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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도가 만든 도시] 제도, 크기를 정하다 1
    우리는 어떤 크기의 공간에 살고 있는가. 크게는 초중고 학생이 배정되는 범위인 학군, 공공 서비스 시설이 설치되는 기준인 생활권부터 작게는 내 방의 창문 크기, 창문 너머로 마주한 앞 동까지의 거리, 아파트 단지 나무의 굵기, 도로의 연석 높이까지.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적 공간의 범위와 그 공간을 구성하는 거의 모든 요소는 그 길이(높이, 거리, 두께, 너비, 둘레)와 면적의 최소 또는 최대 한계를 규정한 제도를 따른다. 더 넓게 도시 단위를 생각해 보자. 이른바 ‘과학적’ 도시계획은 제도화1된 프로세스로 독립 변수인 인구수를 입력하면 해당 인구가 살아갈 주택용지, 상업용지, 산업용지, 공원 및 녹지로 구성된 도시의 면적을 결정해준다(그림 1). 우리는 ‘제도의 크기’ 에 살고 있다고 하겠다. 대다수의 세부적 크기 기준은 일상 공간의 안전과 최소한의 환경적 쾌적함 등 실용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많은 경우 설계와 시공이 해당 목적을 적정 수준으로 달성했는지 효율적으로 판단하기 위해서는 확정적 수치로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거주 공간에 최소한의 채광과 통풍을 확보하기 위해 창문 크기를 방 면적의 최소 1/10 이상으로 규정한 것이 그런 예라 하겠다. 그러나 현대 도시 제도가 규정하는 크기의 기준이 ‘과학적으로 계산하여 산출된, 객관적 값’으로 사회적 차원에서 가치 중립적이며 실제 도시 공간에서 공정하게 작동할까?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의 크기에 관여하는 제도에 대해 다룰 두 차례의 글 중 이번 호에서는 제도가 규정하는 크기 제한의 의미를 곱씹는다. 제도와 크기의 열망 사이: 최저 높이 제한과 최고 높이 제한 더 넓고 더 높은 건물을 만들고자 하는 열망과 제도가 맺은 관계들을 살펴보자. 1960년대 뉴욕에서 시작된 현대 도시계획의 높이 규제는 가로 공간이나 주거지에서 입체적으로 일정 수준의 공간적 개방을 확보하기 위해 건물의 높이를 제한한다.2 높이 규제는 시대와 장소, 대상에 따라 절대 높이를 규정하거나 높이에 따라 건물을 뒤로 물리는set-back 등 다양한 방식으로 실행된다. 한국에서도 용도지역별 최고 층수, 가로구역별 최고 높이를 절대적으로 설정하거나, 주거지역에서는 일조를 위해 절대 높이와 각도 기준이 절충된 방식으로 높이를 제한한다(그림 2). 역사유적 주변으로는 시각적 인지와 역사 경관 보존을 위해 주변 건물 높이를 앙각 27도 사선 밑으로 제한하기도 한다. 높이가 아닌 면적에 대해서도 대지 면적을 제한해 옛 도시 조직의 스케일을 유지하기 위한 최대 개발 규모 규제 등이 운영되고 있다. 채광과 통풍 같은 실용적 목적이든 공간의 정성적 가치 구현을 위해서든, 크기에 대한 제도의 관여는 주로 최대와 최고를 설정해 더 넓고 더 높은 건물을 짓고자 하는 사적 열망을 억누르고 공적 가치를 실현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그렇다면 공간 제도는 이렇게 더 큰 규모의 열망을 제한하는 방향으로만 관여할까? 그렇지 않다. 반대로 일정 수준 이상의 규모를 강제하기도 한다. 주요 도로변을 따라 최저 높이 또는 최저 층수를 설정했던 ‘최저고도지구’나 대지를 일정 규모 미만으로 분할하는 것을 금지하는 건축법 등이 이에 해당한다. 주요 간선도로변과 역세권에서 소규모 인접 대지 간 공동 개발을 권장 또는 강제하여 개발 규모가 커지도록 유도하기도 한다(그림 3). 물론 이러한 최저·최소 규모 규제는 입지가 양호한 도시 내 토지, 즉 도로, 지하철 등 공공 투자의 수혜를 입은 땅을 좀 더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이유에 근거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최저·최소 제도를 특정 간선도로 등 일부 구역에 선택적으로 적용하는 바를 설명하지 못한다. 이는 크기에 대한 사회적 열망을 제도화한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예를 들어 최저 높이와 층수를 강제하는 제도는 일제식민지기 도쿄 중심지 주요 가로변에 먼저 적용된 뒤 경성에도 도입된 것이 그 시작이다. 도쿄에서 최저를 규정하는 제도가 운용된 이유와 한국에서 광복 이후에도 이 제도가 존속된 이유는 같다. 지금 기준에서 보자면 초라한 수준인 4층 또는 3층의 최저 높이 규제는 도쿄에서는 근대화를, 서울에서는 전쟁 후 국가 재건과 경제 개발을 주요 노선변 ‘고층화’를 통해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그림 4). 달리 말해 도시가 번영한 결과로 고층화를 이룬 것이 아니라 번영하고자 하는 열망을 특정 영역에서 건물의 높이로 ‘미리’ 보여주고 싶은 목적의 산물이었다. 1960년대 김포가도(김포공항~영등포구청)에 ‘준미관지구’를 지정했던 것이나 1980년대 초,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앞두고 마포로에 면한 한 켜를 철거하고 재개발을 실행한 사례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3 건물 높이 또는 층수의 최저 한도를 설정하는 ‘최저고도지구’는 2017년에 이르러서야 관련 법에서 완전히 삭제되었다. 전후 1960년대까지는 세종로나 종로와 같은 중심지 주요 도로변에서도 최저 5층이 어려워 4층으로 완화를 해야 할만큼 당시 민간의 자본 규모와 공간 수요가 매우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중심지는 물론 변두리 주거지역에도 이미 4~5층 건물이 빼곡한 지 오래인 상황에서 도시의 번영을 상징하는 ‘고층화’라는 애초의 목적은 전혀 유효하지 않다. 