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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떤 디자인 오피스] 조경하다 열음 삶의 그릇을 빚는 젊은 조경가의 매니지먼트
    조경 ‘설계’를 기반으로 사회를 바꾸는 전문가 대학 입학 때부터 지금까지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조경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맺었다. 비슷한 시기에 조경 공부를 시작한 이들 중 조경을 업으로 삼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조경을 떠난 사람도 적지 않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전공자로서 그동안 해온 고민의 공통분모는 조경일 것이다. 그 속에서 길을 찾은 사람 혹은 찾고 있는 사람은 아직 조경 제도권에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각자의 길을 찾아 떠났다. 나 또한 수차례 고비가 있었지만 아직 조경이라는 궤도 위를 달리고 있다. 그렇다고 답을 찾은 것은 아니다. 다양한 인연과 기회를 통해 떠올리게 된 새로운 화두가 동력이 되어주고 있을 따름이다. 조경 설계 도면만 그리는 사람이 조경가일까, 이 질문은 내게 기연(機緣)과도 같다. 답을 찾기 위해 꽤 오랜 시간을 헤맨다 해도 좋을만큼. ‘조경하다 열음’(이하 열음)을 꾸린 지 5년째다. 대학에서는 설계 중심 커리큘럼으로 조경을 배웠다. 졸업 후엔 조경설계사무소를 다니며 10년간 경력을 쌓았지만, 교육 과정이 조경의 영역을 스스로 제한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실무를 하다 보니 사회에는 조경가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 많다는 걸 체감했다. 하지만 제도와 구조적 문제로 손을 뻗는 데 한계가 있었다. 물론 의견을 제시하거나 활동 참여가 제한되는 건 아니다. 어느 분야나 회사에 속하지 않은 한 명의 자연인으로서 접근한다면 말이다. 지역의 자원이나 문제를 발굴하더라도 조경업의 측면 그리고 회사에 소속된 직원으로서는 공모에 참여하거나 설계 도면을 납품하는 일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설계를 위해 대상지를 조사하면 할수록 갑갑했다. 도면을 완성하는 일 외에도 조경학과에서 배운 역량으로 솔루션을 내놓을 수 있는 일이 많은데 눈을 감아야 한다는 사실이 답답했다. 그래서 결심했다. 내가 판을 만들기로. 조경가의 역할은 주어진 대상지에 대한 디자인을 완성하는 게 전부가 아니다. 장소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포함된다. 그래서 디자인을 넘어 여기에 초점을 맞춰보기로 했다. 조경 ‘설계’를 기반으로 사회를 바꾸는 전문가, 열음이 지향하는 조경가의 모습이다. 생활밀착형 조경 코로나19로 환경 문제에 대한 관심과 사회적 인식이 높아지면서 공원 녹지의 가치가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생활 공간 속으로 자연을 가져올 수 있도록 도시 구조를 개편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목소리도 꾸준히 나온다. 도시를 쾌적하게 하는 대형 공원과 녹지와 더불어 일상 속 생활밀착형 공간의 쾌적성을 높여주는 일 또한 중요하다. 이러한 공간에는 선과 숫자 중심의 기존 엔지니어 방식을 넘어 커뮤니티 디자인을 통한 솔루션 제시가 요구된다. 석수골 마을정원 조성(2018), 서울국제정원박람회 동네정원 코디네이터(2019, 2021)는 시민의 욕구를 듣고 때로는 디자이너, 때로는 전략가가 되어 현장을 바탕으로 해법을 찾아본 경험이다. 열음은 주민들을 만나 소통하고 공간 조사, 설계, 시공뿐만 아니라 교육과 컨설팅까지 아우르는 현장 중심의 ‘생활밀착형 조경’을 전문적으로 다룬다. 국가 정책의 변화와 시대적 수요를 조경가가 주도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다양한 정책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국가 과제의 핵심은 지역 주민과 함께 공간을 개선하고 운영하는 것이다. 조경가는 관계를 만들고 대응하며 변화에 적응하는 능력이 있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역량이 강하다. 이해관계가 복잡한 주민 참여 공간 조성 사업에는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조율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열음의 조경가들은 소셜 디자이너로서 전문적 식견과 경험을 가지고 지역을 변화시키는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북촌 도시 재생, 여수 농촌 재생, 강화도 어촌 재생이 그 사례다. 북촌은 개발이 아닌 보존을 선택한 주민들 덕분에 600년 역사적 자산을 지키며 역사와 문화를 기반으로 세계적 명소가 된 곳이다. 하지만 최근 무분별한 상업화로 인한 정체성 훼손, 과도한 관광객 방문으로 인한 생활 환경 침해 등의 문제가 대두됐다. 살고 싶은 마을과 머물고 싶은 동네를 위한 공존·상생의 길을 현장에 상주하며 찾고자 했다. 먼저 한옥 보존에 대한 규제로 인한 경직된 지역민의 마음을 달래고자 ‘북촌정원산책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부담 없이 접근하고 식물을 통해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정원을 만들어 도시재생의 포문을 열었고, 지금까지 지역 주민들의 삶의 질 개선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여수 새뜰마을에서는 개발제한구역과 여수 국가산업단지로 인해 열악해진 생활 환경을 개선하고 잠재된 마을 자원을 발굴해 새로운 변화를 꾀하고자 했다. 봉계동 일원의 ‘주삼지구 새뜰마을사업’을 통해 지역 내 빈집 및 노후 주택을 정비하고, 지역 어르신들을 위한 일자리 창출 및 복지 지원을 목표로 다양한 활동을 진행했다. 강화도에서 진행한 ‘어촌뉴딜사업’은 주민이 주도해 해양 경관 개선 및 경제 활성화 기반을 마련하는 프로젝트다. 곳곳에 산재된 유휴 공간과 해양 경관을 개선하며 지역 사회 구성원과 방문객을 위한 공간 개선 활동을 전개했다. 우리의 역할을 찾고 비전을 제시하면서 조경가의 활동 무대를 바다로 확장하는 중이다. 조경은 가진 자의 전유물이 아니다 고품질의 차별화된 조경 공간은 매체를 통해 소개되는 고급 주택의 정원 등 사적인 공간에서 주로 볼 수 있다. 오피스 빌딩이나 호텔, 상업 공간, 아파트 조경이 주로 완성도가 높은 조경 공간으로 꼽힌다. 따라서 디자인적 조형미, 고가의 자재와 식물 활용, 시공성, 식물 간의 균형과 조화로움 등은 차치하고 들어주기를 바란다. 동네에서 더 나은 조경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한 주민 인터뷰에서 나온 말이다. 조경은 워낙 다양한 역할을 하기에 그 의미도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지만, 근간에는 자연의 모습을 도시에 재연하는 편집자로서의 사명이 있다. 자연과 멀어진 사람의 일상으로 자연을 끌어와 관계를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그렇지만 도시의 누군가는 이러한혜택을 받지 못하고 소외되는 실정이다. 정원에 공공성이 더해지면서 조경이 태동했다. 그런데 다수의 공공을 위한 공간일수록 좋은 품질을 기대하기 어렵다. 사회적 약자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조경 공간의 품질은 더 떨어진다. 