는 법] 집요와 집착 사이
    1. 며칠 전, 두어 달 가량 설계가 진행되고 있는 장소에 다녀왔다. 상하이는 비행기로 두 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 비교적 가까운 도시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현장을 자주 방문하기가 쉽지는 않다. 도면으로 구조를 파악하고 사진으로 현장을 살펴보는 것에는 분명 한계가 따른다. 준비해 간 도면을 펼쳐보는 순간 ‘아, 이건 좀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면에서는 그럴듯했는데, 현실 공간을 마주하다 보니 뭔가 설계안에 문제가 있어 보였다. 그래서 디자인(혹은 설계 작업)은 항상 어렵고 두렵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시작된 그 작업에 대한 여러 가지 복잡한 궁리는 긴 밤까지 이어졌고, 골똘한 생각에 결국 그날은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다. 2. 설계 작업은 실재하는 어떤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연속적인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어떤 면에서는 그 자체가 하나의 독립된 창작 행위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리고 이 창작 행위는 때때로 얼토당토않은 어떤 궁리에서 시작된다. 이렇게 태동된 궁리(窮理)는 작업하는 내내 집요(執拗)와 집착(執着) 사이를 무한 반복하다가 결국은 그 사이 어느 지점에서 지쳐 멈춰 서게 되고, 바로 그 지점에서 차츰 정리된 설계 도면으로 진화한다. 그러면 모든 설계 작업(적어도 나의 경우에 있어서)의 시발점인 ‘궁리’라는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할까. 내가 이 말을 좋아하는 것은 우선 그 어감이 가지는 소박함에 있다. 권위적이지 않고, 어떤 발칙한 생각을 해도 용서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그저 궁리일 뿐이니까). 정리되지 않은, 아직 불확정적인 생각들을 이리저리 상상해 보는 것이므로, 아니다 싶으면 누가 눈치 채기 전에 간단히 포기해 버릴 수도 있다. 아무도 내 머릿속을 들여다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궁리에는 장소의 제약이 거의 없다. 지루하게 이어지는 회의장에서도, 하염없이 막히는 도로 위에서도, 심지어는 꿈속에서도 가능하다. 그런데 궁리는 가만히 한곳에 멈추어 있지 않고 집요와 집착이라는 두 지점을 부지런히 오간다. 이게 문제다. ‘집요함’은 때때로 좋은 에너지를 유발한다. 반면에 ‘대충’ 혹은 ‘대강’이라는 말은 생활 현장에 있어서 지혜로운 단어로 이해될 수 있지만, 디자인에서는 독이 되는 단어들이다. 좋은 디자인은 집요함이라는 동력을 필요로 한다. 이에 반해 집착은 집요함이라는 동력이 너무 세게 작동한 경우다. 집착은 버려야 하는 것이다. 너무 멀리가면, 혹은 너무 오래 머물면 되돌아오기가 쉽지 않다. 완전히 그 아우라에 장악되어 폐인이 되기 십상이다. 인간관계에서나 디자인에서나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거기에 치명적인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쉽게 포기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있다. 그중에는 비상(砒霜)처럼 경우에 따라 약이 되는 것도 있지만 그 반대의 경우가 훨씬 많다.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관성(慣性)이다. 이것은 제어할 수 없는 힘이다. 집착에 갇힌 궁리는 좋은 디자인으로 진화하지 못하고, 고사하고 만다. 얼핏 보면 그냥 낙서 같은 드로잉이지만 때로는 아주 중요한 설계의 단초가 포함되어 있기도 하다. 이렇게 기록된 이미지들은 그 자체가 동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상호작용을 통해서 더 발전된 생각으로 진화한다. 3. 