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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과 식물 ; 정원속의 이끼
우리나라에서 역사적으로 이끼가 정원을 구성하는 주요 식물로서 등장하는 예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정원이 단순히 식물을 모아놓은 덩어리가 아니라 의미 맥락(meaning context) 속에서 구성되어짐을 감안할 때 우리의 정원 속에 이끼가 주요대상으로 등장하지 않았음은 다른 식물에 비해 볼품이 없어 관상 가치가 낮기 때문일 수도 있고, 습하고 그늘진 곳이라면 으레 생육하는 흔한 식물이었기 때문이거나, 백보를 양보하여 관상 가치를 가진 이끼가 있었어도 인위적으로 재배하기가 쉽지 않았음에서도 그 연유를 찾을 수 있다. 예로부터 그늘지고 습한 곳은 선호되는 공간이 아니었기에 이곳에 거주하는 생물들 역시 비호감(非好感)의 대상이기 십상이었고 경우에 따라 제거의 대상되기도 하였다. 이유야 어떻든 우리 조상들과 현재의 우리들에게 이끼란 식물은 낯선 식물임은 부인할 수 없다.반면 이웃 일본 정원에서 이끼는 중요한 식물 소재로 아주 오래전부터, 의도적으로 사용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일본의 오래된 궁이나 절, 숲에 가면 이끼가 지피식물로서 정원의 중요한 요소로서 목적을 가지고 사용되어 왔다. 일본의 정원에서 이끼는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었을까?
이끼에서 무엇을 읽을 수 있을까?이끼를 보면서 ‘생명체의 근원’, ‘장수’, ‘변함없음’, ‘강인한 생명력’ 등의 의미를 유추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 아니다. 일본의 절이나 고궁에서 보는 이끼 정원은 이 곳 승려들이, 관리인들이 생명의 공간으로 탈바꿈한 이곳에 날아들어 온 각종 식물 종자들을 종교적 의식을 행하듯 동트는 새벽녘에 하나하나 뽑는 수고를 통해 유지된다. 무엇이든 의미 있는 것을 신성시 하는 일본사람들이 이끼를 신앙의 대상으로 삼았음은 물론이다.
이끼는 어떻게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대부분의 관속식물이 토양을 기반으로 뿌리를 내리고 이와 통도조직을 이용하여 수분과 양분을 이동시킴으로서 생명을 영위한다. 그러나 이끼는 토양층이 없는 콘크리트, 돌과 같은 무기물 표면에 붙어 생명을 영위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 지구라는 환경에 던져진 생명체가 살기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변모시켜 온 진화의 역사를 보면 정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4억 5천만 년 전 육지에 처음 출현한 이끼가 생육한 토양은 무기물만 있는 환경이었다. 이끼가 뿌리라는 기관을 발달할 이유가 없는 조건이었다. 이용가능한 양분이 없는 토양에 발을 담그고 있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끼는 부착기능만 갖는 가근(假根)만 발달시켰다. 뿌리가 없으면 신진대사에 필요한 수분과 양분을 어떻게 취했을까? 뿌리가 없으니 직접 몸을 통해 대기로부터 수분과 양분을 흡수하는 방편밖에 남은 게 없다. 그래서 몸으로 대기 중의 수분과 양분이 쉽게 직접 침투되도록 관속식물과 달리 표피에 큐티클(cuticle)층이 없다. 그러나 대기에서 취하는 수분과 양분이 일정하거나 충분하지 않기에 개체는 될 수 있는 한 작게, 또 서로 뭉치도록 함으로써(콜로니 형태 colony) 개체사이의 빈 공간에 수분을 최대로 저장하고 손실을 최소화하는 전략을 구사하였다. 수분이 건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인삼을 포장할 때 이끼로 감싸주는 이유는 이끼의 조직이 거대한 물 저장고처럼 생겨 수분을 유지하는 데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왜 이끼를 주목하는가?우리에게 낯선 이끼는 특별한 의미가 부여되지 않고 관상가치가 낮음, 축축하고 어둠의 공간에 서식하는 식물, 재배의 어려움 등의 이유로 우리네 정원에서 다만 주목을 받지 못했을 뿐이지 존재조차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이끼는 없었을 수가 없다. 전술하였듯 이끼는 다른 식물이 살 수 없는 곳에, 고등 식물이 적응하기엔 가혹한 환경에서 생존해 온 식물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끼를 정원에 도입하려는 시도가 있다. 정원의 소재로서 뿐 만 아니라 환경재(environmental medium)로 사용코자 하는 시도들이 일본을 중심으로 점점 늘고 있다.
우리가 발을 딛고 생활하고 있는 도시는 콘크리트, 철, 유리 등 무기물 덩어리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효율’과 ‘속도’로 우리를 몰아붙이는 도시를 보면서 아득한 옛날, 이끼가 출현한 그 시기를 떠올리는 것은 비약일까? 이럴수록 뒤 돌아 보자고, 느리게 가자고 외칠 수 있는 것 또한 우리가 가진 특권이다. 어쩌면 우리가 이끼에 주목하는 것은 우리네 삶의 환경이 점점 생명체가 살기에 녹록치 않음을 예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어머니의 품 같은 넉넉함을 잃어버린 우리네 삶에서 이끼를 통해 이를 보상받으려는 무의식의 발로는 아닌지 모르겠다. 이유야 어쩌든 보잘 것 없지만 이끼에서 유추되는 의미들을 되새김하면서 정원 한구석에 이끼로 정원을 만들어 관찰하는 것도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방편은 아닐런지….
글 _ 김용규 Kim, Yong Kyu (일송환경복원(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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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과 식물 ; Being itself : 식물과 디자인
식물과 디자인이라는 테마는 두 개의 독립된 주제들의 병렬일 수도 있고 둘 중의 하나가 다른 하나를 포함하는 관계로 파악될 수도 있다. 우리 주변의 여러 분야에서 식물을 대상화하고, 그 특성을 이용하거나 식물의 이미지를 디자인에 응용하는 사례는 매우 많다. 인간이 주변의 환경에서 빈번하게 접하는 식물이라는 시각적 대상은 이미지화되었을 때 보다 친근하며 아름답게 보인다. 뿐만아니라 식물은 스스로 외부의 환경에 자신을 맞추어나가는 능력이 있는 데, 본고에서는 식물과 디자인을 대상화하지 않고 식물이 가진 특성으로서의 디자인에 중점을 두어 서술하고자 한다. 이는 식물의 미적 관점이라기보다는 생존, 즉 존재를 위한 필요 혹은 욕구로서의 디자인이라는 적극적인 식물의 특징으로 살펴보고자 함이다.필자는 작품 디자인에 있어 식물에 내재한 이러한 디자인적 욕구, 즉 자연이 세상에 존재하고 교류하는 방식의 표현으로 바라보고 있다. 본 고에서는 몇 개의 작품사례를 통해 자연과 식물을 바라보는 필자의 관점에 대해 서술하고자 한다.
존재에 대한 사색(Being itself) “존재에 대한 사색은 오랜 화두이다. 존재라는 철학적 화두를 붙잡고 있는 동안 몰아, 내지는 무아를 겪어낸 듯 그의 작품은 소리가 없고 울림만 있다. 작품이 간직하고 있는 울림만이 작가의 외침의 흔적을 어렴풋하게 짐작하게 한다. 그에게 외침은 과거이며, 존재(Being-itself)는 잠재적 에너지이다. 에너지는 운동이며 질량이며 위치라는 과학적 명제에서도 말하고 있는 것처럼, 에너지는 형태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며, 그 공간에 따라 다른 작용을 유도하는 그야말로 거침없고 종잡을 수없는 힘이다. 그의 사색이 깊어질수록 작품은 그 힘을 고요함 속에 담는다. 작가의 작품들은 제목을 달리하지 않는다. 모두 Being itself이다. 그러므로 필자는 작품의 부제에 의존하여 작품을 구분하고 있다.” _ 조소영(미술평론가)
식물은 자신의 존재방식을 스스로 디자인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식물에게 있어서 그 생명의 원천은 뿌리라고 생각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뭇잎은 햇빛과 증기의 도움을 얻어 부족한 영양분을 보충한 뒤 다시 나무로 돌려보내 충분한 자양분을 얻게 하므로 잎이 나무의 어머니”란 탁닛한 스님의 말처럼 잎사귀는 나무가 그 생명을 유지하는 데 뿌리 못지않은 중요한 일을 한다. 그것은 바로 광합성이라는 화학적 작용으로 식물이 햇빛에너지를 자신이 가진 탄소와 결합시켜 양분으로 만드는 능력이다. 이러한 나뭇잎의 가치와 자유로우면서도 규칙적인 일련의 형태는 작품소재로서 충분하다.