그럼에도 서울은 물론 주요 대도시 구도심 여러 곳에 최저고도지구가 지정되어 남아 있었다. 그중 노후 건물을 다시 짓지 못하거나 나대지가 방치되어 최저 층수 규제가 작동하지 않는 곳도 일부 있었다(그림 5). 이미 도시의 번영을 상징할 ‘고층화’가 충분함에도 최저 규제가 저이용 구도심의 개발을 유도할 수단이라는 잘못된 관성이었다고 하겠다. **각주 정리 1. 국토교통부의 ‘지속가능한 신도시 계획기준’, ‘도·시·군 기본계획수립지침’, 법제처의 ‘혁신도시 계획기준’과 ‘기업도시 계획기준’ 등이 이에 해당하며, 주거 밀도 및 주택 유형별 인구 배분 기준을 제시하여 인구수에 근거, 도시의 면적부터 주택의 평형별 세대수까지 산출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2. 높이 규제는 용적률이 도입되기 전까지 도로 등 기반 시설 용량 대비 토지이용 강도를 규제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3. 박일향·전봉희, “1950-1970년대 도시미화를 위한 서울 간선도로변 고층화제도의 사적 고찰”, 『대한건축학회 논문집 - 계획계』 35(10), 2019, pp.41~52. *환경과조경421호(2023년 5월호)수록본 일부 유영수는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이로재와기오헌에서 건축 실무를 경험했다. 런던 정치경제대학교에서 도시디자인 및 사회과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돌아와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며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병행했다. 현재는 인천대학교 도시건축학부에서 법, 제도, 현대 도시 설계 이론, 스튜디오를 가르치고 있다. 건축과 도시를 아우르는 스케일에서 개별적인 공간 현상과 법제 사이의 관계를 연구하고, 계획과 디자인의 역할을 확장하기 위한 이론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 유영수
  • [어떤 디자인 오피스] 동심원조경기술사사무소 조경 본연의 가치를 퍼트리는 구심점
    네 개의 동심원 우리는 안계동 대표 휘하 네 개 오피스가 모인 공동체다. 동심원조경기술사사무소(이하 동심원조경)는 3개 설계실(설계1실, 설계2실, 설계3실)과 동심원건설로 구성된다. 어느 실은 실시설계를 주로 맡고, 어느 실은 계획을 주로 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지 않는다. 우리는 동심원이란 이름하에 네 개의 회사처럼 운영된다. 그러다 보니 본인이 속한 실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물론 같은 회사 구성원으로서 함께할 때도 있고, 때론 서로 선의의 경쟁을 펼친다. 각 실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막내들에게 동심원조경의 매력이 무엇인지 물어봤다. 유연한 1실 강하고 매콤한 멤버들이 모여 있다. 기본구상부터 실시설계, 모델링, 현장 답사 등 설계의 전 과정에서 손발을 맞춰 움직인다. 그냥 이것저것 다 해보면서 정신없이 배우는 중이다. 1실의 매력은 ‘유연함’으로, 다양한 변수에 맞춰 빠르게 대처하고 업무 집중도를 높여 야근을 줄이려 노력한다. 매년 5월 전통 정원 답사를 다니고 있는데, 언젠가 1실의 전통 정원 답사기를 쓰고 싶다. (김혜빈) 섬세한 2실 깐깐하고 까다로운 멤버들이 모여 있다. 작은 실수도 용서되지 않고 높은 완성도를 위해 철저한 검토 과정을 거친다. 디자인도 클라이언트의 요구에 맞게 까다롭게 작업해 만족도는 높은 편이다. ‘예리함’과 ‘섬세함’을 무기로 최고의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팀이다. (이우근) 갓생의 3실 모든 멤버가 ‘갓생’(god+생)을 살고 있다. 설계는 물론이고, 일 외의 시간에서도 열정적으로 저마다의 삶을 만들어 나가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매 프로젝트를 매우 효율적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워라밸이 환상적인 팀이다. 높은 업무 집중도와 공간에 대한 열린 사고방식으로 설계를 구현할 수 있고, 갓벽(god+완벽)한 디자인을 만들어낸다. (송재안) 동심원건설 동심원건설은 현재 한창 현장에서 바쁘게 시공 중이라 차마 소개 글을 요청하지 못했지만 누구보다 치열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상급자 혹은 각 실에 대한 찬양에 가까운 칭찬을 가급적 배제해달라고 요청했는데, 다들 은연중에 본인이 소속한 실을 최고라 표현했다. 지금까지 100여 명의 직원이 동심원조경을 거쳐 갔고 현재 20년 근속기념 금메달 가진 사람 5명, 10년 근속 기념 황금열쇠(10돈)를 가지고 있는 사람 10명을 포함해 총 25명이 근무 중이다. 회사에 고인물(?)이 좀 많은 편이지만, 우리를 거쳐 간 이들은 조경계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현재 설계사무소를 운영하거나 교수로 활동하며 조경 분야에서 한가락 하는 중이다. 동심원의 만듦새 동심원에서 일해요 조경을 잘 모르는 이들에게 ‘동심원에서 일해요’라고 말하면 ‘유치원에서 일하세요?’라고 묻지만, 조경하는 사람들은 ‘아, 동심원’이라고 답한다. 회사 역사가 오래됐고, 알려진 작품이 많다 보니 조경계에서는 아는 이들이 많다. 그래서 슬쩍 (내가 하지 않았지만) 유명한 프로젝트를 말하며 ‘이런 것도 저희가 했어요’ 하며 약간의 자랑도 가능하다. 