이쯤에서 다시 정리해 보자. 설계 작업에 있어서 궁리는 아주 유용한 행위이며 그 주체는 전적으로 디자이너 자신이다. 이것은 충분히 즐길 만한 가치를 가지지만 집요함이라는 동력을 얻어야 하고 집착을 경계해야 한다. 집요와 집착 사이를 이리 저리 오갈지라도 최종 종착지에서 집착까지의 거리는 멀수록 좋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더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과정들이 기록되고 관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한다. 우리들 대부분은 천재가 아니므로. 4. 나는 ‛design’, ‛incubator’라고 새겨진 두 개의 스탬프를 가지고 있다. 십여 년 정도 된 것 같다. 작업 과정을 메모하고 여러 가지 생각들, 그러니까 ‘궁리’들을 모아놓은 노트에 부여하는 작은 별칭인 셈이다. 몇몇 학교에서 설계 스튜디오를 진행하면서 수업을 들었던 학생들에게도 이 스탬프를 찍어주었다. ‛design incubator’에는 덜 익은, 날 것 같은 생각에서부터 설계 치수가 제법 구체적으로 명시된 드로잉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이미지들이 두서없는 텍스트와 함께 기록되어 있다. 어차피 인큐베이터의 속성이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정상적으로 출산된 아기에게 인큐베이터가 필요 없듯이, 이 노트는 잘 정리된 책자와는 완전히 격(格)이 다른 물건이다. 지면에 기록하는 이미지들은 가장 기본적인 도구들, 즉 연필 혹은 펜으로 생성된다. 무엇보다 간편하기 때문이다. 용도가 단순한 물건일수록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법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드로잉들이 무슨 예술적인 가치를 가지거나 그래픽적으로 아름다운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럴필요가 없다. 집요와 집착 사이를 부지런히 오고 갔던 생각들을 그저 형상화해서 기록하면 되는 것이다. 이 글을 준비하면서 오래된 노트들을 다시 열어볼 수 있었다. 그 안에는 이미 시공 단계를 거쳐 준공된 작업들도 여럿 있지만, 열정적인 작업에도 불구하고 어찌어찌한 이유들로 인해 사산(死産)된 작업들, 어정쩡한 집착과 치기어린 객기 때문에 좋은 디자인으로 진화되지 못한 채 지면에 감금된 작업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민낯을 공개하는 것 같아 민망하다. 5. 작업의 초기 드로잉은 대체로 간단한 메모로부터 시작된다. 상상 속에서 사이트를 대략 가늠해보고 중요한 키워드 혹은 기호 비슷한 것들을 끼적여본다. 작업의 순서는 전혀 의미가 없고 생각나는 순서대로 기록한다. 몇 십만 평의 대지를 다루는 작업에서 ‘아주 아무렇지도 않게’ 철제 펜스의 기둥 두께를 가장 먼저 메모하기도 한다. 그래도 어느 정도 형태를 알아볼 수 있는 평면도 비슷한 드로잉이라도 생산해 낼 수 있었다면 그날의 궁리는 성과가 좋은 셈이다. 6. 평면과 단면은 공간의 구조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드로잉이다. 조경 설계는 기본적으로 공간을 구축(構築)하기보다는 공간을 직조(織造)하는 행위에 가깝다. 여러 조형 요소들이 수직적으로 적층되어 있기보다는 수평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형태를 이룬다. 그것들은 빈틈없이 하나의 평면을 긴밀하게 구성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그 구성이 가지는 기능을 잠시 삭제해 보면 남는 것은 패턴뿐이다. 평면도라는 것은 결국 패턴으로 시각화된다. 물론 도상의 모든 패턴들은 단순한 그래픽이 아니라 기능을 가진 형태로서 기능하지만, 어떤 요소들은 동일한 성능을 발휘하면서도 다양한 패턴으로 형상화될 수 있는, 그러니까 기능보다 형태가 좀 더 중요한 디자인 요소로 해석될 수 있는 것들이 많다. 