글 _ 심 부 섭 Shim, Bu Seop(조각가)(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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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과 식물 ; 자연을 닮아가면서 사는 사람들 _ 그림 속의 식물들
자연의 위대함을 받아들이는 모습은 나라마다 다르다. 서양에서 자연은 인간의 힘을 드러낼 수 있는 정복의 대상이었고 동양에서 자연은 찬탄의 대상이었다. 동양인들에게 자연이 찬탄의 대상이었다는 전제는 동일하지만 찬탄을 표현하는 형식은 또한 제각각이다. 중국 사람들이 과장적인 몸짓으로 드러냈다면 일본 사람들은 인공적이고 정교하게 드러냈다. 그래서 중국 미술은 필요이상으로 장식적이고, 일본 미술은 공예품처럼 인위적이다. 중국의 천안문이 그 크기와 현란함으로 사람의 혼을 빼앗는다면 일본의 히메이지성은 잘 만든 블록인형처럼 인공적이다. 그렇다면 한국 사람들의 표현 방식은 어떠했을까.
1. 손질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이 한국의 미한국의 미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그것은 ‘자연의 미’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의 손을 빌어 아름다움을 표현하되 손질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 그것은 마치 화장은 하되 전혀 화장한 것 같지 않은 자연스러운 얼굴이 가지는 아름다움과 같은 종류일 것이다.그런 자연스러운 한국미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삼척에 있는 <죽서루>이다. 관동8경 중의 하나인 죽서루는 기둥과 기둥사이의 간격도 일정하지 않고 기둥의 배열도 서로 다르다. 또한 기둥의 높이도 제각각이다. 왜 이렇게 지었을까?<죽서루>는 오십천 하구의 낭떠러지에 자리잡고 있다. 누각에 앉아 낭떠러지 바로 아래의 시퍼런 물을 내려다 볼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러다보니 높이가 서로 다른 바위 끝에 건물을 세울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그런데 누각을 짓는 솜씨가 참으로 절묘하다. 울퉁불퉁한 바위를 평평하게 밀어버리는 대신 각각의 바위에 맞게 기둥의 길이를 다르게 자른 것이다. 기둥의 하단부는 그랭이질하여 기둥과 바위가 서로 한 몸처럼 맞물리도록 배려했다. 이런 건축법은 바닥을 일자로 밀어버린 후 기둥을 똑같은 높이로 잘라서 마름질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수고와 노력이 필요하다.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자연에 순응해서 살겠다는 의지는 다양한 예술 형식을 낳게 되었다. 경주 남산 꼭대기 옛 용장사터에 있는 <용장사삼층석탑>을 보면 우리 선조들이 동일한 조건 속에서 얼마나 기발하게 그 조건을 변형시킬 줄 알았는가를 확인해 볼 수 있다.우선 탑을 먼저 확인해보자. 탑은 맨 아래의 기단부와 중간의 탑신부, 그리고 맨 위의 상륜부로 구성된다. 이 구조가 우리나라 석탑의 기본골격이다. <용장사삼층석탑>도 이 규정을 토대로 세워져서 2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부가 올려졌고 상륜부는 결실되었다. 그런데 <용장사삼층석탑>의 매력은 기단부에 있다. 기단부의 하대석을 잘 다듬은 판석대신 산꼭대기의 자연암반으로 대신한 것이다.어떻게 이런 발상을 할 수 있었을까.이 탑은 통일신라 때 세워진 탑이다. 통일 신라의 수도였던 서라벌은 ‘한 집 건너 절이 들어서 있었다’고 할 정도로 불교가 융성했던 시대였다. 그런 도시를 지키고 있는 산이 바로 남산이다. 그러니까 남산은 불국토를 지키는 주산인 셈이다.이 우주에 수많은 부처님이 계시듯 경주 남산에는 곳곳에 부처상이 새겨져 있다. 그러나 부처상이 많다고 해서 남산 자체가 불국토가 되지는 못한다. 이런 한계를 간단히 뛰어 넘어버린 발상이 바로 ‘탑’이었다. 남산의 바위를 탑의 기단부로 함으로써 남산 전체를 탑이 되게 한 것이다.인간이 만드는 예술작품이나 조형물이 꼭 인공적일 필요가 없다는 사고방식. 어쩔 수 없이 사람의 손을 빌리더라도 인간의 손길을 최소화하고 자연스러움을 드러내야한다는 철저함이 <죽서루>와 <용장사탑>같은 독창적인 작품을 만들게 한 원동력이 된 것이다. 그것은 또한 어떤 경우라도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자연을 지키겠다는 이 땅의 사람들의 바람이자 생활방식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사는 곳에 꽃이 피고 나무가 자랐다. 자연을 삶 속에 끌어 들여 자연을 닮아가면서 살고자했던 사람들 속에 꽃과 나무가 자라고 새가 울었던 것이다. 이제 그 사람들이 살았던 마을로 내려가 보자.
2. 꽃을 상처내지 않는 꿀벌처럼김홍도(1745~1806?)가 그림을 그리고 그의 동갑내기 친구인 이인문(1745~1824)이 화제를 쓴 <마상청앵도>는 사대부의 여유와 시정을 통해 봄날의 서정을 한껏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선비의 풍류와 봄날의 서정. 이런 주제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김홍도는 구도를 아주 단순화시켰다. 선비와 하인의 옷은 철선묘로 단순화시킨 반면 말과 갓과 풀과 버드나무잎은 선없이 담묵으로만 처리하여 대조를 이루게 했다.여기서 선비가 봄을 즐기는 모습은 그저 바라보고 듣고 느낄 뿐이다. 꽃을 아름답다하여 꺾는다거나 꾀꼬리 소리가 청아하다하여 새장 속에 잡아 가두지 않는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상태를 변형시키지 않고 즐길 뿐이다. 꿀벌이 꽃에서 꿀을 따지만 꽃에는 상처를 입히지 않는 것처럼 선비 또한 봄을 즐기되 버드나무와 꾀꼬리에게 아무런 해를 주지 않는다. 이것이 우리들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고 자연을 즐기는 방법이었다.우리 나라 사람들만큼 여행을 좋아하는 민족이 또 있을까. 사계절이 뚜렷한만큼 계절마다 바뀌는 자연을 찾아 짚신이 닳아지도록 돌아다녔다. 조선 순조 때 홍석모가 지은 『동국세시기』와 김매순이 지은 『열양세시기』를 보면 상춘객들이 앞다투어 꽃구경을 떠나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그들 또한 꽃에 상처를 입히지 않는 꿀벌처럼 꽃만 감상하고 돌아왔을 뿐이다. 풍란이 예쁘다면 통째로 캐다 자기 집 화단에 심어놓는 오늘날의 우리하고는 다른 모습이었다.
3. 우리의 삶 곁에서 꽃은 피었다 진다꽃과 나비를 생각하면 곧바로 떠오르는 작가가 신사임당일 것이다. 율곡 이이의 어머니로 더 잘 알려진 신사임당은 시서화에 두루 능했다. 그 중에서도 여성의 섬세함을 잘 살려서 그린 <초충도>는 그림의 소재가 꼭 명산대천일 필요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자신의 삶 곁에서 피었다 지는 꽃과 풀도 훌륭한 소재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해주었다. <수박과 들쥐>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소재이다. 한창 맛이 들기 시작한 수박을 두 마리 들쥐가 파먹고 있는 그림이다. 소재를 찾아 멀리 떠나지 않아도 눈을 들어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발견할 수 있다. 무덤가에나 야산에 지천으로 널려 있던 패랭이꽃도 마찬가지다. 이 그림은 운신이 자유롭지 못했던 조선시대의 여성이 자신의 한계 내에서 어떻게 자신의 꽃을 피워낼 수 있는가를 보여준 꽃같이 소중한 그림이다. 그래서 이 그림은 꽃보다 더 아름답다.