유명한 작품이 꽤 있다 보니, 동심원조경이 많은 설계공모에 당선됐다고 생각한다. 물론 서울숲, 춘천 캠프페이지 등 유명한 당선작들이 있지만, 당선작 개수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우리도 설계공모에서 숱하게 떨어졌다. 설계공모 당선의 문턱을 기웃거리지만, 우리의 설계에는 약점 아닌 약점이 있다. 화려하지 않고, 기능에 충실하며, 대상지 이외 주변까지 연결하는 실질적 문제에 매달리며 설계를 하지만, 잘 포장(?)하는 것에 약하다. 대신 당선작으로 선정돼서 만들어지면 얘기가 달라진다. 실질적 문제를 거듭 고민하기 때문에 설계공모에서 계획했던 플랜과 최종 플랜이 거의 다르지 않다. 그리고 오래 사랑받는다. 만듦새를 위한 원칙 동심원조경은 설계의 일관된 원칙이 있다. 첫째 지형과 땅이 가진 특성을 꼼꼼하게 읽어내는 땅에 대한 책임감, 둘째 변화하는 삶을 담아내는 진화하는 유연함, 셋째 과도한 디자인과 낭비적 디자인을 경계하는 실용과 절제, 넷째 시공 과정을 이해하고 현장에 적합한 해법과 디테일을 중시하는 실천적 새로움이다. 이런 원칙을 토대로 설계를 진행하다 보니 설계 26년 차인 나도 아직 대표에게 디테일에 대한 검토와 지적을 받는다. 우리의 프로젝트 동심원조경은 지금까지 500여 개의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단지 내가 참여한 프로젝트가 적을 뿐 대표작은 손에 꼽기가 어려울 정도로 너무 많다. 난지 한강 공원, 서울국제금융센터, 서울시청, 노들섬, 화담숲 2차 설계, 사우스케이프 오너스클럽 골프 코스와 빌라, 래미안 신반포팰리스 등 시간과 지면만 주어진다면 계속 늘어놓을 수 있지만 특별히 엄선한 대표작부터 작년에 준공한 최신작까지 시간순으로 살펴본다. 월드컵 평화의공원(2002) 서울 월드컵경기장 대회 시설의 일부로 주변의 난지공원, 하늘공원 등과 차별화된 문화 활동 중심의 도시공원으로 조성했다. 월드컵경기장의 축과 직교하며 호수변을 따라 원호 형태로 조성한 광장에서는 수변음악회, 정원박람회 등 다양한 문화 행사가 열린다. 율수원(2013) 경상도 사대부가 고헌 고택을 확장, 개축한 전통 한옥 숙박 공간이다. 전통 조경을 제대로 구현해보자는 목표 아래 설계부터 시공까지 진행한 프로젝트다. 전통 사상과 관습을 토대로 식재 수종을 선정하고 방위에 따라 배식, 전통적 소재와 기법을 사용한 포장, 첨경물 등을 설치했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2014)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동대문디자인플라자는 유기체적 건축물의 형태와 외부 공간이 잘 어울리도록 경계를 허무는 디자인에 초점을 두었다. 지상에서부터 건축물의 옥상까지 공원의 흐름이 이어진다. 경의선숲길(2015) 경의선 복선화 사업으로 생긴 유휴 철도 부지를 공원화한 선형 공원으로 풍부한 녹음을 제공한다. 도시와 단단하게 연결되어 시민들의 편리한 접근도 가능하다. ‘연트럴파크’라고도 불리는 공원은 활기찬 도시 문화를 느낄 수 있는 시민 휴식 공간이다. 부산 래미안 장전(2017) 부산에서 드문 평지형 단지의 장점을 최대한 이용해 시원하게 뻗은 통경축을 확보한 선형 공원을 조성했다. 구간별로 잔디광장·숲·야외카페·멀티폰드를 설치해 다채로운 여가 활동이 일어나는 일상적 공간으로 만들었다. 성문안 CC 클럽하우스(2022) 2022년 9월 준공했으며 클럽하우스 주변 및 암벽면 설계와 시공을 진행한 현장이다. 깊은 계곡 속 와일드 가든이라는 콘셉트로 건축물과 야트막한 돌산에 둘러싸인 지형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질 수 있도록 계획했다. 우리의 공간 대형 공원 첫 당선작, 서울숲 2000년대 초 밀레니엄 공원 기본계획 및 설계와 평화의 공원 설계를 진행했지만, 대형 공원 설계공모 첫 당선작인 서울숲은 우리에게 의미 있는 작품이다. 2002년 마침 성수동으로 사무실을 옮겼고, 이듬해 설계공모에 당선되며 설계를 진행했다. 꼬맹이 시절이라 설계에 대한 참여는 적었지만 시공 담당자와 친한 덕분에 공사 전 부지를 자주 드나들며 시공 과정을 살펴볼 수 있었다. 그 이후에도 근처에서 일하며 서울숲의 변화를 가까이에서 봐왔다. 세월이 흐르며 지켜본 서울숲에서는 공간이나 시설의 물리적 변화보다는 사람들의 공원을 활용하는 방법, 문화가 변하는 것이 보인다. 유튜브 영상에서 어떤 댄서가 춤추는 걸 보면서 ‘저거 서울숲에서 찍었네!’ 하며 소릴 질렀다. 아직도 이런 장면을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만든 지 20년 훌쩍 넘은 공원이 성수동의 힙한 문화와 함께 하는 모습은 설계자들에게 큰소리칠 기회가 된다. 동심재와 푸르너스 우리만의 특별한 직원 복지도 있다. 하나는 무료로 마실 수 있는 커피다. 원래 동심원조경 사옥으로 쓰였지만, 지금은 카페로 활용 중인 푸르너스에서 직원들은 하루 한 잔의 커피를 무료로 마실 수 있다. 점심 식사 후 푸르너스에서 내린 커피를 들고 서울숲을 거쳐 사무실로 돌아오는 건 동심원조경 직원들의 소소한 점심 루틴이다. 다른 하나는 춘천호 근처에 동심원조경 직원들의 휴양소 ‘동심재’가 있다. 직원들은 한 달에 한 번 사용 신청을 할 수 있다. 주말은 언제나 예약이 꽉차기 때문에 잽싼 예약이 필요하다. 필요한 시설은 다 갖춰져 있어, 주변 풍광 아름다워, 사람 없어, 캠핑이 이에 비할까. 꽃놀이, 겨울철 빙어 잡이, 불멍 등 계절별로 모든 종류의 휴식이 가능하다. 게다가 보트를 타거나 낚시도 할 수 있다. 주변 사람의 방해 없이 놀 수 있다 보니 언제나 인기 만점이다. 동심원조경기술사사무소는 땅이 가지고 있는 힘을 충실히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과도한 수사적인 디자인을 경계하고 이용자가 체감할 수 있도록 변화하는 삶을 담아내는 설계를 지향한다. 더 나은 삶의 문화를 이끄는 공간을 만들고 있다.