이 경우 어떤 형태(혹은 패턴)를 만들지는 전적으로 디자이너에게 우선권이 있다. ‘우선권’이라기보다는 ‘책임’이라고 부르는 것이 타당하겠다. 아무튼 디자이너가 생산해내는 드로잉의 대부분은 바로 이 작업에 집중되어 있다. 7. 공간을 직조하는 행위, 즉 최종적으로 패턴을 디자인하는 작업 방식에는 대체로 두 부류가 있다. 첫 번째는 드로잉을 우선하는 부류다. 이들은 대부분 설계 경험이 많은 사람들인데, 손이 빠른 사람들이다. 짧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대안들을 생산해 낸다. 편차가 많기는 해도 그 속에 썩 괜찮은 대안이 존재할 확률은 대단히 높다. 두 번째 부류는 궁리를 우선하는 부류다. 나도 이 부류에 속한다. 머릿속에서 어느 정도 정리가 되기 전까지는 가급적 드로잉을 시작하지 않는다. 많이 망설이면서 작업하는 스타일이다. 생산되는 대안의 수는 지극히 제한적이지만 궁리의 시간이 길었던 만큼 시행착오는 비교적 적은 편이다. 그런데 이 부류가 가지는 치명적 단점은 궁리가 길어질수록 집착이 강해지고 결국은 자가당착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8. 편의상 ‘W프로젝트’라고 부르겠다. 작은 지방 도시에 있는 오래된 온천장을 제법 규모가 큰 온천형 리조트로 조성하는 작업이었다. 미리 결론을 말하자면, 이 프로젝트는 실행되지 못했다. 그러니까 드로잉과 설계 도면만 존재할 뿐이다. 온천욕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참 아쉬움이 많이 남는 작업이었다. 이 프로젝트에서 조경 설계의 중요한 작업은 야외 스파 공간을 디자인하는 것이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여러 나라의 노천 온천이나 스파 리조트 같은 곳들을 다녀보긴 했지만, 설계 작업을 해보지는 않았기 때문에 ‘기대 반 걱정 반’의 심정으로 시작한 일이었다. 초기안의 디자인 제안은 스파(spa)와 식물원(botanic garden)을 결합하는 아이디어로 출발했다. 이른바 ‘보태니컬 스파(Botanical Spa)’. 여느 워터파크나 스파 리조트에서 보듯이, 식물 요소들은 대체로 수 공간 주변을 치장하거나 기능적으로 공간을 구분하는 장치로 사용된다. 반면에 우리가 제안한 W프로젝트는 마치 식물원 안에 야외 스파를 만드는 것과 같은 방식이었다. 어떤 새로운 개념을 잘 설명하려면 적절한 도구가 필요하다. 특히 건축주가 경험이 없는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드로잉은 디자이너의 생각을 정리하고 기록하는 유용한 도구가 되지만, 의사소통을 위한 최적의 도구는 아니다. 좀 더 친절하고 읽기 쉬운 그래픽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진화된 드로잉’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W프로젝트를 위한 진화된 드로잉은 좀 더 구체화된 평면 이미지(패턴 이미지)와 그것을 입체화한 개념 모형이었다.이 개념 모형은 우리가 설계 작업 과정에서 생산해내는 ‘스터디 모형(study model)’과는 좀 달랐고 상당히 사실적인 표현이 가미된 것이었다. 그런데 이 드로잉들이 건축주의 공감을 끌어내는 것에 실패했다. 그것은 이미지, 패턴 혹은 디자인의 문제가 아니었다. 왜 식물원과 스파를 결합해야 하는지를 효과적으로 설명하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건축주는 새로운 개념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나는 아직도 이 개념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는 두 번째 대안을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 직선은 공간을 장악하는 힘이 강하다. 아무리 가는 선이라도 시점과 종점을 단번에 거침없이 연결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막강한 힘을 가진다. 직선은 곡선과 반대되는 말이지만 ‘자연’과도 대척점에서 있는 말이기도 하다. 두 번째 대안은 주변의 자연과는 사뭇 구분되는, 직선이 강조된 형태였다. 