좋은 소재와 기술을 쓰고 인력을 많이 투입하면 품질이 좋아질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자본력을 가진 클라이언트만 좋은 조경 공간을 가질 수 있다면 과거 귀족에게만 허락된 정원(loyal garden)과 다를 게 없다. 다수의 공공을 위한 공간일수록 좋은 품질을 기대하기 어렵다. 사회적으로 경제 자본과 멀어지면 쾌적한 환경을 누릴 수 있는 권리도 제한되는 것인가. 예산 분배는 정책가의 역할이니 접어두고 조경가로서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했다. 조경가의 손길을 원하는 곳이 있다면 돈이 되지 않는 일이라도 일단 뛰어들어 솔루션을 제시하고 자격을 갖추어 판을 만들자는 전략을 세웠다. 많은 비용이 요구되는 디자인이나 재료를 사용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변화의 체감률을 높이는 방법을 찾는 데 주력했다. 지금까지 조경가는 주민들이 원하는 걸 듣고 설계하기보다는 현장에서 자체 진단과 직관에 의한 설계 결과물을 공청회를 통해 주민들에게 통보하는 방식으로 일을 진행했다. 조경가는 일을 마치고 떠나면 그만이지만, 남아서 공간을 누리는 사람들은 주민이란 점을 종종 잊어버린다. 꾸준하게 마을과 연을 맺고 관련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것은 이를 잊지 않기 위함이다. 누구나 집 앞에서 고급 정원을 향유할 수는 없겠지만, 보다 나은 공간에서 쾌적함을 누리는 일에는 공평하면서 보편적인 복지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돈이 되는 고급형 조경이 아닌 누구나 누릴 있는 녹색 복지로서 보급형 조경에도 관심을 갖고 힘을 쏟아야 한다. 이게 조경의 공공성이 아닐까. 자연의 기능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으면 도시에 영양 결핍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결핍은 결국 사회 문제로 이어지니 손을 놓아서는 안된다. 열음이 주목하는 지점이다. 아이들의 일상에 자연을 놓아주다 공간적인 측면에서 소외되고 있는 학생들에게도 관심을 가졌다. 학교는 창의적인 인재 육성보다 효율적인 통제를 목적으로 설계됐다. 주인인 학생을 위한 공간이 어디에도 없는 모순적인 구조다. 교육부도 이를 인지하고 ‘그린스마트 미래학교’라는 학교 공간 혁신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외부 공간에 대한 접근은 크게 변한 게 없었다. 특히 운동장은 일상에서 자연을 접하고 숲의 효과를 누릴 수 있는 곳으로 전환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공간인데도 대부분 방치되어 있다. ‘생태 숲 미래학교’는 경기미래교육 핵심 과제 5가지 중 하나다. 우리는 2개 학교(김포 고창초등학교, 부천 송내고등학교)를 대상으로 시범 사업을 진행했다. 학생들에게 생태적 가치와 감수성을 일깨워주고 기후 변화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는 진로 탐색 기회를 제공하는 외부 공간 조성이 목표였다. 그 과정을 통해 조경가로서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역할에 대해 고민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경기도 교육청은 학교 공간 혁신을 위한 공간 전문가를 촉진자로 위촉하고 건축·도시·조경 전문가가 참여할 길을 열어놨으나 조경 분야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사업적 측면에서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점과 기존과 접근 방식이 다른 생소한 프로젝트인 점이 이유인 것 같다. 촉진자 선정에 참여한 40여 명의 전문가 그룹 중 조경가 그룹은 열음이 유일했다. 학교는 미래 세대가 자라는 공간이고 전국의 학교 개수를 고려하면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잠재적 탄소 흡수원이자 환경 교육 거점으로서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참여 계기였다. 이후 조경 분야가 참여할 길을 열어두기 위한 교두보 역할만 해도 충분히 가치가 있어 보였다. 학생들은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학교에서 보낸다. 학교에선 교실 말고는 딱히 갈 곳이 없으니 쉬는 날 답답함을 해소하기 위해 산과 바다와 같이 먼 곳으로 바캉스를 떠난다. 완벽한 스트레스 해소는 어려울지라도 일상에서 잠깐이라도 자연을 마주하며 힐링하는 경험은 스트레스 총량을 줄이는 데 일조할 수 있다. 소생물 서식처 기능까지 고려한다면 사람과 야생 동물이 공존하는 지역의 생태적인 거점으로 거듭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3년의 시간, 12계절의 변화를 체감하면서 생활할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특히 부천 송내고등학교에서는 교내 환경 교과목 교사와 합을 맞추면서 소프트웨어와 어우러진 공간 조성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었다. 기존 환경 교육은 학교 바깥의 녹지를 간헐적으로 모니터링하는 정도였는데, 보다 적극적으로 교육할 수 있도록 학교 구성원들과 심도 있는 상의를 통해 교육 과정과 연계한 AI 교육 등의 학습 공간을 계획했다. 음악회나 독서와 같은 공간 경험을 넘어 진로 탐색과 연계할 수 있는 모델로 서 숲을 제안했다. 교직원과 학생들 모두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이고 진행 과정에도 열정적으로 참여했다. 처음에는 일부 위요된 공간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과업이었으나 또 하나의 위요 공간부터 필로티, 건물 틈새 중층, 옥상 등 내외부를 관통하는 하나의 녹지 네트워크를 아우르는 마스터플랜을 제시하여 추가로 예산을 받아 과업을 수행하게 됐다. 학생들과 함께 도출한 생각을 설계로 구현했지만 공사는 가격 입찰로 진행되기 때문에 우리의 손을 벗어나 의도가 온전하게 전해지지 않을 것을 우려했다. 그래서 정식 공사 감리는 아니지만 디자인 감리 제도를 통해 시공사와 지속적으로 소통하며 소재 선택부터 디자인 디테일 조정 등 여러 부분에 관여했다. 프로젝트 성과에 100% 만족하는 건 아니지만 학생들이 빗물, 숲, 옥상, 실내 등 여러 가지 유형의 정원을 일상의 일부인 학교에서 체험할 수 있게 된 점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조경하다 열음’의 구성원 현재 열음은 경영 관리, 설계와 엔지니어링, 공동체 등 크게 세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조민영 소장이 경영 관리 총괄로 회사 살림을 도맡아 하고 있고, 윤호준 소장은 설계 및 엔지니어링, 김도훈 소장이 공동체 파트 총괄이다. 엔지니어링 파트 행동대장 이병우는 온갖 실무를 담당하고 있다. 가장 좋아하는 건 식재다. 설계부터 시공, 활착 후 모니터링까지 본인 머리에서 현장으로 이어지는 모든 과정을 아우르는 걸 좋아한다. 식재와 관련된 부분에선 회사 내 ‘원 톱’이다. 이외에도 각종 설계가 실제 현장에서 구현될 수 있게끔 관리한다. 신혜지는 기획과 구상을 실시설계로 구현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으며, 장하니는 내역을 담당하면서 다른 직원들이 의욕으로 채운 도면을 현실과 연결시키는 데 주력한다. 김윤은 사회초년생이지만 기복이 없고 뚝심이 강해 선배들을 든든하게 뒷받침해준다. 그래픽 기술을 특화해 역량을 키우고 있다. 공동체 파트는 현재 북촌 도시재생활성화 사업에 전념하고 있다. 