  • [모던스케이프] 공공의 정원
    2023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가 개막했다. 이번 박람회는 2013년 첫 개최 이후 10여년 만에 이루어진 것인데, 그 사이 정원은 대중에게 상상 이상으로 가까워졌다. 대한민국 국민의 주거가 아파트 일색이 되면서 정원은 그저 중장년의 노스탤지어가 될 것이라 여겼는데, 그 예상 또한 보기 좋게 빗나갔다. 다만 지금의 정원이 과거와 다른 건 개인 주택의 부속 공간을 넘어 대중이 함께 향유하는, 이른바 공공 정원이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공공 정원으로 직역할 수 있는 퍼블릭 가든(public garden)은 새로운 용어가 아니며, 도시의 공공 공원(public park)만큼이나 오래된 개념이다. 정원이론가 황주영은 왕실과 귀족 소유의 정원(garden)과 파크가 대중에게 개방되어 공원이라는 도시 시설로 치환되는 과정은 물론, 도시의 다양한 녹지 공간의 발전 양상을 문화사 시선으로 통찰한 바 있다. 스퀘어, 산책로, 공동묘지, 위락 정원 등의 공원·녹지가 도시에 탄생하고 진화하며 궁극에는 근대 도시에 없어서는 안 될 핵심 장치가 되기까지 그 흐름을 사회와 문화의 콘텍스트로 설명하는 그의 글을 읽고 나면, 정원과 공원이 유럽의 근대화 과정에서 얼마나 복잡하게 분기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유럽의 현상과 형식을 학습하며 도시 근대화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던 조선은 동아시아의 여느 국가처럼 근대 도시 시설의 이식 과정이 비교적 단순했다. 공원과 공공 정원이 함께 들어왔지만, 우리는 기능과 성격을 구별할 기회조차 갖지 못한 채 식민지기를 맞이했다. 1876년 강화도조약 체결 후, 대한제국의 지식인들은 여러 경로로 유럽, 중국, 일본, 미국으로 넘어가 다양한 신문물을 경험했다. 그들은 서구 공원을 방문하고 시민, 자연, 공공, 위생에 관한 생각을 기록으로 남겼다. 더 나아가 서재필, 윤치호 등은 독립협회를 결성하고 독립공원 조성을 시도했지만, 자금 부족으로 계획대로 만들지는 못했다. 이후 단체마저 해체됐기에, 도시 녹지의 성격을 어떻게 규명하고 실천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논의할 기회는 거의 없었다. 반면, 외지인은 허락된 구역 안에 곧바로 도시 녹지를 조성할 수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퍼블릭 가든이었다. 1883년 상하이를 거쳐 조선에 입성한 러시아 건축·토목기술자 사바친(Afanasy Ivanovich Seredin-Sabatin, 1860~1921)은 1888년 ‘대한조선인천제물포각국조계지(大朝鮮仁川濟物浦各國租界地)’ 계획도를 작성했고, 러시아인, 독일인, 일본인, 영국인 거류 구역 사이에 퍼블릭 가든을 구획했다. 지금은 자유 ‘공원’이 됐지만 계획 당시 개념과 이름은 퍼블릭 가든이었다. 퍼블릭 가든은 외교관이자 의료선교자였던 미국인 알렌(Horace Newton Allen, 1858~1932)이 작성한 서울 정동의 조계도에도 등장한다. 정동극장 자리에 있던 퍼블릭 가든은 테니스 코트로 사용됐다. 참고문헌 이시카와 미키코 저, 이용태 역, 『도시와 녹지』, 도서출판 현진기획, 2004. 황주영, 『근대적 발명품으로서 도시공원: 19세기 후반 런던과 파리를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4. 조선총독부, 『재조선각국거류지평면도(在朝鮮各國居留地平面圖)』, 1911. 인천부, 『인천부사』, 1933. 그림 출처 1. 인천부, 『인천부사』, 1933. *환경과조경421호(2023년 5월호)수록본 일부 박희성은 대구가톨릭대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한중 문인정원과 자연미의 관계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에서 건축과 도시, 역사 연구자들과 학제간 연구를 수행하면서 근현대 조경으로 연구의 범위를 확장했다. 대표 저서로 『원림, 경계없는 자연』이 있으며, 최근에는 도시 공원과 근대 정원 아카이빙, 유네스코 세계유산 제도와 운영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다.