4. 꽃에 담은 축복과 바람붉은 태양이 떠 있는 산 아래 상서로운 구름이 흐르고, 기암괴석이 멋드러진 계곡 옆에는 새와 동물이 평화롭게 놀고 있다. 화려한 오방색이 주가 되는 10폭 병풍에는 우람한 소나무 그늘 아래서 학과 사슴과 거북이가 한가롭다. 현실에서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다.이 그림은 <십장생도 10폭 병풍>이다. 늙지 않고 영원히 사는 ‘불로장생’의 염원과 바람을 담은 그림이다. 늙지 않고 영원히 사는 것에 더해 자손도 많고 잘 살고 건강하면 좋을 것이다. 자식들이 높은 벼슬과 명예까지 얻어 번창한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그래서 등장하게 된 것이 바로 ‘십장생’ 그림이다. 이런 바람은 왕에서부터 헐벗은 서민들까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나 바라던 사항이었다. 그래서 불로장생을 의미하는 그림은 해가 바뀔 때 ‘세화’로 그려져 임금이 신하들에게 내려주곤 했다.<십장생도 10폭 병풍>이 불로장생을 위한 총체적인 소원이 담겨 있다면 <모란도 10폭 병풍>은 단일 주제만을 강조해서 그린 예라 하겠다. 모란은 일시에 피었다 일시에 떨어지는 꽃이다. 유난히 풍성한 꽃이 한꺼번에 피어나는 모습을 보면 꽃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까지 풍성함으로 그득해진다.그래서 모란꽃은 부와 재물을 상징하게 되었다. 모란꽃처럼 풍성하게 피어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제비꽃이나 민들레꽃처럼 작고 여리여리한 꽃이 아니라 꽃잎도 크고 고혹적이어서 귀부인처럼 화려하게 피어난다면 얼마나 행복할까.매난국죽이 지조와 절개를 상징한다하여 선비들의 사랑을 받았던 것에 비해 십장생도와 모란도같은 ‘염원화’는 남녀노소와 계급을 떠나 모든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이데올로기나 이념보다 사는 것이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살아가면서 예상치 못한 어려움에 부딪치게 되면 이념보다는 감성이 먼저였기 때문이다.
5. 세상에 못난 사람이 어디 있으랴개심사의 종루는 한 눈에 봐도 어딘가 불안정해 보인다. 날렵한 맵시를 자랑해야 할 처마선은 균형이 맞지 않고, 아무렇게나 휘어져 있는 기둥은 네 개가 전부 제멋대로이다. 휘어지고 비틀어지고 상처의 흔적까지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그런데 이런 몰골을 하고 절의 맨 앞자리에서 당당하게 손님들을 맞이하는 건물이 바로 종루이다. 기둥이 비뚤어졌던 휘어졌던 상관없이 기둥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다.바로 그것이다. 못났으면 못난대로 비틀어졌으면 비틀어진 대로 감추지 않고 보여줄 수 있는 세상. 잘난 사람과 못난 사람이 동등한 자격으로 살아갈 수 있는 세상. 그런 세상에서는 누구나가 아름다운 기둥이고 꽃이다.우리 모두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잠시동안 내가 사는 공간을 빌려 쓰고 갈 뿐이다. 그 공간에 몸담고 있는 동안 내가 조금 불편하다고 해서 빌려 쓴 공간을 손상시켜서는 안될 것이다. <삼척 죽서루>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꽃이 아름답다하여 꺾어서는 안될 것이다. 다른 사람도 그 꽃을 보며 나와 같은 기쁨을 느낄 수 있도록 남겨두어야 한다. 김홍도의 <마상청앵>이 그것을 가르쳐 준다.살아가면서 어떤 바람이 있다면 소박하게 기도해 볼 일이다. 그 기도가 장독대 위에 정화수 한 그릇을 떠다 놓고 손을 비비던 우리네 할머니들의 기도여도 좋다. 혹은 하늘을 찌를 듯 우람한 건물에 들어가서 고개를 수그리는 기도여도 상관없다. 건강하게 살아가게 해달라고. 행복하게 살아가겠노라고 다짐하는 기도여도 좋다. 단 그 기도 속에는 잘난 사람과 못난 사람 모두가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야 한다는, 살아갈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어야 한다. 그 자세를 <개심사 종루>의 기둥이 보여주고 있다.그래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것을. 이 봄에 피어나는 꽃을 보며 우리 모두가 꽃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기도여야 할 것이다.
글 _ 조 정 육 cho, cheong yook(미술사, 목원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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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과 식물 ; 꽃, 나무, 사람 그리고 행복한 게임
제1장 포기보랏빛 분홍의 도드라진 꽃잎과 그 속에 그려진 정교한 무늬, 깊은 숲에서 일찍 피었다 사라지는 짧은 생애, 나아가 씨앗을 퍼뜨리는 일종의 지략까지, 얼레지 꽃은 스타로서 모든 것을 갖춘 식물이었다. 이런 인기에 힘입어 많은 재배가들 혹은 개인적 수집가들이 얼레지 꽃을 가까이서 두고 보기 위한 노력들을 했으나 불행히도 얼레지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얼레지는 습하고 그늘진 음지에서, 부식질이 잘 발달한 토양조건에서 자라는 식물이다. 사람이 인위적으로 만드는 건조하고 딱딱한 토양조건에서 얼레지는 그 화려한 자태를 만들어낼 수 없었던 것이다.
제2장 당혹식물의 역사는 탈출의 역사이다. 그들은 언제나 새로운 세계를 동경하고 영역확장의 꿈을 꾼다. 이것은 개척 역사의 다른 해석방식이다. 자운영은 가축의 사료를 생산할 목적으로 들여와 울타리 속에 가두어 재배했던 식물이었다. 그러나 자운영은 이내 자연의 너른 들판을 향해 뛰쳐나와 사람의 목적과 무관한 자신의 의지를 실현할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자운영은 이제 우리나라 어지간한 곳에서 자신의 성공담을 풀어놓음으로서 그것을 들여온 사람들에게는 이러저런 원성을 흘린다. 유채 역시 한때 재배식물이었으나 울타리를 벗어나 자유를 찾아 자신들만의 세계를 구축했다.
제3장 편애사람의 식물에 대한 애정은 어느 정도 고약한 면이 있다. 자연인 식물이 마치 인간의 진귀한 보물과 같아서 흔한 것보다는 희소적인 것에 더 많은 흥미를 갖는다. 자원과 잡초의 경계는 희소성에 있다는 말이다. 그것은 사람이 오롯이 자연을 감상하고 자연을 곁에 두고자 하는 마음이기 보다는 식물 역시 사람의 개인적인 소장품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요즘 들어 민들레, 냉이꽃, 광대수염, 개불알풀, 꽃다지, 꽃말이, 봄맞이꽃, 양지꽃, 이처럼 너무 흔해서 사람들에게 별스런 주목을 받지 못했던 식물들, 사람들이 흔히 야생의 자연에게나 잘 어울린다고 제쳐 두었던 이들 식물들이 하나 둘 꽃시장에서 혹은 식물원에서 서서히 자신들의 구분된 공간을 제공받고 있으니, 사랑은 역시 움직이는 것이다.
제4장 체념사람과 식물의 역사에서 때로 식물이 주도권을 쥐고 있기도 하다. 양귀비꽃은 그 화려한 색감과 소담스런 자태로 아름다움의 대명사가 되었다. 당대 최고의 미인이 꽃 이름을 땄는지, 꽃이 미인의 이름을 땄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오로지 그 둘의 공통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어 욕망의 대상이 된다는 점이다.