임은경은 현장에서 주민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정리하는 소통 창구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김용진은 다양한 의견을 북촌에 맞게 체화시키는 능력이 뛰어나다. 어떤 문제가 들어와도 북촌화하여 주민과 협의해 적절한 프로그램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김범진은 사업의 시작부터 현재까지 오랜 시간 머물며 자리를 지켰다. 시대적 흐름이나 상황 속에서 북촌에 대한 이야기를 연결해준다. 박지영은 센터 내 유일하게 도시 공학을 전공한 도시재생 전문가로 하드웨어 중심의 계획 수립과 사업 실행을 전담해서 진행하고 있다. 조경가 매니지먼트를 꿈꾸며 회사와 대표는 동일체가 아니란 점을 강조하고 싶다. 법인은 또 하나의 인격체다. 회사와 대표가 등가 관계로 매칭되는 순간 동료들이 빛을 잃을 우려가 있다. 그래서 열음에는 직급이 없다. 창립 때부터 직급 체계를 두지 않았다(물론 나이 차에 따른 구분과 예를 갖춘다). 모든 동료의 명함에는 ‘조경가’란 타이틀만 있을 뿐이다. 각 파트장들만 소장이란 직함을 달고 있을 뿐, 다른 동료들은 수평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열음의 조경가들은 대외 업무 시 회사를 대표하며 자기 주도적으로 프로젝트를 책임질 권한을 갖는다. 그렇다고 경력자나 소장이 자기 업무만 하면서 방치하는 건 아니다. 권한을 주되 책임을 선배들이 분담하며 업무를 잘 이끌어나갈 수 있도록 뒤에서 지원한다. 직원들이 연봉만으로 설계업을 영위하는 건 회사나 개인 모두에게 어려운 일이다. 설계는 계량이 어려운 지식 서비스 산업이므로 야근, 주말 출근까지 해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보다 나은 방법을 고민하다 보면 시간을 정해놓고 일을 마무리하는 게 어려운 법이다. 그렇기에 직원 개개인의 역량 차이가 있더라도 최소한 일정 수준의 품질을 맞추기 위해 함께 스터디 하면서 해법을 마련하는 구조를 취하고 이를 보상하는 시스템을 갖추고자 노력하고 있다. 열음을 배경으로 한 조경가 개인의 커리어 축적, 수익 배분, 방학 제도 운영이다. 열음은 정원박람회 작가나 공모전 등 개인 커리어를 쌓는 것도 장려하고 있다. 연봉 외에 노력하는 만큼 수익을 배분하는 경영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데, 회사 매출의 일정 수익금은 직원들이 공유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춰 나가고 있다. 방학은 주로 연말에 주어지며 2~3주 동안 회사와 어떤 연락도 하지 않는 휴식기를 갖게 한다. 자기 프로젝트를 끝까지 완수할 정도로 성장한 조경가는 각자 독자적 조직을 구축하도록 만드는 게 궁극적인 목표다. 연예인의 방송 활동 외 경영 전반을 관리해주는 매니지먼트 회사 개념을 모티브로 한다. 회사가 소화하지 못하는 전문적인 역량은 다양한 전문가와 의 협업 관계를 통해 보완하며, 이를 연결하는 것 또한 열음의 역할이다. 조경을 잘 하고 싶은 사람이 조경에만 전념할 수 있게 도와주는 회사가 되려 한다. 자기만의 확고한 철학을 갖고 조경을 하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 온전하게 자기 일에 시간을 쏟을 수 있는 배경이 되어주는 회사로 성장하는 것이 열음의 꿈이다. 조경 설계에 국한해 우수한 사람들을 모아놓는 게 아니라 도시, 공동체, 스마트 시티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편하게 이야기 나누고 업무를 수행하는 조경 전문 소속사, 그게 바로 ‘열음’이다. [email protected] 조경하다 열음의 대표 조경가 윤호준은 조경 설계를 기반으로 사회를 바꾸고자 한다. 학부에서 조경을 전공하고 설계사무소에서 10년간 경력을 쌓은 뒤 제도권을 넘어 새로운 판을 만들자는 포부로 2017년 조민영과 함께 사무실을 열었다. 주민과 소통하고 공간의 조사, 설계, 시공뿐만 아니라 교육과 컨설팅까지 아우르는 생활밀착형 조경을 전문적으로 다룬다. 자연의 모습을 도시에 재현하는 편집자로서 사무실보다 현장에서 답을 찾고, 직관보다 경험, 발주처보다 주민의 이야기에 귀를 더 기울인다. 예비 조경가를 발굴·육성하는 매니지먼트 회사로 조경설계사무소를 키우고자 한다.
    • 윤호준
  • [모던스케이프] 도시 균열의 시작, 전차 노선이 만든 미완의 풍경
    교통에 의한 도시 경관의 균열은 19세기 말 서울에 부설된 전차에서부터 시작된다. 이제 전차는 사라진 지 오래지만, 수백 년을 이어온 도시 경관에 전차가 처음 등장했을 때 사람들이 느낀 충격은 상상하기 어렵다.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스스로 황제가 된 고종은 경운궁을 중심으로 제국의 격에 맞는 근대 도시로 전환을 시도했다. 1392년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고 도성 한양에 궁궐과 단묘(壇廟), 성곽을 축성하여 새로운 국가의 출발을 알렸던 것처럼, 대한제국은 황제국으로의 표상을 도시 경관에 실천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대한제국은 혁명에 의한 체제 전복으로 탄생한 국가가 아니었고, 중국에 대한 사대를 극복하려 하면서도 그들로부터 전승 받은 제도를 따르는 모순을 안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대한제국은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한 근대 도시로의 변혁을 이루어야 했기에, 전통적인 지배 구조로서의 황도(皇都)와 무역 등 경제 활성화를 꾀하는 근대 도시의 이중적 구조가 경운궁(지금의 덕수궁)을 기준으로 재편된다. 경운궁 동쪽에 건설된 환구단과 황궁우가 황제국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면, 전차는 근대 도시로의 실천을 보여주는 시설이다. 서대문정거장(지금의 서대문역 일대)에서 시작해 황토현(지금의 광화문사거리)~종로~흥인지문을 지나 홍릉(천장 전 명성황후의 묫자리, 현재 안암동 고려대학교 부근)까지 가는 홍릉선이 먼저 개통되었다. 선로를 부설하여 전선을 놓고 발전기를 돌려 전차가 다니도록 개통한 것이 1899년 5월 4일이다. 우리보다 근대화를 먼저 시작한 일본에 견주어도 결코 늦은 것이 아니었다.1 홍릉선 외에 종로에서 용산까지 이어지는 용산선(1899년 12월 20일), 서대문정거장과 남대문정거장을 연결한 의주로선(1900년 7월 6일), 그리고 마포까지 연결된 마포선(1907년)까지 네 개의 전차 노선이 개통되었다. 각주 1.교토에서는 1895년 1월 31일, 도쿄에서는 1903년 8월 22일에 개통했다. 참고문헌 서울역사박물관, 『서울의 전차』, 서울책방, 2019, pp.28~35. 신경진, “[뉴스 클립] 중국 도시 이야기<4> 황제의 도시 베이징 (하)”, 「중앙일보」 2011년 2월 9일. 그림 출처 그림 1. American Street Railway, “The Electric Railway in Corea”, Street Railway Review vol. IX, 1899, p.534. 그림 2. commons.wikimedia.org/wiki/File:Travelogues;_(1908)_(17).jpg 그림 3. 서울역사박물관, 『서울의 전차』, 서울책방, 2019, p.16. 그림 4. www.museum.go.kr/site/main/relic/search/view?relicId=39921 *환경과조경405호(2022년 1월호)수록본 일부 박희성은 대구가톨릭대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한중 문인정원과 자연미의 관계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에서 건축과 도시, 역사 연구자들과 학제 간 연구를 수행하면서 근현대 조경으로 연구의 범위를 확장했다. 대표 저서로 『원림, 경계없는 자연』이 있으며, 최근에는 도시 공원과 근대 정원 아카이빙, 세계유산제도와 운영에 관한 일들을 하고 있다.