  • 병풍으로 읽는 조선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조선, 병풍의 나라 2’ 전
    흔히 전통 혼례, 제사 등 엄숙한 행사의 배경으로 사용되는 병풍은 때론 중심이 되지 못하고 희미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사람을 비유할 때 쓰인다. 하지만 병풍은 예로부터 족자, 화첩, 두루마리 등과 같이 한국의 회화장르 중 하나였으며, 조선은 병풍의 나라로 불릴 만큼 병풍으로 제작된 회화 작품이 많다. 조선시대의 병풍은 한옥에서 유용한 인테리어 요소였다. 온돌 구조의 난방을 사용하는 한옥은 특성상 벽에 윗바람이 들 수밖에 없는데, 병풍은 이 윗바람을 막는 가림막 역할을 했다. 또한 접었다 펼 수 있어 파티션처럼 공간을 쉽게 분할할 수 있다. 기능성과 함께 미감을 갖춘 병풍은 마치 현시대의 미드 센추리 모던 양식의 소품처럼 조선시대에 유행했던 인테리어 소품이었다. 보통 전통 회화 전시는 화가나 작품에 집중하지만, 지난 1월부터 4월까지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 열린 ‘조선, 병풍의 나라 2’는 병풍이란 장르에 집중했다. 2018년에 이어 두 번째로 열린 이번 전시에서는 15개 기관 및 개인이 소장한 50여 점의 병풍을 모아 소개했다. 이번 전시는 사용 및 제작 주체에 따라 나눈 민간 병풍과 궁중 병풍, 제작 시기에 따른 근대 병풍을 소개해 조선 병풍의 계보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민간 병풍에서는 개성 넘치는 미감과 자유분방한 형식을 느낄 수 있고, 궁중 병풍은 조선 왕실의 권위와 품격을 드러내며, 전통을 온고지신의 정신으로 계승한 한국 근대 화단의 일면을 병풍으로 보여준다. 개인과 나라, 시대적 변화를 읽다 민간 병풍의 자유분방한 표현 방식에서는 양반, 서민 등 다양한 개인들의 소망과 취향, 그리고 개성이 읽힌다. ‘평생도8폭병풍’은 문관으로 급제한 상류층 사대부 양반의 일생을 그린 병풍으로 과거 시험 급제, 결혼, 관직 생활, 노후 등 전형적인 삶의 통과 의례를 다루며 관료의 성공적인 삶에 대한 염원을 담아냈다. 다양한 동·식물이 조화롭게 그려진 ‘백납도10폭병풍’과 원숭이, 코끼리 등 이국 동물을 포함해 다양한 동물을 그린 ‘백수도10폭병풍’에는 당시 유행한 박물학의 영향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외에도 효·제·충·신 등 유교의 핵심 가치를 드러내는 문자를 타이포그래피처럼 병풍에 그려 넣거나, 『구운몽』이나 『삼국지연의』처럼 인기 소설의 내용을 묘사한 그림을 병풍에 그려 독특한 개성을 보여줬다. *환경과조경421호(2023년 5월호)수록본 일부
  • 다시 만난 통신원, 함께 내딛은 첫 걸음 제39기 환경과조경 통신원 간담회
    제39기 환경과조경 통신원 간담회가 4월 8일 그룹한빌딩에서 개최됐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 때문에 온라인으 진행되다가 4년 만에 오프라인으로 진행돼 그 의미가 남달랐다. 환경과조경 통신원은 지난 1985년부터 39년간 이어져 온 전국 최대 규모의 조경 관련 대학생 네트워크로, 각 대학 소식과 지역 정보를 월간 『환경과조경』, e-환경과조경을 통해 전달해왔다. 또한 선후배 간의 교류를 통해 조경 관련 다양한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다. 설렘과 열정 가득한 첫 만남 환경과조경은 매년 통신원 임기를 시작하면서 활발한 활동을 독려하기 위해 선·후배 통신원들이 모이는 오리엔테이션으로서 간담회를 개최하고 있다. 이번 간담회는 1부 공식 행사와 2부 선배 통신원들과 함께하는 커리어 데이로 진행됐다. 박명권 발행인(환경과조경)은 축사를 통해 “통신원은 환경과조경의 소중한 친구이자 동반자며, 중요한 소통 창구의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 조경의 성장 신화를 기록하고 조경의 새로운 영역과 쟁점을 발굴하고 그 경계를 확장해 나가는 데 통신원의 참여가 소중한 밑거름이 될 것”이라며 활발한 활동을 당부했다. 39기 통신원은 총 23개 학교에서 34명의 학생이 선발됐으며, 전국 기장에는 서유석(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과 심우진(강원대학교 생태조경디자인학과)이 선출됐다. 서유석은 “코로나19로 줄어들었던 통신원 내 다양한 활동을 활성화시키며 이를 지원하는 지주 같은 존재가 되도록 노력하겠다”며 포부를 밝혔다. 심우진은 “1985년부터 이어져 온 유서 깊은 통신원 활동에 누가 되지 않도록 열심히 활동에 임하고, 다양한 조경 활동과 공간을 탐구해 나가는 통신원이 되겠다”며 의지를 다졌다. 지역 기장에는 서울·경기·강원 지역에 김기태(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와 김아윤(경희대학교 환경조경디자인학과)이, 경기·충청 지역에 정혜인(한경대학교 조경학과)과 한나라(한국전통문화대학교 전통조경학과)가, 영남 지역에 차인영(계명대학교 생태조경학과)과 이지은(부산대학교 조경학과)이 각각 선출됐다. *환경과조경421호(2023년 5월호)수록본 일부
  • [기웃거리는 편집자] 도시는 길고 인생은 짧다