제5장 유혹인류는 태어나면서부터 식물에게 유혹당해 왔다. 지상에 인간이 탄생했을 때 식물들은 이미 지금과 같은 발전을 이룩한 상태였다. 풍성한 초록의 몸체와 아름다운 꽃, 탐스런 열매, 식물이 이룩한 낙원에서 인류는 행복했다. 특히 꽃이 만들어내는 향은 대부분이 휘발성 테르펜계 물질로 이는 동물의 중추신경을 자극해 흥분을 시키거나 진정시키는 효과를 가진다.
제6장 승리인간은 식물의 길들이기에서 가끔 완전한 승리를 취하기도 한다. 튤립 제배의 역사는 인간의 식물지배 역사에서 완전한 승리처럼 보인다. 물론 가끔 튤립의 반란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럴수록 사람은 이 꽃은 점령하기 위해 더 많은 갖은 노력을 했다. 튤립은 이제 정확하게 학명을 말하는 것이 별의미가 없을 정도로 많은 원예품종들이 만들어져 있지만 원종은 Tulipa gesneriana로 백합목 백합과 튤립파속 알뿌리식물이다. 꽃잎은 두툼하게 부풀어 오르기도 하고 가늘게 갈라져 하늘거리기도 한다. 색상은 선명한 노랑에서부터 욕망의 붉음에서 검은색에 이르기까지 아주 단순하거나 혹은 다양한 얼룩무늬를 가진다. 그러면서 특이하게도 튤립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이미지에서 거의 고정되어 있다. 튤립 꽃송이가 그려내는 미끈한 곡선이라든지, 단순한 색상은 세계적으로 통일되어 있다. 누구나 튤립은 쉽게 그릴 수 있으며 어떻게 그려도 그 꽃은 튤립이 되는 것이다.
제7장 타협 생강나무의 노란 꽃은 가장 먼저 숲의 봄을 알린다. 물론 생강나무 꽃이 필 때쯤이면 신갈나무며 졸참나무, 서어나무, 오리나무, 버드나무의 꽃이 만개했을 테지만, 사람들에게 꽃은 여전 아름다운 꽃잎을 가진 것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생강나무의 노란 꽃만이 봄의 전령이다. 그러나 아무리 생강나무가 탐난다고 하지만 이 꽃은 사람 주위에서 살아가기를 꺼린다. 그것은 얼레지와 같다. 결국 사람들은 생강나무의 노란 꽃 대신에 산수유나무의 노란 꽃으로 도시의 봄을 장식한다. 그것은 일종의 체념이자 타협이라 볼 수 있겠다.
글·사진 _ 차윤정 Cha, Yoon Jung(농학박사, 산림생태학자)(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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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문화재보존
독일의 문화재보호나 문화재보존은 실측(實測) 및 수리(修理)를 통한 건축역사연구를 바탕으로 하므로 건축관련 실무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독일 내의 문화재 유관기관이나 관련단체부터 국제적인 기구에 이르기까지 문화재보존 및 보호에는 건축가가 주축이 되어 고고학자나 미술사학자·조경연구가 등 각 분야 전문가 및 숙련된 장인들과 모든 국민이 함께 동참한다. 건축 관련 문화재는 그 나라 문화경관의 시각적 정체성을 특징 짓는다. 옛 마을이나 교회·성곽·정원·산업 건축물들은 급변하는 일상생활을 통해 역사의 산 경험을 보여주는 한편, 역사의 축적을 말해준다. 독일에서는 국민들 스스로가 주위환경을 보존하려고 노력한다. 특히 건축물이 조성된 환경 그 자체를 가치 있는 문화유산으로 보존하려고 노력한다.
200여년 동안 독일의 문화재보존관련 정부기관은 후손들에게 물려줄 문화유산을 유지·관리하는데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19세기 초 독일에서 문화재보존이라는 분야의 초석을 놓은 사람은 술피즈 브와세리(1783~1854)와 프로이센의 대표건축가 칼 프리드리히 슁켈(1781~1841)이었다. 1843년 처음으로 프러시안 문화재보존 전문가 로 페르디난드 폰 크바스트(1807~1877)가 취임한 이래 다른 주에서도 잇따라 전문가들이 참여하게 되었다. 건조물 문화재의 등록은 1870년 헤센-카셀 지역의 문화재 목록화 작업에서 시작이 되었다. 1900년 드레스덴에서 열린 최초의 독일문화재보존대회가 문화재보존대회의 효시였다. 그 후 이 문화재보존대회는 전통이 되어 지금도 해마다 독일연방문화재보존가협회에서는 문화재연례학술대회를 개최한다. 정기간행물인 "문화재보존"은 1899년 창간되었고 오늘날까지 독일의 문화재보존에 대한 정보를 소개하고 있다.
문화재의 보호나 보존은 언제나 독일연방공화국 문화정책의 중점 사안이었다. 무엇보다도 1989년 통일 이래 더욱 중요해졌다. 1991년부터 1999년 문화유산 보존에 소요된 지원금은 개략 한화 약 1조 8천억원 정도였고 그 중 한화 약 1조 7천억원 가량이 새로운 주(옛 동독지역)에 할당되었다. 연방문화교육부장관회의의 한 통계에 의하면 1998년에 주정부는 한화 약 5천 3백억원 정도를 문화재보호 및 보존에 지출했고 아울러 자치단체, 교회, 문화재단 및 문화재 개인 소유자들에게 지원했다. 개인들은 과외로 세금감면의 혜택을 받는다.
글 _ 조인숙 Cho, In-Souk (다리건축 소장)(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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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 화재가 주는 교훈과 전통조경이 나아갈 길
숭례문 화재 - 문화재 무관심에 대한 마지막 경고국보 1호로 우리 문화재의 상징적 존재였던 숭례문이 어처구니 없게도 한 인간의 광기에 가까운 사회적 보복 심리에 의해 우리 눈앞에서 처참하게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서울에 남아 있는 목조 건축물 중 가장 오래되었고 도성의 정문으로서 지난 600여년간 각종 참화와 전란속에서도 꿋꿋히 그 자리를 지켜왔던 숭례문이 한 순간에 불타고 말았다.사실 숭례문 화재의 원인은 한 인간의 그릇된 인식에 의한 방화이지만 그 저간에는 문화재에 대한 우리의 안일함도 한 몫하고 있다.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의 문화재는 우리의 무관심과 무지함에 대하여 계속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2005년 4월 5일 낙산사 산불로 사찰 전체가 전소되고 보물인 낙산사 동종이 화마에 녹아드는 장면을 보면서 우리는 얼마나 안타까워 했던가. 또 작은 가십거리에 불과했지만 창경궁 문정전의 방화도 관심 있는 국민이라면 모두가 기억하고 있는 사건이다. 더욱 황당한 것은 창경궁 방화범이 숭례문 방화범과 동일 인물로 확인된 순간이었다. 결과론이지만 진작에 조금만 더 관심을 기울였더라면 국보 1호이자 문화민족의 자부심의 상징이었던 숭례문마저 잃어버리는 참담한 지경에까지는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숭례문은 자신의 몸을 불태워가면서까지 우리에게 다시 한번 경고를 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숭례문이 불탄지 어언 한달여가 지나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벌써부터 숭례문 뿐만 아니라 모든 문화재가 국민들의 관심 속에서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는 징후가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 발견되는 일이다. 눈물을 흘리며 조화까지 바치던 그 추모의 열풍도 사그라들고 있으며 각종 언론과 신문지상에서 떠들어대던 추후의 방재대책도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고 있다. 혹간에 우리의 민족성을 폄하하는 표현으로 냄비근성이 강하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이 보다는 뚝배기와 같은 은근과 끈기가 우리의 정서를 보다 더 잘 대변한다고 본다. 적어도 문화재 보존에 있어서 만큼은 우리의 뚝배기 정신이 되살아나 따뜻한 열기가 오래도록 지속되기를 기대해 본다.