  • [에디토리얼] 2021년을 되돌아보며
    옆 방 동료와 화상으로 회의를 하고 온라인으로 설계 스튜디오 리뷰를 하고 마스크로 얼굴을 덮은 채 공원을 산책하는 초현실적 상황이 이제는 전혀 어색하지 않다. 편하고 익숙하기까지 하다. 감염 도시의 역설적 풍경이 어느새 친숙한 일상이 되어버렸다. 이번 겨울이 코로나 시대의 마지막 계절이기를 소망하면서 2021년 한 해의 『환경과조경』을 다시 펼쳐본다. 본지가 주최한 ‘제3회 젊은 조경가’ 수상자 최영준 특집으로 1월호를 꾸렸다. 중국과 미국, 한국을 넘나들며 다국적 조경설계사무소 랩디에이치Lab D+H를 이끌고 있는 최영준. “디자인을 통해 희망과 사회적 책무를 구현”하는 그의 젊은 조경 정신을 특집 지면에서 만날 수 있었다. 같은 호에 올린 ‘춘천 시민공원 마스터플랜 설계공모’ 수상작들은 동시대 한국 조경의 생생한 단면을 보여주었다. 2월호에는 『LA+』의 실험적 기획인 ‘생물체 설계공모’, 한국전쟁의 민간인 희생자를 기억하는 ‘진실과 화해의 숲 설계공모’, 신도시의 조경 네트워크를 짜는 ‘행정중심복합도시 5-1생활권 조경 설계공모’를 동시에 실었다. 서로 다른 성격의 세 가지 공모전은 조경의 넓은 스펙트럼을 새삼 확인하게 해주었다. 어린이놀이터 프로젝트 13개를 3월호에 모았다. 서울의 초등학교에 놓인 신상 놀이터부터 저 멀리 터키 이스탄불과 스웨덴 스톡홀름의 어린이공원에 이르기까지, 틀에 박힌 놀이터 디자인의 전형을 깨는 갖가지 아이디어를 만날 수 있었다. 6월호에 실은 ‘서울국제정원박람회’의 도시재생형 정원들은 일회성 전시와 장식을 넘어 코로나에 지친 시민들에게 안온한 위로의 공간을 제공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8월호는 1982년 7월 창간한 『환경과조경』의 통권 400호였다. 1월호부터 7월호까지 편집부는 한국 현대 조경의 성장사를 기록하고 저장하며 조경 설계와 이론의 쟁점을 발굴하고 그 지평을 확장해온 『환경과조경』의 발자취를 다각도로 되짚는 특집 지면들을 기획했다. 1월(393호)부터 7월호(399호)에 걸쳐 실은 ‘『환경과조경』 400호 돌아보기’에서는 편집자 김모아, 남기준, 배정한, 윤정훈과 편집위원 박승진, 박희성, 최영준, 최혜영이 옛 『환경과조경』을 50권씩 나눠 맡아 재독하고 재조명했다. 4월호에는 그동안의 표지와 책등을 한데 모은 특집 ‘표지 탐구, 책등 탐방’을 구성했다. 5월호 특집 ‘편집자들’에는 본지를 거쳐 간 추억 속의 편집자들을 초대해 그들이 엮었던 옛 기사와 꼭지를 당시의 시각으로 다시 살폈다. 6월호에 올린 ‘읽는 행위를 설계하는 법’에서는 『환경과조경』의 편집 디자인 변천사를 다뤘다. 7월호 지면에는 독자 대상 설문 ‘다시 읽고 싶은 연재는?’의 결과에 편집부의 기획을 보태 옛 연재 여덟 꼭지를 재구성한 ‘연재, 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꾸렸다. 통권 400호(2021년 8월호)에는 『환경과조경』 400권의 목차를 모두 모았다. 39년 역사를 세로지르는 총목차는 그 자체만으로도 한국 현대 조경의 궤적을 담은 아카이브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9월호에서 많은 독자의 시선을 붙잡은 건 ‘416 생명안전공원 국제설계공모’ 수상작들일 것이다. 세월호 7년, 함께 실은 평문이 질문하듯, 모두의 기억은 모두의 공간이 될 수 있을까. 10월호에는 서울공예박물관(오피스박김), 블랙메도우, 메도우카펫, 가든카펫(이상 김아연), 일분일초(안마당더랩), 어반 포레스트 가든(김봉찬+신준호), 나의 정원(정영선), EV6 언플러그드 그라운드 성수(HLD) 등 모처럼 국내 조경가들의 다양한 근작과 전시를 담을 수 있었다. 11월호에는 제18회 대한민국 환경조경대전 수상작들과 ‘오목공원 리모델링 지명 설계공모’ 초청작들을 실었고, 최근의 주목할 만한 완공작인 마포새빛문화숲(이화원)과 남산예장공원(호원)의 면모를 꼼꼼히 짚었다. 이번 12월호에는 본지가 한국조경학회, 한국조경설계업협의회와 함께 진행한 설문조사 ‘한국 조경 50’의 결과를 담았다. 303명의 전문가가 뽑은 한국 현대 조경의 대표작, 지난 50년의 성과를 되돌아보고 새로운 50년을 설계하는 기획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이번 호에는 매년 본지가 주최하는 ‘올해의 조경인’과 ‘젊은 조경가’ 선정 결과를 싣는다. 제24회 올해의 조경인으로는 한국경관학회 회장을 맡아 조경계획의 확장에 힘써온 주신하 교수(서울여대), 제4회 젊은 조경가로는 다양한 조경설계 프로젝트와 실험적 기획을 가로지르며 활동해온 조용준 소장(CA조경)이 선정됐다. 다가오는 2022년은 한국 조경의 중요한 변곡점이 될 전망이다. 한국조경학회가 설립 50주년을맞는다. 7월에는 『환경과조경』이 창간 40주년을 맞는다. 8월 말에는 광주에서 세계조경가대회IFLA World Congress가 열린다. 창간 40주년을 준비하며 『환경과조경』은 독자 여러분의 다양한 의견을 청취하고 더 치열하게 토론하면서 조경 저널리즘의 새 좌표를 찾아 나설 것이다.