    만약 무인도에서 들을 수 있는 곡을 선택하라고 한다면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을 고르고 싶다. 류이치 사카모토는 ‘마지막 황제’(1988) 등 국내외 수많은 영화의 OST를 제작한 영화 음악의 거장이다. 그의 음악을 선택한 이유는 내적 평화가 필요할 때 들으면 마치 힘겹게 올라간 산 중턱에서 마주치는 산바람처럼 마음에 큰 위로가 됐기 때문이다. 그는 음악을 대하는 태도와 열정이 남달랐으며 자연의 소리에서 영감을 받아 음악을 만들었다. 비 오는 날 양동이를 머리에 뒤집어쓴 채 빗소리를 듣거나, 두꺼운 빙하 사이를 흐르는 물소리를 채집하기 위해서 직접 극지방에 방문하는 등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음악을 만들었다. 심지어 쓰나미가 지나간 후 폐허가 된 현장에서 발견된 피아노를 직접 연주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쓰나미란 자연이 조율한 악기를 통해 자연 본연의 소리를 들려주고 싶다는 이유로 사람의 조율을거치지 않은 폐허의 잔해 속 날것의 피아노를 그대로 연주했다. 그가 폐허 속 악기에 음을 붙여 자연의 언어를 복원했던 것처럼, 서울의 쇠락한 골목길에 도시재생을 통해 새로운 도시의 언어를 만드는 곳이 생겼다. 힙스터의 성지로 거듭나기 이전의 성수동이 갖고 있던 고즈넉한 골목의 정취가 아직 남아 있는 송정동에 ‘1유로 프로젝트’의 시작을 알리는 새로운 복합문화공간이 생겨났다. 1유로 프로젝트는 유럽의 도시재생 모델 중 하나로 방치된 공간을 1유로로 대여해 주는 프로젝트인데, 임차인들의 리모델링을 통해 변신한 공간은 도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이처럼 송정동 1유로 프로젝트는 미래 가치에 투자한 임대인과 좋은 라이프스타일이 좋은 도시와 세상을 만든다는 목표 아래 다양한 브랜드들이 모여 탄생했다. 도시의 달리기 문화 콘텐츠를 기획하는 ‘런더풀’, 음식 다큐멘터리로 유명한 이욱정 PD가 운영하는 푸드 콘텐츠 브랜드 ‘요리인류’, 공유정원으로 경험하는 정원 문화를 전파하는 ‘서울가드닝클럽’ 등 입점한 브랜드의 다양한 제품과 행사 등을 각 브랜드가 직접 리모델링한 공간에서 경험하고 즐길 수 있다. 빌라로 쓰였던 기존 공간을 활용해 옛날 복도형 아파트처럼 긴 복도를 중심으로 각 브랜드를 배치한 덕분에 공간을 탐방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리모델링 이전의 사진을 비치해, 기존 공간에 대한 존중과 더불어 공간의 변화를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게 했다. 공간을 둘러보며 이번 호의 차오프라야 스카이파크(52~63쪽)가 떠올랐다. 차오프라야 스카이 파크는 방콕이 눈부시게 발전하는 동안, 구현되지 못한 채 도시의 흉물로 남아버린 스카이 트레인 철도를 새로운 도시공원으로 탄생시킨 프로젝트다. 기존 구조물을 단순히 폐허로 여겼다면 재개발의 논리에 따라 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대상지를 미완성의 꿈으로 바라보며 기존 구조물을 존중하는 방식의 디자인을 택했고, 이는 방콕의 도시재생에 새로운 가능성과 미래를 안겨다 주었다. 사랑했던 자리마다 폐허라고 한 시인이 말했던 것처럼, 도시는 필연적으로 사랑과 이별을 오가듯 폐허와 재개발을 오간다. 도시가 남긴 폐허는 첫사랑의 추억처럼 돌이킬 수 없는 기억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류이치 사카모토가 폐허 속에서 피아노를 통해 노래를 들려주고, 방콕에서 도시 한복판에 놓인 흉물의 가치를 재발견해 새로운 선형 공원을 탄생시키고, 송정동의 야트막한 골목에서 새로운 도시재생의 빛을 쏘아 올리고 있는 것처럼 폐허를 허무는 대신 그 속에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한다면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수 있지 않을까. 돌아갈 수는 없지만, 추억은 영원한 첫사랑처럼. 평소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라는 문장을 좋아했던 류이치 사카모토는 대중의 마음에 오래 남을 음악을 남긴 채 얼마 전 짧은 인생을 마감했다. 이처럼 사람은 늙고, 도시는 노후할 수밖에 없다. 모든 노인을 꼰대로 여기면 안 되는 것처럼 모든 도시의 요소를 자본과 개발의 잣대로만 판단해서는 안 될 것이다. 지리학자 에드워드 렐프가 “장소는 본래 의미의 중심으로서 삶의 경험으로부터 구축된다. 장소에 의미를 불어넣음으로써 개인과 집단과 사회는 공간을 장소로 만든다”라고 말했듯, 도시에는 장소가 필요하다. 맥락과 의미를 존중하는 장소를 만드는 도시재생이 필요하다. 도시는 길고, 인생은 짧기에.
  • [편집자가 만난 문장들] 자연스럽고 기분 좋은, 그리고 확실한 리듬이 없다면 사람들은 그 글을 계속 읽어주지 않겠지
    매대 앞에서 고민하는 시간이 갈수록 길어진다. 무항생제 계란, 동물복지 특란, 신선한 왕란. 여러 문구들 속에서 고심하다 가장 저렴한 것을 집어 들 때면 자꾸 이 지면의 값을 생각하게 된다. 올해 초 잡지 가격을 인상하며, 꽤 깊이 고민했다. 물가와 인건비 상승 등에 의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권당 2천 원이면 1년에 2만4천 원이나 된다. 500원 차이에도 동물복지 같은 단어를 포기해 버리는 나를 떠올리면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2만2천 원을 지면 수로 나누면 한 쪽에 약 135원이다. 꼭지마다 성격이 다르니 모든 지면이 같은 값을 가질 순 없다. 특히 ‘편집자가 만난 문장들’은 정보 전달에 주력하는 지면도 아니고, 머리 식히며 가볍게 읽기 좋은 덤 같은 꼭지다. 50원 정도의 값을 매기려다 주말 오전에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내가 가여워져 100원 정도는 쳐주자고 혼자 정했다. 웃기게도 그 순간부터 또 이 지면이 무겁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길어야 2분이면 후루룩 읽어버릴 수 있는 이 글이 100원을 받고 팔만 한 것일까. “같은 돈 내고 더 오래 보면 가성비가 좋은 것 아닌가?” 제임스 캐머런 감독이 한 인터뷰에서 던진 질문이다. 아직도 보지 않았지만, 영화 ‘아바타’에 등장하는 캐릭터 생김새와 상영 시간 때문에 일었던 논란은 잘 알고 있다. 13년 만에 나온 아바타 2편의 러닝타임이 무려 190분이나 되었던 것. 캐머런은 인물 관계와 감정에 초점을 맞추느라 길어졌다고 설명했지만, 190분을 꼼짝없이 의자에 앉아 스크린만 쳐다봐야 하는 관객의 원성이 터져 나왔다. 불만이 계속 일자 캐머런은 자신의 아이가 OTT에서 한 시간짜리 에피소드를 다섯 번 연속으로 보는 것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그러니 자신의 영화는 가성비가 좋은 게 아니냐는 거다. 