문화재 보존의 딜레마 - 보존과 개방숭례문 화재와 더불어 화재의 근본적 원인을 조급한 개방에서 찾으려는 시각도 있다. 일부의 시각에서 보자면 국보 1호이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문화재를 그리 쉽사리 시민들이 접근할 수 있도록 개방할 필요가 있었느냐는 것이다. 반면 문화재를 관리하는 최종의 책임을 지고 있는 문화재청이든 관리를 위임받은 서울시의 입장은 국민들에게 문화재 향유권을 되돌려 주자는 문화재 정책의 일환이었다는 설명이다. 21세기 문화재 보존정책의 기조는 대국민에 대한 문화재 향유권을 확대해 나가는 방향으로 큰 줄기를 형성하고 있다. 개방은 이에 따른 자연스러운 조치로 보여진다. 지난 세기까지 문화재 보존정책의 큰 방향은 ‘현상보호’와 ‘동결보존’이었다. 이로 인해 문화재는 국민들로부터 소외되었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문화재 정책은 원형보존을 전제로 한 활용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문화재 활용론은 이미 선진외국을 중심으로 각국 문화재 정책의 대세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혹여 숭례문 화재가 빌미가 되어 보존을 전제로 한 개방과 활용이라는 문화재 보존정책의 기조가 다시 퇴보하거나 회귀 되서는 안될 것이다. 다만, 문화재에 대한 개방과 활용에 앞서 문화재 보존과 관리, 각종 위험으로부터의 예방에 보다 치밀한 사전준비가 전제됨은 물론이다.
숭례문 화재 - 전통조경을 재인식하는 계기로 삼아야이번의 숭례문 화재는 국보 1호인 숭례문을 잃었다는 상실감을 회복하기 위한숭례문 자체의 문제해결로 끝나서는 안될 것이다. 오히려 이번의 참사는 남아 있는 우리의 문화재를 보다 더 효과적으로 지켜낼 수 있는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문화재 전반에 대한 방재대책을 새롭게 점검하고 기존 문화재에 대한 보존철학도 정립하고, 나아가 대국민적 문화재의 관심을 지속적으로 불러일으킬 수 있는 방안도 강구되어야 한다.한편, 조경분야에서도 이번의 참사를 반면교사의 교훈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조경문화재의 보존 및 관리실태는 어떠한지 꼼꼼히 살펴보아야 하고, 문화재 조경 전반에 대한 현실도 냉정히 조망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거시적으로는 현대조경 속에서 전통조경의 가치는 무엇이며 어떻게 자리매김을 할지에 대한 다양한 발전적 대안의 모색이 논의되어야 한다. 그 중 본고에서는 백년대계하고 하는 전통조경 교육이 앞으로는 어떠한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할지 개인적 의견을 피력해 보고자 한다.
전통조경 교육의 방향 - 전통조경 교육의 다변화 필요성현재 각 대학 조경학과에서 벌어지고 있는 조경교육에서 전통조경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빈약한 실정이다. 조경사라는 이름으로 한 과목 또는 두 과목으로 편성되어 있는 것이 일반적인데, 그마저도 동·서양 조경사로 나누어지니 한국 전통조경은 반쪽만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좀 심하게 표현하자면 그나마 과목이 개설되어 있는 것도 기사시험 과목이기 때문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과목은 개설되어 있지만 전공자들이 빈약하다 보니 비전공자들의 떠맡기식 강의와 내용도 기사시험에 초점을 맞춘 단편적인 암기 위주로 진행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교육을 받은 조경학과 졸업생들이 실무에 나아가 전통적 사고를 기초로 창조적 발상을 이끌어 내기를 기대하는 것은 너무나도 지나친 요구가 되고 있다.바라건대 개별 조경사 과목뿐만 아니라 조경교육의 핵심을 이루는 계획, 설계, 시공, 관리로 이루어지는 조경교육의 핵심적 과목들 속에서도 전통조경의 내용은 일정 부분 함께 다루어져야만 한다. 모더니즘(근대주의)에 대한 진지한 반성에서 출발한 포스트모더니즘(탈근대주의)의 철학적 토대가 역사성과 맥락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왜 우리의 전통원림 속에서 발견된 터잡기 논리가 현대 공간의 site planning으로 접목될 가능성은 없는 것인가. 전통공간의 조영원리와 설계방법론으로의 관계맺기는 불가능한 것인가. 실용적이든 미적이든 누구나 인정하는 우리의 아름다운 전통정원의 요소들이 현대공간속에서 단지 소품이나 오브제로서가 아니라 설계적 요소로서는 자연스럽게 담길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또 한국미에 대한 진지한 탐색의 결과가 현대 조경공간 속에 자연스럽게 미적으로 표현될 수도 있을 것이다. 자칫 조경미학이라는 과목이 어설픈 서양의 형식미 논리로만 가득 채워지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 모두에게 되묻고 싶다. 이러한 현실은 어느 누구만의 잘못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배우는 학생들보다는 기성 조경인, 더 나아가 학교에서 강의를 하는 선생들의 책임이 더 큰 것만은 분명하다.
글 _ 김영모·한국전통문화학교 전통조경학과 교수(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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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역사유적 및 문화재 보존·관리 실태
지난해 경관법이 국회를 통과함으로서 우리도 우리네 경관을 제대로 관리할 제도적인 틀을 마련을 마련하게 되었다. 특히 경관관리 대상범위에 역사경관을 포함시킴으로서 그동안 점적으로만 보호되어 왔던 문화재를 면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함으로서 문화재보호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볼 수 있겠다. 경제개발에 항상 뒷전으로 밀려났던 우리의 문화재도 국민소득 3만 불 시대를 바라보며 이제 제대로 대접받을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그러나 숭례문화재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아직도 우리나라 문화재 보호, 관리 실태는 많은 허점을 가지고 있다. 2002년 8월 숭례문 홍예석이 빠져 땅바닥에 떨어진 적이 있었다. 그때 필자는 방송 인터뷰차 현장에 갔다가 우연히 숭례문 2층 누각에 올라갈 기회를 가졌다. 2층 누각에 올라간 필자의 눈앞에 펼쳐진 누각내부의 모습은 한마디로 쓰레기통 그 자체였다. 새까만 공해먼지를 뒤집어 쓴 채로 여기저기 뒹굴러 다니는 삽자루들, 61년 보수공사 시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공사도구들, 그 당시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폐자재 등이 한꺼번에 뒤범벅이 되어 그야말로 엉망이었다. 이게 우리나라 국보 1호의 참모습인지....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광경을 직접 목격하고 우리나라 국보 1호가 이렇게 관리되고 있으니 다른 문화재야 오죽 하겠는가라는 생각을 하면서 씁쓸히 누각 내려오고 말았다. 그 후 한겨레신문에 “숭례문-이제는 국보 1호답게 대접해 주자.”라는 제하의 컬럼을 써서 6년 전에 오늘의 숭례문 화재를 미리 경고한 적이 있다.