  • [칼럼] 50년, 반세기 조경
    2022년 새해에는 한국조경학회가 탄생 50주년을 맞는다. 1972년 봄꽃이 기지개를 필 무렵, 대대적인 국토 개발을 이끌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로 청와대에서 조경에 관한 첫 세미나가 개최됐고 7월에는 건설부에 공원녹지과가 신설됐다. 그해 겨울에 서울대와 영남대에서 조경학과가 설치 인가를 받았다. 같은 해 12월 29일, 한국조경학회 창립총회가 개최되면서 한국에 ‘조경’의 탄생을 알렸다. 그로부터 어언 50년 세월이 흘러 내년에는 사람의 나이로 치면 지천명(知天命), 하늘의 명을 깨닫는다는 나이에 이르렀다. 반세기 동안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경제 발전과 함께 조경 산업 또한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뤘고, 그 중심에는 늘 조경학회의 헌신적 노력이 있었다. 학회는 본연의 임무인 학술 관련 사업으로 학회지 및 학술지를 발간하고, 한‧중‧일 국제 조경전문가 회의, 세계조경가대회IFLA 참여 등 국제 교류를 통한 학문적 정보 교환에도 앞장서 왔다. 학생들을 위한 조경디자인캠프와 대한민국 환경조경대전을 매년 개최하고 조경 업계의 발전을 위해 대한민국 조경문화대상 행사도 진행하고 있다. 또한 ‘산림조합법 개정 반대 투쟁’(1988년)과 ‘건설산업기본법 개정 반대 투쟁’(1997년)처럼 조경 분야가 위기에 직면할 때면 업계와 함께 분야의 권익을 위해 선두에 나섰다. 기후 위기와 포스트 팬데믹이라는 새로운 시대적 과제 앞에서 조경학회도 새로운 비전과 목표를 세우고 있다. 새로운 50년을 준비하는 조경학회의 힘찬 발걸음에 응원을 보낸다. 이제 미래의 50년을 목표로 반세기에 접어든 한국 조경의 과거를 차분히 뒤돌아보고 새로운 변화에 선도적으로 대응할 전략을 세우고 발전을 위한 전기를 마련해야 할 때다. 먼저, 조경계에 이렇다 할 구심점이 없는 상황에서 단일의 대표 단체인 조경학회에서 파생되어 나간 여러 관련 학회와 협회 등 많은 단체 사이의 협력과 연대가 절실히 필요하다. 하지만 시대적 변화에 발맞춰 과거 권위적 형태의 중앙집권적 단일 조직은 지양해야 한다. 분야의 다양한 요구를 하나의 목소리로 대변하는 데는 한계가 있고, 중앙 조직의 결정을 모든 단체에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상명하달 방식의 운영은 더 이상 설자리가 없다. 여러 단체의 다양성과 독립성을 존중하면서 조경 분야 전체의 단결된 목소리가 필요할 때는 함께 연합해 힘을 모으는, 공감 능력을 극대화한 ‘느슨한 연대’를 추구해야 한다. 지난 2017년 3월 3일, 조경의 날 기념식에서 창립총회를 열고 공식 출범했다가 총재 사퇴 후 결국 해체 수순을 밟은 ‘대한환경조경단체총연합’의 뼈아픈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둘째, 조경 분야에도 이제 세대교체가 필요하다. 급변하는 시대에 대응해 미래 성장을 위한 혁신과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전략적 변화를 꾀하기 위해서는 젊은 조직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조경 분야의 여러 단체와 조직은 대개 학연, 지연에 얽매여 나이나 학번 순으로 수장을 결정해왔다. 몇몇 단체는 여전히 원로나 고문의 입김이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조경 원로 1세대를 존경하고 그 공로에 감사하지만, 보수적인 한국의 정치판에서도 30대 정당 대표가 나오는 현실을 볼 때 조경계는 세대교체가 너무 늦은 감이 있다. 연공서열보단 능력과 성과주의에 바탕을 둔 세대교체 바람이 변화에 대한 열망과 미래 세대의 역동성을 담아내는 용광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내년 8월 광주에서 열리는 세계조경가협회(IFLA) 한국총회를 계기로 모든 조경인이 힘을 모아 분야의 성장을 위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야 한다. 제58차 세계조경가대회는 IFLA가 주관하는 글로벌 조경인들의 대표 행사다. 2022년에는 개최국 한국으로 전 세계 조경가들이 모이게 된다. 세계조경가협회는 전 세계 77개국 2만5천여명이 회원으로 가입되어 있는 글로벌 조직으로, 1948년 영국에서 설립된 이후 현재는 유럽, 아시아‧태평양, 아메리카, 아프리카, 중동 5개 지회가 활동하고 있다. 한국은 1981년 협회에 가입해 1992년 IFLA 총회를 서울, 경주, 무주에서 개최한 바 있다. 당시 국내 조경계가 일치단결하여 대회를 잘 준비한 결과 34개국 305명의 외국 정회원 참석자를 포함해 총 1천 3백여 명의 참가자에게 한국의 조경을 알리고 국제적 위상을 드높였으며 한국 조경의 도약의 계기가 되었다. 학회, 협회 등으로 구성된 IFLA 조직위원회가 얼마 남지 않은 대회 준비를 위해 많은 노력을 경주하고 있지만, 손길이 부족하고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다. 범조경계 차원의 많은 관심과 아낌없는 협력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조경 분야도 여러 대선 캠프에 조경 정책을 제안할 수 있도록 테스크포스팀을 구성할 필요가 있다. 최근 여러 난관에 봉착했음에도 불구하고 조경 단체는 여전히 적절한 대응을 위한 구심점을 찾지 못하고 있고, 분야 전체 생태계가 침체에 빠질 위기에 처해있다. 유일한 희망인 ‘조경진흥법’조차 실효적 사업을 거의 담지 못한 상태다. 타성에 젖은 조경계가 현실에 안주하면서 자초한 측면이 크다. 이제라도 더 적극적으로 정책을 개발하고 조경 분야의 목소리를 제도에 담아내려면 내년 대선이 좋은 기회일 수 있다. 국토교통부, 환경부, 문화체육관광부, 산림청 등으로 분산된 조경 관련 사업을 아우르고, 나아가 통일 한국의 전 국토를 우리 손으로 푸르게 가꿀 수 있는 강력한 녹색 정부 부처를 만들어보자. 백년대계를 바라보고 함께 큰 그림을 그려보자. 이번이 기회다. 열 살 터울인 국내 유일의 조경 전문지 『환경과조경』은 2022년 새해에 창간 40돌을 맞는다. 그동안 한국 현대 조경의 살아있는 역사이자 조경 분야 대표 언론으로서 중추적 역할을 수행해 왔다고 자부하는 본지는, 2014년 1월 대대적 리뉴얼과 함께 조경 언론으로서의 정체성과 독립성을 기반으로 ‘조경 문화 발전소’를 꿈꿔 왔다. 급변하는 인터넷 정보화 시대의 물결에 발맞추어 ‘e-환경과조경’을 오픈했고, 전국 조경학과 학생들이 참가하는 ‘대한민국 환경조경대전’을 주관했다. 조경 분야 발전에 공헌한 분의 업적을 기리고 미래의 조경을 이끌어갈 새로운 인재를 발굴하기 위해 ‘올해의 조경인상’과 ‘젊은 조경가상’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서울정원박람회’와 ‘LH가든쇼’를 진행해 정원 문화 확산과 정원 산업 활성화에도 기여하고 있다. 이제 창간 40년을 맞이하여 『환경과조경』은 한국 조경의 또 다른 50년을 준비하며 미래를 향한 좌표를 설정하고, 변화의 시대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워 나갈 것이다.