관람 방식이 전혀 다른 OTT 콘텐츠와 영화를 비교하고 영상의 길이와 티켓 가격을 연관시키는 게 이상하지만, 그만큼 자기 영화에 자신 있다는 말이었을 것이다. 가벼운 해프닝인 줄 알았는데, 이후에 일어난 논란들이 재미있다. 아바타의 투자 배급사 뉴NEW의 양지혜 이사는 “재미있게 잘 만 들었다면 핵심 관객은 기꺼이 시간과 돈을 지불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영화적 경험보다 OTT를 더 선호하는 관객까지 잡아당길지는 물음표”라며 확신하지는 못하는 투였다. 영화시장 분석가 김형호는 “관건은 긴 러닝타임이 아니다. 에피소드를 빨리 전환해 한 영화를 마치 여러 번 체험하도록 해준다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는 영화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오히려 OTT 콘텐츠와의 차별화를 위해 더 긴 영화를 만들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1 캐머런이 러닝타임이 9시간에 달하는 아바타 3편의 가편집본을 넘겼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하나의 주제를 여러 번 체험하게 하는 것이 긴 영화의 성공 요인이라는 대목에서 잡지를 생각했다. 형식이 꽤 비슷하다. 잡지의 상영 시간은 어떻게 될까. 먼저 장편 소설 읽을 때의 내 모습이 어떤지 생각해봤다. 책 읽는 시간은 일상 패턴과 연관된다. 아무래도 여유가 있을 때 읽는다. 시간을 내 읽기도 하지만, 내가 원할 때 그 흐름을 끊을 수 있다. 반대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30분만 읽고 일어나야지 다짐해도 너무 흥미진진하면 책장을 덮지 못한다. 책갈피가 이동하는 속도는 내 여유를 가늠하는 바로미터가 된다. 일상이 바쁘고 고되면 한자리에서 잘 움직이지 않는다. 잡지는 소설과 달리 읽어야 하는 순서가 없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한 꼭지를 다 읽고 책장을 덮으면 영원히 펼치지 않아도 된다는 말과 같다. 여러 성격의 콘텐츠를 담아야 할 뿐 아니라, 일상에 녹아 호흡하기 위해서는 지치거나 질리지 않게 해줄 리듬감도 필요하겠구나. 잡지에 읽어야 할 글이 너무 많아 부담스럽다는 리뷰를 만나면 서운하기도 했는데, 숨 쉴 틈을 달라는 부탁이었구나 깨닫는다. “음악이든 소설이든 가장 기초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은 리듬이다. 자연스럽고 기분 좋은, 그리고 확실한 리듬이 없다면 사람들은 그 글을 계속 읽어주지 않겠지. 나는 리듬의 소중함을 음악에서 (주로 재즈에서) 배웠다”는 하루키의 말은 잡지에도 적용된다. 그래서 일상의 리듬을 좀 더 흥겹게 해줄 새로운 꼭지를 준비하고 있다는 예고를 슬쩍 흘려본다. 한 달 동안 잡지에 꽂힌 책갈피가 이리저리 바쁘게 옮겨 다니길, 매대 앞에 선 당신이 ‘조경 문화 발전소’라는 문구를 포기하지 않길 바라며. 각주1. 손효주, ““상영 시간 3시간 10분”…‘쇼트폼’ 대세 역행하는 ‘길고 긴 영화’들이 온다”, 「동아일보」 2022년 11월 9일.
  • [PRODUCT] 모험심과 호기심을 키우는 캐빈타워 다양한 높이에서 모험을 즐기는 놀이터
    자연은 아이들에게 친환경 놀이터나 다름없다. 예건의 복합놀이시설 브랜드 아이붐I-BOOM은 도심에서 자연을 경험할 수 있는 친환경 놀이터를 제작한다. 여러 놀이 유닛을 다양하게 조합한 놀이터에서 아이들은 흥미로운 모험을 즐기며 호기심과 상상력을 키울 수 있다. 각 유닛에 적용한 1~2등급 목재는 고유의 따뜻한 색감과 촉감으로 아이들의 오감 발달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캐빈타워는 기존 조합 놀이대의 형태에서 벗어나 튼튼한 기둥 위 높은 오두막집을 브리지로 연결한 모험 놀이 시설이다. 다양한 놀이 요소를 가진 육각형의 오두막집을 여러 방향으로 연결할 수 있는데, 다양한 높이의 구조물로 조합이 가능하며 안전하고 튼튼한 것이 장점이다. 과거의 아이들이 높은 나무를 오르내리며 놀았던 것처럼 다양한 높이의 놀이 구조물을 오르는 경험은 아이들에게 정서적 만족감을 주며, 오르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신체가 단련된다. 투명·불투명 슬라이드는 아이들의 흥미를 유발하는 요소로 빠른 속도를 체감할 수 있다. 유닛의 구성에 따라 대형 놀이터나 소규모 공원에 도입이 가능하고, 높이가 다양해 저학년부터 고학년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어린이들이 함께할 수 있는 통합 놀이 공간이다. TEL. 02-324-0070 WEB. www.iboom.co.kr
    • 아이붐
  • [에디토리얼] 1982년생 이야기
    1982년에 태어나 21세기의 문을 열며 조경학과에 입학했던 그들이 마흔의 문턱을 넘었다. 이번 호에는 국내외 조경설계사무소, 조경시공사, 엔지니어링사, 건설회사, 지방자치단체, 대학 강단에서 다채로운 삶을 꾸려온 ‘82년생 김조경’ 열두 명을 초대했다. 1982년생이 친숙한 건 100만 부를 돌파한 베스트셀러 소설이자 350만 관객을 모은 영화인 ‘82년생 김지영’ 덕이겠지만, 사실 그들이 탄생한 해는 한국 현대 조경사와도 인연이 깊다. 1982년은 『환경과조경』이 창간한 해다. 한국조경학회 창립을 기점으로 잡는다면 한국 조경의 10주년이며, 한국조경연합회가 세계조경가협회IFLA에 가입한 해이기도 하다. 내가 중학교 2학년이었던 1982년, 한국 프로야구가 출범했다. 같은 해에 개장한 잠실종합운동장 야구장에서 제27회 세계야구선수권대회가 열렸고, 김재박의 동점 ‘개구리 번트’와 한대화의 역전 홈런으로 한국 대표팀은 우승을 하고야 말았다. 한국 야구의 황금세대로 불리는 82년생 선수로는 이대호, 추신수, 오승환, 김태균이 있다. 내 머릿속 82년은 온통 야구뿐이지만, 사실 이 해는 정치 환경이 요동치고 사회와 문화가 급변하던 시기의 한복판이었다. 서슬 퍼런 5공화국 초기인 1982년, 쿠데타로 집권한 군사정권은 정의사회 구현이라는 미명 하에 사회를 통제하고 인권을 탄압했다. 