서울 종로세무서가 있는 익선동에는 1924년 우리나라 최초로 마스터플랜에 의거해 주택전문 집장사에 의해 지어진 한옥 80여 채가 고스라니 남아 있다. 그러나 몇 해 전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심의에서 재개발구역으로 지정되어 이제 곧 헐리게 생겼다. “보존할 가치가 없는 문화재”라고 결론이 났다는 후문이다. 보존할 가치가 있는 문화재인지 아닌지는 문화재 전문가가 판단해야 할 문제이지 왜 문화재 전문가도 아닌 도시계획 전문가가 판단을 해서 결론을 내리는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아직도 우리 주변에서 빈번히 벌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 문화재에 대한 우리들의 인식이 아직도 후진국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더군다나 이곳 익선동에는 지금 재건축조합이 결성되어 27층 규모의 아파트를 추진 중이란다. 이곳에 27층 아파트가 들어서면 종묘의 서측 담장 너머로 아파트 4동이 불쑥 올라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종묘의 역사경관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된다. 그렇게 되면 종묘는 세계문화유산에서 세계위험유산으로 등재될 것이고 더 나아가 세계문화유산에서 탈락될 위험까지 처할 것이다. 독일 퀼른 대성당을 보라! 주변의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유네스코에서는 퀼른 대성당을 세계문화유산에서 세계위험유산으로 등재함으로서 독일정부에 경고의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익선동 문제는 한옥을 헐어 냄으로 인해 문화재 파괴를 자초하고 서울에 몇 남지 않은 한옥경관을 파괴하고 더 나아가 종묘의 역사경관까지 파괴하는 삼중살의 역사파괴 현장이다. 몇몇 비전문가들의 밀실행정으로 인해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가 얼마나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는지 절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서울시와 종로구청은 기 시행되고 있는 경관법에 의거하여 익선동의 한옥경관과 세계문화유산인 종묘의 경관계획을 시급히 세우고 경관관리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필자는 역사건축학회의 의뢰로 몇 해 전 경상북도 청송군의 비지정문화재를 실측조사 한 적이 있다. 지정문화재는 지방지정문화재이건 국가지정문화재이건 비교적 잘 보호되고 있지만 비지정문화재는 문화재이긴 하나 지정이 안 되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아무도 돌보지 않고 그냥 버려져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문짝을 도굴꾼들에게 도둑맞은 것은 부지기수이고 심하면 마루장 까지 뜯어간 곳이 있는가 하면 비가 새는 기와를 방치하는 바람에 서까래가 무너져 무방비로 방치된 곳도 많이 관찰되었다. 어떤 곳은 지금 당장 지정해도 좋을 훌륭한 문화재임에도 불구하고 비지정문화재라는 이유로 무관심 속에 방치되고 파괴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비지정문화재라고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사람이 살고 있거나 문중에서 관리를 하고 있는 비지정문화재는 그나마 다소 낫다. 비지정문화재는 예비문화재라는 인식을 갖고 관리주체를 정해 관리를 하든지 정부차원에서 지정문화재와 비지정문화재 사이에 예비문화재제도를 도입하여 더 이상 비지정문화재의 파괴를 막는 슬기를 발휘해야 할 때이다.
글·사진 _ 강찬석 Kang, Chan Suk (문화유산연대 대표, 대환건축 소장, 문화재청 전문위원)(본 원고는 요약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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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역사유적 및 역사경관에 대한 단상
역사유적이란 무엇인가? 우리 인류가 살면서, 남긴 흔적을 역사유적이라 한다면 문화재는 그중 오랫동안 남겨주어 후세에 물려줄 수 있을만한 유산을 지칭하는 것이다. 그래서 언제나 역사유적, 문화재는 우리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새로운 것을 향해 해야 할 일들에 대한 직감을 준다.나의 해외역사유적 탐방은 1985년 여름부터 일본 고베, 동경을 답사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온고이지신(溫故以知新)” 옛것을 통해서 새로운 지식을 터득하고 양식을 배운다는 진리를 바탕으로, 적어도 조경문화사에서 나오는 조경유적을 직접 보지 않고는 조경작품을 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자괴감에서부터 출발하였다. 그때는 이미 1981~1984년까지 신구대학 조경과에서 조경사를 강의하고 있었으므로 그 요구가 더욱 절실하였다. 그동안 해외유적 탐방을 통해 느낀 역사경관, 문화재 보존에 관해 요약하여 기술해본다.
유럽의 몇몇 도시들프랑스 파리는 유럽의 관문으로 개선문을 중심으로 시내중심에 퐁피두광장, 루불박물관, 에펠탑, 샹제리제거리 등이 있다. 이곳들은 역사경관보존지구로서 새로운 건물의 신축이나 변경 등이 철저히 통제되고 있으며, 정부에서는 새롭고 현대적인 건물을 지으려면 신개선문쪽의 라데팡스로 가라고 유도하고 있다.라데팡스에서는 현대적인 건물, 초감각의 환경조형물, 미술조각품들이 자유자재로 세워지고,자태를 뽐낸다. 그러나 개선문 안쪽에 새로운 시설들은 쉽게 설치할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다. 개선문안쪽의 역사문화유적들을 보존하고 관리하기 위한 조치이다. 그리스 아테네는 파르테논신전을 중심으로 수십만평의 성림이 조성되어있고, 아고라, 아카데미 하우스 등의 역사경관지구가 펼쳐지고, 리카피토스 언덕과 파르테논신전 사이에는 현대도시건물들이 바둑판모양의 정형식으로 펼쳐진다. 유네스코문화유산 1호인 파르테논은 아테네의 상징이자, 중심 문화유적지로 잘 보존이 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오스트리아 비안나에서도 마찬가지다. 슈테판성당과 오페라극장, 쉔부른 궁전등의 구시가지는 철저히 보존되고, 새로운 건물의 신축이나 증축은 통제된다. 새로운 건물을 지을 때는 슈테판 성당보다 높이 지을 수 없으며, 짓더라도 철저한 경관계획에 의해 통제된다. 그리고 새로운 건물을 지을 때는 외곽에 나가 지을 것을 권장한다. 비엔나 외곽에 지어진 호수가의 국제회의장 단지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곳은 국제회의장 건물이나 미술조각품, 가로의 환경시설물들이 초현대적이고, 초감각적인 자태를 뽐낸다.
헝가리의 부다페스트는 다뉴강을 끼고 “부다”라는 북쪽의 지역과 “페스트”라는 남쪽의 지역이 합쳐진 고도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역사유적들은 왕궁들을 비롯해 북쪽의 부다지역에 있고, 남쪽은 국회의사당, 영웅광장 등의 과히 오래되지 않은 건물들이 있어 구분된다. 이곳도 북쪽의 역사유적과 고건물, 경관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 할 수 있을 것이다.체코의 프라하는 시내 몰다우강을 따라 역사경관이 잘 보존된 도시의 대표이다. 최고 언덕위에는 9~11세기에 지어진 “빈교회”가 있고, 그 아래 6백개나 되는 종탑들이 보여, 고즈넉한 모습을 띠고 있어서 시내중심에는 현대건물의 신축은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다.슬로바키아의 “블라디슬라바“는 외곽의 성을 중심으로 역사유적들이 잘 보존되고 있고, 멀리에 주택단지 등 도시시설들이 보인다. 중세 성유적 보존에 대한 배려를 하고 있는 것이다.모스크바는 크레물린을 중심으로 3개의 원형과 8개의 도로가 직교하는 “방사환상형 도시“의 전형이다. 약 98m의 높이에 있는 크레물린, 붉은광장 도심지 중앙을 중심으로 역사유적이 몰려있고, 이곳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유적을 보존한다. 그러나 남쪽의 모스크바 대학을 비롯한 올림픽스타디움, 기타 오피스건물들은 현대적인 감각을 살려 지었다. 물론 모스크바대학본관 건물과 우크라이나 호텔 등 9개소에 산재한 스탈린 양식은 기본적인 도시틀을 구성해주는 중요요소이긴 해도, 철저히 역사경관지구와 외곽지구의 건물, 도시경관적 요소들이 대비된다.
글 _ 이재근 교수(상명대 환경조경학과)(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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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역사경관보존 및 관리제도
지난 2006년 문화재청에서는 성균관대학교 산학협력단과 함께 「국가지정문화재 주변 현상변경허가기준 매뉴얼마련을 위한 연구」용역을 진행했다.국내외 현상변경 허가와 법령의 적용사례 분석을 통한 향후 법령 정비방향을 제시하고, ‘문화재 보존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판당’에 대한 기준을 마련하며, 지방자치단체에서 국가지정 문화재 주변 현상변경허가기준 마련시 적용할 통일적 표준모델을 개발하려는 목적으로 시행하게 된 것으로, 최종희 교수(배재대), 김용기 교수(성균관대)가 연구책임을 맡았으며, 성균관대학교의 이상해 교수(건축학과), 정기호 교수(조경학과), 윤인석 교수(건축학과)와 한국전통문화재단의 김기상 이사장이 함께 참여하여 최종보고서를 발간한 바 있다. 본 원고는 역사경관과 관련한 법·제도적 측면의 이해를 돕기 위해 「국가지정문화재 주변 현상변경허가기준 매뉴얼 마련 연구(문화재청, 2006)」 최종보고서에서 발췌한 내용임을 밝힌다.