다양한 높이에서 야외 스파 영역을 부감할 수 있는 조건에서는 공간이 가지는 조형적 질서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평면도는 공간을 가장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방식이기는 하나 주관적인 시점을 상실하기 때문에 공간을 역동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가 모형을 만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모형은 설계자의 생각을 검증하는 유용한 도구이면서, 타인과의 의사소통을 위한 효과적인 장치다. 여기에 더해 다양한 카메라 작업을 통해 그 효과를 배가 시킬 수 있다. 아무튼 두 번째 대안은 건축주의 동의를 얻음으로써 설계안으로 발전할 동력을 얻게 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첫 번째 안에 대한 미련을 접을 수 없었다. 이런 것이 집착이다. 그런데 집착도 애정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기본 설계가 어느 정도 정리될 무렵, 우리는 또다시 세 번째 대안을 준비하고 있었다. 건축주도 참 집요하다. 적게 잡아 이번이 세 번째 대안일 뿐 그동안 소소한 조정안까지 포함하면 열 번 이상의 조정 과정을 거치는 중이었다. 설계 작업이라는 것이 원래 이런 속성을 가지고 있다. 이번 대안은 직선 요소를 대폭 완화시키는 것이었다. 쉽게 말해 자연과 분리시키지 말자는 것이다. 충분히 가능하다. 다만 공간을 경험하는 방식이 달라지기 때문에 개념적으로 완전히 다른 대안이 되어 버린다. 이 지점에서 디자이너는 진퇴양난(進退兩難)에 빠진다.작업은 여기까지만 진행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정리된 설계안은 결국 현실 공간에 등장하지 못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사업이 중단되었다고 들었다. 9. 설계 작업은 어떤 의미에서 집착이라는 수위를 넘나들면서 집요하게 ‘궁리’를 지속시키는 과정이다. 거기에는 필연적으로 흥분과 걱정이 동시에 존재한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금전적 대가는 바로 그 과정을 견디고 지나는 수고에 대한 보상인 셈이다.이 시간에도 수많은 조경가들이 이 지난한 통로를 지나고 있다. 드로잉을 생산하고, 설득하고, 목청을 한껏 높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어디 이것뿐이랴. 재미가 있지 않은가. 고요한 작업실에 앉아 백지를 잠자코 바라보는 순간이 행복하다. 이 궁리의 끝이 어디인지를 상상해보는 것도 즐겁다. 우리는 이렇게 산다. 박승진은 아직까지 조경 설계라는 마당을 떠난 적이 없으며, 이 마당에 맞닿아 살고 있는 다양한 이웃들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기웃거리고 있다. 조경이라는 특징을 잘 보여줄 수 있는 가치 있고 정교한 작업을 늘 꿈꾸지만 그것도 만만치가 않다. 그래도 읽고, 쓰고, 가르치며, 배우는 일상에 감사하고 있다. 1965년 서울 생으로, 성균관대학교와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조경 디자인을 공부했고, 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 조경설계 서안에서의 설계 실무를 거쳐, 2007년에 디자인 스튜디오 loci를 열었다.
  • [에디토리얼] 성큼 다가온 광주 IFLA 2022