반포대교 개통, 서울 지하철 2호선 종합운동장역~교대역 구간 개통도 82년이다.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교복에서 해방되고 두발 자율화가 전격 시행된 것도 기억할 만한 일이다. 야간통행금지 폐지도 빼놓을 수 없다. 영국과 아르헨티나 간의 포클랜드 전쟁이 발발했고,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앨범인 마이클 잭슨의 ‘스릴러’가 출시되어 ‘보는 음악’의 시대를 열었다. 1982년을 대표하는 대중가요로는 윤수일의 ‘아파트’를 꼽아야 한다. 물론 이용의 ‘잊혀진 계절’, 전영록의 '종이학’, 윤시내의 ‘DJ에게’, 송골매의 ‘어쩌다 마주친 그대’, 산울림의 ‘내게 사랑은 너무 써’ 등 수많은 히트곡도 82년생임을 기억해야 한다. 이 해에 가장 흥행한 한국 영화는 ‘애마부인’이지만, ‘록키3’, ‘람보’, ‘사관과 신사’, ‘ET’ 같은 외화에 몰려든 인파에는 비할 바 아니었다. 이번 특집에 참여한 82년생 조경인 고은진, 김정화, 김정훈, 김현정, 박진구, 송동근, 윤호준, 이한희, 채장원, 최동원, 최영준, 최효욱과 동갑인 연예인 중에는 김민희, 손예진, 한가인, 정지훈, 이준기, 현빈 등 지금도 맹활약하고 있는 스타가 유달리 많다. 해외 셀럽을 한 명만 꼽자면 단연코 앤 헤서웨이다. 뉴욕타임스가 정의한 밀레니얼 세대가 1981년생부터 1996년생까지니, 이들은 디지털 네이티브 MZ 세대의 문을 연 큰언니, 큰형인 셈이다. ‘82년생 김조경’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간 1989년에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고, 폴란드,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 루마니아 등 동유럽 공산주의 정권들이 도미노처럼 차례로 쓰러졌다. 이들이 중학생이 된 1995년,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는 ‘세계화 원년’을 선언했다. 첫 지방선거가 실시되어 민선 지자체장 시대가 열렸다. 케이블 다채널 시대가 개막했고, PC통신이 인터넷 접속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드디어 인터넷이 대중화되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우 95를 발매해 IT계의 대혁명이 일어난 것도 같은 해의 일이다. 이들이 고등학생이 된 1998년은 전년 말에 불어닥친 IMF 외환위기로 대다수 국민이 구조조정과 실업난의 고난을 겪은 흑역사의 절정기였다. 이 해를 전후로 H.O.T., S.E.S., god, 젝스키스, 신화, 베이비복스, 핑클 같은 1세대 아이돌 그룹들이 대거 데뷔해 대중문화의 새 장을 열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82년생 김조경’들이 대학 조경학과 신입생이 된 2001년, 대망의 21세기가 시작됐지만 뉴욕발 9.11 테러는 전 세계를 혼란에 빠뜨렸다. 마침내 IMF 시대를 졸업했고, 인천국제공항이 개항해 한국은 동아시아의 항공과 물류 허브로 도약했다. 사용자 1천만 명을 넘어서며 휴대전화가 대중화되었고, 이른바 모바일 시대가 열렸다. 2001년 연말 교수신문이 선정한 올해의 사자성어는 오리무중五里霧中이었다. ‘82년생 김조경’들이 대학 생활을 하거나 사회 초년생이던 시기, 국내외를 막론하고 조경의 지형과 판도가 꿈틀거렸다. 21세기의 문을 열며 진행된 다운스뷰파크, 프레시킬스, 하이라인 등의 국제 설계공모가 조경 이론과 실천의 변화를 재촉했고,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이 부상하기 시작했다. 선유도공원, 서울숲, 한강르네상스를 횡단하며 한국 조경의 변신 프로젝트가 펼쳐진 것도 이 무렵이다. 행정중심복합도시, 혁신도시, 2기 신도시가 촉발한 대형 사업은 ‘조경의 시대’라는 표현을 낳기도 했다. ‘82년생 김조경’들은 역동적인 조경의 시대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며 성장했지만 정작 그들이 30대에 접어든 때부터는 한국 조경의 외적 환경이 위축되는 역설을 마주하기도 했다. 21세기의 개막과 함께 조경을 공부하고 다양한 직군에서 조경의 길을 걸어온 열두 명의 이야기는 한국 조경 50년사의 근과거와 현재를 보여주는 생생한 단면이다.
  • [풍경 감각] 적당한 거리
    자주 다니던 수목원에서 가장 인기 있는 식물은 복수초 같았다. 멸종위기 야생생물로 지정된 진노랑상사화, 흰 꽃을 피우는 희귀한 진달래, 종을 정의할 때 기준으로 삼는 기준표본목문배나무 등 특별한 사연과 가치를 가진 식물들이 많지만, 몰려든 사람들이 줄까지 서서 구경하는 건 복수초가 유일했다. 복수초 주변에는 사람의 접근을 막는 울타리가 있다. 꽃 필 무렵의 복수초는 키가 한 뼘도 채 되지 않는다. 그래서 바닥에 뒹구는 낙엽 틈에 꽃이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꽃을 보기 위해 쪼그려 앉은 채 울타리 창살 틈으로 팔을 뻗고, 카메라 배율을 최대한 높여 사진을 찍는다. 꽃이 작고 울타리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휴대폰 카메라에 자세히 담기지 않는다. 괜히 이 울타리가 답답하고 성가시다. 울타리는 복수초를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복수초는 해가 바뀌면 가장 먼저 피는 꽃이라 겨우내 꽃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앞다퉈 찾는다. 그런데 복수초는 크기가 작아 꽃이 노랗게 피기 전에는 눈에 띄지 않는다. 게다가 해가 없으면 꽃잎을 닫아버리기에 꽃을 보러온 이들의 발길에 꺾이고 밟힌 꽃봉오리가 여럿이었을 것이다. 울타리 속에는 이전보다 더 많은 복수초가 피어난다. 가까이 보고 싶고 울타리는 답답하지만, 멀리서 복수초를 본다. 노란 꽃잎이 햇빛에 반짝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