1. 법규연혁문화재 주변의 건축행위는 현재 문화재보호법에 의해 제한을 받고 있으나 현상변경허가 관련법조항이 문화재보호법 내 신설되기 전에는 건축법에 의해 제한을 받았으며,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법규연혁(1)1978.10. 30 건축법 시행령 개정제6조의 3(승인)5. 문화재보호법에 의한 문화재(건설부장관이 문화공보부장관과 협의하여 선정하는 문화재에 한한다) 보호구역 경계(문화재보호구역이 지정되지 아니한 경우에는 문화재의 외곽경계로 한다)로부터 300m 이내에 건축하는 건축물*문화재 주변 건축제한은 문화재보호법에 의해 제한을 받는 것이 아니라 건축법의 테두리 안에서 건축행위 제한이 이루어졌고, 시·도지사의 승인을 받아야 했음
(2)1980. 1. 12 건축법시행령 개정제6조의 3(승인)3. 문화재보호법의 규정에 의한 국보·보물·사적 또는 중요 민속자료로서 문화공보부장관이 건설부장관과 협의하여 지정하는 문화재의 보호구역경계(보호구역이 지정되지 아니한 경우에는 문화재의 외곽 경계로 한다)로부터 100m 이내에 건축하는 건축물(1999. 4. 30 삭제)*개정 이전 보다 건축행위 제한범위가 축소되었으나, 약 20년 동안 시간이 경과되면서 문화재 주변의 건축양상이 문화재보호구역 100m 지점을 경계로 하여 보존과 개발이 양분되는 현상이 나타남
(3)2000. 9. 1 문화재보호법 시행규칙 개정제18조의 2(국가지정문화재 등의 현상변경 행위)②법 제20조제4호의 규정에 의한 국가지정문화재(보호물 및 보호구역을 포함한다.)의 보존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 행위는 가음 각 호와 같다.2. 국가지정문화재의 외곽경계로부터 500m 이내의 지역에서 행하여지는 다음 각목의 행위1)다. 당해 국가지정문화재의 일조량에 영향을 미치거나 경관을 저해할 우려가 있는 건축물 또는 시설물을 설치·증설하는 행위
2. 국내제도국내외 역사경관 보존·관리를 위한 건축물 높이제한 관련 제도의 유형 및 내용을 고찰하여 국가별 제도의 특성을 파악하고, 국내 제도의 문제점을 도출한다. 이러한 국내외 역사경관 보존·관리를 위한 건축물 높이제한 제도의 분석은 유사한 제도 간의 비교가 목적이므로 ‘주변 건축물들의 고층화로 인한 보존대상 역사경관의 왜소화 방지(시각적 조화)’, ‘보존대상 역사경관의 스카이라인 형태 보존’, ‘주변지역으로부터 보존대상 역사경관으로의 조망 확보’, ‘역사경관 주변의 배경보존’으로 구분하였다.
(1)보존대상 역사경관의 왜소화 방지(시각적 조화)국내 제도는 현재 4가지 높이제한 목적의 유형에서 ‘역사경관 주변의 배경보존’을 제외한 3가지 목적 아래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1)문화재보호법I. 허가사항(제2장 20조)- 국가지정문화재(보호물·보호구역과 천연기념물 중 죽은 것을 포함한다)의 현상을 변경하거나 그 보존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 행위로서 문화관광부령이 정하는 행위ii. 건설공사시의 문화재 보호(제6장 74조)- 행정기관은 문화재의 외곽경계(보호구역이 지정되어 있는 경우에는 보호구역의 경계를 말한다)의 외부지역에서 시행하고자 하는 건설공사로서 시·도지사가 문화재청장과 협의하여 기준안으로 정하는 지역안의 건설공사에 대하여는 그 건설공사에 대한 인·허가 등을 하기 전에 당해 건설공사의 시행이 문화재 보존에 영향을 미치는 지의 여부를 검토하여야 한다.① 문화재 보호법 시행령i. 현상변경 등의 허가신청(제15조)- 법 제20조 각호의 1에 해당하는 행위에 대하여 문화재청장의 허가를 받고자 하는 자는 당해 국가지정문화재의 종별, 지정번호, 명칭, 수량 및 소재지 등을 기재한 허가신청서를 관할 시장, 군수, 구청장(자치구의 구청장을 말한다. 이하 같다) 및 시·도지사를 거쳐 문화재청장에게 제출하여야 한다. 다만, 법 제20조제3호의 규정에 해당하는 행위에 대한 허가신청은 관할 시장, 군수, 구청장 및 시·도지사를 거치지 아니할 수 있다.- 당해 국가지정 문화재의 보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50m 이상의 굴착행위. 소음진동을 유발하거나 대기오염물질, 화학물질, 먼지 또는 열 등을 방출하는 행위, 토지와 임야의 형질을 변경하는 행위ii. 건설공사시 문화재의 보호(제43조의 2)- 법 제74조제2항의 규정에 의하여 건설공사로부터 문화재를 보호하기 위하여 시·도지사가 문화재청장과 협의하여 기준안으로 정하는 지역의 범위는 당해 문화재의 역사적·예술적·학문적·경관적 가치와 그 주변 환경 기타 문화재보호에 필요한 사항 등을 고려하여 당해 문화재의 외곽경계(보호구역이 지정되어 있는 경우에는 보호구역의 외곽경계를 말한다)로부터 500미터 이내로 한다. 다만, 문화재의 특성 및 입지여건 등으로 인하여 문화재의 외곽경계(보호구역이 지정되어 있는 경우에는 보호구역의 외곽경계를 말한다)로부터 500미터 밖에서 건설공사를 행하게 되는 경우에 당해 공사가 문화재에 영향을 미칠 것이 확실하다고 인정되는 때에는 500미터를 초과하여 이를 정할 수 있다.