  • [풍경 감각] 흐르지 않는 물길
    교실 한구석에서 내가 선물했던 그림을 주운 적이 있다.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친구들이 자기도 그려달라고 졸랐기에, 스프링 연습장 한 장을 북 뜯어 건네곤 했다. 그렇게 준 그림 하나가 먼지를 뒤집어쓰고 구겨져 있었다. 누구에게 준 것인지, 무엇을 주제로 한 것인지 잊었을 정도로 특별한 그림은 아니었다. 그러나 구겨진 종이의 주름과 여기저기 검게 번진 얼룩은 여전히 기억 속에서 선명하다. 작업실 근처 백화점의 아케이드를 걸을 때마다 그 주름과 얼룩이 떠오른다. 아케이드가 완공되었을 때, 그곳엔 LED 화면으로 만든 시냇물이 흘렀다. 픽셀로 이루어진 네모난 물결이 반짝였고 사람들은 픽셀 수련 잎 아래로 헤엄치는 픽셀 금붕어를 따라 픽셀 물길 위를 걸었다. 예쁜 풍경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픽셀 물길 표면은 작은 흠집이 생겨 뿌예졌고 전원이 꺼져 있는 날이 많아지는가 싶더니, 결국 검은 시트지에 뒤덮이고 말았다. 이제 아케이드에는 특별 기획 행사 부스들이 계절마다 번갈아 들어선다. 주름 혹은 얼룩 같기도 한 그 검은 시트지 위로. 픽셀 시냇물을 설계한 사람의 발걸음이 이곳을 향하지 않길 바란다. 그가 그려낸 시냇물을 폭 덮어버린 시트지가 그의 기억에도 선명히 남을 것 같아서. 아무도 없는 늦은 밤, 이제는 그 어떤 픽셀도 흐르지 않는 물길을 따라 조용히 걸어본다. 연습장 북 뜯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 [나의 미개봉작 상영기] 조경업개론
    업과 학 나누자는 것도 합쳐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직업적으로 다를 뿐인데 사고방식 자체가 나뉘어 그 안에만 머물고, 주어진 역할에 성실히 임한 나머지 각자의 가능성이 확장되지 못하거나 직위가 여러 가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세태가 아쉬울 뿐이다. 학자와 업자는 따로 있지 않다. 모두 자신이 맡은 업을 할 뿐이고 배우며 살아간다. 모든 일은 신성하다. 공공을 대상으로 하는 조경 일은 더 그렇다. 약 2천 년 전에 비트루비우스가 쓴 『건축십서』 제1서 제1장에는 이런 글이 있다. “지식은 이론과 실제의 소산인바, 실제란 조형 의도에 따라 필요한 재료를 써서 작품을 완성하는 반복적이고 규칙적인 실기의 적용 방식이고, 이론이란 완성된 작품을 비례 원칙에 따라 증명해주고 설명해주는 것이다. 따라서 학문에 입각하지 않고 단지 손으로만 숙련되려고 노력하는 건축가는 그 수고에 합당할 만큼 명예로운 위치를 차지하지 못하지만, 이론과 학문에만 의존하는 사람은 근본이 아닌 환상만을 좇는 결과가 된다. 그러나 양쪽을 다 겸비한 이는 훌륭하게 무장한 군인과 같이 그 목적을 이루어 응분의 권위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모리스 히키모건, 오덕성 역, 2011). 이 글을 소개하는 목적은 훌륭한 전문가가 되기 위함도, 응분의 권위를 차지하기 위함도 아니다. 세계가 나눈 기준에 맞추다 각자의 가능성을 잃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자, 조경을 하며 맞닥뜨리는 현상을 다각도로 인지하고 질문을 던지고 생각하고 연구하며 실험하는 학자적 업자가 되길 바라는 스스로의 다짐이자 목표이기도 하다. 논리와 직관, 기술과 감각 흔히 논리와 직관을 구분하여 생각한다. 하지만 논리와 직관은 다르지 않다. 직관을 설명하는 것이 논리다. 설계 작업은 논리와 직관을 넘나들며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형태에 담는 작업이다. 논리와 직관, 기술과 감각을 나누어 생각해선 안 된다. 논리란 대상을 이해하기 위해 보편적 상식과 지식으로 풀어헤쳐 설명하는 것이고, 직관은 경험과 기술을 통찰하는 수준 높은 정신적 산물이다. 누구에게나 직관은 있다. 기술은 논리와 직관에 따른 결과물을 표현하는 방법이고, 감각은 주관을 가진 주체가 세계를 느끼는 오감의 상태다. 직관적 설계와 논리적 설계, 어느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없다. 조사‧분석‧연구 등 논리적 방법론을 통해 만든 계획이 직관적 디자인보다 더 낫다고 할 수 없다. 높은 직관에는 설명하기 힘든 논리가 내포되어 있을 수 있다. 공모 작업은 결과물의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조사 분석을 기초로 한 논리를 계획안에 담는 작업이다. 하지만 직관을 먼저 내세우고 직관을 설명하기 위한 탄탄한 근거를 내놓는 것 또한 좋은 조경 계획을 만드는 방법이다. 아인슈타인의 많은 이론은 본인의 감각과 직관을 사고 실험으로 수없이 검증하고 그것을 본인 이외의 세계와 소통하고 알리기 위해 수학‧물리학 등의 기술을 사용해 논리적으로 정리한 것이다. *환경과조경404호(2021년 12월호)수록본 일부 김지환은 영남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씨토포스와 스튜디오엘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으며, 현재는 조경작업장 라디오의 대표다. 스스로를 작업반장, 설계공이라 칭하듯 설계와 시공 사이의 중재자(신호등) 역할의 중요성을 인지해 그 관계의 매커니즘을 이해하려 노력한다. 사회적 대기업을 만들어 도시 내 모든 디자인을 손대고 싶어 하는 야망과 유명 건축가와 조경가의 작업을 보며 절망과 환호를 즐기는 이상주의적 성향이 자신의 작품 세계를 더욱 견고하게 한다고 믿는다. 때론 못다 한 말을 해시태그로 덧붙이기도한다. #라디오에이스 #정원작가 #은근히낯가려요 #조경뚱