    제58차 세계조경가대회(IFLA 2022)가 반년 앞으로 다가왔다. 8월 31일부터 9월 2일까지 광주광역시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릴 이번 행사의 주제는 ‘리:퍼블릭 랜드스케이프’다. ‘다시, 조경의 공공성’을 소환해 기후 위기 시대의 조경을 논의할 IFLA 2022는 코로나19의 긴 터널을 통과한 국내외 조경가들의 열띤 토론장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3월호에는 IFLA 2022의 주제와 다양한 프로그램을 미리 만나보는 특집을 마련한다. 더 상세한 내용은 대회 공식 홈페이지(ifla2022korea.com)에서 살펴볼 수 있다. 기획 의도를 밝힌 조경진 조직위원장(한국조경학회 회장)의 글에서 볼 수 있듯, IFLA 2022는 전 세계 조경가들이 모여 조경의 미래 좌표를 구상하는 자리일 뿐만 아니라 국내 조경계의 활로를 여는 의미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가 말하듯 이번 행사는 세계 조경의 최신 흐름과 글로벌 의제를 공유하는 기회이자 한국 조경의 성과를 알리는 기회이며 조경 문화의 과거와 미래를 잇고 엮는 역할을 할 것이다. 배정한(조직위 학술위원장)의 글은 대회 주제의 의미를 짚어본다. ‘리:퍼블릭 랜드스케이프’는 동시대 도시가 마주한 기후변화, 인구 감소, 도시 쇠퇴와 재생, 도시 정의와 형평성, 라이프스타일과 미감의 다양성 등 복합적 난제를 풀어갈 조경의 사회‧문화적 좌표라고 할 수 있다. 김아연(조직위 기획위원장)은 IFLA 2022의 일정과 장소, 강연, 답사 등 다양한 사전 행사와 본 행사, 사후 행사의 주요 내용을 꼼꼼히 소개한다. 2월 말로 마감한 논문 초록 접수는 추후 연장될 예정이므로 마감 날짜를 놓친 독자들은 홈페이지의 공고문을 꼭 확인하시기 바란다. 오화식(조직위 산업‧재정위원장)은 대회 기간 중 한국조경협회 주관으로 개최될 조경산업전(K-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 엑스포)의 방향, 프로그램, 조직을 안내한다. 이번 산업전은 한국 조경 업계가 내일을 향해 ‘리:스타트’하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모은다. 김영민(조직위 학생위원장)의 글은 IFLA 학생설계공모전과 학생 샤레트의 주제, 진행 방식, 의의를 소개한다. 그의 말처럼 IFLA 2022의 학생 프로그램은 다음 세대 조경의 새로운 향방을 미리 그려보고 지역의 한계를 넘어 세계적인 비전과 안목을 공유할 기회가 될 것이다. 서영애(조직위 홍보위원장)는 IFLA를 비롯한 여러 국제 행사 참가 경험을 되돌아보며 초록 접수와 등록, 개회 행사와 기조 강연, 발표와 포스터 전시, 폐막식 등의 이모저모를 살핀다. 김태경(한국조경학회 수석부회장)의 글은 30년 전 가을, 서울, 경주, 무주에서 열렸던 IFLA 1992의 추억과 에피소드를 재생한다. 많은 독자들이 기억하듯, 1992년은 세계조경가대회 개최를 계기로 한국 조경이 도약한 해였다. 편집부 이수민 기자가 옛 잡지를 다시 펼쳐 IFLA 1992의 다양한 장면과 기억을 재구성한다. 아울러 이달 지면에는 IFLA 2022의 기조강연자 중 한 명인 단 로세하르더(Daan Roosegaarde)의 최근 연작, 드림스케이프를 싣는다. 네덜란드 출신의 아티스트이자 글로벌 혁신가인 단 로세하르더는 사람, 기술, 공간 사이의 관계를 탐구하는 상상력 넘치는 작업을 선보이며 국제적인 주목을 받아왔다. 디자인을 통해 더 나은 미래를 만든다는 그의 작업 태도를 관통하는 핵심 가치는 ‘스혼헤이트(schoonheid)’다. 김모아 기자의 인터뷰에서 볼 수 있듯, 이 네덜란드어 단어는 “창조성에서 나오는 아름다움, 공기와 에너지에서 비롯된 깨끗함”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함께 품고 있다. “내게 디자인은 의자나 램프를 제작하는 일이 아니라 삶을 개선하는 일이다. 상품이든 도시든 경관이든 디자인을 할 때 스혼헤이트를 기준으로 삼아 아름답고 사용하기 좋을 뿐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 수 있는 것들을 창조해야 한다.” 그로우, 어반 선, 시잉 스타, 스파크로 이어지는 연작 드림스케이프는 로세하르더의 작업에서 우리가 풍부한 상상력의 예술가, 머릿속 아이디어를 구조화하는 건축가, 디자인과 기술을 융합하는 엔지니어, 환경 문제를 고민하는 환경운동가의 면모를 동시에 느끼게 되는 이유를 생생히 보여준다. 그의 작품을 종이 잡지에 온전히 옮기기란 힘겨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면에 첨부한 QR코드에 접속해 드림스케이프에 담긴 로세하르더의 상상과 실험을 마음껏 감상하시길 권한다.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