자료 _ 국가지정문화재 주변 현상변경허가기준 매뉴얼 마련 연구(문화재청, 2006)(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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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경관과 조경설계
역사경관 보존 제도우리나라 헌법은 전통문화의 계승, 발전(제9조) 및 국토자원의 합리적인 보호이용(제120조 2항)을 위한 제한과 의무(제222조)를 규정하고 있으며, 문화재 보존 및 관리와 관련해서 ‘문화재보호법(1962년)’이 특별법 성격으로 운용되고 있다. 문화재보호법 제1조에 문화재 보호는 ‘조상들이 남긴 민족문화유산을 잘 보존하여 후손들에게 전승하고, 교육적으로 활용하여 문화와 역사에 대한 가치관 정립과 국민의 문화수준 향상을 도모하고 나아가 민족의 우수성을 홍보하여 문화의 발전에 기여하기 위한 것’을 목적으로 한다. 한편, 1980년대 이후 건축물의 고층화와 대형화, 난개발 등으로 인해 역사경관권역의 개발 규제 필요성에 따라 문화재 보호구역, 검토구역, 역사문화미관지구의 제정 등이 이루어졌다. 2002년에는 문화재의 보존관리 및 활용에 관한 기본계획 수립(제15조) 규정, 2004년에는 ‘고도보존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었는데, 이 법을 통하여 고도(古都) 지역의 역사문화환경 및 문화재 보존, 지역 주민의 재산권 보호, 역사경관의 광역적 보존기반이 마련되었다. 그러나 역사경관보전을 어렵게 하는 것은 보전요소의 점재성(點在性), 소유자의 개발이익과 보전목적의 상충, 보전비용 등 재정지원 미흡, 획일적인 보호기준과 유지관리 주체 문제, 원형유지와 변화의 폭 등 심의기준이 문제점으로 상존한다.영국의 역사경관 보존은 ‘The Ancient Monument Act(1882년)’가 제정된 이후 민간차원의 National Trust 발족(1907년), 국가주도하의 ‘경관보호법(1963년)’ 등 민과 관의 협력체계가 정착되면서 미국은 물론 영연방국가들의 문화재 보존 및 보호정책의 골격을 이루고 있다. 미국은 영국의 National Trust를 모델로 ‘Trustees of Scenic and Historic Places and Objects(1896년)’가 결성되어 독립전쟁 유적지 등 민간 주도의 보존운동이 전개되었다. ‘Historical Site Act(1935년)’, ‘National Historic Preservation Act(1966년)’가 제정되었고, 연방정부의 역사보전심의회, 주정부의 역사유적보전위원회, 자치단체의 역사위원회 조직이 운용되어 유적지 주변에서의 프로젝트 중지 및 설계 심의, 토지이용에 근거한 미관규제, 보조금 제도 등을 통하여 보존관리에 대응하고 있다. 일본은 ‘사적명승천연기념물법(1916년)’을 시작으로 문화재보호법(1950년), 고도보존법(1966년)을 제정하였다. 1964년에는 가마꾸라의 National Trust 주도로 역사공간에 대한 경관보존운동이 주목을 받은 이후, ‘역사적 풍토보존에 관한 특별법’(1966년)을 제정하여 역사경관 권역의 보존 정비를 실효성 있게 추진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또한 가나자와시의 전통 환경보존 및 아름다운 경관형성에 관한 조례(1989), 오다루시의 역사적 건조물 및 경관지구 보전조례(1983) 등 지방정부 차원에서 역사경관을 광역 경관계획 및 보존체계로 다루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유네스코는 ‘문화재 보호를 위한 조약(1954년)’에서 문화재를 “역사적 또는 예술적으로 의미있는 건물 환경군(環境群)”이라 하여 문화재보존 의미를 면적 대상으로 확대시켰다.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채택된 ‘기념건조물 및 유적의 보존과 수복을 위한 국제헌장(1964년)’은 국경을 초월한 문화유산의 보존이라는 시각이 범세계적으로 확산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1972년에는 세계문화유산 협약안의 상정을 계기로 자연 및 문화유산과 관련한 역사경관의 보존관리 체계는 광역보존 방향으로 빠르게 이행되고 있다. 일본 나라(奈良)에서 개최된 ‘문화유산의 진실성’에 관한 국제회의(1994년)는 문화유산의 보존방법에 대한 인식을 넓히며, 유럽 석조문화유산 중심의 가치기준에 수정을 가하였다. 즉, 목조건축물 및 문화유산의 지역적, 문화적 특수성을 고려하며, 문화유산의 진실성(authenticity)은 형태와 의장, 재료와 재질, 용도와 기능, 전통과 기술, 입지와 환경, 정신과 감성, 그 밖의 내적·외적 요인을 포함한다는 합의를 도출하였다.유럽의 베니스, 로마, 파리, 일본의 나라와 교또, 중국의 소주 등은 역사적 문화경관의 틀을 깨뜨리지 않고 전통성을 보존해 왔기 때문에 오늘날 아름다운 역사도시의 대명사로 회자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역사도시들은 전통도시로서의 정체성을 표출하지 못하고 있다. 급격한 사회구조의 변화로 점진적인 발전체계를 뛰어넘어 도시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고, 낮은 건물군으로 스카이라인이 형성되었던 경관구조에서 콘크리트로 급조된 거대한 스케일의 물리적 도시구조로 전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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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경관과 조경설계론오늘날 전통도시의 역사경관 권역은 광역적인 토지이용 규제와 문화유산을 건전하게 보전하기 위한 대안이 시급히 요청되고 있다. 특히 역사경관에 대한 몰이해로부터 경관문화유산 가치로 인식을 전환해야 하며, 광역 경관보전체계 수립과 연계된 기본계획의 수립이 시급히 요구된다. 즉, 가시성(visibility), 접근성(accessibility), 활동성(activity), 의미성(landscape meaning) 실현을 위한 경관계획 및 조경설계 방안이 설득력 있게 제시되어야 한다. 이러한 관점과 연계하여 국, 내외 역사경관 보전에서 시사하는 바를 토대로 설계적 대안을 제시 하고자 한다.첫째, 조경설계·시공과 관련한 세계 최고의 저술서 원야(園冶), 계성에 의해 1631년 저술)에는 인지차경(因地借景)과 정이합의(精而合宜) 즉, ‘주변 지형과 경물을 잘 이용하여 융화되게 원림을 조성하되 정교하면서도 합당’해야 하고 수유인작 완자천개(雖由人作 宛自天開) 즉, ‘융화된 풍경은 비록 사람이 만든 것이라도 하늘이 만들어낸 것처럼 자연스럽다’고 기술하고 있다. 즉, 역사경관 권역의 바람직한 보전을 위한 접근에는 자연에 대한 절제와 생태환경 질서를 중시하는 토지관, 수용력이 고려된 토지이용과 경관짜임 등 정교한 설계적 접근이 필요함을 시사하고 있다.둘째, 서울, 경주, 전주와 같은 역사도시들은 노력여하에 따라서 정체성 짙은 문화경관 재현이 가능하다는 실례를 수원성곽(華城) 복원사례에서 찾아볼 수 있다. 문화경관 관리권역의 확대는 물론 시각적 명료성과 개방성 확보를 위한 옛 동선체계의 수복, 전통 의장 및 재료, 색상과 기법 등 철저한 고증작업을 통하여 고전미를 부각시키는 전략이 요구 된다. 이때 일제 강점기와 근대화 과정에서 멸실되거나 왜곡된 석조물과 목조물, 조경식물 등 오류문제에 대한 정비가 필요한데, 각종 사료가 조경영역에서도 유용하게 할용 될 수 있는바, 수원성곽 복원시 적용된 화성성역의궤(1801년), 소쇄원 복원시 적용된 소쇄원도(1755년)와 소쇄원48영(1548년) 등의 예를 들 수 있다.셋째, 역사와 문화경관을 보고 듣고 느끼며, 체험이 가능한 동선체계 및 목적공간의 수복, 그리고 멸실되거나 박제화 된 문화경관 이미지 요소의 발굴 및 재활을 모색해야 한다. 영국의 Relph(1987)는 현대 도시경관의 부정적 특징으로 ‘비연속적 경관의 연속’을 들었고 Rowe(1975)는 역사문화 공간 사이에 존재하는 ‘사이 공간’ 즉, ‘중첩 공간’이 경관 생성과 해석의 열쇠임을 언급했다. 따라서 중첩공간에 대한 전통이미지의 충실한 표현과 경관짜임을 통하여 문화재가 불연속적으로 산재하는 우리나라 역사경관 권역의 문제점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넷째, 역사경관 권역의 복원, 정비와 관련한 조경설계적 접근은 선조들이 견지했던 환경설계원칙의 적용가능성을 모색해야 한다. 즉 자연과 인공의 교집합 조화원리 그리고 공간 영역을 중첩시키는 침투기법, 단위공간을 중심공간에 종속시키는 주(主)와 종(從)과 첨(添)의 위계적 공간구성체계, 내·외부의 조망을 동시에 고려한 경관관리계획, 친근감을 주는 인간적 척도 개념의 공간스케일, 미적 쾌감을 은유적으로 상징화 하는 조경의장과 소재적용, 풍수적 사신사와 물길, 연못과 전통숲 등 환경미학이 어우러진 경관짜임 등이 복합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다섯째, 역사경관 보전전략 사업들은 최근 법제화된 ‘경관법’에 근거하여 시행할 수 있게 되었다. 즉, 특정경관계획과 연계된 역사경관 권역의 경관계획, 경관사업과 연계된 문화재 주변 경관보전 그리고 주요 산 및 하천의 제 모습 찾기, 주민발의와 행정지원체계 구조인 경관협정을 통한 경관 개선, 재래시장과 골목길 문화 환경 개선 등을 모색해 한다.
글·사진_신상섭 Shin, Sang Sup(우석대학교 조경도시디자인학과 교수)(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