  • [숲자락 식재 탐험기] 숲자락을 정원에 적용하기
    “난 풀떼기는 잘 모르겠어. 네가 알아서 해.” 조경설계사무소에 다니는 3년 차 L양은 온갖 참고 자료를 뒤져 간신히 식재계획도 지피ㆍ초화 리스트를 작성했다. 꽃의 색깔, 성장 높이, 개화 시기에 대한 정보를 토대로 식물들을 고르느라 고생했는데 다시 이것을 조합하고 배치해야 한다니. 요즘 유행하는 피트 아우돌프 식의 도면 표현 기법을 흉내 내보고도 싶지만 쉽지 않다. 결국 종전에 선배가 작성한 도면을 토대로 늘 해오던 식의 블록 식재를 그린다. 앞선 연재를 통해 식재 디자인의 새로운 흐름을 이해하고, 서식처 기반 식재 디자인에 필요한 요소(생육 환경, 생장 방식 등)를 중심으로 식물을 어떻게 관찰 기록하고 정보를 축적해나가야 하는지 살펴보았다. 이제 어떤가. 식재 디자인에 대한 자신감이 조금은 상승했을까. 여전히 낯선 식자재를 모아 두고 어떤 형태로 다듬어야 할지, 구워야 할지 아니면 튀겨야 할지, 어떤 순서로 솥 안에 넣어야 할지 주저하는 초보 요리사의 마음은 아닌가. 필자들을 비롯해 이 글을 읽는 다수의 숙련된 조경가에게 개개의 식물 특성을 이해하는 것을 넘어 식물을 ‘생태적이면서도 아름다운 하나의 군락’으로 디자인하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은 일일 듯싶다.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 지난달에 소개한 숲자락에 서식하는 자생 여러해살이풀을 실제로 어떻게 조합해 디자인에 적용하면 좋을지 소개할 차례다. 자연에서 식물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토대로 식물 공동체를 구성 배치하는 방법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 방법에 따라 식물탐험대가 직접 숲자락 식물들을 배치해본 사례를 제시하며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환경과조경404호(2021년 12월호)수록본 일부 식물탐험대는 2021년 봄, 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의 식물적용학 수강생 42명이 결성한 그룹이다. 강보경, 김은정, 김장훈, 노진선, 오세훈, 이양희, 정은하 등 42명의 대원을 대표하는 일곱 명의 집필진은 정원·조경 분야의 실무자와 학계, 수목원·식물원의 연구자 등 다채로운 경력을 가진 이들이다. 숲자락의 단면을 정원에 도입하기 위해 떠난 흥미롭고 유익한 탐험기를 들려주고자 한다.
  • [북 스케이프] 권력을 위한 앎, 플리니우스 『박물지』
    ‘아는 것이 힘이다.’ 압축 근대화 시기 대한민국에서 교육 받은 이라면 누구나 들어봤을 격언이다. 사실 앎을 통해 무지함에서 벗어나고 미지의 영역을 정복해 나가는 계몽은 근대의 특징 중 하나이며 진보의 토대를 이룬다. 하지만 17세기 초 프랜시스 베이컨이 이 말을 하기 전에도 여러 이가 지식의 확장과 축적을 통해 세상을 통제하려 했다. 『동물지Historia Animalium』에서 수백 종에 이르는 동물과 물고기의 생리와 내외부 기관, 생태 등을 기록한 아리스토텔레스가 처음으로 지식 권력을 추구했다. 하지만 『박물지Historia Naturalis』를 통해 곤충부터 우주에 이르는 방대한 분야를 아우른 플리니우스Gaius Plinius Secundus Major의 작업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환경과조경404호(2021년 12월호)수록본 일부 각주1. 『박물지』도 여러 판본이 전해지는데, 라틴어 원전과 영어 번역이 병기된 하버드 로엡 고전 총서(Loeb Classical Library)가 가장 널리 쓰인다(Pliny, H. Rackham, Pliny: Natural History vol 1-10, Harvard University Press, 1938). 국내에는 『플리니우스 박물지』(서경주 역, 노마드, 2021)가 있으나 정원과 관련해 참조할 만한 식물학과 농업, 원예학 부분은 수록되어 있지 않다. 각주 2. 플리니우스의 생애에 대해서는 고증이 잘된 만화는 『플리니우스 1-5』(이재화 역, D&C미디어, 2017~2019)이며 원서는 11권까지 출간되었다. 황주영은 서울대학교 협동과정 조경학전공에서 19세기 후반 도시 공원의 모더니티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파리 라빌레트 국립건축학교에서 박사후 연수를 마쳤다. 미술과 조경의 경계를 넘나들며 문화사적 관점에서 정원과 공원, 도시를 보는 일에 관심이 많으며, 이와 관련된 강의와 집필, 번역을 한다. 그러는 동안 수많은 책을 사거나 빌렸고 그중 아주 일부를 읽었다.
  • [에디토리얼] COP26과 IFLA 기후행동공약
    지구 온난화의 영향이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코로나 팬데믹 뉴스에 가려 눈길을 끌지 못했지만, 올여름 지구촌 곳곳이 폭염과 홍수로 몸살을 앓았다. 한여름에도 냉방기가 필요 없는 미국 북서부를 사상 최악의 폭염이 강타했다. 시애틀 기온이 섭씨 40도까지 오른 건 1894년 관측 이래 처음, 그야말로 ‘잠 못 이루는 밤’이 이어졌다. 남부 유럽은 용광로처럼 끓었다. 이탈리아 시칠리아의 소도시 플로리디아는 49도를 찍었다. 폭염은 시민의 삶을 위협하고 유례없는 가뭄 피해를 낳았다. 북부 유럽에선 물난리가 났다. 폭우와 홍수로 180명 넘게 사망한 독일, 그 피해는 처참했다. 지난 8월 9일,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는 기후변화가 인류의 존망을 결정할 정도로 심각하다고 진단한 보고서를 공개했다. 올해부터 2040년 사이 지구 온도가 산업화 이전에 견줘 1.5도 오를 가능성이 크다는 게 핵심 내용이다. IPCC는 2018년 보고서에서는 1.5도 상승하는 때를 2030~2052년으로 예측했는데, 이번에 10년가량 예측을 당긴 것이다. 온난화 안정의 전제 조건이 탄소중립이라고 강조한 이번 2021년 IPCC 보고서는 10월 31일부터 11월 12일까지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릴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당사국 총회(COP26)의 과학적 근거로 쓰일 예정이다.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UN Framework Convention on Climate Change)은 이산화탄소를 비롯한 온실가스 방출을 제한해 지구 온난화를 방지하기 위해 세계 각국이 동의한 협약이다. 1992년 6월 리우 회의에서 채택돼 1994년 3월 발효됐으며, 1995년부터 매년 당사국 총회(COP, Conference of the Parties)가 개최되고 있다. 2015년 열린 COP21에서는 2020년 이후의 신기후체제 수립을 위한 최종 합의문인 ‘파리협정’이 채택됐다. “지구 평균 온도 상승 폭을 2도보다 상당히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고, 1.5도 이하로 제한하고자 노력한다”는 파리협정으로는 온난화를 막기에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계속 제기됐다. 그래서 유엔기후변화협약 196개국과 유럽연합이 한자리에 모여 획기적인 기후변화 대응 방안을 논의할 이번 COP26에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각국은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한 중간 목표인 2030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를 COP26 개최 이전에 제출하기로 약속한 바 있다. 지난 9월 19일, 세계조경가협회(IFLA)는 COP26 개최에 발맞춰 ‘기후행동공약(IFLA Climate Action Commitment)’을 발표했다. 전 세계 77개 나라 7만 명 넘는 조경가들이 지구 온난화를 섭씨 1.5도로 제한하기 위해 행동에 나선 셈이다. IFLA는 “기후 위기 해결의 열쇠는 탄소 배출량 감소, 인간 사회의 회복탄력성과 전환, 자연환경의 지속가능성에 있다”고 선언하면서, 기후 해법을 제시할 수 있는 조경의 전문 역량을 다음과 같이 재확인했다. “조경가는 지구촌 환경과 사회의 파멸을 예방할 고유의 능력을 갖추고 있다. 조경가는 전문적인 계획, 설계, 관리를 통해 글로벌 생태계를 보호·개선하고, 인간의 건강과 웰빙과 행복을 촉진하며, 온난화에 몸살 앓는 환경을 냉각시키고 대기 중 탄소를감소시킬 수 있다 .…… 자연 기반 해법, 기술 혁신, 전략적 사고를 바탕으로 창의적 전문성을 갖춘 조경은 도시에 최대한 많은 숲을 조성해 탄소를 제거하고 생물 다양성을 구축하며 인류 생존을 위협하는 이상 고온으로부터 도시를 보호한다. 조경가는 도시 환경뿐 아니라 글로벌, 광역, 지역, 휴먼 스케일 등 모든 규모의 생태계 기능을 보호, 강화, 향상시키며 …… 기후변화에 대응할 회복탄력적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데 기여한다. 조경가는 자연과 연결되고자 하는 인간의 강한 열망을 충족시켜준다.” 또한 IFLA는 탄소중립을 위한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달성을 위해 전 세계 조경가의 전환적 협력과 행동을 촉구하면서 여섯 가지 방향을 약속했다. 1. 유엔 지속가능발전목표(UN SDGs)의 증진: IFLA에 가입한 77개국 조경가들은 지구촌 생태계를 보호하고 복구하는 노력을 가속화할 것이다. 2. 2040년까지 전 세계 탄소 배출 넷제로(net zero) 달성: 조경가가 진행하는 프로젝트에서 발생하는 작동 탄소와 체화 탄소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경관 고유의 수용력을 활용해 이산화탄소를 감소시키며, 청정·복합 운송 시스템을 지원할 것이다. 3. 살기 좋은 도시와 커뮤니티의 수용력과 회복력 강화: 조경가는 그린 인프라 접근법을 통해 도시 열섬 효과를 완화하고 화재, 가뭄, 홍수 위험을 줄이는 데 힘쓸 것이다. 4. 기후 정의와 사회 복지 옹호: 조경가는 공정과 평등, 식량 안보, 청정 수질과 행복을 위한 모두의 권리를 증진시킬 것이다. 5. 문화 지식 체계의 학습: 조경가는 기후변화 영향을 완화하는 작업을 지속하기 위해 토착 문화의 토지 관리 지식을 존중하고 적용할 것이다. 6. 기후 리더십의 발휘: 조경가는 기후 위기 대응을 선도할 위치에 있다. 조경가는 기후 긍정적 설계(climate positive design)를 위해 관련 분야 전문가와 지속적 협력을 이어갈 것이다. 우리는 이미 수많은 과학자와 정치가의 목소리를 통해 지구 온난화와 기후변화가 가져올 위험에 대해 들었고,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두려움이 좋은 방향의 실천을 인도하는 것은 아니다. 위기감을 자극하는 경고가 계속되면 우리는 무감각해지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대중에게 두려움을 강요하는 과학의 경고와 정치의 훈계보다는 조경의 실질적이고 지혜로운 실행이 필요한 시대, IFLA의 기후행동공약은 한국 조경계의 실천 좌표와 무관하지 않다. 지난 3월호부터 두 달에 한 번씩 이어온 인터뷰 “사람과 사람을 잇는 사람들”을 이번 호로 맺는다.조경가 조성빈, 김연금(조경작업소 울)의 수고에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 [풍경 감각] 풍경의 이름
    #1 이름은 붙였어? 오래도록 갖고 싶었던 카메라를 들고 나선 날, 친구가 물었다. 소중한 카메라이니 이름을 붙여야 한단다. 사물에 이름을 붙이는 게 이상하고 부끄러운 일 같았지만, 친구의 진지한 얼굴을 보니 놀리고 싶어졌다. 그럼 메라라고 할까? 그 이후로 ‘메라’를 볼 때마다 사뭇 진지했던 친구의 표정이 떠올라 웃음 짓는다. #2 오랜만에 ‘메라’로 기록한 사진들을 살피니, 강아지가 뛰노는 풀밭이 보인다. 까만 눈, 분홍색 코가 박힌 하얀 진돗개. 뭐라고 부르든 달려오는 모습이 귀엽고 또 괜히 놀려주고 싶은 마음에 ‘곰탱이’라고 이름 지은, 나의 첫 강아지. 무지개다리를 건넌 뒤 좀 더 고운 이름으로 부를 걸 하고 후회했지만, 덕분에 나는 곰탱이라는 말을 하얗고 보송하게 기억한다. #3 설계 회사에서 지었던 공간 이름 몇 개를 떠올려 본다. 커피 앤 티 가든, 느티나무 쉼터, 매화나무 언덕, 어울림 마당, 다함께 정원, 진입 광장. 일정에 쫓겨 급하게 정한 이름이 많다. 머리를 싸맸지만 마땅한 이름을 떠올리지 못해 택한 차선책도 많다. 설계 도서에 적지 못하더라도 메라나 곰탱이 같은 이름으로 불러 볼 걸. 미소가 떠오르는 이름, 하얗고 보송한 이름을 소중한 풍경에 붙여 볼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